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56칙 흠산(欽山)의 일촉파삼관(一鏃破三關)

碧雲 2023. 11. 26. 07:07

 一鏃破三關 즉 「한 화살을 쏘아 세 길의 關門을 격파한다」 함은 
佛祖의 語言, 禪僧의 語句를 쫓아 일정한 수행의 단계를 밟아야 
成佛하는 것으로 아는 어리석음 속에서 헤메이지 말고, 
一棒으로 三世諸佛을 打殺하고 一念에 아승지 겁을 超越하며 
一心으로 三觀을 貫徹해야 「一大事因緣」을 成就할 수 있다는 것이다.

 

垂示云。 수시(垂示)
諸佛不曾出世。
亦無一法與人。
祖師不曾西來。
未嘗以心傳授。
自是時人不了。
向外馳求。
殊不知自己腳跟下。
一段大事因緣。
千聖亦摸索不著。
只如今見不見聞不聞。
說不說知不知。
從什麼處得來。
若未能洞達。
且向葛藤窟裏會取。
試舉看。
제불(諸佛)이 일찍이 출세(出世)하신 적 없고 
한 법도 사람에게 준 적이 없으며, 
조사가 일찍이 서래(西來)한 적 없고 
마음으로 전수(傳授)한 적이 없건만 
그때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밖으로만 내달려 찾으니 
자기 발꿈치 밑 일단의 대사인연(大事因緣*)을 
전혀 모르는 것이거니와
천성(千聖)도 모색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설(說)이 불설(不說)이요, 지(知)가 부지(不知)이거늘 
어느 곳으로부터 얻어 오겠는가?
미처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저 갈등굴(葛藤窟) 속을 향해 회취(會取)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大事因緣; 즉 「一大事因緣」이니, 佛이 세상에 出現하시어 說法하심은 
一大事의 因緣 때문이다는 것이다.
미혹에서 깨어나는 중요한 일이기에 一大事라 하며, 
法華에서는 「佛知見」, 華嚴에서는 「法界」, 涅槃에서는 「佛性」, 維摩에서는 「不思議」, 
般若에서는 「成佛因果」, 無量壽經에서는 「往生極樂」로 一大事를 삼고 있다. 

 

 【五六】舉。  【제56칙】 흠산(欽山)의 한 화살로 세 관문 격파하기 
   良禪客問欽山。
 一鏃破三關時如何
   (嶮不妨奇特。
   不妨是箇猛將)
   山云。放出關中主看
   (劈面來也。也要大家知。
 主山高按山低)
   良云。恁麼則知過必改
   (見機而作。
   已落第二頭)
   山云。更待何時
   (有擒有縱。
   風行草偃)
   良云。好箭放不著所在便出
   (果然。擬待翻款那。
   第二棒打人不痛)
   山云。且來闍黎
   (呼則易遣則難。
   喚得回頭。堪作什麼)
   양선객(良禪客*)이 흠산(欽山*)에게 물었다.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깨뜨렸을 때는 어찌합니까?"
   (험준하니 기특하여 마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이 용맹한 장수다)
   "관중주(關中主)를 방출하여 살핀다."
   (정면으로 다가와도 대가<大家>라면
 주산<主山>은 높고 안산<按山*>은 낮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즉 잘못을 알고 반드시 고치겠군요."
   (기<機>를 보고서 반응하면
   이미 제2두<第二頭*>에 떨어진 것이다)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니
   바람이 불면 풀이 누울 것이다)
   "화살은 잘 쏘았으나 맞지 않았구나" 하고 나가려는데
   (과연 죄상(罪狀)을 번복할 셈인가?
   두 번째 방<棒>은 맞아도 아프지 않다)
   흠산이 "이리 오게. 선생!" 하는지라
   (부르기는 쉽고 보내기는 어렵다.
   불러서 돌아보게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良回首
   (果然把不住。中也)
   山把住云。
 一鏃破三關即且止。
 試與欽山發箭看
   (虎口裏橫身。
   逆水之波。
   見義不為無勇也)
   良擬議
   (果然摸索不著。
   打云。可惜許)
   山打七棒云。
   且聽這漢疑三十年
   (令合恁麼。
   有始有終。頭正尾正。
 這箇棒合是欽山喫)。
   양선객이 돌아보자
   (과연 뜻을 꺾는구나. 적중했다.)
   흠산이 움켜쥐고
 "한 화살로 3관(關) 격파하기는 그만두고
 한 번 나에게 화살을 쏘아보게." 하니,
   (호랑이 입 속에 몸을 뉘었으니,
   꺼꾸로 흐르는 물결이다.
   의<義>를 보고 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양(良)이 머뭇거리매
   (과연 모색하지 못하는구나.
   후려치며 "애석하다 하겠다")
   흠산이 일곱 방(棒)을 때리고 말했다.
   "다만 들으면 이 놈이 30년을 머뭇거리겠구나"
   (영<令>이 그래야 한다.
   시작도 있고 끝도 있으며, 머리도 바르고 꼬리도 바르다.
 이런 몽둥이는 흠산이 맞아야 한다.)。

