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舉。 | 【제80칙】 조주(趙州)의 갓난아기[初生孩子*] |
僧問趙州。 初生孩子。還具六識也無 (閃電之機。說什麼初生孩兒子) 趙州云。急水上打毬子 (過也。俊鷂趁不及。 也要驗過) 僧復問投子。 急水上打毬子。意旨如何 (也是作家同驗過。還會麼。 過也) 子云。念念不停流 (打葛藤漢)。 |
중(僧)이 조주(趙州)에게 물어 "갓난아기도 6식(六識*)을 갖추지 않았습니까?" 하니 (난데없이 무슨 갓난아기를 말하느냐) 趙州가 "급물살 위에 공을 보낸다" 하였다. (너무했다. 빼어난 새매[俊鷂]도 쫓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시험해봐야 한다.) 僧이 다시 투자(投子)에게 물어 "'급물살 위에 공을 보낸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하자 (作家들도 똑같이 경험한다. 알겠느냐? 지나쳤다.) 투자는 "순간순간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하였다. (葛藤 때리는 놈이로다.)。 |
★初生孩子; 初生은 처음 태어난 孩子는 어린 아기. ★急水上打毬子; 급류 위에 공을 띄워 보내면 물결 출렁이는 대로 쉬지 않고 따라 흐른다. 우리의 6식이 그러한지라 世波를 쫓아 끊임없이 온갖 妄塵을 받아들여 내 안의 明鏡처럼 본디 淸淨한 佛性의 本面目이 흐려지매 實相을 비추어보지 못하고 顚倒하여 妄想을 일으키고 煩惱의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이다. 어찌 본래의 面目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으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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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六識。教家立為正本。 山河大地。日月星辰。 因其所以生。 來為先鋒。去為殿後。 古人道。 三界唯心。萬法唯識。 若證佛地。 以八識。轉為四智。 教家謂之改名不改體。 根塵識是三。 前塵元不會分別。 勝義根能發生識。 識能顯色分別。即是第六意識。 第七識末那識。 能去執持世間一切影事。 令人煩惱。不得自由自在。 皆是第七識。 到第八識。亦謂之阿賴耶識。 亦謂之含藏識。 含藏一切善惡種子。 |
이 六識을 교법문중[教家]에서 세워 正本을 삼으니 山河大地와 日月星辰이 그 까닭으로 인하여 생겨나거니와 옴에는 선봉(先鋒)이 되고 감에는 전후(殿後*)가 된다. 古人(法眼文益)이 이르되 '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萬法이 오직 식(識)이다' 하니, 만일 佛地를 증득하면 八識*으로써 四智*가 되게 굴리려니와 教家에서 일러 '名은 바뀌되 體는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根塵識* 이 셋이란 前塵은 원래 分別할 줄을 모르지만 勝義根*은 能히 識을 發生시키며 識은 能히 分別을 顯色하니, 곧 이것이 第六意識이다. 第七識인 末那識*은 能히 가서 世間의 모든 影事를 執持하여 사람을 煩惱케 하고 自由自在치 못하게 하는데 다 이것이 第七識이다. 第八識에 이르러서는 또한 阿賴耶識*이라 하기도 하고 含藏識이라고도 하니 一切의 善惡種子를 含藏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
