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般涅槃經卷第十八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8권
북량(北涼)국 천축삼장 담무참(曇無讖) 역
◎梵行品第八之四
8-4. 범행품(梵行品)
「◎復次善男子!云何復名一切世間所不知見覺,而是菩薩所知見覺?
所謂六念處。何等為六?念佛、念法、念僧、念戒、念施、念天。
善男子!云何念佛?如來、應、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
天人師、佛、世尊,常不變易,具足十力、四無所畏、大師子吼,名大沙門、
大婆羅門、大淨畢竟到於彼岸、無能勝者、無見頂者、無有怖畏不驚不動、獨一無侶、
無師自悟、疾智、大智、利智、深智、解脫智、不共智、廣普智、畢竟智、智寶成就、
人中象王、人中牛王、人中龍王、人中丈夫、人中蓮花、分陀利花、調御人師、
為大施主大法之師,以知法故名大法師,以知義故名大法師,以知時故名大法師,
以知足故名大法師,以知我故名大法師,知大眾故名大法師,
以知眾生種種性故名大法師,以知諸根利鈍中故名大法師,說中道故名大法師。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또 '일체세간이 지견각(知見覺)하지 못하나
이 보살은 지견각(知見覺)한다'고 하는가?
소위 육념처(六念處)인데, 무엇이 그 여섯인가?
념불(念佛), 념법(念法), 념승(念僧), 념계(念戒), 념시(念施), 념천(念天)이니라.
선남자야! 어째서 부처님을 념[念佛]하는 것인가?
여래, 응(應),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께서는
항상하고 변하지 않으시며, 십력(十力)과 4무소외를 구족하시어 큰 사자후를 하시니,
대사문(大沙門), 대바라문(大婆羅門), 필경 피안에 도달한 크게 청정한 수행자[大淨],
무능승자(無能勝者*), 무견정자(無見頂者*), 두려움이 없어 놀라거나 흔들리지 않는 분,
독일무려(獨一無侶*), 무사자오(無師自悟*)라 하거니와,
민첩한 지혜[疾智], 대지혜[大智], 예리한 지혜[利智], 깊고 높은 지혜[深智],
해탈지혜[해탈智], 아무에게도 없는 지혜[不共智], 널리 두루하는 지혜[廣普智],
필경지(畢竟智*) 등의 지혜의 보배를 성취하셨으니,
인중상왕(人中象王), 인중우왕(人中牛王), 인중용왕(人中龍王), 인중장부(人中丈夫),
인중연화(人中蓮花), 분다리화(分陀利花), 조어인사(調御人師)라 하며,
대법(大法)의 큰 시주(施主)이신 스승이 되시니, 법을 아시므로 대법사(大法師)시요,
뜻을 아시므로 대법사이시며, 때를 아시므로 대법사, 만족할 줄 아시므로 대법사,
나[我]를 아시니 대법사, 대중을 아시니 대법사, 중생의 갖가지 성품을 아시니 대법사,
중생 근기의 영리하고 둔함을 아시므로 대법사, 중도(中道)를 설하시므로
대법사(大法師)이시기 때문이니라.
*無能勝者;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
*無見頂者; 이마를 볼 자가 없다, 즉 앞서가는 자가 없다.
*獨一無侶; 홀로 하나요 짝이 없다, 홀로 우뚝 솟아 나란히 할 자가 없다.
*無師自悟;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닫다. 가르칠 자가 없다.
*畢竟智; 본 경의 40권에 「'일체의 모든 법이 다 허망하고 거짓된 것임을 알고
그 소멸에 따르는 것'이 實, 實相, 法界, 畢竟智, 第一義諦, 第一義空이다」고 하셨다.
「云何名如來?如過去諸佛所說不變。云何不變?
過去諸佛,為度眾生說十二部經,如來亦爾,故名如來。
諸佛世尊從六波羅蜜、三十七品、十一空來至大涅槃,如來亦爾,是故號佛為如來也。
諸佛世尊為眾生故,隨宜方便開示三乘,壽命無量不可稱計,
如來亦爾,是故號佛為如來也。
「어째서 여래(如來)라 하는가?
과거제불(過去諸佛)께서 말씀하신 바 '변치 않는다[不變]'와 같거니와
어떤 것이 불변(不變)인가? 과거제불께서 중생제도를 위해 12부경을 설하셨듯이,
여래도 그러하시니, 그래서 여래라 하는 것이요,
제불세존께서 육바라밀, 37조도품, 11공(空)으로부터 대열반에 이르셨듯이,
여래도 그러하시니, 그 때문에 부처님을 여래라 부르는 것이며,
제불세존은 중생을 위하시기에 합당한 방편으로 삼승(三乘)을 개시(開示)하시며,
수명(壽命)이 무량하시어 헤아릴 수 없으신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시니,
그래서 부처님을 여래라 호(號)하는 것이니라.
「云何為應?世間之法悉名怨家,佛應害故,故名為應。
夫四魔者是菩薩怨,諸佛如來為菩薩時,能以智慧破壞四魔,是故名應。
復次應者名為遠離,為菩薩時,應當遠離無量煩惱,故名為應。
復次應者名樂,過去諸佛為菩薩時,雖於無量阿僧祇劫為眾生故受諸苦惱,終無不樂,
而常樂之,如來亦爾,是故名應。
又復應者,一切人天,應以種種香花、瓔珞、幢幡、伎樂而供養之,是故名應。
「왜 응(應)이라 하는가?
세간의 법은 다 원수[怨家]라 하여 부처님이 맞서[應] 해(害)하시니, 응(應)이라 하고,
또 통상 4마(四魔)는 보살의 원수인지라 제불여래께서 보살이셨을 때,
지혜로써 4마를 파괴하셨으니 그래서 응(應)이라 하며,
또 응(應)이란 '멀리 여의었다[遠離]'하나니,
보살이셨을 때 무량한 번뇌를 응당 원리(遠離)하셨으므로 응(應)이라 하고,
또 응(應)이란 '낙(樂)'이라 하나니, 과거제불께서 보살이셨을 때,
비록 무량한 아승지 겁 동안 중생을 위하신 까닭에 온갖 고뇌를 받았지만
결코 불낙(不樂)함이 없이 상락(常樂)하셨듯이, 여래도 그러하므로 응(應)이라 하며,
또 응(應)이란 모든 인천(人天)이 갖가지 향화(香花)와 영락, 당번(幢幡), 기예(伎樂)로써
공양에 응하니, 그 때문에 응(應)이라 하느니라.
「云何正遍知?正者名不顛倒,遍知者於四顛倒無不通達。
又復正者名為苦行,遍知者,知因苦行,定有苦果。
又復正者名世間中,遍知者畢竟定知,修習中道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又復正者,名為可數、可量、可稱,遍知者,不可數、不可量、不可稱,
是故號佛為正遍知。善男子!聲聞緣覺亦有遍知、亦不遍知。何以故?
遍知者,名五陰、十二入、十八界,聲聞緣覺亦得遍知,是名遍知。
云何不遍知?善男子!假使二乘於無量劫,觀一色陰,不能盡知,以是義故,
聲聞緣覺無有遍知。
「어째서 정변지(正遍知)라 하는가? 정(正)이란 '부전도(不顛倒)'를 이르는 것이요,
두루 안다[遍知]는 것은 4전도(四顛倒)에 통달치 못함이 없다는 것이며,
또 정(正)이란 '고행(苦行)'을 이르는 것이요,
변지(遍知)란 고행을 인하여 반드시 고행의 과보[苦果]가 있음을 안다는 것이니라.
또 정(正)이란 '세간 속[世間中]'을 이르는 것이요,
변지(遍知)란 중도(中道)를 닦아 익히면
필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을 정히 안다는 것이며,
또 정(正)이란 '셀 수 있고, 양을 헤아릴 수 있고, 저울질할 수 있음'을 이르는 것이요,
변지(遍知)란 셀 수 없고, 양을 헤아릴 수 없고, 저울질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님을 정변지(正遍知)라 부르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성문 연각은 두루 알기도 하고[遍知], 두루 알지 못하기도 하나니,
왜냐하면, 변지(遍知)란 오음(오음(五陰)), 12입(入), 18계(界)를 이르는 것이라,
성문 연각도 두루 알 수 있기에 변지라 하겠거니와,
무엇을 두루 알지 못하는가? 선남자야! 가사 2승(二乘)이 무량겁 동안
오음 중 색음(色陰) 하나만을 관(觀)하더라도 다 알 수 없는지라,
이런 뜻에서 성문 연각은 변지(遍知)가 없다는 것이니라.
「云何明行足?明者名得無量善果,行名脚足,善果者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脚足者名為戒、慧,乘戒慧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名為明行足也。
又復明者名呪,行者名吉,足者名果,善男子!是名世間義;呪者名為解脫,
吉者名為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者名為大般涅槃,是故名為明行足也。
又復明者名光,行者名業,足者名果,善男子!是名世間義;
光者名不放逸,業者名六波羅蜜,果者名為阿耨多羅三藐三菩提。
又復明者名為三明:一菩薩明,二諸佛明,三無明明;
菩薩明者即是般若波羅蜜,諸佛明者即是佛眼,無明明者即畢竟空,
行者於無量劫為眾生故修諸善業,足者明見佛性,以是義故名明行足。
「어째서 명행족(明行足)이라 하는가? 명(明)은 무량한 선과(善果)를 얻는 것이요,
행(行)은 발과 다리를 말하고, 선과(善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하며,
발과 다리는 계(戒)와 혜(慧)를 이르는 것이니, 계와 혜의 발걸음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명행족이라 하는 것이다.
또 명(明)을 주문[呪]이라 하고, 행(行)을 길하다[吉] 하고, 족(足)을 과(果)라 하니,
선남자야! 이것을 세간의(世間義)라 하거니와,
주(呪)는 해탈, 길(吉)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果)는 대반열반이라 하기에 그래서 명행족이라 하는 것이며,
또 명(明)을 빛[光]이라 하고, 행(行)을 업(業)이라 하고, 족(足)을 과(果)라 하니,
선남자야! 이것을 세간의(世間義)라 하거니와,
빛[光]은 불방일(不放逸), 업(業)은 육바라밀, 과(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
또 명(明)은 3명(三明)이니, 하나는 보살의 명(明), 둘은 제불(諸佛)의 명(明),
셋은 무명(無明)의 명(明)이거니와, 보살의 명(明)이란 곧 반야바라밀이요,
제불(諸佛)의 명(明)은 곧 불안(佛眼), 무명(無明)의 명(明)은 필경한 공(空),
행(行)은 무량한 겁 동안 중생을 위해 온갖 선업을 닦는다는 것이며,
족(足)은 불성(佛性)을 환히 본다는 것이라 이런 뜻에서 명행족이라 하느니라.
