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75칙 오구(烏臼)의 굴방굴방(屈棒屈棒)

碧雲 2025. 1. 13. 06:23

 

*烏臼; 烏臼和尚. 馬祖道一禪師法嗣. 南嶽下二世.
*屈棒;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치는 몽둥이[棒(방)]. 

 

 

垂示云。 수시(垂示) 
靈鋒寶劍。常露現前。
亦能殺人亦能活人。
在彼在此。同得同失。

若要提持。一任提持。
若要平展。一任平展。
且道不落賓主。
不拘回互時如何。
試舉看。
靈鋒寶劍*이 늘 發露하여 現前하고 있어서
能이 殺人하기도 하고 活人하기도 하며,
여기에 있거나 저기에 있기도 하고,
같이 얻거나 같이 잃기도 하며,
提持*해야겠으면 提持하고,
平展*해야겠으면 平展한다.
자, 발해보라. 賓主에 떨어지지않고
回互*에 구애되지 않을 때는 어떠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靈鋒寶劍; 신령한 칼날의 보검. 일체 망상집착을 단칼에 베어내는 佛性과 그 妙用의 검.
*提持; 師家가 學人을 接化할 때 학인 본래의 견해를 깨부수고 
向上의 契機를 제시해 주는 방식, 즉 「把住」의 手法. 
*平展; 師家가 學人의 境地와 見解를 肯定하면서 
그가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게 돕는 방식, 즉 「放行」의 手法.
*回互; 甲과 乙이 서로 얼키고 설켜 작용하는 관계.

 

 

 

 【七五】舉。  【七五】 오구굴방(烏臼屈棒)

 

