垂示云。
一機一境。一言一句。且圖有箇入處。好肉上剜瘡。成窠成窟。
大用現前不存軌則。且圖知有向上事。蓋天蓋地又摸索不著。
恁麼也得。不恁麼也得。太廉纖生。
恁麼也不得。不恁麼也不得。太孤危生。
不涉二塗。如何即是。
請試舉看。
수시(垂示)하여 가로대,
일기일경(一機一境*)이나 일언일구(一言一句)에서 어떤 입처(入處*)를 도모한다면
잘해야 부스럼을 도려내는[肉上剜瘡*] 사업[窠窟*]이나 이룰 것이다.
대용(大用*)을 드러내는 데에는 궤칙(軌則)이 존재하지 않고,
어떤 향상사(向上事*)을 알고자 하더라도 온 천지[蓋天蓋地*]에 모색할 길이 없다.
그렇게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 하면 태렴섬생(太廉纖生*)이요,
그렇게 해도 안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안 된다 하면 태고위생(太孤危生*)이거니와,
두 길을 제쳐두고서는 어찌해야 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一機一境; 禪林用語。機는 내적인 마음의 작용, 境은 외적 형상을 지닌 사물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염화(拈花)가 境이라면 迦葉이 그 뜻을 알고 破顏微笑한 것이 機이다.
또 멀리 연기나는 것은 境이요, 그 연기를 보고 불이 있음을 아는 것은 機이다.
禪林에서는 스승이 학인을 誘導하는 機法으로 써왔으나, 그 후에 점차 형식화하고
이 용어는 일반인들로부터 禪僧들은 悟道軌則만 고집한다고 비웃고 폄하하는 말로 바뀌었다.
*入處; 보통은 「處」(āyatana), 「六入處」를 뜻하나, 여기서는 '參究해 들어갈 곳'.
*肉上剜瘡; 살 위에서 부스럼을 도려내다. 剜肉做瘡은 살을 긁어 부스럼내다.
*成窠成窟; 窠窟을 이루다. 窠窟; ①動物의 서식처 ②'事業'에의 비유.
*大用; ⓘ몹시 큰 用處 ②重用
*向上; 禪林用語。下에서 上에, 末에서 本에 이르는 것.
반대로;上에서 下에, 本에서 末에 이르는 것을 向下라 한다.
미혹의 경계에서 깨달음의 경계로 直入하거나 上求菩提의 工夫를 向上門이라 하고,
또 逆卍字[卐]로 표하며, 自利門에 속한다.
반대로 自悟의 境을 順應하여 迷의 境에 들어가 化他의 妙用을 자재히 示現하는 것을
向下門이라 하고, 또 順卍字로 표하며, 利他門에 속한다.
至極한 大道나 大悟의 境界를 形容하여 向上一路, 向上道라 하고,
佛道의 至極히 深奧한 理致를 探求하는 것을 向上事, 向上極則事, 向上關棙子라 한다.
真實하고 絕對的인 깨달음의 世界를 佛祖께서는 宣說하시지 않았으되,
몸소 參究하여 體得하는 것을 向上一路 千聖不傳이라 하고,
凡夫의 境界에서 向上轉하여 諸佛의 絕對境地에 이르는 것을 向上轉去;
스승이 學人에게 명하거나 혹은 상호간에 상방으로 하여금 다시 철저한 견해를
제시하게 할 때, 통상 「向上更道(향상하여 다시 말하라)」라고 한다.
스승이 學人을 접인(接引)하거나 추련(鎚鍊)하는 第一義諦로 사용하는 것을 向上鉗鎚,
諸佛의 究極境界에 直入한 大力量과 大機用을 능히 펼치는 것을 向上一機,
諸佛境界를 철저히 體得하는 일을 능히 감당하는 사람을 向上人, 向上機,
극오(極悟)경지의 지극한 語句를 向上一句,
極悟의 至極한 宗旨를 向上宗乘라 한다.
*蓋天蓋地; 禪林用語. 普天普地 또는 盡十方世界.
*太廉纖生; 太는 甚, 廉은 粗(거칠다), 纖은 細의 뜻이니,
이런 저런 방법을 두루 친절하고 자상히 설명해 후학을 인도하는 긍정적 지도방식을 말한다.
