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찬(大乘讚) 10수(首) _지공(誌公)화상 | |
1. 「相」을 여의되 大道를 위한 것들만은 除하라. | |
大道常在目前。 雖在目前難睹。 若欲悟道真體。 莫除聲色言語。 言語即是大道。 |
大道는 目前에 常在하거니와 비록 目前에 있어도 보기 어렵다. 道의 真體를 깨닫고자 한다면 聲, 色, 言語를 除하지 말라. 言語가 곧 大道니라. |
不假斷除煩惱。 煩惱本來空寂。 妄情遞相纏繞。 一切如影如響。 不知何惡何好。 有心取相為實。 定知見性不了。 |
煩惱를 斷除할 필요 없나니, 煩惱는 本來 空寂하건만 妄情이 서로 뒤섞이고 얽혀서 온통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지라 무엇이 나쁘고 좋은지 모르는 것이어니와 마음으로 상을 취해 진실로 여겨서는 정녕 견성(見性)을 마칠 수 없음을 알라. |
若欲作業求佛。 業是生死大兆。 生死業常隨身。 黑闇獄中未曉。 悟理本來無異。 覺後誰晚誰早。 |
業을 지어서 부처가 되려 한다면 그 업이 바로 生死輪廻의 큰 징조이거니와, 생사의 업이 늘 몸을 따르니 깜깜한 감옥 속에서 밝을 날이 없는 것이다. 깨달음의 이치는 본래 차이가 없거늘 깨친 뒤에 누가 늦고 누가 빠르겠느냐? |
法界量同太虛。 眾生智心自小。 但能不起吾我。 涅槃法食常飽。 |
法界의 양은 太虛와 같건만 중생의 지혜와 마음이 스스로 작아지나니 '나','나'하는 상을 일으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열반의 법식(法食)으로 늘 배부르리라. |
◎法界는 空寂한 太虛와 같이 目前에 常在하지만 相을 通해 認識하는 凡夫는 아예 보지 못할 수 밖에 없다. 道의 真體를 깨닫기 위한 旅程(大道)의 方便인 聲, 色, 言語를 무시하지 말되, 그것들이 相에 不過함을 알아 相을 취해 真實로 여겨서는 안된다. 相에 執着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涅槃의 法食으로 배불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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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迷(凡), 覺(聖)이 不二니라. | |
妄身臨鏡照影。 影與妄身不殊。 但欲去影留身。 不知身本同虛。 身本與影不異。 不得一有一無。 若欲存一捨一。 永與真理相疏。 |
허망된 몸을 거울에 비추었을 때 그 영상과 허망된 몸이 다르지 않거니와 영상은 보내고 몸만 남기려 한다면 몸의 근본이 허상과 같음을 모르는 것이다. 몸의 근본과 영상이 다르지 않는지라 하나는 있고 하나만 없애지는 것이 아니건만 하나는 두고 하나만 버리고자 한다면 영원히 진리와는 서로 멀어지느니라. |
更若愛聖憎凡。 生死海裏沈浮。 煩惱因心有故。 無心煩惱何居。 不勞分別取相。 自然得道須臾。 |
또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미워한다면 생사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려니와 번뇌는 마음으로 인해 있거늘 마음 없이 번뇌가 어디에 자리잡으리오? 분별하여 상을 취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자연히 잠깐사이에 도를 얻으리라. |
夢時夢中造作。 覺時覺境都無。 翻思覺時與夢。 顛倒二見不殊。 改迷取覺求利。 何異販賣商徒。 |
꿈꿀 때는 꿈속에서 여러가지를 짓지만 깨었을 때는 깨인 경계가 아무것도 없거니와 깨었을 때와 꿈에서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뒤바뀐 두 견해가 다르지 않다. 迷惑으로 覺을 바꿔 취해서 이익을 구한다면 사고파는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리오? |
動靜兩亡常寂。 自然契合真如。 若言眾生異佛。 迢迢與佛常疏。 佛與眾生不二。 自然究竟無餘。 |
