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20칙 취미선판(翠微禪板) _취미(翠微)선사의 선판(禪板) |
이 공안은 「용아서래의(龍牙西來意)_용아선사의 조사서래의」라고도 한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남에게 물어볼 것이 아니니,
龍牙의 물음 속에도 있지 않고 翠微와 臨濟의 一打 속에도 있지 않거니와,
이는 다만 스스로 밝혀내야 할 자기의 본분사일 뿐이다.
*翠微; 唐代僧 京兆府翠微無學禪師(丹霞天然 法嗣).
*龍牙(835-923); 唐代 曹洞宗僧 潭州龍牙山居遁證空禪師(洞山良价 法嗣).
*禪板; 禪版, 倚版. 스님들이 좌선할 때 피로를 덜기 위해 몸을 기대는 판(板).
垂示云。 堆山積嶽。撞牆磕壁。 佇思停機。 一場苦屈。 或有箇漢出來掀翻大海。 踢倒須彌。 喝散白雲。打破虛空。 直下向一機一境。 坐斷天下人舌頭。 無爾近傍處。 且道從上來。是什麼人曾恁麼。 試舉看。 |
수시(垂示) 산더미처럼 쌓이고 장벽에 부딫치면 사량분별에 빠지고 근기[機]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한바탕 괴롭고 굴욕스러우려니와, 혹 어떤 놈이 나서서 바다를 번쩍 들어 뒤엎고, 수미산을 차서 쓰러뜨리고, 일할(喝)에 흰구름을 흩어버리고 허공을 쳐부수면서 곧바로 일기일경(一機一境*)으로 향해 천하인의 말문을 막아버린다면 아무도 곁에 가까이할 수 없을 것이다. 자 말해보라. 위로부터 일찍이 누가 이러했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佇思停機; 思量分別에 빠져서 근기[機]가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
*一機一境; 한 기틀 한 경계. 學人을 대하매 禪機가 번뜩이는 경계.
機는 內在的 心의作用, 境은 外在的 형상을 갖춘 사물.
멀리 연기나는 것은 境이요, 그 연기를 보고 불이 있음을 아는 것은 機이다.
【二○】舉。 | 【제20칙】 취미(翠微)스님의 선판(禪板) |
龍牙問翠微。 如何是祖師西來意 (諸方舊話。也要勘過) 微云。與我過禪板來 (用禪板作什麼。 洎合放過。噞) 牙過禪板與翠微 (也是把不住。 駕與青龍不解騎。 可惜許。當面不承當)。 微接得便打 (著。打得箇死漢濟甚事。 也落在第二頭了也) 牙云。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這漢話在第二頭。 賊過後張弓) |
용아(龍牙)가 취미(翠微)에게 여쭈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래(西來)하신 뜻입니까?" (제방<諸方>의 낡은 얘기지만 감과<勘過*>해야 한다.) 취미선사가 "내게 선판(過禪)을 건네 주게." 하였다. (선판을 써서 무엇 하려는가?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다. 휴!<噞>) 용아가 선판을 가져다 취미에게 드리니, (이야말로 못 말리겠다. 청룡마(青龍馬)를 끌어다 바쳐도 탈 줄을 모르니, 가히 애석하구나. 면전에 들이대도 붙들지 못하다니.)。 취미가 받아서 느닷없이 후려쳤다. (착!<해보라!> 저 사한<死漢*>을 때려서 무엇을 건지겠는가? 이야말로 제2두<第二頭>에 떨어진 것이다.) 용아는 "때리시려면 때리십시요만 그래도 '조사서래의'는 없습니다." 하였다. (이 놈의 말도 제2두에 있는 것이라서 도적 지나간 뒤에 활 당기는 격이다.) |
牙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諸方舊公案。再問將來。 不直半文錢) 濟云。與我過蒲團來 (曹溪波浪如相似。 無限平人被陸沈。 一狀領過。一坑埋卻) 牙取蒲團過與臨濟 (依前把不住。依前不伶俐。 依俙越國。彷彿揚州) 濟接得便打 (著。可惜打這般死漢。 一模脫出) 牙云。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灼然在鬼窟裏作活計。 將謂得便宜。賊過後張弓)。 |
용아가 또 임제(臨濟)선사에게 "조사께서 서래(西來)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제방<諸方>의 낡은 공안을 가져다 다시 물었으니, 반푼어치도 안된다.) 임제는 "내게 포단(蒲團)을 가져오너라." 하였고, (조계<禪宗>의 크고 작은 물결<波浪>이 그럴사 하여 한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혼침<昏沈; 陸沈*>케 한다. 일장령과<一狀領過*>요 일갱매각<一坑埋卻*>이다.) 용아가 포단을 가져다 임제에게 드리자, (여전히 붙들어 두지 못함과 여전히 영리하지 못함이 모호하기 월<越>나라 같고 비슷하기 양주<揚州*> 같다.) 임제는 받아서 갑자기 후려쳤다. (착! 아쉽게도 이런 죽은 놈 때리기는 한 틀에서 나온다<행태가 같다>.) 용아는 "때리시려면 때리십시요만 그래도 '조사서래의'는 없습니다." 하였다. (명백히 귀신굴 속에서 살아갈 궁리를 지었으니, 장차 형편은 나아지겠지만 도적 지나간 뒤에 활 당긴 격이다.) |
*勘過; 禪林用語. 살피고 시험하여 진상을 명백히 하다.
