벽암록(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84칙 유마(維摩)의 불이법문(不二法門)

碧雲 2025. 12. 22. 05:57
벽암록(碧巖錄) 제84칙 유마(維摩)의 불이법문(不二法門)
   
垂示云。 수시(垂示)
道是是無可是。
言非非無可非。
是非已去。得失兩忘。
淨裸裸赤灑灑。
且道。面前背後是箇什麼。
或有箇衲僧出來道。
面前是佛殿三門。
背後是寢堂方丈。
且道。此人還具眼也無。
若辨得此人。
許爾親見古人來。
옳다고 말하나 옳음은 옳다 할 것이 없고
그르다 하나 그름은 그르다 할 것이 없나니,
是와 非를 이왕 떠나보내서 得과 失 둘이 다 없어지면
정라라적쇄쇄(淨裸裸赤灑灑)하려니와,
자 말해보라. 面前과 背後가 무엇인가.
혹 어떤 衲僧이 나서서
"面前은 佛殿과 三門이고,
背後는 寢堂과 方丈이다"고 말한다면
말해보라. 이 사람은 안목이 있는가 없는가.
만약 이 사람이 분별되어진다면
古人을 親見하고 왔다고 인정해 주겠다. 
★佛殿; 佛像을 모신 殿堂. 法堂.
★三門; 사찰 정면의 세 문. 중앙에 大門, 좌우에 두 小門이 나란히 서 있다.
★寢堂; 住持의 寢室. 사찰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다.
★方丈; 住持의 居室. 維摩居士가 머문 四方一丈의 石室에서 유래함.
   
 【八四】舉。  【제84칙】 유마(維摩)의 불이법문(不二法門)
   維摩詰問文殊師利
   (這漢太殺合鬧一場。
   合取口)
   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知而故犯)
   文殊曰。如我意者
   (道什麼。直得分疏不下。
   擔枷過狀。把髻投衙)
   於一切法
   (喚什麼作一切法)
   無言無說
   (道什麼)
   無示無識
   (瞞別人即得)
   離諸問答
   (道什麼)
   是為入不二法門
   (用入作什麼。
   用許多葛藤作什麼)
   維摩詰이 文殊師利에게 물어
   (이 자가 한바탕 큰 논란을 일으키리니
   입을 닫거라.)
   "어떤 것이 菩薩이 들어간 不二法門입니까?" 하니
   (알면서 고의로 범했다.)
   文殊가 "내 뜻 같아서는
   (무슨 말이냐. 줄곧 分疏*치 못하다가
   擔枷過狀*하고 把髻投衙*하려는가)
   一切法에
   (무엇을 一切法이라고 하는가)
   언어도 설명도 없고[無言無說]
   (무엇을 말하는가)
   드러내 보임도 認識함도 없어서[無示無識]
   (다른 사람이 곧 속게 된다)
   어떠한 문답대상에서도 벗어난[離諸問答]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不二法門에 든 것이리다" 하였다.
   (들어가서 뭐 하자는 것이며,
   許多한 葛藤을 일으켜 어쩌자는 건가?)
★分疏; 自我辯解(자신을 말로 풀어 자세히 밝히다. 답답함을 해소시키다)
★擔枷過狀; 擔枷하고(목에 칼을 메고) 過狀한다(관문과 계단을 지나다) 함는
「수행상의 육체적 고난을 넘어 心的自在의 획득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把髻投衙; '상투 붙들고 관아에 투신한다' 함은 죽여달라고 목을 들이댄다는 것. 
   於是文殊師利問維摩詰。
   我等各自說已。仁者當說。
 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這一靠莫道金粟如來。
   設使三世諸佛。也開口不得。
 倒轉鎗頭來也。刺殺一人。
   中箭還似射人時)
   이에 文殊師利가 維摩詰에게 물었다.
   "우리는 各自 說했으니 仁者가 말씀하십시오.
 어떤 것이 菩薩이 不二法門에 드는 것입니까?"
   (이 하나의 고(靠:의뢰심)로 金粟如來라 말하지 말라.
   설사 三世諸佛이라도 또한 입을 열지 못하거늘
 창끝을 되돌려 왔다. 한 사람을 찔러 죽이려는가.
   화살 맞는 것이 쏠 때와 똑같이 되돌려지리라.)
★金粟如來; 維摩居士의 前身.
