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수고우(溈山水牯牛)】라고도 한다.
위산이 일찍이 스스로를 수고우(水牯牛;암물소)라 칭한 것에 대하여
비구니승 유철마(劉鐵磨)를 노자우(老牸牛; 늙은 암소)라 칭함으로써 쌍방이 서로 知音이 되어 만난다.
훗날 이를 두고 설두(雪竇)선사는
「曾騎鐵馬入重城,敕下傳聞六國清。
猶握金鞭問歸客,夜深誰共禦街行?」라 頌했고,
풍혈(風穴)선사는
「高高峰頂立,魔外莫能知。
深深海底行,佛眼覰不見。」라 頌했다.
垂示云。 |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
高高峰頂立。魔外莫能知。 深深海底行。佛眼覷不見。 直饒眼似流星。機如掣電。 未免靈龜曳尾。 到這裏合作麼生。 試舉看。 |
높고 높은 봉정(峰頂)에 섰으니 마군이나 외도가 알 수 없고, 깊고 깊은 해저(海底)를 다니니 불안(佛眼)으로 봐도 안 보이는지라 설령 눈이 유성(流星) 같고 기봉(機峰)이 전광석화 같더라도 영귀예미(靈龜曳尾*)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부합해야 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靈龜曳尾; '신령한 거북이 진흙 위에서 꼬리를 끈다'.
'출세를 위해 애쓰다 일찍 죽느니 차라리 좋지 않은 환경에서 오래 사는 것이 낫다'는 의미로 쓰인다.
〈祖庭事苑 第6卷〉에
「장자(莊子)가 복수(濮水)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초왕(楚王)이 두 대신을 보내서
"원컨대 경내(境內;國內)로 들어오십시요." 하고 조정으로 불렀다.
장자가 "초나라에는 죽은 지 삼천 년이 된 신령한 거북이 있어서
왕께서 소중히 간수하여 묘당(廟堂)에 모셔두었다는데,
그 거북이란 것이 죽어서 뼈를 남기는 것이 귀하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끄는 것이 낫겠소?" 물으니,
두 대부가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끄는 것이 낫지요." 하자,
장자는 "돌아가시오. 나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겠소. '복,복'(거북이 소리)." 하였다.
(莊子釣於濮水。楚王使二大夫往召焉。曰。願以境內累矣。
莊子曰。楚有神龜。死已三千歲矣。王巾笥藏之廟堂之上。
此龜者。寧其死為留骨而貴乎。寧其生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寧生而洩尾於塗中。莊子曰。往矣。吾將曳尾於塗中矣。濮。音卜。)」
【二四】舉。 | 【제24칙】 철마노자우(鐵磨老牸牛) |
劉鐵磨到溈山 (不妨難湊泊。這老婆不守本分) 山云老牸牛。汝來也 (點。探竿影草。 向什麼處見聱訛) 磨云。來日臺山大會齋。 和尚還去麼 (箭不虛發。大唐打鼓新羅舞。 放去太速收來太遲) 溈山放身臥 (中也。爾向什麼處見溈山。 誰知遠煙浪別有好思量) 磨便出去 (過也。見機而作)。 |
유철마(劉鐵磨)가 위산(溈山)에 이르자 (접근하기 어려워마지 않거늘 이 노파가 본분을 지키지 않는구나.) 위산이 "늙은 암소야, 네가 왔구나." 하였다. (점검했다. 탐간영초<探竿影草*>하여 어디에서 오와<聱訛*>를 보려는가?) 철마가 "내일 오대산에 큰 회재(會齋*)가 있는데 화상께서는 가시렵니까?" 하니, (화살을 헛되이 쏘지 않아서 당나라가 북을 치니 신라가 춤을 추었으나 방거<放去*>가 몹시 빠르고, 수래<收來*>는 매우 늦다.) 위산은 벌렁 누워버렸고, (적중했다. 네가 어디에서 위산<溈山>을 보겠으며, 뉘라서 먼 물안개에 별난 생각이 있을 줄 알겠느냐?) 철마는 곧 나가버렸다. (지나쳤지만 기(機)를 보고 그런 것이다.) |
*探竿影草; 臨濟四喝의 하나로 〈人天眼目註〉에 「탐간(探竿)은 물고기 잡는 어구로서
대 끝에 미끼를 묶고 물 속에 넣어 물고기가 모이게 한 뒤에 투망하여 잡고,
영초(影草)는 풀을 베어 물에 담가두고서 물고기가 숨어들기를 기다려 투망하여 잡으니,
모두가 물고기 잡는 방편이다. 善知識이 배우는 이들에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하였다.
