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門撮要

四. 보조진심직설(普照眞心直說)

碧雲 2015. 10. 19. 06:51

禪門撮要 선문촬요
     惠菴 編譯      혜암(惠菴)선사 편역
禪門撮要 第四卷 선문촬요 제 4권
四. 普照眞心直說 4. 보조진심직설(普照眞心直說)
 一. 眞心正信  1) 참마음의 바른 이해
華嚴에 云하사대  화엄경(華嚴經)에 말씀하시기를 
信爲道源功德母라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라 
長養一切諸善根이라하시며  모든 선근(善根)을 자라게 한다' 하셨으며, 
又唯識에 云호대  또 유식(唯識)에 말씀하시기를 
信如水淸珠하야 能淸濁水故라하시니   '믿음은 물을 맑히는 구슬(水淸珠)이 
능히 흐린 물을 맑히는 것 같다' 하시니, 
是知 萬善發生에 信爲前導로다  이것으로써 만가지 선(善)이 생기는 데는 
믿음이 앞잡이임을 알겠도다. 
故로 佛經首에  그러므로 불경 첫머리에 
立如是我聞은 生信之謂也니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하는 말씀을 둔 것은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니라. 
或이 曰 祖門之信이  어떤 이가 물었다. “조문(祖門=선문)의 믿음과 
與敎門之信으로 有何異耶오  교문(敎門=교학)의 믿음이 어떻게 다른가?” 
曰 有多種不同하니라  대답이라. “여러가지로 같지 않으니, 
敎門에는 令人天으로 信於因果호대  교문에서는 인천(人天)의 무리로 하여금 
인과의 법을 믿게 하되 
有愛福樂者면  복락(福樂)을 즐기는 이는 
信十善으로 爲妙因하고  十선(善)을 믿음으로써 묘한 인을 삼고, 
人天으로 爲樂果하며  인간과 하늘로써 즐거운 결과를 삼게 하며, 
有樂空寂者면  공적(空寂)을 즐기는 이에게는 
信生滅因緣으로 爲正因하고  생멸의 인연을 믿음으로써 바른 인을 삼고 
苦集滅道로 爲聖果하며  고집멸도(苦集滅道)로써 
거룩한 결과를 삼게 하며, 
有樂佛果者는  불과(佛果)를 즐기는 이에게는 
信三劫六度로 爲大因하고  三겁(劫)과 六도(度)를 믿음으로써 큰 인을 삼고 
成正覺으로 爲正果하니라  정각(正覺)을 이룸으로써 
바른 과로 삼게 하거니와 
祖門正信은 非同前也니라  조문의 믿음은 앞의 것과 매우 다르니라. 
不信一切有爲因果하고  온갖 유위의 인과를 믿지 않고 
只要信自己本來是佛이니  오직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것만을 믿게 하니, 
天眞自性이 人人具足하고  천진한 자기 성품이 사람마다 구족하고 
圓覺妙體가 箇箇圓成하야  원각의 묘체(妙體)가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서 
不假他求라 從來自備니라  남에게 구할 필요가 없이 
원래 스스로에게 갖추어 있느니라. 
三祖云하사대  三조(祖)께서 말씀하시기를 
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언만   '원만하기가 허공 같아서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良有取捨하야 所以不如라하시며  취하고 버리려는 생각 때문에 
같지 못하다' 하셨고, 
誌公이 云하사대  지공(誌公)께서 말씀하시기를 
有相身中에 無相身이요   '형상있는 몸 속에 형상없는 몸이요, 
無明路上에 無上路라하시며  무명의 길 위에 생멸없는 길이라' 하셨으며, 
永嘉云하사대  영가(永嘉)께서 말씀하시기를 
無明實性이 即佛性이요   '무명의 실다운 성품이 곧 부처님 몸이요 
幻化空身이 即法身이라하시니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라' 하시니, 
故知衆生이 本來是佛이로다  이것으로써 중생이 본래 부처인줄 알 것이다. 
旣生正信이라도 須要解滋니  이미 바른 믿음을 내었더라도 
반드시 잘 알아야 하나니, 
永明이 云호대  영명(永明)이 말씀하시기를 
信而不解면 增長無明하고   '믿고도 알지 못하면 무명만을 더하고, 
解而不信이면 增長邪見이라하시니  알고도 믿지 않으면 삿된 소견만 더한다' 하시니 
故知하라 信解相兼하야사  이것으로써 믿음과 견해가 겸비하여야 
得入道疾이니라  도에 들어감이 빠른 줄 알리라.” 
或이 曰 初發信心하야  어떤 이가 다시 물었다. “처음으로 발심해서 
未能入道라도 有利益否아  아직 도에 들어가지 못했더라도 이익이 있겠는가?” 
曰 起信論에 云호대  대답이라. “기신론(起信論)에 말씀하시기를 
若人이 聞是法己하고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 
不生怯弱하면  겁내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當知是人은 定紹佛種이라  이 사람은 결정코 부처 대를 이을 것이라 
必爲諸佛之所授記하리니  반드시 부처님들의 수기를 받으리라. 
假使有人이  가령 어떤 사람이 
能化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하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해서 
令行十善이라도  모두가 十선(善)을 닦게 하더라도 
不如有人이 於一念頃에  다른 어떤 사람이 잠깐이라도 
正思惟此法이니  이 법을 바로 생각한 것만 같지 못하니, 
過前功德하야 不可爲喩라하시며  앞의 공덕보다 곱이나 수승하여 
비유할 수 없다' 하셨으며, 
又般若經에 云하사대  또 반야경(般若經)에 말씀하시기를 
乃至一念生淨信者는   '한 생각이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는 이는 
佛이 悉知悉見이시라  부처가 모두 알고 모두 보나니 
是諸衆生이 得如是無量福德이라하시니  이 중생들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是知 欲行千里인댄  이것으로써 보건대 천리의 길을 가려거든 
初步를 要正이로다  첫 걸음을 바르게 해야 할 것임을 알겠도다. 
初步를 若錯이면 千里俱錯인달하야  첫 걸음을 틀리면 천리가 모두 틀리는 것 같아서 
入無爲國인댄 初步信을 要正이니  무위국(無爲國)에 들어가려면 
첫걸음인 믿음을 바르게 하여야 하나니, 
初信을 旣失하면 萬善이 俱退하리라  처음의 믿음을 잃으면 
만가지 선이 모두 물러나리라. 
故로 祖師云하사대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이라하시니   '털끝만치의 차이만 있어도 
하늘땅이 아득히 현격하다' 하심이 
是 此理也니라  이 도리이니라.” 
 二. 眞心異名  2) 참마음의 다른 이름
或이 曰 已生正信이어니와  어떤 이가 다시 말했다. 
"바른 믿음은 이미 내었거니와 
未知커라 何名眞心이니꼬  무엇을 참마음이라 하는가?” 
曰 離妄名眞이요  대답이라. 
"허망하지 않으므로 참(眞)이라 하고, 
靈鑑曰心이니  신령스럽게 비추므로 마음(心)이라 하나니, 
楞嚴經中에 發明此心하니라  능엄경(楞嚴經)에서 
이 마음을 밝히었느니라.”
或이 曰 但名眞心耶아  다시 물었다. 
"참 마음이란 이름 뿐인가? 
別有異號耶아  아니면 다른 명칭이 있는가?” 
曰 佛敎祖敎가  대답이라. 
"부처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이 
立名이 不同하니  이름 지은 길이 같지 않으니, 
且佛敎者는 菩薩戒에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는 보살계(菩薩戒)에서는 
呼爲心地하니  마음바탕(心地)이라 하였으니 
發生萬善故요  만가지 선(善)을 내기 때문이요, 
般若經에 喚作菩提니  반야경(般若經)에서는 보리(菩提)라 하였으니 
與佛爲體故요  부처님의 본체가 되기 때문이요, 
華嚴經에 立爲法界니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법계(法界)라 하였으니 
交徹融攝故요  얼기설기 엇바꿔 어울리기 때문이요, 
金剛經에 號爲如來니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여래(如來)라 하였으니 
無所從來故요  온 곳이 없기 때문이요, 
般若經에 呼爲圓寂이니  반야경에서는 열반(涅槃)이라 하였으니 
衆聖所歸故요  뭇 성인들의 의지하는 바이기 때문이요, 
金光明經에 號曰如如니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는 여여(如如)라 하였으니 
眞常不變故요  참되고 항상하여 변하지 않기 때문이요, 
淨名經에 號曰法身이니  정명경(淨明經)에서는 법신(法身)이라 하였으니 
報化依止故요  보신(報身)·화신(化身)이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이요, 
起信論에 名曰眞如니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진여(眞如)라 하였으니 
不生不滅故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요. 
涅槃經에 呼爲佛性이니  열반경(涅槃經)에서는 불성(佛性)이라 하였으니 
三身本軆故요  삼신(三身)의 근본 바탕이기 때문이요, 
圓覺經에 名曰 總持니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총지(摠持)라 하였으니 
流出功德故요  공덕(功德)을 흘려내기 때문이요, 
勝曼經에 號曰 如來藏이니  승만경(勝曼經)에서는 여래장(如來藏)이라 하였으니 
隱覆含攝故요  가리워졌으되 두루 머금기[隱覆合攝] 때문이요, 
了義經에 名爲圓覺이니  요의경(了義經)에서는 원각(圓覺)이라 하였으니, 
破暗獨照故니라  어두움을 깨뜨리고 홀로 비추기 때문이니라. 
由是로 壽禪師唯心訣에 云  이런 까닭에 수선사(壽禪師)의 
유심결(唯心訣)에 말씀하시기를 
一法千名이라 應緣立號라하시니   '한 법에 천 이름이라, 
인연 따라 이름을 세웠다' 하시니, 
備在衆經이라 不能具引하노라  여러 경에 갖추어 있는지라 
다 인용하지 못하노라.” 
或曰 佛敎는 已知어니와  어떤 이가 다시 물었다. 
"부처의 가르침은 이미 알았거니와 
祖敎는 如何오  조사의 가르침이란 어떤 것인가?” 
曰 祖師門下에 杜絶名言하야  대답이라. 
"조사의 문중에는 이름도 말도 모두 끊어져서 
一名도 不立이어니  한 이름도 세우지 않았거니 
何更多名이리요마는  어찌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리요마는 
應感隨機에 其名이 亦衆하니라  느낌에 응하고 근기에 따름에는 
그 이름 또한 적지 않으니라. 
