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一名中印度那蘭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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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 당(唐) 천축사문 반랄밀제(般剌蜜帝) 역(譯) |
卷第二 | 제 2권 |
爾時阿難及諸大眾。 聞佛示誨身心泰然。 念無始來失卻本心。 妄認緣塵分別影事。 今日開悟如失乳兒 忽遇慈母。合掌禮佛。 願聞如來顯出身心真妄虛實 現前生滅與不生滅二發明性。 |
그 때에 아난과 여러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크게 열려서 생각해보니 무시이래로 본심은 잃어버리고 연진(緣塵*)을 영사(影事*)인 줄로 분별하여 잘못 인식하였다가 금일에야 깨닫게 된 것이 마치 젖을 잃었던 아이가 홀연히 자애로운 어머니를 만난 듯하여 합장예불하고서 몸과 마음의 진망허실(眞妄虛實)을 드러내고 현전(現前)의 생멸과 불생멸의 두 가지로 밝혀지는 성품에 대해 여래로부터 듣기를 원하였다. |
*緣塵; 色聲 등의 六塵에의 攀緣. *影事; 緣塵하는 마음을 깨달아 아는 일. | |
波斯匿王起立白佛。 我昔未承諸佛誨敕。 見迦旃延毘羅胝子。 咸言此身死後斷滅名為涅槃。 我雖值佛今猶狐疑。 云何發揮證知此心不生滅地。 今此大眾諸有漏者咸皆願聞。 |
이 때에 파사익(波斯匿*)왕이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난 날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지 못했을 때 가전연(迦旃延*)과 비라지자(毘羅胝子*)를 만났사온데 그들은 '이 몸이 죽은 뒤에 단멸(斷滅)한 것이 열반이다.'고 하더이다.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혹이 없지 않사온데, 어떻게 발휘해야 이 마음이 생멸하지 않는 경지를 증지(證知)하게 되리이까? 지금 이 대중의 모든 누(漏)있는 이들이 다 함께 듣기를 원하나이다." |
*波斯匿(Prasenajit); 舍衛國의 王. 玄奘은 勝軍이라 譯하고 義淨은 勝光으로 譯했다. 毘奈耶雜事에 「사위국왕 범수(梵授)가 "내 아들이 태어날 때 광명이 수승하여 세간을 두루 비추었으니, 내 마땅히 아들의 이름을 승광(勝光)이라 하겠노라." 하였다.」 *迦旃延; 이 가전연은 논의(論議)제일 마하 가전연(摩訶 迦旃延子)이 아니라, 가라구타 가전연(迦羅鳩馱 迦旃延)이다. 六師外道의 하나로 제법(諸法)이 유상(有相)이기도 하고 무상(無相)이기도 하여 물상에 응하여 견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늘 '있는가?' 하고 물으면 '없다' 하고, '없는가?' 물으면 '있다'고 답했다 한다. *毘羅胝子; 산사야 비라지자(刪闍夜 毘羅胝子,刪逝移 毘剌知子,Sañjaya vairatīputra). 六師外道의 하나. 그는 '도를 구할 것 없다. 생사의 겁수를 지내다보면 고제(苦際)가 저절로 다하는 것이 마치 높은 산 위에서 실뭉치를 굴리면 마침내 다 닳아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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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大王 汝身現存今復問汝。 汝此肉身為同金剛常住不朽。 為復變壞。 |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몸이 있으니 지금 다시 물으리라. 그대의 육신이 금강과 같이 되어 항상 머물러 썩지 않을 것이냐, 아니면 변하여 없어지게 되느냐?" |
世尊我今此身終從變滅。 | "세존이시여! 저의 이 몸은 결국 변하여 없어질 것이옵니다." |
佛言大王 汝未曾滅云何知滅。 |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일찍이 멸한 적이 없는데 어찌 멸한다는 것을 아는가?" |
世尊我此無常變壞之身。 雖未曾滅我觀現前。 念念遷謝新新不住。 如火成灰漸漸銷殞。殞亡不息。 決知此身當從滅盡。 |
"세존이시여! 저의 이 무상하게 변괴하는 몸이 비록 아직 멸한 적은 없으나 제가 보건대 지금도 눈앞에서 순간순간 변해 스러져가고 새록새록 머물지 못함이 마치 불이 재를 만들듯이 점점 쇠하여 그 늙어감이 쉬지 않는지라 결정코 이 몸이 멸하여 없어질 줄을 아나이다." |
佛言如是大王。 汝今生齡已從衰老。 顏貌何如童子之時。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대왕아, 그대는 지금 나이가 이미 노쇠하였으니 얼굴이 어찌 동자시절과 같겠는가?" |
世尊我昔孩孺膚腠潤澤。 年至長成血氣充滿。 而今頹齡迫於衰耄。 形色枯悴精神昏昧。 髮白面皺逮將不久。 如何見比充盛之時。 |
"세존이시여! 제가 어렸을 적에는 피부가 윤택하고 점점 성장하여서는 혈기가 충만하더니 지금은 나이가 들어 늙고 쇠약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은 백발이 되고 얼굴은 주름져 앞날이 멀지 않았사온데 어떻게 젊었을 때와 비교하겠나이까?" |
佛言大王 汝之形容應不頓朽。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이 갑자기 늙지는 아니하였으리라." |
王言世尊 變化密移我誠不覺。 寒暑遷流漸至於此。 何以故我年二十雖號年少。 顏貌已老初十年時。 三十之年又衰二十。 于今六十又過于二。 觀五十時宛然強壯。 世尊我見密移雖此殂落。 其間流易且限十年。 若復令我微細思惟。 其變寧唯一紀二紀 實為年變。 豈唯年變亦兼月化。 何直月化兼又日遷。 沈思諦觀剎那剎那。 念念之間不得停住。 故知我身終從變滅。 |
대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변화의 세세한 것들을 저는 알지 못하오나 세월이 흘러 점차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왜냐하시오면, 제 나이 이십에 비록 젊었다고 하나 얼굴이 열 살 적보다는 늙었고 삼십세 때에는 이십세 적보다 쇠하였으며 지금은 육십에서 또 둘이 넘었으니 오십세 적을 본다면 확실히 강건했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보기에 조금씩 변한 것이 비록 여기에 이르렀사오나 그동안 변화를 십년으로 한정한 것이옵고, 만약 지금 다시 미세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 변천하는 것이 어찌 십년 이십년 뿐이겠나이까? 실로 해마다 변했을 것이며, 어찌 해마다만 변했겠나이까? 또한 겸하여 달마다 변했을 것이며 어찌 달마다만 변했겠나이까? 겸하여 날마다 변했을 것이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찰나찰나 순간순간도 멈추지 아니하였을 것이기에 이 몸이 마침내 변하여 멸할 것임을 아나이다." |
佛言大王 汝見變化遷改不停。 悟知汝滅亦於滅時。 知汝身中有不滅耶。 |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러 있지 아니함을 보고 그대가 멸할 것을 깨달아 안다면 또한 멸할 때에 그대의 몸안에 멸하지 않는 것이 있는 줄은 아는가?" |
波斯匿王合掌白佛 我實不知。 |
파사익왕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실로 알지 못하나이다." |
佛言 我今示汝不生滅性。 大王汝年幾時見恒河水。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생멸하지 않는 성품을 보여 주리라. 대왕이여, 그대는 몇살 때에 항하수를 보았는가?" |
王言我生三歲慈母攜我。 謁耆婆天經過此流。 爾時即知是恒河水。 |
대왕이 아뢰었다. "제가 태어나 세살 적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耆婆天*)을 뵙고자 이 항하를 건너다가 그 때에 바로 이 항하수를 알게 되었나이다." |
*耆婆天; 命天. 長阿含經에 釋提桓因의 좌우에 늘 十大天子가 있다 하였으니, 그 중 하나로 명을 길게하는 天子이다. | |
佛言大王如汝所說。 二十之時衰於十歲。 乃至六十日月歲時念念遷變。 則汝三歲見此河時。 至年十三其水云何。 |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처럼 20세 때엔 10세 때보다 노쇠하고 60세에 이를 때까지 날로 달로 순간마다 변천하였거니와 곧 그대가 세 살 적에 이 강을 보았을 때와 나이가 열 셋에 이르러서는 그 강은 어떠하던가?" |
王言如三歲時宛然無異。 乃至于今年六十二亦無有異。 |
대왕이 아뢰었다. "세 살 때와 같이 완연하여 다름이 없었사옵고, 지금 예순두 살에 이르기까지도 다름이 없나이다." |
佛言 汝今自傷髮白面皺。 其面必定皺於童年。 則汝今時觀此恒河。 與昔童時觀河之見有童耄不。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스스로 머리가 하얗고 얼굴이 주름진 것을 한탄하니, 그 얼굴이 어렸을 적 보다 틀림없이 주름졌으려니와 지금에 보는 이 항하강과 옛날 어렸을 때에 본 항하강의 견(見)에 젊고 늙음이 있는가?" |
王言不也世尊。 | 대왕이 말했다. "그렇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
佛言 大王汝面雖皺 而此見精性未曾皺。 皺者為變 不皺非變。 變者受滅 彼不變者元無生滅。 云何於中受汝生死。 而猶引彼末伽梨等。 都言此身死後全滅。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은 비록 주름졌을지언정 이 견정(見精*)의 성품[性]은 주름져 본 적이 없느니라. 주름진다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주름지지 않는 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변하는 것은 멸할 것이지만 저 변치 않는 것은 본시 생멸이 없거늘 그 가운데서 어찌 그대가 생사를 받을 것이기에 저 말가리(末伽梨*) 등이 말에 이끌려 대충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온전히 멸한다고 말하는가?" |
*見精; 六精 즉 眼耳鼻舌身意 六根에 의지한 바 識精(精明) 중 眼根의 分을 말한다. 이는 다만 心法이니, 第八識의 見分이요 참된 能見이다. 第二月로 비유한다. *末伽梨; 末伽梨俱舍梨(Maskārī Gośāliputra)의 약칭. '구사리의 아들 말가리'라 불리는 外道六師 중의 하나. 그는 중생의 苦樂이 因緣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히 있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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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聞是言信知身後捨生趣生。 與諸大眾踊躍歡喜得未曾有。 |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몸이 죽은 후에도 다시 태어남을 믿어 알고 여러 대중들과 더불어 미증유를 얻으매 환희가 용솟음쳐 올랐다. |
阿難即從座起禮佛。 合掌長跪白佛世尊。 若此見聞必不生滅。 云何世尊名我等輩。 遺失真性顛倒行事。 願興慈悲洗我塵垢。 |
아난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며 합장하고 꿇어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고 들음이 결코 생멸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저희들에게 진성(真性*)을 잃어버리고 전도(顚倒*)하여 일을 행한다 하시나이까? 원하옵건데 자비를 일으키시어 저의 허물을 씻어주소서." |
