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門撮要

三. 보조수심결(普照修心訣)

碧雲 2015. 10. 16. 12:31

禪門撮要 선문촬요
     惠菴 編譯      혜암(惠菴)선사 편역
禪門撮要 第三卷 선문촬요 제 3권
三. 普照修心訣 3. 보조수심결(普照修心訣)
 一. 擧苦示眞  1) 괴로움을 들어 참됨을 보이다
三界熱惱 猶如火宅하니  三계(界)의 뜨겁고 괴로움이 
마치 불타는 집[火宅] 같으니, 
其忍淹留하야 甘受長苦아  거기에 빠져들어 
오랜 고통을 받을 수 있으랴? 
欲免輪廻인댄 莫若求佛이니  윤회를 면하려 하면 
부처를 구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나니, 
若欲求佛인댄 佛即是心이라  부처를 구하려 한다면 
부처는 곧 마음이니라. 
心何遠이리요 不籬身中이니라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으랴. 
몸을 여의지 않았도다. 
色身은 是假라 有生有滅이어니와  색신(色身)은 거짓이라 
생과 멸이 있거니와 
眞心은 如空하야 不斷不滅이니라  참마음은 허공 같아서 
끊임도 변함도 없느니라. 
故로 云하사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百骸는 潰散하야 歸火歸風이어니와   '백 마디의 뼈는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과 바람으로 돌아가거니와 
一物은 長靈하야 蓋天蓋地라하시니라 한 물건은 영원히 신령하여 
하늘과 땅을 덮는다' 하시니라. 
 二. 迷心修道終無利益  2) 미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으면 
    마침내 이익이 없음
嗟夫라 今之人은 迷來久矣라  슬프다! 요즘 사람들은 
미혹한지가 오래다. 
不識自心이 是眞佛이며  자기의 마음이 참부처인줄 알지 못하고 
不識自性이 是眞法하고  자기의 마음이 참법인 줄 알지 못하면서 
欲求法호대 而遠推諸聖하며  법을 구하고자 하되 
멀리 여러 성인에게서 찾으며 
欲求佛호대 而不觀其心하나니라  부처를 구하고자 하되 
자기의 마음을 관하지 않느니라. 
若言心外에 有佛하고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거나 
性外에 有法이라하야  성품 밖에 법이 있다고 하여 
堅執此情하야 欲求佛道者인댄  이 생각을 굳게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縱經塵劫토록 燒身鍊臂하며  비록 미진겁을 지내도록 
몸을 태우고 팔을 뜨며, 
敲骨出髓하며 刺血寫經하며  뼈를 깨고 골수를 뽑으며 
피를 뽑아 경을 쓰며 
長坐不臥하며 一食卯齋하며  오래 앉아 눕지 않으며,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며, 
乃至轉讀一大藏敎하야  나아가서는 일대장경을 다 읽는 등 
種種苦行하야도 如蒸沙作飯하야  갖가지 고행을 다하여도 
마치 모래를 삶아 밥을 짓는 격이라 
只益自勞爾니라  다만 스스로의 피로만 더할 뿐이니라. 
 三. 聖凡一道只明一心  3) 성인과 범부는 한 길 뿐이니, 
    오직 한 마음만을 밝힘
但識自心하면 恒沙法門과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항하의 모래 수효 같은 법문과 
無量妙義를 不求而得하리라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구하지 않아도 얻게 되리라. 
故로 世尊이 云하사대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普觀一切衆生호니   '모든 중생들을 두루 관찰하건대 
具有如來智慧德相이라하시고  모두가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 하시고, 
又云하사대  또 말씀하시기를 
一切衆生의 種種幻化가   '모든 중생의 
갖가지 허환(虛幻)한 변화가 
皆生如來圓覺妙心이라하시니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나왔다' 하시니, 
是知하라  이것으로써 
離此心外에 無佛可成이로다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이룰 수가 없음을 알 것이다. 
過去諸如來도 只是明心底人이며  과거의 부처님들도 
다만 마음을 밝히신 사람이며, 
現在諸賢聖도 亦是修心底人이며  현재의 성현들도 
마음을 닦으신 사람이며 
未來修學人도 當依如是法이니  미래의 학인들도 
반드시 이 법에 의지해야 하리니, 
願諸修道之人은 切莫外求어다  바라건대 도를 닦는 사람들은 
절대로 밖에서 구하지 말지어다. 
心性이 無染하야 本自圓成이니  마음의 성품이 물들지 않아 
본래부터 뚜렷이 이루어졌으니 
但離妄緣이면 即如如佛이니라  다만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곧 여여(如如)한 부처니라. 
 四. 衆生日用不知這一物  4) 중생은 날마다 활용하면서도 
    그 한 물건을 알지 못한다
問曰  물음이라. 
若言佛性이 現在此身컨대  “만일 불성이 현재 이 몸에 있다면 
旣在身中이라 不離凡夫어늘  이미 몸 안에 있으므로 
범부를 여의지 않았을 것이어늘
因何我今에 不見佛性이니꼬  어찌하여 나는 이제 
불성을 보지 못하나이까?
更爲消釋하야 悉令開悟케하소서  다시 설명하셔서 
활짝 깨닫게 해 주십시요."
答曰  대답이라.
在汝身中컨마는 汝自不見이로다  "그대의 몸 안에 있건만 
그대가 보지 못할 뿐이로다. 
汝於十二時中에 知飢知渴하며  그대가 하루 동안 시장하고 목마르고 
知寒知熱하며  추위와 더위를 알며 
或瞋或喜가 竟是何物고  성내거나 기뻐하는 것이 끝내 무엇인가? 
且色身은 是地水火風四緣의  색신은 흙·물·불·바람 등 네 인연이 
所集이라  모인 바인지라, 
其質이 頑而無情커늘  그 바탕이 완악하고 감정이 없거늘 
豈能見聞覺知리요  어찌 보고 듣고 느끼고 알리요? 
能見聞覺知者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은 
必是汝의 佛性이니라  반드시 그대의 불성이니라. 
故로 臨濟 云하사대  그러므로 임제(臨濟)께서 말씀하시기를 
四大가 不解說法聽法하며   '四대(大)가 설법도 청법도 할 줄 모르고 
虛空이 不解說法聽法하나니  허공이 설법도 청법도 할 줄 모르나니, 
只汝目前에 歷歷孤明하야  다만 그대의 눈앞에 역력하고 분명하여 
勿形段者라사  형용할 수 없는 것만이 
始解說法聽法이라하시니  비로소 설법도 청법도 할 줄 안다' 하시니 
所謂勿形段者는  이른바 형용할 수 없는 것이란 
是諸佛之法印이며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이며, 
亦是汝의 本來心也니라  또 그대의 본래의 마음이니라.
 五. 擧古明證  5) 옛사람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함
則佛性이 現在汝身이라  불성(佛性)이 그대의 앞에 버젓이 있거늘 
何假外求리요  어찌 밖을 향해 구하리요? 
汝若不信인댄  그대가 믿지 못할까 하여 
略擧古聖入道因緣하야  옛사람이 깨달은 인연을 간단히 들어서 
令汝除疑호리니  그대로 하여금 의심을 제하게 해 주리니 
汝須諦信하라  자세히 들으라. 
昔에 異見王이 問婆羅提尊者曰  옛날에 이견왕(異見王)이 
바라제(婆羅提)존자에게 물었다. 
何者是佛이니꼬   '무엇이 부처입니까?'
尊者曰 見性이 是佛이니다  존자께서 대답했다. 
 '성품을 본 이가 부처입니다.' 
王曰 師는 見性否이까  왕이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성품을 보셨습니까?' 
尊者曰 我見佛性이니다  존자께서 대답했다. 
 '나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王曰 性在何處니꼬   '성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尊者曰 性在作用이니다  존자께서 대답했다.
 '성품은 작용에 있습니다.'
王曰 是何作用이완대   '그게 무슨 작용이기에 
我今不見이니꼬  저는 지금 볼 수 없습니까?'  
尊者曰 今現作用이언만   '지금 현재에도 작용하건만 
王自不見이니다  왕 자신이 보시지 못할 뿐입니다.'  
王曰 於我에 有否이까   '저에게도 있습니까?' 
尊者曰 王若作用인댄   '왕께서 작용을 하신다면 
無有不是處어니와  아닌 것이 없건만 
王若不用인댄 體亦難見이니다  왕께서 작용하시지 않으시면 
본체도 볼 수 없습니다.' 
王曰 若當用時하야 幾處出現이니꼬   '작용할 때엔 몇 곳으로 나타납니까?' 
尊者曰 若出現時에 當有其八이니다   '나타날 때엔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王曰 其八出現을 當爲我說하소서   '그 여덟 가지로 나타나는 
모습을 말씀해 주소서.' 
尊者曰 在胎曰神이요  존자께서 대답하였다. 
