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諱義玄이니 曹州南華人也이요 俗姓邢氏니라 | 선사의 휘는 의현이고 조주 남화 사람이며 |
사휘의현 조주남화인야 속성형씨 | 속성은 형씨이다. |
幼而潁異하고 長以孝聞하니라 | 어려서는 남달리 영특하였으며 |
유이영이 장이효문 | 자라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
及落髮受具하야는 居於講肆하야 | 마침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강원에 계시면서 |
급락발수구 거어강사 | |
精究毘尼하고 博賾經論이러니 | 계율을 깊이 연구하시고 경과 론을 널리 공부하였다. |
정구비니 박색경론 | |
俄而歎曰 此濟世之醫方也요 |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
아이탄왈 차제세지의방야 | “이것은 세상을 구제하는 약의 처방전일 뿐, |
非敎外別傳之旨로다 卽更衣遊方하야 | 교외별전의 뜻이 아니다.” 하며 탄식하고는 |
비교외별전지지 즉갱의유방 | 곧 옷을 갈아입고 제방을 행각하였다. |
首參黃檗하고 次謁大愚하니 | 맨 먼저 황벽 스님을 찾아뵙고 |
수참황벽 차알대우 | 다음으로 대우 스님을 찾아뵈었다. |
其機緣語句는 載于行錄하니라 | 그 기연과 말씀들은 행록에 실려 있다. |
기기연언구 재우행록 | |
旣受黃檗印可하고 尋抵河北하야 | 이미 황벽 스님의 인가를 받고 하북으로 가서 |
기수황벽인가 심저하북 | |
鎭州城東南隅에 臨滹沱河側하야 小院住持하니 | 진주성 동남쪽 호타하라는 강 곁에 있는 |
진주성동남우 임호타하측 소원주지 | 작은 절에 머무셨다. |
其臨濟는 因地得名이니라 | <임제>라는 이름은 그 지역의 이름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
기임제 인지득명 | |
時普化先在彼하야 佯狂混衆하니 | 그때 보화 스님이 그 곳에 먼저 와서 |
시보화선재피 양광혼중 | 거짓으로 미친 척을 하며 대중에 섞여 살았는데 |
聖凡莫測이라 | 성인인지 범부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
성범막측 | |
師至卽佐之하야 師正旺化에 | 스님께서 그 곳에 가시자마자 보좌해 드리다가 |
사지즉좌지 사정왕화 | 정작 스님께서 교화를 왕성하게 펴실 즈음에 |
普化全身脫去하니 | 온 몸 그대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
보화전신탈거 | |
乃符仰山小釋迦之懸記也니라 | 이는 작은 석가모니라는 앙산스님의 예언에 |
내부앙산소석가지현기야 | 부합하는 것이었다. |
適丁兵革하야 師卽棄去하니 | 그 때 마침 난리가 나서 그 곳을 떠나셨다. |
적정병혁 사즉기거 | |
大尉默君和가 於城中에 捨宅爲寺하니 | 태위인 묵군화가 성안에 있는 |
대위묵군화 어성중 사택위사 | 자기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다. |
亦以臨濟爲額하고 迎師居焉하니라 | 역시 ‘임제’라는 액호를 달고 |
역이임제위액 영사거언 | 스님을 맞아 계시도록 하였다. |
後拂衣南邁하야 至河府하니 | 뒤에 옷깃을 떨치고 남쪽으로 향하여 |
후불의남매 지하부 | 하북부에 이르렀다. |
府主王常侍가 延以師禮하니 | 부주인 왕상시가 |
부주왕상시 연이사례 | 제자의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다. |
住未幾에 卽來大名府興化寺하야 居于東堂하니라 | 거기에 머무신지 얼마 되지 않아 |
주미기 즉래대명부흥화사 거우동당 | 곧 대명부의 흥화사로 옮겨 동당에 기거하였다. |
師無疾하고 忽一日에 攝衣據坐하야 | 스님은 병이 없으셨는데 |
사무질 홀일일 섭의거좌 | 하루는 옷을 여미고 자리에 앉으시더니 |
與三聖問答畢하고 寂然而逝하니 | 삼성 스님과 문답을 마치시고 |
여삼성문답필 적연이서 | 조용히 돌아가셨다. |
時唐咸通八年丁亥 孟陬月十日也니라 | 때는 당나라 함통 8년 정해(867) 정월 10일이었다. |
시당함통팔년정해 맹추월십일야 | |
門人以師全身으로 建塔于大名府西北隅하니 | 문인들이 스님의 전신을 |
문인이사전신 건탑우대명부서북우 | 대명부 서북쪽에 탑을 세워 모셨다. |
勅謚慧照禪師요 塔號澄靈이라 | 시호는 혜조 선사, |
칙시혜조선사 탑호징령 | 탑호는 징령이라 하였다. |
合掌稽首하야 記師大畧하노라 | 합장하고 머리 숙여 스님의 행장을 간단히 쓰노라. |
합장계수 기사대략 | |
住鎭州保壽嗣法小師 延沼謹書 | 법제자 진주 보수사 주지 연소는 삼가 쓰고, |
주진주보수사법소사 연소근서 | |
住大名府興化嗣法小師 存奬校勘 | 법제자 대명부 흥화사 주지 존장이 교감하다. |
주대명부흥화사법소사 존장교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