「云何善逝?善者名高,逝名不高,善男子!是名世間義;
高者名為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高者即如來心也。
善男子!心若高者不名如來,是故如來名為善逝。
又復善者名為善知識,逝者善知識果,善男子!是名世間義;善知識者即初發心,
果者名為大般涅槃,如來不捨最初發心得大涅槃,是故如來名為善逝。
又復善者名好,逝者名有,善男子!是名世間義;好者名見佛性,有者名大涅槃。
善男子!涅槃之性實非有也,諸佛世尊因世間故,說言是有。
善男子!譬如世人,實無有子說言有子,實無有道說言有道,涅槃亦爾,
因世間故說言為有,諸佛世尊成大涅槃,故名善逝。
「어째서 선서(善逝)라 하는가? 선(善)을 높다[高]하고, 서(逝)는 높지 않다[不高] 하는데,
선남자야! 이를 세간의(世間義)라 하거니와, 높은 것[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높지 않은 것[不高]은 곧 여래의 마음[如來心]이니라.
선남자야! 마음이 높다면 여래라 하지 못할 것이라 그래서 여래를 선서라 하는 것이며,
또 선(善)은 선지식, 서(逝)는 선지식의 과(果)라 하나니,
선남자야! 이를 세간의라 하거니와, 선지식이란 곧 초발심이요, 과(果)는 대반열반이며,
여래는 최초의 발심을 버리지 않아서 대열반을 얻었기에
그래서 여래를 선서라 하는 것이며,
또 선(善)은 좋음[好]이라 하고, 서(逝)는 있음[有]이라 하나니,
선남자야! 이를 세간의라 하거니와, 좋은 것은 불성(佛性)을 보는 것이요,
있을 것은 대열반이려니와, 선남자야! 열반의 성품은 실로 있지 않건만
제불세존은 세간으로 인하여 이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
선남자야! 마치 세상 사람들이 실로 자식이 없건만 있다 하고,
실로 도(道)가 없는데도 있다 하듯이, 열반도 그러하여 세간을 인하여 있다고 하거니와,
제불세존은 대열반을 성취하기 때문에 선서(善逝)라 하는 것이니라. ◎
「◎善男子!云何世間解?善男子!世間者名為五陰,解者名知,諸佛世尊善知五陰,
故名世間解。又世間者名為五欲,解名不著,不著五欲故,名世間解。
又世間解者,東方無量阿僧祇世界,一切聲聞緣覺不知、不見、不解,
諸佛悉知、悉見、悉解,南西北方、四維上下,亦復如是,是故號佛為世間解。
又世間者一切凡夫,解者知諸凡夫善惡因果,非是聲聞緣覺所知,惟佛能知,
是故號佛為世間解。又世間者名曰蓮花,解名不污,善男子!是名世間義;
蓮花者即是如來,不污者,如來不為世間八法之所染污,是故號佛為世間解。
又世間解者,諸佛菩薩名世間解。何以故?諸佛菩薩見世間故,故名世間解。
善男子!如因食得命,名食為命;諸佛菩薩亦復如是,見世間故,故名世間解。
「◎선남자야! 어째서 세간해(世間解)라 하겠느냐?
선남자야! 세간은 오음(五陰)으로 되어 있고, 해(解)란 안다는 것이니,
제불세존은 오음(五陰)을 잘 아신다는 것이요, 그래서 세간해라 하는 것이며,
또 세간은 오욕(五欲)으로 가득하고, 해(解)는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오욕(五欲)에 집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세간해라 하는 것이며,
또 세간해란 동방의 무량한 아승지 세계를 모든 성문 연각은
알지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지만[不知不見不解],
제불(諸佛)은 다 알고 다 보고 다 이해하시며[悉知悉見悉解],
남서북방과 사유상하(四維上下)도 그와 같이 하시니,
그래서 부처님을 세간해라 부르는 것이며,
또 세간은 일체범부요, 해(解)는 모든 범부와 선악(善惡)과 인과(因果)를 안다는 것이라
이것이 성문 연각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요,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세간해라 하는 것이니라.
또 세간은 연꽃이라 하고, 해(解)는 물들지 않는다[不污] 하나니,
선남자야! 이를 일러 세간의라 하거니와, 연꽃은 곧 여래요,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여래가 세간의 여덟 가지 법[八法]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세간해라 부르는 것이며,
또 세간해란 제불보살을 세간해라 하나니,
왜냐하면 제불보살은 세간을 보기 때문에 세간해라 하는 것이며,
선남자야! 먹음으로써 생명을 얻기에 음식을 생명이라 하듯이,
제불보살도 그와 같아서 세간을 보기 때문에 세간해라 하는 것이니라.
「云何無上士?上士者名之為斷,無所斷者,名無上士,諸佛世尊無有煩惱,
故無所斷,是故號佛為無上士。又上士者名為諍訟,無上士者無有諍訟,
如來無諍,是故號佛為無上士。又上士者名語可壞,無上士者語不可壞,
如來所言,一切眾生所不能壞,是故號佛為無上士。又上士者名為上座,
無上士者名無上座,三世諸佛更無過者,是故號佛為無上士。
上者名新,士者名故,諸佛世尊體大涅槃,無新無故,是故號佛為無上士。
「어째서 무상사(無上士)라 하겠느냐? 상사(上士)란 끊었다[斷]는 것이요,
끊을 것 없는 것은 무상사라 하거니와, 제불세존은 번뇌가 없으므로 끊을 것이 없으시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며,
또 상사(上士)는 다툴 자[諍訟]를 말하고, 무상사는 다툴 자가 없음을 이르거니와,
여래는 다툴 자가 없으시므로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며,
또 상사(上士)는 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요, 무상사는 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래가 하신 말씀은 일체중생이 무너뜨릴 수 없으니, 그래서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며,
또 상사(上士)는 윗 자리[上座]를, 무상사는 윗 자리가 없음을 이르거니와,
삼세제불은 능가할 자가 없으시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며,
상(上)이란 새로움[新]을, 사(士)는 연고(緣故)를 이르거니와,
제불세존의 실체(實體)는 대열반이시라 새로움도 연고도 없으시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니라.
「云何調御丈夫?自既丈夫,復調丈夫。善男子!
言如來者,實非丈夫、非不丈夫,因調丈夫,故名如來為丈夫也。
善男子!一切男女,若具四法,則名丈夫。何等為四?
一善知識,二能聽法,三思惟義,四如說修行。善男子!若男若女具是四法,則名丈夫。
善男子!若有男子,無此四法,則不得名為丈夫也,何以故?身雖丈夫,行同畜生。
如來調伏若男若女,是故號佛調御丈夫。復次善男子!如御馬者,凡有四種:
一者觸毛,二者觸皮,三者觸肉,四者觸骨,隨其所觸,稱御者意。
如來亦爾,以四種法,調伏眾生:一為說生,令受佛語,如觸其毛,隨御者意。
二說生老,便受佛語,如觸毛皮,隨御者意。
三者說生及以老病,便受佛語,如觸毛皮肉,隨御者意。
四者說生及老病死,便受佛語,如觸毛皮肉骨,隨御者意。
善男子!御者調馬,無有決定,如來世尊調伏眾生,必定不虛,是故號佛為調御丈夫。
「어떤 것을 조어장부(調御丈夫)라 하는가?
스스로 기왕에 장부인데 다시 장부를 다룬다[調]는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라 하는 것은 실로 장부도 아니요, 장부 아닌 것도 아니지만,
장부를 다룸[調]으로 인하여 여래를 장부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남녀가 네가지 법[四法]을 갖춘 즉 장부라 하나니,
무엇이 그 넷인가? 하나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둘은 법을 받아들이는 능력[能聽法],
셋은 뜻을 깊이 헤아리는 일[思惟義], 넷은 말씀대로 닦아 행하는 것[如說修行]이니,
선남자야! 남자거나 여인이거나 이 네 법을 구족하면 곧 장부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남자도 이 네 법을 갖추지 못하면 장부라 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몸은 비록 장부더라도 축생과 같이 행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여래는 남자나 여인이나 모두 복종하도록 다루시니[調伏],
그러므로 부처님을 조어장부라 부르는 것이며,
또 선남자야! 말을 다루는 데는 통상 네 가지가 있어서,
첫째는 갈기 잡기[觸毛]요, 둘째는 살갗 잡기[觸皮], 셋째는 살 잡기[觸肉],
넷째는 뼈 잡기[觸骨]이거니와, 어디를 잡느냐에 따라 다루는 자의 뜻이 달려 있듯이,
여래도 그와 같이 네가지 법으로 중생을 조복하나니,
첫째는 생(生)을 설하여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마치 갈기를 잡은 말 다루는 자의 뜻을 따르게 하듯이 하는 것이요,
둘째는 생과 노[生老]를 설하여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살갗을 잡은 말 다루는 자의 뜻을 따르게 하듯이 하는 것이며,
셋째는 생과 노사(老病)를 설하여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마치 갈기와 살갗과 살을 잡은 말 다루는 자의 뜻을 따르게 하듯이 하는 것이며,
넷째는 說생과 노병사(老病死)를 설하여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마치 갈기와 살갗, 살, 뼈를 잡은 말 다루는 자의 뜻을 따르게 하듯이 하는 것이니,
선남자야! 말 다루는 자가 말을 조련하는데는 결정함이 없지만,
여래세존이 중생을 조복하는데에는 반드시 확실하여 헛되지 않기에,
그러므로 부처님을 조어장부라 하는 것이니라.
「云何天人師?師有二種:一者善教,二者惡教。諸佛菩薩常以善法教諸眾生。
何等善法?謂身、口、意善。諸佛菩薩教諸眾生,作如是言:
『善男子,汝當遠離身不善業。何以故?以身惡業,是可遠離,得解脫故,
是故我以此法教汝。若是惡業不可遠離,得解脫者,終不教汝令遠離也。
若諸眾生離惡業已,墮三惡者無有是處,以遠離故,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得大涅槃。』
是故諸佛菩薩常以此法教化眾生,口、意亦爾,是故號佛為無上師。
復次昔未得道,今已得之,以所得道,為眾生說;
從本已來未修梵行,今已修竟,以己所修,為眾生說;自破無明,復為眾生破壞無明;
自得淨目,復為眾生破除盲冥,令得淨眼;自知二諦,復為眾生演說二諦。
既自解脫,復為眾生說解脫法;自度無邊生死大河,復令眾生皆悉得度;
自得無畏,復教眾生令無怖畏;自既涅槃,復為眾生演大涅槃;是故號佛為無上師。
天者名晝,天上晝長夜短,是故名天。又復天者名無愁惱,常受快樂是故名天。
又復天者名為燈明,能破黑闇而為大明,是故名天。
亦以能破惡業黑闇,得於善業,而生天上,是故名天。
又復天者名吉,以吉祥故,得名為天。
又復天者名曰日,有光明故,名曰為天。以是義故,名為天也。
人者名曰能多恩義,又復人者身口柔軟,又復人者名有憍慢,又復人者能破憍慢。
善男子!諸佛雖為一切眾生無上大師,然經中說為天人師。何以故?
善男子!諸眾生中惟天與人,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能修十善業道,
能得須陀洹果、斯陀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號佛為天人師。
「어째서 천인사(天人師)라 하겠느냐? 사(師)에는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선한 가르침[善教]이요, 둘째는 악한 가르침[惡教]이니라.
