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19칙 구지지수일지(俱胝只竪一指)

碧雲 2022. 2. 3. 17:04
벽암록(碧巖錄) 제19칙 구지지수일지(俱胝只竪一指)
                          _구지(俱胝) 화상은 다만 한 손가락을 세웠다.

無門關 3則에서는 「俱胝竪指」, 從容錄 84則에서는 「俱胝一指」,
그 밖에 「一指禪」, 「一指頭禪」, 「俱胝指頭禪」이라고도 불리는 禪宗公案이다.
*俱胝; 唐代僧 婺州金華山俱胝和尚(杭州天龍和尚法嗣).
俱胝는 범어 「Cundī」의 音譯으로 准胝, 准提, 準提라고도 한다.
俱胝화상이라는 이름은 그가 항상 俱胝觀音咒(准提佛母咒)를 誦하였기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垂示云。
一塵舉大地收。
一花開世界起。
只如塵未舉花未開時。
如何著眼。所以道。
如斬一綟絲。一斬一切斬。
如染一綟絲。一染一切染。
只如今便將葛藤截斷。
運出自己家珍。
高低普應。前後無差。
各各現成。
儻或未然。看取下文。
수시(垂示)하여 이르기를,
일진(一塵)이 일면 대지가 감춰지고,
일화(一花)가 피면 세계가 건립되거니와,
먼지가 일지 않고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래서 말하기를,
"한 타래의 실을 베듯이 단번에 일체를 끊어 없애고,
한 타래 실 물들이듯이 단번에 일체를 물들인다"고 하였으니,
다만 지금 문득 갈등(葛藤)을 절단하고
자기 집안의 진보(珍寶)를 운용해 낸다면
위 아래가 두루 상응하고 앞 뒤가 다름이 없어서
저마다 당장 이룰 것이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거든 아래의 문장을 살펴 취하거라. 

*一綟絲; '한 타래의 실'로써 중생 迷妄의 根源에 비유한 것. 즉 煩惱를 의미하는 禪林用語.
*一斬一切斬; 한 번 베어 일체를 베다. '단번에 일체번뇌를 끊어 없앤다'는 뜻. 

 

 【一九】舉。  【제19칙】 구지수지(俱胝竪指)
   俱胝和尚。凡有所問
   (有什麼消息。鈍根阿師)
   只豎一指
   (這老漢也要坐斷天下人舌頭。
   熱則普天普地熱。
   寒則普天普地寒。
   換卻天下人舌頭)。
   구지(俱胝)화상은 누가 물을 때마다
   (어떤 소식이 있더냐? 둔한 스님네야!)
   다만 한 손가락을 세웠다.
   (이 노인네가 천하인의 혀끝을 좌단하고 싶었거든
   더운 즉 온 하늘 온 땅이 덥고,
   추운 즉 온 하늘 온 땅이 추운 법이니,
   도리어 천하인의 혀끝을 교체했어야 했다.)。

 

若向指頭上會。
則辜負俱胝。
若不向指頭上會。
則生鐵鑄就相似。
會也恁麼去。不會也恁麼去。
高也恁麼去。低也恁麼去。
是也恁麼去。非也恁麼去。
所以道。一塵纔起大地全收。
一花欲開世界便起。
一毛頭獅子。百億毛頭現。
圓明道。
寒則普天普地寒。
熱則普天普地熱。
山河大地。下徹黃泉。
萬象森羅。上通霄漢。
且道。是什麼物得恁麼奇怪。
若也識得。不消一捏。
若識不得。礙塞殺人。
만일 손가락을 향해 이회(理會)하려 한다면
구지(俱胝)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며,
그렇다고 다른 것을 향해 알아가려는 것은
쇳물을 부어 어떤 형상을 주조하려는 것과 같다.
알아도 그렇고 몰라도 그러하며,
높아도 그렇고 낮아도 그러하며,
옳아도 그렇고 틀려도 그러하다.
그래서 말하기를, “일진이 잠깐 일면 대지가 온전히 감춰지고,
한 송이 꽃을 피우려 하면 세계가 문득 세워진다" 하였으니,
한 털끝의 사자가 백억 털끝 사자를 나타낸다는 것이요,
원명(圓明*)은 또 말하기를,
"추운 즉 온 하늘 온 땅이 춥고,
더운 즉 온 하늘 온 땅이 덥다"고 하였으니,
산하대지가 아래로 황천(黃泉;저승)을 꿰뚫고,
삼라만상이 위로 소한[霄漢;하늘]에 통한다는 것이다.
말해보라. 어떤 물건이 이렇듯 기괴(奇怪)하겠는가?
만일 알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막힘이 심한(꽉 막힌) 사람이다. 

