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안은 「百丈獨坐」, 「百丈大雄峰」, 「百丈奇特事」라고도 한다.
「如何是奇特事」라는 질문에 백장선사는 「獨坐大雄峰」라고 回答하였는데,
이는 收放이 자유자재하고 자취도 없는 신출귀몰한 機法이다 하고 있다.
이 답에 저 스님이 곧 예배하였으니, 이 스님 또한 예사롭지 않아서
호랑이 수염을 건드리듯 轉身處를 다투어 오니,
백장은 이 스님이 기왕 領會한 것을 알고 더욱 향상사를 추구해 가라는 의미로 후려쳤다.
설두는 송으로 「백장은 조사의 영역을 치달리므로 교화의 수법이 남다르거늘
저 스님이 전광석화 같은 임기응변으로 비웃음을 무릅쓰고 싸움을 걸어 갔다」고 하였다.
【二六】舉。 |
【제26칙】 백장독좌대웅봉(百丈獨坐大雄峰) _백장선사의 대웅봉에 홀로 앉기 |
僧問百丈。如何是奇特事 (言中有響。句裏呈機。 驚殺人。有眼不曾見) 丈云。獨坐大雄峰 (凜凜威風四百州。 坐者立者二俱敗缺) 僧禮拜 (伶俐衲僧。 也有恁麼人。要見恁麼事) 丈便打 (作家宗師。何故來言不豊。 令不虛行)。 |
중이 백장에게 "어떤 것이 기특한 일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말 속에 여운이 있고, 구<句> 속에 기<機>가 드러나니, 너무도 놀랍다. 눈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겠다.) 백장이 "대웅봉(大雄峰)에 홀로 앉았다." 하니, (늠름한 위풍이 4백주<四百州;온 나라>지만, 앉은 자나 선 자 둘 다 손해를 봤다.) 중이 예배를 하자, (영리한 납승이다. 이런 사람이 이런 일을 알려고 하는 법이다.) 백장은 곧 후려쳤다. (작가종사<作家宗師>인데, 어째서 자세히 말해 주지 않는가? 영<令>을 헛되이 행하지 않아서이다.) |
臨機具眼。不顧危亡。 所以道。不入虎穴。爭得虎子。 百丈尋常如虎插翅相似。 這僧也不避死生。敢捋虎鬚便問。 如何是奇特事。這僧也具眼。 百丈便與他擔荷云。 獨坐大雄峰。其僧便禮拜。 衲僧家須是別未問已前意始得。 這僧禮拜。與尋常不同。 也須是具眼始得。 |
임기(臨機)하여 안목을 구비하면 위망(危亡)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범 새끼를 잡느냐고 하였다. 백장은 항상 범이 날개를 단듯 하거늘 이 중이 생사를 무릅쓰고 감히 범의 수염을 건드려 묻기를, '무엇이 기특한 일입니까?' 하였으니, 이 중은 안목을 갖춘 것이다. 백장이 곧 그에게 부담을 주어 말하기를, '대웅봉에 홀로 앉았다'고 하자, 그 중이 곧 예배하였으니, 납승가라면 모름지기 묻기 이전의 뜻을 변별(辨別)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중의 예배가 심상치 않은 것에 반드시 안목을 갖춰야 한다. |
莫教平生心膽向人傾。 相識還如不相識。 只這僧問。如何是奇特事。 百丈云。獨坐大雄峰。 僧禮拜。丈便打。 看他放去則一時俱是。 收來則掃蹤滅跡。 且道他便禮拜意旨如何。 若道是好。 因甚百丈便打他作什麼。 若道是不好。他禮拜有什麼不得處。 到這裏須是識休咎別緇素。 立向千峰頂上始得。 |
평생 심담(心膽*)을 남에게 기울이지 말지니, 서로 아는 것이 오히려 모르는 것과 같다. 다만 저 중이 "어떤 것이 기특한 일입니까?" 물으니, 백장은 "홀로 대웅봉(大雄峰)에 앉은 것이다." 하자, 중이 예배하였고, 백장은 곧 후려쳤는데, 그가 놓아준 것[放去]을 보면 항상 다 옳았고, 거두어들이는 것[收來]은 곧 흔적 없이 소멸해버렸다. 자, 말해보라. 그가 문득 예배한 뜻이 무엇인가? 만일 이를 훌륭했다고 한다면, 왜 그가 어쨌길래 백장이 그를 때린 것이며, 또 이것이 좋지 못했다면 그의 예배는 어떤 잘못된 곳이 있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휴구(休咎*)를 알고 치소(緇素*)를 분별하여 천봉정상(千峰頂上)에 서야만 한다. |
*心膽; 심장과 쓸개. 마음.
