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제72칙 운암화상유야(雲巖和尚有也)

碧雲 2020. 7. 31. 15:12
벽암록(碧巖錄) 제72칙 운암화상유야(雲巖和尚有也)
 【七二】舉
百丈又問雲巖。
併卻咽喉唇吻。作麼
生道
(蝦蟆窟裏出來。道什麼)
巖云。和尚有也未
(粘皮著骨。拖泥帶水。前不搆村後不迭店)
丈云。喪我兒孫
(灼然有此答得半前落後)。
 【72칙】운암화상유야(雲巖和尚有也)
백장(百丈)이 또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다 막아버리면 어떻게 말하겠느냐?"
(두꺼비 굴 속에서 나왔나, 무슨 말을 하는가?)
"화상께서는 할 수 있습니까?"
(점피착골<粘皮著骨*>이요, 타니대수<拖泥帶水*>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이다.)
"내 자손을 잃었구나."
(분명 이런 답이 있다면 반절을 앞에 두고 뒤는 떨어져 나가게 된다.)。
*蝦蟆窟; 黑暗塵坑, 無明山鬼窟와 같이 혼침(惛沈) 즉 선(禪)의 장애(障礙)를 뜻한다.
*粘皮著骨; 얽히고 섥힌 모양. 고집에의 비유, 일도양단(一刀兩斷)에 반대되는 의미로 쓰인다.
*拖泥帶水; 和泥合水, 入泥入水, 진흙탕에 물을 더하기, 즉 맺고 끊음이 없이 시원치 못하다는 뜻.
後同道吾至藥山。山問云。子在百丈會下。為箇什麼事。巖云。透脫生死。
山云。還透脫也未。巖云。渠無生死。山云。二十年在百丈。習氣也未除。
巖辭去見南泉。後復歸藥山。方契悟。
看他古人。二十年參究。猶自半青半黃。粘皮著骨。不能穎脫。是則也是。
只是前不搆村。後不迭店。
不見道。語不離窠臼。焉能出蓋纏。白雲橫谷口。
迷卻幾人源。洞下謂之觸破。故云。躍開仙仗鳳凰樓。時人嫌觸當今號。
所以道。荊棘林須是透過始得。若不透過。終始涉廉纖。斬不斷。
適來道。前不搆村。後不迭店。雲巖只管去。點檢他人底。
百丈見他如此。一時把來打殺了也。
雪竇頌云。
운암(雲巖)은 20년 동안 백장(百丈)의 시자(侍者)로 있었다.
후에 도오(道吾)와 함께 약산(藥山)에게 갔는데, 익산이 물었다.
"너는 백장 밑에 있으면서 무슨 일을 했느냐?" "생사(生死) 벗어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 벗어났는가?" "거기는 생사가 없었습니다."
"20년을 백장에게 있었으면서 습기(習氣)를 제하지 못했구나."
운암은 하직하고 남전(南泉)을 찾아 뵌 뒤에 다시 약산(藥山)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예전의 그 사람을 살펴보건대, 20년을 참구(參究)해도 덜 익었고[半青半黃],
얽히고 섥혀 있어서[粘皮著骨] 뚫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것이 그렇기는 하나, 다만 이것이 앞으로 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가자 해도 주막도 없는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말이 고정된 틀[窠臼]을 여의지 못하면 어찌 개전(蓋纏*)에서 벗어나겠으며,
흰구름이 계곡 입구를 가로 막으매 근원을 미혹한 사람이 얼마이더냐?*" 하였다.
동산(洞山) 문하에서는 촉파(觸破*)하라 하여 "봉화루(鳳凰樓)에 올라서서 선장(仙仗)을 펴라.
그러면 그때의 사람들은 당금(當今)의 호령을 접하기 무서워하리라." 하였으며,
그래서 말하기를, 가시덤불 숲은 뚫고 지나가야 하거니와 만약 뚫지 못하면
시종여일 가는 가지를 헤치며 베어내도 끊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방금 말한 '전불구촌 후불질점(前不搆村後不迭店)'은 운암이 다만 그 길을 가니
그의 구석을 점검한 것이며, 백장이 그러한 그를 보고 한꺼번에 타살(打殺)해 주었다.
설두스님은 송(頌)으로 말했다.
*蓋纏; 5개(五蓋)와 10전(十纏).
蓋與纏皆為煩惱之異名。개(蓋)는 '덮인 장애'로 번뇌가 선한 마음을 덮었다 하여 개라 하며,
貪欲蓋, 瞋恚蓋, 惛沈睡眠蓋, 掉舉惡作蓋, 疑蓋等五種煩惱의 다섯을 5개(五蓋)라 한다.
전(纏)은 '얽힌 속박(纏縛)'이라는 뜻으로 번뇌가 선을 닦으려는 마음을 얽매므로 전이라 하며,
無慚, 無愧, 嫉, 慳, 悔, 睡眠, 掉舉, 惛沈의 8수번뇌(八隨煩惱)를 8전, 여기에 忿, 覆를 더하여 10전이라 한다.
