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69칙 남전획일원상(南泉畫一圎相)_南泉이 그린 동그라미

碧雲 2024. 10. 2. 07:37
垂示云。 수시(垂示)
無啗啄處。祖師心印。
狀似鐵牛之機。
透荊棘林。衲僧家。
如紅爐上一點雪。

平地上七穿八穴則且止。
不落寅緣。又作麼生。
試舉看。
도무지 쪼아볼 데가 없는 祖師의 心印은
무쇠소[鐵牛]의 정기(精機)와 같아서
형극(荊棘)의 길을 가야하는 수도승들에게는
이글거리는 용광로 위의 눈송이와 같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보통을 넘어 통달하는 일은 그만 두더라도
그 방면에 인연이 없을 때는 또 어떠한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七穿八穴; 七通八達과 同義語.
*寅緣; 특별한 인연. 
   
 【六九】舉。  【제69칙】 南泉의 동그라미[圓相]  
  南泉歸宗麻谷。
  同去禮拜忠國師。至中路
  (三人同行必有我師。
  有什麼奇特。
  也要辨端的)
  南泉於地上。畫一圓相云。
  道得即去
  (無風起浪。
  也要人知。擲卻陸沈船。
  若不驗過。爭辨端的)
  歸宗於圓相中坐
  (一人打鑼。
  同道方知)
  麻谷便作女人拜
  (一人打鼓。三箇也得)
  泉云。恁麼則不去也
  (半路抽身是好人。
  好一場曲調作家作家)
  歸宗云。是什麼心行
  (賴得識破。
  當時好與一掌。孟八郎漢)。
  남전(南泉), 귀종(歸宗), 마곡(麻谷)이
  함께 忠國師께 예배가다가 중간쯤에 이르러
  (三人이 同行하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 하니
  무슨 奇特한 것이라도 과연 있을지
  分辨해봐야 한다.)
  南泉이 땅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더니
  "말하면 곧 가겠다"고 하자,
  (바람 없는 데에 풍랑을 일으키고서
  배가 던져져 가라앉는다는 것도 알기를 바라는데
  경험해보지 않고서 어찌 그런 줄 알겠는가.)
  歸宗이 그 동그라미 안에 앉으매,
  (한 사람이 징을 쳐야
  같은 길 가는 사람들이 알게 된다.)
  麻谷이 곧 큰절을 올렸다.
  (한 사람이 북을 쳐야 세 사람도 치게 된다.)
  남전이 "그렇다면 가지 않겠다." 하니, 
  (도중에 몸을 뺐으니 훌륭했거니와,
  듣기 좋은 一場의 曲調이니, 作家요 作家로다.)
  歸宗이 "이 무슨 心行인가" 하였다.
  (다행히 알아차렸구나.
  當時에 一掌을 쳤어야 했다. 孟八郎漢이로다.)。
 
   
當時馬祖盛化於江西。
石頭道行於湖湘。
忠國師道化於長安。
他親見六祖來。
是時南方擎頭帶角者。
無有不欲升其堂入其室。
若不爾。為人所恥。
這老漢三箇。欲去禮拜忠國師。
至中路。做這一場敗缺。
馬祖가 江西에서 왕성히 敎化하고,
石頭는 湖湘에서 道를 行하고 있을 當時에
忠國師는 長安에서 道로 敎化하고 있었는데
그가 六祖를 親見하고 왔는지라
그 때 南方의 擎頭帶角*한 자라면
누구나 거기에 升堂入室하고 싶어 하였으며
그러하지 못하면 수치로 여겼었다.
이 老漢 셋이서 忠國師를 찾아뵈려고 가다가
중간 쯤에 이르러 이 사단(事端)을 일으켰다. 
*擎頭帶角; 머리를 들어올리고 뿔을 단, 즉 '걸출한 인물'에의 비유. 
南泉云。恁麼則不去也。
既是一一道得。
為什麼卻道不去。
且道古人意作麼生。
當時待他道恁麼則不去也。
劈耳便掌。
看他作什麼伎倆。
萬古振綱宗。
只是這些子機要。
所以慈明道。
要牽只在索頭邊。
撥著點著便轉。
如水上捺葫蘆子相似。
人多喚作不相肯語。
殊不知。此事到極則處。
南泉이 "그렇다면 안 가겠다" 한 것이야말로
이미 낱낱이 말을 뱉은 것이거늘
어째서 도리어 안 간다고 말한 것인가?
자 말해보라. 古人의 뜻이 무엇인가?
當時 그가 '그렇다면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마자
따귀를 후려치고서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폈더라면
萬古에 綱宗*을 떨쳐 일으켰으리라.
그러나 이는 다만 작은 機要*일 뿐이다.
그래서 慈明*이 이르기를,
 '끄는 욧점은 노끈 끝에 있다' 하였다.
건드리면 곧 구르는 것이
마치 물 위의 표주박을 누름과 같은지라
사람들은 수긍이 가지 않는 말이라고들 하는데
此事가 極則處에 이렀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須離泥離水。拔楔抽釘。
爾若作心行會。
則沒交涉。
古人轉變得好。
到這裏。不得不恁麼。
須是有殺有活。
看他一人去圓相中坐。
一人作女人拜。也甚好。
南泉云。恁麼則不去也。
歸宗云。是什麼心行。
孟八郎漢。又恁麼去也。
他恁麼道。大意要驗南泉。
南泉尋常道。喚作如如。
早是變了也。
南泉歸宗麻谷。卻是一家裏人。
一擒一縱。一殺一活。
不妨奇特。
모름지기 離泥離水*, 拔楔抽釘*해야 하련만
너희가 만약 마음을 지어 알려한다면
곧 아무런 교섭이 없다.
古人의 轉變*은 좋았다.
이 속에서는 그리하지 않으면 안되리니
반드시 殺도 있고 活도 있어야 했다.
보건대 한 사람은 圓相 안으로 가서 앉았고,
한 사람은 女人拜를 지었는데, 또한 매우 좋았다.
南泉이 "그렇다면 가지 않겠다" 하자
歸宗이 "이 무슨 心行인가" 하여
孟八郎漢이 또 이렇게 갔는데
그가 그리 말한 大意는 南泉을 시험하고자 함이다.
南泉는 평상시 말하기를 「如如라고 불러 지으면
일찌감치 변해버린 것이다」고 하였다.
南泉, 歸宗, 麻谷은 한 집안 사람인데
一擒一縱하고 一殺一活함이
奇特하여 마지 않았다.
*綱宗; 綱要(일의 으뜸 줄기가 될 만한 요점)와 宗旨(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機要; 기밀(機密)에 속(屬)하는 긴요(緊要)한 일.
*慈明; 潭州石霜楚圓慈明禪師(汾陽昭 法嗣) 南嶽下十世
*離泥離水; 진흙탕물을 벗어나다.  *拔楔抽釘; 쐐기를 뽑고 못을 빼다.
*轉變; 굴러 변화함. 상황에 따른 대응. 
   
