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21권
북량(北涼) 천축삼장(天竺三藏) 담무참(曇無讖) 역(譯)
10-1.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爾時世尊告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言:
「善男子!若有菩薩摩訶薩修行如是大涅槃經,得十事功德,
不與聲聞辟支佛共,不可思議,聞者驚怪,非內、非外、
非難、非易、非相、非非相、非是世法、無有相貌、世間所無。
何等為十?一者有五,何等為五?一者所不聞者而能得聞,二者聞已能為利益,
三者能斷疑惑之心,四者慧心正直無曲,五者能知如來密藏,是為五事。
이때 세존께서 광명변조 고귀덕왕(光明遍照高貴德王)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대열반경을 닦아 행하면 십사공덕(十事功德*)을 얻어서
성문 벽지불들과 달리 불가사의하게 되어, 안도 밖도 아니요[非內非外],
어렵거나 쉬운 것도 아니며[非難非易], 상도 상 아님도 아니어서[非相非非相],
이것이 세간법이 아니요 아무런 형상이 없으며 세간에 없는 것이라
듣는 이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나니,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첫 번째 공덕으로 다섯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들인가 하면,
하나는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는 것[所不聞者而能得聞],
둘은 들으면 이익이 된다는 것[聞已能為利益],
셋은 의혹의 마음을 끊을 수 있다는 것[能斷疑惑之心],
넷은 지혜로운 마음이 정직하여 왜곡됨이 없어진다는 것[慧心正直無曲],
다섯은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알 수 있다는 것[能知如來密藏],
이 다섯 가지 사실[五事]이니라.
*十事功德; (1)第一功德~ ①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된다
②들으면 이익이 된다 ③의혹의 마음을 끊을 수 있다
④지혜로운 마음이 정직하여 왜곡됨이 없어진다 ⑤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알 수 있다.
(2)第二功德~ 得, 見, 聞, 到, 知
(3)第三功德~ ①得第一義慈 ②得菩薩所緣之慈 ③得菩薩無緣之慈
(4)第四功德~ ①根深而難傾動 ②生自身決定之想 ③見福田及非福田
④修淨佛土 ⑤滅除有餘 ⑥斷除業緣 ⑦修淨淨身 ⑧了知諸緣 ⑨離諸怨敵 ⑩斷除二邊
(5)第五功德의 五果~ ①諸根完具 ②邊地不生 ③諸天愛念
④常為天魔沙門婆羅門等所恭敬 ⑤得宿命智
(6)第六功德~ 金剛三昧를 얻고 그 안에 安住하여 一切諸法을 능히 破散하며
一切法이 無常, 動相, 恐怖之因緣病苦, 念念滅壞, 無有真實임을 본다.
(7)第七功德의 四種法~ 大涅槃에 다가가기 위해 ①善友를 親近하고
②專心으로 聽法하며 ③마음을 집중하여[繫念] 思惟하여 ④如法히 修行하라.
(8)第八功德~ ①色受想行識의 五陰을 斷除하여 그 相을 보지 않고,
②五見을 遠離하며 ③念佛, 念法, 念僧, 念天, 念戒, 念施의 六法을 成就하고
④知定, 寂定, 身心受快樂定, 無樂定, 首楞嚴定의 五種 禪定을 修習하여
⑤菩提心을 守護한다.
(9)第九功德~ 信, 直心, 戒, 親近善友, 多聞의 五事를 다 成就할 수 있기 初發한다.
(10)第十功德~ 菩薩이 三十七品을 修習하여 大涅槃의 常樂我淨에 들어가
衆生을 위해 大涅槃經을 分別解說하고 佛性을 顯示한다.
何等不聞而能得聞?所謂甚深微密之藏,一切眾生悉有佛性,佛、法、眾僧無有差別,
三寶性相常樂我淨,一切諸佛無有畢竟入涅槃者,常住無變。
如來涅槃,非有非無、非有為非無為、非有漏非無漏、非色非不色、
非名非不名、非相非不相、非有非不有、非物非不物、非因非果、
非待非不待、非明非闇、非出非不出、非常非不常、非斷非不斷、非始非終、
非過去、非未來、非現在、非陰非不陰、非入非不入、非界非不界、
非十二因緣非不十二因緣,如是等法甚深微密,昔所不聞而能得聞。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는 것[不聞而能得聞]'인가?
소위 심오하고 미밀(微密)한 법장이니,
일체중생이 다 불성(佛性)이 있고, 불(佛), 법(法), 승(僧)에 차별함이 없고,
삼보(三寶)의 성상(性相)이 상락아정(常樂我淨)하고,
일체 제불(諸佛)은 필경 열반에 드는 일이 없이 상주무변(常住無變)하시며,
여래의 열반은 유(有)도 무(無)도 아니고, 유위(有為)도 무위(無為)도 아니고,
유루(有漏)도 무루(無漏)도 아니고, 색(色)도 비색(非色)도 아니고,
이름[名]도 이름 아닌 것도 아니고, 상(相)도 상 아님도 아니고,
있는 것[有]도 있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물[物]도 사물 아닌 것도 아니고,
인(因)도 과(果)도 아니고, 기다릴 것[待]도 기다리지 않을 것도 아니고,
밝음[明]도 어둠[闇]도 아니고, 나오는 것[出]도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항상함[常]도 항상치 못함도 아니고, 끊기는 것[斷]도 끊기지 않는 것도 아니고,
처음[始]도 끝[終]도 아니고,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고,
음(陰*)도 음 아닌 것도 아니고, 입(入*)도 입 아닌 것도 아니고,
계(界*)도 계 아닌 것도 아니고, 12인연도 12인연 아닌 것도 아니다는
이와 같은 법이 심오하고 미밀(微密)하여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陰入界; 一切諸法을 5蘊(陰), 12處(入), 18界의 三科로 分別한다.
俱舍論에 心이 어리석은 자를 위해 心을 5가지 蘊으로 細別하고,
色法에 어리석은 자를 위해 色法을 12가지 處로 細別하고,
色, 心 두 法에 어리석은 자를 위해 色心 두 法을 18가지 界로 細別했다 하였다.
復有不聞,所謂一切外道經書、四毘陀論、毘伽羅論、衛世師論、迦毘羅論,
一切呪術、醫方、伎藝,日月博蝕、星宿運變、圖書讖記。
如是等經初未曾聞祕密之義,今於此經而得知之。
復有十一部經,除毘佛略,亦無如是深密之義,今因此經而得知之。
善男子!是名不聞而能得聞。
또 듣지 못하던 것이 있으니, 소위 외도(外道)들의 모든 경서(經書)와
4비타론(四毘陀論*), 비가라론(毘伽羅論*), 위세사론(衛世師論*), 가비라론(迦毘羅論*),
그리고 모든 주술(呪術), 의방(醫方), 기예(伎藝), 일월박식(日月博蝕*),
별들이 움직이는 변화[星宿運變], 도서(圖書)와 참기(讖記*) 따위이거니와,
이러한 경들의 비빌한 뜻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에 이 경을 알게 되고,
또 비불략(毘佛略*)을 제외한 십일부경(十一部經)에도 없는 깊고 비밀한 뜻을
지금에 이런 경들로 인해 알게 되나니,
선남자야! 이를 일러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다'고 하느니라.
*四毘陀論; 4폐타(吠陀;catur-veda)라고도 하며 古印度의 正統思想이자
婆羅門教의 根本聖典으로서 智論, 明論, 無對라 譯하고,
<梨俱吠陀(Rg-veda);壽>, <沙摩吠陀(Sāma-veda);祠>,
<夜柔吠陀(Yajur-veda);平>, <阿闥婆吠陀(Atharva-veda);術>의 네 가지가 있다.
*毘伽羅論(Vyākarana); , 梵語 文字音韻과 語法에 관한 文法書의 總稱으로서
字本論, 聲明記論이라 譯한다.
*衛世師論(Vaiśeṣika-śāstra); 吠世史迦, 毗舍師, 毗世師. 印度 六派哲學의 하나로서
優樓佉(Ulu^ka)에 의해 세워졌으며, 勝論, 勝宗, 最勝, 異勝論이라 譯한다.
*迦毘羅論; 迦毘羅(Kapila;黃頭) 仙人이 세운 六派哲學의 하나. 數論, 金七十論이라 한다.
*日月博蝕; 해와 달의 커지고 작아지는 변화.
*毘佛略(Vaipulya); 毘富羅. 十二部經의 열 번째 方廣經,
즉 小乘의 長阿含經이나 大乘의 華嚴經 法華經 等을 말한다.
「聞已利益者,若能聽受是大涅槃經,悉能具知一切方等大乘經典甚深義味。
譬如男女,於明淨鏡,見其色像,了了分明。
大涅槃鏡亦復如是,菩薩執之,悉得明見大乘經典甚深之義。
亦如有人在闇室中執大炬火,悉見諸物。
大涅槃炬亦復如是,菩薩執之,得見大乘深奧之義。
亦如日出,有千光明,悉能照了諸山幽闇,令一切人遠見諸物。
是大涅槃清淨慧日亦復如是,照了大乘深邃之處,令二乘人遠見佛道。
所以者何?以能聽受是大涅槃微妙經典故。
善男子!若有菩薩摩訶薩聽受如是大涅槃經,得知一切諸法名字。
若能書寫、讀誦通利、為他廣說、思惟其義,則知一切諸法義理。
善男子!其聽受者,唯知名字,不知其義;
若能書寫、受持讀誦、為他廣說、思惟其義,則能知義。
復次善男子!聽是經者,聞有佛性,未能得見;
書寫讀誦、為他廣說、思惟其義、則得見之。
聽是經者,聞有檀名,未能得見檀波羅蜜;
書寫讀誦、為他廣說、思惟其義,則能得見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亦復如是。
善男子!菩薩摩訶薩若能聽是大涅槃經,則知法知義,具二無礙,
於諸沙門、婆羅門等,若天、魔、梵、一切世中,得無所畏,開示分別十二部經,
演說其義,無有差違,不從他聞,而能自知,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善男子!是名聞已,能為利益。
「'들으면 이익이라는 것[聞已利益者]'은 만약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모든 방등대승경전의 심오한 의미를 다 안다는 것이니라.
비유컨대 남녀가 맑고 깨끗한 거울에서 자기의 형상을 뚜렷하고 분명히 보듯이,
대열반의 거울도 그와 같아서 보살이 잡으면 대승경전의 심오한 의미를 밝게 다 보게 되고,
또 사람이 깜깜한 방에서 큰 횃불을 들면 모든 사물을 다 보듯이,
대열반의 횃불도 그와 같아서 보살이 들면 대승의 심오한 의미를 보게 되며,
또 해가 뜨면 무수한 광명이 모든 산의 그윽한 어두움을 다 비추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사물을 널리 보게 하듯이,
이 대열반이라는 지혜의 해도 그와 같이 대승의 깊고 그윽한 곳을 비추어
2승(二乘)의 사람들로 하여금 불도(佛道)를 두루 보게 하나니,
어째서이겠는가? 이 대열반이라는 미묘한 경전을 들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일체제법의 이름을 알게 되고,
또 만약 서사(書寫) 독송(讀誦)하고 통리(通利)하여 남에게 널리 설하며
그 의미를 사유(思惟)한다면 일체제법의 의미와 이치를 곧 알 것이니라.
선남자야! 듣기만 하는 것은 이름만 알고 그 뜻을 모르지만,
서사(書寫)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남에게 설하며 그 의미를 사유하면 뜻을 알 수 있고,
또 선남자야! 이 경을 듣기만 해서는 불성(佛性)을 듣기는 해도 보지는 못하지만,
서사독송(書寫讀誦)하여 남에게 설하며 그 의미를 사유하면 곧 보게 될 것이며,
이 경을 듣기만 해서는 단(檀;布施)이라는 이름은 듣되 단바라밀을 아직 보지는 못하지만,
서사독송하여 남에게 설하며 그 의미를 사유하면 곧 단바라밀을 보게 되려니와,
나아가 반야바라밀까지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경을 들은 즉 법을 알고 뜻을 알아서 2무애(無礙)를 갖추고,
모든 사문 바라문이나 천(天), 마(魔), 범(梵)이나 일체세간 중에서 무소외(無所畏)를 얻으며,
12부경을 개시분별(開示分別)하고 그 뜻을 연설함에 그르침이 없으려니와,
남으로부터 듣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가가리니,
선남자야! 이것이 '들으면 능히 이익이 된다'는 것이니라.
