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濟錄

임제록 3. 시중(示衆)

碧雲 2015. 1. 10. 21:12
10-1 四料揀 교화의 네가지 표준
   
師晩參에 示衆云 有時奪人不奪境이요  스님께서 만참 법문에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사만참  시중운  유시탈인불탈경 "어느 때는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으며,
有時奪境不奪人이요 有時人境俱奪이요  어느 때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으며, 
유시탈경불탈인    유시인경구탈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으며, 
有時人境俱不奪이니라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유시인경구불탈  
時에 有僧問 如何是奪人不奪境고  그 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람은 빼앗고 
  유승문  여하시탈인불탈경 경계는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師云 煦日發生鋪地錦이요  "따스한 해가 솟으면
사운  후일발생포지금 대지를 비단으로 덮히게 하지만, 
孩垂髮白如絲로다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을 
영해수발백여사 명주실처럼 희어지게도 한다."
僧云 如何是奪境不奪人고  "무엇이 경계는 빼앗고 
승운  여하시탈경불탈인 사람은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師云 王令已行天下徧이요  "왕의 법령이 이미 두루 천하에 행해지고 있는데,
사운  왕령이행천하변  
將軍塞外絶煙塵이로다  장군은 변방에서  통신이 끊겨있다[絕烟塵*]."  
장군새외절연진  
僧云 如何是人境兩俱奪고  "무엇이 사람과 경계를
승운  여하시인경양구탈 함께 빼앗는 것입니까?"
師云 幷汾絶信하야 獨處一方이로다  "병주와 분주는 소식이 끊기어 
사운  병분절신    독처일방 한 쪽에 외로운 처지다."
僧云 如何是人境俱不奪고  "무엇이 사람과 경계를
승운  여하시인경구불탈 함께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師云 王登寶殿하니 野老謳歌로다  "제왕은 보배 궁전에 오르고
사운  왕등보전    야노구가 시골노인은 태평가를 부른다."
   
10-2 생사에 젖지 않는다  
   
師乃云 今時學佛法者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내운 금시학불법자    "지금의 부처님 법을 배우는 이들은
且要求眞正見解니 若得眞正見解하면  또한 진정한 견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요구진정견해  약득진정견해         만약 참되고 바른 견해를 얻으면
生死不染하야 去住自由하야  생사에 물들지 않고,
생사불염    거주자유  가고 머물음에 자유로와서
不要求殊勝이나 殊勝自至니라  수승함을 구하려 하지 않아도
불요구수승    수승자지  수승함이 저절로 온다.
道流야 如自古先德은 皆有出人底路니라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옛 큰스님들은 
도류   지여자고선덕   개유출인저로      모두가 사람을 구해내는 길이 있었다.
如山僧指示人處는 不受人惑이니  내가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는 것은 
여산승지시인처   기요이불수인혹      단지 그대들이 남에게 속지 말라는 것이니
要用便用하야 更莫遲疑하라  쓰고자 하면 쓸 뿐 
요용편용    갱막지의  다시 의심하여 주저하지 말라.
如今學者不得은 病在甚處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이 그렇지 못하는 것은
여금학자부득   병재심처    그 병이 어느 곳에 있는가?
病在不自信處니 若自信不及하면  그 병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데 있다.
병재불자신처   이약자신불급  그대들 스스로에 확신이 부족하면
卽便忙忙地하야 徇一切境轉하야  바쁘게 돌아치는 자리에 떨어져
즉편망망지    순일체경전      일체의 경계를 따라 구르며
被他萬境回換하야 不得自由니라  여기저기 온갖 경계가 서로 뒤바뀌어
피타만경회환    부득자유  자유롭지 못하다.
   
10-3 無事人 일 없는 사람
   
若能歇得念念馳求心하면  그대가 생각생각 치달려 구하던 마음을 
이약능헐득염염치구심     능히 쉬어버릴 수 있다면 
便與祖佛不別이니라  조사나 부처와 더불어 다름이 없는 것이다.
편여조불불별   
欲得識祖佛麽아 面前聽法底是니  조사와 부처를 알고자 하는가?
이욕득식조불마   기이면전청법저시       다만 그대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그것이다.
學人信不及하고 便向外馳求하며  공부하는 이들이 믿음이 부족하여
학인신불급    편향외치구      그저 밖으로 내달려 구하고자 하니,
設求得者라도 皆是文字勝相이요  설사 얻는다 하더라도
설구득자    개시문자승상  모두 번지레한 문자의 모습일 뿐
終不得他活祖意니라  끝내 산 조사의 뜻은 얻지 못할 것이다.
종부득타활조의     
莫錯하라 諸禪德아  착각하지 말라. 참선하는 납자들이여! 
막착    제선덕     
此時不遇하면 萬劫千生을 輪廻三界하야  지금 만나지 못한다면
차시불우    만겁천생  윤회삼계      천생만겁토록 삼계에 윤회하며
徇好境掇去하야 驢牛肚裏甥이로다       좋아하는 경계만을 따라 다니다가
순호경철거   여우두리생  나귀나 소의 뱃속에 태어날 것이다.
道流야 約山僧見處인댄 與釋迦不別이라  도 배우는 이들이여! 나의 견처로 말하자면 
도류  약산승견처   여석가불별    석가세존과 다름이 없으니,
今日多般用處가 欠少什麽오  오늘 여러 많은 말한 것들에 
금일다반용처  흠소십마    어떤 작은 허물이라도 있는가?
六道神光이 未曾間歇이니  여섯 갈래 신령한 빛이
육도신광  미증간헐    한 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으니
若能如是見得하면 是一生無事人이니라   만약 이렇게만 볼 수 있다면
약능여시견득   지시일생무사인  그저 한 평생 무사인(無事人)이다.
   
10-4 밖에서 찾지 말라   
   
大德아 三界無安이 猶如火宅이라  대덕들이여! 삼계는 편안함이 없고 
대덕  삼계무안  유여화택      불 타는 집과 같아서
此不是久停主處니  그대들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차불시이구정주처    
無常殺鬼가 一刹那間에 不揀貴賤老少니라  덧없는 죽임의 귀신이 
무상살귀  일찰나간  불간귀천노소  한 순간에도 귀천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要與祖佛不別인댄 但莫外求어다  그대들이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고자 한다면
이요여조불불별   단막외구      다만 밖으로 구하지 말라.
一念心上의 淸淨光은 是屋裏法身佛이며  그대들 한 생각과 마음 위의 청정한 빛은 
이일념심상  청정광  시이옥리법신불 그대 집 속의 법신불이며,
一念心上의 無分別光은 是屋裏報身佛이요  그대들 한 생각과 마음 위의 분별없는 빛은 
이일념심상   무분별광  시이옥리보신불 그대 집 속의 보신불이며,
一念心上의 無差別光은 是屋裏化身佛이니 그대들 한 생각과 마음 위의 차별없는 빛은 
이일념심상   무차별광  시이옥리화신불 그대 집 속의 화신불이다.
此三種身은 是卽今目前聽法底人이라  이 세가지 부처는 
차삼종신  시이즉금목전청법저인 지금 눈앞에서 법을 듣는 바로 그 사람이다. 
爲不向外馳求하면 有此功用이니라 다만 밖을 향해 치달려 구하지만 않으면
지위불향외치구    유차공용 이와 같은 공용이 있다.
據經論家하면 取三種身하야  경론가의 주장에 의하면
거경론가    취삼종신 세 가지 몸을 취하여
爲極則이나 約山僧見處不然이니  최고의 경지를 삼지만
위극칙   약산승견처불연 나의 견해로는 그렇지 않다.
此三種身은 是名言이며 亦是三種依니라  이 세 가지 몸은 이르는 말이며
차삼종신  시명언    역시삼종의 또한 세 가지 껍데기이다.
古人云 身依義立이요  옛사람이 말하기를
고인운  신의의립 의미에 입각해서 불신을 말하고
土據體論이라하니 法性身法性土는  정토를 논할 때도 그 바탕에 의거해 논한다' 하니
토거체론      법성신법성토 법성신과 법성토는
明知是光影이니라 빛의 그림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명지시광영  
   
10-5 돌아가 쉬는 곳  
   
大德아 且識取弄光影底人하라  대덕들이여! 이제 빛의 그림자를 희롱하는
대덕  이차식취농광영저인 정체를 알아내어라.
是諸佛之本源이요  이것이 모든 부처의 본원이며, 
시제불지본원     
一切處가 是道流의 歸舍處니라  모든 곳이 도 배우는 이들의 돌아갈 곳이다.
일체처  시도류  귀사처  
四大色身도 不解說法聽法하며  그대들의 4대로 된 몸은 
시이사대색신  불해설법청법 법을 말하고 들을 줄 모른다.
脾胃肝膽도 不解說法聽法하며  오장육부도 법을 말하고 들을 줄 모르며,
비위간담  불해설법청법  
虛空도 不解說法聽法하나니  허공도 법을 말하고 들을 줄 모른다.
허공  불해설법청법  
是什麽가 解說法聽法고 그렇다면 무엇이 법을 설하고 
시십마  해설법청법 들을 줄 아는 것 인가?
目前歷歷底勿一箇形段孤明한  그대들 눈앞에 뚜렸하면서
시이목전역역저물일개형단고명 아무 형체도 없이 홀로 밝은 
是這箇가 解說法聽法이니  바로 그것이 법을 설하고 
시자개  해설법청법 들을 줄 아는 것이니
若如是見得하면 便與祖佛不別이라  만약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약여시견득   변여조불불별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但一切時中에 更莫間斷하야  다만 모든 시간 가운데서
단일체시중  갱막간단 더 이상 한 순간도 끊임이 없으면
觸目皆是언마는 爲情生智隔하고  보이는 바 모두가 바로 이렇겠지만
촉목개시    지위정생지격 정념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고
想變體殊로다 所以로 輪廻三界하야  생각이 변하면 자체가 달라진 것이니
상변체수   소이  윤회삼계 그러므로 삼계에 윤회하여 
受種種苦하나니 若約山僧見處하면  가지가지 고통을 받는다.
수종종고    약약산승견처 그러나 내 견해로는
無不甚深하며 無不解脫이니라 심오하지 않은 것 없고  
무불심심   무불해탈 해탈 못하는 것도 없다.
   
10-6 마음은 형상이 없다  
   
道流여 心法無形하야 通貫十方하야  도 배우는 이들이여! 마음 법은 형상이 없어서
도류  심법무형    통관시방 온 시방세계를 꿰뚫는다.
在眼曰見이며 在耳曰聞이요  그것이 눈에 있을 때는 본다 하고
재안왈견    재이왈문 귀에 있을 때는 듣는다 하며,
在鼻香하고 在口談論하며  코에 있을 때는 냄새 맡는다 하고,
재비후향    재구담론 입에 있을 때는 이야기 한다고 하며,
在手執捉하고 在足運奔이라  손에 있을 때는 잡는다 하고,
재수집착    재족운분 발에 있을 때는 다닌다 한다.
本是一精明이 分爲六和合이니  본래 밝고 정묘한 덩어리가
본시일정명   분위육화합 나뉘어서 6화합이 되는 것이니
一心旣無하면 隨處解脫이로다  한 마음이 이미 없으면 어느 곳에든 해탈이다.
일심기무    수처해탈  
山僧與麽說은 意在什麽處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산승여마설  의재심마처 그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爲道流가 一切馳求心을 不能歇하야  도 배우는 사람들이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지위도류   일체치구심  불능헐     능히 쉬지 못하여 
上他古人閑機境이니라  저 옛사람들의 부질없는 기연과 경계를 
상타고인한기경 받들기 때문이다.
道流야 取山僧見處하면 坐斷報化佛頭라  도 배우는 이들이여! 나의 견해를 따르자면 
도류  취산승견처    좌단보화불두 앉은 자리에서 보신 화신불의 머리를 잘라버린다. 
十地滿心은 猶如客作兒요  10지만심을 성취한 보살도
십지만심   유여객작아 손님과 붙어 애 만드는 것과 같고 
等妙二覺은 擔枷鎖漢이요  등각과 묘각은 칼쓰고 형장으로 가는 놈이요
등묘이각  담가쇄한     
羅漢辟支는 猶如厠穢요 나한과 벽지불은 화장실의 똥이며
나한벽지  유여측예  
菩提涅槃은 如繫驢이니 何以如此오 보리열반은 망아지 묶는 말뚝이니
보리열반   여계려궐    하이여차 어째서 그런가?
爲道流不達三祇劫空일새  도 배우는 이들이 3아승지겁이 텅 비었음을
지위도류부달삼지겁공 알지 못하기 때문에
所以有此障礙니라  이러한 장애가 있는 것이다.
소이유차장애     
若是眞正道人인댄 終不如是니  진정한 도인이라면 
약시진정도인    종불여시 결코 그렇지 아니할 것이니 
但能隨緣消舊業하고 任運著衣裳하야  그저 인연 따라 묵은 업을 녹여 내고
단능수련소구업    임운착의상        잡히는대로 옷을 걸치고서 
要行卽行하며 要坐卽坐하야  가고싶으면 가고 앉고싶으면 앉을 뿐 
요행즉행    요좌즉좌      
無一念心希求佛果니  한 생각이라도 부처님의 과를 
무일념심희구불과 구하지 않으니
緣何如此오 古人云 若欲作業求佛이면  어째서 그런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연하여차  고인운 약욕작업구불 만약 업을 지어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佛是生死大兆라하니라 부처가 오히려 생사의 큰 징조다'라고 하였다.
불시생사대조  
   
10-7 연야달다의 얼굴   
   
大德아 時光可惜이어늘 대덕들이여! 시간이 빛처럼 빠른 것을 
대덕  시광가석     애석해 하여야 하거늘
擬傍家波波地에 學禪學道하며  오로지 옆집을 비교해 가며 이곳저곳에서 
지의방가파파지  학선학도    선을 배우고 도를 배우고 
認名認句하며 求佛求祖하며 이름과 글귀로만 알고 
인명인구   구불구조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하며 
求善知識意度이로다 莫錯하라  선지식의 뜻과 법도를 구한다.
구선지식의탁    막착 착각하지 말라. 
道流야 有一箇父母어니 更求何物고  도류여! 다만 한 부모 있었으면 되었지
도류  이지유일개부모   갱구하물    다시 무엇을 더 구하는가?
自返照看하라  그대들 스스로 돌이켜 보라.
이자반조간      
古人云 演若達多失却頭라가  옛 사람이 말하기를, 
고인운  연야달다실각두 연야달다가 머리를 잃어버렸는데 
求心歇處卽無事로다 그 찾는 마음을 쉬어버리니 
구심흘처즉무사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였다.
大德아 且要平常인댄 莫作模樣이라  대덕들이여! 또 평상 그대로이기를 바란다면
대덕   차요평상   막작모양 모양을 짓지 말라.
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어떤 일반의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유일반불식호오독노 머리깎은 종들이
便卽見神見鬼하며 指東劃西하며  곧 신령을 본다 귀신을 본다 하면서 
변즉견신견귀    지동획서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그으며
好晴好雨하나니  개인 날이 좋다 비오는 날이 좋다 하는데
호청호우      
如是之流는 盡須抵債하야 向閻老前하야  이와 같은 무리들은
여시지류  진수저채   향염노전    모두 빚을 지고 염라대왕 앞에 가서
呑熱鐵丸有日이니라  뜨거운 쇳덩이를 삼킬 날이 있을 것이다.
탄열철환유일  
好人家男女가 被這一般野狐精魅所著하야  좋은 집안의 남녀들이
호인가남여  피자일반야호정매소착 그런 여우귀신 뒤집어 쓴 도깨비에 홀려
便卽捏怪하니  괴이한 짓들을 하고 있으니, 
변즉날괴     
瞎屢生이여 索飯錢有日在로다  이 눈 먼 바보들아! 
할루생    색반전유일재 밥값을 차곡차곡 따져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11 四照用  
   
示衆云 我有時先照後用하며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중운  아유시선조후용  "나는 어느 때는 먼저 관조하고 후에 쓰며,
有時先用後照하고 有時照用同時하며  어느 때는 먼저 쓰고 후에 관조하며,
유시선용후조    유시조용동시 어느 때는 관조와 쓰기를 동시에 하기도 하며,
有時照用不同時니라  어느 때는 관조과 쓰기를 따로 하기도 한다.
유시조용부동시  
先照後用은 有人在요  먼저 관조하고 후에 씀은
선조후용   유인재 어떤 사람이 있을 때요, 
先用後照는 有法在요 먼저 쓰고 후에 관조함은
선용후조   유법재 어떤 법이 있을 때이며,
照用同時는 駈耕夫之牛하며  비춤과 씀이 동시라는 것은 
조용동시  구경부지우 밭가는 농부의 소를 몰고 가버리고
奪飢人之食이니  배고픈 사람의 밥을 빼앗은 격이니 
탈기인지식      
敲骨取髓하고 痛下鍼錐요  뼈를 부수어 골수를 뽑아내고
고골취수   통하침추   침으로 아프게 찌르는 일이다.
照用不同時는 有問有答하며  비춤과 씀의 때가 다르다는 것은 
조용부동시  유문유답     물음도 있고 대답도 있다는 것이며,  
立賓立主하야 合水和泥하야 應機接物이니  주객을 모두 인정하여 물과 진흙이 섞이듯 
입빈입주   합수화니   응기접물 기틀에 따라 경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若是過量人인댄 向未擧已前하야  만약 그릇이 너무 큰 사람이라면
약시과량인   향미거이전 뭐라고 거론하기 전에 
撩起便行이라 猶較些子니라  재빨리 일어나 가버리라
요기변행   유교사자 그래야 조금은 되었다 하겠다."
   