*오와(聱訛); 효와(誵訛,淆訛). 잘못된 곳. 그르친 곳. 오류(誤謬).
*會齋; 齋會(齋僧의 法會).
齋(upavasatha)는 원래 「清淨」의 뜻으로 죄업장을 참회하거나 언행을 신중히 하고
목욕재계(沐浴齋戒)하는 것을 말하는데 차츰 여러 의미로 변천되었으니,
①정오를 지나서는 먹지 않는 것.
②재가신도가 6齋日(每月 초하루와 8, 14, 15, 23, 30일)에 8재계(八齋戒)를 지키는 것.
③낮에 먹는 밥, 또는 간소하고 청정한 음식[素食]을 齋라 한다.
그 외에 齋를 마련하여 스님들께 음식을 공양하는 것을 齋僧이라 하고, 齋僧의 法會를 齋會라 하며,
寺院 안의 식당을 齋堂, 스님들에게 齋時을 알리는 것을 齋鼓, 아침식사할 때를 開齋,
식사 후를 齋退 또는 齋罷, 信徒들이 준 공양물을 절 안의 대중에게 나누는 것을 打齋,
打齋의 종류로서 공양물의 優劣에 따라 上堂齋, 吉祥齋, 如意齋 등으로 표현하였다.
*放去; 포기하다, 내버려두다. *收來; 거두어들이다.
*大唐打鼓新羅舞; 어떤 행위의 여파가 멀리 땅끝까지 미침을 의미한다.
劉鐵磨(尼也)如擊石火。似閃電光。 擬議則喪身失命。 禪道若到緊要處。那裏有許多事。 他作家相見。 如隔牆見角便知是牛。 隔山見煙便知是火。 拶著便動。捺著便轉。 溈山道。老僧百年後。 向山下檀越家。作一頭水牯牛。 左脅下書五字云。 溈山僧某甲。 且正當恁麼時。 喚作溈山僧。即是 喚作水牯牛。即是。 如今人問著。管取分疏不下。 |
유철마(劉鐵磨;비구니)는 석화 튀기듯하고 전광 번쩍이듯 하였으니, 멈칫거리다가는 상신실명(喪身失命)한다. 선도(禪道)가 긴요한 곳에 이르면 그 속에는 많은 일이 있다. 저 작가들이 서로 만났으니 마치 담 너머로 뿔이 보이면 곧 이것이 소인 줄 알고, 산 너머로 연기가 보이면 곧 이것이 불임을 안 것과 같아서 욱박지르면 곧 반동하고 짓누르면 곧 굴러갔다. 위산(溈山)은 말하기를, "노승이 백년 뒤에 산 아래 시주 집의 한 마리 수고우(水牯牛*)가 되어서 왼쪽 옆구리 밑에 다섯 글자로 '위산승모갑(위산이라는 중이 나다)'이라 써 붙인다면 자,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하여 위산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느냐, 수고우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느냐?" 하였거니와 지금 사람들은 묻기만 하면 어김없이 제 의사를 밝히지 못한다. |
*分疏; 제 스스로 자세히 밝혀 설명함.
*管取; 어김없이, 틀림없이, 반드시, 꼭.
*水牯牛; 심우도에서 보듯 소는 부처에 비유된다.
고우(牯牛)는 빈우(牝牛;암소)이니 송아지[新生佛]를 낳을 수 있는 소인 셈이다.