   雪竇云。維摩道什麼
   (咄。萬箭攢心。替他說道理)
   復云。勘破了也
   (非但當時。即今也恁麼。
 雪竇也是賊過後張弓。
   雖然為眾竭力。
   爭奈禍出私門。
   且道雪竇還見得落處麼。
   夢也未夢見。說什麼勘破。
   嶮。金毛獅子也摸索不著)。
   雪竇가 "維摩는 무어라 말할까?" 하더니
   (아! 만 개의 화살이 가슴을 꿰뚫는다.
   그를 대신하여 도리를 말하는구나)
   다시 "그래 알겠다." 하였다.
   (當時만이 아니라 即今에도 그러하거늘
 雪竇야 말로 도적 지나간 뒤에 활 당겼다.
   비록 그렇게 대중을 위해 힘을 다했지만
   사사로운 일로 화가 생기는 것을 어쩌겠는가.
   자 말해보라. 雪竇는 도리어 落處를 본 것인가?
   꿈에서도 보지 못하거늘 무슨 勘破를 말하는가.
   험! 金毛獅子도 모색하지 못한다.)。
말이 있기 전에 雪竇는 勘破했다 하여 維摩의 「默然無言」을 대신하고 있다.
   
維摩詰令諸大菩薩各說不二法門。
時三十二菩薩。
皆以二見有為無為真俗二諦。
合為一見。為不二法門。
後問文殊。文殊云。
如我意者。於一切法。
無言無說。無示無識。
離諸問答。是為入不二法門。
蓋為三十二人以言遣言。
文殊以無言遣言。
一時掃蕩總不要。
是為入不二法門。
殊不知靈龜曳尾。
拂跡成痕。
又如掃帚掃塵相似。
塵雖去。帚跡猶存。
末後依前除蹤跡。

維摩詰이 大菩薩들에게 각자 不二法門을 說하게 하니
때에 32菩薩들은
모두 二見인 有為無為의 真俗二諦를
一見이 되게 合쳐서 不二法門을 삼았는데,
그 뒤에 文殊에게 물으니 文殊는
"내 생각 같아서는 一切法에
無言無說하고 無示無識하여
離諸問答함이 入不二法門이겠소이다" 하였다.
대개 32인은 말로써 말을 보냈지만
文殊는 말 없음으로 말을 보내서
一時에 掃蕩하여 아무 것도 필요치 않는
이것을 不二法門에 드는 것으로 여겼으나,
신령한 거북이 꼬리를 끌기에
흔적을 털어낸다는 것이 흔적을 이루고,
또 빗자루로 먼지를 쓰는 것과 같아서
먼지는 제거되더라도 쓴 흔적은 아직 존재하여
末後에도 여전히 종적이 남는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殊不知].
★以二見有為無為真俗二諦合為一見; 有為法인 世俗諦와 無為法인 真諦(勝義諦)의
대립하는 두 소견을 초월하여 「一心」에 도달함이 不二法門에 드는 것이라 설명했다.
★靈龜曳尾; 거북이는 모래에 알을 낳은 후 다른 동물에게 들키지 않도록
모래로 알을 가리고, 다시 가린 모래 표면을 평평히 고른 뒤에 떠난다.
그러나 꼬리를 끌며 기어가는지라 모래에 꼬리를 끈 흔적을 남기고 만다.
덮으려 할수록 더 드러나고, 숨기려 할수록 오히려 탄로가 나는 것을 비유한다.
於是文殊卻問維摩詰云。
我等各自說已。仁者當自說。
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維摩詰默然。
若是活漢。終不去死水裏浸卻。
若作恁麼見解。
似狂狗逐塊。
이에 文殊가 거꾸로 維摩詰에게
"我等은 各自 說했으니, 仁者가 說해야 하리다.
무엇이 菩薩의 入不二法門입니까?" 하고 묻자,
維摩詰은 默然하였다.
活漢이라면 결코 死水 속에 빠져들지 않겠지만
만약 그런 見解를 짓는다면
미친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같은 짓이다.
雪竇亦不說良久。
亦不說默然據坐。
只去急急處云。維摩道什麼。
只如雪竇恁麼道。還見維摩麼。
夢也未夢見在。
維摩乃過去古佛。
亦有眷屬。助佛宣化。
具不可思議辯才。
有不可思議境界。
有不可思議神通妙用。
於方丈室中。
容三萬二千獅子寶座。
與八萬大眾。亦不寬狹。
且道是什麼道理。
喚作神通妙用得麼。
且莫錯會。
若是不二法門。
雖同得同證
方乃相共證知。
獨有文殊。可與酬對。
雪竇도 또한 「良久」를 말하지 않고,
亦不說「默然據坐」라 말하지도 않고,
다만 急急處로 가서 「維摩가 무어라 할까?」
雪竇의 그러한 말과 같을진대 維摩를 보았겠는가?
