寶鏡三昧 | 보경삼매(寶鏡三昧) |
寶鏡이란 부처의 大圓鏡智에 비유하니 곧 真如本性을 비추어 보는 佛智佛慧이다. 三昧는 定, 正受, 等持, 心一境性이니 이로써 外境에 動하지 않는 寂靜心을 이룰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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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之法。佛祖密付。 汝今得之。宜善保護。 銀盌盛雪。明月藏鷺。 髏[類]之弗齊。混則知處。 |
이와 같은 법(法)을 불조(佛祖)께서 은밀히 부촉하시니 너희는 이제 받들어 마땅히 잘 보호해야 하거니와, 은쟁반에 담긴 눈[雪]과 밝은 달이 품은 백로는 동류(同類)이되 다른 것이니 섞여도 곧 분간해내리라. |
佛祖께서 密付하신 法을 마땅히 잘 보호하되 無數한 「方便, 比喩, 言辭」와 「第一義」는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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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不在言。來機亦赴。 動成窠臼。差落顧佇。 背觸俱非。如大火聚。 但形文彩。即屬染污。 |
뜻은 말에 있지 않되 오는 기(機)에 또한 가기도 하거니와 動하면 窠臼를 이루고, 差하면 顧佇에 떨어지리니 버릴 것도 붙잡을 것도 아닌 커다란 불덩이와 같은 것이요, 단지 형체만 드러낸 화려함은 곧 染污에 속할 뿐이다. |
★來機亦赴; 상대가 禪機를 드러내 부딫쳐 올 때는 부득히 말로 기에 응하고 그에 따라 뜻이 가서 도달하기도 한다. ★動成窠臼 差落顧佇; 말을 하자니(動) 과구(窠臼:第二義)가 되어버리고, 어찌할까 궁리하다보면(差:搓磨) 머뭇거린다(顧佇) 하여 몽둥이(棒)를 맞게 된다. ★背觸俱非; 배척할 것도 접촉할 것도 다 아니다. 如大火聚는 곧 般若이다. ★但形文彩 即屬染污; 말이 번지르르한 것은 그럴듯하게 물들인 것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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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半正明。天曉不露。 為物作則。用拔諸苦。 雖非有為。不是無語。 如臨寶鏡 形影相覩。 |
한밤중에는 정히 밝다가 하늘이 밝아지매 드러나지 않지만 사물을 위한 규칙이 되어 고통을 뽑아 없애는 데 쓰이며 비록 행위는 없더라도 말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마치 寶鏡을 마주하면 形이 비춰진 相을 봄과 같거니와 |
★夜半正明 天曉不露; 말이란 몽매할 때는 생각없이 마구 뱉지만 깨일수록 점차 줄어드는 것. ★為物作則 用拔諸苦; '實際理地에는 本無一法'이로되 말을 규칙삼아 傳法의 方便으로써 諸苦를 拔除하는 一環으로 쓴다는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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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不是渠。渠正是汝。 如世嬰兒 五相完具。 不去不來 不起不住。 婆婆和和 有句無句。 終不得物。語未正故。 |
너(汝)는 그(渠:相)가 아니로되 그는 바로 너인지라 마치 갖난아기가 이목구비는 온전히 갖추었으되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머물지도 못함과 같아서 파파(婆婆)하되 和和하고, 有句하되 無句하니 결코 얻을 것이 없음은 말이 아직 바르지 못한 연고니라. |
★汝不是渠 渠正是汝 ; 洞山良价선사가 스승 雲巖曇晟와 문답을 나눈 뒤에 작별을 告하고 도중에 물을 건너다가 자기 身影을 보고 앞서의 宗旨를 大悟하여 「절대 다른 데서 찾지 말게 (切忌從他覓) 나와의 소통이 까마득히 멀어진다네 (迢迢與我疎). 나 이제 스스로 홀로 가되 (我今獨自往) 곳곳에서 그(渠)를 만나게 되려니와 (處處得逢渠) '그는 지금 틀림없는 나지만 (渠今正是我)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我今不是渠)' 응당 반드시 이렇게 알아야만 (應須恁麼會) 비로소 본래 모습 그대로[如如]에 계합되리라 (方得契如如).」라는 게송 한 수를 붙이니, 이를 「과수게(過水偈)」라 한다. 그(渠)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이니 그는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나이지만 밖으로 그것을 쫓아 참 나로 알아서는 안된다. 나는 바로 이 나임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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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婆和和 ; 婆婆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갈등과 같은 不和를 의미하고 和和는 화목하고 화목함이니, 婆婆和和는 '티격태격하되 오손도손하다'와 같은 의미. 