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5칙 운문선사의 도일설(倒一說) |
垂示云。 殺人刀活人劍。 乃上古之風規。 是今時之樞要。 且道。 如今那箇是。殺人刀活人劍。 試舉看。 |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은 옛날의 풍규(風規)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추요(樞要)이기도 하다. 자, 말해보라. 오늘날 어떤 것이 살인도 활인검이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一五】舉 | 【제15칙】 운문선사의 도일설(倒一說) |
僧問雲門。 不是目前機。 亦非目前事時如何 (?跳作什麼。倒退三千里) 門云。倒一說 (平出。 款出囚人口。 也不得放過。荒草裏橫身)。 |
그 스님(14칙에서의)이 운문에게 물었다. "목전기(目前機*)도 아니고, 목전사(目前事*)도 아닐 때는 어찌 됩니까?" (뛰어서 무엇 하겠느냐, 도퇴삼천리<倒退三千里>다.) "도일설(倒一說*)이니라." (평상平常을 초출했구나<平出*>. 자복(自服;款)이 죄수 입에서 나왔으니, 봐줄 수 없다. 잡초 속으로 떠밀다니.)。 |
*目前機; 설법할 상대. 機는 根機나 機緣 또는 教法應機.
*目前事; 설법할 인연이나 상황. 事는 인연에서 생긴 일체 유위법(有為法)
'목전기도 목전사도 아닐 때'는 '마주하여 한 말씀 하실[對一說] 상대도 상황도 아닐 때'.
*倒一說; '그 한 말씀이 꺼꾸러진다' 즉 一字不說이나 一切皆空의 의미.
*平出; 唐代 律令으로 황제나 황후의 이름을 쓸 때는 평상시의 서식에서 벗어나서
문장의 줄을 바꿔 윗줄에 쓰게 하였으니, 이를 평출이라 한다.
*荒草裏橫身; '잡초 속에 몸을 가로 눕혔다'는 것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속에 빠뜨렸다는 뜻.
這僧不妨是箇作家。 解恁麼問。 頭邊謂之請益。 此是呈解問。 亦謂之藏鋒問。 若不是雲門。 也不奈他何。 雲門有這般手腳。 他既將問來。不得已而應之。 何故作家宗師。如明鏡臨臺。 胡來胡現漢來漢現。 |
이 스님은 어쩔 수 없는 작가인지라 그렇게 물을 줄 안 것이다. 말머리에 청익(請益)합네 하였으나 이것은 (자신의) 견해를 담아 올린 질문이며, 또한 예봉(銳鋒)이 숨겨져졌다 할 질문이었으니, 만일 운문이 아니었다면 어찌 해볼 수 없었을 것이지만 운문은 이런 수완이 있었는지라 그가 기왕 물어오니 부득이 응해 주었다. 어째서 작가종사(作家宗師)들은 거울을 걸어놓은 것처럼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를 보이고, 한(漢)족이 오면 한족을 보여주겠는가? |
古人道。 欲得親切。莫將問來問。 何故。問在答處。 答在問處。 從上諸聖。 何曾有一法與人。 那裏有禪道與爾來。 爾若不造地獄業。 自然不招地獄果。 爾若不造天堂因。 自然不受天堂果。 一切業緣。皆是自作自受。 |
고인은 말하기를, '친절(親切)을 얻으려거든 질문을 가져다 묻지 말라. 왜냐하면, 답할 곳[答處]에 질문이 있고, 질문할 곳[問處]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위로부터의 모든 성인들이 언제 한 법이라도 사람들에게 준 적이 있으며, 어느 속에 선도(禪道)가 있어 그대들에게 주었던가? 그대들이 지옥업(地獄業)을 짓지 않는다면 자연히 지옥과(地獄果)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요, 천당인(天堂因)을 짓지 않는다면 자연히 천당과(天堂果)를 받지 않으려니와, 일체의 업연(業緣)은 다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이다. |
〈五燈會元〉卷第9 溈仰宗僧 郢州芭蕉山繼徹禪師(南嶽下七世 芭蕉清禪師法嗣)章에
「눈이 깨끗하면 허공꽃[空花]이 없으려니와,
물이 깊으면 배가 높고 진흙이 많으면 불상이 커지는 법이니,
질문을 가져오지 마라. 나는 답하지 않겠다.