*太孤危生; 孤危는 孤峰은 險峻하고 危殆하여 오르지 못함에 비유하니,
叢林에서는 아무리 機鋒이 銳利한 向上의 한 수일지라도 言語나 思慮로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이래도 저래서도 안 된다는 부정적 지도방식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지도법을 벗어난 마조스님의 독특한 지도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함이다.
【三】 舉
馬大師不安
(這漢漏逗不少。帶累別人去也)
院主問。和尚近日。尊候如何
(四百四病一時發。三日後不送亡僧。是好手。仁義道中)
大師云。日面佛月面佛
(可殺新鮮。養子之緣)。
【제 3칙】 마조(馬祖)스님의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
마조대사가 병중(病中)이러니,
(이 작자의 소홀함<漏逗*>이 적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 폐를 끼치는구나.)
원주(院主)가 문안하되, "화상께서는 요즘 존후(尊候)가 어떠십니까?" 하니,
(404병<四百四病*>이 일시에 발병했더라도 송망<送亡*> 3일 이전<죽기 전>이니,
잘한 일이요, 인의<仁義>의 도리를 한 것이다.)
대사가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하니라.
(지극히 신선<新鮮>하구나. 자손을 양육하려는 것이로다.)。
*漏逗; ①공안의 구성요소로서 상대에게 짐짓 허(虛)를 보이거나
진실과 다르게 말을 하여 의심을 내게 하고 깨닫게 하는 방편을 말한다.
②소홀(疏忽), 疏漏(하는 일이니 생각 등이 찬찬하지 못하여 거칠고 엉성함).
*帶累; 拖累. 無辜한 사람을 끌어들여 번거롭게 하다. 누를 끼치다.
*四百四病; 智度論에 「四百四病이란 四大로 된 몸이 늘 서로 침해하여
각 大마다 101 가지 병이 일어나니, 水와 風으로 인한 冷病이 202 가지,
地와 火로 인한 熱病이 202 가지, 도합 404 가지 병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送亡; 亡者를 葬地로 보내다. 出喪.
3일 후에 출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출상하기 3일 이전의 시점 즉 일찍 문안 왔다는 뜻이다.
*日面佛月面佛; '나는 수명의 길고 짧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佛名經」에 의하면 日面佛의 壽는 1,800歲시요, 月面佛의 壽는
겨우 하룻밤이셨다 한다. 馬祖道一禪師는 이를 인용하여 壽命의 長短이나
生滅과 去來의 相을 떠나 본래 구족한 佛性에 契合할 것을 顯示하셨다.
馬大師不安。院主問。和尚近日尊候如何。大師云日面佛月面佛。
祖師若不以本分事相見。如何得此道光輝。
此箇公案。若知落處便獨步丹霄。若不知落處。往往枯木巖前差路去在。
若是本分人到這裏。須是有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底手腳。方見馬大師為人處。
如今多有人道。馬大師接院主。且喜沒交涉。
如今眾中多錯會瞠眼云。在這裏。左眼是日面。右眼是月面。有什麼交涉。
驢年未夢見在。只管蹉過古人事。
只如馬大師如此道。意在什麼處。
有底云。點平胃散一盞來。有什麼巴鼻。到這裏。作麼生得平穩去。
所以道。向上一路千聖不傳。學者勞形如猿捉影。
只這日面佛月面佛。極是難見。雪竇到此。亦是難頌。
卻為他見得透。用盡平生工夫。指注他。
諸人要見雪竇麼。看取下文。
마조대사가 병중(病中)에 있는데 원주(院主)가 문안하되,
"화상께서는 요즘 존후(尊候)가 어떠십니까?" 하니,
대사가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하였다.
조사(祖師)를 본분사(本分事*)로써 만나뵙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도(道)의 광휘(光輝;光榮)가 얻어질 수 있겠는가?
이 공안의 낙처(落處*)를 안다면 문득 단하(丹霄*)를 홀로 걷겠지만,
낙처를 모르면 왕왕 고목암전(枯木巖前*; 枯木禪)의 다른 길에 있게 된다.
