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宗無門關

무문관 제16칙 종성칠조(鐘聲七條)_종소리의 일곱빛깔

碧雲 2021. 7. 6. 08:03
鐘聲七條 제16칙 종성칠조(鐘聲七條)

 

雲門曰。
世界恁麼廣闊。
因甚向鐘聲裏披七條。
운문(雲門)이 말했다. 
"세계가 이다지도 광활한데, 
어째서 종소리에는 칠조(七條*)가 입혀져 있는가?"

*七條; 七條의 袈裟. 가사는 스님들이 의식 때나 공식 좌석에서 입는 겉옷을 말하고, 
천 입곱 조각을 이어 만든 가사를 칠조가사라 한다. 
초학자는 條없는 마니가사(摩尼袈裟), 사미계를 받으면 5條, 
비구비구니계를 받으면 7, 9條, 250계를 받으면 15, 17條, 
종사(宗師) 대종사(大宗師)에 오르면 21, 23, 25條를 입는다. 
鐘聲에 七條가 입혀졌다는 것은 여러가지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七情에 비유한듯 하다.
 '종성에 어째서 칠정이 담겨져 있는가?'로 해석해도 가할듯.

無門曰。
大凡參禪學道。
切忌隨聲逐色。
縱使聞聲悟道見色明心。

也是尋常。
殊不知。
衲僧家騎聲蓋色。
頭頭上明。著著上妙。
然雖如是且道。
聲來耳畔。耳往聲邊。
直饒響寂双忘。
到此如何話會。
若將耳聽應難會。
眼處聞聲方始親。
무문(無門)이 이르되, 
무릇 참선하고 도(道) 배우는 이들은 
절대 소리[聲]를 따르고 색(色) 쫓기를 삼가해야 한다. 
설사 소리를 들어 도를 깨닫고, 
색을 보아 마음을 밝혔더라도 
별다른 일은 아니다. 
전혀 모른다. 
납승가(衲僧家)의 소리를 타고 색을 뒤덮음이 
낱낱이 몹시 밝고, 껀껀마다 지극히 오묘하다는 것을. 
비록 그렇더라도, 말해보라. 
소리가 귓전으로 오는가, 귀가 소리 쪽으로 가는가?
가령 울림[響]과 고요함[寂]을 다 잊어야 한다면 
이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말을 알아듣겠는가?
만일 귀를 가지고 듣는다면 회합하기 어렵고,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가까우리라. 

 

頌曰。

 會則事同一家 不會萬別千差

 不會事同一家 會則萬別千差

게송으로, 

 깨달은 즉 모든 현상[事]이 한 집안 같고, 
   때닫지 못하면 천차만별하다. 
 그러나 깨닫지 못해도 일가(一家)와 같고, 
   깨달아도 천차만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