垂示云。 聲前一句。千聖不傳。 未曾親覲。如隔大千。 設使向聲前辨得。 截斷天下人舌頭。 亦未是性懆漢。 所以道。天不能蓋。 地不能載。虛空不能容。 日月不能照。 無佛處獨稱尊。 始較些子。 其或未然。於一毫頭上透得。 放大光明七縱八橫。於法自在自由。 信手拈來無有不是。 且道得箇什麼。如此奇特。 復云。大眾會麼。 從前汗馬無人識。 只要重論蓋代功。 即今事且致雪竇公案又作麼生。 看取下文。 |
수시(垂示)하여 가로대, 언어 이전의 한 구절은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하고, 몸소 보지 않으면 대천(大千*)만큼 멀다. 설사 언어 이전을 터득하여 천하인(天下人)의 혀끝을 절단한다 해도 역시 성조한(性懆漢*)은 못된다. 그래서 말하기를 '하늘은 가릴 수 없고, 땅은 실을 수 없으며, 허공은 수용(受容)하지 못하고, 일월(日月)은 비추지 못한다' 하였으니, 부처 없는 데서 홀로 어른노릇을 하는 것이 그나마 조금은 낫겠지만, 그렇지도 못할 것이면 한 터럭 끝에서 투철히 깨달아 대광명을 놓으며 칠종팔횡(七縱八橫) 법에 자유자재하여 손길 가는 대로 가져와도[信手拈來] 옳지 않은 것이 없어야 한다. 말해보라. 무엇을 얻어야 이렇게 기특해지겠느냐? 다시 말하노니, 대중은 알겠느냐? 「지금까지 애쓴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다만 비할데 없는[蓋代] 공로를 중시하여 논해야 한다.」 이 일은 그만두고 설두스님의 공안은 또 어떤지 아래 문장을 살펴보라. |
*大千; 三千大千世界
*性懆漢; 영리한 준걸(俊傑)
*從前汗馬無人識~; 宋代 僧 釋梵思(圓悟克勤禪師法嗣)가 쓴
《頌古九首》 中 세 번째 게송
「일 할(喝)에 3일만 귀먹는 것이 아니라(一喝非唯三日聾)
용(龍)호(虎)의 위세조차도 자취를 감추는구나(龍威虎勢也潜踪)
종전의 공로는 알아주거나 말거나(從前汗馬無人識)
다만 비할데 없는 공로를 엄중히 논해야 한다(只要重論蓋代功)」의 뒷 구절이다.
【七】舉 僧問法眼 (道什麼。檐枷過狀) 慧超咨和尚。如何是佛 (道什麼。眼睛突出) 法眼云。汝是慧超 (依模脫出。鐵餕饀。就身打劫)。 |
【제 7칙】 혜초문불(慧超問佛)_혜초가 부처를 묻다 어느 스님이 법안(法眼;885~958)선사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냐? 죄인이 솟장<訴狀;過狀> 내밀다니.) "혜초(慧超)가 화상께 여쭙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무슨 말이냐? 눈깔 튀어나오겠다.) 법안선사가 답했다. "네가 혜초(慧超)니라." (빠져나가기의 본보기이다. 안되겠으니 직접 빼앗아버렸다.)。 |
*철준도(鐵餕饀); 鐵酸豏. 쇠로 만든 만두. 삼키기 어려우니
불가능한 일이나 난해(難解) 난투(難透)한 관문(關門)에 비유한다.
맛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法眼禪師。有啐啄同時底機。 具啐啄同時底用。 方能如此答話。 所謂超聲越色。得大自在。 縱奪臨時。 殺活在我。 不妨奇特。 然而此箇公案。諸方商量者多。 作情解會者不少。 不知古人。凡垂示一言半句。 如擊石火似閃電光。 直下撥開一條正路。 後人只管去言句上。 作解會道。 慧超便是佛。 所以法眼恁麼答。 有者道。大似騎牛覓牛。 有者道。問處便是。 有什麼交涉。 若恁麼會去。不惟辜負自己。 亦乃深屈古人。 |
법안(法眼)선사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기(機)가 있고, 줄탁동시의 용(用)을 갖춘지라 바야흐로 그렇게 답할 수 있었다. 소위 성색(聲色)을 초월한 대자재(大自在)를 얻어 놓아주고 빼앗을[縱奪] 때를 임해서는 죽이고 살리기[殺活]가 내 손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기특하여 마지않다. 그러나 제방(諸方)에는 이런 공안을 상량(商量)하려는 자가 많고, 정해(情解)를 지어 알려는 자가 적지 않거니와, 옛사람이 수시(垂示)하는 일언반구(一言半句)는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아서 직하(直下)에 한 가닥 정로(正路)를 열어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후인들은 오로지 언구(言句)만을 가지고 알음알이를 지어 말하기를, “혜초가 바로 부처이므로 법안이 그렇게 답한 것이다”고 하거나, 어떤 사람은 “소를 타고 소 찾는 것과 똑 같다.” 하고, 어떤 사람은 “질문한 곳이 바로 그것이다”고 하지만,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만일 그렇게 이해해 가면 자기를 저버릴 뿐아니라 또한 옛사람을 심히 굴욕스럽게 하는 일이다. |
*啐啄同時; 16칙 鏡清 啐啄 참조.