본분인(本分人*)이라면 이런 경우에 논 갈고 있는 농부의 소를 내몰고,
굶주린 자의 음식을 빼앗을 줄 알아야* 비로소 마대사(馬大師)의
사람 됨됨이[為人處]를 알 것이다.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마대사가 원주를 접대(接待)하였다'고 말하는데
거의 연관성이 없거니와, 지금의 대중 대개가 잘못 알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이것이 왼쪽 눈은 해 모습[日面]이고, 오른쪽 눈은
달 모습이라는 건가?' 하고 말하지만, 무슨 연관성이 있는 말인가?
이래서야 여년(驢年*)에 꿈에라도 보지 못할 것이요,
오직 고인(古人)의 사업에서 빗나간 것일 따름이다.
다만 마대사의 이러한 말과 같다면 뜻은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감(感)으로 '평위산(平胃散;위장약) 한 대접 다려오라' 한 것이다 한다면
무슨 근거가 있을 것이며, 이에 이르러서야 어찌 평온(平穩)을 얻겠는가?
그래서 말하기를, 향상일로(向上一路*)는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하건만,
학인들 애쓰는 꼴이 마치 원숭이가 달그림자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만 이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은 몹시 알기 어렵다.
설두스님도 여기서는 송(頌)하기 어려웠으련만
도리어 그 소견이 투철한지라 평생의 공부를 다 써서 주석(註釋)해 주었으니,
여러분들은 설두스님을 알고자 하는가? 아래의 글을 살펴보라.
*本分事; 自己本分, 本分田地, 本地風光, 本來面目, 眞面目, 本覺, 本初 등과 같은 뜻.
*本分人; 自己本分을 다하는 사람. 眞面目을 갖춘 사람.
*落處; 解答, 歸着, 歸結點, 要旨.
*丹霄; 붉게 노을진 하늘.
*枯木巖前; 枯木禪을 뜻한다. [五燈會元卷第六]에
어느 노파가 한 암주를 20년간이나 여인들을 시켜 공양하였는데,
하루는 여인더러 암주를 안아주면서 물어보게 하였다. 여인이 "이럴 때는 어때요?" 하자,
암주는 "고목(枯木)이 차거운 바위[巖]에 기대니 삼동(三冬)에도 따뜻한 기운이 없소." 하니,
여인이 노파에게 그 일을 전하매, 노파가 "내가 20년을 저따위 속된 놈을 공양했구나." 하고
암주를 내쫓고 암자를 불살라버렸다고 하였다.
*驅耕夫之牛 奪飢人之食; [五燈會元卷第十六 雪竇顯禪師法嗣 越州天衣義懷禪師 章]에
농부의 소를 내몰아 풍년을 이루게 하고, 배고픈 자의 밥을 빼앗아 굶주림을
영원히 없애 줄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굶주린 자가 더한 굶주림을 통해
굶주림의 실체가 없음을 알고, 굶주림이 곧 배부름이요 배부름이 곧 굶주림임을 깨달아
영원히 굶주림이 끊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즉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도리이다.
「上堂。夫為宗師。須是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遇賤即貴。遇貴即賤。
驅耕夫之牛。令他苗稼豐登。奪飢人之食。令他永絕飢渴。
遇賤即貴。握土成金。遇貴即賤。變金成土。老僧亦不驅耕夫之牛。亦不奪飢人之食。
何謂。耕夫之牛。我復何用。飢人之食。我復何餐。我也不握土成金。也不變金作土。
何也。金是金。土是土。玉是玉。石是石。僧是僧。俗是俗。古今天地。古今日月。
古今山河。古今人倫。雖然如此。打破大散關。幾箇迷逢達磨。」
*且喜沒交涉; 禪林用語。且喜는 기뻐할 만 하다, 沒交涉은 말과 뜻하는 바에
상관이 없다는 뜻이니, 그 사람의 말을 부정하는 말이다.
그 사람의 말에 한 번 따라 기뻐해주고서 곧 부정하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驢年; 12支 속에 당나귀[驢] 해는 없으니, '기약할 수 없는 날'의 뜻이다.
