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碧雲 2023. 2. 6. 17:00

 명(明) 태조(太祖)가 당시 세간에 각 종가(宗家)마다 서로 다른 주석을 내놓아
육조의 구결과 상이한 해석들이 난무하니, 대중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고,
홍무(洪武) 10年에 당시의 고승 종륵(宗泐) 등에게 명하여 이 금강경을 위시하여
반야심경과 능가경의 세 경전을 주석하게 하고, 그로써 유통을 일원화시켰으니,
이를 신주(新注)라 하였다 
이 신주가 여래의(如來意)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 여기고,

이를 토대로 나름의 주석을 붙여서
금강경을 많은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바라며 여기에 올린다. 

 

 여시아문
 如是我聞。
일시 불 재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여 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 구
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은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比丘) 1250명과 함께 계셨는데,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如是) 내가 들었다(我聞)」의

나(我)는 부처님 제자 '아난'을 말한다.
그가 항상 부처님 곁에서 시중을 들며 가까이 모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 하여

「다문제일(多聞第一;많이 듣기 제일가는)」이라고 부른다.
경전의 첫 머리에 아난의 말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여시아문'이라 쓰고 있다.
*사위국(舍衛國); 고대 중인도 구사라국(拘薩羅國)의 수도인 사위성(舍衛城).
수도명을 국명으로 혼용하기도 하였기에 사위국이라 한 것이다.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사위성의 부호인 수달다(須達多) 장자(長者)는
늘 '외로운 사람을 돕는다(給)' 하여 세간이 '급고독(給孤獨)장자'라 불렀는데,
그가 부처님이 마갈다국에 계실 때 찾아 와서 법을 듣고 삼귀(三歸)하여 우

바새가 되고서 후에 사위국 파사익왕의 황태자 기타(祇陀)태자에게

부처님 모실 사원을 지을 제일 좋은 원림(園林;사원 숲)을 매입하겠다 하자,

기타태자가 땅만 팔고 숲은 자기가 부처님께 드리겠다 하여

두 사람이 공동으로 보시하게 된 것이니, '기타태자의 나무(祇樹)',

'급고독장자의 사원(給孤獨園)'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부처님 제일의 도량으로 「기원정사(祇園精舍)」, 「기원(祇園)」이라고도 한다.
*큰 비구 대중 1250인; 비구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스님을 말하며,
1250명이라는 많은 비구들이 모여 부처님 설법을 들었다 하니,

기원정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상의 ①무엇을 : 이와 같은 것을[如是] ②왜 : 내가 들었으니[我聞]

③언제 : 한 때[一時] ④어디서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⑤어떻게 : 비구 대중과 함께 ⑥누가 : 1250인이[千二百五十人俱]를

「6사(六事)」라 한다. 

 

 이시 세존 식시 착의의발
 爾時世尊食時著衣持鉢。
입 사위대성 걸식 어기성중
入舍衛大城。乞食於其城中。
차제걸이 환지본처
次第乞已還至本處。
반사흘 수의발
飯食訖收衣鉢。
세족이 부좌이좌
洗足已敷座而坐
그때 세존은 식사 때가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챙겨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그 성 안에서 밥을 비셨는데,
순서에 따라 구걸을 마치시자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음식을 드신 후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世尊)」이란 부처님 10호(十號;열 가지 호칭) 중 하나로

'세간의 어른'이라는 뜻이다.
*식사 때가 되어 가사 입고 발우 챙겨 걸식하셨다는 것은 일체의 교만이 없이
다른 비구와 똑같이(부처와 중생이 다름 없이) 평등하게 행동하셨다는 것이며,
*차례에 따라 구걸하셨다[次第乞已] 함은

부잣집 좋은 음식만 골라서 구걸하신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순서 대로 빈부를 가리지 않고

평등히 보시의 기회를 제공하셨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발(鉢); 발우(鉢盂), 즉 출가인의 음식 담는 그릇이다.

 

 시 장로 수보리 재 대중중 즉종좌기
 時長老須菩提在大眾中。即從座起。
편단우견 우슬착지
偏袒右肩右膝著地。
합장공경 이백불언
合掌恭敬而白佛言。
희유 세존
希有世尊。
여래 선호념 제보살 선부촉 제보살
如來善護念諸菩薩善付囑諸菩薩
그때 장로 수보리(須菩提)가
대중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편단우견(偏袒右肩)하고
우슬착지(右膝著地)하여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稀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보살들을 잘 호념(護念)하고
부촉(付囑)하시나이다.

*장로(長老) 수보리(須菩提)는 이 경(經)이 있게 한 사람이다.
장로(長老)란 덕(德)이 크고 나이가 많은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요,
수보리(須菩提)란 범어로서 '공생(空生)' 또는 '선현(善現)'이라는 뜻이며,
부처님 제자 가운데 '공(空)의 도리에 가장 밝았다' 하여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렸다.
*편단우견(偏袒右肩); 가사의 오른 편을 제껴 좌측 어께에 걸쳐서

오른 어께를 드러냄으로써 장자(長者)에게 공경을 표하는 고대 인도의 예법.
*우슬착지(右膝著地); 오른 무릎과 오른 손가락을 땅에 붙여

공경을 표하는 고대 인도의 예법.
*희유(稀有); 보기드물다. 부처님을 칭찬하는 표현이다.
*잘 호념한다(善護念)는 것은 현재의 근기가 무르익은 보살에게

지혜력을 주어서 수행을 성취하고, 교화력(教化力)을 주어서

중생을 잘 거둘 수 있도록 '마음에 두고 지키신다[護念]'는 뜻이다.
*잘 부촉한다(善付囑) 함은 미래의 근기가 성숙되지 않은 보살에게
대승(大乘)을 이왕 얻었거든 버리지 말고,

아직 얻지 못했거든 힘써 구해가기를 부탁한다는 뜻이니,
이 두 가지 일은 매우 보기드문 일[稀有]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단락을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법회가 열리게 된 연유 부분)」이라 한다. 

 

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2. 선현(善現;수보리)이 법을 청하다. 
 세존 선남자 선여인
 世尊!善男子、善女人,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응 운하 주 운하 항복기심
應云何住?云何降伏其心?」 
세존이시여!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면

응당 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나이까?」

이는 질문의 시작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범어 아뇩다라(阿耨多羅)는 무상(無上;더없이 높은),
삼(三)은 정(正;바르다), 먁(藐)은 등(等;평등), 보리(菩提)는 각(覺;깨달음)을 뜻하니,
곧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위없이 옳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말한다.
여래가 현재의 보살을 호념하고, 미래 보살에게 부촉하여 불과(佛果)를 이루게 하시니,
이 보살이 도(道)를 향한 마음을 내서 중생을 제도하고 불도(佛道)를 이루고자 한다면
마땅히 마음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만 하는지를 여쭈고 있다.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佛言:「善哉,善哉!須菩提!
여 여소설 여래 선호념 제보살
如汝所說:『如來善護念諸菩薩,
선부촉 제보살
善付囑諸菩薩。』
여금 제청 당위여설
汝今諦聽,當為汝說。
선남자선여인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응 여시 주 여시 항복기심
應如是住,如是降伏其心。」 
유연 세존 원요욕문
「唯然。世尊!願樂欲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수보리야!
네가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호념(護念)하고
잘 부촉(付囑)한다'와 같은 말을 하다니.

너는 이제 잘 듣거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면
마땅히 이렇게 머무르고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느니라.」
「그리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고자 하나이다.」 

수보리가 부처님 마음을 교묘히 헤아려 여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인가하시어
 '참으로 장하다'고 인가하시고, 이제부터 그 답을 할 것을 기약하시니,
수보리가 경청하겠다 하였다.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3. 대승의 바른 종지(宗旨)
 불고 수보리
 佛告須菩提:
제보살마하살 응 여시 항복기심
「諸菩薩摩訶薩應如是降伏其心: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거니와, 

수보리는 안주(安住)와 항복(降伏) 두 가지를 여쭈었으나,

여래가 항복에 대해서만 답하신 것은
대개 망심(妄心)을 항복시키면 반드시 대승(大乘)에 안주할 것이라 항복을 거론한 즉
안주(安住)도 내포되기 때문이다. 

 소유 일체중생지류
 『所有一切眾生之類,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若卵生、若胎生、若濕生、若化生,
약유색 약무색 약유상 약무상
若有色、若無色,若有想、若無想、
약비유상비무상
若非有想非無想,
있는 바 모든 중생의 종류인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거나
유색(有色), 무색(無色)이거나
유상(有想), 무상(無想),
비유상(非有想), 비무상(非無想)이거나 

사람과 방생(旁生;축생과 여타)은 네 가지를 쫓아 태어나니, 이를 「4생(四生)」이라 한다.
①난생(卵生); 알[卵]에서 태어나는 것.
②태생(胎生); 모태(母胎)에서 태어나는 것.
③습생(濕生); 풀숲, 분뇨, 수로, 늪, 등의 습기(濕氣)에서 태어나는 것.

인연생(因緣生)이라고도 한다.
④화생(化生); 의지한 바 없이 과거의 업력(業力)으로 홀연히 태어나는 것.
이 네 종류는 다 욕계천(欲界天)에 태어나는 것들이다.
*유색(有色)은 색계천(色界天), 무색(無色)은 무색계천(無色界天)에 나는 것들이요,
*유상(有想)은 식처천(識處天), 무상(無想)은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은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에 나는 것들을 말한다.

 아개령입 무여열반 이멸도지
 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여시 멸도 무량무수무변 중생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眾生,
실무중생 득멸도자
實無眾生得滅度者。
하이고 수보리
何以故?須菩提!
약 보살 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若菩薩有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
즉 비 보살
即非菩薩。
내가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
멸도(滅度)케 하리라' 하고서
그와 같이 한량없고 무수하며 끝이 없는
중생을 멸도한다 하더라도
실로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이가 없어야 하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을 지녔다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여열반(無餘涅槃); 번뇌가 다하고, 이숙(異熟;과보)도 오음(五陰)의 몸도

온전히 소멸한 열반.  즉 '여래 구경(究竟)의 피안(彼岸)'을 말한다.
*멸도(滅度); 「입적(入滅)」, 「적멸(寂滅)」, 「반열반(般涅槃)」과 동의어로서
  열반이 목적지라면 멸도는 목적지로 향하는 행위나 목적지의 상태,

상황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무변(無邊); 변두리가 없다. 한계가 없다. 끝이 없다.
 '있는 바 일체중생의 무리를'이란 「큰 마음[大心]」을 지칭하는 것이요,
*'내가 다 무여열반에 들게 하겠다' 함은 「수승한 마음[勝心]」이며,
 '실로 멸도된 중생이 없다'는 것은 부처와 똑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이니

「항상된 마음[常心]」이요,
 '아(我),인(人),중생(眾生),수자(壽者)의 상(相)이 있음'은

뒤바뀐 마음[전도심(顛倒心)]이며,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은 「부전도심(不顛倒心)]이다.
  보살은 이 네 가지 마음을 지녀야 한다. 

*「상(相)」은 상(像;형상), 상(狀;상황), 상(想;생각), 상(祥;상서로움) 등
  유형 무형의 모든 형식과 형태를 다 아우르는 용어이다.
  통상 '모양'이라 번역해서 쓰지만 우리말에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이니,
  의미를 알고 상(相)이라 그대로 씀이 좋겠다.
  금강경에서의 「상(相)」을 굳이 우리말로 바꾸자면

「관념(觀念)」이 오히려 가깝겠다.
  모든 상(相)은 본래 「무(無)」의 바탕에서

어떤 인연(因緣)을 따라 과(果)로써 생겨나서
  그 인연이 다하면 자연히 스러진다. 따라서 모든 유상(有相;상 있는 것)은
  무상(無常;항상함이 없음)한 것이라 실다운 모양[實相]이 아니다.
*아상(我相)이란 '내[我]가 있고 내 주변의 것들[我所]이 있다고 여기는 허망한 생각'을,
 인상(人相)은 '나는 사람이니 다른 갈래의 무리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허망된 마음'을,
 중생상(眾生相)은 '나는 오온(五蘊)의 화합으로 생겨나 이왕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는 망상'을,
 수자상(壽者相)은 '내게는 어떤 기간 동안의 수명이 주어졌다고 여기는 허황된 생각'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전도된 망상을 4견(四見)또는 4상(四相)이라 한다.
 보살은 반야의 오묘한 지혜로 나의 성품이 공(空)하여 본래 4상(四相)이 없음을 비춰보아야만
 '마음을 항복받았다'고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보살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4. 오묘한 행[妙行]은 머뭄이 없다. 
  부차 수보리
 「復次,須菩提!
보살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菩薩於法,應無所住,行於布施,
소위 부주색 보시
所謂不住色布施,
부주성향미촉법 보시
不住聲香味觸法布施。
수보리 보살 응여시 보시
須菩提!菩薩應如是布施,
부주어상
不住於相。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서 머무는 바가 없이
보시(布施)를 행해야 하거니와,
소위 색(色)에 머물지 않는 보시,

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도
머물지 않는 보시를 말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이와 같이 보시를 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이 단락은 「이치를 보고 이치를 따라 일을 행해야 마음을 항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머물지 말라는 것[不住]'은 이치를 보는 것이요, '널리 베풀라는 것[布施]'은 일을 행함이다.
*법에서[於法]; 6진(六塵;色聲香味觸法)의 모든 법을 말한다.
*보시(布施); '布'는 '포'로 읽지만 이 경우에는 '보'로 읽고, '널리'라는 뜻이며,
 '施'는 '버린다, 베푼다'는 뜻이니, 보시는 '널리 베푸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반드시 닦아야 할 육바라밀(六波羅蜜;六度萬行 :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첫 번째 덕목으로 물질을 베푸는 자생시(資生施),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
 법을 베푸는 법시(法施)의 세 종류가 있다.
 그러나 보시도 결국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진(六塵)에 불과하거니와,
 또 세간 사람들이 과보를 바라고 보시를 하니, 이를 '상(相)에 머문다(집착한다)'고 한다.
보살은 삼륜체공(三輪體空)을 요달하여 '상(相)에 집착하지 않고서[不住於相]' 보시를 행해야만
 '마음을 항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륜체공(三輪體空)이란 보시의 세 굴레바퀴[三輪]인 「베푸는 자」, 「받는 자」, 「베푸는 물건」
 셋 모두의 실체가 없는 것[空]을 말한다. 