제불보살은 항상 선법(善法)으로 모든 중생을 가르치시는데,
어떠한 것이 선법인가? 신구의(身口意)가 선(善)한 것이니,
제불보살은 모든 중생을 가르쳐 말하되, 『선남자야,
너희는 마땅히 몸(身)의 불선업(不善業)을 멀리해야 하나니,
왜냐하면 몸의 악업(惡業)을 멀리함으로써 해탈을 얻기 때문이라
그래서 내가 이 법으로 너희를 가르치는 것이다.
만약 이 악업을 멀리하여 해탈을 얻지 못한다면
결코 너희에게 멀리하라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요,
어떤 중생이 악업을 여의고서도 삼악(三惡)에 떨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멀리 여의므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대열반을 얻는 것이다.』고 하니,
그래서 제불보살은 항상 이러한 법을 가르치므로써 중생을 교화하거니와,
입[口]과 뜻[意]도 그렇게 하시기에 그러므로 부처님을 무상사라 하는 것이니라.
또 과거에 얻지 못했던 도(道)를 지금에 이왕 얻으시고서
얻은 도(道)로써 중생을 위해 설하시며,
본래부터 이제껏 닦지 않았던 범행(梵行)을 지금에 이왕 닦으시고서
그 닦은 것으로써 중생을 위해 설하시며,
스스로 무명(無明)을 깨뜨리시고, 다시 중생을 위해 무명을 파괴해 주시며,
스스로 청정한 눈을 얻고서 다시 중생을 위해
눈 먼 어둠[盲冥]을 깨뜨려 없애고 청정한 눈을 얻게 하시며,
스스로 이제(二諦)를 알고서 다시 중생을 위해 이제(二諦)를 연설하시느니라.
기왕 자신이 해탈하고서 다시 중생을 위해 해탈법을 설하시며,
자신이 끝없는 생사대하(生死大河)를 건너고서
다시 중생으로 하여금 다 건너게 하시며,
자신이 무외(無畏)를 얻고서 다시 중생을 가르쳐 포외(怖畏)가 없게 하시며,
가신이 기왕 열반하고서 다시 중생을 위해 대열반을 연설하시며,
그러므로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며, 천(天)이란 낮[晝]이라 하거니와
천상에는 낮이 길고 밤은 짧으므로 천(天)이라 한다.
또 천(天)은 근심걱정[愁惱]이 없고 늘 괘락하니, 그래서 천(天)이라 하고,
또 천(天)은 밝은 등불[燈明]이라 능히 흑암(黑闇)을 깨뜨리는 큰 밝음[大明]이 되니,
그러므로 천(天)이라 하며, 또한 악업(惡業)의 어둠을 깨뜨리고 선업(善業)을 얻어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것이라, 그러므로 천(天)이라 하며,
또 천(天)은 길(吉)하다 하거니와, 길상(吉祥)함으로써 천(天)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며,
또 천(天)은 해[日]인지라 광명이 있으므로 천(天)이라 하나니,
이런 뜻에서 천(天)이라 하는 것이니라. 인(人)이란 은혜가 많다는 뜻이요,
또 인(人)은 몸과 입[身口]이 유연함을 이르고,
또 인(人)은 교만(憍慢)함을 말하지만, 또 인(人)은 교만을 깨뜨리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선남자야! 제불(諸佛)이 비록 일체중생의 무상대사(無上大師)이지만
그러나 경(經) 가운데서는 천인의 스승[天人師]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선남자야! 모든 중생 중에 오직 천(天)과 인(人)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할 수 있고, 십선업도(十善業道)를 닦을 수 있으며,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과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을 무상사라 부르는 것이니라.
「云何為佛?佛者名覺,既自覺悟,復能覺他。善男子!譬如有人,覺知有賊,賊無能為。
菩薩摩訶薩能覺一切無量煩惱,既覺了已,令諸煩惱無所能為,是故名佛。
以是覺故,不生、不老、不病、不死,是故名佛。
「어째서 불(佛)라 하겠느냐? 부처[佛]란 각(覺)을 이르는 것이니,
기왕 스스로 깨닫고 다시 남을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사람이 도적이 든 줄을 알면 도적이 어찌해 볼 수 없듯이,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무량한 번뇌를 기왕 깨달아서 번뇌로 하여금 어찌해볼 수 없게 하니,
그러므로 불(佛)이라 하거니와, 이 각(覺) 때문에 나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지라 그래서 불(佛)이라 하느니라.
「婆伽婆者,婆伽名破,婆名煩惱,能破煩惱故,名婆伽婆。
又能成就諸善法故,又能善解諸法義故,有大功德無能勝故,有大名聞遍十方故,
又能種種大慧施故,又於無量阿僧祇劫吐女根故。
「바가바(婆伽婆;Bhagavat)란 바가(婆伽)는 깨뜨릴 파(破), 바(婆)는 번뇌를 말하니,
능히 번뇌를 깨뜨린다 하여 바가바(婆伽婆)라 한다.
또 능히 모든 선법(善法)을 성취하고, 또 제법(諸法)의 뜻을 잘 알며,
이길 자 없는 큰 공덕이 있으며, 큰 명성이 시방에 두루 나 있고,
또 능히 갖가지 대혜(大慧)를 베풀며, 또 무량한 아승지 겁 동안
여근(女根)을 받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느니라.
「善男子!若男、若女,能如是念佛者,若行、若住、若坐、若臥、
若晝、若夜、若明、若闇,常得不離見佛世尊。
「선남자야! 남자거나 여인이거나 이렇게 부처님을 념[念佛]할 수 있다면
행주좌와(行住坐臥), 주야(晝夜), 명암(明闇) 간에
항상 부처님 세존을 여의지 않고 뵙게 될 것이니라.
「善男子!何故名為如來、應、正遍知乃至婆伽婆,而有如是無量功德大名稱耶?
善男子!菩薩摩訶薩於昔無量阿僧祇劫,恭敬父母、和上、諸師、上座、長老,
於無量劫常為眾生而行布施,堅持禁戒,修集忍辱,
勤行精進、禪定、智慧,大慈、大悲、大喜、大捨,
是故今得三十二相、八十種好、金剛之身。又復菩薩於昔無量阿僧祇劫,
修集信、念、進、定、慧根,於諸師長,恭敬供養,常為法利,不為食利。
菩薩若持十二部經,若讀、若誦,常為眾生令得解脫、安隱、快樂,終不自為。
何以故?菩薩常修出世間心及出家心、無為之心、無諍訟心、無垢穢心、無繫縛心、
無取著心、無覆蓋心、無無記心、無生死心、無疑網心、無貪欲心、無瞋恚心、
無愚癡心、無憍慢心、無穢濁心、無煩惱心、無苦心、無量心、廣大心、虛空心、
無心、無無心、調心、不護心、無覆藏心、無世間心、常定心、常修心、常解脫心、
無報心、無願心、善願心、無誤心、柔軟心、不住心、自在心、無漏心、第一義心、
不退心、無常心、正直心、無諂曲心、純善心、無多少心、無堅硬心、無凡夫心、
無聲聞心、無緣覺心,善知心界、知心生界、知心住界、知心自在界心,
是故今得十力、四無所畏、大悲、三念處、常樂我淨,是故得稱如來乃至婆伽婆,
是名菩薩摩訶薩念佛。
「선남자야! 무엇 때문에 여래, 응(應), 정변지 내지 바가바(婆伽婆)라 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과 큰 명성이 있겠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옛날 무량한 아승지 겁에
부모와 큰스님[和上;和尙], 스승, 상좌(上座), 장노(長老)를 공경하고,
무량한 겁 동안 항상 중생을 위해 보시를 행하고, 금계(禁戒)를 견지(堅持)하며,
인욕(忍辱)을 닦아 모으고, 정진(精進)과 선정(禪定), 지혜(智慧),
대자(大慈), 대비(大悲), 대희(大喜), 대사(大捨)를 힘써 행한 까닭에
지금에 32상(相), 80종호와 금강(金剛)의 몸을 얻고서,
다시 보살이 과거 무량 아승지 겁 동안 오근(五根; 信,念,精進,定,慧根)을 닦아 모으면서
여러 스승들을 불법(佛法)상의 이익이 되고 먹는 데에 이익이 되지 않도록
늘 공경하여 공양하였거니와, 보살이 12부경을 지니고 독송(讀誦)하여
항상 중생을 위해 해탈과 안은(安隱)과 쾌락을 얻게 하되, 결코 자신을 위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항상 출세간의 마음[出世間心]과 출가의 마음[出家心],
무위(無為)의 마음, 다툼없는 마음, 때 묻지 않은 마음, 속박없는 마음, 취착없는 마음,
덮이지 않은 마음[無覆蓋心], 기약없지 않은 마음[無無記心], 생사(生死)가 없는 마음,
의망(疑網)이 없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진에(瞋恚)없는 마음, 우치(愚癡)없는 마음,
교만(憍慢)없는 마음, 더러워지지 않는 마음[無穢濁心], 번뇌없는 마음, 고통없는 마음,
무량한 마음[無量心], 광대한 마음[廣大心], 허공같은 마음[虛空心], 없는 마음[無心],
없음이 없는 마음[無無心], 조절된 마음[調心], 보호받지 않는 마음[不護心],
숨김이 없는 마음[無覆藏心], 세간이 없는 마음[無世間心], 항상 일정한 마음[常定心],
항상 닦는 마음[常修心], 항상 해탈한 마음[常解脫心], 댓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無報心],
원할 것 없는 마음[無願心], 선(善)을 원하는 마음[善願心], 그르침이 없는 마음[無誤心],
부드러운 마음[柔軟心], 의지하지 않은 마음[不住心], 자재한 마음[自在心],
무루(無漏)의 마음, 구경의 진리를 향한 마음[第一義心], 물러서지 않는 마음[不退心],
무상(無常)이라 여기는 마음, 정직한 마음, 첨곡(諂曲)이 없는 마음, 순수히 선한 마음,
많고 적음이 없는 마음, 경직(硬直)되지 않은 마음, 범부 아닌 마음, 성문 아닌 마음,
연각 아닌 마음, 심계(心界)를 잘 알고 마음에서 나는 경계를 알고[知心生界]
마음이 머무는 경계를 알고[知心住界] 마음의 자재한 경계를 아는[知心自在界] 마음을
닦았기에 지금에 십력(十力)과 4무소외, 대비(大悲), 3념처(三念處),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얻은 것이라, 그러므로 여래로부터 바가바(婆伽婆)에 이르기까지의 칭호를 얻은 것이니,
이를 일러 보살마하살의 염불(念佛)이라 하느니라.
*法利; 佛法上의 功德과 利益.
*心界; 18界 중 眼耳鼻舌身意 6識界와 意根, 즉 마음에 관련된 7 가지를 7心界라 한다.
