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 제70칙 위산시립백장(溈山侍立百丈)

碧雲 2020. 7. 23. 14:06
벽암록(碧巖錄) 제70칙 위산시립백장(溈山侍立百丈)/위산청화상도(溈山請和尚道)
垂示云。
快人一言快馬一鞭。萬年一念一念萬年。
要知直截。未舉已前。且道未舉已前。作麼生摸索。
請舉看。
수시(垂示)하여 기로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말 한마디요, 말을 빨리 달리게 하는 것은 채찍이거니와,
만년(萬年)이 한 순간[一念]
이요, 한 순간이 만년이다.
거론하기 전에 직절(直截)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해보라. 거론하기 이전은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
예를 들테니 살펴보라.
 【七○】舉
溈山五峰雲巖。
同侍立百丈
(阿呵呵。終始誵訛。君向西秦我之東魯)
百丈問溈山。併卻咽喉唇吻。作麼生道
(一將難求)
溈山云。卻請和尚
(借路經過)
丈云。我不辭向汝道。恐已後喪我兒孫
(不免老婆心切。面皮厚三寸。和泥合水。就身打劫)。
 【70則】 위산시립백장(溈山侍立百丈)
위산(溈山), 오봉(五峰), 운암(雲巖)이 같이 백장(百丈)
을 모시고 서 있는데,
(껄껄껄, 끝과 시작이 다르구나. 그대는 서쪽 진<秦>나라로 가라. 나는 동쪽 노<魯>나라로 가련다.)
백장이 위산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다 막아버리면 어떻게 말하겠느냐?"
(장수는 구하기가 어렵다.)
위산이 말했다. "화상(和尚)
께서 말씀해보십시요."
(길을 빌려 지나가는구나.)
백장이 말했다. "나는 사양치 않고 네게 말하고 싶지만 이 다음에 내 후손을 잃을까 두렵다."
(노파심을 면치 못하겠네. 두께가 세 치나 되는 낮가죽을 하고 진흙에 물타려 드니, 몸이 겁탈을 만나겠다.)
溈山五峰雲巖。同侍立百丈。
百丈問溈山。併卻咽喉唇吻。作麼生道。山云。卻請和尚道。
丈云。我不辭向汝道。恐已後喪我兒孫。百丈雖然如此。鍋子已被別人奪去了也。
丈復問五峰。峰云。和尚也須併卻。丈云。無人處斫額望汝。
又問雲巖。巖云。和尚有也未。丈云。喪我兒孫。三人各是一家。
古人道。平地上死人無數。過得荊棘林者。是好手。所以宗師家。以荊棘林驗人。
何故若於常情句下。驗人不得。衲僧家須是句裏呈機。言中辨的。
若是擔板漢。多向句中死卻。便道。併卻咽喉唇吻。更無下口處。
若是變通底人。有逆水之波。只向問頭上有一條路。不傷鋒犯手。
溈山云。卻請和尚道。且道他意作麼生。
向箇裏如擊石火似閃電光相似。拶他問處便答。自有出身之路。不費纖毫氣力。
所以道。他參活句。不參死句。百丈卻不采他。只云。不辭向汝道。恐已後喪我兒孫。
大凡宗師為人。抽釘拔楔。若是如今人便道。此答不肯他不領話。
殊不知。箇裏一路生機處。壁立千仞。賓主互換。活鱍鱍地。
雪竇愛他此語風措。宛轉自在。又能把定封疆。所以頌云。
위산(溈山)과 오봉(五峰), 운암(雲巖)이 같이 백장(百丈)을 모신 자리에서
백장이 위산에게 "목구멍과 입을 다 막아버리면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고 물었다.
"화상(和尚
)께서 말씀해보십시요."
"나는 사양치 않고 네게 말하고 싶지만 이 다음에 내 후손을 잃을까 두렵다.”
백장이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이미 냄비[鍋子
*]를 뺏겨버린 것이다.
백장이 다시 오봉에게 물으니, 오봉이 "화상(和尚)이야말로 닫아야겠습니다." 하자,
백장은 "고요한 곳에서 이마에 손 얹고 너를 찾아야겠구나." 하였다.
또 운암에게 물으니, 운암은 "화상께서는 할 수 있습니까?" 하자, 백장은 "내 후손을 잃었구나." 하였다.
세 사람은 제각기 한 가문을 이루었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평지(平地)에서도 수 없는 사람이 죽는데,
가시덩쿨 숲은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하였으니,
종사(宗師
)들이 가시덩쿨 숲으로 사람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통상의 말로는 사람을 시험하지 못하는가?
납승(衲僧
)이라면 모름지기 그 구절 속에서 기틀을 드러내고, 말 속에서 핵심을 헤아려야 할 텐데,
널판 진 놈[擔板漢
*]들은 흔히 구절 속에 죽어버리고서
그저 "목구멍과 입이 다 막혀서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못하겠다."고 할 것이지만,
변통(變通)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역수지파(逆水之波*)가 있어서
질문의 화두 상에 있는 한 가닥 활로를 향할 것이라 칼 끝도 손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위산(溈山)은 "화상께서 말씀해보십시요." 하였는데,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이냐?