*真性; 真은 허망되지 않은 것이요, 性은 불변하는 것이니, 깨달은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었던 마음의 실체[心體]를 말한다. *顛倒; 偶人이 迷悟하여 實相을 虛相이라 하고, 虛相을 實相이라 하여 實虛를 꺼꾸로 認識하는 것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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即時如來垂金色臂。 輪手下指示阿難言。 汝今見我母陀羅手為正為倒。 |
곧 그때에 여래께서 황금빛 팔을 내리시어 손으로 아래를 가리켜 보이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나의 모다라(母陀羅*) 손을 보고 있는데 바로냐 꺼꾸로냐?" |
*母陀羅(mudrā); 契印, 密印. 수행인의 성취를 증명하는 뜻에서 손위에 密印을 맺어 주시는데 그 손을 모다라수라 한다. | |
阿難言世間眾生以此為倒。 而我不知誰正誰倒。 |
아난이 말했다. "세간의 중생들은 이를 꺼꾸로다 하겠거니와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꺼꾸로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
佛告阿難 若世間人以此為倒。 即世間人將何為正。 |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세간 사람이 이를 꺼꾸로다 한다면 그들은 대체 어떤 것을 바로다 하겠느냐?" |
阿難言如來豎臂兜羅綿手。 上指於空則名為正。 |
아난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팔을 세우시어 두라(兜羅*) 솜[綿]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곧 바로다 하겠나이다." |
*兜羅(Tūla); 楊華. 野蠶繭(들 누에고치). 나무 이름. 이 나무에서 솜이 만들어진다. | |
佛即豎臂告阿難言。 若此顛倒首尾相換。 諸世間人一倍瞻視。 則知汝身與諸如來。 清淨法身比類發明。 如來之身名正遍知。 汝等之身號性顛倒。 隨汝諦觀汝身佛身。 稱顛倒者名字何處號為顛倒。 |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이렇게 거꾸로 하면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간 사람이 일담시(一瞻視*)하고 배담시(倍瞻視*)하는 것이니라. 곧 네 몸과 여래의 청정법신을 비교하여 밝혀본다면 여래의 몸은 정변지(定徧知)라 할 것이요 너희의 몸은 성전도(性顚倒)라 할 것이니라. 네가 볼 수 있는대로 네 몸과 부처님 몸을 살펴보아라. 전도라 하는 것은 어디를 이름하여 전도라 하겠느냐?" |
*一瞻視, 倍瞻視; 一은 同이니 팔을 올린 것이 바르다고 다 똑같이 보는 것이 一瞻視요, 倍는 多이니, 바르다 하기도 하고 꺼꾸로다 하기도 하여 서로 다르게 보는 것이 倍瞻視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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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時阿難與諸大眾。 瞪瞢瞻佛目精不瞬。 不知身心顛倒所在。 |
그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눈을 부릅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이지 아니하였으나 몸과 마음이 전도된 곳을 알지 못하였는지라 |
佛興慈悲哀愍阿難及諸大眾。 發海潮音遍告同會。 諸善男子我常說言。 色心諸緣及心所使諸所緣法 唯心所現。 汝身汝心 皆是妙明真精妙心中所現物。 云何汝等遺失本妙圓妙明心 寶明妙性。 認悟中迷晦昧為空。 空晦暗中結暗為色。 色雜妄想想相為身。 聚緣內搖趣外奔逸。 昏擾擾相以為心性。 一迷為心。 決定惑為色身之內。 不知色身外泊山河虛空大地。 咸是妙明真心中物。 譬如澄清百千大海。 棄之唯認一浮漚體。 目為全潮窮盡瀛渤。 汝等即是迷中倍人。 如我垂手等無差別。 如來說為可憐愍者。 |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아난과 대중들을 애민히 여기사 해조음(海潮音*)으로 널리 회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색(色)과 심(心), 모든 연(諸緣)과 심(心)의 소사(所使*) 및 소연(所緣*)의 법이 오직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 않았더냐? 네 몸과 너의 마음이 모두 바로 오묘히 밝고 참으로 정순한 묘심에서 나타나는 것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본래 묘원(妙圓*)하고 묘명(妙明*)한 마음의 보배로이 맑은 오묘한 성품을 잃어 버리고 오(悟) 안의 미(迷)를 인정하여 회매(晦昧)를 공(空)으로 여기느냐? 공이 회매한 가운데서 암(暗)이 맺혀 색이 되고, 색이 망상(妄想)과 섞이면 상(相)을 망상으로 몸이라 여기며, 연(緣)이 쌓이고 안이 요란하여 밖으로 뛰쳐 나가거든 어지럽고 소란한 모양[相]을 심성(心性)이라 여기니, 하나의 미혹을 마음으로 여기고 틀림없는 혹(惑)을 색신의 내부로 여기며, 색신과 밖에 있는 산하와 허공과 대지가 모두 이 묘명한 진심 중의 사물인 줄을 알지 못하니, 마치 징청(澄淸)한 백천의 대해(大海)는 버려두고, 오로지 하나의 떳다 가라앉는 것만을 인식하여 순전히 조류[潮]를 바다 전체로 보는 것과 같아서 너희가 곧 이 미혹한 중의 갑절인 사람들[倍人]인 것이요, 내가 손을 내린 것과 다름이 없기에 여래가 가히 가련한 자라고 하는 것이니라." |
*海潮音; 海潮는 無念이되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에서 無緣의 慈悲로 根機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설하시는 부처님의 음성에 비유한 표현이다. *所使; 시키는 바. *所緣; 반연하는 바. *妙圓; 미묘하고 원만하다는 뜻으로 진실하여 절대적인 상(相)을 말한다. *妙明; 진실미묘하게 맑다는 뜻으로 무루(無漏)의 참된 지혜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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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承佛悲救深誨。 垂泣叉手而白佛言。 我雖承佛如是妙音。 悟妙明心元所圓滿常住心地。 而我悟佛現說法音。 現以緣心允所瞻仰。 徒獲此心未敢認為本元心地。 願佛哀愍宣示圓音。 拔我疑根歸無上道。 |
아난이 부처님의 자비로 구원하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 부처님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러한 묘음을 듣잡고 묘명한 마음이 원래 원만하고 상주하는 심지(心地*)임을 깨닫고, 제가 부처님 말씀을 드러내는 법음(法音)도 깨달았으니, 마땅히 첨앙(瞻仰)해야 할 바에 연(緣)한 마음을 표현해야 하겠사오나, 다만 이 마음을 얻은 것만으로 본원(本元)의 심지라고 인정키는 어렵겠사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고 원음을 베푸시어 저희들의 의심의 뿌리를 뽑아 최상의 도(道)에 돌어가게 하여 주소서!” |
*心地; 마음은 만법(萬法)의 근본이라 능히 일체의 모든 법이 생겨나니 심지(心地)라 한다. | |
佛告阿難 汝等尚以緣心聽法。 此法亦緣非得法性。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當應看月。 若復觀指以為月體。 此人豈唯亡失月輪 亦亡其指。 何以故。以所標指為明月故。 豈唯亡指。 亦復不識明之與暗。 何以故。即以指體為月明性。 明暗二性無所了故。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오로지 반연(攀緣)하는 마음으로 법을 들으니 이 법(法) 또한 연(緣)이 되는지라 법의 성품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보이면 그 사람은 손가락을 통해 마땅히 달을 보아야 할 터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 자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어찌 달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또한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니라. 그것은 가리킨 손가락을 밝은 달로 여겼기 때문이니, 어찌 손가락만 잃어버린 것이랴. 또한 밝은지 어두운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손가락 자체로 달의 밝은 성품을 삼았기에 밝고 어두움의 두 성품을 알지 못하는 때문이니라. |
汝亦如是 若以分別我說法音為汝心者。 此心自應離分別音有分別性。 譬如有客寄宿旅亭。 暫止便去終不常住。 而掌亭人都無所去 名為亭主。 |
너희도 그와 같아서 만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너의 마음인 줄 안다면 이 마음 스스로가 음성을 분별하는 것이 아닌 성품을 분별하는 것이 있어야 하리니,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관에 기숙하여 잠시 머물되 곧 떠나서 결코 상주(常住)하지 못하지만 여관을 관장하는 사람은 절대 떠나는 일이 없으니 주인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
此亦如是若真。 汝心則無所去。 云何離聲無分別性。 斯則豈唯聲分別心。 分別我容離諸色相無分別性。 |
마음도 이와 같아서 만약 참다운 것이라면 너의 마음인 즉 가는 바가 없을 터인데 어찌 소리가 없다 해서 분별하는 성품까지 없을 것이며, 이것이 어찌 다만 음성을 분별하는 마음뿐이겠느냐? 여래의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색상을 여의어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을 것이니라. |
如是乃至分別都無非色非空。 拘舍離等昧為冥諦 離諸法緣無分別性。 則汝心性各有所還 云何為主。 |
이와 같이 분별이 전혀 없음에 이르러서는 색(色)도 공(空)도 아니니, 저 구사리(拘舍離*) 등이 아득하다 하여 이를 명제(冥諦*)라 하느니라. 모든 법진(法塵)의 연(緣)을 떠나 분별하는 성품도 없다면 곧 네 마음의 성품이 저마다 돌아갈 데가 있을 터인데 이를 어찌 주인이라 하겠느냐?” |
*拘舍離(Gosari); 外道의 第三 流派. *冥諦; 고대 인도의 육파철학(六派哲學) 중 수론철학파(數論哲學派)가 세운 25제(諦)의 하나. 만물(萬物)의 본원(本源)이 아득히 멀고[冥漠] 진리라 할 것이 없다[無諦] 하여 명제(冥諦)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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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言若我心性各有所還。 則如來說妙明元心云何無還。 惟垂哀愍為我宣說。 |
아난이 말했다. “만약 저의 심성(心性)이 제각기 돌아갈 데가 있다면 여래께서 설하신 묘명한 원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바가 없나이까? 부디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
