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 제6칙 : 운문 일일시호일(雲門日日是好日)

碧雲 2021. 8. 11. 11:16
 【六】舉  【제6칙】 운문일일시호일(雲門日日是好日)
           _운문(雲門)선사의 날마다 좋은 날

 

   雲門垂語云。
   十五日已前不問汝
   (半河南。半河北。
    這裏不收舊曆日)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不免從朝至暮。
    切忌道著。
    來日是十六。日月如流)
   自代云。日日是好日
   (收。蝦跳不出斗。

    誰家無明月清風。
    還知麼。海神知貴不知價)。

   운문(雲門*)이 대중들에게
  "15일 이전은 너희에게 묻지 않겠다만
   (반은 하남<河南*>이고, 반은 하북<河北*>이로구나.
   여기서는 하력<夏曆;舊曆*>의 날은 쓰지 않는다.)
   15일 이후에 대해 한마디 해보거라." 하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거늘,
    절대 그럴싸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내일이이면 16일이니, 세월은 유수와 같다.)
   자기가 대신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로다."
   (그만두어라. 잡힌 새우 뛰어봐야
    됫박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집엔들 명월청풍<明月清風>이 없겠는가.
    알겠느냐? 해신<海神>이 산호 귀한 줄은 알아도
    값어치는 모른다.)。

*雲門(864~949); 唐末五代僧。雲門宗祖。浙江嘉興人, 俗姓張。法名文偃。
睦州와 雪峰義存(3년)을 거쳐 靈樹如敏의 會下에서 首座로 있다가 
貞明四年(918)에 如敏이 入寂하자 그의 法席을 이어 靈樹寺 주지가 되었다. 
同光元年(923)에 雲門山에 光泰禪院을 세우고 道風을 날리니 海眾이 雲集하였다. 
後漢 隱帝 乾祐元年(948)에 南漢王 劉龔이 「匡真禪師」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半河南 半河北; 이쪽 저쪽에 걸쳐 있어서 분명치 못한 형상. 
*舊曆; 夏曆, 즉 옛날 하(夏)나라 시대에 쓰던 달력으로 지금의 3월이 歲首, 
정월이 孟春, 4월이 孟夏, 7월이 孟秋, 10월이 孟冬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收; 쉬다, 그치다, 그만두다.
*하(蝦); (잡힌)새우. 
*誰家無明月清風; 어느 집엔들 明月清風이 없겠는가?
  誰家竈裡火無煙; 어느집 굴뚝인들 불집혀서 연기 안나겠는가? 
*海神知貴不知價; 河南鄧縣 白崖山黨子谷 長壽寺의 石壁에 쓰여있는 
 唐代詩人 盧公(795?~835)의 詩句. 
  「독서에 목마른 즉 갈증이 없고                     (渴讀即不渴), 
   독서에 굶주린 즉 배고프지 않다.                  (飢讀即不飢)。
   고래가 바닷물 다 삼켜버리거든                    (鯨吞海水盡), 
   산호 가지가 드러나려니와                           (露出珊瑚枝)。
   바다 신은 귀한 줄 알아도 값은 모르니           (海神知貴不知價), 
   머물러 인간들에게 빛을 비추게 되리라          (留向人間光照)。」

 

雲門初參睦州。
州旋機電轉。
直是難湊泊。
尋常接人。
纔跨門便搊住云。
道道。
擬議不來。便推出云。
秦時?轢鑽。
雲門凡去見。至第三回。
纔敲門。州云。誰。
門云。文偃。
纔開門便跳入。
州搊住云。道道。
門擬議。
便被推出門一足在門閫內。
被州急合門。
拶折雲門腳。
門忍痛作聲。
忽然大悟。
後來語脈接人。
一摸脫出睦州。
운문(雲門)이 목주(睦州)선사를 처음으로 참방했는데,
목주선사의 선기(禪機) 회전이 번개치듯 하여
접근하기 어려웠다.
평소 사람을 접(接)할 때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곧 붙들어 잡고서
"말해보라, 말해보라." 하여,
의의(擬議*)를 내놓지 못하면 곧 밀어내면서
"진시탁력찬(秦時?轢鑽*)이로구나." 하였다.
운문이 뵈러 간지 세 번째가 되어서야 겨우
문을 두드리니 목주선사가 "누구요?" 하였다.
운문이 "문언(文偃)입니다." 하고
얼른 문을 열고 뛰어들어갔는데,
목주선사가 붙들고 "말해보라, 말해보라." 하였다.
운문이 의의(擬議)하려다
곧 밀침을 당해 한 발이 문지방 속에 끼인 채로
목주선사가 급히 문을 닫는 바람에
운문의 발이 접질렸다.
운문은 아픔을 참으며 소리를 지르다가
홀연히 대오(大悟)하였다.
그 이후로 어맥(語脈)과 접인(接人)하는 방식이
한 모양으로 목주를 빼닮았었다(빠져 나왔다). 