 '태속에 있으면 신(神)이라 하고, 
處世曰人이요 在眼曰見이요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라 하고, 
눈에서는 본다 하고, 
在耳曰聞이요 在鼻辨香이요  귀에서는 듣는다 하고, 
코에서는 맡는다 하고, 
在舌談論이요 在手執捉이요  혀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물건을 잡고, 
在足運奔이니  발로는 운동해 다니니 
徧現하야는 俱該沙界하고  두루 나타나면 항하사 세계를 덮고, 
收攝하야는 在一微塵하나니  거두어 모으면 한 티끌 속에도 차지 않나니 
識者는 知是佛性이요  아는 이는 이를 불성이라 하거니와 
不識者는 喚作精魂이니다  모르는 이는 정신이다 혼이다 합니다.' 
王이 聞하고 心即開悟하니라  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열리었느니라. 
又人이 問歸宗和尙호대  또 어떤 사람이 귀종(歸宗)화상에게 물었다. 
如何是佛이니꼬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宗이 云하사대  귀종이 대답했다. 
我今向汝道호려하나   '내가 지금 말해 주고자하나 
恐汝不信일까하노라  그대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다.' 
又問云호대  또 물었다.
和尙誠言을 焉敢不信이리까   '화상께서 하시는 옳은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師云하사대  이에 귀종이 대답했다. 
汝가 是니라   '네가 바로 그니라.' 
又問云호대 如何保任하리까  중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보임(保任)하오리까?'
師云하사대  귀종이 대답했다. 
一翳在眼에 空華亂墜니라하니   '눈병이 걸리면 
허공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其人이 言下에 有省하니라  그 사람이 이 말씀에 깨쳤느니라. 
上來所擧古聖入道因緣이  위와 같이 옛 어른들의 도에 드신 인연이 
明白簡易하야 不妨省力하니  명백하고도 간편하여 힘 덜기에 알맞으니 
因此公案하야 若有信解處면  이 공안(公案)을 인하여 
믿음과 이해가 생기면 
即與古聖으로 把手共行하리라  당장에 옛성인과 
손을 맞잡고 거닐게 되리라." 
 六. 依俉而修非一時頓現神通  6) 깨달음에 의하여 닦는 것이요, 
한꺼번에 신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님
問이라 汝言見性이라하니  물음이라. 
“그대가 말하기를 성품을 보았다 하니, 
若眞見性인댄 即是聖人이라  참으로 성품을 보았다면 곧 성인이리니 
應現神通變化하야 與人有殊어늘  의당 신통과 변화를나투어 
다른 사람과 다름이 있어야 할 것이어늘 
何故로 今時修心之輩는  어찌하여 요즘의 마음 닦는 사람들은 
無有一人도 發現神通變化耶아 한 사람도 신통과 변화를 나투지 못하는가?”
答曰 汝不得輕發妄言하라  대답이라. 
"그대는 망녕된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不分邪正이면 是爲迷倒之人이라  사와 정(邪正)을 분별치 못하면 
미혹해서 뒤바뀐 사람이니라. 
今時學道之人이 口談眞理나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나 
心生退屈하야  마음으론 물러날 생각을 내고
反墮無分之失者는  도리어 자신은 자격이 없노라 하는 
과오에 떨어지는 것은
皆汝所疑니  모두가 그대가 의심하는 바와 같은 것이니라. 
學道호대 而不知先後하며  도를 배우면서도 앞과 뒤를 알지 못하거나 
說理호대 而不知本末者는  진리라 말하되 근본과 끝을 모르는 자를
是名邪見이요 不名修學이니  삿된 소견이라 하고, 
도를 닦는다고는 할 수 없으며 
非唯自誤라 兼亦誤他니  스스로를 그르칠 뿐 아니라 
남까지 그르치나니 
其可不愼歟아  조심할 일이 아니겠는가? 
夫 入道多門이나 以要言之컨대  대체로 도에 들어가는 문은 많으나 
욧점을 말하면 
不出頓悟漸修兩門이라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두 문에서 벗어나지 않느니라. 
雖曰 頓悟頓修가  비록 말하기를 돈오와 돈수(頓修)가 
是 最上機의 得入也나  최상의 근기가 깨닫는 길이라고는 하나 
若推過去컨대 已是多生에  과거까지를 미루건대 
이미 여러 생(生) 동안 
依悟而修하야 漸薰而來라가  깨침에 의해 닦아서 점차로 익히다가 
至於今生하야는 聞即發悟하야  금생에 와서 듣자마자 활짝 깨달아 
一時頓畢이니 以實論之컨대  한꺼번에 마친 것이니, 
실제에 의해 논하건대 
是亦先悟後修之機也라  이것 또한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 근기이니라. 
則此頓漸兩門이  그렇다면 이 돈과 점의 두 문호는 
是千聖之軌轍也니라  천 성인의 궤도이니, 
則從上諸聖이 莫不先悟後修하며  옛부터의 성현들이 모두가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으셨으며 
因修乃證이니  닦으심을 인하여 증득하신 분이니라. 
所言神通變化는 依悟而修하야  그 신통과 변화라 함은 
깨달음에 의하여 닦아서 
漸薰所現이라  점점 훈습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라 
非謂悟時에 即發現也니라  깨닫는 즉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라. 
經에 云하사대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理即頓悟라 乘悟倂消어니와   '이치로는 활짝 깨닫는지라 
깨달음과 동시에 사라지거니와 
事非頓除라 因次第盡이라하시며  현실[事]로는 활짝 제거되지 않는지라 
차례에 따라야 다한다' 하셨느니라. 
又 圭峰이 深明先悟後修之義曰  또, 규봉(圭峰)이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 정의를 자세히 밝히기를 
識氷池而全水나   '얼음 언 못 전부가 물인 줄은 알았으나 
借陽氣以鎔消하고  햇빛을 받아야 녹고, 
夫而即覺이나  범부 그대로가 부처인 줄은 깨달았으나 
資法力以薰修니  법력(法力)을 의지하여야 익히고 닦나니, 
氷消則水流潤하야  얼음이 녹으면 물이 철철 흘러서 
方呈漑滌之功하고  적시고 씻는 공력을 나타내고 
妄盡則心이 靈通하야  허망함이 다하면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서 
應現通光之用이라하니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 하시니, 
是知事上神通變化는  이것으로 보건대 현실적인 신통과 변화는 
非一日之能成이라  하루나 이틀의 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乃漸薰而發現也로다  차츰차츰 익히고 닦아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況事上神通은 於達人分上에  하물며 현실적인 신통이란 
깨달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猶爲妖怪之事며  아직 요사한 짓이며, 
亦是聖末邊之事라  또 성인에게는 지엽적인 말단의 일이라, 
雖或現之라도 不可要用이어늘  가끔 나타낼지라도 쓸모없이 여기거늘 
今時迷痴之輩는  요즘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妄謂一念悟時에  함부로 말하기를  '한 생각 깨달으면 
即隨現無量妙用神通變化라하니  즉시에 무량하고 묘한 작용인 
신통과 변화를 나툰다' 하니, 
此所謂不知先後하며  이것이야 말로 앞뒤를 알지 못하며 
亦不分本末也니  근본과 끝을 분간치 못하는 짓이라, 
如將方木하야 逗圓孔이라  마치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으려는 짓 같으니 
豈非大錯이리요  그 어찌 큰 잘못이 아니랴?"
 七. 先辨頓悟漸修  7) 먼저 활짝 깨닫고 
    차츰 닦는 법을 밝힘
問曰  물음이라. 
悟旣頓悟인댄 何假頓修며  “깨달음이 이미 활짝 깨달은 것이라면 
어찌 다시 활짝 닦을 것이며 
修若漸修인댄 何言頓悟리요  닦은 것을 점차 닦는다면 
어찌 활짝 깨달았다 하리요? 
頓漸二義를 更爲宣說하소서  활짝 깨달음과 점차 닦는 두 가지 이치를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소서.” 
答曰  대답이라. 
頓悟者는 夫 迷時에  “활짝 깨닫는다 함은 범부가 미혹했을 때에 
四大로 爲身하고  四대(大)로 몸이라 하고 
妄想으로 爲心할새  망상(妄想)으로 마음이라 하므로 
不知自性이 是眞法身이며  자기의 성품이 참 법신(法身)임을 모르고 
不知自己靈知가 是眞佛하고  자기의 신령한 알음알이가 참 부처인 줄 몰라 
心外에 佛하야 波波浪走라가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기에 
끝없이 헤매다가 
忽被先覺者의 指示入路하야  갑자기 선각자(先覺者)가 
깨달아 들어가는 길을 지시해주는 것을 만나면 
一念廻光하야 見自本性호대  잠깐 사이에 한 생각을 돌려 
자기의 근본 성품을 보되 
而此性地에 元無煩惱하고   '이 성품 자리에는 원래 번뇌가 없고 
無漏智性이 本自具足하야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 구족해서 
即與諸佛로 分毫不殊일새  여러 부처님들과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故로 云 頓悟也니라  활짝 깨닫는다 하느니라. 