動과 靜 둘이 다 사라져서 늘 고요하면 自然 真如에 契合하리라. 만일 중생과 부처가 다르다고 말하면 까마득하여 부처와는 항상 멀리 있는 것이다.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닌지라 자연히 결국 남을 것이 없느니라. |
◎迷夢 속에 있는 衆生과 깨치고 난 부처가 본래 둘이 아니다.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것은 길다 짧다, 옳다 그르다, 보았다 보지 못했다, 안다 모른다, 미혹하다 깨쳤다와 같은 兩端을 그리는 相일 뿐이다. 長短, 是非, 動靜 따위의 兩端이 亡絶하여 常寂하면 自然히 真如와 맞아 떨어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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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究竟無餘; 「구경에 남음이 없다」 함은 결국에는 寂靜으로 돌아간다는 뜻. | |
3.入定坐禪하여 本性元空을 忽悟토록 하라. | |
法性本來常寂。 蕩蕩無有邊畔。 安心取捨之間。 被他二境迴換。 歛容入定坐禪。 攝境安心覺觀。 機關木人修道。 何時得達被岸。 |
法性은 本來 常寂하고 蕩蕩하여 변반(邊畔:한계,끝)이 없건만 安心을 위한 取捨를 하는 사이에 저 二境에게 회환(迴換:變換)을 당하나니, 용모 단정히 入定坐禪하고 攝境安心하여 覺觀해야 하거니와, 기관목인(機關木人:목각인형)이 修道해서야 何時에 被岸에 도달해지겠느냐? |
諸法本空無著。 境似浮雲會散。 忽悟本性元空。 恰似熱病得汗。 無智人前莫說。 打爾色身星散。 |
諸法은 本空하여 붙어있을 것이 없고[無著] 境은 떠다니는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라 本性이 원래 空함을 忽悟하면 흡사(恰似) 熱病에 땀을 뺀듯 하려니와 無智한 사람 앞에서는 說하지 말라. 네 몸을 별똥 흩어지도록 때릴 것이다. |
◎法性은 本來常寂하고 蕩蕩無邊하건만 편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 취사선택을 해야하는 사이 자연히 是非, 善惡, 長短 따위의 두 경계[二境]에 휩쓸려 本來의 常寂을 잃는 것이니, 용모 단정히 入定坐禪하여 그 두 경계를 다스리고 마음을 안정시켜 覺觀하되, 木刻人形처럼 앉아 있지 말고, 熱病 앓듯이 하여 本性元空을 忽悟토록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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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打破妄情이면 即心即佛이다. | |
報爾眾生直道。 非有即是非無。 非有非無不二。 何須對有論虛。 有無妄心立號。 一破一箇不居。 兩名由爾情作。 無情即本真如。 若欲存情覓佛。 將網山上羅魚。 徒費功夫無益。 幾許枉用工夫。 不解即心即佛。 真似騎驢覓驢。 一切不憎不愛。 遮箇煩惱須除。 除之則須除身。 除身無佛無因。 無佛無因可得。 自然無法無人。 |
너희 眾生에게 곧은 道를 알리노니, 非有가 곧 非無니라. 非有와 非無가 둘이 아니거늘 왜 꼭 有에 맞서 虛(無)를 論하리오. 有와 無는 妄心이 세운 이름인지라 하나가 부서지면 다른 하나도 살아있지 못한다. 둘의 이름은 너의 情의 造作에 緣由한 것이라 情이 없으면 곧 根本 真如이련만 情을 두고서 佛을 찾으려 한다면 그물가져다 산 위에서 물고기 잡는 격이거니와, 功夫를 헛되이 쓰면 無益하거늘 工夫를 부적절하게 씀이 얼마이던가. 「即心即佛」을 解得하지 못하니 참으로 나귀 등에 앉아 나귀 찾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면 이 煩惱를 遮蔽하여 반드시 除去하려니와 除하려한 즉 반드시 몸을 除해야 하고, 몸을 除하면 佛도 因도 없어질 것이라 無佛無因*을 가히 얻으리니 自然히 無法無人*하리라. |