*圓明; 鼎州德山緣密圓明禪師(雲門文偃禪師法嗣).
〈禪門雪竇天童圜悟三家拈頌集〉卷第三에 「雪竇顯擧圓明示衆云 ….」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雪竇가 緣密圓明의 말을 引用하여 評唱하였다는 뜻이다.
*不消一捏; 한 번 더 빚을(손볼) 필요가 없다. 더할 나위 없다. 

俱胝和尚。乃婺州金華人。
初住庵時。有一尼名實際。
到庵直入。更不下笠。
持錫遶禪床三匝云。
道得即下笠。如是三問。
俱胝無對。尼便去。
俱胝曰。
天勢稍晚。且留一宿。
尼曰道得即宿。
胝又無對。尼便行。
구지화상은 무주(婺州) 금화(金華) 사람이다.
당초 암자에 있을 때,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암자로 무턱대고 들어오더니, 갓을 벗지 않고
석장(錫杖)을 든 채 선상(禪牀)을 세 바퀴 돌고서
“말해주면 갓을 벗겠소.” 이렇게 세 번을 말했으나
구지의 대답이 없는지라 비구니가 그냥 가려 했는데,
구지가 말했다.
“날이 어두웠으니 하룻밤 묵어가십시요.”
“말해주면 하룻밤 쉬어가겠소.”
구지가 또 대답을 못하자, 비구니가 그냥 가버렸다. 
胝嘆曰。我雖處丈夫之形。
而無丈夫之氣。
遂發憤要明此事。
擬棄庵往諸方參請。
打疊行腳。
其夜山神告曰。不須離此。
來日有肉身菩薩。
來為和尚說法。不須去。
果是次日。天龍和尚到庵。
胝乃迎禮。具陳前事。
天龍只豎一指而示之。
俱胝忽然大悟。
是他當時鄭重專注。
所以桶底易脫。
後來凡有所問。只豎一指。
구지는 “나는 비록 장부 모양은 하고 있으나
장부의 기상이라고는 없구나.” 하고 탄식하고서
이윽고 이 일을 밝혀야겠다고 발분(發憤)하여
암자를 버리고 제방(諸方)으로 참청(參請)을 떠나고자
수습(收拾;打疊)하여 행각에 나서려 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산신(山神)이 나타나서 “여기를 떠나지 마라.
내일이면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와서
화상에게 법을 설해줄 것이니, 갈 필요 없다."고 하였다.
과연 다음날 청룡(靑龍)화상이 암자에 오신지라
구지가 이내 예로 모시고서 앞서의 일을 다 말씀드렸는데,
천룡은 다만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셨다.
구지가 이에 홀연히 대오하였으니,
이는 당시에 은근하고 오롯히 주입(注入)해 준 것이라
그래서 칠통 밑바닥이 쉽게 빠져버렸고,
그 뒤로는 누가 묻기만 하면 다만 한 손가락을 세웠다. 

*打疊; 收拾, 整理. 