   僧從定州和尚會裏。
   來到烏臼。烏臼問。
   定州法道何似這裏
   (言中有響。
   要辨淺深。探竿影草。
   太殺瞞人)
   僧云。不別
   (死漢中有活底。一箇半箇。
   鐵橛子一般。踏著實地)
   臼云。若不別更轉彼中去。
   便打
   (灼然。正令當行)
   僧云。棒頭有眼。
   不得草草打人
   (也是這作家始得。
   卻是獅子兒)
   臼云。今日打著一箇也。
   又打三下
   (說什麼一箇。千箇萬箇)
   定州和尚* 會裏(中)의 중이
   烏臼에게 온지라 烏臼가 물어
   "定州의 法道가 여기와 어떤가?" 하니,
   (言中에 울림이 있다.
   淺深을 分辨하려는 探竿影草다.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
   僧이 "다르지 않습니다" 하였다.
   (死漢* 中에 산 자가 있지만 극히 드물거늘
   쇠말뚝 처럼 實地를 밟았다.)
   臼가 "다르지 않다면 다시 거기로 가거라" 하며
   곧 후려치자,
   (깔끔하구나. 正令을 마땅히 행했다.)
   僧이 "몽둥이[棒]에도 눈이 있으니
   함부로 아무나 때리지 마십시요" 하였다.
   (역시 이 作家라야 했는데
   도리어 獅子새끼 였다.)
   臼가 "오늘 한 개 때렸나" 하더니
   또 세 번을 때렸다.
   (무슨 한 개를 말하는가. 千 개 萬 개다 )
   僧便出去
   (元來是屋裏人。只得受屈。
   只是見機而作)
   臼云。屈棒元來有人喫在
   (啞子喫苦瓜。
   放去又收來點。
   得回來堪作何用)
   僧轉身云。
   爭奈杓柄。在和尚手裏
   (依前三百六十日。
   卻是箇伶俐衲僧)
   臼云。汝若要山僧回與汝
   (知他阿誰是君。阿誰是臣。
   敢向虎口橫身。忒殺不識好惡)
   僧近前奪臼手中棒。
 打臼三下
   (也是一箇作家禪客始得。
   賓主互換縱奪臨時)
   臼云。屈棒屈棒
   (點。這老漢。著什麼死急)
   僧이 곧 나가자
   (元來 집안 사람인데 그저 억울하게 되어
   다만 기회를 보아 일을 도모하려 함이다.)
   臼가 "屈棒은 元來 다른 사람이 먹었다" 하니
   (벙어리 쓴 오이 먹기[啞子喫苦瓜*]다.
   놓아주고 붙잡아들이고 點檢해
   얻어 돌아온들 무슨 씀을 지으리오.)
   僧이 몸을 돌이키며 말했다.
   "표주박이 和尚 손 안에 있는 걸 어쩌겠습니까"
   (변함없는 365일이지만
   도리어 하나의 영리한 衲僧이다.)
   臼가 "네가 요구하면 내가 너에게 주마" 하자
   (그 누구가 君이고 누구가 臣인지 알고서
   감히 虎口橫身하는가. 너무나 好惡을 모르는구나.)
   僧이 다가오더니 臼의 손에서 棒을 빼앗아
 臼를 세 차례 후려쳤다.
   (이 또한 1개 作家禪客이라야 하거니와
   賓主가 互換하고 縱奪이 잠시간[臨時]이다.)
   臼가 "屈棒이로다, 屈棒이로다" 하자
   (낭패다. 이 老漢이 무슨 죽을 병이 붙었나.)
   僧云。有人喫在
   (呵呵。是幾箇杓柄卻在這僧手裏)
   臼云。草草打著箇漢
   (不落兩邊。知他是阿誰)
   僧便禮拜
   (臨危不變。方是丈夫兒)
   臼云。和尚卻恁麼去也
   (點)
   僧大笑而出
   (作家禪客天然有在。
 猛虎須得清風隨。
   方知盡始盡終。
   天下人摸素不著)
   臼云。消得恁麼。消得恁麼
   (可惜放過。何不劈脊便棒。
   將謂走到什麼處去)。
   僧이 "다른 사람이 먹었습니다." 하니
   (하하, 이 몇 개의 杓柄이 이 僧의 손 안에 있는가.)
   臼는 "함부로 때리는 놈이로다" 하매
   (兩邊에 떨어지지 않아야 그가 어떤 놈인지 안다.)
   僧이 곧 禮拜를 하였다.
   (위기에 처해 不變해야 비로소 장부[丈夫]다.)
   臼가 "和尚이 도리어 그렇게 나오는건가" 하니
   (낭패다.)
   僧이 크게 웃으며 나갔다.
   (作家禪客은 天然히 있고,
 猛虎는 모름지기 清風을 쫓아 얻어진다.
   시종일관 최선이었음을 비로소 알려니와
   天下人은 摸素조차 못한다.)
   臼가 "그렇게 사라지나. 그렇게 사라지나." 하였다.
   (애석하게도 놓아주다니. 왜 등짝을 후려치지 않는가.
   어디로 떠나 간 줄로 알겠다.)。

 

*定州和尙; 京兆府章敬寺懷暉禪師(馬祖道一 法嗣) 南嶽下二世. 
한 때 定州(河北) 百巖寺에 주석하였다. 
*死漢; 空寂한 곳을 집착함으로써 自由로운 運作을 못하는 사람. 
고목, 불씨 죽은 재 같은 사람. 
*灼然; 明白하다, 깔끔하다[清楚]. 
*受屈; 억울함을 당하다.
*啞子喫苦瓜; 벙어리는 쓴 오이를 먹어도 쓰다 달다 얘기할 수 없다는 뜻으로 
꿈을 꾸었으되 얘기할 수 없다는 啞子得夢과 동의어. 
學人이 스스로 어떤 境地를 體悟했으되 언어로 남에게 얘기할 방법이 없다는 것. 
*依前; ①동사: 옛것을 따르다. 이전대로 따르다. 원래대로 따르다. (=照旧)
②부사: 변함없이. 여전히. (=
依然)
*臨時; ①正當其時 ②短時間的、暫時的。
*點; 點額, 낙방, 실패, 낭패. 
*將謂; 여기다(以為), 인정하다(認為). 
*消得恁麼 消得恁麼; 그 승려를 칭찬하는 것은 물론, 
내가 상대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어찌 감히 그에게 
표적을 던질 수 있었겠느냐는 자찬의 의미도 곁들여 있다.

