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

화엄경 범행품(梵行品)

碧雲 2020. 12. 17. 14:35
大方廣佛華嚴經卷第十七 대방광불화엄경 제17권
 于闐國三藏實叉難陀奉 制譯  우진국 삼장 실차란타 역
梵行品第十六 범행품(梵行品) 제16
이 범행품은 법혜(法慧)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에 힘입어
출가인이 어떻게 실천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출가인 뿐만이 아니라 무릇 정토(淨土)에 나아가는 불자라면 잘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爾時,正念天子白法慧菩薩言:
「佛子!一切世界諸菩薩眾,
依如來教,染衣出家。
云何而得梵行清淨,
從菩薩位逮於無上菩提之道?」
그때 정념(正念)천자가 법혜(法慧)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일체세계의 모든 보살대중이
여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가사를 입고 출가하였거든
어떻게 범행(梵行)을 청정히 하여야
보살지위에서 무상보리의 도에 이르겠습니까?"
法慧菩薩言:「佛子!
菩薩摩訶薩修梵行時,
應以十法而為所緣,
作意觀察。
所謂:身、身業、
語、語業、意、意業、
佛、法、僧、戒。
법혜보살이 답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범행을 닦을 때에는
열 가지 법으로 소연(所緣)을 삼고
뜻을 세워 관찰해야 하나니,
소위 신(身)과 신업(身業),
어(語)와 어업(語業), 의(意)와 의업(意業),
불(佛), 법(法), 승(僧), 그리고 계(戒)의
열 가지 법입니다.
應如是觀:為身是梵行耶?
乃至戒是梵行耶?
그렇게 관찰하기를, '몸[身]이 범행인가?'에서부터
'계(戒)가 범행인가?'에 이르도록 관찰하되,
若身是梵行者,
當知梵行則為非善、則為非法、
則為渾濁、則為臭惡、
則為不淨、則為可厭、
則為違逆、則為雜染、
則為死屍、則為蟲聚。
만약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선한 것이 아니요, 법도 아닌 것이고,
혼탁하고 악취 풍기는 것이고,
깨끗치 못하고 좋아할 수 없는 것이고,
어긋난 것이요, 여러가지로 물든 것이고,
죽은 시체요, 구더기 더미일 것이며,
若身業是梵行者,
梵行則是行住坐臥、
左右顧視、屈伸俯仰。
만약 신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행주좌와(行住坐臥)나
좌우를 돌아보는 것이나 몸을 구부리고 펴고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고 하는 것일 것이다.
若語是梵行者,
梵行則是音聲風息、
唇舌喉吻、吐納抑縱、
高低清濁。
만약 말(語)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음성이나 호흡,
가슴, 혀, 목구멍, 입술이
내 뱉고 들이키거나 억제하고 그냥 두거나
높고 낮고 맑고 탁하고 하는 것들일 것이요,
若語業是梵行者,
梵行則是起居問訊、
略說、廣說、
諭說、直說、
讚說、毀說、
安立說、隨俗說、
顯了說。
말의 업[語業]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사람이 살아가면서 문안하거나,
간단히 말하고 자세히 말하거나,
비유로 말하고 직설(直說)하거나,
칭찬하고 헐띁거나,
편안하게 말하고 속되게 말하거나
분명히 말하는 것들일 것이며,
若意是梵行者,
梵行則應是覺、是觀、
是分別、是種種分別、
是憶念、是種種憶念、
是思惟、是種種思惟、
是幻術、是眠夢。
만약 뜻[意]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깨달음이나 관찰,
분별이나 갖가지 분별,
기억이나 갖가지 기억,
사유(思惟)나 갖가지 사유,
요술이나, 꿈일 것이다.
若意業是梵行者,
當知梵行則是思想、寒熱、
飢渴、苦樂、憂喜。
뜻의 업[意業]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사상(思想), 추위나 더위,
기갈(飢渴), 고락(苦樂), 근심이나 기쁨일 것이며,
若佛是梵行者,
為色是佛耶?受是佛耶?
想是佛耶?行是佛耶?
識是佛耶?
為相是佛耶?好是佛耶?
神通是佛耶?業行是佛耶?
果報是佛耶?
만약 부처[佛]가 범행이라면
색(色)이 부처인가, 수(受)가 부처인가,
상(想)이 부처인가, 행(行)이 부처인가,
식(識)이 부처인가?
상(相)이 부처인가, 호(好)가 부처인가?
신통이 부처인가, 업행(業行)이 부처인가,
과보가 부처인가? 살필 것이요,
若法是梵行者,
為寂滅是法耶?涅槃是法耶?
不生是法耶?不起是法耶?
不可說是法耶?無分別是法耶?
無所行是法耶?
不合集是法耶?
만약 법(法)이 범행이라면
적멸(寂滅)이 법인가, 열반(涅槃)이 법인가?
불생(不生)이 법인가, 불기(不起)가 법인가?
불가설(不可說)이 법인가, 무분별(無分別)이 법인가?
무소행(無所行)이 법인가,
불합집(不合集)이 법인가? 살필 것이며,
若僧是梵行者,
為預流向是僧耶?
預流果是僧耶?
一來向是僧耶?
一來果是僧耶?
不還向是僧耶?
不還果是僧耶?
阿羅漢向是僧耶?
阿羅漢果是僧耶?
三明是僧耶?
六通是僧耶?
만약 스님[僧]이 범행이라면
예류향(預流向)이 스님인가,
예류과(預流果)가 스님인가,
일래향(一來向)이 스님인가,
일래과(一來果)가 스님인가,
불환향(不還向)이 스님인가,
불환과(不還果)가 스님인가,
아라한향(阿羅漢向)이 스님인가,
아라한과(阿羅漢果)가 스님인가,
삼명(三明)이 스님인가,
육통(六通)이 스님인가? 하고 살피고,
若戒是梵行者,
為壇場是戒耶?
問清淨是戒耶?
教威儀是戒耶?
三說羯磨是戒耶?
和尚是戒耶?
阿闍梨是戒耶?
剃髮是戒耶?
著袈裟衣是戒耶?
乞食是戒耶?
正命是戒耶?
만약 계(戒)가 범행이라면
제단(祭壇)이 계인가,
청정(淸淨)이 계인가,
위의를 가르치는 것[敎威儀]이 계인가,
갈마(羯磨)가 계인가,
화상(和尙)이 계인가,
아사리(阿闍梨)이 계인가,
삭발[鬀髮]이 계인가,
가사옷 입는 것이 계인가,
걸식이 계인가,
정명(正命)이 계인가? 하고 살펴야 한다.
如是觀已,於身無所取,
於修無所著,於法無所住;
過去已滅,未來未至,
現在空寂;
無作業者,無受報者;