*欽山; 澧州欽山文邃禪師(洞山良价 法嗣) 青原下五世
*良禪客; 거량(巨良)이라는 이름의 선객(禪客).
*關中主; 관(關)의 주인. 육신(肉身)의 주인. 
*主山按山; 궁궐이나 사원을 건조(建造)할 때 대개 북방은 길상(吉相)으로 높고 
남방은 비교적 낮은 곳에 자리 잡아 뒷산(북방의 산)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남방의 산을 안산(案山;按山)이라 불렀다. 
선림에서는 주산과 안산을 주객(主客)에 비유하여 쓴다. 
*第二頭; 第二機. 第二義門. 向下門.
①향상의 평등처에서 하향의 차별문으로 되돌아가는 교리법문.
보살 하화중생(下化眾生)의 문을 뜻한다. 第一義門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문. 
②言說과 教義에 과도히 집착함을 비하하는 뜻으로 「落草」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擬待; 타산하다. 작정하다. 
*把不住; 자기 뜻을 지키지 못함. 無法掌握. 

良禪客也不妨是一員戰將。
向欽山手裏。左盤右轉。
墜鞭閃鐙。末後可惜許。
弓折箭盡。雖然如是。
李將軍自有嘉聲在。
不得封侯也是閑。
這箇公案。一出一入。
一擒一縱。
當機覿面提。
覿面當機疾。
都不落有無得失。
謂之玄機。
稍虧些子力量。
便有顛蹶。
這僧亦是箇英靈底衲子。
致箇問端。
不妨驚群。
欽山是作家宗師。
便知他問頭落處。
양선객도 어쩔 수 없는 싸움터 장수의 일원인지라
흠산의 손 속을 향해 좌반우전(左盤右轉*)하며
추편섬등(墜鞭閃鐙*)하더니, 끝에가서는 애석하게도
궁절전진(弓折箭盡*)해버렸다. 비록 그러하더라도
이장군(李將軍) 스스로 어떤 가성(嘉聲*)이 있다면
봉후를 얻지 못해도[不得封侯*] 무관할 것이다.
이런 공안은 일출일입(一出一入)하고
일금일종(一擒一縱)하면서
기(機)를 당하여는 적면(覿面*)이 제기되고
적면해서는 기를 당함이 신속[疾速]하여
도무지 유무득실(有無得失)에 떨어지지 않는지라
이를 일러 현기(玄機)라 하거니와
조그마한 역량(力量)을 잠시라도 소홀히 하면
곧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이 중도 또한 영리한 납자(衲子)인지라
그런 문단(問端*)을 던졌으니
군중을 놀라게 하여 마지 않았으나
흠산(欽山)은 작가종사(作家宗師)라서
곧 그 문두(問頭)에 낙처(落處)를 알았다. 

