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祖僧璨大師信心銘
3조(三祖) 승찬(僧璨)대사 신심명(信心銘)
至道無難 唯嫌揀擇。但莫憎愛 洞然明白。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간택을 꺼릴 뿐이니,
다만 애증(憎愛) 따위의 분별을 멀리한다면
통연(洞然)하여 명백(明白)해지려니와,
豪釐有差 天地懸隔。欲得現前 莫存順逆。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멀어질 것이니,
지극한 도가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거든
수순하려 하지도 거역하려 하지도 말라.
違順相爭 是為心病。不識玄旨 徒勞念靜。
거역(違)과 수순(順)이 서로 다투면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되는 것이니,
현묘한 뜻을 알지 못하면
염정(念靜;修行)이 헛수고가 되느니라.
圓同太虛 無欠無餘。良由取捨 所以不如。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좋다고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때문에 같아지지 못하는 것이니,
莫逐有緣勿住空忍。一種平懷泯然自盡。
유연(有緣)을 쫓지도 말고
공인(空忍)에 머물지도 말아서
한 가지로 평등히 지니면
자취도 없이 저절로 다하련만,
止動歸止止更彌動。唯滯兩邊寧知一種。
동(動)이 그치면 지(止)로 돌아갔다가
지(止)에서 다시 더한 동(動)이 되면서
다만 양변(兩邊)에 갇혀만 있어서야
어찌 한 가지[一種]임이 알아지겠느냐?
一種不通兩處失功。遣有沒有從空背空。
한 가지라는 데에 통하지 못하면
양변 쪽 노력의 댓가도 다 잃으려니와,
유(有)를 떨쳐버리려는 것이 유(有)에 빠지는 것이요,
공(空)을 쫓으려는 것은 공(空)을 등지는 것이니라.
多言多慮轉不相應。絕言絕慮無處不通。歸根得旨隨照失宗。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을수록
더욱 더 상응치 못할 것이요,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못할 곳이 없을 것이라,
근본으로 돌아가면 종지(宗旨)를 얻겠지만
보이는 것을 쫓으면 으뜸의 근원[宗]을 잃느니라.
須臾返照勝卻前空。前空轉變皆由妄見。
잠깐이라도 돌이켜 비춰보는 것[返照]이
오히려 눈앞의 공(空)보다 낫거니와,
눈앞의 공이 바뀌어가는 것은
모두가 망견(妄見)에서 비롯된 것이니라.
不用求真唯須息見。二見不住慎莫追尋。
진실을 구하려들지도 말고
다만 모쪼록 견해를 쉬어버려서
두 견해에 머물지도 말고
부디 쫓아 찾지도 말지어다.
才有是非紛然失心。二由一有一亦莫守。
잠깐 시비(是非)가 있기만 하면
분연히 마음을 잃게 되나니,
둘은 하나를 말미암아 있는 것이거니와
하나 또한 지키려들지 말라.
一心不生萬法無咎。無咎無法不生不心。
한 마음 일으키지 않는다면
만법에 허물이 없을 것이요,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을 것이며,
일어나지 아니하면 마음일 것도 없느니라.
能隨境滅境逐能沈。境由能境能由境能。
주체[能]은 객체[境]을 따라 소멸하고
객체는 주체를 따라 스러지거니와,
객체는 주체를 말마암은 객체요
주체는 객체를 말미암은 주체인 것이니라.
欲知兩段元是一空。一空同兩齊含萬象。
양단(兩段)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이것이 하나로 공한 것[一空]이요,
하나로 공한 것은 양단과 함께
삼라만상을 일제히 아우르고 있는 것이니라.
不見精麤寧有偏黨。大道體寬無易無難。
정교함과 거칠음을 가리지 않는데
어찌 치우친 곳이 있으리오?
대도는 체성(體性)이 너그러워
쉬울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느니라.
小見狐疑轉急轉遲。執之失度必入邪路。放之自然體無去住。
좁은 소견으로 여우 의심[狐疑]을 내서
급하게 굴면 더욱 더디어지려니와,
집착하면 법도를 잃어
필경 그릇된 길로 들어갈 것이지만,
놓아 버리면 자연 그대로
본체는 가고 머뭄이 없을 것이니라.
任性合道逍遙絕惱。繫念乖真昏沈不好。不好勞神何用疏親。
자성(自性)에 맡겨두면 도(道)에 합당하여
소요(逍遙)하고 번뇌가 끊어지려니와,
생각에 얽매이면 진실에 어긋나서
혼침(昏沈)하고 좋지 못하느니라.
좋지 못하면 정신이 고달플 터인데
멀리하고 가까이 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欲取一乘勿惡六塵。六塵不惡還同正覺。智者無為愚人自縛。
일승(一乘)에 의지하고자 한다면
육진(六塵)을 회피하지 말라.