*死漢; 매귀굴(罵鬼窟) 속에 있는 사람, 空寂한 곳에만 집착하여 運作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고목(槁木)이나 불씨 없는 재와 같은 무리에의 비유.
*噞; 물고기가 수면 위로 내는 숨소리.
*把不住; 無法掌握(붙들어 볼 방법이 없음).
*着; 명령, 파견의 의미. '해 보아라!' 예~着手.
*陸沈; 昏沈愚昧.
*曹溪波浪如相似 無限平人被陸沈; 제93칙 설두의 頌에 나오는 구절이다.
*一狀領過; 한 招狀으로 죄과를 인정케 하다.
語言을 떠나 곧바로 直入케 하는 길을 의미한다.
*一坑埋卻; 學人의 知見을 철저히 박탈해버리는 것.
모든 言語와 論理를 쓸어다 한 구덩이에 묻어버림으로써 是非의 論爭거리를 없애는 것.
*揚州; 이 지방 風俗이 輕揚스럽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다.
*要且; 卻是, 終是. 실인 즉, 그래도, 결국, 역시.
翠巖芝和尚云。當時如是。 今時衲子。皮下還有血麼。 溈山哲云。翠微臨濟。 可謂本分宗師。 龍牙一等是撥草瞻風。 不妨與後人作龜鑑。 住院後有僧問。 和尚當時還肯二尊宿麼。 牙云。肯即肯。 只是無祖師西來意。 龍牙瞻前顧後。應病與藥。 大溈則不然。 待伊問和尚當時還肯二尊宿麼。 明不明。劈脊便打。 非惟扶豎翠微臨濟。 亦不辜負來問。 石門聰云。龍牙無人拶著。 猶可。被箇衲子挨著。 失卻一隻眼。 |
취암지(翠巖芝*)화상은 "당시에는 이와 같았는데, 지금의 납자(衲子)들은 껍대기 밑에 피가 아직 있던가?" 하였고, 위산철(溈山哲*)은 "취미(翠微)와 임제(臨濟)는 가히 본분종사(本分宗師)라 하겠고, 용아(龍牙)는 일등가는 발초첨풍(撥草瞻風*)이라 후인(後人)의 귀감이 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용아가) 선원에 주석한 뒤 어떤 스님이 '스님은 당시에 두 존숙(尊宿)을 긍정하신 겁니까?' 하고 묻자, 용아가 '긍정하기야 했으나 다만 조사가 서래하신 뜻은 없었다.' 하였으니, 용아(龍牙)는 주위를 두루 살펴 병 따라 약을 주었지만, 나[大溈;溈山哲]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고 누가 "스님은 당시에 두 존숙을 긍정하신 겁니까?" 묻기만 하면 긍정하고 말고 간에 등줄기를 느닷없이 후려쳐서 취미(翠微)와 임제(臨濟)를 추켜 세울 뿐만 아니라 물어 온 놈도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였다. 석문총(石門聰*)은 “용아는 윽박지르는 사람이 없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으나 저 납자의 일격을 당하고서는 일척안(一隻眼)을 잃어버렸다” 하였다. |
*「선원에 주석한 뒤 . . . 서래하신 뜻은 없었다.」; 이 구절은 생략된 본칙의 뒷구절이다.
〈宗鑑法林〉卷63 湖南龍牙山居遁證空禪師 章에는 본칙의 뒤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후에 어떤 스님이 "화상께서 행각하시면서 두 존숙께 '조사 서래의'를 여쭈었을 때,
존숙께서 밝혀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선사는 "밝혀주시기는 했지만 요컨대 '조사 서래의'는 없었네." 하였다.
(住後有僧問。和尚行脚時問二尊宿祖師意。未審尊宿還明也未。師曰。明即明也。要且無祖師意。)」
그 외 다른 스님들의 評說도 여기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撥草瞻風; '풀섶을 헤치고 풍파에 맞서다'.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이 탁월함에 비유하는 말.
*瞻前顧後; 左顧右面(이리저리 살피다)
*翠巖芝; 瑞州大愚山守芝禪師(汾陽善昭 法嗣). 처음에 高安 眞如寺(大愚가 주석하면서 大愚寺가 됨),
후에는 南昌 翠巖寺에 주석하였기에 大愚守芝, 大愚芝, 翠巖芝 등으로 불렸다.
*溈山哲; 北宋 臨濟宗僧 潭州大溈慕喆真如禪師(翠巖可真 法嗣).
別名~真如慕喆, 大溈喆, 真如喆, 慕喆真如, 智海慕喆, 大溈, 大瀉慕喆.
*石門聰(965~1032); 石門蘊聰. 北宋 臨濟宗僧 襄州谷隱山蘊聰慈照禪師(首山省念 法嗣).