「斷疑心者,疑有二種:一者疑名,二者疑義。
聽是經者,斷疑名心;思惟義者,斷疑義心。
復次善男子!疑有五種:一者疑佛定涅槃不?二者疑佛是常住不?
三者疑佛是真樂不?四者疑佛是真淨不?五者疑佛是實我不?
聽是經者,疑佛涅槃則得永斷;書寫讀誦、為他廣說、思惟其義,四疑永斷。
「'의심(疑心)을 끊는다는 것[斷疑心者]'은
의심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이름에 대한 의혹[疑名]이요,
둘은 뜻에 대한 의혹[疑義]인데,
이 경을 들어서는 이름을 의혹하는 마음[疑名心]을 끊고,
뜻을 사유하면 뜻을 의혹하는 마음[疑義心]을 끊느니라.
또 선남자야! 의혹에 다섯 가지가 있어
첫째는 '부처님은 정히 열반하시는가?' 하는 의혹이요,
둘째는 '부처님은 상주(常住)하실까?' 하는 의혹이며,
셋째는 '부처님은 참으로 즐거우실까?' 하는 의혹이며,
넷째는 '부처님은 참으로 청정하신가?' 하는 의혹이며,
다섯째는 '부처님은 진실한 나[我]일까?' 하는 의혹이니라.
이 경을 들으면 부처님의 열반에 대한 의혹이 영원히 끊어지고,
서사독송하며 다른 이에게 널리 설하고 뜻을 사유하면
다른 네 가지 의혹이 영원히 끊길 것이니라.
復次善男子!疑有三種:一疑聲聞為有、為無?二疑緣覺為有、為無?
三疑佛乘為有、為無?聽是經者,如是三疑永滅無餘;
書寫讀誦、為他廣說、思惟其義,則能了知一切眾生悉有佛性。
또 선남자야! 의혹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聲聞)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혹함이요,
둘은 '연각(緣覺)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혹함이며,
셋은 '불승(佛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혹함인데,
이 경을 들으면 이러한 세 가지 의혹을 남김없이 영원히 끊고,
서사독송하며 남에게 널리 설하고 뜻을 사유하면
일체중생이 다 불성(佛性)을 지녔음을 분명히 알 수 있느니라.
復次善男子!若有眾生不聞如是大涅槃經,其心多疑,
所謂若常、無常,若樂、不樂,若淨、不淨,若我、無我,若命、非命,
若眾生、非眾生,若畢竟、不畢竟,若他世、若過世,若有、若無,
若苦、若非苦,若集、若非集,若道、若非道,若滅、若非滅,
若法、若非法,若善、若非善,若空、若非空,
聽是經者,如是諸疑悉得永斷。
또 선남자야! 만약 중생이 이러한 《대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마음에 의혹이 많나니,
소위 상(常)인지 무상(無常)인지, 낙(樂)인지 불락(不樂)인지, 정(淨)인지 부정(不淨)인지,
아(我)인지 무아(無我)인지, 명(命)인지 비명(非命)인지, 중생인지 비중생(非衆生)인지,
필경(畢竟)인지 불필경(不畢竟)인지, 타세(他世)인지 과세(過世)인지, 유(有)인지 무(無)인지,
고(苦)인지 고 아닌지[非苦], 집(集)인지 집 아닌지[非集], 도(道)인지 도 아닌지[非道],
멸(滅)인지 멸 아닌지[非滅], 법(法)인지 비법(非法)인지, 선(善)인지 비선(非善)인지,
공(空)인지 비공(非空)인지 하는 것들이거니와,
이 경을 들으면 이러한 의혹들이 다 영원히 끊어지느니라.
復次善男子!若有不聞如是經者,復有種種眾多疑心,
所謂色是我耶?受想行識是我耶?眼能見耶?我能見耶?乃至識能知耶?
我能知耶?色受報耶?我受報耶?乃至識受報耶?我受報耶?色至他世耶?
我至他世耶?乃至識亦如是。
生死之法有始有終耶?無始無終耶?聽是經者,如是等疑亦得永斷。
또 선남자야! 이러한 경을 듣지 못하면 갖가지로 많은 의심이 있으니,
소위 색(色)이 나[我]인가,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나인가?
눈[眼]이 보는가, 내[我]가 보는가? 나아가 식(識)이 아는가, 내[我]가 아는가?
색(色)이 보(報)를 받는가, 내가 보를 받는가에서 나아가
식(識)까지가 보를 받는가, 내가 보를 받는가?
색이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가 다른 세상에 가는가에서 나아가 식(識)까지가 그와 같은가?
생사(生死)의 법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가? 하는 것들인데,
이 경을 들으면 이와 같은 의심들이 영원히 끊기느니라.
復有人疑,一闡提人、犯四重禁、作五逆罪、謗方等經,如是等輩有佛性耶?無佛性耶?
聽是經者,如是等疑悉得永斷。
復有人疑,世間有邊耶?世間無邊耶?有十方世界耶?無十方世界耶?
聽是經者,如是等疑亦得永斷,是名能斷疑惑之心。
또 어떤 사람들은 일천제(一闡提)는 사중금(四重禁)을 범하고
오역죄(五逆罪)를 짓고 방등경(方等經)을 비방하는데,
이런 무리들은 불성(佛性)이 있는지 불성이 없는지 의심하지만,
이 경을 들으면 이와 같은 의혹들이 다 끊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간이 끝[邊]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시방세계(十方世界)가 있는가 시방세계가 없는가를 의심하지만,
이 경을 들으면 이와 같은 의혹들이 다 끊기나니,
이것을 일러 '능히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고 하느니라.
「慧心正直無邪曲者,心若有疑,則所見不正。
一切凡夫若不得聞是大涅槃微妙經典,所見邪曲,乃至聲聞辟支佛人,所見亦曲。
云何名為一切凡夫所見邪曲?於有漏中見常樂我淨;
於如來所,見無常、苦、不淨、無我;見有眾生、壽命、知見;
計非有想非無想處,以為涅槃;見自在天有八聖道;有見、斷見;如是等見,名為邪曲。
菩薩摩訶薩若得聞是大涅槃經,修行聖行,則得斷除如是邪曲。
「‘지혜의 마음이 정직하여 사곡(邪曲)이 없다[慧心正直無邪曲]'는 것은
마음에 의혹이 있으면 소견이 바르지 못하여
일체의 범부는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듣지 못하면 소견이 사곡(邪曲)되고,
나아가 성문 연각들까지도 소견이 사곡되거니와,
어떤 것을 '일체범부의 소견이 사곡되었다'고 하는가?
유루(有漏) 속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보고,
여래를 무상(無常), 고(苦), 부정(不淨), 무아(無我)라고 보며,
중생과 수명(壽命), 지견(知見)이 있다고 보고,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써 열반을 삼으려 하며,
자재천(自在天)에 팔성도(八聖道;八正道)가 있다고 보거나
유견(有見*)과 단견(斷見*), 이와 같은 견(見)을 사곡(邪曲)이라 한다.
그러나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 대열반경을 듣고서 성인의 행[聖行]을 수행(修行)한다면
곧 그와 같은 사곡이 단제(斷除)되느니라.
*有見; 身心이나 世界가 常住不變한 것으로 여기면서 유(有)에 執著하는 邪見.
常見이라고도 한다.
*斷見; 사람은 死後에 티끌로 돌아가고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斷滅的 見解.
斷滅見 또는 無見이라고도 한다.
云何名為聲聞緣覺邪曲見耶?
見於菩薩從兜率下,化乘白象,降神母胎,父名淨飯,母曰摩耶。
迦毘羅城處胎滿足十月而生,生未至地,帝釋捧接,難陀龍王及婆難陀吐水而浴,
摩尼跋陀大鬼神王執持寶蓋,隨後侍立,地神化花以承其足,四方各行滿足七步。
到於天廟,令諸天像悉起承迎。阿私陀仙抱持占相,既占相已,生大悲苦,
自傷當終不覩佛興。詣師學書、算計、射禦、圖讖、伎藝。處在深宮,六萬婇女娛樂受樂。
어떤 것을 성문 연각의 사곡된 견이라 하는가?
보살이 도솔천에서 백상(白象)을 탄 모습을 하고 내려와
모태(母胎)에 들었는데, 부친은 정반(淨飯)왕이요 모친은 마야(摩耶)부인이다거나,
가비라성(迦毗羅城) 탯속에서 열 달을 채우고 나올 때
땅에 닿기 전에 제석천왕이 받들어 모셨고,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용왕이 물을 뿜어 몸을 씻겼고,
마니발타(摩尼跋陀*) 대귀신왕이 보개(寶蓋)를 바쳐들고 뒤에 시립(侍立)하여 따랐으며,
지신(地神)이 화작(化作)한 연꽃으로 발을 받들어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씩을 걸었다거나,
천묘(天廟)에 이르러서는 모든 천상(天像)들로 하여금 일어나 영접하게 하였고,
아사타(阿私陀*) 선인이 품에 안고 관상을 보고서[占相] 크게 슬퍼하며
부처가 출흥(出興)하심을 끝내 보지 못할 것을 스스로 괴로워 하였다거나,
스승에게서 글쓰기과 산수, 활쏘기와 말 타기, 도참(圖讖)과 기예를 배웠다거나,
깊숙한 궁전에서는 6만의 채녀와 오락(娛樂)하며 즐겼다거나,
*難陀婆難陀; 難陀跋難陀(Nanda-upananda). 摩竭陀國을 守護하는 兄弟龍王.
*摩尼跋陀(Maṇibhadra); 夜叉 八大將 중 하나. 寶賢, 滿賢이라 譯.
*阿私陀(Asita); 中印度 迦毘羅衛國의 仙人으로 《佛本行集經》卷七에 의하면
釋尊降誕時에 이 仙人이 占相으로 그가 장차 成佛할 것을 預言하였다 하였다.
出城遊觀至迦毘羅園,道見老人乃至沙門法服而行,還至宮中見諸婇女形體狀貌,
猶如枯骨,所有宮殿塚墓無異。厭惡出家夜半踰城,至欝陀伽、阿羅邏等大仙人所,
聞說識處及非有想非無想處。
既聞是已,諦觀是處,是非常、苦、不淨、無我,捨至樹下,具修苦行滿足六年。
知是苦行不能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爾時復到阿利跋提河中洗浴,
受牧牛女所奉乳糜,受已轉至菩提樹下,破魔波旬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성(城)을 나가 유관(遊觀)하며 가비라원(迦毘羅園)에 이르러서
길에서 노인도 보고 사문(沙門)이 법복을 입고 가는 것도 보았고,
궁중으로 돌아오니 채녀들의 모습이 마른 뼈와 같았고 궁전은 무덤과 다름이 없었다거나,
그런 것들이 싫어져서 야반(夜半)에 성을 넘어 출가하여
울다가(欝陀伽*)와 아라라(阿羅邏*) 등의 큰 선인에게서
식처(識處*)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들었으며, 그것을 듣고서
그 처(處)가 무상(無常)이요, 고(苦)요, 부정(不淨)이며, 무아(無我)임을 체관(諦觀)하고
그 곳을 떠나 보리수 아래로 가서 6년 동안 고행을 닦았다거나,
이 고행(苦行)으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이때 다시 아리발제(阿利跋提*) 강으로 가서 목욕하고, 소치는 여인이 준 유미(乳糜*)를 먹고,
먹은 뒤에 보리수(菩提樹) 아래로 가서 마왕 파순(波旬)을 쳐부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거나,
*阿羅邏(Ārāḍakālāma); 名은 阿羅邏,姓은 迦藍.
釋尊께서 出家하여 처음 도를 여쭌 두 선인 중 하나.
그는 "모든 범부가 탐애에 얽매여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 경계로 말미암아 그런 일들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하면서,
『산양(山羊)이 죽음을 당함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요[山羊被殺因作聲]
나비가 등불에 뛰어듦은 불빛을 보기 때문이며[飛蛾投燈由火色],
물고기가 낚시에 걸림은 미끼를 물기 때문이요[水魚懸鉤為吞餌]
사람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경계에 끌리기 때문이라네[世人趣死以境牽]』 하였다.
*欝陀伽(Udraka); 38권의 鬱頭藍弗(優陀羅羅摩子,Udraka Rāmaputra)와 동일인.
鬱頭藍弗은 '羅摩의 아들 優陀羅'라는 뜻의 이름이다.
