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7권

碧雲 2021. 2. 10. 15:40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7권

      북량(北涼)국 천축삼장 담무참(曇無讖) 역

 

8-3. 범행품(梵行品)

 

◎迦葉菩薩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能如是知,得何等利?」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알아서 무슨 이익을 얻나이까?」

 

佛言:「善男子!菩薩摩訶薩能如是知,得四無礙:法無礙、義無礙、辭無礙、樂說無礙。
法無礙者,知一切法及法名字。義無礙者,知一切法所有諸義,能隨諸法所立名字而為作義。
辭無礙者,隨字論、正音論、闡陀論、世辯論。
樂說無礙者,所謂菩薩摩訶薩凡所演說,無有障礙、不可動轉、無所畏省、難可摧伏。
善男子!是名菩薩能如是見知,即得如是四無礙智。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그와 같이 알면 4무애(四無礙)를 얻나니,
법(法)무애, 의(義)무애, 사(辭)무애, 요설(樂說*)무애이니라.
법(法)무애란 일체법과 법의 이름을 아는 것이며,
의(義)무애는 일체법이 지닌 뜻을 알아서 제법(諸法)에 붙여진 이름을 따라 뜻을 짓는 것이요,
사(辭)무애란 글자의 논리와 바른 음의 논리[正音論], 천타론(闡陀論*),
세간 말의 논리[世辯論]에 통달하는 것이며,
요설(樂說)무애란 소위 보살마하살이 무릇 연설하는 바에 장애가 없고, 흔들어볼 수 없으며,
두려워할 것이 없어 굴복시킬 수 없는 것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이 이와 같이 보고 알면 4무애지(四無礙智)를 얻는다'고 하느니라.

*樂說; 듣는 사람의 정서에 맞게(듣기 좋게) 설명하는 것.
*闡陀論; 首盧迦法 해석이론. _首盧迦(śloka)는 경론(經論)을 계산하는 단위.
   32자 이하의 한 구절[節] 또는 한 게(偈)를 '1수로가'라 한다.

 

「復次善男子!法無礙者,菩薩摩訶薩,遍知聲聞、緣覺、菩薩、諸佛之法。
義無礙者,乘雖有三,知其歸一,終不謂有差別之相。
辭無礙者,菩薩摩訶薩於一法中,作種種名,經無量劫,說不可盡;
聲聞緣覺能作是說,無有是處。
樂說無礙者,菩薩摩訶薩於無量劫,為諸眾生演說諸法,若名、若義、種種異說,不可窮盡。

「또 선남자야! 법(法)무애라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성문, 연각, 보살과 제불(諸佛)의 법을 두루 아는 것이요,
의(義)무애는 승(乘)이 비록 셋이지만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아서
결코 차별한 상(相)이 있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사(辭)무애란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법 안에서 갖가지 이름으로 무량한 겁이 지나도록
설하지만 다할 수 없거니와, 성문 연각이 그렇게 설할 수 있다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요설(樂說)무애란 보살마하살이 무량한 겁 동안 중생들을 위해 제법(諸法)의 이름이나 뜻,
다른 여러가지 설명 연설하기를 다할 수 없이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法無礙者,菩薩摩訶薩雖知諸法,而不取著。
義無礙者,菩薩摩訶薩雖知諸義,而亦不著。辭無礙者,菩薩摩訶薩雖知名字,亦不取著。
樂說無礙者,菩薩摩訶薩雖知樂說,如是最上,而亦不著。
何以故?善男子,若取著者,不名菩薩。」

「또 선남자야! 법(法)무애란 보살마하살이 제법(諸法)을 알되, 취착(取著)하지 않는 것이요,
의(義)무애란 보살마하살이 모든 뜻을 알되,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사(辭)무애는 보살마하살이 비록 이름은 알더라도 또한 취착하지 않는 것이고,
요설(樂說)무애는 보살마하살이 비록 요설(樂說)을
어떻게 하는 것이 최상인 줄을 알지만 집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선남자야, 만일 취착하면 보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世尊!若不取著,則不知法;若知法者,則是取著。
若知不著,則無所知。云何如來說言知法而不取著?」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취착하지 않은 즉 법을 알지 못할 것이옵고,
법을 안다는 것인 즉 이 취착일 것이오며,
취착하지 않은 줄 아는 것인 즉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법을 알되, 취착하지 말라 하시나이까?」

 

佛言:「善男子!夫取著者,不名無礙;無所取著,乃名無礙。
善男子!是故一切諸菩薩等,有取著者,則無無礙;
若無無礙,不名菩薩,當知是人名為凡夫。
何故取著名為凡夫?一切凡夫,取著於色乃至著識。
以著色故,則生貪心;生貪心故,為色繫縛,乃至為識之所繫縛;
以繫縛故,則不得免生、老、病、死、憂悲、大苦一切煩惱,是故取著名為凡夫。
以是義故,一切凡夫,無四無閡。
善男子!菩薩摩訶薩已於無量阿僧祇劫,知見法相,以知見故,則知其義;
以見法相及知義故,而於色中不生繫著,乃至識中亦復如是;
以不著故,菩薩於色不生貪心,乃至識中亦不生貪;
以無貪故,則不為色之所繫縛,乃至不為識之所縛;
以不縛故,則得脫於生老病死、憂悲大苦、一切煩惱。以是義故,一切菩薩得四無礙。
善男子!以是因緣,我為弟子十二部中說繫著者名為魔縛,若不著者則脫魔縛。
譬如世間有罪之人,為王所縛,無罪之人王不能縛。
菩薩摩訶薩亦復如是,有繫著者,為魔所縛,無繫著者魔不能縛。
以是義故,菩薩摩訶薩而無所著。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대저 취착하는 것은 무애(無礙)라 하지 않거니와,
취착한 바가 없어야 마침내 무애라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보살이 취착함이 있는 즉 무애하다 할 수 없고,
무애함이 없다면 보살이라 하지 못하리니, 이 사람은 범부라 할 수 밖에 없느니라.

어째서 취착하면 범부다고 하겠느냐?
모든 범부들은 색(色)에 취착하고 식(識)까지도 취착하거니와,
색에 취착하기에 탐심이 생기고, 탐심이 생긴 까닭에 색에 얽매이게 되며,
그렇듯이 식(識)에까지도 얽매이게 되니, 얽매이게 됨으로써 생노병사(生老病死)와
근심과 슬픔, 큰 고통, 일체의 번뇌를 면치 못하는지라 그래서 취착하면 범부라 하는 것이요,
이런 의미에서 범부에게는 4무애가 없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무량 아승지 겁 전에 이미 법상(法相)을 지견(知見)하였으니,
지견한 까닭에 그 뜻을 알고, 법상을 보고 뜻을 알므로써 색(色) 가운데 얽매이는
집착을 내지 않고, 나아가 식(識)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거니와,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은 색에 탐심을 내지 않고, 나아가 식까지도 탐을 내지 아니하며,
탐심이 없기에 색에 계박(繫縛)되지 않고, 나아가 식에까지도 계박되지 아니하여
계박되지 않음으로써 생노병사와 근심과 슬픔, 큰 고통,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이런 뜻에서 보살은 4무애(四無礙)를 얻었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 인연으로 나는 제자들에게 십이부경에서 얽매여 집착하는 것을
마군에 얽매임[魔縛]이라 하였거니와, 만일 집착하지 아니하면 곧 마박(魔縛)에서 벗어나리니,
마치 세간에서 죄인은 왕에게 묶이고, 죄없는 사람은 왕이 묶을 수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얽매여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마(魔)에 얽매인 것이요,
얽매여 집착함이 없다면 마(魔)가 얽매지 못할 것이라,
이런 의미에서 보살마하살은 집착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法無礙者,菩薩摩訶薩善知字持,而不忘失。
所謂持者,如地、如山、如眼、如雲、如人、如母,一切諸法亦復如是。
義無礙者,菩薩雖知諸法名字而不知義,得義無礙,則知於義。
云何知義?謂地持者,如地普持一切眾生及非眾生,以是義故,名地為持。
善男子!謂山持者,菩薩摩訶薩作是思惟:
『何故名山而為持耶?山能持地,令無傾動,是故名持。
何故復名眼為持耶?眼能持光,故名為持。
何故復名雲為持耶?雲名龍氣,龍氣持水,故名雲持。
何故復名人為持耶?人能持法及以非法,故名人持。
何故復名母為持耶?母能持子,故名母持。』
菩薩摩訶薩知一切法名字、句義,亦復如是。
辭無礙者,菩薩摩訶薩以種種辭,演說一義,亦無有義,猶如男女、舍宅車乘、眾生等名。
何故無義?善男子!夫義者,乃是菩薩諸佛境界,辭者凡夫境界。以知義故,得辭無礙。
樂說無礙者,菩薩摩訶薩知辭、知義故,於無量阿僧祇劫,說辭、說義而不可盡,是名樂說無礙。

「◎또 선남자야! 법(法)무애라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글자를 잘 알고 지탱하여 잃지 않는 것이니,
이른바 지탱한다[持]는 것은 땅 같고, 산 같고, 눈[眼] 같고, 구름 같고, 사람 같고,
어머니와 같다고 하듯이, 일체 제법(諸法)도 그와 같으니라. 