 하이고  약 보살 부주상 보시
 何以故?若菩薩不住相布施,
기복덕 불가사량
其福德不可思量。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동방 허공 가사량부
東方虛空可思量不?」
 불야 세존
「不也,世尊!」
 수보리 동서북방
「須菩提!南西北方
사유상하 허공 가사량부
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
 불야 세존
「不也,世尊!」
 수보리 보살 무주상 보시
「須菩提!菩薩無住相布施,
복덕 역부여시 불사사량
福德亦復如是不可思量。
수보리 보살 단응 여소교주
須菩提!菩薩但應如所教住。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福德)이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동방(東方)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못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서·북방과

사유(四維)와 위·아래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못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하는
복덕도 그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수보리야! 보살은 다만 마땅히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러야 할 것이니라. 

 이 단락은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해서
혹시 복보(福報;보답받는 복)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의심을 떨치게 하시고자
 '오히려 상을 떠난 보시의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하신 것이다.
*4유(四維); 네 간방(間方), 즉 북동, 동남, 남서, 서북방. 

 

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5. 이치 대로 여실히 보라.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가이신상 견 여래부
可以身相見如來不?」
 불야 세존
「不也,世尊!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不可以身相得見如來。
하이고 여래 소설신상
何以故?如來所說身相,
즉비신상
即非身相。」
불고 수보리  
佛告須菩提:
 범소유상 개시허망
「凡所有相,皆是虛妄。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
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
「수보리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여래의 몸 모양[身相]으로
여래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신상(身相)으로는
여래를 보았다 할 수 없겠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가 말씀하신 바 '신상(身相)이
곧 신상(身相)이 아니다'고 하셨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있는 바 상(相)은
 다 허망(虛妄)한 것이니,
 모든 상(相)이 상(相)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앞서의 단락에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로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
성불(成佛)의 인(因)이라 하셨고, 여래는 불과(佛果)를 성취하셨으니,
수보리가 '부처님은 어떤 유위(有為)의 상(相)이 있지 않겠는가?' 하고

의심을 할까 염려하시어
 '여래의 신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는데,
수보리가 말씀하신 뜻을 알고 '신상(身相)을 보고 여래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여래의 상(相) 있는 몸은 응신(應身)이요, 상 없는 몸이 법신(法身)이며,
법신은 곧 체(體;본체)요, 응신은 곧 용(用;작용,쓰임)인 것이니,
작용이 본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건대 응신은 법신이 있는 곳일 뿐 근본 모양[相]이 없다.
*상이 곧 상이 아니다[相即非相]; '상(相)이 상이 아니다'는 이 뜻을 알고 보면
일체세간의 상(相)이 진실 자체가 아닐 것도 없고 부처의 바탕이 될 것도 없이
다만 인연법을 따라 성주괴공(成住壞空;이루어져 머물다가 스러져 없어진다)하는 것이라
그래서 부처님이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안 즉 여래를 본다' 하신 것이다. 

 

끝 부분 「무릇 있는 바 상 ~ 여래를 보느니라」를 금강경의 「제1 사구게(四句偈)」라 한다.
사구게란 '네 구절로 이루어진 게송'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은 설법한 요지를 요약정리하여
이 사구게 형식으로 노래하심으로써 누구나 가까이 외우게 하셨다.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6. 바른 믿음은 보기 드물다. 

 

수보리 백불언
須菩提白佛言: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 언설장구
「世尊!頗有眾生,得聞如是言說章句,
생실신부
生實信不?」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과연 어느 중생이 있어
이렇듯 말씀하신 구절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겠나이까?」

 〈금강반야경소론(金剛般若經疏論)〉에
 머뭄없이 보시를 행하는 것[無住行施]은 인(因)이 깊어야 가능하고,
 상(相)없이 부처를 보는 것[無相見佛]은 과(果)가 깊어야 가능할 터인데, 
 기왕 인과(因果)가 이렇게 깊어야 하다면 수보리야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들어서
 깨달아 알았다지만 「미래 말세의 미혹하고 둔한 근기의 중생들은
 과연 이러한 말씀을 믿겠는가?」 하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다 하였으며,
 앞서의 「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해서 복보(福報)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의심이
 이 경을 통해 끊어야 할 첫 번째 의심이라면, 이 의심은 그 두 번째 의심이다 하였다. 

불고수보리
佛告須菩提:
 막작시설 여래멸후 후오백세
「莫作是說。如來滅後,後五百歲,
유 지계수복자
有持戒修福者,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於此章句能生信心,以此為實,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 후오백 년에도
계(戒)를 지키고 복(福)을 닦는 자가 있어

이 말씀에 능히 신심(信心)을 내고
이로써 진실을 삼을 것이어니와, 

부처님께서 '말세에도 자연히 어떤 복덕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 있어
이 반야(般若)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것이다'고 답하셨다.
후오백세란 《대집경(大集經)》에 불멸(佛滅) 후 다섯 오백세가 있다 하였는데

지금이 최후의 오백세인 때이다.
지계(持戒)는 계(戒)요, 수복(修福)은 정(定)이며, 생신(生信)은 혜(慧)이니,
이 삼학(三學;戒,定,慧)을 구비하면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지시인 불어일불이불
當知是人不於一佛二佛
삼사오불 이종선근
三四五佛而種善根,
이어무량천만불 소종제선근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문시장구 내지 일념생정신자
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
마땅히 알라. 이런 사람은
한 부처 두 부처나
서 너 다섯 부처님께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께
온갖 선근을 심었기에
이 장구(章句)를 듣고
한 생각에 깨끗한 믿음을 내기에 이르는 것이니라. 

진실한 믿음은 많은 부처님 처소[佛所]에 선근을 심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대승법을 들어 한 순간[一念]의 짧은 시간이나마 믿음이 생기면
또 다시 부처님께 선근을 심고 또 심고 그렇게 하여 후오백세에 이른 사람은
그 인연으로 다시 한 순간에 순수한 믿음을 낼 것이다는 말씀이다.
*선근(善根); 선(善)이 생기는 뿌리. 선의 근본.  *章句; 문장과 어구. 

수보리  여래 실지실견
須菩提!如來悉知悉見,
시제중생 득여시 무량복덕
是諸眾生得如是無量福德。
하이고  시 제중생
何以故?是諸眾生
무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無復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
 무 법상 역무 비법상
「無法相,亦無非法相。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시거니와, 
이 모든 중생이
그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이
더 이상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眾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고,
법상(法相)도 없고,
비법상(非法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중생들이 이 가르침을 듣고 일념으로 청정히 믿기에 이르면
부처님 지혜[佛智]와 부처의 눈[佛眼]으로는 알고 보지 못할 것이 없기에 얻는 복이 무량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이 더 이상 아(我), 인(人), 중생(衆生), 수자상(壽者相)도 없고,
법이다[法相], 법 아니다 하는 상[非法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4상(四相;아,인,중생,수자상)이 없다는 것은 성품이 공하다[性空]는 것이며,
법상이 없다는 것은 상(相)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것이요,
비법상이 없다는 것은 성품(性)에 대한 집착이 없음이니, 둘 모두 법이 공함[法空]을 뜻한다. 

하이고  시 제중생 약심취상
何以故?是諸眾生若心取相,
즉 위착 아 인 중생 수자
則為著我、人、眾生、壽者。 
 약취법상 즉 착 아 인 중생 수자
「若取法相,即著我、人、眾生、壽者。
하이고  약취 비법상
何以故?若取非法相,
즉 착 아 인 중생 수자
即著我、人、眾生、壽者,
시고 불응취 법 불응취 비법
是故不應取法,不應取非法。
이시의고 여래상설
以是義故,如來常說: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 벌유자
『汝等比丘,知我說法,如筏喻者,
법상응사 하황비법
法尚應捨,何況非法。』
무슨 까닭인가?
중생이 만약 마음에 상(相)을 취하면
곧 아(我), 인(人), 중생(眾生),
수자(壽者)에 집착한 것이라
법상(法相)을 취해도
곧 아, 인, 중생, 수자에 집착한 것이요,
비법상(非法相)을 취해도

곧 아, 인, 중생, 수자에
집착한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응당 법(法)을 취해서도 안되고
비법(非法)을 취해서도 안될 것이라
이런 뜻에서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땟목과 같은 것으로 알라」 한 것이니,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非法]이겠느냐?

 '법을 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보는[能觀] 지혜를 버리는 것이요,
 '비법을 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보이는[所觀] 경계를 버리는 것이다.
보이는 바[所觀]는 병과 같고, 보는 지혜[觀智]는 약과 같아서
경계와 지혜가 다같이 없어지면 마치 병이 떠나매 약이 필요치 않는 것과 같다.
 '땟목과 같다' 한 것은 땟목은 다만 강 건너는 도구인지라 저 언덕에 이르면
쓸모가 없다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논(論)에 이르기를, 「강을 건너려면 먼저 땟목을 취해야 하지만
피안(彼岸)에 도달했거든 버리고 가야 한다.」 하였다.
설법은 피안으로 건너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니, 그 법에 집착하여 머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뛰어 넘어서 달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7. 얻음도 설함도 없다)

 얻은 것 없는 얻음이 참된 얻음이요, 설한 것 없는 설이 참된 설이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상 없는 것[無相]을 어떻게 설명하나?' 하는 의혹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여래 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여래 유 소설법야
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상으로는 부처를 볼 수 없다'고 하셨으니 부처는 「작위가 있는 것[有為]」이 아닌데
 '어째서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도를 얻어 회중에서 설법하시는가?' 하고
의혹하여 말할까 염려하신 것이다. 

수보리 언
須菩提言:
 여아해불 소설의
「如我解佛所說義,
무유정법 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역 무유 정법 여래가설
亦無有定法,如來可說。
수보리가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만 한
정해진 법이 없고,
또 여래가 설하실만 한
정해진 법도 없겠나이다. 

진여(真如)의 법체(法體)는 상(相)이 있고 없고를 여의었고,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를 벗어났서늘 어찌 귀로 듣고 마음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보리수 아래서 득도(得道)하시어 회중에서 설법하시는 분은 여래의 응신(應身)일 뿐,
그 보신(報身)과 법신(法身)은 얻거나 설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응신이 곧 법신이요 보신이므로 설한 것이 곧 설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니,
그래서 얻은 법이 있다 할 수도 있고, 없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이고  여래 소설법
何以故?如來所說法,
개 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皆不可取、不可說、非法、非非法。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모두가 취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으며,
법이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온데, 

부처님 법은 정(定;머뭄[住])함이 없고 형상[相]도 없어서 취할 수 없으며,
다만 듣고 믿어서 마음을 열리게 할 뿐이다. 
여래는 여러 부류의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저마다의 능력에 따르고 그릇에 맞춰
설법을 하시거늘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
또 여래의 무위법(無為法)은 머뭄[住]도 상(相)도 없어서 언설(言說)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니,
불가설(不可說)이라 한 것이며, 또 그 법이 꼭 없다 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해서 실재(實在)하는 것도 아니니, 법이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다 한 것이다.  
또 입으로 외우면서 마음으로는 행하지 않는 즉 비법(非法)인 것이요,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되, 얻은 바가 없어야 비비법(非非法;正法)인 것이다. 

소이자하  일체현성
所以者何?一切賢聖,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皆以無為法而有差別。」
어째서인가 하면,
모든 성현(聖賢)들이
다 무위법(無為法)으로
차별하게 대하기 때문이옵니다.」

중생들의 근성(根性)이 저마다 다르고, 소견이 얕고 깊음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성현(부처님)들은 일체지(一切智)로 그 차별함을 따라 작위 없는 법[無為法]을 설하여
마음을 열어 줌으로써 각자의 성품을 보게하신다는 것이다.
*무위법(無為法)이란 짓는 행위[作爲]가 없는 법, 즉 머뭄[住]도 상(相)도 없는 법을 말한다.
상이 없으니 일어나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텅 비어 고요하며,
머뭄이 없으니 관조(觀照)와 작용(作用)에 장애가 없는 해탈한 부처의 성품이다.
부처는 곧 깨달음[覺]이요, 깨달음은 곧 관조(觀照;비추어 봄)이며,
관조는 곧 지혜(智慧)이고, 지혜는 곧 반야바라밀다이다. 

