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의존 선사는 「남산에 별비사(鱉鼻蛇)가 있다」는 화두를 던져
문하 長慶, 玄沙, 雲門의 통방안목(通方眼目) 갖춘 정도를 알아보았다.
장경은 그 위력을 전신으로 느낀다 하였고,
현사는 뱀의 독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니 굳이 남산까지 갈 필요 없다 하였으며,
운문은 주장자를 활용하여 행으로 그 자리에서 별비사 전체를 드러내 보였다.
*鼈鼻蛇; 鱉鼻蛇. 머리에 거북등무늬가 있는 독사.
垂示云。 | 시중(垂示)하여 말했다. |
大方無外細若鄰虛。 擒縱非他。卷舒在我。 必欲解粘去縛。 直須削跡吞聲。 人人坐斷要津。 箇箇壁立千仞。 且道是什麼人境界。 試舉看。 |
대방(大方*)은 바깥이 없고 미세하기는 인허(鄰虛*)같거니와, 금종(擒縱*)이 남의 것이 아니요, 권서(卷舒*)가 내게 있는지라 꼭 해점거박(解粘去縛*)해야 하겠거든 곧바로 삭적탄성(削跡吞聲*)하고서 개개인이 요진(要津*)을 좌단(坐斷)해야 저마다 벽립천인(壁立千仞*)할 터인데, 자 말해보라. 이것이 누구의 경계인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大方; 大家, 大地, 시원스럽다, 거침없다, 대범하다. 여기서는 '크고 넓은 경지, 즉 깨달음의 경지'를 뜻한다.
*鄰虛; '허공에 가까운', 極微. 색법(色法)의 最極少分을 말한다.
數法의 極少分은 우파니살담(鄔波尼殺曇;Upaniṣada)이라 한다.
楞嚴經三曰:《首楞嚴經》권3에 佛께서 아난에게
「네가 보건대 지(地)의 성품은 큰 것은 대지요 적은 것은 미진이거니와
허공에 가까운 티끌[隣虛塵]이 되도록 그것을 지극히 미세하게 쪼개면
색의 마지막 모습[邊際相]은 일곱 부분으로 나뉘어질 것이요,
다시 허공에 가깝게 쪼개면 실제 허공의 성품일 것이라,
아난아, 만약 이 인허를 쪼개서 허공을 이루는 것이라면
마땅히 알아라, 허공이 색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汝觀地性。麤為大地細為微塵。至鄰虛塵析彼極微。色邊際相七分所成。更析鄰虛即實空性。
阿難若此鄰虛析成虛空。當知虛空出生色相。)」라 하셨다. *擒縱과 卷舒; 둘 다 '붙잡고[把住] 놓아준다[放行]'는 뜻이니, 학인을 대하는 스승의 두 가지 교학법을 말한다.
*解粘去縛; 거점해박(去粘解縛). 身上의 粘縛을 제거한다는 뜻.
禪林에서는 '煩惱執著을 풀어 없앰으로써 自在無礙한 경지에 도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削跡吞聲; 소성닉적(消聲匿跡). 종적을 감추어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要津; 중요한 나들목. 生死의 바다를 건너는 데에 중요한 길목.
*壁立千仞; 벽(壁)이 천 길의 높이로 세워지다.
7~8척(尺)이 1인(仞)이다 하니 암벽이 지극히 높게 우뚝 솟은 모양, 즉 고준한 경지를 뜻한다.
