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乘五蘊論一卷 |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
世親菩薩造 | 세친(世親)보살 지음 |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 당 삼장법사 현장(玄奘) 역 |
如薄伽梵略說五蘊: 一者、色蘊,二者、受蘊, 三者、想蘊,四者、行蘊, 五者、識蘊。 |
부처님 약설(略說)하신 바와 같이 오온(五蘊)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다섯을 말한다. |
云何色蘊? 謂四大種及四大種所造諸色。 |
색온(色蘊)은 무엇인가? 사대종(四大種)과 사대종으로 지어진 색(色)을 말하고, |
云何四大種? 謂地界、水界、火界、風界。 云何地界?謂堅強性。 云何水界?謂流濕性。 云何火界?謂溫燥性。 云何風界?謂輕等動性。 |
사대종(四大種)이란 지계(地界), 수계(水界), 화계(火界), 풍계(風界)이며, 지계는 견고하고 강한 성품[堅强性], 수계는 습하고 흐르는 성품[流濕性], 화계는 따뜻하고 건조한 성품[溫燥性], 풍계는 가볍고 무리지어 이동하는 성품[輕等動性]이다. |
云何四大種所造諸色? 謂眼根、耳根、鼻根、 舌根、身根, 色、聲、香、味、所觸一分、 無表色等。 |
사대종으로 지어진 색[四大種所造諸色]이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의 5근(根)과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소촉일분(所觸一分), 무표색(無表色) 등을 말한다. |
云何眼根?謂色為境清淨色。 云何耳根?謂聲為境清淨色。 云何鼻根?謂香為境清淨色。 云何舌根?謂味為境清淨色。 云何身根?謂所觸為境清淨色。 |
안근은 색(色)을 경계로 하는 청정한 색(色), 이근은 소리[聲]를 경계로 삼는 청정한 색, 비근은 냄새[香]를 경계로 삼는 청정한 색, 설근은 맛[味]을 경계로 하는 청정한 색, 신근은 접촉[所觸]을 경계로 삼는 청정한 색이며, |
云何為色?謂眼境界, 顯色、形色及表色等。 云何為聲?謂耳境界, 執受大種因聲, 非執受大種因聲, 俱大種因聲。 云何為香?謂鼻境界, 好香、惡香、及所餘香。 云何為味?謂舌境界, 甘味、酢味、醎味、辛味、 苦味、淡味。 云何為所觸一分?謂身境界, 除四大種餘所造觸, 滑性、澁性、重性、輕性、 冷、飢、渴等。 云何名為無表色等? 謂有表業及三摩地所生色等, 無見無對。 |
색(色)은 소위 눈[眼]의 경계이니, 드러나는 색[顯色], 형상적인 색[形色], 그리고 표면적인 색[表色] 등을 말하고, 성(聲)은 귀[耳]의 경계로서 집수(執受)하는 대종(大種)에 기인(起因)한 소리와 집수 아닌 대종에 의한 소리와 모든 대종에 기인한 소리를 말한다. 향(香)은 코[鼻]의 경계이니, 조은 향, 나쁜 향과 그 밖의 냄새를 말하고, 미(味)는 혀[舌]의 경계이니,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 싱거운 맛을 말하며, 소촉일분(所觸一分)은 몸[身]의 경계로서 4대종을 제외한 나머지에 의해 만들어진 접촉인 미끄럽고 거칠은 성질과 무겁고 가벼운 성질, 추위, 배고픔, 갈증 등을 말한다. 무표색등(無表色等)이란 유표업(有表業;三業)과 삼마지에서 생기는 색 등의 보이는 대상이 없는 것을 말한다. |
云何受蘊?謂三領納: 一、苦,二、樂, 三、不苦不樂。 樂謂滅時有和合欲; 苦謂生時有乖離欲; 不苦不樂謂無二欲。 |
수온(受蘊)이란 세 가지 받아들임[領納]이니, 고(苦)와 낙(樂)과 불고불락(不苦不樂)이다. 낙(樂)은 없을 때 가지려 하는 것이고, 고(苦)는 생겼을 때 떠나려 하는 것이며, 불고불락(不苦不樂)은 그 두 욕구가 없는 것을 말한다. |
云何想蘊? 謂於境界,取種種相。 |
상온(想蘊)이란 경계에서 여러가지 상(相)을 취하는 것이다. |
云何行蘊? 謂除受想,諸餘心法 及心不相應行。 |
행온(行蘊)은 무엇인가? 수온과 상온을 뺀 나머지 모든 심법[諸餘心法]과 그리고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을 말한다. |