 

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8. 법에 의거하여 생겨난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약인 만 삼천대천세계 칠보 이용보시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시인 소득복덕 녕위다부
是人所得福德,寧為多不?」
수보리언
須菩提言:
 심다 세존  하이고
「甚多,世尊!何以故?
시 복덕 즉 비복덕성
是福德即非福德性,
시고 여래설 복덕다
是故如來說福德多。」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운
칠보(七寶)를 사용함으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많지 않겠느나?」

수보리가 답했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그 복덕인 즉 복덕의 본 성품이 아니기에
 
그래서 여래가
복덕이 많다 하셨기 때문이옵니다.」 
 약부유인 어 차경중 수지
「若復有人,於此經中受持,
내지 사구게등 위타인 설
乃至四句偈等,為他人說,
기복 승피
其福勝彼。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
何以故?須菩提!一切諸佛,
급 제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개 종출차경
皆從此經出。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須菩提!所謂佛法者,即非佛法。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經) 안의 것들을 수지(受持)하여
사구게(四句偈)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를
타인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이 저것을 이기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일체 제불(諸佛)과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다 이 경으로부터 나오지만,

수보리야! 소위 불법(佛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이는 결국 법시(法施;법을 전해주는 것)의 공덕이 재시(財施;재물을 베푸는 것)의 공덕보다
뛰어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경을 수지하여 사구게 등까지를 남에게 설해 줌으로써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보리(菩提)에 나아가게 하는 공덕이야말로 참으로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의 몸과 증득하신 법은 반야(般若)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기에
반야를 부처의 어머니[佛母]라 하지만, 다만 그 실체가 없는 이름일 뿐이고
또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라 그래서 '불법이 불법이 아니다' 하신 것이다. 
*그 복덕인 즉 복덕의 성품이 아니다'는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복덕이
복덕의 근본 성품을 지칭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보리가 그 의미를 알고 '그렇다면 많다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것이다.
복덕의 성품에 무슨 모양[相]이 있어서 많고 적고 하겠는가?
*수지(受持)란 '받아 지닌다'는 것이니,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믿어서 마음에 간직한다는 뜻이다. 

 

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9. 하나의 상(相)도 상일 것이 없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수다원 능작시념
須陀洹能作是念:
 아득 수다원과 부
『我得須陀洹果。』不?」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須菩提言:「不也, 世尊!何以故?
수다원 명위 입류 이무소입
須陀洹名為入流,而無所入,
불입 색 성 향 미 촉 법
不入色, 聲, 香, 味, 觸, 法,
시명 수다원
是名須陀洹。」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수다원(須陀洹)이
 '나는 수다원 과(果)를 얻었노라' 하는
이런 생각을 지을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을 '입류(入流)'라고 이름하지만
들어가는 데가 없어서
색, 성, 향, 미, 촉, 법에
들어가지 않는 이것을
수다원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네 번째로 끊어야 할 것은 성문(聲聞)이 얻은 과(果)는 실지로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이 의혹은 위에서의 '무위법(無為法)은 취할 수 없다'는 말씀에서 오는 것이다.
성문(聲聞)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는 소승(小乘) 제자를 말한다.
이 성문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차례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네 가지 과(果;결실)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성문4과(聲聞四果)라 한다. 

*수다원(須陀洹)은 성문 4과의 첫 과[初果]로서 '입류(入流)'라 역(譯)한다.
미혹함[惑]에는 소견[見]의 미혹함[見惑]과 생각의 미혹함[思惑] 두 가지가 있는데,
소견의 미혹[見惑]이란 '망령되게 보는 것[妄見], 그릇되게 보는 것[邪見]' 따위를 말한다.
입류(入流)라 하는 것은 이 견혹(見惑;見障)을 끊어내고 네 갈래에 태어나지 않게 되었으니,
이왕 '성인의 흐름[聖道;流]에 들어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일체의 견혹을 끊은 이를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한다. 
*들어가는 데가 없다[無所入]는 것은 '들어선 흐름에 집착하지 않는다',
 '육진(六塵)의 경계(境界)에 집착하지 않는다', 즉 「상(相)이 없다, 상을 떠났다」는 것이니,
사다함과를 얻었다는 상(相)이 있다면 수다원이라 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사다함 능작시념
斯陀含能作是念:
 아득사다함과 부
『我得斯陀含果。』不?」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須菩提言:「不也, 世尊!何以故?
사담함 명 일왕래
斯陀含名一往來,
이실무 왕래 시명 사다함
而實無往來,是名斯陀含。」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사다함(斯陀含)이
 '나는 사다함 과(果)를 얻었노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일왕래(一往來)'라고 이름하지만

실로 왕래하는 일이 없는 것을
사다함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사다함(斯陀含)은 성문 4과의 두 번째 과[第二果]로서 '일왕래(一往來), 일래(一來)'라 역(譯)한다.
*일왕래(一往來)'란 '한 번을 갔다 온다'는 뜻으로 견혹(見惑)을 끊어 수다원의 과를 얻고서
다시 사혹(思惑)을 끊어가는 단계이다.
욕계(欲界)의 사혹(思惑)에는 九品(下下, 下中, 下上, 中下, 中中, 中上, 上下, 上中, 上上品)이 있는데,
그 중 앞 부분 중상품까지를 끊어낸 성문 수행인을 사다함이라 한다.
이 사다함은 뒤의 3품을 미처 끊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욕계에 생을 받는다고 하여 '일래(一來)'라 하는 것이다.
*실로 왕래함이 없다[實無往來]는 것은 '오고 간다는 상(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한 번만 오면 된다든가 하는 생각이 있다면 사다함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아나함 능작시념
阿那含能作是念:
 아득 아나함과 부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須菩提言:「不也, 世尊!何以故?
아나함 명위 불래 이실무래
阿那含名為不來,而實無來,
시고 명 아나함
是故名阿那含。」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아나함(阿那含)이
 '나는 아나함 과(果)를 얻었노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불래(不來)'라고 이름하지만
실로 오는 일이 없기에
그래서 아나함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범어 아나함(阿那含)은 역하여 「불래(不來)」라 하며, 성문(聲聞)의 세 번째 과[第三果]이다.
욕계(欲界)의 사혹(思惑)이 다했으니 더 이상 욕계에 생을 받지 않기에
 '오지 않는다[不來]', 혹은 '돌아오지 않는다[不還;불환]'고 하는 것이다.
*실로 오지 않음이 없다[實無不來]'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나는 다시는 욕계에 오지 않게 되었다거나 하는 마음이 있으면 아나함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아라한 능작시념
阿羅漢能作是念:
 아득 아라한도 부
『我得阿羅漢道。』不?」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須菩提言:「不也, 世尊!何以故?
실무유법 명 아라한
實無有法名阿羅漢。
세존  약 아라한 작시념
世尊!若阿羅漢作是念:
 아득 아라한도
『我得阿羅漢道。』
즉위착 아 인 중생 수자
即為著我, 人, 眾生, 壽者。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아라한(阿羅漢)이
 '나는 아라한 도(道)를 얻었노라' 하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아라한이라 이름할 법이 없는데,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 도를 얻었노라' 한다면

 곧 아, 인, 중생, 수자에
집착한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아라한(阿羅漢)은 역(譯)하여 '무학(無學;배울 것이 없다)'이라 하며,

성문의 네 번째 과[第四果]이다.
이 지위는 삼계(三界)의 번뇌(煩惱)가 끊겨 모두 다했으니, 
구경의 진리에 배울만 한 법이 없기에 그래서 무학(無學)이라 한다.
*실로 아라한이라 할 법이 없다[實無有法名阿羅漢]'는 것은
무학임을 증명할 모양새[相]가 없다는 뜻이니,
만약 증득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4상(四相)에 집착한 것이라

아라한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존  불설 아득 무쟁삼매
世尊!佛說我得無諍三昧,
인중 최위제일
人中最為第一,
시 제일 이욕 아라한
是第一離欲阿羅漢。
아 부작시념  아시 이욕 아라한
我不作是念:『我是離欲阿羅漢。』
세존  아 약작시념
世尊!我若作是念:
 아득 아라한도
『我得阿羅漢道。』
세존즉불설 수보리시 요 아란나행자
世尊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
이 수보리 실무소행
以須菩提實無所行,
이 명 수보리 시 요 아란나행
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음이
사람 중에 가장 제일이니,

제일가는 이욕아라한(離欲阿羅漢)이라 하시나,

저는 '내가 이욕아라한이다' 하고
생각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 도를 얻었다'고 생각했다면

세존께서 '수보리가 아란나(阿蘭那)행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려니와
수보리가 실로 그렇게 행한 바가 없었기에

수보리가 아란나행을
좋아한다고 하셨을 것이옵니다. 

수보리 자신이 증득한 것에 집착하지 않았음을 예로 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한 것이다.
수보리가 증득한 과(果)는 무학(無學)에 지나지 않지만
세존께서 특별히 그를 제일이라 칭하신 것은 다툼이 없었기[無諍] 때문이다.
*무쟁(無諍)이란 범어 아란나(阿蘭那)를 역(譯)한 것으로서
미혹의 장애[惑障]과 지혜의 장애[智障]라는 두 가지 장애[二障]를 여읜 경지를 말하는데,
혹장(惑障)을 여의었다[離惑] 함은 곧 상이 있음[有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지장(智障)을 떠났다[離智] 함은 상이 없음[無相]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相)이 있고 없음을 떠났으니 무슨 다툴 것이 있겠는가? 

 

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0. 정토를 장엄한다는 것

 '석가모니 불은 연등불의 말씀을 취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에 대한 설명이다. 

불고 수보리  어의운하
佛告須菩提:「於意云何?
여래 석재 연등불소 어법 유소득부
如來昔在然燈佛所,於法有所得不?」 
 세존  여래 재 연등불소 어법 실무소득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實無所得。」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옛날 연등불(然燈佛)의 처소에서
법을 얻은 것이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여래는 연등불소에서
법을 실로 얻은 바가 없겠나이다.」 

수보리가 '실로 여래께서 수보리가 부처님이 옛날에 실제로 연등불의 수기(授記)도 받고
법도 얻고 한 것이 있지 않느냐'고 의혹할까 염려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물으신 것인데,
수보리가 '실로 얻은 바가 없다' 했으니, 수보리에게는 그런 의혹이 없다는 것이다.
연등불(然燈佛)이란 이 부처님 태어나실 때 몸의 광명이 타오르는 등불 같았다니,
그래서 성불하시자 명호를 연등(然燈)이라 하였다고 한다.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 장엄불토 부
「須菩提!於意云何?菩薩莊嚴佛土不?」 
 불야 세존 
「不也,世尊!
하이고  장엄불토자
何以故?莊嚴佛土者,
즉비장엄 시명 장엄
則非莊嚴,是名莊嚴。」
 시고 수보리
「是故須菩提,
제 보살마하살 응 여시 생청정심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清淨心,
불응 주색생심
不應住色生心,
불응주 성 향 미 촉 법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而生其心。
「수보리야, 어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토(佛土)를 장엄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토를 장엄한다는 것인 즉

장엄 아닌 것을 장엄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야 하나니,
색(色)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도 말고,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도 말아서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질문의 뜻은 '보살이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고,
불토를 청정히 장엄하고, 몸을 나투어 설법한다는 것은
취한 바가 있는 것인데 어째서 취할 수 없다는 것인가?' 하는 것이고,
답의 뜻은 '보살이 비록 행(行)을 닦고 불토를 장엄한다지만 행(行)은 결국 지음[作]이 없고,
불토도 장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엄하지 않는 것이 장엄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장엄(非莊嚴)을 장엄(莊嚴)이라 한다'고 한 것이며,
여래는 또 수보리에게 보살이 되려면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서
마침내 취함 아닌 것으로 취하라고 하신 것이다.
유마경(維摩經)에 '그 마음을 쫓아 깨끗이 하는 것이 곧 불토를 청정히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육진(六塵)에 집착하면 청정(清淨)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하신 것이다.
*불토(佛土); 부처님 교화하시고 머무시는 국토. 
*장엄(莊嚴); [動]아름답게 장식하다. 몸에 가꾸어 지니다. [名] 웅장하고 엄숙함. 

 

【금강경 제2 사구게】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而生其心。」 

 

 수보리  비여유인 신여 수미산왕
「須菩提!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
어의운하  시신위대부
於意云何?是身為大不?」 
수보리언  심대 세존  하이고
須菩提言:「甚大,世尊!何以故?
불설비신 시명대신
佛說非身,是名大身。」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있어
몸이 수미산만 하다면
네 생각에 어떠하냐, 그 몸이 크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몹시 크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 아닌 것[非身]을
큰 몸[大身]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옵니다.」

 '보신(報身)을 받아 얻었으니 취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대한 설명이다. 

수미산(須彌山)이란 범어로서 역(譯)하면 묘고산(妙高山;오묘하고 높은 산)이다.
이 산은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있고 어느 산 보다 높으니 산왕(山王)이라 한다.
부처님의 보신(報身)은 모든 번뇌를 여의셨기에 '(몸이)아니다[非]'고 한 것이요,
존숭(尊崇)하고 기특(奇特)하니 '크다[大]'고 한 것이다.
수보리가 혹 '성인(聖人)의 법이 기왕 작위도 없고[無為] 취함도 없다면[無取]
얻으신 보신(報身)은 어찌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의혹할까 염려하시어
수미산을 비유로 들어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인데,
수보리가 수미산은 스스로 내가 산왕이다 하는 분별이 없으므로 큰 것이요,
보신이 집착을 여읜 것도 그와 같음을 알기에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비신(非身;몸 아닌 것)을 대신(大身;큰 몸)이라 하셨다'고 답한 것이다. 