廣東南海人, 俗姓 張. 諡號「慈照禪師」. 〈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 一卷.
雪竇云。臨濟翠微。 只解把住不解放開。 我當時如作龍牙。 待伊索蒲團禪板。 拈起劈面便擲。 五祖戒云。和尚得恁麼面長。 或云。祖師土宿臨頭。 黃龍新云。龍牙驅耕夫之牛。 奪飢人之食。既明則明矣。 因什麼卻無祖師西來意。 會麼。 |
설두(雪竇)는 "임제(臨濟)와 취미(翠微)는 파주(把住)만 알고 방개(放開;放行)할 줄은 몰랐다. 내가 당시에 용아(龍牙)였다면 포단(蒲團*)과 선판(禪板)을 찾자마자 집어들어 면전에 팽개쳐버렸을 것이다" 하였는데, 오조계(五祖戒*)는 "선승이 저런 긴 얼굴을 얻다니" 하고, 또 "조사에게 토숙(土宿*)이 닥쳤다."고도 하였으며, 황룡신(黃龍新*)은 "용아가 농부의 소를 내쫓고, 굶주린 사람의 음식을 빼앗았음이 명백하다면 명백하거늘, 어째서 도리어 조사가 서래하신 뜻이 없겠는가? 알겠는가?" 하였다. |
棒頭有眼明如日。 要識真金火裏看。 大凡激揚要妙。提唱宗乘。 向第一機下明得。 可以坐斷天下人舌頭。 儻或躊躇落在第二。 這二老漢。雖然打風打雨。 驚天動地。 要且不曾打著箇明眼漢。 |
봉(棒) 끝에 해와 같이 밝은 눈을 달고 진금(眞金)을 찾아 불 속을 살펴야 하거니와, 대체로 요묘(要妙*)를 진작시키고 종승(宗乘*)을 제창하는 제일의(第一義)를 향하는 기틀 아래서 밝게 얻음으로써 천하인의 혀끝을 좌단할 수 있을 것이지만 만일 주저한다면 제2의(第二義)에 떨어질 것이다. 이 두 늙은이[五祖戒와 黃龍新]가 비록 비바람을 일으키고 천지를 흔들었을지라도 사실은 저 눈밝은 놈[明眼漢; 雪竇]에 이르지는 못했다. |
*蒲團; 坐具. 坐禪할 때나 큰절을 할 때 쓰는 방석.
*土宿; 九曜(Navagraha) 중의 土曜(Śanaiścara). 鎮星(土星).
방향은 中方, 비로자나불(혹 십일면관음)을 상징한다.
*要妙; 諸法의 要處, 眞理의 妙旨.
*宗乘; 각 宗敎가 宣弘하는 宗義와 教典.
*要且; 却是(실인 즉, 대관절, 그래도, 혹은)
*打著; 打中, 打到(도착하다).
*五祖戒; 宋代 雲門宗僧 蘄州五祖師戒禪師(雙泉山師寬明教 法嗣)
*黃龍新; (1043~1114) 宋代 臨濟宗 黃龍派僧 隆興府黃龍死心悟新禪師(祖心寶覺 法嗣)
廣東省曲江人。俗姓黃。號死心。
〈사심의 방(死心室)〉
사심은 마음이 죽는 것이니 온 마음을 죽이자 (死心心死死全心)
온 마음이 죽거든 단칸방 깊숙히 앉아 (死得全心一室深)
은밀히 원앙을 붙들어 한가로이 수놓게 (密把鴛鴦閑繡出)
남들과 다투어 금침을 찾으리라. (從他人競覓金針)
古人參禪多少辛苦。 立大丈夫志氣。經歷山川。 參見尊宿。 龍牙先參翠微臨濟。 後參德山。 遂問學人仗鏌鎁劍。 擬取師頭時如何。 德山引頸云。㘞。 牙云。師頭落也。 山微笑便休去。 |
고인들은 선(禪)을 참구하는 데에 많고 적은 고난이 있더라도 대장부의 지기(志氣)를 세우고 산천을 두루 다니면서 존숙(尊宿)들을 참견(參見)하였다. 용아(龍牙)는 처음에 취미(翠微)와 임제를 참견하였고, 후에 덕산(德山)을 참알해서는 "학인(學人)이 막야검(鏌鎁劍*)을 쥐고 스님의 머리를 취하려 할 때는 어찌 하시렵니까?" 여쭙자, 덕산은 목을 쭉 내밀면서 "자!(베거라!)" 하셨다. 용아가 "스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하니, 덕산은 웃으시며 그만 두셨다. |
次到洞山。 洞山問。近離甚處。 牙云。德山來。 洞山云。德山有何言句。 牙遂舉前話。 洞山云。他道什麼。 牙云。他無語。 洞山云。莫道無語。 且試將德山落底頭呈似老僧看。 牙於此有省。 遂焚香遙望德山禮拜懺悔。 德山聞云。 洞山老漢不識好惡。 這漢死來多少時。救得有什麼用處。 從他擔老僧頭遶天下走。 |
그 다음에 동산(洞山)선사를 찾아 뵈었는데, 동산이 "어디서 왔는가?" 물었다. "덕산(德山)에서 왔습니다." "덕산은 무슨 법어를 하시던가?" 용아가 이윽고 앞서의 얘기를 들추자, 동산은 "그가 뭐라 하던가?" 하니,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말 없었다고 말하지 말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가져다 노승에게 보여보시게." 용아는 이에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라 향을 사르고 멀리 덕산을 바라보며 절하고 참회하였다. 덕산이 그 소문을 듣고, "이 동산 늙은이가 좋고 나쁨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저 놈을 죽인지 오랜데, 구제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노승의 머리를 짊어지고 천하를 두루 쏘다니게 두어야지." |
*鏌鎁劍; 莫邪劍. '막사(莫邪)'는 오나라의 저명한 주검장(鑄劍匠)인 간장(干將)의 아내이다.