*左盤右轉;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다. 좌우로 살피다. 
*墜鞭閃鐙; '채찍을 떨구고 발판 곁을 피하다'는 곧 '존경하여 대우하지 않았다'는 뜻. 
 '채찍을 들고 말타기를 기다린다', 즉 '존경'의 의미인 執鞭墜鐙의 반대의미이다. 
閃: ①머리를 내밀고 엿보다. ②비키다, 피하다. ③돌연 나타나다. 
鐙: [名] 말안장 양쪽에 걸려있는 발판
*弓折箭盡; 활은 부러지고 화살도 다했다 함은 병기가 이미 다 파손되어 
싸울 힘이 없다는 것으로 더이상 대응할 의지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嘉聲; 아름다운 명성이나 아름다운 목소리
*覿面; 當面
*稍虧; 조금 모자라다. 잠시 줄이다. 
稍: [부]잠시. 잠깐. 점점. 이미. 虧: [형]모자라다. [동]줄다. 기울다.
*顛蹶; 발이 걸려 넘어지다. 일이 어긋나서 실패하다.
*問端; 質問의 端初. 質問에 의해 論議할 端緒를 얻는 일.

*不得封侯; 〈이광전(李廣傳)〉에 「서한(西漢)의 장군 이광(李廣)은 
작읍(爵邑)을 얻지 못해 관직이 구경(九卿)에 불과했는데 
그 휘하의 군사(軍史)와 사졸(士卒)들은 후작(侯爵)에 봉해지자 
이광이 망기(望氣;人事의 길흉과 징조를 知道하는 관리) 왕삭(王朔)에게 
"흉노를 정벌함에 내가 그 가운데 있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교위(校尉) 이하들은 재능이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도
군공(軍功)으로 후(侯)를 취한 자가 수십 인이고, 
나는 그들에 뒤지지 않는데도 지금껏 작은 봉읍(封邑)도 얻지 못함은 무엇 때문이오? 
어째서 내가 후(侯)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인가?" 하자, 
왕삭이 "장군 스스로 생각해보시오. 어찌 일찍이 한(恨)스러운 것이 있었는지." 하니,
광이 "내가 농서(隴西)의 수장(守將)이었을 때 강(羌)이 모반하매 
내가 항복하도록 유인한 자가 8백여 인이었는데 속여서 같은 날 그들을 죽였소. 
지금껏 한스러운 것은 오로지 이것 뿐이오." 하였다.
이에 왕삭이 "이미 투항한 자들을 죽인 일에 화(禍)가 막대한지라 
이것이 마침내 장군이 후(侯)를 얻지 못하는 것이오." 하였다.」고 썼다.

 

*當機覿面提 覿面當機疾; 〈指月錄〉 9卷 六祖下第三世 「浮盃和尚」 章에 
능행파(凌行婆)가 와서 예배하니, 선사가 더불어 앉아서 차를 마시는데 
노파가 이내 "온 힘을 다해 말해주어도 저변의 구[底句]를 해득하지 못하면 
누구에게 분부(分付)합니까?" 하고 묻자, 
선사는 "부배(浮盃)는 쓸데없는 말 안한다."고 하니, 
노파가 "부배에 오기 전에 의심해도 무방했군요." 하는지라 
선사가 "달리 마땅한 것이 있으면 끄집어내도 무방하다." 하매, 
노파가 땅을치며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면서 다시 억울함을 더했다. 
선사가 말이 없자 능행파가 "말이 치우치고 바름[偏正]을 모르면 
이치가 뒤집히거나 그릇[倒邪]된 것을 알지 못해 
사람 위한다는 것이 화근만 일으킵니다." 하였다. 
후에 어떤 중이 남전(南泉)에게 이 일을 들추자 
남전은 "안타깝구나. 부배(浮盃)여! 저 노파에게 한 차례 꺾이다니." 하였다. 
노파가 듣고 웃으면서 "왕노사(王老師;南泉)가 아직 적은 기관(機關)에 있구나." 하였다. 

