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蘗山斷際禪師傳心法要

傳心法要

碧雲 2013. 6. 13. 10:05

黃蘗山斷際禪師傳心法要    황벽산 단제선사 전심법요      
序文
河東唐裵休集幷序  당나라 하동 배휴는 모으고 아울러 서문을 쓰노라.
하동당배휴집병서 
有大禪師하야  法諱는 希運이라  대선사께서 계시었는데 법휘는 희운이시다.
유대선사   법휘  희운 
住洪州高安縣黃檗山축峰下하니  홍주 고안현 황벽산 축봉 아래 머무시니
주홍주고안현황벽산축봉하 
乃曹溪六祖之嫡孫이요  조계 육조의 적손이요
내조계육조지적손 
百丈之子며  西堂之法姪이니라  백장의 법자이시며 서당의 법질이시다.
백장지자  서당지법질 
獨佩最上乘離文字之印하고  홀로 최상승의 패를 차고 
독패최상승이문자지인      문자의 인장을 여의셨으며  
唯傳一心이요 更無別法이니  오로지 한 마음만 전해 가르치시고 
유전일심   갱무별법         다시 다른 법은 없으셨으니, 
心體亦空이라  마음의 바탕이 또한 비었음이라.
심체역공 
萬緣이 俱寂하야 如大日輪이 昇虛空中하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고요하여
만연  구적   여대일륜  승허공중  마치 큰 해바퀴가 허공 가운데 떠올라서
光明이 照曜하야 淨無纖埃니라  광명이 밝게 비추어
광명  조요   정무섬애  깨끗하기가 티끌 하나 없는 것과 같으셨다.
證之者는 無新舊無淺深하고  증명하시는 것은 새 것과 옛 것이 없고
증지자  무신구무천심  얕고 깊음도 없으셨으며,
說之者는 不立義解하며  설하시는 것은 뜻으로 앎을 세우지 않으셨고
설지자  불립의해 
不立宗主하며 不開戶牖하야  종주를 내세우지 않으시며
불립종주   불개호유  문호를 열어 젖히지도 않으셨고,
直下便是라 動念卽乖니라  「직하에 바로 이것이다
직하변시  동념즉괴  생각을 움직이면 곧 틀렸다.」
然後에 本佛故로  이렇게 하신 다음에야 본래의 부처를 위하시니
연후  위본불고 
其言이 簡하며 其理直하고 其道峻하며  그 말씀이 간명하고
기언     기리직   기도준  그 이치가 곧으시며 그 도는 준엄하고
其行이 孤하야 四方學徒가 望山而趨하며  그 행이 고고하시어
기행     사방학도  망산이추  사방의 학도가 산을 보고 달려와 모이고
睹相而悟하야 往來海衆이 常千餘人이니라  그 모습을 보고 깨치니
도상이오   왕래해중  상천여인  왕래하는 대중이 항상 천여명에 이르렀다.
予會昌二年에 廉于鍾陵할새 自山迎至州하야  내가 회창2년 종릉에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여회창이년  염우종능   자산영지주  산중으로부터 스님을 고을로 모셔
憩龍興寺하야 旦夕問道하고  용흥사에 계시도록 하고 
게용흥사   단석문도  아침 저녁으로 도를 물었으며
大中二年에 廉于宛陵할새  대중2년에는 완릉에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대중이년  염우완릉 
復去禮迎至所部하야  安居開元寺하야  다시 가서 예로서 맞이하여 모시고 
부거예영지소부   안거개원사      개원사에 안거하시도록 하여
旦夕受法하야 退而紀之하니 十得一二라  아침 저녁으로 법을 받아 물러나와서 기록하였는데
단석수법   퇴이기지   십득일이    열 가운데 하나 둘 밖에 얻지 못했다.
心印하고 不敢發揚이러니  이를 마음의 인장으로 삼아 지니고서 
패위심인   불감발양  감히 드러내어 나타내지 못하다가
今恐入神精義가 不聞於未來하야  이제 입신경지의 정묘한 뜻이
금공입신정의  불문어미래  미래에 전하여지지 못할까 두려워
遂出之하야 授門下僧大舟法建하야  드디어 내어놓고 문하 스님이신
수출지   수문하승대주법건    대주, 법건 스님에게 주어서
歸舊山之廣唐寺하야 問長老法衆하야  구산의 광당사로 돌아가
귀구산지광당사   문장로법중  장로들과 청법 대중들에게 
與往日常所親聞으로 同異如何也로라  지난 날 몸소 듣던 바와 
여왕일상소친문   동이여하야  같은지 다른지를 묻게 하였노라.
唐大中十一年十一月初八日序하노라  당나라 대중 11년 11월 초파일에 쓰노라.
당대중십일년십일월초팔일서 
1. 한마음 깨치면 부처 
師謂休曰  황벽(? ~ 850)스님께서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사위휴왈 
諸佛與一切衆生이 唯是一心이오 更無別法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이 
제불여일체중생  유시일심   갱무별법  오직 한 마음이요 달리 어떤 법도 없다.
此心이 無始以來로 不曾生不曾滅하며  이 마음은 본래부터 
차심  무시이래  부증생부증멸  생기거나 멸하지도 않았으며
不靑不黃하며 無形無相하며  푸르지도 누렇지도 않고
불청불황   무형무상  형체나 모양도 없으며
不屬有無하며 不計新舊하며 있음에도 없음에도 속하지 않고
불속유무   불계신구  새롭고 낡음도 따질 수 없다.
非長非短하며 非大非小하며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며
비장비단   비대비소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고
超過一切限量名言縱跡對待하야  모든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초과일체한량명언종적대대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넘어
當體便是라  바로 그 몸 그대로이다.
당체편시 
動念卽乖니 猶如虛空하야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나는 것이니
동념즉괴  유여허공         이 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無有邊際하며 不可測度니라  끝도 없고 재어볼 수도 없느니라
무유변제   불가측탁 
唯此一心이 卽是佛이니 佛與衆生이  更無別異어늘  오로지 이 한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니
유차일심  즉시불   불여중생  갱무별이  부처와 중생이 다시 다른 것이 아니거늘
但是衆生이 著相外求하야 求之轉失이로다  다만 중생이 모양에 집착하여 밖에서 구하므로
단시중생  착상외구   구지전실   구할수록 점점 잃는 것이다.
使佛覓佛하며 將心捉心하면  부처에게 부처를 찾게 하고 
사불멱불   장심착심  마음으로 마음을 잡으려 한다면
窮劫盡形하여도 終不能得이라  세월이 다하고 이 몸이 다하도록
궁겁진형    종불능득  끝내 능히 얻지 못하리라.
不知息念忘慮하면 佛自現前이로다  생각을 쉬고 사려를 잊으면
부지식념망려   불자현전   부처는 저절로 앞에 드러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此心이 卽是佛이며 佛卽是衆生이니 이 마음이 곧 부처이며
차심  즉시불   불즉시중생  부처가 곧 중생이니
衆生時에 此心이 不減하며  중생이라 해서 이 마음이 줄지 않고
위중생시  차심  불멸 
諸佛時에 此心이 不添하며  부처라 해서 이 마음이 첨가되지도 않는다.
위제불시  차심  불첨 
乃至六度萬行과 河沙功德이   또한 육도만행과 
내지육도만행  하사공덕  항하강의 모래와 같은 공덕이 
本自具足하야 不假修添이라  본시 스스로 구족하여
본자구족   불가수첨  닦아서 보탬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遇緣卽施하고 緣息하면 卽寂하나니  인연을 만나면  베풀고 
우연즉시   연식   즉적  인연이 다하면 곧 고요해지니
若不決定信此是佛하고  만약 이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하는 사실을 
약불결정신차시불     믿지 아니하고 
而欲著相修行하며 以求功用이면  형상에 집착하여 수행하려 하고
이욕착상수행   이구공용  그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皆是妄想이라 與道相乖니라  그 모두가 망상이라
개시망상   여도상괴  도와는 서로 어긋나게 된다.
此心이 卽是佛이오 更無別佛이며 亦無別心이니  이 마음이 곧 부처요 다시 다른 부처가 없으며 
차심  즉시불   갱무별불   역무별심  또한 다른 어떤 마음도 없으니
此心明淨이 猶如虛空하야 無一點相貌라  이 마음은 밝고 깨끗하기가 마치 허공같아서
차심명정  유여허공   무일점상모  한점의 모양도 없다.
心動念하면 卽乖法體며 卽著相이니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움직이면 
거심동념   즉괴법체  즉위착상   곧 법체가 어긋나서 바로 모양에 집착하게 된다.
無始已來로 無著相佛이니라  본시 모양에 집착한 부처란 없다.
무시이래  무착상불 
修六度萬行하야 欲求成佛인댄  육도만행을 닦아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수육도만행   욕구성불 
卽是次第니 無始已來로 無次第佛이니라  곧 차제(漸修의 門)를 두는 것이니 
즉시차제  무시이래  무차제불  본시 차제를 둔 부처란 없다.
但悟一心하면 更無少法可得이니 此卽佛이니라  한마음 깨치면 다시 더 작은 법도 얻을 것이 없으니
단오일심   갱무소법가득   차즉진불  이것이야 말로 참된 부처이다.
佛與衆生이 一心無異함이 猶如虛空하야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으로 다름 없음이 
불여중생  일심무이   유여허공      마치 허공과 같아서
無雜無壞하며 如大日輪이 照四天下인달하야  잡됨도 무너짐도 없으며
무잡무괴   여대일륜  조사천하  온누리 비치는 햇살과 같다.
日升之時에 明遍天下라도 虛空은 不曾明하며  해가 떴을 때는 온 천하가 두루 밝아도
일승지시  명견천하   허공  부증명     허공은 밝은 적이 없으며
日沒之時에 暗遍天下라도 虛空은 不曾暗이라  해가 져서 천하가 깜깜해도
일몰지시  암견천하   허공  부증암      허공은 어두운 적이 없다.
明暗之境이 自相陵奪하되 虛空之性은 廓然不變하나니  이렇듯 명암의 경계가 서로 번갈아 바뀐다 해도
명암지경  자상능탈   허공지성  확연불변  허공의 성품은 확연히 불변하는 것이니
佛及衆生도 心亦如此니라  부처와 중생도 그 마음이 또한 이와 같다. 
불급중생  심역여차 
若觀佛하되 作淸淨光明解脫之相하며  만약 부처를 보되 
약관불   작청정광명해탈지상  청정 광명 해탈의 모양을 생각하고
觀衆生하되 作垢濁暗昧生死之相하면  중생을 보되 
관중생   작구탁암매생사지상  구탁 암매 생사의 모양을 생각한다면
作此解者는 歷河沙劫하야도  이런 견해를 가지는 자는
작차해자  역하사겁  항하강 모래의 겁이 지난다 해도
終不得菩提니 著相故니라  끝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니
종불득보리  위착상고  이는 모양에 집착한 때문이라.
唯此一心을 更無微塵許法可得이니 卽心是佛이니라  오직 이 한 마음일 뿐 달리 티끌만큼의 다른 법이
유차일심  갱무미진허법가득   즉심시불  있을 수 없으니 곧 마음이 부처임이라.
如今學道人이 不悟此心體하고  지금 도를 배우는 이들은
여금학도인  불오차심체  이 마음의 바탕을 깨닫지 못하고
便於心上生心하야 向外求佛하며  마음 위에 마음을 내어
변어심상생심   향외구불  밖을 향해 부처를 구하며
著相修行하니 皆是惡法이요 非菩提道니라  모양에 집착하여 수행을 하니 
착상수행   개시악법   비보리도  모두가 악법이요 깨달음의 도가 아니다.
2. 無心이 道
  
供養十方諸佛이 不如供養一個無心道人이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공양시방제불  불여공양일개무심도인  한 사람의 무심도인에게 올리는 공양만 같지 못하니
何故오 無心者는 無一切心也라  왜이겠는가 무심자에게는 
하고  무심자  무일체심야  일체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 
如如之體가 內如木石하야 不動不搖하야  여여한 본체 그대로가 
여여지체  내여목석   부동불요   안으로 나무와 돌과 같아 동요함이 없어서
外如虛空하야 不塞不礙하며  밖으로 허공과 같아서 
외여허공   불색불애  막히거나 걸리지 아니하며 
無能所無方所하며 無相貌無得失이라  주관과 객관도 없고 방향과 장소도 없으며   
무능소무방소   무상모무득실  모양도 없고 얻음과 잃음도 없다. 
趨者가 不敢入此法은 恐落空無棲泊處라  후학들이 감히 이 마음의 법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추자  불감입차법  공낙공무서박처라  허공에 떨어져 짚을 곳이 없을까 두렵기 때문이라. 