 

11. 무위복승분(無為福勝分)  11. 무위(無為)의 복이 수승(殊勝)하다
 수보리  여 항하중 소유사수
「須菩提!如恒河中所有沙數,
여시 사등항하 어의운하
如是沙等恒河,於意云何?
시제 항하사 녕위다부
是諸恒河沙寧為多不?」 
수보리언  심다 세존
須菩提言:「甚多,世尊!
단 제항하 상다무수 하황기사
但諸恒河尚多無數,何況其沙。」
「수보리야!항하(恒河) 가운데
어떤 모래의 수가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모래와 같은 항하가 있다면
네 생각에 어떠하냐,
그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어찌 많다 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몹시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단지 항하들만으로도 오히려 무수히 많을 터이온데
하물며 그 모래이겠나이까?」 
 수보리  아금 실언고여
「須菩提!我今實言告汝。
약유 선남자 선여인
若有善男子、善女人,
이칠보 만이소 항하사수 삼천대천세계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이용보시 득복다부
以用布施,得福多不?」 
수보리언  심다 세존
須菩提言:「甚多,世尊!」
불고 수보리  약 선남자 선여인
佛告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
어차경중 내지수지 사구게등
於此經中,乃至受持四句偈等,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為他人說,而此福德勝前福德。
「수보리야!
내 이제 진실로 네게 고하노니,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모래 수의 삼천대천세계 그곳에
가득 채운 칠보를
사용함으로써 보시한다면
얻는 복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몹시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四句偈) 같은 것을
마침내 수지(受持)하기에 이르러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은 앞서의 복덕을 이기느니라.」 

 항하(恒河;갠지스강)는 천축(天竺;인도)의 강으로 40리에 둘러 있는데,  .
부처님이 대개 이 근처에서 설법하셨기 때문에 가져다 비유로 삼으셨다.
앞에서는 하나의 대천세계 칠보로 보시하는 것으로 비유하시어
수지하고 설하는 복이 수승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무량 대천세계를 채운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이 경의 사구게를 수지하여 남을 위해 설해주는 것만 못하다고 하시어
지설(持說;수지하여 설함, 法施)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12. 존중정교분(尊重正教分) 12. 바른 가르침[正教;經]을 존중히 모신다.
 부차 수보리
「復次,須菩提!
수설시경 내지 사구게등
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
당지 차처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當知此處,一切世間天, 人、阿修羅,
개응공양 여불탑묘
皆應供養,如佛塔廟,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
수보리  당지
須菩提!當知
시인성취 최상제일 희유지법
是人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약시경전 소재지처
若是經典所在之處,
즉위유불 약 존중제자
則為有佛,若尊重弟子。」
「또 수보리야!

이 경이나 사구게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를
쫓아서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곳은 일체 세간의
천(天), 인(人), 아수라(阿修羅)들이 
다 마땅히 부처님의 탑묘(塔廟) 같이
공양해야 할 것이거늘,
하물며 어떤 사람이 수지(受持)하여
독송(讀誦)하기를 다하는 사람이겠느냐?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가장 제일가는
희유(希有)한 법을 성취할 것이어니와, 
만약 이 경전이 소재하는 곳은

곧 부처나 존중한 제자가 있는 것이 되느니라.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을 탑(塔)이라 하고, 부처님 형상(形像)을 봉안한 곳을 묘(廟)라 한다.
이 경의 사구게 부분이라도 남을 위해 설하면 반드시 천(天), 인(人), 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탑묘처럼 공경할 것이거니와, 하물며 구족히 수지하여 독송하는 것이겠는가? 
*'최상 제일의 희유한 법을 성취한다' 함은 위없는 불과(佛果)인 보리(菩提)를 이룬다는 것이다.
*'만약 이 경전이 소재하는 곳이라면'이란 경전 있는 곳이 곧 부처님 계신 곳이요,
수지하여 설하는 사람이 곧 불제자(佛弟子)이니, 숭배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3. 여법(如法)히 수지(受持)하라.

 지도(至道;지극한 도)는 이름이 없으나 방편을 빌려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였으니,
이 이름으로 수행인들은 수지하라 하여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이라 하였다.

이시 수보리 백불언
爾時,須菩提白佛言:
 세존  당하명 차경  아등 운하봉지
「世尊!當何名此經?我等云何奉持?」 
불고 수보리  시경명위
佛告須菩提:「是經名為
 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金剛般若波羅蜜”。以是名字,汝當奉持。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 반야바라밀
所以者何?須菩提!佛說般若波羅蜜,
즉비반야바라밀
則非般若波羅蜜。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소설법부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所說法不?」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래무소설
須菩提白佛言:「世尊!如來無所說。」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해야 하고,
저희가 어떻게 봉지(奉持)해야 하나이까?」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이니,
이것을 이름으로써 너희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어째서인가 하면, 수보리야!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을 설한 것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에게 설할 바 법이 있겠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답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설하실 바가 없겠나이다.」 

부처님 말씀인 이 경이 비록 부처님과 불제자가 있는 곳처럼 소중한 것일지라도
방편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금강반야(金剛般若)가 아니다.
따라서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경전]이 금강반야바라밀의 실체이 아니니,
다만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으로 받들어 지니라 하신 것이다.
또 법의 성품[法性]이 본래 공(空)하거늘 무슨 설할 만한 법이 있겠는가?
그래서 여래가 설할 만한 법이 없다고 한 것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 시위다부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是為多不?」
수보리언  심다 세존
須菩提言:「甚多,世尊!」 
 수보리  제 미진
「須菩提!諸微塵,
여래설 비미진 시명미진
如來說非微塵,是名微塵。
여래설 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如來說世界,非世界,是名世界。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바 미진(微塵)이
많다 하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몹시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모든 미진이

여래가 미진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이름이 미진이다는 것이요,
여래가 세계라고 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다는 것이니라. 

〈구사론(俱舍論)〉에 물질이라는 존재의 최소 단위인 「극미(極微)」를 중심으로 하여
상하사방으로 동일한 극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을 「미진(微塵)」이라 한다 하고,
7극미가 1미진을 이룬다 하였으며, 또 이와 같이 하여 7미진이 1금진(金塵)을 이루고,
7금진이 1수진(水塵)을 이룬다 하였으니, 현대 물리학 이론과 유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진과 세계와의 관계는 「아(我)」와 「아소(我所)」와의 관계와 같아서
미진이 있는 곳이 세계요, 아(我)가 있는 곳이 아소(我所)이거니와,
모두가 본래 이름도 모양[相]도 없어서 상(相)을 지으면 이미 실체와는 거리가 멀어져버리지만
부득이 방편으로 다만 이름을 빌려 지칭하는 것이다는 말씀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가이삼십이상 견여래부
可以三十二相見如來不?」 
 불야  세존
「不也,世尊!
불가이 삼십이상 득견여래 하이고
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何以故?
여래설삼십이상 즉시비상
如來說三十二相,即是非相,
시명삼십이상
是名三十二相。」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32상(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32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겠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가 말씀하시는 32상이란
곧 상 아닌 것을
32상이라 이름하기 때문이옵니다.」

 '삼십이 상(相)'이란 응신(應身)의 상(相)이요, '상이 아니다[非相]'는 법신(法身)의 상(相)이다.
 '이것을 32상이라 이름한다'는 것은 응(應)이 곧 법(法)이요, 법(法)이 곧 응(應)이니,
32상이라 말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칠보로 보시한 복'은 부처의 상(相)을 이루더라도 다만 응신(應身)일 것이니,
 '수지 설법한 공덕'으로 법신(法身)을 이루니만 못할 것이다. 

 수보리  약유 선남자 선여인
「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
이 항하사등 신명보시
以恒河沙等身命布施;
약부유인 어차경중 내지수지 사구게등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위타인설 기복심다
為他人說,其福甚多。」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사와 같은 신명(身命)을 보시했는데,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같은 것을 수지(受持)하기에 이르러
다른 사람을 위해 설했다면
그 복이 훨신 많느니라.」 

보시하는 칠보는 바깥 재물[外財]를 이지만 몸과 목숨[身命]은 안 재물[內財]이니,
외재(外財)를 보시하는 것보다 내재(內財)를 보시하기가 훨신 어렵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보시는 다 유위(有為)요 유루(有漏)의 인과(因果)이므로
사구게를 수지 설법하여 취하는 보리(菩提)의 묘과(妙果)만 못하다는 말씀이다. 

 

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14. 상(相)을 떠나 적멸(寂滅)하다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爾時,須菩提聞說是經,深解義趣,
체루비읍 이백불언
涕淚悲泣,而白佛言:
 희유  세존  물설여시 심심경전
「希有,世尊!佛說如是甚深經典,
아종석래 소득혜안
我從昔來所得慧眼,
미증득문 여시지경
未曾得聞如是之經。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世尊!若復有人得聞是經,
신심청정 즉생실상
信心清淨,則生實相,
당지 시인 성취제일 희유공덕
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
이때 수보리가 이 경 설하심을 듣고,
의취(義趣;뜻과 취지)를 깊이 이해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이러한 심오한 경전에서 
제가 옛적부터 혜안(慧眼)을 얻어 왔사오나

이와 같은 경은 들어본 적이 없었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신심(信心)이 청정하여 곧 실상(實相)을 낸다면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으로 알아야 하겠나이다. 
세존  시 실상자 즉시비상
世尊!是實相者,則是非相,
시고 여래설 명 실상
是故如來說名實相。
세존  아금득문 여시경전
世尊!我今得聞如是經典,
신해수지 부족위난
信解受持不足為難,
약당래세 후오백세 기유중생
若當來世,後五百歲,其有眾生,
득문시경 신해수지
得聞是經,信解受持,
시인즉위 제일희유 하이고
是人則為第一希有。何以故?
차인 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此人無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
소이자하  아상 즉시비상
所以者何?我相即是非相,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시비상
人相、眾生相、壽者相即是非相。
하이고  이 일체제상 즉명제불
何以故?離一切諸相,則名諸佛。」
세존이시여!
이 실상(實相)이란 곧 상(相)이 아니기에
그래서 여래가 실상이라 한다고 하셨거니와,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
신해(信解)하여 수지(受持)하기가
어렵지는 않겠사오나,
만일 미래세 후오백년을 당하여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서 믿고 이해[信解]하여
받아 간직[受持]한다면
이 사람인 즉 제일 희유한 사람이겠나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眾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거니와,
어째서인가 하면
아상이 곧 상이 아니고,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곧 상이 아니기(아님을 알기) 때문이온데,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상을 여읜 즉
제불(諸佛;부처의 총칭)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청정행(清淨行)을 행한다 하더라도 더럽다 청정하다는 두 모양을 보면
이미 정(情)이 낀 더러움인 것이라 곧 청정심이 아니니,
마음에 얻은 바가 있기만 하면 곧 실상(實相)이 아닌 것이다.
자성(自性)이 어리석지 않은 것을 혜안(慧眼)이라 하고,
법을 듣고 스스로 깨닫는 것을 법안(法眼)이라 하거니와,
수보리가 그간 부처님의 심오한 경전을 성문(聲問)의 혜안으로 들어오다가
지금에야 비로소 부처님의 뜻을 스스로 깨달아 법안이 열리게 되었기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희유하다'고 찬탄하고서
자기가 지금까지 이런 경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으니,
누구나 이 경을 듣고 신심이 깨끗하면 곧 실상(實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수보리는 지금 바로 부처님에게서 이 경을 들었으니 이 경이 어렵지 않겠지만
미래의 중생이 이 법을 얻어 듣는다는 것은 애초에 드물 것이기에
그래서 그 드물게 있는 사람은 이 경을 의지해 수행함으로써
아(我), 인(人), 중생(眾生), 수자(壽者)의 4상(四相)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상이 아니고 상 아닌 것이 실상이라는 이치인 것이요,  
이 모든 상을 여의는 것이 곧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므로 부처라고 한다고 하였다. 

 불고 수보리  여시 여시
 佛告須菩提:「如是,如是!
약부유인 득문시경
若復有人,得聞是經,
불경 불포 불외
不驚、不怖、不畏,
당지 시인 심위희유
當知是人甚為希有。
하이고  수보리  여래설 제일바라밀
何以故?須菩提!如來說第一波羅蜜,
비 제일바라밀 시명 제일바라밀
非第一波羅蜜,是名第一波羅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줄 알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이라 말하는 것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이를 제일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동안 너무나 분명히 있어왔던 것을 실상(實相)이 아니다 하시고,
 '모든 법[諸法]이 본래 공하다[本空]' 하시니, 이를 듣고 어찌 놀라고 두렵지 않은 자가 있으리오?
그러니 이 이치를 깨달아 안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것이다.
제일바라밀이란 보살이 반드시 닦아야 할 여섯 가지 행[육바라밀(六波羅蜜;六度滿行)]
즉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첫 보시바라밀을 말한다.
법은 본래 공하거늘 법이라는 상을 가지면 이미 법보시라는 제일바라밀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써 제일바라밀이라 하는 것일 뿐이는 말씀이다. 