有時에 呼爲自己니  어떤 때엔 자기(自己)라 하였으니 
衆生本性故요  중생의 근본 성품이기 때문이요, 
有時에 名爲正眼이니  어떤 때엔 정안(正眼)이라 하니 
鑑諸有相故요  모든 유위의 모습을 비추어 밝히기 때문이요, 
有時에 號曰妙心이니  어떤 때엔 묘심(妙心)이라 하니, 
虛靈照故요  비고 신령스럽게 고요히 인지하기 때문이요, 
有時에 名曰 主人翁이니  어떤 때엔 주인옹(主人翁)이라 하니 
從來荷負故요  원래부터 짊어졌기 때문이요, 
有時에 呼爲無底鉢이니  어떤 때엔 무저발(無底鉢)이라 하니 
隨處生涯故요  간곳마다 생활이 풍족하기 때문이요, 
有時에 喚作絃琴이니  어떤 때엔 줄없는 거문고(沒絃琴)라 하니 
韻出今時故요  오늘의 경지를 연주해 내기 때문이요, 
有時에 號曰 無盡燈이니  어떤 때엔 다함없는 등불[無盡燈]이라 하니 
照破迷情故요  미혹한 유정을 비추어 깨뜨리기 때문이요, 
有時에 名曰 無根樹이니  어떤 때엔 뿌리없는 나무[無根樹]라 하니 
根蒂堅牢故요  뿌리와 꼭지가 견고하기때문이요, 
有時에 呼爲吹毛劒이니  어떤 때엔 취모검(吹毛劍)이라 하니 
截斷塵根故요  번뇌의 뿌리를 끊어버리기 때문이요, 
有時에 喚作無爲國이니  어떤 때엔 함이 없는 나라[無爲國]라 하니 
海晏河淸故요  바다 같이 평온하고 강 같이 맑기 때문이요, 
有時에 號曰 牟尼珠니  어떤 때엔 모니의 구슬[牟尼珠]이라 하니 
濟益貧窮故요  가난함을 구제하기 때문이요, 
有時에 名曰 無  어떤 때엔 열쇠없는 자물쇠[無鎖]라 하니 
開閉六情故요  여섯 가지 감정을 막아버리기 때문이요, 
乃至名 泥牛, 木馬, 心源, 心印,  나아가서는 진흑소[泥牛]·나무말[木馬]·
마음근원[心根]·마음도장[心印]·
心鏡, 心月, 心珠等  마음거울[心鏡]·마음달[心月]·마음구슬[心珠]등 
種種異名을 不可具錄이라  갖가지 딴 이름이 있지만 다 수록하지 못하노라. 
若達眞心하면 諸名을 盡曉어니와  만일에 참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이름을 다 깨달을 수 있거니와 
昧此眞心하면 諸名을 皆滯하리니  이 참마음을 어둡히면 
모든 이름에 모두 막히리라. 
故於眞心에 切宜子細어다  그러므로 참마음에 대하여 
반드시 자세히 살필지니라.” 
 三. 眞心妙體  3) 참마음의 묘한 본체
或이 曰 眞心은 已知名字어니와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의 이름은 이미 알았거니와 
其體如何耶오  그 본체는 어떠한고?” 
曰 放光般若經에 云하사대  대답이라.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에 말씀하시기를 
般若는 無所有相이라   '반야는 형상이 없는지라 
無生滅相이라하시고  생멸의 모습이 아니라' 하시고, 
起信論에 云하사대  기신론(起信論)에 말씀하시기를 
眞如自體는   '진여의 자체는 
一切夫聲聞緣覺菩薩諸佛이  온갖 범부·성문·연각·보살·부처에 
無有增減하야  증감(增減)이 없어서 
非前際生이며 非後際滅이니  예전에 생긴 것도 아니며 
미래에 멸할 것도 아닌지라, 
畢竟常恆하야 從本以來로  끝내 항상하여 원래부터 
性自滿足一切功德이라하시니  성품 스스로가 온갖 공덕을 갖추었다' 하시니, 
據此經論컨댄  이런 경론(經論)에 의하건대 
眞心本體가 超出因果하며  참마음의 본체는 인과를 뛰어났으며 
通貫古今이로다  고금(古今)을 꿰뚫었도다. 
不立聖하야 無諸對待호미  범부와 성인을 세우지 않아서 상대할 것 없음이 
如太虛空이 徧一切處인달하야  마치 허공이 모든 곳에 두루한 것 같아서
妙體凝寂하야 諸戱論이로다  묘한 본체는 조용하고 고요하여 
온갖 장난말(戱論)이 끊겼느니라. 
不生不滅하며 非有非無하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不動不搖하야 湛然常住하나니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아서 
고요히 항상 머무나니, 
喚作舊日主人翁이라하며 옛날의 주인옹(主人翁)이라 부르며, 
亦名威音那畔人이며  위음왕 이전의 사람[威音那畔人]이라고도 부르며, 
亦名空劫前自己어니와  공겁(空劫=천지창조 이전) 이전의 
자기라고도 부르거니와 
一種平懷하면 無纖毫瑕翳니라  한 생각 평탄하면 털끝만치의 티도 없느니라. 
一切山河와 草木叢林과  온갖 산천과 초목과 숲과 
萬像森羅와 染淨諸法이  삼라만상과 온갖 더럽고 깨끗한 법들이 
皆從中出하나니  모두가 그 속에서 흘러나왔나니, 
故로 圓覺經에 云하사대  그러므로 원각경(圓覺經)에 말씀하시기를 
善男子야 無上法王이   '선남자(善男子)야, 위없는 법왕(法王)이 
有大陀羅尼門하니 名爲圓覺이라  큰 다라니문(陀羅尼蚊)이 있으니 
원각이라 이름한다. 
流出一切淸淨한 眞如 菩提 涅槃과  온갖 청정한 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及波羅密이 敎授菩薩라하시고  바라밀을 흘려내 보살들을 가르친다' 하시고, 
圭峰이 云하사대  규봉(圭峰)이 말하기를 
心也者는 冲虛妙粹하고   '마음이란 텅 비어 순수하게 묘하고, 
炳煥靈明하야  환하여 신령스럽게도 밝아서 
無去無來라 冥通三際하고  가고 옴이 없는지라 
가만히 三제(際=과거·현제·미래)에 통하고, 
非中非外라 洞徹十方이로다  중간도 밖도 아닌지라 
환하게 十방(方)을 뚫었도다. 
不生不滅커니 豈四山之可害며  나지도 멸하지도 않거니 
어찌 네 산(四山)이 가히 해칠 수 있으며, 
離性離相커니  성품도 형상도 멸했거니 
奚五色之能盲이리요하며  어찌 다섯 빛[五色]이 
능히 어둡힐 수 있으리요' 하였느니라. 
永明唯心訣에 云하사대  또 영명(永明)의 유심결(唯心訣)에 이르기를 
夫此心者는 衆妙群靈이   '이 마음은 뭇 묘함과 모든 신령함이 
普會라 爲萬法之王이요  모두 모였는지라 만법의 왕이 되고, 
三乘五性이 冥歸라  三승(乘)과 五성(性)이 가만히 의지하는지라 
作千聖之母로다  천 성인의 어미가 되도다. 
獨尊獨貴하며 無比無儔하니  홀로 높고 홀로 귀중하여 
견줄 이도 짝할 이도 없으니, 
實大道之源이며 是眞法之要로다  실로 대도(大道)의 근원이며 참법의 골수로다. 
信之則三世菩薩의  믿는다면 三세의 보살이 
同學이 盖學此心也요  함께 배운 것이 바로 이 마음을 배운 것이요, 
三世諸佛의 同證이 盖證此心也요  三세의 부처가 같이 증득한 것이 
이 마음을 증득한 것이요, 
一大藏敎의 詮顯이 盖顯此心也요  일대장교(一大藏敎)가 표현한 것이 
이 마음을 표현한 것이요, 
一切衆生의 迷妄이 盖迷此心也요  모든 중생의 미혹함이 
이 마음을 미혹한 것이요, 
一切行仁의 發悟가 盖發此心也요  모든 수행인의 깨달음이 
이 마음을 깨달은 것이요, 
一切諸祖의 相傳이 盖傳此心也요  모든 조사들의 서로 전함이 
이 마음을 전한 것이요, 
天下行者의 叅訪이  천하의 납자(衲子)들이 두루 참문하는 것이 
盖叅此心也니라  이 마음을 참구하는 것이로다. 
達此心則頭頭 皆是며  이 마음을 통달하면 물건마다 다 옳으며 
物物全彰이요  일마다에 완전히 드러나고, 
迷此心則處處顚倒요  이 마음을 미혹하면 곳곳에 뒤바뀌고 
念念痴狂이로다  생각마다 미치광이가 되리라. 
此體는 是一切衆生의  이 본체는 모든 중생이 
本有之佛性이며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이며, 
乃一切世界의 發生之根源이로다  모든 세계가 생겨난 근원이로다 
故로 世尊이 鷲峰에 良久하시고  그러므로 부처님이 
축봉(鷲峰)에서 침묵(良久)하시고, 
善現이 岩下에 忘言하시며  선현(善現)이 바위 밑에서 말을 잊으셨으며 
達磨 少室에서 壁觀하시고  달마(達磨)는 소실(少室)에서 벽을 관하시고, 
居士 毘耶에 杜口라하시니  유마거사는 비야리(毗耶離) 성에서 
입을 다무셨다' 하시니, 
皆悉發明此心妙體시니라  모두가 이 마음의 묘한 본체를 밝히신 것이니라. 
故로 初入祖門庭者는  그러므로 처음으로 조사의 문 안에 들어온 이는 
要先識此心體也니라 반드시 먼저 이 마음의 본체를 알아야 하느니라. 
 四. 眞心妙用  4) 참마음의 묘한 작용
或이 曰 妙體는 已知어니와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의 묘한 본체는 알았거니와 
何名妙用耶오  어떤 것이 묘한 작용인가?” 
曰 古人이 云하사대  대답이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風動心搖樹하고 雲生性起塵이라   '바람이 움직이면 마음이 나무를 흔들고, 
구름이 일면 성품 위에 티끌이 인다. 
若明今日事하면  오늘의 일을 밝힌다면 
昧却本來人이라하니  본래의 사람을 어둡힌다' 하시니, 
此乃妙體起用也니라  이것이 묘한 본체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眞心妙體는 本來不動하야  참마음의 묘한 본체는 본래 움직이지 않아서 
安靜眞常이나  평안하고 고요하고 참되고 항상하거니와 
眞常體上에 妙用現前하니  참되고 항상한 본체 위에 
묘한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니 
不妨隨流得妙로다  흐름에 따라 묘함을 얻음이 무방하리라. 
故로 祖師頌云하사대  그러므로 조사께서 이렇게 송(頌)하셨다. 
心隨萬境轉이나  마음이 경계를 따라 바뀌나 
轉處悉能幽라  바뀌는 곳마다 그윽하도다. 
隨流認得性하면  흐름을 따라 성품을 바로 알면 
無喜亦無憂라하시니  기쁨도 근심도 모두 없으리. 
故로 一切時中에 動用施爲호대  그러므로 항상 움직이고 분별하되 
東行西往하며 喫飯着衣하며  동으로 가고 서쪽으로 옮기며, 
밥먹고 옷을 입으며 
拈匙弄箸하며  숫갈을 들고 저를 잡으며, 
左顧右盻이 皆是眞心의  왼쪽과 오른쪽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皆是眞心의 妙用現前이어늘  모두가 참마음의 
묘한 작용이 앞에 나타난 것이거늘, 
凡夫는 迷倒하야  범부는 미혹하여 
於着衣時에 只作着衣會하며  옷 입을 때엔 다만 옷 입는다는 생각만 하고 
喫飯時에 只作喫飯會하나니  밥 먹을 때엔 다만 밥먹는다는 생각만 하나니, 
一切事業이 但隨相轉일새  모든 사업이 다만 형상만 따라 움직이므로 
所以로 在日用而不覺하며  일상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在目前而不知로다  눈 앞에 있건만 알지 못하는도다. 
若是識性之人인댄  만일 성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動用施爲에 不曾昧却이니라  움직이고 분별할 때에 전혀 매(昧)하지 않느니라. 