【二二】舉 | 【제22칙】 설봉선사의 별비사(鱉鼻蛇) |
雪峰示眾云。 南山有一條鱉鼻蛇 (見怪不怪。其怪自壞。 大小大怪事。不妨令人疑著) 汝等諸人。切須好看 (㘞。一場漏逗) 長慶云。 今日堂中。大有人喪身失命 (普州人送賊。 以己方人) 僧舉似玄沙 (同坑無異土。 奴見婢殷勤。 同病相憐) 玄沙云。須是稜兄始得。 雖然如此。我即不恁麼 (不免作野狐精見解。 是什麼消息。毒氣傷人) 僧云。和尚作麼生 (也好拶著這老漢) 玄沙云。用南山作什麼 (釣魚船上謝三郎。 只這野狐精。猶較些子。 喪身失命也不知) 雲門以拄杖。攛向雪峰面前。 作怕勢 (怕他作什麼。 一子親得。一等是弄精魂。 諸人試辨看)。 |
설봉(雪峰)이 시중(示眾)하여 이르기를, "남산(南山)에 한 마리 별비사(鱉鼻蛇)가 있으니 (괴이한 것을 괴이치 않게 보면 그 괴이함이 없어지지만 크고 작은 몹시 괴이한 일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의혹케 한다.) 너희는 꼭 살펴보기 바란다."고 하자, (쯧쯧! 한바탕 누두<漏逗;의도적 실수>로구나.) 장경(長慶)은 "오늘 법당 안에 많은 사람이 죽겠구나." 하였다. (보주<普州;도적이 모여살던 곳>사람이 도적을 압송한다니, 자신을 사람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어느 중이 이 일을 현사(玄沙)에게 들추었더니, (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 없다. 사내 종이 계집 종을 은근히 보고, 같은 병 앓는 사람이 서로 애처로워하는 격이다.) 현사는 "모름지기 그래야 능형(長慶慧稜)이겠지만, 그렇더라도 나라면 그리하지 않겠다." (야호정<野狐精> 견해 짓기를 면치 못했다. 이것이 무슨 소식이냐? 독기운이 사람을 상하는구나.) 그 중이 "화상(和尚)은 어찌 하시렵니까?" 하니, (그야말로 이 늙은이를 잘 내질러 주었다.) 현사는 "남산은 써서 무엇하겠느냐?" 하였고, (낚싯배에 오른 사삼랑<謝三郎;현사>인지라 다만 이 야호정<野狐精>이 꽤 괜찮았으나 목숨을 잃게 될 줄은 모른 것이다.) 운문(雲門)은 주장자를 설봉 면전에 내던지며 두려워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를 두려워해서 뭐하겠는가? 아들 하나 얻은 것이 일등가는 농정혼<弄精魂>인지 여러분이 판단해보기 바란다.)。 |
玄沙師備(835~908), 長慶慧稜(854~932), 雲門文偃(864~949)은 雪峰義存의 제자들이다.
*須是; ①반드시 ~해야 한다. ②아마(대개) ~일 것이다.
원오극근의 [평창(評唱)] | |
爾若平展一任平展。 爾若打破一任打破。 雪峰與巖頭欽山同行。 凡三到投子九上洞山。 後參德山。方打破漆桶。 |
그대가 평전(平展*)하겠다면 평전하게 하고, 타파(打破*)하겠다면 타파하도록 맡겨두겠다. 설봉(雪峰*)은 암두(巖頭*)와 함께 흠산(欽山)으로 가서 투자(投子*)를 세 번, 동산(洞山*)을 아홉 번 참했고, 후에 덕산(德山*)을 참하고서야 비로소 칠통(漆桶)을 타파했다. |
*平展; 평평히(널리) 展開하다.
*德山宣鑒(782~865;龍潭崇信法嗣), 洞山良价(807~869;雲巖曇晟法嗣), 投子大同(819~914;翠微無學法嗣);
세 분은 모두 青原下四世이고,
雪峰義存(822~908)과 巖頭全奯는 德山宣鑒 문하의 同鄉, 同學으로 설봉이 암두를 '師兄'이라 불렀다.
〈설봉의존어록〉에 기술된 이 설화에 의하자면 설봉은 덕산의 법을 이었다지만
사실상 그의 스승은 덕산이 아니라 사형인 암두인 셈이다.
실제로 어느 중이 "덕산에게서 무엇을 얻었는가?" 묻자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하였다.
물론 그런 뜻의 말은 아니지만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겠다.
一日率巖頭訪欽山。 至鰲山店上阻雪。 巖頭每日只是打睡。雪峰一向坐禪。 巖頭喝云。 噇眠去。每日床上。 恰似七村裏土地相似。 他時後日。魔魅人家男女去在。 峰自點胸云。 某甲這裏未穩在。 不敢自瞞。 頭云。我將謂爾已後。向孤峰頂上。 盤結草庵。播揚大教。 猶作這箇語話。 峰云。某甲實未穩在。 頭云。爾若實如此。 據爾見處。一一通來。 是處我與爾證明。 不是處與爾鏟卻。 峰遂舉見鹽官 上堂舉色空義。 得箇入處。 頭云。此去三十年。切忌舉著。 峰又舉。見洞山過水頌。 得箇入處。 頭云。若與麼自救不了。 |
하루는 암두를 따라 흠산을 참방가다가 오산(鰲山)의 한 점포에 이르러 눈에 길이 막혔는데, 암두는 매일 잠만 잤고, 설봉은 오로지 좌선만 했다. 암두가 일할(喝)하여 이르기를, "잠이나 푹 자지 매일 선상(床上)에 흡사 칠촌(七村*) 속 토지신처럼 있다가는 어느 훗날 인가(人家)의 남녀를 홀리러 가 있을 것이네." 하니, 설봉은 제 가슴을 가리키며 "나는 이 속이 아직 안온(安穩)치 못함을 감히 스스로 속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나는 자네가 이후에 고봉정상(孤峰頂上)을 향해 초암(草庵)을 짓고서 큰 가르침을 드날리리라 하려 했더니 도리어 그런 말을 하는구나." "나는 실제로 아직 안온치 못합니다." "자네가 실제로 그러하다면 자네의 견처(見處)를 낱낱이 소통해 와보게. 옳은 곳은 내가 자네에게 증명해주고, 그른 곳은 깎아내려 주겠네." 설봉이 이윽고 염관(鹽官*)이 상당(上堂)하여 거론한 '색(色)이 공(空)한 이치'를 보고 어떤 입처(入處)를 얻었던 일을 들추자, 암두는 "이는 30년 지난 일이니, 절대 거론하지 말게나." 하였다. 설봉이 또 동산(洞山)선사의 「과수송(過水頌*)」을 보고 어떤 입처를 얻었노라고 하자, 암두는 "그렇다면 자신을 구제하지 못한 것이네." 하였다. |
*七村; 일곱 부락이 모여있는 작은 시골, 산골마을.