佛本行集經 22권 答羅摩子品에
「그때 이 염부제 땅에 라마(羅摩)라는 또 다른 큰 도사(導師)가 있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 무리의 주인이었던 라마의 큰아들 우타라라마자(優陀羅羅摩子)가
대중을 영도하여 왕사성 근처 아란야 숲에 머물면서
늘 대중들에게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태어나는 법을 설하고 있었다.
이때 보살은 아라라보다 그가 설하는 법이 더 낫다는 명성을 들었기에
『나는 이제 우타라라마자에게 가서 범행을 행하리라』 생각했다」고 하였으니,
식처와 비유상비무상처를 설했다는 것은 曲見이다는 말이다.
*識處; 識無邊處(巴viññānañcāyatana)의 略稱. 無色界의 第二天.
공(空)을 초월하고 식(識)을 반연하여[捨空緣識] 식(識)으로 처(處)를 삼는 禪定境界.
*非有想非無想處(非想非非想;Naivasaṁjñānāsaṁjñāyatana); 無色界의 第四處(最頂上).
細想의 煩惱가 끊어진 곳이라 하여 外道는 이 곳을 진실한 涅槃處로 삼았다.
*阿利跋提(Ajiravati-nadi); 舍衛城 인근의 강. 阿恃多伐底(Ajiravati)가 옳은 표현이다.
西域記 六권에 「阿恃多伐底河,唐言無勝,舊云阿利羅跋提河。訛也。」라 하였다.
*乳糜(pāyasa); 소나 양의 젖에 곡물을 넣어 끓인 죽.
於波羅㮈為五比丘初轉法輪,乃至於此拘尸那城入般涅槃。
如是等見,是名聲聞緣覺曲見。善男子!菩薩摩訶薩聽受如是大涅槃經。
悉得斷除如是等見;若能書寫、讀誦通利、為他演說、思惟其義,則得正直無邪曲見。
바라내(波羅㮈*)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륜(法輪)을 굴리신 것에서부터
나아가 이 구시나성(拘尸那城)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드셨다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모든 견해들을 바로 성문 연각의 사곡된 견해[曲見]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이러한 소견이 다 끊겨 없어지거니와,
만일 서사(書寫), 독송(讀誦)하고 통리(通利)하여 남에게 연설하며 그 뜻을 사유한다면
곧 정직하여 사곡됨이 없는 견해를 얻을 것이니라.
*波羅㮈; 古代印度 6대 都市의 하나로 迦尸國의 首都.
*般涅槃; 般은 「完全」의 뜻이니, 涅槃을 강조한 표현이다.
「善男子!菩薩摩訶薩修行如是大涅槃經,諦知菩薩無量劫來,不從兜率降神母胎,
乃至拘尸那城入般涅槃,是名菩薩摩訶薩正直之見。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대열반경》을 수행하면
보살이 무량한 겁이 지난 뒤 도솔천에서 내려와 모태에 들었다거나
나아가 구시나성에서 반열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살펴 알 것이니,
이것을 일러 보살마하살의 정직한 견이라 하느니라.
能知如來深密義者,所謂即是大般涅槃,一切眾生悉有佛性,懺四重禁、
除謗法心、盡五逆罪、滅一闡提,然後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甚深祕密之義。
復次善男子!云何復名甚深之義?雖知眾生實無有我,而於未來不失業果;
雖知五陰於此滅盡,善惡之業終不敗亡;雖有諸業不得作者;雖有至處無有去者;
雖有繫縛無受縛者;雖有涅槃亦無滅者;是名甚深祕密之義。」
「'여래의 심오하고 비밀한 뜻을 알 수 있다는 것[能知如來深密義]'은
소위 곧 《대반열반》이니, 일체중생이 다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어서
사중금(四重禁)을 참회하고, 법(法)을 비방하는 마음을 없애고, 오역죄(五逆罪)가 다하고,
일천제(一闡提)가 멸하면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는 것이라
이를 일러 심오하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또 심오한 뜻이라 하는가?
비록 중생에게 실로 나[我]라는 것이 없음을 알아도 미래에 업과(業果)가 없어지지 않고,
비록 오음(五陰)이 이 생(生)에서 멸진(滅盡)하는 줄 알지만
선(善)하고 악(惡)한 업은 끝내 없어지지 않으며, 비록 업(業)들이 있지만 짓는 자가 없고,
비록 이르는 곳이 있지만 가는 자가 없으며, 비록 속박이 있지만 속박 받는 자가 없고,
비록 열반이 있지만 멸하는 자가 없나니,
이것을 일러 심오하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白佛言:
「世尊!如我解佛所說,聞不聞義,是義不然。
何以故?法若有者便應定有,法若無者便應定無,無不應生、有不應滅。
如其聞者是則為聞,若不聞者則為不聞,云何而言聞所不聞?
世尊!若不可聞是為不聞,若已聞者則更不聞。
何以故?已得聞故。云何而言聞所不聞?譬如去者,到則不去,去則不到。
亦如生已不生、不生不生。得已不得、不得不得。聞已不聞、不聞不聞亦復如是。
그때 광명변조고귀덕왕(光明遍照高貴德王)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하신 바의 뜻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 이치가 그렇지 않겠나이다.
왜냐하면 법(法)이 있다면 정히 있어야 하고, 법이 없다면 정히 없어야 할 것이니,
없는 것이 생겨서는 아니 되고, 있는 것이 멸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
들을 것이면 곧 들을 것이고, 듣지 못할 것이면 듣지 못할 것일 터이온데,
어찌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하시옵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들을 수 없는 것이면 듣지 못한 것이고,
이왕 들은 것을 다시 듣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이미 들었기 때문이온데,
어찌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하시나이까?
마치 가는 자가 이르른 즉 가지 않은 것이요, 간 즉 이르지 않은 것이며,
또 이미 났으면 나지 않을 것이요, 나지 못할 것이면 나지 않을 것이며,
또 이미 얻었으면 얻지 않을 것이요, 얻지 못할 것이면 얻지 못할 것이듯이,
이미 들었으면 듣지 않을 것이요, 듣지 못할 것이면 듣지 못하는 것도 그러할 것이옵니다.
世尊!若不聞聞者,一切眾生未有菩提即應有之,未得涅槃亦應得之,
未見佛性應見佛性,云何復言十住菩薩雖見佛性未得明了?
世尊!若不聞聞者,如來往昔從誰得聞?若言得聞,何故如來於《阿含》中復言無師?
若不聞不聞,如來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一切眾生不聞不聞,
亦應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如來若當不聞如是大涅槃經見佛性者,一切眾生不聞是經亦應得見。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면
일체중생이 지닌 적 없는 보리(菩提)가 있어야 하고,
얻은 적 없는 열반 또한 얻어야 하며, 본 적 없는 불성(佛性)을 보아야 할 터이온데,
어찌하여 '십주(十住)보살은 불성(佛性)을 보되 아직 명료(明了)치 못하다'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면
여래께서는 옛적에 누구에게 들으시지 않았나이까? 만약 들으셨다면,
어째서 여래께서는 《아함경(阿含經)》에서 '스승이 없다[無師]'고 하셨나이까?
만약 듣지 못한 것을 듣지 못하고서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신 것이라면
일체중생도 듣지 못한 것을 듣지 못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오며,
여래께서 만일 이 《대열반경》을 듣지 못하시고 불성(佛性)을 보신 것이라면
일체중생도 이 경을 듣지 않아도 불성을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世尊!凡是色者,或有可見,或不可見。聲亦如是,或是可聞,或不可聞。
是大涅槃非色非聲,云何而言可得見聞?
世尊!過去已滅則不可聞,未來未至亦不可聞,現在聽時則不名聞,聞已聲滅更不可聞。
是大涅槃亦非過去、未來、現在,若非三世,則不可說,
若不可說則不可聞,云何而言菩薩修是大涅槃經,聞所不聞?」
세존이시여! 무릇 색(色)이란 볼 수 있기도 하고 볼 수 없기도 하며,
소리[聲]도 그와 같이 듣기도 하고 듣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이 《대열반》은 색도 소리도 아니온데 어찌 옫고 듣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과거는 이미 멸했으니 들을 수 없고, 미래는 이르지 않았으니 듣지 못하며,
현재에 들려올 때는 들었다 하지 않고 들은 뒤에는 소리가 멸하니 다시 들을 수 없나이다.
이 《대열반》도 또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니,
삼세(三世)가 아닌 즉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즉 들을 수 없사온데,
어째서 '보살이 이 《대열반경》을 닦으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시나이까?」
爾時世尊讚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言:
「善哉,善哉!善男子!汝今善知一切諸法,如幻如焰、如乾闥婆城、畫水之跡、
亦如泡沫、芭蕉之樹空無有實,非命非我,無有苦樂,如十住菩薩之所知見。」
그러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을 칭찬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일체법이 허깨비 같고 아지랑이 같고,
건달바성(乾闥婆城*)이나 물을 그은 흔적과 같으며,
또한 물거품이나 파초나무가 공하여 실이 없는 것과 같고,
수명도 아니고 나[我]도 아니고, 고락(苦樂)도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
십주보살의 지견(知見)하는 바와 같구나.」
*乾闥婆城(gandharva-nagara); 낙인(樂人)을 乾闥婆라 하는데,
저 낙인들이 공중에 허깨비 누각을 지어 보이니,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乾闥婆城이라 한다.
時大眾中忽然之頃有大光明,非青見青、非黃見黃、非赤見赤、非白見白,
非色見色、非明見明、非見而見。
爾時大眾遇斯光已,身心快樂,譬如比丘入師子王定。
그때 대중 속에 홀연히 큰 광명이 있어 푸른 것이 아닌데 푸르게 보이고,
노란 것이 아닌데 노랗게 보이고, 붉은 것이 아닌데 붉게 보이고,
흰 것이 아닌데 희게 보이며, 색이 아닌데 색으로 보이고,
밝은 것이 아닌데 밝게 보이고, 보이는 것이 아닌데 보였다.
대중들이 이 광명을 만나자 심신이 쾌락하여 비구가 사자왕정(師子王定)에 든 것 같았다.
爾時文殊師利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今此光明誰之所放?」
爾時如來默然不說。
이때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광명은 누가 내는 것이옵니까?」
그러나 그때 여래는 묵연(默然)히 말씀이 없으셨다.
迦葉菩薩復問文殊師利:「何因緣故,有此光明照於大眾?」
文殊師利默然不答。
가섭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대중을 비추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묵연히 답이 없었다.
爾時無邊身菩薩復問迦葉菩薩:「今此光明誰之所有?」
迦葉菩薩默然不說。
이때 무변신(無邊身)보살이 또 가섭보살에게 물었다.
「지금의 이 광명은 누구의 것입니까?」
가섭보살은 묵연히 답하지 않았다.
淨住王子菩薩復問無邊身菩薩:「何因緣故,是大眾中有此光明?」
無邊身菩薩默然不說。
정주왕자(淨住王子)보살이 또 무변신보살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대중 속에 이 광명이 있습니까?」
무변신보살은 묵연히 말이 없었다.
如是五百菩薩皆亦如是,雖相諮問然無答者。
이와 같이 오백의 보살들이 그렇게 서로 물었으나 답하는 이가 없었다.
爾時世尊問文殊師利言:「文殊師利!何因緣故,是大眾中有此光明?」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으셨다.
「문수사리야! 무슨 인연으로 대중 속에 이 광명이 있겠느냐?」
文殊師利言:「世尊!如是光明名為智慧,智慧者即是常住,常住之法無有因緣,
云何佛問何因緣故有是光明?
是光明者名大涅槃,大涅槃者則名常住,常住之法不從因緣,云何佛問何因緣故有是光明?
是光明者即是如來,如來者即是常住,常住之法不從因緣,云何如來問於因緣?
光明者名大慈大悲,大慈大悲者名為常住,常住之法不從因緣,云何如來問於因緣?
光明者即是念佛,念佛者是名常住,常住之法不從因緣,云何如來問於因緣?