*巴鼻; 巴는 把와 같은 뜻이니, 원래는 '소 코에 줄을 꿰어 매서 끈다'는 말이지만
후에 붙잡을 수 있는 곳, 즉 근거(根據), 자신(自信)의 뜻으로 바뀌었다.
*有底; 어떤 감(感)으로
*向上一路; '向上' 참조.
日面佛月面佛
(開口見膽。如兩面鏡相照於中無影像)
五帝三皇是何物
(太高生。莫謾他好。可貴可賤)
二十年來曾苦辛
(自是爾落草。不干山僧事。啞子喫苦瓜)
為君幾下蒼龍窟
(何消恁麼。莫錯用心好。也莫道無奇特)
屈
(愁殺人。愁人莫向愁人說)
堪述
(向阿誰說。說與愁人愁殺人)
明眼衲僧莫輕忽
(更須子細。咄。倒退三千)。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라니
(입을 벌려 마음을 보임이 마치 양쪽 거울이 서로를 비추매 아무런 영상<影像>이 없는 것과 같다.)
오제삼황(五帝三皇*)이 무슨 물건인고?
(너무 높이 갔으나 그를 만만히 여겨서도 안된다. 귀할 수도 있고 천할 수도 있다.)
20년을 일찍이 고신(苦辛*)하며
(스스로 낙초(落草)라지만 내가 간여할 일이 아니라 벙어리 여주 먹기<啞子喫苦瓜*>이다.)
그대를 위해 얼마나 창룡굴(蒼龍窟)에 내려갔던가?
(왜 그러는가? 마음을 잘못 쓰지 말라. 기특함<奇特>이 없다할 수 없다.)
굴!(아아! 굴욕스럽다)
(걱정이 사람을 죽이는 법이니, 걱정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참고 말하겠노니,
(누구에게 말한다는 것인가? 걱정하는 사람에게 말해주면 걱정이 사람을 죽인다.)
눈 밝은 납승(衲僧)이라면 가벼이 여기지 말라.
(더 자세히 해야 한다. 아! 도퇴삼천<倒退三千*>이로다.)
*五帝三皇; 중국 전설상의 三皇五帝. '무슨 물건인가?'는 '바로 이것이다',
즉 '삼황오제가 따로 없고 바로 그대가 삼황오제로다.'라는 뜻이다.
*太高生; 너무 높구먼!
*莫謾他好; 그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
*苦辛; 勞苦辛苦.
*落草; 禪林用語. 자기의 身分과 地位를 낮춰 하찮은 떨어진 풀에 비유하는 말이다.
禪林에서는 教化의 한 方法으로 어리석음에 빠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자기 신분을 그보다 낮춰 化導하는 것을 落草 또는 向下門이라 한다.
*啞子喫苦瓜; 원래 '벙어리는 쓴 여주를 먹고도 쓰다 말하지 못한다'는 뜻이지만
禪林에서는 以心傳心이나 言詮不及, 意路不到, 결코 남의 혀끝과 무관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啞子得夢, 啞子喫黃蓮, 冷暖自知와 같은 말이다.
*蒼龍窟; 푸른 용의 구슬[蒼龍藏玉]이 서려있는 곳.
蒼龍藏玉를 얻으면 喪身失命을 돌보지 않는 대장부의 담력이 생긴다 하였으니,
'그대와 같아지기 위해 창룡보옥을 얻으려 얼마나 애를 써왔던가?'라는 뜻이다.
*屈; 屈服의 意思를 表하는 탄식.
*阿誰; '누구[誰]'의 뜻으로서 阿는 친밀한 사이에 덧붙이는 發語詞이다.
*倒退三千; 禪林用語. 退倒三千. 전쟁에 패배하여 삼천리를 물러난다는 의미로서
宗師家의 기봉(機鋒)이 예리하여 감당키 어려우매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 삼천리를
물러서게 한다는 뜻이다.