此世不移動,彼世不改變。
이렇게 살피고 나서 몸에서도 취하지 말고,
수행에 집착하지도 말며, 법에도 머물지 말지니,
과거는 이미 소멸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공적(空寂)한 것이라
업을 짓는다는 것도 없고,
과보를 받는다는 것도 없으며,
이 세상이 이동하지도 않고,
저 세상이 개변(改變)하지 않거니와,
此中何法名為梵行?
梵行從何處來?誰之所有?
體為是誰?由誰而作?
為是有,為是無?
為是色,為非色?
為是受,為非受?
為是想,為非想?
為是行,為非行?
為是識,為非識?
그 중에 어느 법이 범행인가?
법행은 어디서 오고, 누구의 소유이며,
실체는 무엇이며, 무엇으로 인해 지어지는가?
이것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색(色)인가 색이 아닌가,
수(受)인가 수가 아닌가,
상(想)인가 상이 아닌가,
행(行)인가 행이 아닌가,
식(識)인가 식이아닌가?
如是觀察,
梵行法不可得故,
三世法皆空寂故,
意無取著故,
心無障礙故,
所行無二故,方便自在故,
受無相法故,觀無相法故,
知佛法平等故,
具一切佛法故,
如是名為清淨梵行。 
이렇게 관찰한다면
범행이라는 법은 얻을 수 없고,
삼세의 법이 다 공적할 것이니,
마음으로 취착할 것도 없고,
마음에 장애될 것도 없으며,
행할 바에 둘이 없고, 방편은 자재하여,
모양없는 법을 받고, 모양없는 법을 보며,
불법의 평등함을 보아
일체의 불법을 갖출 것이므로
이것을 청정한 범행이라 하느니라.
「復應修習十種法。
何者為十?
所謂:處非處智、
過現未來業報智、
諸禪解脫三昧智、
諸根勝劣智、
種種解智、
種種界智、
一切至處道智、
天眼無礙智、
宿命無礙智、
永斷習氣智。
또 열 가지 법을 닦아 익혀야 하는데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소위 옳고 그름을 아는 지혜,
삼세의 업보를 아는 지혜,
모든 선정 해탈 삼매를 아는 지혜,
모든 근기의 우열을 아는 지혜,
갖가지로 이해하는 지혜,
갖가지 계(界)에 대한 지혜,
어디로든지 가는 길을 아는 지혜,
천안(天眼)이 거침없는 지혜,
숙명(宿命)에 걸림없는 지혜,
습기를 영원히 끊어내는 지혜이니라.
於如來十力,一一觀察;
一一力中,有無量義,
悉應諮問。
聞已,應起大慈悲心,
觀察眾生而不捨離;
思惟諸法,無有休息;
行無上業,不求果報;
了知境界如幻如夢,
如影如響,亦如變化。