故로 望崖而退하야 例皆廣求知見하나니  그러므로 벼랑을 바라보고 물러나서 
  망애이퇴   예개광구지견  대개의 모두가 널리 지견을 구하고 있으니
所以로 求知見者는 如毛하고 悟道者는 如角이니라  그런 까닭에 지견을 구하는 사람은 털처럼 많아도
소이  구지견자  여모   오도자  여각  깨친 이는 뿔같이 드문 것이다.
文殊는 當理하고 普賢은 當行이니  문수보살은 이치(理)를
문수  당리   보현  당행  보현보살은 행실(行)을 상징한다.
理者는 空無礙之理요 行者는 離相無盡之行이니라  이치란 진공이라 아무런 걸림이 없는 도리이며 
이자  진공무애지리  행자  이상무진지행  행실이란 형식을 벗어난 끝없는 실천을 말한다.
觀音은 當大慈하고 勢至는 當大智하고  관음보살은 큰자비를 
관음  당대자   세지  당대지  세지보살은 큰지혜를 상징한다. 
維摩者는 淨名也니 淨者는 性也요 名者는 相也니  유마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니 깨끗함은 성품을 
유마자  정명야  정자  성야  명자  상야  그리고 이름은 모습을 두고 이르는 것이지만
性相不異故로 號淨名이니라  성품과 모습이 다른 것이 아니기에
성상불이고  호정명  정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諸大菩薩所表者는 人皆有之하야  모든 대보살들로 상징된 위의 것들은
제대보살소표자  인개유지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어서 
不離一心이니 悟之卽是니라  한 마음과 떠나있지 않음이니
불리일심   오지즉시  깨치기만 하면 바로 그대로인 것이다.
今學道人이 不向自心中悟하고  지금의 도를 배우는 이들은 
금학도인  불향자심중오  자기 마음에서 깨달으려 하지 않고
乃於心外에 著相取境하야 皆與道로 背하나니라   마음 밖에서 경계를 취하고 모양에 집착하여
내어심외  착상취경   개여도    모두가 도를 그르치고 있다.
恒河沙者는 佛說是沙니 諸佛菩薩과 釋梵諸天이  항하의 모래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항하사자  불설시사  제불보살  석범제천    이 모래는 모든 불보살과 제석, 범천 및 하늘무리가
步履而過하야도 沙亦不喜하며  자기를 밟고 지나가도 기뻐하지 않고
보리이과    사역불희 
牛羊蟲蟻가 踐踏而行이라도 沙亦不怒하며  소, 양, 벌레, 개미가 자기를 밟고 지나가도
우양충의  천답이행    사역불노  또한 노하지도 않으며
珍寶馨香을 沙亦不貪하며 糞尿臭穢도 沙亦不惡하나니  진귀한 보배와 향료도 또한 탐내지 않고
진보경향  사역불탐   분뇨취예  사역불오  분뇨의 악취도 또한 싫어하지 않는다.'하셨다.
此心이 卽無心之心이라 離一切相이니라  이 마음이 바로 무심한 마음이라
차심  즉무심지심   이일체상  일체의 모양을 떠난 것이니라.
衆生諸佛이 更無差別이니 但能無心하면 便是究竟이니라  중생과 부처가 다시 차별이 없으니
중생제불  갱무차별   단능무심   변시구경  이렇듯 무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경지니라.
學道人이 若不直下無心하면  도를 배우는 이들이 
학도인  약불직하무심  당장 무심을 이룰 수 없다면
累劫修行하야도 終不成道니  여러 겁 동안 수행하여도 
누겁수행    종불성도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被三乘功行拘繫하야 不得解脫이니라  삼승(성문,연각,보살)의 단계적 공부에 얽매여
피삼승공행구계   부득해탈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然이나 證此心이 有遲疾하니  그러나 이 마음을 증득하는 데는 
   증차심  유지질  더디고 빠른 차이가 있으니
有聞法하고 一念에 便得無心者하며  어떤 사람은 법문을 듣고 한 생각에
유문법   일념  편득무심자  무심을 얻기도 하고
有至十信十住十行十廻向하야 乃得無心者하며  어떤 사람은 십신,십주,십행,십회향에
유지십신십주십행십회향   내득무심자  이르러서야 무심을 얻기도 하며
有至十地하야 乃得無心者하니  어떤 사람은 십지에 이르러서 비로소 
유지십지   내지무심자        무심을 얻기도 하니
長短得無心하야 乃住요 更無可修可證이며 길고 짧건 무심을 얻어서 머무는 것이요
장단득무심   내주  갱무가수가증  달리 더 수행할 것도 증득할 것도 없는 것이니
實無所得이나 實不虛하니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으나
실무소득   진실불허  진실하여 허망되지 않으니
一念而得과 與十地而得者로  한 순간에 얻은 것과 십지를 거쳐서 얻은 것은 
이념이득  여십지이득자 
功用恰齊라 更無深淺이니  효용은 같은 것이어서 깊고 얕음의 차이가 없으니
공용흡제  갱무심천 
是歷劫에 柱受辛勤이니라  다만 긴 세월 동안 
지시역겁  주수신근  헛된 괴로움을 받은 것일 뿐이다.
造善造惡이 皆是著相이라  선을 짓고 악을 지음이 
조선조악  개시착상  모두가 모양에 집착한 것이라 
著相造惡하야 枉受輪廻하야  모양에 집착하여 악을 지어도
착상조악   왕수윤회  잘못된 윤회를 받고
著相造善하야 枉受勞苦하나니  모양에 집착하여 선을 지어도
착상조선   왕수노고  잘못된 노고를 받는 것이니
總不如言下에 便自認取本法이니라  그 무엇도 말 한 마디에 문득 
총불여언하  변자인취본법  본래의 법을 깨닫는 것만 같지 못하다 
此法이 卽心이라 心外無法하며  본래의 법은 곧 마음이라 
차법  즉심   심외무법  마음 밖에는 다른 법이 없으며 
此心이 卽法이라 法外無心이니라  이 마음이 곧 법이며 
차심  즉법   법외무심  법 외에는 마음이 없느니라 
心自無心하며 亦無無心者하니  마음 그 자체는 마음이라 할 것도
심자무심   역무무심자  또한 무심이라 할 것도 없다.
將心無心하면 心卻成有라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애려 하면
장심무심   심각성유  마음이 오히려 생기는 것이라.
默契而已요 絶諸思議故로  다만 묵묵히 계합할 뿐이요
묵계이이  절제사의고  모든 사유와 이론이 끊어졌으므로
曰 言語道斷하며 心行處滅이라하나니  말하기를 '언어의 길이 끊기고
왈 언어도단   심행처멸  마음 가는 곳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此心이 是本源淸淨佛이라 人皆有之요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한 부처라
차심  시본원청정불   인개유지    사람마다 모두 그것을 지녔으며
蠢動含靈과 與諸佛菩薩이 一體不異언마는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모든 불보살과
준동함령  여제불보살  일체불이  한 몸으로 다를 것이 없건만은
秖爲妄想分別하야 造種種業果로다  다만 망상분별로 인해
지위망상분별   조종종업과  갖가지 업과를 짓는 것이다.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本佛上에는 實無一物이라   본래의 부처 자리에는 실로 한 물건도 없다  
본불상   실무일물   
虛通寂靜하야 明妙安樂而已니   툭 틔어서 고요하고 정적하여 
허통적정   명묘안락이이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니  
深自悟入하면 直下便是라   스스로 깊이 깨달아 들면 바로 그 자리라  
심자오입   직하편시   
圓滿具足하며 更無所欠이니라   원만히 다 갖추어  
원만구족   갱무소흠   다시 모자라는 바가 없다. 
縱使三精進修行하야 歷諸地位라도   비록 삼지(삼아승지겁)를 수행 정진해서  
종사삼기정진수행   역제지위   모든 지위를 거치더라도 
及一念證時에는 祇證元來自佛이요   한 생각 증득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급일념증시   지증원래자불   원래의 자기 부처를 깨달을 뿐이요 
向上에 更不添得一物이니라   그 위에 아무 것도 얻어 부칠 것이 없다. 
향상  갱부첨득일물   
卻觀歷劫功用이 總是夢中妄   돌아보면 여러 겁 동안의 공들인 것이 
각관역겁공용  총시몽중망위   모두가 꿈 속의 허망한 것이라 
故로 如來云 我於阿耨菩提에 實無所得이니   때문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래운 아어아뇩보리  실무소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으니 
若有所得이런들 燃燈佛이 卽不與我授記라하시며   만약 얻은 바가 있다면  
약유소득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하지 않았을 것'이라 하시며 
又云 是法이 平等하야 無有高下라   또 말씀하시되 '이 법이 평등하여 
우운 시법  평등   무유고하    높고 낮음이 없으니 
是名菩提라하시니 卽此本源淸淨心이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하시니 
시명보리     즉차본원청정심   곧 이 본래의 청정한 마음이 
與衆生諸佛世界와 山河有相無相과   중생세계와 모든 부처세계와  
여중생제불세계  산하유상무상   산과 물, 유상 무상과  
遍十方界가 一切平等하야 無彼我相하나니   온 시방세계가 다 함께 평등하여 
변시방계  일체평등   무피아상   너다 나다 하는 상이 없다. 
此本源淸淨心이 常自圓明遍照어늘   이 본래 청정한 마음이 항상 스스로  
차본원청정심  상자원명변조   둥글고 밝게 두루 비치거늘 
世人은 不悟하야 認見聞覺知心하며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세인  불오   기인견문각지위심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 
見聞覺知所覆하야 所以不睹精明本體하나니   그 것에 덮이어서 끝내는 
위견문각지소부   소이부도정명본체   정교하고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니 
但直下無心하면 本體自現하야   당장에라도 무심하면 본체가 스스로 드러나 
단직하무심   본체자현   
如大日輪이 昇於虛空인달하야   마치 큰 해바퀴가 허공에서 떠오르듯 
여대일륜  승어허공   
遍照十方하며 更無障礙니라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변조시방   갱무장애   아무런 장애가 없게 된다. 
故로 學道人이 唯認見聞覺知施動作이니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학도인  유인견문각지시위동작   온갖 동작들만 인식하기 때문이니 
空卻見聞覺知하면 卽心路絶하야 無入處니라   이런 것들을 비워버리기만 하면 
공각견문각지   즉심로절   무입처   바로 마음 길이 끊기어서 들어갈 곳이 없어진다. 
但於見聞覺知處에 認本心이나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곳에서
단어견문각지처  인본심    본래의 마음을 인식할지라도
然이나 本心이 不屬見聞覺知하며    본래의 마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데에
   본심  불속견문각지    속하지 않으며
亦不離見聞覺知니    또한 떠나 있지도 않는 것이니
역불리견문각지     
但莫於見聞覺知上에 起見解하며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가운데
단막어견문각지상  기견문    다만 견해를 일으키거나
亦莫於見聞覺知上에 動念하며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역막어견문각지상  동념   
亦莫離見聞覺知覓心하며    또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떠나
역막리견문각지멱심    마음을 찾아서도 안되고
亦莫捨見聞覺知取法이니라    또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버리고
역막사견문각지취법 법을 취해서도 안된다.
不卽不離하며 不住不著하며  그리하면 예속되지도 않고 떠나 있지도 않으며
부즉불리   부주불착      머물지도 집착하지도 않고
縱橫自在하야 無非道場이니라  종횡으로 자재하여 
종횡자재   무비도량  도량이 아닌 곳이 없다.
世人은 聞道諸佛이 皆傳心法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든 부처님께서
세인  문도제불  개전심법  모두 마음 법을 전한다는 말을 듣고서
將謂心上에 別有一法可證可取라하야  마음 밖에 따로 깨닫고 
장위심상  별유일법가증가취  취할 만한 법이 있다고 여기고는
遂將心覓法하고 不知心卽是法이요  마음을 가지고 법을 찾으면서
수장심벽법   불지심즉시법  마음이 곧 법이고 법이 곧 마음인 줄을 
法卽是心이라 不可將心更求於心이니  알지 못한다. 
법즉시심   불가장심갱구어심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니
歷千萬劫하야도 終無得日하리라  천만 겁이 지나도 끝내 깨칠 날 없을 것이라.
역천만겁    종무득일 
不如當下無心이니 便是本法이니라  당장에 무심함만 같지 못하니
불여당하무심   갱시본법  그 자리가 본래 법이다.