神宗在位時。自謂此頌諷國。所以不肯入藏。
雪竇先拈云。日面佛月面佛。一拈了。卻云。五帝三皇是何物。
且道。他意作麼生。適來已說了也。直下注他。
所以道。垂鉤四海。只釣獰龍。只此一句已了。
신종(神宗*)이 재위(在位)시에 이 송(頌)이 나라를 풍자(諷刺)한 것이라 하여
그 때문에 대장경에 삽입[入藏]하지 못하게 하였다.
설두스님은 먼저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라 염(拈)하고서
다시 '오제삼황(五帝三皇)이 무슨 물건인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그의 뜻이 무엇인가?
방금 말하고서 곧바로 거기에 주석을 달아준 것이기에
그래서 이르되, '사해(四海)에 낚시를 드리워 다만 사나운 용[獰龍*]을 낚는다*' 하였으니,
다만 이 한 구절로 이미 끝을 낸 것이다.
*神宗(1048~1085); 北宋의 第6代 皇帝(재위 1067~1085).
「宋板大藏經」중 「崇寧萬壽藏」은 이 神宗 元豐3年(1080)에 새기기 시작하여
徽宗 崇寧2年(1103)에 完成하였으니, 삽입하지 말라 하였다 함은 이 대장경을 말한다.
*垂鉤四海 只釣獰龍; 南嶽下九世 首山念禪師法嗣 并州承天院三交智嵩禪師의 말이다.
[五燈會元卷第十一] 智嵩禪師章에
文殊仗劒。五臺橫行。唐明一路。把斷妖訛。
(문수의 장검은 오대산을 누비며 唐과 明의 한 길에서 그릇된 견해를 장악하였으니,)
三世諸佛。未出教乘。網底游魚。
(삼세제불께서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거든 떠도는 물고기에 그물을 던지고,)
龍門難渡。垂鉤四海。祇釣獰龍。
(용문을 넘기가 어렵거든 사해에 낚시를 던져 사나운 용을 낚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공부가 어렵거든 機鋒이 銳利한 선지식을 찾으라'는 말씀이다.
*獰龍은 '機鋒이 銳利한 禪僧'에의 비유이니, 오제삼황과 같은 의미의 쓰임이다.
後面雪竇自頌他平生所以用心參尋。二十年來曾苦辛。
為君幾下蒼龍窟。似箇什麼。一似人入蒼龍窟裏取珠相似。
後來打破漆桶。將謂多少奇特。元來只消得箇五帝三皇是何物。
且道雪竇語。落在什麼處。須是自家退步看。方始見得他落處。
후면(後面)에서는 설두스님은 그가 평생 마음 써서 참심(參尋)한 바를
스스로 송(頌)하였는데, '20년을 일찍이 고신(苦辛)하며
그대를 위해 얼마나 창룡굴(蒼龍窟)에 내려갔던가?'는 무엇과 같은가?
사람이 창룡굴 속에 들어가 구슬[珠]을 취하는 것과 같다.
후에 와서 칠통(漆桶*)을 타파(打破)하여 그로써 다소나마 기특(奇特)하다 하겠으나,
원래는 다만 이 '오제삼황이 무슨 물건인가?'가 필요했었으니,
말해보라. 설두스님의 말의 낙처는 어디에 있는가?
모름지기 자신이 뒤로 물러서서 살펴보아야 비로소 그의 낙처를 보게 될 것이다.
*漆桶; 먹물 담는 통이니, '無明에 가려 깜깜한 형세'를 뜻한다.
* '오제삼황이 무슨 물건인가?'가 필요했었다는 것은
마대사와 같이 기봉이 예리한 선지식 찾는 일이 중요했었다는 말이다.
豈不見。興陽剖侍者。答遠錄公問。娑竭出海乾坤震。覿面相呈事若何。
剖云。金翅鳥王當宇宙。箇中誰是出頭人。遠云。忽遇出頭。又作麼生。
剖云。似鶻捉鳩。君不信。髑髏前驗始知真。遠云。恁麼則屈節當胸退身三步。
剖云。須彌座下烏龜子。莫待重遭點額回。
어찌 듣지 못했는가? 원록공(遠錄公*)이 흥양(興陽) 부시자(剖侍者*)에게 물었다.
"사갈(娑竭*)이 바다를 벗어날 때는 천지가 진동하는데,
대면하신다면 서로 드러내는 일이 어떠합니까?"