의(義)무애란 보살이 제법(諸法)의 이름은 알고, 뜻은 알지 못하되,
의(義)무애를 얻었다면 이는 곧 뜻을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뜻을 아는 것인가? 땅이 지탱하는 것을 말하나니,
땅이 모든 중생과 비중생을 두루 지탱하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땅으로 의지를 삼는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산이 지탱한다[山持]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사유하기를,
『어째서 산을 의지할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가?
산은 능히 땅을 지탱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니, 그 때문에 지탱한다[持]고 한다.
어째서 또 눈을 의지할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가?
눈은 능히 빛을 지탱하니, 그래서 지탱한다[持]고 한다.
어째서 구름을 의지할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가?
구름은 용의 기운[龍氣]이라 하고, 용 기운은 물을 의지하니, 그래서 구름의 지탱[雲持]이라 한다.
어째서 사람을 의지할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가?
사람은 능히 법과 법 아닌 것을 지탱하니, 그래서 사람의 지탱[人持]이라고 한다.
어째서 어머니를 의지할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가?
어머니는 능히 자식을 지탱하므로 어머니의 지탱[母持]이라 한다.』고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의 이름과 구절의 뜻[句義]을 아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사(辭)무애란 보살마하살은 갖가지 언사[辭]로 하나의 뜻을 연설하되,
또한 뜻이 없기도 하여 마치 남녀나 집, 수레, 중생의 이름 같이 연설하거니와,
어째서 뜻이 없는 것인가?
선남자야! 대저 뜻이란 마침내 이것이 보살과 제불(諸佛)의 경계인 것이요,
사(辭)란 범부의 경계인지라, 뜻을 알아야 사(辭)무애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요설(樂說)무애란 보살마하살이 사(辭)를 알고, 뜻[義]을 알기에
무량 아승지 겁 동안 사(辭)를 설하고 뜻[義] 설하기를 다할 수 없이 하거니와,
이를 일러 요설(樂說)무애라 하느니라.

*辭無礙智; 諸方의 言辭에 자유자재히 通達하는 것.

*樂說無礙智; 法, 義, 辭無礙智로 중생에게 자재히 樂說하는 것.

 

「善男子!菩薩摩訶薩於無量無邊阿僧祇劫,修行世諦,以修行故,知法無礙。
復於無量阿僧祇劫,修第一義諦故,得義無礙。
亦於無量阿僧祇劫,習毘伽羅那論故,得辭無礙。
亦於無量阿僧祇劫,修習說世諦論故,得樂說無礙。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무량무변한 아승지 겁 동안 세속의 이치[世諦]를 수행하고
그 수행으로써 법(法)무애를 알며,
다시 무량 아승지 겁 동안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닦아서 의(義)무애를 얻고,
또 무량 아승지 겁에 비가라나(毘伽羅那*)론을 익혀서 사(辭)무애를 얻으며,
또 무량 아승지 겁에 세속의 이치를 설명한 이론을 익히므로써 요설(樂說)무애를 얻느니라.

*第一義諦(paramārtha-satya); 모든 법 중 으뜸이요, 가장 뛰어난 제일의 진리.
*毘伽羅那(Vyākarana); 外道六論의 하나.

인도의 文字와 音韻 및 語法 등을 解說한 文法書의 總稱.

 

「善男子!聲聞緣覺若有得是四無閡者,無有是處。
善男子!九部經中我說聲聞緣覺之人有四無礙,聲聞緣覺真實無有。
何以故?菩薩摩訶薩為度眾生故,修如是四無礙智。緣覺之人修寂滅法,志樂獨處。
若化眾生,但現神通,終日默然無所宣說,云何當有四無礙智?
何故默然而無所說?緣覺不能說法度人。
使得煖法、頂法、忍法、世第一法、須陀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
菩薩摩訶薩,不能令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何以故?善男子!緣覺出世,世間無有九部經典,是故緣覺無辭無礙、樂說無礙。
善男子!緣覺之人雖知諸法,無法無礙。
何以故?法無礙者,名為知字,緣覺之人雖知文字,無字無礙。
何以故?不知常住二字故,是故緣覺不得法無礙。雖知於義,無義無礙。
真知義者,知諸眾生悉有佛性,佛性義者,名為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是義故,緣覺之人不得義無礙。是故緣覺,一切無有四無礙智。
云何聲聞無四無礙?聲聞之人無有三種善巧方便。
何等為三?一者必須軟語然後受法,二者必須麁語然後受化,三者不軟不麁然後受化。
聲聞之人無此三故,無四無礙。復次聲聞緣覺不能畢竟知辭、知義,無自在智,知於境界。
無有十力、四無所畏,不能畢竟度於十二因緣大河,不能善知眾生諸根利鈍差別,
未能永斷二諦疑心,不知眾生種種諸心所緣境界,不能善說第一義空,是故二乘無四無礙。」

「선남자야! 성문 연각이 이 4무애(四無閡)를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9부경(九部經) 중에서는 내가 성문 연각에게도 4무애(四無礙)가 있다고 하였으나,
성문 연각에게는 진실로 없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러한 4무애지(四無礙智)를 닦거니와,
연각들은 적멸법(寂滅法)을 닦아 외딴 곳에서 낙을 추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할 때면
다만 신통을 나타내고, 종일토록 침묵하여 말이 없거늘, 어찌 4무애지(四無礙智)가 있겠느냐?
무엇 때문에 묵연(默然)히 말이 없겠는가?
연각은 법을 설하여 사람을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가사 난법(煖法*)과 정법(頂法*), 인법(忍法*), 세간 제일의 법[世第一法*]을 얻은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나 벽지불, 보살마하살일지라도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선남자야! 연각이 세상에 나왔으되, 세간에는 9부경전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연각은 사(辭)무애도 요설(樂說)무애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연각(緣覺)이 비록 제법(諸法)을 안다지만 법(法)무애는 없다. 왜냐하면,
법(法)무애가 문자를 아는 것이라 하지만 연각은 문자는 알더라도 자(字)무애는 없는 것이니,
그것은 상주(常住)라는 두 자를 모르기 때문이라

그래서 연각이 법(法)무애를 얻지 못하는 것이요,
비록 뜻을 알아도 의(義)무애가 없는 것이니라.
진실로 뜻을 안다는 것은 중생들이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며,
불성(佛性)의 의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
이런 뜻에서 연각은 의(義)무애를 얻지 못하니, 그래서 연각은 4무애지(四無礙智)가 다 없느니라.

성문(聲聞)은 또 어째서 4무애(四無礙)가 없는가?
성문은 세 가지의 선교(善巧)한 방편이 없나니, 무엇이 그 셋인가 하면,
첫째는 반드시 부드럽게 말한 연후에 법을 받게 하는 것,
둘째는 반드시 거칠게 말한 연후에 교화를 받게 하는 것,
셋째는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게 말한 연후에 교화를 받게 하는 것이거니와,
성문은 이 세 가지가 없기 때문에 4무애가 없는 것이요,
또 성문 연각은 필경에 사(辭)도 의(義)도 알 수 없고, 경계(境界)를 아는 자재한 지혜도 없다.
십력(十力)도 4무소외(四無所畏)도 없고, 필경에 12인연(十二因緣)의 큰 강을 건널 수 없고,
중생 제근(諸根)의 이둔(利鈍)과 차별함을 잘 알 수 없고,
2제(二諦)에 대한 의심을 길이 끊을 수도 없고,
중생의 갖가지 마음이 반연하는 경계도 알지 못하며,
제일의공(第一義空)를 잘 설할 수도 없으니,
그래서 2승(二乘)은 4무애(四無礙)가 없는 것이니라.」

*煖法,頂法,忍法,世第一法; 4가행위(四加行位) 즉 점차 수행이 더해져서 얻어가는 네 가지 지위.
無著菩薩은 顯揚聖教論에서 「논하여 가로되, 16행지(四諦十六行智)로부터 다시 修習해 나아가
먼저 自心에 攀緣하여 모두를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를 난법(煖法)이라 하고,
여기서 더 올라가 진리를 간택(簡擇)하는 지혜가 생기면 이를 정법(頂法)이라 하며,
거기서 더 올라가 결정한 깨달음의 지혜가 생기면 이를 인법(忍法)이라 하며,
다시 더 올라가 구경(究竟)한 깨달음의 지혜가 생기면 이를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한다」고 하였다.

 

迦葉菩薩白佛言:「世尊!若諸聲聞緣覺之人,一切無有四無礙者,
云何世尊說舍利弗智慧第一?大目犍連神通第一?摩訶拘絺羅四無礙第一?
如其無者,如來何故作如是說?」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성문 연각들 모두가 4무애(四無礙)가 없다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사리불더러 '지혜 제일'이라 하시고,

대목건련(大目犍連)더러는 '신통 제일'이라 하시며,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는 '4무애 제일'이라 하시나이까?
그들에게 없는 것을 여래는 어째서 그리 말씀하셨나이까?」

*摩訶拘絺羅; 舍利弗의 母舅(어머니의 시아버지)로서 四辯才를 얻어

'答問第一'이라 불리웠던 부처님의 제자. 