云何名為諸餘心法? 謂彼諸法與心相應。 彼復云何? 謂觸、作意、受、想、思; 欲、勝解、念、三摩地、慧; 信、慚、愧、無貪善根、 無瞋善根、無癡善根、精進、 輕安、不放逸、捨、不害; 貪、瞋、慢、無明、見、疑; 忿、恨、覆、惱、嫉、慳、誑、 諂、憍、害,無慚、無愧, 惛沈、掉舉、不信、懈怠、 放逸、忘念、散亂、不正知; 惡作、睡眠、尋、伺。 |
제여심법[諸餘心法]이란 저들 모든 법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을 말하며, 그 저들이라 함은 소위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와 욕(欲), 승해(勝解), 염(念), 삼마지(三摩地), 혜(慧)와 신(信), 참(慚), 괴(愧), 무탐선근(無貪善根), 무진선근(無瞋善根), 무치선근(無癡善根),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사(捨), 불해(不害)와 탐(貪),진(瞋), 만(慢), 무명(無明), 견(見), 의(疑)와 분(忿), 한(恨), 부(覆), 뇌(惱), 질(嫉), 간(慳), 광(誑), 첨(諂), 교(憍), 해(害), 무참(無慚), 무괴(無愧), 혼침(惛沈), 도거(掉舉),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망념(忘念),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와 악작(惡作), 수면(睡眠), 심(尋), 사(伺)를 말하거니와 |
是諸心法:五是遍行, 五是別境,十一是善, 六是煩惱,餘是隨煩惱, 四是不決定。 |
이 모든 심법 중에 처음의 다섯은 변행(遍行),
다음의 다섯은 별경(別境)이요, 열하나는 선(善), 여섯은 번뇌(煩惱)이고, 나머지는 수번뇌(隨煩惱)이며, 넷은 결정되지 않은 것[不決定]이다. |
云何為觸?謂三和合 分別為性。 |
촉(觸)은 근(根)경(境)식(識) 셋의 화합[三和合]으로 분별하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作意? 謂能令心發悟為性。 |
작의(作意)는 마음으로 하여금 발오(發悟)케 하는 성품을 말하며, |
云何為思?謂於功德過失 及俱相違,令心造作, 意業為性。 |
사(思)는 공덕(功德)과 과실(過失), 또는 둘 사이에서 마음으로 하여금 의업(意業)을 짓게 하는 성품을, |
云何為欲?謂於可愛事, 希望為性。 |
욕(欲)은 사랑할 만한 일에 대해 희망(希望)하는 성품을, |
云何勝解?謂於決定事, 即如所了印可為性。 |
승해(勝解)는 결정한 일에 대해 곧 요지한 대로 인가하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為念?謂於串習事, 令心不忘明記為性。 |
염(念)은 습관된 일에 마음으로 하여금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케 하는 것으로 성품을 삼고, |
云何三摩地?謂於所觀事, 令心一境不散為性。 |
삼마지(三摩地)는 관찰함에 있어서 마음으로 하여금 한 경계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하며, |
云何為慧?謂即於彼擇法為性; 或如理所引,或不如理所引, 或俱非所引。 |
혜(慧)는 어떤 상황에서 법을 선택하는 성품으로서 이치에 맞게 이끌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혹은 둘 다 아니기도 하다. |
云何為信?謂於業果諸諦寶中, 極正符順, 心淨為性。 |
신(信)은 업과(業果)와 진리의 보배로움 안에 극히 바르게 순종하는 증표로 마음 청정히 하는 성품을 말하며, |
云何為慚?謂自增上,及法增上, 於所作罪羞恥為性。 |
참(慚)은 스스로 더욱, 또 법에 더욱 지은 죄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為愧?謂世增上, 於所作罪羞恥為性。 |
괴(愧)는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지은 죄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無貪?謂貪對治, 令深厭患無著為性。 |
무탐(無貪)은 탐욕[貪]에 맞서서 몹씨 싫어하여 집착함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하고, |
