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17칙 향림좌구성로(香林坐久成勞) _향림선사의 '앉아 오래 있으면 피로하다' |
垂示云。 斬釘截鐵。 始可為本分宗師。 避箭隈刀。 焉能為通方作者。 針劄不入處。則且置。 白浪滔天時如何。 試舉看。 |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참정절철(斬釘截鐵*)해야 비로소 본분종사(本分宗師)가 될 수 있으려니와, 화살을 피하고 칼을 두려워해서야 어찌 통방작자(通方作者*)가 되겠는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백랑도천(白浪滔天*)할 때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斬釘截鐵; '못을 베고 쇠를 자르다'.
언행과 일처리가 확고하고 결단성이 있어서 추호도 망설이지 않는 것을 형용하는 말.
*通方作者; '道通한 작가'. 通方은 도술에 통하다, 作者는 作家.
*白浪滔天; '거대한 파도가 부딫쳐 오다'. 白浪은 흰 거품이 이는 물결. 滔天은 하늘까지 닿다.
상대가 막강하여 조그마한 틈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 미뤄두더라도
거대한 파도 같은 기세로 물어올 때는 어찌해야 하겠느냐는 말이다.
【一七】舉。 | 【제17칙】 향림(香林)의 좌구성로(坐久成勞) |
僧問香林。 如何是祖師西來意 (大有人疑著。 猶有這箇消息在) 林云。坐久成勞 (魚行水濁。 鳥飛落毛。 合取狗口好。 作家眼目。鋸解稱鎚)。 |
어떤 스님이 향림(香林*)선사에게 물었다. "달마조사께서 서래(西來)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데, 아직도 그런 소식이 있다.) 향림은 "좌구성로(坐久成勞*)니라." 하였다. (물고기가 지나가면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아가면 깃털이 떨어지는 법이니, 개 아가리는 닫는 것이 좋다. 작가의 안목이 거해칭추<鋸解稱鎚*>로구나.) |
*香林(908~987); 益州青城香林院澄遠禪師(雲門偃禪師法嗣)
漢州 綿竹人, 姓은 上官. 다른 중이 "如何是祖師西來意?"하고 물었을 때는
"(달마조사께서는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는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놈은 누구냐?(踏步者誰)"하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하였다.
*坐久成勞; '앉아 오래 있다보면 피로하게 된다'
[佛光大辭典]에는 「學人이라면 모름지기 자기 眼前의 일을 잘 살펴야
本來의 心性를 速見할 것이라 日常의 言語나 動作을 빌려 諷刺性 言語를 道出함으로써
學人을 醒悟케 하려한 것이다.」고 하였으나, 분명하게 납득이 가는가?
오래 앉아 있다보면 피로해지듯이 '시절인연을 따라 오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아서라! 개 아가리 닫자.)
*鋸解稱鎚; 鋸解秤錘. '톱으로 저울추를 자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서
言句의 뜻을 헤아려볼 길이 없음에 비유하는 말이다.
香林道。坐久成勞。 還會麼。 若會得。百草頭上。 罷卻干戈。 若也不會。伏聽處分。 |
향림이 '오래 앉아 있다보면 피로해진다' 하였는데, 알겠느냐? 안다면 백초두상(百草頭上*)하여 파각간과(罷卻干戈*)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엎드려 처분만 바래야 할 것이다. |
*百草頭上; '군중(群衆;百草)의 머리 위에 올라서다' '군중 가운데 초출하다'
*罷卻干戈; '싸움을 끝내다' 즉 '수행을 마친다'는 뜻.
罷卻은 끝내다, 마치다. 干戈는 창과 방패, 戰亂, 즉 수행인의 공부.
古人行腳。結交擇友。 為同行道伴。撥草瞻風。 是時雲門旺化廣南。 香林得得出蜀。 與鵝湖鏡清同時。 先參湖南報慈。 後方至雲門會下。 作侍者十八年。在雲門處。 親得親聞。 他悟時雖晚。 不妨是大根器。 |
고인은 행각(行腳)하되, 벗을 택하여 사귀고 동행하는 도반(道伴)을 삼아 발초첨풍(撥草瞻風*)하였는데, 그때는 운문이 광남(廣南)에서 왕성히 교화하고 있을 때라 향림이 기어이[得得*] 촉(蜀) 땅을 나섰으니, 아호(鵝湖)나 경청(鏡清)과 같은 시기였다. 먼저 호남(湖南) 보자사(報慈寺)에 (龍牙?) 참례하였다가 그 후에 마침내 운문의 회하(會下)에 이르러 시자(侍者)생활 18년 동안 운문의 처소에서 몸소 얻고 몸소 들었으니, 그가 깨달음을 얻은 시기는 비록 늦었으나 어쩔 수 없는 큰 근기(根器)였다. |
*撥草瞻風; 撥草參玄. 無明의 잡초를 제거하면서 佛祖의 玄風을 우러러보다.