"금시조왕(金翅鳥王*)이 우주를 주관하는데,
그 가운데서 머리를 내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혹시 머리를 내밀면 또 어찌 합니까?"
"매가 비둘기 낚아채듯 하겠지만 그대가 믿지 않을 것이고,
죽기[髑髏*] 전에 체험해보셔야 비로소 진실을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슴에 닿도록 머리를 숙이고 세 걸음 물러서야 하겠습니다."
"무릇 참선하는 사람은 거듭 실패하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五燈會元卷第十四] 興陽清剖禪師章에 收錄된 談話로서 의역하자면 이렇다.
"출중한 기재가 나타나면 세상이 놀라워 하는데,
스님께서 그 분을 대면하게 된다면 어찌 하시렵니까?"
"부처님이 계시는데 감히 누가 그렇게 나설 수 있겠습니까?"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찌 하시렵니까?"
"나 또한 예리한 기봉으로 맞서주겠지만, 당신은 믿기지 않을 터이니,
직접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시다면 저보다 세 걸음은 앞서 계시니, 고개를 숙여야 하겠습니다."
"공부가 실패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遠錄公; (991~1067), 南嶽下十世 葉縣省禪師法嗣 舒州浮山法遠圓鑒禪師.
宋代臨濟宗僧 曹洞宗 第七代祖師.
*興陽剖侍者; 青原下十世 大陽玄禪師法嗣 郢州興陽清剖禪師.
*娑竭; 娑伽羅(Sāgara), 大海 婆竭羅國에 사는 龍. 善法을 守護하는 20位 天神 중의 하나.
이 龍들은 千手觀音의 眷屬으로서 觀音 二十八部眾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마대사와 같은 '출중한 奇才'에 비유한 표현이다.
*金翅鳥王; 금시조 중의 왕이니 부처님을 뜻한다.
40卷本 「華嚴經」卷三十六에
「善男子!如金翅鳥王子,初始生時,目則明利,飛則勁捷,
威勢力能超過一切其餘眾鳥,雖久成長,無能及者;
菩薩摩訶薩亦復如是,發菩提心,為諸如來金翅王子,
智慧清淨,大悲勇猛,具自在力神通威勢,
一切二乘雖百千劫久修道行所不能及。」이라 하셨으니,
金翅鳥는 菩薩에의 비유요, 金翅鳥王은 부처님에의 비유이다.
*覿面; 當面, 迎面.
*髑髏; 骸骨, 즉 죽음.
*須彌座下烏龜子; '수미단(須彌壇; 法座) 밑에 새겨진 까마귀와 거북이'라는 뜻이니,
'法席 아래서 참선합네 하고 생각없이 앉아 있는 사람'에 비유한 말이다.
*點額; ①'제왕이 될 꿈조짐'
②'물고기가 龍門을 넘으면 용이 되지만 아니면 점액(點額)으로 돌아온다' 하여,
후에는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하는 것'에 비유하여 쓰였다.
所以三皇五帝亦是何物。人多不見雪竇意。只管道諷國。
若恁麼會。只是情見。此乃禪月題公子行云。
錦衣鮮華手擎鶻。閑行氣貌多輕忽。
稼穡艱難總不知。五帝三皇是何物。
그래서 '삼황오제는 무엇인가?' 한 것인데,
사람들은 설두스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나라를 풍자하여 말한 것'이라고들 하니,
그렇게 안다면 감정에 치우친 견해[情見]일 뿐이요,
이는 결국 선월(禪月*)이 쓴 「공자행(公子行)」의
'비단옷 화려하게 차려 입고
한가로이 걷는 풍모가 몹시 경솔해 보이는구나.
농사짓는 이들의 어려움은 도무지 모르니,
오제삼황은 무슨 물건인고?'의 오제삼황과 같은 의미로 안 것이다.
*禪月; 唐末의 詩僧이자 畫家인 貫休스님(832-912)의 號. 俗姓은 姜, 字는 德隱.