징일(澄一)이라는 선객(禪客)이 노파를 찾아가 
"어째서 남전이 아직 적은 기관에 있다고 합니까?” 묻자, 
노파는 이내 통곡하며 "슬프고 애통하도다!” 하니, 
증일이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는데, 노파가 "알겠느냐?" 하였다.
증일이 합장하고 일어서자, 노파가 "넋빠진 선화자(禪和子)들이 너무나 많다." 하였다. 
증일이 이 일을 조주(趙州)게 들추자 조주는 
"내가 만약 그 구린내 나는 노파를 만나면 물어서 벙어리를 만들어버리겠다." 하자, 
증일이 "그녀에게 무어라 물으시렵니까?" 하니, 조주가 문득 후려쳤다. 
증일이 "왜 저를 때리십니까?" 하니, 조주가 "이 넋빠진 놈 같을 때 때리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하고서 연거푸 여러 방(棒)을 때렸다.
능행파가 전해 듣고 도리어 "조주는 내 방(棒)을 맞을만 하구나." 하였다.
후에 어느 중이 이 일을 조주에게 전하자 조주가 통곡하며 "슬프고 애통하구나!" 하니, 
노파가 그 말을 듣고 합장하여 탄식하면서 
조주의 안광(眼光)이 사천하(四天下)에 반짝이는구나." 하였다고 하매, 
조주가 어느 중을 시켜 어떤 것이 조주의 눈이냐고 물어보니, 
노파가 이내 주먹을 세워 일으켰다. 

중이 돌아가 조주에게 전하니 조주는 게송을 지어 말했다. 
    「기(機)를 당하여는 적면(覿面;당면)이 제기되고   當機覿面提。
    당면해서는 기를 당함이 질속(疾速)하구나.         覿面當機疾。
    그대 능행파에게 갚아주건대                           報汝凌行婆。
    곡소리[哭聲]에 무슨 득실(得失)이 있겠는가.       哭聲何得失。」
노파가 게송으로 답했다. 
    「곡소리를 선사는 이미 밝혔거니와                  哭聲師已曉。
    이미 밝힌 것을 다시 누가 알겠소.                    已曉復誰知。
    당시의 부처님 말씀[摩竭令]에도                      當時摩竭國。
    얼마나 많은 목전(目前)의 기(機)가 상실되었소?  幾喪目前機。」라 적었다. 
바로 능행파가 「아이고, 아이고!」를 극찬한 표현이며, 
이 담론은 무득무실(無得無失)의 이치에 관한 법어(法語)로 많이 인용되어 왔다. 