 

僧從定州和尚會裏來到烏臼。
臼亦是作家。
諸人若向這裏。
識得此二人一出一入。
千箇萬箇只是一箇。
作主也恁麼。作賓也恁麼。
二人畢竟合成一家。
一期勘辨。賓主問答。
始終作家。
看烏臼問這僧云。
定州法道何似這裏。
僧便云。不別。
當時若不是烏臼。
難奈這僧何。
臼云。若不別。
更轉彼中去。便打。
爭奈這僧是作家漢。
便云。棒頭有眼不得草草打人。
臼一向行令云。
今日打著一箇也。又打三下。
其僧便出去。
看他兩箇轉轆轆地。俱是作家。
僧이 定州和尚의 會裏로부터 烏臼에게 來到했다지만
臼도 또한 作家였다.
여러분이 만약 이 속을 향해 보면
이 두 사람이 一出一入하는
천 개 만 개가 다만 한 개요,
作主도 그렇고 作賓도 그러하여
二人이 畢竟 一家로 합쳐지고,
一期勘辨*과 賓主問答이
처음부터 끝까지 作家임을 알리라[識得].
烏臼를 보라. 이 僧에게 물어
 '定州의 法道가 여기와 어떻게 유사한가?' 하니
僧이 곧 '다르지 않습니다.' 하였는데,
當時에 烏臼가 아니었다면
이 僧을 어찌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臼는 '다르지 않거든
다시 그리 돌아가라' 하며 곧 후려쳤다.
그러나 이 僧이 作家漢이었음을 어쩌겠는가.
곧 '棒頭에 眼이 있으니, 草草히 打人치 마십시요' 하매
臼가 한결같이 正令을 行하여 이르되
 '오늘 때린게 한 갠가' 하고 또 세 번을 때리자
그 僧이 곧 나가버렸다.
저 두 轉轆轆地*를 보아 둘 모두가 作家이다.

 

 

*一期勘辨; 一期~①개인의 一生. ②정한 한 수행기한. 
勘辨~禪林用語。師家가 修行者의 力量을 判別하거나 學人이 師家의 邪正을 探問하는 것. 
*轉轆轆地; 禪林用語. 阿轆轆地라고도 한다.
돌아 굴러감이 장애가 없어 자유자재한 경지에 비유하는 말.

 

 

 

