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般涅槃經卷第十三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13권 |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 북량(北涼) 천축삼장(天竺三藏) 담무참(曇無讖) 역(譯) |
聖行品第七之三 | 7-3. 성행품(聖行品) |
「◎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 住於大乘大般涅槃,觀察集諦? 善男子!菩薩摩訶薩觀此集諦是陰因緣, 所謂集者還愛於有。 愛有二種: 一愛己身,二愛所須。 復有二種:未得五欲,繫心專求; 既求得已,堪忍專著。 復有三種:欲愛、色愛、無色愛。 復有三種:業因緣愛、煩惱因緣愛、 苦因緣愛。 出家之人有四種愛: 何等為四?衣服、飲食、臥具、湯藥。 復有五種:貪著五陰, 隨諸所須一切愛著, 分別挍計無量無邊。 |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집제(集諦)를 관찰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집제를 음(陰;蘊)의 인연(因緣)으로 보나니, 소위 집(集)이란 유(有)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사랑[愛]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자기 몸을 사랑함이요, 둘은 필요한 것을 사랑함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얻지 못한 오욕(五欲)을 온 마음을 다해 구하고, 기왕 구하고서도 끈질기게 집착하는 것이며,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욕애(欲愛), 색애(色愛), 무색애(無色愛)이며,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업(業)에 인연한 사랑, 번뇌에 인연한 사랑, 고통[苦]에 인연한 사랑이다. 출가인(出家人)에게는 네 가지 사랑하는 것이 있는데, 무엇이 그 넷인가 하면, 의복, 음식, 와구, 탕약이다. 다시 다섯 가지가 있어 오음(五陰)에 탐착(貪著)하는 것이니, 필요한 것들을 쫓아 모두 애착(愛著)하고, 분별하고 계교(計挍)함이 무량무변(無量無邊)하느니라. |
善男子!愛有二種: 一者善愛,二不善愛。 不善愛者,惟愚求之。 善法愛者,諸菩薩求。 善法愛者復有二種: 不善與善。 求二乘者名為不善, 求大乘者是名為善。 善男子!凡夫愛者名之為集,不名為諦。 菩薩愛者,名之實諦不名為集。 何以故?為度眾生,所以受生, 不以愛故而受生也。」 |
선남자야! 애(愛)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애(善愛)요, 둘은 불선애(不善愛)니라. 불선애란 다만 어리석은 이가 구하고, 선법(善法)을 사랑함이란 보살들이 구하거니와, 선법을 사랑한다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어 불선(不善)과 선(善)이니, 이승(二乘) 구하는 것을 불선이라 하고, 대승 구하는 것을 선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범부의 애(愛)는 집(集)이라 하고 제(諦)라 하지 않지만, 보살의 애(愛)는 실제(實諦)라 하고 집(集)이라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중생을 제도하려는 때문에 수생(受生)하는 것이지 애(愛) 때문에 수생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
迦葉菩薩白佛言:「世尊! 如佛世尊於餘經中,為諸眾生 說業為因緣、 或說憍慢、或說六觸、或說無明, 為五盛陰而作因緣, 今以何義說四聖諦, 獨以愛性為五陰因?」 |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세존께서 다른 경전에서 중생들에게 업(業)이 인연이 된다고 설하시기도 하고, 혹은 교만(憍慢)이나 육촉(六觸), 무명(無明)이 오성음(五盛陰)이 되고 인연을 짓는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무슨 의미에서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시면서 유독 애(愛)의 성품이 오음의 인(因)이 된다고 하시나이까?」 |
佛讚迦葉菩薩: 「善哉,善哉!善男子!如汝所說, 諸因緣者非為非因, 但是五陰要因於愛。 善男子!譬如大王若出遊巡, 大臣、眷屬悉皆隨從。 愛亦如是,隨愛行處, 是諸結等亦復隨行。 譬如膩衣,隨有塵著, 著則隨住。愛亦如是, 隨所愛處,業結亦住。 復次善男子!譬如濕地則能生牙, 愛亦如是,能生一切業煩惱牙。 |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인연이라는 것이 인(因)이 아니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오음이 애(愛)에의 요인(要因)이다는 것이니, 선남자야, 비유컨대 대왕이 행차에 나서면 대신과 권속이 다 뒤를 따르듯이 애(愛)도 그와 같아서 애(愛)가 가는 곳에는 모든 번뇌들이 또한 따라 다닌다. 또 기름묻은 옷에는 먼지가 달라붙고, 달라붙은 즉 따라 머물듯이 애(愛)도 그러하여 애(愛)하는 곳을 따라 업과 번뇌가 또한 머무느니라. 또 선남자야! 습한 땅인 즉 능히 싹을 내듯이 애(愛)도 그러하여 일체의 업과 번뇌의 싹을 내느니라. |
善男子!菩薩摩訶薩住是大乘大般涅槃, 深觀此愛,凡有九種: 一如債有餘, 二如羅剎女婦, 三如妙花莖有毒蛇纏之, 四如惡食性所不便而強食之, 五如婬女,六如摩樓迦子, 七如瘡中息肉,八如暴風, 九如彗星。 |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이 애(愛)를 깊이 관찰하는 법에 아홉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덜 갚은 빚[債有餘]과 같이 하고, 둘은 나찰녀(羅剎女) 부인과 같이 보며, 셋은 독사가 감긴 아름다운 꽃가지처럼 보고, 넷은 먹으면 불편한 것을 강제로 먹이는 것처럼 보며, 다섯은 음녀(婬女)와 같이, 여섯은 마루가(摩樓迦) 씨앗과 같이, 일곱은 부스럼 속의 혹 같이, 여덟은 폭풍 같이, 아홉은 혜성(彗星) 같이 보느니라. |
云何名為如債有餘? 善男子!譬如窮人,負他錢財, 雖償欲畢,餘未畢故, 猶繫在獄,而不得脫。 聲聞緣覺亦復如是, 以有愛習之餘氣故, 不能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善男子!是名如債有餘。 |
어째서 덜 갚은 빚과 같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마치 가난한 사람이 남에게 빚을 지고서 비록 다 갚으려 하나 다 갚지 못한 까닭에 옥에 같힌 채 벗어나지 못하듯이, 성문 연각도 그와 같아서 남은 애(愛)의 습기(習氣)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니, 선남자야! 그래서 덜 갚은 빚과 같다고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如羅剎女婦? 善男子!譬如有人,以羅剎女而為婦妾, 是羅剎女隨所生子,生已便噉, 子既盡已復噉其夫。 善男子!愛羅剎女亦復如是, 隨諸眾生,生善根子,隨生隨食。 善子既盡,復噉眾生, 令墮地獄、畜生、餓鬼,唯除菩薩, 是名如羅剎女婦。 |
선남자야! 왜 나찰녀 부인과 같이 본다고 하겠느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나찰녀로 부인을 삼았더니, 이 나찰녀가 자식을 낳는 대로 낳자마자 잡아먹고, 자식을 다 잡아먹고서는 그 남편까지 잡아먹듯이, 선남자야! 애(愛)라는 나찰녀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쫓아 선근의 자식을 낳되 낳는 대로 잡아먹고, 선(善)의 자식을 다 먹고서는 다시 중생들을 잡아먹어 지옥, 축생, 아귀에 떨어지게 하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그래서 나찰녀 부인과 같이 본다고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如妙花莖毒蛇纏之? 譬如有人性愛好花, 不見花莖毒蛇過患, 即便前捉, 捉已蛇螫,螫已命終。 一切凡夫亦復如是,貪五欲花, 不見是愛毒蛇過患, 而便受取,即為愛毒之所蠍螫, 命終墮於三惡道中,唯除菩薩, 是名如妙花莖毒蛇纏之。 |
선남자야! 어째서 독사 감긴 아름다운 꽃가지 같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애(愛)하는 성품이라 꽃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을 지나쳐 보지 못하고 앞으로 가서 꽃가지를 잡으니, 잡자마자 뱀의 독에 쏘이고, 쏘인 즉 죽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오욕의 꽃을 탐내 이 애(愛)라는 독사를 지나쳐 보지 못하고 문득 취한 즉 애(愛)의 독에 쏘이게 되어 죽어서 삼악도에 떨어지지만 다만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를 일러 아름다운 꽃가지에 독사 감긴 것 같다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所不便食而強食之? 譬如有人,所不便食而強食之, 食已腹痛,患下而死。愛食亦爾, 五道眾生,強食貪著, 以是因緣墮三惡道,唯除菩薩, 是名所不便食而強食之。 |
선남자야! 어째서 불편한 음식 억지로 먹는 것과 같다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불편한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먹고서 복통을 일으키고 병 끝에 죽듯이, 애(愛)라는 음식도 그러하여, 다섯 갈래 중생이 억지로 먹으려 집착하기에 그런 인연으로 삼악도에 떨어지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를 일러 불편한 음식 억지로 먹는 것과 같다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婬女? 譬如愚人與婬女通, 而彼婬女巧作種種諂媚現親, 悉奪是人所有錢財, 錢財既盡便復驅逐。 愛之婬女亦復如是, 愚人無智與之交通, 而是愛女奪其所有一切善法, 善法既盡,驅逐令墮三惡道中, 唯除菩薩,是名婬女。 |