云何無瞋?謂瞋對治, 以慈為性。 |
무진(無瞋)은 성냄[瞋]과 반대로 자애로움[慈]으로 성품 삼은 것을 말하며. |
云何無癡?謂癡對治, 以其如實正行為性。 |
무치(無癡)는 어리석음[癡]과 맞서서 진실하고 바르게 행함을 성품으로 하는 것이다. |
云何精進?謂懈怠對治, 心於善品勇悍為性。 |
정진(精進)은 해태(懈怠)의 반대로, 선품(善品)에서 마음을 용맹하고 사납게 하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輕安?謂麁重對治, 身心調暢堪能為性。 |
경안(輕安)은 거칠고 무거움[麁重]의 반대로서 심신이 조화롭고 밝아서 감당할 수 있는 성품이며, |
云何不放逸?謂放逸對治, 即是無貪乃至精進。依止此故, 捨不善法及即修彼對治善法。 |
불방일(不放逸)은 방일(放逸)의 반대로서 위의 무탐에서 정진까지가 이것을 의지한다면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닦게 된다. |
云何為捨?謂即無貪乃至精進。 依止此故,獲得所有心平等性, 心正直性,心無發悟性。 又由此故,於已除遣染污法中, 無染安住。 |
사(捨)는 무탐에서 정진까지를 말하며, 이것을 의지한다면 마음의 평등한 성품과 정직한 성품과 깨우칠 것 없는 성품을 획득하게 되고, 또 그로 말미암아 자신이 물들어 더럽혀진 법을 떠나 물듦이 없는 데에 안주하게 된다. |
云何不害?謂害對治, 以悲為性。 |
불해(不害)는 해침[害]의 반대로서 비(悲)로 그 성품을 삼는다. |
云何為貪?謂於五取蘊 染愛耽著為性。 |
탐(貪)은 유루의 오온[五取蘊]을 염애(染愛)하고 탐착(耽著)하는 것으로 성품을 삼고, |
云何為瞋?謂於有情樂作損害為性。 | 진(瞋)은 유정(有情)들에게 즐겨 손해를 끼치는 것으로 그 성품을 삼으며, |
云何為慢?所謂七慢: 一、慢,二、過慢,三、慢過慢,四、我慢,五、增上慢, 六、卑慢,七、邪慢。 云何慢?謂於劣計己勝、 或於等計己等, 心高舉為性。 云何過慢?謂於等計己勝、 或於勝計己等, 心高舉為性。 云何慢過慢?謂於勝計己勝, 心高舉為性。 云何我慢? 謂於五取蘊隨觀為我或為我所, 心高舉為性。 云何增上慢?謂於未得增上殊勝 所證法中謂我已得, 心高舉為性。 云何卑慢?謂於多分殊勝 計己少分, 下劣心高舉為性。 云何邪慢?謂實無德計己有德, 心高舉為性。 |
만(慢)은 이른바 일곱 만[七慢]이니, 만(慢), 과만(過慢), 만과만(慢過慢), 아만(我慢), 증상만(增上慢), 비만(卑慢), 사만(邪慢)을 말한다. 만(慢)은 자기보다 못한 상대에게 자기가 낫다 하거나 대등한 상대에게 같다고 하여 마음을 높이 세우는[高舉] 성품을 말하고, 과만(過慢)은 대등한 상대에게 자기가 낫다 하거나 나은 상대에게 같다고 하여 마음을 높이 세우는 성품을 말하며, 만과만(慢過慢)은 더 나은 상대에게 자기가 더 낫다고 마음을 높이 세우는 성품을 말하고, 아만(我慢)은 오취온을 아(我)나 아소(我所)라고 관(觀)하여 마음을 높이 세우는 성품을 말하며, 증상만(增上慢)은 더욱 높은 수승함을 얻지 못하고 얻은 바 작은 법으로 나는 얻었노라 하며 마음을 높이 세우는 성품을 말하고, 비만(卑慢)은 많은 부분이 뛰어난 상대 속에서 자기의 적은 부분을 헤아려 열등감을 높이 세우는 성품을 말하며, 사만(邪慢)은 실제로 덕이 없으면서 덕이 있는 척 마을을 높이 세우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無明?謂於業果及諦寶中 無智為性。 此復二種,所謂俱生、 分別所起。 又欲纏貪、瞋及欲纏無明, 名三不善根,謂貪不善根、 瞋不善根、癡不善根。 |
무명(無明)은 업과(業果)와 진리의 보배로움 가운데 무지(無智)로 성품 삼은 것을 말하거니와 이것은 두 가지이니, 소위 선천적인 구생(俱生)과 후천적인 분별기[分別所起]이다. 또 욕심으로 얽힌 탐과 진(瞋), 욕애로 얽힌 무명을 3불선근(三不善根)이라 하니, 즉 탐불선근, 진불선근, 치(癡)불선근이다. |
云何為見?所謂五見: 一、薩迦耶見,二、邊執見, 三、邪見,四、見取, 五、戒禁取。 云何薩迦耶見? 謂於五取蘊隨觀為我或為我所, 染污慧為性。 云何邊執見? 謂即由彼增上力故, 隨觀為常或復為斷, 染污慧為性。 云何邪見?謂或謗因或復謗果、 或謗作用或壞善事, 染污慧為性。 云何見取?謂即於三見 及彼所依諸蘊, 隨觀為最為上為勝為極, 染污慧為性。 云何戒禁取? 謂於戒禁及彼所依諸蘊, 隨觀為清淨為解脫為出離, 染污慧為性。 |