전광석화처럼 그가 질문하자마자 내질러 답했으니, 스스로 몸 빠져나갈 길이 있어
털 끝만큼의 기력(氣力)도 소비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그가 활구(活句
)를 찾고
사구(死句
)를 찾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백장은 캐묻지 않고,
"사양치 않고 네게 말하고 싶지만 이 다음에 내 후손을 잃을까 두렵다."고만 하였다.
무릇 종사(宗師
)라면 사람들의 못과 쐐기를 뽑아주어야 하련만
만일 요즘 사람들 말하듯이 "이 답은 그를 긍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말이다."고 한다면
그 속에 있는 한 가닥 살아날 기회와 희망[生機處], 우뚝 솟은 기상[壁立千仞
],
주객이 뒤바뀌는 일[賓主互換], 살아 헤엄치는 경지[活鱍鱍地
]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설두(雪竇)스님은 그의 어풍(語風)의 처리가 완전(宛轉
) 자재하고,
또 파정봉강(把定封疆*)에 능한 것을 좋아했기에 송(頌)으로 말했다.
*鍋子; 음식을 끓이는 냄비 같은 그릇이니, 살아가는데 요긴한 물건을 말한다.
*古人; 운문 광진(雲門匡真) 선사. 운문광록(雲門廣錄), 실중어요(室中語要) 중에
「선사가 어느날 "평지(平地) 위에서도 수 없는 사람이 죽는데, 가시덩쿨 숲은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다." 하셨다.
"그런 즉 당중(堂中) 제일좌(第一座)에 앉을 어른이 있겠습니까?" 하니,
"아깝구나, 아까워." 하셨다.」
<師有時云平地上死人無數過得荊棘林是好手僧云與麼則堂中第一座有長處也師云蘇嚕蘇嚕。>
*擔板漢; 등에 널판지를 지고가는 사람. 즉 앞만 보고 가는 사람, 또는 외고집.
*逆水之波; 거슬러 흐르는 물의 파도이니, 되받아 치는 말솜씨를 말한다.
*把定封疆(把住放行); 把定은 원래 혼례 때 남자 측에서 여자 측에 예물을 보내는 일을 말하지만,
선림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붇들어 두고자 한다는 뜻에서 파주(把住)와 같이 쓰인다.
封疆는 봉토(封土), 즉 군주가 신하에게 토지를 내리는 것을 말하니, 방행(放行)을 뜻한다.
 卻請和尚
(函蓋乾坤。已是傷鋒犯手)
 虎頭生角出荒草
(可殺驚群。不妨奇特)
 
十洲春盡花凋殘
(觸處清涼讚歎也不及)
 珊瑚樹林日杲杲
(千重百匝。爭柰百草頭上尋他不得。答處蓋天蓋地)
 "화상께서 말씀해보십시요."
(천지의 뚜껑을 닫아버렸으나, 이미 칼 끝이 상하고 손도 다쳤다.)
 호랑이가 머리에 뿔을 달고 잡초[荒草]
밖으로 나오니,
(가히 군웅을 죽이고 놀라게 할만 하니, 기특하여 마지 않구나.) 
십주(
十洲)에 봄 기운이 다하여 꽃이 시들어버렸건만
(닿는 데마다 시원하니, 찬탄만으로는 미치지 못하겠다.)
 산호(珊瑚)
숲에는 햇빛이 쨍쨍하구나.
(백겹 천겹 에워싼들 어찌 온갖 풀이 땅 위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리오? 대답이 천지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此三人答處。各各不同。也有壁立千仞。也有照用同時。也有自救不了。
卻請和尚道。雪竇便向此一句中。呈機了也。更就中輕輕拶。
令人易見云。虎頭生角出荒草。溈山答處。一似猛虎頭上安角。有什麼近傍處。
不見僧問羅山。同生不同死時如何。山云。如牛無角。
僧云。同生亦同死時如何。山云。如虎戴角。
雪竇只一句頌了也。他有轉變餘才。更云。十洲春盡花凋殘。海上有三山十洲。以百年為一春。
雪竇語帶風措。宛轉盤礡。春盡之際。百千萬株花。一時凋殘。獨有珊瑚樹林。不解凋落。
與大陽相奪。其光交映。正當恁麼時。不妨奇特。雪竇用此。明他卻請和尚道。
十洲皆海外諸國之所附。一祖洲。出反魂香。二瀛洲。生芝草玉石泉如酒味。
三玄洲。出仙藥。服之長生。四長洲。出木瓜玉英。五炎洲。出火浣布。
六元洲。出靈泉如蜜。七生洲。有山川無寒暑。
八鳳麟洲。人取鳳喙麟角。煎續弦膠。九聚窟洲。出獅子銅頭鐵額之獸。
十檀洲(一作流洲)出琨吾石。作劍切玉如泥。
珊瑚外國雜傳云。大秦西南。漲海中。可七八百里。到珊瑚洲。
洲底盤石。珊瑚生其石上。人以鐵網取之。
又十洲記云。珊瑚生南海底。如樹高三二尺。有枝無皮。
似玉而紅潤。感月而生。凡枝頭皆有月暈(此一則與八卷首公案同看)。
이 세 사람의 대답이 각각 달라서 벽립천인(壁立千仞*)이 있고,
조용동시(照用同時*)가 있고, 자구불료(自救不了*)가 있다.