禪林에서는 《南本涅槃經卷18》에서의 「嬰兒行」에 비유하여 쓰기도 한다. 【嬰兒行品】에 「善男子야! 起, 住, 來, 去, 語言를 하지 못하는 것이 嬰兒라 하거니와, 如來도 그러하여 起하지 못하는 者이니 如來는 결코 諸法相을 不起하고, 住 不能한 者이니 如來는 一切諸法에 不著하며, 來 不能者이니 如來의 身行에는 動摇가 없고, 去 不能者이니 如來는 이미 大般涅槃에 도달했으며, 語 不能者이니 如來는 비록 一切眾生에게 諸法을 演說하되, 실로 說한 바가 없다.」라 하고 있다. ★有句無句 ; 어린애는 옹아리를 하되(有句) 알아들을 수 없으니 무구(無句)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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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離六爻。偏正回互。 疊而為三。變盡成五。 |
중리육효(重離六爻)하고 편정회호(偏正回互)하여 첩이위삼(疊而為三)이라가 변진성오(變盡成五)하나니, |
★重離六爻 偏正回互 ; 重離六爻는 六爻卦象이 重叠하며 맞물려 돌아가는 변화, 偏正은 사물의 측면[偏]과 정면(正面), 回互는 양자 간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禪宗의 「空에 滯히지 않고 有에도 住하지 않는다(不滯于空 不住于有)」는 辯證思想으로 통하며, 事物의 多面性과 動態性 및 正反 양면의 상호작용과 轉化를 강조한다. 六爻는 《易經》에서 나오는 64괘(卦)의 하나로 易의 卦畫을 爻라 칭하고, 陽爻畫은 「⚊」, 陰爻畫은 「⚋」이며, 매 重卦마다 다 六畫이 있기 때문에 六爻라 한다. ★疊而為三 變盡成五 ; 疊而為三은 陽爻畫 「⚊」와 陰爻畫 「⚋」을 위로 쌓아 3층을 이룬다 함이니, 곧 ![]() 하첩 음양효획은 땅(地)을 표시한다. 變盡成五는 이 6爻가 극에 달하여 曹洞宗이 方便設立한 5단계 즉 正偏五位(正中偏,偏中正,正中來,兼中至,兼中到)를 이룬다 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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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荎草味。如金剛杵。 正中妙挾 敲唱雙舉。 通宗通途。挾帶挾路 錯然則吉。不可犯忤。 |
오미자(五味子:荎草) 맛인듯 금강저(金剛杵)인듯 정중5위(正中五位)를 오묘히 끼고서(挾) 장단(敲:棒喝等)과 노래(唱:說法)를 쌍으로 행하여 宗에도 통달하고 여정[途]에도 통달하며 일대(一帶;同道者)도 포용하고(끼고) 가는 길도 파악하되 잘못은 그런대로 결국에는 좋을 수 있으나 오(忤:거역)를 범해서는 안되느니라. |
★如荎草味 如金剛杵; 오미자는 한 몸에 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쓴(甘酸鹹辛苦) 다섯 맛을 지녔고, 금강저는 견고하고 강하기 이를데 없으니, 이로써 많은 학습과 수행을 하고 굳은 의지로 실천해 나아가기를 권고하는 말이다. ★正中妙挾; 正中은 正中五位, 즉 우주의 모든 존재를 색법(色法), 심법(心法), 심소법(心所法), 불상응법(不相應法), 무위법(無爲法)의 다섯으로 구분한 曹洞五位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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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真而妙。不屬迷悟。 因緣時節 寂然昭著。 細入無間 大絕方所。 毫忽之差 不應律呂。 |
天然의 真理는 오묘하여 迷惑이나 悟에 속하지 않거니와 因緣이 닿은 時節에 고요하고 뚜렷히 드러나나니 빈틈 없고 정한 방향과 장소도 없이 세세히 들어가되 터럭만큼의 차이라도 있으면 박자가 맞아들지 않느니라. |
★천진(天真); 天然의 真理, 造作되지 않은 것. ★소저(昭著); 분명(分明)하고 뚜렷함. 환하게 드러남. ★대절방소(大絕方所)는 결국 「무방(無方)」이라는 뜻이며, 곧 佛이 眾生을 攝化함에 있어 方位의 구별이나 어떠한 제한도 없고 일정한 방법도 없음을 의미한다. 大絕(크게 끊기다)은 泯絕(자취나 흔적이 아주 없어짐)의 뜻. ★毫忽之差; 毫厘之差. 호리(毫厘;지극히 적은 것. 터럭.) 만큼의 차이. ★律呂; 六律과 六吕(고대 중국음악의 陰6,陽6 12가지 음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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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有頓漸。緣立宗趣。 宗趣分矣。即是規矩。 通宗趣極 真常流注。 外寂中搖 繫駒伏鼠。 |
오늘날 돈점(頓漸)이 있어 연(緣)하여 宗趣가 세워지고 宗趣가 또 나뉘어지니 곧 이것이 법도(法度:規矩)이거니와 宗趣의 極에 통달하더라도 진상(真常:真空常寂)에 안주(安住)해버리니 밖으로는 고요하되 안이 소란스러운지라 준마(駿馬:駒)는 메어 두고 약은 쥐처럼 납작 엎드리니라. |
