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13칙 파릉은완리성설(巴陵銀椀裏盛雪)

碧雲 2021. 11. 5. 11:52

 

벽암록(碧巖錄) 제13칙 파릉은완리성설(巴陵銀椀裏盛雪) _파릉선사의 '은사발 속에 눈을 담다'

*銀椀裏盛雪; 禪宗公案名。雲門文偃의 法嗣인 岳州巴陵新開院顥鑒禪師의 三轉語 중 하나로
巴陵銀椀裏 또는 巴陵銀椀盛雪이라고도 한다.
하얀 은사발 속에 하얀 눈을 담으면 두 물건이 일체가 되어
같은 가운데 다름이 있고[同中有異], 다른 가운데 같음이 있거니와[異中有同],
巴陵은 이를 인용하여 중생과 부처가 一如의 真源이요,
평등이 곧 차별, 차별이 곧 평등임을 보여주었다.
提婆는 龍樹로부터 佛心宗을 傳承하여 赤幡 하에서 外道를 굴복시키고
西天의 15祖가 된 迦那提婆(Kānadeva) 尊者를 말한다.
*提婆宗은 龍樹의 中論과 十二門論, 그의 제자인 提婆의 百論, 이 三論에 의해 건립된
大乘 삼론종(三論宗)을 말하며, 禪宗에 반하여 辯才와 言句로 正法을 선양한 것으로 여긴다.
巴陵의 辯才가 無礙하여 提婆와 相通한 곳이 있기에 저 중이 "어떤 것이 제바종입니까?" 물었는데,
巴陵이 "銀椀裏盛雪"이라 답한 뜻은 서로 비슷하나 일치하지는 않다는 것이니,
巴陵의 宗風이 비록 提婆宗과 상통하나 자기 독창적인 곳이 있음을 표한 것이다. 

*巴陵三轉語; 〈人天眼目〉 卷二에
「"어떤 것이 提婆宗입니까?" 묻자, "은 사발 속에 눈을 담았다[銀盌裏盛雪]." 했고,
"어떤 것이 吹毛劍입니까?" 물으니, "산호 가지가지가 달을 괴었다[珊瑚枝枝撐著月]." 했으며[第100則],
"祖師의 의교(意教)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니,
"닭이 추우면 나무 위에 오르고, 오리가 추우면 물 속으로 들어간다[雞寒上機, 鴨寒下水]." 하였다.
(雲門이 이 말 을 듣고 "훗날 내가 죽거든 다만 이 三轉語로 나를 공양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하였다.)」 

 

垂示云。
雲凝大野。遍界不藏。
雪覆蘆花。難分朕跡。
冷處冷如冰雪。
細處細如米末。
深深處佛眼難窺。
密密處魔外莫測。
舉一明三即且止。
坐斷天下人舌頭。作麼生道。
且道是什麼人本分上事。
試舉看。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구름이 광야를 뒤덮었으되 온 세상이 감춰지지 않고,
눈이 갈대꽃을 덮었으니, 내 발자국을 분간하기 어렵다.
찬 곳은 빙설(冰雪)처럼 차고,
고운 곳은 쌀가루처럼 고우며,
깊고 깊은 곳은 불안(佛眼)으로도 엿보기 어렵고,
비밀하고 비밀한 곳은 마군이나 외도가 측량하지 못한다.
하나를 들춰 셋을 밝히는 것은 그만 두더라도
천하인의 혀끝을 좌단(坐斷)했다고 어째서 말하는 것일까?
자, 말해보라. 이것은 누구의 본분사[分上事*]인가?
예를 들테니 살펴보라. 

*遍界不藏; 森羅萬象 틈에 본래대로 存立한다는 뜻.
*分上事; 本分上事, 本分事. 本分田地, 本地風光, 自己本分, 本來面目. 

 

 【一三】舉  【제13칙】 파릉 은완리성설(巴陵 銀椀裏盛雪)
   僧問巴陵。
   如何是提婆宗
   (白馬入蘆花。
   道什麼點)
   巴陵云。銀碗裏盛雪
   (塞斷爾咽喉。
   七花八裂)。
   어떤 스님이 파릉(巴陵) 선사에게
   "어떤 것이 제바종(提婆宗*)입니까?" 여쭙자,
   (백마가 갈대꽃으로 들어간 것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점검했다.)
   파릉은 "은 사발 속에 눈을 담았다[銀碗裏盛雪]." 하였다.
   (그대들의 요새(要塞;咽喉)를 차단하는
   칠화팔렬(七花八裂*)이다.)。

*白馬入蘆花; 禪林用語。흰 말이 하얀 갈대꽃 속에 들어가면 분별이 어렵다.
이는 彼此의 思量分別을 초월한 경계에 비유하는 말이다.
*七花八裂; 七縱八橫, 七穿八穴, 七通八達, 七顛八倒, 七凹八凸과 같은 뜻으로
 '自在하여 通達無礙한 경지'를 칭송하여 쓰는 말이다.  