★殿後; 퇴각하는 군대의 맨 뒤에 남아서 적군의 추격을 가로막는 군대. ★四智(catvāri jñānāni); 佛果의 四智 즉 大圓鏡智, 平等性智, 妙觀察智, 成所作智. 大智度論卷27에서는 四智를 道慧, 道種慧, 一切智, 一切種智라 하고 있다. ★根塵識; =根境識. 어떤 境(경계)을 취하는 작용을 하는 것을 根이라 하고, 所緣(心識이 마주하는 바)을 境, 能緣을 識이라 한다. 六根六境六識을 十八界라 한다. ★勝義根; =正根. 눈에 보이는 외형적 眼耳鼻舌身 五根을 扶塵根이라 하고, 눈으로 볼 수 없는 5근의 실체를 正根 혹은 勝義根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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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識; 眼耳鼻舌身의 五識과 第六 意識, 第七 末那識, 第八 阿賴耶識. ★末那識(manas-vijñāna); 「意」라 譯하는 唯識論에서 말하는 八識 중 第七識. 意識을 일으키는 思量의 주체로 意識과 구별하여 思量識이라고도 한다. 我為法,故名末那。我法二執之根本也。 ★阿賴耶識(ālaya-vijñāna); 阿羅耶識, 阿黎耶識, 阿剌耶識, 阿梨耶識. 이 識이 宇宙萬有의 根本이 되고,萬有를 含藏하며, 存在하여 不失케 하므로 故로 藏識이라 부른다.또 그로 因해 能히 萬有의 種子가 含藏生長하니, 故로 또한 種子識이라 稱한다. 또 諸法의 根本이 된다 하여 「本識」이라고도 하고, 諸識作用의 最強者라 하여 「識主」라고도 한다. ★阿摩羅識(amala-vijñāna); 阿末羅識、菴摩羅識、唵摩羅識、庵摩羅識. 譯하여 無垢識, 清淨識, 真如識, 如來識이라 하는 第九識이다. 或說에는 第九識을 별도로 두지 않고 第八識의 果上之名으로 認定하기도 한다. 迷惑을 遠離하여 本自清淨한 人心의 本來面目이라 하겠다. 《金剛三昧經》에 佛께서 이르시되, 「諸佛如來는 언제나 一覺으로 諸識을 굴려 庵摩羅에 들게 하느니라. 왜냐? 一切眾生의 本覺은 항상 一覺으로 諸眾生을 깨우쳐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本覺을 얻어 온갖 情識이 空寂無生함을 깨닫게 하나니, 어째서인가? 決定한 本性은 본래 不動하기 때문이니라. (諸佛如來常以一覺而轉諸識入庵摩羅。何以故?一切眾生本覺,常以一覺覺諸眾生, 令彼眾生皆得本覺,覺諸情識空寂無生。何以故?決定本性本無有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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這僧知教意。故將來問趙州道。 初生孩子。還具六識也無。 初生孩兒。 雖具六識眼能見耳能聞。 然未曾分別六塵。 好惡長短。是非得失。 他恁麼時總不知。 學道之人要復如嬰孩。 榮辱功名。逆情順境。 都動他不得。 眼見色與盲等。 耳聞聲與聾等。 如癡似兀。其心不動。如須彌山。 這箇是衲僧家。真實得力處。 古人道。 衲被蒙頭萬事休。 此時山僧都不會。 若能如此。方有少分相應。 |
이 僧이 教意를 아는지라 故로 끌어다가 趙州에게 '갓난아기[初生孩子]는 六識을 갖췄습니까?' 하고 물었다. 갓난 어린애는 비록 六識을 갖춰 눈으로 보고 귀로는 듣지만 그러나 아직 六塵의 好惡과 長短, 是非와 得失을 分別한 적이 없거니와, 그가 이럴 때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學道인 사람이 다시 嬰孩와 같기를 바라거든 榮辱功名과 역정순경(逆情順境)으로 도무지 옴짝달싹할 수 없어도 眼으로 色을 보되 맹인과 같이 하고 耳로 聲을 듣되 농아와 같이 하여 어리석은 바보인 듯 그 마음이 須彌山처럼 不動하다면 이것이 바로 衲僧家의 真實한 得力處(도움이 되는 곳)이다。 古人(石頭希遷)이 이르되, 「누더기 이불[衲被]을 머리에 덮어쓰고 萬事를 쉬니 이 때 山僧은 아무 것도 모른다네.(草庵歌)」라 하니 만일 이럴 수만 있다면 바야흐로 적으나마 相應하리라。 |
雖然如此。 爭奈一點也瞞他不得。 山依舊是山。水依舊是水。 無造作。無緣慮。 如日月運於太虛未嘗暫止。 亦不道我有許多名相。 如天普蓋。似地普擎。 為無心故。所以長養萬物。 亦不道我有許多功行。 天地為無心故。所以長久。 |