若要見他全機。 除非是一棒打不回頭底漢。 牙如劍樹。口似血盆。 向言外知歸。 方有少分相應。 若一一作情解。 盡大地是滅胡種族底漢。 只如超禪客於此悟去。 也是他尋常管帶參究。 所以一言之下。 如桶底脫相似。 |
만일 그의 온전한 기[全機]를 보려거든 한 방 때려주면 곧바로 깨닫는[回頭; 非不回頭] 놈을 제하고는 이빨을 칼날처럼 세우고 입은 핏동이처럼 하고서 언어 밖을 향해 알아 들어가야 비로소 적게나마 상응함이 있을 것이다. 만약 낱낱에 정해(情解)를 짓는다면 온 대지에 오랑캐 종족[胡種族; 佛種]을 멸망시킬 놈이다. 다만 혜초(慧超) 선객이 여기에서 깨달아 간 것은 평소 참구(參究)가 몸에 베어있었으므로 그래서 일언지하에 칠통 밑바닥이 빠져버리듯 명쾌해진 것이다. |
只如則監院在法眼會中。 也不曾參請入室。 一日法眼問云。 則監院何不來入室。 則云。和尚豈不知。 某甲於青林處。有箇入頭。 法眼云。汝試為我舉看。 則云。某甲問如何是佛。 林云。丙丁童子來求火。 法眼云。好語。恐爾錯會。 可更說看。 則云。丙丁屬火。以火求火。 如某甲是佛。更去覓佛。 法眼云。監院果然錯會了也。 則不憤便起單渡江去。 法眼云。此人若回可救。 若不回救不得也。 則到中路自忖云。 他是五百人善知識。 豈可賺我耶。 遂回再參。 法眼云。 爾但問我。我為爾答。 則便問。如何是佛。 法眼云。丙丁童子來求火。 則於言下大悟。 |
칙감원(則監院*)이 법안(法眼)의 회중(會中)에 있었으나 참청(參請)하러 입실(入室)한 적이 없었는지라 하루는 법안이 물었다. "칙감원은 왜 내 방에 오지 않느냐?" "큰 스님은 모르십니까? 제가 청림(青林*)의 처소에서 입두(入頭*)한 것이 있습니다." "어디 한 번 내게 말해보거라." "제가 '무엇이 부처입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청림선사께서 '병정동자(丙丁童子*)가 불을 찾는구나' 하셨습니다." "좋은 말인데 네가 잘못 알았을까 염려되니, 다시 설명해보거라." "병정(丙丁)은 불에 속하는데 불로 불을 찾으니, 내가 부처이건만 다시 부처를 찾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법안이 "감원(監院)은 과연 잘못 알았구나." 하였다. 현칙은 뜻밖이라[不憤] 문득 절을 떠나[起單] 강너머로 가버렸는데, 법안은 "이 사람이 돌아오면 구제되겠지만 돌아오지 않으면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현칙이 가는 도중에 다시 헤아려보고 스스로 말하기를, "그 분은 오백 인을 거느리는 선지식이신데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하고 마침내 되돌아 다시 법안선사를 참례하였기에, 법안이 말했다. "네가 내게 묻거라. 내가 너에게 답하마." 현칙이 곧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자, 법안은 "병정동자가 불을 찾는구나" 하였다. 현칙은 그 말 끝에 대오(大悟)하였다. |
*則監院; 則은 玄則 즉 法眼文益禪師의 法嗣인 金陵報恩院玄則禪師.