★無佛無因; 부처도 없고 부처가 될 이유도 없다. ★無法無人; 그래야(成佛) 할 법도 없고 그럴 사람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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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無, 是非, 淨垢 따위의 二境(兩端)은 情이 造作하여 妄心이 세운 이름이요, 그 實體가 없는지라 情이 없으면 이 二境 또한 없다. 그러니 그 相에 집착하는 제 안의 妄心을 철저히 遮蔽하여 除去할 수만 있다면 그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가 될 이유도 그래야 할 법도 그럴 사람도 없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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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迴光返照하라. | |
大道不由行得。 說行權為凡愚。 得理返觀於行。 始知枉用工夫。 |
大道는 行爲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說行으로 權勢를 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거니와 이치를 알고 수행을 돌이켜 살펴보면 비로소 적절치 못한 공부였음을 알리라. |
未悟圓通大理。 要須言行相扶。 不得執他知解。 迴光返本全無。 有誰解會此說。 教君向己推求。 |
圓通*의 큰 이치를 깨닫지 못했거든 모름지기 言行이 서로를 거들어 돕되 다른 知解에 집착하지 말고 빛을 근본으로 돌이켜 비추면 全無하리라. 누가 이러한 말을 알아 들으리오만 그대에게 이르노니 자기를 향해 추구할지어다. |
自見昔時罪過。 除卻五欲瘡疣。 解脫逍遙自在。 隨方賤賣風流。 誰是發心買者。 亦得似我無憂。 |
스스로 지난 날의 罪過를 돌아보고 五欲의 창우(瘡疣:부스럼)를 除去해버려서 解脫하고 逍遙하며 自在히 가는 곳마다 風流를 헐값에 팔지니라. 뉘라서 사려는 마음을 내리오만 그 또한 나 처럼 근심이 없으리라[無憂]. |
◎傲慢을 버리고 同道人끼리 相扶하는 言行에 힘쓰되, 빛을 自己 根本을 향해 돌이켜 지난 날의 罪過를 비추어 보고 五欲으로 인한 허물을 온전히 除去해서 解脫하거든 逍遙하며 自在히 法悅을 大衆에게 無償으로 전할 수 있으리라. 살(귀 기울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만 만일 산다면 그도 나처럼 근심이 사라지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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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通; 원만히 두루 통하다. 두루 통해 장애가 없음(融通無礙). | |
6. 無爲眞人 | |
內見外見總惡。 佛道魔道俱錯。 被此二大波旬。 便即厭苦求樂。 生死悟本體空。 佛魔何處安著。 |
內見과 外見이 모두 나쁘거나 佛道와 魔道에 다 그르치는 이 두 가지 큰 波旬(魔王)에게 당하면 쉽사리 곧 苦가 싫어서 樂을 구하거니와 生死의 根本體性이 空함을 깨닫는다면 佛이나 魔가 어디에 安著하리오. |
只由妄情分別。 前身後身孤薄。 輪迴六道不停。 結業不能除卻。 所以流浪生死。 皆由橫生經略。 |
다만 허망된 감정의 分別로 말미암아 전생의 몸과 내생의 몸이 외롭고 박복하며 六道에 輪迴하기를 멈추지 않고 맺힌 業을 除去해버릴 수 없는지라 그래서 生死를 떠도는 것이니, 모두가 횡생경략(橫生經略*)으로 말미암아서이다. |
身本虛無不實。 返本是誰斟酌。 有無我自能為。 不勞妄心卜度。 |
몸이 본래 虛無하여 진실치 못한데 근본을 돌이켜 그 누가 짐작이나 하리오. 有와 無는 나 스스로의 능위(能為:本領,才能)거늘 妄心으로 해아리려 애쓸 것 없다. |
眾生身同太虛。 煩惱何處安著。 但無一切希求。 煩惱自然消落。 |
眾生의 몸이 太虛와 같다면 煩惱가 어디에 安著하겠는가. 단지 그 어떤 것도 希求하지 않기만 하면 煩惱는 自然히 消落할 것이다. |
◎妄情分別을 버리고 몸을 太虛와 같이 하여 그 어느 것도 希求치 않는 無爲眞人이 되라. | |
★橫生經略; 아무렇게나 세운 착오적 책략(策略). | |
7. 慈心一切平等 | |