12-1 貴人 일 없음이 귀한 사람이다.
   
師示衆云 道流야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사시중운  도류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切要求取眞正見解하야 向天下橫行하야  진정한 견해를 구하고 얻어서
절요구취진정견해    향천하횡행 천하를 이리저리 다니더라도
免被這一般精魅惑亂이니라  그러한 도깨비에 홀리지 말아야 할 것이
면피자일반정매혹란 절실히 요구된다.
無事是貴人이니 但莫造作이요  아무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니
무사시귀인    단막조작 다만 만들어 짓지 말고
是平常이라 擬向外하야  평상시 그대로면 그만이다. 
지시평상    이의향외 그대들은 밖으로 향해
傍家求過하야 覓手脚錯了也로다  옆집에서 무리하게 구하려 수단을 찾지만 
방가구과    멱수각착요야 다 잘못 된 것이다.
擬求佛하나 佛是名句니라  그저 부처를 구하겠다 하나 
지의구불   불시명구 부처는 이름과 글귀일 뿐이다.
還識馳求底麽아 도대체 그대들이 치달려 구하는 
이환식치구저마 그것을 아는가?
三世十方佛祖出來는 也爲求法이요  시방삼세의 부처와 조사께서 
삼세시방불조출래  야지위구법     세상에 오신 것은 오직 법을 구하기 위해서요
如今參學道流도 也爲求法이라  지금 여기의 배우는 도류들도 
여금참학도류  야지위구법    오로지 법을 구하기 위함이니
得法始了요 未得依前輪廻五道니라  법을 얻어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며, 얻지 못하면 
득법시요  미득의전윤회오도 예전처럼 윤회의 다섯 길에 머무는 것이다.
云何是法고 法者는 是心法이니  무엇이 법인가?
운하시법  법자  시심법 법이란 마음 법을 말하는 것이니
心法無形하야 通貫十方하야 目前現用이언마는  마음 법은 형상이 없어서 시방을 꿰뚫어
심법무형   통관시방   목전현용 눈앞에 그대로 작용하는 것인데도
人信不及하고 便乃認名認句하야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고
인신불급   변내인명인구 다만 이름과 글귀에 잘못 빠져
向文字中求하야 求意度佛法하니 天地縣殊로다 문자 속에서 불법의 뜻과 도리를 구하니 
향문자중구   구의탁불법   천지현수 천지차이로 현격히 달라지는 것이다.
   
12-2 心地法 심지법 
   
道流야 山僧說法은 說什麽法고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산승설법  설십마법 산승의 설법은 무슨 법을 설하는가. 
說心地法이니 便能入凡入聖하며  심지법을 설하는 것이니, 
설심지법    변능입범입성 문득 범부에도 성인에게도 들어가며, 
入淨入穢하며 入眞入俗하나니  깨끗한 곳에도 더러운 곳에도 들어가며, 
입정입예    입진입속 진제에도 들어가고 속제에도 들어간다. 
要且不是眞俗凡聖이라  중요한 것은 
요차불시이진속범성 내가 진.속.범.성이 아니니 
能與一切 眞俗凡聖 安著名字요  능히 모두를 진.속.범.성이라 
능여일체 진속범성 안착명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요,  
眞俗凡聖이 與此人安著名字不得이니라 진.속.범.성이 이 사람에게 
진속범성  여차인안착명자부득 그런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12-3 잡으면 곧 쓴다  
   
道流야 把得便用이요 更不著名字하고  “도류여! 잡으면 그대로 쓸 뿐 
도류  파득변용   갱불착명자  다시 이름을 붙이지 말고 
號之爲玄旨니라  깊은 뜻[玄旨]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호지위현지   
山僧說法은 與天下人別하니 나의 설법은 
산승설법   여천하인별    천하사람들과 달라서 
如有箇文殊普賢이 出來目前하야  가령 어느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지여유개문수보현  출래목전      눈앞에 와서 
各現一身問法하되 纔道咨和尙하면  각각 한 몸을 나타내서 법을 물으려고
각현일신문법     재도자화상 ‘스님께 묻습니다’ 하기만 하면 
我早辨了也니라 老僧檼坐에  나는 벌써 알아 버린다. 
아조변료야    노승은좌    노승의 조용한 자리에 
更有道流하야 來相見時 我盡辨了也니  어떤 도류가 찾아와 서로 만날 때도 
갱유도류    내상견시 아진변료야    나는 다 알아차리니
何以如此오 爲我見處別하야  어째서 그런가? 
하이여차   지위아견처별 오로지 나의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外不取凡聖하며 內不住根本하야  밖으로는 범부와 성인을 취하지 않고 
외불취범성     내불주근본      안으로는 근본자리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見徹更不疑謬니라  견해에 다시 의심이나 허물이 없도록
견철갱불의류  철저하기 때문이다.” 
   
13-1 隨處作主하라  
   
師示衆云 道流야  스님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사시중운 도류    “도류여! 
佛法無用功處요 是平常無事니  불법은 애써 공들일 곳이 없고 
불법무용공처  지시평상무사    그저 평상대로 아무 일 없는 것이니  
屎送尿하며 著衣喫飯하며 困來卽臥라  똥 싸고 오줌 누고 옷 입고 밥 먹으며, 
아시송요   착의긱반   곤래즉와    피곤하면 눕는 것이다. 
愚人笑我나 智乃知焉이니라 古人云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를 비웃겠지만 
우인소아  지내지언    고인운 지혜로운 이는 알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向外作工夫는 總是癡頑漢이라하니라  ‘밖을 향해 공부하는 사람은 
향외작공부  총시치완한  모두 어리석고 고집스런 놈들이다’라 하였다.
且隨處作主하면 立處皆眞하야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이차수처작주   입처개진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어 
境來回換不得하야  어떤 경계에 닥쳐도 끄달리지 않아서 
경래회환부득     
縱有從來習氣五無間業하야도  설령 종래의 습기와 오무간지옥에 떨어질  
종유종래습기오무간업        업이 있다하더라도 
自爲解脫大海니라 今時學者는 總不識法하고  저절로 해탈의 큰 바다를 이룰 것이다. 
자위해탈대해   금시학자   총불식법      요즈음 배우는 이들은 모두들 법을 모르고 
猶如觸鼻羊이 蓬著物安在口裏하야  마치 양이 코를 들이대어 
유여촉비양   봉착물안재구리  닿는 대로 입속에 넣는 것처럼 
奴郎不辨하며 賓主不分이라  종과 주인을 가리지 못하며, 
노랑불변   빈주불분      손님인지 주인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如是之流는 邪心入道하야 鬧處卽入이니  이런 무리들은 삿된 마음으로 도에 들어 왔기에
여시지류  사심입도   요처즉입      시시비비의 번잡스런 일에 곧바로 빠져버리니 
不得名爲眞出家人이요 正是眞俗家人이니라  진정한 출가인이라고 할 수 없으며
부득명위진출가인   정시진속가인  바로 말해 진실로 속된 사람[俗人]이다.” 
   
13-2 참다운 出家人  
   
不出家者는 須辨得平常眞正見解하야  "대저 출가한 사람은 모름지기 평상 그대로의 
부출가자   수변득평상진정견해 진정한 견해를 가려 지녀서  
辨佛辨魔하며 辨眞辨僞 辨凡辨聖이니  부처와 마군을 변별하고 진실과 거짓을 
변불변마   변진변위 변범변성  분별하며 범부와 성인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若如是辨得하면 名眞出家니라  만일 이와 같이 가려낼 수 있다면 
약여시변득   명진출가      참된 출가라고 할 것이지만 
若魔佛不辨하면 正是出一家入一家니  부처와 마군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한 집에서 나와 
약마불불변   정시출일가입일가    또 다른 집으로 들어 간 것이니 
喚作造業衆生이요 未得名爲眞出家人이니라  이는 업을 짓는 중생이지 
환작조업중생    미득명위진출가인        진정한 출가인 이라 할 수가 없다. 
如今에 有一箇佛魔하야 同體不分호미  지금 하나의 부처마군이 
지여금   유일개불마   동체불분흠    같은 몸이 되어 나눌 수 없는 것이 
如水乳合하면 鵝王喫乳요  마치 물과 우유가 섞여 있는 것과 같다면  
여수유합   아왕끽유    거위 왕은 우유만 먹을 것이요  
如明眼道流는 魔佛俱打하나니  눈 밝은 도류라면 마군과 부처를 함께 쳐버린다. 
여명안도류   마불구타         
若愛聖憎凡하면 生死海裏浮沈이니라  그대들이 만약 성인은 좋고 범부는 싫다 한다면 
이약애성증범   생사해리부침  생사의 바다속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13-3 無佛無衆生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   
   
問 如何是佛魔오  “무엇이 부처이고 마군입니까?” 
문 여하시불마    
師云 一念心疑處가 是箇魔니  “그대의 의심하는 한 생각이 바로 마군이다. 
사운 이일념심의처   시개마   
若達得萬法無生하면 心如幻化하야  그대가 만약 만법이 본래 태어남이 없는 
이약달득만법무생   심여환화      이치를 통달하면 마음은 환영과 같아지고
更無一塵一法하야 處處淸淨是佛이니라  다시는 한 티끌 한 법도 없어서 
갱무일진일법   처처청정시불        곳곳이 다 청정하리니 이것이 부처다. 
然佛與魔는 是染淨二境이라  그러나 부처와 마군이란 
연불여마  시염정이경  깨끗함과 더러움의 두 가지 경계다. 
約山僧見處하면 無佛無衆生하며  나의 견해에 의한다면 
약산승견처   무불무중생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無古無今하야 得者便得하야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어서 
무고무금   득자편득 얻을 것은 바로 얻는다. 
不歷時節이요 無修無證하며  오랜 세월을 거치지 않으며 
불역시절   무수무증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으며, 
無得無失하야 一切時中에 更無別法하니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서 
무득무실   일체시중  갱무별법      어느 때나 다시 다른 법이 없으니 
設有一法過此者라도 我說如夢如化하노니  설사 이보다 더 나은 법이 있다 하더라도 
설유일법과차자   아설여몽여화  나는 꿈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山僧所說이 皆是니라  산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것이다.” 
산승소설  개시   
   
13-4 通貫十方 어느 곳에도 막히지 않는다 
   
道流야 卽今目前孤明歷歷地聽者인  “도류여! 바로 지금 눈앞에서 
도류   즉금목전고명역역지청자 호젓이 밝고 역력하게 듣고 있는 이 사람은 
此人處處不滯하고 通貫十方하야 三界自在하야  어디를 가나 막힘이 없고 시방세계를 꿰뚫어 
차인처처불체    통관시방   삼계자재     삼계에 자유 자재하다. 
入一切境差別호되 不能回換하나니  온갖 차별한 경계에 들어가도 
입일체경차별   불능회환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는다. 
一刹那間에 透入法界하야 逢佛說佛하며  한 찰나 사이에 법계를 뚫고 들어가 
일차나간  투입법계    봉불설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말하고 
逢祖說祖하며 逢羅漢說羅漢하며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말하며 
봉조설조    봉나한설나한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말하고 
逢餓鬼說餓鬼하야  아귀를 만나면 아귀를 말한다. 
봉아귀설아귀      
向一切處하야 游履國土하야 敎化衆生호되  모든 곳을 향하여 여러 국토를 다니며 
향일체처   유리국토    교화중생 중생들을 교화하지만 
未曾離一念하고 隨處淸淨하야  일찍이 일념을 떠난 적이 없고
미증이일염    수처청정 가는 곳마다 청정하여 
光透十方하야 萬法一如니라  그 빛이 시방법계에 사무치니
광투시방    만법일여 만법이 한결 같다.” 
   
13-5 本來無事 본래 일이 없다
   
道流야 大丈夫兒가 今日方知本來無事로다  “도류여! 대장부라면 오늘 바야흐로 
도류  대장부아  금일방지본래무사      본래 아무런 일 없는 줄을 알 것이다. 
信不及일새 念念馳求하야  다만 그대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지위이신불급   염념치구      순간순간 내달려 구하면서 
捨頭覓頭하야 自不能歇하나니라  자기 머리는 놔두고 다른 머리를 찾느라 
사두멱두   자불능헐  스스로 쉴 수가 없다.” 
如圓頓菩薩이 入法界現身하야  “저 원교보살 돈교보살[圓頓菩薩]은 
여원돈보살  입법계현신      법계에 들어가 몸을 나타내어 
向淨土中하야 厭凡炘聖이라  정토를 향해 
향정토중   염범흔성  범부를 싫어하고 성인을 좋아한다 하는 
如此之流는 取捨未亡하고 染淨心在니  이런 무리는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잊지 못하고, 
여차지류  취사미망   염정심재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니 
如禪宗見解는 又且不然하야  선종의 견해는 또 그렇지 않아서 
여선종견해  우차불연   
直視現今이요 更無時節이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지 달리 다른 시절이 없다. 
직시현금   갱무시절         
山僧說處는 皆是一期藥病相治요  산승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한 시기의 
산승설처  개시일기약병상치  약처방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요
總無實法이니 若如是見得하면  실다운 법이라고 전혀 없으니 
총무실법   약여시견득    만약 이와 같이 볼 수만 있다면 
是眞出家라 日消萬兩黃金하니라  바로 참된 출가인이라
시진출가  일소만양황금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13-6 地獄業  지옥업
   
道流야 莫取次被諸方老師印破面門하야  “도류여! 그대들은 차례로 여러 곳 늙은 스승들의 
도류   막취차피제방노사인파면문      권위를 면전에서 깨뜨렸다 하여 
道我解禪解道하라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고 지껄이지 말라. 
도아해선해도   
辯似懸河하나 皆是造地獄業이니라  언변이 흡사 물처럼 유창하다 하더라도 
변사현하   개시조지옥업        이는 모두 다 지옥 갈 업을 짓는 것이다. 
若是眞正學道人은 不求世間過하고  만약 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이라면 
약시진정학도인  불구세간과     세상의 허물을 찾지 아니하고
切急要求眞正見解니  진정한 견해를 구하는 일이 
절급요구진정견해     간절하고 급박한 것이니,
若達眞正見解圓明하면 方始了畢이니라  만약 진정한 견해를 통달하여 뚜렷이 밝으면 
약달진정견해원명   방시요필  비로소 일을 마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3-7 실다운 법은 아무 것도 없다  
   
問 如何是眞正見解오  “무엇이 진정한 견해입니까?” 
문 여하시진정견해     
師云 但一切入凡入聖하며  “그대들은 단지 일체의 범부에도 들어가고
사운  이단일체입범입성    성인에도 들어가며 
入染入淨하며 入諸佛國土하며  더러움에도 깨끗함에도 들어가고 
입염입정   입제불국토    모든 부처님 나라에도 들어가며  
入彌勒樓閣하며 入毘盧遮那法界하야  미륵의 누각에도 들어가며 
입미륵누각   입비로자나법계    비로자나불의 법계에도 들어가서 
處處皆現國土하야 成住壞空하나니라  곳곳마다 국토를 나타내며 
처처개현국토   성주괴공  성ㆍ주ㆍ괴ㆍ공을 한다. 
佛出于世하야 轉大法輪하고 却入涅槃하되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오시어 
불출우세   전대법륜   각입열반  큰 법륜을 굴리시고 다시 열반에 드셨지만 
不見有去來相貌하야 求其生死하나  가고 오는 모양을 볼 수가 없으니
불견유거래상모   구기생사    그 생사를 찾아도 
了不可得이니라  마침내 찾을 길이 없다. 
요불가득         
便入無生法界하야 處處游履國土하야  곧바로 무생법계에 들어가 
편입무생법계   처처유리국토      곳곳의 여러 국토를 노닐고 
入華藏世界하야 盡見諸法空相하야  화장세계에 들어가 
입화장세계   진견제법공상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을 다 보니  
皆無實法이니라  모두가 실다운 법이 없다. 
개무실법   
唯有聽法無依道人이 是諸佛之母라  오직 법을 듣고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이 
유유청법무의도인   시제불지모라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다. 
所以佛從無依生이요  그러므로 부처는 의지함이 없는 데서 생겨난다. 
소이불종무의생  
若悟無依하면 佛亦無得이니  만약 의지함이 없음을 깨닫는다면 
약오무의   불역무득      부처라는 것도 얻을 것이 없다. 
若如是見得하면 是眞正見解니라  만약 이와 같이 보게 된다면 
약여시견득   시진정견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견해이다.” 
   