監院은 唐代에 全寺의 事務를 管掌하던 職銜. 宋代에는 監寺라 하였다.
*青林; 青林師虔禪師(洞山良价禪師法嗣).
<五燈會元 卷第十>金陵報恩院玄則禪師章에는 青峰이라 하였으나,
뒷구절에서 德韶國師도 曹洞宗 문하에 있다가 온 일을 말하고 있다는 것과
시대적으로, 또 직접 전한 사실로 미루어 青林이 옳은듯 하다.
*入頭; 비로소 열린 明白함. 깨달음.
*丙丁童子; 燈火를 관리하는 童子.
*起單; 禪僧이 절을 떠나가는 것.
如今有者。只管瞠眼作解會。 所謂彼既無瘡。勿傷之也。 這般公案。久參者。 一舉便知落處。 法眼下謂之箭鋒相拄。 更不用五位君臣。四料簡。 直論箭鋒相拄。 是他家風如此。 一句下便見。當陽便透。 若向句下尋思。卒摸索不著。 法眼出世。有五百眾。 是時佛法大興。 時韶國師久依疏山。 自謂得旨。 乃集疏山平生文字頂相。 領眾行腳。至法眼會下。 他亦不去入室。 只令參徒隨眾入室。 |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눈 부릅뜨고 알음알이 지으려고만 하니, 소위 저들이 기왕 곪지 않은 데를 상처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공안을 오래 참구하면 들추기만 해도 곧바로 낙처(落處)를 알게 되는데, 법안의 회하(會下)에서는 전봉상주(箭鋒相拄*)라 하며, 다시 오위군신(五位君臣*)도 사료간(四料簡*)도 쓰지 않고, 곧장 전봉상주(箭鋒相拄)를 논한다. 그의 가풍(家風)이 이러하였으니, 한 구절만 슬쩍 보아도 환해져서 곧 투득하려니와, 만일 구절 아래서 찾고 생각하면 끝내 모색할 수 없다. 법안이 출세(出世)하여 오백의 스님들을 거느렸으니, 그때는 불법(佛法)이 크게 흥성(興盛)하였다. 그때 소국사(韶國師*)도 오랫동안 소산(疏山*)을 의지하여 불지(佛旨)를 얻었노라 자위하면서 소산(疏山) 평생의 문자 꼭대기를 모아 대중을 영도하는 행각을 하다가 법안의 회하에 왔기에 그도 또한 입실하지 않고 참도(參徒)들만 대중 따라 입실하게 하였다. |
*箭鋒相拄; 法眼四機의 하나.
①箭鋒相拄; 두 화살촉이 서로 마주하여 버티는 모양새.
즉 스승과 학인의 機鋒이 긴밀히 서로 계합하여 간극이 없게 지도하는 기법.
②泯絕有無; 有와 無 양단대립의 분별견해를 초월하게 하는 지도방식.
③就身拈出; 천차만별한 근기를 따라 信手拈來하여
저마다 연(緣)을 따라 教化를 얻게 하는 것.
④隨流得妙; 학인의 근기에 따라 佛性의 殊妙함을 체득하게 하는 것.
*五位君臣; 曹洞宗 開祖 洞山良价와 제자 曹山本寂이 공동 창시한 教法.
真理를 正位, 事物을 偏位에 세워, 君臣간의 五倫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또 洞山을 君(正位), 曹山을 臣(偏位)을 삼아 증명해 보였다.
《五位君臣頌》~洞山語錄
正中偏。三更初夜 밝은 달 앞에서 <三更初夜月明前>
서로 만나 알지 못함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莫怪相逢不相識>
암암리에 지난날의 미움을 돌이켜 생각하라 <隱隱猶懷舊日嫌>.
偏中正。늦게 일어난 노파 낡은 거울 앞에서 <失曉老婆逢古鏡>
얼굴을 분명히 보니 진실이 따로 없거늘 <分明覿面別無真>
다시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라 하지 말라 <休更迷頭猶認影>
正中來。無 가운데 塵埃를 떠날 길이 있으니 <無中有路隔塵埃>
當今의 존장(尊長;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但能不觸當今諱>
前朝에 혀 잘린 인재보다 낫다 <也勝前朝斷舌才>
兼中至。두 칼끝이 교차하면 피할 필요가 없고 <兩刃交鋒不須避>
좋은 수는 불 속의 연꽃처럼 <好手猶如火裏蓮>
宛然히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을 지녀야 한다<宛然自有冲天志>
兼中到。有無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뉘라서 감히 조화하리요 <不落有無誰敢和>
사람사람이 다 통상의 흐름에서 벗어나려 하다가 <人人盡欲出常流>
뜻을 접고 되돌아가 재 속에 앉는다네<折合還歸炭裏坐>
*四料簡; 臨濟宗의 教相. 料簡은 料見, 解釋의 뜻이니 네 가지 簡別法을 말한다.