*擬議; 연구해낸 議題. 예견하다. 입안하다. 초안을 작성하다.
*秦時?轢鑽; 진나라 시절의 탁력찬(?轢鑽). 
우차로 끌어 돌려서 구멍을 뚫는 거대한 추(錐). 
진시황이 아방궁(一說 萬里長城) 건립할 때 만들었으나 
그 후에는 쓰일 데가 없었으니, 선림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에 비유한다. 
景德傳燈錄卷十二 臨濟義玄禪師章에 
「어느 중이 문을 두드리니, 임제선사가 "누구요?" 하였다. 
그 중이 "접니다." 하자, 선사는 "진나라 때 탁락찬(鐸落鑽)이로구나." 하였다.
(有僧扣門。師云。阿誰。僧云。某甲。師云。秦時鐸落鑽。)」

後於陳操尚書宅。住三年。

睦州指往雪峰處去。
至彼出眾便問。
如何是佛。
峰云。莫寐語。
雲門便禮拜。一住三年。
雪峰一日問。
子見處如何。
門云。某甲見處。與從上諸聖。
不移易一絲毫許。
그 뒤 3년 동안 진조(陳操) 상서(尙書)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목주선사가 설봉(雪峰)선사에게 가라 하였다.
그 곳에 이르러 대중 앞에서 설봉에게 여쭙기를,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자,
설봉은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마라.” 하시니,
운문은 곧 예배하고 3년을 머물렀다.
설봉이 하루는 물었다.
“너의 견처(見處)는 어떠하느냐?”
“저의 견처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인들과 더불어
실 한 올만큼의 달라짐도 허용치 않습니다.” 하였다. 
靈樹二十年。不請首座。
常云。我首座生也。
又云。我首座牧牛也。
復云。我首座行腳也。
忽一日令撞鐘。
三門前接首座。
眾皆訝之雲門果至。
便請入首座寮。解包。
영수(靈樹)선사는 20년 동안 수좌를 두지 않고
항상 “내 수좌가 났다”고 하기도 하고,
또 “내 수좌는 목우(牧牛)하고 있다"고 하거나,
또는 “내 수좌는 행각 중이다”고 하다가
갑자기 하루는 종을 치게 하고
삼문(三門) 앞에서 수좌를 맞겠다 하니,
대중들이 모두 의아해 하던 차에 운문이 이르자
곧 그를 수좌직으로 맞아들여 짐을 풀게 하였다. 

*靈樹; 韶州靈樹如敏禪師(南嶽下四世 長慶大安禪師法嗣). 賜號「知聖大師」

靈樹人號曰知聖禪師。
過去未來事皆預知。
一日廣主劉王。將興兵。
躬入院。請師決臧否。

靈樹已先知。怡然坐化。
廣主怒曰。和尚何時得疾。

侍者對曰。師不曾有疾。
適封一合子。
令俟王來呈之。
廣主開合得一帖子云。
人天眼目。堂中首座。

廣主悟旨。遂寢兵。
請雲門出世。
住靈樹。
後來方住雲門。
영수(靈樹)는 사람들이 지성선사(知聖禪師)라 불렀고,
과거와 미래의 일을 다 미리 알았다.
하루는 광주(廣州) 유왕(劉王*)이 군사를 일으키려고
몸소 사원으로 와서 스님께 출진해도 좋을런지
가부[臧否]의 결정을 청하려 하였으나,
영수선사는 미리 알고 이연(怡然)히 좌화(坐化)했다.
광주 왕이 노하여 “화상께서는
언제 병을 얻었느냐?” 물으니,
시자가 대답하여 “스님께서 병이 있으신 적은 없고,
방금 합자(合子) 하나 봉해 두고
왕께서 오시거든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는지라,
유왕이 상자를 열어 한 서신을 얻었는데,
“인천(人天)의 안목은 이곳의 수좌입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유왕은 그 뜻을 깨닫고 결국 출병을 멈추고서
운문선사에게 세상에 나와
영수사(靈樹寺) 맡아주길를 청하니,
그 뒤로 바야흐로 운문산의 주지가 되었다.