故로 祖師云하사대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在胎名神이요 處世名人요   '태에 있으면 정신이라 하고, 
세상에 있으면 사람이라 하고, 
在眼觀照이요 在耳聽聞이요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고, 
在鼻辨香이요 在口談論이요  코에 있으면 맡는다 하고, 
입에 있으면 말한다 하고, 
在手執捉이요 在足運奔이니  손에 있으면 잡는다 하고, 
발에 있으면 달린다 하나니, 
徧現하야는 俱該沙界하고  두루 나타나면 법계에 꽉 차고 
收攝하야는 在一微塵이니라  거두어 모이면 한 티끌에 들어간다. 
知之者는 爲是佛性이어니와  아는 이는 불성인 줄 알거니와 
不識者는 喚作精魂이라하시니  모르는 이는 영혼(精魂)이라 한다' 하시니, 
所以로 道吾의 舞笏과  그러므로 도오(道吾)가 홀(笏)을 들어 춤추었고, 
石鞏의 拈弓과 秘魔의 擎杖과  석공(石鞏)이 활(弓)을 들었고, 
비마(秘魔)가 작대기(杖)를 휘둘렀고, 
의 竪指와 忻州의 打地와  구지(俱)가 손가락을 세웠고, 
흔주(忻州)가 땅을 쳤고, 
雲岩의 獅子가  운암(雲岩)이 사자를 놀린, 
莫不發明這箇大用이니  이 모두가 이 큰 작용을 드러낸 것이니라. 
於日用에 不迷하면  일상생활에 미혹하지 않으면 
自然縱橫無礙하니라  자연히 가로 세로에 걸림이 없으리라.” 
 五. 眞心體用一異  5)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은 같은가 다른가
或曰 未審커라  어떤 이가 물었다. "묻노라, 
眞心體用은 是一是異耶아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은 하나인가 다른가?” 
曰 約相則非一이요  대답이라. 
"형상으로 보면 하나가 아니요, 
約性則非異니라  성품으로 보면 다르지 않느니라. 
何以知然고 試爲論之호리라  어째서 그런줄 알겠는가? 
시험삼아 변론하리라. 
妙作不動하야  묘한 본체는 요동치 않아서 
諸對待하야 離一切相이니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온갖 형상을 여의었으니, 
非達性契證者면 莫測其理也니라  성품을 통달하여 깨달음에 계합한 이가 아니면 
그 이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妙體隨緣하야 應諸萬類어든  묘한 본체가 인연을 따라 
만가지 형태에 응하거든 
妄立虛相하야 似有形相하나니  망녕되게도 허망한 형상을 세워서 
형상이 있는 듯이 여기나니, 
約此有相無相故로 非一也니라  이렇게 형상있음과 없음에 의하므로 
하나가 아니니라. 
又用從體發이라 用不離體하고  또 작용은 본체로부터 일어났는지라 
작용이 본체를 여의지 않았고 
體能發用이라 體不籬用하나니  본체가 능히 작용을 일으키는지라 
본체가 작용을 여의지 않나니, 
約此不相離故로 非異也니라  이렇게 서로 여의지 않음에 의하여 
다르지 않느니라. 
如水는 以濕으로 爲體하나니  마치 물은 습기(濕)로써 본체를 삼나니 
體無動故요  본체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요, 
波는 以動으로 爲相하나니  파도는 움직임으로써 형상을 삼나니 
因風起故니라  바람을 인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水性波相이  물의 성품과 파도의 성품이 
動與不動인 故로 非一也니라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 때문에 
하나가 아니니라. 
然이나 波外에 無水하고  그러나 파도 밖에 물이 없고 
水外에 無波라  물 밖에 파도가 없는지라, 
濕性이 是一인 故로 非異也니  습기의 성품은 하나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으니, 
體用一異를 可知矣로다  본체와 작용의 하나와 다름을 
가히 알수 있으리라.” 
 六. 眞心在迷  6) 참마음이 미혹 속에 있음
或이 曰 眞心體用이 人人具有인댄  어떤 이가 말했다.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사람마다에 갖추어져 있다면 
何爲聖凡不同耶오  어찌하여 범부와 성인이 같지 않는가?” 
曰 眞心은 聖凡이 本同이언만  대답이라. 
"참마음은 범부와 성인이 같건만 
凡夫는 妄心認物일새  범부는 망녕된 마음으로 물건을 오인하기 때문에 
失自淨性이니라 爲此所隔일새  스스로의 맑은 성품을 잃었느니라. 
이것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所以로 眞心이 不得現前호미  참마음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 
如 暗中樹影과 地下流泉하야  마치 어두움 속의 나무 그림자와 
땅 속의 샘줄기 같아서 
有而不識이니라  있으되 알지 못하는 것 같으니라. 
故로 經에 云하사대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善男子야 譬如淸淨摩尼寶珠가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청정한 마니(摩尼) 구슬에 
映於五色하야 隨方各現커든  다섯 가지 빛깔이 비치어 
방향마다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거늘 
諸愚痴者는 見彼摩尼에  어리석은 무리는 그 마니 구슬에 
實有五色인달하니라  실제로 그러한 빛깔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으니라. 
善男子야 圓覺淨性이  선남자야, 원각의 맑은 성품이 
現於身心하야 隨類各應커든  몸과 마음으로 나타나서 
종류 따라 제각기 다르게 응하거늘, 
彼愚痴者는 說淨圓覺에  어리석은 무리는 맑은 원각에 
實有如是身心自性이라함도  실로 그러한 몸과 마음의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亦復如是라하시며  이와 같다' 하셨으며, 
肇論에 云하사대  조론(肇論)에 말씀하시기를 
乾坤之內와 宇宙之間에   '하늘과 땅 사이와 우주(宇宙) 안에 
中有一寶가 秘在形山이라하니  한 보배가 몸뚱이의 산속에 감춰져 있다' 하시니, 
此는 乃眞心이 在也니라 이것이 곧 참마음이 
얽매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니라. 
又 慈恩이 云하사대  또 자은(慈恩)이 말하기를 
法身이 本有하야   '법신이 본래부터 있어서 
諸佛凡夫가 共同이언만  부처님과 범부들이 꼭 같건만 
由有妄覆하야  허망함이 가리워져서 
而不覺煩惱裏할새  번뇌에 얽혔음을 깨닫지 못하므로 
得如來藏名이라하며  여래장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였으며, 
裵公이 云하사대  배공(裵公)이 말하기를 
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는   '종일토록 원각이로되 
일찍이 원각이 되지 못하는 것은 
凡夫也라하니  범부라' 하니, 
故知眞心이 雖在塵勞나  그러므로 참마음은 
비록 번뇌 속에 가리워져 있으나 
不爲塵勞의 所染호미  번뇌에 물들지 않음이 
如白玉을 投泥에  마치 백옥을 진흙에 던져도 
其色이 不改也인달하니라 그 빛은 변하지 않는 것 같음을 알 수 있느니라.” 
 七. 眞心息妄  7) 참마음엔 망혹이 없다
或이 曰 眞心이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이 
在妄則是凡夫어니  공부(功夫)할 대상이라면 범부이거늘 
如何得出妄成聖耶아  어떻게 망(妄)에서 벗어나서 
성인을 이루겠는가?” 
曰 古云호대  대답이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妄心無處가 即菩提요   '허망한 마음이 다한 곳이 곧 보리요, 
生死涅槃이 本平等이라하며  생사와 열반이 원래 평등하다' 하였으며, 
經에 云하사대  경에 말씀하시기를 
衆生의 幻身이 滅故로   '중생의 허환(虛幻)한 몸이 멸하는 까닭에 
幻心이 亦滅하고  허환한 마음도 멸하고, 
幻心이 滅故로 幻塵이 亦滅하며  허환한 마음이 멸하는 까닭에 
허환한 티끌도 멸하고, 
幻塵이 滅故로 幻滅이 亦滅하며  허환한 티끌이 멸하는 까닭에 
허환함이 멸했다는 것도 멸하고, 
幻滅이 滅故로 非幻은 不滅하나니  허환함이 멸했다는 것이 멸하는 까닭에 
허환 아닌 것은 멸하지 않나니, 
譬如磨鏡에 垢盡明現이라하시며  비유하건대 거울을 갈 때에 녹[垢]이 다하면 
광명이 나타나는 것 같다' 하셨으며, 
永嘉 云하사대  영가(永嘉)가 또 말하기를 
心是根이요 法是塵이라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兩種이 猶如鏡上痕이라  두가지는 마치 거울 위의 먼지 같다. 
痕垢盡時에 光始現이요  먼지와 때가 다할 때에 
광명은 비로소 나타나고, 
心法雙忘에 性即眞이라하니  마음과 법을 모두 잊을 때에 
성품은 곧 참되어진다' 하니, 
此乃出妄而成眞也니라  이것이 곧 망을 벗어나서 
참을 이루는 모습이니라.” 
或曰 莊生이 云호대  그가 또 물었다. 
"장생(莊生=장자)이 말하기를 
心者는 其熱이 焦火하고   '마음이란 뜨거움이 불을 태우고, 
其寒이 凝氷하며  차가움이 얼음을 얼리며, 
其疾이 俛仰之間에  빠름이 구부렸다 펴는 사이에 
再撫四海之外하며  四해의 밖을 두 차례 더듬고, 
其居也에 淵而靜하고  멈춤이 깊고도 고요하고, 
其動也에 懸而天者는  움직임이 멀고도 높은 것은 
其唯人心乎저하니  사람의 마음 뿐이로다' 하였으니, 
此는 莊生이  이는 장생이 
先說凡夫心不可治伏이 如此也니  범부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고 이미 설파한 것이어늘 
未審커라 宗門에는  종문(宗門=선문)에서는 
以何法으로 治妄心也오  어떤 법으로 허망한 마음을 다스리는가?” 
曰 以無心法으로 治妄心也니라  대답이라. “무심(無心)의 법으로 
망심(妄心)을 다스리느니라.” 
或이 曰  그가 다시 물었다. 
人若無心이면 便同草木하니  "사람이 무심이 되면 초목과 같게 될 것이니, 
無心之說을 請施方便하소서  무심이란 말씀에 대하여 
방편을 베풀어 주시오.” 
曰 今云無心者는  대답이라. “이제 무심이라 한 것은 
非無心體를 名無心이라  마음의 본체가 없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但心中無物을 名無心이니  마음 속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무심이라 할 뿐이다. 
如言空甁에  마치 빈병(空甁)을 말할 때, 
甁中無物을 曰 空甁이요  병 속에 물건 없는 것을 빈병이라 하고, 
非甁體無를 名 空甁也니라  병 자체가 없는 것을 
빈병이라 하지 않는 것 같다. 
故로 祖師 云하사대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汝但於心에 無事하며   '그대가 다만 마음에 일이 없고, 
於事 無心하면  일에 마음이 없으면 
自然虛而靈하며 寂而妙라하니  자연히 텅비어 신령스럽고 고요하여 
묘하리라' 하시니, 
是此心旨也니라  이것이 이 마음의 이치니라. 
據此則以無妄心이언정  이에 의하건대 허망한 마음이 없을지언정 
非無眞心妙用也니라  참마음의 묘한 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從來祖師가 說做無心工夫하사대  예부터 여러 스님네가 
무심의 공부를 말씀하신 종류가 
類各不同하니  각각 같지 않았으니 
今總大義하야 畧明十種호리라  이제 그 대의를 총괄하여 열 부문으로 밝히리라. 