長慶道。
美食不中飽人喫。
玄沙道。
我當時若見。拗折指頭。
玄覺云。
玄沙恁麼道。意作麼生。
雲居錫云。只如玄沙恁麼道。
是肯伊。是不肯伊。
若肯伊。何言拗折指頭。
若不肯伊。俱胝過在什麼處。
先曹山云。
俱胝承當處莽鹵。
只認得一機一境。
一等是拍手撫掌。
見他西園奇怪。
玄覺又云。
且道俱胝還悟也未。
為什麼承當處莽鹵。
若是不悟。
又道平生。只用一指頭禪不盡。
且道曹山意在什麼處。
장경(長慶;859~932)은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사람은 먹지 않는다”하였고,
현사(玄沙;835~908)는
“내가 당시에 보았더라면 손가락을 요절냈을 것이다” 하였으며,
현각(玄覺*)은
“현사가 그렇게 말한 뜻은 무엇인가?” 하였고,
운거석(雲居錫*)은 “현사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것이 그를 긍정한 것인가, 긍정하지 않은 것인가?
긍정했다면 왜 손가락을 요절냈으리라고 말했으며,
긍정하지 않았다면 구지의 허물은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조산(曹山*) 선배는
"구지의 승당처(承當處*)는 거칠고 제멋대로지만[莽鹵*],
일기일경(一機一境*)은 인정되거니와,
일등가는 것은 박수치고 박수치는 것[拍手撫掌*]이니,
저 서원(西園*)의 기괴(奇怪)함을 봐야 한다." 하였고,
현각은 또,
"자 말해보라. 구지는 깨달았는가, 아닌가?
(깨달았다면) 어째서 승당처가 거칠고 제멋대로인 것이며,
만일 깨닫지 못한 것이라면
또 평생 일지두선을 썼어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조산(曹山)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玄覺; 金陵報慈行言玄覺導師(法眼文益 法嗣)
*雲居錫; 南康軍雲居山清錫禪師(法眼文益 法嗣)
*曹山; 撫州曹山本寂禪師(洞山良价 法嗣)
*莽鹵; 거칠고 제멋대로여서 마음에 두지 않다.
*一機一境; 禪林用語。機는 내적인 마음의 작용, 境은 외적 형상을 지닌 사물을 말한다.
멀리 연기나는 것은 境이요, 그 연기를 보고 불이 있음을 아는 것은 機이다.
*撫掌; 拍手
*承當; 承受擔當。

*西園의 拍手撫掌(撫掌三下); 〈五燈會元〉 3卷 南嶽西園蘭若曇藏禪師(馬祖一禪師法嗣) 章에
 「大寂에게서 心印을 받은 뒤에 石頭를 參謁하여 瑩然明徹히 하고
西園에 住席하니 참선하는 벗[禪侶]들이 날로 늘어갔다.
선사께서 하루는 목욕을 하고 있던 차에 어떤 스님이
"어째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선사는 박수를 세 번 쳤다[撫掌三下].
(어떤 스님이 이 일을 曹山에게 얘기하니, 조산은
"으뜸가는 것은 박수치고 박수친 것이다[拍手撫掌;撫掌三下].
그 가운데 서원(西園)의 기괴함이 구지(俱胝)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거의 본받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 스님이 다시 "西園이 박수친 것은 노비 놈들 주변에나 있는 일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다." "向上하는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향상(向上)의 일입니까?"
이에 조산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 노비 놈아!"
受心印於大寂。後謁石頭。瑩然明徹。出住西園。禪侶日盛。
師一日自燒浴次。僧問。何不使沙彌。師撫掌三下
(僧舉似曹山。山云。一等是拍手撫掌。就中西園奇恠。俱胝一指頭禪。葢為承當處不諦當。
僧却問曹山。西園撫掌。豈不是奴兒婢子邊事。山云。是。云。向上更有事也無。山云。有。
云。如何是向上事。山叱云。這奴兒婢子)。)」 [五燈會元 卷第三]

當時俱胝實然不會。
及乎到他悟後凡有所問。
只豎一指。
因什麼。千人萬人。
羅籠不住。撲他不破。
爾若用作指頭會。
決定不見古人意。
這般禪易參。只是難會。
如今人纔問著。
也豎指豎拳。
只是弄精魂。
也須是徹骨徹髓。見透始得。
당시에 구지는 실제로 알지 못하였다가
그가 깨친 뒤에 미쳐 이르러서는 무릇 묻기만 하면
다만 한 손가락을 세웠는데,
무엇으로 인해 천 사람 만 사람이
가두어 두지도 못하고, 쳐서 부수지도 못한 것인가?
그대들이 만약 손가락에서 알려 한다면
결정코 고인의 뜻을 보지 못할 것이어니와,
이러한 선(禪)은 참구하기는 쉬워도 이해하는 어렵다.
요즈음 사람들은 묻기만 하면
손가락을 세우고 주먹을 쳐드는데,
다만 이것은 정신을 농간하는 것[弄精魂]일 뿐이니,
모름지기 골수에 사무치도록 견(見)이 투철해야만 한다. 
俱胝庵中有一童子。
於外被人詰曰。
和尚尋常以何法示人。
童子豎起指頭。
歸而舉似師。
俱胝以刀斷其指。
童子叫喚走出。
俱胝召一聲。
童子回首。俱胝卻豎起指頭。
童子豁然領解。
且道見箇什麼道理。
及至遷化。謂眾曰。
吾得天龍一指頭禪。
平生用不盡。要會麼。
豎起指頭便脫去。
구지의 암자에 한 동자가 있었는데,
밖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화상께서는 평소
어떤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더냐?”는 질문을 당하여
동자가 손가락을 세워 보이고서
돌아와 그 일을 선사에게 들추자,
구지선사가 칼로 그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 나가는데,
구지가 소리를 질러 불렀다.
동자가 뒤돌아 보자 구지가 도리어 손가락을 세워 보이니,
동자가 홀연히 깨달았다.
자 말해보라. 무슨 도리를 보았겠는가?
천화(遷化)하기에 이르러 대중에게
"내가 천룡(天龍)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
평생 쓰기를 다 하지 못했는데, 알고싶은가?" 하고서
손가락을 세워 보이고서 곧 탈거(脫去;入寂)하였다. 
後來明招獨眼龍
問國泰深師叔云。
古人道。俱胝只念三行咒。
便得名超一切人。
作麼生與他拈卻三行咒。
深亦豎起一指頭。
招云。不因今日。
爭識得這瓜州客。
且道。意作麼生。
훗날 명초독안룡(明招獨眼龍*)이
국태심(國泰深*) 사숙(師叔)에게 묻기를,
"고인이 '구지스님은 단 세 줄의 주문[三行咒]만 외우고도
쉽게 모든 사람을 초월했다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가 익힌 세 줄의 주문은 대체 무엇입니까?" 하자,
구태심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니,
명초가 "오늘이 아니고서야
저 멀리 있는 소식[瓜州客*]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였는데,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 