如力士가 迷額內珠하야  마치 힘센 장사가
여력사  미액내주  자기 이마에 보배 구슬이 있는 줄 모르고
向外求覓하며 周行十方하야도 終不能得이라가  밖으로 찾아 온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며 찾아도
향외구멱   주행시방    종불능득  마침내 얻지 못하다가
智者指之하면 當時에 自見本珠如故하나니  지혜로운 이가 그것을 가르쳐 주면
지자지지   당시  자견본주여고  본래의 구슬은 다름이 없음을 보는 것과 같다.
故로 學道人이 迷自本心하야 不認爲佛하고  도를 배우는 사람도 자기 본 마음이 미혹하여
  학도인  미자본심   불인위불  그것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遂向外求覓하고 起功用行하며 依次第證하나니  밖으로 찾아다니면서 의식적으로 수행하며
수향외구멱   기공용행   의차제증  차례를 밟아 깨달으려 하지만
歷劫勤求하야도 永不成道라  억겁 동안 애써 구한다 해도
역겁근구    영불성도  영원히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不如當下無心이니라  당장에 무심함만 같지 못하니라.
불여당하무심 
決定知一切法이 本無所有하며 亦無所得하며  결정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결정지일체법  본무소유   역무소득     일체의 법이 있다 할 것도 얻었다 할 것도 없고
無依無住하며 無能無所하며  의지할 것도 머무를 것도 없으며
무의무주   무능무소  주관이니 객관이니 할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不動妄念하면 便證菩提니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그 자리가
부동망념   변증보리  바로 깨치는 자리이니
及證道時에는 證本心佛이요  그때 가서는 다만 본래 마음인
급증도시   기증본심불   부처를 깨달을 뿐
歷劫功用은 並是虛修니라  많은 세월을 거친 노력은
역겁공용  병시허수  모두 헛된 수행이다.
如力士得珠時에는 得本額珠요  마치 힘센 장사가 구슬을 얻은 것은
여역사득주시   기득본액주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던 구슬을 얻은 것일 뿐
不關向外求覓之力故로  밖으로 찾아다녔던 노력과는 
불관향괴구멱지력고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佛言 我於阿耨菩提에 實無所得이나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불언 아어아뇩보리  실무소득  실제로는 얻었다 할 것이 없으나
恐人不信故로 引五眼所見과 五語所言하니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공인불신고  인오안소견  오어소언   다섯 눈과 다섯 말로써 끌어다 보였노라.
實不虛라 是第一義諦라하시니라  이것은 진실되어 허망하지 않은 것이니
진실불허  시제일의제  이것이 맨 으뜸되는 뜻의 이치이니라.'고 하셨다.
4. 일체를 여읠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學道人은 莫疑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학도인  막의 
四大로 爲身이나 四大無我하고 我亦無主하니  사대로 자신의 몸을 삼으나 
사대  위신   사대무아   아역무주   사대는 나(我)가 없고 그 나에도 또한 주재가 없으니 
故知此身이 無我亦無主하며  그러므로 이 몸에는 나도 없고 
고지차신  무아역무주  또한 주재(主宰)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五陰으로 爲心이나 五陰이 無我亦無主하니  오음(색수상행식)으로 마음을 삼지만 
오음   위심   오음  무아역무주   이 오음에도 나가 없고 또한 주재도 없으니 
故知此心이 無我亦無主라  그러므로 이 마음도 또한 나도 없고 
고지차심  무아역무주  주인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六根六塵六識이 和合生滅도 亦復如是하니라  육근육진육식이 화합하여 생멸하는 것도
육근육진육식  화합생멸  역부여시  역시 이와 같으니라.
十八界旣空인댄 一切皆空이요  십팔계(육근육진육식)가 이미 공하여
십팔계기공   일체개공  일체가 모두 공하고
唯有本心하야 蕩然淸淨하니라  오직 본래의 마음이 있을 뿐, 
유유본심   탕연청정      텅 비어 청정하니라. 
有識食有智食하니 四大之身은 飢瘡이 爲患이라  분별의 양식'과 '지혜의 양식'이 있으니 
유식식유지식   사대지신  기창  위환   사대로 된 이 몸은 주림과 질병이 근심거리인데 
隨順給養하야 不生貪著을 謂之智食이요  알맞게 영양을 공급하여
수순급양   불생탐착  위지지식  탐착을 내지 않는 것이 '지혜의 양식'이요 
恣情取味하야 妄生分別하며 唯求適口하고  제멋대로 맛을 취해 망령된 분별을 내며 
자정취미   망생분별   유구적구    오직 입에 맞는 것만 구하면서
不生厭離를 謂之識食이니라  싫어하여 버릴 줄을 모르는 것을
불생염리   위지식식  분별의 양식'이라 한다.
聲聞者는 因聲得悟故로 謂之聲聞이니  성문(聲聞)이란 소리를 인하여 
성문자   인성득오고   위지성문  깨달음을 얻는 까닭에 성문이라 하나니 
但不了自心하고 於聲敎上에 起解하며  다만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단불료자심   어성교상  기해  소리(문자)의 가르침 위에서 알음알이를 일으키며 
或因神通하며 或因瑞相言語運動하야  혹은 신통을 인하기도 하며, 
혹인신통   혹인서상언어운동  상서로운 현상의 말과 운동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聞有菩提涅槃하고 三僧祇劫修成佛道하나니  보리와 열반이 있음의 소리를 듣고 
문유보리열반   삼승기겁수성불도  삼아승지겁동안 불도를 닦아서 불도를 이루려 하니 
皆屬聲聞道요 謂之聲聞佛이니라  이것은 다 성문의 도에 속하는 것이며 
개속성문도  위지성문불  그것을 일러 성문불이라 한다.
唯直下에 頓了自心이 本來是佛이라  오직 당장에 자기의 마음이 
유직하  돈료자심  본래시불  본래로 부처임을 단박 깨달으면 될 뿐이다.
無一法可得하며 無一行可修하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고 
무일법가득   무일행가수  한 가지도 더 닦을게 없으면 
此是無上道며 此是眞如佛이니라  이것이 최상의 도이며 
차시무상도  차시진여불  이것이 참으로 여여한 부처이니라. 
學道人이 怕一念有하야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학도인  기파일념유  한 생각 생기는 것만을 두려워하여
卽與道로 隔矣니  곧 도와 멀어지는 것이니
즉여도  격의 
念念無相하며 念念無爲가 卽是佛이니라  생각마다 모양이 없고
념념무상   념념무위  즉시불  생각마다 하염 없음이 곧 부처이다.
學道人이 若欲得成佛인댄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학도인  약욕득성불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一切佛法을 總不用學이요  모든 불법을 다 배울 것이 아니라
일체불법  총불용학 
唯學無求無著이니 無求하면 卽心不生이요  오직 구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음을 배워야 한다.
유학무구무착   무구   즉심불생   구함이 없으면 마음이 나지 않고
無著하면 卽心不滅이라 不生不滅이 卽是佛이니라  집착함이 없으면 마음이 없어지지 않나니
무착   즉심불멸   불생불멸  즉시불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곧 부처이니라.
5. 허공이 곧 법신
八萬四千法門은 對八萬四千煩惱니 팔만사천 법문은 
팔만사천법문  대팔만사천번뇌 팔만사천 번뇌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是敎化接引門이니 本無一切法이라 다만 대중을 교화 인도하는 방편일 뿐
지시교화접인문   본무일체법 본래 일체 법이란 없다.
離卽是法이요 知離者是佛이니라 그러므로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이즉시법   지리자시불 여읠 줄 아는 이가 곧 부처다.
但離一切煩惱하면 是無法可得이니 일체 번뇌를 여의기만 하면
단리일체번뇌   시무법가득 얻을 만한 법이 없으니
學道人이 若欲得知要訣인댄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학도인  약욕득지요결 깨닫는 비결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但莫於心上에 著一物이니라  마음에 어느 것이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단막어심상  착일물
言佛眞法身은 猶若虛空이라하니 此是喩라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언불진법신  유약허공     차시유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法身이 卽虛空이며 虛空이 卽法身이어늘  법신이 곧 허공이며
법신  즉허공   허공  즉법신 허공이 곧 법신인데도
常人은 謂法身이 遍虛空處라 사람들은
상인  위법신  편허공처 법신이 허공계에 두루하여 있다.'고 하면
虛空中에 含容法身이라  허공 가운데 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허공중  함용법신 생각하여
不知法身이 卽虛空이며 虛空이 卽法身也로다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고
부지법신  즉허공   허공  즉법신야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알지 못한다.
若定言有虛空인댄 虛空이 不是法身이요  만약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한다면
약정언유허공   허공  불시법신 허공은 법신이 아니며
若定言有法身인댄 法身이 不是虛空이니   만약 결정코 법신이 있다고 한다면
약정언유법신   법신  불시허공 법신은 허공이 아니다.
但莫作虛空解하라 虛空이 卽法身이며  다만 허공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단막작허공해   허공  즉법신 허공이 곧 법신이니라.
莫作法身解하라 法身이 卽虛空이니라  법신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막작법신해   법신  즉허공 법신이 곧 허공이니라.
虛空與法身이 無異相하며 佛與衆生이 無異相하며  허공과 법신은 다른 모양이 없고
허공여법신  무이상   불여중생  무이상 부처와 중생이 다른 모양이 없으며
生死與涅槃이 無異相하며 煩惱與菩提도 無異相이니  생사와 열반이 다른 모양이 없고
생사여열반  무이상   번뇌여보리  무이상 번뇌와 보리도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
離一切相이 卽是佛이니라  일체의 모양을 여읜 것이 곧 부처이니라.
이일체상  즉시불
凡夫는 取境하고 道人은 取心하나니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범부  취경   도인  취심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을 취하나니
心境雙忘하야사 乃是眞法이니라   마음과 경계를 함께 잊어야만 
심경쌍망    내시진법 이것이 참된 법이다.
忘境은 猶易어니와 忘心은 至難하니  경계를 잊기는 오히려 쉬우나
망경  유이    망심  지난 마음을 잊기란 매우 어렵다.
人不敢忘心은 恐落空無撈摸處하야 사람들이 마음을 감히 잊지 못하는 까닭은
인불감망심  공락공무로모처 공(空)에 떨어져 붙잡을 곳이 없을까 두려워서인데
不知空本無空이니 唯一眞法界이니라   이는 공이 본시 공이라 할 것이 없고 
불지공본무공   유일진법계 오로지 하나의 참된 법계임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此靈覺性이 無始已來로 與虛空同壽하야  이 신령스러운 깨달음의 성품은
차령각성  무시이래  여허공동수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허공과 수명이 같아서
未曾生未曾滅하며 未曾有未曾無하며  한번도 생기거나 없어진 적이 없고
미증생미증멸   미증유미증무 있은 적도 사라진 적도 없으며
未曾穢未曾淨하며 未曾喧未曾寂하며  더럽거나 깨끗한 적도 없고
미증예미증정   미증훤미증적 시끄럽거나 고요한 적도 없으며
未曾少未曾老하며 無方所無內外하며  젊지도 늙지도 않고 
미증소미증노   무방소무내외 방위와 처소도 없으며 안팎의 구분도 없다.
無數量無形相하며 無色像無音聲하며  수량이나 형상도 없고 
무수량무형상   무색상무음성 색상이나 소리도 없다.
不可覓不可求하며 不可以智慧識이며 그러므로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불가멱불가구   불가이지혜식 지혜로써 알 수도 없으며
不可以言語取며 不可以境物會며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불가이언어취  불가이경물회 경계인 사물을 통해서 이해할 수도 없으며
不可以功用到니  또한 힘써 공부한다 해도 도달할 수 없다.
불가이공용도
諸佛菩薩과 與一切蠢動含靈이 同此大涅槃性이니라  모든 불*보살과 일체의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제불보살  여일체준동함령  동차대열반성 똑같이 지닌 대열반의 성품이다.
性卽是心이며 心卽是佛이며 佛卽是法이니  이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이며
성즉시심   심즉시불   불즉시법 부처가 곧 법이니
一念離眞하면 皆爲妄想이니라  한 생각 참됨을 여의면
일념리진   개위망상 모두가 망상이 되느니라.
不可以心으로 更求於心이며 不可以佛로 更求於佛이며  마음으로써 다시 마음을 구하지 말고
불가이심   갱구어심   불가이불  갱구어불 부처를 가지고 다시 부처를 구하지 말 것이며
不可以法으로 更求於法이니  법을 가지고 다시 법을 구하지 말라.
불가이법   갱구어법
故로 學道人이 直下無心하라 默契而已요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학도인  직하무심   묵계이이 당장에 무심하여 묵연히 계합할 뿐이니
擬心卽差니라   마음으로 헤아린다면 곧 어긋나느니라.