수보리  인욕바라밀 
須菩提! 忍辱波羅蜜,
여래설비 인욕바라밀
如來說非忍辱波羅蜜。
하이고  수보리
何以故?須菩提!
여아석위 가리왕 할절신체
如我昔為歌利王割截身體,
아어이시 무아상 무인상
我於爾時,無我相、無人相、
무중생상 무수자상
無眾生相、無壽者相。
하이고  아어왕석 절절지해시
何以故?我於往昔節節支解時,
아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若有我相、人相、眾生相、壽者相,
응생진한
應生瞋恨。
수보리 우념과거 어오백세 작 인욕선인
須菩提!又念過去於五百世作忍辱仙人,
어이소세 무아상 무인상
於爾所世,無我相、無人相、
무중생상 무수자상
無眾生相、無壽者相。
수보리야!
인욕(忍辱)바라밀은
여래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말하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歌利王)에게
신체(身體)를 찢김 당하는 것과 같거니와 
나는 그 때 아상이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 수자상도 없었으니,

어째서인가? 내가 지난 옛날
사지를 갈기 갈기 찢기우던 그 때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다면

진한(瞋恨;성내고 원한을 품는 마음)을
냈어야 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 동안
인욕선인(忍辱仙人)이 되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 세상에서는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더니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란 육바라밀의 두 번째 덕목이다.
참아서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을 인(忍)이라 하고 훼손하고 해치는 것을 욕(辱)이라 하니,
훼손하고 해치는 일을 당하여 성내거나 한을 품지 않고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이 인욕이다.
참아야 할 경계도 상(相)이니 이런 상이 마음에 있으면 옳지 못하고,
해침을 받는 경계도 상(相)이니 상해를 입는 몸이 보이지 않아야 옳다.
 '인욕바라밀이 인욕바라밀이 아니다' 하신 것은 집착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이와 같은 인욕행을 부처님이 옛날 가리왕(歌利王)에게 받았던 곤욕을 들어 증명하셨다.
범어(梵語) 가리(歌利)는 '극악(極惡)'의 뜻이다.
부처님이 숙세(宿世)에 일찍이 선인(仙人)이 되어 산중에서 수도하시는데,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이를 보고 못마땅히 여겨 귀, 코를 베고 수족을 잘라버렸다.
그래도 선인은 진한(嗔恨)를 내지 않고, 자비로운 인내력으로 몸이 예전과 같았으니,  
모두가 아,인,중생,수자의 4상(四相)이 다 공함에 요달하셨기 때문이었다.
또 과거 오백세에 인욕선인이셨다 함은 인욕행이 한 세상에 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고 수보리  보살응리 일체상
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불응주색생심
不應住色生心,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생무소주심
應生無所住心。
약심유주 즉위비주
若心有住,則為非住。
시고불설  보살 심불응주색 보시
是故佛說:『菩薩心不應住色布施。』
 수보리  보살 위리익 일체중생
「須菩提!菩薩為利益一切眾生,
응여시보시
應如是布施。
여래설  일체제상 즉시비상
如來說:『一切諸相,即是非相。』
우설  일체중생 즉비중생
又說:『一切眾生,則非眾生。』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의 상(相)을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야 하나니,

색(色)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 기대어
마음을 내지도 말아서
응당 머무는 곳이 없는 마음을 내야 한다.

만약 마음에 머뭄이 있다면
곧 머물 곳이 아닌지라 
그래서 부처님이 『보살은 색에 기대는 마음으로
보시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며,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려는
그와 같은 보시를 해야 하기에

여래가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상이 곧 상이 아니다』 하고,
또 『일체 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다』고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은 여러 세상을 거쳐 인(忍)을 행하시어 무아(無我)이시기에 보리(菩提)를 이루신 것이다.
따라서 보리심(菩提心)을 냈거든 모름지기 모든 상(相)을 여의어야 하고,
상을 여읜다는 것은 곧 색(色) 따위의 육진(六塵)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서 마음이 머무는 바가 없어야만 보리에 머물 수 있는 것이요, 
만일 마음에 머뭄이 있으면 곧 불도(佛道)에 머문 것이 아니다.
보살이 행하는 육바라밀이 다 상을 여의어야 하는 것인데,
색(色)은 육진(六塵)의 첫머리요, 보시는 육바라밀의 처음이니,
그래서 색에 머물러 보시해서는 안된다고 하신 것이며, 
이렇게 보시를 행하는 것이 중생들을 이익케 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베푼다 받는다는 마음이 있으면 머뭄이 없는 것이 아니니,
집착을 내려놓고 또 떠나보내야 할 것이기에 
그래서 '상이 상이 아니고, 중생이 중생이 아니다'고 하신 것이다. 

 수보리  여래시 진어자 실어자
「須菩提!如來是真語者、實語者、
여어자 불광어자
如語者、不誑語者、
불이어자
不異語者。
 수보리  여래소득법 차법 무실무허
「須菩提!如來所得法,此法無實無虛。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 하는 자[真語者]요,
사실을 말하는 자[實語者]이며,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자[如語者]이며,
속이는 말 하지 않는 자[不誑語者]이며,
다른 말 하지 않는자[不異語者]이거니와,

수보리야! 여래가 법을 얻은 법,
이 법은 진실함도 없고 허망함도 없느니라. 

 부처님은 증득하신 바 없이 증득하시고, 설하신 바 없이 설하셨으니,
증득하신 바와 설하신 바가 이치에 합당치 못함이 없으나,
수보리가 이런 뜻에 요달치 못할까 염려하시어 그래서 또 '이것이 진실과 같은 말이요,
참된 말 하는 자가 불보리(佛菩提)를 설한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실어자(實語者)는 소승법(小乘法)을 설하는 것이고, 여어자(如語者)는 대승법을 설하는 것이며,
불이어자(不異語者)는 사실을 기별(記別)해 주어[授記] 말하는 것,
불광어자(不誑語者)는 중생이 혼란스럽지 않게 오직 이 한 구(一句)로 해석한다는 것,
무실무허자(無實無虛者)란 여래가 증득한 법이 본래 언설(言說)을 떠난 것이라서
실다움이 없지만[無實], 어떤 상대를 대하여 말씀하셨으니 허망하지도 않다[無虛]는 것이다.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
須菩提!若菩薩心住於法而行布施,
여인입암 즉무소견
如人入闇,則無所見;
약보살 심부주법 이행보시
若菩薩心不住法而行布施,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如人有目,日光明照,見種種色。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법에 머문 마음으로 보시를 행한다면
사람이 어두운 데 들어가매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려니와,
보살이 법에 머물지 않은 마음으로
보시를 행한다면
사람이 눈이 있어서 햇빛이 비추이매
갖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머문다[住]는 것은 집착[著]하는 것이니, 마치 보시를 행할 때와 같아서
삼륜(三輪)의 체(體)가 공(空)함에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법(法)에 머문다고 한다.
마음이 기왕 법에 머물면 보시바라밀을 이루지 못함이
마치 어둠 속에 들어가매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려니와,
만약 삼륜의 체가 공함에 요달한 즉 마음이 머문 바가 없을 것이라
보시바라밀을 이룸이 마치 사람이 눈이 있으매 햇빛 가운데서
모든 색상(色相)을 환히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는 말씀이다.
화엄경(華嚴經)에서도 '성문(聲聞)이 여래의 회중(會中)에서 법을 들어도
맹인이나 벙어리 같은 것은 제법(諸法)의 상(相)에 머물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수보리  당래지세
「須菩提!當來之世,
약유선남자 선여인 능어차경 수지독송
若有善男子, 善女人, 能於此經受持讀誦,
즉위여래 이불지혜 실지시인 실견시인
則為如來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수보리야!
닥쳐 올 세상을 당하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한다면
곧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실 것이라  
모두가 무량무변(無量無邊)한 공덕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부처의 지혜로 다 알고 보신다' 함은 자연히 부처님의 인연법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니,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수승한 인[勝因]을 행하면 부처님의 인연법에 따라
반드시 묘과(妙果)를 이룰 것이라 무량무변(無量無邊)한 공덕을 성취한다고 하신 것이다. 

 

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5. 이 경을 지니는 공덕 
 수보리  약유 선남자 선여인
「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
초일분이 항하사등 신보시
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
중일분부이 항하사등 신보시
中日分復以恒河沙等身布施,
후일분역이 항하사등 신보시
後日分亦以恒河沙等身布施,
여시무량백천억 겁이 신보시
如是無量百千萬億劫以身布施;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若復有人,聞此經典,信心不逆,
기복승피
其福勝彼,
하황 서사 수지 독송 위인해설
何況書寫、受持、讀誦、為人解說。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초일분(初日分)으로
항하사와 같은 몸을 보시하고,
중일분(中日分)으로 다시
항하사와 같은 몸을 보시하고,
후일분(後日分)으로 또
항하사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렇게 무량 백천만억 겁(劫) 동안
몸을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물리치지 않는다면 
그 복이 저 것을 이기거니와,

하물며 이 경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해설해 주는 것이겠느냐?

 초일분(初日分)이란 인묘진(寅卯辰) 시(時)이니 '아침 때'요,
중일분(中日分)은 사오미(巳午未) 시이니 '점심 때'이며,
후일분은 신유술(申酉戌) 시이니 '저녁 때'다.
이렇게 하루 세 때에 무량한 몸을 버려서 무량 겁동안 보시를 한다니,
세간에 이런 일이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부처님은 이런 비유를 설정하시고서
그러한 공덕보다 이 경을 듣고 믿음을 내는 복덕이 더 수승한데,
하물며 수지독송하여 해설하는 것이랴 하셨다. 
서사(書寫), 수지(受持), 독송(讀誦)은 '스스로 행하는 것[自行]'이요,
사람들에게 해설한다는 것은 '남을 교화하는 것[化他]'이다.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 유 불가사의
「須菩提!以要言之,是經有不可思議、
불가칭량 무변공덕
不可稱量、無邊功德。
여래위발 대승자설 위발 최상승자설
如來為發大乘者說,為發最上乘者說。
약유인능 수지독송 광위인설
若有人能受持讀誦,廣為人說,
여래 실지시인 실견시인
如來悉知是人,悉見是人,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
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不可思議功德,如是人等,
즉위하담 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則為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何以故?須菩提!若樂小法者,
착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著我見、人見、眾生見、壽者見,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則於此經,不能聽受讀誦、為人解說。
수보리야, 요컨대
이 경에는 생각할 수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공덕이 있거니와,
여래가 대승(大乘)을 발(發)한 이를 위해 설하고,
최상승(最上乘)을 발한 이를 위해 설한 것인지라
만약 어떤 사람이 수지독송(受持讀誦)하여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해 준다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보시리니, 
모두가 양(量)도 모르고,
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할 것이요,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즉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걸머지게 될 것이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작은 법[小法]을 좋아하는 자가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眾生見),
수자견(壽者見)에 집착해서는
이 경을 들을 수도 독송할 수도
남을 위해 해설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 반야(般若)의 체(體)는 본래 언어와 생각이 끊겼거니와,
그 공덕이 광대하여 측량할 수 없어서 소승을 좋아하는 자가 들을 수 있는 바가 아니기에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해서나, 또 최상승을 발한 자를 위해 설한다고 하신 것이다.
대승(大乘)의 승(乘)이란 '탈것'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말한다.
교법을 타고 열반의 피안으로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小乘)이 자기 자신의 해탈을 주요 목표로 삼는 성문, 연각의 도(道)인 반면,
이 대승은 열반을 목표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겸하여 행하는 보살의 도를 말하고,
최상승(最上乘)은 더 없이 높은 교법인 일불승(一佛乘), 즉 부처의 도를 말한다.
소승(小乘)들은 들고 받아들여서 독송(讀誦)하지도 남에게 설명해주지도 못하는 것이
아, 인, 중생, 수자견의 사견(四見)에 집착하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須菩提!在在處處,若有此經,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소응공양
一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養;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
當知此處,則為是塔,皆應恭敬,
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作禮圍繞,以諸華香而散其處。
수보리야! 있는 곳곳마다
만약 이 경이 있다면
일체 세간의 천(天), 인(人), 아수라가
공양해야 할 바라,
마땅히 알라. 이곳을 곧 탑(塔)으로 여겨
모두가 공경하여
예배하며 주위를 돌면서
온갖 꽃과 향을 그곳에 흩어야 하느니라.

 탑(塔)은 사리(舍利)를 보관한 곳이니 천(天), 인(人), 아수라가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면,
이 반야경(般若經)이 있는 곳이야 참 법신사리(法身舍利)의 보배 탑이거늘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오. 

 

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16. 업장(業障)을 깨끗이 할 수 있다.

 이 경을 수지독송하여 남에게 설해줌으로써 업장을 깨끗이 할 수 있다. 

 부차 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復次,須菩提!善男子、善女人,
수지독송 차경 약위인 경천
受持讀誦此經,若為人輕賤,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
이금세 인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以今世人輕賤故,先世罪業則為消滅,
당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여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다면,
이 사람은 선세(先世)의 죄업으로
악도(惡道)에 떨어져야 할지라도
금세(今世)에 사람들의 멸시를 받은 까닭에
선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니라.

 이 경을 지송(持誦;수지독송)하면 사람들이 공경해야 마땅하거늘
도리어 사람들의 멸시를 당한다는 것은 숙세의 죄업이 악보(惡報)를 받기에 합당하였으나
이 경의 힘으로 말미암아 멸시만을 당하는 것이며, 멸시를 당한 까닭에 그 죄가 소멸하여
위없는 불과(佛果)를 이룰 것이니, 지경(持經)의 공덕이 가히 크다 하겠다. 

 수보리  아념과거 무량아승지겁
「須菩提!我念過去無量阿僧祇劫,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於然燈佛前, 得值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悉皆供養承事,無空過者;
약부유인 어후말세
若復有人,於後末世,
능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能受持讀誦此經,所得功德,
어 아소공양 제불공덕 백분불급일
於我所供養諸佛功德,百分不及一,
천만억분 내지 산수비유 소능불급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喻所不能及。
「수보리야! 내가 과거
무량한 아승지 겁을 생각해보건대
연등불(然燈佛) 전에서
팔백사천만 억 나유타의 제불(諸佛)을 모시고
모두 다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기를
헛됨이 없이 하였거니와,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후말세(後末世)에

이 경을 수지독송하여 얻는 공덕에는
 
내가 제불을 공양한 공덕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만 억분이나 산수(算數)와 비유(譬喻)로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아승지(阿僧祇)란 '무수한 때[無數時]'라 번역하고,
나유타(那由他)란 십억(十億)이 1락차(洛叉)요, 10락차가 1구지(俱胝)이며, 10구지가 1나유타이다.
여래는 과거 연등불(然燈佛) 전에서 그렇듯 무수한 제불(諸佛)을 공양하셨으니,
그 공덕이 가히 깊고 크다 하겠으나 말세에 지경(持經)하는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대체로 지경(持經)은 보리(菩提)를 증득케 할 수 있는 것인지라
부처를 공양함이 비록 큰 복보(福報)를 받게 한다지만
그 일만으로는 지경하는 공덕의 백천만 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산수와 비유로 미칠 수 없다 하신 것은 어떤 사실상의 복(福)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지만
반야의 오묘한 지혜는 주객(主客)을 상실하고 상대성(相對性)이 끊겨서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수보리  약 선남자 선여인
「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
어후말세 유 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於後末世,有受持讀誦此經,所得功德,
아약구설자 혹유인문
我若具說者,或有人聞,
심즉광란 호의불신
心則狂亂,狐疑不信。
수보리  당지 시경의 불가사의
須菩提!當知是經義不可思議,
과보역 불가사의
果報亦不可思議。」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후말세(後末世)에 이 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여 얻는 공덕을
내가 다 갖춰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서
마음이 곧 혼란해져서
여우처럼 의심하며 믿지 않겠지만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의하고
과보(果報)도 또한 불가사의하느니라.」

 이 경은 대승(大乘)의 근기(根器)가 아니면 지송(持誦)할 수 없거늘
지송(持誦)하여 얻는 공덕인들 어찌 보통사람이 들을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들으면 반드시 의심하며 불신할 것이라 다 말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이 경의 의취(義趣)와 그 과보(果報)가 불가사의함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17. 결국 나(我)라는 것이 없다. 