光明者即是一切聲聞緣覺不共之道,聲聞緣覺不共之道即名常住,常住之法不從因緣,
云何如來問於因緣?世尊!亦有因緣,因滅無明則得熾然阿耨多羅三藐三菩提燈。」
문수사리가 답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광명을 지혜(智慧)라 하옵고,
지혜란 곧 상주(常住)하며 상주하는 법은 인연이 없사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곧 대열반이요, 대열반이란 곧 상주(常住)이며,
상주하는 법은 인연을 쫓지 않사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상주(常住)이시며,
상주하는 법은 인연을 쫓지 않사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대자대비(大慈大悲)요, 대자대비는 상주(常住)이며,
상주하는 법은 인연을 쫓지 않사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곧 염불(念佛)이요, 염불은 곧 상주(常住)이며,
상주하는 법은 인연을 쫓지 않사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성문 연각들이 같이 하지 못하는 도[不共之道]요,
성문 연각들이 같이 하지 못하는 도는 곧 상주(常住)이며,
상주하는 법은 인연을 쫓지 않사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또 어떤 인연으로 무명(無明)이 멸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등(燈)이 활활 타게 될 것이옵니다.」
佛言:「文殊師利!汝今莫入諸法甚深第一義諦,應以世諦而解說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너는 제법(諸法)의 심오한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가지 말고 세상의 이치[世諦]로써 해설해야 하리라.」
文殊師利言:「世尊!於此東方過二十恒河沙等世界,有佛世界名曰不動,
其佛住處,縱廣正等足滿一萬二千由旬,其地七寶,無有土石,平正柔軟無諸溝坑,
其諸樹木四寶所成,金、銀、琉璃及以頗梨,花果茂盛無時不有,
若有眾生聞其花香,身心安樂,譬如比丘入第三禪。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동쪽으로 20항하사 쯤의 세계를 지나면
'부동(不動)'이라는 부처님세계가 있사온데,
그 부처님 계시는 곳은 가로 세로가 똑같이 1만 2천 유순(由旬)에 달하며,
땅은 칠보로 되어 흙이나 돌이 없고, 고르고 반듯하고 유연하여
도랑이나 구덩이가 없으며, 나무들은 금, 은, 유리, 파리의 네 가지 보배로 되어 있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없는 때가 없어서 만일 어떤 중생이 그 꽃향기를 맡으면
심신이 안락하여 마치 비구가 제삼선(第三禪)에 든 것 같나이다.
周匝復有三千大河,其水微妙,八味具足,若有眾生在中浴者,所得喜樂,
譬如比丘入第二禪。其河多有種種諸花,優鉢羅花、波頭摩花、拘物頭花、分陀利花、
香花、大香花、微妙香花、常花、一切眾生無遮護花。
其河兩岸亦有眾花,所謂阿提目多伽花、占婆花、波吒羅花、婆師羅花、摩利迦花、
大摩利迦花、新摩利迦花、須摩那迦花、由提迦花、檀㝹迦利花、常花、
一切眾生無遮護花。底布金沙。有四梯梐,金、銀、琉璃、雜色頗梨。
多有眾鳥遊集其上,復有無量虎狼、師子、諸惡鳥獸,其心相視,猶如赤子。
彼世界中一切無有犯重禁者、誹謗正法及一闡提五逆等罪。
其土調適,無有寒熱、飢渴、苦惱,無貪、欲、恚、放逸、嫉妬,
無有日月、晝夜、時節,猶如第二忉利天上。
其土人民等有光明,各各無有憍慢之心,一切悉是菩薩大士,
皆得神通具大功德,其心悉皆尊重正法,乘於大乘、愛念大乘、貪樂大乘、
護惜大乘,大慧成就得大總持,心常憐愍一切眾生。
그 주위에 다시 삼천 개의 강이 있는데, 물이 미묘하여 여덟 가지 맛을 내고,
중생이 그 물에 목욕하면 마치 비구가 제이선(第二禪)에 들어간 듯한 기쁨을 얻나이다.
그 강에는 우발라화(優鉢羅花), 파두마화(波頭摩花), 구물두화(拘物頭花),
분타리화(分陀利花), 향화(香花), 대향화(大香花), 미묘항화(微妙香花), 상화(常花),
일체중생무차호화(一切衆生無遮護花) 같은 여러가지 많은 꽃이 있사옵고,
그 강의 양쪽 언덕에도 여러 가지 꽃이 있으니,
소위 아제목다가화(阿提目多伽花), 점바화(占婆花), 파타라화(波吒羅花),
바사라화(婆師羅花), 마리가화(摩利迦花), 대마리가화(大摩利迦花),
신마리가화(新摩利迦花), 수마나화(須摩那花), 유제가화(由提迦花),
단누가리화(檀㝹迦利花), 상화(常花), 일체중생무차호화(一切衆生無遮護花)이오며,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고, 금, 은, 유리, 잡색 파리(頗梨)로 된 네 가지 사다리가 있는데,
여러가지 많은 새들이 그 위에 모여들고,
또 무량한 범, 이리, 사자, 사나운 새와 짐승들도 있으나
그 마음이 서로 대하기는 마치 갓난 아이와 같나이다.
其佛號曰滿月光明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
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隨所住處,有所講宣,其土眾生,
無不得聞為琉璃光菩薩摩訶薩講宣如是大涅槃經。」
그 부처님의 호(號)는 만월광명(滿月光明)여래,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부처님(佛) 세존이시며, 계시는 곳곳마다 강설하여 펼치시니,
그 땅의 중생들은 유리광(琉璃光)보살마하살에게 강설하시는
이와 같은 《대열반경》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나이다.」
佛言:「善男子!菩薩摩訶薩若能修行大涅槃經,所不聞者皆悉得聞。
彼琉璃光菩薩摩訶薩問滿月光明佛,亦如此間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所問,
等無有異。彼滿月光明佛即告琉璃光菩薩言:
『善男子!西方去此二十恒河沙佛土,彼有世界名曰娑婆,其土多有山陵、堆阜、
土沙礫石、荊蕀毒刺、周遍充滿,常有飢渴、寒熱苦惱。
其土人民,不能恭敬沙門、婆羅門、父母師長,貪著非法,欲於非法,
修行邪法,不信正法,壽命短促,有行姦詐王者治之,王雖有國不知滿足,
於他所有生貪利心,興師相伐枉死者眾。
王者修行如是非法,四天善神心無歡喜,故降災旱,穀米不登,人民多病,苦惱無量。
彼中有佛,號釋迦牟尼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
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大悲純厚,愍眾生故,於拘尸那城娑羅雙樹間,
為諸大眾敷演如是大涅槃經。彼有菩薩,名光明遍照高貴德王,已問斯事,如汝無異。
佛今答之,汝可速往,自當得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 모두를 다 듣게 되느니라.
이 세간의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이 묻는 바와 똑 같이
그 세계의 유리광(琉璃光) 보살마하살이 만월광명불(滿月光明佛)께 여쭈었는데,
저 만월광명불께서 유리광 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서쪽으로 20항하사 불토(佛土)를 가면 거기에 사바(娑婆)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 땅에는 많은 높은 산과 작은 언덕[堆阜], 토사(土沙)와 자갈[礫石],
가시덩쿨[荊蕀]과 독을 쏘는 것[毒刺]들이 주변에 가득하고,
언제나 기갈(飢渴)과 한열(寒熱)의 고뇌(苦惱)가 있다.
그 땅의 백성들은 공경 사문과 바라문, 부모와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아닌 법[非法]을 바라고 탐착(貪著)하며, 사법(邪法)을 수행하고 정법(正法)을 불신하며,
수명은 짧고 간음과 속이는 짓을 하니 왕이란 자가 다스리는데,
왕은 나라를 가졌어도 만족할 줄 모르고 남의 나라를 탐내서
흥사(興師;起兵)하고 상대를 정벌하니 죽는 자가 많으니라.
왕이란 자가 이렇듯 비법(非法)을 행하므로 사천(四天*)의 선신(善神)들이 노하여
재앙[災旱]을 내리니, 곡식이 익지 않고 백성들은 병에 걸리는 고뇌가 무량하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어 호는 석가모니(釋迦牟尼)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신데, 대비(大悲)가 순후(純厚)하시고
중생을 연민하시는지라 구시나성 사라쌍수 사이에서 대중들을 위해
이와 같은 《대열반경》을 부연(敷演)하시는데,
그곳의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이 너처럼 이 일을 이왕 여쭈었기에
그 부처님께서 답하실 터이니, 네가 빨리 가면 들을 수 있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四天; 欲界六天(四王天, 忉利天, 夜摩天, 兜率天, 樂變化天, 他化自在天)의 第一天으로
須彌山의 허리부분에 위치한다.
*善神; 正法을 護持하는 八部眾(天, 龍, 夜叉, 乾闥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睺羅迦).
「世尊!彼琉璃光菩薩聞是事已,與八萬四千菩薩摩訶薩欲來至此,
故先現瑞,以此因緣,有此光明,是名因緣,亦非因緣。」
「세존이시여! 저 유리광보살이 이 일을 듣고 팔만사천의 보살마하살들과 더불어
이곳에 오고자 우선 상서(祥瑞)를 나타냈기에 이런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으니,
이를 인연(因緣)이라 하기도 하고 비인연(非因緣)이라고도 하겠나이다.」
爾時琉璃光菩薩與八萬四千諸菩薩俱,持諸幡蓋、香花瓔珞、種種伎樂、倍勝於前,
俱來至此拘尸那城娑羅雙樹間,以己所持供養之具供養於佛,頭面禮足,合掌恭敬,
右繞三匝,修敬已畢,却坐一面。
이때 유리광보살이 팔만사천의 보살들과 함께 번개(幡蓋)와 향화(香花), 영락(瓔珞),
갖가지 기악(伎樂)을 전보다 갑절이나 되게 가지고 이 구시나성 사라쌍수 사이로 와서
지참한 공양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발에 머리숙여 예배하며,
합장공경하여 우로 세 번 돌아 공경의 예를 마친 다음 한 쪽으로 물러가 앉았다.
爾時世尊問彼菩薩:「善男子!汝為到來,為不到來?」
이때 세존께서 그 보살에게 물으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이르러 왔는가[到來], 이르러 오지 않았는가[不到來]?」
琉璃光菩薩言:「世尊!到亦不來,不到亦不來,我觀是義都無有來。
世尊!諸行若常,亦復不來,若是無常亦無有來。
若人見有眾生性者,有來、不來;我今不見眾生定性,云何當言有來、不來?
유리광보살이 답했다. 「세존이시여!
이르름[到]도 오지 않음[不來]이요, 이르지 않음[不到]도 오지 않음[不來]이니,
제가 이 이치를 살펴보건대 전혀 옴[來]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제행(諸行)이 항상[常]하다 해도 오지 않음[不來]이요,
무상(無常)하더라도 옴[來]이 없나이다.
만일 사람이 중생의 성품이 있다고 보면 옴[來]과 오지 않음[不來]이 있겠지만,
저는 지금 중생의 정(定)한 성품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옴과 오지 않음을 말씀하시나이까?
有憍慢者見有去來,無憍慢者則無去來;有取行者見有去來,無取行者則無去來;
若見如來畢竟涅槃則有去來,不見如來畢竟涅槃則無去來;
不聞佛性則有去來,聞佛性者則無去來;
若見聲聞辟支佛人有涅槃者則有去來,不見聲聞辟支佛人有涅槃者則無去來;
若見聲聞辟支佛人常樂我淨則有去來,若不見者則無去來;
若見如來無常樂我淨則有去來,若見如來常樂我淨則無去來。
世尊!且置斯事,欲有所問,唯垂哀愍,少見聽許。」
교만(憍慢)이 있는 자는 가고 옴[去來]이 있다고 보지만,
교만이 없는 자는 가고 옴[去來]이 없을 것이옵고,
취하여 행함[取行]이 있는 자는 가고 옴이 있다고 보지만,
취행(取行)이 없으면 가고 옴이 없을 것이오며,
여래가 필경 열반하신다고 본다면 가고 옴이 있겠으나,
여래가 필경 열반하신다고 보지 않는다면 가고 옴이 없을 것이오며,
불성(佛性)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가고 옴이 있겠으나,
불성(佛性)을 들었다면 가고 옴이 없을 것이오며,
성문 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다고 보면 가고 옴이 있겠으나,
성문 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 가고 옴이 없을 것이오며,
성문 벽지불에게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있다고 보면 가고 옴이 있겠으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가고 옴이 없을 것이오며,
여래에게 상락아정이 없다고 본다면 가고 옴이 있겠으나,
여래의 상락아정을 본다면 가고 옴이 없을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일은 그만 두고 여쭙고자 하는 것이 있사오니,
가엾이 여기시고 다소나마 알게 해주시옵소서.」
佛言:「善男子!隨意所問,今正是時,我當為汝分別解說。所以者何?