*噇眠; 噇은 貪吃의 뜻이니, 噇眠은 貪睡(잠자기를 탐하다).
*鹽官; 杭州鹽官海昌院齊安國師(馬祖道一 法嗣)
*過水頌; 洞山過水悟道頌. 洞山良价가 스승 雲巖曇晟을 하직하고 나서서 개울을 건너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읊은 偈頌.
「절대 다른 데서 찾지 말자. 나와는 까마득히 먼 일이다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나는 이제 홀로 떠나 곳곳에서 거(渠;大,眞如)를 만날 것이로되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거(渠)가 지금 바로 나지만 나는 지금 거(渠)가 아니니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마땅히 꼭 그렇게 알아야 비로소 여여(如如)에 계합될 것이다. (應須恁麼會 方得契如如)」
後到德山。 問從上宗乘中事。 學人還有分也無。 山打一棒。道什麼。 我當時如桶底脫相似。 頭遂喝云。 爾不聞道。從門入者。 不是家珍。 峰云。他後如何即是。 頭云。他日若欲播揚大教。 一一從自己胸襟流出將來。 與我蓋天蓋地去。 峰於言下大悟。便禮拜。 起來連聲叫云。 今日始是鰲山成道。 今日始是鰲山成道。 |
"그 뒤에 덕산(德山)에게 가서 '위로부터 전해 온 종승(宗乘) 중의 일에 제가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덕산이 한 방(棒)을 후려치고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하셨는데, 나는 당시에 칠통 밑바닥이 떨어져나간 듯 하였습니다." 하자, 암두가 이윽고 일할(喝)을 하여 말했다. "자네는 '문으로부터 들어온 것은 가문의 보배가 아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설봉이 "그 뒤에는 어찌해야 옳겠습니까?" 하니, 암두는 "그날에 만일 큰 가르침을 펼치려거든 낱낱이 자기 흉금(胸襟)으로부터 장래가 유출되어야 자신에게 개천개지(蓋天蓋地*)가 주어질 것이네." 하였다. 설봉은 그 말 끝에 대오(大悟)하여 곧 예배하고서 일어나 연거푸 외쳐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오산(鼇山)에서 도(道)를 이뤘네. 오늘에야 비로소 오산에서 도를 이뤘네." |
*蓋天蓋地; 普天普地. 온 천지를 덮다. 온 천지에 널리 퍼지다. '의기(意氣)가 우주에 充滿함'을 뜻한다.
後回閩中住象骨山。 自貽作頌云。 人生倏忽暫須臾。 浮世那能得久居。 出嶺纔登三十二。 入閩早是四旬餘。 他非不用頻頻舉。 已過應須旋旋除。 奉報滿朝朱紫貴。 閻王不怕佩金魚。 |
후에 민중(閩中;福建省)으로 돌아와 상골산(象骨山)에 머물면서 스스로 송(頌)을 지어 남겼다. 「인생은 매우 빨라서 잠깐의 순간이거늘 뜬세상에서 어찌 오래 살아지리오? 영(嶺)을 나설 때 겨우 서른 둘(나이)이었는데 민중(閩中)에 들어오니 이미 4순(四旬)이 넘었구나. 남의 잘못을 번번히 들추려 말고 이왕의 허물은 응당 선선히 없앨지어다. 조정(朝廷) 가득한 고관(高官;朱紫貴*)들에게 이르노니 염라대왕은 금어(金魚*) 찬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
*朱紫貴; 붉은 자색 관복을 입은 귀인. 즉 高官.
*金魚; 古代 官僚들이 증표로 허리에 찼던 황금빛 물고기형 장식물.