佛告阿難 且汝見我見精明元。 此見雖非妙精明心。 如第二月非是月影。 汝應諦聽 今當示汝無所還地。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보는 그 견정(見精)의 밝은 근원은 그 견이 비록 미묘하고 정명(精明)한 마음은 아니더라도 마치 제이월(第二月*)과 같은 것이고 월영(月影*)이 아니니라. 너는 자세히 듣거라. 마땅히 너에게 돌아갈 바가 없는 자리를 보여 주리라. |
*第二月; 見精. 눈병 난 사람이 달을 볼 때 실물 곁에 따로 보이는 달. 空中花와 같은 뜻으로 無明에 가리어 實相을 분명히 보지 못함에 비유하는 말이니, 무명만 걷히면 眞心을 보게 된다. *月影; 水中月影. 眼根으로 認識하여진 名相의 境界. 그 인식하는 주체가 안식(眼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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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此大講堂洞開東方。 日輪昇天則有明耀。 中夜黑月雲霧晦暝則復昏暗。 戶牖之隙則復見通。 牆宇之間則復觀擁。 分別之處則復見緣。 頑虛之中遍是空性。 鬱[土*孛]之象則紆昏塵。 澄霽斂氛又觀清淨。 |
아난아! 이 대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트여서 둥근 해가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남이 있고, 그믐날 한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저 자욱하면 더욱 어두울 것이며, 문에 틈이 있으면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과 집 사이에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서는 연(緣)을 보고, 완허(頑虛) 가운데는 온통 이것이 공(空)한 성품일 것이요,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어지러이 얽힌 것이고, 맑게 개어 안개가 걷히면 다시 맑음을 보게 되느니라. |
*世間의 모든 변화하는 모양[變化相]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신 것이다. | |
阿難汝咸看此諸變化相。 吾今各還本所因處。 云何本因。 阿難此諸變化明還日輪。 何以故。無日不明明因屬日。 是故還日暗還黑月。 通還戶牖擁還牆宇。 緣還分別頑虛還空。 鬱[土*孛]還塵清明還霽。 則諸世間一切所有不出斯類。 汝見八種見精明性 當欲誰還。 何以故。若還於明。 則不明時無復見暗。 雖明暗等種種差別見無差別。 諸可還者自然非汝。 不汝還者非汝而誰。 |
아난아! 네가 이 모든 변화하는 모양을 살폈거니와 내가 이제 각각 본래 기인(起因)한 곳으로 돌려 보내리라. 무엇이 본래의 인(因)인가? 아난아! 이러한 모든 변화에서 밝음은 해로 돌려 보내는데, 어째서인가 하면 해가 없이는 밝지 못하니 밝음의 인은 해에 속한 것이라 그래서 해로 돌려 보내는 것이요, 어두움은 그믐달로 돌려 보내고, 통함은 창문으로 돌려 보내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려 보내고, 반연은 분별로 돌려 보내고, 완허(頑虛*)는 공(空)으로 돌려 보내고, 흙비는 티끌로 돌려 보내고, 청명은 하늘이 개임으로 돌려 보낸다면, 일체세간에 있는 것들이 이 여덟 가지를 벗어나지 못하려니와, 네가 여덟 가지로 보는 견(見)의 정명한 성품은 어디로 돌려 보내겠느냐? 어째서인가 하면, 만약 밝은 곳으로 돌려 보낸다면 밝지 아니할 때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니, 비록 명암 등이 여러가지로 차별하다지만 그 보는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이라 돌려 보낼 수 있는 것은 자연히 네가 아니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못하는 것은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
*八還; 明還日輪, 暗還黑月, 通還戶牖, 壅還牆宇, 緣還分別, 頑虛還空, 鬱[土*孛]還塵, 清明還霽을 八還이라 한다. 世間의 모든 변화한 모양을 각각 그 본래 起因한 곳으로 돌려 보낸다면 돌려 보내지지 않고 남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당초 변화한 모양을 본 견(見)의 성품은 보내지지 않고 그대로일 것이라 그 성품이 너의 眞性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頑虛; 頑은 無知의 뜻이니 頑虛는 無心한 허공이라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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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知汝心本妙明淨。 汝自迷悶喪本受輪。 於生死中常被漂溺。 是故如來名可憐愍。 |
곧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맑고 깨끗하건만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본래의 것을 잃고 윤회를 받아 생사 속에서 항상 허우적거림을 당하는지라 그래서 여래가 가련하다 하신 줄을 알리라.” |
阿難言我雖識此見性無還。 云何得知是我真性。 |
아난이 말했다. “제가 견(見)의 성품은 돌려보낼 수 없음은 알겠사오나 이것이 저의 진성(真性)인 줄은 어떻게 알겠나이까?” |
佛告阿難 吾今問汝。 今汝未得無漏清淨。 承佛神力 見於初禪得無障礙。 而阿那律見閻浮提。 如觀掌中菴摩羅果。 諸菩薩等見百千界。 十方如來窮盡 微塵清淨國土無所不矚。 眾生洞視不過分寸。 |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노라. 네가 아직 무루(無漏)의 청정함은 얻지 못했으나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저 초선천(初禪天)을 보는 데에는 장애가 없고, 아나율(阿那律;天眼第一)은 염부제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菴摩羅) 열매를 보듯 하며, 모든 보살들은 백천의 세계를 두루 보고, 시방의 여래는 미진(微塵)같은 청정한 국토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는 곳이 없거니와, 중생들이 보는 것은 분촌(分寸)에 지나지 않느니라. |
阿難且吾與汝 觀四天王所住宮殿。 中間遍覽水陸空行。 雖有昏明種種形像。 無非前塵分別留礙。 汝應於此分別自他。 今吾將汝擇於見中。 誰是我體誰為物象。 |
아난아! 내가 너와 더불어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살피면서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을 두루 보거니와,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어 어느 것도 전진(前塵*)의 분별로 머무는 장애 아닌 것이 없더라도 너는 여기서 자타(自他)를 분별해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에게 이 견(見) 중에 어느 것이 나의 체(體)이고 어느 것이 물상(物相)인지 가려주리라. |
*前塵; 現前 妄心의 六塵境界. | |
阿難極汝見源。 從日月宮是物非汝。 至七金山周遍諦觀。 雖種種光亦物非汝。 漸漸更觀雲騰鳥飛。 風動塵起樹木山川。 草芥人畜咸物非汝。 |
아난아! 네가 견(見)의 근원을 끝까지 다해 보아라. 일월궁(日月宮)으로부터도 물상(物相)이요 네가 아니며, 칠금산(七金山*)까지를 두루 자세히 살펴도 비록 갖가지로 빛이 나지만 역시 물상이요 네가 아니며, 점점 더 관찰해봐도 구름이 떠다니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일고, 수목과 산천, 초개(草芥)와 사람과 가축이 모두 물상이요 네가 아니니라. |
*七金山; 須彌山과 鐵圍山 사이에 있는 일곱 산이 모두 금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칠금산이라 한다. | |
阿難是諸近遠諸有物性。 雖復差殊 同汝見精清淨所矚。 則諸物類自有差別 見性無殊。 此精妙明誠汝見性。 |
아난아! 이 모든 멀고 가까이 있는 제유(諸有)의 물성(物性)이 비록 여러 가지로 차별하지만 다 같이 너의 청정한 견정(見精)으로 보는 것이니 모든 물류(物類)는 스스로 차별이 있을지언정 견의 성품에는 유별함이 없나니, 이 견정의 묘명함이 진정 네 견의 성품이니라. |
若見是物則汝亦可見吾之見。 若同見者名為見吾。 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 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 若不見吾不見之地。 自然非物云何非汝。 |
만약 견(見)이 물질이라면 너 또한 나의 견(見)을 보아야 하리라. 만약 함께 보는 것으로 나의 견(見)을 보는 것으로 여긴다면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보지 않는 곳을 본다면 자연히 그것은 내가 보지 않는 상(相)이 아니려니와, 만약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상(物相)이 아니리니, 이것이 어찌 네가 아니겠느냐? |
*견(見)이 볼 수 있는 물질이라 하고 내가 A를 볼 때는 나의 견이 A에 있다고 가정하여 네가 나와 동시에 A를 볼 때 네가 '나의 견(실체)을 보았다'고 한다면, 내가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는 왜 나의 견(실체)을 보지 못하느냐? 그래도 본다고 우긴다면 네가 본다는 상(相)은 자연히 내가 보지 않는 그 상(相)이 아닌 것이요, 너도 보지 못한다면 내 견의 실체가 물상(物相)이 아니기 때문이요, 내 견이 물상이 아니면 너의 견도 물상이 아니니, 그것이 어찌 네 자성이 아니겠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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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則汝今見物之時。 汝既見物物亦見汝。 體性紛雜則汝與我。 并諸世間不成安立。 |
또 네가 지금 사물을 볼 때에 네가 기왕 사물을 보듯이 사물도 또한 너를 볼 것이니, 체성(體性)이 어지럽게 섞여서 너와 나, 아울러 모든 세간이 안립하지 못하리라. |
*견(見)이 물질이어서 네 견이 A라는 물질을 볼 때 A도 네 견을 본다면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의 체성이 뒤섞여 너와 나도 분간할 수 없으리니, 세상이 안립하지 못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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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若汝見時是汝非我。 見性周遍非汝而誰。 云何自疑汝之真性。性汝不真 取我求實。 |
아난아! 만약 네가 견(見)할 때 이것이 너이고 내가 아니어서 견의 성품이 두루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진성(真性)을 네가 스스로 참되지 못하다고 의심하고 나에게 물어서 진실을 구하려 하느냐? |