*남악 운봉(南嶽雲峯) 문열(文悅) 선사 <南嶽下十一世, 大愚芝禪師法嗣>
상당(上堂)하여 가로대, "말이 과도(窠道)를 여의지 못하면 어찌 개전(葢纏)에서 벗어나겠으며,
조각구름이 계곡 입구를 가로막아 근원을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이더냐?
그래서 언무전사(言無展事), 어불투기(語不投機), 승언자상(承言者喪), 체구자미(滯句者迷)라 하였다.
여기에 이르러 너희는 무슨 말에 의지하여 알겠느냐?" 한참 있다가 말했다.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上堂。語不離窠道。焉能出葢纏。片雲橫谷口。迷却幾人源。
所以道。言無展事。語不投機。承言者喪。滯句者迷。汝等諸人。到這裏憑何話會。
良久曰。欲得不招無間業。莫謗如來正法輪。<五燈會元 卷十二>
*동산4구(洞山四句);
1)言無展事; 언어로는 사실을 개시할 수 없다. 2)語不投機; 어떤 언어로도 기틀에 투합하지 못하니,
모름지기 어구 사이에서 오묘한 깨달음을 스스로 얻어야 한다.
3)承言者喪; 문자와 언구로 불조(佛祖)의 일대사(一大事)를 받아들이려 한다면 오히려 반하여
진의(眞意)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 4)滯句者迷; 진리는 문자와 어구에 의해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므로
언어에 얽매이면 반대로 미혹해진다는 것.
*窠道; 둥지와 도로, 형식과 규칙에 얽매임에 비유한 것.
*觸破; 一觸即破
 和尚有也未
(公案現成。隨波逐浪。和泥合水)
 金毛獅子不踞地
(灼然。有什
用處。可惜許) 
兩兩三三舊路行
(
併卻咽喉唇吻。作麼生道。轉身吐氣。腳跟下蹉過了也) 
大雄山下空彈指
(一死更不再活。可悲可痛。蒼天中更添怨苦)
 "화상은 할 수 있겠습니까?"
(공안<公案>이 되었다. 물결따라 출렁이고 진흙탕에 물을 타다니.)
 금모사자(金毛獅子*)는 땅에 웅크리지 않는 법이거늘
(명백하다. 쓸 데가 어디 있겠는가? 애석하구나.) 
둘둘 셋셋 무리지어 옛길로 가니
('목구멍과 입을 다 막아버리면 어떻게 말하겠느냐?'에 몸을 굴려 기염을 토했으나
질문의 본 뜻에서 빗나가버렸다.) 
대웅산(大雄山) 아래서 헛되이 탄지(彈指)하였구나.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거늘, 가히 비통하여 '하늘이시여!' 하고서도 원통하겠다.)
*金毛獅子; 문수보살이 오색구름 속에서 타고 있었다는 금빛나는 사자. 즉 지혜 밝은 사람에의 비유.
和尚有也未。雪竇據款結案。是則是。只是金毛獅子。爭柰不踞地。
獅子捉物。藏牙伏爪。踞地返擲。物無大小。皆以全威。要全其功。
雲巖云。和尚有也未。只是向舊路上行。所以雪竇云。百丈向大雄山下空彈指。
"화상은 할 수 있습니까?"에 설두스님이 조목을 들춰 판결하였다.
이것이 그렇기는 하나 다만 금모사자(金毛獅子)였다면 어찌 땅에 웅크렸겠는가?
사자도 먹이를 잡으려면 이빨과 발톱을 감추고 땅에 웅크리고 있다가 박차고 뛰어올라
먹이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온갖 위엄으로 온전한 공을 들여야 하건만,
"화상은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한 운암의 말은 다만 옛길을 간것이라
그래서 설두스님은 백장선사가 대웅산 아래서 헛되이 탄지했다고 한 것이다.
*併卻喉咽唇吻道 _百丈問溈山<70>, 百丈問五峰<71>, 百丈問雲巗<72>;
위산과 오봉, 운암 세 사람이 시립한 가운데 백장이 각각에게
"목구멍과 입을 다 막아버리면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고 물으니,
위산은 "화상께서 해보시기를 청합니다." 하였고,
오봉은 "화상께서야말로 다 막으셔야겠습니다." 하였으며,
운암은 "화상께서는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목구멍과 입을 다 막아버리면 말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건만
세 사람의 서로 다른 대답을 두고 왜 벽립천인(壁立千仞)이니, 이광장군의 신전(神箭)이니,
대웅산하 공탄지(大雄山下空彈指)라고 유별한 평을 하는 것일까?
말재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면 운암의 소견과 다를 바 없다.
입과 목구멍이 다 막히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유마경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문수사리보살은 '일체법에 무언무설(無言無說)하고,
무시무식(無示無識)하여 이제문답(離諸問答)하는 것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고서,
유마거사에게 그의 견해를 물으니, 유마거사는 묵연무언(默然無言)의 행으로 답했다.
오봉은 백장에게 문수의 무언무설을 들어 답한 것이요,
위산은 백장에게 유마거사의 묵연무언의 행을 청했으니, 그들의 공부를 높이 평가받았으나,
운암의 답은 범부의 소견에 불과한지라 혹평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