*明招獨眼龍; 婺州明招德謙禪師(羅山道閑 法嗣)
 왼쪽 눈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외눈박이 용[獨眼龍]'이라 불렀다 한다.
*國泰深; 婺州國泰院?(瑫)禪師(玄沙師備 法嗣)
*師叔; 형제가 되는 스님. 明招와 國泰 두 사람 다 青原下八世이다.
*瓜州; 주로 풍류에 인용되는 中國古代 甘肅에 위치했던 州名. 瓜州客~저 멀리 있는 소식

祕魔平生。只用一杈。
打地和尚凡有所問。
只打地一下。
後被人藏卻他棒。
卻問如何是佛。
他只張口。
亦是一生用不盡。
비마(祕魔*)는 평생 작대기[木叉;杈] 하나만을 사용하였고,
타지(打地*)화상은 누가 물을 때마다
다만 땅을 한 번 내려 찍었다.
후에 어떤 사람이 그 봉(棒)을 감춰버리고서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그는 입만 벌리고 있었다고 하니,
이 또한 평생 썼으나 다 하지 못한 것이다.

*祕魔; 五臺山祕魔巖和尚(永泰湍禪師法嗣). 〈五燈會元〉卷第四에
「늘 작대기[木叉] 하나를 들고서 스님들이 예배하러 올 때마다 작대기를 목에 디밀면서

"어느 마매(魔魅)가 너더러 출가하라더냐, 어떤 마매가 너더러 行脚하라고 하더냐?
말하면 이 작대기 맞아 죽을 것이고, 말 안 해도 작대기를 맞아 죽을 것이다.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라." 하였는데, 學徒들이 때꾸할 자가 드물었다.」고 하였다.  

*打地; 忻州打地和尚(馬祖道一 法嗣). 〈五燈會元〉卷第三에
「江西馬祖道一로부터 宗旨를 이어받았으며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學人이 질문할 때마다 오로지 봉(棒)으로 땅을 내려찍었기 때문에 打地和尚이라 불렀다.
하루는 한 스님이 봉을 숨겨버리고서 질문을 했더니, 선사는 입만 벌리고 있었는지라
그 스님이 門人에게 "和尚께서 누가 물을 때마다 매번 땅을 내려찍으시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그 門人은 부엌에서 장작 한 개비를 가져다 가마솥에 던져 넣었다.」고 하였다.  

無業云。
祖師觀此土有大乘根器。
唯單傳心印。
指示迷塗。
得之者不揀愚之與智。
凡之與聖
且多虛不如少實。
大丈夫漢。即今直下休歇去。
頓息萬緣去。
超生死流。迥出常格。
縱有眷屬莊嚴。不求自得。
無業一生凡有所問。
只道莫妄想。
무업(無業*)은
“조사께서 이 땅에 대승근기가 있음을 보시고
오직 단전심인(單傳心印*)하시어
미혹의 경계[迷塗*;迷途]을 가리켜 보이셨거니와,
얻는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범부이거나 성인이거나를 선택하지 않는지라
크고 속이 빈 것은 작고 알찬 것만 못하다.
대장부 놈이라면 지금 곧바로 멈추어[休歇] 가고
만 가지 인연[萬緣]을 담박에 쉬어서[頓息]
생사의 폭류를 뛰어넘고, 통례(通例;常格)를 현저히 벗어나면
권속을 거느리는 일도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하였고,
무업(無業)은 평생 누가 물을 때마다
다만 "망상하지 말라[莫妄想]"고만 하였다. 