13-8 찾을수록 멀어 진다  
   
學人不了하야 爲執名句하야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학인불료   위집명구      명칭과 글귀에 집착하여 
被他凡聖名礙일새 所以障其道眼하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이름에 구애되는 까닭에 
피타범성명애   소이장기도안    그 도의 안목[道眼]이 막혀 
不得分明이니라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부득분명   
如十二分敎는 皆是表現之說이라  단지 십이분교는  
지여십이분교  개시표현지설  모두가 표현하는 말이다. 
學者不會하고 便向表顯名句上生解하나니  공부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학자불회   편향표현명구상생해 겉으로 드러난 명칭이나 글귀에서 알음알이를 낸다. 
皆是依倚라 落在因果하야  이것은 모두 무엇에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라서 
개시의의  낙재인과      인과에 떨어지며 
未免三界生死하나니라  삼계에서 생사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미면삼계생사   
若欲得生死去住脫著自由인댄  그대들이 만약 나고 죽음과 가고 
이약욕득생사거주탈착자유 머무름을 벗어나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卽今識取聽法底人하라  지금 법문을 듣는 그 사람을 알도록 하라. 
즉금식취청법저인  
無形無相하며 無根無本無住處하야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무형무상   무근무본무주처 뿌리도 없고 바탕도 없으며 머무르는 곳도 없이
鱍鱍地라  살아 움직이는 자리이다. 
활발발지    
應是萬種施設하야 用處是無處일새  만 가지 시설물에 응하여서도 
응시만종시설   용처지시무처    쓰이는 곳이 없기 때문에 
所以覓著轉遠이요 求之轉乖니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소이멱착전원   구지전괴   구할수록 더욱 어긋나니
號之爲秘密이니라 비밀이라 부르는 것이다.” 
호지위비밀  
   
13-9 人生無常 인생무상
   
道流야 莫認著箇夢幻伴子하라  “도류여! 그대들은 이 꿈속의 허깨비 같은 
도류  이막인착개몽환반자 몸뚱이를 애착하지 말라. 
遲晩中間에 便歸無常하나니  머지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지만중간  변귀무상 곧 덧없음으로 돌아 갈 것이다. 
向此世界中하야 覓箇什麽物作解脫고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이향차세계중    멱개십마물작해탈 무엇을 찾아 해탈을 하겠느냐? 
覓取一口飯喫하고 補毳過時하야  그저 밥 한술 찾아 먹고 
멱취일구반긱   보취과시 누더기를 꿰매며 시간을 보내고  
且要訪尋知識이요 莫因循逐樂하라  또 선지식을 찾아 참문하기를 힘쓸 것이요 
차요방심지식   막인순축낙 즐거운 일을 쫓아 돌지 말라. 
光陰可惜이니 念念無常하야  애석하게도 세월이 너무도 빠르니 
광음가석   염염무상    순간순간 무상하여 
麤則被地水火風이요  크게는 곧 지,수,화,풍 그리고 
추즉피지수화풍  
細則被生住異滅四相所逼이니라  작게는 곧 생,주,이,멸의 네 모양이  
세즉피생주이멸사상소핍 가까이에 있다.
道流야 今時에 且要識取四種無相境하야  도류여! 지금에 중요한 것은 
도류  금시  차요식취사종무상경      네 가지 모양없는 경계를 잘 알아서 
免被境擺撲이어다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면피경파박   
   
13-10 四種無相境  
   
問 如何是四種無相境고  "무엇이 네 가지 모양없는 경계입니까?” 
  여하시사종무상경     
師云 一念心疑가 被地來礙하며  “그대들 한 생각과 마음의 의심이 
사운  이일념심의  피지래애 흙이 되어 가로막으며, 
一念心愛가 被水來溺하며  한 생각과 마음의 애착이 
이일념심애  피수래익      물이 되어 빠지게 하며, 
一念心瞋이 被火來燒하며  한 생각과 마음의 성냄이 
이일념심진  피화내소  불이 되어 타게 하며, 
一念心喜가 被風來飄하나니  한 생각과 마음의 기쁨이 
이일념심희  피풍래표        바람이 되어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若能如是辨得하면 不被境轉하고  만약 이렇게 알아낼 수 있다면 
약능여시변득   불피경전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處處用境이라  곳곳마다 경계를 활용할 것이다. 
처처용경     
東涌西沒하며 南涌北沒하고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사라지고, 
동용서몰   남용북몰    남쪽에서 솟아 북쪽으로 사라지고, 
中涌邊沒하며 邊涌中沒하야  가운데서 솟아 가장자리로 사라지고, 
중용변몰   변용중몰    가장자리에서 솟아 가운데로 사라져서 
履水如地하며 履地如水하니라  땅을 밟듯 물을 밟고, 
이수여지   이지여수 물을 밟듯 땅을 밟는다. 
緣何如此오 爲達四大如夢如幻故니라  어째서 그러한가? 사대의 육신이 꿈과 같고 
연하여차  위달사대여몽여환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13-11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  
   
道流야 今聽法者가 不是四大로대  “도류여!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은 
도류  이지금청법자  불시이사대 그대들의 사대육신이 아니면서도  
能用四大하나니  그대들의 사대육신을 능히 활용할 줄 안다. 
능용이사대      
若能如是見得하면 便乃去住自由니라  만약 이와 같이 볼 수만 있다면 
약능여시견득   편내거주자유    가고 머무름에 자유자재하게 될 것이다. 
若山僧見處하면 勿嫌底法이라  나의 견해에 의하면 
약산승견처   물혐저법  아무것도 꺼려 할 것이 없는 이치다.
若愛聖하면 聖者聖之名이니라  그대들이 성인을 애착한다면 
이약애성    성자성지명  성인이란 성인이라는 이름일 뿐이다. 
有一般學人이 向五臺山裏求文殊하나니  어떤 배우는 이들은 모두 오대산 속에 가서 
유일반학인   향오대산리구문수        문수보살을 구한다. 
早錯了也라 五臺山無文殊니라  그러나 그것은 벌써 틀린 일이다. 
조착요야   오대산무문수      오대산에는 문수가 없다. 
欲識文殊麽아 문수를 알고 싶은가? 
이욕식문수마   
目前用處가 始終不異하며  다만 그대들 눈앞에서 작용하는 곳이  
지이목전용처  시종불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지 않고 
處處不疑가 此箇是活文殊니라  어딜 가든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처처불의   차개시활문수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문수다. 
一念心無差別光이 處處總是眞普賢이요  그대들의 한 생각과 마음에 차별 없는 빛이 
이일념심무차별광   처처총시진보현  어디에나 다 비추는 것이 진짜 보현보살이고, 
一念心自能解縛하야 隨處解脫이요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스스로 결박을 풀고
이일념심자능해박   수처해탈      어디서나 해탈하는 것  
此是觀音三昧法이니라  그것이 바로 관음보살의 삼매법이다. 
차시관음삼매법      
互爲主伴하야 出則一時出하나니  서로 주인도 되고 벗도 되어 
호위주반   출즉일시출     나올 때는 한꺼번에 나오니 
一卽三三卽一이라  하나가 곧 셋이고 셋이 곧 하나이다. 
일즉삼삼즉일  
如是解得하면 始好看敎니라  이와 같이 알면 
여시해득   시호간교  비로소 가르침을 잘 본 것이다.” 
   
14-1 文字에 속지 말라  
   
師示衆云 如今學道人은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사시중운 여금학도인    “오늘날 배우는 사람들은  
且要自信이요 莫向外覓하라  스스로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  
차요자신   막향외멱  밖으로는 찾지 말라. 
總上他閑塵境하야 都不辨邪正하나니  모두 다 저 부질없는 경계들을 받들어서 
총상타한진경   도불변사정 도무지 삿됨과 바름을 변별하지 못하고 있다. 
如有祖有佛은 皆是敎迹中事니라  다만 어느 조사니 어느 부처니 하는 것은 
지여유조유불  개시교적중사  모두가 가르치는 과정의 일이다. 
有人拈起一句子語하야  어떤 사람이 한 마디 말을 거론하였을 때 
유인염기일구자어       
或隱顯中出이면 便卽疑生하야  혹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隱顯中] 나온 말이면   
혹은현중출    편즉의생 곧바로 의심을 내어 
照天照地하야 傍家尋問하야 也太忙然이로다  천지를 뒤지고 옆집에 가서 물으며  
조천조지   방가심문   야태망연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쁘다. 
大丈夫兒여 莫麽論主論賊하며  대장부라면 다만 이렇게 
대장부아  막지마론주론적    주인이니 도적이니, 
論是論非하며 論色論財하야  옳거니 그르거니, 색(色)이니 재물(財)이니 하며 
논시논비   논색논재     
論說閑話過日하라  한가한 이야기로 소일하지 말라. 
논설한화과일      
山僧此間에는 不論僧俗이요  산승의 이곳에는 승속을 논하지 않고 
산승차간   불론승속     
但有來者하면 盡識得伊니  누가 오기만 하면 
단유래자   진식득이   그를 다 알아내버린다. 
任伊向甚處出來나 但有聲名文句하야  그들이 어디서 왔던 간에 
임이향심처출래  단유성명문구    오로지 소리나 이름이나 문구만 있어서
皆是夢幻이니라  모두가 꿈속의 허깨비이다.” 
개시몽환   
   
14-2 사람에 따라 모습을 나타낸다  
   
却見乘境底人하니 是諸佛之玄旨라  “경계를 다스리는 사람을 돌아보면  
각견승경저인   시제불지현지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현묘한 뜻이다. 
佛境不能自稱我是佛境이요  부처님의 경지는 ‘나는 부처의 경지다.’라고 
불경불능자칭아시불경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還是這箇無依道人이 乘境出來니라  도리어 그러한 무의도인은  
환시저개무의도인  승경출래  경계를 다스려서 나타난다. 
若有人出來하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약유인출래     
問我求佛하면 我卽應淸淨境出하고  나에게 부처 구하는 일을 물으면 
문아구불   아즉응청정경출 나는 곧 청정한 경지를 내어 응하고, 
有人問我菩薩하면 我卽應慈悲境出하며  어떤 사람이 내게 보살을 묻는다면 
유인문아보살   아즉응자비경출     나는 곧 자비의 경지를 내어 응하며, 
有人問我菩提하면 我卽應淨妙境出하고  어떤 사람이 보리를 묻는다면 
유인문아보리   즉응정묘경출       나는 곧 정묘한 경지를 내어 응하고, 
有人問我涅槃하면 我卽應寂靜境出하나니  어떤 사람이 열반을 묻는다면 
유인문아열반   아즉응적정경출     나는 곧 고요한 경지를 내어 응한다.
境卽萬般差別이나 人卽不別이라  경계는 수만 가지로 차별하지만 
경즉만반차별   인즉불별 사람은 차별이 없다. 
所以應物現形은 如水中月이니라  그러므로 사물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소이응물현형   여수중월  마치 물 속에 비친 달과 같다.” 
   
14-3 大丈夫 대장부라야 된다 
   
道流야 若欲得如法하면  “도류여! 
도류   이약욕득여법      그대들이 만약 여법(如法)하고자 한다면 
直須是大丈夫兒라사 始得다  모름지기 대장부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직수시대장부아     시득  
若萎萎隨隨地하면 則不得也니라  시들시들하고 축 처져서는 안 된다. 
약위위수수지     즉부득야       
夫如斯[斯瓦]之器는 不堪貯醍醐니  대저 목이 막힌 그릇에는 
부여사      사지기   불감저제호    제호(醍醐)탕을 담을 수 없으니 
如大器者는 直要不受人惑하고  큰 그릇이라면 
여대기자   직요불수인혹  사람에게 유혹되지 않고 
隨處作主하야 立處皆眞이니라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되어 
수처작주     입처개진  내세우는 바가 다 진실한 것이 중요하다. 
但有來者어든 皆不得受니  다만 찾아오는 사람이 있더라도 
단유래자     개부득수    모두 받아들일 것은 아니니
一念疑하면 卽魔入心이라  그대들이 한 순간 의심하면 
이일념의     즉마입심  곧 마(魔)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如菩薩疑時에 生死魔得便이니라  만약 보살이라도 의심을 내면 
여보살의시   생사마득편        생사의 마군이 틈을 얻는다. 
但能息念이요 更莫外求하고  다만 생각을 쉴 뿐이요 
단능식념    갱막외구      다시 바깥으로 구하지 말고 
物來卽照하라  사물이 다가오면 곧 비춰보라. 
물래즉조   
但信現今用底하면 一箇事也無니라  그대들이 단지 지금 말한 것을 확신한다면 
이단신현금용저    일개사야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다. 
一念心生三界하야 隨緣被境하야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삼계도 만들어내고 
이일념심생삼계    수연피경  인연을 따라 경계에 끄달려서 
分爲六塵하니  육진경계로 나뉘기도 하는데 
분위육진  
如今應用處가 欠少什麽오 그대들이 지금 마땅히 쓰는 데에  
이여금응용처  흠소십마 무슨 모자람이 있겠는가? 
一刹那間에 便入淨入穢하며  한 찰나 사이에 깨끗함에도 들어가고 
일찰나간   편입정입예     더러움에도 들어가며, 
入彌勒樓閣하며 入三眼國土하야  미륵누각(최상승경지)에도 들어가며
입미륵누각   입삼안국토     삼안국토(三眼國土)에도 들어가서 
處處游履하나 唯見空名이니라  곳곳을 다니지만 오직 텅 빈 이름뿐이다.” 
처처유리    유견공명  
   
14-4 心外無法 마음 밖에는 법이 없다.
   
問 如何是三眼國土오  "무엇이 삼안국토입니까?” 
  여하시삼안국토     
師云 我共入淨妙國土中하야  “나는 그대들과 함께 청정하고 
사운 아공이입정묘국토중     미묘한 국토에 들어가 
著淸淨衣하고 說法身佛하며  청정한 옷을 입고 법신불을 설한다. 
착정정의    설법신불  
又入無差別國土中하야 著無差別衣하고  또 차별 없는 국토에 들어가 
우입무차별국토중    착무차별의     차별 없는 옷을 입고 
說報身佛하며  보신불을 설한다. 
설보신불  
又入解脫國土中하야 著光明衣하고  또 해탈국토에 들어가 광명의 옷을 입고 
우입해탈국토중    착광명의      
說化身佛하나니  화신불을 설한다. 
설화신불       
此三眼國土는 皆是依變이니라  이 삼안국토란 모두가 
차삼안국토   개시의변      무엇에 의지하여 변화하는 것이다. 
約經論家하면 取法身爲根本하고  교학자(敎學者)들은 
약경론가    취법신위근본     법신이 근본이 되고  
報化二身爲用하나  보신과 화신의 두 몸은 
보화이신위용    그 씀이다 하지만 
山僧見處는 法身卽不解說法이라  산승의 견해로는 
산승견처   법신즉불해탈법 법신은 설법을 알지 못한다. 
所以로 古人云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소이  고인운     
身依義立이요 土據體論이라하니  ‘몸은 뜻에 의거하여 말하고 
신의의립   토기체론       땅은 본체에 의거해서 논한다'고 하였으나 
法性身法性土는 明知是建立之法이요  법성신과 법성토는 세우는 법이요  
법성신법성토  명지시건립지법     
依通國土니  소통하는 국토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리니 
의통국토  
空拳黃葉으로 用誑小兒니라  빈주먹과 누런 잎사귀로 
공권광엽   용광소아 어린아이를 속이는 것이다. 
蒺藜菱刺와 枯骨上에 覓什麽汁고  찔레가시와 마른 뼈다귀에서 
질여능자  고골상   멱십마즙   무슨 국물을 찾겠는가? 
心外無法이요 內亦不可得이니 求什麽物고 마음 밖에 법이 없고 마음 안에도 얻을 것 없는데 
심외무법    내역불가득   구십마물 무엇을 찾겠는가?” 
   
