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師三喚 | 제17칙 국사삼환(國師三喚)_국사가 세 번 부르다 |
國師三喚侍者。 侍者三應。 國師云。將謂吾辜負汝。 元來却是汝辜負吾。 |
국사(國師*)가 시자(侍者)를 세 번 부르니, 시자가 세 번 대답했다. 국사는 "내가 너를 고부(辜負*)했다 하려 했더니, 원래 이것이 네가 나를 고부한 것이었구나." 하였다. |
*國師; 南陽慧忠國師( ~775). 六祖大鑒(慧能)禪師 旁出法嗣
*辜負; (호의, 기대, 도움 따위를) 헛되게 하다. 저버리다.
無門曰。 國師三喚舌頭墮地。 侍者三應。 和光吐出。 國師年老心孤。 按牛頭喫草。 侍者未肯承當。 美食不中飽人飡。 且道那裏是他辜負處。 國清才子貴。 家富小兒嬌。 |
무문(無門)이 이르되, 국사가 세 번 부른 것은 잡담(雜談)이 되어버렸고, 시자의 대답 세 번은 감춰진 재지[和光]가 토출(吐出)된 것이다. 국사가 연로(年老)하고 마음이 외로워 소 머리 짓눌러 풀 먹이려 해보아도 시자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놈에게는 끼니가 되지 못한다. 말해보라. 어느 곳이 시자가 고부(辜負)한 곳인가? 「나라가 평안하면 인재가 귀하고 집안이 부유하면 자식들이 나약해진다.」 |
大慧宗杲선사의 《偈頌一百六十首》 중 한 게송.
나라가 평안하면 인재가 귀하고 [國清才子貴]
집안이 부유하면 자식들이 나약해지거니와 [家富小兒嬌]
대가(大家)가 아무리 손을 써본들 [大家出只手]
피차에 서로 용서되지 않는다 [彼此不相饒]
頌曰。 鐵枷無孔要人擔 累及兒孫不等閑 欲得撑門并拄戶 更須赤脚上刀山 |
頌曰。 구멍없는 칼을 목에 씌워놓아야 대대손손 등한(等閑)시 하지 않거니와, 가문을 지탱하고 집안을 지켜내려면 모름지기 맨발로 칼날 위에 올라서야 한다. |
五燈會元卷第二 南陽慧忠國師章 본문 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더해져 있다.
「어떤 중이 玄沙에게 "國師가 侍者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물으니,
현사는 "도리어 그것을 시자가 안 것이다." 하였다.
雲居錫은 "말해보라. 侍者가 알았느냐, 몰랐느냐?
만일 알았다고 한다면 國師가 '네가 나를 孤負했다'고 말한 것은 어찌할 것이며,
몰랐다고 한다면 玄沙가 '도리어 시자가 알았다'고 한 것은 어떻게 商量할 것인가?" 하였다.
玄覺이 어느 스님에게 "어느 곳이 시자가 안 곳이냐?" 하고 묻자,
그 스님이 "만일 몰랐다면 어찌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겠습니까?" 하니,
玄覺이 "네가 조금 아는 것이 있구나." 하고서
또 말하기를, "그 속으로 상량해 가면 문득 玄沙를 알게 될 것이다." 하였다.
어느 스님이 法眼에게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법안은 "그만 가고, 다른 날 오거라." 하였는데,
雲居錫이 말했다. "法眼이 그렇게 말한 것은 국사의 뜻을 밝히기도 하고,
또 국사의 뜻을 밝히지 않기도 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趙州에게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趙州는 "깜깜한 데서 글자를 쓰면 글자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더라도
문채(文彩)는 이왕 창현(彰顯)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國師가 세 번 부른 것은 아마도 시자에게 어떤 가르침을 준 뒤에 부르신 것 같다.
세 번 다짐해 물어도 똑같이 대답만 하니, 알았는지 모르는지 애매한 정황이었기에
시자의 소홀함을 두고 辜負라 한 것이 아닐까.
그밖에 國師와 관련된 公案으로 無情說法, 無縫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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