견(見)은 소위 오견(五見), 즉 살바야견(薩迦耶見;身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견취(見取), 계금취(戒禁取)를 말하며, 살바야견[身見]이란 오취온을 아(我), 아소(我所)라고 하는 사견을 쫓아서 물들어 더럽혀진 혜(慧)가 그 성품이 된 것을 말하고, 변집견(邊執見)은 저가 잘난 체하는 증상력(增上力)으로 말미암아 상(常)이다 단(斷)이다 하는 사견을 쫓아서 물들고 더럽혀진 혜가 성품이 된 것을 말하며, 사견(邪見)은 인과(因果)를 비방하거나 작용(作用)을 비방하고 선한 일을 파괴하여 더럽혀진 혜로 그 성품을 삼은 것을 말한다. 견취(見取)는 5견 중 뒤의 3견[後三見]과 저가 의지하고 있는 온(蘊)들을 최(最), 상(上), 승(勝), 극(極)이라고 수관(隨觀)하여 더럽혀진 혜로 그 성품을 삼은 것이며, 계금취(戒禁取)는 계율로 금하는 것들과 저가 의지하고 있는 온(蘊)들이 청정이요 해탈(解脫)이요 출리(出離)라고 수관하여 염오된 혜가 그 성품이 된 것을 말한다. |
云何為疑?謂於諦等猶豫為性。 諸煩惱中,後三見及疑 唯分別起, 餘通俱生及分別起。 |
의(疑)는 진리[諦] 앞에서 머뭇거리는 성품을 말하며, 모든 번뇌(煩惱) 중에 후3견(後三見)과 의혹[疑]은 오로지 후천적 분별기(分別起)이고, 나머지는 선천적 구생(俱生)이나 분별기로 통한다. |
云何為忿?謂遇現前不饒益事 心損惱為性。 |
분(忿)은 불이익한 일을 당하면 마음이 상하고 괴로운 성품을 말하고, |
云何為恨?謂結怨不捨為性。 | 한(恨)은 맺힌 원한을 버리지 못함을 성품 삼고, |
云何為覆?謂於自罪覆藏為性。 | 부(覆)는 스스로 죄를 덮어 감추려 하는 것이며, |
云何為惱? 謂發暴惡言尤蛆為性。 |
뇌(惱)는 포악하게 '구더기보다 못한 놈'이라 말하여 괴롭히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為嫉?謂於他盛事 心妬為性。 |
질(嫉)은 남의 잘 된 일을 마음으로 투기하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為慳?謂施相違 心悋為性。 |
간(慳)은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 싫어서 마음이 인색한 성품을 말하며, |
云何為誑?謂為誑他 詐現不實事為性。 |
광(誑)은 남을 속이기 위해 진실치 못한 일을 거짓 표현하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為諂?謂覆藏自過方便 所攝心曲為性。 |
첨(諂)은 자기 허물을 감추려는 방편으로 마음을 왜곡(歪曲)하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為憍?謂於自盛事染著 倨傲心恃為性。 |
교(憍)는 자기의 잘 된 일에 염착(染着)하여 거만하고 오만한 마음으로 자부하는 성품이며, |
云何為害? 謂於諸有情損惱為性。 |
해(害)는 유정(有情)들을 해치고 괴롭히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無慚?謂於所作罪 不自羞恥為性。 |
무참(無慚)은 지은 죄를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품을 말하며, |
云何無愧?謂於所作罪 不羞恥他為性。 |
무괴(無愧)는 지은 죄를 남에게 수치로 여기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惛沈?謂心不調暢 無所堪能蒙昧為性。 |
혼침(惛沈)은 마음이 조화롭고 밝지 못하여 감당할 수 없이 몽매(蒙昧)한 성품, |
云何掉舉?謂心不寂靜為性。 | 도거(掉舉)는 마음이 적정(寂靜)하지 못한 성품, |
云何不信?謂信所對治, 於業果等不正信順, 心不清淨為性。 |
불신(不信)은 믿음(信)의 반대로서 업과(業果) 등을 바르게 믿어서 따르지 못하고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성품, |
云何懈怠?謂精進所治, 於諸善品心不勇猛為性。 |
해태(懈怠)는 정진(精進)의 반대로 선품에서 마음이 용맹치 못한 성품을 말한다. |
云何放逸? 謂即由貪瞋癡懈怠故, 於諸煩惱心不防護, 於諸善品不能修習為性。 |