꿈에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維摩는 過去의 古佛이요,
眷屬도 있어서 佛의 宣化를 도왔다.
不可思議한 辯才를 갖추고,
不可思議한 境界가 있으며,
不可思議한 神通妙用이 있어서
方丈室 안에
3만2천의 獅子寶座와
더불어 8만의 大眾을 受容해도 비좁지 않았다.
한번 말해보라. 이것이 무슨 道理이겠는가.
神通妙用이라 하겠는가?
錯會하지 마라.
만약 이것이 不二法門이라면
비록 같이 證得했다 하더라도
마침내 서로 함께 證知함에는
文殊만이 홀로 있어 더불어 酬對한 것이다. 
雖然恁麼。
還免得雪竇檢責也無。
雪竇恁麼道。
也要與這二人相見云。
維摩道什麼。
又云。勘破了也。
爾且道是什麼處。是勘破處。
只這些子。不拘得失。
不落是非。如萬仞懸崖。
向上捨得性命。跳得過去。
許爾親見維摩。
如捨不得。大似群羊觸藩。
雪竇故然是捨得性命底人。
所以頌出云。
비록 그렇다 해서
雪竇의 검책(檢責:檢查)이 면해지지 않는다.
雪竇가 그렇게 말한 것
또한 이 두 사람과 相見하고자 하여
「維摩는 무어라 말할까?」 하고서
다시 「勘破했다」고 하였다.
너희가 말해보라 어느 곳이 勘破한 곳인가?
다만 이 조그마한 곳은 得失에 구애되지 않고
是非에 떨어지지도 않기가 萬仞懸崖 같거니와,
위를 향해 性命을 버리고 뛰어넘어 지나갔다면
너희가 維摩를 親見했음을 인정하겠지만,
버리지 못했다면 틀림없는 群羊觸藩* 격이리라.
雪竇는 고연(故然:本然)히 性命이 버려진 사람인지라
그래서 頌出하여 이르기를,
★群羊觸藩; 저양촉번(羝羊觸藩)의 오류.
저양(羝羊:숫양)의 뿔이 울타리에 걸렸다 함은 진퇴양난에 처한 상황에 비유한 표현이다.
  설두의 송(頌)
 咄這維摩老
   (咄他作什麼。
   朝打三千暮打八百。
   咄得不濟事。
   好與三十棒)
  悲生空懊惱
   (悲他作什麼。
   自有金剛王寶劍。
   為他閑事長無明。
   勞而無功)
  臥疾毘耶離
   (因誰致得。
   帶累一切人)
 全身太枯槁
   (病則且置。為什麼口似匾擔。
 飯也喫不得。喘也喘不得)
 쯧쯧, 이 維摩 늙은이야!
   (그에게 쯧쯧거려서 어쩌자는 건가.
   아침에 3천 저녁에 8백을 때린 것이다.
   쯧쯧으로 일이 추스려지지 않나니
   좋게 30棒을 주겠다)
  悲心에 공연한 오뇌(懊惱)를 하고서
   (그를 애처러이 여겨 어쩌자는 게냐.
   자기에게 金剛王寶劍이 있건만
   저 한가한 일에 답답함만 늘려가니
   애를 써봐도 보람이 없구나.)
  병들어 毘耶離에 누워
   (누구 때문에 그리 되어
   여러 사람에게 누를 끼치는가.)
 온몸이 몹시 야위었더니
   (病은 곧 그만 두더라도 왜 입은 납짝해졌는가.
 밥도 못 먹고 헐떡대지도 못하겠구나.)
 七佛祖師來
   (客來須看。賊來須打。
   成群作隊。
 也須是作家始得)
 一室且頻掃
   (猶有這箇在。
   元來在鬼窟裏作活計)
  請問不二門
   (若有可說。被他說了也。
   打云。和闍黎。也尋不見)
 當時便靠倒
   (蒼天蒼天。道什麼)
 不靠倒
   (死中得活。猶有氣息在)
 金毛獅子無處討
   (咄。還見麼。蒼天蒼天)
 七佛祖師가 오매
   (客이 오면 모름지기 살피고
   도적이 오면 반드시 쳐부셔야 하거늘
   떼로 몰려들었으니
 그야말로 作家라야 되겠구나.)
 一室을 재빨리 掃除하고서
   (아직 이것이 남아 있었나.
   원래 鬼窟 속에서 活計를 짓는 법이다)
  不二門을 請問하매
   (말할 만한 것이 있었으면 그가 이미 말했을 것이다.