漸修者는 雖悟本性이 與佛無殊나  점차로 닦는다 함은 비록 근본 성품이 
부처와 다름없는 줄 깨달았으나 
無始習氣를 卒難頓除故로  끝없는 예부터 익힌 습기를 
갑자기 버리기 어려운 까닭에 
依悟而修하야 漸熏功成하야  깨달음에 의하여 닦되 
차츰 익히어 공이 이루어져서 
長養聖胎하야 久久成聖할새  성태(聖胎)를 길러서 
오래오래 지나서야 성인이 되므로 
故로 云 漸修也니라  점차로 닦는다 하느니라. 
比如孩子 初生之日에  마치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諸根具足이 與他無異나  모든 감관(根)이 구족해서 
다른 이와 차이가 없으나 
然이나 其力이 未充하나니  그 힘으 충실치 못하더니 
頗經歲月하야사 方始成人이니라  상당한 세월을 지나면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것과 같으니라.” 
 八. 求悟方便轉轉蹉過  8) 깨닫는 방법을 구하면 더욱 어긋남
問曰 作何方便하야사  물음이라. 
“어떤 방편을 지어야 
一念廻機하야 便悟自性이릿고  한 생각을 돌이켜서 
문득 스스로의 성품을 깨달으리까?” 
答曰 只汝自心이어늘  대답이라. 
“다만 그대 스스로의 마음이거늘 
更作什麽方便고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리요? 
若作方便하야 更求解會인댄  만일 방편을 지어서 알려고 한다면 
比如有人이 不見自眼일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以謂無眼이라하야 更欲求見이로다  눈이 없다 하면서 
다시 보기를 바라는 것과 같도다. 
旣是自眼이어니 如何更見이리요  이미 자기의 눈이거늘 어떻게 다시 보리요? 
若知不失이면 即爲見眼이라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으로 본 것이라, 
更無求見之心이어니  다시 보려는 마음마저 없거늘 
豈有不見之想이리요  어찌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으리요? 
自己靈知도 亦復如是하야  자기의 신령한 알음알이도 그러하여서 
旣是自心이어니 更何求會리요  이미 자기의 마음이거니 
어찌 다시 알기를 바라리요? 
若欲求會인댄 便會不得이니  만일 알기를 바란다면 
끝내 알지 못하리니, 
但知不會하면 即是見性이니라  오직 알려하지 않을 줄만 알면 
이것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니라.” 
 九. 直示空寂靈知  9) 비고 고요하고 신령한 알음을 
    곧장 보임
問曰  물음이라. 
上上之人은 聞即易會어니와  “높은 근기의 사람은 
들으면 즉시에 알겠지만 
中下之人은 不無疑惑이니  중·하근기의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으니, 
更說方便하야  다시 방편을 말씀하셔서 
令迷者로 趣入케하소서  미혹한 무리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여 주소서.” 
答曰 道不屬知不知하니  대답이라. 
“도는 알거나 모르는 데 있지 않으니, 
汝 除却將迷待悟之心하고  그대는 미혹을 가지고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聽我言說하라  나의 말을 들으라. 
諸法이 如夢하며 亦如幻化하니  모든 법이 꿈 같고 
허깨비(幻化) 같으니, 
故로 妄念이 本寂하고  그러므로 허망한 생각이 본래 고요하고 
塵境이 本空이니라  티끌 경계가 본래 공하니라. 
諸法皆空之處에 靈之不昧하니  모든 법이 모두 공한 곳에 
신령하게 알아 매(昧)하지 않으니, 
即此空寂靈知之心이  이 비고 고요하여 신령하게 아는 마음이 
是汝本來面目이며  곧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亦是三世諸佛과 歷代祖師와  三세(世)의 부처님들과 역대의 조사들과 
天下善知識이 密密相傳之法印也라  천하의 선지식(善知識)이 
비밀히 전하시는 법인(法印)이니라. 
若悟此心하면  만일 이 마음을 깨달으면 
眞所謂不踐階梯하고  그야말로 계급을 밟지 않고 
徑登佛地하야 步步超三界하며  지름길로 부처님의 경지에 올라서 
걸음마다 三계(界)를 뛰어넘으며 
歸家頓疑니  집에 돌아가서 
활짝 의심을 끊는 경지이리니, 
便與人天爲師하야  문득 모든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 되어서 
悲智相資하야 具足二利하야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두 가지 이익이 구족해서 
堪受人天妙供호대  인간과 하늘의 묘한 공양을 받되 
日消萬兩黃金하리니  날마다 황금 만 냥을 누려도 좋으리라. 
汝若如是인댄 眞大丈夫라  그대가 이렇게 하기만 하면 
참으로 대장부라 
一生能事를 己畢矣리라  일생의 중요한 일을 끝냈다 하리라.” 
 十. 直指人心本來是佛  10)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곧장 보임
問이라 據吾分上컨대  물음이라. 
“나의 분수에 의하건대 
何者 是空寂靈知之心耶아  어느 것이 비고 고요하되 
신령하게 아는 마음입니까?” 
答이라 汝今問我者가  대답이라.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是汝空寂靈知之心이어늘  바로 비고 고요하되 
신령하게 아는 마음이거늘 
何不返照하고 猶爲外  어찌 반조(返照)하지 않고 
여전히 밖을 향해 구하는가? 
我今據汝分上하야  내가 이제 그대의 분수에 의하여 
直指本心하야 今汝便悟케호리니  근본 마음을 곧장 가리켜서 
그대로 하여금 당장에 깨닫게 하리니, 
汝須淨心하야 聽我言說하라  그대는 마음을 맑히어 나의 말을 들으라. 
從朝至暮히 十二時中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 두 시간동안에 
或見或聞하며 或笑或語하며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或嗔或喜하며 或是或非하야  성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옳다고 주장도 하고 그르다고 헐뜯기도 하면서 
種種施爲運轉하나니  갖가지로 활동을 하나니, 
且道하라  말해보라. 
畢竟에 是誰能伊麽運轉施爲耶아  끝내 이게 누구의 운전인가! 
若言 色身이 運轉인댄  만일에 말하기를 
 '색신(色身)이 운전한다' 하면 
何故로 有人이  무슨 까닭에 어떤 사람이 
一念命終에 都未壞爛호대  잠깐 사이에 죽어서 
전혀 썩지 않았으되 
即眼不自見하며 耳不能聞하며  눈은 보지 못하며, 귀는 듣지 못하며, 
鼻不辨香하며 舌不談論하며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며, 
혀는 말을 하지 못하며, 
身不動搖하며 手不執捉하며  몸은 요동치 못하며, 
손은 잡지 못하며, 
足不運奔耶아  발은 다니지 못하는가? 
是知能見聞動作이  이것으로 보건대 
능히 보고 듣고 운동하는 것이 
必是汝의 本心이요  반드시 그대의 본심(本心)이요 
不是汝의 色身也로다  그대의 색신(色身)이 아님을 알 것이다. 
況此色身이 四大性空하야  하물며 이 색신은 
四대(大)의 성품이 공하여 
如鏡中像하며 如水中月하니  거울 속의 그림자 같으며, 
물 속의 달 같으니, 
豈能了了常知하며 明明不昧하야  어찌 능히 요요(了了)하게 항상 알며 
명명(明明)히 매하지 않고서 
感而逐通恆沙妙用也리요  느끼는 대로 곧 항하사 같은 
묘용(妙用)을 통하리요? 
故로 云 神通並妙用이  그러므로 '신통과 묘용이 
運水及搬柴라하니라  곧 물 깃고 나무 나르는 것'이라 하노라. 
 十一. 直示觀音入理門  11) 관음이 깨달아 들어간 법문을 
      곧장 보임
且入理多門이나 指汝一門하야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갈래 있으나 
그대에게 한 문을 가르쳐 주어 
令汝로 還源케호리라  그대로 하여금 근원에 돌아가게 하리라. 
汝還聞鴉鳴鵲噪之聲麽아  그대는 저 까마귀와 
까치의 울음 소리를 듣는가?"
曰 聞이니다  “예, 듣습니다.” 
曰 汝 返聞汝의 聞性하라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으라. 
還有許多聲麽아  거기에도 여러 가지 소리가 있는가?" 
曰 到這裏하야는  “거기에 이르러서는 
一切聲과 一切分別을  온갖 소리와 온갖 분별이 
俱不可得이로소이다  전혀 없습니다.” 
曰 奇哉奇哉라  "기특하도다. 
此是觀音入理之門이로다  이것이 관음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로다. 
我更問하노라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물으리라. 
道호대 到這裏하야는  그대가 말하기를 ‘거기에 이르러서는 
一切聲과 一切分別을  모든 소리와 모든 분별이 
總不可得이라하니  전혀 없다’ 하였으니, 
旣不可得인댄 當伊麽時하야  이미 아무 것도 없다면 그때를 당하여 
莫是虛空麽아  허공이 된 것이 아닌가?" 
曰 元來不空하야 明明不昧니이다  “원래 공하지 않아서 
밝고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曰 作麽生是不空之軆오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바탕인가?" 