방일(放逸)은 탐진치(貪瞋癡)와 해태(懈怠)로 말미암아 번뇌심을 막아내지도 못하고, 선품을 닦아 익힐 수도 없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失念?謂染污念, 於諸善法不能明記為性。 |
실념(失念)은 곧 물들어 더럽혀진 염(念)이니, 선법(善法)을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성품이며, |
云何散亂?謂貪瞋癡 分心流蕩為性。 |
산란(散亂)은 탐진치로 쪼개진 마음이 방탕하게 흐르는 성품을 말한다. |
云何不正知?謂於身語意 現前行中不正依住為性。 |
부정지(不正知)는 신어의(身語意)를 행하는 동안 바르지 못하게 의지해 머무는 성품을 말하고, |
云何惡作?謂心變悔為性。 | 악작(惡作)은 마음이 변하여 후회하게 된 것을, |
云何睡眠?謂不自在轉 心極昧略為性。 |
수면(睡眠)은 자재하게 구르지 못하고 마음이 극히 몽매함에 빼앗긴 상태를 말한다. |
云何為尋?謂能尋求意言 分別思慧差別 令心麁為性。 云何為伺?謂能伺察意言 分別思慧差別 令心細為性。 |
심(尋)은 탐구할 수 있는 뜻과 말, 분별하는 생각과 혜(慧)가 달라서 마음을 거칠어지게 하는 것을, 사(伺)는 탐구할 수 있는 뜻과 말, 분별하는 생각과 혜(慧)에 차이가 있어서 마음을 세밀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
云何心不相應行? 謂依色、心、心法分位, 但假建立, 不可施設決定異性及不異性。 彼復云何?謂得、無想等至、 滅盡等至、無想所有、命根、 眾同分、生、老、住、無常、 名身、句身、文身、 異生性如是等類。 |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란 색(色)과 마음, 심법(心法)의 분위(分位)에 의해 다만 가정하여 세웠을 뿐이고, 결정히 다르고 다르지 않은 성품을 마련할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득(得)과 무상등지(無想等至), 멸진등지(滅盡等至), 무상소유(無想所有), 명근(命根), 중동분(眾同分), 생(生), 노(老), 주(住), 무상(無常), 명신(名身), 구신(句身), 문신(文身)과 이생성(異生性)과 같은 것들이다. |
云何為得?謂若獲若成就。 此復三種,謂若種子、若自在、 若現前,如其所應。 |
득(得)은 붙잡거나[獲] 성취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세 가지, 즉 씨앗이나 자재함이나 앞에 나타남이 그가 받을 것과 같아짐을 말한다. |
云何無想等至? 謂已離遍淨貪、 未離上貪, 由出離想作意為先, 不恒現行 心心法滅為性。 |
무상등지(無想等至;無想定)는 변정천의 탐[遍淨貪]은 이미 여의었으나 그 이상의 탐은 여의지 못한 것으로서, 출리상(出離想)에 우선하여 뜻을 세움으로써 현행(現行)이 항상하지 않는 심심법(心心法)을 멸하는 외도의 선정을 말하고, |
云何滅盡等至? 謂已離無所有處貪, 從第一有更求勝進, 由止息想作意為先, 不恒現行及恒行一分 心心法滅為性。 |
멸진등지(滅盡等至;滅盡定)는 이왕 무소유처(無所有處)의 탐을 여의고서 제일유[初禪定]부터 다시 더 나은 정진을 구하는 것이며, 지식상(止息想)을 우선시하여 작의(作意)함으로싸 현행이 항상하지 않는 것과 항상 현행하는 일부분의 심왕과 심소를 멸하는 선정을 말한다. |
云何無想所有?謂無想等至果。 無想有情天中生已, 不恒現行心心法滅為性。 |
무상소유(無想所有)는 무상등지의 과(果)로서,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에 태어나서 항상하지 않는 현행의 심심소가 소멸하게 된다. |
云何命根?謂於眾同分中, 先業所引, 住時決定為性。 |
명근(命根)은 중동분(衆同分) 중에서 선세(先世)의 업이 이끄는 바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결정되는 것을 말하고, |
云何眾同分? 謂諸有情自類相似為性。 |
중동분(衆同分)이란 모든 유정들 스스로의 유형이 서로 비슷함을 말한다. |
云何為生?謂於眾同分中, 諸行本無今有為性。 |
생(生)이란 중동분 중에서 모든 행[諸行]이 본래 없다가 이제 있는 것을 말하고, |