「云何菩薩摩訶薩念法?善男子!菩薩摩訶薩思惟諸佛所可說法最妙最上,
因是法故,能令眾生得現在果。惟此正法,無有時節,法眼所見,非肉眼見,
然不可以譬喻為比,不生、不出、不住、不滅、不始、不終、無為、無數,
無舍宅者為作舍宅,無歸作歸,無明作明,未到彼岸令到彼岸,為無香處作無礙香,
不可見見、不動不轉、不長不短,永斷諸樂而安隱樂,畢竟微妙,
非色斷色而亦是色,乃至非識斷識而亦是識,非業斷業,非結斷結,非物斷物而亦是物,
非界斷界而亦是界,非有斷有而亦是有,非入斷入而亦是入,非因斷因而亦是因,
非果斷果而亦是果,非虛非實,斷一切實而亦是實,非生非滅,永離生滅而亦是滅,
非相非非相,斷一切相而亦是相,非教非不教而亦是師,非怖非安,斷一切怖而亦是安,
非忍非不忍,永斷不忍而亦是忍,非止非不止,斷一切止而亦是止,一切法頂,
悉能永斷一切煩惱,清淨無相,永脫諸相,無量眾生畢竟住處,能滅一切生死熾火,
乃是諸佛所遊居處,常不變易,是名菩薩念法。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념법(念法)인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사유하기를, '제불(諸佛)이 설하시는 법은
가장 묘하고 최상의 것이라, 이 법으로 인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하는 것이다. 오직 이 정법(正法)만이 시절(時節)이 없거니와,
법안(法眼)으로 볼 것이요,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러하니 어떤 비유로도 비할 수 없고, 생기지도 나오지도 머물지도 멸하지도 않고,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아니하며, 행위도 없고 수효도 없으며,
집 없는 자에게 집이 되어주고, 돌아갈 곳 없는 자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주며,
무명(無明)을 밝혀주고, 피안에 이르지 못한 자를 피안에 이르게 하며,
향(香) 없는 곳에 무애(無礙)의 향이 되고, 보지 못할 것을 보게 하며,
움직이지도 구르지도 않고, 길지도 짧지도 아니하며,
모든 낙(樂)이 영원히 끊긴 안은한 낙이요, 필경(畢竟)히 미묘하며,
색(色)도 색이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색이기도 하고,
나아가[受想行] 식(識)도 식이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식이기도 하며,
업(業)도 업이 끊어짐도 아니고, 번뇌[結]도 번뇌가 끊어짐도 아니며,
물상(物像)도 물상이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물상이기도 하고,
非계(界)도 계가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계이기도 하며,
非유(有)도 유가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유이기도 하고,
입(入)도 입이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입이기도 하며,
인(因)도 인이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인이기도 하고,
고(果)도 과가 끊어짐도 아니되 또한 과이기도 하며,
허(虛)도 아니고 실(實)도 아니어서, 일체의 실(實)이 끊겼으되 또한 실이기도 하며,
생(生)도 아니고 멸(滅)도 아니어서, 생멸을 영원히 떠났으되 또한 멸(滅)이기도 하며,
상(相)도 아니고 상 아님도 아니어서, 일체의 상이 끊겼으되 상이기도 하며,
교(教)도 아니고 교 아님도 아니되 또한 스승이기도 하며,
두려움도 아니고 편안함도 아니어서 일체의 두려움이 끊겼으되 편안함이기도 하며,
인(忍)도 아니고 인 아님도 아니어서 인 아님이 영원히 끊겼으되 또한 인이기도 하며,
지(止*)도 아니고 지 아님도 아니어서 일체의 지가 끊겼으되 또한 지이기도 하며,
일체법의 꼭대기[頂]에 있고, 능히 일체의 번뇌를 영원히 끊으며,
청정하여 상(相)이 없어서 모든 상을 영원히 떠났으며,
무량한 중생이 필경에 머물 곳이며, 능히 생사의 치연한 불길을 멸하며,
마침내 이것이 제불(諸佛)이 노니시는 곳이라 항상 변역치 아니하리라.'고 생각하나니,
이를 일러 '보살의 념법(念法)'이라 하느니라.
*止; 마음을 오롯이 한 곳에 모아 산란하지 않은 경계, 즉 三昧, 三摩地.
「云何念僧?諸佛聖僧,如法而住,受正直法,隨順修行,不可覩見、不可捉持、
不可破壞、無能嬈害、不可思議,一切眾生良祐福田。
雖為福田,無所受取,清淨無穢、無漏、無為、廣普無邊,其心調柔,
平等無二,無有撓濁,常不變易,是名念僧。
「어떤 것을 념승(念僧)이라 하는가? 제불(諸佛)의 거룩한 스님[聖僧]들은
여법(如法)히 머물고, 곧고 바른 법을 수지하여 그에 따라 수행하거니와,
볼 수도 붙잡을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해칠 수도 없어서 불가사의하며,
일체중생의 훌륭한 복전(福田)이지만, 비록 복밭일지라도 받아 취할 것이 없고,
때 없이 청정한 무루(無漏)요 무위(無為)이며, 광대하고 끝 없이 마음이 유연하고
둘 없이 평등하며, 요란하지 않고 항상 변역치 아니하나니,
이를 일러 념승(念僧)이라 하느니라.
「云何念戒?菩薩思惟有戒,不破不漏,不壞不雜,雖無形色,而可護持,
雖無觸對,善修方便,可得具足,無有過咎,諸佛菩薩之所讚歎,是大方等大涅槃因。
善男子!譬如大地、船舫、瓔珞、大姓、大海、灰汁、舍宅、刀劍、橋梁、
良醫妙藥、阿伽陀藥、如意寶珠、脚足眼目、父母陰涼,
無能劫盜不可嬈害,火不能焚,水不能漂。大山梯蹬,諸佛菩薩妙寶勝幢,
若住是戒,得須陀洹果,我亦有分,然我不須。何以故?
若我得是須陀洹果,不能廣度一切眾生。
若住是戒,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我亦有分,是我所欲。何以故?
若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當為眾生廣說妙法而作救護。是名菩薩摩訶薩念戒。
「어떤 것을 념계(念戒)라 하는가? 보살은 사유하기를,
'계(戒)는 깨지거나 새지 않고 무너지지도 섞이지도 아니하니,
비록 형색(形色)은 없으나 호지(護持)할 수 있고,
마주하여 접촉하지는 못하되 방편을 잘 닦아 허물없이 구족히 얻을 수 있다면
제불(諸佛) 보살의 찬탄을 받게 되려니와, 이것이 대방등대열반의 인(因)이리라.
선남자야! 마치 대지와 선박(船舶), 영락(瓔珞), 대족성(大族姓), 대해(大海), 잿물[灰汁],
사택(舍宅), 도검(刀劍), 교량(橋梁), 양의(良醫)의 묘약(妙藥), 아가타약(阿伽陀藥),
여의보주(如意寶珠), 발 다리와 눈, 부모의 그늘 등은 겁탈할 수도 해칠 수도 없으며,
불이 태울 수 없고 물이 띄울 수도 없는 것과 같아서
큰 산을 오르는 계단이요, 제불(諸佛) 보살의 묘보(妙寶) 승전의 당기[勝幢]이니,
만약 이 계를 의지한다면 나 또한 수다원과를 얻을 지분이 있지만 나는 원치 않나니,
왜냐하면, 내가 이 수다원과를 얻는다면 일체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요,
또 이 계를 의지한 즉 나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지분이 있고
이는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니,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중생을 위해 묘법을 널리 설하여 구호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하나니,
이를 일러 보살마하살의 념계(念戒)라 하느니라.
「云何念施?菩薩摩訶薩深觀此施,乃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因,
諸佛菩薩親近修集如是布施,我亦如是親近修集,若不惠施,不能莊嚴四部之眾。
施雖不能畢竟斷結,而能除破現在煩惱。
以施因緣故,常為十方無量無邊恒河沙等世界眾生之所稱歎。
菩薩摩訶薩施眾生食,則施其命,以是果報,成佛之時,常不變易。
以施樂故,成佛之時則得安樂。菩薩施時,如法求財,不侵彼施此,是故成佛得清淨涅槃。
菩薩施時,令諸眾生不求而得,是故成佛得自在。
我以施因緣,令他得力,是故成佛獲得十力。以施因緣令他得語,是故成佛得四無礙。
諸佛菩薩修集是施,為涅槃因,我亦如是修集布施,為涅槃因。廣說如雜花中。
「어떤 것을 념시(念施)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깊이 관찰하기를,
'이 보시[施]가 결국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因)인 것이라
제불(諸佛) 보살이 이와 같은 보시를 친근하여 닦아 모았으리니,
나도 또한 그렇게 친근하여 닦아 모아야 하려니와,
만약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면 사부대중을 장엄(莊嚴)할 수 없을 것이다.
보시가 비록 번뇌를 필경히 끊을 수는 없더라도 현재하는 번뇌는 제거할 수 있고,
보시의 인연으로써 시방의 무량무변한 항하사와 같은 세계 중생으로부터
언제나 칭탄을 받게 될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음식을 보시한 즉
수명을 베푼 것이니, 그 과보로 성불할 때 항상하여 변역치 않을 것이요,
낙(樂)을 보시하면 성불할 때 안락을 얻을 것이다.
보살이 보시할 때 여법(如法)히 재물을 구하고, 남의 것을 침해하여 보시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성불하여 청정한 열반을 얻을 것이며,
보살이 보시할 때 모든 중생은 구하지 않고 얻을 것이므로 성불하여 자재함을 얻으리라.
내가 보시한 인연으로 저들이 힘을 얻게 하였으니, 성불하거든 십력을 획득할 것이요,
보시한 인연으로써 저들이 말을 얻게 하였으니, 성불하거든 4무애(四無礙)를 얻으리라.
제불(諸佛) 보살이 이 보시를 닦아 모아서 열반의 인(因)을 삼았으니,
나 또한 그렇게 보시를 닦아 모아서 열반의 인(因)을 삼으리라' 하거니와,
자세한 것은 잡화경(雜花經; 화엄경)에 설명한 바와 같으니라.
「云何念天?有四天王處,乃至非想非非想處。若有信心,得四天王處,我亦有分。
若戒、多聞、布施、智慧,得四天王處,乃至得非想非非想處,我亦有分;然非我所欲。
何以故?四天王處乃至非想非非想處皆是無常,以無常故,生老病死,以是義故,非我所欲。
譬如幻化,誑於愚夫;智慧之人,所不惑著。如幻化者即是四天王處,乃至非想非非想處。
愚者即是一切凡夫,我則不同凡夫愚人。我曾聞有第一義天,謂諸佛菩薩常不變易,
以常住故,不生、不老、不病、不死,我為眾生精勤求於第一義天。何以故?
第一義天能令眾生除斷煩惱,猶如意樹。若我有信乃至有慧,則能得是第一義天,
當為眾生廣分別說第一義天。是名菩薩摩訶薩念天。
「어떤 것을 념천(念天)이라 하는가?
(보살은) '사천왕처에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가 있거니와,
만약 어떤 신심(信心)으로 사천왕처를 얻는다면 나 또한 지분이 있고,
계(戒)나 다문(多聞), 보시, 지혜로 사천왕처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를 얻는다 해도
나 역시 지분이 있지만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천왕처 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가 다 무상(無常)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생노병사(生老病死)하는 것이니, 이런 뜻에서 내가 바라지 않는다.
환화(幻化)는 어리석은 범부를 속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는 것과 같다.
