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說長者女菴提遮師子吼了義經

불설 장자녀 암제차(菴提遮) 사자후 요의경

碧雲 2020. 12. 9. 08:27
佛說長者女菴提遮師子吼了義經 불설 장자녀 암제차(菴提遮) 사자후 요의경
失譯人名今附梁錄 _역자(譯者)는 알 수 없고, 징검다리 기록을 맞대어 붙였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無量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
菩薩摩訶薩眾俱。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무량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보살마하살들과 함께 계셨는데,
爾時,去舍衛城西二十餘里,
有一村名曰長提。
有一婆羅門,名婆私膩迦,在其中住,
其人學問廣博,
深信內典敬承佛教。
그때 사위성 서쪽 20여리 떨어져
장제(長堤)라는 한 시골이 있었다.
바사이가(婆私膩迦)라는 바라문이 거기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학문이 널리 해박하고,
내전(內典*)을 깊이 믿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여 받들었다.
*內典; 부처님의 교전(教典)을 내전(內典), 세간의 교전을 외전(外典)이라 한다.
時婆羅門欲設大會,
至祇洹所請佛及僧,
佛則受其請,婆羅門還家。
그때 바라문은 대회(大會*)를 베풀고자
기원(祇洹)에 이르러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한 바,
부처님께서 곧 그 청을 수락하시자, 바라문은 집으로 돌아갔다.
*大會; 보시(布施)와 공양(供養)을 위주로 하는 제전(祭典).
又尅其時,佛與大眾往詣彼村,
至婆羅門舍。
爾時,長者見佛,歡喜踊躍,
不能自勝,
即率諸眷屬來至佛所,
各各禮佛,恭敬而住。
그 때를 기다려 부처님과 대중들이 그 마을로 가서
바라문의 집에 이르니,
이에 장자가 부처님을 보고 기쁨이 용솟음치매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여
곧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서
저마다 부처님께 절하고 공경히 서 있었다.
其婆羅門有一長女,名菴提遮,
先適與人,暫來還家侍省父母。
其女容貌端正,其度高遠,
用心柔下,其懷豁然,
能和夫妻,侍養親族,
事夫如禁,
其儀無比,出於群類。
그 바라문에게는 암제차(菴提遮)라는 다 큰 딸이 있었는데,
이미 시집갔으나 잠시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보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용모가 단정하고, 도량이 크고 넓으며,
마음 씀씀이가 부드럽고 겸손하며, 속이 툭 트여서
부부간에 능히 화목하고, 친족들을 잘 모셨으며,
지아비 섬기기를 금계(禁戒) 지키듯 하니,
그 거동이 비할 데 없어 보통의 무리를 넘어섰다.
父母眷屬皆出見佛,
唯有此女獨在室內。
其女自以生來,
父母莫測其所由,故名之菴提遮。
爾時如來,即知長者有一女,
在室內未出,知其不出所由。
若其出者,利益無量大眾,及諸天人。
부모와 권속들이 다 나와 부처님을 뵈었으나,
오로지 이 여인만 홀로 방 안에 있었다.
그녀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태어나게 된 연유를 몰랐기에
그래서 이름을 암제차(菴提遮)라 하였다.
이때 여래께서 장자에게 한 딸이 있는데,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과 나오지 않은 연유, 그리고
그녀가 나오면 무량한 대중과 천인(天人)들을 이익할 것임을 아시고,
佛即告長者言:
「汝之眷屬出來盡耶?」
其婆羅門束手長跪佛前,
以此女不出之狀,將之為恥,
默然未答。
부처님께서는 곧 장자에게 고하여 말씀하셨다.
「그대의 권속이 다 나왔는가?」
그 바라문이 부처님 전에 손을 모아 무릅을 꿇고서
이 여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을 부끄럽게 여겨
묵연히 대답을 못하고 있는지라,
佛則知其意,仍告之言:
「中時向至可設供耶!」
부처님께서 그 뜻을 아시고 다시
「점심 때가 되어가니 공양을 베풀어도 좋소.」 하시자,
時婆羅門,即承佛教起設供養,
大眾及其長者,眷屬中食已訖,
唯有此女,未及得食。
이에 바라문이 곧 부처님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을 베푸니,
대중과 그 장자와 권속들이 점심 먹기를 마쳤으나,
오직 이 여인만이 음식을 먹지 못했다.
時如來鉢中故留殘食,
遣一化女將此餘食,
與彼室內女菴提遮。
이때 여래께서 발우 안에 음식을 남기셨기에
한 화녀(化女)를 시켜 그 남은 음식을 가져다
저 방 안의 여인 암제차에게 주게 하셨다.
時化女人以偈告曰:
「此是如來餘, 無上勝尊賜,