선남자야! 어째서 음탕한 여인이라 하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음탕한 여인과 정을 통했거든, 그 음녀가 교묘히 온갖 아첨과 아양을 떨며 다가와 이 사람의 재산을 다 빼앗고, 재산을 다 빼앗고 나서는 내쫓아버리거니와, 애(愛)라는 음녀도 그와 같이 무지하여 어리석은 사람과 교통(交通)하면 이 애(愛)라는 음녀가 그가 지닌 모든 선법(善法)을 다 빼앗고, 선법을 다 뺏고 나서는 내쫓아 삼악도에 떨어지게 하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를 일러 음녀(婬女)라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摩樓迦子? 譬如摩樓迦子,若鳥食已, 隨糞墮地,或因風吹, 來在樹下即便生長, 纏繞縛束尼拘陀樹, 令不增長,遂至枯死。 愛摩樓迦子亦復如是, 纏縛凡夫所有善法, 不令增長遂至枯滅, 既枯滅已,命終之後墮三惡道, 唯除菩薩,是名摩樓迦子。 |
선남자야! 어째서 마루가(摩樓迦*) 씨라 하겠는가? 마루가 씨를 새가 먹으면 똥에 섞여 땅에 떨어지거나 혹 바람에 날려 나무 아래 떨어지면 곧 생장하여 니구타(尼拘陀*) 나무를 칭칭 얽어메서 자라지 못하게 하고 고사(枯死)에 이르게 하거니와, 애(愛)라는 마루가 씨도 그와 같아서 범부가 지닌 선법(善法)을 얽어메거든 자라지 못하고 결국 말라 없어지며, 기왕 말라 없어져 죽은 뒤에는 삼악도에 떨어지게 하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를 일러 마루가 씨라 하느니라. |
*摩樓迦; 梵Maruka. 마가(摩迦), 마로가(摩魯迦), 마루가(摩樓迦). 콩 과[豆科] 갈등 속[葛屬]의 다년생 풀로서 나무를 얽어 죽게 한다. [佛學大辭典(丁福保)] *尼拘陀; Nyagrodha. 無節樹, 縱廣. 가장 높고 큰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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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云何瘡中息肉? 如人久瘡,中生息肉, 其人要當勤心療治,莫生捨心, 若生捨心,瘡息增長, 虫疽復生,以是因緣即便命終。 凡夫愚人五陰瘡痍亦復如是, 愛於其中而為息肉, 應當勤心療治愛息, 若不治者,命終即墮三惡道中, 唯除菩薩,是名瘡中息肉。 |
선남자야! 어째서 부스럼 속 혹이다 하겠는가? 사람이 오래 된 부스럼 속에서 혹이 생기거든 그 사람은 치료에 힘써야 하고 버리려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되려니와 만약 버리려는 마음을 가지면 혹이 자라 악성 종양(腫瘍)이 생겨서 그 인연으로 곧 죽게 되듯이, 어리석은 범부의 오음(五陰)이라는 부스럼도 그와 같아서 애(愛)가 그 안의 혹이 되었거든 응당 애(愛)가 그치도록 힘써 치료해야 하거니와 만약 치료하지 않으면 죽어서 삼악도에 떨어지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를 부스럼 속의 혹이라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暴風? 譬如暴風,能偃山移岳,拔深根栽。 愛暴大風,亦復如是, 於父母所而生惡心, 能拔大智舍利弗等 無上深固菩提根栽, 唯除菩薩,是名暴風。 |
선남자야! 어째서 폭풍 같다고 하겠는가? 마치 폭풍은 산을 쓰러뜨리고 깊은 뿌리를 뽑아내듯이, 애(愛)의 거칠고 사나운 바람도 그와 같아서 부모에게 악한 마음을 내고, 대지(大智) 사리불 같은 더 없이 깊고 견고한 보리(菩提)의 뿌리도 뽑아내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니, 이를 폭풍(暴風)이라 하느니라. |
善男子!云何如彗星? 譬如彗星出現天下, 一切人民飢饉病瘦、癭諸苦惱。 愛之彗星,亦復如是, 能斷一切善根種子, 令凡夫人孤窮飢饉,生煩惱病, 流轉生死受種種苦, 唯除菩薩,是名彗星。 善男子!菩薩摩訶薩住於大乘大般涅槃,觀察愛結,如是九種。 |
선남자야! 어째서 혜성(彗星) 같다고 하는가? 마치 혜성이 천하에 출현하면 백성들이 기근으로 야위고 혹이 나는 여러 고통에 시달리듯이, 애(愛)라는 혜성도 그와 같아서 能斷모든 선근(善根)의 종자(種子)를 끊어 범부로 하여금 외롭고 궁핍하고 굶주리며 번뇌병을 낳아 생사(生死)를 흘러돌면서 온갖 고통을 받게 하지만 오직 보살만은 제외하니, 이를 혜성 같다고 하거니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애(愛)의 번뇌를 이와 같은 아홉 가지로 관찰하느니라. |
「善男子!以是義故, 諸凡夫人有苦無諦, 聲聞緣覺有苦有苦諦而無真實, 諸菩薩等解苦、無苦, 是故無苦而有真實。 諸凡夫人有集無諦, 聲聞緣覺有集有集諦, 諸菩薩等解集無集, 是故無集而有真諦。 聲聞緣覺有滅非真, 菩薩摩訶薩有滅有真諦。 聲聞緣覺有道非真, 菩薩摩訶薩有道有真諦。 |
「선남자야! 이런 의미에서 범부들은 고(苦)가 있고 진리[諦]가 없으며, 성문 연각은 고(苦)도 고제(苦諦)도 있으나 진실이 없으며, 보살들은 고(苦)를 해소하여 고(苦)가 없기에 그래서 무고(無苦)요, 진실이 있는 것이다. 또 범부들은 집(集)이 있고 제(諦)가 없으며, 성문 연각은 집(集)도 있고, 집제(集諦)도 있으나, 보살들은 집(集)을 해소하여 집(集)이 없으니, 그래서 무집(無集)이요, 진제(真諦*)가 있는 것이다. 성문 연각은 멸(滅)이 있으나 진실이 아니며, 보살마하살은 멸(滅)도 있고 진제(真諦)도 있다. 또 성문 연각은 도(道)가 있으나 진실이 아니며, 보살마하살은 도(道)도 있고 진제(真諦)도 있느니라. |
*真諦; 二諦(俗諦와 真諦)의 하나로 出世間의 真理를 말한다. 俗諦는 世間의 이치. | |
「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 住於大乘大般涅槃, 見滅、見滅諦? 所謂斷除一切煩惱, 若煩惱斷,則名為常; 滅煩惱火,則名寂滅, 煩惱滅故則得受樂; 諸佛菩薩求因緣故,故名為淨; 更不復受二十五有故名出世, 以出世故名為我常; 於色、聲、香、味、觸、男、女、 生、住、滅、苦、樂、不苦、不樂, 不取相貌,故名畢竟寂滅真諦。 善男子!菩薩如是住於大乘大般涅槃, 觀滅聖諦。 |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멸(滅)을 보고, 멸제(滅諦)를 본다 하는가? 소위 일체 번뇌를 끊어 없애는 것이라 만약 번뇌가 끊긴 즉 상(常)이라 하고, 번뇌의 불을 멸한 즉 적멸(寂滅)인 것이요, 번뇌가 멸한 즉 낙을 누리게 되는 것이며, 제불보살은 인연(因緣)을 구하므로 깨끗하다[淨] 하고, 다시는 25유(有)를 받지 않기에 출세(出世)라 하며, 출세(出世)하였기 때문에 항상된 나[我常]라 하거니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이나, 남(男) 녀(女)나, 생(生) 주(住) 멸(滅)이나, 고(苦) 낙(樂) 불고(不苦) 불락(不樂)에서 모양을 취하지 않으므로 필경적멸(畢竟寂滅)한 진제(真諦)라 한다. 선남자야! 보살은 이와 같이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멸성제(滅聖諦)를 관(觀)하느니라. |
「善男子!云何菩薩摩訶薩 住於大乘大般涅槃,觀道聖諦? 善男子!譬如闇中,因燈得見麁細之物。 菩薩摩訶薩亦復如是, 住於大乘大般涅槃, 因八聖道見一切法, 所謂常、無常、有為、無為、 有眾生、非眾生、物、非物、苦、樂、 我、無我、淨、不淨、煩惱、非煩惱、 業、非業、實、不實、乘、非乘、 知、不知、陀羅驃、非陀羅驃、 求那、非求那、見、非見、色、非色、 道、非道、解、非解。 善男子!菩薩如是住於大乘大般涅槃, 觀道聖諦。」 |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도성제(道聖諦)를 본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어둠 속에서는 등불로 인해 크고 작은 물건을 보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팔성도(八聖道)를 성취함으로 인하여 일체법을 보나니, 소위 상(常)과 무상(無常), 유위(有為)와 무위(無為), 중생과 비(非)중생, 물(物)과 비물(非物), 고(苦)와 낙(樂), 아(我)와 무아(無我), 정(淨)과 부정(不淨), 번뇌(煩惱)와 비번뇌(非煩惱), 업(業)과 비업(非業), 실(實)과 부실(不實), 승(乘)과 비승(非乘), 지(知)와 부지(不知), 다라표(陀羅驃*)와 비다라표(非陀羅驃), 구나(求那*)와 비구나(非求那), 견(見)고 비견(非見), 색(色)과 비색(非色), 도(道)와 비도(非道), 해(解)와 비해(非解)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이와 같이 대승 대반열반에 의지하여 도성제(道聖諦)를 관찰하느니라.」 |
*陀羅驃; Dravya, 승론종(勝論宗; 外道 16宗의 一)이 주장하는 육제(六諦)중의 하나. 주제(主諦) 또는 소의제(所依諦)라 하며, 地, 水, 火, 風, 空, 時, 方, 神(義), 意의 九法이 만물의 主가 된다 하여 주제(主諦)라 한다.<百論疏> *求那; Guṇa, 勝論六諦 중 두 번째로서 의제(依諦)라 하며, 주제(主諦)가 의지하는 同,異,合,離,數,量,好,醜와 苦,樂,憎,愛,愚,智,勤,惰 그리고 色,聲,香,味,觸의 21 가지 德을 말한다. [佛學大辭典(丁福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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迦葉菩薩白佛言:「世尊! 若八聖道是道聖諦,義不相應。 何以故?如來或說信心為道, 能度諸漏。 或時說道不放逸是, 諸佛世尊不放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是菩薩助道之法。 或時說言精進是道,如告阿難: 『若有人能勤修精進, 則得成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팔성도(八聖道)가 도성제(道聖諦)라면 뜻이 서로 맞지 않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어느 때는 신심(信心)이 도(道)이니, 제루(諸漏)를 끊을 수 있다 하시고, 어느 때는 도(道)는 방일(放逸)치 않는 것이다 하시면서 제불세존은 방일(放逸)치 않았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으니, 이것이 보살의 조도법(助道法)이다고 하셨고, 어느 때는 정진(精進)이 도(道)다 하시며 아난에게 『만일 어떤 이가 근수정진(勤修精進)할 수 있은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