 

爾時世尊讚迦葉言:「善哉,善哉!善男子!
譬如恒河有無量水,辛頭大河水亦無量,博叉大河水亦無量,悉陀大河水亦無量,
阿耨達池水亦無量,大海之中水亦無量。如是諸水雖同無量,然其多少其實不等;
聲聞緣覺及諸菩薩四無礙智,亦復如是,善男子!若說等者,無有是處。
善男子!我為凡夫說,摩訶拘絺羅四無礙智為最第一,汝所問者其義如是。
善男子!聲聞之人,或有得一,或有得二;若具足四,無有是處。」

이에 세존께서 가섭을 칭찬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마치 항하(恒河)에는 무량한 물이 있고, 신두(辛頭*) 큰강의 물도 무량하고,
박차(博叉) 큰강의 물도 무량하고, 실타(悉陀) 큰강의 물도 무량하고,
아뇩달지(阿耨達池*)의 물도 또한 무량하고, 대해(大海)의 물도 무량하거니와,
이러한 물들이 비록 무량함은 같더라도 그 많고 적음은 실로 같지 않듯이,
성문 연각과 보살들의 4무애지(四無礙智)도 그러하거늘,
선남자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범부들에게 마하구치라의 4무애지가 가장 제일이라 말했거니와,
네가 그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선남자야! 성문인 사람은 하나를 얻거나 혹 둘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넷을 구족히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니라.」

*印度의 8대강; 1)恒河(Gavgā) 2)閻魔羅(Yamunā) 3)薩羅(Sarabhu)

 4)阿夷羅跋提(Aciravatī) 5)摩河(Mahī) 6)辛頭(Sindhu) 7)博叉(Vaksu) 8)悉陀(Śītā).
*阿耨達池(Anavatapta sara); 印度에서 古代로부터 전해오는 염부제 4대강의 발원지.

 

迦葉菩薩白佛言:「世尊!
如佛先說梵行品中,菩薩知見得四無礙者,菩薩知見則無所得,亦無有心言無所得。
世尊!是菩薩摩訶薩實無所得。若使菩薩心有得者,則非菩薩,名為凡夫。
云何如來說言菩薩而有所得?」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범행품 설하신 가운데
보살이 법상(法相)을 지견(知見)하여 4무애를 얻는다 하셨으나,
보살이 지견(知見)하더라도 얻을 것이 없겠사옵고, 또 그럴 마음이 없다 해도 무소득이리니,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이 실로 무소득이겠거니와,
만일 보살이 마음에 소득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요 범부라 할 터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보살이 얻는 것이 있다 하시나이까?」

 

佛言:「善男子!善哉,善哉!我將欲說,而汝復問。
善男子!菩薩摩訶薩實無所得,無所得者名四無礙。
善男子!以何義故,無所得者名為無礙?若有得者則名為礙,有障礙者名四顛倒。
善男子!菩薩摩訶薩無四倒故,故得無礙,是故菩薩名無所得。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참으로 장하도다. 내가 하려는 말을 네가 물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실로 무소득이거니와, 이 무소득을 4무애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무슨 뜻에서 무소득을 무애라 하는가?
만일 소득이 있는 즉 장애라 할 것이요, 장애가 있는 즉 4전도(四顛倒)라 하리니,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4전도가 없기에 무애를 얻는 것이라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則名為慧,菩薩摩訶薩得是慧故名無所得,有所得者名為無明。
菩薩永斷無明闇故,故無所得,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이란 곧 혜(慧)이니,
보살마하살은 이 혜(慧)를 얻은 까닭에 무소득이라 하거니와,
소득이 있다면 무명(無明)이라 할 것이요,
보살은 무명의 어둠을 영원히 끊었기에 무소득인 것이니,
그 때문에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名大涅槃,菩薩摩訶薩安住如是大涅槃中,不見一切諸法性相,
是故菩薩名無所得。有所得者名二十五有,菩薩永斷二十五有,得大涅槃,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을 대열반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대열반 가운데 안주하여 일체 제법(諸法)의 성상(性相)을 보지 않는지라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25유(有)라 하려니와,
보살은 26유를 영단(永斷)하여 대열반을 얻은 것이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名為大乘,菩薩摩訶薩不住諸法,故得大乘,是故菩薩名無所得。
有所得者名為聲聞辟支佛道,菩薩永斷二乘道故,得於佛道,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을 대승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제법(諸法)에 머물지 않음으로써 대승을 얻는지라
그 때문에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성문 벽지불의 도(道)라 하려니와,
보살은 2승(二乘)의 도를 영단하여 불도(佛道)를 얻은 것이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名方等經,菩薩讀誦如是經故得大涅槃,是故菩薩名無所得。
有所得者名十一部經,菩薩不修,純說方等大乘經典,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을 방등경전이라 하나니,
보살은 이러한 경전을 독송(讀誦)하므로써 대열반을 얻기에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십이부경(十一部經)이라 하려니와,
보살은 십이부경을 닦지 않고, 순전히 방등대승경전만을 설하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名為虛空,世間無物名為虛空,
菩薩得是虛空三昧,無所見故,是故菩薩名無所得。
有所得者名生死輪,一切凡夫輪迴生死,故有所見。

菩薩永斷一切生死,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을 허공(虛空)이라 하나니,
세간에서는 사물이 없는 것을 허공이라 하지만 보살은 이 허공삼매를 얻어 보는 바가 없으니,
그 때문에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생사의 굴레[生死輪]인 것이요,
일체 범부는 생사를 윤회하므로 보는 바가 있으려니와,
보살은 일체 생사를 영단하였으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無所得者,名常樂我淨,
菩薩摩訶薩見佛性故,得常樂我淨,是故菩薩名無所得。
有所得者,名無常、無樂、無我、無淨,菩薩摩訶薩斷是無常無樂無我無淨,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무소득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불성(佛性)을 봄으로써 상락아정을 얻기에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무상(無常), 무락(無樂), 무아(無我), 무정(無淨)이려니와,
보살마하살은 이 무상, 무락, 무아, 무정을 영단하였으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名第一義空,菩薩摩訶薩觀第一義空,悉無所見,是故菩薩名無所得。
有所得者名為五見,菩薩永斷是五見故,得第一義空,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을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제일의공을 관찰하여 보는 바가 다 없기에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오견(五見)이려니와,
보살은 이 오견을 영단함으로써 제일의공을 얻은 것이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無所得者名為阿耨多羅三藐三菩提,
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悉無所見,是故菩薩名無所得。
有所得者,名為聲聞緣覺菩提,菩薩永斷二乘菩提,是故菩薩名無所得。

「또 선남자야! 무소득(無所得)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는 보는 바가 아무 것도 없기에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며, 소득이 있다는 것은 성문 연각의 보리(菩提)이려니와,
보살은 2승(二乘)의 보리(菩提)를 영단하였으니, 그래서 보살을 무소득이라 하는 것이니라.

 

「善男子!汝之所問亦無所得,我之所說亦無所得。若有所得,是魔眷屬,非我弟子。」

「선남자야! 네가 물은 바도 무소득이요, 내가 설한 바 또한 무소득이거니와,
만일 소득이 있다 한다면 이는 마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為我說是菩薩無所得時,無量眾生斷有相心,
以是事故,我敢諮啟,無所得義,令如是等無量眾生,離魔眷屬,為佛弟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저에게 이 보살의 무소득을 설하실 때
무량한 중생이 모양 있는 마음[有相心]을 끊을 것이오라,
이 일로써 제가 감히 무소득의 뜻을 여쭈었더니,
이와 같은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마의 권속에서 벗어나 불제자가 되게 하셨나이다.」

 

迦葉菩薩白佛言:「世尊!如來先於娑羅雙樹間,為純陀說偈: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전에 사라쌍수(娑羅雙樹) 속에서 순타(純陀)에게 이렇게 게송을 설하셨나이다.  