云何為老?謂即如是諸行 相續變異為性。 |
노(老)는 그와 같은 제행(諸行)이 상속(相續)하면서 변하고 달라지는 것을 말하며, |
云何為住?謂即如是諸行 相續隨轉為性。 |
주(住)는 그와 같은 제행이 상속함에 따라 굴러가는 것을 말하고, |
云何無常?謂即如是諸行 相續謝滅為性。 |
무상(無常)이란 그와 같은 제행이 상속하다가 쇠퇴하여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
云何名身?謂諸法自性 增語為性。 |
명신(名身)이란 제법(諸法)의 자성(自性)에 말을 덧붙인 것[積聚]을 말한다. |
云何句身?謂諸法差別 增語為性。 |
구신(句身)은 제법의 차별함에 말이 더해진 것을 말한다. |
云何文身?謂諸字為性, 以能表彰前二種故; 亦名為顯, 由與名句為所依止 顯了義故; 亦名為字, 非差別門所變易故。 云何異生性? 謂於諸聖法不得為性。 如是等類已說行蘊。 |
문신(文身)은 모든 글자[字]로 그 성품을 삼는다. 명신, 구신을 보다 더 잘 표현하려는 것이요, 또 이름하여 현(顯)이라고도 하거니와, 명신, 구신이 문신에 의지하므로써 뜻을 드러내 알게 하려는 것이며, 또 자(字)라고도 하는 것은 변이(變易)하는 차별문(差別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생성(異生性)이란 성인의 법을 얻지 못하는 성품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이 이미 설명한 행온(行蘊)이다. |
云何識蘊? 謂於所緣境了別為性。 亦名心意, 由採集故、意所攝故。 最勝心者,謂阿賴耶識。 何以故?由此識中 諸行種子皆採集故。 又此行緣不可分別, 前後一類相續隨轉。 又由此故,從滅盡等至、 無想等至、無想所有起者, 了別境名轉識還生, 待所緣緣差別轉故、 數數間斷還復轉故、 又令生死流轉旋還故。 阿賴耶識者, 謂能攝藏一切種子故, 又能攝藏我慢相故, 又復緣身為境界故。 即此亦名阿陀那識, 能執持身故。 |
식온(識蘊)이란 무엇인가? 반연하는 바 경계를 분명히 분별하는 것으로서 심의(心意)라고도 하거니와, 마음으로 채집(採集)하고, 뜻으로 거두기 때문이다. 최승심(最勝心)이란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 식(識) 가운데 제행(諸行)의 씨앗이 다 채집되기 때문이다. 또 이 제행의 인연은 분별할 수 없이 전후로 한 무리지어 계속하여 따라 구른다. 또 그로 말미암아 멸진등지와 무상등지, 무상소유로부터 일어나는 요별경(了別境)을 전식환생(轉識還生)이라 하거니와 지속하여 소연(所緣)과 연(緣)이 차별하게 구르고, 또 수시로 끊겼다가 다시 구르기도 하고, 또 생사를 다시 유전으로 선회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이란 것은 모든 씨앗을 능히 거두어 소장[攝藏]하기 때문이요, 또 아만상(我慢相)을 능히 섭장하기 때문이며, 또 반연의 몸을 경계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을 또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하거니와 능히 몸을 붇잡아 지탱하기 때문이다. |
最勝意者, 謂緣阿賴耶識為境, 恒與我癡、我見、我慢 及我愛等相應之識, 前後一類相續隨轉, 除阿羅漢果及與聖道 滅盡等至現在前位。 |
최승의(最勝意)란 아뢰야식의 반연을 경계로 삼른 것을 말하며, 항상 아치(我癡)와 아견(我見), 아만(我慢), 그리고 아애(我愛) 등과 더불어 상응하는 식(識)이 앞뒤로 한 무리지어 계속 따라 구른다. 현전(現前)의 아라한과(阿羅漢果)와 성인의 도, 멸진등지의 지위의 것은 제외한다. |
問:「以何義故說名為蘊?」 | [문] "무슨 의미로 온(蘊)이라 합니까?" |
答:「以積聚義說名為蘊。 謂世相續品類趣處 差別色等總略攝故。」 |
[답] "적취(積聚)라는 뜻으로 온(蘊)이라
한다. 세상에 상속되는 품류(品類)의 취처(趣處)와 차별한 색(色) 등을 모두 범하여 거두기 때문이다." |
復有十二處,謂眼處色處、 耳處聲處、鼻處香處、 舌處味處、身處觸處、 意處法處。 眼等五處及色聲香味處, 如前已釋。 言觸處者,謂四大種 及前所說所觸一分。 言意處者,即是識蘊。 言法處者,謂受想行蘊 無表色等及與無為。 |