或時說言觀身念處, 若有繫心,精勤修習是身念處, 則得成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或時說言正定為道, 如告大德摩訶迦葉: 『夫正定者真實是道, 非不正定而是道也; 若入正定,乃能思惟五陰生滅, 非不入定能思惟也。』 |
어느 때는 신념처(身念處)를 관찰하라 하시면서 전념을 다해 이 신념처를 정근수습(精勤修習)한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된다 하셨고, 어느 때는 바른 정[正定]으로 도를 삼으라 하시면서 대덕(大德) 마하가섭에게 고하시기를, 『대저 바른 정이 진실한 도요, 바르지 못한 정은 도가 아니니, 만약 바른 정에 든다면 마침내 오음(五陰)의 생멸을 사유하려니와 정애 들지 않고서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나이다. |
或說一法,若人修習,能淨眾生, 滅除一切憂愁苦惱,逮得正法, 所謂念佛三昧。 或復說言修無常想,是名為道, 如告比丘:『有能多修無常想者, 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혹 한 법[一法]을 수습(修習)하면 중생을 청정케 하여 모든 근심과 고뇌를 멸제(滅除)하고 정법을 얻게 할 수 있나니, 소위 염불삼매(念佛三昧)다고 하시기도 하고, 혹은 또 무상상(無常想)을 닦는 것이 도라 하시면서 비구들에게 『무상상(無常想)을 많이 닦는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으며, |
或說空寂阿蘭若處,獨坐思惟, 能得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或時說言,為人演法,是名為道, 若聞法已疑網即斷, 疑網斷已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或時說言持戒是道,如告阿難: 『若有精勤修持禁戒, 是人則度生死大苦。』 |
혹 고요한 아란야(阿蘭若;암자 따위)에서 홀로 앉아 사유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성취한다 하시기도 하고, 어느 때는 사람들에게 법을 연설하는 것이 도라 하시면서 법을 들으면 의망(疑網)이 끊기고, 의망이 끊긴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셨으며, 어느 때는 說言지계(持戒)가 도라 하시며 아난에게 『만일 금계(禁戒)를 정근수지(精勤修持)한다면 이 사람인 즉 생사대고(生死大苦)를 건널 것이다.』고 하셨나이다. |
或時說言親近善友是名為道,如告阿難: 『若有親近善知識者,則具淨戒, 若有眾生能親近我, 則得發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
또 어느 때는 선지식을 친근하는 것이 도라 하시며 아난에게 『선지식을 친근한 즉 청정한 계를 구족할 것이요, 만일 어떤 중생이 나를 친근한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되리라.』 하셨으며, |
或時說言,修慈是道,修學慈者, 斷諸煩惱得不動處。 或時說言智慧是道, 如佛昔為波闍波提比丘尼說: 『姊妹!如諸聲聞,以智慧刀, 能斷諸流、諸漏煩惱。』 |
어느 때는 자(慈)를 닦는 것이 도라 하시며, 자비를 수행하면 모든 번뇌를 끊고 부동처(不動處)를 얻는다 하시기도 하고, 어느 때는 지혜가 도라 하시면서 부처님께서 옛적에 파사파제(波闍波提) 비구니에게 『자매여! 성문(聲聞)들이 지혜의 칼로 제류(諸流)와 제루(諸漏)의 번뇌를 끊듯이 하라.』고 하셨으며, |
或時如來說施是道, 如佛往昔告波斯匿王:『大王! 當知我於往昔多行惠施,以是因緣, 今日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어느 때는 여래께서 시(施;보시)가 도라 하시면서 부처님께서 옛적 파사익(波斯匿) 왕에게 『대왕이시여! 나는 지난 날 많은 혜시(惠施)를 한 인연으로 오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고 말씀하셨다 하셨나이다. |
世尊,若八聖道是道諦者, 如是等經,豈非虛妄? 若彼諸經非虛妄者, 彼中何緣不說八道為道聖諦? 若彼不說, 如來往昔何故錯謬? 然我定知諸佛如來, 久離錯謬。」 |
세존이시여, 만약 팔성도(八聖道)가 도제(道諦)라면 이런 경전들은 어찌 허망한 것이 아니겠나이까? 저 모든 경전들이 허망치 않다면 그 안에서는 어째서 팔성도가 도성제라고 설하지 않으셨나이까? 그렇게 설하지 않으셨다면 여래께서는 지난 날 무엇 때문에 착류(錯謬)하셨나이까? 그러나 저는 정히 제불여래께서는 오래 전에 착류를 여의셨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
爾時世尊讚迦葉菩薩: 「善哉,善哉!善男子! 汝今欲知菩薩大乘微妙經典所有祕密, 故作是問。 善男子!如是諸經,悉入道諦。 善男子!如我所說,若有信道, 如是信道,是信根本, 是能佐助菩提之道,是故我說無有錯謬。 善男子!如來善知無量方便, 欲化眾生,故作如是種種說法。 |
이때 세존께서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보살대승의 미묘한 경전에 있는 비밀을 알고자 그런 질문을 하다니. 선남자야! 이와 같은 경전들은 다 도제(道諦)에 들어갔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말한 바 만일 누가 도를 믿거든 이러한 도를 믿는다는 것이 믿음의 근본이요, 보리(菩提)의 도를 돕는 것이니, 그래서 내 말에 착류가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무량한 방편을 잘 알고,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기에 이렇듯 갖가지로 법을 설하느니라. |
善男子!譬如良醫,識諸眾生種種病原, 隨其所患而為合藥、并藥所禁, 唯水一種不在禁例。 或服薑水、或甘草水、或細辛水、 或黑石蜜水、或阿摩勒水、 或尼婆羅水、或鉢晝羅水、 或服冷水、或服熱水、或蒲萄水、 或安石榴水。 善男子!而是良醫,善知眾生所患種種,藥雖多禁,水不在例。 如來亦爾,善知方便, 於一法相,隨諸眾生, 分別廣說種種名相, 彼諸眾生隨所說受, 受已修習,除斷煩惱, 如彼病人,隨良醫教,所患得除。 |
선남자야! 마치 양의(良醫)는 중생들의 갖가지 병의 근원을 알고, 그 질환에 따라 약을 더하고 금할 약은 빼지만 오직 물 한 가지에는 금하라는 것이 없어서 염강수(鹽薑水*)나 혹은 감초수(甘草水), 세신수(細辛*水)나 흑석밀수(黑石蜜水), 아마륵수(阿摩勒水;無垢湯), 니바라수(尼婆羅*水), 발주라수(鉢晝羅*水)를 마시기도 하고, 혹 찬물을 마시거나 더운물, 혹은 포도물, 혹은 안석류(安石榴*)물을 마시기도 하는데, 선남자야! 이 양의(良醫)는 중생이 앓는 갖가지를 잘 알기에 약은 비록 많은 것을 금하나 물은 그런 예가 없느니라. 여래도 그러하여 방편을 잘 알고서 하나의 법상(法相)에서 모든 중생들마다의 갖가지 명(名)과 상(相)을 분별하여 두루 설하거든 그 모든 중생들이 설한 바를 쫓아 받아들이고, 받고서는 닦아 익혀서 번뇌를 끊어 없애는 것이 마치 저 병자가 양의의 지시에 따라 질환을 제거하는 것과 같으니라. |
*鹽薑水; 생강즙(生薑汁)과 소금을 한데 넣고 끓인 물. 약(藥)으로 쓰임.[naver 사전] *細辛; 植物名. 馬兜鈴科 細辛屬, 多年生草本植物. 藥材.[佛光阿含藏] *尼婆羅; 呵梨勒(巴;harītaka), 천주(天主)가 가져왔다는 印度의 과일. *鉢晝羅; 梵Pāthola, 나무를 달인 약탕. *安石榴; 石榴의 別名. 鬼子母神(사람을 잡아먹는 夜叉女)이 가지고 있다는 과일. [佛學大辭典(丁福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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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次善男子! 如有一人,善解雜語,在大眾中, 是諸大眾,熱渴所逼,咸發聲言: 『我欲飲水!我欲飲水!』 是人即時以清冷水, 隨其種類說言是水, 或言波尼、或言欝持、或言紗利藍、 或言紗利、或言婆耶、或言甘露、 或言牛乳,以如是等無量水名, 為大眾說。善男子!如來亦爾, 以一聖道,為諸聲聞 種種演說,從信根等至八聖道。 |
「또 선남자야! 여러 말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대중 속에 있다가 그 대중들이 더위와 갈증에 시달려 다 같이 말하기를, 『나는 물 마시고 싶다! 나는 물 마시고 싶다!』 하거든 이 사람은 그때 시원한 물을 가지고 인종(人種)에 따라 물[水]이라 하기도 하고, 파니(波尼) 또는 울특(欝持), 혹은 사리람(紗利藍), 혹은 사리(紗利), 바야(婆耶), 감로(甘露)나 우유(牛乳)와 같은 무량한 물의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말하듯이, 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하나의 성도(聖道)를 가지고 성문들에게 신근(信根)에서부터 팔성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로 말하느니라. |
「復次善男子!譬如金師, 以一種金隨意造作種種瓔珞, 所謂鉗鎖、環釧釵璫、天冠臂印, 雖有如是差別不同,然不離金。 善男子!如來亦爾,以一佛道 隨諸眾生種種分別,而為說之。 |
「또 선남자야! 마치 연금사(鍊金師)는 한 가지 금으로 여러 가지 영락(瓔珞)을 마음대로 만드는데, 소위 겸쇄(鉗鎖), 반지, 팔찌, 비녀, 귀고리, 천관(天冠), 비인(臂印)으로 비록 차별하여 같지 않지만 그러나 금(金)을 벗어나지 않듯이, 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하나의 불도(佛道)로써 중생들을 따라 갖가지로 분별하여 설하느니라. |
或說一種, 所謂諸佛一道無二。 復說二種,所謂定、慧。 復說三種,謂見、慧、智。 復說四種, 所謂見道、修道、無學道、佛道。 復說五種,所謂信行道、法行道、 信解脫道、見到道、身證道。 復說六種,所謂須陀洹道、斯陀含道、 阿那含道、阿羅漢道、 辟支佛道、佛道。 復說七種,所謂念覺分、擇法覺分、 精進覺分、喜覺分、除覺分、 定覺分、捨覺分。 復說八種,所謂正見、正思惟、正語、 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 |