 

這箇公案。人多錯會道。
此是外道宗。有什麼交涉。
第十五祖。提婆尊者。亦是外道中一數。
因見第十四祖。龍樹尊者。
以針投缽。龍樹深器之。
傳佛心宗。繼為第十五祖。
이 공안은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서
이것은 외도종(外道宗)이다고 하나 무슨 교섭이 있겠는가?
제15조 제바(提婆)존자도 외도 중 하나였으나
제14조 용수(龍樹)존자를 만나
발우에 바늘을 던지니, 용수가 큰 그릇으로 여겨
불심종(佛心宗)을 전하여 제15조로 삼았다.

*以針投缽; 公案名. 〈전등록〉 권2, 第十五祖迦那提婆 章에
「용수존자를 뵈려 문에 이르자, 용수가 智人임을 알고 미리 시자를 시켜
제바가 앉을 자리에 물을 가득 담은 발우를 가져다 놓게 하였는데,
제바가 그 발우를 보더니 바늘을 던져 넣고 감으로써 쾌히 계합(契合)하였다.
(後謁龍樹大士將及門。龍樹知是智人。先遣侍者。
以滿缽水置於坐前。尊者睹之即以一鍼投之而進。欣然契會。)」고 하였다.
*佛心宗; 禪宗의 別稱。禪宗은 不立文字하고 不依經典하여
佛의 心印을 곧바로 傳하는 것으로 宗旨를 삼으니, 故로 佛心宗이라 稱하기도 한다.
楞伽經의 「부처님 말씀하신 '마음으로 종지(宗旨)를 삼는다[佛語心為宗]'」에서 유래한 말이다. 

楞伽經云。
佛語心為宗。
無門為法門。
馬祖云。凡有言句。是提婆宗。
只以此箇為主。
諸人盡是衲僧門下客。
還曾體究得提婆宗麼。
若體究得。
西天九十六種外道。被汝一時降伏。
若體究不得。
未免著返披袈裟去在。
且道是作麼生。
若道言句是。也沒交涉。
若道言句不是。也沒交涉。
且道馬大師意在什麼處。
後來雲門道。
馬大師好言語。只是無人問。
《능가경(楞伽經)》에서는
“부처님께서 마음으로 종(宗)을 삼고,
문 없는 것으로 법문(法門)을 삼으라 하셨다.” 하였고,
마조는 “무릇 언구(言句)가 있으면 제바종이다." 하였으니,
다만 이로써 주체를 삼아야 한다.
여러분은 모두 납승의 문하객(門下客)이거니와
제바종을 체구(體究*)해 얻은 적이 있는가?
만약 체구하여 얻었다면
서천(西天)의 96종 외도가 그대에게 일시에 항복당하겠지만,
체구하여 얻지 못했다면
가사(袈裟)를 벗고 쫓겨나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말해보라. 어째서이겠는가?
언구(言句)가 옳다고 해도 관계가 없고,
언구가 옳지 않다고 해도 관계가 없어서이다.
자, 말해보라. 마대사(馬大師)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후에 와서 운문(雲門)이 말했다.
"마대사가 말 잘했는데, 다만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다." 

*體究; 자세히 고찰하고 연구하다.
*返披袈裟; '입은 가사(袈裟)를 반환하다', 즉 '승적(僧籍)을 떠난다'는 뜻이니 절에서 쫓겨나는 것을 말한다. 