婺州蘭溪(今浙江蘭溪縣)사람이다. 七歲에 出家, 後에 四方을 雲遊하며
善知識을 찾아 참구하였다. 公元894年(乾寧初年) 吳越王 전류(錢鏐)를 알현하고자 하여
獻上한 詩 중에 "滿堂花醉三千客, 一劍霜寒十四州(滿堂의 꽃이 3천 客을 취하게 하고,
一劍의 서슬이 14州를 서늘하게 하네)"라는 구절을 전류왕이 황제가 되려는 야심으로
'十四州'를 '四十州'로 고쳐야 接見을 허락하겠다 하니,
그가 回答하기를, "州도 늘리기 어렵고, 詩도 바꾸기 어렵다. 나는 외로운 구름이요
학이거늘 어찌 하늘을 나를 수 없다는 것이냐!" 하고서 소매를 떨치며 가버렸다 한다.
天復中(901-904)에 蜀으로 가서 蜀王 王建을 알현할 때 獻詩에 말하기를,
"一瓶一缽垂垂老,萬水萬山得得來(병 하나 발우 하나 맨 칠십노인<垂老>이
만水 만山에 왔네.)" 하니, 一一, 萬萬, 垂垂, 得得을 교묘히 중복 사용한 것을 두고
사람들이 그를 <得得和尚>이라 불렀으며, 王建은 禮遇하고 <禪月大師>라 賜號했다.
《禪月集》과 《全唐詩》를 남겼다.
雪竇道。屈堪述。明眼衲僧莫輕忽。多少人向蒼龍窟裏。作活計。
直饒是頂門具眼。肘後有符。明眼衲僧。照破四天下。
到這裏。也莫輕忽。須是子細始得。
설두스님은 말했다. '굴욕스럽지만 참고 말하겠다[屈堪述]' 하였는데,
눈 밝은 납승[明眼衲僧]이라면 소홀히 여기지 말라.
많고 적은 사람들이 창룡굴 속을 향해 살 궁리[活計]를 하고 있는 상황에
설사 정문구안(頂門具眼*)하고 부후유부(肘後有符*)한 명안납승(明眼衲僧)으로서
사천하(四天下)를 조파(照破*)한다 할지라도
이에 이르러서는 소홀히 여기지 말고, 모쪼록 자세(子細*)하여야 한다.
*頂門具眼; '정수리에 또 하나의 눈을 구비하고 있다'는 뜻.
제3의 눈 頂門眼은 摩醯首羅天(Maheśvara)의 세 눈에서 비롯된 용어로서
마헤수라천은 이 눈으로 智慧의 광명을 비추어 일체의 事理를 환히 본다고 한다.
*肘後有符; 肘有符. 史記에 기록된 趙簡子의 故事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조간자가 자식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팔꿈치 뒤(옆구리)에 두고 있던 부적을
常山에 숨겨두고 자식들을 불러모아 놓고 '찾아오는 자에게 상을 주겠노라' 하였더니,
아무도 찾지 못하고 무휼(毋卹)이 겨우 찾아왔는지라, 그를 태자로 삼았다 한다.
禪林에서는 佛祖의 心印, 즉 중생과 부처가 不二요, 真과 妄이 一如한 真如라는 의미,
혹은 사람사람마다 본래 지닌 佛性, 납승(衲僧)이 본래 구비한 佛의 心印의 뜻으로 쓰인다.
*照破; 지혜의 광명으로 비추어 사천하의 無明을 깨뜨린다.
*子細하라; 시셋말로 '잘난체 껍죽대지 말라'와 꼭 들어맞는 말이다.
《少年行》;原題, 《公子行》;世稱
錦衣鮮華手擎鶻, 閑行氣貌多輕忽。
稼穡艱難總不知, 五帝三皇是何物。
自拳五色球, 迸入他人宅。
却捉蒼頭奴, 玉鞭打一百。
面白如削玉, 猖狂曲江曲。
馬上黄金鞍, 适來新賭得。
《陳情献蜀皇帝》
河北河南處處災, 唯闻全蜀少尘埃。
一瓶一钵垂垂老, 万水万山得得来。
秦苑幽栖多胜景, 巴歈陈贡愧非才。
自惭林薮龙钟者, 亦得亲登郭隗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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