본래 무아(無我)인 것을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그를 제도하기 위해 방편상 '나[我]'를 세운 것이다.
그러니 '구경(究竟)에 나(我)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
선남자 선여인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云何應住?云何降伏其心?」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서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오며,
어떻게 그의 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나이까? 」

이 질문은 앞서의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만약 능히 머물고 능히 항복 받은 뒤에 '내가 항복 받았노라'는
이런 분별(分別)이 또 있지 않을까 하여 다시 여쭌 것이다. 

불고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佛告須菩提:「善男子、善女人,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당생여시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當生如是心:
 아응멸도 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我應滅度一切眾生。滅度一切眾生已,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而無有一眾生實滅度者。』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유 아상 인상
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我相, 人相,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眾生相、壽者相,則非菩薩。
소이자하  수보리
所以者何?須菩提!
실무유법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셨다.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냈거든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나는 일체중생을 멸도(滅度)하되,
일체중생을 이왕 멸도하더라도
한 중생도 실로 멸도된 자가 없다』고
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眾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닌 것이니,
어째서이겠느냐? 수보리야!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낸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멸도(滅度); 입멸(入滅), 즉 열반에 들게 하다.
보살이 만약 제도할만 한 중생이 있다고 본다면
나(我)가 있어 중생이 있는 것이라 곧 이것이 아상(我相)이요,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으면
내가 우월하다는 마음이니 곧 이것이 인상(人相)이고,
열반이 구할만 한 것이다고 한다면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다는 것이니 곧 이것이 중생상(眾生相)이며,
열반이 있어 증득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내게 주어진 기간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니 곧 이것이 수자상(壽者相)이거니와,
이 사상(四相)이 있는 즉 보살이 아니다. 
법이 있다는 것은 아(我), 인(人) 등의 네가지 법을 말하니,
그 네 법을 없애지 않고서는 결코 보리(菩提)를 얻지 못한다.
만약 '내가 보리심(菩提心)을 냈노라'고 한다면 이것이 아(我), 인(人) 등의 법이며,
아, 인 등의 법이 바로 번뇌의 근본인 것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 연등불소
「須菩提!於意云何?如來於然燈佛所,
유법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수보리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소(然燈佛所)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법이 있겠느냐?」

 앞에서 보리심을 낸다는 법이 없다고 한 뜻이

발심한 자가 없으면 보살도 없는 것이라 하여
만약 보살이 없다면 어떻게 석가는 연등불소에서 선혜(善慧)라는 이름으로
구도행각을 하고 보살행을 하여 수기(受記)를 얻었을까?
수보리가 잠깐이라도 이런 의혹을 할까 염려하시어 이 질문을 하신 것이다. 

 불야  세존
「不也,世尊!
여아해불 소설의 불어 연등불소
如我解佛所說義,佛於然燈佛所,
무유법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그렇지 않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하신 뜻을 제가 이해하기에는
부처님은 연등불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법이 없겠나이다. 」

부처님은 그때 모든 분별[사상(四相)]을 여의었으니 얻은 바가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법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수기를 얻은 것이다는 의미다. 

 블언  여시 여시  수보리
『佛言:「如是,如是!須菩提!
실무유법 여래 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須菩提!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연등불즉 불여아수기  여어래세
然燈佛則不與我受記:『汝於來世,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當得作佛,號釋迦牟尼。』
이실무유법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是故然燈佛與我受記,作是言: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汝於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실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법이 없었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여래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법이 있었다면
연등불께서 내게 '너는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고
수기(受記)를 주시지 않으셨으려니와,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법이 없었기에
그래서 연등불께서 내게 수기를 주시면서

『너는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니, 

수기(受記) ; 기(記)는 기별(記別)이니, 받는 입장에서는 受記라 하고 주는 입장에서는 授記라 한다.
 '너는 미래세 어느 때에 부처가 되어 호를 아무개라 하리라'는 부처님의 예언을 기별이라 한다.

하이고  여래자 즉 제법여의
何以故?如來者,即諸法如義。
 약유인언  여래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若有人言: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실무유법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 實無有法,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왜냐하면, 여래란 곧
제법여의(諸法如義)이기 때문이니,
혹 어떤 사람은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나
수보리야! 실로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법이 없는 것이니라. 

*제법여의(諸法如義); 모든 법이 이치와 같다.
모든 법[諸法]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육진(六塵)의 모양새[相]를 나타내 보이지만
그 본체(本體)는 맑아서 물들지도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일찍이 변이(變異)한 적도 없어서
마치 허공이 부동(不動)하듯이 원융하고 뚜렷히 무량 겁(劫)에 상존(常存)한다는 것.
이러한 실상을 깨달아 그 원융한 자리(열반)에 들어갔으니 부처라고 이름할 뿐,
무엇을 얻고 또 달라진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 얻었다 할 법이 없다는 것이다. 

수보리  여래소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어시중 무실무허
於是中無實無虛。
시고 여래설  일체법 개시불법
是故如來說:『一切法皆是佛法。』
수보리  소언 일체법자
須菩提!所言一切法者,
즉비일체법 시고명 일체법
即非一切法,是故名一切法。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그 가운데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는지라

그래서 여래가 말하기를,
『일체법이 다 불법(佛法)이다』고 하거니와,
수보리야! 일체법이라 하는 것이

곧 일체법이 아니기에
그래서 일체법이라고 이름한 것이니, 

 '소득(所得;얻은 것)'이란 망심(妄心)을 끊어 없애버려서 증득한 것이고,
 '실이 없다[無實]'는 유위(有為)의 모양이 아니다는 것이며,
 '허가 없다[無虛]'는 것은 바로 진여(真如)의 체(體)를 말한다.
진여(真如)란 '진실하게 똑 같다', 즉 '진실한 그대로 항상하다'는 뜻으로
일체법의 본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진여(真如)는 따로 있는 법이 아니라 곧 일체 색(色) 등의 제법(諸法)이
성품[性]을 여의고 상(相)을 여읜 것을 바로 진여의 체라 하거니와,
오직 부처라야 마침내 이를 증득하는 것이므로 일체법이 다 불법(佛法)인 것이다.
진여의 체(體)는 제법(諸法)을 떠나 있지도 않지만 집착하여 있지도 않는지라
 '일체법이 아니기에 이를 일체법이라 한다'고 하셨다.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須菩提!譬如人身長大。」 
수보리언  세존  여래설 인신장대
須菩提言:「世尊!如來說人身長大,
즉위 비대신 시명대신
則為非무중,是名大身。」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사람의 몸이
장대(長大)한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대신(大身;큰 몸)이 아닌 것을 위해
대신이라고 이름하신 것이겠나이다. 」

여래가 증득하신 진여(真如)의 체(體)가 일체처에 두루함이 길고 큰 몸과 같다고 하셨는데,
수보리가 큰 몸이라는 상을 일으키지 않고 '큰 몸 안닌 것을 큰 몸이라 하셨다'고 답하여
부처님의 뜻을 알고 있음을 나타냈다. 
논(論)에 이르되, '대신(大身)에는 두 가지 뜻이 있어서 하나는 일체처에 두루하니 곧 법신이다,
둘은 공덕이 크니 곧 보신(報身)이다.'고 하였는데,
이 두 몸이 모두 제상(諸相)을 여읜 것이기 때문에 몸이 아니다고 한 것이다. 

 수보리  보살 역여시
「須菩提!菩薩亦如是。
약작시언  아당멸도 무량중생
若作是言:『我當滅度無量眾生。』
즉 불명보살 하이고  수보리
則不名菩薩。何以故?須菩提!
실무유법 명위보살 시고불설
實無有法名為菩薩。是故佛說:
일체법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一切法無我、無人、無眾生、無壽者。』
수보리  약보살작시언
須菩提!若菩薩作是言:
 아당장엄불토  시 불명보살
『我當莊嚴佛土。』是不名菩薩。
하이고  여래설 장엄불토자
何以故?如來說莊嚴佛土者,
즉비장엄 시명장엄
即非莊嚴,是名莊嚴。
수보리  약보살통달 무아법자
須菩提!若菩薩通達無我法者,
여래설 명 진시보살
如來說名真是菩薩。
「수보리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만약 『내가 무량한 중생을
멸도했노라』고 말한다면
곧 보살이라 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보살이라 이름할 법이 없기 때문이거니와,
그래서 부처님이 말하기를,
『일체법이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내가 불토(佛土)를 장엄했노라』고 말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여래가 불토를 장엄한다고 말한 것은
곧 장엄이 아닌 것을
장엄이라고 이름한 것이라서
수보리야! 보살이
무아법(無我法)에 통달(通達)해야만
여래가 참된 보살이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진여(眞如)의 체(體)는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분별이 없거늘
무슨 멸도할 중생이 있겠으며, 멸도하겠노라 하는 보살이 있겠는가?
그러니 일체법은 어떠한 상(相)도 없다는 것이다.
보살이 불토를 장엄했노라고 한다면 이미 상(相)을 지닌 것이요,
또 진여의 체에 무슨 장엄할 국토가 있어 장엄할 것인가?
모두가 실체 없는 이름 뿐인 것이라 이런 모양[相]을 짓는 일 이 없도록
무아법(無我法; 상을 떠난 이치)에 통달해야 참된 보살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18. 한 몸으로 동일하게 보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부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肉眼不?」 
 여시 세존  여래유육안
「如是,世尊!如來有肉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천안부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天眼不?」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如是,世尊!如來有天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혜안부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慧眼不?」 
 여시 세존  여래유혜안
「如是,世尊!如來有慧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법안부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法眼不?」 
 여시 세존  여래유법안
「如是,世尊!如來有法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불안부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佛眼不?」 
 여시 세존  여래유불안
「如是,世尊!如來有佛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네냐,
여래에게 육안(肉眼)이 있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으시나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에게 천안(天眼)이 있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으시나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에게 혜안(慧眼)이 있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으시나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에게 법안(法眼)이 있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으시나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에게 불안(佛眼)이 있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으시나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항하중 소유사 불설시사부
恒河中所有沙,佛說是沙不?」 
 여시 세존  여래설시사
「如是,世尊!如來說是沙。」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여 일항하중 소유사 유 여시등항하
如一恒河中所有沙,有如是等恒河,
시제항하 소유사수 불세계
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
여시녕위다부
如是寧為多不?」 
 심다 세존
「甚多,世尊!」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항하에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모래라고 말하더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래라고 하셨나이다. 」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한 항하(恒河) 가운데 있는 모래 만큼의
그와 같은 항하가 있고
그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 수의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이 어찌 많지 않겠느냐? 」

「심히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불고수보리  이소국토중 소유중생
佛告須菩提:「爾所國土中,所有眾生,
약간종심 여래실지
若干種心,如來悉知。
하이고  여래설 제심 개위비심
何以故?如來說諸心,皆為非心,
시명위심
是名為心。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所以者何?須菩提!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現在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셨다.
「그 곳 국토 가운데 있는 중생의
많고 적은 종류의 마음을 여래는 다 아나니,

왜냐하면 여래는 모든 마음이
다 마음이 아니라
이것을 마음이라
이름한 것이다고 말하기 때문이니,
어째서인가? 수보리야!
지나가버린 마음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어서이니라.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을 여래의 오안(五眼)이라 한다.
육안은 육신의 눈이니 봄[見]에 장애(한계)가 있는 눈이요,
천안은 하늘의 눈이니 견(見)에 장애가 없는 눈이며,
혜안은 지혜의 눈이니 공(空)한 이치를 보는 눈이고,
법안은 법의 눈이니 세속의 법을 환히 아는 눈이며,
불안은 부처의 눈이니 온 법계를 두루 비추어 보되 그 체(體)가 법계와 다르지 않아서
온 법계를 수용하지 못함이 없이 원만하고 밝게 항상한 눈을 말한다.
이 다섯가지 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눈[佛眼]을 편의에 따라
나누어 붙인 이름일 뿐이요, 요컨대는 부처님은 항하사 수의 항하에 있는 모래알 같이
무량무수한 중생의 마음을 다 알고 보지 못함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은 마음이 전도하여 마음 아닌 것을 마음이라고 안다는 것인데,
마음이 마음 아닌 이유는 과거는 이미 소멸했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으니,
이 삼세의 마음이 다 허망하게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것이라
그 실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이다. 

 

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19. 법계가 변화하게 된다. 