혹 1종(一種)을 설하니, 소위 제불(諸佛)은 하나의 도[一道]요, 둘이 없음[無二]이며, 다시 2종(二種)을 설하니, 소위 정(定)과 혜(慧)요, 또 3종(三種)을 설하니, 소위 견(見), 혜(慧), 지(智)이며, 또 4종을 설하니, 소위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 불도(佛道)이며, 또 5종을 설하니, 소위 신행도(信行道), 법행도(法行道), 신해탈도(信解脫道), 견도도(見到道), 신증도(身證道)이며, 또 6종을 설하니, 소위 수다원도(須陀洹道), 사다함도(斯陀含道), 아나함도(阿那含道), 아라한도(阿羅漢道), 벽지불도(辟支佛道), 불도(佛道)이며, 또 7종을 설하니, 소위 념각분(念覺分), 택법각분(擇法覺分), 정진각분(精進覺分), 희각분(喜覺分), 제각분(除覺分), 정각분(定覺分), 사각분(捨覺分)이며, 또 8종을 설하니, 소위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며, |
復說九種,所謂八聖道及信。 復說十種,所謂十力。 復說十一種,所謂十力、大慈。 復說十二種,所謂十力、大慈、大悲。 復說十三種, 所謂十力、大慈、大悲、念佛三昧。 復說十六種, 所謂十力、大慈、大悲、念佛三昧 及佛所得三正念處。 復說二十道,所謂十力、四無所畏、 大慈、大悲、念佛三昧、三正念處。 善男子!是道一體, 如來昔日為眾生故種種分別。 |
또 9종을 설하니, 소위 팔성도(八聖道)와 신(信)이며, 또 10종을 설하니, 소위 십력(十力)이며, 또 11종을 설하니, 소위 십력(十力)과 대자(大慈)이며, 또 12종을 설하니, 소위 십력(十力)과 대자(大慈), 대비(大悲)이며, 또 13종을 설하니, 소위 십력과 대자, 대비, 염불삼매(念佛三昧*)이며, 또 16종을 설하니, 소위 십력과 대자, 대비, 염불삼매, 그리고 부처님이 얻으신 3정념처(三正念處*)이며, 또 20도(二十道)를 설하니, 소위 십력과 4무소외(四無所畏), 대자, 대비, 염불삼매, 3정념처니라. 선남자야! 이들 도(道)는 한 몸[一體]이지만 여래가 지난날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갖가지로 분별한 것이니라. |
*念佛三昧; 두 가지가 있다. (1) 一心으로 佛의 相好를 觀하거나 一心으로 法身의 實相을 觀하거나[觀想念佛], 혹은 一心으로 佛名號를 부르는[稱名念佛] 修行法을 念佛三昧라 하니, 이는 행으로 인한[因行] 念佛三昧이다. (2) 위의 3종 행으로 인하여 성취된 마치 마음이 禪定에 든듯 하거나, 佛身이 現前하거나 혹은 法身實相을 念佛三昧라 하니, 이는 果로 이룬 念佛三昧이다. 因行의 念佛三昧를 「修」라 하고, 果成의 念佛三昧를 「發得」이라 한다. [佛學大辭典(丁福保)] *三正念處; 三念處<12권 註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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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次善男子!譬如一火, 因所然故,得種種名, 所謂木火、草火、糠火、 [麥*弋]火、牛馬糞火。 善男子!佛道亦爾,一而無二, 為眾生故種種分別。 |
「또 선남자야! 하나의 불이 타는 것에 따라 갖가지 이름, 즉 나무 불[木火], 잡초 불[草火], 겨 불[糠火], 보릿대 불[麥*弋火], 소말똥 불[牛馬糞火]로 불리듯이, 선남자야! 불도(佛道)도 그러하여 하나요 둘 아닌 것을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니라. |
「復次善男子!譬如一識,分別說六, 若至於眼則名眼識, 乃至意識亦復如是。 善男子!道亦如是,一而無二, 如來為化諸眾生故種種分別。 |
「또 선남자야! 하나의 식(識)을 여섯으로 분별하여 설하되, 만일 눈에 이른 즉 안식(眼識)이라 하고, 나아가 의식(意識)까지 그렇게 하듯이, 선남자야! 도(道)도 그와 같이 하나요 둘이 아닌 것을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여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니라. |
「復次善男子!譬如一色, 眼所見者,則名為色。 耳所聞者,則名為聲。 鼻所嗅者,則名為香。 舌所甞者,則名為味。 身所覺者,則名為觸。 善男子!道亦如是,一而無二, 如來為欲化眾生故種種分別。 善男子!以是義故, 以八聖道分,名道聖諦。 善男子!是四聖諦,諸佛世尊次第說之,以是因緣,無量眾生得度生死。」 |
「또 선남자야! 하나의 색(色)을 눈[眼]이 본 즉 색(色)이라 하고, 귀[耳]로 들은 즉 소리[聲]라 하고, 코[鼻]로 맡은 즉 냄새[香]라 하고, 혀[舌]로 맛본 즉 맛[味]이라 하고, 몸[身]으로 느낀 즉 감촉[觸]이라 하듯이, 선남자야! 도(道)도 그처럼 하나요 둘이 아닌 것을 여래가 중생교화를 위해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에서 팔성도분(八聖道分)을 도성제(道聖諦)라 하는 것이며, 선남자야! 이 사성제를 제불세존께서 차제에 설하시니, 그 인연으로 무량한 중생이 생사에서 건져지는 것이니라.」 |
迦葉菩薩白佛言:「世尊! 昔佛一時在恒河岸尸首林中, 爾時如來取其樹葉,告諸比丘: 『我今手中所捉葉多? 一切因地草木葉多?』 諸比丘言:『世尊! 一切因地草木葉多,不可稱計。 如來所捉,少不足言。』 『諸比丘!我所覺了一切諸法, 如因大地生草木等; 為諸眾生所宣說者,如手中葉。』 世尊爾時說如是言: 『如來所了無量諸法, 若入四諦,則為已說; 若不入者,應有五諦。』」 |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전에 한 때 항하 언덕 시수림(尸首林) 속에 계셨는데, 그때 여래께서 그 나뭇잎을 취하시고 비구들에게 『내가 지금 손에 들고있는 잎이 많겠는가, 모든 땅의 초목의 잎이 많겠는가?』 하고 물으시니, 비구들이 답하여 『세존이시여! 모든 땅의 초목의 잎이 많아서 헤아릴 수 없겠으나, 여래께서 들고 계시는 것은 적어서 말하기에도 부족하나이다.』 하자, 『비구들아! 내가 깨달은 바 일체제법(一切諸法)은 마치 대지(大地)로 인해 나는 초목들과 같이 많지만 중생들에게 설한 것은 손 안의 잎만큼 적으니라.』 하시면서 세존께서는 그때 말씀하시기를, 『여래가 깨달은 무량한 제법(諸法)이 4제(四諦)에 들어간 즉 이미 설한 것이며, 들어가지 않았다면 5제(五諦)가 있어야 하리라.』고 하셨나이다.」 |
*尸首林; 尸陀林, 屍陀林, 屍陁林(梵:Śītavana), 略稱 屍林, 音譯 屍多婆那, 意譯 寒林. 古印度 露天林 地葬場。 | |
爾時佛讚迦葉菩薩: 「善哉,善哉!善男子!汝今所問, 則能利益安隱快樂無量眾生。 善男子!如是諸法, 悉已攝在四聖諦中。」 |
그러자 부처님이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물은 것인 즉 무량중생을 이익, 안은, 쾌락할 수 있으리라. 선남자야! 이러한 모든 법이 사성제 안에 이미 다 섭재(攝在)하느니라.」 |
迦葉菩薩復作是言: 「如是等法,若在四諦, 如來何故唱言不說?」 |
가섭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그러한 법들이 사성제 안에 있는 것이라면 여래께서는 왜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시나이까?」 |
佛言:「善男子! 雖復入中,猶不名說。 何以故?善男子! 知四聖諦,有二種智: 一者中,二者上。 中者聲聞緣覺智,上者諸佛菩薩智。 善男子!知諸陰苦,名為中智; 分別諸陰有無量相,悉是諸苦,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善男子!如是等義,我於彼經竟不說之。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비록 안에 들어 있더라도 말했다 하지는 못하리니, 왜냐하면, 선남자야! 사성제를 아는 데는 두 가지 지혜가 있어서 첫째는 중지(中智)요, 둘째는 상지(上智)인데, 중(中)이란 성문 연각의 지혜요, 상(上)이란 제불보살의 지혜니라. 선남자야! 제음(諸陰;五陰)이 고(苦)임을 아는 것을 중지(中智)라 하며, 오음[諸陰]의 무량한 모양[相]이 다 제고(諸苦)임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말하지 않았느니라. |
善男子!知諸入者,名之為門, 亦名為苦,是名中智; 分別諸入,有無量相,悉是諸苦,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제입[諸入;六入]이 문(門)이요, 또 고(苦)임을 아는 이것이 중지(中智)요, 육입(六入)의 무량한 상(相)이 다 고(苦)임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諸界者,名之為分, 亦名為性,亦名為苦,是名中智; 分別諸界,有無量相,悉是諸苦,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善男子!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제계(諸界;18界)가 분(分)이요, 또한 성(性)이며 고(苦)임을 아는 것은 중지(中智)요, 모든 계(界)의 무량한 상이 다 고(苦)임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色壞相,是名中智; 分別諸色,有無量相,悉是諸苦,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색(色)의 괴상(壞相)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모든 색(色)의 무량한 상이 다 제고(諸苦)임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受覺相,是名中智; 分別諸受,有無量覺相,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善男子!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수(受)의 각상(覺相)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모든 수(受)의 무량한 각상(覺相)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想取相,是名中智; 分別是想,有無量取相,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상(想)의 취상(取相)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이 상(想)의 무량한 취상(取相)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行作相,是名中智; 分別是行,無量作相,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善男子!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행(行)의 작상(作相)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이 행(行)의 무량한 작상(作相)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識分別相,是名中智; 分別是識,無量知相,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善男子!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식(識)의 분별상(分別相)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이 식(識)의 무량한 지상(知相;分別相)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愛因緣, 能生五陰,是名中智; 一人起愛無量無邊, 聲聞緣覺所不能知, 能知一切眾生所起如是等愛,是名上智。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애(愛)의 인연으로 오음(五陰)이 생기는 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한 사람이 일으키는 무량무변한 애(愛)는 성문 연각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거니와 일체중생이 일으키는 애(愛)를 다 아는 것을 상지(上智)라 한다. 이와 같은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느니라. |