曰 亦無相貌하야  “모양조차 없으니 
言之不可及이로소이다  말로는 미치지 못하나이다.” 
曰, 此是諸佛諸祖의 壽命이니  "이것이 바로 여러 부처님과 
조사들의 수명이니 
更莫疑也어다  더 의심하지 말라. 
旣無相貌인댄 還有大小麽며  이미 형상과 모습이 없다면 
크고 작음은 있는가? 
旣無大小인댄 還有邊際麽아  크고 작음이 없을진댄 끝은 있는가? 
無邊際故로 無內外하고  끝이 없으므로 안팎이 없고, 
無內外故로 無遠近하고  안팎이 없으므로 멀고 가까움이 없고, 
無遠近故로 無彼此하니  멀고 가까움이 없으므로 
너와 나가 없느니라. 
無彼此則 無往來하고  너와 나가 없으면 가고 옴이 없고, 
無往來則 無生死하고  가고 옴이 없으면 나고 죽음이 없고, 
無生死則 無古今하고  나고 죽음이 없으면 예와 이제가 없고, 
無古今則 無迷悟하고  예와 이제가 없으면 
미혹과 깨달음이 없고, 
無迷悟則 無聖하고  미혹과 깨달음이 없으면 
범부와 성인이 없고, 
聖則 無染淨하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면 
더러움과 깨끗함이 없고, 
無染淨則 無是非하고  더러움과 깨끗함이 없으면 
옳고 그름이 없고, 
無是非則  옳고 그름이 없으면 
一切名言을 俱不可得이니라  온갖 이름과 말을 모두 얻을 수 없느니라. 
旣總無如是인댄  이미 이런 것이 전혀 없다면 
一切根境과 一切妄念과  온갖 감관과 경계와 
그리고 온갖 망념(妄念)과, 
乃至種種相貌와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습과 
種種名言을 俱不可得이니  갖가지 이름과 말을 모두 얻을 수 없나니 
此豈非本來空寂이며  이 어찌 본래 공적(空賊)한 것이 아니며 
本來無物也리요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리요? 
然이나 諸法皆空之處에  그러나 모든 법이 모두 공한 곳에 
靈知不昧하야  신령한 알음알이가 어둡지 않아서 
不同無情하야 性自神解하니  무정물과는 달리 
성품 스스로가 싱그러이 이해하나니, 
此 是汝의 空寂靈知淸淨心體니라  이것이 그대의 비고 고요하고 
신령한 알음알이이며 청정한 마음 바탕이니라. 
而此淸淨空寂之心이  이 청정하고 비고 고요한 마음은 
是 三世諸佛의 勝淨明心이며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들의 
대단히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며 
亦是 衆生의 本源覺性이니  중생들의 근원인 각성(覺性)이니, 
悟此而守之者는  이것을 깨달아 지키는 이는 
坐一如하야 而不動解脫하고  일여(一如)에 앉아서 
해탈의 경지에서 요동치 않고, 
迷此而背之者는 往六趣하야  이것을 미혹하여 등진 이는 
六취(趣)로 가서 
而長刧輪廻하나니라  여러 겁을 헤매느니라. 
故로 迷一心而往六趣者는  그러므로 말하기를 
 '한 마음을 미혹해서 六취로 가는 것은 
去也며 動也요  감(去)이며 움직임(動)이요, 
悟法界而復 一心者는  법계를 깨달아서 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來也며 靜也라하니  옴(來)이며 고요함(靜)이라' 하니, 
雖迷悟之有殊나  미혹과 깨달음은 다르나 
乃本源則一也니라  그 근원은 하나이니라. 
所以로 云하사대  그러므로 말하기를 
所言法者는 衆生心이라하시니   '법이란 것은 중생의 마음이라' 하시니, 
而此空寂之心이 在聖而不增하며  이 비고 고요한 마음이 
성인에게서도 늘지 않고, 
而不滅이니  범부에게서도 줄지 않느니라. 
故로 云 在聖智而不耀하며  그러므로 말하기를 
 '성인의 지혜에서도 빛나지 않고, 
心而不昧라하니라  범부의 마음에 숨어서도 
어둡지 않다' 하시니라. 
旣不增於聖하며 不少於인댄  이미 성인에게서 늘지 않고, 
범부에게서 줄지 않을진댄 
佛祖 奚以異於人이리요  불조(佛祖)가 
어찌하여 사람들과 다르리요? 
而所以異於人者는  사람들보다 다른 까닭은 
能自護心念耳니라  스스로가 마음을 지키기 때문이다. 
 十二. 結勸  12) 수행하기를 권함
汝若信得及하면 疑情을 頓息하리니  그대가 믿기만 한다면 
의심을 활짝 쉬게 되리니, 
出丈夫之志하며 發眞正見解하야  장부의 뜻을 내고 
진정한 견해를 일으켜서 
親嘗其味하야 自到自肯之地하면  친히 그 맛을 맛보고, 
스스로가 긍정할 경지에 이르면 
則是爲修正人의 悟解處也라  이것이 바른 수행인의 깨달을 곳이라, 
更無階級次第니  다시는 계급(階級)도 차례도 없느니라. 
故로 云 頓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활짝 깨달음(頓悟)이라' 하며, 
如云호대 於信因中에  또 말하기를 '믿음의 인행(因) 때에 
契諸佛果德하야 分毫不殊하야사  모든 부처님의 과덕(果德)에 부합되어서 
털끝만치도 어기지 않아야 
方成信也니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 하셨느니라.” 
 十三. 重示悟後漸修  13)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법을 
      거듭 보임
問 旣悟此理하야  물음이라. 
“이미 이런 이치를 깨달아 
更無階級인댄  다시 계급이 없을진댄 
何假後修하야 漸薰漸成耶오  어찌 뒤에 다시 닦아서 차츰 익히고 
차츰 이루는 절차가 필요하리요?” 
答이라  대답이라. 
悟後漸修之義를 前己具說이어늘  “깨친 뒤에 차츰 닦는 이치를 
전에 이미 구족히 말했거늘 
而復疑情을 未釋일새  아직도 의혹을 풀지 못했으니, 
不妨重說이로다  다시 설명함이 무방하리니, 
汝須淨心하야 諦聽諦聽하라  그대는 마음을 맑히어 자세히 들으라. 
夫無始曠大劫來로 至於今日히  범부가 끝없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流轉五道호대 生來死去에  五道[지옥·아귀·축생·인도·천상]에 헤매되, 
태어나고 오고 죽으면 가는 사이에 
堅執我相하야  아상(我相)을 굳게 집착하여 
妄想顚倒와 無明種習으로  전도된 망상과 
종자로 훈습된 무명과 더불어 
久與成性일새 雖到今生에  오랫동안 성품을 이루었으므로 
비록 금생에 이르러서 
頓悟自性이 本來空寂하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공적해서 
與佛無殊나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而此舊習을 卒難頓除故로  묵은 습성을 끝내 
갑자기 제하기는 어려우므로 
逢逆順境하야는  역경과 순경을 만나면 
嗔喜是非가 熾然起滅하고  성냄과 기쁨과 옳고 그름이 
어지러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客塵煩惱가 與前無異하나니  거칠은 번뇌와 미세한 번뇌가 
예전과 다름이 없나니, 
若不以般若로 加功着力이면  만일 반야로써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焉能對治無明하야  어찌 능히 무명을 물리쳐서 
得到大休大歇之地리요  크게 쉬는 경지에 이르를 수 있으리요? 
如云호대 頓悟雖同佛이나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활짝 개달으면 부처와 같으나 
多生習氣深이라  여러 생의 습기가 깊은지라 
風停하야도 波尙湧하고  바람이 멈추어도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고 
理現하야도 念猶侵이라하며  진리가 나타나도 
망념은 아직도 침입한다' 하였으며, 
又宗杲 云호대  또 종고(宗杲)선사가 말하기를 
往往에 利根之輩 不費多力하고   '간혹 영리한 무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打發此事하고는  이 일을 깨닫고는 
便生容易之心하야  문득 수월하다는 생각을 내어 
更不修治라가 日久月深하면  더 닦지 않다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依前流浪하야 未免輪廻라하시니  전과 같이 떠돌다가 
윤회를 면치 못한다' 하시니, 
豈可以一期所悟로  어찌 잠시 깨달은 바가 있다 하여 
便撥置後修耶아  다시 닦는 일을 던져 버리리요? 
故로 悟後에 長須照察하야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 
오래오래 밝히고 살펴서 
妄念이 忽起어든 都不隨之니  망념(妄念)이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지니, 
損之又損하야 以至無爲하야사  덜고 또 덜어서 
더 할 것이 없는데 이르러야 
方始究竟이니라  비로소 완전하리니, 
天下善知識의  천하의 선지식이 
悟後牧牛行이 是也라  깨달은 뒤에 목우행(牧牛行)을 한 것이 
이것이니라. 