환화와 같다는 것은 사천왕처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요,
어리석다는 것은 모든 범부이거니와, 나는 범부의 어리석은 자들과 같지 않고,
나는 일찍이 제불(諸佛) 보살의 항상하여 변역치 않고 상주(常住)함으로써
나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제일의천(第一義天*)을 들어본 적이 있으니,
나는 중생을 위해 제일의천을 정근(精勤)하여 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일의천은 중생으로 하여금 의수(意樹*)와 같이 번뇌를 제단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게 신(信)에서 혜(慧)까지가 있으면 이 제일의천을 얻어서
중생을 위해 제일의천을 널리 분별하여 설할 수 있게 되리라' 하니,
이를 일러 보살마하살의 념천(念天)이라 하느니라.
*第一義天; 22권 중에 世間天, 生天, 淨天, 義天의 四種天 중 義天.
義天은 십주보살을 뜻하니, 십주보살은 제법(諸法)의 뜻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셨다.
*意樹; 善果나 惡果를 뜻대로 맺는다는 나무.
「善男子!是名菩薩非世間也,是為世間不知見覺,而是菩薩所知見覺。
善男子!若我弟子,謂受持讀誦、書寫演說十二部經,
及以受持讀誦、書寫敷演、解說大涅槃經,等無差別者,是義不然。
何以故?善男子!大涅槃者,即是一切諸佛世尊甚深祕藏,以是諸佛甚深祕藏,是則為勝。
善男子!以是義故,大涅槃經甚奇、甚特、不可思議。」
「선남자야! 이를 '세간이 아닌 보살'이라 하고, 또 '세간이 지견각(知見覺)하지 못하되
보살은 지견각(知見覺)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약 나의 제자가
12부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서사연설(書寫演說)하는 것과
대열반경을 수지독송, 서사연설하고 해설(解說)하는 것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한다면 그 이치는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선남자야! 대열반이란 곧 일체 제불세존의 심오한 비장(祕藏)이요,
제불(諸佛)의 심오한 비장이기에 이것이 곧 수승한 것이니,
선남자야! 이런 의미에서 대열반경은 심히 기이하고 심히 특별하며 불가사의하느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我亦知是大涅槃經,甚奇甚特不可思議,佛法眾僧不可思議,
菩薩菩提、大般涅槃亦不可思議。世尊!以何義故,復言菩薩不可思議?」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또한 이 대열반경은 심히 기특하고 불가사의하며, 불법(佛法)과 스님들도 불가사의하고,
보살과 보리(菩提), 대반열반도 불가사의함을 알겠사오나,
세존이시여! 무슨 의미에서 보살이 불가사의하다고 하나이까?」
「善男子!菩薩摩訶薩無有教者,而能自發菩提之心,既發心已,勤修精進。
正使大火焚燒身首,終不求救,捨念法心。何以故?菩薩摩訶薩常自思惟:
『我於無量阿僧祇劫,或在地獄、餓鬼、畜生、人中、天上,為諸結火之所燒然,
初不曾得一決定法。決定法者,即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
若我為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護惜身心與命。
我為阿耨多羅三藐三菩提,正使碎身猶如微塵,終不放捨勤精進也。
何以故?勤進之心,即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因。』
善男子!如是菩薩,未見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能如是不惜身命,況復見已,
是故菩薩不可思議。又復不可思議,菩薩摩訶薩所見生死無量過患,非是聲聞緣覺所及,
雖知生死無量過惡,為眾生故,於中受苦,不生厭離,是故復名不可思議。
菩薩摩訶薩為眾生故,雖在地獄,受諸苦惱如三禪樂,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譬如長者,其家失火。長者見已從舍而出,諸子在後未脫火難。
長者爾時定知火害,為諸子故,旋還赴救,不顧其難。
菩薩摩訶薩亦復如是,雖知生死多諸過惡,為眾生故,處之不厭,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無量眾生發菩提心,見生死中多諸過惡,心即退沒,或為聲聞,或為緣覺。
若有菩薩聞是經者,終不退失菩提之心而為聲聞、辟支佛也。
如是菩薩雖復未階初不動地,而心堅固,無有退沒,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若有人言:『我能浮渡大海之水。』如是之言可思議不?」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가르쳐주는 자가 없어도 능히 스스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고,
기왕 보리심을 발한 뒤에는 힘써 정진하느니라. 설령 큰 불이 몸과 머리를 태우더라도
결코 구원을 찾아 법을 념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늘 스스로 사유하기를, 『나는 무량한 아승지 겁 동안
혹 지옥이나 아귀, 축생, 인중(人中), 천상에서 온갖 번뇌의 불길에 태워져 왔으나
애초에 어떤 결정한 법을 얻은 적이 없다. 결정한 법이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거니와,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해서라면 결코 몸과 마음과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이요,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해서라면 설령 몸이 티끌처럼 부셔지더라도
결코 힘써 정진하기를 놓아버리지 않겠다. 왜냐하면,
힘써 정진하는 마음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因)이기 때문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렇듯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보지 못하고서도
마침내 이렇게 신명을 아끼지 않거늘, 하물며 보고난 뒤이겠는가?
그러므로 보살이 불가사의한 것이다.
또 불가사의는 보살마하살이 보는 생사의 무량한 허물과 재앙이라서
성문 연각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거니와, 비록 생사의 무량한 허물을 알지만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그 안에서 고통 받기를 마다하지 아니하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는 것이며,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하기에
비록 지옥에 있더라도 온갖 고뇌 받기를 삼선락(三禪樂*) 같이 하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장자의 집에 불이 나니,
장자는 보고서 집 밖으로 나왔으나
자식들은 화난(火難)에서 벗어나지 못했느니라.
장자는 이때 불에 타게 될 것을 정히 알지만 자식들을 위하는 까닭에
되돌아 가서 구출하기에 힘쓰면서 몸을 돌보지 않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생사의 무수한 허물을 알지만 중생을 위하기에
생사에 처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는 것이며,
선남자야! 무량한 중생이 보리심을 발했다가도 생사 중에 허물과 우환이 많음을 보고
마음이 꺾여 혹 성문이 되거나 연각이 되거니와, 만약 어떤 보살이 이 경을 들으면
결코 보리심을 잃거나 성문 벽지불이 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은 비록 초지(初地)인 부동지(不動地)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마음이 견고하여 퇴몰(退沒)하는 일이 없으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대해(大海)의 물을 떠서 건널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말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三禪樂; 三禪天의 快樂. 三禪天은 色界 四禪天 중의 第三天 즉 定生喜樂地로서
심묘한 선정으로 말미암아 심신이 쾌락하다 한다.
「不也。世尊!如是之言,或可思議,或不可思議。
何以故?若人渡者,則不可思議。阿修羅渡,則可思議。」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말은 가사의(可思議)하기도 하고
혹은 불가사의하기도 하겠나이다.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건넌다는 것은 불가사의하겠사오나,
아수라(阿修羅)가 건너는 것은 가사의(可思議)하겠나이다.」
「善男子!我亦不說阿修羅也,正說人耳。」
「선남자야! 나는 아수라를 말한 것이 아니라, 분명 사람을 말한 것이다.」
「世尊!人中亦有可思議者,不可思議者。世尊!人亦二種:一者聖人,二者凡夫。
凡夫之人則不可思議,賢聖之人則可思議。」
「세존이시여! 사람 중에는 가사의한 자가 있고 불가사의한 자도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람도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성인이요, 둘째는 범부이온데,
범부인 사람은 불가사의하려니와 현성(賢聖)인 사람은 가사의하겠나이다.」
「善男子!我說凡夫,不說聖人。」
「선남자야! 나는 범부를 말했고 성인을 말하지 않았다.」
「世尊!若凡夫人,實不可思議。」
「세존이시여! 만약 범부라면 실로 불가사의하겠나이다.」
「善男子!凡夫之人,實不能渡大海水也。如是菩薩,實能渡於生死大海,
是故復名不可思議。善男子!若有人能以藕根絲懸須彌山,可思議不?」
「선남자야! 범부는 실로 대해의 물을 건널 수 없으려니와,
보살은 생사의 대해를 능히 건너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사람이 연뿌리 실로 수미산을 매단다고 한다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不也。世尊!」
「못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
「善男子!菩薩摩訶薩於一念頃,悉能稱量一切生死,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菩薩摩訶薩已於無量阿僧祇劫,常觀生死、無常、無我、無樂、無淨,
而為眾生分別演說常樂我淨,雖如是說,然非邪見,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如人入水,水不能漂,入大猛火,火不能燒,如是之事不可思議。
菩薩摩訶薩亦復如是,雖處生死,不為生死之所惱害,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人有三品,謂上中下。下品之人初入胎時,作是念言:
『我今處廁,眾穢歸處,如死屍間,眾蕀刺中,大黑闇處。』
初出胎時復作是念:『我今出廁,出眾穢處,乃至出於大黑闇處。』
中品之人作是念言:『我今入於眾樹林中,清淨河中,房舍屋宅。』出時亦爾。
上品之人作是念言:『我昇殿堂,在花林間,乘馬乘象,登涉高山。』出時亦爾。
菩薩摩訶薩初入胎時自知入胎,住時知住、出時知出,終不生於貪瞋之心,
而未得階初住地也,是故復名不可思議。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한 생각의 순간에 일체의 생사를 다 헤아리니,
그러므로 다시 불가사의하다 하고,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무량한 아승지 겁 동안
항상 생사(生死)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없음을 보아왔지만
중생을 위해 상락아정이라 분별하여 연설하거니와, 비록 그렇게 설하더라도
그릇된 견해가 아니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며,
선남자야! 사람이 물에 들어가도 물이 띄울 수 없고,
맹렬한 불 속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일은 불가사의하듯이,
보살마하살그와 같아서 비록 생사에 처하더라도 생사로 괴롭힘을 받지 아니하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사람은 세 가지 품질[三品]이 있으니, 상중하(上中下)를 이르거니와,
하품(下品)인 사람은 처음 입태(入胎)할 때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뒷간의 오물들이 모여든 곳에 처한 것이 마치 시체들 틈이나
가시밭 속의 깜깜한 데에 처한 것과 같다.』고 하고,
태에서 나와서는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뒷간의 오물 속에서 나왔고,
까깜한 어둠 속에서 나왔다.』고 하며,
중품(中品)인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깊은 숲 속이나 깨끗한 강 속이나
어떤 집 방 안에 들어왔다.』고 하고, 나왔을 때도 그렇게 하며,
상품(上品)인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전당(殿堂)에 올라 꽃 숲 사이에서
말을 타고 코끼리를 타고 높은 산에 올라왔다.』고 하고, 나왔을 때도 그렇게 하지만,
보살마하살은 처음 입태할 때 스스로 입태를 알고, 머물 때도 머무는 것을 알며,
나왔을 때도 나온 것을 알기에 결코 탐욕과 진에의 마음을 내지 않지만
그래도 초지(初地)에 오르지는 못한 것이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善男子!阿耨多羅三藐三菩提,實不可以譬喻為比。
善男子!心亦不可以方喻為比,而皆可說。
菩薩摩訶薩無有師諮受學之處,而能得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得是法已,心無慳悋,常為眾生而演說之,是故復名不可思議。
善男子!菩薩摩訶薩有身遠離非口,有口遠離非身,有非身非口而亦遠離。
身遠離者,謂離殺、盜、婬,是名身遠離。
非口、口遠離者,謂離妄語、兩舌、惡口、無義語,是名口遠離。
非身、非身非口是遠離者,所謂遠離貪嫉、瞋恚、邪見。善男子,是名非身非口而亦遠離。
善男子!菩薩摩訶薩不見一法是身是業及與離主,而亦有離,是故復名不可思議;
口亦如是。善男子!從身離身,從口離口,從慧遠離非身非口。
善男子!實有此慧,然不能令菩薩遠離。何以故?