阿難白佛言世尊。 若此見性必我非餘。 我與如來觀四天王 勝藏寶殿居日月宮。 此見周圓遍娑婆國。 退歸精舍只見伽藍。 清心戶堂但瞻簷廡。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견(見)의 성품이 참으로 나요 다른 것이 아니라면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승장보전(勝藏寶殿)을 보고자 일월궁(日月宮)에 있을 때는 견(見)이 주원(周圓)하여 사바세계에 두루하더니, 정사(精舍)에 돌아와서는 가람(伽藍)만 보이고, 방 안에서 마음을 맑힐 적에는 다만 처마만 보이나이다. |
世尊此見如是。 其體本來周遍一界。 今在室中唯滿一室。 為復此見縮大為小。 為當牆宇夾令斷絕。 我今不知斯義所在。 願垂弘慈為我敷演。 |
세존이시여! 이 견이 이와 같아서 그 체(體)가 본래는 온 세계에 두루하던 것이 지금 방 안에 있을 때에는 다만 방 하나에만 가득하니 이 견이 큰 것을 축소시켜 작아진 것이옵니까, 담과 지붕에 막혀 단절된 것이옵니까? 제가 지금 그 이치의 소재를 알지 못하겠사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내리시어 저에게 부연(敷演)해 주소서!" |
佛告阿難 一切世間大小內外。 諸所事業各屬前塵。 不應說言見有舒縮。 譬如方器中見方空。 吾復問汝 此方器中所見方空。 為復定方為不定方。 若定方者別安圓器 空應不圓。 若不定者在方器中 應無方空。 汝言不知斯義所在。 義性如是云何為在。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세간의 대소내외(大小內外)의 모든 일들이 각각 전진(前塵)에 속하는 것이니 견에 늘고 줄어듬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비유컨대 모난 그릇에서 모난 허공(空)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노니, 이 모난 그릇 속에 보는 모난 허공이 일정히 모난 것이냐, 일정치 않게 모난 것이냐? 일정히 모난 것이라면 둥근 그릇 속에 두더라도 그 허공은 응당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고, 일정히 모난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 두더라도 마땅히 모난 허공이 없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한 그 이치의 바탕이 이와 같거늘, 어찌 견에 늘고 줄고가 있겠느냐? |
阿難若復欲令入無方圓。 但除器方空體無方。 不應說言更除虛空方相所在。 若如汝問入室之時。 縮見令小仰觀日時。 汝豈挽見齊於日面。 若築牆宇能夾見斷。 穿為小竇寧無竇跡。 是義不然。 |
아난아! 만약 또 모나고 둥금[方圓]을 없애고자 하면 다만 그릇의 모난 것은 없앨지언정 허공의 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허공의 모난 곳을 다시 없애겠노라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만약 네가 물은 바와 같이 방 안에 들어갔을 때 견을 줄여 작게한 것이라면 해를 쳐다 볼 때는 너는 어떻게 견을 늘려 해에 닿게 한다는 것이냐? 만약 담과 지붕을 축조하여 끼어들 수 있는 견이 끊겼다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때에는 어째서 구멍난(견이 이어진) 흔적이 없느냐? 이치가 그렇지 않느니라. |
一切眾生從無始來迷己為物。 失於本心為物所轉。 故於是中觀大觀小。 若能轉物則同如來。 身心圓明不動道場。 於一毛端遍能含受十方國土。 |
일체중생이 무시이래로 자기를 미혹하여 물상으로 여겨 본심을 잃어버리고 물질로서 굴려진 까닭에 그 가운데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을 보거니와, 만약 사물을 굴릴 수 있은 즉 여래와 같아서 몸과 마음이 원명(圓明)하여 도량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도 한 털끝에 시방의 국토를 다 받아들이게 되리라.” |
阿難白佛言世尊。 若此見精必我妙性。 令此妙性現在我前。 見必我真。 我今身心復是何物。 而今身心分別有實。 彼見無別分辨我身。 若實我心令我今見 見性實我而身非我。 何殊如來先所難言物能見我。 惟垂大慈開發未悟。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견정(見精)이 반드시 저의 묘성(妙性)이라면 지금 그 묘성이 제 앞에 있으려니와, 견이 반드시 저의 참다운 것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다시 무엇이옵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하는 실제가 있으나 그 견은 달리 저의 몸을 분변(分辨)함이 없나이다. 만일 실로 저의 마음이 저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라면 그 견의 성품이 진실한 나(我)요 몸은 내가 아닐 것이오니, 여래께서 먼저 ‘물상[物]도 나를 보리라’고 힐난하여 말씀하신 것과 어떻게 다르옵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모르는 것을 깨우쳐주소서!” |
佛告阿難今汝所言。 見在汝前是義非實。 若實汝前汝實見者。 則此見精既有方所 非無指示。 且今與汝坐祇陀林。 遍觀林渠及與殿堂。 上至日月前對恒河。 汝今於我師子座前。 舉手指陳是種種相。 陰者是林明者是日。 礙者是壁通者是空。 如是乃至草樹纖毫 大小雖殊。 但可有形無不指著。 若必有見現在汝前。 汝應以手確實指陳 何者是見。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네가 말한 바 ‘견이 네 앞에 있다’는 것은 그 이치가 진실하지 못하니라. 만약 실로 견이 네 앞에 있어서 네가 실로 보는 것이라면 곧 이 견정(見精)이 기왕 방향과 처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일 수 없지 않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전당을 두루 보고, 위로는 해와 달, 앞에는 항하를 대하고 있으니, 네가 지금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이 여러가지 상(相)들이 가리켜보아라.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해요, 막힌 것은 벽이고, 통(通)한 것은 허공이거니와, 이와 같이 풀과 나무, 실오라기, 터럭에 이르기까지가 크고 작은 것은 비록 다르더라도 형상만 있으면 다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리니, 만약 반드시 견이 있어서 네 앞에 현재하거든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어느 것이 그 견이냐? |
阿難當知若空是見。 既已成見何者是空。 若物是見。 既已是見何者為物。 汝可微細披剝萬象。 析出精明淨妙見元指陳示我。 同彼諸物分明無惑。 |
아난아! 마땅히 알라. 만약 허공이 견이라면 (허공도) 기왕 견이 된 것인데, 어느 것이 허공이냐? 만약 물상이 견이라면 (물상도) 이미 견이 되었는데, 어느것이 물상이냐? 너는 이 만상(萬象)을 미세하게 파헤쳐서 정명하고 정묘한 견의 근원을 석출(析出)하여 내게 보이되, 저 모든 물상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여보아라.” |
阿難言我今於此重閣講堂。 遠洎恒河上觀日月。 舉手所指縱目所觀。 指皆是物無是見者。 世尊如佛所說。 況我有漏初學聲聞。 乃至菩薩亦不能於萬物象前 剖出精見。 離一切物別有自性。 |
아난이 아뢰었다. “제가 지금 이 여러 층이 있는 강당에서 멀리는 항하에 이르고, 위로는 해와 달을 보거니와 손을 들어 가리키고 눈으로부터 보는 바가 다 물상이요, 견이라 할 것이 없겠나이다. 세존이시어! 부처님 말씀처럼 저의 형편이 아직 번뇌를 여의지 못한 초학(初學)의 성문이거니와 나아가 보살일지라도 이 만 가지 물상(物象)마다에 정견(精見)을 쪼개어 낼 수는 없으리니, 일체의 물상을 떠나 따로 자성(自性)이 있겠나이다." |
*A를 볼 때 견이 A에 있는 것이라면 멀리 항하에서 위로는 해와 달을 두루 볼 때는 그 물물마다에 견이 있어야 할 것이라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겠으니, 견의 자성은 따로 있겠다고 아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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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如是如是。 佛復告阿難。 如汝所言無有精見。 離一切物別有自性。 則汝所指是物之中無是見者。 今復告汝汝與如來。 坐祇陀林更觀林苑。 乃至日月種種象殊。 必無見精受汝所指。 汝又發明此諸物中何者非見。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부처님이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물상마다에) 정견(精見)이 없고, 일체의 물상을 떠나 따로 자성이 있는 즉 네가 가리키는 그 물상 가운데는 견(見)이라 할 것이 없느니라. 지금 다시 너에게 묻겠노니, 너는 여래와 더불어 기타림에 앉아서 숲과 동산으로부터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형상이 서로 다름을 보거니와, 분명 견정(見精)이 없이 네가 가리킨 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상 가운데 무엇이 견이 아니냐?” 。 |
阿難言我實遍見此祇陀林。 不知是中何者非見 何以故若樹非見云何見樹。 若樹即見復云何樹。 如是乃至若空非見。 云何為空。 若空即見復云何空。 我又思惟是萬象中。 微細發明無非見者。 |
아난이 말했다. “제가 실로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견이 아닌지 알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만약 나무가 견(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보며, 만약 나무가 곧 견이라면 무엇이 나무이리이까? 이와 같이 나아가 만약 허공이 견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곧 견(見)이면 무엇이 또 허공이겠나이까? 제가 또 생각해 보건대 이 만상(萬象) 중에 미세하게 밝혀 보면 견 아닌 것이 없겠나이다.” |
佛言如是如是。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
於是大眾非無學者。 聞佛此言茫然不知是義終始。 一時惶悚失其所守。 如來知其魂慮變慴心 生憐愍。安慰阿難及諸大眾。 諸善男子無上法王是真實語。 如所如說不誑不妄。 非末伽梨四種不死矯亂論議。 汝諦思惟無忝哀慕。 |
그 곳 대중 가운데 무학(無學)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을 듣고 망연(茫然)히 그 뜻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고, 한참을 황송하여 가졌던 것을 잃어버린듯 하였는데, 여래께서 그들의 넋이 나가 두려움으로 변한 마음을 아시고 연민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안위(安慰)하셨다. “선남자들아! 무상(無上)의 법왕은 진실한 말씀을 하시고, 같은 그대로 설하시고, 속이거나 허망하지도 않아서 저 말가리들의 네 가지 죽지 않으려고 교란(矯亂)하는 논의(論議)와는 다르니, 너희는 진실하게 사유하여 욕되게 애모(哀慕)하는 일이 없어야 하느니라.” |