善男子!知滅煩惱,是名中智; 分別煩惱,不可稱計, 滅亦如是,不可稱計,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번뇌를 멸(滅)할 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번뇌가 헤아릴 수 없고, 멸(滅)도 그렇듯 헤아릴 수 없음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是道相, 能離煩惱,是名中智; 分別道相,無量無邊, 所離煩惱,亦無量無邊,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이 도(道)의 모양으로 번뇌를 여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도의 모양[道相]의 무량무변함과 여의어야 할 번뇌도 또한 무량무변함을 분별하는 것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知世諦者,是名中智; 分別世諦,無量無邊不可稱計,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세제(世諦)를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세제(世諦)의 무량무변하고 헤아릴 수 없음을 분별하기는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으며, |
善男子!一切行無常,諸法無我, 涅槃寂滅是第一義,是名中智; 知第一義無量無邊不可稱計, 非諸聲聞緣覺所知,是名上智。 如是等義,我於彼經亦不說之。」 |
선남자야!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요, 제법(諸法)은 무아(無我)이며, 열반의 적멸이 제일가는 이치[第一義]임을 아는 것이 중지(中智)요, 제일의(第一義)의 무량무변하고 헤아릴 수 없음을 아는 일은 성문 연각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를 상지(上智)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가 그 경전에서는 또한 말하지 않았느니라.」 |
爾時文殊師利菩薩摩訶薩白佛言: 「世尊!所說世諦、第一義諦, 其義云何? 世尊,第一義中有世諦不? 世諦之中有第一義不? 如其有者即是一諦, 如其無者將非如來虛妄說耶?」 |
그때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바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는 그 의미가 무엇이옵니까? 세존이시여, 제일의(第一義) 안에 세제(世諦)가 있나이까, 세제(世諦) 안에 제일의(第一義)가 있나이까? 그것이 있다면 곧 하나의 진리[一諦]이겠사오나 그것이 없는 것이라면 여래의 허망한 말씀이 아니겠나이까?」 |
「善男子!世諦者即第一義諦。」 | 「선남자야! 세제(世諦)가 곧 제일의제(第一義諦)니라.」 |
「世尊!若爾者,則無二諦。」 |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두 진리[二諦]가 없겠나이다.」 |
佛言:「善男子! 有善方便,隨順眾生,說有二諦。 善男子!若隨言說則有二種: 一者世法,二者出世法。 善男子!如出世人之所知者, 名第一義諦; 世人知者,名為世諦。 善男子!五陰和合,稱言某甲, 凡夫眾生隨其所稱,是名世諦; 解陰無有某甲名字, 離陰亦無某甲名字, 出世之人如其性相,而能知之, 名第一義諦。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중생에 따라 방편으로 2제(二諦)를 설하느니라. 선남자야! 쫓아 언설(言說)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세법(世法)을 쫓는 것, 둘째는 출세법(出世法)을 쫓는 것이다. 선남자야! 출세인(出世人)이 아는 바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듯이, 세인(世人)이 아는 것을 세제(世諦)라 한다. 선남자야! 오음(五陰)이 화합하거든 아무개라고 부르는데, 범부 중생들이 그 부르는 바에 따르는 것을 세제(世諦)라 하고, 오음에서 해탈하여 아무개라는 이름이 없고, 오음을 여의어서 또한 아무개라는 이름도 없는 출세인(出世人)이 그런 성상(性相)을 아는 것을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느니라. |
復次善男子!或復有法有名有實, 或復有法有名無實。 善男子!有名無實者即是世諦; 有名有實者是第一義諦。 善男子!如我、眾生、壽命、知見、 養育、丈夫、作者、受者, 熱時之炎、乾闥婆城、龜毛兔角、 旋火之輪、諸陰界入,是名世諦; 苦集滅道名第一義諦。 |
또 선남자야! 어떤 법은 유명유실(有名有實)하고, 혹 또 어떤 법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하거니와, 선남자야! 유명무실한 것은 세제(世諦)요, 유명유실한 것이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니라. 선남자야! 아(我), 중생(眾生), 수명(壽命), 지견(知見)이나, 양육(養育), 장부(丈夫), 작자(作者), 수자(受者)나, 더운날의 아지랑이, 건달바성(城), 거북이 털과 토끼 뿔, 돌아가는 불의 바퀴 같은, 모든 5음 18계 6입을 세제(世諦)라 하고;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느니라. |
「善男子!世法有五種: 一者名世、二者句世、三者縛世、 四者法世、五者執著世。 善男子!云何名世? 男女、瓶衣、車乘屋舍, 如是等物,是名名世。 云何句世? 四句一偈,如是等偈,名為句世。 云何縛世? 捲合、繫結、束縛、 合掌,是名縛世。 云何法世? 如鳴搥、集僧、 嚴鼓、戒兵、 吹貝、知時,是名法世。 云何執著世? 如望遠人,有染衣者, 生想執著,言是沙門非婆羅門; 見有結繩橫佩身上, 便生念言是婆羅門非沙門也, 是名執著世。 善男子!如是名為五種世法。 善男子!若有眾生於如是等五種世法, 心無顛倒,如實而知, 是名第一義諦。 |
「선남자야! 세법(世法)에는 다섯 가지가 있어 첫째는 명세(名世)요, 둘째는 구세(句世), 셋째는 박세(縛世), 넷째는 법세(法世), 다섯째는 집착세(執著世)인데, 선남자야! 어떤 것이 명세(名世)인가? 남, 녀, 항아리, 옷, 수레, 집, 이러한 사물들을 명세(名世;고유명사로서의 세상)라 한다. 어떤 것이 구세(句世)인가 하면, 네 구절의 게송 같은 것들이 구세(句世)이니라. 어떤 것이 박세(縛世)인가? 오무리고[捲合], 매듭을 짓고[繫結], 묶고[束縛], 합장(合掌)하고, 이런 것들을 박세(縛世)라 하고, 법세(法世)는 어떤 것인가? 종을 울리거나 소리를 내서[鳴搥] 스님들을 모이게 하고[集僧], 북을 두드려[嚴鼓] 병사를 일깨우고[戒兵], 소라를 불어[吹貝] 때를 알리는[知時], 이런 것들이 법세(法世)이다. 어떤 것이 집착세(執著世)인가? 멀리 염의(染衣;袈裟) 입은 사람이 보이면 상(想)으로 집착하여 이는 사문이지 바라문이 아니다고 말하거나 몸에 끈으로 횡패(橫佩)*를 묶어 찬 것을 보면 선뜻 이는 바라문이지 사문이 아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이런 것을 집착세(執著世)라 한다. 선남자야! 이러한 것을 5종 세법(五種世法)이라 하며, 선남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이런 5종 세속법을 마음에 뒤바뀜이 없이 진실 그대로[如實] 안다면, 이것이 제일의제(第一義諦)인 것이니라. |
*횡패(橫佩); 허리에 장도(杖刀)차듯이 매는 장신구. | |
「復次善男子!若燒、若割、若死、 若壞,是名世諦; 無燒、無割、無死、 無壞,是名第一義諦。 |
「또 선남자야! 타거나 베이거나 죽거나 무너지거나 하는 이런 것을 세제(世諦)라 하거니와, 타는 일이 없고, 베이거나 죽거나 무너지는 일도 없는 이것을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느니라. |
復次善男子,有八苦相,名為世諦; 無生、無老、無病、無死、 無愛別離、無怨憎會、無求不得、 無五盛陰,是名第一義諦。 |
또 선남자야! 팔고의 모양[八苦相]을 세제(世諦)라 하고, 생(生)도 없고, 노(老) 병(病) 사(死)도 없으며, 애별리(愛別離), 원증회(怨憎會), 구부득(求不得)도 없고, 오성음(五盛陰)도 없는 이것이 제일의제(第一義諦)니라. |
復次善男子!譬如一人多有所能, 若其走時則名走者, 或收刈時復名刈者, 或作飲食名作食者, 若治材木則名工匠, 鍛金銀時言金銀師, 如是一人有多名字; 法亦如是,其實是一而有多名。 依因父母和合而生名為世諦; 十二因緣和合生者名第一義諦。」 |
또 선남자야! 한 사람에게 많은 재능이 있어서 그가 달릴 때인 즉 주자(走者)라 하고, 베어 거둘 때는 베는 자[刈者]라 하고, 음식을 만들 때는 요리사[作食者]라 하고, 목재를 다룰 때는 공장(工匠)이라 하고, 금, 은을 단련할 때면 연금술사[金銀師]라 하여, 이렇듯 한 사람에게 많은 이름이 있듯이, 법(法)도 그러하여 기실(其實)은 하나이되 많은 이름이 있거니와, 부모의 화합으로 인해 생긴 것을 세제(世諦)라 하고, 12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것을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느니라.」 |