비록 그와 같다더라도 한 점도 그를 속이지 못하는 것을 어쩌겠는가. 山은 依舊히 山이요, 물은 의구히 물인지라 造作이 없고 연려(緣慮*)도 없음이 마치 해와 달이 太虛를 運行하되 멈춘 적 없고, 내게 許多한 이름과 모양이 있노라 말하지도 않음과 같다. 하늘이 두루 덮 듯, 땅이 두루 받들 듯, 無心한 까닭에 그래서 萬物을 長養하는 것이요, 또한 내게 許多한 功行이 있노라 말하지도 않거니와, 天地는 無心하므로 그래서 長久한 것이다. |
若有心則有限齊。 得道之人亦復如是。 於無功用中施功用。 一切違情順境。皆以慈心攝受。 到這裏。古人尚自呵責道。 了了了時無可了。 玄玄玄處直須呵。 又道。事事通兮物物明。 達者聞之暗裏驚。 又云。入聖超凡不作聲。 臥龍長怖碧潭清。 人生若得長如此。 大地那能留一名。 然雖恁麼。更須跳出窠窟始得。 |
마음이 있으면 곧 한제(限齊:制限)가 있듯이 得道한 사람도 역시 그와 같아서 無功用 중에 功用을 베풀되 一切의 違情順境*을 다 慈心으로 攝受하지만, 이에 이르러 古人*은 오히려 스스로 呵責하여 '了了하고 了할 때 가히 了할 것을 없애고 玄玄하고 玄한 곳도 곧바로 모름지기 꾸짖어라.' 하였다. 또 이르되, '事事에 通하고 物物에도 밝거든 통달한 자도 듣고 암암리에 놀란다*' 하였고, 또 '凡夫를 超越하여 聖人에 들어서서 소리내지 않으면 臥龍도 碧潭의 맑음을 길이 두려워 하려니와 人生이 만약 이렇듯 길어진다면 大地에 어찌 한 이름만을 머물게 하리오*.' 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다시 모름지기 窠窟을 跳出해야 한다. |
★逆情順境; 뒤집힌 사정과 순조로운 지경(상황). ★違情順境; 어긋난 사정과 순조로운 상황. ★緣慮; 境界에 攀緣하여 일어나는 事物에 대한 思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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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人; 洪州鳳棲同安院常察禪師(洞山良价_九峯道虔 法嗣; 青原下六世) 【景德傳燈錄卷第29】 「同安察禪師十玄談」 中 《일색(一色)》 고목암전(枯木巖前*)에 갈림길이 많아 (枯木巖前差路多) 행인들이 여기 이르러 모두 잘못된 길로 빠지거니와, (行人到此盡蹉跎) 백로(白鷺:鷺鸞)가 눈 위에 서도 색이 같지 않고 (鷺鸞立雪非同色) 명월(明月)과 갈대 꽃도 그와 같지 못하다네. (明月蘆華不似他) 요료(了了)하고 요(了)할 때 가히 요(了)한 것을 없애고 (了了了時無可了) 현현(玄玄)하고 현(玄)한 곳도 또한 모름지기 꾸짖어서 (玄玄玄處亦須訶) 남 몰래 현중곡(玄中曲)을 부를 수 있도록 (殷勤為唱玄中曲) 공한 이치[空理]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잡아보지 않겠는가 (空裏蟾光撮得麼). ※枯木巖前; 「枯木禪(私禪)」을 뜻한다. [五燈會元卷第六]에 어느 노파가 한 암주를 20년간이나 여인들을 시켜 공양하였는데, 하루는 여인더러 암주를 안아주면서 물어보게 하였다. 여인이 "이럴 때는 어때요?" 하자, 암주는 "고목(枯木)이 차거운 바위[巖]에 기대니 삼동(三冬)에도 따뜻한 기운이 없소." 하니, 여인이 노파에게 그 일을 전하매, 노파가 "내가 20년을 저따위 속된 놈을 공양했구나." 하고 암주를 내쫓고 암자를 불살라버렸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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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事通兮物物明 達者聞之暗裏驚; 洞山良价禪師의 《紫塞野人雪子吟》 中 한 구절. ★入聖超凡不作聲 臥龍常怖碧潭清 人生若得長如此 大地那能留一名; 【續古尊宿語要 第5卷】 常州華藏遯庵宗演禪師(南嶽下十六世:大慧宗杲法嗣) 章에 臥龍西堂(龍牙禪師 追慕堂)의 현판(懸板:掛牌)에 쓰여진 글이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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豈不見。教中道。 第八不動地菩薩。以無功用智。 於一微塵中。轉大法輪。 於一切時中。行住坐臥。 不拘得失。 任運流入薩婆若海。 衲僧家。到這裏。亦不可執著。 但隨時自在。 遇茶喫茶遇飯喫飯。 這箇向上事著箇定字也不得。 著箇不定字也不得。 |