臨濟義玄에 의해 창시된 기틀과 때에 맞춰 與奪을 뜻대로 하고,
殺活을 自在히 할 수 있는 네 가지 학인 지도의 규칙.
①奪人不奪境; 奪主觀而僅存客觀, 於萬法之外不承認自己, 以破除對人我見之執著。
②奪境不奪人; 奪客觀而僅存主觀, 以世界映現在一己心中, 破除以法為實有之觀點。
③人境俱奪; 否定主客觀之見, 兼破我執與法執。
④人境俱不奪; 肯定主客觀各各之存在。
*韶國師; 天台山德韶國師(法眼文益禪師法嗣).
오등회원에서는 법안에게 오기 전에 曹洞宗 龍牙居遁禪師 문하에 있었다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龍牙가 아니라 疏山光仁禪師라 하고 있다.
*疏山; 撫州踈山匡仁<疏山光仁>禪師(洞山良价禪師法嗣)
一日法眼陞座。有僧問。 如何是曹源一滴水。 法眼云。是曹源一滴水。 其僧惘然而退。 韶在眾聞之忽然大悟。 後出世。承嗣法眼。 有頌呈云。 通玄峰頂。 不是人間。 心外無法。 滿目青山。 法眼印云。 只這一頌。可繼吾宗。 子後有王侯敬重。 吾不如汝。 看他古人。恁麼悟去。 是什麼道理。 不可只教山僧說。 須是自己二六時中。打辦精神。 似恁麼與他承當。 他日向十字街頭。 垂手為人。 也不為難事。 所以僧問法眼。如何是佛法。 眼云。汝是慧超。 有甚相辜負處。 不見雲門道。 舉不顧。即差互。 擬思量何劫悟。 雪竇後面頌得。不妨顯赫。 試舉看。 |
하루는 법안이 법좌에 오르자 어느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계(曺溪) 근원의 물 한 방울입니까?" "그것이 조계 근원의 물 한 방울이니라." 그 중은 망연하여 물러갔으나, 덕소(德韶)국사는 대중 속에 있다가 듣고서 홀연히 대오하였고, 후에 출세(出世)하여 법안을 승사(承嗣)하며 게송을 지어 올리기를, 「통현봉(通玄峰) 꼭대기여! [通玄峰頂] 인간세상은 아니로세 [不是人間]. 마음 밖에 법이 없고 [心外無法], 온 눈 가득 청산(青山) 뿐이네 [滿目靑山].」 하였다. 법안이 인가하여 말하기를, "다만 이 한 게송이 가히 나의 종풍을 이을만 하다. 너는 훗날 왕후(王侯)의 경중(敬重)을 받을 것이니, 나는 너만 못하구나." 하였다. 이 옛사람이 그렇듯 깨달아 간 것을 살피건대 이것이 무슨 도리이겠는가? 산승더러 말하라고만 하지 말고, 모름지기 자기 1주야 12시 중에 정신 바짝 차려서 그와 같이 감당해가면 언젠가는 네거리 모퉁이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드리우기(가르침을 베풀기)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 중이 법안에게 "무엇이 불법입니까?" 묻자, 법안이 "네가 바로 혜초니라." 하였으니, 어찌 서로를 저버린 곳이 있겠는가? 보지 못했는가? 운문(雲門)이 말하기를, "들춰주어도 돌아보지 않으면 서로 어긋나버리거니와, 사량(思量)에 기초해서야 어느 세월에 깨닫겠느냐?" 하였다. 설두선사가 뒤면에 송(頌)한 것이 혁혁하여 마지 않기에 예시하여 들추리니 살펴보거라. |
江國春風吹不起 (盡大地那裏得這消息。 文彩已彰) 鷓鴣啼在深花裏 (喃喃何用。 又被風吹別調中。豈有恁麼事) 三級浪高魚化龍 (通這一路。 莫謾大眾好。踏著龍頭) 癡人猶戽夜塘水 (扶籬摸壁。挨門傍戶。 衲僧有什麼用處。守株待兔) |
장강(長江;江國*)의 춘풍(春風)은 불어 일지 않고, (온 대지에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문채<文彩>가 창현<彰顯>하구나.) 자고(鷓鴣)는 지저귀며 꽃 그늘 깊이 숨었구나. (재잘거려서 어쩔 것이며, 또 춘풍이 불어 형편이 달라진들 그런 일이 있겠는가?) 삼단물결[三級浪]이 일매 물고기는 이미 용이 되었건만 (한 갈래 희망을 열어 두라. 대중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 좋으련만 용머리<龍頭*>를 밟아버렸구나.) 어리석은 놈이 야밤에 못물만 퍼내고 있구나. (담벼락을 더듬을지언정 남의 등이나 쳐서 납승이 어디에 쓰겠느냐? 나무 곁에서 토끼 걸리기 기다리는 것이다.) |
*江國; 中國古代 四瀆(江,淮,河,濟水) 중 江水. 지금의 長江(揚子江).