一曰 覺察이니  첫째는 깨달아 살핌[覺察]이니, 
謂做工夫時에 平常念하야  즉 공부를 할 때에 항상 잡념을 끊어서 
隄防念起호대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니라. 
一念이 纔生이어든 便與覺破호리니  한 생각이 생기기만 하면 
당장 깨달아서 깨뜨려야 하나니, 
妄念破覺하면 後念이 不生하니라  허망한 생각을 깨달아 깨뜨리면 
뒷생각이 나지 않으리라. 
此之覺智도 亦不須用이니  이 깨닫는 지혜도 쓰지 말지니, 
妄覺俱忘을 名曰無心이니라  허망함과 깨달음을 모두 잊는 것을 
무심이라 하느니라. 
故로 祖師云하사대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不怕念起하고 唯恐覺遲라하며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늦을까를 걱정하라' 하였으며, 
又偈云호대  또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不用求眞하고 唯須息見이라하니   '참[眞]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소견을 쉬도록 하라' 하셨으니, 
此是息妄功夫也니라  이것이 허망을 쉬는 공부니라. 
二曰 休歇이니  둘째는 쉼[休歇]이니, 
謂做工夫時에 不思善不思惡하고  즉 공부할 때에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고, 
心起便休하며 遇緣便歇이니라  마음이 일어나면 곧 쉬며 
반연(緣)을 만나거든 역시 쉬는 것이니라. 
古人이 云하사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一條白練去하며 冷湫湫地去하며   '한 가닥의 베(布)를 희게 다듬듯, 
싸늘하여 가을비 내리듯, 
古廟裡香去라하니  옛날 사당[古廟] 안의 향로 같이 하라' 하였으니, 
直得纖塵離分別하야  고운 먼지까지 끊고 분별을 떠나 
如痴似兀하야사 方有少分相應하리니  바보 같고 천치 같이 되어야 
바야흐로 조그만치 마주치게 되느니라. 
此是休歇妄心工夫也니라  이것이 망심을 쉬는 공부니라. 
三曰 泯心存境이니  셋째는 마음을 없애고 경계를 남기는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一切妄念을  즉 공부할 때에 온갖 망념을 모두 쉬어서 
俱息하야 不顧外境하고  바깥 경계를 돌아보지 않고 
但自息心이니  다만 자기의 마음 만을 쉬는 것이니라. 
妄念이 已息이면 何害有境이리요  허망한 생각이 이미 쉬었으면 
경계가 남았은들 무슨 방해로움이 있으리요? 
即古人의 奪人不奪境法門也니라  이는 곧 옛어른의 말씀이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는다'는 법문이니라. 
故로 有語云호대  그러므로 누군가가 말하기를 
是處에 有芳草호대   '여기에 꽃다운 풀밭이 있으되 
滿城에 無故人이라하며  다정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하셨고, 
又龐公이 云호대  또 방공(龐公)이 말하기를 
但自無心於萬物하면   '다만 만물에 대하여 무심하기만 하다면 
何妨萬物常圍繞리요하니  만물이 항상 둘러싸였은들 
무슨 방해 있으리요?' 하였으니, 
此是泯心存境息妄工夫也니라  이것이 마음을 없애고 경계를 남기어 
망을 쉬는 공부니라. 
四曰 泯境存心이니  넷째는, 경계를 잊고 마음을 남기는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將一切內外諸境하야  즉 공부할 때에 안팎의 모든 경계를 
悉觀爲空寂하고  모두가 공적하다고 관찰하고 
只存一心하야 孤標獨立이니  오직 한 마음만을 남겨서 
외로이 우뚝 세우는 것이니라. 
所以로 古人이 云호대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不與萬法으로 爲侶하며   '만법(萬法)과 더불어 짝되지 말고, 
不與諸塵作對라하니  모든 경계와 상대되지 말라. 
心若著境하면 心即是妄이어니와  마음이 경계에 집착하면 마음이 허망하겠지만 
今旣無境이어니 何妄之有이리요하니  이제 경계가 없거니 
무슨 허망함이 있으리요?' 하니, 
乃眞心이 獨照하야 不礙於道라  참마음이 홀로 비추어서 
도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 
即古人의 奪境不奪人也니라  이는 곧 옛사람이 말하기를 
 '경계를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다'한 것이니라. 
故로 有語云호대  그러므로 어떤 이가 말하기를 
上園에 花已謝호대   '좋은 동산에 꽃은 이미 졌건만 
車馬尙駢이라하며  사람과 수레는 여전히 붐빈다' 하였고, 
又云호대  또 말하기를 
三千劒客이 今何在오   '三천 명의 검객(劍客)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獨計莊周定太平이라하니  장주(莊周)가 태평세계 이룰 것만 
홀로 계교하도다' 하니, 
此是泯境存心息妄功夫也니라  이것이 경계를 잊고 마음을 남기는 
마음 쉬는 공부니라. 
五曰 泯心泯境이니  다섯째는 마음과 경계를 모두 잊는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先空寂外境하고  즉 공부할 때에 먼저 바깥 경계를 비우고 
次滅內心이니  다음에 안으로 마음을 멸하는 것이니라. 
旣內外心境俱寂이어니  이미 안팎으로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고요해졌거늘 
畢竟妄從何有리요  끝내 허망이 어디서 생기리요? 
故로 灌溪云하사대  그러므로 관계(灌溪)가 말하기를 
十方에 無壁落이요 四面에 亦無門이라   '방에 벽(壁)이 없고 사방에 문(門)도 없어 
躶躶赤灑灑라하니  벌거벗은 듯, 맑아 씻은 듯하다' 하였으니, 
即祖師의 人境兩俱奪法門이  이는 조사들이 말한 '사람과 경계를 
是也니라  모두 빼앗는다'는 법문이다. 
故로 有語云하사대  그러므로 누군가가 말하기를 
雲散水流去하니   '구름이 흩어지고 물이 흘러가니 
寂然天地空이라하며  고요하여 천지가 비었다' 하며, 
又云하사대 人牛를 俱不見하니  또 말하기를 '사람과 소를 모두 불 수 없으니 
正是明月時라하니  바야흐로 달 밝을 때라' 하니, 
此는 泯心泯境息妄功夫也니라  이는 마음과 경계를 모두 잊어 
허망을 쉬는 공부니라. 
六曰 存心存境이니  여섯째는 마음과 경계를 모두 남기는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즉 공부할 때에 
心住心位하고 境住境位하야  마음이 마음의 지위에 머무르고 
경계가 경계의 지위에 머물러서 
有時에 心境이 相對하야도  때로는 마음과 경계가 마주쳐도 
則心不取境하며 境不臨心하야  마음이 경계를 취하지 않으며, 
경계가 마음을 따르지 않아 
各不相到하면  제각기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自然妄念이 不生하고  자연히 망념이 생기지 않고 
於道에 無礙하리라  도에 걸림이 없으리라. 
故로 經에 云하사대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是法이 住法位하야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世間相이 常住라하시니  세간의 모습이 항상 머문다' 하시니, 
即祖師의 人境俱不奪法門이  이는 곧 조사께서 말하기를  '사람과 경계를 
是也라  모두 배앗지 않는다'한 법문이니라. 
故로 有語云하사대  그러므로 어떤 이가 말하기를 
一片月生海하니 幾家人上樓오하며   '한 조각의 달이 바다 위에 떠오르니 
몇 사람이나 누대 위로 오르던가?' 하고, 
又云호대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山花千萬㭆에 遊子不知歸라하니   '산의 꽃 천 만 떨기에 한량들은 
돌아갈 줄 모르더라' 하니, 
此是在境存心滅妄功夫也니라  이것이 마음과 경계를 모두 남기고 
망(妄)을 멸하는 공부니라. 
七曰 內外全體니  일곱째는 안팎이 완전히 본체인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즉 공부할 때에 
於出河大地日月星辰과  산·강·땅·해·달·별·몸·세계 등 모든 법이 
內身外器一切諸法이 同眞心體하야  다같이 참마음의 본체가 되는 것이니라. 
湛然虛明하야 無一毫異하야  말끔히 비고 밝아서 한 터럭의 차이도 없어서 
大千沙界를 打成一片이면  대천세계(大千世界)를 한 조각으로 만든다면 
更於何處에 得妄心來리요  다시 어느 곳에서 망심(妄心)이 생길수 있으리요? 
所以로 肇法師云하사대  그러므로 조법사(肇法師)가 말하기를 
天地與我同根이요   '하늘·땅이 나와 같은 근원이요, 
萬物이 與我一體라하니  만물(萬物)이 나와 한 몸이라' 하니, 
此是內外全體滅妄功夫也니라  이것이 안팎이 완전히 본체가 되어 
망을 멸하는 공부니라. 
八曰 內外全用이니  여덟째는 안팎이 완전히 작용(用)인 공부이니, 
謂做工夫時에  즉 공부할 때에 
將一切內外身心器界諸法과  온갖 안팎의 몸과 마음과 국토 등 모든 법과 
及一切動用施爲하야  그리고 온갖 활동을 통털어서 
悉觀作眞心妙用이니  모두를 참마음의 묘한 작용이라고 
관(觀)하는 것이니라. 
一切心念纔生이면  온갖 생각이 생기자마자 
便是妙用現前이라  그대로가 곧 묘한 작용이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 
旣一切皆是妙用이어니  이미 모든 것이 다 묘한 작용이거니 
妄心이 向甚麽處安着고  허망한 마음이 어디에 붙을 수 있으랴? 
故로 永嘉 云하사대  그러므로 영가(永嘉)께서 말씀하시기를 
無明實性이 即佛性이요   '무명의 진실한 성품이 곧 부처 성품[佛性]이요 
幻化空身이 即法身이라하고  허깨비 같이 빈 몸이 곧 법신이라' 하시고 
誌公의 十二時歌에 云하되  지공(誌公)의 十二시가(時歌)에 말하기를 
平旦寅이여 狂機內隱道人身이로다   '첫새벽 인시(寅時)여, 
미친 탈춤 속에 도인(道人)의 몸이 숨었도다. 
坐臥不知元是道하고  앉고 누움이 원래 도인줄 모르고 
只麽忙忙受苦辛가하니  공연히 바쁘게 고통만 부르도다' 하시니, 
此是內外全用息妄功夫也니라  이것이 안팎이 완전히 작용하여 
망을 쉬는 공부니라. 
九曰 即體即用이니  아홉째는 본체 그대로가 작용인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즉 공부할 때에 
雖冥合眞體一味空寂이나  참 본체의 한맛[一味]인 공적에 부합하나 
於中에 內隱靈明이니  그 가운데 안으로 신령하고 맑음을 
乃體即用也라  숨기는 것으로서 곧 본체가 곧 작용인 것이니라. 
故로 永嘉云하사대  그러므로 영가께서 말씀하시기를 
惺惺寂寂은 是요 惺惺妄想은 非며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은 옳고, 
성성하고 망상(妄想)함은 그르며, 
寂寂惺惺은 是요 寂寂無記는 非라하니  적적하고 성성함은 옳고, 
적적하고 무기(無記)함은 그르다' 하니, 
旣寂寂中에 不容無記하고  이미 적적한 가운데 무기를 용납치 않고 
惺惺中에 不容亂想이면  성성한 가운데 망상을 용납치 않으면 
所有妄想이 如何得生이리요  온갖 망상이 어찌 생길 수 있으리요? 