劉鐵磨久參機鋒峭峻。 人號為劉鐵磨。 去溈山十里卓庵。 一日去訪溈山。山見來便云。 老牸牛。汝來也。 磨云。來日臺山大會齋。 和尚還去麼。 溈山放身便臥。 磨便出去。 |
유철마는 오랫동안 참학하여 기봉(機鋒)이 초준(峭峻)한지라 사람들이 유철마라고 불렀고, 위산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암자를 세웠다. 하루는 위산을 찾아갔는데, 위산이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서 "노자우(老牸牛) 네가 왔구나." 하였다. 철마가 "내일 오대산에서 큰 재회가 있는데, 큰 스님께서는 가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위산은 벌렁 누워버렸고, 철마는 곧 나가버렸다. |
爾看他一如說話相似。 且不是禪又不是道。 喚作無事會得麼。 溈山去臺山。自隔數千里。 劉鐵磨因什麼卻令溈山去齋。 旦道意旨如何。 這老婆會他溈山說話。 絲來線去。一放一收。互相酬唱。 如兩鏡相照。無影像可觀。 機機相副。句句相投。 如今人三搭不迴頭。 這老婆一點也瞞他不得。 這箇卻不是世諦情見。 如明鏡當臺。明珠在掌。 胡來胡現。漢來漢現。 是他知有向上事。所以如此。 如今只管做無事會。 |
여러분이 보건대, 그것이 하나의 얘기와 같고 다만 이것이 선(禪)도 아니고 도(道)도 아니어서 별 것 없다고 알았는가? 위산에서 오대산까지의 거리는 수 천리가 떨어져 있는데, 유철마는 왜 위산더러 재(齋)에 가게 한 것이며, 또 그 뜻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저 노파가 위산의 말 뜻을 알아차리고서 사래선거(絲來線去*), 일방일수(一放一收)하며 서로 수창(酬唱)했으니, 마치 두 거울이 서로를 비추니 보이는 영상이 없는 것과 같아서 기(機)와 기가 서로 부합하고 구구가 서로 투합하건만 요즘 사람들은 세 번을 때려도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三搭不迴頭*]. 이 노파의 한 차례 점검이 그를 속이지는 못했으나 이런 것은 도리어 세제(世諦*)나 정견(情見*)이 아니다. 마치 명경(明鏡)이 대에 걸리고 명주(明珠)를 손에 쥔 듯이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를 나타내고 한인(漢人)이 오면 한인을 나타냈으니, 이는 그가 어떤 향상사(向上事)를 알았기에 이와 같았거늘, 지금에는 그저 별 일 없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
*絲來線去; 서로 얽히고 섥힌 모양새.
*三搭不迴頭; 搭은 打의 뜻. '세 번 때려도 돌아보지 않고 네 번을 때려서야 겨우 몸을 돌린다
[三打不回頭 四打連身轉]'를 인용한 것.
*世諦; 世間의 事實. 세속인이 아는 도리.
*情見; 妄情의 所見.
四祖演和尚道。 莫將有事為無事。 往往事從無事生。 爾若參得透去。 見他恁麼如尋常人說話一般。 多被言語隔礙。所以不會。 唯是知音方會他底 只如乾峰示眾云。 舉一不得舉二。 放過一著落在第二。 雲門出眾云。昨日有一僧。 從天台來卻往南岳去。 乾峰云。典座今日不得普請。 看他兩人。放則雙放。 收則雙收。 溈仰下謂之境致。 風塵草動。悉究端倪。 亦謂之隔身句。意通而語隔。 到這裏。 須是左撥右轉方是作家。 |
오조연(五祖演*) 화상은 "유사(有事)를 무사(無事)로 여기지 말라. 왕왕 일이 무사(無事)에서 생긴다."고 하셨거니와, 너희가 만약 참득(參得)이 투철해지면 그들의 이러함이 보통사람의 설화와 일반임을 보겠지만 거의가 언어의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회(理會)하지 못하는 것이며, 오직 지음(知音)이라야 비로소 그 저변을 이해할 것이라 다만 건봉(乾峰)선사가 시중(示眾)하기를, "하나만 들추고 둘 들출 줄 모르니 한 수를 놓치고 두 번째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고 하자, 운문(雲門)이 대중 앞에 나서서 "어제 어떤 중이 천태(天台)로부터 와서 남악(南岳)으로 갔습니다." 하니, 건봉이 "전좌(典座*)는 오늘 보청(普請*)하지 말거라." 한 것과 같다. 저 두 사람을 살펴보건대 방(放)할 때는 쌍방이 방하고, 수(收)할 때는 쌍방이 수했거니와, 위앙(溈仰)종에서는 이를 경치(境致*)라 하여 미세한 일[風塵草動*]도 모두 그 전후사정[端倪*]을 구취(究取)하며, 또 격신구(隔身句*)라고도 하여 뜻으로 통하고 언어를 멀리하니, 이 속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좌발우전(左撥右轉*)해야 비로소 작가인 것이다. |
*五祖演; 蘄州五祖山法演禪師. 唐 臨濟宗 楊歧派 禪師로서 圜悟克勤의 스승. 四祖演은 오류인 듯.