*劉王; 唐 昭宗 때 靜海와 清海의 節度使로서 南海王에 봉해졌던 劉隱. 시호는 양(襄).
그의 동생 공(龔)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漢이라 하니 역사에서는 「南漢」이라 하고,
劉隱을 追尊하여 양제(襄帝)라 하며 -廟號는 烈宗이다.

師開堂說法。
有鞠常侍致問。
靈樹果子熟也未。
門云。
什麼年中。得信道生。
운문이 개당설법(開堂說法)하는데,
국상시(鞠常侍)가 묻기를,
“영수(靈樹)의 과일이 익었습니까?” 하니,
운문이 말했다.
“어느 해 중에 덜 익었다는 말을 접하겠습니까?” 
復引劉王昔為賣香客等因緣。

劉王後諡靈樹。
為知聖禪師。
靈樹生生不失通。
雲門凡三生為王。
所以失通。
다시 유왕(劉王)에게 불려가서
전생에 향(香)장수였다고 한 따위의 인연으로
유왕이 후에 영수(靈樹)스님에게
지성선사(知聖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영수는 태어날 때마다 신통을 잃지 않았으나,
운문은 삼생(三生)에 왕이었으니,
그래서 신통을 잃었던 것이었다.
一日劉王詔師入內過夏。

共數人尊宿。
皆受內人問訊說法。
唯師一人不言。
亦無人親近。
有一直殿使。書一偈。
貼在碧玉殿上云。
大智修行。始是禪。
禪門宜默不宜喧。
萬般巧說爭如實。
輸卻雲門總不言。
하루는 유왕이 선사를 불러
궐 안에 들어와 여름을 보내게 하니,
몇 사람의 존숙(尊宿)들과 함께 하였다.
모두 궐 안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설법했지만,
선사 한 사람만 말하지 않고
가까이 지낸 사람도 없었다.
어느 직전사(直殿使)가 한 게송을 써서
벽옥전(碧玉殿) 위에 붙여 놓았었다.
「대지(大智)로 수행해야 비로소 선(禪)인 것이라
 선문(禪門)은 말이 없어야지 시끄러우면 안 된다.
 아무리 교묘한 말이라도 어찌 진실과 같겠는가?
 운문에게 밀려났으니 다들 아무 말하지 말라. 」
雲門尋常愛說三字禪。
顧鑒咦。
又說一字禪。
僧問殺父殺母。
佛前懺悔。
殺佛殺祖。
向什麼處懺悔。
門云。露。
又問。如何是正法眼藏。
門云。普。
直是不容擬議。
到平鋪處。
又卻罵人若下一句語。
如鐵橛子相似。
운문은 평소 세 글자 선[三字禪*],
고감이(顧鑒咦)를 즐겨 썼으나,
또 한 글자 선[一字禪]을 쓰기도 하였다.
어느 스님이 “부모를 살해했으면
부처님 앞에 참회하겠지만,
부처와 조사를 죽이면
어느 곳에다 참회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노(露*)” 하였고,
또 “무엇이 정법안장(正法眼藏)입니까?” 묻자,
“보(普*)” 하였으니,
곧 이것이 이의제기를 용납하지 않는
평포처(平鋪處*)에 도달한 것이다.
또 사람을 꾸짖어 한 마디 했다 하면
마치 쇠말뚝[鐵橛子*] 같았다.

*三字禪; 운문선사는 학인을 접인할 때, 늘 「顧, 鑑, 咦」 세 글자로 禪旨를 說破했다.
「顧(뒤돌아본다)」는 '스스로 反省하라'는 뜻이요,
「鑑(비춰본다)」은 '자신의 계행을 살펴보라'는 의미이며,
「咦(에이!)」는 禪家에서 쓰이는 嘲笑의 意味가 내포된 發笑語로
말로는 설명이 미치지 못하고 意路가 막혀 짐작으로 玄旨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의 비웃음 소리 '에이!'.
또 일체를 超絕하고 孤峰頂上에 宴坐하여 自適한 境界를 가리키기도 한다.
*露; 發露, '주위에 솔직히 스스로 밝히고 용서를 구하라'는 뜻.
*普; 두루, 널리. 즉 '어디에나 다 있다'는 뜻.
*平鋪處; 평탄(平坦)하게 펼쳐진 곳. 속속들이 드러난 곳.
*鐵橛子; 쇠말뚝. 어찌해 볼 수 없음에 비유. 