어찌 보지 못했는가. 教中에 이르기를, 「제8 부동지(不動地)보살은 공용(功用)없는 지혜로 한 티끌 안에서 대법륜(大法輪)을 굴리고, 어느 때나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도 득실(得失)에 구애되지 않고 살바야(薩婆若:一切智)의 바다에 흘러들도록 맡겨둔다」 하니, 衲僧家도 이에 이르러서는 執著해서는 안될 것이라 단지 때를 따라 自在하게 차 오면 차 마시고 밥 오면 밥 먹거니와, 이런 向上事에는 어떤 定한 字로도 붙이지 못하고, 정하지 않은 字로도 붙이지 못한다*. |
★著箇定字也不得 著不定字也不得;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의미로 언어와 문자의 한계성을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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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室善道和尚示眾云。 汝不見小兒出胎時。 何曾道我會看教。 當恁麼時。 亦不知有佛性義。無佛性義。 及至長大。 便學種種知解出來。 便道我能我解。 不知是客塵煩惱。 十六觀行中。嬰兒行為最。 哆哆啝啝時。 喻學道之人離分別取捨心。 故讚歎嬰兒。 可況喻取之。 若謂嬰兒是道。 今時人錯會。 |
석실선도(石室善道)和尚*이 示眾해 말하기를, "너희는 보지 못하느냐. 아기가 태어나면서 '내가 教를 간파하여 아노라'고 말한 적 있더냐? 이와 같은 때에는 또한 佛性이라는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거니와 長大하기에 이르러 문득 갖가지 지식을 배우고 이해가 나와서야 곧 '내가 능히 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객진번뇌(客塵煩惱)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6관행(觀行) 가운데 嬰兒行이 으뜸으로 삼고, 치치화화(哆哆啝啝:웅얼웅얼)하는 때를 學道人이 分別하고 取捨하는 마음을 여의는 때에 비유하니, 그 때문에 嬰兒를 讚歎하거니와 가히 하물며 비유하여 取함이리오. 만일 嬰兒를 일러 道라고 한다면 지금의 사람들이 잘못 안 것이다." 하였다. |
★石室善道和尚; 石頭希遷_長髭曠禪師 法嗣, 青原下三世 ★客塵煩惱(akasmāt-kleśa); 외부에서 들어와서 청정한 근본성품을 오염시키는 번뇌. ★16觀行; 16觀의 修行. 16觀: 日想觀, 水想觀, 地想觀, 寶樹觀, 寶池觀, 寶樓觀, 華座觀, 像想觀, 真身觀, 觀音觀, 勢至觀, 普觀, 雜想觀, 上輩觀, 中輩觀, 下輩觀. ★嬰兒行; 《涅槃經 卷第18》에 말씀하신 바 五行(聖行,梵行,天行,病行,嬰兒行)의 하나. 보살이 분별을 여의어 행하는 大行이 마치 嬰兒가 짓는 바와 같은지라 嬰兒行이라 하니, 이는 自利의 嬰兒行이요, 凡夫와 二乘이 菩薩行을 시작하는 것이 嬰兒와 같은지라 보살이 그들을 대비심으로 化度하니 이는 利他의 嬰兒行이다.【大乘義章12】 ★可況喻取之; 天眞性을 嬰兒에 비유하여 그것을 取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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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泉云。 我十八上。解作活計。 趙州道。 我十八上解破家散宅。 又道。我在南方二十年。 除粥飯二時。 是雜用心處。 |