雪竇頌云。 설두(雪竇)의 송(頌)
由基箭射猿
(當頭一路誰敢向前。
觸處得妙。未發先中)
遶樹何太直
(若不承當爭敢恁麼。
東西南北一家風。
已周遮多時也) 
千箇與萬箇
(如麻似粟。野狐精一隊。
爭奈得南泉何) 
是誰曾中的
(一箇半箇。更洛一箇。
一箇也用不得)
유기(由基)의 화살이 원숭이를 쏘매
(당면한 외길에 누가 감히 나아갈 것인가.
이르는 곳이 오묘한지라 쏘기 전에 이미 적중했다.)
나무를 돌았거늘 어찌 太直(매우 곧음)일 것이며,
(적중하지 않았다면 어찌 감히 그러겠는가。
온 천지가 一家의 氣風으로
이미 뒤덮인지[周遮] 오래다.) 
그 많은 것들을
(麻 같고 粟 같이 많은 野狐精 무리들이
南泉을 얻었음은 어찌 어쩌겠는가) 
누가 적중시킨 적이 있었던가.
(다 그만저만 한 데 하나 더해봐야
하나도 쓸모없다.)
相呼相喚歸去來
(一隊弄泥團漢。不如歸去好。
卻較些子)
曹溪路上休登陟
(大勞生想料。
不是曹溪門下客。
低低處平之有餘。
高高處觀之不足)。
復云。曹溪路坦平。
為什麼休登陟
(不唯南泉半路抽身。
雪竇亦乃半路抽身。
好事不如無。
雪竇也患這般病痛)
서로를 불러 되돌아 가서
(흙장난이나 하는 자들이 돌아감만 못하다니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
曹溪路上에 오르기를 그만두다니.
(큰 고생이 예상되면
曹溪의 門下客이 아니다。
낮은 데를 고르기에는 충분하나
높은 데를 바라보기에는 부족하다)。
다시 이르건대, 曹溪路는 坦平커늘
무엇 때문에 오르기를 그만 두는가.
(南泉만 半路抽身*한 것이 아니라
雪竇 또한 이내 半路抽身했으니,
好事가 없느니만 못하다.
雪竇도 이런 病痛을 앓았다니.)
*半路抽身; 중도에 몸을 빼다(빠져 나오다). 
   