文殊師利菩薩摩訶薩白佛言: 「世尊!所言實諦,其義云何?」 |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실제(實諦)란 무슨 뜻이옵니까?」 |
佛言:「善男子! 言實諦者名曰真法。 善男子!若法非真不名實諦。 善男子!實諦者無顛無倒, 無顛倒者乃名實諦。 善男子!實諦者無有虛妄, 若有虛妄不名實諦。 善男子!實諦者名曰大乘, 非大乘者不名實諦。 善男子!實諦者是佛所說非魔所說, 若是魔說非佛說者,不名實諦。 善男子!實諦者一道清淨,無有二也。 善男子!有常、有樂、有我、有淨, 是則名為實諦之義。」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실제(實諦)란 참된 법[真法]을 말하니, 선남자야! 법이 참된 것이 아니면 실제(實諦)라 하지 않고, 선남자야! 실제(實諦)란 전도(顛倒)가 없다는 것이니, 전도가 없어야만 실제(實諦)라 할 것이며, 선남자야! 실제(實諦)란 허망(虛妄)함이 없다는 것이니, 허망함이 있다면 실제(實諦)라 할 수 없다. 선남자야! 실제(實諦)란 대승(大乘)이라 하는 것이니, 대승이 아니면 실제라 하지 않고, 선남자야! 실제란 부처님의 말씀이요, 마(魔)의 말이 아니니, 만일 마(魔)의 말이요,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실제라 할 수 없다. 선남자야! 실제란 하나의 도(道)로 청정하여 둘이 없는 것이니, 선남자야! 상(常)이 있고, 낙(樂), 아(我), 정(淨)이 있는, 이러한 즉 실제(實諦)의 의의라 할 것이니라.」 |
文殊師利白佛言:「世尊! 若以真實為實諦者, 真實之法即是如來、虛空、佛性。 若如是者, 如來、虛空及與佛性無有差別。」 |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진실(真實)로써 실제(實諦)를 삼는다면 진실한 법이 곧 여래요, 허공이요, 불성(佛性)인 것이라 만약 그렇다면 여래와 허공과 불성이 차별이 없겠나이다.」 |
佛告文殊師利: 「有苦有諦有實, 有集有諦有實, 有滅有諦有實, 有道有諦有實。 善男子!如來非苦非諦是實, 虛空非苦非諦是實, 佛性非苦非諦是實。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고하셨다. 「고(苦)가 있고 제(諦)가 있어 실(實)이 있고, 집(集)이 있고 제(諦)가 있어 실(實)이 있고, 멸(滅)이 있고 제(諦)가 있어 실(實)이 있으며, 도(道)가 있고 제(諦)가 있어 실(實)이 있지만, 선남자야! 여래는 고(苦)도 아니고 제(諦)도 아닌 실(實)이요, 허공도 고(苦)도 아니고 제(諦)도 아닌 실(實)이며, 불성(佛性)도 고(苦)도 아니고 제(諦)도 아닌 실(實)이니라. |
*苦集滅道가 있으니 苦諦集諦滅諦道諦를 닦아 結實을 얻을 수 있으되, 如來나 虛空, 佛性은 그런 것이 아닌 진실이다. | |
文殊師利!所言苦者為無常相、 是可斷相,是為實諦。 如來之性,非苦、非無常、 非可斷相,是故為實; 虛空、佛性,亦復如是。 |
문수사리야! 말한 바 고(苦)란 항상된 모양이 없고[無常相], 끊을 수 있는 모양[可斷相]이니, 이것이 실제(實諦)가 되지만, 여래의 성품은 고(苦)도 무상(無常)도 아니요, 가단상(可斷相)도 아니기 때문에 실(實)이 되는 것이며, 허공이나 불성(佛性)도 그와 같으니라. |
復次善男子!所言集者, 能令五陰和合而生, 亦名為苦,亦名無常, 是可斷相,是為實諦。 善男子!如來非是集性,非是陰因, 非可斷相,是故為實; 虛空、佛性,亦復如是。 |
또 선남자야! 말한 바 집(集)이란 오음(五陰)으로 하여금 화합하게 하여 생기니, 고(苦)인 것이요, 또한 무상(無常)이며, 가단상(可斷相)이니 실제(實諦)가 되지만, 선남자야! 여래는 집성(集性)도 아니요, 음(陰)에 기인하지도 않고, 가단상도 아니므로 실(實)인 것이며, 허공이나 불성(佛性)도 그와 같으니라. |
善男子!所言滅者,名煩惱滅, 亦常、無常, 二乘所得名曰無常, 諸佛所得是則名常, 亦名證法,是為實諦。 善男子!如來之性, 不名為滅,能滅煩惱, 非常、非無常, 不名證知, 常住無變,是故為實; 虛空、佛性,亦復如是。 |
선남자야! 말한 바 멸(滅)이란 번뇌가 멸한 것을 이르며, 상(常)하기도 무상(無常)하기도 한데, 2승(二乘)이 얻는 것은 무상(無常)이라 하고, 제불(諸佛)이 얻으신 바는 상(常), 또는 증법(證法)이라 하여 이를 실제(實諦)로 삼지만,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은 멸(滅)이라거나, 번뇌를 멸한다거나, 비상(非常)이다 비무상(非無常)이다 하지 않고, 또 증지(證知)라 하지도 않거니와, 상주무변(常住無變)하므로 실(實)인 것이며, 허공과 불성(佛性)도 그와 같으니라. |
善男子!道者能斷煩惱, 亦常、無常, 是可修法,是名實諦。 如來非道,能斷煩惱, 非常、無常、非可修法, 常住不變,是故為實; 虛空、佛性,亦復如是。 |
선남자야! 도(道)란 능히 번뇌를 끊는 것으로서 상(常)하기도 무상(無常)하기도 한데, 이것이 닦을 수 있는 법이니 실제(實諦)라 하지만, 여래는 도(道)도 아니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상(常)도 무상(無常)도 아니고, 닦을 수 있는 법도 아니되, 상주불변(常住不變)하니 그래서 실(實)이라 하거니와, 허공과 불성(佛性)도 그와 같으니라. |
「復次善男子!言真實者即是如來, 如來者即是真實。 真實者即是虛空,虛空者即是真實。 真實者即是佛性,佛性者即是真實。 |
「또 선남자야! 진실이란 곧 여래요, 여래가 곧 진실이니라. 진실이라는 것이 허공이요, 허공이 곧 진실이며, 진실이 곧 불성(佛性)이요, 불성이 곧 진실이니라. |
文殊師利!有苦、有苦因、 有苦盡、有苦對, 如來非苦乃至非對, 是故為實不名為諦; 虛空、佛性,亦復如是。 |
문수사리야! 고(苦)가 있고, 고의 원인[苦因]도 있고, 고의 끝[苦盡]도 있고, 고의 상대[苦對]도 있지만, 여래는 고(苦)도 아니고 나아가 고대(苦對)까지도 아니니, 그러므로 실(實)이요, 제(諦)라 하지 않거니와, 허공과 불성(佛性)도 그러하니라. |
苦者有為、有漏、無樂, 如來非有為、非有漏、湛然安樂, 是實非諦。」 |
고(苦)는 유위(有為)요 유루(有漏), 무락(無樂)이지만 여래는 유위도 유루도 아니요, 담연(湛然)한 안락(安樂)이니, 이는 실(實)이요 제(諦)가 아니니라.」 |
*道는 煩惱를 끊어 無漏不退에 이르는 修法이니 진실한 이치[實諦]이지만, 如來는 그 道를 통해 이룩된 결과적 사실[實]이니, 여래는 제(諦)가 아닌 常住不變한 진실(眞實)이요, 如來, 虛空, 佛性 셋은 真實 常住不變함이 無別하다는 말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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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殊師利白佛言:「世尊! 如佛所說,不顛倒者名為實諦。 若爾者,四諦之中有四倒不? 如其有者, 云何說言,無有顛倒名為實諦, 一切顛倒不名為實?」 |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전도(顛倒)되지 않은 것을 실제(實諦)라 한다 하셨는데 만일 그렇다면 사제(四諦) 중에 사도(四倒;四顛倒)가 있나이까? 만약 있다면, 왜 '전도(顛倒)가 없는 것을 실제(實諦)라 하고, 전도된 모든 것은 실(實)이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나이까?」 |
佛告文殊師利: 「一切顛倒,皆入苦諦, 如諸眾生,有顛倒心,名為顛倒。 善男子!譬如有人, 不受父母、尊長教勅, 雖受不能隨順修行, 如是人等名為顛倒,如是顛倒, 非不是苦,即是苦也。」 |
부처님이 문수사리에게 고하셨다. 「일체의 전도가 다 고제(苦諦)에 속하니, 마치 전도된 마음이 있는 중생을 전도되었다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부모나 어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더라도 수순하여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들을 전도되었다 하거니와, 이와 같은 전도는 고(苦)아닌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苦)니라.」 |
文殊師利言: 「如佛所說,不虛妄者即是實諦, 若爾者,當知虛妄則非實諦。」 |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은 허망하지 않은 것이 곧 실제(實諦)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허망한 것인 즉 실제가 아니겠나이다.」 |
佛言:「善男子! 一切虛妄皆入苦諦, 如有眾生欺誑於他, 以是因緣,墮於地獄、畜生、餓鬼, 如是等法名為虛妄, 如是虛妄,非不是苦,即是苦也。 聲聞緣覺、諸佛世尊, 遠離不行,故名虛妄。 如是虛妄,諸佛二乘所斷除故, 故名實諦。」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일체의 허망이 다 고제(苦諦)로 들어가나니, 마치 어느 중생이 남을 기만하고 속여서 그런 인연으로 지옥, 축생, 아귀에 떨어지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법을 허망이라 하는 것이니, 이러한 허망이 고(苦) 아닌 것이 아니라 곧 그 고(苦)인 것이다. 성문 연각이나 제불세존은 멀리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라 그래서 허망이라 하는 것이요, 이와 같은 허망은 제불(諸佛)과 이승(二乘)은 단제(斷除)하는 것이라 그 때문에 실제(實諦)라 하는 것이니라.」 |
文殊師利言: 「如佛所說,大乘是實諦者, 當知聲聞、辟支佛乘,則為不實。」 |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 말씀하신 대로 대승(大乘)이 실제(實諦)라면 성문, 벽지불 승(乘)은 실이 아닌 줄[不實]을 알겠나이다.」 |
佛言:「文殊師利! 彼二乘者,亦實、不實。 聲聞緣覺斷諸煩惱,則名為實。 無常、不住、 是變易法,名為不實。」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저 이승(二乘)도 실(實)이기도 하고, 부실(不實)이기도 하거니와 성문 연각이 모든 번뇌를 끊은 즉 실(實)일 것이지만, 무상(無常)하고 안주(安住)치 못하여 이것이 변하는 법[變易法]이거든 부실(不實)인 것이니라.」 |