아느냐? 답한 곳에 질문이 있고 물은 곳에 답이 있는 것이다.」고 하였고,
〈五燈會元〉卷第11 臨濟宗僧 汝州首山省念禪師(南嶽下八世 風穴沼禪師法嗣)章에는
「"어떤 것이 범음상(梵音相)입니까?"하고 여쭙자,
선사는 "당나귀가 울고 개가 짖는구나." 하시더니,
"친절을 요하거든 질문으로 질문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아느냐? 답한 곳에 질문이 있고 물은 곳에 답이 있는 것이다."」 하였다.
古人分明向爾道。 若論此事。不在言句上。 若在言句上。 三乘十二分教。豈是無言句。 更何用祖師西來。 前頭道對一說。 這裏卻道倒一說。 只爭一字。 為什麼卻有千差萬別。 且道。聱訛在什麼處。 所以道。法隨法行。 法幢隨處建立。 |
고인(古人;雲門)이 분명히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이 일을 논하지면 언구(言句) 상에 있지 않다. 만약 언구 상에 있다면 삼승의 12부 경전이 어찌 언구가 없을 것이며, 또 무엇하러 조사께서 서래(西來)하셨겠는가?" 하였다. 앞머리[14칙]에서 「대일설(對一說)」이라 하고 여기서는 「도일설(倒一說)」이라 했으니, 다만 한 자(字)를 다투는데, 어째서 천만 가지로 다른가? 말해보라. 오와(聱訛;淆訛)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말하기를, '법 따라 법을 행하여[法隨法行*], 법의 기치[法幢]를 곳을 따라 세운다'고 하였다. |
*法隨法行; 〈瑜伽師地論〉에 「구하는 대로 받는 법[如所求如所受法]이니,
보살은 신어의(身語意) 업이 전도되는 일이 없게 바른 사유[正思]로
바르게 닦아야[正修]한다」고 하였다.
不是目前機。 亦非目前事時如何。 只消當頭一點。 若是具眼漢。 一點也謾他不得 問處既聱訛。答處須得恁麼。 其實雲門騎賊馬趕賊。 有者錯會道。 本是主家話。卻是賓家道。 所以雲門云倒一說。 有什麼死急。 |
'목전의 기(機)도 아니고 목전의 사(事)도 아닐 때는 어찌 합니까?' 하니, 다만 곧바로 일점(一點*)으로 소화시켰으나 안목을 갖춘 자라면 그 일점(一點)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니와, 물음이 기왕 어긋났기에 답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기실은 운문이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은 것이건만 혹자는 잘못 알고서 '본래 주인이 할 말인데 꺼꾸로 객이 말한 것이라 그래서 운문이 뒤집힌 말[倒一說]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무슨 급사(急死)할 소리인가? |
這僧問得好。 不是目前機。 亦非目前事時如何。 雲門何不答他別語言。 卻只向他道倒一說。 雲門一時打破他底。 到這裏道倒一說。 也是好肉上剜瘡。 何故。 言跡之興白雲萬里。 異途之所由生也。 設使一時無言無句 露柱燈籠。 何曾有言句。還會麼。 若不會到這裏也 須是轉動始知落處。 |
이 스님이 잘 물었다. '목전의 기(機)도 아니고 목전의 사(事)도 아닐 때는 어찌 합니까?' 하였는데, 운문은 왜 다른 말로 답하지 않고 다만 그에게 도일설(倒一說)이라고만 했을까? 운문이 일시에 그의 저의(底意)를 타파(打破)하려는 속셈으로 도일설이라 말했으나 멀쩡한 살을 긁어 부스럼낸 꼴이다. 무엇 때문인가? 말의 자취가 흥하면 제멋대로 널리 퍼져서 이도(異途*)가 생겨날 빌미가 되기 때문이거니와, 설사 일시에 언구를 없앤다 한들 노주등롱(露柱燈籠*)에게야 언제 언구가 있은 적 있었던가? 알겠느냐? 이 속에 이를 줄 모르겠거든 반드시 전동(轉動)해야 비로소 낙처(落處)를 알 것이다. |
*一點; 경미한 접촉이나 提示. 가벼운 응대.