後出四哲。
乃洞山初。智門寬。德山密。
香林遠皆為大宗師。
香林十八年為侍者。
凡接他。只叫遠侍者。
遠云。喏。
門云。是什麼。
如此十八年。一日方悟。
門云。我今後更不叫汝。

후에 네 철인(哲人)이 나왔으니,
동산초(洞山初*), 지문관(智門寬*), 덕산밀(德山密*),
향림원(香林遠*)이 모두 대종사(大宗師)였다.
향림이 18년 동안 시자였는데,
그를 대할 때마다 “원(遠) 시자야!”라고만 불렀고,
원(遠;향림)이 “네” 하면,
운문은 “이것이 무엇이냐?”라고만 하였다.
이러하기를 18년에 어느 날 마침내 깨닫자,
운문은 “나는 이후로 다시는
너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였다.

*洞山初; 벽암록 12칙 「洞山麻三斤」의 襄州洞山守初宗慧禪師.
*智門寬; 雙泉師寬 또는 智門師寬. 隨州雙泉山師寬明教禪師. 西域人으로 玄奘을 따라 출가.
儒, 釋, 道 三教의 對論에서 모든 스님들을 굴복시켰기에 明教大師라는 시호를 얻었다.
*德山密; 鼎州德山緣密圓明禪師
*香林遠; 17칙 「香林西來意」의 益州青城香林院澄遠禪師.

 

雲門尋常接人。
多用睦州手段。
只是難為湊泊。
有抽釘拔楔底鉗鎚。
雪竇道。我愛韶陽新定機。

一生與人抽釘拔楔。
운문은 평소 사람을 접할 때
목주의 수단을 자주 썼다.
다만 이것이 접근하기 어려울 뿐
못을 빼고 쐐기를 뽑아내는 장도리 같음이 있었다.
설두가 말하기를, “나는 소양(韶陽;운문)의
참신하고 결정한 기(機)를 좋아한다.
평생 사람들의 못을 빼고 쐐기를 뽑아주었다.”고 하였다.
垂箇問頭示眾云。
十五日已前不問汝。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坐斷千差不通凡聖。
自代云。日日是好日。
十五日已前。
這語已坐斷千差。
十五日已後。
這語也坐斷千差。
是他不道明日是十六。
後人只管隨語生解。
有什麼交涉
他雲門立箇宗風。
須是有箇為人處。
어떤 문제를 제기하며 시중(示眾)하여 말하기를,
“십오일 이전은 여러분에게 묻지 않겠지만,
십오일 이후에 대해 한 마디씩 해 보라” 하였으니,
천 가지 차별이 끊겨서 범부와 성인으로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대신하여 “날마다 좋은 날이다”라고 하였는데,
 '십오일 이전'이라는
이 말로 이미 천 가지 차별을 좌단(坐斷)해버리고,
 '십오일 이후'라는
이 말로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렸으니,
이는 내일이 16일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건만,
후세 사람들은 오로지 말만을 쫓아 알음알이를 내니,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그 운문이 그런 종풍(宗風)을 세운데는
틀림없이 사람을 위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垂語了。卻自代云。
日日是好日。
此語通貫古今。
從前至後。一時坐斷。
山僧如此說話。
也是隨語生解。
他殺不如自殺。
纔作道理。墮坑落塹。
수어(垂語)하고서 스스로 대신하여
“날마다 좋은 날이다” 하였는데,
이 말은 고금(古今)을 관통하여
앞에서 뒤까지를 일시에 좌단해버린 것이다.
산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말을 쫓아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다.
남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느니만 못하니,
도리(道理)를 짓기만 하면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 
雲門一句中。三句俱備。
蓋是他家宗旨如此。
垂一句語。須要歸宗。
若不如此。只是杜撰。
此事無許多論說。
而未透者。卻要如此。
若透得。便見古人意旨。
看取雪竇打葛藤。
운문의 한 구 속에는 세 구[三句]를 구비하고 있는데,
대개 이것은 다른 가문의 종지(宗旨)에서도 그러하다.
한 구의 법어를 해도 반드시 근본에 귀결되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두찬(杜撰*)일 뿐이다.
이 일은 논설(論說)꺼리가 없는데도
투득하지 못한 자들은 그렇기를 거절하거니와,
투득한다면 문득 옛사람의 의지(意旨)를 볼 것이다.
설두스님이 갈등을 타파한 것을 살펴보자. 