凡上堂示眾云。 一一蓋天蓋地。 更不說玄說妙。亦不說心說性。 突然獨露。如大火聚。 近之則燎卻面門。 似太阿劍。擬之則喪身失命。 若也佇思停機。則沒干涉。 只如百丈問黃檗。甚處去來。 檗云。大雄山下採菌去來。 丈云。還見大蟲麼。 檗便作虎聲。 丈便拈斧作斫勢。 檗遂打百丈一摑。 丈吟吟而。 笑便歸陞座謂眾云。 大雄山有一大蟲。 汝等諸人。切須好看。 |
무릇 상당하면 이렇게 시중해 말했다. 「저마다 개천개지(蓋天蓋地)라면 다시 현묘(玄妙)나 심성(心性)을 설명하지 않아도 돌연 홀로 드러냄이 큰 불덩이와 같아서 가까이 한 즉 얼굴이 타버릴 것이요, 태아검(太阿劍) 같아서 닿은 즉 목숨을 잃을 것이며, 생각에 잠겨 영기(靈機)를 멈춘 즉 어떤 간섭도 없어질 것이라서 다만 백장(百丈)이 황벽(黃檗)에게 '어디 갔다 오느냐?' 하니, '대웅산(大雄山) 밑 버섯캐러 갔다 옵니다.' '그러면 호랑이[大蟲;老虎]를 봤느냐?' 황벽이 곧 호랑이 소리를 내니, 백장이 도끼를 들고 찍을 자세를 취했는데, 황벽이 이윽고 백장에게 일장(掌;摑)을 먹이자, 백장이 신음소리를 내더니 웃고 돌아서 법좌에 올라 대중들에게 '대웅산에 한 마리 호랑이가 있으니, 여러분들은 간절히 꼭 살피기 바란다.'고 한 것과 같을 것이다. |
老僧今日。 親遭一口趙州凡見僧 便問曾到此間麼。 云曾到。或云不曾到。 州總云喫茶去。 院主云。和尚尋常問僧。 曾到與不曾到。總道喫茶去。 意旨如何。 州云。院主。主應諾 州云。喫茶去。 |
노승(老僧)이 오늘 조주(趙州)가 스님들을 볼 때마다 '이 사이[此間]에 도달한 적 있는가?'하고 물어서 도달했다거나 혹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거나 간에 조주는 모두 '차나 마시거라'고 하니, 원주(院主)가 '화상께서는 통상 중들에게 물어서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하고에 다 차나 마셔라고 하시는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니, 조주가 '원주!' 하고 불렀고, 원주가 대답하자, 조주는 '차나 마시게.' 하였던 한 구절[一口;喫茶去]을 몸소 겪었다. |
紫胡門下立一牌。 牌上書云。紫胡有一狗。 上取人頭。中取人腰。 下取人腳。 擬議則喪身失命。 或新到纔相看。師便喝云。 看狗。僧纔回首。 師便歸方丈。 正如雪峰道。南山有一條鱉鼻蛇。 汝等諸人切須好看。 |
자호(紫胡)선사는 문하(門下)에 한 패(牌;標札)를 세우고서 패 위에다 쓰기를, 「자호에 개 한 마리가 있어 위는 사람 머리고, 가운데는 사람 허리에, 아래도 사람 발을 하고 있는데, 머뭇거린[擬議*] 즉 목숨을 잃는다.」 하고서, 신참이 오기만 하면 선사는 느닷없이 "개를 봐라!"고 일갈하여 그 중이 돌아보거든 선사는 곧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는데, 바로 설봉(雪峰)이 '남산에 한 마리 별비사가 있으니, 여러분은 꼭 잘 살피기 바란다'고 한 것과 같다. |
*擬議; 입안(立案)하다, 기초(起草)하다는 뜻으로 '요리조리 궁리하는 모양새'를 말한다.
正當恁麼時。爾作麼生祇對。 不躡前蹤。試請道看。 到這裏也須是會格外句始得。 一切公案語言。舉得將來。 便知落處。 看他恁麼示眾。 且不與爾說行說解。 還將情識測度得麼。 是他家兒孫。自然道得恰好。 所以古人道。 承言須會宗。 勿自立規矩。 言須有格外。 句須要透關。 若是語不離。窠窟。 墮在毒海中也。 |
정히 이러한 때를 당하여 그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겠는가? 앞서의 발자취를 밟지 말고 시험삼아 답해보기 바란다. 이 속에 이르러는 모름지기 격외구(格外句)를 알아야 어떤 공안(公案)의 언어가 들춰져 오더라도 곧 해답[落處]을 알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시중(示眾)을 살피건대, 그대들에게 행해(行解*)를 더 말해주지 않아도 도리어 정식(情識)으로 헤아려지겠는가? 이는 그의 가손(家孫)들이라서 자연 말이 비슷[恰好*]해진 것이라 그래서 고인[石頭希遷]이 말하기를, '말씀을 받들어 모름지기 종지(宗旨)를 알고, 스스로 규구(規矩)를 세우지 말라' 하였으니, 언(言)에는 모름지기 격외(格外)가 있어야 하고, 구(句)에는 반드시 투관(透關)이 필요하거늘 만일 말이 과굴(窠窟)을 벗어나지 못하면(틀에 갇혀만 있다면) 독바다[毒海]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
*行解; '마음이 떠돌며 경계를 대하는 작용'을 행해(行解)라 하고, 그 행태를 행상(行相)이라 한다.