文殊師利言: 「如佛所說,若佛所說名為實者, 當知魔說則為不實。 世尊!如魔所說,聖諦攝不?」 |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 말씀하신 대로 부처님 말씀이 실(實)이라면 마군의 말[魔說]인 즉 부실(不實)인 줄을 알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마군의 말도 성제(聖諦)에 속하나이까?」 |
佛言:「文殊師利! 魔所說者,二諦所攝,所謂苦集。 凡是一切非法、非律, 不能令人而得利益; 終日宣說,亦無有人,見苦斷集, 證滅修道,是名虛妄; 如是虛妄,名為魔說。」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마군이 말한 것은 두 제[二諦]에 속하니, 소위 고제와 집제니라. 무릇 일체의 법 아니고 율(律) 아닌 것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지라 종일 떠들어봐도 아무도 고(苦)를 보고 집(集)을 끊거나 멸(滅)을 증득하고 도(道)를 수행한 자가 없으니 허망인 것이요, 이와 같은 허망을 마군의 말[魔說]이라 하느니라.」 |
文殊師利言:「如佛所說, 一道清淨,無有二者。 諸外道等亦復說言: 『我有一道,清淨無二。』 若言一道是實諦者, 與彼外道有何差別? 若無差別,不應說言一道清淨。」 |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도[一道]가 청정하여 둘이 없다 하셨거니와, 저 외도들도 그렇게 말하여 『내게 하나의 도가 있어 청정하고 둘이 없다』고 하니, 만약 한 도[一道]가 실제(實諦)라면 저 외도들과 더불어 무슨 차별이 있겠나이까? 차별하지 않다면 한 도가 청정하다고 말할 수 없겠나이다.」 |
佛言:「善男子! 諸外道等,有苦集諦,無滅道諦。 於非滅中而生滅想, 於非道中而生道想, 於非果中生於果想, 於非因中生於因想,以是義故, 彼無一道清淨無二。」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외도들은 고와 집제[苦集諦]는 있으나 멸과 도제[滅道諦]는 없느니라. 멸(滅) 아닌 속에서 멸이라는 생각[滅想]을 내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 생각하며, 과(果) 아닌 가운데 과상(果想)을 내고, 인(因) 아닌 가운데 인상(因想)을 내니, 이런 뜻에서 저들에게는 청정무이(清淨無二)한 하나의 도[一道]가 없느니라.」 |
文殊師利言:「如佛所說, 有常、有我、有樂、有淨是實義者, 諸外道等應有實諦,佛法中無。 何以故?諸外道輩亦復說言: 『諸行是常。云何是常? 可意、不可意諸業報等,受不失故。 可意者名十善報, 不可意者十不善報。 若言諸行悉皆無常, 而作業者於此已滅, 誰復於彼受果報乎? 以是義故,諸行是常, 殺生因緣故名為常。』 |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 말씀하신 대로 상(常), 낙(樂), 아(我), 정(淨)이 진실한 이치[實義]라면 외도들에게 진실한 이치[實諦]가 있고, 불법(佛法)에는 없겠나이다. 왜냐하면 외도의 무리들도 말하기를, 『모든 행(行)은 항상한 것이다. 어째서 항상한가? 뜻에 맞든 안 맞든 모든 업보는 빠짐없이 다 받기 때문이다. 뜻에 맞는 것은 십선보(十善報)일 것이요, 뜻에 맞지 않는 것은 십불선보(十不善報)。 만약 제행(諸行)이 다 무상하다고 한다면 업을 지은 자가 이 왕 여기에 없는데 누가 거기서 과보를 받겠는가? 그런 뜻에서 제행은 항상한 것이요, 살생인연(殺生因緣)을 그래서 상(常)이라 한다.』고 하나이다. |
世尊!若言諸行悉無常者, 能殺、可殺,二俱無常; 若無常者,誰於地獄而受罪報? 若言定有地獄受報者, 當知諸行實非無常。 |
세존이시여! 제행이 다 무상한 것이라고 말하면 죽인 자[能殺]와 죽은자[可殺] 둘 모두가 무상일 터이온데, 만일 무상이다면 누가 지옥에서 죄보(罪報)를 받겠나이까? 정히 지옥에서 죄보 받음이 있다면 제행이 실로 무상이 아닌 줄로 알아야 하겠나이다. |
世尊!繫心專念亦名為常, 所謂十年所念乃至百年亦不忘失, 是故為常。若無常者, 本所見事誰憶誰念? 以是因緣,一切諸行非無常也。 |
세존이시여! 다음 다해 오롯이 생각함도 상(常)일 것이오니, 십년 전의 생각을 백년까지도 잊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상(常)이라 하려니와, 만일 무상(無常)이라면 본래 보고 겪은 일을 누가 기억하고 누가 생각하겠나이까? 이런 인연으로 일체제행(一切諸行)은 무상이 아니겠나이다. |
世尊!一切憶想亦名為常, 有人先見他人手、脚、頭、項等相, 後時若見,便還識之, 若無常者,本想應滅。 |
세존이시여! 모든 기억된 생각[憶想]도 항상하다 할 것이오니, 어떤 사람이 전에 보았던 타인의 손, 발, 머리, 목 등의 모양을 훗날 어느 때 보거든 문득 돌이켜 알게 되는데, 만일 무상하다면 본래의 기억이 없어졌어야 할 것이옵니다. |
世尊!諸所作業,以久修習, 若從初學,或經三年,或經五年, 然後善知,故名為常。 |
세존이시여! 작업(作業)한 모든 것을 오래 닦아 익혀서 처음 배웠을 때부터 3년이나 5년이 지나면 그 뒤에는 잘 알게 될 것이기에 항상하다 할 것이옵니다. |
世尊!算數之法,從一至二, 從二至三乃至百千, 若無常者,初一應滅, 初一若滅誰復至二? 如是常一,終無有二。 以一不滅,故得至二乃至百千, 是故為常。 |
세존이시여! 수를 세는 법은 하나로부터 둘에 이르고, 둘에서 셋, 나아가 백천까지 이르는 것이온데, 만일 무상하다면 처음 하나가 없어질 것이옵고, 처음 하나가 없어지면 뉘라서 또 둘에 이르겠나이까? 그렇다면 항상 하나요 결코 둘은 없을 것이옵니다. 하나가 멸하지 않기에 둘이나 백천까지도 이르는 것이니, 그래서 항상한 것이겠나이다. |
世尊!如讀誦法, 讀一阿含至二阿含, 乃至三、四阿含, 如其無常, 所可讀誦終不至四, 以是讀誦,增長因緣,故名為常。 |
세존이시여! 독송(讀誦)하는 법은 일 아함(阿含)에서 이 아함에 이르고, 나아가 삼 아함, 사 아함에 이르기까지 독송하는 것이온데, 그것이 무상하다면 결코 4아함에 이르기까지 독송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독송이 늘어나는 인연으로 보아 항상하다 하겠나이다. |
世尊!瓶衣車乘、如人負債、 大地形相、山河樹林、 藥木草葉、眾生治病, 皆悉是常,亦復如是。 |
세존이시여! 병(瓶)과 옷, 수레, 남에게 빚 지는 일, 대지(大地)의 형상(形相), 산하(山河)의 수림(樹林), 약 나무와 약초의 잎, 중생의 병 다스림이 모두 다 항상함도 그와 같겠나이다. |
世尊!一切外道皆作是說: 『諸行是常,若是常者即是實諦。』 |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이 이렇게 말하나이다. 『제행은 항상하고, 항상한 것이라면 곧 실제(實諦)다.』 |
世尊,有諸外道復言有樂。 云何知耶? 受者定得可意報故。 世尊!凡受樂者必定得之, 所謂大梵天王、大自在天、釋提桓因、 毘紐天及諸人天, 以是義故,名定有樂。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낙은 있다[有樂].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받은 것이 정히 마음에 드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다.'고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대체로 낙을 받은 자는 얻은 것이 틀림 없으니, 이른바 대범천왕, 대자재천, 석제환인, 비뉴천(毘紐天;遍淨天), 그리고 모든 인간과 천신들이오라 이런 의미에서 정히 낙은 있다 하겠나이다. |
世尊!有諸外道復言有樂, 能令眾生,生求望故, 飢者求食,渴者求飲, 寒者求溫,熱者求涼, 極者求息,病者求差, 欲者求色, 若無樂者彼何緣求? 以有求者,故知有樂。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낙이 있어서[有樂] 중생으로 하여금 구하려는 욕망을 내게 하기 때문에 배고프면 음식을 구하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구하고, 추우면 따뜻함을 구하고, 더우면 시원함을 구하고, 한계에 이르면 휴식을 구하고, 병들면 낫기를 구하며, 욕애(欲愛)하거든 색(色)을 구하거니와, 만일 낙이 없다면 저들이 무슨 사연으로 구하겠는가? 구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낙이 있는 줄을 알리라.'고 하나이다. |
世尊!有諸外道復作是言,施能得樂。 世間之人,好施沙門、諸婆羅門、 貧窮困苦, 衣服、飲食、臥具醫藥、象馬車乘、 末香塗香、眾花屋宅、依止燈明, 作如是等種種惠施, 為我後世受可意報, 是故當知決定有樂。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보시로 낙을 얻을 수 있다. 세간 사람이 사문,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곤고한 이에게 의복, 음식, 와구(臥具), 의약(醫藥), 상마(象馬), 승차(車乘), 말향(末香) 도향(塗香), 꽃, 주택, 의지(依止), 등 밝히기[燈明], 이러한 갖가지 은혜를 즐겨 베풀면 후세(後世)에 마음에 드는 과보를 받게 되니, 그러므로 결정코 낙이 있음을 알 것이다.'고 하나이다. |
世尊!有諸外道復作是言, 以因緣故當知有樂, 所謂受樂者有因緣故,名為樂觸。 若無樂者,何得因緣? 如無兔角,則無因緣, 有樂因緣,則知有樂。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인연이 있음으로써 낙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소위 낙을 받는다는 것은 인연이 있기에 낙을 느끼는 것이다. 만일 낙이 없다면 어떻게 인연을 얻겠는가? 토끼 뿔이 없는 것과 같은 즉 인연이 없는 것이요, 낙의 인연이 있은 즉 낙이 있음을 안다.’고 하나이다. |
世尊!有諸外道復作是言, 上中下故,當知有樂, 下受樂者釋提桓因, 中受樂者大梵天王, 上受樂者大自在天。 以有如是上中下故,當知有樂。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상중하(上中下) 때문에 낙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하(下)의 낙을 받는 자[受樂者]는 석제환인이요, 중(中)의 수락자(受樂者)는 대범천왕이며, 상(上)의 수락자는 대자재천왕이다. 이렇듯 상중하가 있기에 낙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나이다. |