*杜撰; 宋나라 두묵(杜默)은 율법에 맞지 않은 내용의 시를 많이 썼다는 데서
 「격에 맞지 않는 일, 또는 근거없는, 날조된, 허구를 조작하는 사람」을 「杜撰」이라 한다. 

 

 去卻一
   (七穿八穴。向什麼處去。
   放過一著)
 拈得七
   (拈不出。卻不放過)
  上下四維無等匹
   (何似生。上是天下是地。
   東南西北與四維。有什麼等匹。
   爭奈拄杖在我手裏)
 하나를 떼어내고,
   (칠천팔혈<七穿八穴*>이로구나. 어디로 가느냐?
   한 수 봐주겠다.)
 일곱을 달았으니,
   (달아놓지 못하면 봐주지 않겠다.)
  상하사유(上下四維)에 버금할 자가 없으리로다.
   (어째서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인가?
   동서남북, 사유<四維>에 무슨 짝이 있을 것이며,
   주장자가 내 손 안에 있음을 어찌하리오?)
 徐行踏斷流水聲
   (莫問腳跟下。難為體究。
   打入葛藤窟裏。去了也)
 縱觀寫出飛禽跡
   (眼裏亦無此消息野狐精見解。
   依前只在舊窠窟裏)
  草茸茸
   (腦後拔箭。是什麼消息。
   墮在平實處)
 煙羃羃
   (未出這窠窟。足下雲生)
  空生巖畔花狼籍
   (在什麼處。不唧?漢。勘破了也)
  彈指堪悲舜若多
   (四方八面盡法界。
   向舜若多鼻孔裏道將一句來。
   在什麼處)
 莫動著
   (前言何在。動著時如何)
 動著三十棒
   (自領出去。便打)
 천천히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끊어버리고,
   (발꿈치 밑을 묻지 말라. 체득하기도 어려운데.
    갈등굴 속으로 진입해 가버렸구나. )
 보이는 대로 나는 새의 자취를 그려내서,
   (눈 안에도 이 소식이 없거늘, 야호정<野狐精*>견해로
   여전히 낡은 소굴 안에 쳐박혀만 있구나.)
  풀이 우거지고[茸茸],
   (화살이 머리를 관통했구나. 이 무슨 소식인가?
   평실처<平實處*>에 떨어져 있도다.)
 연기로 자욱하며[羃羃],
   (그 소굴에서 못 빠져나오면 발 밑에서 구름이 생긴다.)
  수보리의 암반[空生巖畔*]이 쑥대밭이 된
   (어디에 있든지 둔한 놈임을 감파했다.)
  서글픈 순야다(舜若多*)에게 탄지(彈指*)하네.
   (사방팔면 온 법계에 어디에 있는지
   허공신의 콧구멍 속더러 말해보라 해라.
   어디에 있는지.)
 꼼짝하지 말라.
   (앞에 한 말은 어디 갔는가? 움직이면 어쩔텐가?)
 움직이면 30방(棒)이다.
   (자령출거<自領出去*>하라! ---후려치다.)

*七穿八穴; 禪林用語. 산산히 부숴진다는 뜻. 
自在하고 通達無礙함을 讚賞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七花八裂, 七縱八橫, 七通八達, 七顛八倒, 七支八節, 七零八落, 七凹八凸 등과 유사한 용어. 

*何似生; 作麼生. 如何. 何似. 