 我當承佛教, 願仁清淨受。」
이에 화녀가 게송으로 말했다.
「이 음식은 여래께서 남기신 것으로
위없이 뛰어나신 어른께서 주시기에
제가 부처님의 교지를 받들게 되었으니,
원컨대 그대는 청정히 받으시오.」
其女菴提遮,即以偈歎曰:
「嗚呼!大慈悲, 知我在室已,

 今賜一味食, 尋仰覩聖旨。」
그녀 암제차가 곧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오호라! 대자비(大慈悲)께서
제가 방에 있는 것을 아시고
 일미(一味)의 음식을 하사하시니,
우러러 성지(聖旨)를 깊이 새기겠나이다.」
復以偈答彼化女曰:
「我常念所思, 大聖之所行,

 未曾與汝異, 何事不清淨?」
다시 게송으로 답하여 저 화녀가 말했다.
「내가 늘 마음으로 생각하는데,
 대성(大聖)께서 행하신 바가
 그대와 더불어 다른 적이 없으니,
무슨 일인들 청정치 않으시겠소?」
其化女聞菴提遮說偈已,即沒不現。
其女菴提遮,以心念誦偈言:
「我夫今何在? 願出見勝尊,

 願知我心淨, 速來得同聞。」
그 화녀는 암제차의 게송을 듣자, 곧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녀 암제차가 마음 속으로 게송을 염송(念誦)하였다.
「나의 지아비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
원컨대 나오시어 뛰어나신 어른을 뵙고,
또 내 마음이 깨끗함을 아시어
속히 오시어 함께 법문을 듣기 바라오이다.」
爾時,菴提遮淨心力故,
其夫隨念即至其所。
是女菴提遮見其夫已,
心生歡喜,以偈歎曰:
「嗚呼!大勝尊, 今隨濟我願,

 不辭破小戒, 恐當不同聞。」
이때 암제차의 청정한 심력(心力) 때문에
그 지아비가 마음을 따라 곧 그곳으로 오니,
그녀 암제차가 지아비를 보고서
마음에 환희가 생겨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오호라! 대승존(大勝尊)께서
 지금 나의 원을 쫓아 들어주시니,
 작은 계(戒)나마 파하기를 불사(不辭)하겠으나
 같이 듣지 못하게 될까 두렵나이다.」
其夫見菴提遮說偈言已,
即還以偈責曰:
「嗚呼!汝大癡, 不知善自宜,

 勞聖賜餘食, 守戒竟何為?」
그 지아비가 암제차가 게송을 설하는 것을 보고서
곧 되받아 게송으로 꾸짖었다.
「오호! 그대는 크게 어리석어서
 스스로 합당함을 잘 모르는구려.
 수고스럽게도 성인께서 남은 음식을 하사하셨거늘
 계를 지켜서 도리어 어찌 되겠소?」
時女菴提遮即隨其夫往詣佛所,
各自禮佛及諸大眾,恭敬而立。
그러자 여인 암차제가 그의 지아비를 따라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각자 부처님과 대중들에게 절을 올리고 공경히 서 있다가
時女菴提遮,以偈歎曰:
「我念大慈悲, 救護十方尊,