是時文殊師利法王子愍諸四眾。 在大眾中即從座起。 頂禮佛足合掌恭敬。 而白佛言世尊。此諸大眾。 不悟如來發明二種精見色空 是非是義。 世尊若此前緣色空等象。 若是見者應有所指。 若非見者應無所矚。 而今不知是義所歸故有驚怖。 非是疇昔善根輕尟。 唯願如來大慈發明此諸物象。 與此見精元是何物。 於其中間無是非是。 |
그 때 문수사리 법왕자가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겨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합장공경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대중들이 여래께서 밝혀주신 정견(精見)의 색(色)과 공(空)이 맞는지 아닌 것인지의 두 가지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전연(前緣)의 색(色), 공(空) 등의 상(象)이 만일 이것이 견이라면 마땅히 가리킬 수 있어야 하고, 견이 아니라면 보는 것이 없어야 할 것이오라 지금 이 이치의 귀결(歸結)을 알지 못하여 경포(驚怖)가 있을지언정 지난 날 쌓아 온 선근이 가볍거나 적어서가 아니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대자비로 이 모든 물상과 더불어 이 견정(見精)이 원래 어떤 물건이길래 그 중간에 시(是*)와 비시(非是*)가 없는 것인지를 밝혀 주시옵소서. |
*精見이 色인지 空인지, 色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그 이치가 무엇인가? *見精은 무슨 물건이길래 이것도 아니고 이것 아닌 것도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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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文殊及諸大眾。 十方如來及大菩薩。 於其自住三摩地中。 見與見緣并所想相。 如虛空花本無所有。 此見及緣元是菩提妙淨明體。 云何於中有是非是。 文殊吾今問汝。 如汝文殊更有文殊。 是文殊者為無文殊。 |
부처님이 문수보살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의 여래와 대보살들이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三摩地)에서는 견(見)과 견연(見緣)과 아울러 생각하는 상(相)이 마치 허공의 꽃[虛空花]과 같아서 본래 있지 않을뿐더러 이 견과 견연이 원래 보리(菩提)의 묘정명체(妙淨明體)이거늘, 어찌 그 가운데 시(是)와 비시(非是)가 있겠느냐? 문수(文殊)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노니, 네가 지금 문수(文殊)인데 다시 이 문수라 할 문수가 있느냐, 문수가 없느냐?” |
如是世尊我真文殊無是文殊。 何以故若有是者則二文殊。 然我今日非無文殊 於中實無是非二相。 |
“그러하오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참 문수이니, 이 문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 문수가 있은 즉 두 문수가 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수가 없는 것이 아니오니, 그 가운데 실로 시(是) 비(非)의 두 모습이 없나이다.” |
佛言 此見妙明與諸空塵。 亦復如是本是妙明。 無上菩提淨圓真心。 妄為色空及與聞見。 如第二月 誰為是月又誰非月。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이 묘명(妙明)한 견(見)과 더불어 공(空), 진(塵)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본래 묘명한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청정원만한 진심(眞心)이건만 허망하게 색(色)과 공(空), 문(聞), 견(見)이 되었으니, 마치 제이월(第二月)과 같거늘 어느 것을 달[是月]이라 하고, 또 어느 것을 달 아니다[非月] 하겠느냐? |
文殊但一月真。 中間自無是月非月。 是以汝今觀見與塵。 種種發明名為妄想。 不能於中出是非是。 由是精真妙覺明性。 故能令汝出指非指。 |
문수야! 다만 하나의 달만이 진실할 뿐, 중간에 자기가 달이다 달 아니다 할 것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까지 견(見)과 진(塵)을 보고서 갖가지로 밝히는 것을 망상이라 하나니, 그 가운데서 시(是)와 비시(非是)를 초출하지 못하거니와 이 진정한 묘각의 밝은 성품을 말미암는다면 너로 하여금 지(指)와 비지(非指)에서 초출케 하리라." |
阿難白佛言世尊。 誠如法王所說覺緣遍十方界。 湛然常住性非生滅。 與先梵志裟毘迦羅所談冥諦。 及投灰等諸外道種。 說有真我遍滿十方。有何差別。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법왕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각(覺*)과 연(緣*)이 시방세계에 두루하고 담연(湛然)히 상주(常住)하여 성품이 생멸하지 않는다면 예전에 범지(梵志*) 사비가라(裟毘迦羅*)가 말하는 명제(冥諦)나 투회(投灰*) 따위의 외도들이 말하는 ‘진아(眞我*)가 시방에 두루하다’는 것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오리까? |
*覺緣; 覺은 眞性, 緣은 萬法. *梵志; 梵行을 志求하는 婆羅門 또는 一切의 출가한 外道를 通稱. *裟毘迦羅; 劫毘羅(Kapila). 數論師 중 하나인 外道의 이름. *投灰; 苦行하는 外道. 갈기갈기 헤진 옷을 입고 말이 다니는 길 같은 비상식적인 곳에 누워 자거나 머리도 빗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아서 마치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한다. *眞我; 數論外道가 思가 나의 實體라고 주장하는 神我(Ātman)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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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亦曾於楞伽山。 為大慧等敷演斯義。 彼外道等常說自然。 我說因緣非彼境界。 我今觀此覺性自然 非生非滅。 遠離一切虛妄顛倒。 似非因緣與彼自然。 云何開示不入群邪。 獲真實心妙覺明性。 |
세존께서도 일찍이 능가산에서 대혜(大慧*) 등에게 이 뜻을 부연(敷演)하시기를,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 말하거니와, 내가 말하는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다.' 하셨나이다. 제가 지금 이를 보건대 각(覺)의 성품은 자연한 것이어서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니고, 일체의 허망과 전도를 멀리 여읜 것이라서 인연이 아닌듯 하온데, 저 자연과 더불어 어떻게 개시(開示)하여야 여러 사견(邪見)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묘각명(妙覺明)한 성품을 얻겠나이까?" |
*大慧; 大慧菩薩(Mahāmati). | |
佛告阿難 我今如是開示方便。真實告汝。 汝猶未悟惑為自然。 阿難若必自然 自須甄明有自然體。 汝且觀此妙。明見中以何為自。 此見為復以明為自以暗為自。 以空為自以塞為自。 阿難若明為自 應不見暗。 若復以空為自體者應不見塞。 如是乃至諸暗等相以為自者。 則於明時見性斷滅云何見明。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듯 방편을 개시하여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네가 오히려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의혹하는구나. 아난아! 만약 정녕 이것이 자연이라면 스스로[自]가 분명하여 자연의 체가 있어야 하리라. 네가 보아라! 묘명한 견(見) 가운데 무엇이 자(自)이겠느냐? 이 견(見)이 명(明)으로 자(自)를 삼느냐, 암(暗)으로 자(自)를 삼느냐? 공(空)으로 자(自)를 삼느냐, 막힘[塞]으로 자(自)를 삼느냐? 아난아! 만약 명(明)으로 자(自)를 삼는다면 암(暗)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요, 만약 공(空)으로 자(自)의 체를 삼는다면 색(塞)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이 암(暗)에 이르기까지의 상(相)으로 자(自)를 삼은 즉 명(明)할 때는 견(見)의 성품이 단멸할 터이니 어떻게 명(明)을 보겠느냐?” |
阿難言必此妙見性非自然。 我今發明是因緣性。 心猶未明諮詢如來。 是義云何合因緣性。 |
아난이 말했다. “이 묘견(妙見)의 성품이 정녕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이제 인연성(因緣性)이라고 밝히려 하오나 마음이 아직 분명하지 못하여 여래께 여쭈오니, 이 이치가 어찌하면 인연성에 부합하오리까?” |
佛言汝言因緣吾復問汝。 汝今因見見性現前。 此見為復因明有見因暗有見。 因空有見因塞有見。 阿難若因明有應不見暗。 如因暗有應不見明。 如是乃至因空因塞同於明暗。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인연이라 하니 내가 다시 너에게 묻노라. 너는 지금 견(見)으로 인해 견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 있으려니와, 이 견은 밝음으로 인해 있는 것이냐, 어두움으로 인해 있는 것이냐? 공(空)으로 인해 있는 것이냐, 막힘으로 인해 있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처럼 허공으로 인하고 막힘으로 인한 것도 밝음이나 어둠과 같으리라. |
復次阿難此見又復緣明有見 緣暗有見。 緣空有見緣塞有見。 阿難若緣空有應不見塞。 若緣塞有應不見空。 如是乃至緣明緣暗同於空塞當。 知如是精覺妙明非因非緣。 亦非自然非不自然。 無非不非無是非是。 離一切相即一切法。 汝今云何於中措心。 以諸世間戲論名相而得分別。 如以手掌撮摩虛空。 只益自勞。虛空云何隨汝執捉。 |
또 아난아! 이 견은 또 밝음을 연(緣)하여 견이 있느냐, 어두움을 연하여 견이 있느냐? 허공을 연하여 견이 있느냐, 막힘을 연하여 견이 있느냐? 아난아! 허공을 연하여 있는 것이라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요, 만약 막힘을 연하여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에 연하고 어둠에 연한 것도 공과 막힘과 같으리라. 이러한 정각(精覺)의 묘명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또한 자연(自然)도 아니고 자연하지 못함도 아니며, 비(非)도 불비(不非)도 없고 시(是)도 비시(非是)도 없음을 알아서 일체의 상을 여의면 일체법에 즉(即)한 것이거늘, 너는 지금 어찌 그 가운데 마음을 두어 모든 세간의 희론(戲論)과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잡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수고만 더할 뿐 허공이 어찌하여 네게 잡히겠느냐?" |