 

   「『本有今無,  本無今有。
  三世有法,  無有是處。』

  「『본래 있던 것이 지금에 없고,
   본래 없던 것이 지금에 있으니,
   삼세(三世)에 법(法)이 있다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世尊!是義云何?」

「세존이시여! 이 뜻이 무엇이옵니까?」

 

佛言:「善男子!我為化度諸眾生故,而作是說,亦為聲聞辟支佛故,而作是說,
亦為文殊師利法王子故,而作是說;不但正為純陀一人說是偈也。
時文殊師利將欲問我,我知其心,而為說之。我既說已,文殊師利即得解了。」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중생들을 화도(化度)하고자 그런 말을 하고,
또 성문 벽지불을 위해 그렇게 말했으며, 또 문수사리 법왕자를 위해 그렇게 말했으니,
다만 꼭 순타(純陀) 한 사람만을 위해 그 게송을 설한 것이 아니었거니와,
마침 문수사리가 내게 물으려 하였는지라 내가 그의 마음을 알고 설해 주었더니,
내 말 끝에 문수사리가 곧 알아차렸느니라.」

 

迦葉菩薩言:「世尊!如文殊等,詎有幾人,能了是義?惟願如來更為大眾廣分別說。」

가섭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문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어서 그 뜻을 알겠나이까?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대중을 위해 널리 분별하여 설하소서.」

 

「善男子!諦聽,諦聽,今當為汝重敷演之。
言本有者,我昔本有無量煩惱,以煩惱故,現在無有大般涅槃。
言本無者,本無般若波羅蜜,以無般若波羅蜜故,現在具有諸煩惱結。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說言如來去、來、現在有煩惱者,無有是處。

「선남자야! 잘 듣거라. 이제 너에게 거듭 부연(敷演)해 주리라.
 '본래 있던 것'이란 내게 옛적부터 본래 무량한 번뇌가 있어서
그 번뇌 때문에 현재에 대반열반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 없던 것'이란 본래 반야바라밀이 없었거니와,
반야바라밀이 없음으로써 현재에 온갖 번뇌와 결박(結縛)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니,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에 번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言本有者,我本有父母和合之身,是故現在無有金剛微妙法身。
言本無者,我身本無三十二相、八十種好;
以本無有三十二相、八十種好故,現在具有四百四病。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說言如來去、來、現在有病苦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本有]'이란 나는 본래 부모의 화합에 따른 몸이 있으니,
그러므로 현재에 금강(金剛)의 미묘한 법신이 없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내 몸은 본래 32상과 80종호가 없거니와,
본래 32상과 80종호가 없기 때문에 현재 404가지 병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라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에 병고(病苦)가 있다고 말하면 옳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言本有者,我昔本有無常、無我、無樂、無淨,
以有無常、無我、無樂、無淨故,現在無有阿耨多羅三藐三菩提。
言本無者,本不見佛性,以不見故,無常、樂、我、淨。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
說言如來去、來、現在無常、樂、我、淨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이란 내게 옛적부터 본래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없고
상락아정이 없기 때문에 현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없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본래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니,
보지 못함으로써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없다는 것이라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가 과거, 미래, 현재에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言本有者,本有凡夫修苦行心,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是事故,現在不能破壞四魔。言本無者,我本無有六波羅蜜,以本無有六波羅蜜故,
修行凡夫苦行之心,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說言如來去、來、現在有苦行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이란 본래 범부에게 고행(苦行)을 닦으려는,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건만
이 일로써 현재 4마(魔)를 쳐부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내게 본래 6바라밀이 없고, 이 6바라밀이 없기 때문에
범부는 고행하는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수행(修行)하는 것이니,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에 고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言本有者,我昔本有雜食之身,以有食身故,現在無有無邊之身。
言本無者,本無三十七助道法,以無三十七助道法故,現在具有雜食之身。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說言如來去、來、現在有雜食身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이란 내게 예로부터 본래 잡식하는 몸이 있었으니,
이 먹는 몸이 있음으로써 현재에 무변신(無邊身*)이 없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본래 37조도법(助道法*)이 없었으니,
37조도법이 없음으로써 현재에 잡식의 몸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라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에 잡식하는 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無邊身; 몸의 끝이 없어서 크기를 알 수 없는 몸.
*三十七助道法; 三十七道品, 三十七覺支, 三十七菩提分.

지혜를 추구하여 열반의 경계로 나아가는 37종 수행방법.
 ①四念處(身,受,心,法念處) ②四正勤(已生惡令永斷,未生惡令不生,未生善令生,已生善令增長)
 ③四如意足(欲,精進,念,思惟如意足) ④五根(信,精進,念,定,慧根) ⑤五力(信,精進,念,定,慧力)
 ⑥七覺分(擇法,精進,喜,除,捨,定,念覺分) ⑦八正道(正見,正思惟,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

 

「復次善男子,言本有者,我昔本有一切法中取著之心,以是事故,現在無有畢竟空定。
言本無者,我本無有中道實義,以無中道真實義故,於一切法則有著心。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
說言如來去、來、現在說一切法是有相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이란 나는 예로부터 본래 일체법에 취착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 일로써 현재에 필경의 공정(空定*)이 없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내게 본래 중도(中道*)의 진실한 이치가 없으니,
중도의 진실한 이치가 없음으로써 일체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라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가 과거, 미래, 현재에
일체법을 설하신 것은 상(相)이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면 옳지 못하느니라.

*空定; 無色定, 공상(空相)을 관(觀)하는 선정(禪定).
 4空定(4無色定); 空無邊處定, 識無邊處定, 無所有處定, 非想非非想處定.
*中道; 양변(兩邊)의 극단(極端)에 치우치거나 의지하지 않은 관념 또는 행위.

中은 곧 不二의 뜻이다.

 

「復次善男子!言本有者,我初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
有諸鈍根聲聞弟子,以有鈍根聲聞弟子故,不得演說一乘之實。
言本無者,本無利根、人中象王迦葉菩薩等,以無利根迦葉等故,隨宜方便開示三乘。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
說言如來去、來、現在畢竟演說三乘法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이란
내가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둔한 근기의 성문(聲聞)제자들이 있었으니,
둔한 근기의 성문 제자들이 있었기에 일승(一乘)의 진실함을 연설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본래 영리한 근기의 인간 중 코끼리인 가섭보살 등이 없었으니,
이근(利根)의 가섭 같은 이가 없었는지라 마땅한 방편을 쫓아 삼승(三乘)을 열어 보인 것이라.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는 과거, 미래, 현재에
삼승법(三乘法)을 필경히 연설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復次善男子!言本有者,我本說言却後三月,於娑羅雙樹當般涅槃、
是故現在不得演說大方等典大般涅槃。
言本無者,本昔無有文殊師利大菩薩等,以無有故,現在說言如來無常。
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說言如來去、來、現在是無常者,無有是處。

「또 선남자야! '본래 있던 것'이란 내가 본래 석 달 뒤에 사라쌍수에서 반열반하리라 말하였으니,
그래서 현재 부득이 대방등경전 대반열반을 연설한다는 것이요,
 '본래 없던 것'이란 본래 문수사리 대보살 등이 없었으니,
없음으로 인해 현재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거니와,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여래가 과거, 미래, 현재에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善男子!如來普為諸眾生故,雖知諸法,說言不知,雖見諸法,說言不見,有相之法說言無相,
無相之法說言有相,實有無常說言有常,實有有常說言無常,我樂淨等亦復如是。
三乘之法說言一乘,一乘之法隨宜說三,略相說廣,廣相說略,四重之法說偷蘭遮,
偷蘭遮法說言四重,犯說非犯,非犯說犯,輕罪說重,重罪說輕。
何以故?如來明見眾生根故。善男子!如來雖作是說,終無虛妄。
何以故?虛妄之語即是罪過,如來悉斷一切罪過,云何當有虛妄語耶?
善男子!如來雖無虛妄之言,若知眾生因虛妄說得法利者,隨宜方便則為說之。
善男子!一切世諦,若於如來即是第一義諦。
何以故?諸佛世尊為第一義故,說於世諦,亦令眾生得第一義諦。
若使眾生不得如是第一義者,諸佛終不宣說世諦。
善男子!如來有時演說世諦,眾生謂佛說第一義諦;有時演說第一義諦,眾生謂佛說於世諦。
是則諸佛甚深境界,非是聲聞緣覺所知。
善男子!是故汝先不應難言,菩薩摩訶薩無所得也。菩薩常得第一義諦,云何難言無所得耶?」

「선남자야! 여래는 널리 중생들을 위하므로 비록 제법(諸法)을 알되 알지 못한다 하고,
제법(諸法)을 보되 보지 못한다 말하며, 유상(有相)의 법으로 무상(無相)이라 설하고,
무상(無相)의 법으로 유상(有相)이라 설하며, 실로 무상(無常)한 것으로 유상(有常)이라 설하고,
실로 유상(有常)한 것으로 무상(無常)이라 설하거니와, 아락정(我樂淨)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삼승(三乘)의 법으로 일승(一乘)이라 설하고,
일승(一乘)의 법으로 편의에 따라 삼승(三乘)이라 설하며,
약문(略門*)의 상(相)으로 광문(廣門*)이라 설하고,
광문(廣門)의 상(相)으로 약문(略門)이라 설하며,
4중(四重*)의 법으로 투란차(偷蘭遮*)라 설하고, 투란차법으로 4중이라 설하며,
범(犯)한 것으로 범한 것이 아니다고 설하고, 범하지 않은 것으로 범한 것이다고 설하며,
가벼운 죄로 무겁다 설하고, 무거운 죄로 가볍다 설하나니,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의 근기를 분명히 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비록 그렇게 말하더라도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허망한 말은 곧 죄의 허물[罪過]인 것이요,
여래는 일체의 죄과(罪過)를 다 끊었거늘 어찌 허망한 말이 있겠느냐?