*龍頭; 물 흘러나오는 곳. 물길을 막아버렸다. 희망을 없애버렸다.
*扶籬摸壁; 깜깜히 어두워 담벼락을 붙들고 더듬어 찾는 모양새.
범부의 사려분별(思慮分別)로 부처의 경계를 억측하는 것에 비유.
*挨門傍戶; 남을 등치며 살아가는 형상. 倚門傍户는 남을 의지해 살아가는 것.
*守株待兔; 나무를 지키며 토끼 걸리기[不勞所得]를 기다린다.
한 농부가 나무에 걸려 죽어있는 토끼를 얻은 뒤에 농사는 제쳐두고
나무 곁에서 토끼 걸리기를 기다렸으나 소득이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온 말.
《韓非子의 五蠹》
雪竇是作家。 於古人難咬難嚼 難透難見 節角誵訛處。 頌出教人見。 不妨奇特。 雪竇識得法眼關棙子。 又知慧超落處。 更恐後人向法眼言句下。 錯作解會。 所以頌出這僧如此問。 法眼如是答。 便是江國春風吹不起。 鷓鴣啼在深花裏。 此兩句只是一句。 且道雪竇意在什麼處。 江西江南多作兩般解會道。 江國春風吹不起。 用頌汝是慧超。只這箇消息。 直饒江國春風也吹不起。 鷓鴣啼在深花裏。 用頌諸方商量這話。浩浩地。 似鷓鴣啼在深花裏相似。 有什麼交涉。 殊不知。 雪竇這兩句。只是一句。 要得無縫無罅。 明明向汝道。 言也端語也端。 蓋天蓋地。 他問如何是佛。 法眼云。汝是慧超。 雪竇道。江國春風吹不起。 鷓鴣啼在深花裏。 向這裏薦得去。 可以丹霄獨步。 爾若作情解。三生六十劫。 |
설두(雪竇)는 작가(作家)인지라 옛사람의 깨물기도 씹기도 어렵고, 꿰뚫기도 보기도 어려우며, 꺾어지고 모난 효와처(誵訛處)를 노래하여 사람들의 견해를 교화하였으니, 기특하여 마지않다. 설두는 법안의 관려자(關棙子*)를 인식하고 또 혜초의 낙처(落處*)도 알았기에 후세 사람들이 법안의 언구하에 잘못 알음알이를 지을까 염려하여 그 때문에 이 중이 이렇게 묻고 법안이 이렇게 답했다고 송출(頌出)하였으니, 곧 이것이 '江國春風吹不起 鷓鴣啼在深花裏'인데, 이 양구(兩句)는 다만 한 구이다. 말해보라. 설두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강서(江西)고 강남(江南)이고 간에 대개가 두 가지 알음알이를 지어 말하는데, '江國春風吹不起'라 하여 '네가 바로 혜초인데, 다만 이 소식이 가사 장강에 춘풍이 불어 일지 않은 것과 같다'고 송(頌)한 것이고, '鷓鴣啼在深花裏'는 '제방(諸方)이 이 이야기를 상량(商量)하여 호탕한 경지가 흡사 자고(鷓鴣)가 꽃 그늘 깊이 숨어 우는듯 여긴다'고 송(頌)하였다 하나, 무슨 교섭(交涉)이 있겠는가?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설두의 이 양구(兩句)가 다만 한 구라는 것을. 꿰맨 자국이나 틈이 없이 얻어야 할 것이라 명명백백히 그대에게 이르거니와, 언어(言語)가 단초(端初)가 되어 하늘을 가리고 땅을 덮는 것이다. 저 중이 "무엇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법안이 "네가 혜초다" 하였는데, 설두는 '江國春風吹不起 鷓鴣啼在深花裏'라고 하여 그 속을 향해 영오(領悟;薦得)해 갔으니, 단소독보(丹霄獨步*)라 할만 하다. 그대들이 만약 알음알이를 짓는다면 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이니라. |
*關棙子; 관문 빗장. *落處; 귀결점. 처지.