또 12처(處)가 있으니, 안처(眼處)와 색처(色處), 이처(耳處)와 성처(聲處), 비처(鼻處)와 향처(香處), 설처(舌處)와 미처(味處), 신처(身處)와 촉처(觸處), 의처(意處)와 법처(法處)를 말한다. 안(眼) 등의 5처(處)와 색성향미 4처(處)는 전에 이미 설명한 바와 같고, 촉처(觸處)라는 것은 4대종(四大種)과 앞에 설명한 소촉일분(所觸一分)을 말하고, 의처(.意處)라는 것은 곧 식온(識蘊)이며, 법처(法處)라는 것은 수상행(受想行)의 세 온(蘊)과 무표색(無表色) 등, 그리고 무위(無爲)를 말한다. |
云何無為?謂虛空無為、 非擇滅無為、擇滅無為 及真如等。 云何虛空?謂若容受諸色。 云何非擇滅? 謂若滅非離繫。 此復云何? 謂離煩惱對治 而諸蘊畢竟不生。 云何擇滅?謂若滅是離繫。 此復云何? 謂由煩惱對治故 諸蘊畢竟不生。 云何真如?謂諸法法性、 法無我性。 |
무위(無爲)란 허공무위(虛空無爲)와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택멸무위(擇滅無爲), 그리고 진여(眞如) 등을 말한다. 허공(虛空)은 모든 색(色)을 용수(容受)하는 것, 비택멸(非擇滅;滅非離繫)은 멸(滅)이 번뇌를 여읜 것이 아니면 비택멸이다. 이는 또 무엇인가? 번뇌를 여읨에는 대치된 것이라 제온(諸蘊)이 필경에 생기지 않음을 말한다. 택멸(擇滅)은 멸이 번뇌를 여읜 것이라면이다. . 이는 또 무엇인가? 번뇌를 여읨에는 대치되기 때문에 제온(諸蘊)이 필경에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여(眞如)는 제법의 법성품[諸法法性]으로서 제법의 무아인 성품[諸法無我性]을 말한다. |
問:「以何義故名為處耶?」 | [문] "무슨 의미로 처(處)라 합니까?" |
答:「諸識生長門義,是處義。」 | [답] "「식(識)이 생장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처라 한다." |
復有十八界, 謂眼界、色界、眼識界, 耳界、聲界、耳識界, 鼻界、香界、鼻識界, 舌界、味界、舌識界, 身界、觸界、身識界, 意界、法界、意識界。 |
다시 18계(十八界)가 있으니, 안계(眼界), 색계(色界), 안식계(眼識界)와 이계(耳界), 성계(聲界), 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 향계(香界), 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 미계(味界), 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 촉계(觸界), 신식계(身識界)와 의계(意界), 법계(法界), 의식계(意識界)를 말한다. |
眼等諸界及色等諸界, 如處中說。 六識界者,謂依眼等根、 緣色等境, 了別為性。 言意界者,謂即彼無間滅等, 為欲顯示第六意識, 及廣建立十八界故。 |
안(眼) 등의 6계(界)와 색(色) 등의 6계는
처(處)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6식계(六識界)란 안(眼) 등의 근(根)에 의하여 반연된 색(色) 등의 경계를 요별(了別)함으로 그 성품 삼은 것을 말한다. 의계(意界)란 저가 끊기거나 멸함이 없거니와, 제6 의식(意識)을 드러내 보이고, 또 널리 18계(界)를 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
如是色蘊,即十處十界 及法處法界, 一分識蘊即意處及七心界, 餘三蘊及色蘊一分 并諸無為即法處法界。 |
이와 같이 색온(色蘊)은 곧 10처(處), 10계(界)와 법처(法處), 법계(法界)이고, 일부 식온(識蘊)은 의처(意處)와 7심계(心界)이며, 나머지 수,상,행의 3온(蘊)과 색온(色蘊)의 일부와 아울러 모든 무위(無爲)는 법처, 법계이다. |
問以何義故說名為界。 答以能任持無作用性 自相義故。說名為界。 |
[문] "무슨 의미로 계(界)라고
합니까?" [답] "작용없는 성품[無作用性]을 지니고 있는 자기[自;此]와 상대방[相;彼]이라는 뜻으로 계라 한다." |
問:「以何義故宣說蘊等?」 | [문] "무엇 때문에 온(蘊) 등을 설명하셨습니까?" |
答:「為欲對治三種我執。 如其次第三種我執者, 謂一性我執、受者我執、 作者我執。」 |
[답] "세 가지 아집(我執)에 맞서고자 함이다.