諸佛難值,如優曇花,法亦如是難可得聞,十二部經中方等復難,是故應當專心聽受。」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마음대로 묻거라.
내 너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어째서이겠는가?
제불(諸佛)은 우담화(優曇花)처럼 만나기 어렵고, 법 또한 그렇게 듣기 어려우며,
12부경 가운데 방등경(方等經)도 다시 어려우니,
그러므로 응당 마음을 오롯이 기울여 들을지니라.」
時琉璃光菩薩摩訶薩,既蒙聽許兼被誡勅,即白佛言:
「世尊!云何菩薩摩訶薩有能修行大涅槃經聞所不聞?」
그러자 유리광 보살마하살이 허락을 얻고 분부를 받자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대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는 것이옵니까?」
爾時如來讚言:「善哉,善哉!善男子!汝今欲盡如是大乘大涅槃海,正復值我能善解說。
汝今所有疑網、毒鏃,我為大醫,能善拔出。汝於佛性猶未明了,我有慧炬,能為照明。
汝今欲度生死大河,我能為汝作大船師。汝於我所生父母想,我亦於汝生赤子心。
汝心今者貪正法寶,值我多有能相惠施。諦聽,諦聽!善思念之!吾當為汝分別宣釋。
이에 여래께서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이 대승대열반의 바다를 완수하고자 나의 좋은 해설을 바로 만나고,
네가 지닌 의망(疑網)과 독화살촉[毒鏃]을 나를 큰 의원을 삼아 잘 뽑아낼 수 있고,
네가 불성(佛性)에 아직 밝지 못함을 내게 있는 지혜의 횃불[慧炬]로 밝게 비추고,
네가 생사(生死)의 큰 강을 건너려 하니, 내가 너를 위해 큰 뱃사공이 될 수 있으며,
네가 나를 낳아준 부모라 생각하니 나 또한 네게 친아들이라는 마음을 가질 것이며,
네 마음이 지금 정법(正法)의 보배를 탐하여 상대에게 혜시(惠施*)가 많은 나를 만났으니,
살펴 듣고 또 들어서 잘 생각할지어다.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분별하여 해석해 주리라.
*惠施; 慈悲心으로 사람에게 福利를 베풀어 주는 일. 布施.
善男子!欲聽法者,今正是時,若聞法已,當生敬信,至心聽受恭敬尊重,
於正法所莫求其過,莫念貪欲、瞋恚、愚癡,莫覩法師種姓好惡。
既聞法已莫生憍慢,莫為恭敬、名譽、利養,當為度世甘露法利。
亦莫生念:『我聽法已先自度身然後度人,先自解身然後解人,
先自安身然後安人,先自涅槃然後令人而得涅槃。』
於佛、法、僧,應生等想;於生死中生大苦想;於大涅槃應生常樂我淨之想;
先為他人,然後為身;當為大乘莫為二乘,於一切法當無所住,亦莫專執一切法相,
於諸法中莫生貪相,常生知法、見法之相。
善男子!汝能如是至心聽法,是則名為聞所不聞。
선남자야! 법을 들으려면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법을 들었거든 공경한 믿음을 내고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들어서 공경하여 존중하며,
정법에서 허물을 찾지 말고, 탐욕과 진에(瞋恚), 우치(愚癡)를 생각하지 말며,
법사(法師)의 출신성분[種姓]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말고, 법을 들었거든 교만하지 말며,
공경과 명예와 이양(利養)을 삼지 말고, 세간을 제도할 감로 같은 법이익[法利]을 삼으며,
또한 『내가 법을 들었거든 우선 내 몸을 제도한 뒤에 사람들을 제도할 것이며,
먼저 내 몸을 해탈한 뒤에 남을 해탈시키고, 내 몸 먼저 편안케 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며,
우선 자신이 열반한 연후에 사람들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하리라.』 하는 생각도 말라.
불(佛) 법(法) 승(僧)이 동등하다고 생각해야 하고, 생사(生死)를 큰 고통이라 생각하고,
대열반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먼저 남을 위하고 그 뒤에 자신을 위하며, 대승을 위하고 2승을 위하지 말며,
일체법에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하고, 오로지 일체법의 모양을 집착하지도 말며,
모든 법 가운데 탐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항상 법을 알고 법을 보려는 생각을 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네가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면
이것이 곧 '듣지 못한 것을 듣는것'이 되느니라.
「善男子!有不聞聞、有不聞不聞、有聞不聞、有聞聞。
善男子!如不生生、不生不生、生不生、生生,如不到到、不到不到、到不到、到到。」
「선남자야! 듣지 않았으되 들음[不聞聞]이 있고,
듣지 않으니 듣지 못함[不聞不聞]이 있고,
들었으되 듣지 않음[聞不聞]이 있고, 듣고 들음[聞聞]이 있으니,
선남자야! 마치 나지 않았으되 난 것[不生生], 나지 않으니 나지 않는 것[不生不生],
났으되 나지 않은 것[生不生], 나고 나는 것[生生]과 같으며,
또 이르지 않았으되 이르름[不到到], 이르지 않으니 이르지 않음[不到不到],
이르렀으되 이르지 않음[到不到], 이르고 이르름[到到]과 같으니라.」
「世尊!云何不生生?」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생기지 않았으되 생기는 것[不生生]'이옵니까?」
「善男子!安住世諦,初出胎時,是名不生生。
云何不生不生?善男子!是大涅槃無有生相,是名不生不生。
云何生不生?善男子!世諦死時是名生不生。
云何生生?善男子!一切凡夫是名生生。
何以故?生生不斷故。一切有漏念念生故,是名生生。
四住菩薩名生不生。何以故?生自在故,是名生不生。
善男子!是名內法。
「선남자야! 세제(世諦)를 쫓아 처음 출태(出胎)하신 것이니, 이것이 불생생(不生生)이요,
불생불생(不生不生)은 어떤 것인가?
선남자야! 이 《대열반》은 나는 모양[生相]이 없으니, 이것이 불생불생(不生不生)이며,
생불생(生不生)은 어떤 것인가?
선남자야! 세제(世諦)를 쫓아 죽었을 때, 이것이 생불생(生不生)이니라.
생생(生生)은 어떤 것인가? 선남자야! 일체범부가 바로 생생(生生)이니,
왜냐하면 나고 남[生生]이 끊임 없기 때문이요,
일체의 유루(有漏)가 순간순간 생기기 때문에 이를 생생(生生)이라 하느니라.
사주(四住)보살을 생불생(生不生)이라 하거니와,
왜냐하면 생(生)을 자유로이 하기 때문에 생불생(生不生)이라 하나니,
선남자야! 이것을 내법(內法)이라 하느니라.
云何外法?未生生、未生未生、生未生、生生。
善男子!譬如種子,未生牙時,得四大和合、人功作業、然後乃生,是名未生生。
云何未生未生?譬如敗種及未遇緣,如是等輩,名未生未生。
云何生未生?如牙生已而不增長,是名生未生。
云何生生?如牙增長,若生不生則無增長。如是一切有漏,是名外法生生。」
어떤 것이 외법(外法)인가?
나지 못한 것이 남[未生生], 나지 못한 것이 나지 못함[未生未生],
난 것이 나지 못함[生未生], 나고 남[生生]이니라.
선남자야! 마치 종자에서 싹이 나지 않을 때
4대가 화합하고 사람이 공들여 가꾼 뒤에는 나게 되거니와,
이것을 일러 나지 못한 것이 난다[未生生]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나지 못한 것이 나지 못하는 것[未生未生]인가?
마치 썩은 종자가 연(緣)을 만나지 못한 듯한 이러한 것들이 미생미생(未生未生)이니라.
어떤 것이 난 것이 나지 못함[生未生]인가?
마치 싹이 났으나 자라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생미생(生未生)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나고 남[生生]인가?
싹은 자라남과 같아서 만일 났으나 나지 못하면 자람이 없으니,
이렇듯 일체가 유루(有漏)인 이것을 외법(外法)이요, 나고 남[生生]이라 하느니라.」
琉璃光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有漏之法若有生者,為是常耶?是無常乎?
生若是常,有漏之法則無有生;生若無常,則有漏是常。
世尊!若生能自生,生無自性;若能生他,以何因緣不生無漏?
世尊!若未生時有生者,云何於今乃名為生?若未生時無生者,何故不說虛空為生?」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有漏)의 법이 생기면 이것이 항상하나이까, 무상하나이까?
생(生)이 항상하다면 유루의 법인 즉 생(生)이 없는 것이옵고,
생이 만일 무상하다면 유루의 법이 항상할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생이 스스로 생긴다면 생은 자성(自性)이 없을 것이며,
만일 다른 것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무루(無漏)는 생하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생기지 않았다가 생겼을 때는 어째서 지금 마침내 생겼다 하고,
생기지 않은 것이 생기지 않을 때에는 어째서 허공이 생겼다고 말하지는 않나이까?」
佛言:「善哉,善哉!善男子!不生生不可說、生生亦不可說、生不生亦不可說、
不生不生亦不可說、生亦不可說、不生亦不可說,有因緣故,亦可得說。
云何不生生不可說?不生名為生,云何可說!何以故?以其生故。
云何生生不可說?生生故生,生生故不生,亦不可說。
云何生不生不可說?生即名為生,生不自生,故不可說。
云何不生不生不可說?不生者名為涅槃,涅槃不生故不可說!何以故?以修道得故。
云何生亦不可說?以生無故。云何不生不可說?以有得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불생생(不生生)이 말할 수 없고[不可說], 생생(生生) 또한 불가설(不可說)하며,
생불생(生不生)도 불가설하고, 불생불생(不生不生)도 불가설하며,
생(生)도 불가설하고, 불생(不生)도 불가설하지만, 어떤 인연이 있기에 말할 수 있게 된다.
어째서 불생생(不生生)이 불가설한가?
불생(不生)을 생(生)이라 하는 것이 어찌 가능한 말인가? 왜냐하면 그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째서 생생(生生)이 불가설한가?
생(生)이 생(生) 때문에 생(生)하고, 생이 생 때문에 불생(不生)하니, 또한 불가설하다.
어째서 생불생(生不生)이 불가설한가?
생(生)은 곧 생(生)이라 하나, 생(生)이 스스로 생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설하다.
어째서 불생불생(不生不生)이 불가설한가?
불생(不生)하는 것을 열반이라 하나, 열반은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불가설하다,
왜냐하면 도(道)를 닦아 얻기 때문이다.
어째서 생(生)이 또 불가설한가? 생(生)이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불생(不生)이 불가설한가? 얻음이 있기 때문이다.
云何有因緣故亦可得說?十因緣法為生作因,以是義故,亦可得說。
善男子!汝今莫入甚深空定。何以故?大眾鈍故。
善男子!有為之法生亦是常,以住無常,生亦無常;住亦是常,以生生故,住亦無常;
異亦是常,以法無常,異亦無常;壞亦是常,以本無今有故,壞亦無常。
善男子!以性故生、住、異、壞皆悉是常,念念滅故不可說常,
是大涅槃能斷滅故,故名無常。
善男子!有漏之法未生之時,已有生性,故生能生。無漏之法本無生性,是故生不能生。
如火有本性,遇緣則發。眼有見性,因色、因明、因心故見。
眾生生法,亦復如是,由本有性,遇業因緣,父母和合,則便有生。」
어째서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십인연법[十因緣法*]이 생(生)의 인(因)을 짓기에 이런 뜻에서 말할 수 있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네가 지금 심오한 공정(空定*)으로 들어가서는 안되나니,
왜냐하면, 대중은 둔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유위(有為)의 법은 생(生)이 항상하나 머뭄[住]이 무상하니 생도 무상하며,
머뭄[住] 또한 항상해도 나고 나기 때문에 주(住)도 무상하며,
달라짐[異]도 항상하나 법(法)이 무상하니 이(異)도 무상하며,
무너짐[壞;滅]도 항상하나 본래 없던 것이 지금에 있는 까닭에 괴(壞)도 무상하니라.
선남자야! 성품[性] 때문에 생(生), 주(住), 이(異), 괴(壞)가 모두 항상하나,
순간순간 멸하기 때문에 항상하다 할 수 없거니와,
이 대열반이 끊어 없앨 수 있는 것이므로 무상하다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유루의 법은 생기기 전에 이미 나는 성품[生性]이 있었기에 생이 날 수 있으나,
무루(無漏)의 법은 본래 나는 성품이 없기 때문에 생이 생길 수 없느니라.