주변법계(遍周法界)가 온통 칠보(七寶)의 복전(福田)으로 변화할 것이어늘
하물며 어찌 사구게(四句偈) 같은 것이리요? 그래서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이라 하였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약유인만 삼천대천세계 칠보이용보시
若有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是人以是因緣,得福多不?」 
 여시 세존 
「如是,世尊!
차인 이시인연 득복심다
此人以是因緣,得福甚多。」
 수보리  약복덕유실
「須菩提!若福德有實,
여래불설 득복덕다
如來不說得福德多;
이복덕무고 여래설 득복덕다
以福德無故,如來說得福德多。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운
칠보를 사용함으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복을 얻음이 많지 않겠느냐?」 

「그렇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복을 얻음이 심히 많겠나이다.」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 실(實)이 있다면
여래가 얻는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으려니와
복덕이 없기 때문에
여래가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많은 물질로 보시한 인(因)은 많은 과(果)를 낳겠지만 그 인(因)이 유루(有漏)의 인이기에
과(果) 또한 유루의 과이라서 실(實)이 없다.
그러나 사상(四相)을 여읜 보시라면 이미 실(實)이 있고 없음이나 많고 적음을 벗어난 것이라
많다거나 적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말씀이다. 

 

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20. 색(色)을 여의고 상(相)을 여의라.

부처가 된다거나 32상 80종호를 원만히 이루거나 세간법을 여의는 것이 구족(具足)이 아니라
색(色)을 여의고 상(相)을 여의는 것이 옳바른 구족인지라 이색이상분이라 하였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불 가이구족색신견부
佛可以具足色身見不?」 
 불야 세존  여래불응 이구족색신견
「不也,世尊!如來不應以具足色身見。
하이고   여래설 구족색신
何以故?如來說具足色身,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即非具足色身,是名具足色身。」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여래가이 구족제상견부
如來可以具足諸相見不?」 
 불야 세존  여래불응 이구족제상견
「不也,世尊!如來不應以具足諸相見。
하이고  여래설 제상구족
何以故?如來說諸相具足,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即非具足,是名諸相具足。」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부처를 구족색신(具足色身)으로 가히 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색신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리니,  
왜냐하면,
여래가 구족색신이라 말씀하신 것은
곧 구족색신이 아니라
이를 구족색신이라 이름한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를 구족한 제상(諸相)으로 가히 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한 상(相)들로 보아서는 아니 되리니, 
왜냐하면,
여래가 제상이 구족하다 하신 것은
곧 구족함이 아니라
제상이 구족하다고 이름한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색신(色身)이란 사대(四大)와 오진(五塵;색성향미촉)의 색법(色法)으로 이루어진 몸,
즉 육신(肉身)을 말한다. 부처님은 이 육신에 80종호와 32상이 구족하시니 구족색신이라 한다.
이 구족색신은 육안으로 이를 보는 것이 당연하나, 이 육신을 보고서 부처를 보았다 할 수 없다.
이 육신은 응신(應身)이요, 오히려 상(相)을 버려서 얻는 법신(法身)이 여래의 진신(眞身)이므로
지혜의 눈[慧眼]으로 보아야만 부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신이라는 무위(無爲)의 체(體)에서 유위(有爲)의 응신이 일어나므로 응신이 곧 법신이니,
무상(無相)이 상(相)이고 상이 무상이며, 무견(無見)이 견(見)이고 견이 무견인지라
부처는 모양이다 아니다, 본다 보지 못한다는 따위의 상대적 관념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21. 설함도 설한 바도 없다. 

종일 공(空)을 이야기 했으나 한 글자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말한 것이 있다고 하면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므로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이라 하였다. 

 수보리  여물위 여래작시념
「須菩提!汝勿謂如來作是念: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하이고  약인언  여래유소설법
何以故?若人言:『如來有所說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即為謗佛,不能解我所說故。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須菩提!說法者,無法可說,是名說法。」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생각하기를,
『내게 당연히 설할 바 법이 있다』고
하실 것으로 여기지 말거라.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나니,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에게 설할 바 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요,
내가 설한 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거니와,
수보리야! 설법(說法)이란
가히 설할 법이 없는, 이것을 설법이라 하느니라.」

일체법(一切法)이 본래 공적(空寂;텅 비어 적막함)하거늘 무슨 설할 법이 있겠는가?
다만 자비심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방편을 세워 언사(言辭)를 구사하신 것이기에
설할 법이 없는데 방편으로 설한 이것을 설법이라고 이름한다는 말씀이니,
그것을 듣고서 들은 것을 법이라 여긴다면 부처님의 진의를 거스르는 것인지라
여래를 비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여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고 하셨다. 

이시 혜명수보리 백불언
爾時,慧命須菩提白佛言:
 세존  파유중생
「世尊!頗有眾生,
어미래세 문설시법 생신심부
於未來世,聞說是法,生信心不?」
이때 혜명(慧命)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얼마나 많은 중생이 있어
미래세에 설하신 이 법을 듣고
신심을 내겠나이까?」

수보리는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이러한 지혜를 목숨처럼 여기니 혜명(慧命)이라 한다.
누구나 아는 32상 80종호의 부처님 몸을 몸이 아니다 하고, 분명히 법을 설하셨는데
설한 법이 없다고 하시니, 이 말에 의혹을 일으키지 않을 중생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불언  수보리
佛言:「須菩提!
피비중생 비부중생
彼非眾生,非不眾生。
하이고  수보리  중생 중생자
何以故?須菩提!眾生、眾生者,
여래설 비중생 시명중생
如來說非眾生,是名眾生。」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저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이 못될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중생 중생하는 것이
여래는 중생이 아닌
이것을 중생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

중생에는 범부중생(凡夫眾生)이 있고 성체중생(聖體眾生;보살)이 있다.
범부중생은 이런 반야(般若)에 믿음을 내지 못하고 성체중생이라야 이해하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진여의 자리에는 중생과 부처가 있지 않는데,
편의상 어리석은 범부를 중생이라 하고, 지혜밝은 중생을 성체중생이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로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중생이라 못할 것도 아니며, 또 성체일 수도 있어서
이런 난해한 법도 이해하고 믿을 중생이 있다는 말씀이다. 

 

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22. 가히 얻을 법이 없다. 
수보리 백불언  세존
須菩提白佛言:「世尊!
불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為無所得耶?」 
 여시 여시  수보리
「如是,如是!須菩提!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내지무유소법가득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無有少法可得,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건만
소득이 없다는 것이옵니까?」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나
적은 법에 이르기까지도 가히 얻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느니라.」

앞에서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는다 할 법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어떻게 닦아 증득했다는 것인가? 하는 의심 때문에 여쭌 것인데,
부처님은 세 가지로 답을 하셨으니, 이것이 첫 번째 답인 즉
 '얻을 수 있는 법이 없는 것[無法可得]'이 무상정각이다는 것이다.
무상정각이다 얻었다 하는 따위의 모든 상을 떠난 것이라는 말씀이다. 

 

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23.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 무유고하
「復次,須菩提!是法平等,無有高下,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 수보리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거니와,

이것이 두 번째 답으로 무상정각은 바로 진정한 평등(平等)이라는 것이니,
어떠한 상도 존재하지 않기에 절대평등이라는 말씀이다. 

이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以無我、無人、無眾生、無壽者,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修一切善法,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 비선법
須菩提!所言善法者,如來說非善法,
시명선법
是名善法。
무아(無我), 무인(無人), 무중생(無眾生),
무수자(無壽者)로써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는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수보리야! 말한바 선법(善法)이란
여래는 선법이 아닌
이것을 선법이라고 한 것이니라.

이것이 세 번째 답으로 무상정각은 4상(四相)이 공함을 바르게 알고 상을 여읜 청정한 마음으로
선법을 닦아서 얻는다는 것인데, 여래가 말하는 선법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선법이 아니라
무주상보시와 같은 '상을 여읜 법'을 선법이라 하신 것이라는 말씀이다. 

 

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24. 복과 지혜가 비할 데 없다.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
「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中
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 칠보취
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
유인 지용보시
有人持用布施;
약인이차 반야바라밀경 내지 사구게등
若人以此般若波羅蜜經,乃至四句偈等,
수지독송 위타인설
受持讀誦、為他人說,
어전복덕 백분불급일 백천만억분
於前福德百分不及一,百千萬億分,
내지 산수비유 소불능급
乃至算數譬喻所不能及。
「수보리야!
만약 삼천대천세계 가운데에
있는 바 모든 수미산과 같은
이러한 칠보 덩어리를
어떤 사람이 가져다 보시에 썼고,

또 만약 누가 이 반야바라밀경의
사구게(四句偈)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를
수지독송(受持讀誦)하여 타인에게 설했다면

앞의 복덕(福德)이 백 분의 일이나
백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나아가 산수비유(算數譬喻)로도
미칠 수가 없느니라.

무상보리는 선악(善惡)의 상을 여읜 것이라 하시니,
그것을 얻을 인(因)도 없지 않는가? 하고 의심할까 염려하시어 하신 말씀이다.
상(相)도 없고 인(因)도 없는 바로 이것이 보리(菩提)다.
이 경의 사구게 같은 것까지를 남을 위해 설하여

그로 하여금 보리에 나아가게 하는 인(因)이야말로
그 어떤 것으로 보시하는 공덕의 인(因)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하지 않겠는가?
산수로도 그 어떤 비유로도 그 크기를 말할 수 없다.
야보(冶父)선사는 이 말씀에 대해 '천 개의 송곳으로 땅을 찌르는 것이
둔한 가래로 한 번 찍느니만 못하다'고 비유하여 말했다. 

 

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25. 교화(敎化)해도 교화한 바가 없다. 

 '교화(敎化;가르쳐 변화시키다)한다'고 하면 이미 상(相)이라는 덫에 걸린 것이니,
그런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여등물위 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汝等勿謂如來作是念:『我當度眾生。』
수보리  막작시념
須菩提!莫作是念。
하이고  실무유중생 여래도자
何以故?實無有眾生如來度者,
약유중생 여래도자
若有眾生如來度者,
여래즉유아 인 중생 수자
如來則有我、人、眾生、壽者。
수보리  여래설  유아자 즉비유아
須菩提!如來說:『有我者,則非有我,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而凡夫之人以為有我。』
수보리  범부자 여래설즉 비범부시명범부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則非凡夫是名凡夫。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너희는 '여래가 『내가 중생을 제도하노라』고
생각하시리라' 여기지 말지니,
수보리야!
그런 생각을 하지 말거라.
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없기 때문이니,
만일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있다면

여래에게 곧 아(我), 인(人), 중생(眾生),
수자(壽者)가 있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유아(有我)란 곧 유아가 아닌데
범부들이 유아로 여긴다』고 말하거니와,

수보리야! 범부란 여래의 말인 즉
범부가 아니라 이름이 범부니라.

위에서 평등이 무상정각이라 하셨으니 법계(法界)가 평등하거늘
무슨 부처가 따로 있어서 중생을 제도하겠는가?
무상정각의 그 자리에는 부처다 중생이다, 제도한다 안한다 하는

그 어떠한 상(相)도 없어서 제도한다는 상이 있다면 무상정각이라 할 수 없다.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중생이라 하고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라 하니,
부처와 중생이 본래 둘이 아니라 이름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상을 떠난 무상정각의 자리에는 일체가 평등하여
유아(有我)가 무아(無我)요, 범부가 성인인 것이다. 

 

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26. 법신(法身)은 상(相)이 아니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於意云何?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수보리언  여시 여시
須菩提言:「如是,如是!
이삼십이상 관여래
以三十二相觀如來。」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佛言:「須菩提!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
전륜성왕 즉시여래
轉輪聖王則是如來。」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須菩提白佛言:「世尊!如我解佛所說義,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이시 세존 이설게언
爾時,世尊而說偈言: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若以色見我,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是人行邪道,不能見如來。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가히 32상(相)으로 여래를 보겠느냐?」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나이다, 그렇나이다!
32상으로 여래를 보겠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만약 32상으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곧 여래이리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 말씀하시는 뜻을 이해하기로는
32상으로 여래를 보아서는 안 되겠나이다.」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이라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

 여래를 본다는 것은 법신여래(法身如來)를 본다는 의미라
응신(應身)의 상(相)인 32상으로 여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육신의 상호가 좋으니 여래라고 한다면 세상의 왕들이 다 여래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서
여래를 상에 집착하여 보려고 한다면 결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이란 옳바른 법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를 말한다. 

 

마지막 게송은 【금강경 제3 사구게】이다. 

   「만약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이라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

 

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27. 끊어짐도 멸함도 없다(단멸이 아니다).

상(相)을 여의었다는 것이 단멸(斷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
須菩提!莫作是念。如來不以具足相故,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여약작시념
「須菩提!汝若作是念: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설제법단멸상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說諸法斷滅相。』
막작시념 하이고
莫作是念。何以故?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어법불설 단멸상
於法不說斷滅相。 
「수보리야! 네가 만약
『여래가 구족한 상(相)으로써가 아닌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고 생각한다면,

수보리야!
여래가 구족한 상으로써가 아닌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생각을 짓지 말아라.

「수보리야!
네가 만약 생각하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낸다는 것은
모든 법이 끊겨 없어진 상(相)을 말하리라』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다는 것은

법에서 단멸(斷滅)한 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첫 번째 말씀은 32상으로 여래를 보아서는 안된다고 해서
그렇다면 '다른 어떤 연고가 있어 보리를 증득하셨으리라' 하는 상(相)도 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 다음의 말씀은 '이 상(相)도 저 상도 없다면 아무 것도 없는 단멸상(斷滅相)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진여(眞如)의 체(體)는 상(相)을 여읜 것이니
어떠한 상을 지어서는 볼 수 없다는 말이지 아예 단멸한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이다.
수백 겁에 청정행을 닦으시어 유위(有爲)의 32상 80종호를 얻고
무위(無爲)의 무상정각을 이루셨으니, 응신과 법신이 구족하시거늘 어찌 단멸상이리오?  