阿難白佛言世尊。 必妙覺性非因非緣。 世尊云何常與比丘。 宣說見性具四種緣。 所謂因空因明因心因眼 是義云何。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정녕 묘각(妙覺)의 성품이 인(因)도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항상 비구들에게 ‘견의 성품은 네 가지 연(緣)을 갖추어야 하나니, 소위 공(空)을 인하고, 명(明)을 인하고, 마음[心]을 인하고, 눈[眼]을 인하는 것이다.'고 하셨으며, 이 뜻은 무엇이옵니까?” |
佛言阿難 我說世間諸因緣相非第一義。 阿難吾復問汝。 諸世間人說我能見。 云何名見云何不見。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아난아! 내가 세간의 모든 인연의 모습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가 아니니라. 아난아! 내 다시 너에게 묻노니, 세간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능히 본다’고 말하는데 어떤 것을 ‘본다’고 하고,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느냐?” |
*第一義; 究竟의 真理 | |
阿難言世人因於日月燈光。 見種種相名之為見。 若復無此三種光明則不能見。 |
아난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해와 달과 등불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면 ‘본다’고 하고,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하나이다.” |
阿難若無明時名不見者。 應不見暗。 若必見暗此但無明 云何無見。 |
“아난아! 만약 빛이 없을 때는 보지 못한다면 어둠도 보지 못해야 할것이며, 만약 꼭 어둠을 본다면 이는 다만 밝음[明]이 없을 뿐일 터인데 어찌 견(見)이 없다 하겠느냐? |
阿難若在暗時 不見明故名為不見。 今在明時不見暗相 還名不見。 如是二相俱名不見。 若復二相自相[夌*欠]奪。 非汝見性於中暫無。 如是則知二俱名見。 云何不見。 |
아난아! 만약 어둠 속에 있을 때 밝음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보지 못한다 한다면 밝음에 있을 때 어둠의 상(相)을 보지 못함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돌아가리니 이러한 두 상(相)을 다 보지 못한다 해야 하려니와,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아 차지할 때면 네 견의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도 없지 않았으리라. 그러한 즉 둘을 다 알 것이니 보았다고 해야 하거늘 어찌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
是故阿難汝今當知。 見明之時見非是明。 見暗之時見非是暗。 見空之時見非是空。 見塞之時見非是塞。 四義成就汝復應知。 見見之時見非是見。 見猶離見見不能及。 云何復說因緣自然及和合相。 |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밝음을 볼 때의 견(見)은 그 밝음이 아니요, 어둠을 볼 때의 견(見)은 그 어둠이 아니고, 공함을 볼 때의 견(見)은 그 공함이 아니며, 막힘을 볼 때의 견(見)은 그 막힘이 아니니라. 이 네 가지 이치를 성취했거든 또 알아야 하나니, 견[所見;妄見]을 볼 때의 견[能見;眞見]은 그 견[所見]이 아니요, 견[眞見]은 견[妄見]을 여읜 것이라 견[妄見]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거늘 어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화합상(和合相)이다 하겠느냐? |
汝等聲聞狹劣無識。 不能通達清淨實相。 吾今誨汝當善思惟。 無得疲怠妙菩提路。 |
너희 성문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을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내 지금 너희에게 말하노니, 잘 생각하여 오묘한 보리(菩提)의 길에서 게을리하지 말라." |
*見; 뜻글자 하나가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의 見은 동사로서 '보다', '보여지다', 명사로서 '能見(보는 주체)', 所見(보여진 객체), 보는 행위 자체, 때로는 妄見, 眞見 등의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으니, 참으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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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白佛言世尊。 如佛世尊為我等輩。 宣說因緣及與自然。 諸和合相與不和合。 心猶未開。 而今更聞見見非見 重增迷悶。 伏願弘慈施大慧目。 開示我等覺心明淨。 作是語已悲淚頂禮 承受聖旨。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인연과 더불어 자연, 여러 화합상과 불화합상을 설명하여 주셨사오나 아직 마음이 열리지 못하였사온데 지금 다시 견(見)을 보는 것은 견이 아니다 하심을 듣고, 거듭하여 더 혼미하고 답답하기만 하오이다. 엎드려 바라오니, 큰 자비로 대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의 각심(覺心)이 명정(明淨)케 열어 보여 주소서!” 이렇게 말하고서 슬피울며 정례하고 성지(聖旨)를 받고자 하였다. |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大眾。 將欲敷演大陀羅尼諸三摩提 妙修行路。告阿難言 汝雖強記但益多聞。 於奢摩他微密觀照心猶未了。 汝今諦聽 吾今為汝分別開示。 亦令將來諸有漏者獲菩提果。 |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연민하사 대다라니(大陀羅尼)와 여러 삼마제(三摩提*)의 오묘히 수행하는 길을 부연하시려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기억이 강하여 다문(多聞)만 많고, 사마타(奢摩他*)의 미밀(微密)한 관조(觀照)에는 마음이 아직 요달하지 못하였구나!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를 위해 분별하여 열어 보이고, 장래의 유루(有漏)한 모든 이들도 보리과(菩提果)를 얻게 하리라. |
*三摩提(Samādhi); 三昧, 正定. *奢摩他(Śamatha); 止息, 寂靜. (三昧의 果) | |
阿難一切眾生輪迴世間。 由二顛倒分別見妄。 當處發生當業輪轉。 云何二見。一者眾生別業妄見。 二者眾生同分妄見。 |
아난아! 일체의 중생들이 세간에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뀌게 분별한 망견(見妄)에 연유하여 그 자리[當處]에서 생겨난 바로 그 업[當業]으로 윤회하는 것이니, 무엇이 그 두 가지 망견인가? 첫째는 중생의 별업망견(別業妄見)이요, 둘째는 중생의 동분망견(同分妄見)이니라. |
云何名為別業妄見。 阿難如世間人目有赤眚 夜見燈光。 別有圓影五色重疊。 於意云何此夜燈明 所現圓光。 為是燈色為當見色。 |
무엇을 별업망견(別業妄見)이라 하는가?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에 적생(赤眚*)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때에 다른 둥근 그림자[圓影]가 생겨 오색(五色)이 중첩(重疊)하거니와 어찌 생각하느냐? 밤에 등불을 켰을 때에 나타나는 이 둥근 빛[圓光]은 등불의 색(色)이냐, 바로 그때의 견(見)의 색이냐? |
*赤眚; 눈병으로 동자에 생긴 충혈반점, 또는 백태(白苔;翳)낀 눈병. | |
阿難此若燈色 則非眚人何不同見。 而此圓影唯眚之觀。 若是見色見已成色。 則彼眚人見圓影者名為何等。 |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의 색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 처럼 보지 않고, 그 원영(圓影)은 다만 생병(眚病) 난 사람만 보느냐? 만약 견(見)의 색이라면 견은 이미 색이 되었거늘 저 생병 난 사람이 원영을 보는 것은 무엇이라 하겠느냐? |
復次阿難若此圓影離燈別有。 則合傍觀屏帳几筵有圓影出。 離見別有應非眼矚。 云何眚人目見圓影。 是故當知 色實在燈見病為影。 影見俱眚見眚非病。 終不應言是燈是見。 於是中有非燈非見。 如第二月非體非影。 何以故第二之觀捏所成故。 諸有智者不應說言此捏根元。 是形非形離見非見。 此亦如是目眚所成。 今欲名誰是燈是見。 何況分別非燈非見。 |
또 아난아! 만약 이 원영이 등(燈)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라면 옆의 병장(屏帳)이나 궤연(几筵)을 볼 때도 원영이 나와야 할 것이요, 견을 여의어 따로 있다면 눈으로 볼 것이 아니거늘, 어찌 생병인(眚病人)이 눈으로 원영을 보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색의 실체는 등에 있건만 견(見)의 병이 영(影)이 된 것이니라. 영(影)과 견(見)은 모두 생(眚)일지언정 생(眚)을 보는 것은 병이 아니니 결코 ‘이것이 등(燈)이다, 견(見)이다' 말하거나 ‘그 안에 등 아닌 것이나 견아닌 것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마치 제이월(第二月*)이 달의 체(體*)도 아니요, 영(影*)도 아닌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제이월이 보이는 것은 허구(虛構;捏)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근원(根元)을 날조(捏造)한 것이다', '형상[形]이다 형상이 아니다’ 하거나, '견(見)을 여의었다 비견(非見)을 여의었다' 말하지 아니 하려니와,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의 생(眚)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무엇을 등(燈)이다 견(見)이다 하려 하겠으며, 어찌 더군다나 등 아니다 견 아니다 하고 분별하겠느냐? |
*第二月은 月의 虛像, 體는 眞月, 影은 水中月 鏡中月 같은 月影. | |
云何名為同分妄見。 阿難此閻浮提除大海水。 中間平陸有三千洲。 正中大洲東西括量。 大國凡有二千三百。 其餘小洲在諸海中。 其間或有三兩百國。 或一或二至于三十四十五十。 |
어떤 것을 동분망견(同分妄見)이라 하느냐? 아난아! 이 염부제(閻浮提)에서 큰 바다의 물을 제외하고 그 중간의 평탄한 육지에 삼천 주(洲)가 있는데 중앙의 대주(大洲)를 동서로 총괄(總括)하면 대국(大國)이 무릇 이천 삼백이요, 그 밖에 소주(小洲)들이 바다 가운데 여럿 있어서 그 사이에 혹 이삼백이 있기도 하고, 혹은 한 두 개에서 삼십, 사십, 오십 개에 이르기도 하느니라. |
阿難若復此中有一小洲只有兩國。 唯一國人同感惡緣。 則彼小洲當土眾生。 睹諸一切不祥境界。 或見二日或見兩月。 其中乃至暈蝕珮玦彗勃飛流。 負耳虹蜺種種惡相。 但此國見彼國眾生。 本所不見亦復不聞。 阿難吾今為汝。 以此二事進退合明。 |
아난아! 만약 또 그 중의 한 소주(小洲)에 두 나라가 있는데 한 나라 사람들만 악연을 함께 만나고 그 소주(小洲)에 사는 중생들만 온갖 상서롭지 못한 경계인 두 개의 해를 보거나, 혹은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햇무리나 월식, 일식, 금환식, 혜성, 유성, 등무지개[負虹], 곁무지개[耳虹] 에 이르기까지의 갖가지 나쁜 현상을 보는데, 다만 이 나라에서만 보고, 다른 한 나라 중생들은 본래 보지도 듣지도 못 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이 두 일로써 진퇴(進退)하며 합당하게 밝혀 주리라. |