*恰好; 正好, 正當. '꼭 알맞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좋게 비슷하다'로 해석함이 옳을 듯.
雪峰恁麼示眾。 可謂無味之談。塞斷人口。 長慶玄沙。皆是他家屋裏人。 方會他恁麼說話。 只如雪峰道南山有一條鱉鼻蛇。 諸人還知落處麼。 到這裏須是具通方眼始得。 不見真淨有頌云。 打鼓弄琵琶。相逢兩會家。 雲門能唱和。長慶解隨邪。 古曲無音韻。南山鱉鼻蛇。 何人知此意。端的是玄沙。 只如長慶恁麼祇對。 且道意作麼生。 到這裏如擊石火。似閃電光。 方可搆得。 若有纖毫去不盡。 便搆他底不得。可惜許。 |
설봉의 이러한 시중은 의미없는 얘기로 사람의 입을 막아버렸다 할 만하거니와, 장경과 현사는 다 그의 집안 사람이니 이런 설화들을 모두 알아듣겠지만 설봉의 '남산에 한 마리 별비사가 있다'와 같은 말만이라도 여러분들은 진의(眞意)를 안다고 하겠는가? 이 속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통방안(通方眼*)을 갖춰야 한다. 보지 못했는가, 진정(眞淨*)이 송으로 이르기를, 「북을 치고 비파를 퉁기면서 서로 만나 두 대가가 모여서 운문은 창화(唱和*)에 능했고 장경은 수사(隨邪*)를 알았으되 〈옛 곡(古曲)에 음운(音韻) 없음*〉이 남산의 별비사인 것을 누가 이 뜻을 알았을까? 단적으로 이 현사(玄沙)로다. 」 하였으니, 다만 장경(長慶)이 대꾸한 말들과 같은데, 자 말해보라. 뜻이 무엇인가? 이 속에 이르러는 석화(石火) 튀고 전광(電光) 번쩍이듯 하여야 비로소 이루어 얻겠지만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남아있어서 다하지 못하면 곧 그 저변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 애석하다. |
*通方眼; 팔방으로 능통한 안목.
*眞淨(1025~1102); 隆興府寶峯克文雲庵真淨禪師(黃龍慧南 法嗣) 南嶽下 12世.
北宋 臨濟宗黃龍派僧, 俗姓은 鄭氏, 號 「雲庵」, 賜號 「真淨」, 世稱 「眞淨克文」.
*唱和; 노래에 맞춰 흥을 돋우기.
*隨邪; '그릇됨(邪)을 쫓는다'는 '설봉의 잘못에도 순응함'을 의미한다.
*古曲無音韻; '남산의 별비사'란 '음운을 여읜 노래와 같은 것'이라는 말.
人多向長慶言下生情解。 道堂中纔有聞處。便是喪身失命。 有者道。元無一星事。 平白地上說這般話疑人。 人聞他道南山有一條鱉鼻蛇 爾便疑著。 若恁麼會。且得沒交涉。 只去他言語上作活計。 既不恁麼會。又作麼生會。 |
사람들은 흔히 장경의 말에 정해(情解)를 내서 "법당 안 사람들이 듣기만 하면 곧 목숨을 잃는다"고 말하거나, 어떤 자들은 "원래 일성사(一星事*)도 없는 것을 공연히[平白地上] 이런 얘기를 해서 사람을 의혹시키니, 사람들이 그의 남산에 한 마리 별비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문득 의혹을 갖는 것이다"고 하는데, 이렇게 안다면 또한 아무런 교섭이 없거니와, 다만 그의 언어 상에서 활계(活計)를 지어가는 것이다. 기왕 그렇게 알아서 안 된다면 또 어떻게 알아야 하겠는가? |
*一星事; 星은 저울의 눈금. '저울 한 눈금처럼 작고 미세한 일'을 뜻하는 禪林用語이다.