可笑眾生蠢蠢。 各執一般異見。 但欲傍鏊求餅。 不解返本觀麵。 麵是正邪之本。 由人造作百變。 |
가소롭도다. 중생들이 꿈틀대며 저마다 한결같이 다른 소견에 집착하여 단지 불판 곁에서 전병(煎餠)이나 먹으려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밀가루를 살펴 알려하지 않다니. 밀가루는 옳고 그름의 근본인데 사람의 조작으로 인해 백가지로 변하는 것이다. |
所須任意縱橫。 不假偏耽愛戀。 無著即是解脫。 有求又遭羅罥。 |
필요한 것들을 제멋대로 되도록 뜻에 맡기고 애련(愛戀)에 치우쳐 탐닉(耽溺)할 필요 없다. 무착(無着)이 곧 해탈(解脫)이거늘 구하는 것이 있으면 또 그물에 걸리게 된다. |
慈心一切平等。 真即菩提自現。 若懷彼我二心。 對面不見佛面。 |
자애로운 마음이 일체에 평등하여 참되면 곧 보리(菩提)가 저절로 나타나려니와 만일 '너'다 '나'다 하는 두 마음을 품으면 얼굴을 마주해도 부처의 면목(面目)을 보지 못하리라. |
◎ 兩邊에 치우치거나 구하고 탐닉하지도 집착하지도 아니하면 곧 해탈인 것이니, 그저 자연의 흐름에 맡겨두고 다만 慈心을 一切에 平等히 갖는다면 菩提가 스스로 俱現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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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道를 가지고 道를 구하지 말라. | |
世間幾許癡人。 將道復欲求道。 廣尋諸義紛紜。 自救己身不了。 專尋他文亂說。 自稱至理妙好。 徒勞一生虛過。 永劫沈淪生老。 |
세간에 어리석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도(道)를 가지고 다시 도를 구하려 하다니. 온갖 이치를 널리 찾아 이리저리 분주하지만 스스로 자기 몸도 구제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남의 글과 이러저러한 말들만 찾아다가 스스로 지극한 이치가 묘하고 좋다고 하니, 부질없이 수고하여 일생을 헛되이 보내고서 영겁(永劫)토록 생노(生老)의 바다에 빠지는 것이다. |
濁愛纏心不捨。 清淨智心自惱。 真如法界叢林。 返生荊棘荒草。 |
혼탁한 애욕에 얽힌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청정한 지혜의 마음이 스스로 괴로워하려니와, 진여법계(眞如法界)의 울창한 숲에 도리어 가시나무와 거친 잡초가 생기게 된다. |
但執黃葉為金。 不悟棄金求寶。 所以失念狂走。 強力裝持相好。 口內誦經誦論。 心裏尋常枯槁。 一朝覺本心空。 具足真如不少。 |
단지 누런 잎을 금이라 집착하고서 금을 버려야 보화(寶貨)를 찾는 줄을 모르는지라 그래서 마음을 잃고 미친듯이 달려가거니와, 온 힘을 다해 모양새 이쁘게 치장하고 입 속으로는 경론(經論)을 외우되 마음 속은 늘 메말라 있다가도 하루 아침에 근본 마음이 공(空)함을 깨닫는다면 진여(真如)를 구족함이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
◎ 이 마음 밖에 따로 道가 있지 않다. 세간의 온갖 이치를 쫓거나 모양새만 갖춰 경론을 외우지 말고 내 안의 근본 마음을 살펴 진여를 모자람 없이 구족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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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大道는 苦行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 |
聲聞心心斷惑。 能斷之心是賊。 賊賊遞相除遣。 何時了本語默。 |
성문(聲聞)은 마음마음에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끊으려는 그 마음이 바로 도적이거니와, 도적과 도적이 서로 번갈아 들고 내몰거늘 어느 때 본연의 어묵(語默:말이 끊긴 자리)을 알리오? |
口內誦經千卷。 體上問經不識。 不解佛法圓通。 徒勞尋行數墨。 |