*典座; 대중의 자리나 식사 따위의 잡일을 주관하는 스님.
*普請; 대중이 모여 함께 일하는 것. 울력.
*境致; 상대의 경계(境界)에 맞춰가다.
*風塵草動; 바람에 티끌 날리고 풀이 흔들리다. 어떤 일의 미세한 부분을 뜻한다. 草動風塵, 風吹草動
*端倪; 어떤 사정의 본말과 시종.
*隔身句; 隔手句. 통상의 언어나 문자의 격식을 초월한 어구.
*左撥右轉; 좌로 돌고 우로 구르기를 자유자재히 하다.
曾騎鐵馬入重城 (慣戰作家。塞外將軍。 七事隨身) 敕下傳聞六國清 (狗銜赦書。寰中天子。 爭奈海晏河清) 猶握金鞭問歸客 (是什麼消息一條拄杖兩人扶。 相招同往又同來) 夜深誰共御街行 (君向瀟湘我向秦。 且道行作什麼) |
일찍이 철마(鐵馬)를 타고 견고한 성(城)으로 들어가 (싸움에 익숙한 작가요, 새외장군<塞外將軍*>이며, 칠사수신<七事隨身*>이다.) 칙령(勅令)을 전해듣고 6국(六國*)이 청평(淸平*)해졌으니 (개가 사서<赦書*>직을 맡았으니 환중천자<寰中天子*>인 셈이지만, 해안하청<海晏河清*>한데 어쩌겠는가.) 되려 금편(金鞭)을 쥐고 귀객(歸客*)에게 물었으나 (이 무슨 소식인가? 하나의 주장자에 두 사람이 의지하여 서로 같이 가고 같이 오게 되다니.) 야심한데 누가 함께 어가(御街*)로 가겠는가? (그대는 소상<瀟湘*>으로 가라 나는 진<秦>으로 가겠다는 것인데, 자, 말해보라. 가서 무엇하겠느냐?) |
*塞外將軍; 요새 밖에 있는 변방의 장군. 나라 안 황제의 권력이 가장 강하고,
변방에 있는 장군들의 세력이 가장 강하다(寰中天子 塞外將軍)는 의미이다.
*七事隨身; 원래 전쟁터에서 자기 몸을 지켜줄 7가지 무기,
즉 弓, 矢, 刀, 劍, 甲, 胄, 戈를 말하는데,
임제종에서는 이것을 인용하여 師家가 具備해야 할 7가지,
①殺人刀~ 學人이 가지고 있는 일체를 베어낼 수 있는 능력.
②活人劍~ 學人이 지닌 일체를 活現하게 하는 능력.
③腳踏實地~ 一切의 行為가 佛道에 契合할 것.
④向上關棙子~ 向上의 宗旨를 究盡할 것.
⑤格外說話~ 通常人의 思量을 떠나 佛道를 설할 것.
⑥衲僧巴鼻~ 學人을 이끌어 갈 力量을 갖출 것.
⑦探竿影草~ 學人의 真偽를 헤아리고 판단하는 능력.
이것을 濟宗七事隨身이라 한다.
*六國; 원래 전국시대 함곡관(函谷關) 동쪽의 여섯 나라 楚, 齊, 燕, 韓, 趙, 魏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육근(六根)에 비유한 표현이다.
*淸平; 세상이 태평함. *歸客; 외지에서 온 손님.
*御街; 대궐 안 길, 대궐로 통하는 길. 임금이 다니는 길.
*瀟湘; 瀟河와 湘河 두 강이 합류하는 곳의 지명.