古人道。釣魚船上謝三郎。 不愛南山鱉鼻蛇。 卻到雲門。 以拄杖攛向雪峰面前作怕勢。 雲門有弄蛇手腳。不犯鋒鋩。 明頭也打著。暗頭也打著。 他尋常為人。如舞太阿劍相似。 有時飛向人眉毛眼睫上。 有時飛向三千里外取人頭。 雲門攛拄杖作怕勢。 且不是弄精魂。 他莫也是喪身失命麼。 作家宗師。終不去一言一句上作活計。 雪竇只為愛雲門契證得雪峰意。 所以頌出。 |
설봉은 "표어선상(釣魚船上*) 상의 사삼랑(謝三郎*)은 남산 별비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도리어 운문은 주장자를 설봉에게 던지며 두려워하는 자세를 짓기에 이르렀는데, 운문은 뱀을 가지고 놀 수단이 있어서 서슬[鋒鋩]을 건드리지 않고도 나온 머리든 숨은 머리든 때려잡았으니 그의 평상시 사람을 위함이 태아검으로 춤을 추듯이 어느 때는 사람의 눈썹과 속눈썹 위로 날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삼천리 밖으로 날아 사람의 머리를 취했던 것이다. 운문이 주장자를 던지며 두려워한 것은 다만 부질없이 심사(心思)를 낭비한 것이 아니거늘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이것이 상신실명이겠는가? 작가종사는 결코 일언일구 상에서 활계(活計)를 지어가지 않는다. 설봉은 다만 운문이 설봉의 뜻에 맞게 증득한 것을 아꼈는지라 그런 뜻에서 이렇게 송출(頌出)하였다. |
*釣魚船上; 낚싯배에 오른. 낚시를 드리워 놓고 學人 걸려들기를 기다려 낚아서 교화하는 초월경지.
*謝三郎; 玄沙는 謝씨 가문의 셋째 아들이었기에 謝三郎이라고 불렸다.
象骨巖高人不到 (千箇萬箇摸索不著。非公境界) 到者須是弄蛇手 (是精識精是賊識賊。 成群作隊作什麼。 也須是同火始得) 稜師備師不柰何 (一狀領過。放過一著) 喪身失命有多少 (罪不重科。帶累平人) 韶陽知 (猶較些子。這老漢只具一隻眼。 老漢不免作伎倆) 重撥草 (落草漢有什麼用處。 果然在什麼處。便打) |
상골암(象骨巖)은 높아 사람이 이르지 못하니, (어느 누구도 모색하지 못하니,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이르려거든 모름지기 농사수(弄蛇手)라야 하기에 (정령<精靈>이 정령을 알고 도적이 도적을 아는 것이다. 무리로 떼를 지어서 무엇하리오만 그러나 반드시 동화<同火*>라야 한다.) 장경, 현사도 어쩌지 못해 (몽땅 같은 죄로 다스려야겠지만 한 수 봐주겠다.) 목숨 잃는 일이 많고 적었건만, (죄를 거듭 묻지 않겠지만 일반인들에게 누를 끼쳤다.) 소양(韶陽;雲門)은 (꽤 괜찮은 편이다. 이 늙은이만 일척안<一隻眼>을 갖췄으니 이 늙은이가 어쩔 수 없이 기량<伎倆>을 펼쳤다.) 아무리 풀섶을 헤쳐봐도 (보잘 것 없는 놈인데 어디에 쓰겠는가마는 과연 어디에 있더냐? 문득 후려치다.) |
南北東西無處討 (有麼有麼。闍黎眼瞎) 忽然突出拄杖頭 (看高著眼。便打) 拋對雪峰大張口 (自作自受。 吞卻千箇萬箇濟什麼事。 天下人摸索不著) 大張口兮同閃電 (兩重公案。果然。賴有末後句) 剔起眉毛還不見 (蹉過了也。五湖四海。 覓恁麼人也難得。如今在什麼處) 如今藏在乳峰前 (向什麼處去也。 大小雪竇也作這去就。 山僧今日。也遭一口) 來者一一看方便 (瞎。莫向腳跟下看。 看取上座腳跟下。著一箭了也) 師高聲喝云。看腳下 (賊過後張弓。 第二頭第三頭。重言不當吃) |
남북동서(南北東西)에도 찾을 수 없음을 알기에, (있더냐? 있어? 선생은 눈이 멀었구먼.) 느닷없이 주장자 끝을 내밀어 (높은 곳을 보거라! 문득 후려치다.) 설봉에게 내던지며 입을 크게 벌렸으니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다. 천개 만개를 삼켜본들 무슨 일을 건지겠는가? 천하인이 모색하지 못한다.) 크게 벌린 입이 번개처럼 빠르리라. (양중공안이다. 과연, 믿음직스러운 말후구<末後句>로다.) 눈썹을 치켜 떠도 도리어 보이지 않지만 (틀렸다. 오호사해<五湖四海>에서 그런 사람 찾아봐도 얻기 어려운데, 지금 어디 있겠느냐?) 지금 유봉(乳峰) 앞에 숨겨져 있으니 (어디로 가느냐? 크고 작은 설두가 그 길로 나아가는데, 산승이 오늘 일구<一口*>를 만났구나.) 오는 자는 낱낱이 방편을 찾아볼지어다. (눈먼 놈아, 설두 발꿈치 밑을 보지말고, 그대[上座]의 발꿈치 밑을 보라. 화살을 꽃았다.) 선사는 큰 소리로 일갈했다. "발 밑을 봐라!" (도적 지나간 뒤에 활 당긴 격이다. 두번 째 세번 째 거듭된 말을 씹으면 안 된다.) |