*異途; 異道.
*露柱燈籠; 노주는 법당 앞 양쪽에 선 둥근 기둥, 등롱은 승방에 켜는 등불의 일종.
瓦礫, 牆壁, 露柱, 燈籠 등은 無情, 非情한 것들이니, '無心의 경지'에 비유하는 말이다.
倒一說 (放不下。七花八裂。 須彌南畔。卷盡五千四十八) 分一節 (在爾邊在我邊。 半河南半河北。把手共行) 同死同生為君訣 (泥裏洗土塊。 著甚來由。放爾不得) |
도일설(倒一說)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산산히 흩어져 사바세계에 모두 5,048권이나 있거늘.) 분일절(分一節*)이라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으며, 반은 하남, 반은 하북으로 서로 손잡고 함께 간다.) 동사동생(同死同生*)하는 구결(口訣)이거니와, (진흙탕 속에서 흙덩이 씻는 것이라니, 무슨 이유인지 대라. 봐주지 못하겠다.) |
*5,048권; 唐 智昇에 의해 開元18年(730)에 출간된
〈開元釋教錄〉의 기록에 의거한 經律論과 諸師撰述의 卷數.
*分一節; 쪼개진 한 마디, 둘로 나눈 한 쪽. 對一說과 倒一說은 有無의 兩邊이라는 뜻.
*同死同生; '같이 죽고 같이 산다'는 것은 양변이란 어느 한 쪽 개념이 없어지면
다른 한 쪽 개념도 사라지기 때문에 對一說과 倒一說은 同死同生의 관계라는 것이다.
(원오는 외국어는 커녕 자국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八萬四千非鳳毛 (羽毛相似。太殺減人威光。 漆桶如麻如粟) 三十三人入虎穴 (唯我能知。一將難求。 野狐精一隊) 別別 (有什麼別處。 少賣弄。一任?跳) 擾擾匆匆水裏月 (青天白日。迷頭認影。 著忙作什麼) |
8만 4천이 봉모(鳳毛*)가 아니라서 (깃털과 비슷하다고 몹시 사람의 위광을 깎아내렸다. 칠통<漆桶>들이 무수히 많았다네.) 33인이 호랑이 굴로 들어갔으나, (나만은 안다. 장수 하나 구하기 어려우니 야호정<野狐精> 한 부대 보낸 것을...) 별의 별 가지[別別;形形色色]인지라 (유별한 곳이 어디 있다는 것이냐? 조금 뽐냈지만 마음껏 뛰게 두겠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수중월(水中月)이라네. (청천백일에 갈피를 못잡고 해메는구나. 허둥대서 무엇 하겠느냐?) |
봉모(鳳毛)가 못되는 범부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설흔세 분의 역대조사들이 이 땅에 오셨으나
별의 별 가지요, 형형색색이라서
잡으려 애써도 잡히지 않는 물 속의 달그림자와 같다네.
*鳳毛; 謝鳳의 털, 鳳凰의 깃털. 선대의 명성을 이을만 한 俊秀한 文采를 칭송하는 표현.
*迷頭認影;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환상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비유.
《首楞嚴經》卷4에서의
「室羅城 演若達多가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보니 눈과 눈썹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귀신이라고 하면서 놀라 도망친 일」을 말한다.