此是即體即用滅妄功夫也니라  이것이 본체 그대로가 작용이어서 
망을 멸하는 공부니라. 
十曰 透出體用이니  열째는 본체와 작용을 뛰어나는 공부니, 
謂做工夫時에 不分內外하며  즉 공부할 때에 안팎을 나누지 않으며 
亦不辨東西南北하야  동·서·남·북도 가리지 않는 것이니라. 
將四方八面하야  사방과 팔면을 
只作一箇大解脫門이니  몽땅 하나의 큰 해탈문(解脫門)으로 삼아 
圓陀陀地하야 體用不分하야  둥글둥글하여 본체와 작용을 나누지 않고 
無分毫漏하야 通身打成一片이면  털끌만치의 누락도 없이 
온몸으로 한 조각을 이루면 
其妄이 何處得起리요  망심이 어디서 일어나리요? 
古人이 云하사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通身無縫䋆라 上下忒團이라하니   '온몸에 꿰맨 자국이 없는지라 
위아래가 온통 한 덩어리라' 하니, 
是乃透出體用滅妄功夫也니라  이것이 본체와 작용을 뛰어나 
망심을 멸하는 공부니라. 
己上十種做功夫法은  이상의 열가지 공부하는 법을 
不須全用이니  다 쓸 필요가 없으니, 
但得一門하야 功夫成就하면  다만 한 부문만을 찾아서 공부가 익어지면 
其妄이 自滅하고  망혹이 저절로 사라지고 
眞心이 即現하리니  참마음이 즉시에 나타나리니, 
隨根宿習하라  근기와 전생 습성에 따르되 
曾於何法에 有緣고하야  어느 법에 인연이 맞는지를 
即便習之어다  살펴서 익힐지어다. 
此之功夫는 乃無功之功이요  이 공부는 공용없는 공부요 
非有心之功力也니라  마음 두고 하는 공부가 아니니, 
此箇休歇妄心法門이 最緊要故로  이들 망심 쉬는 법문이 가장 긴요하므로 
偏多說하노니 無文繁也어다  치우쳐 많이 말하였으니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말지어다.” 
 八. 直心四儀  8) 참마음을 닦는 네가지 위의
或이 曰 前說息妄하니  어떤 이가 물었다. 
"앞에서 망심 쉬는 법을 말씀하셨거니와 
未審커라 但只坐習가  다만 앉아서만 익히는가? 
亦通行住等가  아니면 다니고 멈출 때에도 통하는가?” 
曰 經論에 多說坐習하니  대답이라. "모든 경과 논에서 
앉아서 익히는 법을 많이 말씀하셨으니, 
所以易成故요 亦通行住等이니  이루기가 쉽기 때문이요, 
다니거나 멈출때에도 통한다 하였으니 
久久漸成純熟故니라  오래오래 익혀야 점점 익어지기 때문이니라. 
起信論에 云하사대  기신론(起信論)에 말씀하시기를 
若修止者는 住於靜處하야   '만일 지(止=선정)를 닦으려거든 
고요한 곳에 머물러서 단정히 앉아 
端坐正意하야 不依氣息하며  뜻을 바르게 하고, 
기운이나 호흡에 의하지 말며 
不依形色하며 不依於空하며  형상이나 빛에도 의하지 말며 
허공에 의하지도 말며 
不依地水火風하며  지·수·화·풍에도 의하지 말며, 
乃至不依見聞覺知하고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에도 의지하지 말고 
一切諸想을 隨念皆除호대  온갖 망상을 생각나는대로 모두 제하되 
亦遣除想이니  제한다는 생각도 버릴지니 
以一切法이 本來無想일새니라  온갖 법이 본래 망상이 없기 때문이니라. 
念念不生하며 念念不滅하나니  생각생각에 나지 않고 
생각생각에 멸하지 않나니, 
亦不得隨心하야 外念境界後에  마음을 따라 바깥 경계도 생각치 않은 뒤에야 
以心除心이어다  마음으로 마음을 제할지어다. 
心若馳散이어든 即當收來하야  만일 마음이 흩어지거든 곧 거두어 와서 
住於正念이니라  정념(正念)에 머물라. 
是正念者는  이 정념이란 것은 
當知唯心이요 無外境界니  오직 마음 뿐이요 바깥 경계가 없나니 
即復此心이 亦無自相하야  이 마음은 제 모습마저도 없어서 
念念不可得이니라  생각생각에 얻을 수 없느니라. 
若從坐起하야 去來進止하며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고 물러가며, 
有所施作이라도  온갖 분별동작을 하더라도 
於一切時에 常念方便하야  언제나 항상 방편을 생각해서 
隨順觀察하야 久習純熟하면  분수에 따라 관찰해서 
오래 익히어 순일하게 익어지면 
其心이 得住하리라  그 마음이 머물러지리라. 
以心住故로 漸漸猛利하야  마음이 멈추었으므로 차츰 용맹해져서 
隨順得入眞如三昧하야  분수에 따라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서 
深伏煩惱하며  번뇌를 깊이 굴복시키며 
信心이 增長하야 速成不退하리니  신심이 늘어나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속히 이루려니와 
唯除疑惑과 不信誹謗하는  오직 의혹하는 자와 믿지 않고 비방하는 자와 
重罪業障과 我慢解怠이니  무거운 죄업이 가리운 자와 
아만으로 게으른 자만은 제외하나니 
如是等人은 所不能入이라하시니  이런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으니, 
據此則通四威儀也니라  이에 의하건대 네가지 위의에 통했느니라. 
圓覺經에 云하사대  원각경(圓覺經)에 말씀하시기를 
先依如來奢摩他行하야   '먼저 여래의 사마타(奢摩他)의 행에 의지해서 
堅持禁戒하며  계율을 굳게 지키며 
安處徒衆하야 宴坐靜室이라하니  대중 속에 머무르거나 
조용한 방에 가만히 앉으라' 하시니, 
此 初習也요  이는 처음 익히는사람을 위함이라. 
永嘉 云하사대  영가(永嘉)께서 말씀하시기를 
行亦禪坐亦禪이라   '다닐 때에도 선이요, 앉을 때에도 선이라, 
動靜에 體晏然이라하니  말하거나 침묵할 때와 움직이거나 고요할 때에도 
본체는 언제나 태연하다' 하시니, 
據此컨대 亦通四儀로다  이에 의거하건대 역시 네가지 위의에 통하였도다. 
總論功力컨대 坐尙不能息心이온  공부의 힘을 총괄하여 말하건대 
앉아서도 마음을 쉬기 어렵거늘 
行住等에 豈能入道耶리요  하물며 다니고 멈추는 등에서 
어찌 능히 도에 들 수 있으리요? 
若是用得純熟底人인댄  그러나 공부의 작용이 
순일하게 익어진 사람이라면 
千聖이 興來라도 驚不起요  천 성인이 나타나더라도 꼼짝도 하지 않고 
萬般魔妖라도 不廻顧어늘  만 가지 마가 나타나더라도 돌아보지도 않거늘 
行住坐中에  어찌 다니고 멈추고 앉는 사이에 
不能做工夫也리요  공부를 할 수 없으리요? 
如人이 欲讎恨於人이라도  마치 어떤 사람이 남에게 원수를 갚으려 해도 
乃至 行住坐臥와 飮食動用과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고 음식을 드는 등, 
一切時中에 不能忘了하며  온갖 동작 사이에 잠시도 잊지 못하며, 
欲愛樂於人이라도 亦復如是하나니  남을 사랑하는 경우도 이와 같나니, 
旦憎愛는 有心中事로대 尙 미움과 사랑은 마음 속의 일이로되 
오히려 그러하거늘 
做工夫乎아  하물며 공부를 하는 자이겠는가? 
若有切信이면  만일 간절한 믿음만 있다면 
四威儀中에 道必不失也리라  네가지 위의 가운데서 
도는 반드시 잃지 않으리라.” 
 九. 眞心所在  9) 참마음이 있는 곳
或이 曰 息妄心而眞心現矣라하니  어떤 이가 말했다. 
"망심을 쉬면 참마음이 나타난다 하니, 
然則眞心體用이 今在何處오  그렇다면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曰 眞心妙體가 徧一切處니  대답이라. “참마음의 묘한 본체가 
온갖 곳에 두루하였나니, 
故로 永嘉 云하사대  그러므로 영가(永嘉)가 말하기를 
不離當處常湛然이나   '제자리[當處]를 여의지 않고 
則知君不可見이라하며  항상 담연(湛然)하나 
찾으면 그대는 보지 못할 줄 알 것이다' 하였으며, 
經에 云하사대  경에 말씀하시기를 
虛空性故며 常不動故며   '허공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항상 요동치 않기 때문이며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하시며  여래장(如來藏) 안에는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기 때문이라' 하시고, 
大法眼이 云하사대  대법안(大法眼)이 말하기를 
處處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하시니   '곳곳마다 보리의 길이요 
일마다 공덕의 숲[功德林]이라' 하시니, 
此則是心體所在也니라  이것이 곧 마음이 있는 곳이니라. 
眞心妙用은 隨感隨現호미  참마음의 묘한 작용은 느낌에 따라 나타남이 
如谷應聲이니라  마치 빈 골짜기에 메아리가 응하는 것 같나니, 
法燈이 云하사대  법등(法燈)이 말하기를 
今古에 應無墜하야 分明在目前이로다   '예나 이제나 감응하심은 줄지 않아 
분명히 눈앞에 있도다. 
片雲은 生晩谷하고  조각 구름은 늦은 골짜기에서 나고 
孤鶴은 下遼天이라하시니  외로운 학(鶴)은 먼 하늘 끝에 내린다' 하니라. 
所以로 魏府老華嚴이 云하사대  그러므로 위부(魏府)의 노화엄(老華嚴)이 말하기를 
佛法이 在日用處하며   '불법이 일상생활 속에 있으며, 
在行住坐臥處하며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데 있으며, 
在喫茶喫飯處하며  차 먹고 밥 먹는 곳에 있으며 
在語言相問處하며  말하고 문답하는 곳에 있으며 
在所作所爲處하니니  동작과 분별하는 곳에 있나니 
擧心動念하면 又却不是也라하시니  마음을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면 
또 옳지 못하다' 하니, 
故知하라 體則徧一切處하야  이것으로써 본체는 온갖 곳에 두루하여 
悉能起用이나  언제나 능히 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나 
但因緣有無不定일새  다만 인연의 있고 없음이 일정치 않은 까닭에 
妙有도 亦不定이어니와  묘한 작용도 역시 일정치 않거니와 
非無妙用也니라  묘한 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修心之人이 欲入無爲海하야  마음을 닦는 사람이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어가서 
度諸生死인댄  모든 생사를 건지려거든 
莫迷眞心體用所在也어다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있는 곳을 
미혹하지 말지니라."
 十. 眞心出死  10) 참마음은 죽지 않음
或이 曰 嘗聞  어떤 이가 물었다. “전에 들으니 
見性之人은 出離生死라하나  성품을 본 사람은 생사(生死)를 벗어난다 하였다. 
然이나 往昔諸祖가 皆有生死하며  그러나 옛날의 조사들이 모두가 생사가 있었으며, 
現見世間修道之人하야도 有生有死하니  현재 세간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생과 사가 있으니, 
云何出生死耶오  어떻게 생사를 벗어나리요?” 