'각청화상도(卻請和尚道)', 설두스님은 이 한 구를 향해 가봉(機鋒;禪機)
을 드러내고,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가볍게 가볍게 내질러서 사람들로 하여금 알기 쉽게 하고자
'호두생각출황초(虎頭生角出荒草)'
라고 하였는데,
위산의 대답[答處]이 흡사 맹호(猛虎)
가 머리에 뿔을 단 듯하니, 어떻게 가까이 가겠느냐는 것이다.
모르는가? 어느 중이 나산(羅山)
스님에게 "같이 살다가 같이 죽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나산이 "소가 뿔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자, "그러면 같이 살다 같이 죽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호랑이가 뿔을 단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이 한 구의 송(頌)으로 끝을 냈으나, 그에게 전변(轉變)할 줄 아는 남은 재주가 있었기에
다시 '십주춘진화조잔(十洲春盡花凋殘
)'이라 하였는데,
해상(海上)에는 삼산십주(三山十洲
)가 있고, 봄이 백년이라고 한다.
설두스님 말의 이음과 기풍의 처리는 완전(宛轉
)하고 탄탄하다.
봄이 다한 시절에는 백천만 송이 꽃이 일시에 시들어 떨어지건만
유독 산호 숲에서만은 시들어 떨어질 줄을 모르고 태양과 서로 빼앗으려는 듯이
빛을 교환하고 있으니, 정녕 이럴 때를 당해서는 기특하여 마지 않을 것이다.
설두스님은 이를 이용하여 '각청화상도(卻請和尚道)'를 밝혀 주었다.
십주(十洲)는 다 해외 여러 나라에 부속되어 있는데,
하나는 조주(祖洲)로서 반혼향(反魂香
)이 나고,
둘은 영주(瀛洲)로서 지초(芝草)와 옥석(玉石
)이 나고, 샘은 술맛과 같으며,
셋은 현주(玄洲)로서 신선의 약[仙藥]이 나는데, 먹으면 장생(長生
)한다고 한다.
넷은 장주(長洲)로서 모과(木瓜)와 옥영(玉英)이 나며, 다섯은 염주(炎洲)로서 화완포(火浣布
)가 나며,
여섯은 완주(元洲
)로서 신령한 샘이 꿀과 같으며,
일곱은 생주(生洲)로서 산천(山川
)이 추위와 더위가 없으며,
여덟은 봉린주(鳳麟洲)로서 사람들이 봉(鳳
)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취해 활 붙이는 아교를 달여낸다.
아홉은 취굴주(聚窟洲
)로서 머리는 구리, 얼굴은 쇠로 된 사자가 나고,
열은 단주 혹 유주(檀洲/流洲)로서 곤오석(琨吾石
)이 나는데, 검을 만들면 옥을 진흙 베듯 한다고 한다.
산호(珊瑚)는 외국의 잡전(雜傳
)에
「대진국 서남쪽 창해(漲海)로 칠, 팔백리를 가면 산호주(珊瑚洲
)에 이르는데,
바닥의 반석(盤石
)에서 산호가 나고 사람들이 쇠그물로 그것을 취한다.」고 하였고,
또 십주기(十洲記)에는 「산호는 남해(南海)의 밑에서 나는데, 키는 세자나 두자 쯤이요,
가지는 있으나 껍질은 없고, 흡사 옥처럼 붉게 윤기가 난다.
달에 감응하여 생기기에 가지 끝마다 달무리가 져있다.」고 하였다. (이 70칙은 71칙과 함께 살펴보라.)
*壁立千仞; 중국(中國) 장안에서 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대검(大劍)과 소검(小劍) 두 산(山)의 극히 험준한 절벽,
즉 검각(劍閣)을 말한다. 천 길 높이 솟은 암벽, 이 험준한 절벽처럼 우뚝 솟아 어찌해볼 수 없는 위산의 기상에 비유한 것이다.
*照用同時; 상대를 살피는 조(照)와 자신의 대응인 용(用)을 동시에 하는 것. 오봉의 답을 의미한다.
*自救不了; 자신을 구제하지도 못했다는 뜻으로 운암의 답을 평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