雪竇亦不妨作家。 於一句下。便道分一節。 分明放過一著。 與他把手共行。 他從來有放行手段。 敢與爾入泥入水。 同死同生。 所以雪竇恁麼頌。 其實無他。 只要與爾解粘去縛。 抽釘拔楔。 如今卻因言句。轉生情解。 只如巖頭道雪峰雖與我同條生。 不與我同條死。 若非全機透脫得大自在底人。 焉能與爾同死同生。 何故。 為他無許多得失是非滲漏處。 |
설두 또한 어쩔 수 없는 작가인지라 한마디로 곧 분일절(分一節*)이라고 하였으니, 분명 한 수를 접어주고 그와 더불어 손잡고 함께 간 것이거니와, 그에게 이미 방행(放行*)의 솜씨가 있었는지라 용감히 여러분과 더불어 입니입수(入泥入水*), 동사동생(同死同生)하고자 하여 그래서 설두가 그렇게 송(頌)했는데, 기실은 다른 뜻이 아니라 다만 너희에게 끈끈히 달라붙은 것을 떼어내고 박힌 못과 쐐기를 뽑아주려는 한 것이건만 요즘 사람들은 언구로 인해 정해(情解*)를 굴려 내서 마치 암두(巖頭*)가 '설봉은 생(生)은 같이해 줄지라도 사(死)를 같이해 주지 못했다'고 하듯이 하는데, 전기투탈(全機透脫*)하여 대자재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너희와 더불어 생사를 같이해 줄 수 있었겠으며, 어째서였겠는가? 그에게 허다한 득실과 시비, 삼루처(滲漏處*)가 없어서이다. |
*放行; 「把住·放行」은 禪門에서 學人을 이끄는 지도방법으로,
파주는 통제와 강요의 방식을, 방행은 자율과 친절의 방식을 말한다.
*入泥入水; '진창에도 들어가고 물 속에도 들어가고'. 즉 同苦同樂의 뜻.
*情解; 흔히 '알음알이'라고 하나, 엄밀하게는 당시에 근(根)을 情이라 하였다 하니,
'감관으로 이해하다', 즉 진리에 곧바로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에 형상을 지어 그로써 이해하려는 것을 말한다.
*全機透脫; 全機는 참선인의 자재무애한 기봉(機鋒), 透脫은 고상함[超脫].
*滲漏處; 새어 나오는 곳. 허술한 곳. '수행자가 자칫 그르치기 쉬운 곳'을 삼루처라 한다.
*巖頭; 鄂州巖頭全奯禪師(德山鑒禪師法嗣)
「德山을 참례하러 가서 방석을 들고 법당을 쳐다보고 서 있으니,
덕산이 "뭐 하는가?" 하였다. 암두가 곧 할(喝)을 하자,
덕산이 "노승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물으니,
암두는 "양중공안(兩重公案)이로구나." 하고서 법당을 내려왔다.
덕산은 "저 중이 그럴싸 한 행각인이구나." 하였다.
다음날 문안 드리자, 덕산이 말했다. "선생이 어제 새로 온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어디서 그런 엉터리[虗頭]를 배워 왔는가?"
"저는 절대 스스로를 속이지 않습니다."
덕산은 "저가 훗날 노승을 외롭게 하지 않겠구나." 하였다.」[五燈會元卷第七]
故洞山云。 若要辨認向上之人真偽者。 有三種滲漏。 情滲漏。見滲漏。語滲漏。 見滲漏。機不離位。 墮在毒海。 情滲漏。智常向背。 見處偏枯。 語滲漏。體妙失宗。 機昧終始。 此三滲漏。宜已知之。 又有三玄。體中玄。 句中玄。玄中玄。 |