부부가 오(吳)왕 합려(闔閭)를 도와 음양(陰陽)의 두 명검, 즉 양검인 간장(干將)과
음검인 막사(莫邪)를 주조하여 바쳤다 한다.
龍牙根性聰敏。 擔一肚皮禪。行腳。 直向長安翠微。便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微云。與我過禪板來。 牙取禪板與微。 微接得便打。 牙云。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濟云。與我過蒲團來。 牙取蒲團與臨濟。 濟接得便打。 牙云。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他致箇問端。 不妨要見他曲彔木床上老漢。 亦要明自己一段大事。 可謂言不虛設。機不亂發。 出在做工夫處。 |
용아(龍牙)는 근성(根性)이 총민(聰敏)하였다. 일두피선(一肚皮禪*)을 지고 행각(行腳)에 나서서 곧장 장안(長安)으로 취미(翠微)를 찾아 문득 물었다. "조사께서 서래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내게 선판(禪板)을 가져오게." 용아가 선판을 가져다 취미에게 건네니, 취미가 받아서 느닷없이 후려쳤다. 용아가 말했다. "때리기야 때리십시요만, 아무래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없습니다." 또 임제(臨濟)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래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내게 포단(蒲團)을 가져오게." 용아가 포단을 취해 임제에게 건네니, 임제가 받아서 느닷없이 후려쳤다. 용아가 말했다. "때리기야 때리십시요만, 아무래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없습니다." 용아가 그런 질문의 단초를 던진 것은 저 곡록목상(曲彔木床*) 위의 노인네를 참견하고 또 자기의 일단대사(一段大事*)를 밝히기에 장애가 없었으니, 가히 언불허설(言不虛設*)이요 기불난발(機不亂發*)이라 지을 공부를 넘어섰다(마쳤다) 하겠다. |
*一肚皮禪; '一肚皮'는 '배가 잔뜩 부른 것[滿腹]'을 말하니, '풍요로운 禪修行'을 말한다.
*曲彔木床; 나무를 깎아 만든 僧家의 휘어진 의자. 특출한 機鋒의 禪僧에 비유.
*一段大事; 本體上의 姿態. 이 모양은 무시이래로 존속해 온 것이라
聖人에 이르러도 그 境界를 얻지 못하고, 범부일지라도 그것을 잃는 일이 없다.
[제21칙]에 雲門은 "自古로 이 一段事에는 是非도 없고, 得失도 없으며, 生도 未生도 없으니,
古人은 이에 이르러 한 가닥의 길을 놓아 드나들었다." 하였다고 쓰여 있다.
*言不虛設; 명불허전(名不虛傳)과 같은 의미. *機不亂發; 끼를 남발하지 않는다.
