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암록(碧巖錄) 제83칙 운문(雲門)의 고불로주(古佛露柱) | |
| ★雲門; 韶州雲門山光奉院文偃禪師(雪峰義存法嗣) 青原下六世 ★古佛露柱; 古佛(해묵은 부처)은 聖賢을, 露柱(佛殿 밖 正面에 서있는 무심한 기둥)는 凡夫衆生을 비유한 표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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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八三】舉。 | 【제83칙】 운문로주(雲門露柱) |
| 雲門示眾云。 古佛與露柱相交。是第幾機 (三千里外沒交涉。七花八裂) 自代云 (東家人死。西家人助哀。 一合相不可得) 南山起雲 (乾坤莫睹。刀斫不入) 北山下雨 (點滴不施。 半河南半河北)。 |
雲門이 示眾하여 이르되, "古佛과 露柱가 서로 사귐은 몇 번째 機인가" 하더니 (3천 리 밖으로 아무런 교섭없이 七花八裂*하다.) 스스로 대답하기를, (東家人이 죽으면 西家人이 슬픔을 보태는 법이라 一合相이 되어지지 않는다.) "南山에 일어난 구름이 (乾坤이 보이지 않고 칼로 베어도 들어가지 않는다.) 北山에 비를 내린다" 하였다. (빗방울을 골고루 뿌리지 않고 河南 절반 河北 절반에 내린다)。 |
| ★第幾機; 몇 번째 心作用의 階段인가. ★七花八裂; 通達無礙하고 自由自在함. ★南山起雲 北山下雨; 남산에서 일어난 구름(諸佛)과 북산에 내린 비(凡夫)는 시절인연에 따라 드러난 두 가지 형상일 뿐 근본성품이 다르지 않다는 不二法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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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雲門大師。出八十餘員善知識。 遷化後七十餘年。 開塔觀之。儼然如故。 他見地明白。機境迅速。 大凡垂語別語代語。 直下孤峻。 只這公案。如擊石火。 似閃電光。直是神出鬼沒。 |
雲門大師는 80여명의 善知識을 배출하고 遷化하신 뒤 七十餘年*에 開塔하여 보니 엄연하여 옛날 그대로였다. 그는 見地가 明白하고 機境이 迅速하여 무릇 垂語든 別語든 代語든 곧바로 孤峻히 내렸다. 다만 이 公案은 石火 튀기듯 하고 電光 번쩍이듯 하니 바로 이것이 神出鬼沒함이다. |
| ★七十餘年; 十七載의 오류인 듯. 【雲門匡真禪師廣錄卷下】에 「師께서 歸寂하신 後 十七載에」 웅무군 절도추관 완소장(阮紹莊)의 꿈에 나타나 塔 속에 오래 갇혀 있었으니 잠시 나갔으면 한다 하셨다 하매 이를 들은 소주자사 양연악(梁延鄂)이 칙령을 받들어 開塔해 보니 馬容이 여전하였다. 한 달 남짓 궐안에 모셔 공양한 뒤 다시 탑으로 송환했다고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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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慶藏主云。 一大藏教還有這般說話麼。 如今人多向情解上作活計。 道佛是三界導師四生慈父。 既是古佛。 為什麼卻與露柱相交。 若恁麼會。卒摸索不著。 有者喚作無中唱出。 殊不知宗師家說話。 絕意識絕情量。 絕生死絕法塵。 入正位更不存一法。 爾纔作道理計較。 便纏腳纏手。 且道他古人意作麼生。 但只使心境一如。 好惡是非。撼動他不得。 便說有也得無也得。 有機也得無機也得。 到這裏拍拍是令。 |
慶藏主*가 이르되, "一大藏教에 이런 說話가 있었나" 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대개 情解上에서 活計를 지어 佛은 三界의 導師요 四生의 慈父시니 기왕 古佛이신데 무엇 때문에 露柱와 서로 교섭하겠는가 하거니와 만일 그렇게 안다면 끝내 摸索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자는 無中唱出*이라고 지어 부르는데 宗師家가 說話를 너무 알지 못하는 것이다. 意識이 끊기고 情量도 끊기고 生死도 法塵도 끊겨서 正位에 들어서면 더는 一法이 존재하지 않는지라 너희가 道理나 計較를 짓기만 하면 곧 다리가 얽히고 손이 얽혀드는 것이다. 자 말해보라. 저 古人의 뜻이 무엇인가? 단지 心과 境을 하나같게만 한다면 好惡是非가 그를 흔들어대지 못할 것이라 곧 有여도 좋고 無여도 좋고 有機여도 그만 無機여도 그만이라 하리니, 이 속에 이르면 拍拍이 令*이리라. |