14-5 修行이란 業을 짓는 일이다  
   
諸方言道호대 有修有證이라하니 莫錯하라  “그대들이 여러 곳을 다니며 닦을 것도 있고 
이제방언도    유수유증      막착 깨칠 것도 있다고 말하는데 착각하지 말아라. 
設有修得者라도 皆是生死業이며  설령 닦아서 얻을 것이 있다 하더라도 
설유수득자    개시생사업 그것은 모두가 생사의 업이다. 
言六度萬行齊修라하나 我見皆是造業이니라  그대들은 육도만행을 잘 닦는다고 하지만 
이언육도만행제수     아견개시조업 내가 보기에는 모두 업을 짓고 있다. 
求佛求法은 卽是造地獄業이라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는 것은 
구불구법   즉시조지옥업 지옥의 업을 짓는 것이고, 
求菩薩亦是造業이요 看經看敎도 亦是造業이니  보살을 구하는 것도 업을 짓는 것이며, 
구보살역시조업    간경간교   역시조업 경을 보고 가르침을 듣는 것도 업을 짓는 것이다. 
佛與祖師는 是無事人이라  부처와 조사는 바로 일 없는 사람이다. 
불여조사   시무사인  
所以有漏有爲와 無漏無爲가 爲淸淨業이니라  그러므로 유루와 유위, 무루와 무위가  
소이유루유위   무루무위   위청정업 다 청청한 업이다. 
有一般瞎禿子하야 飽喫飯了하고  어떤 눈먼 머리 깎은 사람이 
유일반할독자    포긱반료     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 
便坐禪觀行호대 把捉念漏하야  곧 좌선하거나 관행을 하되 
편좌선관행    파착념루     생각과 버뇌를 붙잡아 
不令放起하며 厭喧求靜하나니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불령방기    염훤구정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것만을 찾는데 
是外道法이니라 이것은 다 외도의 법이다. 
시외도법  
祖師云 若住心看靜하며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사운  이약주심간정     ‘그대들이 만약 마음을 안주시켜 고요함을 보고, 
擧心外照하고 攝心內澄하며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관조하며, 
거심외조    섭심내징     마음을 가다듬어 안으로 맑히며, 
凝心入定하면 如是之流는 皆是造作이라하니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정(定)에 든다면 
응심입정    여시지류   개시조작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조작이다.’라고 하셨다.” 
   
14-5  
   
如今與麽聽法底人을  "그대들은 지금 이렇게 
시이여금여마청법저인 법문을 듣는 그 사람을 
作麽生擬修他證他莊嚴他리오 어떻게 그를 닦고, 어떻게 그를 증득하며, 
작마생의수타증타장엄타 어떻게 그를 장엄하려 하는가? 
渠且不是修底物이며 不是莊嚴得底物이니라  그것은 닦을 물건이 아니며 
거차불시수저물    불시장엄득저물 장엄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若敎他莊嚴하면 一切物을 卽莊嚴得이니  만약 그것을 장엄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약교타장엄    일체물   즉장엄득     무엇이든지 다 장엄할 수 있다는 것이니 
且莫錯하라 그대들은 잘못 알지 말아라.” 
이차막착  
   
14-6 獅子吼 사자후
   
道流야 取這一般老師口裏語하야  “도류여! 그대들은 보통 
도류   이취자일반노사구리어     노스님들의 설법을 듣고 
爲是眞道하야  그것이 참된 도라고 여긴다. 
위시진도      
是善知識은 不思議요 我是凡夫心이니  그 선지식은 불가사의하고 
시선지식   불사의   아시범부심 나는 범부의 마음이니 
不敢測度他老宿이라하나니  감히 그 노스님의 뜻을 
불감측탁타노숙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瞎屢生이여 一生을 作這箇見解하야  이 눈멀고 어리석은 사람들아! 
할루생   이일생   지작자개견해     그대들의 일생을 이러한 견해를 지어 
辜負這一雙眼하니 멀쩡한 두 눈을 막아버리고 산다. 
고부자일쌍안  
冷噤噤地가 如凍凌上驢駒相似로다  추워서 벌벌 떠는 모습이 
낸금금지   여동릉상려구상사 마치 빙판 위를 걸어가는 당나귀의 새끼 같구나. 
我不敢毁善知識이라 怕生口業이라하니라  ‘나는 감히 선지식을 비방할 수 없으니 
아불감훼선지식    파생구업 입으로 짓는 업이 두렵다.’고 하니라.
道流야 夫大善知識이 始敢毁佛毁祖하며  도류여! 큰 선지식이라야 
도류   부대선지식  시감훼불훼조     비로소 부처와 조사를 비방할 수 있고 
是非天下하며 排斥三藏敎하며  천하를 옳다 그르다 할 수 있으며  
시비천하   배척삼장교     경ㆍ율ㆍ논 삼장의 가르침을 배척할 수도 있고
罵辱諸小兒하야 向逆順中覓人하나니  어린애 같은 모든 무리들을 꾸짖을 수 있으며
매욕제소아   향역순중멱인      거슬리고 순종하는 속에 사람을 찾을 수 있다. 
所以로 我於十二年中은 求一箇業性을  그래서 나는 12년 동안 
소이  아어십이년중  구일개업생    업의 성품을 찾았으나 
如芥子許도 不可得이니라  겨자씨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여개자허   불가득  
若似新婦子禪師하면 便卽怕趁出院하야  만약 새색시 같은 선사라면 
약사신부자선사    편즉파진출원 절에서 쫓겨나서 
不與飯喫하야 不安不樂이어니와   밥을 얻어먹지 못할까 
불여반끽    불안불락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지만  
自古先輩가 到處人不信하고 被趁出하야 예로부터 뛰어난 선배는 
자고선배   도처인불신    피진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믿지 않아 쫓겨났다. 
始知是貴하나니  그리고 나중에야 비로소 귀한 사람인줄 알았다. 
시지시귀       
若到處人盡肯하면 堪作什麽오  만약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인정해 준다면, 
약도처인진긍   감작십마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所以師子一吼에 野干腦裂이니라  그러므로 한 번의 사자후에 
소이사자일후   야간뇌열 여우의 머리통이 찢어지는 것이다.” 
   
14-7 平常心이 道다  
   
道流야 諸方說有道可修하며 有法可證하나니  “도류여! 제방의 선지식들이 닦을 만한 도가 있고
도류   제방설유도가수    유법가증 깨칠 만한 법이 있다고 말하는데, 
說證何法修何道오  그대들은 무슨 법을 깨치고
이설증하법수가도 무슨 도를 닦는다고 말하는가? 
今用處欠少什麽物이며 修補何處오  그대들이 지금 쓰기에 무슨 모자람이 있으며, 
이금용처흠소십마물    수보하처 무엇을 닦고 보완한다는 것인가? 
後生小阿師不會하야 便卽信這般野狐精魅하야  못난 후학들이 잘 모르고 
후생소아사불회    편즉신자반야호정매 그런 여우 도깨비를 믿어서 
許他說事하야 繫縛他人言道호대  그들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는 
허타설사    계박타인언도 다른 사람들까지 얽어매어 말하기를 
理行相應하고 護惜三業하야사  ‘이치와 행이 서로 부합하고 
이행상응    호석삼업      삼업을 잘 보호하고 지켜야만 
始得成佛이라하니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시득성불  
如此說者는 如春細雨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자들은 
여차설자   여춘세우 봄날의 가랑비처럼 많다. 
古人云 路逢達道人이어든  옛 사람이 이르기를, 
고인운  노봉달도인 ‘길에서 도를 아는 사람을 만나거든, 
第一莫向道하라하니라  무엇보다 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제일막향도  
所以言 若人修道道不行이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만약 누구라도 
소이언 약인수도도불행 도를 닦으면 도는 행하여지지 않고 
萬般邪境競頭生이라  도리어 수만 가지의 삿된 경계들이 
만반사경경두생 다투어 생겨나게 된다. 
智劍出來無一物하야 明頭未顯暗頭明이로다  지혜의 칼을 뽑아들면 아무것도 없어서  
지검출래무일물    명두미현암두명 밝음이 나타나기 전에 어둠이 밝아진다.’ 하였다. 
所以로 古人云 平常心是道라하니라 그러므로 또 옛사람이 말하기를, 
소이   고인운  평상심시도 ‘평상의 마음이 바로 도(道)다’라고 한 것이다.” 
   
14-8 그 마음 그대로 살아있는 祖師다  
   
大德아 覓什麽物고  “대덕아! 무엇을 찾느냐? 
대덕아 멱십마물     
現今目前聽法無依道人이  바로 지금 눈앞에 법문을 듣는 그 사람,
현금목전청법무의도인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는 무의도인(無依道人)은 
歷歷地分明하야 未曾欠少하니 너무도 분명하고 결코 부족한 것이 없다. 
역역지분명     미증흠소       
若欲得與祖佛不別인댄  그대들이 만약 조사나 부처님[祖佛]과 
이약욕득여조불불별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但如是見이요 不用疑誤니라  다만 이와 같이 보면 되는 것이니
단여시견     불용의오  의심하여 그르치지 말라. 
心心不異를 名之活祖니  그대들의 순간순간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이심심불이   명지활조    이름 하여 살아있는 조사[活祖]라 한다. 
心若有異하면 則性相別이요  마음이 만약 다르면 
심약유이     즉성상별  성품과 상이 다르게 되지만 
心不異故로 卽性與相不別이니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심불이고   즉성여상불별  성품과 상이 다르지 않다.” 
   
14-9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롭다   
   
問 如何是心心不異處오  "무엇이 순간순간의 마음이 
문 여하시심심불이처  다르지 않는 경계입니까?” 
師云 擬問早異了也니 性相各分이로다  “그대들이 묻는 순간 벌써 달라져 버린 것이니 
사운 이의문조이요야   성상각분  성품과 상이 각각 나누어졌다. 
道流야 莫錯하라 世出世諸法이 皆無自性하며  도류여! 착각하지 말아라. 
도류   막착     세출세제법   개무자성  세간이나 출세간의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으며, 
亦無生性하고 但有空名하야 名字亦空이어늘  또한 생멸의 성품도 없고 그저 허망한 이름뿐이며 
역무생성     단유공명     명자역공  그 이름도 또한 텅 빈 것이다. 
祇麽認他閑名爲實하니 大錯了也로다  그대들은 이처럼 그 부질없는 이름을 
이지마인타한명위실     대착료야  진실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매우 잘못 된 것이다. 
設有皆是依變之境이라  설사 그러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설유개시의변지경  모두가 의지해서 변화한 경계들이다. 
有箇菩提依와 涅槃依와 解脫依와 三身依와  이른바 보리에 의지함과 열반에 의지함과 
유개보리의  열반의  해탈의  삼신의  해탈에 의지함과 삼신에 의지함과  
境智依와 菩薩依와 佛依니라  경계와 지혜에 의지함과 보살에 의지함과  
경지의  보살의  불의  부처에 의지함 등이다. 
向依變國土中하야 覓什麽物고  그대들은 의지하여 변한 국토에서 
이향의변국토중   멱십마물    무엇을 찾고 있느냐? 
乃至三乘十二分敎는 皆是拭不淨故紙며  삼승 십이분교마저도 
내지삼승십이분교  개시식불정고지    모두가 똥을 닦아낸 휴지다. 
佛是幻化身이요 祖是老比丘니  부처란 허깨비로 나타난 몸이며, 
불시환화신   조시노비구  조사란 늙은 비구인데 
還是娘生已不아 그대들은 이미 어머니가 낳아 주시지 않았느냐?
이환시낭생이부     
若求佛하면 卽被佛魔攝이요  그대들이 만약 부처를 구하면 
이약구불   즉피불마섭  부처라는 마군(魔群)에게 붙잡히고, 
若求祖하면 卽被祖魔縛이니 조사를 구하면 
이약구조   즉피조마박      조사라는 마군에게 묶이게 된다. 
若有求皆苦라 不如無事로다  그대들이 만약 구하는 것이 있으면 
이약유구개고  불여무사  모두가 고통이니 아무 일 없느니만 못하다.” 
   
14-10 형상 없는 것이 참 형상이다  
   
有一般禿比丘하야 向學人道호대  “어떤 머리 깎은 비구가 있어서 
유일반독비구     향학인도      학인들을 향해 말하기를,
佛是究竟이니 於三大阿僧祇劫에  ‘부처는 궁극적인 경지니 
불시구경    어삼대아승지겁    삼대 아승지겁 동안 
修行果滿하야 方始成道라하니  수행하여 그 결과가 다 채워져서 
수행과만     방시성도라  비로소 도를 이룬 것이다.’라고 한다. 
道流야 若道佛是究竟인댄  도류여! 
도류   이약도불시구경      그대들이 만약 부처를 궁극적인 경지라 한다면 
緣什麽하야 八十年後에  어떤 연유로 부처님께서 80년 후에 
연십마     팔십년후     
向拘尸羅城雙林樹間하야 側臥而死去며  쿠시나가라 성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향구시라성쌍임수간하   측와이사거  옆으로 누워 돌아가셨는가? 
佛今何在오 明知 與我生死不別이니라  그리고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불금하재   명지 여아생사불별  우리들의 생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라. 
言 三十二相八十種好是佛이라하니  그대들은 32상과 80종호가 부처님이라고 하는데, 
이언 삼십이상팔십종호시불   
轉輪聖王도 應是如來라 明知是幻化로다  그렇다면 전륜성왕도 마땅히 여래이어야 할 것이니
전륜성왕   응시여래   명지시환화  그것은 환영이고 허깨비임을 분명히 알라.” 
古人云 如來擧身相은 爲順世間情이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여래가 갖추신 몸의 모습은 
고인운 여래거신상   위순세간정  세간의 정을 따른 것이다. 
恐人生斷見하야 權且立虛言이로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을 내게 될까 
공인생단견     권차립허언  염려하시어 짐짓 거짓으로 세운 말이다. 
暇言三十二하고 八十也空聲이니 32상은 거짓 이름이고 80종호도 헛소리니  
 가언삼십이     팔십야공성      
有身非覺體요 無相乃眞形이로다 몸은 깨달음의 본체가 아니며, 
유신비각체   무상내진형  상이 없어야 진실한 형상이다’라고 하였다.” 
   
14-11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   
   
道호대 佛有六通하야 是不可思議라하니  그대들이 ‘부처님께서는 여섯 가지 신통이 있으시니 
이도   불유육통   시불가사의 참으로  불가사의하다’고 하는데, 
一切諸天과 神仙阿修羅와 大力鬼도 亦有神通하니  여러 천신들과 신선과 아수라와 
일체제천   신선아수라   대력귀   역유신통 힘센 귀신들도 역시 신통이 있으니
應是佛否아 道流莫錯하라  이들도 마땅히 부처님이겠구나하고
응시불부   도류막착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祇如阿修羅가 與天帝釋戰戰敗에 領八萬四千眷屬하고  아수라들이 제석천신들과 싸우다 지게 되면 
지여아수라   여천제석전전패   영팔만사천권속  팔만 사천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入藕絲孔中藏하니 莫是聖否아  연근 뿌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하니, 
입우사공중장   막시성부  이들도 성인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如山僧所擧는 皆是業通依通이니라  내가 예를 든 것은 
여산승소거   개시업통의통  모두가 업의 신통이거나 의지한 신통들이다.” 
夫如佛六通者는 不然하야 入色界不被色惑하며  대저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부여불육통자   불연   입색계불피색혹 물질의 경계에 들지만 물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入聲界不被聲惑하며 入香界不被香惑하며  소리의 경계에 들지만 소리의 미혹함을 받지 않으며, 
입성계불피성혹   입향계불피향혹 냄새의 경계에 들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入味界不被味惑하며 入觸界不被觸惑하며  맛의 경계에 들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입미계불피미혹   입촉계불피촉혹      감촉의 경계에 들지만 감촉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入法界不被法惑하니라  법의 경계에 들지만 법의 경계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입법계불피법혹  
所以로 達六種色聲香味觸法이 皆是空相이라  그러므로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이 여섯 가지가 
소이   달육종색성향미촉법   개시공상  모두 텅 비었음을 통달하고 있어서
不能繫縛此無依道人하야 雖是五蘊漏質이나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무의도인을 속박할 수 없다. 
불능계박차무의도인   수시오온누질      비록 오온의 번뇌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便是地行神通이니라  바로 이것이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이다.
편시지행신통  
   
14-12 三界唯心  
   
道流야 眞佛無形이요 眞法無相이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진불무형   진법무상      참 부처는 형상이 없고 참된 법은 모양이 없다. 
祇麽幻化上頭에 作模作樣하야  그대들은 그와 같은 변화로 나타난 허깨비에서 
이지마환화상두 작모작양      이런 모양을 짓고 저런 모양을 짓는구나. 
設求得者나 皆是野狐精魅요 幷不是眞佛이니  설사 그런 것을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설구득자 개시야호정매  병불시진불      모두 여우의 혼령들이며 결코 참된 부처가 아니다. 
是外道見解니라 夫如眞學道人은  이는 바로 외도의 견해인 것이다. 
시외도견해    부여진학도인    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幷不取佛하며 佛取菩薩羅漢하며  부처마저도 취하지 않으며 
병불취불   불취보살나한  보살과 나한도 취하지 않고 
不取三界殊勝하고 逈然獨脫하야 不與物拘니라  삼계의 뛰어난 경계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불취삼계수승   형연독탈   불여물구  멀리 홀로 벗어나 사물에 전혀 구애되지 않는다. 
乾坤倒覆하야도 我更不疑하며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해도 
건곤도복   아갱불의      나는 더 이상 의혹하지 않는다. 
十方諸佛現前하야도 無一念心喜하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앞에 나타난다 하여도 
시방제불현전   무일념심희      한 생각도 기쁜 마음이 없다. 
三塗地獄頓現하야도 無一念心怖하나니  삼악도의 지옥이 갑자기 나타난다 하여도 
삼도지옥돈현     무일념심포  한 생각도 두려운 마음이 없다. 
緣何如此오 我見諸法空相일새  어째서 그런가
연하여차   아견제법공상      나는 모든 법은 공한 모습이라 
變卽有하고  不變卽無니라  변화하면 곧 있고 
변즉유   불변즉무  변화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본다. 
三界唯心이요 萬法唯識이니  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삼계유심   만법유식      만법은 오직 의식이기 때문이다. 
所以로 夢幻空花를 何勞把捉가하니라  그러므로 ‘꿈이요, 환상이요, 헛꽃인 것을 
소이   몽환공화   하로파착  무엇 때문에 수고로이 붙드려는가.’라고 하였다.”
   