不見五洩參石頭。 先自約曰。 若一言相契。即住。 不然即去。 石頭據座。 洩拂袖而出。 石頭知是法器。即垂開示。 洩不領其旨。 告辭而出至門。 石頭呼之云。闍黎。 洩回顧。石頭云。 從生至死。只是這箇。 回頭轉腦。更莫別求。 洩於言下大悟。 |
보지 못했는가, 오설(五洩*)이 석두(石頭)를 참알하여 먼저 스스로 약속해 말하되, "만약 말 한마디가 서로 계합하면 곧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곧 가겠습니다." 하였는데, 석두가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지라 오설이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석두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곧 가르침을 개시(開示)했으나 오설이 그 취지를 깨닫지 못한지라 하직을 고하고 나와 문에 이르렀을 때 석두가 그를 불렀다. "선생!" 오설이 돌아보자 석두가 "생(生)에서 사(死)까지가 다만 이 뿐이거늘 머리를 굴려 다시 따로 구하지 말게나." 하였다. 오설은 그 말 끝에 대오하였다. |
*五洩(747-818); 婺州五洩山靈默禪師(馬祖道一 法嗣)
又麻谷持錫到章敬。 遶禪床三匝。振錫一下。 卓然而立。敬云。是是。 又到南泉。 依前遶床振錫而立。 南泉云。不是不是。 此是風力所轉。終成敗壞。 谷云。章敬道是。 和尚為什麼道不是。 南泉云。章敬即是。是汝不是。 古人也不妨要提持透脫此一件事。 如今人纔問著。 全無些子用工夫處。 今日也只是恁麼。明日也只是恁麼。 爾若只恁麼盡未來際。也未有了日。 須是抖擻精神。始得有少分相應。 |
또 마곡(麻谷*)이 석장(錫杖)을 짚고 장경(章敬*)에게 이르러 선상(禪床)을 세 바퀴 돌아 석장을 한 번 내리치고 탁연(卓然)히 서니, 장경은 "옳다, 옳다." 하였고, 또 남전(南泉*)에게 이르러서 전과 같이 선상을 돌아 석장을 내리치고 서니, 남전은 "틀렸다, 틀렸다."고 하였는데, 이는 바람에 굴려져서 결국은 패괴할 것인지라 마곡이 "장경은 옳다 했거늘, 그대는 왜 틀렸다고 하는가?" 했을 때, 남전은 "장경은 옳고, 그대는 틀렸다."고 한 것이다. 고인들께서야 이 하나의 사건을 제기하고 투탈하는 데에 지장이 없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질문에 봉착하기만 하면 전혀 없거나 조금 공부한 것을 가지고 오늘도 이렇다고만 하고 내일도 이렇다고만 하거니와, 그렇게 해서야 미래세가 다해도 마칠 날이 없을 것이니, 모름지기 정신을 차려야만 적으나마 상응함이 있을 것이다. |
*麻谷; 蒲州麻谷寶徹禪師, *南泉; 池州南泉普願禪師,
*敬; 京兆府章敬懷暉禪師 세 분 모두 馬祖道一의 법제자이다.
*風力所轉; 바람에 흘려가는 인연. 《首楞嚴經》卷第五에 「이 세계와 중생의 몸이
모두 바람에 흘려가는 허망한 인연임을 관하라(觀此世界及眾生身 皆是妄緣風力所轉)」 하였다.
爾看龍牙發一問道。 如何是祖師西來意。 翠微云。與我過禪板來。 牙過與微。微接得便打。 牙當時取禪板時。 豈不知翠微要打他。 也不得便道他不會。 為什麼卻過禪板與他。 且道當機承當得時。 合作麼生。 他不向活水處用。 自去死水裏作活計。 一向作主宰。便道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
그대들이 살피건대, 용아(龍牙)가 질문을 던지되, "조사께서 서래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취미가 "내게 선판을 가져오게." 하였고, 용아가 가져다 취미에게 주자, 취미가 받아 갑자기 때렸는데, 용아가 선판을 취했을 당시에 취미(翠微)가 그를 때릴 것을 어찌 몰랐을 것이며, 어쩔 수 없이 그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도리어 선판(禪板)을 건네 주었겠는가? 자 말해보라. 기회를 맞아 올라 탔을 때는 어찌해야 합당하겠는가? 그는 활수(活水*)를 향해 처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사수(死水*) 속에서 살아날 궁리를 지어 온전한 주재(主宰)로서 문득 "때리시려면 때리십시요만 그래도 '조사서래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活水와 死水; 活水는 源泉이 모여 흐르는 물, 死水는 정지되어 흐르지 않는 물이니,
활수는 살아나기 좋은 '안이한 관문'을, 사수는 '험난한 관문'에 비유한 말이다.
又走去河北參臨濟。 依前恁麼問。 濟云。與我過蒲團來。 牙過與濟。濟接得便打。 牙云。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且道二尊宿。又不同法嗣。 為什麼答處相似。用處一般。 須知古人。一言一句。 不亂施為。 他後來住院。有僧問云。 和尚當時見二尊宿。 是肯他不肯他。 牙云。肯則肯。 要且無祖師西來意。 |
또 하북으로 달려가서 임제(臨濟)를 참하고 전과 같이 그렇게 물었는데, 임제는 "내게 포단(蒲團)을 가져오게." 하는지라 용아가 가져다 주니, 받자마자 곧 후려쳤다. 용아는 "때리시려면 때리십시요만, 그래도 조사께서 서래하신 뜻은 없습니다." 하였다. 자 말해보라. 두 존숙은 법사(法嗣)가 같지 않은데도 어째서 답처(答處)가 비슷하고 용처(用處)가 한가지인가? 모름지기 고인의 일언일구는 일사불란하게 시위(施為;발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후에 와서 선원에 머물 때, 어떤 승(僧)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두 존숙을 뵈었을 당시에 그 분들을 긍정하십니까, 긍정하지 않습니까?" 용아는 "긍정하기야 곧 긍정하지만, 그래도 조사서래의는 없었소," 하였다. |
爛泥裏有刺。放過與人。 已落第二。 這老漢把得定。 只做得洞下尊宿。 若是德山臨濟門下。 須知別有生涯。 若是山僧則不然。 只向他道。肯即未肯。 要且無祖師西來意。 |
고운 흙 속에 있는 가시를 남에게 넘겨준 셈이니, 이미 제2의(第二義)에 떨어진 것이다. 이 늙은이가 파주(把住)로 득정(得定*)하여 다만 조동종(曹洞宗) 문하의 존숙이 되었으나, 만일 덕산(德山)이나 임제(臨濟)의 문하였다면 다른 생애(生涯)가 있었을 것임을 알아야 하거니와, 나[山僧]라면 그렇게 하지 않고 다만 그에게 "긍정이 곧 부정이지만 그래도 조사서래의는 없다"고 말하겠다. |
*得定; 三三昧와 三解脫門.