 

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28. 받지도 탐하지도 않는다
 수보리  약보살
「須菩提!若菩薩
이만항하사등세계 칠보보시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布施;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若復有人知一切法無我,得成於忍,
차보살 승전보살소득공덕
此菩薩勝前菩薩所得功德。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須菩提!以諸菩薩不受福德故。」
수보리백불언  세존  
須菩提白佛言: 「世尊!
운하보살 불수복덕
云何菩薩不受福德?」
 수보리  보살소작복덕 불응탐착
「須菩提!菩薩所作福德,不應貪著,
시고설 불수복덕
是故說不受福德。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사 같은 세계를 가득 채운
칠보(七寶)로써 보시하고,
또 어떤 보살은 일체법이 무아(無我)임을 알아서
인(忍;無生忍)을 성취했다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는 공덕을 이기거니와,

수보리야! 모든 보살은
복덕(福德)을 받고자 하지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나이까?」

「수보리야! 보살은 지은 바 복덕에
탐착(貪著)해서는 안 되기에
그래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복보 바라고 보시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따위의 유루(有漏)의 복을 받는 것보다는
일체법에 상(相)을 여의어서 무루(無漏)의 복인 무생인(無生忍)을 얻는 것이 훨신 낫지만,
보살은 이 또한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왜냐하면 보살이
유루의 과보에도 무루의 과보에도 탐하거나 집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는 말씀이다.
무생인(無生忍)이란 생사의 고통을 견디는 일[忍]이 없다는 것이니,
생사윤회를 벗어남을 말한다.  

 

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29. 위의(威儀)가 적막하고 고요하다.
 수보리  약유인언
「須菩提!若有人言:
 여래 약래약거 약좌약와
『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
시인불해 아소설의 하이고
是人不解我所說義。何以故?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如來者,無所從來,亦無所去,故名如來。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는 오고 가기도 하고
앉고 눕기도 한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니,
왜냐하면,
여래란 좇아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에
그래서 여래라고 하는 것이니라. 

거래좌와(來去坐臥)가 있는 것은 응신(應身)이고, 오고 감이 없는 것이 법신(法身)이다.
응신을 보고 여래라고 하는 것은 여래를 상에 집착하여 본 것이니,
상에 집해서는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한 부처님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여래는 필요에 따라 응신을 나투시어 동작(動作)을 보이시지만
법신의 체(體)는 여여부동(如如不動)하다는 말씀이다.

 

30. 일합상리분(一合相理分) 30. 일합상(一合相)의 이치이다.

법신(法身)과 화신(化身;應身)은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
일합상(一合相;하나로 합한 모양)이다.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以三千大千世界碎為微塵,
어의운하  시미진중 녕위다부
於意云何?是微塵眾寧為多不?」
 심다 세존
「甚多,世尊!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미진(微塵)으로 만들면
어찌 생각하느냐,
그 미진이 많지 않겠느냐?」

「심히 많겠나이다.」 

세계는 무수한 미진으로 합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법신은 세계로 비유하고 화신은 미진으로 비유하시어
법신(法身)과 화신(化身)이 하나[一]인가 다른 것[異]인가를 설명하시려 함이다.
세계는 하나이고 미진은 다른 여럿들이며,
법신은 오고 감이 없으니 하나이고, 화신은 때에 응하여 여럿으로 나투시니 다른 여럿[異]이다.
세계를 부수면 하나라는 성품이 사라지고 미진이 뭉쳐지면 다르다는 성품이 사라지니,
세계와 미진 사이에 하나다 다르다는 성품이 없듯이,
이렇듯 법신에서 응신이 일어나니 응신에 다른 성품이 있지 않아서
법신과 응신 사이에 하나다 다르다는 성품이 없다. 
여래의 체(體;법신)와 작용[用;화신]은 상호 원융하니, 하나이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며,
또한 하나가 아니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여 자재무애(自在無礙)할 따름이다. 

*일이(一異); 저것과 이것이 같으면 일(一), 저것과 이것이 다르면 이(異)라 하는데,
모두가 한쪽에 치우친 사상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도(中道)는 불생(不生)이 불멸(不滅)이요,
불상(不常)이 또한 부단(不斷)이며, 불래(不來)가 불거(不去), 불일(不一)이 불이(不異)이다.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何以故?若是微塵眾實有者,
불즉불설 시미진중
佛則不說是微塵眾。
소이자하  불설미진중
所以者何?佛說微塵眾,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則非微塵眾,是名微塵眾。
왜냐하면, 만약 이 미진들이
실로 있는 것이었다면
부처님이 이를 미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터인데,
어째서인가 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미진들이란
곧 미진들이 아니라
그 이름이 미진들이기 때문이옵니다. 

이는 미진(微塵)으로 응신(應身)에 다른 성품이 없음을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세계를 부수어 미진이 만들어진 것을 알면 미진 전부가 세계이고
미진의 실제 성품이란 없는 것이라, 그래서 곧 미진이 아니다고 한 것이며,
성품을 떠나서 미진을 설명하기 위해 이를 미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는 말씀이다. 

세존  여래소설 삼천대천세계
世尊!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즉비세계 시명세계
則非世界,是名世界。
하이고  약세계실유자 즉시 일합상
何以故?若世界實有者,則是一合相。
여래설일합상 즉 비일합상  시명일합상
如來說一合相, 則非一合相, 是名一合相。」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須菩提!一合相者,則是不可說,
단범부지인 탐착기사
但凡夫之人貪著其事。
세존이시여!
여래가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겠나이다.
왜냐하면, 만일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일합상(一合相)일 터이지만
여래가 말씀하신 일합상은 일합상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일합상이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일합상이란
곧 말로 할 수 없는 것이건만
다만 범부인 사람이 그 일을 탐착하느니라.

이는 세계와 미진의 예를 들어 법신이다 응신이다 할 성품이 없음을 밝히신 것이다.
만약 세계가 부수어지면 미진이 되고, 미진이 합하면 세계가 된다는 것을 알면
진여의 체(體)에서 어떤 인연을 따라 세계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미진이 되기도 하는 것일 뿐, 세계와 미진의 실제 성품이 없으니,
그래서 세계도 아니고 미진도 아닌 것이다.
이렇듯 성품을 여읜 실상(實相)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지만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편의상 세계다 미진이다 하고 이름 붙인 것이며,
또 미진이 화합하여 세계가 되는 것이 하나로 합해진 모양[一合相]이 아니다는 것도
그 미진이다 세계다 할 성품이 없으니, 일합상이다 할 성품도 없기 때문이요,
다만 그것을 일합상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 일합상의 체(體)는 생각이나 말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범부들은 그것을 어떤 상을 지어 알려고 집착하는데,
응신이 법신이요, 법신이 응신을 여읜 것이 아니거늘 무슨 법신이다 응신이다 할 것이 있겠는가. 

 

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31. 지견(知見)을 내지 말라. 

아견(我見)도 법견(法見)도 내지 말라.  

 수보리  약인언
「須菩提!若人言:
 불설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佛說我見、人見、眾生見、壽者見。』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해아 소설의부
須菩提!於意云何?是人解我所說義不?」 
 세존  시인불해 여래소설의
「世尊!是人不解如來所說義。
하이고  세존설
何以故?世尊說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我見、人見、眾生見、壽者見,
즉비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即非我見、人見、眾生見、壽者見,
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是名我見、人見、眾生見、壽者見。」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내 말의 뜻을 이해한 것이냐?」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가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은

곧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 아니라

그 이름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기 때문이옵니다.」

 이 단락은 아견(我見)의 집착을 여의라는 것이다.
앞에서 아견(我見)을 위시한 4견을 말씀하셨으니, 미혹한 중생이 상(相)을 지어
4견을 헤아리려 한다면 이는 부처님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저러한 중생의 소견을 아견이라 하고, 이러저러한 소견을 인견이라 이름 붙여 부르지만,
이러한 소견은 허망한 나로부터 문득 일어났다가 다시 소멸해버리니 상(相)을 여읜 것이다.
아견에는 진아(真我)의 견(見)과 망아(妄我)의 견이 있거니와,
망아견(妄我見)이란 허망하게 나(我)를 분별하는 중생의 견(眾生見)이요,
진아견(真我見)은 나(我)에의 집착을 멀리 여읜 여래의 견(如來見)을 말하니,
아견을 내지 말아야 부처를 볼 수 있다.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여시신해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불생법상
不生法相。
수보리  소언 법상자
須菩提!所言法相者,
여래설즉 비법상 시명법상
如來說即非法相,是名法相。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일체법을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신해(信解)하되
법상(法相)을 내서는 아니 되거니와,

수보리야! 말한 바 법상이란

여래의 말인 즉 법상이 아니라
그 이름이 법상이니라.

 다음으로는 법견(法見)의 집착을 여의라는 것이다.
여래가 법을 설하심은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고 수행을 하여
이치에 계합하게 하시고자 함이다.
여래의 말씀을 듣고서 마땅히 그렇게 알고 보아서 믿되 법상(法相)을 내서는 안 된다 하셨는데,
법상을 내지 말라 함은 법에 취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법이란 본래 상(相)을 여의었는지라 여래가 상이 아닌 그 성품을 지칭하여 말씀하신 것이기에
 '법상 아닌 것을 법상이라고 이름 붙여 부른 것이다'고 하신 것이다.
경의 첫머리에서 수보리가 '보리심을 낸 이는 마땅히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하고 여쭌 것에 대한 결론적으로 답을 하시어
 '일체법에 이와 같이 지견(知見)하고 신해(信解)하되, 법상을 내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일체법에서 상이 상이 아니라 이름이 상임을 알고
모름지기 실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머물되,
그렇다 해서 그러한 법에 집착하지도 않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32. 응화비진분(應化非真分) 32. 응신(應身)이나 화물(化物)은 진신(真身)이 아니다.

「모든 상(相)은 진실이 아니다」. 그러니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왜 그렇게 머물고 항복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밝히신 금강경의 결론이다. 

 수보리  약유인
「須菩提!若有人
이만무량아승지세계 칠보지용보시
以滿無量阿僧祇世界七寶持用布施,
약유선남자 선여인 발보리심자
若有善男子、善女人,發菩薩心者,
지어차경 내지 사구게등
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受持讀誦,為人演說,其福勝彼。
운하위인연설
云何為人演說?
불취어상 여여부동
不取於相,如如不動。
「수보리야!
만약 어떤사람이
무량아승지세계(無量阿僧祇世界)를 가득 채운
칠보를 가져다 보시에 쓰고,
또 어떤 선남자 선여인은
보리심을 내서
이 경을 지니고
사구게(四句偈)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수지독송(受持讀誦)하여 사람들에게 연설한다면
그 복이 저 복을 이기거니와,
어떤 것을 사람들에게 연설할 것인가?

상(相)을 취하지 않는
여여부동(如如不動)함이니라.

 앞에서 이 경의 사구게 만이라도 남을 위에 설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보리에 나아가게 하는 복이 그 어떤 재물을 가져다 보시하는 공덕보다
훨신 수승하다고 하셨는데, 상(相)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法)에도 집착하지 말라시면
도대체 무엇을 연설하라는 것인가?
바로 '듣는 이로 하여금 모든 법을 상(相)으로 알고 보지 말고 진체(眞體)를 보되,
그러한 법에도 집착하지 말도록 연설하라'는 것이다.
인연을 따라 나투시는 화신을 여래로 보지 말고 여여부동한 여래의 진신(법신)을 보아야
부처를 보는 것이다는 말씀이다. 

*여여부동(如如不動); 법 성품[法性]의 이치[理]와 실체[體]가

둘이 아니게 평등하니 '같다[如]' 하고, 피차의 법이 다 같으니 또 '같다[如]'고 하여

여여(如如)라 한다.
바른 지혜가 법 성품의 이치와 실체에 계합하여 상주불변역하는 것을

여여부동하다고 하니, 곧 여래의 법신상(法身相)을 그려낸 표현이다.   

하이고
何以故?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一切有為法, 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어째서인가?

  「일체의 유위법(有為法)은
   꿈이나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 같고 번개와도 같은 것이다는
   이와 같은 관(觀)을 지어야 하느니라」

 이 게송은 금강경 제4의 사구게이다.
 '일체 유위법(一切有為法)'이란 일체 세간에 인연따라 생겼다 멸하는 법(法)을 말하니,
항상되게 머물지 못하고 변해가는 것이라 거짓이요 실답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몽(夢), 환(幻), 포(泡), 영(影), 로(露), 전(電)의 여섯가지에 비유하셨다.
 '이와 같은 관(觀)을 지어야 한다' 하셨는데,
관(觀)은 '볼 관(觀)'이라 '볼 견(見)'과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확연히 다르다.
견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고, 관은 반야의 오묘한 지혜[般若妙智]로 보는 것을 말하니,
이 오묘한 지혜로 일체 유위법이 몽(夢), 환(幻) 등과 같다고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묘지정관(妙智正觀;오묘한 지혜로 바르게 보라)」이야 말로 이 금강경의 핵심 요지이다.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 비구니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及諸比丘, 比丘尼,
우바새 우바이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優婆塞, 優婆夷, 一切世間天, 人, 阿修羅,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聞佛所說,皆大歡喜,信受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 설하기를 마치시자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天), 인(人), 아수라가
부처님이 설하신 바를 듣고
다 크게 환희하며 신수봉행(信受奉行)하였다.

 경의 마지막 이 부분을 유통분(流通分)이라 한다.
반야(般若)를 유통시켜 후세의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자 함이니,
이 경을 들은 복덕을 널리 회향하여 이웃들에게 베풀어야 하리라.
*신수봉행(信受奉行)이란 믿고 받아들여서 받들어 행했다는 뜻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