의심즉차
以心傳心이 此爲正見이니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는 이것이 바른 견해이니
愼勿向外逐境하며 認境爲心이어다  밖으로 경계를 좇으면서
신물향외축경   인경위심 그것을 마음이라고 잘못 알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是는 認賊爲子니라  이것은 도둑을 제자식으로 잘못 아는 격이다.
  인적위자
爲有貪嗔癡하야 卽立戒定慧니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위유탐진치   즉립계정혜 계*정*혜를 세워 말씀하신 것이데
本無煩惱어늘 焉有菩提리오  애초부터 번뇌가 없다면 
본무번뇌   언유보리 깨달음인들 어디 있겠느냐?
故로 祖師云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사운
佛說一切法이 爲除一切心이라  부처님께서 일체 법을 설하신 것은 
불설일체법  위제일체심 일체의 마음을 없애기 위함이로다.
我無一切心이어니 何用一切法이리오 하니라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늘
아무일체심    하용일체법 일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셨느니라.
本源淸淨佛上에 更不著一物이니  본래 근원이 청정한 부처에다가는
본원청정불상  갱불착일물 다시 어떤 것도 덧붙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譬如虛空이 雖以無量珍寶莊嚴이나 終不能住하며 마치 허공이 수많은 보배구슬로 장엄할지라도
유여허공  수이무량진보장엄   종불능주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다.
佛性이 同虛空이라 雖以無量功德智慧로 莊嚴이나  불성도 허공과 같아서
불성  동허공   수이무량공덕지혜  장엄 비록 무량한 공덕과 지혜로 장엄한다 하여도
終不能住니 但迷本性하야 轉不見이니라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종불능주  단미본성   전불견 다만 본래 성품이 미혹되어 더욱 보지 못할 뿐이다.
所謂心地法門은 萬法이 皆依此心建立일새  이른바 심지법문이란 
소위심지법문  만법  개의차심건립 만법이 이 마음을 의지하여 건립되었으므로
遇境卽有하고 無境卽無라   경계를 만나면 마음이 있고
우경즉유   무경즉무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없는 것이다.
不可於淨性上에 轉作境解니라   따라서 깨끗한 성품 위에다 
불가어정성상  전작경해 경계에 대한 알음알이를 굳이 짓지 말라.
所言定慧는 鑑用이 歷歷하고 寂寂惺惺하며  정혜의 비추는 작용이 역역히 밝고
소언정혜  감용  역역   적적성성 고요하면서도 또렸하다.'든가,
見聞覺知가 皆是境上作解라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는 것은 
견문각지  개시경상작해 모두 경계 위에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니
暫爲中下根人說은 卽得이어니와  이 말은 임시로 중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하여
잠위중하근인설  즉득 설법하는 경우라면 모르되
若欲親證인댄 皆不可作如此見解니라  몸소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약욕친증   개불가작여차견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盡是境縛이라 法有沒處하야 沒於有地니  이것은 모두 경계에 속박되는 것이니
진시경박   법유몰처   몰어유지 법이 빠질 곳이 있어 유견(有見)에 빠진 것이다.
但於一切法에 不作有無見하면 卽見法也니라 일체법에 대해 있다거나 없다는 견해를 짓지 않으면
단어일체법  부작유무견   즉견법야 곧 법을 보는 것이니라.
6. 마음을 잊어버림
九月一日에 師謂休曰   9월 1일 대사께서는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구월일일  사위휴왈
自達摩大師到中國으로 唯說一心이요 唯傳一法이며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신 이후로
자달마대사도중국   유설일심   유전일법 오로지 한 마음만을 설하시고 한 법만을 전하셨다.
以佛傳佛이요 不說餘佛이며  또한 부처로써 부처에게 전하실 뿐
이불전불   불설여불 다른 부처는 말씀하지 않으셨고
以法傳法이요 不說餘法이니  법으로써 법을 전하시고
이법전법   불설여법 다른 법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法卽不可說之法이며 佛卽不可取之佛이요  법이란 설명될 수 없는 법이며
법즉불가설지법   불즉불가취지불 부처란 취할 수 없는 부처로서
乃是本源淸淨心也니  본래 근원이 청정한 마음이다.
내시본원청정심야
唯此一事實이요 餘二則非眞이라  오직 이 일승(一乘)만이 사실이고
유차일사실   여이즉비진 나머지 이승(二乘)은 참됨이 아니다.
般若가 爲慧니 此慧는 卽無相本心也니라  반야는 지혜이며 
반야  위혜  차혜  즉무상본심야 이 지혜는 곧 모양 없는 본래 마음이다.
凡夫는 不趣道하고 唯恣六情하야  범부는 도(道)에 나아가지 않고
범부  불취도   유자육정 단지 육정(六情)만을 함부로 하여 
乃行六道하나니라  이내 육도(六道)에 빠지느니라.
내행육도
學道人이 一念計生死하면 卽落魔道하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생사를 계교하면
학도인  일념계생사   즉락마도 걷 마구니의 길에 떨어지고
一念起諸見하면 卽落外道하고  한 생각 모든 견해를 일으키면
일념기제견   즉락외도 곧 바로 외도에 떨어진다.
見有生趣其滅하면 卽落聲聞道하고  남[生]이 있음을 보고 없어짐[滅]으로 나아가면
견유생취기멸   즉락성문도 곧 성문도(聲聞道)에 떨어지고
不見有生하고 唯見有滅하면 卽落緣覺道니라  남이 있음은 보지 않고 오로지 없어짐만 보면
불견유생   유견유멸   즉락연각도 연각도(緣覺道)에 떨어진다.
法本不生이라 今亦無滅이니  법은 본시 남이 없으므로
법본불생   금역무멸 이제 또한 없어짐도 없으니
不起二見하고 不厭不欣하며  이 두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서
불기이견   불염불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며
一切諸法이 唯是一心이라야 然後에 乃爲佛乘也니라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한 마음이어야만
일체제법  유시일심    연후  내위불승야 그런 다음에 불승(佛乘)이 된다.
凡夫는 皆逐境生心하야 心遂欣厭하나니  범부는 모두가 경계를 좇아 마음을 내기에 
범부  개축경생심   심수흔염 좋고 싫음이 있는 것이니
若欲無境인댄 當忘其心이니   만약 경계가 없기를 바란다면
약욕무경   당망기심 마땅히 그 마음을 잊어야 하고
心忘하면 卽境空하고 境空하면 卽心滅이니라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텅 비며
심망   즉경공   경공   즉심멸 경계가 공적하면 곧 마음이 없어지느니라.
若不忘心而但除境하면  만약 마음을 잊지 못하고 
약불망심이단제경 경계만 없애려 한다면
境不可除요 益紛擾하나니   경계는 없어지지 않고 
경불가제  지익분요 오히려 분잡만 더 할 뿐이다.
故로 萬法이 唯心이요 心亦不可得이니  그러므로 만법은 오직 마음일 뿐이며
  만법  유심   심역불가득 그 마음조차도 얻을 수 없는데
復何求哉아  다시 무엇을 구하겠느냐?
부하구재
學般若人이 不見有一法可得하면  반야를 배우는 사람이
학반야인  불견유일법가득 얻을 만한 어떤 법도 없는 줄 알게 되면
絶意三乘이요 唯一眞實이라  삼승에는 뜻이 끊어져
절의삼승   유일진실 오직 하나의 진실뿐이다.
不可證得이어늘 謂我能證能得이라하면  증득하여 깨달았다고 할 것이 없는 자리인데도
불가증득     위아능증능득 나는 깨달았노라'고 한다면
皆增上慢人이니라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내는 사람이다.
개증상만인
法華會上에 拂衣而去者가 皆斯徒也라  「법화경」회상에서 옷을 떨치고 나가버린 사람들이
법화회상  불의이거자  개사도야 모두가 이러한 무리들이다.
故로 佛言 我於菩提에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언 아어보리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實無所得이라하시니 默契而已니라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다.' 하셨으니
실무소득      묵계이이 그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니라.
凡人이 臨欲終時에 但觀五蘊皆空하고 범부 중생들은 죽을 때에
범인  임욕종시  단관오온개공 오온(五蘊)이 모조리 비고
四大無我니 眞心無相하야 不去不來라  사대(四大)는 나[我]가 없음을 보지만
사대무아  진심무상   불거불래 참된 마음은 모양이 없어서 가지도 오지도 않는다.
生時에도 性亦不來하며 死時에도 性亦不去라  태어났다 해서 성품이 오는 것이 아니고
생시   성역불래   사시   성역불거 죽었다 해서 성품이 가는 것이 아니다.
湛然圓寂하야 心境一如니   담연히 둥글고 고요하여
담연원적   심경일여 마음과 경계가 한결같다.
但能如是하면 直下頓了라  오직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단능여시   직하돈료 그 자리에서 단박 깨쳐
不爲三世所拘繫니 便是出世人也니라  삼세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니
불위삼세소구계  변시출세인야 곧 세간을 뛰어 넘은 사람이다.
切不得有分毫趣向이니  털끝만큼이라도 나아가는 방향이 있어서는
절부득유분호취향 절대 안된다.
若見善相인 諸佛來迎과    만약 모든 부처님께서 
약견선상  제불래영 맞이해 주시는 것 같은
及種種現前이라도 亦無心隨去하며 가지가지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될지라도
급종종현전    역무심수거 또한 마음이 따라감이 없어야 하며
若見惡相種種現前이라도 亦無心怖畏니 만약 가지가지 악한 형상이 나타나더라도 
약견악상종종현전    역무심포외 역시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但自忘心하야 同於法界하면 다만 스스로 마음을 잊고서
단자망심   동어법계 법계와 같아지면
便得自在라 此卽是要節也니라 바로 자재(自在)를 얻은 것이니
변득자재  차즉시요절야 이것이 곧 요긴한 대목이니라.
7. 법(法)은 무생(無生)
十月八日에 師謂休曰  10월 8일 대사께서는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시월팔일  사위휴왈
言化城者는 二乘及十地等覺妙覺이니   "화성(化城; 법화경의 화성유품)이란 
언화성자  이승급십지등각묘각 이승(二乘) 및 십지*등각*묘각을 말한 것이다.
皆是權立接引之敎라  이것은 모두 중생을 이끌어 주기 위한 
개시권립접인지교   방편으로 세운 가르침이므로
並爲化城이요   글자 그대로 모두 변화하여 보인 성곽이다.
병위화성
言寶所者는 乃眞心本佛이며 自性之寶라    보배가 있는 곳이란 다름 아닌 참된 마음으로서의 
언보소자  내진심본불   자성지보 본래 부처이며 자기 성품의 보배를 말한다.
此寶는 不屬情量이니 不可建立이니라  이 보배는 사량분별에 속하지 않으니
차보  불속정량   불가건립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
無佛無衆生하며 無能無所하니 何處有城이리오   부처도 중생도 없으며, 주관도 객관도 없으니 
무불무중생   무눙무소   하처유성 어느 곳에 성(城)이 있겠느냐?
若問此旣是化城인댄 何處가 爲寶所오하면   만약 이곳을 화성이라 한다면 
약문차기시화성   하처  위보소 어느 곳이 보배가 있는 곳인가? 하고 묻는다면
寶所는 不可指니 指卽有方所라  보배가 있는 곳이란 가리킬 수 없는 것인데
보소  불가지  지즉유방소 가리킨다면 곧 방위와 처소가 있게 되므로
非眞寶所也니라 참으로 보배가 있는 곳이 될 수 없다.
비진보소야
故云 在近而已요  그래서 경에서도 말씀하시기를
고운 재근이이 가까이 있다.'고만 하였을 뿐이다.
不可定量言之니 但當體를 會契之하면 卽是니라   그것을 얼마라고 한정할 수 없는 것이니
불가정량언지  단당체  회계지   즉시 오로지 그 자체에 계합하여 알면 되는 것이다.
言闡提者는 信不具也니  천제(闡提)란 
언천제자  신불구야 믿음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一切六道衆生과 乃至二乘은 不信有佛果하니  육도의 모든 중생들과 이승(二乘)들은 
일체육도중생  내지이승  불신유불과 부처님의 과[佛果]가 있음을 믿지 않으니
皆謂之斷善根闡提요  그들을 모두 선근(善根)이 끊긴 천제라 한다.
개위지단선근천제
菩薩者는 深信有佛法하고 不見有大乘小乘하며  보살이란 불법이 있음을 굳게 믿고
보살자  심신유불법   불견유대승소승 대승*소승을 차별하지 않으며
佛與衆生이 同一法性이니 乃謂之善根闡提니라  부처와 중생을 같은 법성으로 본다.