答曰 生死本無어늘  대답이라. “생사가 본래 없거늘 
妄計爲有로다  허망하게 계교하여 있다고 여길 뿐이다. 
如人이 病眼으로 見空中華어든  마치 어떤 사람이 눈병이 나서 
허공에 꽃이 있다고 보거든 
無病人이 說無空華호대  병없는 사람이 말하기를 '허공꽃이 없다' 하나 
病者 不信이라가 目病이 若無하야  병들은 이가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아서 
空華自滅하야사 方信花無하나니  허공꽃이 저절로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허공꽃이 없는 줄로 믿는 것 같나니, 
只花未滅時라도 其花亦空이라  다만 꽃이 사라지기 전이라도 
그 꽃은 공한 것이라 
但 病者妄執爲華언정  오직 병들은 이가 허망하게 꽃이라고 집착할지언정 
非體實有也니라  본체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如人이 妄認生死爲有어든  어떤 사람이 생사가 있는 것이라고 
허망하게 오인하거든 
或無生死人이 告云호대  생사없는 사람이 말하기를 
本無生死라하야도 彼人이 不信이라가   '본래 생사가 없다' 하여도 믿지 않다가 
一朝에 妄息하야 生死自除하야사  하루 아침에 망혹을 쉬어 
생사가 저절로 제해진 뒤에야 
方知生死 本來是無하나니  비로소 생사가 본래 없는 것인 줄로 믿거니와 
然이나 只生死未息時에도  생사를 쉬기 전에도 
亦非實有언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以妄認生死有일새니라  허망하게 생사가 있다고 오인하기 때문이니라. 
故로 經에 云하사대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善男子야 一切衆生이 從無始來로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끝없는 예부터 
種種顚倒호미  갖가지로 뒤바뀜이 
猶如迷人이 四方을 易處인달하야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四방을 바꾸어 선 것 같이 
妄認四大하야 爲自身相하며  사대를 허망하게 오인해서 자기의 몸이라 여기고 
六塵緣影으로 爲自心相하나니  六진의 그림자로 자기의 마음이라 하나니, 
譬彼病目이 見空中華인달하니라  비유하건대 병들은 눈이 
허공 속의 꽃을 보는 것 같으며, 
乃至 如空中華가 滅於虛空에  나아가서는 뭇 허공꽃이 허공에서 멸할 때에, 
不可說言 有定滅處니  일정하게 멸하는 곳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 같으니라. 
何以故오 無生處故니라  무슨 까닭인가? 생기는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一切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滅일새  모든 중생이 생김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멸을 보기 때문에 
是故로 說名輪轉生死라하시니  그러므로 생사에 헤맨다 하느니라' 하시니, 
據此經文컨대  이 경문에 의하건대 
信知達悟圓覺眞心하면 本無生死로다  원각(圓覺)의 참마음을 통달하여 깨달으면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겠도다. 
今知無生死而不能脫生死者는  이제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功夫不到故也니라  공부가 도저(到底)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故로 敎中에 說 庵婆女가 問 文殊云호대  그러므로 교학(敎學)에 암바녀(庵婆女)가 
문수(文殊)에게 묻기를 
明知生死가 是 不生死之法이로대   '생사가 본래 생사치 않는 법인줄 분명히 알면서도 
爲什麽하야 被生死之所流니까하니  어찌하여 생사의 끄달림을 받나이까?' 하니, 
文殊云하사대 其力이 未充故라하며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 힘이 충실치 못하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後有 進山主가 問 修山主云호대  나중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明知生是不生之法이로대   '생(生)이 곧 생 아닌 법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爲甚麽하야 却被生死之所流니꼬  어찌하여 생사의 끄달림을 받나이까?' 하니, 
修云호대 이 畢竟에 成竹去나  수산주가 대답하기를 
 '죽순[筍]이 끝내 대[竹]가 되지만 
如今에 作筏이면 使得麽아하니  지금 당장에 뗏목을 만들면 
쓸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所以로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요  그러므로 생사 없는 줄 아는 것이 
생사 없음을 체득하는 것만 못하고, 
體無生死가 不如契無生死요  생사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 
생사 없음에 계합하는 것만 못하고, 
契無生死가 不如用無生死니라  생사 없음에 계합함이 
생사 없음을 활용하는 것만 못하니라. 
今人은 尙不知無生死어든  요즘 사람들은 생사 없음조차 모르거늘 
體無生死하며 契無生死하며  하물며 생사 없음을 체득하거나 계합하거나 
用無生死耶아  활용할 수 있겠는가? 
故로 認 生死者는  그러므로 생사를 오인하는 이는 
不信無生死法이 不亦宜乎아 생사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十一. 眞心正助  11) 참마음의 주된 노력(正)과 
      보조가 되는 노력(助
或이 曰 如前息妄이면  어떤 이가 물었다. “망심(妄心)을 쉬면 
眞心 現前이언만  참마음이 나타나건만 
且如妄未息時에는  망심을 쉬기 전에는 
但只歇妄하야 做無心功夫耶아  다만 망심 만을 쉬어서 
무심공부를 닦아야 하는가? 
更有別法하야 可對治諸妄耶아  따로이 딴 법이 있어서 
망심을 상대하여 다스려야 되는가?” 
曰 正助不同也니  대답이라. “정(正)과 조(助)가 같지 않으니 
以無心息妄으로 爲正하고  무심히 망심을 쉬는 것으로 정을 삼고 
以習衆善으로 爲助니  뭇 선행을 익히는 것으로 조(助)를 삼느니라. 
譬如 明鏡이 爲塵所覆어든  비유하건대, 밝은 거울이 먼지에 덮히었거든 
雖以手力으로 揩拭이나  비록 손으로 힘써 털고 닦으나 
要須妙藥磨瑩하야사 光始現也니라  반드시 묘한 약으로 다시 갈고 빛내야 
비로소 광체가 나타나는 것 같으니, 
塵垢는 煩惱也요 手力은 無心功夫也요  먼지는 번뇌요, 손의 힘은 무심공부요, 
磨藥은 衆善也요 鏡光은 眞心也니라  닦는 약은 뭇 선행이요, 
거울의 광명은 참마음이니라. 
起信論에 云하사대  기신론(起信論)에 말씀하시기를 
復次 信成就發心者는 發何等心고   '다음에 믿음을 성취시키는 발심[信成就發心]이란 
어떤 마음을 내야 되는가? 
畧有三種하야  대략 세가지가 있으니, 
一者는 直心이니 正念眞如法故요  첫째는 곧은 마음[直心]이니, 
진여의 법을 똑바로 생각하기 때문이요, 
二者는 深心이니 集一切善行故요  둘째는 깊은 마음[深心]이니, 
온갖 착한 행을 모으기 때문이요, 
三者는 大悲心이니  셋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大悲心]이니, 
欲拔一切衆生苦故니라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모두 구제해 주고자하기 때문이니라. 
問曰 上說法界一相이라  문(問=기신론의 본문)이라. 
 위에서 법계는 한 모습이라 
佛體無二어늘  부처의 본체는 둘이 없다고 하였거늘 
何故로 不唯念眞如法하고  무슨 까닭에 진여의 법만을 생각치 않고, 
復假求學諸善之行고  다시 온갖 착한 행을 배워야 되는가? 
曰 譬如大摩尼寶가 體性이 明淨이나  답(答)이라. 비유하건대 큰 마니(摩尼) 보배가 
본체와 성품이 밝고 맑으나 
而有穢之垢하니  광물찌꺼기의 티가 있나니, 
若人이 雖悉寶性이나  어떤 사람이 비록 보배의 성품을 잘 알았으나 
不以方便으로 種種磨治하면  방편을 써서 갖가지 방법으로 갈고 닦지 않으면 
終無得淨인달하야  끝내 맑아질 수 없는 것 같으니라. 
如是衆生眞如之法이 體性이 空淨이나  중생들의 진여의 법이 
비록 본체와 성품이 비고 맑으나 
而有無量煩惱垢染하니  한량없는 번뇌의 때가 있으니, 
雖念眞如나 不以方便으로  비록 진여를 생각하나 방편을 써서 
種種薰習이면 亦無得淨이니  갖가지로 익히지 않으면 맑아질 수 없으니, 
以垢無量하야 徧一切法일새니라  때가 한량이 없어서 
온갖 법에 두루했기 때문이니라. 
故로 修一切善行하야  그러므로 온갖 착한 행을 닦아서 
以爲對治니  물리쳐야 하나니, 
若人이 修行一切善法하면  온갖 착한 법을 닦으면 
自然歸順眞如法故라하시니  자연히 진여의 법에 돌아가 
순응하게 되니라 하시니, 
據此所論컨대  이 논의 말씀에 의거하건대 
以休歇妄心으로 爲正하고  망심을 쉬는 것으로써 정(正)을 삼고 
修諸善法으로 爲助니라  모든 착한 법을 닦는 것으로써 조(助)를 삼느니라. 
若修善時어든 與無心으로 相應하야  만일 선행을 닦을 때엔 무심(無心)과 상응해서 
不取着因果니  인과에 집착하지 말지니, 
若取因果면 便落凡夫人天報中하야  인과에 집착하면 
문득 범부 인간·하늘의 보(報)에 떨어져서 
難證眞如라 不脫生死니라  진여를 증득하기 어려운지라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若與無心相應인댄  만일 무심과 상응하면 
乃是證眞如之方便이며  이는 곧 진여를 증득하는 방편이며 
脫生死之要術이라  생사를 벗어나는 비결이라 
兼得廣大福德하리라  겸하여 광대한 복덕을 얻으리라. 
金剛般若經에 云하사대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에 말씀하시기를 
須菩提야 菩薩이 無住相布施하면   '수보리야, 보살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면 
其福德이 不可思量이라하야시늘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다' 하셨거늘 
今見世人에 有 叅學者호니  요즘 세상에 참선하는 사람들을 보니, 
纔知有箇本來佛性이면  겨우 본래의 불성이 있는 줄을 알기만 하면 
便乃自恃天眞하야 不習衆善하나니  문득 스스로의 천진(天眞)을 자시하여 
뭇 선행을 익히지 않나니, 
只豈於眞心不達이리요  그 어찌 참마음을 통달치 못할 뿐이리요? 
亦乃翻成懈怠하나니  또한 도리어 게으름을 이루나니, 
惡道도 尙不能免이온  나쁜 길도 면하지 못하거든 
脫生死리요 此見이 大錯也니라  하물며 생사를 벗어날 수 있으리요? 
이 소견이 크게 잘 못되었도다.” 
 十二. 眞心功德  12) 참마음의 공덕
或이 曰  어떤 이가 물었다. 
有心修因은 不疑功德이어니와  "마음 있음으로 인행을 닦으면 
공덕됨을 의심치 않겠지만 
無心修因은 功德이 何來오  무심으로 인행을 닦으면 
공덕이 어디서 오는가?” 
曰 有心修因은 得有爲果하고  대답이라. “마음 있음으로 인행을 닦으면 
유위의 과보를 받고, 
無心修因은 顯性功德하니라  마음 없음으로 인행을 닦으면 
성품의 공덕을 드러내느니라.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나  이 모든 공덕이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었으나 
妄覆不顯이니  허망함이 덮히어 드러나지 못하니, 
今旣除妄하면 功德이 自現이니라  이제 이미 허망함을 제하였으면 
공덕이 저절로 나타나니라. 