선남자야! 여래가 비록 허망한 말이 없다지만
만약 중생이 허망한 말로 인해 법리(法利)를 얻을 수 있다면
편의에 따른 방편으로 허망한 말을 하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세제(世諦*)가 만약 여래에게라면 곧 제일의제(第一義諦)인 것이니,
왜냐하면, 제불(諸佛)세존은 제일의(第一義) 때문에 세제(世諦)를 설하시고,
중생으로 하여금 제일의제를 얻게 하시기 때문이니라.
만일 중생으로 하여금 제일의를 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제불(諸佛)은 결코 세제(世諦)를 설하시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어느 때는 세제(世諦)를 연설하거든
중생들은 부처님이 제일의제를 설하신다 하고,
어느 때는 제일의제를 연설하거든 중생들은 부처님이 세제(世諦)를 설하신다 하나니,
이것이 곧 제불(諸佛)의 심오한 경계요, 성문 연각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너는 앞서에 힐난하였듯이
보살마하살이 얻는 바가 없다[無所得]고 해서는 않되느니라.
보살은 늘 제일의제를 얻거늘 어찌 무소득이라 하겠느냐?」

*廣略相入; 광범위한 팔만사천의 佛法을 아울러 諸法의 여러 差別相을 보여주는 것을 廣門이라 하고,
  顯示그 差別相의 平等한 理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略門이라 하며,

  이 兩門이 互相融通한 즉 相入이라 한다.
*四重; 四重罪, 四重禁, 四波羅夷罪. 즉 殺生, 偷盜, 邪淫, 妄語를 말한다.
*偷蘭遮; 六聚罪 중 하나로 大罪라 역한다. 다른 五聚罪 이외의 가볍고 중한 모든 죄를 투란차라 한다.
  六聚罪는 波羅夷(pārājika), 僧伽婆尸沙(sajghāvaśesa), 偷蘭遮(sthūlātyaya),
  波逸提(pāyattika), 波羅提提舍尼(pratideśanīya), 突吉羅(duskrta)를 말한다.

*世諦; 世間의 事實, 世俗人이 알아야 할 道理. 俗諦, 世俗諦라고도 한다.

 

迦葉復言:「世尊!第一義諦亦名為道,亦名菩提,亦名涅槃。
若有菩薩言有得道、菩提、涅槃,即是無常。
何以故?法若常者則不可得,猶如虛空誰有得者?
世尊!如世間物,本無今有,名為無常;道亦如是,道若可得,則名無常;
法若常者,無得無生,猶如佛性,無得無生。
世尊!夫道者,非色、非不色,不長、不短、非高、非下、非生、非滅、
非赤、非白、非青、非黃、非有、非無,云何如來說言可得?菩提涅槃亦復如是。」

가섭이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일의제는 도(道)라고도 하고, 보리(菩提)라고도 하고, 또한 열반이라고도 하옵거니와,
만약 어떤 보살이 도(道)를 얻었다고 말하거나
보리(菩提)나 열반을 얻었다 하면 이것은 무상(無常)이겠나이다.
왜냐하면, 법(法)이 만일 항상한 것이라면 얻을 수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을 터이온데 뉘라서 얻겠나이까?
세존이시여! 세간의 물건처럼 본래 없던 것이 지금에 있는 것을 무상(無常)하다 하듯이,
도(道)도 그러하여 도가 얻어지는 것인 즉 무상(無常)하다 할 것이요,
법(法)이 만일 항상한 것이라면 무생(無生)을 얻지 못함이
마치 불성(佛性)이 무생(無生)을 얻지 않는 것과 같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대저 도(道)란 색(色)도 아니고 색 아닌 것도 아니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아니하며,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니며,
생(生)하는 것도 아니고 멸(滅)하는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흰 것도 푸른 것도 누런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얻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보리(菩提)와 열반도 마찬가지이옵니다.」

 

佛言:「如是,如是。善男子!道有二種:一者常,二者無常。
菩提之相亦有二種:一者常,二者無常,涅槃亦爾。
外道道者,名為無常,內道道者名之為常。
聲聞緣覺所有菩提名為無常,菩薩諸佛所有菩提名之為常。
外解脫者名為無常,內解脫者名之為常。善男子!道與菩提及以涅槃悉名為常。
一切眾生,常為無量煩惱所覆,無慧眼故,不能得見。
而諸眾生為欲見故,修戒、定、慧,以修行故,見道、菩提及以涅槃,
是名菩薩得道、菩提及涅槃也。道之性相,實不生滅,以是義故,不可捉持。
善男子!道者雖無色像可見、稱量可知,而實有用。
善男子!如眾生心,雖非是色、非長、非短、非麁、非細、非縛、非解,非是見法,
而亦是有,以是義故,我為須達說言:『長者!心為城主,長者若不護心,則不護身、口。
若護心者,則護身、口。以不善護是身、口故,令諸眾生到三惡趣。
護身、口者,則令眾生得人天、涅槃,得名真實。其不得者,不名真實。』
善男子!道與菩提及以涅槃亦復如是,亦有,亦常。如其無者,云何能斷一切煩惱?
以其有故,一切菩薩了了見知。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도(道)에는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항상한 것[常]이요, 둘째는 무상(無常)한 것이며,
보리(菩提)의 상(相)도 또한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항상한 것이요, 둘째는 무상한 것이듯이,
열반도 그러하여 외도(外道)들의 도는 무상(無常)하다 하고, 내도(內道)의 도는 항상하다 하며,
성문 연각이 소유하는 보리(菩提)는 무상하다 하고,
보살과 제불(諸佛)이 소유하는 보리는 항상하다 하며,
외도들의 해탈은 무상하다 하거니와, 불도(佛道) 안의 해탈은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도(道)와 보리(菩提) 및 열반을 모두 항상하다[常] 하거니와,
일체중생은 항상 무량한 번뇌에 덮여서 혜안(慧眼)이 없으니 득견(得見)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중생들이 보고자 하여 계정혜(戒定慧)를 닦는다면 그 수행으로써
도(道)와 보리(菩提) 및 열반을 보리니, 이것이 보살이 도와 보리 및 열반을 얻는다는 것이니라.
도(道)의 성상(性相)은 실로 생멸(生滅)하지 않기에 이런 의미에서 쥐어볼 수 없다는 것이니,
선남자야! 도(道)란 비록 색상(色像)도 볼 수도 없고, 양을 헤아려 알 수도 없으나
실로 작용은 있느니라. 선남자야! 중생의 마음이 비록 색(色)도 아니고,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고, 거친 것도 고운 것도 아니며, 얽매인 것도 풀린 것도 아니고,
보이는 법도 이니지만 그러나 또한 있는 것이니,
이런 의미에서 내가 수달(須達*)에게 이렇게 말했느니라.
『장자(長者)여! 마음이 성주(城主)인지라
장자가 마음을 지키지 못한 즉 몸과 입을 지키지 못할 것이요,
만일 마음을 지키면 곧 몸과 입을 지킨 것입니다.
이 몸과 입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삼악취(三惡趣)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니,
몸과 입을 지키는 것이 곧 중생으로 하여금
인천(人天)과 열반을 얻고, 진실하다는 이름을 얻게 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진실하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남자야! 도(道)와 보리(菩提) 및 열반도 이와 같아서 또한 있고, 또한 항상하나니,
그것을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일체번뇌를 끊을 수 있겠느냐?
있기 때문에 일체보살이 명백(明白;了了)히 견지(見知)하는 것이니라.

*須達(Sudatta); 須達多, 蘇達多. 譯 善與, 善給, 善授.  

祇園精舍의 施主인 舍衛國 給孤獨長者의 本名이다.

 

「善男子!見有二種:一相貌見,二了了見。
云何相貌見?如遠見烟,名為見火,實不見火;雖不見火,亦非虛妄。
見空中鶴,便言見水;雖不見水,亦非虛妄。如見花葉,便言見根;雖不見根,亦非虛妄。
如人遙見籬間牛角,便言見牛;雖不見牛,亦非虛妄。
如見女人懷妊,便言見欲;雖不見欲,亦非虛妄。
如見樹生葉,便言見水;雖不見水,亦非虛妄。又如見雲,便言見雨;雖不見雨,亦非虛妄。
如見身業及以口業,便言見心;雖不見心,亦非虛妄。是名相貌見。
云何了了見?如眼見色。善男子!如人眼根清淨不壞,自觀掌中阿摩勒果。
菩薩摩訶薩了了見道、菩提、涅槃亦復如是。雖如是見,初無見相。
善男子!以是因緣,我於往昔告舍利弗:
『一切世間,若有沙門、若婆羅門、若天、若魔、若梵、若人之所不知、不見、不覺,
惟有如來悉知、見、覺,及諸菩薩亦復如是。
舍利弗!若諸世間所知、見、覺,我與菩薩亦知見覺。
世間眾生之所不知、不見、不覺,亦不自知不知、見、覺;
世間眾生所知、見、覺,便自說言我知、見、覺。
舍利弗!如來一切悉知見覺,亦不自言我知見覺;一切菩薩亦復如是。
何以故?若使如來作知見覺相,當知是則非佛世尊,名為凡夫,菩薩亦爾。』」