南泉(馬祖道一法嗣)이 이르되, "나는 열여덟 살 전에 활계(活計:生計)를 꾸밀 줄 알았다." 하자, 趙州(南泉普願法嗣)가 "저는 열여덟 전에 집안이 망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더니 다시 "저는 南方에서 20년을 있었는데, 죽밥 먹는 두 때를 제하고 다 쓸데없는 마음 쓸 곳이었습니다" 하였다. |
★我十八上便解作活計; 「上」은 「이전의 순서나 시간(次序或時間在前的)」, 「十八上」은 「열여덟 살 이전」이라는 뜻이다. 【五燈會元卷第18】 福州普賢元素禪師(上封才禪師法嗣)章에는 「당(堂)에 올라 남전(南泉)이 "나는 18세 전에 곧 活計를 지을 줄 알았지만, 주머니에는 개미허리 멜 실도 없고 부엌에는 파리 달려들 나물죽(糝)도 없었다 (我十八上便解作活計。囊無繫蟻之絲。廚乏聚蠅之糝。)" 하자, 趙州가 "저는 18살 전에는 집안이 파산하여 남쪽에서 싸게 사고 북쪽에서 비싸게 팔면서 장래를 점검했습니다(我十八上便解破家散宅。南頭買賤。北頭賣貴。點檢將來。)"」라 썼다. 繫蟻: 멜 계(繫), 개미 의(蟻). 또 馬祖(709~788)는 「어린나이(幼歲)에 資州唐和尚에 의해 落髮하고 渝州圓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하고 있고, 南泉(748~835) 은 어려서 공(空)이라는 宗旨를 흠모하여 唐至德 二年(757) 아홉 살 때 大隗山大慧禪師에 의지해 受業하고 嵩嶽을 參詣하여 具足戒를 받았다 하니, 위의 담화는 단순한 생계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除粥飯二時 是雜用心處; 「밥 먹는 일에만 열심이었고 다른 겨를이 없었다」 함은 「그때 이미 無心 또는 平常心을 체득했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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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山問僧。菩薩定中。 聞香象渡河。歷歷地。 出什麼經。 僧云。涅槃經。 山云。定前聞定後聞。 僧云。和尚流也。 山云。灘下接取。 |
曹山이 僧(彊德上坐)에게 물어 "菩薩은 定中에 香象이 강을 건너는 歷歷한 경지를 듣는다는데 어느 經에 나오는 말인가?" 하니, 僧이 "涅槃經입니다." 하였다. 山이 "定前에 듣고 定後에도 듣는다네." 하자 僧이 "和尚께서는 흐르시네요." 하매, 山이 "탄(灘) 아래서 接取한다네." 하였다. |
【景德傳燈錄】 撫州曹山本寂禪師 章에 「선사가 강덕(彊德)상좌에게 "菩薩은 入定하여 香象渡河를 듣는다 하니, 어느 經에 나오는 말인가?" 하매 "涅槃經에 나옵니다." 하였다. 선사가 "入定 前에 듣고, 定 後에도 듣는다네." 하니, "和尚께서는 流하시네요." 하매, 선사가 "道 또한 너무 큰 道라서 겨우 절반을 얻었다네." 하자, 상좌가 "和尚께서는 어찌 하셨습니까?" 하니, 선사가 "灘下에서 接取했다네." 하였다」 *香象渡河; 香象은 香味를 지닌 큰 코끼리이다. 香象은 몸집이 커서 강을 건널 때 발이 바닥까지 닿아서 물흐름을 차단한다. 그렇듯 보살도 철저히 截流(分別妄想心[流]을 截斷)해야 한다. 《優婆塞戒經》卷一 三種菩提品 第五에: 「선남자야!항하강을 토끼, 말, 향상의 세 동물이 함께 건너는데, 토끼는 바닥에 닿지 않고 물에 떠서 건너고, 말은 닿기도 하고 닿지 않기도 하지만 코끼리는 바닥에 다 닿느니라. 항하강이란 곧 12因緣의 강이거니와, 聲聞이 건널 때는 저 토끼와 같고, 緣覺이 건널 때는 저 말과 같으며, 如來가 건널 때는 저 香象과 같으니라.」 