입으로는 천 권의 경(經)을 외우지만 실체(實體)상에서 경(經)을 물어보면 알지 못하고, 불법(佛法)이 원통(圓通)한 줄을 알지 못하니 부질없이 애써 심행수묵(尋行數墨*)만 하거니와, |
頭陀阿練苦行。 希望後身功德。 希望即是隔聖。 大道何由可得。 |
두타(頭陀*)하며 아란(阿練*)에서 고행(苦行)하는 것으로 後身의 功德을 希望한다면 그 希望인 즉 聖人과는 거리가 멀거늘 大道를 무슨 이유로 가히 얻으리오? |
譬如夢裏度河。 船師度過河北。 忽覺床上安眠。 失卻度船軌則。 船師及彼度人。 兩箇本不相識。 |
비유컨대 꿈속에서 강 건너는데 뱃사공이 하북(河北)으로 건네 주었지만 홀연히 깨어서는 침상에서 편히 잠을 자면서 배타고 건너는 규칙도 잊어버리고 뱃사공이나 저 건너간 사람 둘이 모두 본래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것과 같다. |
眾生迷倒羈絆。 往來三界疲極。 覺悟生死如夢。 一切求心自息。 |
眾生이 迷惑으로 顚倒되고 기반(羈絆:束縛)되어 三界를 往來하매 疲勞가 至極하거니와, 生死가 꿈 같음을 覺悟하면 一切의 求하는 마음이 저절로 쉬어지리라. |
◎ 苦行으로 大道를 얻은 것이 아니라 本心의 空寂함을 깨달아야 얻는 것이언만 고행하는 것으로 공덕을 얻으리라 바라면서 그저 경 속의 글자만 세고 있는 것은 聖人과 까마득히 멀어진 일이라서, 마치 彼岸에 이르는 軌則을 가르쳐 주어도 가르쳐 준 사람도 모르고 어찌 건너는지도 잊어버린 채 침상에서 편히 잠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三界를 떠도는 고통 속에서도 낳고 죽는 일이 하룻밤 꿈과 같음을 안다면 자연 「無心」을 얻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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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行數墨; (책을 읽을 때) 「행(行)의 먹글씨[墨]만 찾아[尋] 센다[數]」는 것이니, 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읽기만 한다는 뜻이다. ★頭陀; 밥빌기[乞食]. ★阿練; 阿練若(Āriṇya). 比丘가 머무는 곳. 寺院의 總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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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로지 一乘에 歸依하라. | |
悟解即是菩提。 了本無有階梯。 堪歎凡夫傴僂。 八十不能跋蹄。 徒勞一生虛過。 不覺日月遷移。 向上看他師口。 恰似失嬭孩兒。 |
깨달아 알면 곧 菩提요, 근본을 깨치면 계층이 있지 않는지라 감히 凡夫라는 곱사등이[傴僂]가 八十에도 제대로 걷지 못함을 탄식하노니, 부질없이 수고하며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라 해와 달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모르고, 위를 향해 다른 스승의 입을 바라봄이 마치 유모 잃은 젖먹이와 같도다. |
道俗崢嶸集聚。 終日聽他死語。 不觀己身無常。 心行貪如狼虎。 |
道人과 俗人들이 빽빽이 모여 종일 저들의 쓸데없는 말만 듣고서 제 몸의 無常함은 살피지 못하고 마음으로 貪을 행하는 것이 마치 늑대 호랑이 같다. |
堪嗟二乘狹劣。 要須摧伏六府。 不食酒肉五辛。 邪眼看他飲咀。 更有邪行猖狂。 修氣不食鹽醋。 若悟上乘至真。 不假分別男女。 |
堪히 二乘의 좁고 열등함을 탄식하노니, 반드시 六府(六根)를 굴복시키기 바라노라. 酒, 肉, 五辛*을 먹지 않는다 하여 남이 씹어 먹는 것을 사악한 눈으로 보고, 더욱이 요사한 행위로 미쳐 날뛰면서 氣를 修行한답시고 소금 식초도 먹지 않는다는데, 上乘의 지극한 진리를 깨닫겠다면 男女를 가릴 필요가 없느니라. |
★五辛; 五辛菜.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아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