阿難如彼眾生別業妄見。 矚燈光中所現圓影雖現似境。 終彼見者目眚所成。 眚即見勞非色所造。 然見眚者終無見咎。 例汝今日以目 觀見山河國土及諸眾生。 皆是無始見病所成。 見與見緣似現前境。 元我覺明見所緣眚。 覺見即眚本覺明心。 覺緣非眚覺所覺眚。 覺非眚中此實見見。 云何復名覺聞知見。 是故汝今見我及汝并諸世間。 十類眾生皆即見眚。 非見眚者彼見真精。 性非眚者故不名見。 |
아난아! 저 중생들은 별업망견으로 등불 빛 가운데 나타난 원영이 비록 경계인 듯이 나타나지만 결국 그 견은 눈의 적생(赤眚)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적생은 곧 견(見)이 피로한 것이요 색(色)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생(眚)을 보는 것이 결코 견의 허물이 아니니라. 예컨대 네가 지금 눈으로 산하와 국토와 중생들을 보거니와, 이것이 다 무시이래의 견병(見病)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견(見)과 견연(見緣)이 눈앞의 경계인 듯 보이지만 원래 나의 각명(覺明)이 소연(所緣)을 보는 생(眚)인 것이니, 각(覺)으로 보는 것은 생(眚)이지만 본래의 각명심(覺明心)으로 연(緣)을 각(覺)하는 것은 생(眚)이 아니요, 소각(所覺)을 각(覺)하는 것은 생(眚)이니라*. 각(覺;覺의 性)은 생(眚) 중의 것이 아니고 이는 실로 견을 보는 것이거늘 어찌 또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모든 세간의 열 종류 중생 보는 것이 다 견의 생(眚)이요, 생(眚)을 보는 것이 아니니, 저 견의 진정(真精;見精)은 성품이 생(眚)이 아닌 까닭에 견이라 하지 않느니라. |
*네가 눈으로 보는 산하대지와 중생은 소연(所緣)이지 그들의 각명(覺明;眞性)이 아니니 생(眚)인 것이다. 따라서 각(覺)으로 연(緣)을 보는 것은 생(眚)이지만 각명(覺明)으로 보는 것은 생(眚)이 아니다. 所覺은 볼 수 있는 경계요, 覺은 그 경계를 깨닫는 것이니 모두가 생(眚)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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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如彼眾生同分妄見。 例彼妄見別業一人。 一病目人同彼一國。 彼見圓影眚妄所生。 此眾同分所現不祥。 同見業中瘴惡所起。 俱是無始見妄所生。 例閻浮提三千洲中。 兼四大海娑婆世界。 并洎十方諸有漏國及諸眾生。 同是覺明無漏妙心。 見聞覺知虛妄病緣。 和合妄生和合妄死。 若能遠離諸和合緣及不和合。 則復滅除諸生死因。 圓滿菩提不生滅性。 清淨本心本覺常住。 |
아난아! 저 중생의 동분망견(同分妄見)을 저 망견(妄見)이 별업(別業)인 한 사람의 예로 보자면 눈이 병든 사람은 위에서의 한 나라와 같아서 그가 보는 원영(圓影)이 생(眚)으로 허망하게 생긴 것이지만 이 동분망견으로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들은 다같은 견업(見業) 중에 장악(瘴惡)으로 일어난 것이요, 모두가 무시이래로 견이 허망하게 낸 것이니, 예컨대 염부제의 삼천주(三千洲) 안과 겸하여 4대해(四大海)와 사바세계와 아울러 시방의 모든 유루국(有漏國),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다같이 이 각명(覺明)의 무루묘심(無漏妙心)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허망한 병의 연(緣)과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겨나고 화합하여 허망하게 죽거니와, 만약 화합하는 연(緣)을 멀리하여 화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곧 모든 생사의 인(因)을 멸제(滅除)하고 보리(菩提)의 생멸하지 않는 성품을 원만히 하여 청정한 본심(本心)의 본각(本覺)이 상주(常住)할 것이니라. |
*二種妄見; ①別業妄見; 眾生이 真性을 잃고 妄見을 일으켜 일체의 허망한 경계를 보고 괴로워 하거나 혹은 즐거워 하거니와, 만약 본래의 진성을 잃지 아니 하면 허망한 경계를 보지 않을 것이니, 마치 눈병 난 사람이 밤에 등불을 보면 따로 원영(圓影)이 있어 五色이 重疊하여 보이지만, 눈병이 없는 사람은 등불 이외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아서 사람에 따라 다른 망견을 별업망견이라 한다. ②同分妄見; 眾生이 真性을 잃고 일체의 허망한 경계를 동일하게 보고 동일한 苦樂과 동일한 業을 받으니, 마치 한 나라의 사람이 다같이 좋지 못한 일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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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雖先悟本覺妙明。 性非因緣非自然性。 而猶未明如是覺元。 非和合生及不和合。 |
아난아! 네 비록 본각(本覺)의 묘명(妙明)한 성품이 인연(因緣)도 아니고 자연성(自然性)도 아님은 깨달았으나, 오히려 아직 이와 같은 각(覺)이 원래 화합으로 생기거나 불화합으로 생긴 것이 아님을 모르는구나. |
阿難吾今復以前塵問汝。 汝今猶以一切世間。 妄想和合諸因緣性。而自疑惑。 證菩提心和合起者。 則汝今者妙淨見精。 為與明和為與闇和。 為與通和為與塞和。 若明和者且汝觀明。 當明現前何處雜見。 見相可辨雜何形像。 若非見者云何見明。 若即見者云何見見。 必見圓滿何處和明。 若明圓滿不合見和。 見必異明雜則失彼性明名字。 雜失明性和明非義。 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
아난아! 내가 이제 전진(前塵)으로써 네게 물으리라. 너는 지금도 일체세간의 망상으로 화합하는 인연성을 스스로 의혹하여 보리(菩提)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일어난다 하는구나. 너는 지금에 묘정(妙淨)한 견정(見精)이 명(明)과 화합하였느냐, 암(闇)과 화합하였느냐? 통(通)과 화합하였느냐, 색(塞)과 화합하였느냐? 만일 명(明)과 화합한 것이라면 네가 명(明)을 볼 때는 마땅히 명(明)이 현전(現前)하려니와 어느 곳에 견(見)이 섞이겠느냐? 견(見)의 상(相)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이야 어찌 형상이겠느냐? 만일 견이 아니라면 어찌 명을 볼 것이며, 만일 또 견이라면 어찌 견을 보겠느냐? 정녕 견이 원만하다면 어느 곳에 명이 화합하였겠느냐? 만약 명이 원만하다면 견과 화합하지 않았으리라. 견(見)이 명(明)과 달라서 섞인 즉 성(性)이 명(明)하다는 이름을 잃었으리니, 섞여서 명(明)한 성(性)을 잃었다면 명과 화합한다는 것은 옳지 않거니와, 저 암(暗)과 통(通), 색(塞)의 경우도 그와 같으니라. |
*本覺의 妙明한 성품은 因緣도 自然性도 아니고, 和合이나 不和合으로 나는 것도 아니다. | |
復次阿難又汝今者妙淨見精。 為與明合為與暗合。 為與通合為與塞合。 若明合者至於暗時明相已滅。 此見即不與諸暗合云何見暗。 若見暗時不與暗合。 與明合者應非見明。 既不見明云何明合。 了明非暗 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
다시 아난아! 네 지금의 묘정(妙淨)한 견정(見精)은 명(明)과 더불어 합하였느냐, 암(暗)과 더불어 합하였느냐? 통(通)과 더불어 합하였느냐, 색(塞)와 더불어 합하였느냐? 만약 명과 합하였다면 어두워지면 명의 상(相)이 이왕 없으니, 이 견이 암(暗)과는 합하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암(暗)을 보겠느냐? 만약 암(暗)을 볼 때 암(暗)과 합하지 않았다면 명(明)과 합한 것도 명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요, 기왕 명을 보지 못한다면 어찌 명과 합할 것이며, 명은 암이 아닌 줄을 알겠느냐? 저 암(暗)과 통(通), 색(塞)의 경우도 그와 같으니라. |
阿難白佛言世尊。 如我思惟此妙覺元。 與諸緣塵及心念慮非和合耶。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컨대, 이 묘각의 근원은 연진(緣塵)과 마음, 염려(念慮)와 더불어 화합하는 것이 아니겠나이다.” |
佛言汝今又言覺非和合。 吾復問汝 此妙見精非和合者。 為非明和為非暗和。 為非通和為非塞和。 若非明和則 見與明必有邊畔。 汝且諦觀 何處是明何處是見。 在見在明自何為畔。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또 각(覺)은 화합이 아니라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물으리라. 이 묘한 견정(見精)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명(明)과 화합하지 않았느냐, 암과 화합하지 않았느냐? 통과 화합하지 않았느냐, 색과 화합하지 않았느냐?” 만약 명과 화합한 것이 아닌 즉 견과 명에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네가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명(明)이며 어디까지가 견(見)이냐? 견이 있고 명이 있음에 스스로 어디가 경계가 되느냐? |
阿難若明際中必無見者 則不相及。 自不知其明相所在。 畔云何成。 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又妙見精非和合者。 為非明合為非暗合。 為非通合為非塞合。 若非明合則見與明性相乖角。 如耳與明了不相觸見。 且不知明相所在。 云何甄明合非合理。 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
아난아! 만약 명제(明際) 가운데 정녕 견이 없다면 곧 서로 미칠 수 없을 것이라 그 명상(明相)이 있는 곳을 스스로 알지 못하리니, 경계선이 어찌 이루어지겠느냐? 저 암(暗)과 통(通), 색(塞)의 경우도 그와 같으니라. 또 묘한 견정(見精)이 화합이 아니라면 명과 합하지 않았느냐, 암과 합하지 않았느냐? 통과 합하지 않았느냐, 색과 합하지 않았느냐? 만약 명과 합하지 않았다면 견과 명의 성품이 서로 어긋나리니, 마치 귀[耳]와 명(明)이 서로 접촉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보더라도 명상(明相)의 소재를 알지 못할 것이거늘 어떻게 합(合)과 비합(非合)의 이치를 밝히겠느냐? 저 암(暗)과 통(通), 색(塞)의 경우도 그와 같으니라. |
阿難汝猶未明一切浮塵諸幻化相。 當處出生隨處滅盡 幻妄稱相。 其性真為妙覺明體。 如是乃至五陰六入。 從十二處至十八界。 因緣和合虛妄有生。 因緣別離虛妄名滅。 殊不能知生滅去來。 本如來藏常住妙明。 不動周圓妙真如性。 性真常中求於去來。 迷悟死生了無所得。 |
아난아! 너는 오히려 일체의 부진(浮塵*)인 모든 환화(幻化*)의 상(相)이 그 자리에서 출생하여 곳을 따라 멸진하는 줄을 알지 못하니 환망(幻妄)을 상(相)이라하거니와 그 성품은 진실로 묘각의 밝은 본체이니라.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 12처(十二處)로부터 18계(十八界)에 이르기까지가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나고, 인연이 이별하면 허망하게 멸하느니라. 특히 생멸(生滅)과 거래(去來)가 본래 여래장(如來藏*)의 상주하고 묘명하며 부동(不動)하고 두루 원만한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진실상주(真實常住)한 성품 가운데서는 거래(去來)와 미오(迷悟)나 생사(生死)를 구하여도 조금도 얻을 수 없느니라. |