故로 永嘉云하사대  그러므로 영가(永嘉)께서 말씀하시기를 
三身四智體中圓이요   '세 몸(三身)과 네 지혜(四智)가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八解六通이 心地印이라하시니  여덟 가지 해탈(八解)과 여섯 가지 신통(六通)이 
마음 바탕에 새겨졌다' 하시니, 
乃是體中에 自具性功德也라  이것이 본체 가운데 갖추어진 
본성의 공덕이니라. 
古人이 云하사대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若人이 靜坐一須臾하면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만이라도 조용히 앉으면 
勝造恒沙七寶塔이로다  항하의 모래 같이 七보의 탑을 
세운 것보다 수승하다. 
寶塔은 畢竟에 化爲塵이어니와  보배탑은 끝내 티끌로 변하지만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하시니  한 생각 맑은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하시니, 
故知하라 無心功力이 大於有心也로다  그러므로 무심공부의 힘이 
유심공부보다 큰 줄을 알겠다. 
洪州水潦 叅馬祖할새  홍주(洪州)의 수료(水遼)가 
마주(馬祖)에게 참문할 때, 
問西來的的意라가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을 묻다가 
被馬祖의 一踏하야 踏倒에  마조에게 한번 걷어채여 쓰러지면서 
然發悟하야  갑자기 깨달음이 열리어, 
撫掌大笑云호대  손벽을 치며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也大奇也大奇여   '신기하고 신기하도다. 
百千三昧와 無量妙義를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只向一毛頭上하야  오직 한 털끝에서 
便識得根源去라하시고  그 근원까지 다 알아버렸다' 하시고 
乃作禮而退하시니  절을 하고는 물러갔으니, 
據此則功德이 不從外來  이에 의하건대 공덕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本自具足也로다  본래 스스로 구족한 것이로다. 
四祖 謂懶融曰  四조(祖)가 나융(懶融)에게 말하기를 
夫百千法門이 同歸方寸이요   '백천 가지 법문이 
모두가 마음[方寸]으로 돌아가고, 
河沙功德이 㹅在心源이라  항사하의 공덕이 모두가 마음의 근원에 있다. 
一切戒門定門慧門과 神通變化가  온갖 계율·선정·지혜·신통·변화가 
悉自具足하야 不離汝心이라하시니  모두 본래 구족해서 
그대의 마음을 여의지 않았다' 하시니, 
據祖語컨대 無心功德이 最大언마는  이 조사의 말씀에 의하건대 
무심의 공덕이 가장 크건만 
但執事相功德者는  겉모양의 공덕에만 집착하는 이는 
於無心功德에 自不生信이니라 무심공덕에 대하여 
자연히 믿음을 내지 못하느니라.” 
 十三. 眞心驗功  13) 참마음 공부의 징험
或이 曰 眞心이 現前하야는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이 앞에 나타날 때, 
如何知是眞心의 成熟無碍也오  그 참마음이 걸림없이 익어진 줄을 
어떻게 아는가?” 
曰 學道之人이  대답이라. “도를 배우는 사람이 
得眞心現前時에 但習氣未除하면  참마음이 앞에 나타남을 보았을 때, 
습기를 제하지 못했으면 
若遇熟境하야는 有時失念하나니  익어진 경계를 만나 
가끔 바른 기억(念)을 잃나니 
如牧牛人이 雖調到牽拽隨順處하야도  마치 소를 먹이는 사람이 
비록 끌면 순응하는 경지까지 길들였더라도 
猶不敢放了鞭繩하고  아직은 채찍을 놓지 못하고, 
直待心調步穩하야 赶趁入苗稼中호대  더 기댜려서 마음이 길들고 
걸음이 온당해져서 곡식밭으로 몰아도 
不傷苗稼하야사 方敢撒手也니라  곡식을 상하지 않게 되어야 
비로소 손을 떼는 것 같이 할지니라. 
到此地步하면  이런 경지에 이르면 
便不用牧童鞭繩하야도  목동의 채찍을 쓰지 않아도 
自然不傷苗稼인달하야  자연히 곡식을 상하지 않게 되나니, 
如道人이 得眞心後에  도인이 참마음을 얻은 뒤에 
先且用功保養하야  우선 공부를 쌓아 보양(保養)해서 
有大力用하야사 方可利生이니라  큰 힘과 작용이 있게 된 뒤에야 
비로소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느니라. 
若驗此眞心時에는  만일 이 참마음을 징험하려거든 
先將平生所憎愛之境하야  먼저 평소에 미워하고 사랑하던 경계를 
時時想在面前호대  가끔 눈앞에 상상(想像)하되 
如依前起憎愛心則道心이 未熟이요  전과 같이 미워함과 사랑함의 생각이 일어나면 
도의 마음이 아직은 익지 않은 것이요, 
若不生憎愛心하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是는 道心이 熟也니라  이는 도의 마음이 익어진 것이니라. 
雖然如此成熟이라도  비록 이런 경지에 이르렀더라도 
猶未是自然不起憎愛니  아직은 마움과 사랑이 
자연히 일어나지 않는 경지는 아니니, 
又再驗心이어다  또 다시 징험할지어다. 
若遇憎愛境時에 特然起憎愛心하야  만일 미움과 사랑의 경계를 만날 때에 
令取憎愛境界하야도  특별히 미움과 사랑의 경계를 취하려 하여도 
若心不起하면 是心無碍가  그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마음은 걸림없이 된 것이 
如露地白牛 不傷苗稼인달하리니  마치 한 데(露地)에 드러난 흰소(白牛)가 
곡식을 해치지 않는 것 같으리니, 
古有呵佛罵祖者하니  예부터 부처를 꾸짖고 
是는 與此로 心相應이니라  조사를 나무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이 마음과 마주 응하기 때문이니라. 
今見호니 纔入宗門하냐  요즘 보니, 겨우 종문(宗門)에 들어와서 
未知道之遠近하고  도의 멀고 가까움도 알지 못하면서 
便學呵佛罵祖者는  문득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나무라는 법부터 배우는데 
太早計也니라 이는 너무 조급한 계교니라.” 
 十四. 眞心無知  14) 참마음은 알음알이가 없다
或이 曰 眞心與妄心을 對境時에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과 허망한 마음이 경계를 대할 때, 
如何辨別眞妄耶오  어떻게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가?” 
曰 妄心對境은 有知而知라  대답이라. “허망한 마음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은 
알음[知]이 있으므로서 아는지라 
於順違境界에 起貪嗔痴心하나니  거슬리고 순하는 경계에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마음을 일으키나니, 
旣於境上에 起貪嗔痴三毒인댄  이미 경계에 대하여 
탐욕·성냄·어리석음 등 三독을 일으킨다면 
足見是妄心也로다  족히 그가 허망한 마음임을 알 수 있느니라. 
祖師云하사대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라하시니   '거슬림과 순함이 서로 다투는 것이 
마음의 병이 된다' 하시니, 
故知하라 對於可不可者면  그러므로 옳음과 옳지 못함을 상대하는 것이 
是妄心也니라  허망한 마음임을 알 수 있느니라. 
若眞心者인댄 無知而知라  만일 참마음이라면 
알음이 없으므로서 아는지라 
平懷圓照故로 異於草木하고  평탄한 생각으로 두루 비추는 까닭에 
초목과는 다르고, 
不生憎愛故로 異於妄心하나니  미움도 사랑도 없는 까닭에 
허망한 마음과도 다르나니, 
即對境虛明하야 不憎不愛하며  곧 경계를 대하여 비게 밝고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無知而知者 是眞心이니라  알음이 없으므로서 아는 것이 참마음이니라. 
肇論에 云하사대  조론(肇論)에 말하기를 
夫聖心者는 微妙無相이라 不可爲有요   '성스러운 마음이란 미묘해서 
형상이 없는지라 있다고 할 수 없고, 
用之彌勤이라 不可爲無요  쓸수록 더욱 부지런한지라 
없다고 할 수 없도다' 하고, 
乃至 非有故로 知而無知하고  나아가서는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알되 아는 것이 없고, 
非無故로 無知而知라하시니  없는 것이 아니므로 
알음이 없으되 안다' 하시니, 
是以로 無知而即知라  그러므로 알음이 없으되 아는지라 
無以言異於聖人之心也로다  성인의 마음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又 妄心은 在有着有하고  또 허망한 마음은 있음에서는 있음에 집착하고 
在無着無하야 常在二邊할새  없음에서는 없음에 집착하여 
항상 두 쪽에 치우치기 때문에 
不知中道하나니  중도(中道)를 알지 못하나니, 
永嘉云하사대 捨妄心取眞理여  영가가 말하기를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참마음을 취하면 
取捨之心이 成巧僞로다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룬다. 
學人이 不了用修行하야  학인은 수행하는 법을 몰라서 
深成認賊將爲子로다하니  도적을 잘못 알아 
자식으로 여기는 병이 깊었도다' 하시니, 
若是眞心인댄  진실로 참마음이라면 
居有無而不落有無하고  있음과 없음에 처하되 
있음과 없음에 떨어지지 않고 
常處中道니라  항상 중도에 처하느니라. 
故로 祖師 云하사대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不逐有緣하며 勿住空忍이어다   '있음의 반연을 쫓지도 말고, 
공의 지혜에도 머물지 말라. 
一種平懷하면 泯然自盡이라하며  한가지 생각 평탄하면 
빈 듯이 저절로 다하리라' 하시며, 
肇論에 云하사대  또 조론에 말씀하시기를 
是以로 聖人은 處有不有하고   '그러므로 성인은 있음에 처하되 있음이 아니요, 
居無不無로다  없음에 있으되 없음이 아니다. 
雖不取於有無나  비록 있음과 없음을 취하지 않으나 
然이나 不捨於有無로다  그러나 있음과 없음을 버리지도 않는다. 
所以로 和光同塵하며  그러므로 햇빛과 먼지가 섞이듯이 
周旋五趣호대  다섯 갈림[五趣]에 두루하되 
寂然而하며 忽爾而來하야  고요히 가고 갑자기 돌아와서 
恬淡無爲而無不爲라하시니  편안한 듯 담담한 듯 함이 없으되 
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시니, 
此는 說聖人이 垂手爲人하사  이는 성인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周旋五趣하사 接化衆生하사대  다섯 갈래에 두루하면서 
중생들을 건져 교화하시기 위하여 
來而無來시니라  비록 왕래하지만 왕래함이 없는 것이니라. 
妄心은 不爾故로 眞妄이 不同也니라  허망한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참과 허망함이 같지 않으니라. 
又 眞心은 乃平常心也요  또 참마음은 곧 평상(平常)한 마음이요, 
妄心은 乃不平常心也니라  허망한 마음은 곧 평상치 못한 마음이니라." 
或이 曰 何名平常心也오  그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평상한 마음이라 하는가요?” 
曰 人人이 具有一點靈明호대  대답이라. “사람마다 제각기 
한 점의 신령스런 광명이 있되 
湛若虛空하야 徧一切處하나니  맑기가 허공과 같아서 온갖 곳에 두루했나니, 
對俗事하야는 假名理性이요  세속 일[俗事]을 대하여는 
거짓으로 이성(理性)이라 하고, 
對行識하야는 權號眞心이니라  정신의 움직임[行識]에 대하여는 
방편으로 참마음이라 부른다. 