 欲設祕密藏, 賜我淨餘食。

 大聖甚難會, 世心有所疑,

 誰可問法者, 發眾菩提基?」
여인 암제차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내가 생각컨대, 대자비로
시방을 구호하시는 어른께서
 비밀한 법장(法藏)을 베푸시고자
 내게 청정한 음식을 남겨 하사하신 것이로다.
 대성(大聖)은 심히 만나기 어려우니,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나는 바가 있거든
 누가 가히 법을 물어서
 대중들에게 보리의 기틀을 세워주겠는가?」
爾時,舍利弗即白佛言:
「世尊!此是何女人?
忽爾來至此,復說如是法偈,
言得餘食。」
그러자 사리불(舍利弗)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분은 어떤 여인이기에
홀연히 여기에 와서 이렇듯 법게(法偈)를 설하고
말로 남은 음식을 얻나이까?」
佛告舍利弗言:
「此是長者女。」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분은 장자의 딸이니라.」
復問曰:「從何而來?何因至此?」 「어디서 온 것이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나이까?」
佛告舍利弗:
「此女人不從遠來,只在此室。
雖有父母眷屬,其夫不在,
以自誡敬順夫因緣故,
不從父母輕爾出遊現於大眾。」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답하셨다.
「이 여인은 멀리서 온 것이 아니라 방에 있었느니라.
부모와 권속은 있으나 그녀의 지아비가 있지 않으니,
스스로 경계하여 지아비를 공경하여 순종하려는 인연으로
不從부모를 따라 경솔히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니라.」
時舍利弗白佛言:
「是女以何善因故,生此長者家,
其容若此?
復以何因緣故,得如是士夫禁約,
若此不能自由見佛及僧?」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여인은 무슨 선한 인(因)이 있어서 이 장자의 집에 태어났으며,
그 용모가 이와 같나이까?
또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은 지아비와의 금약(禁約)을 얻어
이렇듯 부처님과 스님들을 자유롭게 뵙지 못하는 것이옵니까?」
佛即告舍利弗:
「汝自問之。」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고하셨다.
「네 스스로 물어보거라.」
時舍利弗問其女曰:
「汝以何因緣,生此長者家?
復以何因緣,得如是人為夫?
禁戒若此不能自由見佛及僧?」
이에 사리불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이 장자의 집에 태어났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사람을 얻어 지아비를 삼았기에
금계(禁戒)가 이러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을 자유로히 뵙지 못합니까?」
其女菴提遮,以偈答曰:
「我以不惡生, 生此長者家,

 又不執女相, 得是清淨夫。

 我在內室中, 以為自在竟,

 是分未曾越, 聖知賜我餘。
그녀 암제차가 게송으로 답했다.
「나는 악(惡)한 마음을 내지 않음으로써
이 장자의 집에 태어났고,
또 여자라는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서
이 청정한 지아비를 얻었답니다.
나는 방 안에 있는 것으로써
자재한 경지를 삼았거니와
이 분수를 넘은 적이 없기에
대성께서 아시고 남은 음식을 주셨답니다.
嗚呼今大德, 不知真實由,

 絲毫不負越, 故名大自在。

 我雖內室中, 尊如目前現,

 仁稱阿羅漢, 常隨不能見。
오호라! 지금 대덕께서는
진실한 연유를 모르시는구려.
추호도 저버리고 넘어가지 말아야
대자재(大自在)라 한답니다.
내 비록 방 안에 있었지만
어른께서는 눈 앞에 계시듯 하였거늘
그대는 아라한이라 칭하면서도
늘 따라 뵙지 못하는가 보네요.
 大聖非是色, 亦不離色身,