善男子!無有一法能壞、能作,有為法性異生異滅,是故此慧不能遠離。
善男子!慧不能破、火不能燒、水不能爛、風不能動、地不能持、生不能生、老不能老、
住不能住、壞不能壞、貪不能貪、瞋不能瞋、癡不能癡,以有為性異生異滅故,
菩薩摩訶薩終不生念:『我以此慧破諸煩惱。』而自說言:『我破煩惱。』
雖作是說,非是虛妄,是故復名不可思議。」
「선남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실로 비유로써 비할 수 없거니와,
선남자야! 마음도 또한 방편과 비유로써 비할 수 없으나 다 설명할 수는 있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여쭙고 배움을 받을 스승일 것이 없지만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얻고, 이 법을 얻었거든 아낌없이 항상 중생을 위해
연설하기 때문에 또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몸을 여의었으니 입이 아니고,
입을 여의었으니 몸이 아니며, 몸도 입도 아니되 또한 여읜 것이니라.
몸을 여의었다는 것은 살생과 투도와 사음을 여의었으니 이를 '몸을 여의었다' 하는 것이요,
입이 아니고 입을 여의었다는 것은 망어와 양설, 악구, 뜻없는 말을 여의었으니,
'입을 여의었다' 하는 것이며, 몸이 아니고 몸도 입도 아니되 여읜 것이다는 것은
소위 탐질(貪嫉)과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여의었다는 것이니,
선남자야, 이를 일러 몸도 입도 아니되 여읜 것이라 한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것이 몸이고 업이고 주재(主宰)를 여읜 것이라 여길만 한
어떠한 법도 없지만, 그러나 여읨이 있으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한 것이며, 입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몸으로 몸을 여의고, 입에서 입을 여의며, 혜(慧)로부터 몸도 입도 아님을 여의지만
선남자야! 실로 이 혜(慧)를 보살로 하여금 여의게 할 수는 없나니,
왜냐하면, 선남자야! 파괴하거나 지을 수 있는 어떠한 법도 없고,
유위법(有為法)의 성품이 이생이멸(異生異滅*)하므로 이 혜(慧)를 여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혜(慧)는 깨뜨릴 수 없고,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익힐 수 없고,
바람이 흔들어볼 수 없으며, 땅이 지탱하지 못하고, 생(生)이 나게 하지 못하며,
노(老)가 늙게하지 못하고, 주(住)가 머물게 할 수 없으며, 괴(壞)가 무너뜨릴 수 없고,
탐(貪)이 탐하게 할 수 없으며, 진(瞋)이 성내게 하지 못하고, 치(癡)가 어리석게 하지 못하며,
유위(有為)의 성품이 이생이멸(異生異滅)하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결코 『나는 이 혜(慧)로써 모든 번뇌를 깨뜨리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번뇌를 깨뜨리리라.』 하거니와,
비록 그렇게 말하더라도 이것이 허망한 것이 아니니, 그래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는 것이니라.」
*異生異滅; 한 법이 생겨나면 따라서 곧 다른 법이 멸(滅)한다는 것.
수소 둘이 산소와 만나 물이 생겨나면 곧 두 수소와 산소는 멸한다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
파괴하거나 지을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은 萬有는 緣起生이라는 뜻이니,
緣起와 異生異滅을 깨닫는 慧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迦葉復言:「世尊!我今始知菩薩摩訶薩不可思議,佛法、眾僧、大涅槃經及受持者、
菩提、涅槃,不可思議。世尊!無上佛法當久近住?幾時而滅?」
가섭이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로소 知보살마하살이 불가사의하고,
불법(佛法)과 승가대중과 대열반경 및 수지(受持)하는 자와 보리(菩提)와 열반이
불가사의함을 알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무상(無上)의 불법은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되오며,
어느 때에 멸하게 되나이까?」
「善男子!若大涅槃經乃至有是五行,所謂聖行、梵行、天行、病行、嬰兒行,
若我弟子,有能受持讀誦、書寫演說其義,為諸眾生之所恭敬、尊重、讚歎、種種供養,
當知爾時佛法未滅。善男子!若大涅槃經具足流布,當爾之時,我諸弟子,
多犯禁戒,造作眾惡,不能敬信如是經典,以不信故,不能受持讀誦、書寫解說其義,
不為眾人之所恭敬乃至供養,見受持者輕毀誹謗:『汝是六師非佛弟子。』
當知佛法將滅不久。」
「선남자야! 만약 대열반경에서 마침내 다섯 가지 행[五行],
소위 성행(聖行)과 범행(梵行), 천행(天行), 병행(病行), 영아행(嬰兒行)에 이르러서
나의 제자들이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서사(書寫)하며 그 뜻을 연설하여
모든 중생의 공경과 존중, 찬탄과 갖가지 공양을 받는다면,
이때는 불법(佛法)이 멸하지 않으려니와,
선남자야! 만일 대열반경이 충분히 유포(流布)된 그 때에 많은 나의 제자들이
금계(禁戒)를 범하고 여러가지 악을 저지르면서 이러한 경전을 공경하여 믿지 않고,
그 불신으로 인해 수지독송하거나 서사하며 그 뜻을 해설하지 못하여
사람들의 공경이나 공양까지를 받기는 커녕 수지한 자를 보고 경멸하여 비방하기를,
『너는 육사(六師)의 외도이지 부처님 제자가 아니다』고 한다면,
불법(佛法)은 장차 오래지 않아 멸할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世尊!我親從佛聞如是義,迦葉佛法住世七日,然後滅盡。
世尊!迦葉如來有是經不?如其有者,云何言滅?
如其無者,云何說言大涅槃經是諸如來祕密之藏?」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직접 부처님으로부터 '가섭불(迦葉佛)의 법은 7일간 세상에 머물다가
그 뒤에 멸진(滅盡)하였다'는 뜻의 말씀을 들었사온데,
세존이시여! 가섭여래 때도 이 경이 있었나이까? 있었다면 왜 멸했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없었다면 어째서 대열반경이 모든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고 말씀하시나이까?」
佛言:「善男子!我先說言,惟有文殊乃解是義。今當重說,至心諦聽。
善男子!諸佛世尊有二種法:一者世法,二者第一義法。
世法者則有壞滅;第一義法則不壞滅。
復有二種:一者無常、無我、無樂、無淨,二者常樂我淨。
無常、無我、無樂、無淨,則有壞滅;常樂我淨則無壞滅。
復有二種:一者二乘所持,二者菩薩所持。二乘所持則有壞滅;菩薩所持則無壞滅。
復有二種:一者外,二者內。外法者則有壞滅;內法者則無壞滅。
復有二種:一者有為,二者無為:有為之法則有壞滅;無為之法無有壞滅。
復有二種:一者可得,二者不可得。可得之法則有壞滅;不可得者無有壞滅。
復有二種:一者共法,二者不共法。共法壞滅;不共之法無有壞滅。
復有二種;一者人中,二者天中。人中壞滅;天無壞滅。
復有二種:一者十一部經,二者方等經。十一部經則有壞滅;方等經典無有壞滅。
善男子!若我弟子受持讀誦、書寫解說方等經典,恭敬供養、尊重讚歎,
當知爾時佛法不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전에 한 말은
오직 문수만 그 뜻을 이해했을 뿐이니, 이제 다시 말하겠으니 지심으로 잘 듣거라.
선남자야! 제불세존에게는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세간법[世法]이요, 둘째는 제일의법(第一義法)이니라.
세법(世法)이란 괴멸(壞滅)이 있으나, 제일의법은 괴멸하지 않는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상(無常), 무아(無我), 무락(無樂), 무정(無淨)이요,
둘째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니라.
상락아정이 없는 즉 괴멸이 있고, 상락아정인 즉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2승(二乘)이 지닌 것이요, 둘째는 보살이 지닌 것이니라.
2승이 지닌 것은 괴멸이 있고, 보살이 지닌 것은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외법(外法)이요, 둘째는 내법(內法)이니라.
외법인 즉 괴멸이 있고, 내법은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위법(有為法)이요, 둘째는 무위법(無為法)이니라.
유위법은 괴멸이 있고, 무위법은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얻을 수 있는 법[可得法]이요, 둘째는 얻을 수 없는 법이니라.
가득법은 괴멸이 있고, 불가득법은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공법(共法)이요, 둘째는 불공법(不共法)이니라.
공법(共法)은 괴멸하지만 불공법(不共法)은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간 중[人中]이요, 둘째는 천상 중[天中]이니라.
인중(人中)은 괴멸하지만 천상[天]은 괴멸이 없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11부경이요, 둘째는 방등경(方等經)이니라.
11부경은 괴멸이 있지만 방등경전은 괴멸이 없다.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들이 방등경전을 수지독송하고 서사하며 해설하여
공경과 공양, 존중과 찬탄을 받는다면,
이때는 불법(佛法)이 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善男子!汝向所問迦葉如來有是經不者,善男子!大涅槃經悉是一切諸佛祕藏。
何以故?諸佛雖有十一部經,不說佛性、不說如來常樂我淨、
諸佛世尊永不畢竟入於涅槃,是故此經名為如來祕密之藏。
十一部經所不說故,故名為藏。如人七寶不出外用,名之為藏。
善男子!是人所以藏積此物,為未來事故。
何等未來事?所謂穀貴、賊來侵國、值遇惡王、為用贖命、道路澁難,財難得時乃當出用。
善男子!諸佛如來祕密之藏亦復如是,為未來世,諸惡比丘畜不淨物,
為四眾說如來畢竟入於涅槃,讀誦世典不敬佛經,如是等惡現於世時,如來為欲滅是諸惡,
令得遠離邪命利養,如來則為演說是經。若是經典祕密之藏滅不現時,當知爾時佛法則滅。
「선남자야! 네가 가섭여래 때도 이 경이 있었는가를 물었거니와,
선남자야! 대열반경은 모두가 일체제불의 비장(祕藏)이니라.
왜냐하면 제불(諸佛)에게 비록 11부경이 있다 하나
불성(佛性)과 여래의 상락아정을 설하지 않았고,
제불세존은 영원하여 필경히 열반에 들지 아니함을 설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이 대열반경이 여래의 비밀한 장(藏)인 것이니라.