世尊,有諸外道復言有淨。 何以故?若無淨者,不應起欲, 若起欲者,當知有淨。 又復說言,金銀珍寶、琉璃頗梨、 車璩馬瑙、珊瑚真珠、璧玉珂貝、 流泉浴池、飲食衣服、 花香末香塗香、燈燭之明, 如是等物悉是淨法。 復次有淨,謂五陰者, 即是淨器盛諸淨物, 所謂人天、諸仙、阿羅漢、 辟支佛、菩薩、諸佛, 以是義故名之為淨。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청정함[淨]이 있다. 어째서냐? 만일 정(淨)이 없다면 애욕이 일지 않아야 하려니와, 애욕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청정함이 있음을 알리라.' 하고, 또 다시 '금은(金銀), 진보(珍寶), 유리(琉璃), 파리(頗梨), 차거(車璩), 마노(馬瑙), 산호(珊瑚), 진주, 벽옥(璧玉), 가패(珂貝), 흐르는 샘[流泉], 목욕하는 못[浴池], 음식, 의복, 꽃향[花香], 말향(末香), 도향(塗香), 등촉(燈燭) 밝히기, 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청정한 법[淨法]이다. 또 다음의 청정함이 있어, 오음(五陰)이라 하는 것은 곧 청정한 그릇에 청정한 것들이 담긴 것이니, 소위 인천(人天), 제선(諸仙), 아라한(阿羅漢), 벽지불(辟支佛), 보살(菩薩), 제불(諸佛)은 이런 의미에서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다.'고 하나이다. |
世尊!有諸外道復言有我, 有所覩見能造作故。 譬如有人,入陶師家, 雖復不見陶師之身, 以見輪繩定知,其家必是陶師。 我亦如是,眼見色已,必知有我。 若無我者,誰能見色、聞、聲 乃至觸法,亦復如是。 |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나는 있다[有我]. 보는 바가 있고 능히 조작(造作)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도공(陶工)의 집에 가서 비록 도공의 몸은 보지 못하였더라도 물레와 줄을 봄으로써 그 집에 필시 도공이 있음을 알듯이, 나[我]도 그러하여 눈으로 색(色)을 보고서 필경 내가 있음을 안다. 만약 내가 없다면[無我], 누가 색(色)을 보고, 소리[聲]를 듣고, 나아가 촉법(觸法)에 이르기까지가 그와 같겠는가? |
復次有我。云何得知? 因相故知。何等為相? 喘息視眴、壽命役心, 受諸苦樂、貪求、瞋恚, 如是等法,悉是我相, 是故當知必定有我。 |
또 유아(有我)임을 어찌 아는가? 모양[相]으로 인해 아는데, 어떤 것이 상(相)인가? 숨 쉬고, 눈 깜박이고, 살아 있고, 마음을 쓰고, 온갖 고락(苦樂)을 받고, 탐내 구하고, 성내고 하는 이러한 법들이 다 나의 모양[我相]인 것이니, 그러므로 필경 유아(有我)임을 알 것이다. |
復次有我,能別味故, 有人食果,見已知味, 是故當知必定有我。 |
또 내가 있으니[有我], 맛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과일을 먹거나 보고서 맛을 아니, 따라서 필경 유아(有我)임을 알리라. |
復次有我,云何知耶? 執作業故。 執鐮能刈、執斧能斫、 執瓶盛水、執車能御, 如是等事,我執能作, 當知必定而有我也。 |
또 유아(有我)임을 어찌 아는가? 잡고[執] 작업(作業)하기 때문이다. 낫을 들어 베고, 도끼를 들어 찍으며, 병을 쥐어 물을 담고, 수레를 잡아 올라 타는 이러한 일들은 내가 쥐고 하는 일이니, 필경 유아(有我)임을 알리라. |
復次有我,云何知耶? 即於生時,欲得乳餔、乘宿習故, 是故當知必定有我。 |
또 유아(有我)임을 어찌 아는가? 태어나자 마자 젖을 먹으려 드는 것은 숙세의 습기 때문이니, 따라서 필경에 유아(有我)인 줄을 알게 된다. |
復次有我,云何知耶? 和合利益他眾生故。 譬如瓶衣、車乘田宅、 山林樹木、象馬牛羊, 如是等物若和合者,則有利益。 此內五陰亦復如是, 眼等諸根有和合故,則利益我, 是故當知必定有我。 |
또 유아(有我)임을 어찌 아는가? 화합하여 다른 중생을 이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병이나 옷, 수레, 전택(田宅), 산림, 수목(樹木), 상마(象馬), 우양(牛羊), 이러한 것들이 화합한 즉 이익이 있듯이, 이 안의 오음(五陰)도 그와 같아서 안(眼) 등의 제근(諸根)의 어떤 화합이 나를 이익하니, 그래서 반드시 유아(有我)라는 것을 알게 된다. |
復次有我,云何知耶? 有遮法故。 如有物故,則有遮礙, 物若無者,則無有遮, 若有遮者則知有我, 是故當知必定有我。 |
또 유아(有我)임을 어찌 아는가? 가로막는 법[遮法]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있기 때문에 곧 가로막는 장애가 있고, 사물이 없으면 가로막음이 없으니, 만일 가로막는 것이 있은 즉 유아(有我)임을 알 것이라 이 때문에 반드시 유아(有我)인 줄을 알리라. |
復次有我,云何知耶? 伴非伴故, 親與非親非是伴侶, 正法、邪法亦非伴侶, 智與非智亦非伴侶。 沙門、非沙門,婆羅門、非婆羅門, 子、非子,晝、非晝,夜、非夜, 我、非我,如是等法,為伴非伴, 是故當知必定有我。 |
또 유아(有我)임을 어찌 아는가? 반려(伴侶)이거나 반려가 아닌 것 때문이니, 친(親)함과 친함이 아닌 것은 반려가 아니요, 정법(正法)과 사법(邪法) 또한 반려가 아니며, 지혜와 지혜 아님도 반려가 아니다. 사문과 비사문(非沙門), 바라문과 비바라문(非婆羅門), 자(子)와 비자(非子), 주(晝)와 비주(非晝), 야(夜)와 비야(非夜), 아(我)와 비아(非我) 이런 것들은 반려이거나 반려가 아니니, 그 때문에 필경에 유아(有我)임을 안다.'고 하나이다. |
世尊!諸外道等種種說, 有常、樂、我、淨, 當知定有常樂我淨。 世尊!以是義故,諸外道等 亦得說言,我有真諦。」 |
세존이시여! 외도들이 갖가지 말로 상(常)과 낙(樂), 아(我), 정(淨)이 있다고 하니, 정히 상락아정이 있음을 알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뜻에서 외도들도 또한 '내게 진제(真諦)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옵니다.」 |
佛言:「善男子! 若有沙門、婆羅門,有常、有樂、 有淨、有我者,是非沙門、非婆羅門。 何以故?迷於生死, 離一切智大導師故。 如是沙門、婆羅門等,沈沒諸欲, 善法羸損故。 是諸外道,繫在貪欲、瞋恚、癡獄, 堪忍、愛樂故。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어느 사문, 바라문이 상(常)이 있고, 낙(樂)이 있고, 정(淨)이 있으며, 아(我)가 있다면 사문도 바라문도 아니니, 왜냐하면, 생사(生死)에 미혹하여 일체지(一切智)의 대도사(大導師)를 멀리 하고, 또 이러한 사문, 바라문들은 온갖 탐욕에 빠져 선법(善法)이 약해지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요, 이 외도들은 탐욕과 진에(瞋恚), 우치(愚癡)의 감옥에 갇혀서도 견디면서 낙을 좋아하기 때문이니라. |
是諸外道雖知業果自作自受, 而猶不能遠離惡法。 是諸外道,非是正法、正命自活。 何以故?無智慧火不能消故。 是諸外道雖欲貪著上妙五欲, 貧於善法,不勤修故。 是諸外道雖欲往至正解脫中, 而持戒足不成就故。 是諸外道雖欲求樂, 而不能求樂因緣故。 是諸外道雖復憎惡一切諸苦, 然其所行,未能遠離諸苦因緣。 是諸外道雖為四大毒蛇所纏, 猶行放逸,不能謹慎。 是諸外道無明所覆,遠離善友, 樂在三界無常熾然大火之中, 而不能出。 |
이 외도들은 업과(業果)를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줄 알지만 오히려 악법(惡法)을 멀리하지 못하니, 이 외도들은 정법(正法)과 정명(正命)으로 자활(自活)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없어 불을 끌 수 없기 때문이요, 이 외도들이 상묘(上妙)한 오욕(五欲)을 탐착하려 하나 선법(善法)이 근수(勤修)치 않아서 빈약하기 때문이며, 이 외도들이 비록 정해탈(正解脫)에 이르고자 하나 지계(持戒)가 족히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 외도들이 비록 낙을 구하고자 하나 낙을 구할 수 없는 인연 때문이니라. 이 외도들이 비록 일체의 모든 고(諸苦)를 증오(憎惡)한다지만 그 소행(所行)이 제고(諸苦)의 인연을 멀리하지 못했고, 이 외도들이 사대(四大)의 독사에 감긴 바 되었건만 오히려 방일(放逸)을 행하니 근신(謹慎)할 수가 없다. 이 외도들은 무명(無明)에 덮여 선지식을 멀리하고, 무상(無常)한 삼계(三界)의 치연(熾然)한 불길 속을 좋아 하여 헤어나지 못하느니라. |
是諸外道,遇諸煩惱難愈之病, 而復不求大智良醫。 是諸外道,方於未來當涉無邊險遠之路, 而不知習善法資糧而自莊嚴。 是諸外道常為婬欲災毒所害, 而反抱持五欲霜毒。 是諸外道瞋恚熾盛, 而復反更親近惡友。 是諸外道常為無明之所覆蔽, 而反推求邪惡之法。 是諸外道常為邪見之所誑惑, 而反於中生親善想。 是諸外道怖食甘果,而種苦子。 是諸外道已處煩惱闇室之中, 而反遠離大智炬明。 是諸外道患煩惱渴, 而復反飲諸欲醎水。 是諸外道漂沒生死無邊大河, 而復遠離無上船師。 是諸外道迷惑顛倒, 言諸行常, 諸行若常,無有是處。 |
이 외도들은 번뇌라는 고치기 어려운 병을 만났건만 지혜로운 양의[大智良醫;佛]를 찾지 아니 하며, 이 외도들은 막상 미래에 끝없이 험하고 먼 길 걷게 되련만 선법(善法)의 자량(資糧)을 익혀 스스로를 장엄할 줄 모른다. 이 외도들은 늘 음욕이라는 재독(災毒)에 걸려 있는데도 도리어 오욕(五欲)이라는 상독(霜毒)을 싸안으려 하고, 이 외도들은 진에(瞋恚)가 치성(熾盛)하면서도 오히려 더욱 더 악한 벗을 가까이 하며, 이 외도들은 항상 무명(無明)에 덮여 있으면서도 도리어 사악한 법을 추구하느니라. 이 외도들은 늘 사견(邪見)에 빠져 미혹하면서도 도리어 그 안에서 친선(親善)한 생각을 갖고, 이 외도들은 단 과일 먹기를 벼르면서도 쓴 씨앗을 심으며, 이 외도들은 이왕 번뇌의 깜깜한 방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지혜의 밝은 횃불[大智炬明;佛]을 반하여 멀리하느니라. 이 외도들은 번뇌라는 갈증에 시달리면서도 도리어 제욕(諸欲)이라는 짠물을 마시고, 이 외도들은 생사의 끝없이 큰 강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더없이 높은 뱃사공[無上船師;佛]을 멀리하며, 이 외도들은 미혹하고 전도(顛倒)하여 제행(諸行)이 항상(常)되다고 말을 하지만 제행이 항상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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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般涅槃經卷第十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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