 聲聞見波旬, 謂是大力人。

 嗚呼今大德, 隨聖少方便,

 不知本元由, 於我生倒見。」
대성께서는 색신(色身)도 아니시고
또한 색신을 여의지도 않으셨건만
성문들은 파순(波旬)을 보고
오하려 큰 힘을 지닌 사람이라 한답니다.
오호! 지금 대덕께서는
성인의 적은 방편만을 따라
본원(本元)의 연유는 모른체
저에 대해 전도된 견해를 내고 계십니다.
爾時,舍利弗默然而止,私自念言:
「此是何女人?
其辯若此,我所不及。」
이에 사리불은 묵연히 말을 못하고, 혼자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어떤 여인인가?
그 변재(辯才)가 이러하니, 내가 미치지 못하겠구나.」 하였다.
佛即知其意,而告之曰:
「勿退於問答生於異心,
是女人已經值無量諸佛,
所說是法藥,勿疑之也。」
부처님께서 곧 그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문답(問答)을 떠나 다른 마음을 내지 말거라.
이 여인은 이왕에 무량제불(無量諸佛)이 설하신
법약(法藥)을 가까이 해 왔으니, 의심하지 말거라.」
爾時,文殊師利問菴提遮曰:
「汝今知生死義耶?」
그때 문수사리가 암제차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생사(生死)의 의의(意義)를 압니까?」
答曰:「以佛力故知。」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압니다.」
又問曰:「若知者生以何為義?」 「만약 안다면 생(生)은 어떤 의의입니까?」
答曰:「生以不生生為義。」 「생(生)은 불생(不生)이 생(生)인 것으로 의의를 삼습니다.」
又問曰:「云何不生生為義耶?」 「어째서 불생이 생인 것으로 의의를 삼습니까?」
答曰:「若能明知地水火風四緣,
畢竟未曾自得有所和合,
而能隨其所宜有所說者,以為生義。」
「만일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인연이
필경에 스스로 화합된 적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서
그에 합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생의 의의가 되리이리다.」
又問曰:「若知地水火風,
畢竟不自得有所和合為生義者,
即應無有生相,將何為義?」
「만일 지수화풍이
필경 스스로 화합되어지지 않음을 안다는 것으로 생의 의의를 삼은 즉
생겨날 모양[生相]이 없을 터인데, 무엇을 가져다 의의를 삼겠습니까?」
答曰:「雖在生處而無生者,是為正生,
故說有義。」
「비록 생에 처해 있더라도 생이 없는 것이 바른 생[正生]일 것이므로
의의가 있다 하리이다.」
*생(生)은 지수화풍의 사대가 연연을 쫓아 화합한 것일 뿐, 인연이 다하면[死] 다시 본면목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생(生)과 사(死)가 본래 있지 않아서 불이(不二)라, 생(生)이 곧 사(死)요, 사가 곧 생이라는 말이다.
文殊又問曰:「死以何為義耶?」 문수(文殊)가 또 물었다. 「사(死)는 어떤 의의치입니까?」
答曰:「死以不死死為義。」 「사(死)는 불사(不死)가 사(死)인 것으로 의의를 삼습니다.」
又問曰:「云何以不死死為死義耶?」 「어째서 불사(不死)가 사(死)인 것으로 의의를 삼습니까?」
答曰:「若能明知地水火風
畢竟不自得有所散,
而能隨其所宜,有所說者,是為死義。」
「만일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인연이
필경에 스스로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서
그에 합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죽음의 의의가 되리이리다.」
又問曰:「若知地水火風,
畢竟不自得散者,即無死相,
將何為義?」
「만약 지수화풍이
필경에 스스로 흩어지지 않음을 안 즉 죽은 모양[死相]이 없을 터인데,
무엇을 가져다 의의를 삼겠습니까?」
答曰:「雖在死處其心不亡者,
是為正死,故說有義。」
「비록 죽음에 처해 있더라도 그 마음이 죽지 아니하면[不亡]
이것이 바른 죽음[正死]이 될 것이라 그래서 의의가 있다 하리이다.」
文殊師利又問曰:
「常以何為義?」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항상함[常]은 어떤 의의입니까?」
答曰:「若能明知諸法
畢竟生滅變易無定如幻相,
而能隨其所宜,有所說者,是為常義。」
「만약 제법(諸法)이 필경에 생멸(生滅)하고 변역(變易)하여
마치 허깨비 모습처럼 일정[定]치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서
그에 합당하게 말한다면 이것이 상(常)의 이치가 되리이리다.」
又問:「若知諸法畢竟生滅無定如幻相者,
即是無常義,云何將為常義耶?」
「만약 모든 법이 필경 생멸하여 허깨비처럼 일정치 않음을 안다면