若諸菩薩能與如是觀行相應,

於諸法中不生二解,
一切佛法疾得現前,
初發心時
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知一切法即心自性,
成就慧身,不由他悟。」
여래의 십력(十力)을 낱낱이 살펴보면
하나하나의 힘 안에 무량한 뜻이 있으니
모두 여쭈어야 하려니와,
듣고 나서는 마땅히 큰 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을 살피되 버리지 말 것이며,
모든 법을 깊이 생각하기를 쉴 새 없이 하고,
위 없는 업을 행하되 과보를 바라지 말며,
모든 경계가 허깨비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며,
또 변화와 같음을 요지해야 하나니,
만약 보살들이
이렇게 관(觀)과 행(行)이 상응할 수 있어서
모든 법 안에 두 가지 이해를 내지 않는다면
일체의 불법이 빨리 그 앞에 드러나리니,
초발심했을 때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일체법이 곧 마음의 자성임을 알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여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개오(開悟)하리라."
*이구절은 60권본 화엄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如是觀察如來十力甚深無量。
具足長養大慈悲心。
悉分別眾生而不捨眾生。
亦不捨寂滅。
行無上業不求果報。
觀一切法。如幻如夢如電如響如化。

菩薩摩訶薩。如是觀者。
以少方便。疾得一切諸佛功德。
常樂觀察無二法相。
斯有是處。
初發心時便成正覺。
知一切法真實之性。
具足慧身不由他悟。
이렇게 여래 십력이 심오하고 무량함을 관찰하고,
대자비심을 구족히 길러서
중생을 다 분별하되 버리지 않고,
또한 고요히 앉는 일[寂滅]도 버리지 말아서
더없이 높은 업을 행하되 과보를 바라지 말 것이며,
일체법 보기를 허깨비[幻化]와 같고 꿈과 같이,
또 번개와 같고 메아리와 같이 보아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적은 노력으로 제불(諸佛)의 공덕을 빨리 얻으리니,
늘 즐겨 둘 없는 법 모양[無二法相]을 관찰하는
이것이 옳은 것이다.
처음 발심했을 때 곧 정각을 이루어
일체법의 진실한 성품을 알고,
지혜의 몸을 구족하여
남에 의지하지 않고 개오(開悟)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