*無業; 汾州無業禪師. 〈聯燈會要〉卷第五 汾陽大達無業國師 章에
「祖師觀此土眾生。有大乘根性。唯傳心印。指示迷情。
得之者。即不揀凡之與聖。愚之與智。且多虗。不如少實。
大丈夫兒。如今直下便休歇去。頓息萬機。越生死流。逈出常格。
靈光獨耀。物累不拘。巍巍堂堂。三界獨步。」
*單傳心印; 心印은 禪의 본 뜻이 문자를 세우거나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데 있으니,
마음 대 마음으로 印可하는 것을 心印이라 한다. 心은 佛心, 印은 印可 또는 印定의 뜻.
單傳은 單獨相傳 즉 혼자에게만 일대일로 직접 전하는것이니,
단전심인은 '禪家의 宗旨를 경론(經論)의 문구나 언어에 의하지 않고 心印을 통해 일대일로 전한다'는 뜻이다.
*迷塗; 迷途 즉 迷의 境界이니 三界六道를 말한다. 위 원문 상의 '迷情'은 '미혹하고 전도된 情念'. 

所以道。
一處透。千處萬處一時透。
一機明。千機萬機一時明。
如今人總不恁麼。
只管恣意情解。
不會他古人省要處。
他豈不是無機關轉換處。
為什麼只用一指頭。
須知俱胝到這裏。
有深密為人處。
要會得省力麼。
還他圓明道寒則普天普地寒。
熱則普天普地熱。
山河大地。通上孤危。
萬象森羅。徹下嶮峻
什麼處得一指頭禪來。
그래서 말하기를,
“한 곳을 뚫면 천 곳 만 곳이 일시에 뚫리고,
한 기연을 밝히면 천 만 기연이 일시에 밝혀진다”고 하였건만
요즈음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저 멋대로 알음알이를 지을 따름이라서
저 고인이 성찰한 욧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 어찌 달리 할 기관(機關*)이 없지 않았으리오만
어째서 다만 한 손가락만을 썼겠는가?
모름지기 구지의 그 내면에
깊고 비밀한 위인처(為人處)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힘을 덜들이는 법을 알고 싶은가?
저 원명(圓明)은 도리어 "추운 즉 온 하늘 온 땅이 춥고,
더운 즉 온 하늘 온 땅이 덥다"고 하니,
산하대지가 위로 고위(孤危)로 통하고,
삼라만상이 아래로 험준(嶮峻)을 관철하였거늘
어느 곳에서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 오겠는가? 

*機關; 禪門의 宗匠이 古則公案이나 一喝, 一棒으로 學人을 接하는 方法.

 

 對揚深愛老俱胝
   (癩兒牽伴。
   同道方知。
   不免是一機一境)
  宇宙空來更有誰
   (兩箇三箇。更有一箇。
   也須打殺)
  曾向滄溟下浮木
   (全是這箇。是則是。太孤峻生。
   破草鞋有什麼用處)
  夜濤相共接盲龜
   (撈天摸地。有什麼了期。
   接得堪作何用。
   據令而行。趕向無佛世界。
   接得闍黎。一箇瞎漢)
 대양(對揚*)하여 늙은 구지를 깊이 사랑하노니,
   (문둥이를 짝으로 끌어들였으니,
   동도(同道)임을 바야흐로 알겠으나
   이것이 일기일경<一機一境>임은 면치 못한다.)
  우주가 공(空)한 이래 다시 누가 있었던가?
   (두 개 세 개에 다시 한 개가 있거든
   반드시 타살<打殺>해야 한다.)
  일찍이 창해(滄海)에 떠다니는 나뭇토막[浮木]이
   (다 그런 것이라 옳기는 옳고 심히 고준<孤峻>하나
   닳아빠진 짚신이거늘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야밤의 풍랑 속에서 눈먼 거북과 서로 만났다네.
   (하늘을 더듬고 땅을 뒤져서야 언제 마칠 기약이 있겠으며,
   접해서 만들어본들 어디에 쓰겠는가?
   그저 시키는 대로 서둘러 무불세계(無佛世界)를 향해
   스승을 만나겠다니, 하나의 눈먼 놈이로고.)