또는 險路를 걸으면서 善知識의 德風을 우러러보다.
*得得; 특별히, 일부러, 뚜벅뚜벅, 기어이.
居雲門左右十八年。 雲門常只喚遠侍者。 纔應喏。門云是什麼。 香林當時。 也下語呈見解弄精魂。 終不相契。 一日忽云。我會也。 門云。何不向上道將來。 又住三年。 雲門室中。垂大機辯。 多半為他遠侍者。隨處入作。 雲門凡有一言一句。 都收在遠侍者處。 |
운문의 처소에 머문 시종(始終;左右) 18년간 운문은 늘 "원(遠)시자야!" 하고 부르고, 곧 "예" 하면 "이것이 무엇인고?" 하기만 하였는데, 향림은 그 당시 하어(下語;윗사람의 指示)에 온 심사(心思)를 기울여 견해를 말씀 드렸으나 끝내 서로 계합하지 못하다가 하루는 느닷없이 "제가 알았습니다." 하였더니, 운문이 "왜 향상(向上)의 말을 내놓지 못하느냐." 하였다. 또 3년을 지내면서 운문이 방 안에서 대기(大機)의 변(辯)을 내려주었는데, 대부분이 원(遠)시자를 위해 곳을 따라 지어준 것이었고, 운문이 한 일언일구(一言一句)의 모든 수확이 원(遠)시자 쪽에 있었다. |
*弄精魂; 精神과 心思를 耗費하다.
香林後歸蜀。 初住導江水晶宮。 後住青城香林。 智門祚和尚。本浙人。 盛聞香林道化。 特來入蜀參禮。 祚乃雪竇師也。 雲門雖接人無數。 當代道行者。 只香林一派最盛。 歸川住院四十年。 八十歲方遷化。 |
향림은 후에 촉(蜀)으로 돌아가서 처음에는 도강(導江)의 수정궁(水晶宮*)에 머물다가 후에 청성(青城)의 향림선원(香林禪院)에 있었다. 지문조(智門祚*)화상은 본래 절강(浙江)사람으로서 향림의 도화(道化*)를 깊이 듣고자 하여 특별히 촉으로 와서 참례했는데, 지문광조(智門光祚)는 곧 설두(雪竇)의 스승이다. 운문(雲門)이 무수한 사람을 접(接)했지만 당시 도행(道行)하는 자 중에서는 향림의 일파(一派)가 가장 많았다. 사천(四川;蜀;成都)으로 돌아와 원(院)에 머문지 40년, 80세에 마침내 천화(遷化)하였다. |
*水晶宮; 〈建中靖國續燈錄〉卷2에는 '導江 水請宮 吳將軍院'이라 기록되어 있다.
*智門祚; 隨州智門光祚禪師
*道化; 道法으로 타인을 教化하는 일.
嘗云。我四十年。 方打成一片。 凡示眾云。大凡行腳。 參尋知識。 要帶眼行。 須分緇素。 看淺深始得。 先須立志。 而釋迦老子。在因地時。 發一言一念。皆是立志。 |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40년 만에 비로소 타성일편(打成一片*)했다."고 하였고, 무릇 시중(示衆)해서는 "대체로 행각(行腳)하면서 지식(知識)을 찾아 참례하는 데는 요컨대 대안(帶眼*)의 행(行)을 하여 반드시 흑백(黑白;緇素)을 분간하고 얕고 깊음[淺深]을 살펴야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여 뜻을 세워야[立志] 하거니와, 석가 노인네가 인지(因地*)에 있을 때 발하는 일언일념(一言一念)도 다 입지(立志)였다. |
*打成一片; 禪林用語. 融合一體의 뜻. 일체의 情量과 計較를 제거하여
千差萬別한 事物을 一體로 融合시켜 彼此나 主客 등의 차별한 情想이 없는 것을 말한다.
*帶眼; '眼目이 있는', '눈길 가는대로 살피는(順眼看看)'.
*因地; 佛道를 수행하는 지위.
後來僧問。 如何是室內一盞燈。 林云。三人證龜成鱉。 又問。如何是衲衣下事。 林云。臘月火燒山。 |
후에 와서 어떤 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방 안의 한 등잔(燈盞)입니까?" 하니, 향림은 "셋이서 우기면 거북이 자라가 된다." 하였고, 또 "어떤 것이 납의(衲衣*)에게 주어진 일입니까?" 하니, "납월(臘月;섣달) 불이 산을 태우느니라." 하였다. |
*三人證龜成鱉; 여러 사람이 등잔이라고 하면 등잔이 된다는 뜻이다.