하셨으니, 이는 보살이 철저하고 심오한 수행을 통해 여래의 悟道境界로 나아감이 마치 香象이 강을 건너매 발이 바닥에 닿듯이 행한다는 것이다. ★和尚流也; 흐른다(流) 함은 截流하지 못했다는 뜻. ★灘下接取; 탄(灘:急流) 아래서 접해 취한다 함은 급류를 따라 玄妙한 真理를 획득한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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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楞嚴經云。 湛入合湛入識邊際。 又楞伽經云。 相生執礙。想生妄想。 流注生則逐妄流轉。 若到無功用地。猶在流注相中。 須是出得第三流注生相。 方始快活自在。 |
또 능엄경(楞嚴經)에 이르기를, 「잠(湛)이 湛에 들어가 합하면 識의 邊際로 들어간다」 하였고, 또 능가경(楞伽經)에서는 「相이 執礙(집착의 장애)를 낳고 想이 妄想을 낳아서 流注가 생기면 곧 妄을 쫓아 流轉하거니와, 無功用地에 도달하더라도 아직 流注相 안에 있는 것이니, 모름지기 第三流注生相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快活自在할 것이니라.」 하였다. |
★잠입합잠 입식변제(湛入合湛 入識邊際); 《首楞嚴經 卷第10》에 「네가 지금 因界의 淺深을 알고자 하거든(汝今欲知因界淺深) 오직 色과 空이 色의 邊際요 (唯色與空是色邊際), 오직 觸과 離가 受의 邊際이며 (唯觸及離是受邊際), 오직 記와 忘이 想의 邊際요 (唯記與忘是想邊際), 오직 滅과 生이 行의 邊際이고 (唯滅與生是行邊際), 湛이 들어가 湛에 合하여 識의 邊際로 돌아가나니 (湛入合湛歸識邊際), 이 五陰이 원래 重疊하여 生起하되 (此五陰元重疊生起) 生은 識을 因하여 있고 滅은 色을 좇아 사라지거니와 (生因識有滅從色除) 이치로는 頓悟도 乘悟도 함께 사라지지만 (理則頓悟乘悟併銷) 사실로는 몰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례를 따라 다하느니라 (事非頓除因次第盡).」 또 「만일 이 청초하게 반짝거리는 원성(元性:원래의 성품)이 성품으로 원징(元澄:원래의 맑음)에 들어가서 일단 원습(元習:원래의 습기)을 맑히되 마치 파란(波瀾)이 소멸하고 맑은 물로 변하듯이 하면 행음(行陰)이 다했다고 한다. (若此清擾熠熠元性,性入元澄一澄元習,如波瀾滅化為澄水,名行陰盡 . . .)」하였으니, 「湛(清擾熠熠元性)이 湛(元澄)으로 들어가 합쳐져서 원습(元習)을 맑히므로써 행음(行陰)이 다하거든 識陰의 경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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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注相; 순간순간 생멸을 이어가는 유위법의 실상이 마치 물 흐르는 모양과 같다 하여 유주상(流注相)이라 한다. ★第三流注生相; 流注가 낳은 제3의 상(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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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溈山問仰山云。 寂子如何。仰山云。 和尚問他見解。問他行解。 若問他行解。某甲不知。 若是見解。 如一瓶水注一鉼水。 若得如此。皆可以為一方之師。 |
그래서 溈山이 仰山에게 물어 "寂子(仰山慧寂)는 어떠한가?" 하니, 仰山이 "和尚께서는 그 見解를 묻습니까, 行解*를 묻습니까? 그 行解를 물으신 것이라면 저는 알지 못합니다만 만일 見解를 물으신 것이라면 한 병의 물을 한 쟁반의 물에 붓는 것과 같겠습니다." 하였다. 만약 이와 같이 얻는다면 모두 가이 一方의 스승이 되리라. |