*對揚; ①부처님의 설법 회상에서 부처님을 대하여 문답을 주고 받는 등을 통해
부처님의 뜻을 펼쳐냄으로써 이익을 만드는 것을 對揚이라 한다.
②學人을 대하여 宗旨를 舉揚하는 것.
*滄溟; 滄海, 大海. 

 

雪竇會四六文章。七通八達。
凡是誵訛奇特公案。偏愛去頌。
對揚深愛老俱胝。
宇宙空來更有誰。
今時學者。抑揚古人。
或賓或主。一問一答。
當面提持。
有如此為人處。
所以道。對揚深愛老俱胝。
且道雪竇愛他作什麼。
自天地開闢以來。更有誰人。
只是老俱胝一箇。
若是別人須參雜。
唯是俱胝老。只用一指頭。
直至老死。
時人多邪解道。
山河大地也空。
人也空。法也空。
直饒宇宙一時空來。
只是俱胝老一箇。
且得沒交涉。
설두는 사륙문장(四六文章*)에 칠통팔달(七通八達)하였지만
대체로 이는 기특한 공안에서 어긋난 편애된 송(頌)이다.
 '구지 노인네를 깊이 사랑함을 선양하노니,
우주가 공(空)한 이래 누가 있었던가?'는
요즈음의 배우는 이들이 고인을 헐뜯거나 칭찬할 때
객(客;賓)이나 혹은 주인의 입장에서 일문일답하여
그 자리에서 제지(提持*)하였으니,
이와 같은 위인처(為人處)가 있었기에
그래서 '늙은 구지를 깊이 사랑함을 알린다'고 한 것이다.
자 말해보라. 설두는 그의 어떤 것을 사랑했겠으며,
천지개벽(天地開闢)한 이래 또 누가 있었던가?
다만 이 늙은 구지 한 사람 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잡다한 방법이었겠지만
오로지 이 구지 노인네는 한 손가락만을 쓰다가
늙어 죽기에 이르렀으니,
이에 사람들은 대개 그르쳐 알고서
"산하대지가 공(空)하고,
사람도 공하고, 법(法)도 공하며,
설사 우주가 일시에 텅 비어질지라도
다만 이것이 구지 노인의 외길이었다."고 하는데,
전혀 무관한 말이다. 

*四六文章; 四六體. 四字句나 六字句로 짝을 이룬 문장.
*提持; 「平展」의 對稱語. 禪林에서 스승이 학인을 인도하는 방법으로
學人의 我見을 否定하여 향상의 계기를 부여하는 「把住」의 手法을 말한다. 

曾向滄溟下浮木。
如今謂之生死海。
眾生在業海之中。頭出頭沒。
不明自己。無有出期。
俱胝老垂慈接物。
於生死海中。用一指頭接人。
似下浮木接盲龜相似。
令諸眾生得到彼岸。
夜濤相共接盲龜。
法華經云。
如一眼之龜。值浮木孔。
無沒溺之患。
大善知識接得一箇如龍似虎底漢。
教他向有佛世界。
互為賓主。
無佛世界坐斷要津。
接得箇盲龜。堪作何用。
 '일찍이 창해에 떠다니는 나무토막[浮木]'은
요즘을 일러 생사의 바다[生死海]라 하여
중생들이 업바다[業海] 속에서 허덕이면서
자기를 밝히지 못하니, 헤어날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구지 노인이 자비를 드리우고 사물을 접하되,
생사의 바다 속에서 손가락 하나를 써서 사람을 대했으니,
흡사 떠다니는 나무토막이 눈먼 거북을 만나는 것처럼
중생들로 하여금 피안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야밤 파도 속에서 눈먼 거북과 서로 만났다'는 것은
《법화경(法華經)》에 이르기를,
「외눈의 거북이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면
빠져 죽을 걱정이 없다」고 하였는데,
큰 선지식일지라도 일개 용(龍) 같고 범 같은 놈을 접해야
그로 하여금 유불세계(有佛世界)를 향하여
서로 주객(主客;賓主)이 되어 논하게 하고,
무불세계(無佛世界)에서는 요긴한 점을 해결해 주려니와,
저 눈먼 거북이야 접해서 만들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