*衲衣; 스님들이 입는 옷이니, '수행자'를 말한다.
*臘月火燒山; 어느 중이 灌州羅漢禪師에게 '臘月火燒山'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한선사는 "작은 풀도 나지 않는다[寸草不生]."고 하였으니,
일체의 번뇌망상과 사량분별을 다 태워 없애서 더 이상 나지 않게 하는 일이 수행인의 할 일이다는 뜻이다.
古來答祖師意甚多。 唯香林此一則 坐斷天下人舌頭。 無爾計較作道理處。 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 林云。坐久成勞。 可謂言無味句無味。 無味之談。塞斷人口。 無爾出氣處。 要見便見。 若不見切忌作解會。 |
예로부터 조사의 뜻[祖師意]을 답한 것이 매우 많지만 오직 향림의 이 한 칙(則)은 천하인의 혀끝을 좌단(坐斷)하는 것이라 그대들이 계교(計較)하여 도리를 지어볼 데가 없다. 저 중이 "어떤 것이 조사가 서래하신 뜻입니까?" 묻자, 향림이 "좌구성로(坐久成勞)"라 하였으니, 가히 언(言)도 무미하고 구(句)도 무미하다 하겠으나, 무미한 얘기가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니 그대들이 출기(出氣)할 곳이 없다. 봐야겠거든 곧 보되, 만일 보지 못했거든 절대 해회(解會)를 짓지 말라. |
香林曾遇作家來。 所以有雲門手段。 有三句體調。 人多錯會道。 祖師西來。九年面壁。 豈不是坐久成勞。 有什麼巴鼻。 不見他古人得大自在處。 他是腳踏實地。 無許多佛法知見道理。 臨時應用。 所謂法隨法行。 法幢隨處建立。 雪竇因風吹火。 傍指出一箇半箇。 |
향림이 일찍이 작가를 만나고 왔기에 그래서 운문선사의 수단과 3구의 체조(體調*)가 있었건만 사람들은 흔히 잘못 알고서 말하기를, "조사께서 서래하시어 9년을 면벽하셨으니 어찌 좌구성로(坐久成勞)가 아니리오?"라고 하는데, 무슨 파비(巴鼻;根據)가 있겠는가? 보지 못하는가? 저 고인이 대자재처를 얻었으니, 그가 바로 각답실지(腳踏實地*)이며, 허다한 불법의 지견(知見)이나 도리(道理)가 없이 임시(臨時;適時適期)로 응용했으니, 이른바 법이 법을 따라 행하여 법의 기치[法幢]를 곳에 따라 건립했다는 것을. 설두가 인풍취화(因風吹火*)하듯 곁들여 일개반개(一箇半箇*)임을 지적해냈다. |
*體調; 문학작품적인 격조(格調).
*腳踏實地; 임제종 「七事隨身」 중 하나. 일체의 行為가 佛道에 契合하는 것.(15칙 註 참조)
*因風吹火; 바람부는 방향을 따라 불을 불기가 便易하다는 것이니,
'學人을 지도할 때 그 根機가 향하는 바를 살펴 상응한 방법을 쓰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一箇半箇; '한 개나 반 개', 즉 수가 매우 적다는 뜻으로 '몹시 찾아보기 힘든 사람'에의 비유.
一箇兩箇千萬箇 (何不依而行之。 如麻似粟。 成群作隊作什麼) 脫卻籠頭卸角馱 (從今日去應須灑灑落落。 還休得也未) 左轉右轉隨後來 (猶自放不下。 影影響響。 便打) 紫胡要打劉鐵磨 (山僧拗折拄杖子。 更不行此令。 賊過後張弓。 便打。嶮) |
한 개 두 개 천만 개일지라도 (어째서 그대로 행하지 않는가? 마(麻)처럼 좁쌀처럼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어서 어쩌자는 것이냐?) 농두(籠頭)을 벗기고 각타(角馱)를 벗겨주되 (오늘부터는 반드시 시원하고 개운해야 할텐데, 그러한가 그렇지 못한가?) 좌로 돌고 우로 돌아 뒤 따라 왔거든 (아직 스스로 내려놓지 못했거든 모호하고 어슴푸레할<影影響響> 것이다. 문득 후려치다.) 자호(紫胡*)처럼 유철마(劉鐵磨*)를 후려쳐야 한다. (나라면 주장자를 요절내고 다시는 이 영(令)을 행하지 않겠다. 도적이 지나간 뒤에 활을 당겼지만 갑자기 후려친 것은 고준(高峻;嶮;險)했다.) |
*籠頭角馱; 농두(籠頭)는 말의 머리에 씌우는 도구요, 각타(角馱)는 무거운 짐이니,
籠頭는 無明業識에, 角駄는 知見解會(妄想執著)에의 비유로 쓰인다.