★行解; 마음이 취한 바 경상(境相:分別相). ★一瓶水注一鉼水; 한 병(瓶)의 물을 한 병(鉼:금속판)에 붓는다 함은 결국에는 '남음이 없음'을 의미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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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州云。急水上打毬子。 早是轉轆轆地。 更向急水上打時。 眨眼便過。 譬如楞嚴經云。如急流水。 望為恬靜。 古人云。譬如駛流水。 水流無定止。 各各不相知。諸法亦如是。 趙州答處。意渾類此。 |
趙州가 "急水 위에서 공(毬子)을 친다" 하니 일찌감치 자유자재히 구르는 경지[轉轆轆地]인데다 다시 急水위를 향해 칠 때는 눈 깜박하면 곧 지나쳐버릴 것이니, 楞嚴經에서의 「急流의 물이 염정(恬靜*)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함과 같고, 古人(覺首菩薩)이 "마치 빠르게 흐르는 물은 물흐름에 고정된 멈춤이 없어 각각 서로 알지 못하듯이 諸法도 그러하다*." 함과 같다. 趙州가 답한 곳의 뜻이 온전히 이와 같다. |
其僧又問投子。 急水上打毬子。意旨如何。 子云。念念不停流。 自然與他問處恰好。 古人行履綿密。 答得只似一箇。更不消計較。 爾纔問他。早知爾落處了也。 孩子六識。雖然無功用。 爭奈念念不停。如密水流。 投子恁麼答。可謂深辨來風。 |
그 僧이 또 投子에게 물어 "急水上打毬子란 意旨가 무엇입니까?" 하자, 투자가 "순간순간 흐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니, 自然 그의 問處와 꼭 맞아 떨어지거니와, 古人의 行履가 주도면밀하여 答이 꼭 하나 뿐이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같다. 너희가 그에게 묻자마자 벌써 너희의 落處를 알아버린다. 갓난아기의 6식[孩子六識]이 비록 그렇듯 無功用이라지만 순간순간 멈추지 않는 촘촘한 물흐름 같음을 어쩌겠는가. 投子의 이러한 答은 가히 來風을 깊히 分辨했다 하리라。 |
駛(音史疾也)。 | 駛(音은 사[史]이고 빠르다[疾]이다)。 |
★恬靜; 안정하다. 고요하다. 평온하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13》 菩薩問明品 第10中 「覺首菩薩의 頌」에 『마치 강 속의 물이 다투어 분주히 흘러 가지만 각각 서로를 알지 못하듯이 모든 법도 그와 같다. (譬如河中水 湍流競奔逝 各各不相知 諸法亦如是 )』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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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竇頌云 | 설두(雪竇)의 頌 |
六識無功伸一問 (有眼如盲。有耳如聾。 明鏡當臺。明珠在掌。 一句道盡) 作家曾共辨來端 (何必。 也要辨箇緇素。 唯證乃知) 茫茫急水打毬子 (始終一貫。過也。道什麼) 落處不停誰解看 (看即瞎過也。 灘下接取) |
'六識無功'이 질문 하나를 던지매 (눈 있으나 맹인 처럼 귀 있어도 귀머거리 처럼 明鏡은 臺에 걸리고 明珠는 손바닥에 있다는 一句로 말하기를 다했다.) 作家가 일찍이 함께 分辨하고 실마리를 가져와 (왜 꼭 그래야 하겠는가만 또한 이런 흑백[黑白:緇素]을 따지려면 오직 證得해야만 이내 알리라.) 茫茫한 急水에 공을 보낸다 하거니와 (始終一貫하는데 지나쳤다. 무엇을 말하는가.) 落處가 멈추지 않거늘 뉘라서 살필 줄 알리오. (살피면 곧 보지 못하고 지나가나니 급류 하에서 接取할지어다.) |