   탁 치면서, '선생과 함께 찾아도 보지 못한다'.)
 당시에 곧 고도(靠倒*)해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무슨 말을 하느냐?)
 靠倒하지 않고서는
   (죽음에서 살아나 아직 숨이 있다.)
 金毛獅子라도 찾아 볼 곳이 없었으리라.
   (쯧쯧! 보았느냐? 아이고 아이고!)
★鬼窟裏作活計; 귀신소굴[鬼窟] 속에서 살궁리[活計]를 짓는다 함은
迷妄의 世俗 안이라야 그 속에서 벗어나려 애쓰게 된다는 의미이다.
★靠倒; 기대어 쓰러지다. (어느 곳을 기대어 온몸을 던졌을까?)
   
雪竇道。咄這維摩老。
頭上先下一咄作什麼。
以金剛王寶劍。當頭直截。
須朝打三千暮打八百始得。
梵語云維摩詰。
此云無垢稱。亦云淨名。
乃過去金粟如來也。
不見僧問雲居簡和尚。
既是金粟如來。
為什麼卻於釋迦如來會中聽法。
簡云。他不爭人我。
大解脫人不拘成佛不成佛。
若道他修行務成佛道。
轉沒交涉。
雪竇가 「咄這維摩老」라 했는데
머리에 먼저 「咄」을 써서 무엇을 하였는가.
金剛王寶劍으로 當頭直截하였으니
아침에 3천 저녁에 8백을 때려야만 한다.
梵語로 「유마힐(維摩詰)」이라 하였는데
이는 「無垢稱」이라 하고 「淨名」이라 하기도 하는
過去의 「금속(金粟)여래」를 말한다.
보지 못했는가. 僧이 雲居簡和尚에게 묻되
"유마힐이 기왕 금속(金粟)여래이시라면
어째서 석가여래 會中에서 聽法합니까?" 하니,
簡이 "그는 人我*를 다투지 않는다" 하였거니와,
大解脫人은 成佛과 不成佛에 拘束되지 않거늘
그가 修行하여 佛道를 힘써 이루었다고 말한다면
더욱 더 아무런 교섭이 없다.
★雲居簡和尚; 南康軍雲居道簡禪師(雲居道膺法嗣) 青原下六世
★人我; ①타인과 나 ②人相과 我相 ③人我見 즉 상주불변한 '나(我)'가 있다는 견해.
譬如圓覺經云。
以輪迴心。生輪迴見。
入於如來大寂滅海。
終不能至。
永嘉云。或是或非人不識。
逆行順行天莫測。
若順行則趣佛果位中。
若逆行則入眾生境界。
壽禪師道。
直饒爾磨鍊得到這田地。
亦未可順汝意在。
直待證無漏聖身。
始可逆行順行。
所以雪竇道。悲生空懊惱。
維摩經云。為眾生有病故。
我亦有病。
懊惱則悲絕也。
예컨대 圓覺經에 이르기를
「輪迴心으로 輪迴見을 내서
如來의 大寂滅海에 들어가려 한다면
끝내 이르지 못한다」 하였고,
永嘉는 「或是或非는 사람이 알지 못하고
逆行順行은 하늘이 헤아리지 못한다」 하니
順行한 즉 佛果位中에 나아가고
逆行한 즉 眾生境界에 들어간다는 것이며,
壽禪師는 말하기를
「설령 너희가 연마하여 이 田地에 이르렀다 해도
또한 아직 너희 뜻에 따라 있지 않고
줄곧 無漏聖身 증득하기를 기다려야만
비로소 逆行順行할 수 있다」고 하였기에
그래서 雪竇가 「悲生空懊惱」라고 한 것이다.
《維摩經》에 이르되 「眾生이 病든 고로
나 또한 병든 것이다」고 하였거니와
懊惱인 즉 '더할 수 없는 슬픔[悲絕]'이다. 
★或是或非; 是是非非.
臥疾毘耶離。
維摩示疾於毘耶離城也。
唐時王玄策使西域過其居。

遂以手板縱橫量其室得十笏。

因名方丈。
「臥疾毘耶離」는
維摩가 毘耶離城에서 시질(示疾*)하였는데,
唐 때 왕현책(王玄策*)이 사신으로 西域에 가서
그가 거처하던 곳을 지나가게 되어
수판(手板*)으로 그 방의 가로 세로의 양을 쫓아
10홀(笏)을 얻었음으로
因하여 방장(方丈)이라 한다.
★示疾; 教化眾生을 목적으로 고의로 병들어 눕는 것.