鏃者箭鏃也。
一箭射透三關時如何。
欽山意道。爾射透得則且置。
試放出關中主看。
良云。恁麼則知過必改。
也不妨奇特。
欽山云。更待何時。
看他恁麼祇對。
欽山所問。更無些子空缺處。
後頭良禪客卻道。
好箭放不著所在。
拂袖便出。
欽山纔見他恁麼道。
便喚云。且來闍黎。
良禪客果然把不住。便回首。
欽山擒住云。
一鏃破三關則且止。
試與欽山發箭看。
良擬議。欽山便打七棒。
更隨後與他念一道咒云。
且聽這漢疑三十年。
촉(鏃)이란 화살촉[箭鏃]이다.
"한 화살을 쏘아 세 관문을 뚫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묻자,
흠산의 뜻에 "네가 쏘아 꿰뚫는 것은 차치하고
한 번 관중주(關中主)를 끄집어내 보거라." 하매,
"그러한 즉 과실을 알고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하였으니,
또한 기특하여 마지 않았으나,
흠산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대응을 보건대
흠산이 물은 바에 조그마한 헛점[空缺處]도 없었다.
뒤 끝에 양선객이 도리어
"화살은 잘 쏘았으나 제자리에 안착하지 못했구나" 하며
소매를 떨치고 곧 나가버리니
흠산이 그렇게 말하는 그를 흘깃 보고서
곧 불러 말하기를 "그만 오시오. 선생!" 하니,
양선객이 과연 파부주(把不住*)하고 곧 돌아보자
흠산이 웅켜잡고서
"한 화살로 3관(關)을 격파하는 것은 곧 그만 두더라도
한 번 흠산에게 화살을 쏘아보시게." 하니,
양(良)이 머뭇거리자 흠산이 곧 일곱 방(棒)을 치고서
다시 뒤따라 그에게 일도주(一道咒*)를 읊어주고
"다만 듣고 이 놈이 30년을 의심하리라." 하였다. 
如今禪和子盡道。
為什麼不打八下。
又不打六下。只打七下。
不然等他問道試與欽山發箭看。
便打。
似則也似。是則未是在。
這箇公案。
須是胸襟裏不懷些子道理計較。
超出語言之外。
方能有一句下破三關。
及有放箭處。
若存是之與非。卒摸索不著。
當時這僧。若是箇漢。
欽山也大嶮。
他既不能行此令。
不免倒行。
且道關中主。畢竟是什麼人。
요즘의 선화자들은 말하기를,
"왜 여덟 번이나 또 여섯 번 때리지 않고
다만 일곱 번을 때렸는가"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가 '나에게 한 번 쏘아보겠느냐?' 하고
물어 말함과 동시에[等] 곧 때리겠다."고 하는데,
비슷하기야 비슷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않다.
이러한 공안은
모름지기 흉금 속에 조그마한 도리나 계교를 품지 말고
어언(語言)의 밖으로 초출(超出)해야
바야흐로 1구(一句) 하에 3관(關)을 격파함이 있고
또 화살 쏠 곳도 있으려니와,
만약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면 결코 모색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에 이 중이 만약 시개한(是箇漢*)이었다면
흠산도 매우 힘겨웠을 터인데
그가 기왕 이 영(令)을 행하지 못하고
꺼꾸러지기를 면치 못했다.
자 말해보라. 관중주(關中主)는 필경 누구인가? 

*把不住; 장악(掌握)할 방법이 없음. 뜻을 고수하지 못함. 
*一道咒; 한 줄의 주문. 
*是箇漢; '바로 그 놈'이란 '진정한 대장부'를 말한다. 

 

看雪竇頌云。 설두(雪竇)의 송(頌)
 與君放出關中主
   (中也。當頭蹉過。退後退後)
  放箭之徒莫莽鹵
   (一死不再活。
   大誵訛過了)
 取箇眼兮耳必聾
   (左眼半斤。放過一著。
 左邊不前右邊不後)
 捨箇耳兮目雙瞽
   (右眼八兩。只得一路。
   進前則墮坑落塹。
 退後則猛虎衘腳)
 그대에게 관중주(關中主)를 방출해 주노니
   (적중했다. 빗나가면 후퇴하고 후퇴한다.)
  방전(放箭)하는 무리여 망로(莽鹵)하지 말라.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거늘
   크게 그르쳐 빗나갔다.)
 눈을 취하자니 귀가 어둡고
   (좌안반근<左眼半斤*>이었다니 한 수 봐주으나
 좌변은 앞이 못되고 우변은 뒤가 못된다.)
 귀를 버리면 눈이 쌍으로 멀어버린다네.
   (우안이 여덟 양이었다니 한 갈래 길만은 얻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자니 구덩이에 빠지겠고
 뒤로 물러서자니 맹호에게 다리를 물리겠구나.)
 可鄰一鏃破三關
   (全機恁麼來時如何。
   道什麼。破也。墮也)
 的的分明箭後路
   (死漢。咄。
   打云。還見麼)
 君不見
   (癩兒牽伴。打葛藤去也)
 玄沙有言兮
   (那箇不是玄沙)
  大丈夫先天為心祖
   (一句截流萬機寢削。