마치 불은 본래의 성품이 있기에 연(緣)을 만나면 일어나고,
눈은 보는 성품이 있으니 색(色)을 인하고 밝음[明]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므로써 보듯이,
중생의 나는 법[生法]도 그와 같아서 본래 있는 성품으로 말미암아
업의 인연과 부모의 화합을 만나 문득 생김[生]이 있는 것이니라.」
*十因緣法; 十二因緣에서 生과 老死를 제외한 열 가지.
즉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제외한 미래의 인연만을 말한다.
*空定; 空相을 觀하는 禪定. 內外를 通하는데
內道의 空定은 三三昧(空,無相,無願三昧)가 그것이요,
外道의 空定은 四無色定(空入處, 識入處, 無所有入處, 非想非非想入處定)이 그것이다.
*生住異滅(壞); 有為法의 네 가지 모습[四相].
爾時琉璃光菩薩摩訶薩及八萬四千菩薩摩訶薩,聞是法已,
踊在虛空,高七多羅樹,恭敬合掌,而白佛言:
「世尊!我蒙如來慇懃教誨,因大涅槃始得悟解,聞所不聞。
亦令八萬四千菩薩深解諸法,不生生等。世尊!我今已解,斷諸疑網。
然此會中有一菩薩,名曰無畏,復欲諮稟,唯垂聽許。」
이때 유리광보살마하살과 8만4천의 보살마하살들이 이 법문을 듣고서
공중으로 7다라수(多羅樹*)의 높이로 솟아올라 공경히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여래의 대열반에 기인한 은근한 가르침을 입고서
비로소 깨달아 듣지 못하던 것을 들었사옵고, 또 8만4천 보살들로 하여금
제법(諸法)과 불생생(不生生) 등을 깊이 이해하게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이제 이해하고 모든 의망을 끊었사오나,
이 회중에 무외(無畏)라는 보살이 다시 여쭙고자 하오니 허락해주시옵소서.」
*多羅樹; 높이가 7인(仞; 1仞=7尺)에 달하는 부채야자수.
爾時世尊告無畏菩薩:「善男子!隨意問難,吾當為汝分別解說。」
이때 세존께서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마음대로 묻거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해 해설하리라.」
爾時無畏菩薩與六萬(一本云與八萬)四千諸菩薩等,俱從座起,
更整衣服,長跪合掌而白佛言:「世尊!此土眾生當造何業,而得生彼不動世界?
其土菩薩云何而得智慧成就、人中象王、有大威德,具修諸行,利智捷疾,聞則能解?」
이에 무외보살이 6만(어느 판본에는 8만)4천의 보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다시 추스리고 장궤(長跪)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땅의 중생들은 어떤 업을 지어야 저 부동(不動)세계에 나나이까?
그 땅의 보살들은 어떻게 지혜를 성취하고, 인간 중의 코끼리가 되며, 큰 위덕을 지니고,
제행(諸行)을 갖춰 닦으며, 지혜가 예리하고 민첩하며, 들으면 곧 해득하나이까?」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러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不害眾生命, 堅持諸禁戒,
受佛微妙教, 則生不動國。
「중생의 목숨 해치지 않고,
모든 금계를 굳게 지키며
부처님의 미묘한 가르침 받으면
곧 부동국(不動國)에 태어나리라.
不奪他人財, 常施惠一切,
造招提僧坊, 則生不動國。
타인의 재물 빼앗지 않고,
모두에게 늘 은혜를 베풀며
사방(四方;招提)에 승방을 지으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不犯他婦女, 自妻不非時,
施持戒臥具, 則生不動國。
남의 부녀를 범하지 않고
제 처도 때 아니면 범하지 말며
지계인(持戒人)에게 와구(臥具)를 보시하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不為自他故, 求利及恐怖,
慎口不妄語, 則生不動國。
자신과 남을 위하고자
이익도 두려움도 구하려 말고
입을 삼가하여 망어(妄語)하지 않는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莫壞善知識, 遠離惡眷屬,
口常和合語, 則生不動國。
선지식을 헐뜯지 말고
악한 권속들을 멀리하며
늘 화합하는 말을 쓰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如諸菩薩等, 常離於惡口,
所說人樂聞, 則生不動國。
보살마하살들처럼
늘 나쁜 말을 여의고
말하는 것이 사람들 듣기에 좋으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乃至於戲笑, 不說非時語,
謹慎常時說, 則生不動國。
실없는 웃음까지도
때가 아닌 말은 말하지 말고
말해야 할 때만 신중히 말하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見他得利養, 常生歡喜心,
不起嫉妬結, 則生不動國。
남이 이양(利養)을 얻는 것을 보거든
늘 기뻐하는 마음을 갖고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不惱於眾生, 常生於慈心,
不生方便惡, 則生不動國。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고
항상 인자한 마음을 내며
방편악(方便惡*)도 내지 아니하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方便惡; 목적달성만을 위해 쓰는 나쁜 방법.
邪見言無施, 父母及去來,
不起如是見, 則生不動國。
사견(邪見)은 보시도 없고
부모와 과거 미래도 없다 하거니와
이러한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하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曠路作好井, 種殖果樹林,
常施乞者食, 則生不動國。
광야의 길에 좋은 우물을 만들고
과실수를 심으며
구걸하는 이에게 늘 음식을 베풀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於佛法僧, 供養一香燈,
乃至獻一花, 則生不動國。
만일 불(佛) 법(法) 승(僧)에
하나의 향 또는 등(燈)이나
하나의 꽃까지라도 올리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為恐怖故, 利養及福德,
書是經一偈, 則生不動國。
만일 두려움 때문이거나
이양이나 복덕을 얻기 위해서
이 경의 한 게송만이라도 쓴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為悕利福, 能於一日中,
讀誦是經典, 則生不動國。
만일 이양과 복덕을 바라면서
단 하루 동안만이라도
이 경전을 독송한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為無上道, 一日一夜中,
受持八戒齋, 則生不動國。
만일 무상도(無上道)를 얻기 위해
하루 낮 하룻밤 동안이라도
팔계재(八戒齋*)를 받아 지니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八戒齋; 八齋戒, 八關齋, 八支齋, 八戒。
俱舍論에 의하면 ①殺生 ②不與取 ③非梵行(男女간의 媾合<性交>,不邪婬과 다름)
④虛誑語 ⑤飲諸酒 ⑥塗飾鬘舞歌觀聽(몸에 향 바르거나 치장하고 歌舞를 보고 듣는 일)
⑦眠坐高廣嚴麗床上(높고 화려한 침상에 눕는 일) ⑧食非時食(午後에 먹는 일)이라 하였다.
不與犯重禁, 同共一處住,
呵謗方等者, 則生不動國。
중금(重禁)을 범한 자와 더불어
한 곳에 함께 머물지 않고
방등경 비방하는 자를 꾸짖는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能施病者, 乃至於一果,
歡喜而瞻視, 則生不動國。
만일 병든 사람에게
과일 하나라도 베풀고
기쁘게 보살필 수 있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不犯僧鬘物, 善守於佛物,
塗掃佛僧地, 則生不動國。
승만물(僧鬘物*)을 침범하지 않고
불물(佛物*)을 잘 간수하며
불승지(佛僧地*)를 쓸고 닦으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僧鬘; 梵音, 譯하면 對面施이니, 스님들께 보시된 물건이 僧鬘物이다.
*佛物; 부처님께 공양되어진 물건.
*佛僧地; 부처님과 스님들의 터전, 즉 사찰을 뜻한다.
造像及佛塔, 猶如大拇指,
常生歡喜心, 則生不動國。
엄지손가락 크기 같이만이라도
불상과 불탑을 조성해두고
항상 환희심을 낸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為是經典, 自身及財寶,
施於說法者, 則生不動國。
만일 이 경전을 위해
자기 몸과 재보(財寶)를
설법자(說法者)에게 보시한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若能聽書寫, 受持及讀誦,
諸佛祕密藏, 則生不動國。」
제불(諸佛)의 비밀한 법장을
만일 듣고 쓰고 베끼며,
받아 지녀 읽고 외운다면
곧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爾時無畏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我今已知所造業緣得生彼國。
是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普為憐愍一切眾生,先所諮問,
如來若說,則能利益、安樂,人、天、阿修羅、乾闥婆、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等。」
이때 무외(無畏)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왕 짓는 업연(業緣)으로 그 나라에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가니와,
이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이 널리 일체중생을 연민(憐愍)하여 먼저 여쭈었으니,
여래께서 설해주신다면 인(人), 천(天), 아수라, 건달바,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등이
이익(利益) 안락(安樂)할 수 있겠나이다.」
爾時世尊即告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
「善哉,善哉!善男子!汝今於此當至心聽,吾當為汝分別解說。
有因緣故,未到不到。有因緣故,不到到。有因緣故,到不到。有因緣故,到到。
이에 세존께서 곧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에게 고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너는 이제 여기서 지극한 마음으로 듣거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분별(分別) 해설(解說)하리라.
인연이 있으므로 아직 이르지 못함에 이르지 못하고[未到不到],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함에 이르고[不到到],
인연이 있으므로 이름에 이르지 않고[到不到],
인연이 있으므로 이름에 이르는데[到到],
何因緣故未到不到?善男子!夫不到者是大涅槃,凡夫未到,
以有貪欲、瞋恚、愚癡故,身業、口業不清淨故,及受一切不淨物故,
犯四重故,謗方等故,一闡提故,五逆罪故,以是義故,未到不到。
무슨 인연으로 아직 이르지 못함에 이르지 못하는가?
선남자야! 대저 이르지 못한 것이란 대열반이거니와, 범부는 이르지 못하나니,
탐욕(貪欲)과 진에(瞋恚), 우치(愚癡)가 있기 때문이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 청정치 못하기 때문이며,
일체의 부정한 물건을 받기 때문이며, 犯사중(四重)을 범하기 때문이요,
방등경을 비방하기 때문이요, 일천제(一闡提)이기 때문이요, 오역죄(五逆罪) 때문이니,
이런 뜻에서 이르지 못함에 이르지 못하는 것[未到不到]이니라.
善男子!何因緣故不到到?不到者名大涅槃。何義故到?
永斷貪欲瞋恚愚癡身口惡故,不受一切不淨物故,不犯四重故,不謗方等經故,
不作一闡提故,不作五逆罪故,以是義故,名不到到。
須陀洹者八萬劫到,斯陀含者六萬劫到,阿那含者四萬劫到,阿羅漢者二萬劫到,
辟支佛者十千劫到,以是義故,名不到到。
선남자야!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함에 이르는가[不到到]?
이르지 못하는 것은 대열반인데, 어떤 의미로 이른다는 것인가?
탐욕, 진에, 우치와 신(身) 구(口)의 악(惡)을 영원히 끊기 때문이요,
일체의 부정한 물건을 받지 않기 때문이요, 사중을 범하지 않기 때문이요,
방등경을 비방하지 않기 때문이요, 일천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요,
오역죄를 짓지 않기 때문이니, 이런 뜻에서 이르지 못함에 이른다고 하거니와,
수다원은 8만 겁에 이르고, 사다함은 6만 겁, 아나함은 4만 겁, 아라한은 2만 겁,
벽지불은 1만 겁에 이르니, 이런 뜻에서 이르지 못함에 이른다고 하느니라.
善男子!何因緣故名到不到?到者名為二十五有,
一切眾生常為無量煩惱諸結之所覆蔽,往來不離,猶如輪轉,是名為到。
聲聞、緣覺及諸菩薩已得永離,故名不到。為欲化度諸眾生故,示現在中,亦名為到。
선남자야! 무슨 인연으로 이름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는가[到不到]?
이르는 것은 25유(有)이니, 일체중생은 늘 무량한 번뇌의 결집(結集)에 가려진 채
가고 오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수레바퀴 돌아가듯 하니, 이것을 이른다[到]고 하거니와,
성문, 연각과 보살은 영리(永離)를 얻음으로써 이르지 않지만[不到],
중생들을 화도(化度)하고자 하여 현재 가운데 몸을 나타내는 것도 이른다고 하느니라.
善男子!何因緣故名為到到?到者即是二十五有,
一切凡夫、須陀洹乃至阿那含,煩惱因緣故,名到到。
선남자야! 무슨 인연으로 이름에 이른다[到到]고 하는가?