14-13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唯有道流의 目前現今聽法底人하야  “오직 도를 배우는 벗들의 눈앞에 
유유도류   목전현금청법저인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入火不燒하며 入水不溺하며  그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입화불소  입수불익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入三塗地獄호대 如遊園觀하며  삼악도의 지옥에 들어가도 
입삼도지옥   여유원관  마치 정원을 구경하며 노는 듯하고, 
入餓鬼畜生而不受報하나니  아귀 축생에 들어가도 그 업보를 받지 않는다. 
입아귀축생이불수보         
緣何如此오 無嫌底法일새니라  어째서 그런가 하면 
연하여차  무혐저법 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若愛聖憎凡하면 生死海裏沈浮하리니  그대들이 만약 성인은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이약애성증범   생사해리침부        생사의 바다에 떴다 잠겼다 할 것이다. 
煩惱由心故有라 無心煩惱何拘리오  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아서 생겨나는 것이니 
번뇌유심고유   무심번뇌하구리    마음이 없다면 번뇌기 어찌 사람을 구속하겠는가? 
不勞分別取相하면 自然得道須臾니라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느라 헛수고하지 않으면 
불노분별취상   자연득도수유  저절로 잠깐 사이에 도를 얻을 것이다. 
擬傍家波波地學得하면  그대들이 분주하게 옆 사람에게 
이의방가파파지학득      배워서 얻으려 한다면 
於三祇劫中에 終歸生死하리니  삼 아승지 겁 동안 애를 써도 
어삼지겁중   종귀생사  결국은 생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不如無事하야 向叢林中하야 牀角頭交脚坐니라  아무런 일 없이 총림의 선상 구석에서 
불여무사   향총림중   상각두교각좌  두 다리를 틀고 앉아 있느니만 못하리라.” 
   
14-14 주객이 서로 만나다   
   
道流야 如諸方有學人來하야 主客相見了하고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예컨대 여러 곳에서 
도류   여제방유학인래     주객상견료  학인이 찾아왔을 때 주인과 객이 인사를 나눈 뒤 
便有一句子語하야 辨前頭善知識이라  학인이 대뜸 한마디를 던져 
편유일구자어     변전두선지식  앞에 있는 선지식을 알아보려고 한다. 
被學人拈出箇機權語路하야  이를테면 학인이
피학인염출개기권어로      한 가지 시험하는 말[機權語路]을 끄집어내어 
向善知識口角頭過하야 看識不識이어든  선지식을 향해 입씨름하는 말[口角頭]을 던져서 
향선지식구각두찬과    간이식불식        ‘보십시오! 스님은 이걸 아십니까?’라고 물을 것이며
若識得是境이면 把得하야 便抛向坑子裏하나니라  그때 선지식이 만약 시험하는 말이라는 것[是境]을 알면 
이약식득시경     파득    편포향갱자리        그 말을 잡아서 곧바로 학인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學人이 便卽尋常然後에 便索善知識語하나니  학인은 곧 태도를 고치고 평상의 자세로 돌아가 
학인    편즉심상연후   편색선지식어        곧 선지식의 말[가르침]을 찾는다. 
依前奪之하면  그러면 선지식은 여전히 그를 부정해 버린다. 
의전탈지   
學人云 上智哉라 是大善知識이여하리니  학인이 말하기를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학인운 상지재   시대선지식  큰 선지식입니다.’라고 한다. 
卽云 大不識好惡로다하고  그 선지식은 곧 ‘이 녀석은 도대체 
즉운 이대불식호오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구나’라고 한다. 
如善知識이 把出箇境塊子하야 向學人面前弄하면  또 선지식이 하나의 시험하는 말[境塊子]을 
여선지식   파출개경괴자    향학인면전농      학인 앞에 내놓고 희롱하면 
前人辨得하야 下下作主하야 不受境惑이라  그 학인이 알아차리고 하나하나 주제를 지어서 
전인변득     하하작주     불수경혹  경계에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善知識이 便卽現半身에 學人便喝한대  다시 선지식이 곧 진심을 조금[半身] 드러내 보이면 
선지식   편즉현반신   학인편할      학인은 곧바로“할!”하고 고함을 친다. 
善知識이 又入一切差別語路中擺撲하면  선지식이 다시 여러 가지 차별된 말로 시험해 보는데, 
선지식   우입일체차별어로중파박       
學人云 不識好惡로다 老禿奴여하야  학인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구나. 
학인운 불식호오    노독로        이 늙고 머리 깎은 중아.’하면 
善知識이 歎曰 眞正道流로다하니라  선지식은 찬탄하기를,
선지식   탄왈 진정도류   ‘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벗이로다.’라고 한다.” 
   
14-15 野狐精魅 여우귀신
   
如諸方善知識은 不辨邪正하야  “제방의 여러 선지식들은 
여제방선지식   불변사정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學人이 來問菩提涅槃三身境智하면  그래서 학인이 찾아와서 보리와 열반과 
학인   래문보리열반삼신경지  삼신(三身)과 경계와 지혜 등을 물으면
瞎老師가 便與他解說타가 被他學人罵著하고  눈이 먼 노사는 그에게 해설을 해 주다가 
할노사   편여타해설     피타학인매착 학인으로부터 힐난을 받게 되면 
便把棒打他言無禮度하나니  곧바로 몽둥이로 후려치면서 
편파봉타타언무례도  ‘이 예의와 법도도 모르는 놈아!’라고 한다. 
自是善知識無眼이라 不得瞋他로다  그것은 스스로 그대들 선지식들이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자시이선지식무안     부득진타  그 학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卽指東劃西하며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머리 깎은 중들이 있어서 
유일반불식호오독노     즉지동획서      동쪽을 가리키다 서쪽을 가리키고, 
好晴好雨하며 好燈籠露柱하나니 看하라  맑은 날을 좋아하다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며, 
호청호우    호등롱로주       이간      등롱과 노주를 좋아한다. 그대들은 잘 보아라! 
眉毛有幾莖고 這箇具機緣에  눈썹에 털이 몇 개가 남아 있는가? 
미모유기경   자개구기연 이 일에는 기연(機緣)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學人不會하고 便卽心狂이라  학인들은 알지 못하고 곧 미쳐버리는 것이다. 
학인불회     편즉심광       
如是之流는 總是野狐精魅魍魎이니  이런 무리들은 모조리 여우나 귀신 도깨비들이다. 
여시지류   총시야호정매망양   
被他好學人의 嗌嗌微笑하야  그 좋은 학인들이 비웃으면서
피타호학인   익익미소       
言瞎老禿奴여 惑亂他天下人이로다  ‘이 눈멀고 머리 깎은 늙은이가 온 천하 사람들을 
언할노독노   혹난타천하인  미혹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구나’라고 하는 것이다."
   
14-16 계율도 익히고 경론도 배웠다   
   
道流야 出家兒는 且要學道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출가아   차요학도      출가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祇如山僧은 往日에  나는 지난날에 
지여산승   왕일   
曾向毘尼中留心하고 亦曾於經論尋討라가  계율에 마음을 두기도 하였고, 
증향비니중유심     역증어경론심토 경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後方知是濟世藥이며 表顯之說이라  나중에서야 그것들이 세간을 구제하는 약이며 
후방지시제세약     표현지설      겉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인 줄 알았다. 
遂乃一時抛却하고 卽訪道參禪하니라  드디어 몽땅 다 버려 버리고 
수내일시포각    즉방도참선        도에 대해서 묻고 선을 참구하였다. 
後遇大善知識하야 方乃道眼分明하야  그런 뒤에 큰 선지식을 만나 뵙고 나서야 
후우대선지식     방내도안분명  마침내 도안(道眼)이 분명해져서, 
始識得天下老和尙하야 知其邪正하니  비로소 천하의 노화상들이 
시식득천하노화상     지기사정      삿된 지 바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不是娘生下便會요  이것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서부터 
불시낭생하편회 바로 안 것이 아니다. 
還是體究鍊磨하야 一朝自省하니라  깊이 연구하고 갈고 닦아서 
환시체구연마     일조자성  어느 날 아침에 스스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4-17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道流야 欲得如法見解인댄 但莫受人惑하고  “도류여! 여법한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도류  이욕득여법견해   단막수인혹      남에게 미혹 당하지 말고 
向裏向外하야 逢著便殺하라 逢佛殺佛하며  안팎으로 마주치는 대로 곧 바로 죽여라. 
향리향외   봉착편살   봉불살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逢祖殺祖하며 逢羅漢殺羅漢하며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봉조살조   봉나한살나한 아라한은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逢父母殺父母하며 逢親眷殺親眷하야사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봉부모살부모   봉친권살친권        친속을 만나면 친속을 죽여야만  
始得解脫하야 不與物拘하고 透脫自在니라  비로소 해탈하여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시득해탈   불여물구   투탈자재  투철히 벗어나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如諸方學道流는 未有不依物出來底라  제방에서 배우는 도류들은 사물에 의지함이 없이 
여제방학도류  미유불의물출래저    내 앞에 온 자는 하나도 없었다. 
山僧向此間은 從頭打하야 手上出來手上打하고  산승은 여기에서 처음부터 그들을 쳐버린다. 
산승향차간  종두타   수상출래수상타      손에서 나오면 손을 쳐버리고, 
口裏出來口裏打하고 眼裏出來眼裏打하나니  입에서 나오면 입을 쳐버리며, 
구리출래구리타   안리출래안리타  눈에서 나오면 눈을 쳐버린다. 
未有一箇獨脫出來底요  홀로 벗어나서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미유일개독탈출래저     
皆是上他古人閑機境이니라  모두가 옛 사람들의 부질없는 지식이나 
개시상타고인한기경  언어나 행위들[閑機境]을 받드는 사람들이었다.” 
   
14-18 欠少什麽  그대는 무엇이 부족한가
   
山僧은 無一法與人이요 祇是治病解縛이니  “산승은 남에게 줄 법이 하나도 없으며
산승   무일법여인     지시치병해박      다만 병을 치료하고 속박을 풀어줄 뿐이다.
諸方道流는 試不依物出來하라  그대들 제방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이제방도류   시불의물출래      시험 삼아 사물에 전혀 의존하지 말고 나와 보아라. 
我要共商量이라 十年五歲토록 竝無一人하고  나는 그대들과 법에 대해서 문답을 하고 싶구나. 
아요공이상량     십년오세     병무일인  15년이 지나도록 누구 한사람 없었다. 
皆是依艸附葉竹木精靈과  모두가 풀이나 나무 잎사귀나 
개시의초부엽죽목정령    대나무나 나무에 붙어사는 귀신들과
野狐精魅니 向一切糞塊上亂咬로다  또 여우나 도깨비 같은 것들이다. 
야호정매   향일체분괴상란교  모두 똥 덩이에 붙어 어지럽게 씹어 먹는 것들이다. 
瞎漢이여 枉消他十方信施하고  야 이 눈 먼 놈들아, 저 시방의 신도들이 
할한     왕소타시방신시      신심으로 시주한 물건을 마구 쓰면서 
道我是出家兒라하야 作如是見解로다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라고 하여 
도아시출가아     작여시견해      이와 같은 견해를 짓고 있구나. 
道하노니 無佛無法하며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향이도       무불무법 부처도 없고 법도 없고 
無修無證하나니 祇與麽傍家에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는데, 
무수무증       지여마방가    어쩌면 그렇게들 옆집으로만 다니면서 
擬求什麽物고 瞎漢아  무슨 물건을 구하는가? 
의구십마물   할한  야 이 눈멀고 어리석은 놈들아! 
頭上安頭라 是欠少什麽오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는구나. 
두상안두   시이흠소십마  너희들에게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14-19 三戒는 三毒心이다  
   
道流야 是目前用底가 與祖佛不別이어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 눈앞에서 작용하는 
도류   시이목전용저   여조불불별        그놈이 바로 조사나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 
祇麽不信하고 便向外求로다 莫錯하라  왜 믿지 않고 밖에서 찾는가? 
지마불신    편향외구     막착      착각하지 말라. 
向外無法이요 內亦不可得이니라  밖에도 법이 없으며 안에도 또한 얻을 것이 없다. 
향외무법     내역불가득  
取山僧口裏語는 不如休歇無事去니  그대들은 산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이취산승구리어   불여휴헐무사거  모든 생각을 쉬고 아무 일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已起者莫續하고 未起者不要放起하라  이미 일어난 것은 계속하지 말고, 
이기자막속     미기자불요방기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라. 
便勝二十年行脚이니라  이렇게 한다면 20년을 행각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다. 
편승이십년행각   
若山僧見處하면 無如許多般이요 祇是平常이니  내가 보기에는 그런 허다한 일은 없는 것이요
약산승견처     무여허다반     지시평상      다만 평소 그대로이면 그만인 것이니
著衣喫飯하고 無事過時니라  옷 입고 밥 먹으며 
착의긱반    무사과시  아무런 일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諸方來者가 皆是有心이라 求佛求法하며  “제방에서 온 그대들은 모두가 마음이 있어서 
이제방래자   개시유심     구불구법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려고 하며, 
求解說求出離三界하나니 癡人이여 해탈을 구하여 삼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구해설구출리삼계       치인      어리석은 이들아! 
要出三界하야 什麽處去오  그대들이 삼계를 벗어나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이요출삼계     십마처거  
佛祖是賞繫底名句니라 부처와 조사란 보기 좋은 올가미로 만든 
불조시상계저명구      이름과 글귀일 뿐이다. 
欲識三界麽아 不離今聽法底心地니  그대들은 삼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이욕식삼계마   불리이금청법저심지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그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一念心貪은 是欲界요 一念心瞋은 是色界며 그대들의 한 생각 탐내는 마음이 욕계(欲界)고, 
이일념심탐   시욕계   이일념심진   시색계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색계(色界)며, 
一念心癡는 是無色界라 是屋裏家具子니라  한 생각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無色界)이며 
이일념심치   시무색계   시이옥리가구자  바로 그대들의 집속에 있는 살림살이들인 것이다. 
三界不自道我是三界요  삼계가 스스로 ‘내가 바로 이 삼계요’라 
삼계불자도아시삼계 말하는 것이 아니라
還是道流의 目前靈靈地照燭萬般하야  눈앞에서 아주 분명하게 만물을 비추어 보고 
환시도류   목전영영지조촉만반       
酌度世界底人이 與三界安名하나니라  세계를 가늠하는 그 사람이 
작탁세계저인   여삼계안명  삼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14-20 무명은 없다   
   
大德아 四大色身是無常이라  “큰스님들이시여! 사대로 되어있는 
대덕  사대색신시무상      이 몸뚱이는 덧없는 것이다. 
乃至脾胃肝膽과 髮毛爪齒도  비장과 위와 간과 쓸개와 머리카락과 
내지비위간담  발모조치 털과 손톱과 이빨마저도 
唯見諸法空相이니  오직 모든 것이 텅 비어있는 모양임을 보여줄 뿐이다. 
유견제법공상       
一念心歇得處를 喚作菩提樹요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이일념심헐득처  환작보리수 쉰 곳을 보리수라하고, 
一念心不能歇得處를 喚作無明樹니라  한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하는 곳을 무명수라 한다. 
이일념심부능헐득처  환작무명수       
無明無住處요 無明無始終이라  무명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무명무주처  무명무시종      처음과 끝이 없다. 
若念念心歇不得하면 便上他無明樹하야  그대들이 만약 순간순간의 마음을 쉬지 못한다면 
이약염념심헐부득   편상타무명수       곧 무명수 위에 올라가서 
便入六道四生하야 披毛戴角이요  곧바로 사생육도에 들어가 
편입육도사생   피모대각   털 나고 뿔 달린 짐승이 될 것이다. 
若歇得하면 便是淸淨身界니라  그대들이 만약 쉬기만 하면 
이약헐득   편시청정신계      그대로가 곧 청정법신의 세계다. 
一念不生하면 便是上菩提樹라  그대들이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이일념불생   편시상보리수    곧 보리수에 올라 
三界神通變化하야 意生化身하야  삼계에서 신통변화 하여 
삼계신통변화   의생화신      마음대로 화신의 몸을 나타내리라. 
法喜禪悅하며 身光自照니  그래서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法喜禪悅]으로 
법희선열   신광자조    몸의 광명이 저절로 빛날 것이다. 
思衣羅綺千重이요 思食百味具足하야  옷을 생각하면 비단 옷이 천 겹으로 걸쳐지고, 
사의나기천중   사식백미구족  밥을 생각하면 백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히 차려지며, 
更無橫病이니라 菩提無住處라  다시는 뜻밖의 병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갱무횡병    보리무주처    보리는 어떤 주처가 없다. 
是故로 無得者로다 그러므로 얻을 것도 없느니라.” 
시고  무득자   
   
14-21 보고 듣는 이가 누구인가   
   
道流야 大丈夫漢이 更疑箇什麽며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대장부한   갱의개십마    대장부가 또 무엇을 의심하는가? 
目前用處가 更是阿誰오  눈앞에서 작용하는 이가 다시 또 누구인가 
목전용처   갱시옥수  
把得便用하야 莫著名字를 號爲玄旨니  잡히는 대로 쓰며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파득편용     막착명자   호위현지    심오한 뜻이다. 
與麽見得하면 勿嫌底法이니라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없는 도리이다. 
여마견득      물혐저법           옛사람이 말하기를 
古人云 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實能幽라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 흘러가지만 
고인운  심수만경전     전처실능유  흘러가는 그 곳이 참으로 그윽하여라.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  마음이 흘러가는 그 곳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니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라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라고 하였다.” 
   