불여중생  동일법성   내위지선근천제 이들을 가리켜 선근이 있는 천제라 한다.
大抵因聲敎而悟者를 謂之聲聞이요  대개 부처님의 설법[聲敎]을 듣고
대저인성교이오자  위지성문 깨닫는 사람을 성문(聲聞)이라 하고
觀因緣而悟者를 謂之緣覺이니  인연을 관찰하여 깨닫는 사람을 
관인연이오자  위지연각 연각(緣覺)이라 한다.
若不向自心中悟하면 雖至成佛이라도  그러나 자기 마음 속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약불향자심중오   수지성불 비록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亦謂之聲聞佛이니라   역시 성문불이라 한다.
역위지성문불
學道人이 多於敎法上에 悟하고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학도인  다어교법상  교법(敎法)에 있어서는 깨닫는 것이 많으나
不於心法上에 悟하나니  마음법[心法]에 있어서는 깨닫지 못하는데
불어심법상 
雖歷劫修行이라도 終不是本佛이니라  이렇게 하면 비록 겁을 지나도록 수행을 한다 해도
수력겁수행    종불시본불 마침내 본래의 부처는 아니니라.
若不於心에 悟하고 乃至於敎法上에 悟하면  만약 마음에서 깨닫지 못하고
약불어심     내지어교법상  교법에서 깨닫는다면
卽輕心重敎하야 遂成逐塊하고  마음은 가벼이 여기고 가르침만 중히 여겨
즉경심중교   수성축괴 흙덩이나 쫓는 개 꼴이 되고 말 것이다.
忘於本心故로 但契本心이요  이것은 본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망어본심고  단계본심 본래 마음에 계합하면 될 뿐
不用求法이니 心卽法也니라  법을 구할 필요가 없으니
불용구법   심즉법야 마음이 곧 법이라는 것이다.
凡人이 多爲境礙心事礙理하야   대개의 사람들은 경계가 마음을 가로막고 
범인  다위경애심사애리 현상이 본체를 흐리게 하여
常欲逃境以安心하며 事以存理하고  의례껏 경계로부터 도망쳐 마음을 편히 하려 하고
상욕도경이안심   병사이존리 현상[事]을 물리쳐서 본체[理]를 보존하려 한다.
不知乃是心礙境理礙事로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이 경계를 막고
부지내시심애경리애사 본체가 현상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但令心空하면 境自空이요 但令理寂하면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경계는 저절로 비고
단령심공   경자공   단령리적 본체를 고요하게만 하면 
事自寂이니 勿倒用心也니라   현상은 저절로 고요해지므로 
사자적   물도용심야 거꾸로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凡人의 多不肯空心은 恐落於空이요  사람들이 보통 마음을 비우려 들지 않는 까닭은
범인  다불긍공심  공락어공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인데
不知自心本空이니라  자기의 마음이 본시 비었음을 모르는 것이다.
부지자심본공
愚人은 除事不除心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경우에는
우인  제사부제심 경계는 없애려 하나 마음은 없애려 하지 않는다.
智者는 除心不除事하며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지자  제심부제사 마음을 없애고 경계를 없애지 아니하며
菩薩은 心如虛空하야 一切俱捨하며  보살은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보살  심여허공   일체구사 모든 것을 다 버리고 
所作福德을 皆不貪著이니라  자기가 지은 복덕마저도 탐착하지 않는다.
소작복덕  개불탐착
然이나 捨有三等하니  그러나 이 버림에는 세 등급이 있으니
   사유삼등
內外身心을 一切俱捨하야 猶如虛空하며 안팎의 몸과 마음을 모두 버려서
내외신심  일체구사   유여허공 오히려 허공과 같고
無所取著然後에 隨方應物하며  어디에고 집착하지 않은 연후에
무소취착연후  수방응물 곳에 따라 사물에 대응하며
能所皆忘이 是爲大捨요    능히 있는바 모두를 잊는 것이
능소개망  시위대사 큰 버림[大捨]'이다.
若一邊行道布德하며 一邊旋捨하야    만약 한편으로 도를 행하고 덕을 펴면서
약일변행도보덕   일변시사 한편으로는 보시하여 버리고
無希望心이 是爲中捨요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무희망심  시위중사 이것이 '중간의 버림[中捨]'이다.
若廣修衆善하야 有所希望이라가   착한 일을 널리 행하면서도 
약광수중선   유소희망 바라는 바를 지니고 있다가
聞法知空하야 遂乃不著이 是爲小捨니   법을 듣고서는 공(空)인 줄을 알고
문법지공   수내불착  시위소사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작은 버림[小捨]'이다.
大捨는 如火燭在前하야 更無迷悟요  큰 버림은 마치 촛불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아서
대사  여화촉재전   갱무미오 더 미혹될 것도 깨달을 것도 없으며
中捨는 如火燭在傍하야 或明或暗하며     중간 버림은 촛불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중사  여화촉재방   혹명혹암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小捨는 如火燭在後하야 不見坑하나니  작은 버림은 마치 촛불이 등 뒤에 있는 것 같아서
소사  여화촉재후   불견갱정 눈앞의 구덩이나 함정을 보지 못한다.
故로 菩薩은 心如虛空하야 一切俱捨라   그러므로 보살의 마음은 
  보살  심여허공   일체구사 허공과 같아서 일체를 다 버린다.
過去心不可得이 是過去捨니  과거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이
과거심불가득  시과거사 과거를 버린 것이고
現在心不可得이 是現在捨요  현재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이
현재심불가득  시현재사 현재를 버린 것이며
未來心不可得이 是未來捨니  미래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이
미래심불가득  시미래사 미래를 버린 것이니
所謂三世俱捨니라   이른바 삼세를 함께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소위삼세구사
自如來付法迦葉已來로 以心印心이니    여래께서 가섭에게 법을 부촉하실 때로부터
자여래부법가섭이래  이심인심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였으니
心心不異니라   마음과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
심심불이
印著空하면 卽印不成文이요   허공에다 도장을 찍으면
인착공   즉인불성문 아무 문양이 찍히지 않고
印著物하면 卽印不成法故로  그렇다고 물건에다 도장을 찍으면
인착물   즉인불성법고 법을 이루지 못한다.
以心印心이니 心心不異니라   그러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에 새기는 것이니
이심인심   심심불이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다.
能印所印을 俱難契會故로 得者少나   새김[能]과 새겨짐[所]이 함께 계합하기란 
능인소인  구난계회고  득자소 매우 어려워서 그것을 얻은 사람은 매우 적다.
然이나 心卽無心이요 得卽無得이니라  그러나 마음은 마음 없음을 말하는 것이요
   심즉무심   득즉무득 얻음도 얻었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佛有三身하니 法身은 說自性虛通法이요   부처에는 세 몸[三身]이 있는데
불유삼신   법신  설자성허통법 법신은 자성의 허통(虛通)한 법을
報身은 說一切淸淨法이요 化身은 說六度萬行法이니  보신은 일체 청정한 법을
보신  설일체청정법   화신  설육도만행법 화신은 육도만행법을 말한다.
法身說法은 不可以言語音聲과 形相文字而求며  법신의 설법은 
법신설법  불가이언어음성  형상문자이구 언어*음성*형상*문자로써 구할 수 없으며
無所說無所證이요 自性虛通而已라   설할 바도 없고 증득할 바도 없이
무소설무소증   자성호통이이 자성이 허통(虛通)할 뿐이다.
故로 曰 無法可說이 是名說法이라하나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한 법도 설할 만한
  왈 무법가설  시명설법 법이 없음을 설법이라 이름한다'고 하셨다.
報身化身은 皆隨機感現하며  보신이나 화신은 
보신화신  개수기감현 근기에 따라 감응하여 나타나고
所說法도 亦隨事應根하야  설하는 법 또한 
소설법  역수사응근 현상에 따르고 근기에 알맞게 
以爲攝化하니 皆非眞法이라   섭수하여 교화하는 것이므로
이위섭화   개비진법 이 모두는 참다운 법이 아니다.
故로 曰 報化는 非眞佛이며 亦非說法者라하나니라   그러므로 '보신*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며
  왈 보화  비진불   역비설법자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신 것이다.
所言同是一精明이 分爲六和合이니  이른바 밝고 정밀한 성품인 일정명(一精明)이 
소언동시일정명  분위육화합 나뉘어 육화합(六和合)이 된다고 하였다.
一精明者는 一心也요 六和合者는 六根也라  일정명이란 바로 한 마음이요
일정명자  일심야  육화합자  육근야 육화합이란 육근(六根)이다.
此六根이 各與塵合이니 眼與色合하고 耳與聲合하며  이 육근은 각기 육진(六塵)과 합하는데
차육근  각여진합   안여색합   이여성합 눈은 색과, 귀는 소리와,
鼻與香合하며 舌與味合하며 意與法合하야      코는 냄새와, 혀는 맛과, 몸은 촉감과,
비여향합   설여미합   의여법합 뜻은 법과 제각기 합한다.
中間에 生六識하야 爲十八界하나니  그런 가운데 육식(六識)을 내어
중간  생육식   위십팔계 십팔계(十八界)가 된다.
若了十八界無所有하면   만약 이 십팔계가 
약료십팔계무소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
束六和合하야 爲一精明이니라   육화합이 하나로 묶이어 일정명이 된다.
속육화합   위일정명
一精明者는 卽心也니  일정명이란 곧 마음이다.
일정명자  즉심야
學道人이 皆知此하되   그런데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학도인  개지차 이것을 모두 알면서도
但不能免作一精明六和合解하야   일정명과 육화합에 대해
단불능면작일정명육화합해 알음알이만을 지어서
遂被法縛하야 不契本心이니라  마침내는 교설에 묶이어 
수피법박   불계본심 본래 마음에 계합치 못하는 것이다.
如來現世하사 欲說一乘眞法則  여래께서는 세간에 나타나시어
여래현세   욕설일승진법칙 일승의 참된 법을 말씀하시려 하셨으나
衆生이 不信興謗하야 沒於苦海요   중생들은 부처님을 믿지 아니하고 비방하여
중생  불신여방   몰어고해 고통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이며
若都不說則 墮慳貪하야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약도불설즉 타간탐 설법에 인색한 간탐(慳貪)에 떨어져서
不爲衆生이라하사 溥捨妙道하시고    중생을 위하는 것이 못된다고 하시사
불위중생     부사묘도 현묘한 도를 널리 베푸시고
遂設方便하사 說有三乘하며  방편을 세워 삼승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수설방편   설유상승
乘有大小하며 得有淺深이  그래서 대승과 소승의 방편이 생겼고
승유대소   득유잔심 깨달음에도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게 되었으나
皆非本法이라  이것은 모두 근본 법이 아니다.
개비본법
故云 唯有一乘道요 餘二則非眞이라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일승의 도가 있을 뿐
고운 유유일승도  여이즉비진 나머지 둘은 참된 것이 아니다.'고 하셨다.
然이나 終未能顯一心法故로   그러나 마침내는 한 마음의 법[一心法]을 
   종미능현일심법고 나타내지 못하셨기 때문에
召迦葉同法座하사 別付一心하시니  가섭을 불러 법좌를 함께 하시사
소가섭동법좌   별부일심 따로이 그 '한 마음'을 부촉하셨으니
離言說法이라  이는 언설(言說)을 떠난 법이다.
이언설법
此一枝法이 今別行하니   이 한 가닥의 법이 
차일지법  금별행 지금 따로이 행해지는데
若能契悟者는 便至佛地矣니라   만약 계합하여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약능계오자  변지불지의 그 즉시 부처님 지위에 오르느니라."
8. 도를 닦는다는 것
問 如何是道며 如何修行이닛고  배휴가 물었다.
문 여하시도  여하수행 "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가?"
師云 道是何物이관대 汝欲修行고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운 도시하물    여욕수행 "도가 무슨 물건이길래 수행하려 하느냐?"
問 諸方宗師相承하야 參禪學道는 如何닛고  "그렇다면 제방의 종사가 서로 이어받아
문 제방종사상승   참선학도  여하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師云 引接鈍根人語니 未可依憑이니라  "둔근기(鈍根機)를 이끌어 주는 말이니
사운 이접둔근인어  미가의빙 의지할 것이 못되느니라."
云 此卽是引接鈍根人語인댄 未審커라  "그것이 둔근기를 위한 말이라고 하신다면
운 차즉시인접둔근인어   미심
接上根人인댄 復說何法이닛고 상근기(上根機)를 위해서는 
접상근인   부설하법 무슨 법을 설하십니까?"