★頓漸; 五祖 홍인(弘忍) 이후 南方의 慧能(六祖)이 主張한 「깨달음의 극에 신속히 直入하는 敎法」을 세칭 「南頓」이라 하고, 北方의 神秀가 強調한 「순서에 따라 점차적으로 진입하는 교법」을 세칭 「北漸」이라 하니, 이것이 곧 禪宗의 돈점2교(頓漸二教)이다. ★宗趣; 宗旨와 趣向. ★真常流注; 真空常寂한 第一義의 경지에 애착하여 머문다는 뜻으로 이는 「法性의 病」에 해당한다. ★外寂中搖; 밖으로는 득도한 듯 행세하지만 내심은 혼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 ★繫駒伏鼠; 본디 밝은 自我를 활용하지 못하고 잽싸게 꼬리를 내려버린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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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聖悲之 為法檀度。 隨其顛倒。以緇為素。 顛倒想滅 肯心自許。 要合古轍。請觀前古。 |
선성(先聖:佛)이 이를 애처로이 여겨 불법(佛法)을 보시(布施)하게 되었건만 그것을 쫓아 顛倒하여 검은 것을 희다 하거니와, 顛倒된 생각을 滅하고 긍정하는 마음을 스스로 허락하여 옛 발자취에 부합해야 하나니, 請컨대 지난 옛 것을 잘 살필지어다. |
★檀度; 檀那(施)와 度의 합성어로 六度의 하나인 「단바라밀(檀波羅蜜:布施度)」을 말한다. ★顛倒; 뒤바뀌다. 상반되다. 거꾸로 인식하다. ★古轍; 옛 발자취[軌跡:軌轍]. 전철(前轍). 옛 성인의 발자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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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道垂成。十劫觀樹。 如虎之缺。如馬之馵。 以有下劣。寶几珍御。 以有驚異。狸奴白牯 |
佛道를 이루기까지 열 겁(劫)에 보리수(菩提樹)를 觀하되, 범의 결점과 같이, 말의 흰 뒷다리와 같이 할지니, 있어서 열등한 것이 성인(聖人:寶几珍御)이요, 있음으로써 경이로우면 미물(微物:狸奴白牯)이니라. |
★垂成; 「完成이나 成功에의 接近」을 의미한다. ★虎之缺; 12支身 중 호랑이의 결함. 누구에게나 있는 부족한 점. 쥐는 뇌가 없고(鼠無腦), 牛無牙, 虎無項, 兔無唇, 龍無耳, 蛇無足, 馬無趾, 羊無神, 猴無腮, 鷄無肾, 狗無味, 猪無壽라 한다. ★馬之馵; 12支身 중 말의 흰 뒷다리. 누구나 가진 특별한 점. ★寶几珍御 狸奴白牯; 보배로운 의자(几案)와 진기한 음식(珍御). 고양이(狸奴)와 흰 암소(白牯). __南泉화상이 「三世諸佛은 있는 줄 모르는데 고양이와 흰 소가 도리어 있음을 안다 (三世諸佛不知有, 狸奴白牯卻知有)」하였으니, 寶几珍御는 聖人, 狸奴白牯는 하찮은 미물을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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羿以巧力。射中百步。 箭鋒相直。巧力何預。 木人方歌。石女起舞。 非情識到。寧容思慮。 |
예(羿)가 교묘한 힘으로 백보(百步)를 쏘아 맞춘다지만 화살 끝이 맞닿음에야 교묘한 힘이 무슨 상관일 것이며, 목인(木人)이 바야흐로 노래하고, 석녀(石女)가 춤추기 시작하는 일이야 情識으로 도달할 바가 아니거늘 어찌 思慮를 용납하리오. |
★예(羿); 하대(夏代) 궁국(窮國)의 제후. 궁술의 명인이었다 한다. ★箭鋒相直; 쌍방이 쏜 화살이 서로 맞닿는 것. 이는 서로의 실력이 비슷함을 비유한다. ★하예(何預); 무슨 관계가 있는가? ★木人方歌 石女起舞; 木人은 知覺이 없는 사람이요, 石女는 무수인연을 만나도 자식을 얻을 수 없는 여인을 말하니, 이로써 本來面目에 비유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함은 이 본래면목이 發顯功用함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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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奉於君。子順於父。 不順非孝。不奉非輔。 潛行密用 如愚若魯。 但能相續 名主中主。 |
신하는 임금을 받들고 자식은 아비를 따르거니와, 따르지 아니하면 효(孝)가 아닌 것이요 받들지 아니하면 보필(輔弼)이 아니리니, 남몰래 행하고 은밀히 사용하되 어리석은 듯 둔한 듯 그저 相續할 수만 있다면 「主中主」라 하리라. |
★主中主; 曹洞宗이 세운 바 四賓主의 하나로 主는 正 體 理를, 賓은 偏 用 事를 가리킨다. 主中主란 體中의 體로서 理의 本體가 일상적인 일과 함께 직접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理의 本體가 쓰는 자에게 간섭받지 않는 것을 主中主라 하니, 마치 帝王이 구중궁궐 안에 깊이 거주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理의 본체 가운데서 자연히 「用」과 「事」가 이끌려 나오면 이를 主中賓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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