*洞下; 曹洞宗 門下.
不見僧問大梅。 如何是祖師西來意。 梅云。西來無意。 鹽官聞云。 一箇棺材。兩箇死漢。 玄沙聞云。鹽官是作家。 雪竇道。三箇也有。 只如這僧問祖師西來意。 卻向他道西來無意。 爾若恁麼會。 墮在無事界裏。 所以道。 須參活句。莫參死句。 活句下薦得。永劫不忘。 死句下薦得。自救不了。 |
보지 못했는가? 승(僧)이 대매(大梅*)에게 "조사가 서래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대매는 "서래(西來)에 뜻이 없다." 하였는데, 염관(鹽官*)이 듣고 이르되, "한 개의 관(棺)에 두 개의 죽은 놈[死漢]이다." 하였고, 현사가 "염관이 작가로구나." 하니, 설두는 "세 개가 있구나." 하였다. 다만 '저 승이 조사가 서래하신 뜻을 물으니 그를 향해 서래에 뜻이 없다고 한 것이다'고 너희가 만약 이렇게 이해한다면 한가한 경계[無事界]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덕산(德山)이 말하기를,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하고 사구(死句)를 참하지 말라. 활구 하에서 찾아 얻으면[薦得] 영겁토록 잊지 않겠지만 사구 하에서 천득하려 하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
*大梅; 明州大梅山法常禪師(馬祖道一 法嗣)
*鹽官; 杭州鹽官海昌院齊安國師( " ).
*活句와 死句; 五燈會元卷第十五 鼎州德山緣密圓明禪師 章에
「但參活句。莫參死句。活句下薦得。永劫無滯。
一塵一佛國。一葉一釋迦。是死句。揚眉瞬目。舉指竪拂。是死句。山河大地。更無誵訛。是死句。」
龍牙恁麼道。不妨盡善。 古人道相續也大難。 他古人一言一句。 不亂施為。前後相照。 有權有實。有照有用。 賓主歷然。互換縱橫。 若要辨其親切。 龍牙雖不昧宗乘。 爭柰落在第二頭。 當時二尊宿。索禪板蒲團。 牙不可不知他意。 是他要用他胸襟裏事。 雖然如是。不妨用得太峻。 龍牙恁麼問。二老恁麼答。 為什麼卻無祖師西來意。 到這裏 須知別有箇奇特處。 雪竇拈出令人看。 |
용아가 그렇게 말한 것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 않을 수 없고, 고인도 상속(相續)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였다. 그 고인의 일언일구(一言一句)가 불란(不亂)하게 발휘[施為]되고 전후(前後)가 서로를 비추니, 권(權)도 실(實)도 있고, 조(照)도 용(用)도 있으며, 빈(賓)과 주(主)가 역연(歷然)하여 호환(互換)이 자유롭다. 그것을 더 가까이 헤아려보건대 용아는 비록 종승(宗乘)에 어둡지는 않았더라도 제2두(第二頭)에 떨어져 있음을 어찌 하겠는가? 두 존숙이 선판과 포단을 찾았을 당시에 용아가 그 뜻을 몰랐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 이는 그가 저 분들 흉금 속의 일을 쓰려 했던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그 씀[用]이 몹시 고준하여 마지 않다. 용아가 그렇듯 묻고, 두 노인이 그렇게 답했는데, 어째서 도리어 조사서래의가 없는 것인가? 이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다른 어떤 기특한 곳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 설두가 염출(拈出)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살피게 하였다. |
龍牙山裏龍無眼 (瞎。謾別人即得。 泥裏洗土塊。天下人總知) 死水何曾振古風 (忽然活時無奈何。 累及天下人出頭不得) 禪板蒲團不能用 (教阿誰說。 爾要禪板蒲團作什麼。 莫是分付闍黎麼) 只應分付與盧公 (也則分付不著。 漆桶莫作這般見解) |
용아산(龍牙山) 속의 용은 눈이 없거늘 (눈먼놈이 남을 기왕 속였지만 진흙탕 속에 흙덩이 씻기임을 천하인이 다 안다.) 사수(死水)가 어찌 일찍이 고풍(古風)을 떨쳤으리오? (홀연히 살아날 때는 어쩔 수 없이 누(累)가 천하인에게 미쳐 면목 없게 되리라.) 선판(禪板)도 포단(蒲團)도 쓰지 못하거든 (누구더러 하는 말인가? 당신은 선판과 포단으로 무엇하려는가? 이것이 선생에게 분부한 것이 아닌가?) 다만 노공(盧公;나, 설두)에게 주도록 분부했어야 한다. (이야말로 분부가 잘못 되었다. 칠통<漆桶>아, 그런 견해를 짓지 말거라.) |
雪竇據款結案。 他雖恁麼頌。 且道意在什麼處。 甚處是無眼。甚處是死水裏。 到這裏須是有變通始得。 所以道。澄潭不許蒼龍蟠。 死水何曾有獰龍。 不見道。死水不藏龍。 若是活底龍。須向洪波浩渺 白浪滔天處去。 此言龍牙走入死水中去。 被人打。 |
설두(雪竇)는 법에 의거하여 판결[據款結案*]하고서 그가 비록 그렇게 송(頌)했는데, 말해보라.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어느 곳이 눈 없는 것이며, 어느 곳이 죽은 물 속인가? 이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변통(變通*)이 있어야 할 것이라 그래서 '맑은 못에서는 창룡(蒼龍*)이 못산다'고 하였거늘, 죽은 물에 어찌 일찍이 영룡(獰龍*)이 있었겠는가? 모르는가? '죽은 물에는 용이 숨어들지 않는 법이니, 만약 살아있는 용이라면 모름지기 큰 파도가 아득히 일고 흰 물결이 하늘에 닿는 곳을 향해 가야한다' 하였거니와, 이는 용아가 죽은 물 속으로 달려가니 때림을 당했음을 말한다. |
*據款結案; 법조항에 의거하여 판결하다.