이르는 것은 25유(有)이니, 일체의 범부나 수다원에서 아나함까지는
번뇌의 인연으로 이름에 이른다[到到]고 하느니라.
善男子!聞所不聞亦復如是,有不聞聞、有不聞不聞、有聞不聞、有聞聞。
云何不聞聞?善男子!不聞者名大涅槃。何故不聞?非有為故、非音聲故、不可說故。
云何亦聞?得聞名故,所謂常樂我淨,以是義故,名不聞聞。」
선남자야! '듣지 못한 것을 듣는 일[聞所不聞]'도 그와 같아서
듣지 못함을 들음[不聞聞]이 있고, 듣지 못함을 듣지 못함[不聞不聞]이 있고,
들음을 듣지 못함[聞不聞]이 있고, 들음을 들음[聞聞]이 있나니,
불문문(不聞聞)이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야! 듣지 못하는 것은 대열반인데, 어째서 듣지 못하는가?
유위(有為)가 아니기 때문이요, 음성이 아니기 때문이며,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어째서 또 듣는가? 소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소문[名]을 듣기 때문이니,
이런 뜻에서 듣지 못함을 들음[不聞聞]이라 하느니라.」
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白佛言:
「世尊!如佛所說大涅槃者不可得聞,云何復言常樂我淨而可得聞?
何以故?世尊!斷煩惱者名得涅槃,若未斷者名為不得,以是義故涅槃之性本無今有。
若世間法本無今有則名無常,譬如瓶等,本無今有,已有還無,故名無常。
涅槃亦爾,云何說言常樂我淨?
이때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대열반이란 들을 수 없는데,
어째서 또 상락아정(常樂我淨)은 들을 수 있다고 하시옵니까?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번뇌를 끊으면 열반을 얻었다 하고, 끊지 못하면 얻지 못했다 하니,
이런 뜻에서 열반의 성품은 본래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만약 세간법이 본래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무상하다 하거니와,
마치 세간의 병(甁) 같은 것이 본래 없다가 지금에 있고,
이왕에 있다가 도로 없어지기에 무상하다고 하듯이,
열반도 그러하다면 어찌 상락아정이라 말하겠나이까?
復次世尊!凡因莊嚴而得成者,悉名無常。涅槃若爾,應是無常。
何等因緣?所謂三十七品、六波羅蜜、四無量心、觀於骨相阿那波那、
六念處、破析六大、如是等法,皆是成就涅槃因緣,故名無常。
또 세존이시여! 무릇 장엄(莊嚴)하여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무상하다 하거니와,
열반이 만약 그러하다면 응당 무상할 것이옵니다.
어떤 인연들이겠나이까? 소위 37품(品), 육바라밀, 사무량심(四無量心),
골상의 관찰(觀於骨相*), 아나파나(阿那波那*), 육념처(六念處*), 육대(六大*)의 분석 등이니,
이러한 법들이 다 열반을 성취하는 인연들이므로 무상하다 할 것이옵니다.
*觀於骨相; 白骨觀(asthi-sajjñā). 九想觀(略稱 九想)中 骨想。
屍身이 흩어져 白骨만 깔린 不淨한 모양을 통해 無常을 觀하고
탐욕과 집착을 끊는 수행법으로 부처님의 弟子 우파니사타(優波尼沙陀)가
이 觀으로 成道하였다. 楞嚴經卷五에 우파니사타가 말하기를,
「저도 부처님께서 최초로 성도하심을 뵈옵고,
부정(不淨)한 상(相)을 관찰하여 큰 염리(厭離)를 일으키고,
모든 색(色)의 성품이 부정한 백골과 미진에서 허공으로 돌아가니
공과 색이 둘이 없음을 깨달아 무학의 도를 이루었기에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사 니사타(尼沙陀)라 하셨나이다.
(觀不淨相生大厭離。悟諸色性以從不淨。白骨微塵歸於虛空。空色二無。成無學道。
如來印我名尼沙陀。)」고 하였다.
*阿那波那(Ānāpāna); 舊稱 安般, 安那般那, 阿那般那。新稱 阿那波那, 阿那阿波那。
譯曰 數息觀。出息과 入息을 세며 마음을 추스리는 觀法。
*六念處; 念佛, 念法, 念僧, 念戒, 念施, 念天。
*六大; 地, 水, 火, 風, 空, 識.
復次世尊!有名無常。若涅槃是有,亦應無常。
如佛昔於阿含中說,聲聞、緣覺、諸佛世尊皆有涅槃,以是義故名為無常。
또 세존이시여! 있는 것[有]을 무상하다고 하니,
만일 열반이 있는 것이라면 응당 무상할 것이옵고,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阿含)》에서 성문, 연각과 제불세존이
다 열반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런 뜻에서 무상하다 할 것이옵니다.
復次世尊!可見之法名為無常,如佛先說,見涅槃者則得斷除一切煩惱。
復次世尊!譬如虛空,於諸眾生等無障礙,故名為常。
若使涅槃是常等者,何故眾生有得不得?涅槃若爾,於諸眾生不平等者,則不名常。
世尊!譬如百人共有一怨,若害此怨,則多人受樂。
若使涅槃是平等法,一人得時應多人得,一人斷結應多人亦斷,若不如是,云何名常?
譬如有人恭敬、供養、尊重、讚歎國王、王子、父母、師長,則得利養,是不名常。
涅槃亦爾,不名為常。何以故?如佛昔於阿含經中告阿難言:
『若有人能恭敬涅槃,則得斷結,受無量樂。』 以是義故,不名為常。
世尊!若涅槃中有常樂我淨名者,不名為常。如其無者,云何可說?」
또 세존이시여! 볼 수 있는 법을 무상하다고 하니,
부처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열반을 보면 일체의 번뇌가 끊기는 것과 같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마치 허공이 모든 중생에게 평등히 장애가 없으므로 항상하다 하듯이,
가사 열반이 평등히 항상한 것이라면 어째서 중생이 얻거나 얻지 못함이 있나이까?
열반이 만일 그러하다면 모든 중생에게 불평등한 것이라 항상하다 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백 사람이 하나의 원수를 공유(共有)하여
그 원수를 해친 즉 많은 사람이 낙을 받듯이, 가사 열반이 평등한 법이라면
한 사람이 얻을 때 많은 사람이 얻어야 할 것이요,
한 사람이 번뇌를 끊을 때 많은 사람 또한 끊어야 할 터이온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어찌 항상하다 하겠나이까?
마치 어떤 사람이 국왕과 왕자, 부모, 스승과 어른을 공경, 공양, 존중, 찬탄하면
이것을 항상하다고 하지 않듯이, 열반도 그러하다면 항상하다 하지 못할 것이오니,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경(阿含經)》 중에서 아난에게 고하시기를,
『만일 열반을 능히 공경한다면 곧 번뇌가 끊겨서 무량한 낙을 받으리라.』고 하셨으니,
이런 뜻에서 항상하다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열반 가운데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이름이 있다면
항상하다 하지 못할 것이옵고,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이까?」
爾時世尊告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言:
「涅槃之體非本無今有,若涅槃體本無今有者,則非無漏、常住之法。
有佛無佛,性相常住,以諸眾生煩惱覆故,不見涅槃,便謂為無。
菩薩摩訶薩以戒、定、慧,勤修其心,斷煩惱已,便得見之。
當知涅槃是常住法,非本無今有,是故為常。
그때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에게 고하셨다.
「열반의 체성(體性)은 본래 없고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만일 열반의 체성이 본래 없고 지금에 있는 것이라면
무루(無漏)의 법도 상주(常住)하는 법도 아닌 것이며,
부처가 있거나 부처가 없거나 성상(性相)은 하건만
중생들은 번뇌에 가려 열반을 보지 못하니 없다고 말하지만,
보살마하살은 계(戒), 정(定), 혜(慧)로 마음을 힘써 닦아 번뇌가 이미 끊겼기에 보는 것이니,
열반은 상주법(常住法)이요, 본래 없고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래서 항상한 것이니라.
善男子!如闇室中井,種種七寶,人亦知有,闇故不見。
有智之人,善知方便,然大明燈,持往照了,悉得見之。
是人於此終不生念,水及七寶本無今有。
涅槃亦爾,本自有之,非適今也,煩惱闇故,眾生不見。
大智如來以善方便燃智慧燈,令諸菩薩得見涅槃常樂我淨,
是故智者於此涅槃,不應說言本無今有。
선남자야! 깜깜한 우물 속의 갖가지 칠보를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아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방편을 잘 알기에
크고 밝은 등불을 켜 들고 가서 비추어 다 보거니와,
이 사람은 그때 결코 물과 칠보가 본래 없고 지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열반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요,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건만
번뇌의 어둠 때문에 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이라,
대지(大智)의 여래께서 좋은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서
보살들로 하여금 열반의 상락아정을 보게 하시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라면 이 열반을 본래 없고 지금 있다고 말해서는 안되느니라.
「善男子!汝言因莊嚴故得成涅槃應無常者,是亦不然。
何以故?善男子!涅槃之體,非生非出、非實非虛、非作業生、非是有漏有為之法、
非聞非見、非墮非死、非別異相、亦非同相、非往非還、非去來今、非一非多、
非長非短、非圓非方、非尖非斜、非有相非無相、非名非色、非因非果、非我我所,
以是義故,涅槃是常,恒不變易,是以無量阿僧祇劫修集善法,以自莊嚴,然後乃見。
「선남자야! 네가 장엄에 기인하여 이루는 것이므로
열반은 무상한 것이다고 하였으나,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열반의 체성은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진실한 것도 허망한 것도 아니며, 업을 지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유루(有漏)도 유위(有為)의 법도 아니며,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아니고,
떨어지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며, 다른 모양도 아니고 같은 모양도 아니며,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과거도 현재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며,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고, 둥근 것도 모난 것도 아니며,
뾰족한 것도 비스듬한 것도 아니고, 모양 있는 것도 모양 없는 것도 아니며,
명(名)도 색(色)도 아니고, 인(因)도 과(果)도 아니며, 나[我]도 아소[我所]도 아니니,
이런 뜻에서 열반은 항상하고 언제나 변역(變易)하지 않는 것이지만,
무량 아승지 겁 동안 선법을 닦아 모아서 스스로 장엄한 뒤에야 마침내 보는 것이니라.
善男子!譬如地下有八味水,一切眾生而不能得,有智之人施功穿掘,則便得之;涅槃亦爾。
譬如盲人不見日月,良醫療之則便得見,而是日月非是本無今有;
涅槃亦爾,先自有之非適今也。
善男子!如人有罪,繫之囹圄,久乃得出,還家得見父母兄弟、妻子眷屬;涅槃亦爾。
선남자야! 마치 지하에 팔미(八味)의 물이 있어도 일체중생은 얻을 수 없지만,
지혜 있는 사람이 공들여 파면 곧 얻게 되듯이, 열반도 그와 같고,
마치 맹인이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다가 훌륭한 의원이 치료하면 곧 보게 되거든,
그 해와 달이 본래 없고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었듯이,
열반도 그와 같아서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요 지금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선남자야! 사람이 죄가 있어 오래 갇혔다가 마침내 풀려나 집에 돌아가면
부모 형제와 처자 권속을 만나게 되듯이, 열반도 그와 같은 것이니라.
「善男子!汝言因緣故,涅槃之法應無常者,是亦不然。何以故?善男子,因有五種。
何等為五?一者生因,二者和合因,三者住因,四者增長因,五者遠因。
「선남자야! 너는 인연이므로 열반이라는 법은 무상한 것이다고 하였으나
그 또한 그렇지 않나니, 왜냐하면 선남자야, 인(因)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생인(生因)이요, 둘째는 화합인(和合因),
셋째는 주 인(住因), 넷째는 증장인(增長因), 다섯째는 원인(遠因)이니라.
云何生因?生因者即是業煩惱等,及外諸草木子,是名生因。
云何和合因?如善與善心和合,不善與不善心和合,無記與無記心和合,是名和合因。
云何住因?如下有柱,屋則不墮;山河樹木,因大地故而得住立;
內有四大、無量煩惱,眾生得住;是名住因。
云何增長因?因緣衣服飲食等故,令眾生增長;
如外種子,火所不燒,鳥所不食,則得增長;
如諸沙門、婆羅門等,依因和上、善知識等而得增長;
如因父母,子得增長;是名增長因。
云何遠因?譬如因呪,鬼不能害,毒不能中;依憑國王,無有盜賊;
如芽依因地、水、火、風等;如水攢及人,為蘇遠因;如明色等,為識遠因;
父母精血,為眾生遠因;如時節等悉名遠因。
어떤 것이 생인(生因)인가? 생인이란 곧 업, 번뇌 등과 밖으로는 초목의 씨앗이니,
이것을 생인이라 한다. 어떤 것이 화합인(和合因)인가?