「선남자야! 견(見)에는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상모견(相貌見)이요, 둘은 요료견(了了見)이니라.
어떤 것이 용모(容貌;相貌)를 보는 것인가?
멀리서 연기를 보고 불을 보았다 한다면 사실은 불을 본 것이 아니로되
비록 불을 보지 못했다지만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닌 것과 같으니라.
공중의 학을 보고 물을 보았다고 한다면 비록 물을 보지는 못하였으되 허망한 것은 아니며,
꽃잎을 보고 뿌리를 보았다고 한다면 비록 뿌리를 보지는 못하였으되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니며,
사람이 멀리서 소뿔을 보고 소를 보았다고 한다면
비록 소를 보지는 못하였으되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니며,
회임(懷妊)한 여인을 보고 애욕(愛欲)을 보았다고 한다면
비록 애욕을 보지는 못하였으되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니며,
나무에서 잎이 나는 것을 보고 물을 보았다고 한다면
비록 물을 보지는 못하였으되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니며,
또 구름을 보고 비를 보았노라 말한다면 비록 비를 보지는 못하였으되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니며,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보고서 마음을 보았노라 한다면
비록 마음 보지는 못하였으되 또한 허망한 것은 아니니, 이것을 상모견(相貌見)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명백히 보는 것[了了見]인가? 눈으로 색(色)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사람이 깨끗하고 말짱한 안근(眼根)으로
제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阿摩勒)열매를 보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도(道)와 보리(菩提), 열반을 명백[了了]히 보는 것도 그와 같거니와,
비록 그렇게 본다지만 애초부터 상(相)을 보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이 인연으로 내가 옛적에 사리불에게 이렇게 말했느니라.
『일체세간의 사문이나 바라문, 천(天), 마(魔), 범천, 인간이 알고 보고 깨달을 수 있는 바가 아니라
오직 여래만이 다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요, 모든 보살도 그와 마찬가지니라.
사리불아! 만일 모든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면 나와 보살도 또한 알고 보고 깨닫거니와,
세간 중생이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은
그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아노라 하지 않고,
세간 중생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내가 알고 보고 깨닫노라고 쉽게 말하느니라.
사리불아! 여래가 모든 것을 다 알고 보고 느끼되, 내가 알고 보고 깨닫노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듯이, 모든 보살들도 그와 같이 하나니,
왜냐하면, 알고 보고 깨닫는 상(相)을 짓는 여래라면
이는 곧 부처님 세존이 아니라 범부라 할 것이며, 보살도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了了見; 頓悟入道要門論에 「體寂湛然,無有去來,不離世流,世流不能流,坦然自在,

即是了了見也。」라 하였다.

 

迦葉菩薩言:「如佛世尊為舍利弗說,世間知者,我亦得知;世間不知,我亦悉知。其義云何?」

가섭보살이 아뢰었다.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세간이 아는 것은 나 또한 알거니와, 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나는 다 아느니라'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옵니까?」

 

「善男子!一切世間,不知、不見、不覺佛性;若有知、見、覺佛性者,不名世間,名為菩薩。
世間之人,亦復不知不見不覺十二部經、十二因緣、四倒、四諦、三十七品、
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般涅槃;若知見覺者,不名世間,當名菩薩。
善男子!是名世間不知見覺。云何世間所知見覺?
所謂梵天、自在天、八臂天,性、時、微塵、法及非法,是造化主世界終始斷常二見,
說言初禪至非非想,名為涅槃。善男子!是名世間所知見覺。
菩薩摩訶薩於如是事亦知見覺,菩薩如是知見覺已,若言不知、不見、不覺,是為虛妄。
虛妄之法,則為是罪,以是罪故,墮於地獄。
善男子!若男、若女、若沙門、若婆羅門,說言無道、菩提、涅槃,
當知是輩,名一闡提,魔之眷屬,名為謗法,如是謗法,名謗諸佛。
如是之人,不名世間,不名非世間。」

「선남자야! 일체세간은 불성(佛性)을 알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거니와,
만일 누가 불성을 알고 보고 깨닫는다면 세간이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할 것이니라.。
세간 사람들은 또 12부경과 12인연, 4전도, 4성제, 37도품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대반열반을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거니와,
만약 알고 보고 깨닫는다면 세간이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할 것이니,
선남자야! 이를 일러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인가?
소위 범천(梵天), 자재천(自在天), 팔비천(八臂天)과 성품[性], 때[時], 미진(微塵)
그리고 법(法)과 비법(非法), 이것들이 조화주(造化主) 세계의 끝과 시작이라는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두 견해와
초선(初禪)에서 비비상처선(非非想處禪)에 이르기까지를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일을 또한 알고 보고 깨닫거니와,
보살이 이와 같이 알고 보고 깨닫고서도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허망이 될 것이요,
허망한 법인 즉 죄가 되리니, 이 죄로써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나 사문, 바라문이 도(道)와 보리(菩提), 열반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무리는 일천제나 마(魔)의 권속이요, 법을 비방했다 하려니와,
이렇듯 법을 비방하는 것은 제불(諸佛)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은 세간이라 하지도 못하고 세간 아니다고도 하지 못할 것이니라.」

 

爾時迦葉聞是事已,即以偈頌而讚歎佛:

이때 가섭이 이 사실을 듣고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大慈愍眾生, 故令我歸依, 善拔眾毒箭, 故稱大醫王。

 世醫所療治, 雖差還復生, 如來所治者, 畢竟不復發。

 世尊甘露藥, 以施諸眾生, 眾生既服已, 不死亦不生。

 如來今為我, 演說大涅槃, 眾生聞祕藏, 即得不生滅。」

 

 「대자비로 중생을 애민하시어
 그로써 저로 하여금 귀의케 하시고,
 중생들의 독화살을 뽑아 주시니,
 그래서 대의왕(大醫王)이라 칭하오이다.

 

 세간의 의원이 치료하면
 나았다가도 다시 생기거니와
 여래께서 치료하시면
 필경에 재발하지 않으리이다.

 

 세존께서는 감로약(甘露藥)을
 중생들에게 베푸시니,
 중생들이 기왕 먹고나면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으리이다.

 

 여래께서 지금 저희들에게
 대열반을 연설하시니
 중생들이 비밀한 법장을 들은 즉
 생멸하지 않게 되리이다.」

 

迦葉菩薩說是偈已,即白佛言:「世尊!
如佛所說,一切世間不知、見、覺,菩薩悉能知、見、覺者,
若使菩薩是世間者,不得說言世間不知、不見、不覺,而是菩薩能知見覺。
若非世間,有何異相?」

가섭보살이 이 게송을 설하고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일체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지만
보살은 능히 다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하신 바와 같다면,
만약 보살이 세간이라면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지만
이 보살은 능히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려니와,
만일 세간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모양이 있나이까?」

 

佛言:「善男子!言菩薩者,亦是世間,亦非世間。
不知見覺者,名為世間,知見覺者,不名世間。汝言有何異者?我今當說。
善男子!若男、若女,若有初聞是涅槃經,即生敬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是則名為世間。菩薩一切世間不知、見、覺,如是菩薩,亦同世間不知見覺。
菩薩聞是涅槃經已,知有世間不知見覺,應是菩薩所知見覺,知是事已,即自思惟:
『我當云何方便修習,得知見覺?』覆自念言:『惟當深心修持淨戒。』
善男子!菩薩爾時以是因緣,於未來世,在在生處,戒常清淨。
善男子!菩薩摩訶薩以戒淨故,在在生處,常無憍慢、邪見疑網,
終不說言如來畢竟入於涅槃,是名菩薩修持淨戒。
戒既清淨,次修禪定,以修定故,在在生處正念不忘,
所謂一切眾生悉有佛性、十二部經、諸佛世尊常樂我淨。
一切菩薩安住方等大涅槃經,悉見佛性,如是等事,憶而不忘,
因修定故得十一空,是名菩薩修清淨定。
戒定已備,次修淨慧,以修慧故,初不計著身中有我、我中有身、是身是我、非身非我,
是名菩薩修習淨慧。以修慧故,所受持戒牢固不動。
善男子!譬如須彌不為四風之所傾動,菩薩摩訶薩亦復如是,不為四倒之所傾動。
善男子!菩薩爾時自知見覺,所受持戒無有傾動,是名菩薩所知見覺,非世間也。
善男子!菩薩見所持戒牢固不動,心無悔恨,無悔恨故心得歡喜,得歡喜故心得悅樂,
得悅樂故心則安隱,心安隱故得無動定,得無動定故得實知見,實知見故厭離生死,
厭離生死故便得解脫,得解脫故明見佛性,是名菩薩所知見覺,非世間也。
善男子!是名世間不知見覺,而是菩薩所知見覺。」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이라 하는 것은 세간이기도 하고 세간이 아니기도 하여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면 세간이라 하고, 알고 보고 깨달으면 세간이라 하지 않느니라.
네가 다른 어떤 것이 있는가 물었으니, 내 이제 말하리라.
선남자야! 어떤 남자나 여인이 처음 이 열반경을 듣고 공경하는 믿음이 생겨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면 이것을 곧 세간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일체세간이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면
그렇듯 보살도 세간처럼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지만
보살이 이 열반경을 듣고나서는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할지언정
이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이 사실을 알고서 곧 스스로
『내가 어떻게 방편을 닦아 익혀야 알고 보고 깨달아지겠는가?』 생각하고서,
스스로 말하기를, 『오직 마음 깊이 청정한 계를 닦아 지녀야 한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보살은 이때의 이 인연으로 미래세에 태어나는 곳곳마다 계를 늘 청정히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계를 청정히 함으로써 태어나는 곳곳마다 항상 교만과
사견(邪見)과 의망(疑網)이 없어서 결코 '여래는 필경 열반에 드신다'고 말하지 않나니,
이것을 일러 '보살이 청정한 계를 닦아 지닌다'고 하느니라.