*丹霄獨步; 노을진 하늘 위 황홀경을 홀로 걷다.
*三生六十劫; 聲聞乘의 修行時間. 극히 빠른 자는 三生에 極果를 얻고,
극히 늦은 자는 60겁에 얻는다 한다.
雪竇第三第四句。 忒殺傷慈。 為人一時說破。超禪師當下大悟處。 如三級浪高魚化龍。 癡人猶戽夜塘水。 禹門三級浪。 孟津即是龍門。 禹帝鑿為三級。 今三月三。桃花開時。 天地所感。 有魚透得龍門。 頭上生角昂鬃鬣尾。 拏雲而去。 跳不得者點額而回。 癡人向言下咬嚼。 似戽夜塘之水求魚相似。 殊不知。魚已化為龍也。 端師翁有頌云。 一文大光錢。買得箇油餈。 喫向肚裏了。當下不聞飢。 此頌極好。只是太拙。 雪竇頌得極巧。不傷鋒犯手。 舊時慶藏主愛問人。 如何是三級浪高魚化龍。 我也不必在。我且問爾。 化作龍去。即今在什麼處。 |
설두스님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구절은 너무나 인자하게도 사람들에게 혜초스님이 그 자리에서 대오한 곳을 일시에 설파해주었다. '三級浪高魚化龍。 癡人猶戽夜塘水。'라 하였는데, 우문(禹門)의 삼급랑(三級浪)은 맹진(孟津) 즉 용문(龍門)으로, 하(夏)나라 우제(禹帝;大禹)가 삼단으로 파서 물을 끌었다. 지금에 삼월삼짇날 복사꽃이 필 때면 천지가 감응하고, 용문(龍門)을 돌파하려는 물고기가 있어, 앞머리는 뿔처럼 돋고 지느러미와 꼬리는 치켜세워 구름을 움켜쥐듯이 올라가는데, 뛰어오르지 못하면 점액(點額*)으로 되돌아 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언구(言句)만을 향해 짐작해가니, 흡사 야밤에 못물 퍼서 물고기 잡으려는 것과 같거니와, 물고기가 이미 변해 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단(端;白雲守端) 사옹(師翁*)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한 푼의 대광전(大光錢)으로 [一文大光錢] 인절미 몇개 사들고 [買得箇油餈] 뱃속으로 먹어 삼키니 [喫向肚裏了] 금방 배고픔이 사라지네 [當下不聞飢]」 이 게송은 극히 좋으나 다만 이것이 크게 서투르고, 설두의 게송은 지극히 교묘하여 칼끝이 손을 상하지 않는다. 옛날에 경장주(慶藏主*)가 "三級浪高魚化龍이란 무엇이냐?"하고 사람들에게 묻기를 좋아하였다는데, 나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고, 내가 그대들에게 묻노니, "변해 올라간 용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
*禹門; 山西城 稷山縣 북서쪽 黄河지역. 하나라 우(禹)왕이 삼단으로 깎아
만들었다 하여 禹門이라 하며, 물고기가 급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 하여 龍門으로 통한다. 登龍門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點額; ①붓으로 이마에 점을 찍으면 제왕이 될 꿈조짐을 얻는다고 하였다.
②'물고기가 龍門을 넘으면 용이 되지만 아니면 점액(點額)으로 돌아온다' 하고,
후에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하는 것'에 비유한다.
*咬嚼; 자세한 짐작이나 음미에 비유하는 말.
*師翁; 師祖, 즉 스승의 스승.
*慶藏主; 雲谷慶禪師. 南宋時代 臨濟宗僧. 石溪心月에게 배우고, 그의 법을 이었다.
雲谷和尚語錄二卷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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