師云 若是上根人인댄 何處에 更就人覓이리오  "만약 상근기라면 
사운 약시상근인   하처  갱취인멱 어디 남에게서 찾으려 하겠느냐?"
他自己도 尙不可得이온 何況更別有法當情이리오   저 자신마저도 얻지 못하거늘 
타자기  상불가득   하황갱별유법당정 더구나 따로 뜻에 합당한 법이 어디 있겠느냐?"
不見가 敎中에 云하되 法法何狀고하니라  법이란 법이 무슨 모양이더냐?'고 한 
불견  교중     법법하상 경(經)의 말씀을 보지 못했느냐?"
云 若如此則 都不要求覓也닛가  "그렇다면 도무지 구하여 찾을 필요가
운 약여차즉 도불요구멱야 없다는 말씀입니까?"
師云 若與麽則省心力이니라  "그렇게만 된다면 마음의 힘이 
사운 약여마즉성심력 덜어지는 것이니라."
云 如是則 渾成斷絶하야 不可是無也니다  "그렇다면 온통 끊어져 버려서
운 여시즉 혼성단절   불가시무야 없다는 것'도 가당치 않겠습니다."
師云 阿誰敎他無며 他是阿誰관대 爾擬覓他오  "누가 그것을 없다 하였으며
사운 아수교타무  타시아수   이의멱타 또 그것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너는 찾으려 하느냐?"
云 旣不許覓인댄 何故로 又言莫斷他닛고  "스님께서는 이미 찾는 것을 허락치 않으시고는
운 기불허멱   하고  우언막단타 어찌하여 그것을 끊지도 말라 하십니까?"
師云 若不覓이면  便休어늘 卽誰敎爾斷이리오 "찾지 않으면 그 자리는 바로 '쉼'인데
사운 약불멱   변휴   즉수교이단 누가 너더러 끊으라 하였느냐?
爾見目前虛空하라 作麽生斷他오  눈앞의 허공을 보아라.
이견목전허공   작마생단타 어떻게 저것을 끊겠느냐?"
云 此法은 可得便同虛空否닛가  "이 법은 곧 허공과 같이 될 수 있습니까?"
운 차법  가득변동허공부
師云 虛空이 早晩에 向爾道有同有異아  "허공이 언제 너더러 같다거나
사운 허공  조만  향이도유동유이 다르다고 말하더냐?
我暫如此說하니 爾便向者裏生解로다  내 잠시 이렇게 말하니
아잠여차설   이변향자이생해 너는 당장 여기에서 알음알이를 내는구나."
云 應是不與人生解耶닛가  "사람들로 더불어 알음알이를 내지 않음이
운 응시불여인생해야 마땅한 것입니까?"
師云 我不曾障爾어니와  "내 너를 방해한 적은 한 번도 없거니와
사운 아부증장이
要且解屬於情이니 情生則智隔이니라  요컨대 알음알이란 뜻[情]에 속한 것으로서
요차해속어정   정생즉지격 뜻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게 되느니라."
云 向者裏하야 莫生情이 是否닛가  "여기에 있어서 뜻을 내지 않는 것이
운 향자이   막생정  시부 옳은 것입니까?"
師云 若不生情이면 阿誰道是리오  "뜻을 내지 않는다면 
사운 약불생정   아수도시 누가 옳다고 말하겠느냐?"
9. 말에 떨어지다
問 纔向和尙處發言하면 爲甚麽便言話墮닛고 "스님께서는 제가 한 말씀이라도 드리기만 하면
문 재향화상처발언   위심마변언화타 어찌해서 바로 말에 떨어진다[話墮]고 하십니까?"
師云 汝自是不解語人이어늘 有甚麽墮負리오  "네 스스로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거늘 
사운 여자시불해어인    유심마타부 무슨 잘못에 떨어짐이 있겠느냐?"
10. 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問 向來如許多言說은 皆是抵敵語라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허다한 언설들이
문 향래여허다언설  개시저적어 모두 방편으로 대꾸한 것들이어서
都未曾有實法指示於人이니다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신 실다운 법이란
도미증유실법지시어인 도무지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師云 實法은 無顚倒어늘 汝今問處에 自生顚倒로다   "실다운 법이란 전도됨이 없거늘 
사운 실법  무전도   여금문처  자생전도 네 지금 묻는 곳에서 스스로 전도되고 있느니라.
覓甚麽實法고        그러면서 무슨 실다운 법을 찾는다는 말이냐?"
멱심마실법
云 旣是問處에 自生顚倒인댄 和答處如何닛고   "묻는 곳에서 이미 스스로 전도된 것이라면 
운 기시문처  자생전도   화상답처여하 스님께서 대답하신 곳은 어떠하십니까?"
師云 爾且將物照面看이언정 莫管他人하라   "사물을 통해 자신을 비춰볼지언정 
사운 이차장물조면간    막관타인 남의 일에는 상관할 것 없다."
又云 如箇癡狗相似하야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우운 지여개치구상사 "어리석은 개와도 같아서
見物動處하고 便吠하니   물건을 보기만 하면
견물동처   변폐 문득 짖어대니
風吹草木으로 也不別이로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풍취초목   야불별 뭐 별다를 게 있겠느냐?"
又云 我此禪宗은 從上相承已來로  또 말씀하셨다. "우리의 이 선종은
우운 아차선종  종상상승이래 위로부터 이제껏 이어내려 오면서
不曾敎人求知求解요   알음알이[知解]를 구하게 한 적이 없었다.
부증교인구지구해
只云學道라 早是接引之詞라   오로지 도를 배우라고 말했지만
지운학도  조시접인지사 사실 이것도 교화하는 방편설이니라.
然이나 道亦不可學이니 情存學解하면  그러니 도 또한 배울 수 없는 것으로서
   도역불가학   정존학해 뜻을 두고 알음알이를 배우게 되면 
卻成迷道하니라  도에는 도리어 미혹하게 된다.
각성미도
道無方所를 名大乘心이라   도에 일정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을
도무방소  명대승심 이름하여 대승의 마음[大乘心]이라고 하느니라.
此心은 不在內外中間하며  이 마음은 안팎, 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차심  부재내외중간
實無方所하니 第一不得作知解어다   실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이니
실무방소   제일부득작지해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只是說汝는 如今情量盡處爲道니   지금까지 너에게 말한 것은 뜻으로 헤아림이
지시설여  여금정량진처위도 다해버린 바로 그 자리가 도라는 것이다.
情量이 若盡하면 心無方所하니라   뜻으로 헤아림이 다하면 
정량  약진   심무방소 마음에는 방위도 처소도 없느니라.
此道는 天眞이라 本無名字이언마는  이 도라는 것은 천진하여 
차도  천진   본무명자 본래 이름이 없다.
只爲世人이 不識하야 迷在情中일새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지위세인  불식   미재정중 뜻으로 헤아리는데 미혹되었으므로
所以로 諸佛이 出來하사 說破此事하사와  모든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소이  제불  출래   설파차사 이 일을 자상히 말씀하시고
恐汝諸人不了하야 權立道名이라하시니  너희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셔서
공여제인불료   권립도명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不可守名而生解故로  이름에 얽메어 
불가수명이생해고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되는 까닭에
云 得魚忘筌이라하니라  말씀하시기를 '고기를 잡았거든 
운 득어망전 통발을 잊어 버려라'고 하신 것이다.
身心이 自然達道하고 識心達本源故로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달하고
신심  자연달도   식심달본원고 마음을 알아 본래의 근원에 통달한 이를 
號爲沙門이니  사문(沙門)이라 부른다.
호위사문
沙門果者는 息慮而成이요 不從學得이니  사문이라는 자리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는 것이지
사문과자  삭려이성 부종학득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닌데
汝如今將心求心하며 傍他家舍하야  너희들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하면서
여여금장심구심   방타가사 남의 집에 세살이 하듯
擬學取하니 有甚得時리요  배워서 얻으려 하니
지의학취   유심마득시 어느 때에 얻을 수가 있겠느냐?
古人은 心利하야 纔聞一言하면 便乃學하나니   예 사람들은 영민하여 
고인  심리   재문일언   변내절학 한 말씀 들으면 당장에 배움을 끊었다.
所以로 喚作絶學無爲閒道人이니라  그래서 그들을 '배울 것이 끊어진 
소이  환작절학무위한도인 하릴 없는 한가로운 도인'이라고 했다.
今時人은 只欲得多知多解하며   반면 지금 사람들은 
금시인  지욕득다지다해 다만 하많은 알음알이를 구하고
廣求文義하야 喚作修行하고   널리 글의 뜻을 캐면서
광구문의   환작수행 그것을 수행이라고 하지만
不知多知多解가 翻成壅塞이로다  넓은 지식과 견해 때문에
부지다지다해  번성옹색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唯知多與兒酥乳喫하고   이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유지다여아소유끽 젖만 많이 먹일 줄만 알고
消與不消를 都總不知하나니   소화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소여불소  도총부지 도통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니라.
三乘學道人이 皆是此樣이라 盡名食不消者니라  삼승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다 이 모양이라
삼승학도인  개시차양   진명식불소자 모두 '먹고 소화시키지 못한 자'라고 부르느니라.
所謂知解不消하면 皆毒藥이니   이른바 알음알이가 녹아내리지 않으면
소위지해불소   개위독약 모두가 독약이 된다는 것이니
盡向生滅中取요 眞如之中에는 都無此事하니   이것은 모두 생멸의 측면에서나 있는 것이지
진향생멸중취  진여지중   도무차사 진여의 측면에서는 도무지 없는 일이니라.
故云 我王庫內에 無如是刀라하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나의 왕궁 곳간에는
고운 아왕고내  무여시도 이러한 칼은 없다.'고 하였다.
從前所有一切解處를 盡須卻令空하고   이제껏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종전소유일체해처  진수병각령공 깨끗이 비워 버리고
更無分別하면 即是空如來藏이니라   거기에 어떠한 분별도 없다면 
갱무분별   즉시공여래장 곧 그것이 공여래장(空如來藏)이니라.
如來藏者는 更無纖塵可有니   이 여래장에는 
여래장자  갱무섬진가유 한 티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니
卽是破有法王이 出現世間이니라  이는 곧 '있음을 부수는 법왕이
즉시파유법왕  출현세간 세간에 출현하심' 바로 그것이니라.
亦云 我於燃燈佛所에 無少法可得이라하시니   또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역운 아어연등불소  무소법가득 조금이라도 얻었다 할 법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此語는 只爲空爾情量이라  이 말씀은 오로지 사람들의 알음알이를
차어  지위공이정량 비우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
知解但銷鎔하고 表裏情盡하야   그러므로 알음알이가 녹아지고
지해단소용   표리정진 안팎으로 뜻[情]이 다하여 
都無依執하면 是無事人이니라   어디에고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다면
도무의집   시무사인 이런 이는 일 없는 사람이니라.
三乘敎網은 是應機之藥이라   그물같은 삼승의 가르침은 
삼승교망  지시응기지약 근기에 따라 치료하는 약이어서
隨宜所說이요 臨時施設이라 各各不同하니  편의에 따라 말씀해 주신 것이요
수의소설   임시시설   각각부동 때에 맞춰 시설하신 것이므로 각각 말씀이 다르니
但能了知하면 即不被惑이니라   다만 요달하여 알기만 하면 
단능료지   즉불피혹 미혹되지 않느니라.
第一不得於一機一敎邊에 守文作解니   무엇보다도 한 근기를 대상으로 하신 말씀에 
제일부득어일기일교변  수문작해 글자에 얽매어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何以如此오 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라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실로 여래께서 
하이여차  실무유정법여래가설 말씀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我此宗門은 不論此事니  우리의 이 선종은 
아차종문  불론차사 이런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니
但知息心即休요 更不用思前慮後니라   다만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요
단지식심즉휴  갱불용사전려후 다시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11. 卽心是佛 11. 마음이 곧 부처
問 從上來로 皆云 卽心是佛이라하니   배휴가 물었다. 
문 종상래  개운 즉심시불 예로부터 마음이 곧 부처라고들 하는데, 
未審커라 卽那箇心이 是佛이닛고  어느 마음이 부처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미심   즉아개심  시불
師云 爾有幾箇心고  "너는 몇 개의 마음을 가졌느냐?"
사운 이유기개심
云 爲復卽凡心이 是佛이닛가 卽聖心이 是佛이닛가  "그렇다면 범부에 즉(卽)한 마음이 부처입니까,
운 위부즉범심  시불    즉성심  시불 아니면 성인에 즉(卽)한 마음이 부처입니까?"
師云 爾何處에 有凡聖心耶아  "어느 곳에 범·성(凡·聖)의 마음이 있느냐?"