| ★慶藏主; 【大慧普覺禪師宗門武庫】에 「총림에 널리 알려진 촉(蜀)사람으로 진여(眞如:慕喆真如), 회당(晦堂:黃龍祖心), 보각(普覺:黃龍慧南) 등의 큰 스님들을 두루 참견하였다. 여산[廬阜]을 游行하다 都城에 들어가 法雲圓通禪師를 뵙고자 秀大師와 함께 갔는데 秀는 參堂했으나 慶藏主에게는 '다른 곳으로 가보라 자리가 나거든 參堂케 하겠다'고 하였다. 후에 慶藏主가 병으로 누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秀)가 나아가 고통받는 그를 위문코자 했으나 산문(山門)에 여가가 없었는지라 몰래 나가서 경(慶)을 위문했는데, 慶이 서신으로써 원통에게 '秀가 규구(規矩)를 어기고 여기에 왔었다'고 통지하매 원통이 서신을 받아보고 야참(夜參)에 '이 자가 참으로 소인배로구나. 秀는 도의(道義) 때문에 規矩를 어기고 출원(出院)하여 너의 병문안을 했는데 도리어 이를 고자질을 하니 어찌 제대로 된 사람의 소행이겠는가' 하고 크게 꾸짖었다. 경이 이를 듣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총림에서 이를 두고 '慶이 圓通의 1구(詬:꾸지람)를 만나 죽었다'고 한다.」고 썼다. ★無中唱出; 없는 데서 뽑아내다. 허구를 조작해내다. ★拍拍是令; 박자[拍] 박자가 명령[令]이다 함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정령(正令)이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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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祖先師道。 大小雲門元來膽小。 若是山僧。 只向他道第八機。 他道。古佛與露柱相交。 是第幾機。 一時間且向目前包裹。 僧問。未審意旨如何。 門云。一條絛三十文買。 他有定乾坤底眼。 既無人會。 後來自代云。 南山起雲北山下雨。 且與後學通箇入路。 所以雪竇只拈他定乾坤處 教人見。 若纔犯計較露箇鋒鋩。 則當面蹉過。 只要原他雲門宗旨。 明他峻機。 所以頌出云。 |
五祖先師께서 이르시기를 "大小雲門이 元來 담이 작구나 만일 山僧이었다면 다만 그를 향해 '第八機*다'고 했겠다" 하셨다. 그가 "古佛과 露柱가 相交하는 것은 몇 번째 機인가"라 말하여 한 순간 그냥 눈앞에 꾸려만 놓았다. 僧이 "잘 모르겠습니다.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운문이 "노끈 한 가닥은 30문(文)이면 산다" 했으니, 그에게는 乾坤을 平定하는 그런 눈이 있었으나 기왕 理會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後에 와서 스스로 대답하되, "南山에 구름이 일어 北山에 비를 내린다"고 하여 後學들에게 통할 하나의 入路를 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雪竇가 그 乾坤平定處만을 찝어내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한 것인데 만약 잠깐만이라도 計較를 범하여 어떤 봉망(鋒鋩:뾰쪽한 끝)을 드러낸다면 곧 차과(蹉過:어긋남)를 맞게 되리니, 다만 저 雲門 宗旨의 근원만을 추구하여 그의 준수한 機를 밝혀야 하리라. 그래서 송출(頌出)하여 이르되 |
| ★第八機; 8방면(동서남북, 4간방)의 機. 【法演禪師語錄卷上】에는 第四機라 썼다. 「大小大雲門大師가 元來小膽이로다. 四面(동서남북)으로 '古佛與露柱相交'를 말하는 것은 第四機이거늘 한참 생각하고서 도리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낯가죽 두께가 세 치(寸)이고 불손한 말을 뱉은 것이다. 臨濟의 棒으로 어느 날 三頓(60방)을 때렸으면 좋겠지만 누가 그 독수를 받아주겠느냐. 비록 그렇듯 罪過가 하늘을 덮더라도 용서하고 봐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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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山雲 (乾坤莫睹。刀斫不入) 北山雨 (點滴不施。 半河南半河北) 四七二三面相睹 (幾處覓不見。 帶累傍人。 露柱掛燈籠) 新羅國裏曾上堂 (東湧西沒。 東行不見西行利。 那裏得這消息來) 大唐國裏未打鼓 (遲一刻。還我話頭來。 先行不到。末後太過) |