雖有後修나 己先頓悟妄念이 本空하며  비록 나중에 닦는다고는 하나 
망념이 본래 공하고 
心性이 本淨일새  심성(心性)이 본래 맑은 줄을 
먼저 이미 깨달았으므로 
於惡에 斷호대 斷而無斷이요  악을 끊되 끊는 것이 없고, 
於善에 修호대 修而無修니  선을 닦되 닦는 것이 없나니, 
此乃眞修眞斷矣라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니라. 
故로 云 雖備修萬行이나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록 만행(萬行)을 골고루 닦는다 하여도 
唯以無念으로 爲宗이라하나니라  오직 무념(無念)으로 
조종(宗)을 삼는다' 하였느니라. 
圭峰이 總判先悟後修之義云호대  규봉(圭峰)이 깨달은 뒤에 닦는 도리를 
통틀어 판단하기를 
頓悟此性이 元無煩惱하며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으며, 
無漏智性이 本自具足하야  무루지혜(無漏智)의 성품이 
본래 구족한 줄을 활짝 깨닫고, 
依此而修者는 是名最上乘이며  이에 의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고, 
亦名如來淸淨禪也니  또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하나니, 
若能念念修習하면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自然漸得百千三昧하리니  백 천 삼매를 자연히 차츰차츰 얻게 되리니, 
達磨門下에  달마(達磨)의 문하에서 
展轉相傳者 是此禪也라하니  대대로 전한 것이 
이 선법(禪法)이니라' 하시니, 
則頓悟漸修之義가  활짝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도리가 
如車二輪하야 闕一不可하니라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안 되느니라. 
或者 不知善惡性空하고  어떤 이는 선과 악의 성품이 
공한 줄을 알지 못하고 
堅坐不動하야  굳이 앉아 요동치 않으면서 
捺伏身心을 如石壓草로  몸과 마음을 억누르는 것으로 
以爲修心하나니 是 大惑矣라  마음 닦는 일이라 하니, 이는 큰 잘못이니라. 
故로 云하사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聲聞은 心心斷惑호대   '성문은 생각마다 미혹을 끊으나 
能斷之心이 是 賊이라하시니  끊으려는 생각이 도적이라' 하시니, 
但諦觀殺盜妄이  살생·투도·음행·망어가 
從性而起인달하면  성품으로부터 일어나는 줄로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起即無起라  일어남이 곧 일어나지 않음이라, 
當處便寂하리니 何須更斷이리요  그 자리가 바로 적멸이거니 
어찌 더 끊으려 하리요? 
所以로 云하사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不怕念起하고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惟恐覺遲라하며  오직 깨달음이 
늦을 것만을 두려워한다' 하였으며, 
又云하사대  또 말씀하시기를 
念起即覺이라 覺之即無라하니   '망념이 일어나면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 하였느니라. 
故로 悟人分上에는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雖有客塵煩惱나 俱是醍醐로다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으나 
모두가 제호(醍醐=최상의 맛)가 되느니라. 
但照惑無本하면  미혹의 근본이 없는 줄 알면 
空華三界가 如風捲煙하고  허공꽃(空華) 같은 삼계가 
바람이 연기를 걷는 것 같고, 
幻化六塵이 如湯消氷이니라  허깨비(幻化)같은 육진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若能如是念念修習하야  만일에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어 
不忘照顧하야 定慧等持하면  살피기를 잊지 않아, 
정(定)과 혜(慧)를 균등히 지니면 
則愛惡가 自然淡溥하며  사랑도 미움도 자연히 얇아지고 
悲智가 自然增明하며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늘어나며 
罪業이 自然斷除하며  죄와 업이 자연히 없어지며 
功行이 自然增進하나니  공덕과 수행이 자연히 두터워지리니, 
煩惱盡時에 生死即絶이라  번뇌가 다할 때에 생사가 바로 끊어지리라. 
若微細流注 永斷하고  미세한 번뇌(流注)가 영원히 끊어지고 
圓覺大智가 朗然獨存하면  원각의 큰 지혜가 오롯이 밝아지면 
即現千百億化身하야  즉시에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나타내어 
於十方國土中에 赴感應機호대  十방국토에 근기 따라 감응하되, 
似月現於九宵에  마치 달이 중천에 밝으면 
影分萬水인달하야  그림자가 여러 물에 나누어 비치듯 
應用無窮하야 度有緣衆生호대  끝없이 응용하면서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되 
快樂無憂일새  즐거워 근심이 없으므로 
名之爲大覺世尊이니라  대각 세존이라 부르느니라.” 
 十四. 正示二門定慧  14) 정과 혜를 바로 보임
問이라 後修門中에  물음이라. 
“깨달은 뒤에 딱는 부문에서 
定慧等持之義를 實未明了하니  정과 혜를 균등히 지니는 이치를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하겠으니, 
更爲宣說하사 委示開迷하사  다시 설명하시고 자세히 보이셔서 
어리석음을 열어 
引入解脫之門케하소서  해탈의 문에 들게 하여 주소서.” 
答이라  대답이라. 
若設法義인댄 入理千門이나  “만일 법과 이치(法義)를 말한다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 많겠으나 
莫非定慧요 取其綱要컨대  정혜(定慧) 아닌 것이 없고, 
그 강요(綱要)를 취하건대 
但自性上軆用二義니  자기 성품 위의 체(體)와 용(用) 
두가지일 뿐이니, 
前所謂空寂靈知가 是也라  전에 말한 바 비고 고요하고 
신령하게 안다 한 것이니라. 
定是軆요 慧是用也니  정(定)은 본체요 혜(慧)는 작용이니, 
即軆之用故로 慧不離定하고  본체 그대로인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가 선정을 여의지 않았고 
即用之軆故로 定不離慧하며  작용 그대로인 본체이기 때문에 
선정이 지혜를 여의지 않았으며, 
定則慧故로 寂而常知하고  선정 그대로가 지혜인 까닭에 
고요하면서도 항상 알고, 
慧則定故로 知而常寂하나니  지혜 그대로가 선정인 까닭에 
알면서도 항상 고요하나니, 
如曹溪云하사대  조계(曹溪)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心地無亂이 自性定이요   '마음 바탕에 어지러움 없는 것이 
제 성품의 선정이요, 
心地無痴가 自性慧라하시니라  마음 바탕에 어리석음 없는 것이 
제 성품의 지혜라' 하시니라. 
若悟如是하야 任運寂知하야  만일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달아서 
걸림없이 적적히 알아 
遮照無二則 是爲頓門箇者의  가리움과 비춤이 둘이 없이 되면 
이는 활짝 깨달은 자가 
雙修定慧也니라  정과 혜를 쌍으로 닦는 것이니라. 
若言  만일 말하기를 
先以寂寂으로 治於緣慮하고   '먼저 적적(寂寂)으로써 
산란[緣慮]을 다스리고, 
後以惺惺으로 治於昏住하야  나중에 성성(惺惺=또렷또렷함)으로써 
혼침[昏住]을 다스려서 
先後對治로 均調昏亂하야  처음과 나중의 다스림으로 
혼침과 산란을 균등히 조절해서 
以入於靜者는  고요함[靜]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是爲漸門劣機의 所行也니  이는 차츰 깨달은 열등한 무리가 
행하는 바이니라. 
雖云惺寂等持나  성상과 적적을 균등히 지닌다고는 하나 
未免取靜爲行이면  고요함을 취함으로써 수행을 삼는 
허물을 면치 못했으니 
則豈爲了事人의  어찌 일을 마친 사람[了事人]이 
不離本寂本知하야  본래의 고요함과 본래의 신령스런 
알음을 여의지 않고서 
任運雙修者也리요  자유로이[任運] 
쌍으로 닦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오? 
故로 曹溪云하사대  그러므로 六조[曹溪]께서 말씀하시기를 
自悟修行은 不在於諍이니   '스스로가 깨닫고 수행하는 것은 
다투는데 있지 않나니 
若諍先後하면  앞과 뒤를 다투면 
即是迷人이라하시니라  미혹한 사람이라' 하셨느니라. 
則達人分上에는  통달한 사람의 경지에서는 
定慧等持之義 不落功用하나니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닌다는 것이 
공용(功用)에 속하지 않나니, 
元自無爲하야  원래부터 함이 없어서 
更無特地時節이니라  더 이상 특이한 경지가 없느니라. 
着衣喫飯時에 但伊麽하며  옷을 입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尿送尿時에 但伊麽하며  똥을 누고 오줌을 눌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對人接話時에 但伊麽하며  사람을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見色聞聲時에 但伊麽하며  사물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乃至行往坐臥와  나아가서는 다니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 
或語或하며 或喜或怒히  말하거나 잠잠하거나 
기뻐하거나 성내거나에 이르기까지 
一切時中에 一一如是호대  항상 이와 같이 하되, 
似虛舟駕浪에 隨高隨下하며  마치 빈 배를 파도 위에 띄우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 같으며, 
如水轉山에 遇曲遇直인달하야  물이 산골을 지나면 
곧았다 굽었다 하는 것 같아서 
心心無知리라  마음마다에 아무런 지각이 없느니라. 