*平實處; 평이(平易)한 實在의 곳.
*野狐精; 원래 여우의 혼은 허깨비를 만들어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것을 지칭하지만
선림에서는 자칭 견성오도(見性悟道)했노라 하면서 남을 기만하는 자를 뜻한다.
*空生巖畔; 空生은 수보리의 별칭이요 巖畔은 좌선하는 곳이니 선을 닦는 자리.
*不唧?漢; 唧?는 민첩하다, 날렵하다는 뜻이니, 不唧?漢은 '둔한 놈'이다.
*舜若多(Śūnyatā); ①空性. 虛空之實體 또는 諸法의 空한 성품. ②虛空神.
*彈指; 拇指와 食指 두 손가락을 튕겨 소리내는 짓. 세 가지 뜻으로 쓰인다.
①許諾 ②歡喜 ③警告. 여기서는 '경고'의 뜻으로 쓰였다.
*自領出去; 「自領出頭」 중국 법정용어로 스스로 법정에 나가 죄상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雪竇頌古。偏能如此。
當頭以金剛王寶劍。揮一下了。
然後略露些風規。
雖然如此。畢竟無有二解。
去卻一拈得七。
人多作算數會道。
去卻一是十五日已前事。

雪竇驀頭下兩句言語印破了。

卻露出教人見。
去卻一拈得七。
설두의 송고(頌古)는 한결같이 이처럼
첫머리에 금강왕보검으로 휘둘러 한 번 내리친
연후에 대략 약간의 풍규(諷規;風規)를 드러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두 가지의 풀이는 없다.
“하나를 떼어내고 일곱을 달았다”를
사람들은 흔히 숫자로 헤아려 알고서
“하나를 떼어낸다는 말은
십오일 이전의 일이다”고들 하니,
설두는 머리에 올라타
양구(兩句)의 언어인(言語印)을 깨뜨려버리고
숨은 뜻을 노출시켜 사람들에게
 '하나를 떼어내고 일곱을 단다'를 보게 하였다. 
切忌向言句中作活計。
何故胡餅有什麼汁。
人多落在意識中。
須是向語句未生已前。會取始得。
大用現前。自然見得也。
所以釋迦老子成道後。
於摩竭提國。三七日中。
思惟如是事。
諸法寂滅相。
不可以言宣。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절대 언구(言句) 속에서 활계(活計)를 지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에 호떡에 국물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의식(意識) 가운데 떨어져 있는데,
모름지기 어구가 생기기 이전을 향해 알아가야 한다.
대용(大用)이 현전(現前)하면 자연히 보게 되리라.
그래서 석가(釋迦)노인이 성도(成道) 후에
마갈다국(摩竭提國)에서 21일 동안
이와 같은 일을 사유(思惟)하되,
"제법(諸法)의 적멸(寂滅)한 상(相)은
말로써 펼칠 수 없거늘 나는 차라리 설법하지 않고
빨리 열반에 들겠다." 하였다. 
到這裏覓箇開口處不得。
以方便力故。為五比丘說已。
至三百六十會。
說一代時教。只是方便。
所以脫珍御服。
著獘垢衣。不得已。
而向第二義門中淺近之處。
誘引諸子。
若教他向上全提。
盡大地無一箇半箇。
且道。作麼生是第一句。
이에 이르러서는 입을 열 곳을 찾아도 찾을 수 없으니,
방편력으로 다섯 비구[五比丘]에게 설하신 다음,
삼백육십 법회에 이르도록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설하셨으나 다만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좋은 어복(御服)을 벗으시고
헤지고 때 묻은 옷을 입으시고서, 부득이
제이의문(第二義門) 속 얕은 곳을 향해
제자들을 이끄셨던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향상문(向上門)을 온전히 제기하셨다면
온 대지에 (알아들을 사람이) 하나나 반도 없었을 것이다.
말해보라, 어떤 것이 제일구(第一句)인가? 
到這裏。雪竇露些意教人見。

爾但上不見有諸佛。
下不見有眾生。
外不見有山河大地。
內不見有見聞覺知。
如大死底人卻活相似。
長短好惡。打成一片。
一一拈來更無異見。
然後應用不失其宜。
方見他道去卻一拈得七。
上下四維無等匹。
若於此句透得。
直得上下四維無有等匹。
森羅萬象。草芥人畜。
著著全彰自己家風。
그런 지경에 이르기에 설두가 약간의 뜻을 노출시켜
사람들이 보게 한 것이다.
여러분은 다만 위로 부처가 있다고 보지 말고,
아래로 중생이 있다고 보지 말며,
밖으로 산하대지가 있다고 보지도 말고,
안으로 견문각지(見聞覺知)가 있다고 보지도 말아서,
마치 완전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모습처럼
장단(長短)과 호악(好惡)을 타성일편(打成一片*)하고,
낱낱이 끄집어내서 다시 다른 견(見)이 없게 한
연후에 그 마땅함을 잃지 않도록 응용하여야
비로소 그가 말한 '하나를 떼어내고 일곱을 다니,
상하사유에 같이 할 짝이 없다'를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이 구를 투득(透得)하면
곧 상하사유에 같이 할 짝이 없어서
삼라만상(森羅萬象)과 초개(草芥), 인축(人畜)이
그때 그때 자기의 가풍(家風)을 온전히 드러낼 것이라  