선(善)과 선한 마음[善心]이 화합하고, 불선(不善)과 불선심(不善心)이 화합하고,
무기(無記*)와 무기심(無記心)이 화합하는 이것을 화합인이라 한다.
어떤 것이 주인(住因)인가? 마치 밑에 기둥이 있으면 집이 떨어지지 않고,
산하(山河)와 수목(樹木)이 대지로 인해 머물러 있고,
안에 사대(四大)와 무량한 번뇌가 있으니 중생이 머물게 되는 이것이 주인(住因)이다.
어떤 것이 증장인(增長因)인가? 의복과 음식 등의 인연으로 중생이 증장(增長)하고,
씨앗이 불에 타지 않고 새에 먹히지 않으면 증장하게 되고,
사문과 바라문 등이 화상(和上;和尙)이나 선지식 등을 의지함으로 인해 증장하고,
부모로 인해 자식이 증장하게 되는 이것이 증장인이다.
어떤 것이 원인(遠因)인가? 마치 주술로 인해 귀신이 해치지 못하거나
독이 중독시킬 수 없는 것과 같고, 국왕에 의빙(依憑)하여 도적이 없는 것과 같고,
싹이 지수화풍(地水火風) 등을 의지해 인함과 같고,
물받기[水攢]와 사람이 소(蘇)의 먼 인[遠因]이 됨과 같고,
밝음[明]과 색(色) 등이 인식[識]의 원인(遠因)이 됨과 같고,
부모의 정(精)과 피[血]가 중생의 원인(遠因)이 됨과 같고,
시절(時節) 등과 같은 것들이 다 원인(遠因)이니라.
善男子!涅槃之體非是如是五因所成,云何當言是無常因?
선남자야! 열반의 체성은 이런 다섯 가지 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무상한 인이라 하겠느냐?
*無記; 善도 不善도 아닌 性品.
「復次善男子!復有二因:一者作因,二者了因。
如陶師輪繩,是名作因。如燈燭等照闇中物,是名了因。
善男子!大涅槃者,不從作因而有,唯有了因。
了因者,所謂三十七助道法、六波羅蜜,是名了因。
善男子!布施者是涅槃因,非大涅槃因,檀波羅蜜乃得名為大涅槃因。
三十七品是涅槃因,非大涅槃因,無量阿僧祇助菩提法,乃得名為大涅槃因。」
「선남자야! 또 두 가지 인(因)이 있어 첫째는 작인(作因*)이요, 둘째는 요인(了因*)인데,
도공(陶工)의 물레와 노끈 같은 것을 작인이라 하고,
등촉(燈燭) 등이 어둠 속의 사물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을 요인이라 한다.
선남자야! 대열반이란 작인(作因)을 쫓아 있지 않고, 오로지 요인(了因)만 있거니와,
요인이란 소위 37조도법(助道法), 육바라밀이 요인이니라.
선남자야! 보시(布施)는 열반인(涅槃因)이지 대열반인(大涅槃因)이 아니고,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야 대열반인이라 할 것이며,
37품은 열반인이지 대열반이 아니고, 무량 아승지의 조보리법(助菩提法;菩提分)이라야
마침내 대열반인이라 할 것이니라.」
*作因; 生因. 씨앗에서 싹이 나듯이 用을 일으키는 것을 生因이라 하고,
등(燈)이 사물을 비추듯이 果를 드러내는 것을 了因이라 한다.
◎爾時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摩訶薩白佛言:
「世尊!云何布施不得名為檀波羅蜜?云何布施而得名之檀波羅蜜?
乃至般若云何不得名為般若波羅蜜?云何得名為般若波羅蜜?
云何名涅槃?云何名大涅槃?」
◎이때 광명변조고귀덕왕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시는 단바라밀이 되지 못하고, 어떤 보시가 단바라밀이 되는 것이며,
나아가 반야(般若)까지는 어떤 것은 반야바라밀이 되지 못하고,
어떤 것이 반야바라밀이 되나이까?
어떤 것은 열반이라 하고, 어떤 것은 대열반이라 하나이까?」
佛言:「善男子!菩薩摩訶薩修行方等大般涅槃,不聞布施,不見布施,
不聞檀波羅蜜,不見檀波羅蜜,乃至不聞般若,不見般若,不聞般若波羅蜜,
不見般若波羅蜜,不聞涅槃,不見涅槃,不聞大涅槃,不見大涅槃。
菩薩摩訶薩修大涅槃,知見法界,解了實相空無所有,無有和合覺知之相,
得無漏相、無所作相、如幻化相、熱時炎相、乾闥婆城、虛空之相。
菩薩爾時得如是相,無貪恚癡,不聞不見,是名菩薩摩訶薩真實之相、安住實相。
菩薩摩訶薩自知此是檀,此是檀波羅蜜,乃至此是般若,此是般若波羅蜜,
此是涅槃,此是大涅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방등 대반열반을 수행하면
보시를 듣지 않고 보시를 보지 아니하며, 단바라밀을 듣지 않고 단바라밀을 보지 아니하며,
나아가 반야를 듣지 않고 반야를 보지 아니하며,
반야바라밀을 듣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보지 아니하며,
열반을 듣지 않고 열반을 보지 아니하며, 대열반을 듣지 않고 대열반을 보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 법계(法界)를 지견(知見)하고,
실상(實相)이 공(空)하고 무소유(無所有)하며
화합한 각지(覺知)의 모양이 없음을 해료(解了)하여,
무루의 모양[無漏相], 지음 없는 모양[無所作相], 환화(幻化) 같은 모양,
더울 때의 아지랑이 모양[熱時炎相], 건달바성(乾闥婆城), 허공의 모양을 얻을 것이며,
보살은 이때 이러한 모양들을 얻어 탐에치(貪恚癡)도 없고,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나니,
이를 일러 '보살마하살의 진실한 모양이 실상(實相)에 안주하였다'고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은 스스로 이것이 단(檀)이고 이것이 단바라밀이며,
나아가 이것이 반야, 이것이 반야바라밀, 이것은 열반, 이것이 대열반임을 알 것이니라.
「善男子!云何是施,非波羅蜜?見有乞者,然後乃與,是名為施,非波羅蜜。
若無乞者,開心自施,是則名為檀波羅蜜。若時時施,是名為施,非波羅蜜。
若修常施,是則名為檀波羅蜜。若施他已,還生悔心,是名為施,非波羅蜜。
施已不悔,是則名為檀波羅蜜。菩薩摩訶薩於財物中生四怖心,
王、賊、水、火,歡喜施與,是則名為檀波羅蜜。
若望報施,是名為施,非波羅蜜。施不望報,是則名為檀波羅蜜。
「선남자야! 어떤 것이 시(施)이고 바라밀(波羅蜜)이 아닌 것인가?
구걸하는 자를 본 연후에 주는 것은 시(施)이지 바라밀(波羅蜜)이 아니며,
구걸하는 자가 없어도 마음을 열어 스스로 베푸는 것이 단바라밀(檀波羅蜜)이다.
때때로 베풀면 시(施)이고 바라밀이 아니며, 항상 베풀기를 닦는 이것이 곧 단바라밀이다.
남에게 베풀고서 돌이켜 후회한다면 이는 시(施)요 바라밀이 아니며,
베풀고서 후회하지 않아야 단바라밀이다.
보살마하살이 재물에 대해 왕, 도적, 물, 불의 네 가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기쁘게 베풀어 주면 이것이 곧 단바라밀이다.
과보를 바라고 베풀면 시(施)요 바라밀이 아니며,
과보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 단바라밀이다.
若為恐怖、名聞、利養、家法相續、天上五欲,為憍慢故、為勝他故、為知識故、
為來報故,如市易法。善男子!如人種樹,為得蔭涼,為得花果及以材木。
若人修行如是等施,是名為施,非波羅蜜。
菩薩摩訶薩修行如是大涅槃者,不見施者、受者、財物,不見時節、不見福田及非福田,
不見因、不見緣、不見果報,不見作者、不見受者、不見多、不見少、不見淨、
不見不淨,不輕受者、己身、財物,不見見者、不見不見者,不計己、他,
唯為方等大般涅槃常住法故修行布施,為利一切諸眾生故而行布施,
為斷一切眾生煩惱故行於施,為諸眾生不見受者施者財物故行於施。
만약 두려움 때문에 또는 명예[名聞]나 이양(利養), 가법(家法)을 계승하고,
천상의 오욕(五欲)을 위해서나, 교만해지고 남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나,
벗을 위하고 돌어올 과보를 위한 것이라면 시역법(市易法*)이나 마찬가지여서,
선남자야! 사람이 나무를 심어 시원한 그늘과 꽃, 과일, 그리고 목재를 얻는 것과 같다.
만약 이러한 베품을 수행하는 것은 시(施)요, 바라밀이 아니며,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대열반을 수행하면 베푸는 자와 받는 자와 재물을 보지 않고,
시절도 보지 않고, 복밭[福田]이고 복전 아니고를 보지 아니하며,
인(因)도 연(緣)도 과보(果報)도 보지 않고, 짓는 자도 받는 자도 보지 아니하며,
많고 적음도 보지 않고, 깨끗하고 부정하고를 보지 아니하며,
받는 자와 자기 몸과 재물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보는 자도 보지 않고 보지 않는 자도 보지 아니하며, 자기와 남을 가리지 않고,
다만 방등 대반열반의 상주법(常住法)만을 위해 보시를 수행하며,
모든 중생을 이익하기 위해 보시를 행하고,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해 보시를 행하며,
모든 중생이 不見받는 자와 베푸는 자와 재물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보시를 행하느니라.
*市易法; 중국(中國)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의 하나.
소상인(小商人)을 보호하기 위해 중요한 도시에 市易務를 설치하고
소상인이 팔지 못한 물건을 사주거나 또는 이를 저당잡아 자금을 융통해 준 법.
善男子!譬如有人,墮大海水,抱持死屍,則得度脫;
菩薩摩訶薩修大涅槃行布施時,亦復如是,如彼死屍。
善男子!譬如有人,閉在深獄,門戶堅牢,唯有廁孔,便從中出到無礙處;
菩薩摩訶薩修大涅槃行布施時,亦復如是。
善男子!譬如貴人恐怖急厄,更無恃怙,依旃陀羅;
菩薩摩訶薩修大涅槃,行於布施亦復如是。
善男子!譬如病人為除病苦得安樂故服食不淨;
菩薩摩訶薩修大涅槃行於布施亦復如是。
善男子!如婆羅門值穀勇貴,為壽命故食噉狗肉;
菩薩摩訶薩修大涅槃行於布施亦復如是。
善男子!大涅槃中如是之事,從無量劫來不聞而聞,尸羅、尸羅波羅蜜,
乃至般若、般若波羅蜜,如佛雜花經中廣說。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바다에 빠지면 시체라도 붙들면 벗어나게 되듯이,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보시를 행할 때도 그와 같아서 저 시체와 같고,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옥에 갇혀 문은 단단히 잠기더라도
측간 구멍만 있으면 그 속을 쫓아 나와 장애없는 곳에 이르듯이,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보시를 행할 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마치 귀인(貴人)이 무섭고 위급한데
믿을 데가 없거든 전다라(旃陁羅)라도 의지하듯이,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보시를 행하는 것도 그와 같고,
선남자야! 마치 병든 사람이 병고를 제거하고 안락을 얻고자 부정한 것도 먹듯이,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보시를 행하는 것도 그와 같으며,
선남자야! 바라문들이 곡식이 귀하거든 목숨을 위해 개고기라도 먹듯이,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보시를 행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대열반 가운데 이러한 일들은 무량한 겁 이래로 듣지 못한 것을 듣는 것이며,
시라(尸羅;持戒)와 시라바라밀이나 나아가 반야(般若)와 반야바라밀까지는
불잡화경(佛雜花經; 佛說華嚴經)에 자세히 설한 바와 같으니라.
◎ 大般涅槃經卷第二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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