계를 청정히 한 다음 선정(禪定)을 닦고, 선정을 닦음으로써
태어나는 곳곳마다 바르게 기억하여 잊지 않나니,
소위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과 12부경과 제불세존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있다는 것과
일체보살은 방등대열반경에 안주하여 불성(佛性)을 본다는
이와 같은 사실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다는 것이며,

선정을 닦은 인연으로 11공(十一空)을 얻게 되나니,
이를 일러 '보살이 청정한 정(定)을 닦는다'고 하느니라.

계(戒)와 정(定)을 구비한 다음 청정한 혜(慧)를 닦고, 혜(慧)를 닦으므로써
애초에 몸 안에 내[我]가 있고, 내 안에 몸이 있다거나
이 몸이 나이고 몸아닌 것은 나 아니라거나에 집착하지 않나니,
이를 일러 '보살이 정혜(淨慧)를 닦아 익힌다'고 하느니라.

혜(慧)를 닦으므로써 계(戒)를 지니는 바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나니,
선남자야! 마치 수미산이 사방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4전도[四倒]에 흔들리지 않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이때 수지(受持)한 계(戒)가 흔들림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보고 깨닫나니,
이를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세간이 아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소지한 계가 견고하여 흔들림 없음을 보면
마음에 회한(悔恨)이 없거니와, 회한이 없으니, 마음에 기쁨을 얻고,
기쁨을 얻으니, 마음에 열락(悅樂)을 얻고, 열락(悅樂)을 얻음으니, 마음이 안은(安隱)해지며,
마음이 안은(安隱)하니, 흔들림 없는 정(定)을 얻고,
흔들림 없는 정(定)을 얻음으로써 여실히 지견(知見)하며,
여실히 지견(知見)함으로써 생사를 염리(厭離)하고,
생사를 염리(厭離)하는 까닭에 문득 해탈을 얻으며,
해탈을 얻는 까닭에 불성(佛性)을 분명히 보나니,
이를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세간이 아니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를 또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되,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하느니라.」

 

迦葉復言:「云何菩薩修持淨戒,心無悔恨,乃至明了見於佛性?」

가섭이 다시 여쭈었다.
「보살이 어떻게 청정한 계를 수지하여야 마음에 회한이 없고,
나아가 불성(佛性)을 명료(明了)히 보기에 이르나이까?」

 

佛言:「善男子!世間戒者,不名清淨。何以故?
世間戒者,為於有故、性不定故、非畢竟故,不能廣為一切眾生,以是義故,名為不淨。
以不淨故有悔恨心,以悔恨故心無歡喜,無歡喜故則無悅樂,無悅樂故則無安隱,
無安隱故無不動定,無不動定故無實知見,無實知見故則無厭離,無厭離故則無解脫,
無解脫故不見佛性,不見佛性故,終不能得大般涅槃,是名世間戒不清淨。
善男子!菩薩摩訶薩清淨戒者,戒非戒故、非為有故、定畢竟故、為眾生故,

是名菩薩戒清淨也。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세간의 계(戒)는 청정하다 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세간의 계는 유(有)를 위하고, 성품이 일정치 못하며, 필경(畢竟)한 것이 아니므로
일체중생을 두루 위할 수 없는지라 이런 의미에서 부정(不淨)하다고 하거니와,
부정(不淨)하므로써 회한(悔恨)하는 마음이 있고, 이 회한 때문에 마음에 기쁨이 없으며,
기쁨이 없는 즉 열락(悅樂)이 없고, 열락(悅樂)이 없으니 안음(安隱)함도 없으며,
안은함이 없는 까닭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이 없고, 흔들리지 않는 안정이 없으니,
실다운 지견(知見)이 없으며, 실다운 지견(知見)이 없기 때문에 염리(厭離)가 없고,
염리(厭離)가 없는 즉 해탈이 없으며, 해탈하지 못하니,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고,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니, 끝내 대반열반을 얻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세간의 계(戒)는 청정치 못하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계는 계(戒)이되 계가 아니고, 유(有)를 위하지 않고,
결정히 필경(畢竟)하며, 중생을 위기 때문에 이를 일러 보살의 계(戒)는 청정하다고 하느니라.

 

「善男子!菩薩摩訶薩於淨戒中雖不欲生無悔恨心,無悔恨心自然而生。

善男子!譬如有人執持明鏡,不期見面,面像自現。

亦如農夫,種之良田,不期生牙,而牙自生。亦如然燈,不期滅闇,而闇自滅。

善男子!菩薩摩訶薩堅持淨戒,無悔恨心自然而生,亦復如是,以淨戒故,心得歡喜。

善男子!如端正人,自見面貌,心生歡喜,持淨戒者亦復如是。

善男子!破戒之人,見戒不淨,心不歡喜。如形殘者,自見面貌,不生喜悅,破戒之人亦復如是。

善男子!譬如牧牛,有二女人,一持酪瓶,一持漿瓶,俱共至城而欲賣之。

於路腳跌,二瓶俱破,一則歡喜,一則愁惱。

持戒、破戒亦復如是,持淨戒者心則歡喜,心歡喜故,則便思惟:

『諸佛如來於涅槃中,說有能持清淨戒者,則得涅槃。我今修習如是淨戒,亦應得之。』

以是因緣,心則悅樂。」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계를 지키면
회한(悔恨)없는 마음을 가지려 하지 않아도 회한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나니,
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거울을 들면
얼굴을 보려하지 않아도 얼굴모습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과 같고,
또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싹 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싹이 저절로 생기는 것과 같으며,
또 등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어둠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계를 굳게 지키면
회한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는 것도 이와 같아서 청정한 계 때문에 마음에 환희를 얻나니,
선남자야! 잘 생긴 사람이 자신의 면모(面貌)를 보면 마음에 환희가 생기듯이,
청정한 계를 지니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파계(破戒)한 사람이 계(戒)가 부정(不淨)한 것을 보면 마음이 기쁘지 못하여
마치 형상이 흉악한 자가 자신의 면모를 보면 기쁨이 생기지 않듯이
파계한 사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마치 소치는 두 여인이 있어

한 여인은 낙(酪)병을, 또 한 여인은 물병을 가지고서
함께 성으로 가서 팔려고 하였는데, 도중에 넘어져서 두 병이 다 깨져버리면
한 여인은 기뻐하고 또 한여인은 걱정하듯이, 지계(持戒)와 파계(破戒)도 이와 같아서
청정한 계를 지닌 자는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기쁘면 곧 생각하기를,
『제불(諸佛)여래께서 열반을 설하시면서 청정한 계를 지닌 즉 열반을 얻는다 하셨으니,
나 또한 이제 그와 같이 청정한 계를 닦아서 열반을 얻으리라.』 하거든
이 인연으로 마음이 열락(悅樂)할 것이니라.」

 

迦葉復言:「喜之與樂,有何差別?」

가섭이 다시 여쭈었다.
「기쁨[喜]과 즐거움[樂]은 어떻게 다르나이까?」

 