곧 이것이 무상(無常)한 이치인데, 어떻게 항상함의 의의가 되겠습니까?」
答曰:「諸法生而不自得生,
滅而不自得滅,
乃至變易亦復如是,
以不自得故,說為常義。」
「제법(諸法)이 생(生)하나 스스로 생해지지 않고,
멸(滅)하나 스스로 멸해지지 아니하며,
나아가 변역(變易)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상(常)의 의의가 된다 하리이다.」
又問曰:「無常以何為義?」 다시 물었다. 「무상(無常)은 어떤 의의입니까?」
答曰:「若知諸法畢竟不生不滅,
隨如是相,而能隨其所宜有所說者,
是為無常義。」
「만일 모든 법이 필경에 불생불멸(不生不滅)임을 알고
그러한 모양을 쫓아 그 합당하게 말한다면,
이것이 무상의 의의가 되리이다.」
又問曰:「若知諸法畢竟不生不滅者,
即是常義,云何說為無常義耶?」
「모든 법이 필경에 불생불멸임을 안다는 것은
곧 항상된 이치인데, 어째서 무상의 의의라 하겠습니까?」
答曰:「但以諸法自在變易無定相,
不自得隨,如是知者,
故說有無常義耶!」
「단지 모든 법이 자재히 변역하여 정해진 모양이 없다고만
알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따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무상의 의의라 말했소이다!」
又問曰:「空以何為義?」
答曰:「若能知諸法相,
未曾自空,不壞今有,
而能不空空、不有有者,
故說有空義。」
또 물었다. 「공(空)은 무엇으로 의의를 삼습니까?」
「만약 모든 법의 모양이
스스로 공한 적이 없고, 무너진 적도 없이 지금 있으나,
공하지 않되 공하고, 있지 않되 있음을 알 수 있기에
그래서 어떤 공의 의의를 말하는 것이리이다.」
又問曰:「若不空空、不有有者,
即無有事,將何為空義耶?」
「만약 공하지 않되 공하고, 있지 않되 있다면
곧 아무 일이 없을 터인데, 무엇으로 공의 의의를 삼겠습니까?」
其女菴提遮,則以偈答曰:
「嗚呼!真大德, 不知真空義,
 色無有自相, 豈非如空也?
 空若自有空, 則不能容色,
 空不自空故, 眾色從是生。」
그녀 암제차(菴提遮)가 곧 게송으로 답했다.
「오호라! 참 대덕(大德)께서 참된 공의 의미를 모르시는군요.
 색(色)은 스스로의 모양이 없거늘, 어찌 공과 같지 않으리오?
 공이 만일 스스로 공함이 있다면 곧 색을 용납치 못하려니와
 공이 스스로 공하지 않기에 온갖 색이 거기서 생기는 것이라오.」
爾時,文殊師利又問曰:
「頗有明知生而不生相,
為生所留者不?」
이때 문수사리가 다시 물었다.
「과연 생(生)하되 불생(不生)하는 모양을 분명히 알고서야
생(生)에 머무는 자가 있겠습니까?」
答曰:「有,雖自明見,其力未充,
而為生所留者是也。」
「있지요. 스스로 그 힘이 충분치 못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생에 머무는 자들 말입니다.」
又問:「頗有無知不識生性,
而畢竟不為生所留者不?」
「무지하여 생(生)의 성향을 모르고서야
필경 생에 머물지 않으려는 자는 있겠습니까?」
答曰:「無!所以者何?若不見生性,
雖因調伏少得安處,
其不安之相常為對治。
若能見生性者,
雖在不安處,而吉相常為現前。
若不如是知者,
雖有種種勝辯談說甚深典籍,
而即是生滅心。
說彼實相密要之言,
如盲辯色,因他語故,
說得青黃赤白黑,
而不能自見色之正相;
今不能見諸法者,亦復如是。
但今為生,所生為死,
所死者於其人,即無生死之義耶!
若為常無常所繫者,亦復如是。
當知,大德!
空者亦不自得空,
故說有空義耶!」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의 성품을 모르면
비록 조복(調伏)함으로 인해 적으나마 안은처를 얻겠지만
그 불안한 상황에 늘 마주하게 될 것이요,
만약 생의 성품을 안다면
불안에 처해 있더라도 길(吉)한 상(相)이 늘 눈앞에 있을 것이며,
만약 그렇게 알지 못한다면
갖가지 뛰어난 변재가 있어 심오한 경전을 담설(談說)하더라도
곧 이것이 생멸심(生滅心)인 것이니,
저 실상(實相)에 관한 비밀하고 요긴한 말을 설하는 것이
마치 맹인이 남의 말로 인해 색을 분별함과 같기 때문이라,
청황적백흑(青黃赤白黑)을 아는 듯이 말하지만
스스로 색을 보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거니와,
당금에 제법(諸法)을 알 수 없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다만 지금 생(生)해도 생한 것은 죽게 되니,
죽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곧 생사의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상(常)과 무상(無常)에 얽매인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
마땅히 아소서, 대덕이시여!
공(空)이란 것 또한 스스로 공해지지 않기에
