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 제27칙 운문체로금풍(雲門體露金風)

碧雲 2022. 9. 3. 07:53

*체로금풍(體露金風); 선림용어. 체로(體露)는 사물의 참된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요,
금풍(金風)은 가을바람[秋風]을 말하니, '추풍(秋風)에 나뭇잎이 떨어지니 나무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일체의 분별망상(分別妄想)과 번뇌가 제멸(除滅)되고 본래의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남'에 비유한 표현이다. 

垂示云。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問一答十。舉一明三
見兔放鷹。因風吹火。
不惜眉毛則且置。
只如入虎穴時如何。
試舉看。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하고, 하나를 들추면 셋을 밝히며,
견토방응(見兔放鷹*)하고, 인풍취화(因風吹火*)하니,
불석미모(不惜眉毛*)는 곧 잠시 미루어 두더라도
다만 호랑이 굴에 들어갔을 때와 같다면 어떻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見兔放鷹; '토끼를 보자 매를 놓는다' 함은 일을 처리할 때 기회를 보아 재빨리 대처하는 것에
비유하는 말로서 선림에서는 사가(師家)가 학인(學人)을 대하매 민첩하게 그의 근기를 관찰하고
곧바로 상응한 방편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因風吹火; 바람을 빌어 불을 붙이다, 기회를 빌어 일을 처리하다.
*不惜眉毛; '눈썹을 아끼지 않는다' 함은 古來로 佛法을 過多히 설하거나,
잘못 설하여 法戒를 훼손하면 眉鬚가 저절로 빠지는 죄보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그 눈썹 빠지는 죄보 받기를 두려워 하지 않고 제2의문(第二義門) 하에서 남에게 설법해 준다는 뜻이다.
鬚眉墮落의 근거로 《罪業報應教化地獄經》에
「신상(信相)보살이 부처님께 “어떤 중생은 신체가 마비되고, 눈썹과 수염이 빠지며, 온몸이 문드러져서,
새가 깃들고 사슴이 묵으니 인적이 영원히 끊기고, 친족들의 체면을 더럽혀서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니,
이를 나병이라 하옵거니와, 어떤 죄업 때문에 이에 이르는 것이옵니까?” 하고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생에 三尊을 믿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탑사(塔寺)를 파괴하고 도인(道人)의 껍질을 벗기고,
현성(賢聖)을 베거나 쏘아 죽이고, 스승을 상해하거나 항상 배신을 하고, 은혜와 옳음을 잊고 저버리며,
항상 행하는 것이 구차스럽거나, 존귀하고 비천하고를 가리지 않고 몰래 음행을 거리낌 없이 함으로써
이런 죄를 얻게 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二七】舉。  【제27칙】 운문(雲門)의 체로금풍(體露金風) 
   僧問雲門。
   樹凋葉落時如何
   (是什麼時節。家破人亡。人亡家破)
   雲門云。體露金風
   (撐天拄地。斬釘截鐵。
   淨裸裸赤灑灑。平步青霄)。
   어떤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무슨 시절이기에 가파인망(家破人亡*)하고 인망가파하는가?)
   운문은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다." 하였다.
   (탱천주지<撐天拄地*>하여 참정절철<斬釘截鐵*>하면
   정라라적쇄쇄<淨裸裸赤灑灑>하여 평보청소<平步青霄*>한다.)

*家破人亡; 가장이 파괴되고 친척이 사망함. 즉 가정이 불행을 당하여 파멸한다는 뜻이다.
*撐天拄地; 頂天立地.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서다. 즉 영웅적 기개를 형용하는 말이다.
*斬釘截鐵; '못을 베고 쇠를 자른다' 함은 '말하고 일을 분변하는 것이
단호하고 과단하여 추호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平步青霄; 平步登天. 단숨에 높은 지위에 오르다.
「撐天拄地~平步青霄」는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서서(영웅적 기개로)
단호하고 과감하게 나아가면 벌거숭이 본면목이 드러나서 단숨에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는 뜻이다. 

 

若向箇裏薦得。
始見雲門為人處。其或未然。
依舊只是指鹿為馬。眼瞎耳聾。
誰人到這境界。
且道雲門為復是答他話。
為復是與他酬唱。
若道答他話。錯認定盤星。
若道與他唱和。且得沒交涉。
既不恁麼。畢竟作麼生。
爾若見得透。
衲僧鼻孔。不消一捏。
其或未然。依舊打入鬼窟裏去。
大凡扶豎宗乘。
也須是全身擔荷。不惜眉毛。
向虎口橫身。任他橫拖倒拽。
若不如此。爭能為得人。
만약 이 속을 향해 천득(薦得)하면
비로소 운문의 위인처(為人處)를 보겠지만, 그가 혹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다만 지록위마(指鹿為馬*)하며 눈 멀고 귀 먹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경계에 이르렀는가?
자 말해보라. 운문이 다시 그의 말에 답한 것인가,
다시 그와 더불어 수창(酬唱)한 것이가?
만일 그의 말에 답했다고 한다면 정반성(定盤星)을 착인(錯認)한 것이요,
그와 더불어 수창했다고 한다면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기왕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한 것인가?
그대가 만일 견(見)이 투철해지면
납승의 비공(鼻孔)을 후빌 필요가 없으려니와,
혹 그렇지 못하다면 여전히 귀굴(鬼窟)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무릇 종승(宗乘)을 부수(扶豎)하려거든
모름지기 온몸으로 걸머지고 미모(眉毛)를 아끼지 말며,
범 아가리를 향해 몸을 던져서 저가 끌어가는 대로 맡겨야 한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어찌 사람을 위해지겠는가? 
這僧致箇問端。也不妨嶮峻。
若以尋常事看他。
只似箇管閑事底僧。
若據衲僧門下。去命脈裏覷時。
不妨有妙處。
且道樹凋葉落是什麼人境界。
十八問中。此謂之辨主問。
亦謂之借事問。
저 스님이 던진 그 질문의 단초(端初)가 험준(嶮峻)하여 마지 않다.
만약 통상적인 일로 그를 보면
그저 한가한 일이나 관장하는 스님 같지만,
납승의 문하(門下)에 의거하여 명맥(命脈) 속으로 가서 보자면
묘처(妙處)가 있음을 어찌할 수 없다.
말해보라.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은 어떤 사람의 경계인가?
18문(十八問*) 중 이것을 변주문(辨主問)이라고 하고,
또 차사문(借事問)이라고도 한다. 