今日에 騰騰任運하며  오늘도 훨훨[騰騰] 자유로우며[任運] 
明日에 騰騰任運이라  내일도 훨훨 자유로와서 
隨順衆緣호대 無障無礙하야  뭇 인연에 따라 순응하되 
아무런 장애가 없어서 
於善於惡에 不斷不修하며  선과 악에 대하여 
닦으려고도 않고 끊으려고도 않으며, 
質直無僞하야 視聽尋常이라  곧고 거짓이 없어서 
보고 듣는 일에 예사로우니라. 
則絶一塵 而作對어니  한 티끌도 상대할 것이 없거니 
何勞遣蕩之功이며  어찌 수고로이 떨어버리는 공부를 할 것이며,
無一念而生情이라  한 생각도 망정(妄情)을 낼 것이 없거니 
不假忘緣之力이니라  반연을 잊으려는 힘을 쓸 필요가 없느니라. 
然이나 障濃習重하며  그러나 장애가 진하고 습기가 무거우며 
觀劣心浮하야  수행(觀)이 미약하고 마음이 들떠서 
無明之力은 大하고  무명의 힘이 크고 
般若之力은 小할새  반야의 힘이 작으므로 
於善惡境界에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하여 
未免被動靜互擾하야  시끄럽거나 고요함에 끄달리지 않을 수 없어서 
心不恬淡者는  마음이 편안치 않은 이에게 
不無忘緣遣蕩之功夫矣니라  반연을 잊고 떨어버리는 공부가 없지 않으니라. 
古云 六根이 攝境하야  옛 사람이 말하기를 
 '六근(根)이 경계를 거두어서 
心不隨緣을 謂之定이요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정이라 하고, 
心境이 俱空하야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공하여 
照鑑無惑을 謂之慧라하니라  의혹없이 밝게 비추는 것을 
지혜라한다' 하였느니라. 
此雖隨相門定慧며  이것이 비록 겉모습을 따르는 
문중의 정과 혜이며, 
漸門劣機所行也나  차츰 닦는 문중의 
못난 근기들이 행할 바이기는 하나 
對治門中에는 不可無也니라  다스려 나아가는 문중에는 없을 수 없느니라. 
若 掉擧가 熾盛則先以定門으로  만일 도거(掉擧=산란)가 성하거든 
먼저 선정의 문으로 
稱理攝散하야 心不隨緣하야  이치에 맞게 산란을 거두어서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아 
契乎本寂하고  본래의 고요함에 계합하게 하고, 
若 昏沈이 尤多則次以慧門으로  만일 혼침(昏沈=졸음)이 너무 많거든 
다음엔 지혜의 문으로 
擇法觀空하야 照鑑無惑하야  일체를 보아 공함을 관찰해서 
비춤에 미혹이 없이 
契乎本知니라  본래의 알음(本知)에 계합하여야 하느니라. 
以定治乎亂想하고  선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以慧治乎無記하야  지혜로서 무기(無記=무감각)를 다스려서 
動靜相忘하고  시끄러움과 고요함을 모두 잊고 
對治功終則對境而念念歸宗이요  물리치는 공부가 끝나면 
경계를 대하되 생각마다 조종에 돌아가고 
遇緣而心心契道하야  반연을 만나되 마음마다 도에 계합해서 
任運雙修하야사 方爲無事人이니  자유로이 쌍으로 닦아야 
바야흐로 일없는 사람(無事人)이 되리니, 
若能如是則眞可 謂定慧等持하야  능히 이 와같이 하면 
참으로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어 
明見佛性者也니라  불성을 분명히 본 사람이라 하리라.” 
 十五. 詳明二門定慧  15) 선정과 지혜를 자세히 밝힘
問 據汝所判컨대  물음이라. 
"그대의 판단에 의하건대 
悟後修中에  깨달은 뒤에 닦는 문 가운데 
定慧等持之義가 有二種하니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는 이치가 
두가지 있으니 
一은 自性定慧요  하나는 자성정혜(自性定慧)요, 
二는 隨相門定慧니라  또 하나는 수상문정혜(隨相門定慧)이다. 
自性門則曰任運寂知하야  자성문정혜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유로이 고요하게 알아서 
元自無爲라 絶一塵而作對이니  원래부터 무위(無爲)인지라 
한 티끌도 상대될 것이 없거니 
何劣遣蕩之功이며  어찌 버리고 소탕하는 공부를 할 것이며, 
無一念而生情이라  한 생각도 망정을 낼 것이 없거니 
不假忘緣之力이라하고  반연 잊는 힘이 필요치 않다' 하고, 
判云호대 此是頓門箇者의  판정하되 '이는 활짝 깨달은 이가 
不離自性하야 定慧等持也라하고  제성품(自性)을 여의지 않고서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는 것이라' 하였으며, 
隨相門則曰 稱理攝散하며  수상문정혜에 대하여는 말하되 
 '이치에 맞게 산란을 거두며, 
擇法觀空하야 均調昏亂하야  법을 가리어 <공>을 관찰하되 
혼침과 산란을 균등하게 조절해서 
以入無爲라하고  무위의 경지에 들어간다' 하고, 
判云호대  판정하되 
此是漸門劣機의 所行也라하니   '이는 차츰 닦는 문중에 속하는 
열등한 무리의 행할 바라' 하니, 
就此兩門定慧하야  이 두 부문의 정과 혜에 대하여 
不無疑焉이로다  의심이 없지 않도다. 
若言 一人所行인댄  만일 말하기를 
 '한 사람의 행할 바라' 한다면 
爲復先依自性門하야  먼저 자성문(自性門)에 의해서 
定慧雙修然後에  선정과 지혜를 상으로 닦은 뒤에 
更用隨相門對治之功耶아  다시 수상문(隨相門)으로써 
다스리는 공부를 하여야 되는가, 
爲復先依隨相門定慧하야  혹은 먼저 수상문에 의하여 
均調昏亂然後에  혼침과 산란을 균등하게 조절한 뒤에 
以入自性門耶아  자성문에 들어가야 되는가? 
若先依自性定慧인댄 만일 먼저 자성문의 정과 혜에 의지한다면 
則任運寂知하야  자유로이 고요하게 알아서 
更無對治之功이어니  더 이상 물리치고 닦을 공부가 
필요치 않을 것이어늘 
何修更取隨相門定慧耶리요  어찌 다시 수상문의 정과 혜를 
취할 필요가 있으리요? 
如將皓玉하야 彫文喪德이로다  마치 흰 옥에다 문채를 새겨서 
옥의 덕을 해치는 것과 같도다. 
若先以隨相門定慧로  만일 먼저 수상문의 정과 혜로써 물리쳐 
對治功成然後에  다스리는 공부가 이루어진 뒤에 
趣於自性門인댄   자성문에 나아간다면 
則宛是漸門中劣機의  이는 완연히 차츰 닦는 문중에서 
못난 근기(劣機)가 
悟前漸薰修也니  깨닫기 전에 차츰 닦아 익히는 법이어늘 
豈云 頓門箇者의  어찌하여 말하기를 
 '활짝깨닫는 문중의 사람이 
先悟後修하야  먼저 깨닫고 나중에 딱아서 
用無功之功也리요  공부할 것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이라' 하리요? 
若一時에 無前後則인댄  만일 동시이어서 앞 뒤가 없다면 
二門定慧의 頓漸이 有異하니  두 부문의 선정과 지혜가 
돈(頓)과 점(漸)의 차이가 있거늘 
如何一時에 並行也리요  어떻게 동시에 함께 행하리요? 
則頓門箇者는  활짝 깨닫는 부문에 속하는 이는 
依自性門하야 任運忘功하고  자성문에 의하여 자유로이 공부를 잊고, 
漸門劣機는 趣隨相門하야  차츰 닦는 부문의 못난 근기는 
수상문에 나아가서 
對治勞功이니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를 힘써야 하나니, 
二門之機 頓漸이 不同하고  두 부문의 근기가 돈과 점이 같지 않고 
優劣이 皎然하니  우수함과 열등함이 분명하거늘 
云何先悟後修門中에  어찌 먼저 깨닫고 나중 닦는 문에서 
並釋二種耶아  두 가지를 함께 해석하겠는가?" 
答이라  대답이라. 
所釋이 皎然커늘 汝自生疑로다  "이미 해석한 것이 분명하거늘 
그대 스스로가 의혹을 내는구나. 
得意忘言하면 不勞致詰하리라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공연히 따질 필요가 없으리라. 
若就兩門하야 各判所行인댄  만일 두 문에 대하여 
그들의 수행을 나누어 판별하건대, 
則修自性定慧者는  자성정혜를 닦는 이는 
此是頓門의 用無功之功하야  활짝 깨닫는 부문에서 
공력없는 공력을 써서 
並運雙寂하며 自修自性하야  함께 운전하고 쌍으로 고요히 하며, 
스스로의 성품을 스스로가 닦아서 
自成佛道者也라  스스로가 불도를 이루는 무리니라. 