有僧便問。如何是提婆宗。
門云。九十六種。汝是最下一種。
昔有僧辭大隋。
隋云。什麼處去。
僧云。禮拜普賢去。
大隋豎起拂子云。
文殊普賢盡在這裏。
僧畫一圓相以手托呈師。
又拋向背後。隋云。
侍者將一貼茶來。與這僧去。
雲門別云。
西天斬頭截臂。
這裏自領出去。
又云。赤旛在我手裏。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제바종입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96 종류인데, 네가 가장 낮은 종류다." 하였다.
과거에 어느 스님이 대수(大隋)에게 작별인사를 하니,
대수가 "어디로 가려느냐?" 하자,
그 스님이 "보현보살께 예배드리러 갑니다." 하는지라
대수가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서
"문수 보현이 다 그 속에 있다." 하니,
그 스님이 일원상(一圓相*)을 그려서 손으로 드리려다가
다시 뒤로 던져버렸다. 대수가 말했다.
"시자야! 차 한 잔 가져다 이 스님에게 드려라."
운문(雲門)이 별도로 평하기를,
"서천(西天)에서는 머리를 베이고 팔이 잘릴 일이지만
여기서는 자진해서 나가게 하였구나." 하고서,
다시 "적번(赤旛*)이 내 손 안에 있다."고 하였다. 

*一圓相; 선종에서 완전한 깨달음이나 마음의 본래 모습을 표상하는 동그라미.
*赤旛; 赤幡. 赤色 깃발. 〈祖庭事苑〉에 의하면 古代 印度에서 佛弟子와 外道 간에 論議를 한 뒤에
勝利한 쪽은 적색 깃발을 높이 세워 개가를 울렸고, 진 쪽은 斬首截臂로써 어리석음을 사과했다고 한다.  

西天論議勝者手執赤旛。

負墮者返披袈裟。從偏門出入。
西天欲論議。須得奉王敕。
於大寺中。聲鐘擊鼓。然後論議。
於是外道於僧寺中。
封禁鐘鼓。為之沙汰。
時迦那提婆尊者。知佛法有難。
遂運神通。登樓撞鐘。
欲擯外道。外道遂問。
樓上聲鍾者誰。
提婆云。天。
外道云。天是誰。
婆云。我。
外道云。我是誰。
婆云。我是爾。
外道云。爾是誰。
婆云。爾是狗。
外道云。狗是誰。
婆云。狗是爾。
如是七返。外道自知負墮。
伏義遂自開門。
서천(西天)에서는 논의(論議)하여 이긴 자는
손에 붉은 깃발[赤旛]을 들었고,
져서 떨어진 자는 가사를 벗겨 쪽문으로 다니게 하였다.
서천에서는 논의하려면 모름지기 왕의 칙명을 받들어
큰 절에서 종 치고 북을 울린 뒤에 논의했는데,
이에 외도들이 승가의 사찰에서 
종과 북을 치지 못하게 한 것을 사태(沙汰*)라 하거니와, 
그때 가나제바존자가 법란(法難)이 있음을 알고서
신통을 운용하여 종루(鐘樓)로 올라가 종을 쳐
외도를 배척하고자 하니, 외도가 이윽고 물었다.
"누상(樓上)에서 종치는 자가 누구냐?"
"하늘[天]이다."
"하늘이 누구냐?"
"나다"
"나가 누구냐?"
"내가 너다."
"(그) 너는 누구냐?"
"너는 개다."
"개는 누구냐?"
"개가 너다."
이렇게 일곱 번을 거듭하자 외도가 스스로 졌음을 알고,
굴복의 뜻으로 마침내 문을 열어주었다. 

*沙汰; ①쌀에서 돌을 골라내는 석발(石拔)의 뜻에서 변천된 '선악을 간별하다'. '도태시키다'. 
②事理를 議論하여 그 是非를 정하고 裁斷한다는 뜻. 
通常 官府에서 僧尼의 善惡을 가려 악한 승니를 환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魏, 晉, 南北朝 때 僧尼의 수를 억제하고자 많은 승니를 환속시켰는데, 이를 「沙汰僧尼」라 한다.
③朝廷의 命令이나 官府의 指令. 예로 會昌法難. 

提婆於是從樓上持赤旛下來。
外道云。汝何不後。
婆云。汝何不前。
外道云。汝是賤人。
婆云。汝是良人。
如是展轉酬問。
提婆折以無礙之辯。
由是歸伏。
時提婆尊者。手持赤旛。
義墮者旛下立。
外道皆斬首謝過。
時提婆止之。
但化令削髮入道。
於是提婆宗大興。
雪竇後用此事而頌之。
巴陵眾中謂之鑒多口。
常縫坐具行腳。
深得他雲門腳跟下大事。
所以奇特。
이에 제바가 누상에서 적번을 들고 내려오니,
외도가 말했다. “너는 왜 뒤따르지 않느냐?”
“그대는 왜 앞서지 못하는가?”
“너는 천한 사람이다.”
“그대는 귀한 사람이다.”
이렇게 답하고 묻기를 전전(展轉)하며
제바가 무애지변(無礙之辯)으로 꺾어버리니
이를 말미암아 귀복(歸伏)하였다.
그때 제바존자는 손에 적번을 쥐었고
논의에서 진 자는 깃발 아래 섰는데,
외도들이 모두 목을 베어 사과하려 하자,
이때 제바가 제지하고
다만 교화하여 머리를 깎고 불도에 들어오게 하니,
이에 제바종이 크게 흥성하였는지라
설두가 후에 이 일을 가지고 송(頌)한 것이다. 
파릉을 대중 가운데서는 감다구(鑑多口*)라 하였고,
늘 좌구를 꿰매고 행각하여
저 운문의 본분대사(本分大事)를 깊이 체득했으니,
그래서 기특(奇特)하다. 