南山의 구름 (천지를 볼 수 없고 칼로 베어도 들어가지 않는다) 北山의 비라니 (빗방울 내림을 두루 베풀지 않고 절반은 河南 절반은 河北에 내린다) 四七二三이 얼굴을 서로 마주보더라도 (여러 곳에서 찾아도 보지 못하고 옆 사람에게 누만 끼치는 것이니 露柱에다 燈籠을 걸거라.) 新羅國에서는 일찍이 上堂했고 (東湧西沒*이로구나. 東으로 가서는 西로 간 利益을 보지 못한다니 이느 속에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大唐國에서는 打鼓도 안했다. (一刻이 늦다니 내게 話頭를 돌려 오는구나. 먼저 가도 이르지 못하고 끝에 가도 크게 지나친다) |
| 苦中樂 (教阿誰知) 樂中苦 (兩重公案。使誰舉。 苦便苦樂便樂。 那裏有兩頭三面來) 誰道黃金如糞土 (具眼者辨。試拂試看。 阿剌剌。可惜許。 且道是古佛是露柱) |
苦 가운데 樂이요 (누구더러 알라는 것인가) 樂 가운데 苦라니 (兩重公案을 누구더러 거론하게 하는가. 苦는 곧 苦이고 樂은 곧 樂이거늘 어느 속에 兩頭三面*이 있어 왔으리오.) 누가 黃金을 糞土와 같다고 말하는가. (具眼者의 辨이지만 시험삼아 털어 보면 재잘거림[阿剌剌*]인지라 애석하다 하겠다. 말해보라. 이것이 古佛인가 露柱인가.) |
| 나[露柱]와 佛祖가 相交하는 일은 南山의 구름과 北山의 비와 같은 시절인연일 뿐 근본성품은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신라[遠:佛]와 당[近:我]에는 차별함이 있고 糞土가 黃金과 같아지지는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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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苦中樂 樂中苦; 苦 속에서 樂을 찾고, 樂 속에서도 苦의 본질을 느끼니 苦와 樂은 대립이 아닌 상호 의존적 관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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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七; =28. 西天 28祖. ★二三; =6. 東土 6祖. ★露柱掛燈籠; 멍청한 나 자신[露柱]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밝혀라는 의미. ★東行不見西行利; 밖[東]을 향해 아무리 찾아봐도 나 자신[西]을 돌아보아 얻는 진정한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뜻. ★東湧西沒; 「六種震動」 중 하나. 東쪽은 솟아오르고 西쪽은 가라앉는 同時發生的 진동. 세상을 뒤흔들 만큼 충격적이라는 뜻. ★兩頭三面; 생각이 분란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모양새를 비유. ★아랄랄(阿剌剌); 阿喇喇. ①쉬지 않고 재잘대다. ②공포, 놀라움을 형용하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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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山雲北山雨。 雪竇買帽相頭。看風使帆。 向劍刃上與爾下箇注腳。 直得四七二三面相睹。 也莫錯會。 此只頌古佛與露柱相交。 是第幾機了也。 後面劈開路。 打葛藤要見他意。 新羅國裏曾上堂。 大唐國裏未打鼓。 雪竇向電轉星飛處便道。 苦中樂樂中苦。 雪竇似堆一堆七珍八寶。 在這裏了。 所以末後有這一句子。云。 誰道黃金如糞土。 |