無分毫分別이로대 遇緣不昧하고  털끝만치의 분별도 없으되 
인연을 만나면 어둡지 않고, 
無一念取捨로대 觸物皆周라  한 생각도 취하고 버릴 것이 없으되 
만나는 물건마다 다 두루하는지라 
不逐萬境遷移로다  만가지 경계를 따라 변천하지 않는다. 
設使隨流得妙라도  설사 흐름에 따라 묘함을 얻을지라도 
不離當處常湛然이라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항상 담연(湛然)하니, 
則知君不可見이니  찾으면 그대 얻지 못할 줄 나는 분명히 아노니 
此乃眞心也니라  이것이 참마음이니라.” 
或이 曰 何名不平常心耶오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평상치 못한 마음[不平常心]인가요?” 
曰 境有聖與凡, 染與淨,  대답이라. 
"경계에는 성인과 범부, 물들음과 깨끗함, 
斷與常, 理與事, 生與滅, 動與靜,  없어짐과 항상함, 이론과 현실, 
남과 사라짐, 움직임과 고요함, 
去與來, 好與醜, 善與惡, 因與果하나니  감과 옴, 예쁨과 미움, 
선과 악, 인(因)과 과(果) 등이 있나니, 
若細論則萬別千差어니와  자세히 논한다면 천 만 가지 차별이 있거니와 
皆名不平常境也니라  모두가 평상치 못한 경계니라. 
以不平常生滅境界로  평상치 못한 생멸의 경계로써 
比前平常眞心할새  전의 평상한 참마음에다 견주므로 
所以로 名 不平常妄心也니라  평상치 못한 허망한 마음이라 하느니라. 
眞心은 本然하야  참마음은 본래부터 태연하여서 
於不平常境에 不起種種差別일새  평상치 못한 경계에 대하여 
갖가지 차별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所以로 名平常眞心也니라  평상한 참마음이라 하느니라.” 
或이 曰 眞心이 平常하야  그가 다시 물었다. 
"참마음이 평상하여 
無諸異因인댄  모든 차별된 인(因)이 없다면 
奈何로 佛說因果와 善惡報應乎아  어찌하여 부처님은 인과(因果)와 
선악(善惡)과 갚음[報應]을 말씀하셨는가요?” 
曰 妄心이 逐種種境호대  대답이라. 
"허망한 마음이 갖가지 경계를 따르되 
不了種種境하야 遂起種種心일새  갖가지 경계를 알지 못하여 
갖가지 마음을 일으키므로 
佛說種種因果法하사  부처님께서 갖가지로 인과의 법을 말씀하셔서 
治伏種種妄心호려하사  갖가지 허망한 마음을 조복시켜 주시려고 
須立因果어니와  인과의 법을 세우셨거니와, 
眞心은 不逐種種境하며  참마음은 갖가지 경계를 따르지 않으며 
不起種心할새  갖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佛이 不說種種法하시니  부처님께서 갖가지 법을 말씀하시지 않았거늘 
何有因果也리요  어찌 인과가 있으리요?” 
或이 曰 眞心은 平常不生耶아  그가 다시 물었다. 
“참마음은 항상 나지 않는 것인가요?” 
曰 眞心施用이 不逐境生이나  대답이라. "참마음의 분별 작용이 
경계를 따라 생기는 것은 아니나 
但妙用遊戲하야 不昧因果니라  다만 묘한 작용만으로 활동[遊戱]하므로 
인과를 어둡히지는 않느니라.” 
 十五. 眞心所往  15) 참마음의 가는 곳
或이 曰 未達眞心人은  어떤 이가 물었다. 
"참마음을 통달치 못한 사람은 
由迷眞心故로 作善惡因하나니  참마음을 미혹한 때문에 선과 악을 짓나니, 
由作善因故로 生善道中하고  선한 인을 지은 까닭에 좋은 길에 태어나고 
由作惡因故로 入惡道中호대  악한 인을 지은 까닭에 나쁜 길에 태어나되, 
逐業受生은 其理를 不疑어니와  업을 따라 몸을 받는 그 이치는 
의심치 않겠거니와 
若達眞心之人인댄 妄情이 歇盡하야  참마음을 통달한 사람은 망정(妄情)이 다 쉬어서 
契證眞心하면 無善惡因이라  참마음에 계합하여 증득하면 
선악의 인이 없는지라 
一靈이 身後에 何所依託고  한 영혼은 그 몸이 죽은 뒤에 
어디에 의탁하는가요?” 
曰 莫謂有依託者가 勝無依託耶하며  대답이라. “의탁할 곳 있는 것이 
의탁할 곳 없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여기지도 말고, 
又莫將無依託者하야  또 의탁할 곳 없단 말로써 인간의 갈 곳 없는 
同人間飄零之蕩子하며  방탕자와 같다고 여기지도 말고, 
似鬼趣無主之孤魂하라  귀신 무리에서 의지할 데 없는 
무주고혼 같이도 여기지 말라. 
特爲此問은 求依託耶아  특별히 이렇게 물은 뜻은 
의탁할 곳이 있기를 바라는 것인가?” 
或이 曰 然하다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曰 達性則不然也니  "성품을 통달하면 그렇지 않나니, 
一切衆生은 迷覺性故로  모든 중생은 각성(覺性)을 미혹한 때문에 
妄情愛念하야 結業爲因일새  망정으로 사랑하고 생각하여 
업을 모아 인을 만들었으므로 
生六趣中하야 受善惡報하나니라  여섯 갈래(六趣)에 태어나서 
선과 악의 과보를 받느니라. 
假如天業이 爲因이면 只得天果니  가령 하늘의 업으로 인을 삼으면 
다만 하늘의 과보 만을 받나니, 
除合生處하고는 餘不得受用이니  꼭 태어날 곳을 제하고는 
딴 곳에서는 수용(受用)치 않느니라. 
諸趣도 皆爾하니라  다른 갈래에도 그러하니라. 
旣從其業일새 故로  이미 그 업을 따르므로 
合生處로 爲樂하고  태어나야 할 곳을 즐겁다 하고, 
不生處로 爲非樂하며  태어나지 않을 곳을 즐겁지 않다 하며, 
以合生處로 爲自己依託하고  태어나야 할 곳을 자기가 의지할 곳이라 하고, 
不生處로 爲他人依託일새  태어나지 않을 곳을 
딴 사람의 의지할 곳으로 하나니, 
所以로 有妄情則有妄因하고  그러므로 허망한 감정이 있으면 
허망한 인이 있고, 
有妄因則有妄果하고  허망한 인이 있으면 허망한 결과가 있고, 
有妄果則有依託하고  허망한 결과가 있으면 의지할 곳이 있고, 
有依託則分彼此하고  의지할 곳이 있으면 너와 내가 나뉘고, 
分彼此則有可不可어니와  너와 나를 나누면 옳음과 옳지 못함이 있거니와, 
今達眞心은 契無生滅之佛性하야  이제 참마음을 통달한 이는 
생멸없는 각성(覺性)에 계합하여 
起無生滅之妙用하나니  생멸없는 묘용(妙用)을 일으키나니, 
妙體는 眞常이라 本無生滅하며  묘한 본체는 참되고 항상한지라 
본래 생멸이 없으며, 
妙用은 隨緣이라 似有生滅이로다  묘한 작용은 인연을 따르는지라 
생멸이 있는 듯하니라. 
然이나 從體起用일새 用即是體라  그러나 본체로부터 작용이 일어났으므로 
작용이 곧 본체인지라 
何生滅之可有리요  무슨 생멸이 있을 수 있으리요? 
如水 以濕性으로 爲體하고  마치 물이 습성(濕性)으로써 본체를 삼고, 
波浪으로 爲用이니라  파도로써 작용을 삼는 것 같으니라. 
濕性은 元無生滅이니  습성은 원래 생멸이 없으니 
波中濕性이 何生滅之有리요  파도 속의 습성인들 무슨 생멸이있으리요? 
然이나 波 離濕性하고는  그러나 파도가 습성을 여의면 
別無故로 波亦無生滅이니라  따로이 없는 까닭에 파도도 생멸이 없느니라. 
所以로 古人이 云하사대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盡大地가 是沙門一隻正眼이요   '온 땅덩이가 사문의 한쪽 바른 눈이요, 
盡大地가 是箇伽籃이라하니  온 땅덩이가 하나의 가람(伽籃)이라' 하니 
是는 悟理人의 安身立命處니라  이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몸을 안정시키고 목숨을 세울 곳이니라. 
旣達眞心인댄  이미 참마음을 통달했을 진댄 
四生六道가 一時消滅하고  四생(生)·六도(道)가 일시에 소멸하고, 
山河大地가 悉是眞心이니  산·강·땅덩이가 모두가 참마음 뿐이니, 
不可離此眞心外에  이 참마음을 떠난 밖에 
別有依託處也니라  따로이 의탁할 곳이 없느니라. 
旣無三界妄因이면  이미 三계의 허망한 인이 없으면 
必無六趣妄果로다  반드시 六취의 허망한 결과도 없고 
妄果가 旣無인댄  허망한 결과가 없으면 
說甚依託이리요 別無彼此니라  무슨 의탁할 곳을 말하리요? 
너와 나가 따로이 없느니라. 
旣無彼此인댄 何可不可也리요  이미 너와 나가 없다면 
무슨 옳고 그름이 있으리요? 
即十方世界가 唯一眞心全身受用이라  곧 十방세계가 오직 하나의 참마음이어서 
온몸으로 수용(受用)하리라. 
別無依託이로다  따로이 의탁할 곳이 없느니라. 
又於示現門中에는  또 시현(示現)하는 부문에선 
隨意生하되 而無障碍니라  뜻에 따라 태어나되 장애가 없느니라. 
故로 傳燈에 云하사대  그러므로 전등록(傳燈錄)에서 
溫操尙書가 問圭峰曰  온조 상서(溫操尙書)가 규봉(圭峰)에게 묻기를 
悟理之人이 一期壽終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한 기간의 수명이 다하면 
何所依託고  어디에 의탁하는가?' 하니, 
圭峰이 曰  규봉이 대답하기를
一切衆生이 無不具有靈明覺性이라   '온갖 중생이 신령하고 밝은 각성(覺性)을 
갖추지 않은 이가 없어서 
與佛無殊하니  부처와 다름이 없나니, 
若能悟此眞性이면 本自無生이어니  만일 이 참성품을 깨달으면 
본래부터 태어남도 없거니, 
有何依託이리요  무슨 의탁함이 있으리요? 
靈明不昧하며 了了常知하야  신령하게 밝아서 어둡지 않으며, 
또렷또렷하게 항상 알아서 
無所從來며 亦無所去니  온 곳도 없으며, 간 곳도 없으니, 
但以空寂으로 爲自體하야  다만 비고 고요함으로써 본체를 삼아서 
勿認色身하며  색신(色身)을 오인하지 말며, 
但以靈知로 爲自心하야  다만 신령한 알음[靈知]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아 
勿認妄念이어다  망념을 오인하지 말지어다. 
妄念이 若起어든  망념이 만일 일어나더라도 
都不隨之則臨命終時에  전혀 따르지 않으면 목숨이 마칠 때에 
自然業不能繫하리라  자연히 업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雖有中陰이나 所向自由하야  비록 중음(中陰)의 세계에 있으나 
향하는 곳마다 자유로와서 
天上人間에 隨意寄託이라하시니  하늘과 인간에 마음대로 의탁하리라' 하시니, 
此即眞心의 身後所者也니라  이것이 참마음이 
육신을 떠난 뒤에 가는 곳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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