*休咎; 길흉(吉凶), 화복(禍福), 선악(善惡). *緇素; 흑백(黑白).
這僧便禮拜。似捋虎鬚相似。 只爭轉身處。 賴值百丈頂門有眼。肘後有符。 照破四天下。深辨來風。 所以便打。 若是別人無柰他何。 這僧以機投機。以意遣意。 他所以禮拜。 如南泉云。文殊普賢。昨夜三更。 起佛見法見。各與二十棒。 貶向二鐵圍山去也。 時趙州出眾云。 和尚棒教誰喫。 泉云。王老師有什麼過。 州禮拜。 |
저 중이 문득 예배하여 호랑이 수염을 건드리듯이 다만 전신처(轉身處*)를 다투었으나 다행히 백장의 정문(頂門)에 눈이 있고 주후유부(肘後有符*)하여 사천하를 조파(照破*)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깊이 헤아렸기에 그래서 곧 후려쳤거니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쩔 수 없이 그를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중이 기(機)에는 기로 맞서고, 뜻에는 뜻으로 맞서려고 그가 그래서 예배한 것이니, 마치 남전(南泉)이 "문수와 보현이 지난 밤 삼경(三更)에 불견(佛見*) 법견(法見*)을 일으키기에 각 20방씩 때려서 두 철위산(二鐵圍山*)으로 보내버렸다."고 하였는데, 그때 조주가 대중 앞에 나서서 "화상의 봉(棒)은 누구를 시켜 먹입니까?" 하니, 남전은 "왕노사(王老師*)에게 무슨 허물이 있느냐?" 하자, 조주가 예배한 것과 같다. |
*轉身處; 몸 굴릴 곳. 전신처를 다툰다 함은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 지를 살펴서 대응할 방도를 두고
서로 경쟁을 했다는 뜻이다.
*照破; 지혜의 광명을 비추어 무명(無明)을 깨치는 것.
*肘後有符; 肘後懸符, 肘後符, 肘後印이라고도 한다.
원래 몸의 안전을 위해 소맷자락 속에 넣고 다니는 호신(護身) 부적을 말하나,
선림에서는 佛祖의 心印, 즉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누구나 본래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쓴다.
*佛見과 法見; 佛見은 부처의 正知見을, 法見은 한 법에 집착하여 이것이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소견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부처에 집착하는 소견과 법에 집착하는 소견.
*二鐵圍山;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그 주위에 健達羅 등 7좌의 金山이 있는데,
각 산 사이에 바다가 있어 일곱 번째 산인 尼民達羅山 끝 8번째 바다가 함해(鹹海)이며
閻浮洲 등의 四大洲가 이 바다에 위치하고 있다.
이 鹹海 주위를 담장처럼 에워쌓고 있는 산들을 輪圍山이라고도 하고 鐵로 되어 있다 하여 鐵圍山이라 한다.
《起世經》〈地獄品〉에는 이 鐵圍山 밖에 또 하나의 鐵圍山이 있고
그 두 철위산 사이에 光明이 없는 암흑세계 즉 八大地獄이 있다고 하였으니,
二鐵圍山으로 보냈다 함은 '지옥으로 보내버렸다'는 뜻이다.
*王老師; 남전의 성이 왕씨이다.