了這一事。
須要分緇素別休咎。
這僧雖出去。
這公案。卻未了在。
烏臼始終。
要驗他實處看他如何。
這僧卻似撐門拄戶。
所以未見得他。
烏臼卻云。
屈棒元來有人喫在。
這僧要轉身吐氣。
卻不與他爭。輕輕轉云。
爭奈杓柄在和尚手裏。
烏臼是頂門具眼底宗師。
敢向猛虎口裏橫身云。
汝若要山僧回與汝。
這漢是箇肘下有符底漢。
所謂見義不為無勇也。
更不擬議。
近前奪烏臼手中棒。打臼三下。
臼云。屈棒屈棒。
이 一事를 마치는데는
모름지기 緇素를 구분하고 休咎를 분별함을 요한다。
이 僧이 비록 나가버렸더라도
이 公案은 오히려 마쳐있지 않다.
烏臼는 始終
그의 實處를 시험하고 그의 如何를 살피려 하였으나
이 僧이 도리어 撐門拄戶*한 것과 같아서
그래서 그를 見得할 수 없었는지라
烏臼가 도리어
 '屈棒은 元來 다른 사람이 먹었다'고 하였는데,
이 僧이 轉身하여 吐氣코자
도리어 그와 다투지 않고 가볍고 가볍게 응수하여
 '杓柄이 和尚의 手中에 있는걸 어쩌겠습니까' 하였다.
烏臼는 頂門에 具眼한 그런 宗師인지라
敢히 猛虎의 입 속을 向해 몸을 던져 이르되,
 '내가 만일 要하다면 山僧이 네게 回與하마' 하였으나
이 자가 팔꿈치 밑에 부적을 지닌 그런 자로
이른 바 義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음이라
다시 주저하지 않고
가까이 가서 烏臼 手中의 棒을 빼앗아 臼를 세 번 때리니,
臼가 '屈棒이로다 屈棒이로다' 하였다. 
爾且道意作麼生。
頭上道。屈棒元來有人喫在。
及乎到這僧打他。
卻道屈棒屈棒。
僧云。有人喫在。
臼云。草草打著箇漢。
頭上道草草打著一箇也。
到末後自喫棒。
為什麼亦道草草打著箇漢。
當時若不是這僧卓朔地。
也不奈他何。
너희가 이제 말해보라. 뜻이 무엇이냐?
앞에서는 '屈棒은 元來 다른 사람이 먹고 있다' 하더니
이 僧이 그(臼)를 때림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屈棒이다 屈棒이다' 하였고,
僧이 '다른 사람이 먹고 있다' 하자
臼가 '함부로 때리는 놈'이라 하였는데,
앞에서 '함부로 한 개를 때렸나' 하고서
나중에 자기가 喫棒하기에 이르러서도
어째서 '함부로 때리는 놈'이라 한 것인가?
當時에 만약 이 僧이 卓朔地*가 아니었다면
또한 그를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這僧便禮拜。這箇禮拜最毒。
也不是好心。
若不是烏臼。也識他不破。
烏臼云。卻恁麼去也。
其僧大笑而出。
烏臼云。消得恁麼消得恁麼。
看他作家相見。
始終賓主分明。斷而能續。
其實也只是互換之機。
他到這裏。
亦不道有箇互換處。
自是他古人。絕情塵意想。
彼此作家。亦不道有得有失。
雖是一期間語言。
兩個活鱍鱍地。都有血脈針線。
若能於此見得。
亦乃向十二時中。歷歷分明。
其僧便出是雙放。
已下是雙收。謂之互換也。
雪竇正恁麼地。頌出。
이 僧이 곧 禮拜했지만 이런 禮拜가 가장 毒하고
또한 좋은 마음[好心]이 아니었다.
烏臼가 아니었다면 그를 識破(看破)하지 못했겠지만
烏臼가 '도리어 그렇게 나오나' 하니
그 僧이 大笑하며 나가매
烏臼가 '消得恁麼 消得恁麼' 하였다.
저 作家들 서로의 만남을 보건대
始終 賓主가 分明한 채로 끊긴 듯 이어가는데
其實은 다만 互換之機이지만
저들은 이 속에 이르러
어떠한 互換處도 말하지 않고 있으며,
목 뻣뻣한[自是] 저 古人들은 情塵과 意想을 끊어
彼此에 作家인지라 得이 있다 失이 있다를 말할 수 없다.
비록 한 期間의 語言이지만
두 사람의 活鱍鱍地에는 血脈도 針線도 다 있거니와,
만약 이에서 능히 見得한다면
이내 온 종일[十二時中] 歷歷하고 分明하리라.
그 僧이 돌연 나가버렸으니[便出] 이것이 雙放이요,
그 아하가 雙收이며, 이를 일러 互換이라 한다.
雪竇가 바로 그런 처지에서 頌出했다. 

 

*撐門拄戶; 문에 버티고 서서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다.
*卓朔地; 똑바로 선 지경. 94칙 수시에 
「眼卓朔耳卓朔 金毛獅子(눈 똑바르고 귀 쫑긋한 금모사자)」라 했다.

 

 

  雪竇의 頌

 