육진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정각과 같을 것이라
지혜로운 이는 위하는 일이 없지만
어리석은 이는 스스로 얽매이느니라.
法無異法妄自愛著。將心用心豈非大錯。
법에는 별다른 법이 없거늘
허망하게 스스로 애착하여
마음으로 마음을 쓰니
어찌 큰 착오가 아니겠는가?
迷生寂亂悟無好惡。一切二邊良由斟酌。
미혹하면 고요함과 혼란함이 생기지만
깨치면 좋음도 나쁨도 없나니,
모든 두 변(邊)은
실로 짐작[斟酌]에서 비롯된 것이어늘,
夢幻虛華何勞把捉。得失是非一時放卻。
꿈속의 망상과 허공 꽃[虛華;空花]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득실(得失)과 시비(是非)를
한꺼번에 놓아 버려라.
眼若不睡諸夢自除。心若不異萬法一如。
눈이 잠들지 않으면
모든 꿈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요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萬法)은 일여(一如*)하니라.
一如體玄兀爾忘緣。萬法齊觀歸復自然。泯其所以不可方比。
일여(一如)의 실체는 현묘하여
벌거벗듯이 인연을 잊었으니,
만법을 평등히 보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 까닭도 자취조차 사라져서
가히 비할 방도가 없느니라.
止動無動動止無止。兩既不成一何有爾。
동(動)이 그치면 움직임[動]이 없고
지(止)가 움직이면 그침[止]이 없으니,
둘이 기왕 성립하지 못하거늘
하나인들 어찌 있을 것인가?
究竟窮極不存軌則。契心平等所作俱息。
궁극(窮極)에 구경(究竟)하여서는
궤칙(軌則)이 존재하지 않거니와,
마음을 그와 평등히 계합(契合)하면
짓는 바도 함께 그쳐지리라.
狐疑盡淨正信調直。一切不留無可記憶。
여우 의심이 깨끗히 다하여
바른 믿음이 곧게 다스려지면
모든 것이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요,
가히 기억할 것도 없으리라.
虛明自照不勞心力。非思量處識情難測。
허허한 밝음[虛明;空明]으로 스스로를 비추되
마음[心力]으로 애쓰지 말라.
생각으로 헤아릴 것이 아니어서
식정(識情)으로는 측량키 어려우니라.
真如法界無他無自。要急相應唯言不二。
진여(真如)의 법계는
타(他)도 없고 자(自)도 없지만,
굳이 상응해야 한다면
다만 「불이(不二)」라고 말하겠노라.
不二皆同無不包容。十方智者皆入此宗。
불이(不二)는 다 같다는 것이라
포용치 못함이 없는 것이기에
시방(十方)의 지자(智者)들이
모두 이 종(宗*)에 들어오는 것이니라.
宗非促延一念萬年。無在不在十方目前。
종(宗)은 재촉할 것도 늦출 것도 아니고
한 생각이 만년이며,
있거나 있지 않는 일도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 앞이니라.
極小同大忘絕境界。極大同小不見邊表。
극소(極小)는 대(大)와 같아서
경계가 끊어져 없고,
극대(極大)는 소(小)와 같아서
가장자리의 겉[邊表]을 볼 수 없으며,
有即是無無即是有。若不如此必不須守。
유(有)는 곧 무(無)요,
무(無)는 곧 유(有)인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필경 지킬 필요가 없으리라.
一即一切一切即一。但能如是何慮不畢。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다.」
다만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어찌 마치지 못할까 염려하리오?
信心不二不二信心。言語道斷非去來今。
믿는 마음은 불이(不二)요
불이(不二)는 믿는 마음이거니와,
언어의 길이 끊기면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없느니라.
*至道; 至極한 大道, 佛祖의 大道.
*唯嫌揀擇; 佛祖의 大道는 本來平等하고 階級도 差別도 없이 自由自在하건만
다만 眾生의 揀擇으로 인하여 憎愛과 難易의 差別이 생기는 것이니,
만약 取捨도 憎愛도 없다면 十方이 通暢하고 八面이 玲瓏하리라는 것이다. [佛光大辭典]
至極한 大道는 일체의 상(相)을 여읜 것이라서 '眾生의 생각이나 말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니, 금강경의 '若見諸相非相 即見如來'가 바로 이것이다.
*明白; 信心銘의 뒷 구절 但莫憎愛 洞然明白(다만 憎과 愛 따위로 분별하지 않으면
막힘 없이 뻥 뚫려[洞然] 명명백백[明白]하다는 데서 온 말이니,
명백은 애증 따위의 분별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一如; 一은 不二, 如는 不異의 뜻이니, 不二不異를 一如라 한다. 즉 真如의 이치.
*斟酌;; 1) 술을 들이부어도 만족치 못함을 斟라 하고, 지나친 것을 酌라 한다.
2) 마음 속에 두고있는 생각, 짐작,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