修隨相門定慧者는  수상문(修相門)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는 
此是未悟前漸門劣機의  깨닫기 이전에 차츰 닦는 문중의 못난 근기가 
用對治之功하야 心心斷惑하야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를 써서 
마음마다 미혹을 끊어 
取靜爲行者라  고요함을 취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 것이니라. 
而此二門所行이 頓漸各異라  이 두 부문에서 행하는 것이 
돈과 점이 각각 다른지라 
不可紊亂也니라  혼동하지 말지니라. 
然이나 悟後修門中에  그러나 깨달은 뒤에 닦는 문중에 
兼論隨相門中對治者는  수상문에서의 물리쳐 다스리는 법을 
겸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非全取漸機所行也라  차츰 닦는 근기의 행할 바를 
완전히 취하는 것이 아니라 
取其方便하야 假道托宿而己니  방편을 취하되 길을 빌리거나 
투숙을 의탁하는 것 같을 뿐이니라. 
何故오 於此頓門에도  무슨 까닭인가? 이 활짝 개닫는 문에도 
亦有機勝者하며  근기가 수승한 이가 있고, 
亦有機劣者하니  근기가 열등한 이도 있으니, 
不可一例로 判其行李也니라  한 예로서 그의 행적을 
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若 煩惱가 淡薄하고  만일 번뇌가 얇고 
身心이 輕安하야  몸과 마음이 거뜬(輕安)하여 
於善에 離善하며  선(善)을 대하되 선을 여의고 
於惡에 離惡하야  악을 만나되 악을 여의어 
不動八風하며 寂然三受者는  여덟가지 바람에 요동치 않고 
세가지 느낌에 고요해진 이는 
依自性定慧하야 任運雙修하나니  자성문의 선정과 지혜에 의하여 
자유로이 쌍으로 닦을지니 
天眞無作하며 動靜常禪이라  천진(天眞)하여서 작위(作)가 없으며 
움직이고 고요함에 항상 선정에 있는지라 
成就自然之理어니  자연의 진리를 성취했거늘 
何假隨相門對治之義也리요  어찌 수상문의 물리쳐 다스리는 법을 
쓸 필요가 있으리요. 
無病不求藥이니라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하지 말지니라. 
雖先頓悟나  비록 먼저 깨달았으나 
煩惱濃厚하고 習氣堅重하야  번뇌가 짙고 습기가 굳고 무거워서 
對境而念念生情하며  경계를 대하면 생각마다 망정을 내고 
遇緣而心心作對하야  인연을 만나면 생각마다 상대를 이루어서 
被他昏亂使殺하야  혼침과 산란에 끄달려서 
昧却寂知常然者는  고요한 알음(寂知)의 항상 빛남을 어둡히는 이는 
即借隨相門定慧하야  수상문의 선정과 지혜를 의지해서 
不忘對治하고 均調昏亂하야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를 잊지 말고 
혼침과 산란을 균등히 조절해서 
以入無爲가 即其宜矣니라  무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니라. 
雖借對治功夫하야 暫調習氣나  비록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에 의하여 
잠시 습기를 조절하나 
以先頓悟心性이 本浮하고  심성(心性)이 본래 깨끗하고 
煩惱가 本空故로  번뇌가 본래 공한 것을 미리 깨달았기 때문에 
即不落漸門劣機의 汚染修也니라  차츰 닦는 문중의 못난 근기들의 
더럽혀진 수행(汚染修)에 속하지는 않느니라. 
何者오 修在悟前이면  무슨 까닭인가? 
수행이 깨닫기 이전에 있으면 
則雖用功不忘하야 念念熏修나  비록 잊지 않고 공부하여 
생각마다 익히고 닦으나 
着着生疑하야 未能無礙호미  닫는 곳마다 의혹을 내어서 
무애(無碍)를 이루지 못함이 
如有一物이 礙在胷中인달하야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는 것 같아서 
不安之相이 常現在前이라가  불안한 모습이 항상 눈앞에 나타나 있다가 
日久月深하야 對治功熟하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서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가 익어지면 
則身心客塵이 恰似輕安이니라  몸과 마음의 번뇌가 한결 거뜬한 것 같으리라. 
雖復輕安이나  거뜬해지기는 했으나 
疑根이 未斷호미 如石壓草하야  의혹의 부리가 끊이지 않음이 
마치 돌로 풀을 누른 것 같아서 
猶於生死界에 不得自在故로  아직은 생사의 세계에서 
자유자재하지 못하므로  
云호대 修在悟前은  옛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닦음이 깨달음의 앞에 있으면 
非眞修也라하니라  참 닦음이 아니라' 하셨느니라. 
悟人分上에는 雖有對治方便이나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는 
비록 물리쳐 다스리는 방편이 있으나 
念念無礙하야 不落汚染이니  생각생각에 의혹이 없어서 더렵혀지지 않나니, 
日久月深하면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自然契合天眞妙性하야  자연히 천진하고도 묘한 성품에 부합하여 
任運寂知하며  자유로이 고요하게 알며, 
念念攀緣一切境界호대  생각마다 온갖 경계를 반연하되 
心心永斷諸煩惱하야  마음마다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어서 
不離自性하며 定慧等持하야  제성품을 여의지 않으며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어 
成就無上菩提호대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되 
輿前機勝者로 更無差別하나니  전의 수승한 근기와 조금도 차별이 없나니, 
則隨相門定慧가  수상문의 성정과 지혜가 
雖是漸機의 所行이나  비록 차츰 닦는 근기가 행하는 바이기는 하지만 
於達人分上에는  통달한 사람의 경지에서는 
可謂點鐵成金이니  가위 무쇠에 환단(還丹) 한 점을 찍어 
금을 이루는 격이라 하리라. 
若知如是하면 則豈以二門定慧로  만일 이런 도리를 안다면 
어찌 두 부문의 선정과 지헤에 
有先後次第二見之疑乎아  앞뒤의 차례가 다르리라는 
두 가지 소견의 의혹을 일으키겠는가? 
 十六. 勸結  16) 수행을 권하는 말씀을 맺음
願諸修道之人은 硏味此語하고  바라노니, 수도하는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깊이 음미하여 
更莫狐疑하야 自生退屈이어다  다시는 사소한 의혹을 일으켜서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하라. 
若具丈夫之志하야 求無上佛道者인댄  대장부의 의지를 세우고 
위없는 불도를 구하는 이라면 
捨此奚以哉리요  이 길을 버리고 어찌하리요? 
切莫執文하고 直修了義하야  간절히 바라노니, 
글에만 집착하지 말고 곧바로 본뜻을 알아서 
一一歸就自己하야 契合本宗하면  낱낱이 자기에게로 돌아가게 하여 
근본 종지에 부합한다면 
則無師之智 自然現前하고  스승없는 지혜가 자연히 나타나고 
天眞之理 了然不昧하야  천진한 진리가 또렷하여 어둡지 않아서 
成就慧身이 不由他悟하리라  지혜의 몸(慧身)을 이루기에 
다른 깨달음을 말미암지 않으리라. 
而此妙智 雖是諸人分上이나  이 묘한 취지가 
비록 모든 사람의 경지이기는 하나 
若非夙植般若種智한 大根器者인댄  전생부터 반야종지(般若種智)를 심은 
뛰어난 근기가 아니면 
不能一念而生正信이니라  한 생각도 바른 믿음을 내지 못하리라. 
豈徒不信이리요 亦乃謗하야  어찌 믿지 않을 뿐이리요, 
더구나 비방해서 
返招無間者 比比有之니  도리어 무간지옥의 결과를 
부르는 이가 종종 있느니라. 
雖不信受나  비록 믿지는 않으나 
一經於耳하야 暫時結緣이면  한번 귓전을 스쳐 잠깐 인연을 맺으면 
其功厥德은 不可稱量이니라  그 공덕을 이루 헤아릴 수 없나니, 
如唯心訣에 云호대  유심결(唯心訣)에 말씀하시기를 
聞而不信이라도 尙結佛種之因하고   '듣고 믿지 않을지라도 
오히려 부처 종자(佛種)의 씨앗을 맺고, 
學而不成이라도 猶盖人天之福하야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인간이나 하늘의 복을 뒤덮어서 
不失成佛之因이라하니  성불할 바른 인(因)을 잃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況 聞而信하고 學而成하야  하물며 듣고 믿으며 배워 이루어서 
守護不忘者리요  잘 지키어 잃지 않으면 
其功德을 豈能度量이리요  그 공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요? 
追念過去輪廻之業컨대  지난 세상에 윤회한 업을 돌이켜 생각하건대 
不知其幾千劫을  몇 천겁 동안을 
墮黑闇 入無間하야 受種種苦하며  흑암지옥과 무간지옥에 빠져서 
갖가지 고통을 받았으며, 
又不知其幾何而欲求佛道호대  몇 차례나 불도를 구하려 했으나 
不逢善友하야 長刧沉輪하야  어진 벗을 만나지 못해 
여러 겁 동안 빠져 헤매면서 
冥冥無覺하야 造諸惡業이런고  캄캄하게 깨닫지 못한 채 
온갖 나쁜 업을 지었던고? 