14-22 주인과 객이 서로 보다   
   
道流야 如禪宗見解는 死活循然하니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여선종견해   사활순연      선종의 견해로는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것이니, 
參學之人이 大須子細어다  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자세히 살펴야 한다. 
참학지인   대수자세  
如主客相見할새 便有言論往來호대 或應物現形하며  주인과 손님이 서로 만나면 곧 말을 주고받는데. 
여주객상견     편유언론왕래     혹응물현형  혹은 사람에게 맞추어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或全體作用하며 或把機權喜怒하며  혹은 전체작용을 하기도 하며, 
혹전체작용    혹파기권희노      혹은 기연과 방편으로 기뻐하거나 성내기도 하며, 
或現半身하며 或乘獅子하며 或乘象王이니라  혹은 몸을 반쯤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혹현반신       혹승사자       혹승상왕  혹은 사자를 타기도 하고, 혹은 코끼리를 타기도 한다. 
如有眞正學人이 便喝하야 先拈出一箇膠盆子하면  만약 진정한 학인이 있어서 대뜸 ‘할’을 하여 
여유진정학인   편할     선염출일개교분자  아교풀을 담은 단지를 하나 내놓으면 
善知識이 不辨是境하고 便上他境上하야 作模作樣하면  선지식은 그것이 경계[미끼]인 줄 모르고 
선지식   불변시경     편상타경상     작모작양  곧 그 경계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지어 낸다. 
學人便喝에 前人不肯放하나니  이것을 본 학인이 다시 ‘할’을 하여도 
학인편할   전인불긍방        앞의 선지식은 이를 놓아버리려 하지 않는다. 
此是膏盲之病이라 不堪醫니 喚作客看主니라  이것은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불치[膏盲]의 병이다. 
차시고맹지병        불감의    환작객간주  이런 경우를 ‘객이 주인을 본다[看破].’라고 한다.
或是善知識이 不拈出物하고 隨學人問處하야 卽奪이라  혹은 선지식이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혹시선지식   불염출물     수학인문처     즉탈 학인이 물으면 묻는 대로 곧 빼앗아 버린다. 
學人被奪에 抵死不放하나니 此是主看客이니라  학인이 빼앗기고는 한사코 놓아버리려 하지 않으면 
학인피탈   저사불방       차시주간객  이것을 ‘주인이 객을 간파한다.’라고 한다.” 
   
14-23 삿되고 바른 것을 알라   
   
或有學人이 應一箇淸淨境하야 出善知識前이어든  혹 어떤 학인이 일개 청정한 경계를 
혹유학인   응일개청정경     출선지식전  선지식 앞에 내놓으면 
善知識이 辨得是境하고 把得抛向坑裏하면  선지식이 그것이 경계인 줄을 알아차리고 
선지식   변득시경     파득포향갱리 집어다가 구덩이 속에 던져버리면
學人言 大好善知識이로다 卽云 咄哉라 不識好惡로다  학인이 ‘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이십니다’라고 한다. 
학인언  대호선지식     즉운 돌재  불식호오  선지식은 '안됐구나 좋고 나쁜 것도 모르니'한다.
學人便禮拜하나니 此喚作主看主니라  그러면 학인이 절을 하는데 
학인편예배    차환작주간주  이것을 ‘주인이 주인을 간파한다.’고 한다. 
或有學人이 披枷帶鎖하야 出善知識前하면  혹 또 어떤 학인이 목에 칼을 쓰고 
혹유학인   피가대쇄     출선지식전  발에 족쇄를 찬 채 선지식 앞에 나타나면, 
善知識이 更與安一重枷鎖라 學人歡喜하야  선지식이 그 위에다 다시 칼과 족쇄를 
선지식   갱여안일중가쇄   학인환희 한 겹 더 씌워버리는데도 학인이 기뻐하여 
彼此不辨하나니 呼爲客看客이니라  피차가 서로 분간하지 못하면, 
피차불변       호위객간객  이것을 ‘객이 객을 간파한다.’고 한다. 
大德아 山僧如是所擧는  큰스님들이시여, 
대덕   산승여시소거    산승이 이와 같이 예를 든 것은 
皆是辨魔揀異하야 知其邪正이니라  모두가 마군과 이단을 가려내서 
개시변마간이     지기사정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14-24 신 값을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道流야 寔情大難이요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식정대난      진실한 마음을 내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고 
佛法幽玄이나 解得可可地니라  불법은 심오하지만 
불법유현   해득가가지  알고 보면 별것이 아닌 당연한 일[可可]이다. 
山僧竟日에 與他說破나 學者總不在意하고  산승은 온 종일 그들로 더불어 설파해주지만 
산승경일  여타설파  학자총불재의      공부하는 이들은 도대체 마음을 쓰지 않는다. 
千徧萬徧을 脚底踏過하야 黑沒焌地로다  천 번 만 번 밟고 다니면서도 도무지 깜깜하다. 
천변만변  각저답과    흑몰준지         
無一箇形段하야 歷歷孤明이언만  아무런 형체도 없으면서 밝고 뚜렷한 이것을 
무일개형단    역력고명            
學人信不及하고 便向名句上生解하야  학인들은 믿지 못하고 
학인신불급     편향명구상생해      명자와 글귀 위에서 이해하려 한다. 
年登半百토록 祇管傍家負死屍行하며  나이가 오십이 넘도록 
연등반백    기관방가부사시행      단지 송장을 짊어지고 밖으로만 다니는구나. 
擔却擔子天下走하나니 索草鞋錢有日在로다  이렇게 짐을 지고 천하를 돌아다녔으니 
담각담자천하주      색초혜전유일재  짚신 값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14-25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을 다 쓴다   
   
大德아 山僧이 說向外無法하면 學人不會하고  “큰스님들이시여! 산승이 밖에는 법이 없다고 말하면 
대덕   산승   설향외무법     학인불회  공부하는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便卽向裏作解하야 便卽倚壁坐하며 舌拄上齶하고  곧 안으로 알음알이를 지어서 
편즉향리작해     편즉의벽좌     설주상악  벽을 보고 앉아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湛然不動하야 取此爲是祖門佛法也하나니 大錯이로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는 이것을 
담연부동     취차위시조문불법야       대착  조사문중의 불법이라 여기는데 크게 잘못 아는 것이다. 
若取不動淸淨境하야 爲是면  그대들이 만약 움직임이 없는 청정한 경계를 
시이약취부동청정경     위시    옳다고 여긴다면 
卽認他無明爲郞主라 古人云  그대들은 저 무명을 주인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이즉인타무명위랑주   고인운  옛사람이 이르기를 
湛湛黑暗深坑이 實可怖畏라하니 此之是也니라  ‘깊고 깊어 캄캄한 구덩이는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라고 
담담흑암심갱   실가포외     차지시야  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若認他動者是면 一切艸木이 皆解動하니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것을 오인해서 옳다고 한다면 
이약인타동자시   일체초목   개해동      온갖 초목들도 다 움직일 줄 아니 
應可是道也니라  그것도 응당 도이리라. 
응가시도야   
所以動者是風大요 不動者是地大니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의 성질이고 
소이동자시풍대   부동자시지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땅의 성질이다. 
動與不動이 俱無自性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동여부동   구무자성  모두 다 고정된 자성이 없다. 
若向動處捉他하면 他向不動處立하고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곳에서 그것을 붙잡으려 하면 
이약향동처착타     타향부동처립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곳에 서 있다. 
若向不動處捉他하면 他向動處立하나니  또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이약향부동처착타        타향동처립        그것을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는 곳에 서 있다. 
譬如潛泉魚가 鼓波而自躍이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비여잠천어   고파이자약 물결을 치면서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大德아 動與不動은 是二種境이니  큰스님들이시여,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대덕   동여부동   시이종경      두 가지 경계이다. 
還是無依道人은 用動用不動하나니라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이라야 
환시무의도인     용동용불동  움직임도 쓰고 움직이지 않음도 쓴다.” 
   
14-26 삼종근기로 판단한다   
   
如諸方學人來하면 山僧此間은 作三種根器斷이라  “제방의 학인들이 찾아오면 
여제방학인래   산승차간  작삼종근기단 산승은 여기서 세 가지의 근기로 그들을 판단한다. 
如中下根器來하면 我便奪其境而不除其法하고  중하근기가 오면 나는 곧 경계만 빼앗고 
여중하근기래   아편탈기경이불제기법  그 법을 없애지 않는다. 
或中上根器來하면 我便境法을 俱奪하고  혹 중상근기가 오면 
혹중상근기래   아편경법  구탈      나는 곧 경계와 법을 함께 빼앗는다. 
如上上根器來하면 我便境法人을 俱不奪하고  만약 상상의 근기가 오면 
여상상근기래   아편경법인  구불탈      나는 곧 경계와 법과 사람을 다 빼앗지 않는다. 
如有出格見解人來하면  만약 격을 벗어난 뛰어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오면 
여유출객견해인래          
山僧此間은 便全體作用하야 不歷根器니라  나는 여기서 곧 전체작용을 나타내어 
산승차간  편전체작용   불역근기  근기를 따지지 않는다. 
大德아 到這裏하야 學人著力處니라  큰스님들이여, 여기에 이르게 되면 
대덕  도자리   학인착력처 공부하는 이가 힘을  한껏 써야 한다. 
不通風하며 石火電光도 卽過了也니라  바람도 통하지 않고 
불통풍   석화전광  즉과료야  전광석화까지도 곧 지나가 버린다. 
學人이 若眼定動하면 卽沒交涉이니  학인이 만약 눈만 깜박여도 
학인  약안정동   즉몰교섭      곧 교섭이 없어진다. 
疑心卽差요 動念卽乖라  마음으로 헤아리려 하면 곧 틀리며, 
의심즉차  동념즉괴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바로 어긋나 버린다. 
有人解者하면 不離目前이니라  그러나 아는 사람은 눈앞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유인해자   불리목전   
大德아 擔鉢囊屎擔子하고 傍家走하야 求佛求法하니  큰스님들이여, 그대들은 바랑에 똥짐을 짊어지고 
대덕  이담발낭시담자   방가주   구불구법 옆으로 내달리며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는데, 
卽今與?馳求底를 還識渠麽아  지금 그렇게 구하는 바로 그 사람이 
즉금여마치구저  이환식거마    누구인지 그대들은 아는가? 
鱍鱍地하야 祇是勿根株라 擁不聚하며 撥不散하야  활발발하게 작용하지만 그 뿌리가 없으니 
활발발지   기시물근주  옹불취   발불산      움켜잡아도 모이지 않고 펼쳐도 흩어지지가 않는다. 
求著卽轉遠이니 不求면 還在目前하야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착즉전원   불구  환재목전 구하지 않으면 도리어 눈앞에 있다. 
靈音屬耳어니 若人不信하면  신령스런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데 
영음속이   약인불신      만약 이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면 
徒勞百年이니라  백년 세월을 헛수고만 할 뿐이다.” 
도로백년   
   
14-27 모두다 놓아버려라   
   
道流야 一刹那間에 便入華藏世界하며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일찰나간   편입화장세계      한 찰나 사이에 연화장 세계에 들어가고 
入毘盧遮那國土하며 入解說國土하며  비로자나불의 국토에도 들어가며 
입비로자나국토    입해설국토      해탈국토에도 들어가고 
入神通國土하며 入淸淨國土하며 入法界하며  신통국토에도 들어가고 청정국토에도 들어간다. 
입신통국토    입청정국토     입법계 법계에도 들어가며 
入穢入淨하며 入凡入聖하며  깨끗한 곳에도 들어가고 더러운 곳에도 들어간다. 
입예입정   입범입성      범부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성인의 세계에도 들어가며, 
入餓鬼畜生이나 處處討覓尋하야도  아귀ㆍ축생의 세계에도 들어간다. 
입아귀축생    처처토멱심            그러나 곳곳마다 찾고 찾아보아도 
皆不見有生有死하고 唯有空名이로다  아무 곳에도 생사가 있음을 보지 못하고 
개불견유성유사    유유공명  허망한 이름만 있을 뿐이다. 
幻化空花를 不勞把捉이니  환영이며 허깨비며 헛꽃인 것을 
환화공화   불노파착      애써서 붙잡으려 하지 말고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  이득과 손실과 옳고 그름을 
득실시비   일시방각  일시에 모두다 놓아버려라.” 
   
14-28 전통과 계보가 있어야 한다   
   
道流야 山僧佛法은 的的相承하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산승의 불법은 
도류   산승불법   적적상승      확실하고 분명한 선문의 정통을 계승한 것이다. 
從麻谷和尙과 丹霞和尙과 道一和尙과  위로부터 내려온 마곡 화상과 
종마곡화상    단하화상     도일화상      단하 화상과 도일 화상과 
廬山與石鞏和尙하야 一路行徧天下하나  여산 화상과 석공 화상은 
여산여석공화상        일로행변천하      한 길로 조사선의 가풍을 천하에 두루 폈는데 
無人信得하고 盡皆起謗이로다  아무도 믿지 않고 모두들 비방만 하고 있다. 
무인신득     진개기방   
如道一和尙用處는 純一無雜이라  예컨대 도일 화상이 법을 쓴 것은 
여도일화상용처   순일무잡      매우 순수하여 잡티가 없었다. 
學人三百五百이 盡皆不見他意요  그 분에게 도를 배우던 3백에서 5백이나 되는 
학인삼백오백     진개불견타의    학인들은 모두 다 화상의 뜻을 보지 못하였다. 
如廬山和尙은 自在眞正하니  여산 화상은 자재하시고 참되고 바른 분이었다. 
여여산화상   자재진정   
順逆用處를 學人不測涯際하고 悉皆忙然이요  순으로 혹은 역으로 법을 쓰는 것을 학인들이 
순역용처   학인불측애제     실개망연  그 경계를 측량하지 못하고 모두 다 갈팡질팡하였다. 
如丹霞和尙은 翫珠隱顯하야  단하화상은 구슬을 굴리는 솜씨가 자유자재하여 
여단하화상   완주은현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學人來者가 皆悉被罵요  찾아오는 학인들마다 모두 꾸지람을 들었다. 
학인래자   개실피매   
如痲谷用處는 苦如黃蘗하야 皆近不得이요  마곡 화상이 법을 쓰는 것은 그 쓰기가 소태나무와 
여마곡용처   고여황벽     개근부득 같아서 모두들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如石鞏用處는 向箭頭上覓人하니 來者皆懼로다  또 석공화상이 법을 쓰는 것은 화살 끝에서 사람을 
여석공용처   향전두상멱인     내자개구  찾는 것이어서 오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4-29 옷 입은 것에 속지 말라 1   
   