*放過一著; 一著은 바둑에서의 '한 수'.  放過는 '봐주다, 접어주다, 지나치다'
 '한 수 봐준다' 함은 자신이 처한 높은 경계를 상대에 맞춰 낮쳐주는 것을 말한다.
*第二義門; 向下門. 大悟의 境界에서 전환하여 학인의 迷惑한 경계에 순응하면서
妙用을 자재히 나타내 지도하는 방편문.
*葛藤; '칡넝쿨', ①번뇌, ②법문을 번거롭다고 배척하는 것, ③禪家의 일상의 말.
禪林에서는 문자나 어구가 칡넝쿨 얽히고 섥히듯 생각을 오가게 하는 것, 즉
공안 중의 난해한 어구, 또는 난해한 어구를 해석하고 설명한 말들을 갈등이라 한다.
*打成一片; 禪林用語. 한 덩어리로 융합시킨다[融合一體]는 뜻.
一切의 情量計較를 제거하여 천차만별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것.

所以道。
萬象之中獨露身。
惟人自肯乃方親。
昔年謬向途中覓。
今日看來火裏冰。
天上天下惟我獨尊。
人多逐末不求其本。
先得本正。
自然風行草偃。
水到渠成。
徐行踏斷流水聲。
徐徐行動時。
浩浩流水聲。也應踏斷。
縱觀寫出飛禽跡。
縱目一觀。
直饒是飛禽跡亦如寫出相似。
到這裏。鑊湯爐炭吹教滅。
劍樹刀山喝便摧。
不為難事。
그래서 이르기를(長慶慧稜禪師),
「만상(萬象) 가운데 홀로 드러난 몸이란
  오직 사람이 자신을 긍정해야 비로소 가까와지려니와,
  옛날에는 그르쳐 도중(向途)에서 찾았었는데,
  오늘에 살펴보니 불 속 얼음 같은 것이로다.」 하였다.
천상천하에 오로지 나 홀로 존귀하건만
사람들은 대개 말초(末梢)를 쫓고 근본을 구하지 않는다. 먼저 근본을 바르게 하면
자연히 풍행초언(風行草偃*)하고,
수도거성(水到渠成*)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끊는다' 하였는데,
천천히 천천히 걸을 때에는
콸콸 흐르는 물소리는 밟아 끊어야 한다.
 '보이는 대로 나는 새의 자취를 그려낸다'는 것은
눈으로 한 번 살펴서
넉넉히 나는 새의 자취도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이에 이르러서는 확탕로탄(鑊湯爐炭*)을 불어서 꺼뜨리고,
검수도산(劍樹刀山*)도 일할(喝)하여 꺾어버리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風行草偃; 「君子의 德인 바람[風]이 小人의 德인 풀[草] 위에 불면 필경 눕는다[偃]」.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水到渠成; '물이 흘러간 자리에 자연히 수로가 이루어진다'
 事情과 條件이 完備되면 자연히 成功하리니, 억지로 구하지 말라는 뜻.
*鑊湯爐炭; 확탕지옥 이글거리는 화로 안의 탄불.
*劍樹刀山; 도산지옥의 빼빽히 돋은 칼날 숲. 

雪竇到此。慈悲之故。
恐人坐在無事界中。
復道。草茸茸煙羃羃。
所以蓋覆卻直得草茸茸。
煙羃羃。
且道是什麼人境界。
喚作日日是好日得麼。
且喜沒交涉。
直得徐行踏斷流水聲也不是。
縱觀寫出飛禽跡也不是。
草茸茸也不是。煙羃羃也不是。
直饒總不恁麼。
正是空生巖畔花狼籍。
也須是轉過那邊始得。
설두는 이에 이르러 자비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런 일이 없는 경계 속에 앉을까 두려워
다시 “풀은 우거지고, 연기는 자욱하다”고 하였으니,
그래서 무명으로 뒤덮이면 곧 풀 우거지고,
연기 자욱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해보라, 이것은 어떤 사람의 경계인가?
 '날마다 좋은 날이다'고 해도 되겠는가?
잠시 웃어줄 뿐 아무런 연관이 없다.
천천히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끊어도 옳지 않고,
보이는 대로 나는 새의 자취를 그려내도 옳지 않으며,
풀이 우거져도 옳지 않고, 연기가 자욱해도 옳지 않다.
가사 모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바로 이것이 수보리의 암반 꽃으로 쑥대밭 되는 것이니,
반드시 그 쪽을 돌아보아야 한다.
豈不見。
須菩提巖中宴坐。
諸天雨花讚嘆。
尊者曰。空中雨花讚嘆。
復是何人
天曰。我是天帝釋。
尊者曰。汝何讚嘆。
天曰。我重尊者善說般若波羅蜜多。