象骨巖高人不到。 到者須是弄蛇手。 雪峰山下有象骨巖。 雪峰機鋒高峻。 罕有人到他處。 雪竇是他屋裏人。毛羽相似。 同聲相應。同氣相求。 也須是通方作者共相證明。 只這鱉鼻蛇。也不妨難弄。 須是解弄始得。 若不解弄反被蛇傷。 五祖先師道。此鱉鼻蛇。 須是有不傷犯手腳底機。 於他七寸上。一捏捏住。 便與老僧把手共行。 長慶玄沙。有這般手腳。 雪竇道。稜師備師不柰何。 人多道長慶玄沙不柰何。 所以雪竇獨美雲門。 且得沒交涉。 殊不知三人中。機無得失。 只是有親疏。 |
'상골암은 높아서 사람이 이르지 못하나니 이르려면 모름지기 뱀을 희롱하는 수완가라야 한다'. 상골암은 설봉산(雪峰山) 아래에 있는데, 설봉선사의 기봉(機鋒)이 고준(高峻)하여 그 자리에 이를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설두(雪竇)도 그 집안 사람이라 모우상사(毛羽相似*)하니, 동성상응(同聲相應*) 동기상구(同氣相求*)이지만 반드시 통방작자(通方作者)인지 서로 증명해봐야 한다. 다만 이 별비사는 희롱하기 어려워마지 않기에 반드시 이를 희롱할 줄 알아야 하거니와, 만일 희롱하지 못하면 반대로 뱀에게 상처를 입는다. 오조(五祖) 선사(先師)께서 "이 별비사는 모름지기 상처입지 않을 수단과 어떤 기틀이 있어서 뱀의 일곱 치[七寸] 위를 단번에 꽉 눌러 거머쥐어야 문득 노승과 더불어 손을 맞잡고 동행할수 있다"고 하셨는데, 장경과 현사는 이런 수단이 있었는지라 설두가 '능사(稜師) 비사(備師)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였건만 사람들은 흔히 '장경과 현사도 어쩌지 못했으니, 그래서 설두는 유독 운문만 찬미(讚美)한 것이다'고 하는데, 이 또한 아무런 연관이 없거니와, 세 사람 가운데는 기봉에 높고 낮음[得失]이 없고 다만 여기에 가깝고 멀고[親疏]가 있을 뿐임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
*毛羽相似; 털과 깃털이 비슷하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易經》에 나오는 말로서
'같은 음성으로 상응하고 같은 기운을 서로 구한다' 함은
'취향하는 뜻이 같은 사람끼리 의기투합하여 한데 뭉치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且問諸人。 什麼處。是稜師備師不柰何處。 喪身失命有多少。 此頌長慶道今日堂中。 大有人喪身失命。 到這裏。須是有弄蛇手。 子細始得。 |
여러분에게 잠깐 묻겠는데, 어느 곳이 능사와 비사가 어쩌지 못한 곳이기에 목숨 잃는 사람이 많고 적다는 것인가? 이 송(頌)에서 장경은 '금일 당중(堂中)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겠구나'고 하였는데, 이 속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뱀을 희롱하는 재간을 가지고 신중히 해야 된다. |
雪竇出他雲門。 所以一時撥卻。獨存雲門一箇。 道韶陽知。重撥草。 蓋為雲門知他雪峰道 南山有一條鱉鼻蛇落處。 所以重撥草。 雪竇頌到這裏。 更有妙處云。南北東西無處討。 爾道在什麼處。 忽然突出拄杖頭。 元來只在這裏。 爾不可便向拄杖頭上作活計去也。 雲門以拄杖攛向雪峰面前作怕勢。 雲門便以拄杖作鱉鼻蛇用。 有時卻云。拄杖子化為龍。 吞卻乾坤了也。 山河大地甚處得來。 只是一條拄杖子。 有時作龍。有時作蛇。 為什麼如此。 |