由基箭射猿。
遶樹何太直。
由基乃是楚時人。
姓養。名叔。字由基。
時楚莊王出獵。
見一白猿。使人射之。
其猿捉箭而戲。
敕群臣射之。
莫有中者。
王遂問群臣。
群臣奏曰。由基者善射。
遂令射之。
由基方彎弓。
猿乃抱樹悲號。
至箭發時。
猿遶樹避之。
其箭亦遶樹中殺。
此乃神箭也。
雪竇何故卻言太直。
若是太直則不中。
既是遶樹。何故卻云太直。
雪竇借其意。不妨用得好。
此事出春秋。
「由基의 화살이 원숭이를 쏘매
나무를 돌았거늘 어찌 매우 곧음인가」라 했는데
유기(由基)는 楚 때의 사람이며
姓은 養이요, 名은 叔, 字가 由基이다.
時에 楚의 莊王이 사냥을 나가
흰 원숭이 한 마리를 보고 활을 쏘게 하였는데
그 원숭이가 화살을 잡아 희롱하는지라
신하들을 명하여 쏘게 하였으나
맞히는 자가 없었다.
왕이 이윽고 신하들에게 묻자
신하들이 由基란 자가 잘 쏜다고 이뢰매
마침내 그에게 쏘게 하였다.
유기가 바야흐로 활을 당기자
원숭이가 이내 나무를 안고 슬피 울다가
화살을 쏘기에 이르러서는
원숭이가 나무를 돌아 피했으나
그 화살 또한 나무를 돌아 맞혀 죽였으니
이는 곧 귀신의 화살[神箭]이었다.
雪竇는 어째서 도리어 太直이라 했을까.
만약 太直이었다면 곧 맞히지 못했으려니와
기왕 나무를 돌았는데 왜 太直이라 했겠는가.
雪竇가 그 뜻을 빌려 사용함이 훌륭해 마지 않다.
이 내용은 春秋에 나온다. 
有者道。遶樹是圓相。
若真箇如此。
蓋不識語之宗旨。不知太直處。
三箇老漢。殊途而同歸一揆。
一齊太直。
若是識得他去處。
七縱八橫。不離方寸。
百川異流。同歸大海。
所以南泉道。恁麼則不去也。
若是衲僧正眼覷著。
只是弄精魂。
若喚作弄精魂。
卻不是弄精魂。
어떤자들은 '遶樹는 圓相이다'라 하는데
만일 진짜 그렇다면
말의 宗旨도 모르고 太直處도 모르는 것 아닌가.
세 老漢이 길은 다르되 하나의 이치에 同歸하여
하나로 나란히 太直했거니와,
만약 그들이 간 곳을 識得한다면
七縱八橫하되 方寸*을 벗어나지 않고,
百川이 따로 흘러 大海로 同歸할 것이라
그래서 南泉이 '그렇다면 가지 않겠다' 한 것이다.
만일 이 衲僧의 正眼으로 엿본다면
다만 이는 精魂을 희롱한 것일 뿐이지만
그러나 精魂을 희롱했다고 하면
도리어 희롱하지 않은 것이다. 
五祖先師道。
他三人是慧炬三昧。
莊嚴王三昧。
雖然如此。作女人拜。
他終不作女人拜會。
雖畫圓相。他終不作圓相會。
既不恁麼會。
又作麼生會。
五祖 先師께서 이르시되
 '저 三人이 바로 慧炬三昧*요,
莊嚴王三昧*다' 하셨거니와
비록 그렇듯 女人拜를 올렸으나
그는 결코 女人拜라 여기지 않았고,
圓相을 그렸으되 결코 圓相이라 여기지 않았는데,
기왕 그리 여기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理會할 것인가. 
雪竇道。千箇與萬箇。
是誰曾中的。
能有幾箇。百發百中。
相呼相喚歸去來。
頌南泉道恁麼則不去也。
南泉從此不去。故云。
曹溪路上休登陟。
滅卻荊棘林。
雪竇把不定。復云。
曹溪路坦平。
為什麼休登陟。
曹溪路絕塵絕跡。
露裸裸赤灑灑。平坦坦翛然地。
為什麼卻休登陟。
各自看腳下。
雪竇가 「천 개, 만 개를
누가 일찍이 적중시켰던가」라 했는데
몇 개나 百發百中시킬 수 있겠는가?
「서로 를 불러 되돌아 갔다」는
 '그렇다면 가지 않겠다' 한 남전의 말을 頌한 것이다.
南泉이 이로부터 가지 않았는지라 그래서
「曹溪路上에서 오르기를 그쳐」
가시밭길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雪竇는 뚜렷히 결정하지 않은 채 다시
「曹溪路는 坦平하거늘
무엇 때문에 오르기를 그치오」라 했는데
曹溪路는 티끌도 종적도 끊겨서
露裸裸赤灑灑하고 平坦坦한 翛然地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오르기를 그만 두겠는가.
各自가 발 아래를 살필지어다. 
*方寸; ‘사람의 마음은 가슴속의 한 치 사방(四方)의 넓이에 깃들어 있다.’는 뜻으로,
 ‘마음(心)’을 달리 이르는 말.
*慧炬三昧; 法華經에 설하신 바 16 三昧의 하나.
이 삼매에 들어 平等 大慧의 횃불을 밝혀 世間無明의 어둠을 제거한다.
*莊嚴王三昧; 法華經에 설하신 바 16 三昧의 하나. 性品에 萬德을 갖추고,
緣因과 了因을 莊嚴하여 圓融圓妙하기 그지없는 삼매。
*翛然; 아무런 괘념(掛念)이 없어 自由自在한 모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