*鑒多口; 鑒은 巴陵의 이름인 호감(顥鑒)의 鑒, 多口는 '말이 많다'는 것이니, 「말 많은 호감」.
*腳跟下大事; 腳跟大事. 本分大事. 腳跟點地. 발꿈치 밑 大事란 '당면한 가장 긴요하고 절실한 일',
즉 '本來面目을 徹見하는 本分大事'를 말한다. 

後出世法嗣雲門。
先住岳州巴陵。
更不作法嗣書。
只將三轉語上雲門。
如何是道。
明眼人落井。
如何是吹毛劍。
珊瑚枝枝撐著月。
如何是提婆宗。
銀碗裏盛雪。
雲門云。
他日老僧忌辰只舉此三轉語。
報恩足矣。
自後果不作忌辰齋。
依雲門之囑。只舉此三轉語。
후에 세상에 나와 운문의 법을 승사(承嗣)하였으나
그 전에 악주(岳州) 파릉(巴陵)에 있을 때는
법을 승사할만 한 어떤 글을 쓰지 않았고,
단지 삼전어(三轉語)만을 운문에게 올렸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묻자,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빠졌다.” 하였고,
“어떤 것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물으니,
"산호 가지가지마다 달이 맺혀 있다.” 하였으며,
“어떤 것이 제바종입니까?"는 물음에
"은 사발 속에 눈을 담았다.”고 하였으니,
운문이 말했다.
"다음에 노승의 제삿날 이 삼전어(三轉語)만 들춰서
보은(報恩)하는 것으로 족하리라."
그 결과로 말미암아 제사를 올리지 않고
운문의 당부에 따라 이 삼전어만을 바쳤다. 
然諸方答此話。
多就事上答。
唯有巴陵恁麼道。
極是孤峻。不妨難會。
亦不露些子鋒鋩。
八面受敵。
著著有出身之路。
有陷虎之機。
脫人情見。
若論一色邊事。
到這裏須是自家透脫了。
卻須是遇人始得。
所以道。道吾舞笏同人會。
石鞏彎弓作者諳。
此理若無師印授。
擬將何法語玄談。
雪竇隨後拈提為人。
所以頌出。
그러나 제방(諸方)은 이 질문에 답하기를
대개가 그 사실에 의거하여 답을 하는데,
오로지 파릉만이 그렇게 말했으니,
극히 고준(孤峻)하고 난해하여 마지 않거니와,
또한 조그마한 칼끝[鋒鋩]도 드러내지 않았다.
팔면(八面)의 적을 상대하여
한 수 한 수마다 몸 빠져나갈 길이 있고,
범을 함정에 빠뜨릴 기틀이 있어서
사람들의 정견(情見)을 벗겨주었다.
만일 일색변(一色邊*)의 일을 논하려면
이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투탈(透脫)하고서
마땅히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이라,
그래서 '도오(道吾*)가 홀(笏*) 들고 춤춘 것은 동인(同人)이 알고,
석공(石鞏*)이 활을 당긴 일은 작자(作者)가 안다'고 하였다.
이 이치를 스승이 전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방법으로 현담(玄談)을 얘기하겠는가?
설두가 뒤쫓아 염제(拈提;拈古)하여 사람을 위했기에
그래서 송출(頌出)하였다. 

*一色邊; 一色은 純一, 絕對의 뜻. 。禪林에서는 差別이나 相對의 觀念을 超越한 平等世界,
또는 清淨한 境界를 形容하는 말로 쓰인다.
*道吾舞笏同人會 石鞏彎弓作者諳; 〈傳燈錄〉29 雲頂山德敷禪師의 詩10首 中 「古今大意」에 나오는 말이다.