11부경에서는 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藏)이라 하는 것이요,
마치 사람이 칠보를 간직하고 밖으로 쓰지 않는 것과 같기에 장(藏)인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 사람이 장에 칠보를 쌓아두는 것은 미래의 일을 위함이거니와,
어떤 것이 미래의 일이겠는가? 소위 곡식이 귀하거나, 적이 나라를 침공하거나,
나쁜 왕을 만났을 때나, 그것을 써서 목숨을 구하기 위할 때나, 길이 막혀 어려울 때나,
재물로 곤란을 당했을 때 마침내 꺼내 쓰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제불여래의 비밀한 장도 그와 같아서 미래세에 악한 비구들이
부정한 물건을 축적하거나, 사부대중들에게 여래는 필경 열반에 드신다고 말하거나,
세간의 경전을 읽고 불경(佛經)을 공경하지 않는 이러한 악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여래는 이 모든 악을 멸하고, 사명(邪命*)과 이양(利養)을 멀리하게 하고자
여래는 곧 이 경을 연설하는 것이니, 만일 이 경전의 비밀한 장이 멸하여 보이지 않을 때
이때는 불법(佛法)이 멸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邪命; 정당하지 못한 삶을 도모하는 것.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下口食; 밭에 약재를 심어 먹는 것.
둘째는 仰口食; 우러러 日月星宿이나 바람과 비, 천둥번개, 벼락을 살피는 술수로써
삶을 도모하는 것. 셋째는 方口食; 아첨과 허세를 부리며 간교한 말로 살아가는 것.
넷째는 維口食; 온갖 주술과 점괘로 길흉을 점쳐주며 살아가는 것.
「善男子!大涅槃經常不變易,云何難言迦葉佛時有是經不?
善男子!迦葉佛時,所有眾生貪欲微薄,智慧滋多,諸菩薩摩訶薩等調柔易化,有大威德,
總持不忘,如大象王世界清淨。一切眾生悉知如來終不畢竟入於涅槃,常住不變。
雖有是典,不須演說。善男子!今世眾生多諸煩惱、愚癡、憙忘、無有智慧,多諸疑網,
信根不立,世界不淨,一切眾生咸謂如來無常、遷變、畢竟入於大般涅槃,
是故如來演說是典。善男子!迦葉佛法實亦不滅。何以故?常不變故。
善男子!若有眾生我見無我、無我見我,常見無常、無常見常,樂見無樂、無樂見樂,
淨見不淨、不淨見淨,滅見不滅、不滅見滅,罪見非罪、非罪見罪,輕罪見重、重罪見輕,
乘見非乘、非乘見乘,道見非道、非道見道,實是菩提見非菩提、實非菩提謬見菩提,
苦見非苦、集見非集、滅見非滅、實見非實,實是世諦見第一義諦、第一義諦見是世諦,
歸見非歸、非歸見歸,以真佛語名為魔語、實是魔語以為佛語,
如是之時,諸佛乃說大涅槃經。善男子!寧說蚊[口*(隹/乃)]盡大海底,不可說言如來法滅。
寧說口吹須彌散壞,不可說言如來法滅。寧言以索繫縛猛風,不可說言如來法滅。
寧言佉陀羅火中生蓮花,不可說言如來法滅。寧說阿伽陀藥而為毒藥,不可說言如來法滅。
寧說月可令熱、日可令冷,不可說言如來法滅。寧說四大各捨己性,不可說言如來法滅。
「선남자야! 대열반경은 항상하여 변역치 않거늘,
어째서 번거롭게 가섭불 때 이 경이 있었느냐고 묻느냐?
선남자야! 가섭불 때의 중생들은 탐욕이 적고 지혜가 많았기에
보살마하살이 부드럽게 다스려 교화하기 쉬웠으며, 큰 위덕(威德)도 있고
총지(總持)도 잊지 않았으니, 마치 대상왕(大象王) 세계처럼 깨끗하였느니라.
일체중생이 여래는 결코 필경히 열반에 들지 않고 상주불변함을 다 알고 있었으니,
이 경전이 있었지만 연설할 필요가 없었느니라.
선남자야! 지금 세상의 중생들은 번뇌가 많고 어리석어서 쉽게 잊고 지혜도 없으며,
의망(疑網)이 많고 신근(信根)이 서지 못하였으니, 세계가 깨끗치 못할 뿐더러,
일체중생이 모두 여래는 무상(無常)하고 변천(變遷)하며 필경 대반열반에 드신다고 하니,
그 때문에 여래가 이 경전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섭불의 법은 실로 멸하지 않았나니, 왜냐하면 항상하여 변치 않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아(我)를 무아(無我)로 보거나 무아를 아로 보고,
상(常)을 무상(無常)으로 보거나 무상을 상으로 보며, 낙(樂)을 무락(無樂)으로 보거나
무락을 낙으로 보고, 정(淨)을 부정(不淨)으로 보거나 부정을 정으로 보며,
멸(滅)을 불멸로 보거나 불멸을 멸로 보고, 죄를 죄 아니다 하거나 죄 아닌 것을 죄라 하며,
가벼운 죄를 무겁다 하거나 무거운 죄를 가볍다 하고, 승(乘)을 승 아니라 하거나
승 아닌 것을 승이라 하며, 도(道)를 도 아니라 하거나 도 아닌 것을 도라 하고,
실로 보리(菩提)인 것을 보리가 아니라 하거나 실로 보리가 아닌 것을 보리라 잘못 알며,
고(苦)를 고 아니라 하고, 집(集)을 집 아니라 하고, 멸(滅)을 멸 아니라 하고,
실(實)을 실 아니라 하며, 실로 세제(世諦)인 것을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제를 세제라 하며, 귀의[歸]를 귀의 아니라 하고 귀의 아닌 것을 귀의라 하며,
참된 부처님 말씀을 마군의 말이라 하고 실로 마군의 말인 것을 부처님 말씀이라 하거든,
이러한 때에 제불(諸佛)은 마침내 대열반경을 설하시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차라리 모기가 입으로 빨아들여 대해의 밑바닥을 드러낸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장(法滅)을 (그렇다고) 말할 수 없고,
차라리 입으로 불어 수미산을 흩어버린다 할지언정 여래의 법장을 말할 수 없으며,
차라리 거샌 바람을 밧줄로 붙들어 맨다 할지언정 여래의 법장을 말할 수 없고,
차라리 거타라(佉陀羅*) 불 속에서 연꽃이 피었다 할지언정 여래의 법장을 말할 수 없으며,
차라리 아가다(阿伽陀*) 약을 독약이라 할지언정 여래의 법장을 말할 수 없고,
차라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갑게 한다 할지언정 여래의 법장을 말할 수 없으며,
차라리 사대(四大)가 각각 제 성품을 버렸다 할지언정 여래의 법장을 말할 수 없느니라.
*佉陀羅; khadira, 숯을 만드는 단단한 나무 이름.
*阿伽陀; Agada, 만병통치한다는 약 이름.
「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未有弟子解甚深義,
彼佛世尊便涅槃者,當知是法不久住世。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有諸弟子解甚深義,
佛雖涅槃,當知是法久住於世。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제자들이 미처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그 부처님 세존께서 문득 열반하신다면,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모든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였다면,
부처님이 비록 열반하시더라도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雖有弟子解甚深義,
無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佛便涅槃,當知是法不久住世。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有諸弟子解甚深義多,
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佛雖涅槃,當知佛法久住於世。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비록 제자들이 심오한 뜻을 이해하였더라도 불법(佛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백의(白衣;俗家)의 단월(檀越;施主)이 없는데
부처님이 문득 열반하신다면,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모든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대부분 이해하고, 또 불법(佛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俗家)의 시주(施主)들이 있다면,
부처님이 비록 열반하시더라도 불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有諸弟子解甚深義,
雖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而諸弟子演說經法貪為利養,不為涅槃,
佛復滅度,當知是法不久住世。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
有諸弟子解甚深義,復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彼諸弟子凡所演說不貪利養為求涅槃,
佛雖滅度,當知是法久住於世。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모든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또 불법(佛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의 시주들이 있더라도
제자들이 경법(經法)을 탐욕과 이양(利養)을 위해 연설하고, 열반을 위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에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또 불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의 시주들도 있고,
저 제자들도 통상 탐욕과 이양을 위하지 않고 열반을 구하고자 연설한다면,
부처님이 비록 멸도하시더라도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雖有弟子解甚深義,
復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而諸弟子多起諍訟,互相是非,
佛復涅槃,當知是法不久住世。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
有諸弟子解甚深義,復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彼諸弟子修和敬法,
不相是非,互相尊重,佛雖涅槃,當知是法久住不滅。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비록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또 불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의 시주들이 있다지만
제자들이 자주 다툼을 일으키고, 서로 시비한다면,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또 불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의 시주들도 있고,
저 모든 제자들이 법을 순수히 받들어 닦고, 서로 시비하지 않고, 서로 존중한다면,
부처님이 비록 열반하시더라도 이 법은 오래 머물러 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雖有弟子解甚深義,
復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彼諸弟子為大涅槃而演說法,互相恭敬不起諍訟,
然畜一切不淨之物,復自讚言:『我得須陀洹果乃至阿羅漢果。』
佛復涅槃,當知是法不久住世。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
有諸弟子解甚深義,復有篤信白衣檀越敬重佛法,彼諸弟子為大涅槃演說經法,
善修和敬互相尊重,不畜一切不淨之物,亦不自言得須陀洹乃至得阿羅漢,
彼佛世尊雖復滅度,當知是法久住於世。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비록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또 불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의 시주들도 있고, 저 제자들도 대열반을 위해 법을 연설하고,
서로 공경하여 다툼을 일으키지 않는다지만, 그러나 온갖 부정한 물건을 축적하면서
스스로 『나는 수다원과나 아라한과에 이르기까지를 얻었노라.』 한다면,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제자들이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고, 또 불법을 소중히 공경하는
신심이 두터운 속가의 시주들도 있고, 저 제자들도 대열반을 위해 경법(經法)을 연설하며,
법을 순수히 받들어 잘 닦고, 서로 존중하고, 일체의 부정한 물건도 쌓지 않고,
또한 스스로 수다원이나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지 않는다면,
저 부처님 세존이 비록 멸도하시더라도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有諸弟子,乃至不畜不淨之物,
又不自言得須陀洹乃至阿羅漢,各執所見,種種異說,而作是言:
『長老!諸佛所制四重之法,乃至七滅諍法,為眾生故,或遮或開,十二部經亦復如是。
何以故?佛知國土時節各異,眾生不同利鈍差別,是故如來或遮或開,有輕重說。
善男子!譬如良醫,為病服乳,為病遮乳;熱病聽服,冷病則遮。
如來亦爾,觀諸眾生煩惱病根,亦開亦遮。
長老!我親從佛聞如是義,惟我知義,汝不能知。
惟我解律,汝不能解。我知諸經,汝不能知。』 彼佛復滅,當知是法不久住世。
復次善男子,若佛初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有諸弟子,
乃至不言我得須陀洹果至阿羅漢,亦不說言:
『諸佛世尊為眾生故或遮或開。長老!我親從佛聞如是義,如是法,如是律。
長老!當依如來十二部經,此義若是,我當受持。如其非者,我當棄捨。』
彼佛世尊雖復涅槃,當知是法久住於世。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제자들이 부정한 물건을 축적하지도 않고, 또 스스로 수다원이나 아라한을
얻었노라 하지도 않더라도, 저마다 소견에 집착하여 온갖 이설(異說)로 말하기를,
『장로여! 제불(諸佛)께서 사중(四重)의 법이나 7멸쟁법(七滅諍法)까지를 제정하시어
중생을 위해 금하기도 하고 허용하기도 하셨거니와, 12부경도 그와 같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국토와 시절이 저마다 다르고, 중생의 영리하고 둔함이
같지 않고 차별한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여래께서 금하거나 허용하시고,
또 가볍고 무거움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마치 양의(良醫)가 병에 우유를 먹게 하기도 하고 먹지 못하게도 하는데,
열병(熱病)에는 먹게 하고, 냉병(冷病)인 즉 먹지 못하게 막듯이,
여래도 그러하시어 중생들의 번뇌병의 근원을 살펴 허용하시거나 차단하시는 것이다.