그 차례대로 3종 아집이란 일성아집(一性我執), 수자아집(受者我執), 작자아집(作者我執)을 말한다. |
復次此十八界幾有色? 謂十界一少分 即色蘊自性。 幾無色?謂所餘界。 |
또 그 18계가 유색(有色)은 얼마나 되는가? 10계(界)의 한 적은 부분, 즉 색온(色蘊)을 자성(自性)으로 한 것들을 말하고, 무색(無色)은 나머지 계(界)이다. |
幾有見?謂一色界。 幾無見?謂所餘界。 |
유견(有見)은 색계(色界) 하나를 말하고, 무견(無見)은 그 외의 계(界)를 말한다. |
幾有對?謂十有色界。 若彼於是處有所障礙, 是有對義。 幾無對?謂所餘界。 |
유대(有對)는 10유색계(有色界)를 말하거니와, 저 것이 이 곳을 장애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은 유대(有對)라는 의미이다. 무대(無對)는 10유색계 이외의 계이다. |
幾有漏?謂十五界 及後三少分, 由於是處煩惱起故、 現所行處故。 幾無漏?謂後三少分。 |
유루(有漏)는 18계 중 앞의 15계와 뒤의 3계(意,法,意識界) 일부분을 말하거니와, 그 곳에서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이요, 소행(所行)을 나타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루(無漏)는 뒤의 3계 일부분을 말한다. |
幾欲界繫?謂一切。 幾色界繫?謂十四, 除香、味,鼻、舌識。 幾無色界繫?謂後三。 幾不繫?謂即彼無漏界。 |
욕계계(欲界繫)는 18계 모두를 말하고, 색계계(色界繫)는 향,미,비,설식의 4계를 제외한 나머지 14계를 말한다. 무색계계(無色界繫)는 의,법,의식의 3계를 말하고, 불계(不繫)는 저가 무루(無漏)인 계(界)를 말한다. |
幾蘊所攝?謂除無為。 幾取蘊所攝?謂有漏。 |
온소섭(蘊所攝)은 무위(無爲)를 뺀 일체를 말하고, 취온소섭(取蘊所攝)은 유루(有漏)를 말한다. |
幾善?幾不善?幾無記? 謂十,通三種七心界 及色聲法界,八無記。 |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는 10계(界)를 말하니, 세 종류의 7심계(七心界)와 색,성,법의 3계로 통하고, 무기(無記)는 여덟가지이다. |
幾是內?謂十二, 除色、聲、香、味、觸及法界。 幾是外?謂六即所除。 |
내(內;內界)는 6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제외한 12계(6根6識)를 말하고, 외(外;外界)는 그 여섯[6境]을 말한다. |
幾有緣?謂七心界及法界少分 心所有法。 幾無緣?謂餘十及法界少分。 |
유연(有緣)은 7심계와 법계 일부의 마음이 소유하는 법[心所有法]을 말하고, 무연(無緣)은 그 외의 것들을 말한다. |
幾有分別?謂意界、意識界、 法界少分。 |
유분별(有分別)은 의계, 의식계와 법계 일부를 말한다. |
幾執受?謂五內界及四界少分, 謂色、香、味、觸。 幾非執受?謂餘九四少分。 |
집수(執受)는 5내계(內界)와 색, 향, 미, 촉의 4계 일부를 말하고, 비집수(非執受)는 그 외의 것들을 발한다. |
幾同分?謂五內有色界, 由與自識等境界故。 幾彼同分?謂即彼自識空時 與自類等故。 |
동분(同分)은 5내유색계(內有色界;眼耳鼻舌身)를 말하며, 자기 식[自識]과 같은 경계이므로 동분이라 하고, 피동분(彼同分)은 저들이 자식(自識)이 공할 때는 자기 종류[自類]와 같기 때문에 피동분이라 한다. |
大乘五蘊論一卷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