 呼即易
   (天下人總疑著。
   臭肉引來蠅。
   天下衲僧總不知落處)
 遣即難
   (不妨勦絕。海上明公秀)
 互換機鋒子細看
   (一出一入。二俱作家。
   一條拄杖兩人扶。
 且道在阿誰邊)
 劫石固來猶可壞
   (袖裏金鎚如何辨取。
   千聖不傳)
  滄溟深處立須乾
   (向什麼處安排。
   棒頭有眼。獨許他親得)
  烏臼老烏臼老
   (可惜許。這老漢不識好惡)
 幾何般
   (也是箇無端漢。百千萬重)
  與他杓柄太無端
   (已在言前。洎合打破蔡州。
   好與三十棒。
   且道過在什麼處)
 부르기는 쉬워도
   (天下人이 모두 의아해 하며
   썩은 고기에 파리가 모여 들지만
   天下의 衲僧이 다 落處를 모른다.)
 보내기는 어렵다니
   (勦絕*해 마지 않다. 海上에 해[明公]가 솟았다.)
 互換의 機鋒을 子細히 보노라
   (一出一入하니, 둘 모두가 作家다.
   한 자루 주장자를 두 사람이 잡았는데
 자 말해보라. 누구 쪽에 있는가.)
 劫石이 견고하다가도 결국 부서지고
   (소맷 속 金鎚를 어떻게 辨取하리오.
   千聖도 傳하지 못한다.)
  滄溟의 깊은 곳도 반드시 마르기 마련이거늘
   (어디를 향해 安排하리오만
   棒頭에 있는 눈 홀로 그만이 몸소 얻기를 許하노라.)
  烏臼 늙은이여, 烏臼 늙은이여!
   (可히 애석하다. 이 老漢이 好惡을 모르는구나.)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가?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놈이다. 백천만 겹으로.)
 그에게 杓柄을 주다니 너무나도 터무니 없구나.
   (이왕 言前에 있거늘 거의 打破蔡州* 격이니
   좋게 30棒을 때려야 하려니와,
   말해보라.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勦絕; 말끔이 없애다. 주위를 모두 제압하고 우뚝 선 모양새. 
*打破蔡州; 唐 憲宗 元和12年(817) 10月, 절도사 李愬이 저항하던 오원제(吳元濟)를 
폭설이 내리는 야밤 기습공격으로 토벌한 古事. 
추위와 긴 여정에 지친 아군병사들에게 닥친 폭설이라는 극한 상황을 
오하려 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총력 기습공격으로 역이용하여 토벌을 성공시켰다.

 

 

呼即易遣即難。
一等是落草。
雪竇忒殺慈悲。尋常道。
呼蛇易遣蛇難。
如今將箇瓢子吹來。
喚蛇即易。要遣時即難。
一似將棒與他卻易。
復奪他棒。遣去卻難。
須是有本分手腳。
方能遣得他去。
烏臼是作家。有呼蛇底手腳。
亦有遣蛇底手段。
這僧也不是瞌睡底。
烏臼問。定州法道何似這裏。
便是呼他。
烏臼便打。是遣他。
僧云。棒頭有眼。
不得草草打人。
卻轉在這僧處。便是呼來。
烏臼云。汝若要山僧回與汝。
僧便近前奪棒。也打三下。
卻是這僧遣去。
부르기[呼]는 쉽고 보내기[遣]는 어려우니
一等가는 것은 落草다。
雪竇는 너무나도 慈悲하여 예사롭게
 '呼蛇는 쉽고 遣蛇는 어렵다'고 하였다.
如今에 어떤 표주박을 불어
뱀을 부르기는 쉽지만 보내려 할 때 즉 어렵다는 것은
棒을 가져다 그에게 주기는 쉬워도
그의 棒을 빼앗고 내쫓기는 어렵다는 것과 똑 같아서
반드시 本分手腳이 있어야
비로소 그를 떠나보낼 수 있다.
烏臼는 作家인지라 뱀을 부를 수완도,
뱀을 보낼 그런 수완도 있었지만
이 僧 또한 잠충이가 아니었다.
烏臼가 물어 '定州의 法道가 여기와 어찌 유사하던가?' 함은
곧 그를 '부름[呼]'이고,
烏臼가 곧 때린 것은 그를 '보냄[遣]'이었으나
僧이 '棒頭에 有眼하니
草草히 打人치 마십시요'라 하여
거꾸로 이 僧 쪽으로 굴러 있게 함은 곧 '불러 옴[呼來]'이고,
烏臼가 '네가 요구하면 山僧이 네게 돌려주겠다' 하자
僧이 곧 다가가 棒을 빼앗아 세 번을 때렸으니
도리어 이 僧이 '떠나보냄[遣去]'이다. 

 

*呼蛇易遣蛇難; 뱀을 부르기는 쉽지만 보내기는 어렵다. 
소인배(惡人)를 불러 들이기는 쉬워도 내보내기는 어렵다는 의미의 속어.