時或一思면 不覺長吁로다  가끔 한 번 생각하면 
모르는 결에 긴 한숨이 나오는도다. 
其可放緩하야 再受前殃가  어찌 방일하다가 
지난날의 재앙을 다시 받으랴? 
又不知 誰復使我로  또 누구의 힘으로 
今値人生하야 爲萬物之靈하야  내가 이제 사람으로 태어나서 
만물의 영장이 되어서 
不昧眞修之路어뇨  바른 수행의 길을 잃지 않았던고? 
實謂盲龜遇木이며 纖芥投鍼이라  실로 눈먼 거북이 나무토막을 만난 격이며 
작은 겨자씨를 바늘 끝에 던진 격이라. 
其爲慶幸을 曷勝道哉아  그 다행스러움을 
어찌 다 말로써 표현하리요? 
我今에 若自生退屈커나  내가 이제 물러설 생각을 내거나 
或生懈怠而恒常望後라가  게으른 생각을 내어서 
항상 뒤로 미루다가 
須臾失命하면 退墮惡趣하야  깜박 사이에 목숨을 잃고 나쁜 길에 빠져서 
受諸苦痛之時에는  온갖 고통을 받게 되면 
雖欲願聞一句佛法하야  비록 단 한 구절의 불법을 들어 
信解受持하야 欲免辛酸인들  믿고 이해하고 지니어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나 
豈可復得乎아  될 수 있겠는가? 
及到臨危하야는 悔無所益이니라  위급함에 임하여 뉘어친들 
아무 이익도 없느니라. 
願諸修道之人은  바라건대 수도하는 사람들은 
莫生放逸하며 莫着貪淫하고  방일한 생각을 내지 말고, 
탐음에 집착하지 말고 
如救頭燃하야 不忘照顧어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공부하기를 잊지 말지어다. 
無常이 迅速하야 身如朝露하고  무상한 세월이 빨라서 
몸은 아침의 이슬 같고 
命若西光이라  목숨은 지는 해와 같다. 
今日에 雖存이나 明亦難保니  오늘은 살았으나 내일을 보장키 어려우니 
切須在意하며 切須在意어다  부디 명심하고 부디 명심하라. 
且憑世間有爲之善하야도  우선 세간의 유위의 선을 의지하기만 하여도 
亦可免三塗苦輪하야  三도의 괴로운 윤회를 면해서 
於天上人間에 得殊勝果報하야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에서 수승한 과보를 얻어 
受諸快樂이온  온갖 쾌락을 누리거늘 
此最上乘甚深法門이야따녀  하물며 이 가장 높고 심히 깊은 법문을 
의지하는 경우이겠는가? 
暫時生信이라도 所成功德을  잠깐 동안 믿음을 낼지라도 이루는 공덕은 
不可以比喩로 說其小分이니  어떤 비유로도 그 조그만치도 설명할 수 없나니, 
如經에 云하사대  경에 말씀하시기를 
若人이 以三千大千世界七寶로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의 七보로 
布施供給爾所世界衆生하야  그 세계의 중생들에게 공양하여 
皆得充滿하며  모두가 만족하게 하며, 
又敎化爾所世界一切衆生하야  또 그 세계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令得四果하면  四과(果)를 얻게 한다면 
其功德이 無量無邊이어니와  그 공덕이 한량이 없거니와, 
不如一食頃에 正思此法하난  밥 한 술 먹을 사이에 
이 법을 바르게 생각하여 
所獲功德이라하시니  얻은 공덕만 못하다' 하시니, 
是知커라  이것으로 알건대 
我此法門이 最尊最貴하야  우리의 이 법문은 가장 높고 가장 귀하여 
於諸功德에 比不及이로다  어떠한 공덕으로도 미칠 수 없도다. 
故로 經云하사대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一念淨心은 是道場이라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도량이라, 
勝造恒河七寶塔이로다  항하사 수효의 
七보탑을 세운 공덕보다 수승하도다. 
寶塔은 畢竟에 碎爲塵이어니와  보배탑은 끝내 부서져 먼지가 되거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하시니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하시니, 
願諸修道之人은  바라건대 수도하는 사람은 
硏味此語하야 切須在意어다  이 말씀을 되새겨서 부디 유의할 지어다. 
此身을 不向今生度하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다시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하리요. 
今若不修면 萬刧差違어니와  이제 닦지 않으면 만겁에 어긋나거니와 
今若强修하면  이제 억지로 닦으면 
難修之行이라도 漸得不難하야  닦기 어려운 행도 차츰 어렵지 않아져서 
功行이 自進하리라  공행(功行)이 저절로 증진하리라. 
嗟夫라 今時人이 飢逢王膳호대  애닲다. 요즘 사람들은 
시장하던 차에 성찬(王膳)을 만났으되 
不知下口하며  입을 댈 줄 모르고, 
病遇醫王호대 不知服藥하니  병 끝에 큰 의원을 만났으되 
약을 먹을 줄 모르나니, 
不曰如之何如之何者는  그야말로 '어찌할꼬, 어찌할꼬! 
하지 않는 이는 
吾未知如之何也矣로다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且世間有爲之事는  또 세간의 유위의 일은 
其狀을 可見이며  그 형상을 볼 수 있고, 
其功을 可驗일새  그 공능을 징험할 수 있으므로 
人得一事라도 嘆其希有어니와  사람들이 한가지 일만 얻더라도 
희유하다고 찬탄하거니와, 
我此心宗은  나의 이 심정을 밝히는 종품(心宗)은 
無形可觀이며 無狀可見이라  모양도 볼 수 없고 형상도 볼수 없는지라 
言語道 斷하고 心行處 滅이니라  언어(言語)의 길이 막히고 
마음의 갈 곳이 끊어졌느니라. 
故로 天魔外道가 毁謗無門이요  그러므로 하늘·마군·외도가 혈뜯을 문이 없고 
釋梵諸天이 稱讚不及이온  제석·범천등 하늘이 찬탄할 길이 없거늘 
夫淺識之流가 其能髣髴이리요  하물며 식견이 얕은 범부의 무리가 
비슷할 수나 있으랴? 
悲夫라 井蛙가  슬프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焉知滄海之이며  어찌 푸른 바다의 넓음을 알며, 
野干이 何能獅子之吼리요  돌여우가 어찌 사자의 영각을 하리요? 
故知末法世中에 聞此法門하고  그러므로 말법의 시대에 이 법문을 듣고 
生希有想하야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서 
信解受持者는  믿고 받들어 지니는 이는 
己於無量刧中에 承事諸聖하야  이미 한량없는 겁동안에 
여러 성인을 받들어 섬기면서 
植諸善根하야 深結大智正因한  모든 선근(善根)을 심어서 
큰 지혜의 바른 인을 심은 
最上根性也니라  가장 높은 근성(根性)임을 알지니라. 
故로 金剛經에 云하사대  그러므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於此章句에 能生信心者는   '이 구절에 대하여 믿음을 내는 이는 
當知是人은 己於無量佛所에  이미 한량없는 부처님께 
種諸善根이라하시고  온갖 선근을 심은 줄 알라' 하시고, 
又云하사대  또 말씀하시기를 
爲發大乘者하야 說이며   '대승(大乘)의 마음을 낸 이를 위하여 말하며, 
爲發最上乘者說이라하시니라  최상승(最上乘)의 마음을 낸 
이를 위하여 말한다' 하시니라. 
願諸求道之人은 莫生怯弱하고  바라건대 도를 구하는 사람들은 
겁내는 생각을 내지 말고, 
須發勇猛之心하라  용맹한 마음을 일으키라. 
宿刧善因을 未可知也니라  전생의 착한 인연이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니라. 
若不信殊勝하고  만일 수승한 도리를 믿지 않고 
甘爲下劣하야 生艱阻之想하야  못난이로 자처하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내어 
今不修則縱有宿世善根이라도  금생에 닦지 않으면 선근이 있더라도 
今斷之故로 彌在其難하야  이제 끊겼으므로 어려움이 가득해져서 
展轉遠矣리라  더욱더욱 멀어지리라. 
今旣到寶所라 不可空手而還이니  이제 이미 보배 있는 곳에 왔는지라 
빈 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나니, 
一失人身하면 萬刧難復이니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 겁에 회복하기 어려우니라. 
請須愼之하라 豈有智者가  바라노니, 삼갈지어다. 
어찌 지혜로운 이가 
知其寶所而反不求之하고  보배 있는 곳을 알면서도 구하지 않고서 
長怨孤貧이리요  오래도록 외롭고 가난함을 원망하리요? 
若欲獲寶인댄 放下皮囊이니라  보배 얻으려거든 
가죽 주머니(皮囊=육신)를 던져버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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