장로여! 나는 몸소 이러한 뜻을 부처님으로부터 들었으니, 나만이 그 의미를 알고
그대는 알수가 없으며, 나만이 율법을 이해하고 그대는 이해하지 못하며,
나는 모든 경을 알지만 그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저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또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서
제자들이 수다원이나 아라한까지도 얻었노라고 말하지 않고,
또 『제불세존은 중생을 위해 금하기도 하고 허용하기도 하신다.
장로여!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이러한 뜻과 이러한 법, 이러한 율(律)을 직접 들었다.
장로여! 여래의 12부경에 의지하여 이 뜻이 옳다면 내가 수지(受持)하겠지만
그르다면 나는 버리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면,
부처님 세존이 비록 열반하시더라도 이 법은 세상에 오래 머물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善男子!我法滅時,有聲聞弟子,或說有神、或說神空,或說有中陰、或說無中陰,
或說有三世、或說無三世,或說有三乘、或說無三乘,或言一切有、或言一切無,
或言眾生有始有終、或言眾生無始無終,或言十二因緣是有為法、或言因緣是無為法,
或言如來有病苦行、或言如來無病苦行,或言如來不聽比丘食十種肉,
何等為十?人、蛇、象、馬、驢、狗、師子、猪狐、獼猴,其餘悉聽;
或言一切不聽。或言比丘不作五事,何等為五?
不賣生口、刀、酒、酪沙、胡麻油等,其餘悉聽。
或言不聽入五種舍,何等為五?屠兒、婬女、酒家、王宮、旃陀羅舍,餘舍悉聽。
或言不聽著憍奢耶衣,餘一切聽。
或言如來聽諸比丘受畜衣食臥具,其價各直十萬兩金;或言不聽。
或言涅槃常樂我淨、或言涅槃直是結盡,更無別法名為涅槃,
譬如織縷名之為衣,衣既壞已,名之無衣,實無別法名無衣也,涅槃之體亦復如是。
善男子!當爾之時,我諸弟子正說者少,邪說者多;受正法少,受邪法多;
受佛語少,受魔語多。
「선남자야! 나의 법이 멸할 때 성문제자들은 신(神)이 있다하거나 신은 없다 하고,
혹은 중음(中陰)이 있다 하거나 중음은 없다 하고, 혹은 삼세(三世)가 있다 하거나
삼세는 없다 하고, 삼승(三乘)이 있다 하거나 삼승은 없다 하고,
혹은 모든 것이 있다 하거나 모든 것은 무(無)다 하고,
혹은 중생은 시작도 있고 끝도 있다 하거나 중생은 시작도 끝도 없다 하고,
혹은 12인연은 유위법(有為法)이다 하거나 12인연은 무위법(無為法)이다 하고,
혹은 여래도 병고(病苦)가 있다 하거나 여래는 병고가 없다 하고,
혹은 여래는 비구가 열 가지 고기, 즉 사람, 뱀, 코끼리, 말, 나귀, 개, 사자, 돼지,
여우, 원숭이를 먹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고 다른 것은 다 허락하셨다 하거나
일체를 허락치 않으셨다 하고, 혹은 비구가 생구(生口*), 칼, 술, 분유(粉乳;酪沙?),
호마유(胡麻油)의 다섯 가지를 판매하는 일을 하면 안 되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락하셨다 하거나, 혹은 다섯 종류의 집, 즉 백정(白丁;屠兒),
음녀(婬女), 술집, 왕궁, 전다라(旃陀羅)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다른 집은 다 허락하셨다 하거나, 혹은 교사야(憍奢耶;비단) 옷을 입는 것은
허락치 않으셨고, 그 밖의 모든 옷은 허락하셨다 하거나,
혹은 여래께서 비구가 옷과 음식, 침구를 그 값이 각각 금 십만냥까지 받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거나, 혹은 다 허락치 않으셨다 하거나,
혹은 열반은 상락아정(常樂我淨)하다 하고, 혹은 열반이 바로 번뇌가 다한 것이요
다시 열반이라 할 다른 법이 없어서 마치 실을 짠 것을 옷이라 하고,
옷이 기왕 헤어져 없어지면 옷이 없다 하지만 실로 옷이 없다 할 다른 법이 없듯이,
열반의 체성[體]도 그와 같다고 말하려니와,
선남자야! 그 때를 당하면 나의 제자들이 바르게 말하는 자는 적고,
그릇되게 말하는 자는 많을 것이요, 정법(正法)을 받은 자는 적고,
사법(邪法) 받은 자는 많을 것이며, 부처님 말씀을 받는 자는 적고,
마군의 말을 받는 자는 많을 것이니라.
*生口; ①포로(捕虜), ②희생된 가축
「善男子!爾時拘睒彌國有二弟子:一者羅漢,二者破戒。破戒徒眾凡有五百,
羅漢徒眾其數一百。破戒者說:『如來畢竟入於涅槃,我親從佛聞如是義。
如來所制四重之法,若持亦可,犯亦無罪。我今亦得阿羅漢果,四無礙智。
而阿羅漢亦犯如是四重之法,四重之法若是實罪,阿羅漢者終不應犯。
如來在世制言堅持,臨涅槃時皆悉放捨。』
阿羅漢比丘言:『長老!汝不應說如來畢竟入於涅槃,我知如來常不變易。
如來在世及涅槃後,犯四重禁罪無差別。若言羅漢犯四重禁,是義不然。
何以故?須陀洹人尚不犯禁,況阿羅漢?若長老言,我是羅漢。
阿羅漢者,終不生想我得羅漢。阿羅漢者,惟說善法,不說不善。
長老所說,純是非法。若有得見十二部經,定知長老非阿羅漢。』
善男子!爾時破戒比丘徒眾,即共斷是阿羅漢命。
善男子!是時魔王,因是二眾忿恚之心,悉共害是六百比丘。
爾時凡夫各共說言:『哀哉佛法,於是滅盡。』而我正法實不滅也。
爾時其國有十二萬諸大菩薩,善持我法,云何當言我法滅耶?
當于爾時,閻浮提內無一比丘為我弟子。爾時波旬悉以大火焚燒一切所有經典,
其中或有遺餘在者,諸婆羅門即共偷取,處處採拾安置己典。
以是義故,諸小菩薩,佛未出時,率共信受婆羅門語。
諸婆羅門雖作是說:『我有齋戒。』而諸外道真實無也。
諸外道等雖復說言:『有我樂淨。』而實不解我樂淨義。
直以佛法一字、二字、一句、二句,說言我典,有如是義。」
「선남자야! 이때 구섬미(拘睒彌)국에 두 제자가 있어 한 무리는 나한이요,
둘은 파계였는데, 파계한 무리가 오백, 나한인 무리가 일백이니라.
파계한 자는 말하기를,
『여래는 필경 열반에 드신다고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그런 뜻을 들었다.
여래가 제정하신 사중(四重)의 법은 지켜도 되지만 범해도 죄가 없다.
나는 지금 또 아라한과와 4무애지(四無礙智)를 얻었다.
아라한도 이런 사중의 법을 범하거니와, 사중의 법이 실로 죄가 된다면
아라한이라면 결코 범해서는 안 될 것이나,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는 견지(堅持)하라 하셨지만
열반에 임하셔서는 다 허용해주셨다.』고 하자, 아라한인 비구는 말하기를,
『장로여! 그대는 여래가 필경 열반에 드신다고 말해서는 아니 되오.
나는 여래는 항상하시어 변역치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나 열반하신 뒤거나 사중금(四重禁)의 죄를 범하기는 마찬가지라
만약 나한이 사중금을 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다원도 사중금을 범하지 않는데, 하물며 아라한이겠습니까?
만일 장로께서 '내가 바로 나한이다.'고 한다면, 아라한이란 결코 '내가 나한을 얻었다'는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 아라한은 선법(善法)만을 설하고 불선법은 설하지 않기에
장로의 말씀은 순전히 이것이 비법(非法)입니다.
만약 12부경을 보셨다면 정녕 장로께서는 아라한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하니,
선남자야! 이때 파계한 비구들이 함께 이 아라한을 죽이느니라.
선남자야! 이에 마왕이 이 두 무리로 인해 분노하여 이 육백의 비구를 모두 죽이니,
이때 범부들이 제각기, 『아! 슬프도다, 불법(佛法)이 여기에서 멸진(滅盡)하다니.』 하지만,
그러나 나의 정법은 실로 멸하지 않아서 이때 그 나라에 있던 12만의 대보살들이
나의 법을 잘 지니고 있었거늘, 어떻게 나의 법이 멸했다고 말하겠는가?
이때를 당하여 염부제 안에는 한 비구도 나의 제자가 없고,
이때 파순(波旬)이 큰 불로 모든 경전을 불살라버렸는지라
그 중 혹 남은 것들은 바라문들이 훔쳐서 군데군데 뽑아다가 자기들 경전에 집어 넣으니,
이런 이유로 작은 보살들이 부처님 나시기 전까지는 바라문의 말을 쫓아 다 믿으려니와,
바라문들은 『내게 재계(齋戒*)가 있다.』고 말하나 외도들에게는 진실로 없고,
외도들이 『아락정(我樂淨)이 있다.』고 말하나 실로 아락정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바로 불법(佛法)의 한 글자나 두 글자, 한 구나 두 구를 가져다가 나의 경전을 말하려니
이와 같은 뜻이 있는 것이니라.」
*齋戒; 부정한 마음을 맑히는 것이 재(齋)요, 허물이 없게 몸을 억제[禁]하는 것이 계(戒)다.
爾時拘尸那城娑羅雙樹間,無量無邊阿僧祇眾聞是語已,悉共唱言:
「世間虛空,世間虛空。」
이때 구시나성 사라쌍수 사이에 있던 무량무변한 아승지의 대중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 다 함께 외쳐 말했다.
「세간이 허공(虛空) 같구나, 세간이 허공 같구나.」
迦葉菩薩告諸大眾:「汝等且莫憂愁啼哭,世間不空,如來常住,無有變易,法僧亦爾。」
爾時大眾,聞是語已,啼哭即止,悉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가섭보살이 대중들에게 고했다.
「그대들은 근심걱정으로 슬퍼하지 마십시오. 세간은 공허하지 않고
여래께서는 상주(常住)하시어 변역함이 없으시며, 법(法)과 승(僧도) 그러합니다.」
이때 대중들이 이 말을 듣자 슬피 울기를 멈추고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다.
◎ 大般涅槃經卷第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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