「善男子!菩薩摩訶薩不作惡時,名為歡喜;心淨持戒,名之為樂。
善男子!菩薩摩訶薩觀於生死則名為喜,見大涅槃名之為樂。下名為喜,上名為樂。
離世共法名之為喜,得不共法名之為樂。以戒淨故,身體輕柔,口無麁過,
菩薩爾時,若見、若聞、若輕、若甞、若觸、若知悉無諸惡,
以無惡故心得安隱,以安隱故則得靜定,得靜定故得實知見,實知見故厭離生死,
厭生死故則得解脫,得解脫故得見佛性,見佛性故得大涅槃,是名菩薩清淨持戒,非世間戒。
何以故?善男子!菩薩摩訶薩所受淨戒,五法佐助。
云何為五?一信、二慚、三愧、四善知識、五宗敬戒;離五蓋故。
所見清淨,離五見故。心無疑網,離五疑故:
一者疑佛、二者疑法、三者疑僧、四者疑戒、五者疑不放逸。
菩薩爾時即得五根,所謂信、念、精進、定、慧。
得五根故,得五種涅槃,謂色解脫,乃至識解脫。是名菩薩清淨持戒,非世間也。
善男子!是名世間之所不知、不見、不覺,而是菩薩所知、見、覺。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악을 짓지 않았을 때를 환희(歡喜)라 하고,
마음 청정히 지계(持戒)하면 즐거움[樂]이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생사를 관(觀)한 즉 희(喜)라 하고, 대열반을 알면 낙(樂)이라 하며,
낮은 것이 희(喜)요, 높은 것이 낙(樂)이며, 세간이 함께하는 법을 여의면 희(喜)요,
함께하지 않는 법을 얻으면 낙(樂)이니라.
계(戒)를 청정히 함으로써 몸이 가뿐하고 입에 추한 허물이 없으면
보살은 이때 보고 듣고 경행(輕行)하거나, 맛보고, 느끼고 아는 일에 아무런 악이 없을 것이요,
악이 없음으로써 마음이 안은해지고, 안은하기 때문에 고요한 정(定)을 얻을 것이며,
고요한 정(定)을 얻음으로써 여실히 지견하고, 여실히 지견함으로써 생사를 염리(厭離)하며,
생사를 염리함으로써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음으로써 불성(佛性)을 보게 되며,
불성(佛性)을 봄으로써 대열반을 얻을 것이니,
이를 '보살의 청정한 지계(持戒)요, 세간의 계(戒)가 아니다'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수지하는 청정한 계는 다섯 가지 법이 돕는데,
무엇이 그 다섯인가?
하나는 신(信), 둘은 참(慚), 셋은 괴(愧), 넷은 선지식(善知識)이요,
다섯은 계(戒)를 숭상하여 공경함이니, 5개(五蓋*)를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소견이 청정하나니, 5견(五見*)을 여의었기 때문이요,
마음에 의망(疑網)이 없나니, 5의(五疑) 즉 첫째 부처에 대한 의심[疑佛],
둘째 법에 대한 의심[疑法], 셋째 승가에 대한 의심[疑僧], 넷째 계에 대한 의심[疑戒],
다섯째 방일하지 말라는 데에 대한 의심[疑不放逸]을 여읜 때문이라,
보살은 이때 곧 5근(五根)을 얻나니, 소위 신(信), 념(念), 정진(精進), 정(定), 혜(慧)근 이요,
5근을 얻음으로써 다섯 가지 열반 즉 색(色)해탈에서 식(識)해탈까지를 얻나니,
이를 '보살의 청정한 지계(持戒)요, 세간의 계(戒)가 아니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되,
그러나 이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고 하느니라.

*五蓋(pañca āvaranāni); 貪欲蓋, 瞋恚蓋, 睡眠蓋, 悼悔蓋, 疑蓋.
*五見(pañca drstayah); 身見, 邊見, 邪見, 見取見, 戒禁取見.

 

「善男子!若我弟子受持讀誦、書寫演說大涅槃經,
有破戒者,有人呵責、輕賤、毀辱而作是言:
『若佛祕藏大涅槃經有威力者,云何令汝毀所受戒?若人受持是涅槃經毀禁戒者,
當知是經為無威力。若無威力,雖復讀誦,為無利益。』
緣是輕毀涅槃經故,復令無量無邊眾生墮於地獄,
受持是經而毀戒者,則是眾生惡知識也,非我弟子,是魔眷屬。
如是之人,我亦不聽受持是典,寧使不受、不持、不修,不以毀戒受持修習。
善男子!若我弟子受持讀誦、書寫演說涅槃經者,
當正身心,慎莫調戲,輕躁舉動,身為調戲,心為輕動。
求有之心,名為輕動;身造諸業,名為調戲。
若我弟子求有、造業,不應受持是大乘典大涅槃經。

若有如是受持經者,人當輕呵,而作是言:
『若佛祕藏大涅槃經,有威力者,云何令汝求有、造業?
若持經者求有、造業,當知是經為無威力。若無威力,雖復受持,為無利益。』
緣是輕毀涅槃經故,復令無量無邊眾生墮於地獄。
受持是經求有、造業,則是眾生惡知識也,非我弟子,是魔眷屬。

「선남자야! 나의 제자가 대열반경을 수지(受持), 독송(讀誦), 서사(書寫)하고 연설하되,
파계하였다면 사람들이 꾸짖고 업신여기고 헐뜯고 욕하며 말하기를,
『만약 부처님의 비장(祕藏)인 대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째서 너로하여금 지키는 계를 훼범하게 하겠는가?
만일 이 열반경을 수지(受持)하고서 금계(禁戒)를 훼범한다면
그런 경은 위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려니와,
위력이 없다면 독송(讀誦)하더라도 이익이 없다』고 할 것이라,
그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비방한 이 인연으로
무량무변한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게 하리니,
이 경을 수지(受持)하고서 계를 훼범하는 자는 바로 중생의 악지식(惡知識)인 것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이것이 마의 권속이니라.
이런 사람은 나 또한 이 경전 수지(受持)하기를 바라지 않거니와,
차라리 받지도 지니지도 닦지도 말게 할지언정
계를 훼범하면서 수지(受持)하여 닦게 하지는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가 열반경을 수지(受持), 독송(讀誦), 서사(書寫)하고 연설하되,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조심하여 희롱하여 놀리며 경망스레 거동하거나,
몸을 희롱하여 놀리며[調戲] 마음을 경솔히 움직이지 말아야 하나니,
어떤 것을 구하는 마음을 경솔한 짓[輕動]이라 하고,
몸으로 업을 짓는 것을 희롱하여 놀린다[調戲]고 하느니라.
만약 나의 제자가 어떤 것을 구하거나 업(業)을 짓는다면
이 대승전인 대열반경을 수지(受持)해서는 않되나니,
만일 누가 그렇게 경을 수지(受持)하면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꾸짖어서 말하되,
『만약 부처님의 비장인 대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째서 너로 하여금 어떤 것을 구하거나 업(業)을 짓게 하는가?
경을 수지하는 자가 어떤 것을 구하거나 업(業)을 짓는다면
그런 경은 위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려니와,
만약 위력이 없다면 비록 수지하더라도 이익이 없다』고 하리니,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비방한 이 인연으로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라,
이 경을 수지(受持)하고서 어떤 것을 구하거나 업(業)을 짓는다면
이는 중생의 악지식(惡知識)인 것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바로 마의 권속이니라.

 

「復次善男子!若我弟子受持讀誦、書寫演說是涅槃經,
莫非時說、莫非國說、莫不請說、莫輕心說、莫處處說、莫自歎說、莫輕他說、
莫滅佛法說、莫熾然世法說。
善男子!若我弟子受持是經,非時而說,乃至熾然世法說者,人當輕呵而作是言:
『若佛祕藏大涅槃經有威力者,云何令汝非時而說,乃至熾然世法而說?
若持經者作如是說,當知是經為無威力。若無威力,雖復受持為無利益。』
緣是輕毀涅槃經故,令無量眾生墮於地獄。
受持是經,非時而說乃至熾然世法而說,則是眾生惡知識也,非我弟子,是魔眷屬。
善男子!若欲受持者、說大涅槃者、說佛性者、說如來祕藏者、說大乘者、
說方等經者、說聲聞乘者、說辟支佛乘者、說解脫者、見佛性者,
先當清淨其身,以身淨故則無呵責,無呵責故令無量人於大涅槃生清淨信,
信心生故恭敬是經,若聞一偈、一句、一字及說法者,則得發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當知是人則是眾生真善知識,非惡知識,是我弟子,非魔眷屬,是名菩薩非世間也。
善男子!是名世間之所不知、不見、不覺,而是菩薩所知見覺。

「또 선남자야! 나의 제자가 이 열반경을 수지, 독송, 서사하고 연설하려거든
때 아닌 때에 설하지 말며, 나라 아닌 데서 설하지 말며,
청하지 않는데 설하지 말며, 경솔한 마음으로 설하지 말며,
곳곳마다 설하지 말며, 자기를 찬탄하여 말하지 말며,
남을 업신여겨 말하지 말며, 불법을 파멸시켜 말하지 말며,
세간법을 치성(熾盛)하게 말하지 말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가 이 경을 수지(受持)하여
때 아닌 때 설하거나 나아가 세간법을 치성하게 말하기에 이른다면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꾸짖어서 말하되,
『만약 부처님의 비장인 대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찌 너로 하여금 때 아닌 때에 설하고 나아가 세간법을 치성하게 말하게 하겠느냐?
경을 수지하는 자가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런 경은 위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려니와,
만약 위력이 없다면 비록 수지하더라도 이익이 없다』고 하리니,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비방한 이 인연으로
무량한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라,
이 경을 수지하여 때 아닌 때에 설하고 나아가 세간법을 치성하게 말하기에 이른다면
이는 중생의 악지식(惡知識)인 것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바로 마의 권속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수지(受持)하고, 대열반을 설하고, 불성(佛性)을 설하고,
여래의 비장(祕藏)을 설하고, 대승을 설하고, 방등경전을 설하고,
성문승을 설하고, 벽지불승을 설하고, 해탈을 설하고, 불성(佛性)을 보려거든
먼저 몸을 청정히 해야 하거니와, 몸이 청정한 즉 꾸짖는 일이 없고,
가책이 없으면 무량한 사람으로 하여금 대열반에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할 것이며,
믿는 마음이 생기면 이 경을 공경하여 한 게(偈), 한 구(句), 한 글자만이라도

듣고 법을 설한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할 것이니,
이 사람은 곧 중생의 참된 선지식인 것이요, 악지식(惡知識)이 아니며,
바로 나의 제자요, 마의 권속이 아니리니,
이를 일러 '보살이요, 세간이 아니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것을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되,
이 보살은 알고 보고 느끼는 것이라 하느니라.

 

◎ 大般涅槃經卷第十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