그래서 공의 의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사의 성품은 공(空)이며, 공(空)은 스스로 공하지 않고 인연 따라 거기서 생(生)이 일어나고 스러지니,
그 본 바탕을 공이라 한다는 것이다.
爾時,佛告文殊師利:「如是,如是!
如菴提遮所說,真實無異,
日可令冷,月可令熱,
是菴提遮所說,不可移易。」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고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암제차가 말한 바는 진실과 다름이 없어서
해를 차갑게 하고, 달을 뜨겁게 할 수 있을지언정
이 암제차가 말한 것은 바뀔 수 없느니라.」
時舍利弗復問其女曰:
「汝之智慧辯才若此,
佛所稱歎,
我等聲聞之所不及,
云何不能離是女身色相?」
그러자 사리불이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의 지혜와 변재가 이러하니,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바요,
우리 성문들로서는 미치지 못할 바인데,
어째서 그 여자 몸의 색상(色相)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까?」
其女答曰:
「我欲問大德,即隨意答我。
大德!今現是男不?」
그녀가 답했다.
「제가 대덕께 묻고자 하니 곧 뜻대로 저에게 답해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지금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 남자입니까?」
舍利弗言:
「我雖色是男,而心非男也。」
사리불이 말했다.
「내 비록 색신은 남자이나 마음은 남자가 아니오.」
其女言:「大德!
我亦如是,如大德所言,
雖在女相,其心即非女也。」
그녀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저 또한 그렇게 대덕이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비록 여인 모양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여인이 아닙니다.」
舍利弗言:
「汝今現為夫所拘執,
何能如此?」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는 지금 지아비에게 구속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其女答曰:「大德!
能自信己之所言不?」
그녀가 답했다. 「대덕이시여!
스스로 자기의 말한 바를 믿을 수 있습니까?」
舍利弗言:
「我之自言,云何不自信?」
사리불이 말했다.
「내 자신의 말을 어찌 스스로 믿지 않겠습니까?」
其女答曰:「若自信者,大德!
前言說我色是男而心非男者,
即心與色有所二用也。
若大德自信此言者,
於我所不生有夫之惡見。
大德自男,故生我女相,
以我女色故,壞大德心也;
而自男見彼女者,
則不能於法生實信也。」
그녀가 답했다. 「만일 스스로 믿으신다면, 대덕이시여!
앞서 저에게 ‘나의 색은 남자지만 마음은 남자가 아니다’고 하신 것은
곧 마음과 색(色)에 두 가지로 쓰이는 바가 있다는 것이니,
만일 대덕께서 그 말을 스스로 믿으신다면
저에게 지아비가 있다는 나쁜 견해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대덕 스스로 남자이니, 그 때문에 제게 여인이라는 상(相)을 내게 되고,
제가 여색(女色)이라는 것으로써 대덕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니,
스스로 남자가 되어 여인을 본다면
곧 법에 대해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 '나는 남자요, 너는 여자다'는 상(相)에 집착하여 그렇게 물은 것이라 그릇된 소견[惡見]이라 한 것이다.
舍利弗言:
「我於汝所,不敢生於惡見。」
사리불이 말했다.
「나는 그대가 처한 경계에 감히 악견(惡見)을 내지 못하오.」
其女答曰:
「但以對世尊故,不敢是實言也。
若實不生惡見者,云何說我言:
『汝今現為夫所拘執耶?』
是言從何而來?」
그녀가 대답했다.
「단지 세존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진실한 말을 못하는군요.
만약 실로 악견을 내지 않았다면 어째서 저에게
『당신은 지금 지아비에게 구속되었느냐?』고 물었으며,
이 말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舍利弗言:「我以久離習故,
有此之言非實心也。」
사리불이 말했다. 「제가 오래 전에 습(習)을 벗었기에
그리 말했으나 진실한 마음은 아닙니다.」
其女問曰:「大德!
我今問者隨意答我,
大德既言久離男女相者,
大德!色久離?心久離?」