★王玄策; 唐代人. 太宗때 印度의 戒日王(尸羅逸多)이 入貢하니
貞觀 17년(643) 봄에 王玄策이 칙명을 받들어 印度로 떠나 그 해 겨울
摩揭陀國에 도착하는데, 途中에 佛鄉을 두루 돌며 遺跡을 살펴보고
摩訶菩提寺를 參訪하여 塔 西쪽에 碑를 세우고서
貞觀 20년에 梵語本 經論 600餘部를 가지고 歸國하였다.
이듬해에 戒日王이 죽고 나라가 크게 혼란해지자 그의 신하 那伏帝阿羅那가
왕위를 찬탈하고서 병사를 일으켜 玄策을 거역하매
玄策이 文成公主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吐蕃과 泥婆羅 토벌에 나서서
那伏帝阿羅那를 산채로 잡아 돌아왔다.
太宗이 크게 기뻐하며 廟禮를 열어 玄策을 朝散大夫에 봉했다.
★手板과 笏; 고대 중국에서 대신이 입조할 때 조복에 갖추어 손에 들었던
좁고 긴 판자를 홀(笏), 홀판, 또는 수판(手板)이라 한다.
길이가 약 30cm로 1尺에 달하니 10홀(笏)은 10尺 즉 1丈이며,
유마거사 처소의 크기가 사방으로 1丈이라 하여 방장(方丈)이라 한다.
全身太枯槁。
因以身疾。
廣為說法云。
是身無常無強無力無堅。
速朽之法。不可信也。
為苦為惱。眾病所集。
乃至陰界入所共合成。
「全身이 너무 말랐다」 함은
몸의 질환으로 인해서이다.
널리 說法하여 이르되
"이 몸은 無常, 無強, 無力, 無堅하여
速히 썩는 法이라 믿을 것이 못되며,
苦가 되고 惱가 되는 眾病이 모인 바요
陰界入이 함께 合成된 것이다"고 하였다.
七佛祖師來。
文殊是七佛祖師。
承世尊旨往彼問疾。
「七佛祖師가 왔다」 함은
文殊가 바로 七佛의 祖師인데
世尊의 뜻을 받들어 거기에 가서 問疾했다는 것이다.
一室且頻掃。
方丈內皆除去所有。
唯留一榻等文殊至。
請問不二法門也。
所以雪竇道。請問不二門。
「一室을 다만 재빨리 청소했다」 함은
方丈 안에 있는 것들을 다 除去하고
오직 1 탑(榻*) 등만 남겨서 文殊가 이르자
不二法門을 請問했는지라
그래서 雪竇가 「請問不二門」이라고 한 것이다. 
★榻; 좁고 기다란 평상.
當時便靠倒。
維摩口似匾檐。
如今禪和子便道。
無語是靠倒。
且莫錯認定盤星。
雪竇拶到萬仞懸崖上。
卻云不靠倒。
一手抬一手搦。
他有這般手腳。
直是用得玲瓏。
此頌前面拈云維摩道什麼。
金毛獅子無處討。
非但當時。即今也恁麼。
還見維摩老麼。
盡山河大地草木叢林。
皆變作金毛獅子。
也摸索不著。
「當時에 곧 靠倒하였다」 함은
維摩의 입이 편담(匾檐*) 같았다는 것이다.
如今의 禪和子들은 쉽게
"無語가 靠倒다"고 말하는데
다만 定盤星을 잘못 인식하지 말라.
雪竇가 만 길 낭떠러지 위로 몰아세우고
도리어 「靠倒치 아니 하면」이라 하여
한 편으로는 짓누르고 한 편으로는 치켜 세웠다.
그 에게는 이런 수완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 용득영롱(用得玲瓏*)이다.
이는 앞에서 拈하여 말한 「維摩道什麼」를 頌한 것이다.
「金毛獅子無處討」는
當時만이 아니라 即今에도 이러하다.
維摩老를 보았는가?
온 山河大地와 草木叢林이
다 金毛獅子로 변한다 해도
또한 摸索하지 못할 것이다. 
★匾檐; ①屋檐(지붕의 처마) ②匾額(건물 현관이나 정면 상부에 걸어
그 건물의 이름, 용도, 특징, 혹은 좋은 의미를 담은 글귀를 새겨 넣은 판)
여기서는 '처마나 현판처럼 납짝 붙어버렸다'는 것이니 '默然'으로 답했다는 뜻이다.
★用得玲瓏; '쓰임새에 영롱(玲瓏;총명,영활)을 얻었다' 함은 솜씨가 능수능란하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