   鼻孔在我手裏。
   未有天地世界已前。
   在什麼處安身立命)
 가련하도다 한 화살로 3관을 격파한다는 것이
   (전기<全機>가 그렇게 닥쳐왔을 때는 어찌 될꼬?
   무슨 말이냐. 깨지고 떨어진다.)
 명백하고 분명한 전후로(箭後路*)로세.
   (사한<死漢>이로다. 쯧쯧.
   후려치고서 "보이는가?")
 그대는 모르는가?
   (문둥이가 동무를 갈등에 얽혀 가도록 끌어들이는구나.)
 현사<玄沙>가 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현사의 것이 아니다.)
 대장부는 선천(先天*)을 심조(心祖*)로 여긴다네.
   (일구<一句>로 절류<截流>하니
   만기<萬機>가 침삭<寢削>한다.
   비공<鼻孔>이 내 손 안에 있거늘
   천지세계가 있기 이전에
   어느 곳에 있어 안심입명<安身立命>하리오.)

*左眼半斤; 〈五燈會元〉 卷第20 饒州薦福退庵休禪師(烏巨道行法嗣; 南嶽下16世) 章에 
    「하안거 맺을 때 左眼이 半斤이더니      結夏時左眼半斤
     풀고 나서는 右眼이 八兩이라               解夏時右眼八兩
     九十日을 安居했노라 기만한 것이        謾云九十日安居
     한 껍대기 妄想을 얻은 것인지라           赢得一肚皮妄想
     설사 七穴八穿한다 한들                        直饒七穴八穿
     山僧의 주장자를 면키 어려우리라.        未免山僧拄杖。」 하고서 
비록 그렇더라도 천균(千鈞)의 활은 생쥐를 잡기 위해 쏘지 않는다.」 하였다. 
左眼半斤 右眼八兩은 반 근이 여덟 양이니 하안거 들기 전과 해제 후의 일상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니, 곧 본래의 면목은 그대로임을 의미한다. 
*箭後路; 쏜 화살의 나아갈 길. 後路는 국면을 전환시킬 여지나 잘된 이후를 위한 준비. 
*先天; 後天의 反意語. 自出生的. 自存在的. 自身本有的. 또는 宇宙의 本體. 萬物의 本源. 
*心祖; 마음의 어버이. 

*一句截流萬機寢削; 겨우 一言一句만의 사용으로 가히 一切의 分別妄想心을 절단하는 作用을 하여 
千算萬計를 終息시키고 그자리에 本體의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선림용어. 
截流는 截斷眾流의 略稱인 즉 分別妄想心을 截斷한다는 뜻이요, 
寢削은 停止 또는 削除의 뜻이다. 

 

此頌數句。取歸宗頌中語。
歸宗昔日。因作此頌。
號曰歸宗。
宗門中謂之宗旨之說。
後來同安聞之云。
良公善能發箭。
要且不解中的。
有僧便問。如何得中的。
安云。關中主是什麼人。
後有僧舉似欽山。
山云。良公若恁麼。
也未免得欽山口。
雖然如是。同安不是好心。
이 송의 몇 구절은 귀종(歸宗)의 송을 인용했다.
귀종은 지난날 이 송을 지음으로 인해
호(號)를 귀종(歸宗)이라 하였으며,
종문(宗門)에서는 '종지(宗旨)의 말씀'이라 이른다.
후에 와서 동안(同安*)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양공(良公)이 화살을 잘 쏠 수는 있었으나
요는 또 표적을 맞힐 줄은 몰랐다" 하자,
어떤 중이 곧 "어찌해야 적중(的中)시키겠습니까?" 물으니,
동안은 "관중주(關中主)가 누구냐?" 하였다.
후에 어떤 중이 흠산에게 이 이야기를 들추자[擧似]
흠산이 "양공이 만약 그렇게 했다면
나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겠으나
비록 그렇다 해도 동안은 좋은 마음이 아니구나" 하였다. 