*浮塵; 일체의 유위법(有為法)이 떠다니는 티끌[浮塵]처럼 진실하지 못하고 진성(真性)을 가리기 때문에 부진이라 한다. *幻化; 幻術師가 만들어 낸 것이 幻이요, 佛菩薩 등이 神通力으로 나타낸 變化를 化라 한다. 둘 다 虛妄한 相이다. *如來藏(tathāgata-garbha); 일체중생의 유루(有漏)의 몸 가운데 감춰진 본래 청정[自性清淨]한 여래법신(如來法身)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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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云何五陰 本如來藏妙真如性。 阿難譬如有人。 以清淨目觀晴明空。 唯一精虛迥無所有。 其人無故不動目睛。 瞪以發勞則於虛空別見狂花。 復有一切狂亂非相。 色陰當知亦復如是。 |
아난아! 어찌 오음(五陰)이 본래 여래장(如來藏)의 묘진여성(妙真如性*)이겠느냐?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청명(晴明)한 허공을 볼 적에는 다만 한결같이 허공 뿐이요 아무 것도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주시하기를 힘쓰면 허공에서 다른 광화(狂花*)를 보거나 또 어지러이 날리는 상(相) 아닌 것들을 보게 되나니, 마땅히 알라. 색음(色陰)도 그와 같으니라. |
*妙真如性; 真如는 萬法의 진실한 성품이요, 어떠한 상(相)도 없으니 妙라 한다. *狂華; 狂亂하는 空華(허공의 꽃;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으나 병든 눈에 헛 보이는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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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是諸狂花。 非從空來非從目出。 如是阿難若空來者。 既從空來還從空入。 若有出入即非虛空。 空若非空自不容其花相起滅。 如阿難體不容阿難。 若目出者 既從目出還從目入。 即此花性從目出故當合有見。 若有見者去既花空旋合見眼。 若無見者出既翳空旋當翳眼。 又見花時目應無翳。 云何晴空號清明眼。 是故當知色陰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
아난아! 이 광화(狂花)는 허공[空]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눈[目]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라. 그와 같이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오는 것이라면 기왕 허공에서 왔으니 되돌아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만약 출입(出入*)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닐 것이요, 허공이 공(空)하지 않다면 그 꽃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리니, 마치 아난의 체(體)에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왔다면 기왕 눈에서 나왔으니 되돌아 와서는 눈으로 들어가야 하려니와, 이 광화의 성품이 눈에서 나왔다면 마땅히 견이 있어야 할 것이요, 만일 견이 있다면 가서 공에 꽃피웠으니, 돌아서서는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또 견이 없다면 나가서 공을 가렸으니[翳], 돌아서서는 눈을 가려야 하리라. 또 광화를 볼 때는 눈에 가림막이 없을 터인데 어째서 청명한 허공 볼 때만 청명한 눈이라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색음(色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出入; 허공은 안팎이 없으므로 출입이 성립하지 않는다. 허공이 공하지 않다면 실제의 상을 지녔으리니 어찌 또 다른 상을 용납하겠는가? *本非因緣非自然性; 色受想行識의 五陰은 因緣도 아니고 自然도 아닌 如來藏 妙真如性이라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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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譬如有人。 手足宴安百骸調適。 忽如忘生性無違順。 其人無故以二手掌於空相摩。 於二手中妄生澀滑冷熱諸相。 受陰當知亦復如是。 |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수족(手足)이 편안하고 온 몸[百骸]이 조화로워서 문득 생(生)을 잊은 듯 거슬리고[違] 좋고[順]가 없는데, 그 사람이 공연히 허공에서 두 손바닥을 서로 비비면 두 손에서 껄끄럽고 매끄러움이나 차고 더운 상(相)들이 생하거니와, 마땅히 알라. 수음(受陰)도 그와 같으니라. |
阿難是諸幻觸。 不從空來不從掌出。 如是阿難若空來者。 既能觸掌何不觸身。 不應虛空選擇來觸。 若從掌出應非待合。 又掌出故。 合則掌知離即觸入。 臂腕骨髓應亦覺知入時蹤跡。 必有覺心知出知入。 自有一物身中往來。 何待合知要名為觸。 是故當知受陰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
아난아! 이 모든 환촉(幻觸)이 공(空)에서 오지 않고 손바닥에서 나오지도 않느니라. 이러한 것이 아난아, 만약 공(空)에서 오는 것이어서 기왕 손바닥이 느낀다면 어째서 몸에서는 느끼지 못하느냐? 허공이 장소를 선택(選擇)하여 느낌[觸]으로 오지는 아니 하리라. 만약 손바닥에서 나온다면 손바닥 비비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하고, 또 손바닥에서 나온 까닭에 비빌 때 손바닥이 안다면 비비지 않을 때는 촉(觸)이 들어갈 것이니, 팔과 골수(骨髓)들도 들어갈 때의 종적(蹤跡)을 각지(覺知)해야 하리니, 필히 각심(覺心)이 있어서 나가고 들어옴을 안다면 스스로 일물(一物)이 있어 몸 안에서 왕래하는 것이거늘, 어찌 비비기를 기다려 아는 것으로 촉(觸)이라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수음(受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阿難譬如有人。 談說醋梅口中水出。 思踏懸崖足心酸澀。 想陰當知亦復如是。 |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신 매실[醋梅]을 얘기하면 입에서 침이 나오고, 절벽을 올라갈 생각을 하면 발바닥이 시큰거리듯이, 상음(想陰)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
阿難如是醋說。 不從梅生非從口入。 如是阿難若梅生者。 梅合自談何待人說。 若從口入自合口聞 何須待耳。 若獨耳聞此水何不耳中而出。 想踏懸崖與說相類。 是故當知想陰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
아난아! 이러한 신 것이 말할 적에 매실에서 생기지도 않고,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이러한 것이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다면 매실이 스스로 말할 것이지 어째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면 입으로 들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귀를 기다려야 하는냐? 만약 귀로만 듣는다면 어째서 침이 귓 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냐? 절벽 오를 것을 생각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경우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상음(想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阿難譬如暴流波浪。 相續前際後際不相踰越。 行陰當知亦復如是。 阿難如是流性。 不因空生不因水有。 亦非水性非離空水。 如是阿難若因空生。 則諸十方無盡虛空成無盡流。 世界自然俱受淪溺。 若因水有。 則此暴流性應非水。 有所有相今應現在。 若即水性則澄清時應非水體。 若離空水。 空非有外水外無流。 是故當知行陰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
아난아! 마치 폭류(暴流)는 파랑(波浪)이 상속(相續)하되, 전제(前際)와 후제(後際)가 서로를 추월하지 않듯이, 행음(行陰)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흐름[流]의 성품은 공(空)을 인(因)하여 생기지도 않고, 물을 인해 있지도 아니하며, 물의 성(性)도 아니고, 허공과 물을 여읜 것도 아니니라. 이러한 것이 아난아! 만약 허공을 인해 생긴다면 시방의 무진(無盡)한 허공이 무진한 흐름[流]을 이루리니, 세계가 자연히 다 물에 빠지게 될 것이요, 만일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 폭류는 성품이 물이 아니리니, 유(有)와 소유(所有)의 상(相)이 지금 현재해야 할 것이며, 만약 물의 성품이라면 징청(澄清)할 때는 물의 체(體)가 아니리라. 만약 허공과 물을 여읜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지 않고 물의 밖에는 흐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행음(行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阿難譬如有人取頻伽瓶。 塞其兩孔滿中擎空。 千里遠行用餉他國。 識陰當知亦復如是。 阿難如是虛空。 非彼方來非此方入。 如是阿難若彼方來。 則本瓶中既貯空去。 於本瓶地應少虛空。 若此方入開孔倒瓶 應見空出 是故當知識陰虛妄。 本非因緣非自然性。 |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頻伽瓶*)에 허공을 가득 담아 두 구멍을 막고서 천리 길을 가서 타국에 배급하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식음(識陰)도 그와 같으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허공이 저 지방에서 온 것도 아니고, 이 지방으로 들어 온 것도 아니니라. 이러한 것이 아난아, 만약 저 지방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의 병 안에 기왕 허공을 담아 갔으니, 본래 병이 있던 지방은 허공이 줄었어야 하고, 만약 이 지방으로 들어와서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이면 허공이 나오는 것이 보여야 하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식음(識陰)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頻伽瓶; 迦羅頻迦(共命鳥)라는 새 모양의 병. 공명조가 一頭兩身의 새임에 비추어 하나의 몸체에 주둥이가 둘 달린 병인듯 하다. | |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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