如山僧今日用處는 眞正成壞하며 翫弄神變하야  “산승이 오늘날 법을 쓰는 것은 진정으로 만들기도 하고 
여산승금일용처  진정성괴   완농신변  부수기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신통변화를 부리기도 한다. 
入一切境호대 隨處無事하야 境不能換이니라  일체경계에 들어가지만 가는 곳마다 
입일체경   수처무사   경불능환 아무 일없어서 경계가 나를 빼앗지 못한다. 
但有來求者하면 我卽便出看渠하나 渠不識我일새  누가 찾아와서 구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곧바로 
단유래구자   아즉편출간거   거불식아  그를 알아보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我便著數般衣하면 學人生解하야  그래서 내가 곧 몇 가지 옷을 입어 보이면 
아편착수반의   학인생해      학인들은 알음알이를 내어 
一向入我言句하나니 苦哉라  한결같이 나의 말 속으로 끌려 들어오고 마니 슬픈 일이다. 
일향입아언구    고재   
瞎禿子無眼人이 把我著底衣하야  눈멀고 머리 깎은 중이거나 안목 없는 사람들이 
할독자무안인   파아착저의      내가 입은 옷을 가지고 
認靑黃赤白이로다 我脫却하고 入淸淨境中하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흰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인청황적백    아탈각   입청정경중  내가 옷을 벗어버리고 텅 빈 경계에 들어가면 
學人一見하고 便生忻欲타가 我又脫却하면  학인은 한번 보고 기꺼운 생각을 낸다. 
학인일견   편생흔욕타   아우탈각  또 내가 다시 벗어버리면 
學人失心하야 忙然狂走하야 言我無衣로다  마음 둘 바를 몰라 바쁘게 달아나면서 
학인실심   망연광주   언아무의 나에게 옷이 없다고 말한다. 
我卽向渠道호대 識我著衣底人否아하면  내가 그들에게 ‘그대는 내가 옷을 입는 
아즉향거도   이식아착의저인부  그 사람을 아는가?“라고 물으면, 
回頭하야 認我了也로다  홀연히 머리를 돌려 버리고 나를 잘못 알고 만다.” 
홀이회두   인아요야   
   
14-30 옷 입은 것에 속지 말라 2   
   
大德아 莫認衣하라  “대덕이여! 
대덕  이막인의      그대들은 옷을 잘못 알지 말라. 
衣不能動이요 人能著衣하나니  옷은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의불능동   인능착의 사람이 능히 옷을 입을 수 있다. 
有箇淸淨衣하며 有箇無生衣와 菩提衣와 涅槃衣하며  청정한 옷이 있고, 생사가 없는 옷이 있으며 
유개청정의   유개무생의  보리의  열반의  보리의 옷과 열반의 옷이 있으며, 
有祖衣有佛衣니라  조사의 옷과 부처의 옷도 있다. 
유조의유불의       
大德아 但有聲名文句하야 皆悉是衣變이라  큰스님들이여! 다만 소리와 명칭과 문구로만 있을 뿐 
대덕  단유성명문구   개실시의변  모든 것은 옷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이다. 
從臍輪氣海中鼓激하야 牙齒敲磕하야  배꼽 아래 단전으로부터 울려 나와서 
종제륜기해중고격   아치고개      이빨이 딱딱 부딪쳐 
成其句義니 明知是幻化니라  그 글귀와 의미를 이루는 것이니, 
성기구의  명지시환화  이것은 분명히 환화임을 알아야 한다. 
大德아 外發聲語業하며 內表心所法하고  큰스님들이여! 밖으로 소리 내어 말을 하고 
대덕  외발성어업   내표심소법 안으로 마음먹은 것을 표현하며 
以思有念은 皆悉是衣니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모두가 옷에 지나지 않는다. 
이사유념  개실시의     
祇麽認他著底衣爲實解하면  그대들이 그렇게 걸치고 있는 옷을 오인하여 
이기마인타착저의위실해  실다운 견해라고 여기다면 
縱經塵劫하야도 祇是衣通이라  한량없는 세월을 보내더라도 
종경진겁    기시의통  다만 옷에 대해서만 통달할 뿐이다. 
三界循環하야 輪廻生死하나니 不如無事니라  삼계에 돌고 돌며 생사에 윤회하게 되니 
삼계순환   윤회생사    불여무사 차라리 아무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相逢不相識하고 共語不知名리로다  서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이야기해도 
상봉불상식   공어부지명  상대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격이다.” 
   
14-31 명자를 잘못 알고 있다   
   
今時學人不得은 蓋爲認名字爲解니라  “오늘날 학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대개가 
금시학인부득  개위인명자위해 이름과 문자를 잘못 알아서 알음알이를 내기 때문이다. 
大策子上에 抄死老漢語하야 三重五重으로 複子裏하야  큰 공책에다가 죽은 노인들의 말씀을 베껴 가지고 
대책자상  초사노환어   삼중오중   복자리 세 겹 다섯 겹 보자기에 싸서 
不敎人見하고 道是玄旨라하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불교인견   도시현지        그것을 오묘한 이치라 하며, 
以爲保重하나니 大錯이로다  애지중지하는데 아주 잘못된 일이다. 
이위보중    대착  
瞎屢生이여 向枯骨上하야 覓什麽汁고  눈멀고 어리석은 바보들아! 그대들은 말라빠진 
할루생   이향고골상   멱십마즙  뼈다귀에서 무슨 국물을 찾고 있는가? 
有一般不識好惡하야 向敎中하야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어떤 무리들이 있어서 경전을 
유일반불식호오   향교중       
取意度商量하야 成於句義하나니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따져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취의탁상량   성어구의            
如把屎塊子하야 向口裏含了라가 吐過與別人하며  이것은 마치 똥 덩어리를 입 속에 넣었다가 
여파시괴자   향구리함요   토과여별인      다시 뱉어서 다른 사람에게 먹여주는 것과도 같다. 
猶如俗人이 打傳口令相似하야 一生虛過로다  또 속인들이 비밀한 말을 입에서 입으로 
유여속인  타전구령상사   일생허과  전하는 것과 같으니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다. 
也道我出家라하나 被他問著佛法하면  그러면서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라고 떠벌리지만 
야도아출가    피타문착불법      불법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便卽杜口無詞하야 眼似漆突하며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못한다. 
편즉두구무사   안사칠돌        멀끄미 쳐다보는 눈은 새까만 굴뚝같고 
口如擔하니라 입은 서까래를 건 것 같구나. 
구여편담   
如此之類는 逢彌勒出世호대 移置他方世界하야  이와 같은 무리들은 미륵 부처님이 나오시더라도 
여차지류  봉미륵출세   이치타방세계      다른 세계로 옮겨가서 
寄地獄受苦니라  지옥에 살면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기지옥수고   
   
14-32 참 부처는 형상이 없다   
   
大德아 波波地往諸方하야  “큰스님들이여! 
대덕  이파파지왕제방      그대들은 바쁘게 제방을 쏘다니며 
覓什麽物하야 踏脚板  무엇을 구하느라고 
멱십마물   답이각판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다녔는가? 
無佛可求며 無道可成이며 無法可得이니라  부처는 구할 수 없고, 도는 이룰 수 없으며, 
무불가구  무도가성   무법가득      법은 얻을 것이 없다. 
外求有相佛하면 與汝不相似니  밖으로 형상이 있는 부처를 구한다면 
외구유상불   여여불상사      그대들과는 닮지 않은 것이다. 
欲識汝本心인댄 非合亦非離로다  그대들의 본래 마음을 알고자 하는가? 
욕식여본심   비합역비리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떠나있는 것도 아니다. 
道流야 眞佛無形이요 眞道無體요 眞法無相이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고, 
도류  진불무형   진도무체  진법무상  참된 도는 실체가 없으며, 참된 법은 모양이 없다. 
三法混融하야 和合一處니  이 세 가지 법이 섞이고 융통하여 
삼법혼융   화합일처    한 곳에 화합한 것이니, 
旣辨不得을 喚作忙忙業識衆生이니라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기변부득  환작망망업식중생  망망한 업식중생이라고 한다.” 
   
14-33 眞佛 眞法 眞道   
   
問 如何是眞佛眞法眞道오 乞垂開示하소서  “무엇이 참 부처며, 참 법이며, 
문 여하시진불진법진도   걸수개시  참된 도인지 비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師云 佛者는 心淸淨是요 法者는 心光明是요  부처란 마음이 청정한 것이고, 
사운 불자   심청정시   법자   심광명시 법이란 마음이 밝은 것이며, 
道者는 處處無礙淨光是라  도란 어디에나 걸림이 없는 깨끗한 빛이다. 
도자   처처무애정광시   
三卽一이니 皆是空名而無實有니라  이 셋이 곧 하나이니 
삼즉일     개시공명이무실유  모두가 헛이름일 뿐,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眞正學道人은 念念心不間斷이라  진정한 도를 지어가는 사람이라면 
여진정학도인   염념심불간단  순간순간 마음에 틈새가 없어야 한다. 
自達磨大師가 從西土來로 祇是覓箇不受人或底人이니  달마 대사께서 인도에서 오신 것은 
자달마대사   종서토래   기시멱개불수인혹저인  다만 남에게 속지 않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으니
後遇二祖하야 一言便了하고  후에 2조 혜가스님을 만났는데
후우이조     일언편요      2조께서 한마디 말에 곧 깨달으시고
始知從前虛用功夫니라  비로소 종전의 공부가 헛된 것이었음을 
시지종전허용공부  알게 되었던 것이다.
山僧今日見處는 與祖佛不別하니  산승의 금일의 견해는 
산승금일견처   여조불불별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다. 
若第一句中得하면 與祖佛爲師요  만약 제 일구에서 깨달으면 
약제일구중득     여조불위사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고
若第二句中得하면 與人天爲師요  만약 제 이구에서 깨달으면 
약제이구중득     여인천위사 인간과 천상계의 스승이 되며
若第三句中得하면 自救不了니라  만약 제 삼구에서 깨달으면 
약제삼구중득     자구불요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14-34 몸과 마음이 부처와 다르지 않다   
   
問 如何是西來意오  “달마 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문 여하시서래의     
師云 若有意하면 自救不了니라  “만약 뜻이 있었다면 
사운 약유의     자구불요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云旣無意인댄 云何二祖得法고  “이미 뜻이 없었다면 2조께서는 
운기무의     운하이조득법    어떻게 법을 얻었습니까?” 
師云 得者是不得이니라  “얻었다는 것은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운 득자시불득  
云旣若不得인댄 云何是不得底意오  “이미 만약 얻지 못했다면 
운기약부득     운하시불득저의 어떤 것이 얻지 못했다는 뜻입니까?” 
師云 爲向一切處하야 馳求心不能歇일새  “그대들은 모든 곳을 향하여 
사운 위이향일체처     치구심불능헐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므로 
所以로 祖師言 咄哉丈夫여 將頭覓頭라하니라  달마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애닯다. 장부들아! 
소이   조사언 돌재장부   장두멱두라  머리가 있는데 또 머리를 찾는구나.’하신 것이다. 
言下에 便自回光返照하야  그대들은 말끝에서 
이언하   편자회광반조      곧 스스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돌아보아라. 
更不別求하고 知身心與祖佛不別하야  더 이상 다른 데서 찾지 말고 
갱불별구       지신심여조불불별      이 몸과 마음이 할아버지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서 
當下無事하면 方名得法이니라  당장에 아무 일 없게 되면 
당하무사     방명득법  바야흐로 법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14-35 밥값을 갚을 날이 있으리라   
   
大德아 山僧今時에 事不獲已하야  “큰스님들이시여! 산승이 오늘 부득이 
대덕   산승금시   사불획이   
話度說出許多不在淨하니 且莫錯하라  쓸데없는 더러운 소리를 많이 하고 있는데 
화도설출허다부재정     이차막착  그대들은 착각하지 말라. 
據我見處하면 實無許多般道理요  내가 보기에는 실로 이처럼 허다한 도리는 없다. 
거아견처     실무허다반도리  
要用便用하고 不用便休니라  작용하게 되면 곧 작용하고 
요용편용     불용편휴  작용하지 않으면 곧 쉰다. 
祇如諸方이 說六度萬行하야 以爲佛法하나  다만 제방에서는 육도만행을 
기여제방   설육도만행     이위불법 부처님의 법이라고 말하지만 
我道是莊嚴門佛事門이요 非是佛法이니라  나는 그것을 장엄하는 것이고 
아도시장엄문불사문     비시불법이      불사를 짓는 일이지 불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乃至持齋持戒하며 擎油不閃하야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재계를 지키고 계행을 가지며, 
내지지재지계       경유불섬         기름 찬 그릇 출렁거리지 않도록 신중히 행동하더라도 
道眼不明하면 盡須抵債하야  도를 보는 안목이 밝지 못하면 
도안불명     진수저채      모두가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으니 
索飯錢有日在니라  밥값을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색반전유일재   
何故如此오 入道不通理하면 復身還信施하나니  어째서 그런가. 불도에 들어와서 이치를 통하지 못하면, 
하고여차   입도불통리     복신환신시 몸을 바꾸어 신도들의 시줏밥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長者八十一에 其樹不生耳라하니라  그래서 장자가 81살이 되자 그의 집에 있는 나무에서 
장자팔십일   기수불생이  비로소 버섯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14-36 도인은 자취가 없다   
   
乃至孤峯獨宿하며 一食卯齋하며 長坐不臥하며  “외로운 산봉우리에 혼자 살며 
내지고봉독숙     일식묘재     장좌불와 아침 한 끼만 공양을 하고 눕지도 않고 앉아서 
六時行道하여도 皆是造業底人이요  밤낮으로 도를 닦는다 하여도 
육시행도       개시조업저인  모두 다 업을 짓는 사람들이다. 
乃至頭目髓腦와 國城妻子와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를 보시하고, 
내지두목수뇌   국성처자    나라와 성곽과 아내와 자식을 보시하고, 
象馬七珍을 盡皆捨施하야도  코끼리와 말과 일곱 가지 값진 보물들을 
상마칠진   진개사시  모조리 다 기꺼이 보시하더라도 
如是等見은 皆是苦身心故로 還招苦果하나니  이와 같은 견해는 모두가 몸과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에 
여시등견   개시고신심고   환초고과  괴로운 과보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 
不如無事하야 純一無雜이니라  차라리 아무 일도 없이 
불여무사     순일무잡  순일하여 잡스런 것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乃至十至滿心菩薩도 皆求此道流蹤跡하나  또 십지에 오른 보살조차도 
내지십지만심보살   개구차도류종적      모두 이 도인들의 자취를 찾으려 하나
了不可得이니  마침내 찾을 수 없으니
요불가득  
所以로 諸天歡喜하며 地神捧足하야  그러므로 모든 천신들이 기뻐하고 
소이  제천환희   지신봉족      지신들이 그의 발을 받들어 모시며, 
十方諸佛이 無不稱歎하나니 緣何如此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다. 
시방제불  무불칭탄    연하여차 어째서 그런가? 
爲今聽法道人이 用處無蹤跡일새니라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도인이 작용하는 그 곳에는 
위금청법도인   용처무종적  아무런 자취가 없기 때문이다.” 
   
14-37 대통지승불   
   
問 大通智勝佛이 十劫坐道場호대 佛法不現前이라  “대통지승 부처님께서 십 겁 동안 
문 대통지승불 십겁좌도량   불법불현전  도량에 앉아 계셨지만 불법이 나타나지 않아서 
不得成佛道라하니 未審此意如何오 乞師指示하소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불득성불도   미심차의여하  걸사지시  그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지시하여 주십시오.” 
師云 大通者는 是自己於處處에  “대통이라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어디에서나 
사운 대통자  시자기어처처     
達其萬法無性無相을 名爲大通이요  만법은 성품과 모양이 없음을 통달하는 것을 
달기만법무성무상  명위대통      대통이라 한다. 
智勝者는 於一切處不疑하야  지승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의혹이 없어서 
지승자  어일체처불의       
不得一法을 名爲智勝이요  한 가지 법도 얻을 것이 없음을 지승이라 한다. 
부득일법  명위지승       
佛者는 心淸淨光明이 透徹法界를 得名爲佛이요  부처란 마음의 청정한 광명이 
불자  심청정광명  투철법계  득명위불  온 법계를 꿰뚫어 비추는 것을 부처라 한다. 
十劫坐道場者는 十波羅蜜是요  십 겁 동안 도량에 앉았다고 하는 것은 
십겁좌도량자  십바라밀시 십바라밀을 닦은 것이다. 
佛法不現前者는 佛本不生이며  불법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것은 
불법불현전자  불본불생      부처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니고 
法本不滅이라 云何更有現前이리요  법은 본래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 
법본불멸   운하갱유현전  거기서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
不得成佛道者는 佛不應更作佛이니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부득성불도자  불불응갱작불  부처가 다시 부처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古人云 佛尙在世間호대 而不染世間法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옛사람이 ‘부처님은 항상 세간에 계시면서도 
고인운 불상재세간   이불염세간법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14-38 마음 따라 모든 법이 생기고 소멸한다   
   
道流야 欲得作佛인댄 莫隨萬物하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도류  이욕득작불   막수만물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아라. 
心生種種法生하고 心滅種種法滅이라  마음이 생겨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심생종종법생    심멸종종법멸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니라  한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일심불생   만법무구   
世與出世에 無佛無法하야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세여출세  무불무법    부처도 없고 법도 없으며
亦不現前하며 亦不曾失이니라  나타난 적도 없고 
역불현전   역불증실  일찍이 잃어버린 일도 없다.
設有者라도 皆是名言章句라  설혹 부처와 법이 있다 하더라도 
설유자     개시명언장구    그것은 모두가 명칭과 말과 문장일 뿐이다. 
接引小兒하는 施設藥病이요  어린아이들을 달래고
접인소아     시설약병  병에 따라 약을 쓰는 것과 같다.
表顯名句니 且名句不自名句라  표현이 이름과 문구이라 
표현명구   차명구불자명구    그 이름과 문구도 스스로 이름과 문구가 아니고 
還是耳目前昭昭靈靈하야  도리어 그대들 눈앞에서 아주 밝고 분명하게 
환시이목전소소영영           
鑑覺聞知照燭底가 安一切名句니라  느끼고 듣고 알며 비쳐보는 그 것이 
감각문지조촉저     안일체명구  모든 이름과 문구를 붙이는 것이다..” 
   