그래서 동산(洞山)이 이르되, "향상(向上)하는 사람의 진위(真偽)를 파악하는 데에는 세 가지 삼루[三種滲漏*]가 있어 정삼루(情滲漏), 견삼루(見滲漏), 어삼루(語滲漏)인데, 견삼루는 현기(玄機)가 제자리를 떠나 독해(毒海)에 빠져있는 것이요, 정삼루는 지혜가 늘 돌아서 있어서 견처(見處)가 치우쳐 있는 것이며, 어삼루는 본체의 묘성[體妙]이 본때를 잃어서[失宗], 현기(玄機)가 시종(始終) 어두운 것이니, 이 세 삼루를 이왕 알아야 한다. 또 삼현(三玄*)이 있는데, 체중현(體中玄)과 구중현(句中玄), 현중현(玄中玄)이다." 하였다. |
*三種滲漏; 洞山이 스승 雲巖으로부터 인수받아 曹山에게 傳授했다는 寶鏡三昧 중 하나로
〈人天眼目〉卷3에 明安*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①見滲漏는 見滯는 아는 바에 있는지라 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하나의 色에 있지만,
滲漏라는 것은 다만 이것이 설사 未盡의 善일지라도 반드시 종적을 판별해야
비로소 相續된 玄機妙用을 얻는것이다고 하였고,
②情滲漏는 情識의 境界가 원만하지 못하여 取捨나 前後에 매달리고 편향되면
남각(鑒覺)이 온전치 못하려니와, 이 정식이 멋대로 흘러 엉뚱한 곳에 이르게 되리니,
모름지기 구구(句句) 속에서 양변(兩邊)을 떠나 情識의 境界에 막혀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며,
③語滲漏는 體妙失宗이란 語路와 句에 막혀서 宗旨를 잃는다는 것이요,
機昧終始란 당면의 玄機가 暗昧하고 다만 語言 속에만 있어서 宗旨가 원만치 못한 것이니,
句句 속에서 有語 중 無語하고, 無語 중 有語라야 비로소 妙旨의 密圓함을 얻는다 하였다.
또 泐潭*은 三滲漏를 비추어 이렇게 頌했다.
천하의 산골짜기가 끊겨 온통 그윽한데, (天下溪山絕勝幽)
뉘라서 손잡고 함께 가줄 수 있으리오? (誰能把手共同遊)
돌아보니 홀연 두견이 말이 들리는구나. (回頭忽聽杜鵑語)
*明安; 郢州大陽山警玄禪師(青原下九世 朗州梁山緣觀禪師法嗣)(943~1027)
宋代曹洞宗僧。湖北江夏人,俗姓張。諡號「明安大師」[제13칙 註 참조]
「問; "어떤 것이 和尚의 家風입니까?"
"가득 채워진 병이 기울여도 흘러나오지 않고, 대지에 굶주린 사람이 없다."」
*泐潭; 洪州泐潭懷澄禪師(青原下九世 五祖戒禪師法嗣), 雲門宗僧
「問; "보이는 것이 색(色)이고, 들리는 것이 소리(聲)이려니와,
이 두 길을 떠나 달리 말씀해 주십시요."
"낡은 절에 새 편액(匾額;현판) 다는 것이다."
問; "만법(萬法)과 벗이 되지 않는 분이 누굽니까?"
"관세음보살이다."」[五燈會元卷第15]
*三玄三要; 臨濟義玄의 學人 接引法. 〈臨濟錄〉 上堂에
「師又云:『一句語에 반드시 三玄門을 갖추고,
一玄門에는 三要를 갖춰야 권(權)도 있고, 용(用)도 있는 것이다.
(一句語須具三玄門,一玄門須具三要,有權、有用。)』」 하였다.
三玄은 ①體中玄~ 假飾없이 真實을 잘 表現하고 있는 語句。
②句中玄~ 深長한 意味가 담긴 語句.
③玄中玄~ 用中玄. 一切의 論理나 語句 등에 구속받지 않는 玄妙한 句.
三要를 〈人天眼目〉에서 汾陽善昭선사는
①言語에 分別造作이 없어야 한다는 것
②千聖이 다 玄奧에 直入하였다는 것
③言語의 길이 끊어진 곳이라는 것이라 하였다.