乃至這僧大笑而出。
烏臼云。消得恁麼消得恁麼。
此分明是遣得他恰好。
看他兩箇機鋒互換。
絲來線去。打成一片。
始終賓主分明。
有時主卻作賓。
有時賓卻作主。
雪竇也讚歎不及。
所以道。互換之機。
教人且子細看。
이 僧이 大笑하며 나가기에 이르러
烏臼가 '消得恁麼, 消得恁麼'라 하니,
이는 分明 보내지는 그에게 꼭 맞는 표현이다.
저 두 개의 機鋒이 互換함을 보라.
絲來線去하며 打成一片하되
始終 賓主가 分明하다.
有時엔 主가 거꾸로 賓을 짓고,
有時엔 賓이 도리어 主를 짓는다.
雪竇 또한 讚歎으로 미치지 못하겠으니
그래서 '互換之機'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거듭 子細히 살피게 하였다.
劫石固來猶可壞。
謂此劫石。長四十里。
廣八萬四千由旬。
厚八萬四千由旬。
凡五百年乃有天人下來。
以六銖衣袖拂一下。
又去至五百年。又來如此拂。
拂盡此石。乃為一劫。
謂之輕衣拂石劫。
 '劫石固來猶可壞'라 하였는데,
이 劫石은 長이 40里이고,
廣이 8萬4千 由旬,
厚가 8萬4千 由旬이며,
500年만에 겨우 天人이 내려와
六銖衣* 소매로 한 번 떨치고,
또 갔다가 500년이 되면 또 와서 그처럼 떨쳐서
이 石 떨치기를 다하면 마침내 1 劫이 된다고 하여
이르기를 「輕衣拂石劫*」이라 한다. 

*六銖衣 ; 「지극히 가벼운 옷」. 4푼1리6모의 무게가 1銖라 한다. 
《長阿含經卷20 忉利天品》에 의하면 忉利天의 옷무게가 六銖, 炎摩天의 옷무게는 三銖, 
兜率天 옷무게는 二銖半, 化樂天 옷무게는 一銖, 他化自在天 衣重은 半銖라 하였다.
*輕衣拂石劫; 가벼운 옷깃을 떨쳐 바위가 다하기까지의 긴 세월. 

雪竇道。劫石固來猶可壞。
石雖堅固。
尚爾可消磨盡。
此二人機鋒。千古萬古。
更無有窮盡。
滄溟深處立須乾。
任是滄溟。洪波浩渺白浪滔天。
若教此二人。向內立地。
此滄溟也須乾竭。
雪竇가 '劫石固來猶可壞'라 한 것은
石이 비록 堅固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尚爾] 가히 닳아 消盡하겠지만
이 두 사람의 機鋒은 千古萬古에
다시 窮盡함이 없다는 것이며,
 '滄溟深處立須乾'은
이 滄溟에 洪波가 浩渺하고 白浪이 滔天함도
만일 이 2人으로 하여금 안을 향해 땅에 서게 맡겨둔다면
이 滄溟 또한 반드시 말라버린다는 것이다. 
雪竇到此。一時頌了。
末後更道。
烏臼老烏臼老。幾何般。
或擒或縱。或殺或活。
畢竟是幾何般。
與他杓柄太無端。
這箇拄杖子。三世諸佛也用。
歷代祖師也用。宗師家也用。
與人抽釘拔楔。解粘去縛。
爭得輕易分付與人。
雪竇意要獨用。
賴值這僧當時只與他平展。
忽若旱地起雷。
看他如何當抵。
烏臼過杓柄與人去。
豈不是太無端。
雪竇가 여기에 이르러 一時에 頌了하고서
末後에 다시 말하기를,
 '烏臼 老여, 烏臼 老여! 몇가지나 되는가' 하였는데,
혹은 사로잡고 혹은 놓아주며,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니
필경 이것이 몇가지나 되느냐는 것이다.
그에게 표주박을 주다니 너무 어처구니 없다 하였는데
이런 拄杖子는 三世諸佛도 쓰고,
歷代祖師도 쓰고, 宗師家도 써서
사람들에게 抽釘拔楔하고 解粘去縛해 주는 것이거늘
어찌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단 말인가.
雪竇의 뜻은 혼자 써야한다는 것이다.
다행이 이 중이 당시에 그에게 平展만 주었기에 망정이지
홀연히 마른 땅에 우레를 일으키고서
그(오구)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폈더라면
烏臼가 杓柄을 건네 남에게 준 것이
어찌 너무도 터무니 없는 일이 아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