사운 이하처  유범성심야
云 卽今三乘中에 說有凡聖이어늘 和尙은 何得言無닛고  "조금 전에 3승 가운데서 범·성을 말씀하셨는데,
운 즉금삼승중  설유범성    화상  하득언무 스님께서는 어찌해서 그것이 없다 하십니까?"
師云 三乘中에 分明向爾道하되 凡聖心이 是妄이라하였거늘  "3성을 말하는 가운데 분명 너에게 
사운 삼승중  분명향이도   범성심  시망 범·성의 마음이 허망하다'고 하였는데도 
爾今不解하고 返執爲有하며 將空作實하니  너는 지금 알지 못하고 아직 '있다'고 집착하여
이금불해   반집위유   장공작실 공허한 것을 무언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豈不是妄이리오 어찌 허망되지 않겠느냐?
개불시망
妄故로 迷心이니 汝但除卻凡情聖境하면 허망하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되는 것이니
망고  미심   여단제각범정성경 네 만약 범부의 뜻과 성인의 경계를 없애기만 한다면
心外에 更無別佛이니라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느니라.
심외  갱무별불
祖師西來하사 直指一切人全體是佛이어늘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조사서래   직지일체인전체시불 모든 사람이 다 부처임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汝今不識하고 執凡執聖하며 向外馳騁하야 너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여금불식   집범집성   향외치빙 범·성을 집착하고 마음을 밖으로 내달리며
還自迷心하니 도리어 스스로 마음을 미혹시키고 있다.
환자미심
所以로 向汝道하되 卽心是佛이라하노니 그래서 너희에게 말하기를
소이  향여도   즉심시불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고 하였으니
一念情生하면 卽墮異趣하니라  한 생각 뜻이 생기면 
일념정생   즉추이취 곧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된다.
無始已來로 不異今日하야 無有異法하나니  시작 없는 때로부터 오늘과 한결같이 다르지 않아
무시이래  불이금일   무유이법 어떠한 다른 법이 없었으니,
故로 名成等正覺이니라  그러므로 일컬어 '정등각을 성취했다' 하느니라."
  명성등정각
云 和尙所言卽者는 是何道理닛고  "스님께서 말씀하신 '곧 그대로(卽)'라 함은 
운 화상소언즉자  시하도리 무슨 도리입니까?"
師云 覓什道理오  "너는 무슨 도리를 찾는 것이냐?
사운 멱삽마도리
纔有道理하면 便卽心異니라  어떤 도리라도 있기만 하면 
재유도리   갱즉심이 바로 곧 본래의 마음과는 달라지느니라."
云 前言無始已來로 不異今日이라하니  "앞서 말씀하신 '시작 없는 때로부터 
운 전언무시이래  불이금일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르지 않다'고 하신
此理如何닛고  이치는 무엇입니까?"
차리여하
師云 祇爲覓故로 汝自異他니 汝若不覓하면 何處有異리오  "찾기 때문에 네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니
사운 지위멱고  여자이타  여약불멱   하처유이 네 만약 찾지 않는다면 어디에 다를 것이 있겠느냐?"
云 旣是不異인댄 何更用說卽이리오 "이미 다르지 않다면, 굳이 '곧 그대로'라고
운 기시불이   하갱용설즉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師云 汝若不認凡聖이면 阿誰向汝道卽이리오   "네 만약 범·성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사운 여약불인범성   아수향여도즉 누가 너에게 굳이 '곧 그대로'라는 말을 하겠느냐?
卽若不卽이면 心亦不心이니 곧 그대로'가 '곧 그대로'가 아니라면,
즉약불즉   심역불심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닌 것이니,
可中에 心卽을 俱忘하면 阿爾便擬向何處覓去리오   그런 가운데 마음과 '곧 그대로'라는 것을 다 잊으면, 
가중  심즉  구망   아이변의향하처멱거 네가 더 이상 무엇을 찾겠느냐?"
12. 以心傳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다
問 妄能障自心이라하니 未審커라 而今에 以何遣妄이닛고  "망념이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는다는데
문 망능장자심     미심   이금  이하견망  무엇으로써 망념을 없애야 합니까?"
師云 起妄遣妄이 亦成妄이라  "망념을 일으키고 그것을 없애는 것 또한 
사운 기망견망  역성망 망념이 되느니라.
妄本無根이언마는 祇因分別而有니   망념은 본래 뿌리가 없지만,
망본무근     지인분별이유 다만 분별 때문에 생긴다.
爾但於凡聖兩處에 情盡하면 네가 다만 범·성의 두 곳에 
이단어범성양처  정진 생각이 다할 것 같으면
自然無妄이니 更擬若爲遣他리오  자연 망념은 없어지는 것이니
자연무망   갱의약위견타 다시 그것을 어떻게 떨쳐 버리겠느냐?
都不得有纖毫依執이 名爲我捨兩臂하야사 털끝만큼도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으면 
조부득유섬호의집  명위아사양비 이른바 '내가 두 팔을 다 버렸으니
必當得佛이니라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고 한 것이 되느니라."
필당득불
云 旣無依執인댄 當何相承이닛고 "이미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다면 
운 기무의집   당하상승 어떻게 역대 조사들께서는 서로 이어받았습니까?
師云 以心傳心이니라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느니라."
사운 이심전심
云 若心相傳인댄 云何言心亦無닛고 "마음으로 서로 전한다면 
운 약심상전   운하언심역무 어찌 마음 또한 없다고 하십니까?"
師云 不得一法이 名爲傳心이니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사운 부득일법  명위전심 마음에 전한다고 하는 것이니
若了此心하면 卽是無心無法이니라 만약 이 마음을 깨치면
약료차심   즉시무심무법 곧 마음도 없고 법도 없느니라."
云 若無心無法이면 云何名傳이닛고 "마음도 법도 없다면 
운 약무심무법   운하명전 어찌하여 전한다 하십니까?"
師云 汝聞道傳心하고 將謂有可得也라하나니 "너는 마음에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사운 여문도전심   장위유가득야 얻을 만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所以로 祖師云 認得心性時에 可說不思議라  그래서 조사께서는
소이  조사운 인득심성시  가설불사의 마음의 성품을 깨달았을 때에야 불사의라 말하리라.
了了無所得하니 得時에 不說知라하니  환히 깨쳐도 얻을 바가 없으니,
요료무소득   득시  불설지 얻었을 때라도 알았다 하지 못하노라'고 하셨느니라.
此事를 若敎汝會인댄 何堪也리오  만약 이것을 너더러 알도록 한다 하여도
차시  야교여회   하감야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13. 마음과 경계
如目前虛空을 可不是境가  "눈 앞의 허공을 
문 지여목전허공  가불시경 경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豈無指境見心乎닛가   경계를 가리켜 마음을 보는 것이 
개무지경견심호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師云 甚心을 敎汝向境上見고  "어떤 마음을 너더러 경계 위에서 보게 하느냐?
사운 심마심  교여향경상견
設汝見得이라도 只是個照境底心이니   설혹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설여견득    지시개조경저심 경계를 비추는 마음일 뿐이니라.
如人이 以鏡照面하야 縱然得見眉目分明이라도  사람이 거울로 얼굴을 비출 때처럼
여인  이경조면   종연득견미목분명 눈썹과 눈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더라도
元來是影像이니 何關汝事리오  그것응 본래 그림자일 뿐 
원래지시영상   하관여사 너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云 若不因照하면 何時得見이리오  "만약 비춤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운 약불인조   하시득견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師云 若也涉因하면 常須假物이라  "'의지함'에 빠진다면 
사운 약야섭인   상수가물 항상 의지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有什了時리요  그렇게 해서야 언제 깨달을 수 있겠느냐?
유십마료시
汝不見가 他向汝道하되 撒手似君無一物하니         너는 '손을 털고 그대에게 내보일 
여불견  타향여도   철수사군무일물 아무 것도 없구나.
徒勞謾說數千般이라하니라   수천 가지로 말한들 모두 헛수고로다.' 하는 말을
도로만설수천반 들어보지 못하였느냐?"
云 他若識了하면 照亦無物耶닛가     "마음을 분명히 알았다면 
운 타약식료   조역무물야 비출 만한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까?"
師云 若是無物인댄 更何用照리오   "아무 것도 없다면 
사운 약시무물   갱하용조 어찌 더 비출 필요가 있겠느냐?
爾莫開眼語去하라   눈을 뻔히 뜨고 잠꼬대 같은 말을 하지 말라."
이막개안예어거
14. 구함이 없음
上堂云 百種多知가 不如無求最第一也니라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백 가지로 많이 아는 것이
상당운 백종다지  불여무구최제일야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음'만 훨씬 못하니라.
道人은 是無事人이라 實無許多般心하며   도인이란 일 없는 사람이어서
도인  시무사인   실무허다반심 실로 허다한 마음도 없고
亦無道理可說하니 無事散去하라   또한 나아갈 만한 도리도 없다.
역무도리가설   무사산거 더 이상 일이 없으니 헤어져들 돌아가거라."
15. 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問 如何是世諦닛고  배휴가 물었다.
문 여하시세체 "어떤 것이 세간의 이치[世諦]입니까?"
師云 說葛藤作什  "언어*문자에 얽매인 이치를 논하여
사운 설갈등작십마 무얼하겠느냐?
本來淸淨이어늘 何假言說問答이리오   본래 청정한 것인데 
본래청정    하가언설문답 어찌 언설을 빌려서 문답을 하겠는가?
但無一切心하면 即名無漏智니라  다만 일체의 마음이 없기만 하면 
단무일체심   즉명무루지 번뇌 없는 지혜[無漏智]라 부른다.
汝每日行住坐臥와 一切言語에 但莫著有爲法하면  네가 모든 언행에 있어서 
여매일행주좌와  일체언어  단막착유위법 하염 있는 법[有爲法]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出言瞬目이 盡同無漏니라  말하고 눈 깜빡이는 것
출언순목  진동무루 모두가 번뇌 없는 지혜와 같으니라.
如今末法向去에 多是學禪道者가   지금 말법시대에 접어들면서
여금말법향거  다시학선도자 참선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皆著一切聲色하나니 何不與我心고   대부분 온갖 소리와 빛깔에 집착하고 있다.
개착일체성색    하불여아심 이래서야 어찌 자기 마음을 여의었다고 하겠느냐?
心同虛空去하며 如枯木石頭去하며  마음이 허공같고 
심동허공거   여고목석두거 마른 나무와 돌덩이처럼 되어 가며
如寒灰死火去하야사 方有少分相應이니   또한 타고 남은 재와 꺼진 불처럼 되어야만
여한회사화거    방유소분상응 바야흐로 도에 상응할 분(分)이 조금 있는 것이다. 
若不如是면 他日盡被閻羅老子拷爾在하리라  만일 이와 같지 못하다면 뒷날 모두
약불여시  타일진피염라노자고이재 염라대왕에게서 엄한 문책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爾但離卻有無諸法하면   네가 다만 '있다' '없다' 하는 
이단리각유무제법 모든 법을 여의기만 하면
心如日輪이 常在虛空인달하야  마음이 마치 허공에 떠있는 햇살같아
심여일륜  상재허공
光明이 自然不照而照니 不是省力底事아   태양이 비추지 않아도 자연히 두루 비추는 것이니
광명  자연부조이조  불시성력저사 이 어찌 힘 덜리는 일[省力事]이 아니겠느냐?
到此之時하야는 無棲泊處라 即是行諸佛行이며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쉬어 머물 바가 없어서
도차지사    무서박처  즉시행제불행    모든 부처님이 행하시는 행을 하게 되고
便是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는 것이 되느니라.
변시응무소주   이생기심
此是爾淸淨法身이며 名爲阿耨菩提니라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청정한 법신이며
차시이청정법신   명위아뇩보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若不會此意하면 縱爾學得多知하며 勤苦修行하며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약불회차의   종이학득다지   근고수행    많은 지식을 배워 얻고 부지런히 고행수도하며
草衣木食이라도 不識自心이라  풀옷을 입고 나무먹이를 먹는다 하더라도
초의목식    불식자심    결국 자기 마음은 모르는 것이니라.
盡名邪行이오 定作天魔眷屬이니  이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 하며
진명사행   정작천마권속 정작 천마의 권속이 되는 것이니
如此修行하면 當復何益이리오  이런 식으로 수행을 한다면
여차수행   당부하익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誌公이 云 佛은 本是自心作이어늘  지공화상(418~514)이 말하기를
지공  운 불  본시자심작 부처란 본래 자기 마음으로 짓는 것인데
那得向文字中求리오  어찌 문자로 인해 구해지겠는가?