*同安; 洪州鳳棲同安院常察禪師(九峰道虔 法嗣) 青原下六世

雪竇道。與君放出關中主。
開眼也著。合眼也著。
有形無形。盡斬為三段。
放箭之徒莫莽鹵。
若善能放箭。則不莽鹵。
若不善放。則莽鹵可知。
取箇眼兮耳必聾。
捨箇耳兮目雙瞽。
且道取箇眼。為什麼卻耳聾。
捨箇耳。為什麼卻雙瞽。
此語無取捨。方能透得。
若有取捨則難見。
설두가 「與君放出關中主」라 했는데,
눈을 떠도 나타나고 눈을 감아도 나타나는
유형(有形) 무형(無形)을 세 단계로 다 베어버려서
화살 쏘는 사람들여! 망로(莽鹵)하지 말지어다.
만약 살을 잘 쏠 수 있다면 곧 망로하지 않겠지만
잘 쏘지 못한다면 곧 망로 할 줄 가히 알리라.
「눈을 취하자니 귀가 반드시 어둡고
귀를 버리자니 눈이 쌍으로 먼다」 하였는데,
말해보라. 저 눈을 취하면 어째서 도리어 귀가 멀며
저 귀를 버리면 어째서 도리어 두 눈이 멀겠는가.
이 말은 취사가 없어야 비로소 투득(透得)하는 것이라
만약 취사가 있으면 곧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可憐一鏃破三關
的的分明箭後路。
良禪客問。
一鏃破三關時如何。
欽山云。放出關中主看。
乃至末後同安公案。
盡是箭後路。畢竟作麼生。
君不見。玄沙有言兮。
大丈夫先天為心祖。
尋常以心為祖宗極則。
這裏為什麼。
卻於天地未生已前。
猶為此心之祖。
若識破這箇時節。
方識得關中主。
的的分明箭後路。
若要中的。箭後分明有路。
且道作麼生是箭後路。
也須是自著精彩始得。
「可憐一鏃破三關
的的分明箭後路」라 했는데,
양선객이 물어
"一鏃破三關時如何"라 하고
흠산이 "放出關中主看"라 답한 것부터
끝부분 동안(同安)의 공안(公案)에 이르기까지가
다 이것이 箭後路라면 필경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현사(玄沙)가 한 말에
「大丈夫는 先天으로 心祖를 삼는다」고 하였다.
보통은 心으로 祖宗의 極則을 삼는데
이 속은 어째서
도리어 天地가 아직 생기기 이전으로
오히려 이 마음의 祖를 삼는다는 것인가?
만약 그런 시절을 식파(識破)한다면
바야흐로 관중주(關中主)를 식득(識得)하리라.
 '的的分明箭後路'는
적중시키려면 화살이 가는 길이 분명 있으리니
자 말해보라. 어떤 것이 전후로(箭後路)인가?
다만 반드시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大丈夫先天為心祖。
玄沙常以此語示眾。
此乃是歸宗有此頌。
雪竇誤用為玄沙語。
如今參學者。
若以此心為祖宗。
參到彌勒佛下生。
也未會在若。
是大丈夫漢心猶是兒孫。
天地未分已是第二頭。
且道正當恁麼時。
作麼生是先天地。
「大丈夫先天為心祖」라 한 것은
현사(玄沙)가 늘 이 말로써 시중(示眾)했으니
이는 바로 귀종(歸宗)의 이 송(頌)이 있음에도
설두가 현사의 말로 오인하여 쓴 것이다.
오늘날의 참학자(參學者)가
만약 이 마음으로 조종(祖宗)을 삼았다가는
미륵불이 하생하도록 참구해도
모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장부라 해도 마음은 아직 아손(兒孫)인 것이요,
천지가 아직 나뉘지 않았다는 것이 이미 제2두(第二頭)다.
말해보라. 정녕 이런 때를 당하여는
어떤 것이 선천(先天)이라는 자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