「南山의 雲, 北山의 雨」라 했는데 雪竇가 매모상두(買帽相頭*), 간풍사범(看風使帆*)하여 칼날 위를 향해 너희에게 한 注腳을 내려 주었으니 곧바로 四七二三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더라도 또한 錯會하지는 말라. 이는 다만 「古佛과 露柱의 相交하면 이는 第幾機인가」를 頌했을 뿐이며, 뒷 부분에서 길을 쪼개 열고 打葛藤하여 그의 뜻을 보게 하고자 「新羅國 속에서는 일찍이 上堂했으나 大唐國 속에서는 아직 打鼓도 안했다」고 한 것이다. 雪竇가 電轉星飛處*를 향해 곧 말하기를, 「苦中樂이요 樂中苦라」 하니 雪竇는 쌓여진 한 무더기 七珍八寶가 그 속에 있는 듯 하다. 그래서 末後에 이 一句가 있어 이르되 「누가 黃金을 糞土같다 말하는가」 하였다. |
| ★買帽相頭; 머리에 맞게 모자를 산다 함은 뛰어난 임시변통책으로 機를 따라 教化함을 비유하는 成語이다. ★看風使帆; 바람을 보고 돛을 부린다 함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한다는 뜻. ★向劍刃上; 劍刃(칼날) 위란 목숨을 걸어야 할 험난한 修行旅程을 의미한다. ★電轉星飛處; 번개 번쩍이고 유성이 나는 곳. 온갖 葛藤의 근원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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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此一句是禪月行路難詩。 雪竇引來用。 禪月云。(君不見) 山高海深人不測。 古往今來轉青碧。 淺近輕浮莫與交。 地卑只解生荊棘。 誰道黃金如糞土。 張耳陳餘斷消息。 行路難行路難。 君自看。 且莫土曠人稀。 雲居羅漢。 |
이 一句는 禪月의 《行路難》이라는 詩인데 雪竇가 끌어와서 쓴 것이다. 禪月이 말하기를, 「그대 보지 못했는가(君不見*) 山이 높고 바다가 깊어야 사람이 측량치 못한 채 예부터 지금껏 푸르고 푸르러가는 것이니 편협하고 경박한 사람과는 더불어 사귀지 말게나. 낮은 땅에서만 가시덤불이 생기거늘 누가 黃金을 두고 썩은 흙[糞土] 같다 하리오. 張耳와 陳餘가 消息이 끊기면 갈길이 험란하고 갈길이 험란하리니 그대 스스로 살피게나.」라 하였으니, 또한 땅은 넓은데 사람이 드물어 구름 위에 사는 羅漢이지도 말지어다. |
| ★君不見; 원문에는 있으나 여기에 누락되었다. '君不見'으로 시작하여 '君自看'으로 끝을 맺었다. ★張耳陳餘;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진말(秦末) 한초(漢初)의 현자(賢者)로 어려운 시기에 서로 문경지우(刎頸之友)였으나 후에 서로 원수가 된다. 겸양과 신뢰의 마음이 없고 교만하여 각자 형세변화에 따라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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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路難》: 李白(701~762)의 《行路難》을 빗대어 禪月대사 貫休(832-913)가 쓴 시. 李白의 《行路難》 「금술잔에는 값비싼 청순하고 좋은 술이 가득하고 (金樽清酒斗十千), 옥쟁반에는 만 냥 가치의 별미가 가득하건만 (玉盤珍羞直萬錢。) 나는 잔과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삼킬 수가 없어 (停杯投箸不能食), 칼 뽑아 춤 추며 주위만 살피니 마음 속이 망연하도다 (拔劍四顧心茫然)。 黃河를 건너자니 단단한 얼음이 大川을 가로막고 (欲渡黃河冰塞川), 太行山을 오르자니 온 산 가득한 흰 눈이 가로막는구나 (將登太行雪滿山)。 姜尚처럼 한가할 때 碧溪邊에 앉아 낚시나 하고 싶기도 하고 (閒來垂釣碧溪上), 忽然히 또 伊尹처럼 꿈 속에 배를 타고 太陽邊을 지나고도 싶은데 (忽復乘舟夢日邊)。 行路가 어렵구나! 行路가 어렵구나! (行路難!行路難!) 갈림길이 이다지도 많은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多歧路,今安在?) 언젠가는 이 역경을 이겨낼 날이 오리라 굳게 믿고 (長風破浪會有時), 그때 나는 돛을 높이 올려 멀리 滄海를 넘으리라 (直掛雲帆濟滄海)。」 [報國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하며 반드시 이 역경을 극복하리라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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