나득향문자중구
饒爾學得三賢四果와 十地滿心이라도  설령 그렇게 해서 삼현(三賢)*사과(四果)와
요이학득삼현사과  십지만심 십지만심(十地滿心)의 지위를 얻는다 해도
是在凡聖內坐라하니라  그것응 역시 범부와 성인의 테두리를
야지시재범성내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다.
不見道아 諸行無常이라 是生滅法이니  너는 보지 못하였느냐? '모든 행(行)이 무상하나니
불견도  제행무상   시생멸법 이것이 나고 없어지는 법이니라'고 하였으며
勢力盡箭還墜라 招得來生不如意하리니  힘이 다한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노력진전환추  초득래생불여의 뜻대로 되지 않을 내생을 초래하리로다.
爭似無爲實相門에 一超直入如來地리오  어찌 하염없는 실상의 문에 한 번 뛰어넘어 
쟁사무위실상문  일초직입여래지 여래자리에 바로 드는 것만 같으리오'라고 하였다.
爲爾不是與人일새  그러나 너는 이 정도의 근기가 아니므로
위이불시여마인
須要向古人建化門하야 廣學知解로다  옛사람이 세우신 방편문에서 
수요향고인건화문   광학지해 알음알이를 널리 배워야 할 것이니라.
誌公이 云 不逢出世明師하면  지공화상이 말하기를 
지공  운 불봉출세명사 '세간을 뛰어넘은 명철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枉服大乘法藥이라하니  대승의 법약(法藥)을 잘못 먹은 것이다'고 하였다.
왕복대승법약
爾如今一切時中行住坐臥에 但學無心하야  네 지금 일거일동에 항상 무심을 닦아
이여금일체시중행주좌와  단학무심
久久하면 須實得이어늘  오래오래 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구구   수실득
爲爾力量小하야 不能頓超로다 但得三年 五年 或十年하면  그러나 네 역량이 부족하니 단박에 뛰어넘지 못한다.
위이역량소   불능돈초   단득삼년 오년 혹십년 다만 3년이나 5년 혹 10년만 지나면 
須得箇入頭處하야 自然會去하리라   반드시 들어갈 곳을 얻어 
수득개입두처   자연회거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라.
爲爾不能如是하고 須要將心學禪學道하니   그러나 너는 이렇게 해내지 못하고
위이불능여시   수요장심학선학도 굳이 마음을 가지고 선을 배우고 도를 배워야 하니
佛法에 有甚交涉이리오  그것이 불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불법  유심마교섭
故로 云 如來所說은 皆爲化人이라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시기를 
  운 여래소설  개위화인 여래의 설법은 모두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며
如將黃葉爲金하야 止小兒啼요  이것은 마치 누런 나뭇잎을 돈이라 하여
여장황엽위금   지소아제 어린애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아서
決定不實이니라   결코 실다운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결정부실
若有實得하면 非我宗門下客이라  만약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약유실득   비아종문하객 그 사람은 우리 종문(宗門)의 사람이 아니다.
且與爾本體로 有甚交涉이리오  뿐만 아니라 너의 본분과도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차여이본체  유심교섭
故로 經云 實無少法可得이 名爲阿耨菩提라하시니  때문에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실로 얻을 만한
  경운 실무소법가득  명위아뇩보리 작은 법도 없는 것을 무상정각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若也會得此意하면 方知佛道魔道俱錯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아낸다면 부처님의 도와 
약야회득차의   방지불도마도구착 마구니의 도가 모두 잘못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니라.
本來淸淨하야 皎皎地에 無方圓無大小하며   본래 깨끗하여 환히 밝아 
본래청정   교교지  무방원무대소  모남도 둥긂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으며
無長短等相하며 無漏無爲하며 無迷無悟라   길고 짧은 모양도 없고 번뇌도 작위(作爲)도 없으며
무장단등상   무루무위   무미무오 미혹됨도 깨달음도 없다.
了了見無一物하며 亦無人亦無佛이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요연히 사무쳐 보아
요료견무일물   역무인역무불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부처도 또한 없도다. 
大千沙界海中漚요 一切聖賢이 如電拂이로다  항하사 대천세계는 바다의 물거품이요
대천사계해중구  일체성현  여전불 모든 성현들은 스치는 번개불 같도다' 한 것이다.
一切不如心眞實이라 法身은 從古至今토록  모든 것이 진실한 마음만 같지 못하니라.
일체불여심진실   법신  종고지금 법신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與佛祖一般이니 何處欠少一毫毛리오  부처님*조사와 더불어 마찬가지여서
여불조일반   하처흠소일호모 어디 털끝만큼이라도 모자람이 있겠느냐.
旣會如是意인댄 大須努力이어다   이런 내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면
기회여시의   대수노력 열심히 노력해야 하니
盡今生去에 出息이 不保入息이니라  이생을 마칠 즈음에는 
진금생거  출식  불보입식 내쉬는 숨이 들이쉬는 숨을 보장치 못하느니라."
16. 육조(六祖)는 어째서 조사가 되었는가? 
問 六祖는 不會經書어늘 何得傳衣爲祖며   배휴가 물었다. "혜능스님께서는 경전을 모르셨는데 
문 육조  불회경서   하득전의위조 어떻게 법의를 전수받아 육조가 되셨으며
秀上座는 是五百人首座라 爲敎授師하야  반면 신수스님은 오백대중의 수좌로서
수상좌  시오백인수좌  위교수사 교수사의 임무를 맡아
講得三十二本經論이어늘 云何不傳衣닛고   32본(本)의 경론을 강의할 수 있었는데
강득삼십이본경론    운하부전의 왜 법의를 전수받지 못하였습니까?"
師云 爲他有心이라 是有爲法이니   "신수스님에게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니
사운 위타유심   시유위법 이는 유위법이니 
所修所證으로 將爲是也라 所以로 五祖付六祖하시니  닦고 깨닫는 것을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수소증   장위시야  소이  오조부육조 그러므로 오조께서 육조에게 부촉하셨느니라.
六祖는 當時에 是默契라  한편 육조는 당시에 묵묵히 계합하여
육조  당시  지시묵계
得密授如來甚深意하시니 所以로 付法與他니라  여래께서 은밀히 주신 매우 깊은 뜻을 얻으셨으므로
득밀수여래심심의    소이  부법여타 그에게 법을 부촉하셨느니라.
汝不見道아 法本法無法이라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여불견도  법본법무법 법이란 본래 법은 법이랄 것이 없나니 
無法法이 亦法이로다  법 없는 법을 또한 법이라 하느니라.
무법법  역법
今付無法時에 法法이 何曾法고하니라  이제 법 없음을 부촉할 때에 법법 하는 것이
금부무법시  법법  하즌법 일찍이 무슨 법이었던고?"라고 하셨다.
若會此意하면 方名出家兒며 方好修行이니라   이 뜻을 알면 바야흐로 출가자라 부르며
약회차의   방명출가아  방호수행 좋은 수행이라 하느니라.
若不信이면 云何明上座가 走來大庾嶺頭하야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어찌하여 도명(道明)상좌가
약불신   운하명상좌  주래대유령두 대유령 꼭대기까지 달려와서
尋六祖하니 六祖便問하되 汝來求何事오   육조를 찾았겠느냐. 그 때 육조스님이 묻기를,
심육조   육조변문   여래구하사 그대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爲求衣아 爲求法가  옷을 구하는가 아니면 법인가?' 하니
위구의  위구법
明上座云 不爲衣來오 但爲法來니다  도명상좌는 '옷이 아니라 
명상좌운 불위의래  단위법래 오로지 법을 위하여 왔습니다.'고 하였다.
六祖云 汝且暫時斂念하고 善惡을 都莫思量하라  육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잠시 마음을 거두고
육조운 여차잠시렴념   선악  도막사량 선도 악도 전혀 생각하지 말라' 하시자
明이 乃稟語한데 六祖云 不思善不思惡하라  도명상좌가 말씀을 받드니, 육조께서는
  내품어   육조운 불사선불사악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正當與時하야 還我明上座父母未生時面目來하라 바로 이러할 때에 부모가 낳기 이전 명상좌의
정당여마시   환아명상좌부모미생시면목래 본래 면목을 내게 가져와 보아라' 하셨다.
明이 於言下에 忽然默契하고  도명상좌가 이 말을 듣고
  어언하  홀연묵계 묵연히 계합하고
便禮拜云 如人飮水에 冷煖을 自知니라  문득 절하고 말하기를, '마치 물을 마셔보고
변예배운 여인음수  냉온  자지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사옵니다.
某甲이 在五祖會中하야 枉用三十年工夫타가  제가 오조의 문하에서 
모갑  재오조회중   왕용삼십년공부 30년 동안 잘못 공부하다가 
今日에 方省前非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금일  방성전비 지난 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하자
六祖云 如是니라하니  육조께서는 '그렇도다'고 하셨다.
육조운 여시
到此之時하야 方知祖師西來하사  이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도차지시   방지조사서래
直指人心見性成佛이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직지인심견성성불 부처를 이루게 하심이 
不在言說이로다  언설에 있지 않음을 바야흐로 알 것이로다.
부재언설
豈不見가 阿難이 問迦葉云하되  어찌 듣지 못하였느냐?
개불견  아난  문가섭운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世尊이 傳金襴外에 別傳何法이닛고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하신 외에
세존  전금란외  별전하법 따로 무슨 법을 전하셨습니까?' 하니
迦葉이 召阿難하대 阿難이 應諾이어늘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가섭  소아난   아난  응락 아난이 대답하자
迦葉이 云 倒卻門前刹竿著하라하니  가섭이 말하기를, '문 앞의 깃대[刹竿]를 
가섭  운 도각문전찰간착 거꾸러뜨려 버려라' 하였으니
此便是祖師之標榜也니라  이것이 바로 조사의 표방이니라.
차변시조사지표방야
甚深阿難이 三十年爲侍者하야 몹시 총명한 아난이 30년 동안 시자로 있으면서
심심아난  삼십년위시자
爲多聞智慧라 被佛訶云 汝千日學慧가  많이 들어 얻은 지혜 때문에 부처님으로부터 
지위다문지혜  피불가운 여천일학혜 천일 동안 닦은 너의 지혜는 
不如一日學道라하시니  하루 동안 도를 닦느니만 못하다'고 
불여일일학도 꾸지람을 들었다.
若不學道하면 滴水도 難消니라  만약 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약불학도   적수  난소 물 한 방울도 소화시키기 어렵다 하리라."
問 如何得不落階級이닛고  "어떻게 하면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문 여하득불락계급
師云 終日喫飯하되 未曾咬著一粒米하며  "종일토록 밥을 먹되 
사운 종일끽반   미증교착일립미  일찍이 한 톨의 쌀도 씹지 않고
終日行하되 未曾踏著一片地니  종일 행하되 단 한 쪽의 땅도 밟지 않으니
종일행   미증답착일편지
與摩時에 無人我等相이라 終日不離一切事하되  이러한 때에 남이다 나다 하는 모양이 없다.
여마시  무인아등상   종일불리일체사 종일토록 일체의 일을 떠나지 아니했으되 
不被諸境惑하야사 方名自在人이니라  모든 경계와 미혹을 잊지 않아야
불피제경감    방명자재인 바야흐로 자재인(自在人)이라 부른다.
更時時念念에 不見一切相하며 莫認前後三際어다  다시 시시념념에 일체의 모양을 보지 아니하면
변시시념념  불견일체상   막인전후삼제 앞뒤 과거 현재 미래를 오인하지 말라.
前際無去하고 今際無住하며 後際無來하야  과거는 지나감이 없고 현재는 머뭄이 없으며
전제무거   금제무주   후재무래 미래는 옴이 없이
安然端坐하야 任運不拘하야사   편안하게 단정히 앉아 
안연단좌   임운불구 자유롭고 걸림이 없어야
方名解脫이니 努力努力이어다  바야흐로 해탈이라 할 수 있으니
방명해탈   노력노력 노력에 노력을 할지어다.
此門中千人萬人에 只得三箇五箇니  이 문중 천인 만인에
차문중천인만인  지득삼개오개 오직 세개에서 다섯개를 얻을 뿐이니
若不將爲事하면 受殃有日在니라   만약 일로 여기지 않는다면
약불장위사   수앙유일재 재앙을 받는 날이 있을 것이다.
故云 著力今生에 須了卻이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힘을 붙여 금생에 
고운 착력금생  수료각 모름지기 마쳐버릴지니
誰能累劫受餘殃이리오하니라   누가 능히 세세생생토록 
수능루겁수여앙 나머지 재앙을 받겠는가' 하였느니라.
[ 黃檗山際禪師  斷際禪師 傳心法要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