佛性은 本來清淨, 本來無一物이니 功用 없음이 갓난아이[嬰兒]와 같다. 그러나 그 보배로운 明珠는 臺에 걸린 明鏡처럼 늘 내 안에 있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만물의 상을 비춰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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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識無功伸一問。 古人學道。養到這裏。 謂之無功之功。 與嬰兒一般。 雖有眼耳鼻舌身意。 而不能分別六塵。蓋無功用也。 既到這般田地。 便乃降龍伏虎。坐脫立亡。 如今人但將目前萬境。 一時歇卻。 何必八地以上。方乃如是。 雖然無功用處。 依舊山是山水是水。 雪竇前面頌云。 活中有眼還同死。 藥忌何須鑒作家。 蓋為趙州投子是作家。故云。 作家曾共辨來端。 |
「六識의 無功이 一問을 던졌다」 했는데, 옛사람이 道를 배우고 길러서 이 속에 이르나니 이를 無功의 功*이라 하거니와, 갓난아이와 더불어 한 가지 것이라서 비록 眼耳鼻舌身意가 있어도 六塵을 分別하지 못하니 거의 功用이 없는 것이다. 기왕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쉽게 이내 降龍伏虎하고 坐脫立亡하련만 지금의 사람들은 단지 目前의 萬境만을 가져다 一時에 쉬어버리는데, 왜 꼭 八地 이상이라야 비로소 이와 같을까? 비록 그렇게 功用 없는 곳이라 해도 依舊히 山은 山, 물은 물인 것이다. 雪竇가 앞서(41칙)의 頌에 이르기를, 「활중유안(活中有眼)이면 되려 죽은 것과 같거늘 써서는 안될 약으로 왜 꼭 작가를 감별하려드는가」 하였고, 대개가 趙州와 投子를 作家라 여기기에 그래서 「作家들이 일찍이 共辨하여 來端했다」고 한 것이다. |
茫茫急水打毬子。 投子道。念念不停流。 諸人還知落處麼。 雪竇末後教人自著眼看。 是故云。落處不停誰解看。 此是雪竇活句。 且道落在什麼處。 |
「茫茫한 急水에 毬子를 보낸다」 하니, 投子는 "念念에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러분은 혹시 落處를 아는가? 雪竇가 末後에 사람들에게 스스로 착안해 보라 했는지라 그래서 「落處가 멈추지 않거늘 누가 볼 줄 알리오」 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雪竇의 活句이거니와, 말해보라. 어디에 떨어져 있는 것이냐? |
★無功之功; 《五燈會元》卷13 疎山匡仁(洞山良价法嗣)章에 「師問洞山 : "말(言)이 있기 전에 대해 가르침을 청합니다(未有之言。請師示誨。)." 山曰。"대답하지 않으면 아무도 수긍해주지 않는다(不諾無人肯)" 師曰。"가히 공들일만 합니까?(還可功也無。)" 山曰。"네가 지금 공들이고 있지 않느냐?(你即今還功得麼。)" 師曰。"공들이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피할 곳:諱處)이 없습니다(功不得即無諱處。)" 山이 다른 날 上堂하여 "이 일을 알려거든 모름지기 고목에 꽃이 피어나듯 해야 비로소 거기에 계합할 것이다(欲知此事。直須如枯木生花。方與他合。)" 師問。"모든 것이 어그러지지 않았을 때는 어찌 합니까?(一切處不乖時如何。)" 山曰 "사리야, 이것은 공적에 공들이는 쪽 일이거니와 다행히 공들일 것 없는 공[無功之功]이 있는데 너는 왜 묻지 않느냐? (闍黎。此是功勳邊事。幸有無功之功。子何不問。)"------」 하였다. 이와 본문으로 미루어 공들일 것 없는 공이란 '갓난아이의 때묻지 않은 天眞함[本然淸淨]으로 通하는 길(道)'을 의미한다. ★降龍伏虎; 용과 범을 항복시킨다. 그 어떤 난관도 다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의 성어. ★坐脫立亡; 端坐하여 遷化하고, 直立하여 涅槃에 든다. 궁극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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