*變通; 시세(時勢)의 변천에 순응하여 탄력있게 대처하는 능력.
*蒼龍; ①푸른 용 ②푸른빛 말 ③東方七宿(角,亢,氐,房,心,尾,箕)의 總稱 ④전설 속의 악신(惡神).
*獰龍; 사나운 용. 재지(才智)가 출중한 인물에 비유하는 말이다.
他卻道打即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招得雪竇道死水何曾振古風。 雖然如此。且道。 雪竇是扶持伊是減他威光。 人多錯會道。 為什麼。只應分付與盧公。 殊不知。 卻是龍牙分付與人。 大凡參請。須是向機上辨別。 方見他古人相見處。 |
그가 도리어 '때리시려면 때리십시요만 그래도 조사서래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므로써 설두가 '사수(死水)가 어찌 일찍이 고풍을 떨쳤으리오?'라고 말하게 하였다. 비록 그렇다지만 자 말해보라. 설두가 그의 위광(威光)을 북돋아 준 것인가, 감한 것인가? 사람들은 대개 잘못 알고서 어째서 노공(盧公)에게 주도록 분부했어야만 하느냐고 하는데, 전혀 모르는 것이고, 도리어 이는 용아가 사람들에게 주라고 분부한 것이다. 대체로 참청(參請)이란 모름지기 근기(根機) 위에서 판별해야 비로소 저 고인들이 상견(相見)한 곳을 보는 것이다. |
禪板蒲團不能用。 翠微云。與我過禪板來。牙過與他。 豈不是死水裏作活計。 分明是駕與青龍。 只是他不解騎。是不能用也。 只應分付與盧公。 往往喚作六祖非也。 不曾分付與人。 若道分付與人要用打人。 卻成箇什麼去。 昔雪竇自呼為盧公。 他題晦跡自貽云。 圖畫當年愛洞庭。 波心七十二峰青。 而今高臥思前事。 添得盧公倚石屏。 雪竇要去龍牙頭上行。 又恐人錯會。 所以別頌要剪人疑解。 雪竇復拈云。 |
'선판도 포단도 쓰지 못하거든'이라 하였는데, 취미(翠微)가 '내게 선판을 건네다오' 하자, 용아가 건네주었으니, 어찌 이것이 사수(死水) 속에 활계(活計)를 짓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이것은 청룡(青龍)을 붙들어다 주어도 탈 줄을 모르니 쓸모가 없을 것이라 다만 노공(盧公)에게 주도록 분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왕 노공이 육조(六祖; 혜능)라고 하지만 아니다. (육조께서는) 사람들에게 주라고 분부하신 적이 없다. 만약 사람들에 주어서 남을 때리는 데 쓰라고 분부하셨다면 도리어 어떻게 되었겠는가? 설두가 자신을 노공(盧公)으로 부른 적이 있는데, 그는 〈회적자이(晦跡自貽*)〉라는 시제(詩題)에서 말했다. 「그림을 그릴 당시에 동정호(洞庭湖)를 사랑했으니 물결 속에 칠십이 봉이 푸르렀었거니와, 오늘에 높이 누워 그때를 회상해보니 노공(盧公)이 곁들여져 바위병풍[石屏]에 기대어 있었네.」 설두가 용아의 뜻을 알고자 하고, 또 사람들이 잘못 이해할까 염려하였기에 그래서 별도의 송(頌)으로 사람들의 의아심을 덜어주고자 설두는 다시 염송(拈頌)하였다. |
*晦跡自貽; 자취를 감추고서(은거하여) 몸소 전하다.