古人到這境界。全機大用。 遇生與爾同生。 遇死與爾同死。 向虎口裏橫身。放得手腳。 千里萬里。隨爾銜去。 何故還他得這一著子。始得。 |
고인은 이 경계에 도달하여 전기대용(全機大用)으로 생(生)을 만나면 너희와 더불어 같이 생(生)하고, 사(死)를 만나면 같이 사(死)해 준 것이다. 호랑이 입 속에 몸을 던져야 바야흐로 수완을 얻을 것이라 천리만리를 너희를 따라 받들어 간 것인데, 무엇 때문인가? 저들이 이 한 수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
八萬四千非鳳毛者。 靈山八萬四千聖眾。 非鳳毛也。 南史云。 宋時謝超宗。 陳郡陽夏人。謝鳳之子。 博學文才傑俊。 朝中無比。當世為之獨步。 善為文為王府常侍。 王母殷淑儀薨。 超宗作誄奏之。 武帝見其文。大加嘆賞曰。 超宗殊有鳳毛。 古詩云。 朝罷香煙攜滿袖。 詩成珠玉在揮毫。 欲知世掌絲綸美。 池上如今有鳳毛。 昔日靈山會上四眾雲集。 世尊拈花。 唯迦葉獨破顏微笑。 餘者不知是何宗旨。 雪竇所以道。八萬四千非鳳毛。 |
'八萬四千非鳳毛'란 영산회상(靈山會上)의 8만4천 대중이 다 특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사(南史*)에 이르기를, "송(宋)나라 때 사초종(謝超宗)은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으로 사봉(謝鳳)의 아들인데, 박학(博學)하고 문재(文才)가 준걸(傑俊)하여 조정 안에 비할 자가 없는 당대의 독보적 존재였고, 문장에 능해 왕부상시(王府常侍)가 되었다. 왕의 모친 은숙의(殷淑儀)가 훙서(薨逝;逝去)하자 초종이 추도문을 지었는데, 무제(武帝)가 그 글을 보고 크게 찬탄하여 ‘초종에게 특출한 봉모(鳳毛)가 있다’ 하였다.”고 하였고, 옛 두보(杜甫)의 시(詩)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조파(朝罷*)하고 향로 연기를 소매 끝에 가득 담아 시(詩)를 쓰니 휘호(揮毫)에 주옥(珠玉)이 서려 있구나. 세장사륜(世掌絲綸*)의 미(美)를 알고자 하거든 연못[鳳凰池] 위에 당금의 봉모(鳳毛)가 있다네.」 옛날 사부대중이 운집한 영산회상에서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이시니 오직 가섭만 홀로 빙그레 웃었고, 나머지는 무슨 종지인지 알지 못했다. 설두는 그래서 '8만4천 대중은 봉모가 아니다'고 한 것이다. |
*南史; 唐 李延壽가 쓴 南北朝시대 南朝의 역사책. (全80卷. 중국 24史의 하나)
*朝罷; ①帝王의 退朝나 臣下가 조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
②황제의 임기가 끝나는 것. 여기서는 '은숙의(殷淑儀) 서거를 추도하는 朝會를 마치고'.
*世掌絲綸; 父子 혹은 祖孫 간에 직위를 승계(承繼)하는 것.
謝超宗이 부친 사봉(謝鳳)의 재능을 계승했다는 뜻이다.
三十三人入虎穴。 阿難問迦葉云。 世尊傳金襴袈裟外。 別傳何法。 迦葉召阿難。 阿難應喏。 迦葉云。倒卻門前剎竿著。 阿難遂悟。 已後祖祖相傳。 西天此土。三十三人。 有入虎穴底手腳。 古人道。不入虎穴。 爭得虎子。 |
'三十三人入虎穴'은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세존께서 금란가사(金襴袈裟)를 전하신 외에 별도로 무슨 법을 전하셨습니까?" 하니, 가섭이 "아난아!" 하고 불렀다. 아난이 "예." 하고 대답하자, 가섭이 말했다. "문 앞의 찰간(剎竿)을 쓰러뜨리거라." 아난이 마침내 깨달았다. 이후에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해 온 서천(西天)과 이 땅의 서른 세 분 조사에게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수완이 있었는지라 고인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를 잡겠느냐?'고 한 것이다. |