*紫胡; 子湖(800-880), 즉 衢州子湖巖利蹤禪師(南泉願禪師法嗣)
「한 비구니가 찾아오자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유철마(劉鐵磨) 아닌가?"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좌로 돌고 우로 도는구나[左轉右轉]."
"화상께서는 전도(顛倒)하지 마십시요." 하니, 선사가 곧 후려쳤다.」
*劉鐵磨; 唐代 禪宗 비구니승으로 俗姓은 劉씨요, 機鋒이 峻峭하였기에 世稱 劉鐵磨라 하였다.
潭州 溈山에서 10리 떨어진 곳의 작은 암자에 머물면서 溈山靈祐를 參謁하고
그 법을 이어 받았으며, 또한 子湖利蹤禪師를 參謁하여 當時의 禪客들과 서로 往來하며
禪旨를 얘기하면서 「鐵磨老牸牛(24칙)」라는 公案을 후세에 남겼다.
雪竇直下如擊石火。似閃電光。 拶出放教爾見。 聊聞舉著便會始得。 也不妨是他屋裏兒孫。 方能恁麼道。 若能直下便恁麼會去。 不妨奇特。 一箇兩箇千萬箇。 脫卻籠頭卸角馱。 灑灑落落。不被生死所染。 不被聖凡情解所縛。 上無攀仰。 下絕已躬。 一如他香林雪竄相似。 何止只是千萬箇。 直得盡大地人。悉皆如此。 前佛後佛。也悉皆如此。 苟或於言句中作解會。 便似紫胡要打劉鐵磨相似。 其實纔舉。 和聲便打。 |
설두가 곧바로 석화(石火) 튀기고 번갯불 번쩍이듯이 짜내 놓아 그대들로 하여금 보게 하였으니, 잠깐 들춰주기만 하면 곧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그 집안(屋裏;雲門家)의 자손이라서 바야흐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거니와, 만약 직하에 문득 그렇게 이해해 갈 수 있다면 기특하여 마지않을 것이다. 한 개 두 개 천만일지라도 농두(籠頭)를 벗고 각타(角馱)를 벗겨내면 시원시원[灑灑落落]하여 생사에 물들지도 않고, 성범(聖凡)의 정해(情解)에 매이지도 않아서 위로는 우러러 볼 것이 없고, 아래로는 기궁(己躬;自身)도 끊겨서 하나 같이 저 향림이나 설두와 같을 터인데, 어찌 다만 천만 개에 그치겠는가? 바로 온 대지의 사람이 다 이와 같이 될 것이요, 전불후불(前佛後佛)이 모두 다 이와 같을 것이다. 함부로 혹시 언구 속에서 해회(解會)를 짓는 것은 곧 자호가 유철마를 때려야 했던 경우와 같겠으나 기실은 잠깐 들추기만 하면 그 소리에 맞춰 곧 후려친 것이다. |
紫胡參南泉。 與趙州岑大蟲同參。 時劉鐵磨在溈山下卓庵。 諸方皆不柰何他。 一日紫胡得得去訪云。 莫便是劉鐵磨否。 磨云。不敢。 胡云。左轉右轉。 磨云。和尚莫顛倒。 胡和聲便打。 香林答這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 卻云。坐久成勞。 若恁麼會得。 左轉右轉隨後來也。 且道雪竇如此頌出。意作麼生。 無事好。試請舉看。 |
자호(紫胡;子胡)는 남전(南泉)을 참(參)했으니, 조주(趙州)나 잠대충(岑大蟲*)과 더불어 동참(同參)이다. 당시 유철마가 위산(潙山) 밑 암자에 의탁하고 있었는데 제방(諸方)의 누구도 그녀를 어찌하지 못했다. 하루는 자호선사를 특별히 참방하였더니, "유철마(劉鐵磨)가 아닌가?" 하는지라 철마(磨)가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하자, "좌로 돌고 우로 도는구나." 하였다. 철마가 "화상께서는 전도(顚倒)하지 마십시오." 하니, 자호가 그 말 끝에 곧 후려쳤다. 향림이 '무엇이 조사가 서래하신 뜻이냐'는 저 스님의 질문에 답하여 도리어 '좌구성로(坐久成勞)'라 하였는데, 만약 이렇게 회득(會得)하면 좌로 돌고 우로 돌아 뒤 따라 온 것이다. 말해보라. 설두가 이렇듯 송출한 뜻이 무엇인가? 무사(無事)면 좋겠지만 들춘 예(試舉)를 살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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