這老漢。也未得勦絕。復成一頌 (灼然。能有幾人知。 自知較一半。賴有末後句) 盧公付了亦何憑 (盡大地討恁麼人也難得。 教誰領話) 坐倚休將繼祖燈 (草裏漢。打入黑山下坐。 落在鬼窟裏去也) 堪對暮雲歸未合 (一箇半箇。舉著即錯。果然出不得) 遠山無限碧層層 (塞卻爾眼塞卻爾耳。 沒溺深坑。更參三十年)。 |
이 늙은이가 아직 끝을 맺지 못하여 다시 송(頌)을 짓노니, (분명 몇 사람이나 알 수 있을까? 자기도 절반만 안다는 것을 말후구로 알 수 있다.) 노공(盧公)에게 분부하는 것 또한 어찌 신뢰하겠는가? (세상의 누구도 이런 사람을 토로하기 어렵거늘 누구더러 말하라고 하느냐?) 앉거나 기대어 조등(祖燈*)을 계승하려 하지 말라 (초리한<草裏漢>이로다. 흑산<黑山>에 들어 앉은 것이요, 귀굴<鬼窟>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저녁노을 지기 전에 대하여야 (거의 없다. 들추기만 하면 그르친 것이라 결국 그럴 수 없다.) 먼산이 무한히 겹겹으로 푸르리로다. (그대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려서 깊은 구덩이에 빠뜨렸거든 다시 30년은 참구해야 하리라.) |
*祖燈; 조사의 전법등(傳法燈).
*草裏漢; 禪林用語。풀 속 미로에 빠져있는 놈, 즉 第二義門에 빠져있는 사람.
*黑山; 〈俱舍論〉 11卷에 의하면 남섬부주 북방 세 곳에 각각 세 겹의 깜깜한 흑산이 있어
그 안에 악귀들이 살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집착된 정식(情識)과 분별작용에 비유한다.
盧公付了亦何憑。 有何憑據。 直須向這裏恁麼會去。 更莫守株待兔。 髑髏前一時打破。 無一點事在胸中。 放教灑灑落落地。 又何必要憑。 或坐或倚。 不消作佛法道理。所以道。 坐倚休將繼祖燈。 雪竇一時拈了也。 |
노공(盧公)에게 분부하는 것 또한 어찌 신뢰하겠으며, 무슨 근거가 있겠는가? 결국 그 속을 향해 그렇듯 알아가고, 더는 불로소득을 기대[守株待兔*]하지 말며, 정식분별(情識分別)이 끊어지기 전에 한꺼번에 타파하여 아무 일도 흉즁에 없으면 바야흐로 쇄쇄락락(灑灑落落)한 지경에 이를 것이거늘 또 무슨 의지할 바가 필요하겠는가? 앉았거나 혹은 기대어서는 불법도리 짓기를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 그래서 말하기를, '앉거나 기대어 조등(祖燈)을 계승하려 하지 말라'고 설두는 일괄하여 염(拈)한 것이다. |
*直須; ①마땅히 ②결국, 마침내, 드디어, 아직.
*守株待兔; 나무를 지키며 토끼 걸리기[不勞所得]를 기다린다.
한 농부가 나무에 걸려 죽어있는 토끼를 얻은 뒤에 농사는 제쳐두고 나무 곁에서
토끼 걸리기를 기다렸으나 소득이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온 말.《韓非子의 五蠹》
*髑髏; 사람의 두골(頭骨). 情識分別이 끊어짐을 말한다.
他有箇轉身處。 末後自露箇消息。有些子好處道。 堪對暮雲歸未合。 且道雪竇意在什麼處。 暮雲歸欲合未合之時。 爾道作麼生。 遠山無限碧層層。 依舊打入鬼窟裏去。 到這裏得失是非。 一時坐斷灑灑落落。 始較些子。 遠山無限碧層層。 且道是文殊境界耶。 是普賢境界耶。是觀音境界耶。 到此且道 是什麼人分上事。 |
그에게는 이 몸 굴릴 곳[轉身處]이 있었기에 스스로 끝부분에 꽤 좋은 곳이 있는 한 소식을 드러내서 '저녁노을 지기 전에 대하여야'라고 말했는데, 말해보라. 설두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저녁노을이 아직 지지 않은 때가 그대들은 어느 때라고 말하겠는가? '먼산 무한히 겹겹으로 푸르다[遠山無限碧層層]'고 함은 여전히 귀굴(鬼窟)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거니와, 그 속에서 득실(得失)과 시비(是非)를 일시에 좌단(坐斷)하여 쇄쇄락락하여야 비로소 조금은 괜찮은 것이다. '먼산 무한히 겹겹으로 푸르름'은 말해보라. 이것이 문수(文殊)의 경계인가, 보현(普賢)의 경계인가, 관음(觀音)의 경계인가? 이 대목에서 또 말해보라. 이것이 누구의 분상사(分上事)겠는가? |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을수록 더욱 더 상응치 못할 것이요[多言多慮 轉不相應],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못할 곳이 없다[絕言絕慮 無處不通]」 《信心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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