雪竇頌。諸方以為極則。 一百頌中。這一頌最具理路。 就中極妙。貼體分明頌出。 曾騎鐵馬入重城。 頌劉鐵磨恁麼來。 敕下傳聞六國清。 頌溈山恁麼問。 猶握金鞭問歸客。 頌磨云。來日臺山大會齋。 和尚還去麼。 夜深誰共御街行。 頌溈山放身便臥。磨便出去。 雪竇有這般才調。 急切處向急切處頌。 緩緩處向緩緩處頌。 風穴亦曾拈。同雪竇意。 此頌諸方皆美之。 高高峰頂立。魔外莫能知。 深深海底行。佛眼覷不見。 |
설두의 송(頌)은 제방(諸方)이 극칙(極則)으로 여기는데, 1백 송 중에 이 송이 이로(理路)를 가장 잘 갖추고 있어서 지극히 절묘하고 몸에 딱 들어 맞게 분명히 송출하였다. '일찍이 철마를 타고 견고한 성(城)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유철마가 그렇게 왔음을 송(頌)한 것이고, '칙령(勅令)을 전해듣고 6국(六國*)이 청평(淸平*)해졌다' 함은 위산이 그렇게 물었음을 송한 것이며, '되려 금편(金鞭)을 쥐고 귀객(歸客)에게 물었다' 함은 철마가 내일 오대산에서 큰 재회가 있는데, 화상께서 가시겠느냐고 여쭌 것을 송한 것이며, '야심한데 누가 함께 어가(御街)를 다니겠는가' 한 것은 위산은 벌렁 누워버렸고, 철마가 나가버린 것을 송한 것이다. 설두는 이런 재주가 있었기에 급하고 절박한 곳에는 급절한 곳을 향해 송을 하고, 완만하고 완만한 곳에는 완완한 곳을 향해 송한 것이다. 풍혈(風穴)선사도 일찍이 설두와 같은 의미로 염(拈;評)했는데 이 송을 제방(諸方)이 모두 찬미한다. 「높고 높은 봉정(峰頂)에 서니 마군 외도가 알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해저(海底)를 다니니 불안(佛眼)으로 봐도 보지 못하네.」 |
看他一箇放身臥。一箇便出去。 若更周遮。一時求路不見。 雪竇頌意最好。 是曾騎鐵馬入重城。 若不是同得同證。焉能恁麼。 且道得箇什麼意。 不見僧問風穴。 溈山道。老牸牛汝來也。 意旨如何。 穴云。白雲深處金龍躍。 僧云。只如劉鐵磨道。 來日臺山大會齋。 和尚還去麼。意旨如何。 穴云碧波心裏玉兔驚。 僧云。溈山便作臥勢。意旨如何。 穴云。老倒疏慵無事日。 閑眠高臥對青山。 此意亦與雪竇同也。 |
저들을 보건대 한 사람은 누워버리고, 한 사람은 나가버렸는데, 만약 꽉 막혔다면 일시에 구할 길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설두의 송의(頌意)가 가장 좋은 것은 일찍이 철마를 타고 견고한 성에 들어갔다는 것인데, 만약 동득동증(同得同證)이 아니라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자, 말해보라. 그 무슨 뜻을 얻은 것인가? 보지 못했는가? 어느 중이 풍혈(風穴)선사에게 "위산(溈山)이 '노자우(老牸牛)야! 네가 왔구나'라고 한 뜻과 취지[意旨]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풍혈은 "흰구름 깊은 곳에 금룡(金龍)이 솟아 올랐다." 하였고, 그 스님이 "유철마가 '내일 오대산에서 큰 재회(齋會)가 있는데, 화상께서는 가시렵니까?'라고 한 말은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풍혈은 "푸른 파도의 마음이 속으로 옥토끼를 놀라게 했다."고 하였으며, "위산이 누워버린 뜻은 무엇입니까?" 하니, "늙어 꼬부라진 놈[老倒*]이 나른하고 할 일이 없으니, 청산(青山)을 마주하고 높은 데 누워 한가로이 잠을 잤다." 하였거니와, 이 뜻도 설두의 송과 같다. |
*老倒; 궁상스럽다, 청승맞다, 초라하게 되다.
*疏慵; 나태하고 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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