時舍利弗,默然不答。
그녀가 물었다. 「대덕이시여!
제가 이제 물을 것이니, 뜻대로 저에게 답해 주십시오.
대덕께서는 기왕 오래 전에 남녀의 상(相)을 여의셨다 하셨는데,
대덕이시여, 색(色)을 오래 전에 여의신 것입니까,
아니면 마음을 오래 전에 여의신 것입니까?」
이에 사리불은 묵연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爾時,菴提遮以偈頌曰:
「若心得久離,  畢竟不生見,

 誰為作女人,  於色起不淨?

 若論色久離,  法本不自有,

 畢竟不曾污,  將何為作惡?

 嗚呼今大德,  徒學不能知,

 自男生我女,  豈非妄想非。

 悔過於大眾,  於法勿生疑,

 我上所言說,  是佛神力持。」
그때 암제차가 게송으로 말했다.
「만일 마음이 오래 전에 여의어졌다면
필경 악견을 내지 않았어야 하련만
누가 여인이라는 생각을 지어
색(色)에 부정(不淨)한 생각을 일으켰는가?
 만약 오래 전에 여읜 색을 논하자면
 법(法)이 본래 스스로 있지 않으니
 필경 더럽혀진 적 없을 터인데
 무엇을 가져다 악(惡)을 지으리오?
 오호라! 지금 대덕께서는
 헛되이 배워 알 수 없는지라
 스스로 남자라며 나를 여자로 여기니,
 어찌 망상으로 그르친 것이 아니겠소?
 과오를 대중 앞에 뉘우치시고
법에 대해 의심을 내지 마십시오.
제가 위에서 말한 설명은
부처님의 위신력이 호지(護持)하는 것들입니다.」
時菴提遮說是偈已,其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天及人一千餘人,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有五千眾, 於中得無生法忍者、
得法眼者、又得心解脫者,
其無量聲聞眾,
而於佛法自生慙恥者無量。
암제차가 이 게송을 설하자 그곳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천신과 인간 일천여 명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얻었다.
5천의 무리가 그 가운데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거나,
법안(法眼)을 얻었고, 또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얻었으며,
그 무량한 성문(聲聞) 대중들이
불법(佛法)에 대해 스스로 한없이 부끄럽게 여겼다.
爾時,佛告舍利弗:
「是女人非是凡也,已值無量諸佛,
常能說如是師子吼了義經,
利益無量眾生。
我亦自與是女人同事無量諸佛已,
是女人不久當成正覺,是諸眾中,
於是女人所說法要,即能生實信者,
皆已久聞是女人所說法故,
今則能生正信,
是故應當諦受是師子吼了義經勿疑。」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인은 평범한 여인이 아니라 이미 무량제불을 만나
늘 이와 같은 사자후요의경(師子吼了義經)을 설하여
무량한 중생을 이익하였느니라.
나 또한 스스로 이 여인과 더불어 무량제불을 함께 섬길 것이라
이 여인은 오래지 않아 정각을 이룰 것이니, 이 대중들 가운데서
이 여인이 설한 바 법의 요체[法要]에 대해 진실한 믿음을 내는 자는
모두가 이미 이 여인이 설한 법을 오래 들어 왔기에
지금에 바른 믿음[正信]을 낼 수 있는 것이므로,
응당 이 사자후요의경을 진실로 받아들여 의심하지 말라.」
佛告阿難言:
「汝當受持此長者女菴提遮
以師子吼了義問答經章句次第,

付囑於汝,汝當諦受。」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마땅히 이 장자녀 암제차가
요의(了義)를 사자후함으로써 묻고 답한
경의 장구(章句)를 차례대로 수지(受持)할 것을
너에게 부촉(付囑)하노니, 너는 진실하게 간직해야 하리라.」
阿難白佛言:
「唯然,世尊!今悉受已。」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리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지금 다 간직했나이다.」
爾時,大眾聞女菴提遮說法已,
心大歡喜,踊悅無量,
各自如說修行。
이때의 대중들은 여인 암제차의 설법을 듣고서
마음이 크게 환희하고 기쁨이 한없이 용솟음쳤기에
각자가 말씀하신 대로 수행하였다.
佛說長者女菴提遮師子吼了義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