14-39 오무간업   
   
大德아 造五無間業하야사 方得解脫이니라  “대덕들이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을 지어야 
대덕아 조오무간업       방득해탈        바야흐로 해탈하게 되느니라.” 
問 如何是五無間業고  “무엇이 다섯 무간업입니까?” 
문 여하시오무간업   
師云 殺父害母하며 出佛身血하며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어머니를 해치는 것과 
사운 살부해모     출불신혈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과  
破和合僧하며 焚燒經像等이 此是五無間業이니라  화합 승단을 깨뜨리는 것과 
파화합승       분소경상등    차시오무간업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고 깨뜨리는 것이 오무간업이다."
云 如何是父오  “무엇이 아버지입니까?” 
운 여하시부     
師云 無明是父니 一念心이 求起滅處不得하야  “무명이 아버지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사운 무명시부     이일념심     구기멸처부득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곳을 찾을 수 없어 
如響應空하야 隨處無事를 名爲殺父니라  마치 허공에 메아리가 울리는 것 같고 어디를 가나 
여향응공      수처무사      명위살부      일이 없는 것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니라.” 
云 如何是母오  “무엇이 어머니입니까?” 
운 여하시모     
師云 貪愛爲母니 一念心이 入欲界中하야  “탐내고 애착하는 것이 어머니이다. 
사운  탐애위모    이일념심     입욕계중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욕계에 들어가 
求其貪愛하나 唯見諸法空相하야  그 탐내고 애착하는 것을 찾아보아도 
구기탐애       유견제법공상      오직 모든 법은 공한 모양임을 볼 뿐이고 
處處無著을 名爲害母니라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어머니를 해친 것이니라.” 
처처무작     명위해모       
云 如何是出佛身血고  “무엇이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입니까?” 
운 여하시출불신혈     
師云 向淸淨法界中하야 無一念心生解하고  “그대들이 청정한 법계에서 
사운 이향청정법계중        무일념심생해      한 생각 마음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고 
便處處黑暗이 是出佛身血이니라  어디에서든 캄캄한 것이 
편처처흑암     시출불신혈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니라.” 
云 如何是破和合僧고  “무엇이 화합승단을 깨뜨리는 것입니까?” 
운 여하시파화합승     
師云 一念心이 正達煩惱結使하야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사운 이일념심   정달번뇌결사  번뇌의 속박을 바르게 통달하여 
如空無所依가 是破和合僧이니라  마치 허공이 의지하는 바가 없는 것 같은 것이 
여공무소의   시파화합승        화합승단을 깨뜨린 것이니라.” 
云 如何是焚燒經像고  “무엇이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입니까?” 
운 여하시분소경상   
師云 見因緣空心空法空하야 一念決定斷하야  “인연이 비고 마음이 비고 법이 비었음을 보아서 
사운 견인연공심공법공     일념결정단  한 생각에 결정코 끊어서 
逈然無事가 便是焚燒經像이니라     초연히 일이 없는 것이 
형연무사   편시분소경상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이니라.” 
   
14-40 산승의 말도 취하지 말라   
   
大德아 若如是達得하면 免被他凡聖名礙니라  “큰스님들이시여! 만약 이와 같이 통달한다면 
대덕   약여시달득     면피타범성명애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이름에 구애되지 않을 것이다. 
一念心이 祇向空拳指上生實解하며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이일념심   지향공권지상생실해      빈주먹 속에서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을 낸다. 
根境法中虛捏怪하야  또 육근과 육진의 법에서 
근경법중허날괴         공연히 없는 것을 만들어 내어 괴이한 짓을 하여 
自輕而退屈言하되 我是凡夫요 他是聖人이라하니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고 뒷걸음질치면서 
자경이퇴굴언        아시범부     타시성인             ‘나는 범부고 저분은 성인이시다.’라고 한다. 
禿屢生이여 有甚死急하야  이 머리 깎은 바보들아! 
독누생       유삼사급       무엇이 그리 다급하여 
披他獅子皮하야 却作野干鳴고  사자의 가죽을 쓰고 
피타사자피     각작야간명  여우의 울음소리를 내는가? 
大丈夫漢이 不作丈夫氣息하야  대장부 사나이가 
대장부한   불작장부기식      장부의 기개를 펴지 못하고 
自家屋裏物을 不肯信하고  자기 집안의 보물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자가옥리물   불긍신   
祇麽向外覓하야 上他古人閒名句하야  단지 바깥으로만 찾아다닌다. 
기마향외멱     상타고인한명구      옛사람들이 만든 부질없는 명칭과 문구에만 사로잡혀 
倚陰博陽하야 不能特達이라  이리저리 이 말에 의지하고 저 말에 의지하여 
의음박양     불능특달  분명하게 통달하지 못한다. 
逢境便緣하며 逢塵便執하야  경계를 만나면 곧 거기에 반연하고 
봉경편연     봉진편집      육진을 만나면 곧 또 집착한다. 
觸處或起하야 自無准定이로다  닿는 곳마다 미혹을 일으켜서 
촉처혹기     자무준정  스스로 정해진 기준이 없다. 
道流야 莫取山僧說處하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막취산승설처      산승이 말하는 것도 취하지 말라. 
何故오 說無憑據하야  왜냐? 내 말에도 아무런 근거와 의지할 데가 없다. 
하고   설무빙거   
一期閒圖畵虛空이요 如彩畵像等喩니라  잠깐 허공에 대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일기한도화허공     여채화상등유  또 남이 그린 그림이나 형상에 채색을 입히는 것과 같다.” 
   
14-41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잃을 것이다   
   
道流야 莫將佛爲究竟하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막장불위구경      부처를 최고의 경지라고 여기지 말라. 
我見猶如厠孔이요  내 견해로는 그것이 마치 화장실의 변기와 같은 것이다. 
아견유여측공         
菩薩羅漢은 盡是枷鎖며 縛人底物이니  보살과 나한은 모두 다 목에다 씌우는 칼과 
보살나한     진시가쇄    박인저물  발을 묶는 족쇄와 같이 사람은 결박하는 물건들이다. 
所以로 文殊仗劍하야 殺於瞿曇하며  그러므로 문수는 긴 칼을 비껴들고 
소이   문수장검     살어구담  고오타마 부처님을 죽이려 했고, 
鴦掘持刀하야 害於釋氏니라   앙굴리마라는 단도를 가지고 
앙굴지도     해어석씨  석가모니를 해치려한 것이다. 
道流야 無佛可得이니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무불가득      부처란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乃至三乘五性과 圓頓敎迹은  삼승과 오성과 원돈교의 자취마저도 
내지삼승오성   원돈교적   
皆是一期藥病相治요 竝無實法이니라  모두다 그때그때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이지 
개시일기약병상치   병무실법  실다운 법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設有라도 皆是相似表顯이요 路布文字니  설혹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가까운 개념으로
설유       개시상사표현        노포문자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문자로서
差排하야 且如是說이니라  알맞게 배열하여 그처럼 말 한 것이다. 
차배     차여시설   
道流야 有一般禿子하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유일반독자      어떤 머리 깎은 사람들이 있어서 
便向裏許著功하야 擬求出世之法하니 錯了也라  곧 그러한 것이 공을 들여서 
편향리허착공        의구출세지법       착요야    출세간법을 구하려고 하니 그것은 잘못이다. 
若人求佛하면 是人失佛이요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를 구한다면 
약인구불     시인실불  그 사람은 부처를 잃고
若人求道하면 是人失道요  도를 구한다면 도를 잃을 것이며, 
약인구도     시인실도     
若人求祖하면 是人失祖니라     만약 조사를 구한다면 조사를 잃을 것이다." 
약인구조     시인실조   
   
14-42 주리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   
   
大德아 莫錯하라 我且不取解經論하며  “큰스님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대덕   막착     아차불취이해경론 나는 그대들이 경논을 잘 안다는 것을 높이 사지 않으며
我亦不取國王大臣하며  나는 또 그대들이 국왕이나 
아역불취이국왕대신      대신이라 하더라도 높이 사지 않는다. 
我亦不取辯似懸河하며  나는 또 그대들이 폭포수처럼 
아역불취이변사현하  유창한 말솜씨를 가졌더라도 높이 사지 않는다. 
我亦不取聰明智慧하고  나는 또 그대들이 총명하고 
아역불취이총명지혜      지혜롭다 하더라도 높이 사지 않는다. 
唯要眞正見解니라  오직 그대들이 진정한 안목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유요이진정견해   
道流야 設解得百本經論하여도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설해득백본경론        설사 백 권의 경과 논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不如一箇無事底阿師니  일개 일 없는 스님만 같지 못하니
불여일개무사저아사  
解得하면 卽輕蔑他人하야  그대들이 그런 것들을 안다 하더라도 
이해득     즉경멸타인      곧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여 
勝負修羅와 人我無明이 長地獄業이니라  승부를 다투는 아수라가 될 뿐이고 나와 남을 분별하는 
승부수라    인아무명     장지옥업        무명 번뇌로 지옥의 업을 기를 뿐이다. 
如善星比丘가 解十二分敎호되 生身陷地獄하야  예컨대 선성비구가 십이분교를 잘 알면서도 
여선성비구   해십이분교     생신함지옥 산 채로 지옥에 떨어져서 
大地不容하니 不如無事休歇去니라  대지도 용납하지 않으니 
대지불용     불여무사휴헐거      차라리 아무 일 없이 쉬느니만 못하였다.
飢來喫飯이요 睡來合眼이라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기래긱반     수래합안  잠이 오면 눈을 감으면 된다. 
愚人笑我나 智乃知焉이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보고 비웃겠지만 
우인소아   지내지언        지혜로운 사람은 알 것이다. 
道流야 莫向文字中求니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도류   막향문자중구    문자 속에서 찾지 말라. 
心動疲勞하고 吸冷氣無益하니  마음이 움직이면 피곤하고 
심동피로       흡냉기무익     찬 기운을 마시면 좋을 것이 없으니
不如一念緣起無生하야  차라리 한 생각 인연으로 일어난 법이 
불여일념연기무생       본래 생멸이 없음을 깨달아 
超出三乘勸學菩薩이니라    삼승의 방편 학설을 공부하는 보살들을 
초출삼승권학보살  뛰어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14-43 철퇴를 맞을 날이 있으리라   
   
大德아 莫因循過日하라  “큰스님들이시여! 
대덕  막인순과일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지 말라. 
山僧往日 未有見處時에 黑漫漫地라  산승이 지난날 견처가 없었을 때는 
산승왕일 미유견처시  흑만만지 도무지 캄캄하고 답답하였다. 
光陰을 不可空過니 腹熱心忙하야 奔波訪道하야  세월을 헛되이 보낼 수 없어 속은 타고 
광음  불가공과  복열심망   분파방도      마음은 바빠 분주히 도를 물으러 다녔다. 
後還得力하야 始到今日하야 共道流如是話度니라  그런 뒤에 힘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에 이르러 
후환득력   시도금일   공도류여시화도      같이 도 닦는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勸諸道流하노니 莫爲衣食하라  도를 닦는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권제도류    막위의식         옷과 밥을 생각하지 말라. 
看世界易過하며 善知識難遇니  세월은 쉽게 지나가고 선지식은 만나기 어려워 
간세계이과   선지식난우       
如優曇華가 時一現耳니라  우담바라 꽃이 때가 되어야 한 번 피는 것과 같다. 
여우담화  시일현이   
諸方이 聞道有箇臨濟老漢하고  그대들 제방에서는 
이제방  문도유개임제노한      임제라는 늙은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出來便擬問難하야 敎語不得타가  이곳으로 오자 곧 어려운 질문을 하여 
출래편의문난   교어부득타    말문이 막히게 하려고 한다. 
被山僧全體作用하야 學人空開得眼이나  그러다가 산승의 완전한 활용을 당하고 나서는 
피산승전체작용   학인공개득안  그 학인은 부질없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口總動不得하고 然不知以何答我하니  입도 열지 못하며 멍청하여 
구총동부득   몽연부지이하답아  어떻게 대답할지를 모른다. 
我向伊道호되 龍象蹴踏은 非驢所堪이로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큰 코끼리가 밟는 곳은 
아향이도   용상축답  비려소감  나귀 따위가 갈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諸處에 祇指胸點肋하야 道我解禪解道하나  그대들 제방에서는 가슴을 치고 옆구리를 치면서 
이제처  지지흉점늑   도아해선해도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고 하여 으시대지만, 
三箇兩箇가 到這裏하야 不奈何하니  두 사람이건 세 사람이건 
삼개양개  도자리   불내하        여기에 와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구나. 
咄哉라 將這箇身心하야 到處簸兩片皮하야  애달프다. 그대들은 이 훌륭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돌재  이장자개신심   도처파양편피      가는 곳마다 두 조각 입술을 나불대면서 
閭閻하니 喫鐵棒有日在로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니 
광하여염   긱철방유일재  철퇴를 얻어맞을 날이 있을 것이다. 
非出家兒요 盡向阿修羅界攝이니라  출가한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비출가아  진향아수라계섭  모두 아수라의 세계에 빠지게 될 것이다.” 
   
14-44 의심하지 말라   
   
夫如至理之道는 非諍論而求激揚이며  “대저 지극한 도는 논쟁을 하여 
부여지리지도  비쟁논이구격양      높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鏗鏘以摧外道니라 至於佛祖相承하야는  큰 소리를 쳐서 외도를 꺾는 것도 아니다. 
견장이최외도   지어불조상승        불조가 면면이 서로 이어오는 것조차 
更無別意요 設有言敎라도  무슨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요
갱무별의  설유언교      설혹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있다 하더라도 
落在化儀三乘五性人天仁果니라  교화하는 법도에 따른 삼승과 오성과 
낙재화의삼승오성인천인과  인천인과의 가르침에 떨어져 있을 뿐이다. 
如圓頓之敎는 又且不然하야  그러나 원교 돈교는 또한 그런 것이 아니다. 
여원돈지교  우차불연       
善財童子가 皆不求過니라  선재동자도 남김없이 법을 구하고 
선재동자  개불구과  선지식을 찾는 일을 마치지는 못하였다.” 
大德아 莫錯用心하라 如大海不停死屍니라  “큰스님들이여! 마음을 잘못 쓰지 말라. 
대덕  막착용심   여대해부정사시      마치 큰 바다가 시체를 그냥 머물러 두지 않듯 하니라. 
祇麽擔却하야 擬天下走하나니  그렇게 한 짐 잔뜩 짊어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니, 
기마담각   의천하주         
自起見障하야 以礙於心이라  스스로 견해의 장애를 일으켜 마음을 막는 것이다. 
자기견장   이애어심   
日上無雲하니 麗天普照요  해가 뜨고 구름 한 점 없으니 
일상무운   여천보조    아름다운 하늘에 온통 햇빛이 비치고
眼中無翳하니 空裏無花로다  눈에 병이 없으니 허공에 꽃이 없다. 
안중무예   공리무화   
道流야 欲得如法이면 但莫生疑하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이 법답게 되기를 
도류  이욕득여법   단막생의      바란다면 오직 의심을 내지 말아라. 
展則彌綸法界하고 收則絲髮不立하야  펼치면 온 법계를 싸고도 남고 
전즉미륜법계   수즉사발불입      거두면 실 끝도 세울 데가 없다. 
歷歷孤明하야 未曾欠少니라  뚜렷하고 호젓이 밝아 
역역고명   미증흠소  일찍이 조금도 모자란 적이 없었다. 
眼不見耳不聞이니 喚作什麽物고  눈으로도 볼 수도 없고 귀로도 들을 수도 없으니 
안불견이불문   환작십마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古人云 說似一物이라도 則不中이라하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고인운 설사일물    즉부중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다.’하였다. 
但自家看하라 更有什麽오  그대들은 다만 자기 스스로를 보아라. 
이단자가간   갱유십마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說亦無盡이니 各自著力하고 珍重하라  설명한다 해도 끝이 없다. 
설역무진   각자착력   진중  각자가 힘껏 노력하여라. 편히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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