宗師家等閑不見他受用處。 纔到當機拈弄處。自然活鱍鱍地。 五祖先師常說。 如馬前相撲相似。 爾但常教見聞聲色一時坐斷。 把得定作得主。 始見他百丈。 且道放過時作麼生。 看取雪竇頌出云。 |
종사가(宗師家)가 소홀히 하여 상대의 수용처(受用處*)를 보지 못하고 가지고 놀 기회만 보기에 이르니 자연 살아서 날뛰는 것이라서 오조(五祖) 선사(先師)께서 늘 말씀하시되, "마치 마전상박(馬前相撲*)하는 것 같다"고 하신 것이니, 너희는 다만 늘 견문성색(見聞聲色)이 일시에 좌단(坐斷)되도록 삼매를 붙들어[把得定] 주인이 되어야만 비로소 저 백장(百丈)을 볼 것이다. 자, 말해보라. 때를 놓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설두가 송출(頌出)한 말을 살펴 취하거라. |
*受用處; 十二處(六處<六根;耳,鼻,舌,身,意>와 外入處<六境;色,聲,香,味,觸,法>).
수용처를 보지 못한다 함은 상대의 역량이나 자질을 파악하지 않는다는 뜻한다.
*馬前相撲; 相撲은 서로 힘을 겨루는 씨름 같은 경기의 일종이다.
'달리는 말 앞에서 씨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는 뜻이다.
祖域交馳天馬駒 (五百年一間生。 千人萬人中有一箇半箇。 子承父業) 化門舒卷不同途 (已在言前。渠儂得自由。 還他作家手段) 電光石火存機變 (劈面來也。左轉右轉。 還見百丈為人處也無) 堪笑人來捋虎鬚 (好與三十棒。 重賞之下必有勇夫。 不免喪身失命。放過闍黎一著) |
조사의 영역을 천마구(天馬駒*)에 올라 마구 달리니 (오백년에 하나 나는 일이라 천만인 중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하다. 아들이 아비의 업을 이었다.) 교화의 문에 서권(舒卷*)하는 방도가 같지 않거늘 (이미 말하기 전에 있었다. 그들<渠儂*>은 자유를 얻고, 그에게는 작가의 수단을 돌려주었다.) 전광석화(電光石火)를 임기응변(機變)에 두고 (정면으로 부딫쳐 왔다,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며. 백장의 위인처<為人處>를 보았는가?) 비웃음을 무릅쓰고 범의 수염을 건드렸도다. (30방<棒*>을 주어야 한다. 무거운 상을 내리는 이유에는 반드시 용감함이 있다. 상신실명을 면키 어려우나 선생께 한 수 봐주겠다.) |
*天馬駒; 하늘의 준마. 마구(馬駒)는 성년이 된 준마(駿馬)를 말하며,
李白의 시에 「身騎飛龍天馬駒」라 한 것으로 보아 천마구는 '날으는 용처럼 빠른 말'을 의미하는 듯.
*卷舒; 卷은 收, 把住와 같은 의미로 「打破否定」의 교화수법을 말하고,
舒는 放, 放行과 같은 의미로 「攝受肯定」의 교화수법을 말한다.
*子承父業; 백장이 마조의 업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말.
*渠儂; 「他」와 같은 의미의 故語로 여기서는 學人들을 뜻한다.
*棒; 몽둥이. 매를 때린다는 것은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알았거든 더욱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를 당부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雪竇見得透。方乃頌出。 天馬駒日行千里。橫行豎走。 奔驟如飛。方名天馬駒。 雪竇頌百丈於祖域之中。 東走向西。西走向東。 一來一往。七縱八橫。 殊無少礙。如天馬駒相似。 善能交馳。 方見自由處。 這箇自是得他馬祖大機大用。 |
설두가 꿰뚤어 견득(見得)하고 바야흐로 송출(頌出)하였는데, 천마구(天馬駒)는 하루에 천리를 가고, 횡행수주(橫行豎走*)하며, 달리기가 나는 것 같은지라 바야흐로 천마구라 한다. 설두는 백장(百丈)이 조사의 영역 안에서 동주향서(東走向西) 서주향동(西走向東)하고, 일래일왕(一來一往) 칠종팔횡(七縱八橫)하기를 조금도 거침 없이 마치 천마구인 듯이 좌우로 치달릴 수 있어서 바야흐로 자유처(自由處)를 보았음을 송했는데, 이는 그가 마조(馬祖)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얻고서부터이다. |
*橫行豎走; 横行直走. 거침없이 마구 달리다.