 

*道吾; 〈五燈會元〉 卷第四 襄州關南道吾和尚(關南常禪師法嗣)章에
「어느 중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가 무엇입니까?" 여쭙자,
간(簡;笏)으로 읍(揖)하면서 "예!" 하였고, 어떤 때는 목검을 어께에 매고 춤을 추기도 했다.
(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師以簡揖曰。喏。有時執木劒。橫肩上作舞。)」 하였다.
*笏; 원래는 대신들이 천자를 뵐 때 손에 메모용으로 들었던 나무 또는 대나무로 된 판(版)이지만,
선림에서는 師家에서 學人을 지도할 때 쓰는 길이 38센치 남짓으로 사람의 등뼈처럼 생긴 것을 말하며,
이 홀을 쳐서 구절의 뜻을 강조하기도 하고, 주장자처럼 학인을 때려
망념이나 집착을 버리게 하는 용도로 쓰였다. 

 

*石鞏; 〈景德傳燈錄〉 卷第六 馬祖法嗣 撫州石鞏慧藏禪師 章에
「석공혜장(石鞏慧藏)선사는 본래 사냥으로 업을 삼으면서 사문을 미워했는데,
사슴떼를 쫓아 마조의 암자 앞을 지나다가 마조를 대하자 혜장(慧藏)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사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사냥꾼입니다."
"활을 쏠 줄 아는가?" "쏘고 쏩니다."
"화살 하나로 몇마리를 맞추는가?" "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맞춥니다."
"당신은 활 쏠 줄 모르는 것이다."
"화상께서는 쏠 줄 아십니까?" "안다."
"화상께서는 화살 하나로 몇마리를 맞추십니까?"
"화살 하나로 한 무리를 맞춘다."
"피차에 목숨 있는 것인데, 뭐하러 한 무리나 쏩니까?"
"당신이 기왕 그리(피차에 목숨이 있음을) 알면서 어째서 자기 자신은 쏘지 않는가?"
"나 자신도 쏘라고 한다면 쏠 데가 없겠습니다."
마조가 "이 놈의 광겁(曠劫)에 걸친 무명과 번뇌가 오늘 담박에 쉬었구나." 하시니,
혜장이 그자리에서 활과 화살을 버리고 스스로 제 머리를 깎고서 마조께 출가하였다.」고 하였다. 

 

 老新開
   (千兵易得。一將難求。
   多口阿師)
 端的別
   (是什麼端的。頂門上一著。
   夢見也未)
 解道銀碗裏盛雪
   (蝦跳不出斗。
   兩重公案。多少人喪身失命)
  九十六箇應自知
   (兼身在內。闍黎還知麼。
   一坑埋卻)
  不知卻問天邊月
   (遠之遠矣。自領出去。望空啟告)
 提婆宗。提婆宗
   (道什麼。山僧在這裏。
   滿口含霜)
 赤旛之下起清風
   (百雜碎。打云。已著了也。
   爾且去斬頭截臂來。
   與爾道一句)
 신개(新開) 늙은이는
   (병사 천 명은 쉽게 얻어도 장수 하나 구하기는 어렵다.
   다구아사<多口阿師*>야!)
 단적(端的)으로 다르구나.
   (이것이 무슨 단적이냐? 머리 꼭대기에 둔 한 수는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은완리성설(銀碗裏盛雪)이라는 말로 풀어주었으니,
   (잡힌 새우 됫박을 뛰어넘지 못한다.
   양중공안이라 많고 적은 사람이 상신실명한다.)
  96종 외도는 스스로 알아야 하거니와
   (그대의 몸도 그 안에 있음을 선생<闍黎>은 아는가?
   일갱매각<一坑埋卻*>하시오.)
  모르겠거든 하늘의 달[天邊月]에게 묻거라.
   (멀고도 먼데 자진해서 가라니, 허공에다 고하는 격이다.)
 제바종, 제바종이
   (무슨 말인가? 산승도 그 속에 있으니
   입 있어도 말 못하겠다<滿口含霜*>.)
 적번(赤旛) 아래서 청풍(清風)을 일으킨다네.
   (산산히 부수어버려라. 후려치고서 "이미 착수했으니,
   그대가 머리 베고 팔 자르고 오거든<패배를 인정하면>
   한 구절 말해주겠다."고 했다.)

*多口阿師; 말 많은 사람.
*一坑埋卻; 禪林用語.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다.
즉 언어와 변론상의 知見을 철저히 박탈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滿口含霜; 입 안 가득 서리를 머금다. 입이 꽁꽁 얼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음을 뜻한다.
*百雜碎; 물건을 산산히 부수어버리다.