설두(雪竇)가 저 운문(雲門)의 가문에서 나온지라 그래서 일시에 다 없애고 운문 하나만을 두고서 '소양(韶陽)이 알고자 거듭 발초(撥草)했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운문이 저 설봉이 말한 '남산에 한 가닥 별비사'의 낙처를 알기 위해 그 때문에 거듭 발초했다는 것이다. 설두의 송(頌)은 이에 이르러 다시 그 묘한 곳을 '남북동서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는데,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보라. '홀연히 주장자 끝을 내밀었다' 하였으니, 원래 다만 그 속에 있었다고 너희가 쉽게 주장자 끝을 향해 활계를 지어가서는 안된다. 운문은 주장자를 설두의 면전에 던지며 두려워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운문은 문득 주장자로 뱀을 삼아 이용한 것이며, 어느 때는 도리어 "주장자가 용으로 화하여 천지를 삼켜버렸거늘 산하대지(山河大地) 어느 곳에서 얻겠느냐?"고 하였으니, 다만 이 한 가닥 주장자가 어느 때는 용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뱀이 되기도 하는데, 어째서 이와 같았겠는가? |
到這裏方知。 古人道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頌道。拋對雪峰大張口。 大張口兮同閃電。 雪竇有餘才。拈出雲門毒蛇云。 只這大張口兮同於閃電相似。 爾若擬議。則喪身失命。 剔起眉毛還不見。向什麼處去也。 |
이 속에 이르면 바야흐로 고인(古人*)이 「마음이 만경(萬境)을 따라 굴러야 구르는 곳이 실로 멀어질 수 있다」고 한 말을 알 것이다. 송(頌)하여 이르되, '설봉에게 내던지며 입을 크게 벌렸는데 크게 벌린 입이 번개 같지 않을까?' 하였는데, 설두가 나머지 재간으로 운문의 독사를 꼭 찝어내 다만 이 크게 벌린 입이 번개처럼 빠를 것이다고 한 것이니, 너희가 머뭇거리다가는 목숨을 잃으리라. '눈썹 치켜뜨고 봐도 보지 못한다' 했는데, 어디로 간 것인가? |
*古人; 마나라(摩拏羅; 天竺第22祖)의 게송
「마음이 만경을 따라 구르면 구르는 곳이 실로 멀어질 수 있고,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흐름을 따라 성품을 알고보면 기뻐할 것도 근심할 것도 없다네. (隨流認得性 無喜復無憂)」
雪竇頌了。須去活處為人。 將雪峰蛇自拈自弄。 不妨殺活臨時。 要見麼。 云如今藏在乳峰前。 乳峰乃雪竇山名也。 雪竇有頌云。 石總四顧滄溟窄。 寥寥不許白雲白。 長慶玄沙雲門。雖弄得了不見。 卻云。如今藏在乳峰前。 來者一一看方便。 雪竇猶涉廉纖在。 不言便用。卻高聲喝云。看腳下。 從上來有多少人拈弄。 且道還曾傷著人。 不曾傷著人師便打。 |
설두는 송을 마치고 이윽고 활처(活處)로 가서 사람들을 위해 설봉의 뱀을 멋대로 가지고 놀았으니[自拈自弄], 살활(殺活)이 때에 이르렀다 해도 무방하다. 보고자 하는가? '지금 유봉전(乳峰前)에 감춰져 있다' 하였다. 유봉(乳峰)은 설두산(雪竇山)의 한 봉우리 이름인데, 설두에게 이러한 송(頌)이 있다. 「석총(石總)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창명(滄溟)이 비좁건만 적막(寂寞;寥寥)하여 흰구름 한 점 없네」 장경과 현사, 운문이 농(弄;弄蛇手)을 얻었다지만 보이지 않기에 그래서 '지금 유봉 앞에 감춰져 있으니 오는 자는 낱낱이 방편을 살피라' 한 것이라 설두가 오히려 염섬(廉纖*)에 빠져 있다. 말을 쓰지 않되 도리어 고성으로 일갈하여 '발 밑을 보라' 한 것은 위로부터 여러 사람들이 가지고 놀았는데, 자 말해보라.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이 있었던가, 다치게 한 적이 없었는가? 선사가 문득 후려쳤다. |
*自拈自弄; 제멋대로 가지고 놀다. 拈弄은 가지고 논다.
*廉纖; 微小, 纖細. 선림에서는 세세히 설명해주는 방식의 학인 지도법을 말한다. [3칙 太廉纖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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