不見僧問馬祖。 如何是佛法大意。 祖便打云。我若不打爾。 天下人笑我去在。 又問。如何是祖師西來意。 祖云。近前來向爾道。 僧近前。祖劈耳便掌云。 六耳不同謀。 看他恁麼得大自在。 於建化門中。或卷或舒。 有時舒不在卷處。 有時卷不在舒處。 有時卷舒俱不在。 所以道同塗不同轍。 此頌百丈有這般手腳。 |
보지 못했는가. 어떤 중이 마조에게 묻기를, "무엇이 불법(佛法)의 대의(大意)입니까?" 하자, 마조가 곧 후려치고서 "내가 너를 때리지 않는다면 천하인이 나를 비웃을 것이다." 하였고, 다시 "무엇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하고 묻자, 마조가 "가까이 오너라. 내 말해주마." 하여 그 중이 가까이 가니, 마조는 고막이 터지게 뺨을 때리고서 "육이부동모(六耳不同謀*)니라." 하였다. 그의 이러한 것으로 보아 대자재(大自在)를 얻었다. 교화(敎化)의 문을 건립하는 중에 권(卷)하거나 혹 서(舒)하는데, 어떤 때는 서(舒)가 권(卷)할 곳에 있지 않기도 하고, 어떤 때는 권이 서할 곳이 있지 않기도 하며, 어느 때는 권과 서가 다 있지 않기도 하는지라 그래서 길은 같아도 수레바퀴 자국은 같지 않다고 하거니와, 이는 백장에게 그런 수완이 있음을 송한 것이다. |
*六耳不同謀; 귀가 여섯이면 함께 모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세 사람이 알고 있으면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뜻인데,
후에 '소문을 쉽게 믿으면 이익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쓰이니,
여기서는 남들 하는대로 따라해서 이익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雪竇道。電光石火存機變。 頌這僧如擊石火似閃電光。 只在些子機變處。 巖頭道。 卻物為上。逐物為下。 若論戰也。箇箇立在轉處。 雪竇道。機輪曾未轉。 轉必兩頭走。 若轉不得。有什麼用處。 大丈夫漢。也須是識些子機變始得。 如今人只管供他款。 彼他穿卻鼻孔。有什麼了期。 這僧於電光石火中。能存機變。 便禮拜。 雪竇道堪笑人來捋虎鬚。 百丈似一箇大蟲相似。 堪笑這僧去捋虎鬚。 |
설두가 '전광석화가 기변(機變)에 존재한다' 한 것은 저 중이 석화(石火) 튀고 전광(電光) 번쩍이듯 하여 약간의 임기응변한 곳에 있었음을 송한 것이다. 암두(巖頭)는 이를 두고 '사물을 물리치는 것이 상책이고, 사물을 쫓는 것은 하책이지만 싸우기로 말하자면 저마다의 이끌어가는 방도가 있다'고 하였다. 설두는 말하기를, '기(機)의 수레바퀴가 구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구른다면 필경 두 마리 말로 달릴 것이며, 구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약간의 기변(機變)을 알아야 할 터인데, 요즘 사람들은 오로지 그에게 다 털어 바치고 그에게 콧구멍 뚤림을 당하고 마니, 무슨 마칠 기약이 있겠는가? 이 중은 전광석화 속에 임기응변을 둘 수 있었기에 곧 예배하였는데, 설두는 '비웃음을 무릅쓰고 범의 수염을 건드렸다'고 하였으니, 백장은 하나의 대충(大蟲*)과 같거늘 비웃음을 감내하고 이 중이 범의 수염을 건드려 갔다는 것이다. |
*大蟲; '늙은 호랑이[老虎]'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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