 

老新開。新開乃院名也。
端的別。雪竇讚歎有分。
且道什麼處是別處。
一切語言。皆是佛法。
山僧如此說話。成什麼道理去。
雪竇微露些子意道。
只是端的別。
後面打開云。
解道銀碗裏盛雪。
更與爾下箇注腳。
九十六箇應自知。負墮始得。
爾若不知。問取天邊月。
古人曾答此話云。
問取天邊月雪竇頌了。
末後須有活路。
有獅子返擲之句。
更提起與爾道。提婆宗提婆宗。
赤旛之下起清風。
巴陵道。銀碗裏盛雪。
為什麼雪竇卻道赤旛之下起清風。
還知雪竇殺人不用刀麼。
노신개(老新開)의 신개(新開)는 사원 이름이고,
단적별(端的別)은 설두의 유분(有分*)을 찬탄한 것이다.
말해보라. 어느 곳이 다른 곳인가?
모든 말이 다 불법이어늘
산승(山僧)의 이런 얘기가 무슨 도리(道理)를 이루겠는가?
설두는 조그마한 의도를 슬쩍 드러내
다만 “단적으로 다르다[端的別]”고 하고,
그 뒤에 타개하여 이르기를,
“은 사발 속에 눈을 담았다는 말로 풀어주었다." 하고서
다시 그대들에게 주석을 달아
“96종 외도는 부타(負墮)한 줄을 스스로 알아야 하거니와,
만일 모르거든 천변월(天邊月)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고인이 일찍이 이 얘기에 답하여 말한
 '천변월(天邊月)에게 물어보라'로 설두는 송을 마치고서
끝부분에 어떤 활로(活路)가 있고,
사자반척(獅子返擲*)의 구가 있어야 하겠기에
다시 그대들에게 제기(提起)하여 "제바종, 제바종!
적번(赤旛) 밑에 청풍(清風)을 일으키네."라고 하였다.
파릉(巴陵)은 "은 사발 속에 눈을 담았다" 하였는데,
어째서 설두는 도리어 "적번 아래 청풍 일으킨다" 하였을까?
설두가 칼 쓰지 않고서도 살인한다는 것을 알겠는가? 

*有分; 分은 분수, 지분, 자격이니, ~할 자격이 있음.
*獅子返擲; 禪宗에는 「獅子頻呻」, 「獅子返擲」, 「獅子距地」의 三句가 있다 하였는데[大陽警玄禪師],
그 중 「獅子返擲」은 地水火風과 色聲相味가 다 本分이 되고 다 菩提인지라
그래서 齊己는 「情을 떠난 군자적 미덕[芳草]이 두루 무성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밝혔다.
《五燈會元》14卷 郢州大陽山警玄禪師(948~1027)章에
「참선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平常無生句'와 '妙玄無私句', '體明無盡句'의 세 句에 밝아야 한다.
第一句는 一路로 通하고, 第二句는 賓主가 없으며, 第三句는 겸비(兼備)해 가는 것이다.
一句는 師子嚬呻을 얻음이요, 二句는 師子返擲을 얻음이며, 三句는 師子踞地를 얻음이다.
종(縱)은 周徧十方이요, 금(擒)은 一時坐斷이거니와,
이럴 때를 당하여는 어찌해야 어떤 소식을 얻음에 통하겠는가?
만일 통하지 못했거든 아침 일찍 와서 초왕에게 헌상하여[獻楚王*] 살피거라.」 하였다.
(*獻楚王; 「路人獻雉」라는 古事를 말한다.
산꿩을 파는 초나라 사람에게 길가던 사람[路人]이 "무슨 새입니까?" 하고 묻자,
슬쩍 속여 "봉황입니다." 하였다.
"봉황을 듣기만 했는데, 지금 보는군요. 당신이 파는 것입니까?" 하니, "그렇소." 하기에
금 열 냥에 팔아라 하였으나 주지 않고 배를 요구하는지라,
20냥을 주고 사서 초왕(楚王)에게 헌상하려 했는데, 가던 도중에 새가 죽어버렸다.
그 길가던 사람은 금은 아깝게 여기지 않고 오로지 초왕께 드리지 못한 것을 한탄하니,
사람들에게 진짜 귀한 봉황을 헌상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침내 초왕이 그 말을 듣고 가상히 여겨 새를 산 값보다 많은 열 배의 금으로 후사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