雲門是這般人。 善能同死同生。 宗師為人須至如此。 據曲彔木床上坐。 捨得教爾打破。 容爾捋虎鬚。 也須是到這般田地始得。 具七事隨身。可以同生同死。 高者抑之。下者舉之。 不足者與之。 在孤峰者。救令入荒草。 落荒草者。救令處孤峰。 爾若入鑊湯爐炭。 我也入鑊湯爐炭。 其實無他。 只要與爾解粘去縛。 抽釘拔楔。 脫卻籠頭。卸卻角馱。 |
운문도 그런 사람이라서 동사동생(同死同生)을 잘 할 수 있었거니와, 종사의 사람됨이 모름지기 이에 이르러야 한다. 곡록목상(曲彔木床*)에 앉아서 너희로 하여금 아낌없이 버려서 타파하게 하기도 하고, 호랑이 수염 만지도록 내버려 두기도 하는 모름지기 이런 전지(田地)에 도달해야 한다. 칠사수신(七事隨身*)을 구비해야 동생동사하면서 높으면 눌러주고 낮으면 들어 올려주고, 부족하면 줄 수 있으려니와, 고봉(孤峰)에 있으면 구제해서 황초(荒草)에 들게 하고, 황초에 떨어져 있거든 구제해서 고봉에 처하게 하며, 저희가 확탕(鑊湯)의 노탄(爐炭)에 들었다면 그도 확탕의 노탄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기실은 다른 뜻이 없고, 다만 너희에게 해점거박(解粘去縛)하고, 추정발설(抽釘拔楔)하며, 농두(籠頭)를 벗기고 각타(角馱)를 벗겨주려는 것이다. |
*曲彔木床; 스님들이 앉는 나무로 깎아 만든 의자.
*七事隨身; 원래 전쟁터에서 자기 몸을 지켜줄 7가지 무기,
즉 弓, 矢, 刀, 劍, 甲, 胄, 戈를 말하는데,
임제종에서는 이것을 인용하여 師家가 具備해야 할 7가지,
①殺人刀~ 學人이 가지고 있는 일체를 베어낼 수 있는 능력.
②活人劍~ 學人이 지닌 일체를 活現하게 하는 능력.
③腳踏實地~ 一切의 行為가 佛道에 契合할 것.
④向上關棙子~ 向上의 宗旨를 究盡할 것.
⑤格外說話~ 通常人의 思量을 떠나 佛道를 설할 것.
⑥衲僧巴鼻~ 學人을 이끌어 갈 力量을 갖출 것.
⑦探竿影草~ 學人의 真偽를 헤아리고 판단하는 능력.
이것을 濟宗七事隨身이라 한다.
*籠頭角馱; 농두(籠頭)는 '말의 머리에 씌우는 도구'요, 각타(角馱)는 '무거운 짐'을 말하는데,
〈種電鈔〉에서는 「籠頭는 無明業識을, 角駄는 知見解會를 말한다」고 하였다.
平田和尚。有一頌最好。 靈光不昧。萬古徽猷。 入此門來。莫存知解。 別別。擾擾匆匆水裏月。 不妨有出身之路。 亦有活人之機。 雪竇拈了。 教人自去明悟生機。 莫隨他語句。 爾若隨他。 正是擾擾匆匆水裏月。 如今作麼生得平穩去。 放過一著。 |
평전(平田*)화상에게 아주 좋은 송(頌) 하나가 있다. 「영광(靈光*)이 어둡지 않은 만고(萬古)에 아름다운 도[徽猷*]이거늘 이 문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라.」 '別別. 擾擾匆匆水裏月.'에는 어쩔 수 없는 몸을 빼낼 길도 있고, 사람을 살리는 기봉도 있다. 설두는 염송(拈頌)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기(生機*)를 명확히 깨닫게 하였지만, 그의 어구(語句)를 쫓지 말라. 그대들이 그 어구를 쫓는다면 바로 이것이 '擾擾匆匆水裏月'인 것이다. 이제는 어찌해야 평온(平穩)을 얻겠는가? 한 수 봐주겠다. |
*平田(770~843); 天台平田普岸禪師(百丈海禪師法嗣)
*靈光; 神光. 개개인 고유의 불성(佛性)이 발하는 영롱한 빛.
*徽猷; 아름답고 선한 道. 徽는 아름다울 휘, 유(猷)는 道의 뜻.
*生機; 生存의 機會와 希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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