尊者曰。我於般若。未嘗說一字。
汝云何讚歎。
天曰。尊者無說。我乃無聞。
無說無聞。是真般若。
又復動地雨花。
어찌 보지 못했는가?
수보리가 바위에 고요히 앉아 참선하는데,
천신들이 꽃비를 내려 찬탄하니,
존자가 “공중에서 꽃비를 내려 찬탄하는 이는
대체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천신이 “나는 천제석(天帝釋)입니다.” 하였다.
“당신께서는 어째서 찬탄하십니까?”
“나는 존자가 반야바라밀다를 잘 설명하신 것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야에 대해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는데,
당신은 어째서 찬탄하십니까?”
“존자께서는 설명이 없고, 나는 들은 것이 없어서
말함이 없고 들음이 없는 이것이 참된 반야입니다.”
그러자 또 다시 대지가 진동하며 꽃비가 내렸다.
雪竇亦曾有頌云。
  雨過雲凝曉半開。
  數峰如畫碧崔嵬。
  空生不解巖中坐。
  惹得天花動地來。
天帝既動地雨花。
到這裏。更藏去那裏。
설두도 일찍이 게송으로 말했다.
 「비 개이고 구름 엉킨 새벽이 반쯤 열리니
  몇몇 산봉우리들이 그림처럼 높푸르다.
  수보리는 바위에 앉은 줄도 모르는데
  요란히 하늘에서 꽃비 내리고 대지가 진동하였네. 」
천제석이 기왕 대지를 흔들고 꽃비를 내렸으니,
이에 이르러서는 다시 어느 속으로 숨어들겠는가? 
雪竇又道
  我恐逃之逃不得。
  大方之外皆充塞。
  忙忙擾擾知何窮。
  八面清風惹衣裓。
直得淨裸裸赤洒洒。
都無纖毫過患。
也未為極則。
且畢竟如何即是。
看取下文云。
彈指堪悲舜若多。
梵語舜若多。此云虛空神。
以虛空為體。無身覺觸。
得佛光照方現得身。
爾若得似舜若多神時。
雪竇正好彈指悲歎。
又云。莫動著。動著時如何。
白日青天。開眼瞌睡。
설두는 또 말했다.
 「나는 도망치려 해도 도망치지 못할까 두렵구나.
  온 대지 밖이 다 꽉 막혀 있으니,
  다급하고 혼란함이 언제 끝날지 알겠는가?
  팔면의 맑은 바람이 옷깃을 흐트리네. 」
설사 정라라적세세(淨裸裸赤洒洒*)하여
털끝만큼의 허물이 없다 해도
아직 극칙(極則)은 못된다.
그렇다면 필경 어찌해야 옳겠는가?
아래의 문장을 살펴보라.
 '서글픈 순야다에게 탄지(彈指)하네'
범어(梵語) 순야다(舜若多)는 허공신(虛空神)을 말하니,
허공으로 체(體)를 삼았기에 몸도 촉각(觸覺)도 없고,
부처님의 광명이 비춰져야 비로소 몸이 드러난다.
여러분이 만약 순야다신과 같아졌을 때
설두가 탄지(彈指)하며 비탄(悲歎)해야 딱 맞다.
또 '꼼짝하지 말라' 하였는데, 움직였을 때는 어떠한가?
맑은 대낮에 눈뜨고 조는 것이다. 

*淨裸裸赤灑灑;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모양새.

 

「15일」이라 하였다 해서 어떤 시기나 과거, 현재 따위의 개념에 매달리지 말라.

그런 구속을 떨쳐버리면 「하루 하루가 공부하기에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