*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 함은
윗사람을 농락하여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위압적으로 남에게 잘못을 밀어붙여
끝까지 속이려 함에 비유하는 말로서 《史記》〈秦始皇本紀〉에서의
진 시황제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의 작태에서 비롯된 고사성어이다.

 

*汾陽十八問; [人天眼目卷二]에서 분양(汾陽)선사는
「무릇 참선 배우는 자들의 질문상태를 보면 18가지가 있는데,
실문(實問)과 묵문(默問)을 분변하기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물어오는 뜻을 알아야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시절인연이 있는 것이니, 언설(言說)의 얕고 깊음을 서로 헤아려 공경히 대응하고,
함부로 끌어 붙이지 말라. 피차에 이익이 없거니와, 비록 선인(善因)이었다 해도 악과(惡果)를 초래하리니,
절대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괄호) 안은 [佛學大辭典] 등의 해석. 

 1)請益 : 어떤 스님이 馬祖에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니, 마조는 "自心이 곧 佛이다." 하였다.
趙州는 "전당 밑바닥(殿堂底;殿裏底;外形 안에 있는 根本心)이다." 하였다.
(請益問 : 學人이 師家를 향해 직접 指導를 請求하는 問法.)
 2)呈解 : 龍牙에게 "하늘이 덮을 수 없고 땅이 실을 수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용아는 "도(道)라는 것이 거기에 부합한다." 하였다.
(呈解問 : 學人이 自己의 見解를 밝히고 師家의 指導를 請求하는 問法.)
 3)察辨 : 臨濟에게 "學人에게 의문이 있는데, 和尚의 처소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는데,
임제가 "빨리 말해라, 빠리 말해라!" 하니,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임제가 곧 후려쳤다.
(察辨問 : 學人이 分辨키 어려운 點에 관하여 師家의 勘辨을 請하는 問法.)
 4)投機 : 天皇에게 "疑情이 쉬어지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천황은 "참이 아닌 것에 집중하여 固守하는구나." 하였다.
(投機問 : 學人이 自己의 境界에서 觀照한 바를 提出하고 請示하는 問法.)
 5)偏僻 : 芭蕉에게 "온 대지가 눈동자이온데,

스승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요." 하니,
파초는 "가난뱅이가 쉰밥을 만났구나." 하였다.
(偏僻問 : 學人이 한 쪽에 치우친 견해를 세우고서 師家에게 질문하는 法.)
 6)心行 : 興化에게 "學人이 黑白(是非)을 분간하지 못하겠으니,
스승께 方便을 여쭙니다." 하자, 흥화가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후려쳤다.
(心行問 : 학인이 기왕 自分의 心을 알고 師家에게 행(行;실천)을 묻는 問法.)

 7)探拔 風穴에게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하면서 어째서 의심하지 않습니까?" 하니,
풍혈은 "신령한 거북이 육지를 가는데, 어찌 진흙에 끌린 자취가 없겠느냐?" 하였다.
(探拔問 : 驗主問이라고도 한다.

學人이 師家의 見解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고자 행하는 問法.)
 8)不會 : 玄沙에게 "學人이 叢林에 갓 들어왔으니, 스승께서 지도해 주십시요." 하였는데,
현사가 "너는 언계(偃溪)의 물소리가 들리느냐?" 하니, "들립니다." 하자,
현사는 "그 속에서부터 들어가거라." 하였다.
(不會問 : 學人이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문제를 제출하는 問法.)
 9)擎擔 : 노숙(老宿)에게 "세간의 지혜로 모든 것을 헤아린 것들은 
다 염출(拈出)을 요하지 않겠거니와, 제게 화두를 던져보시겠습니까?" 하니, 
노숙이 곧 후려쳤다.

(警擔問 : 學人이 그와 상관없는 일을 들춰 물어 그 스승을 우롱하는 問法.)
 10)置 : 雲門에게 "눈을 부릅떠도 邊際를 보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운문은 "자세히 보거라[鑒]." 하였다.
(置問問 : 學人이 古人의 問答이나 語句로써 請益하는 問法.)
 11)故 : 首山에게 "일체중생이 다 佛性이 있다는데, 어째서 모릅니까?" 하니,

수산은 "안다." 하였다.
(故問問 : 學人이 經論이나 故事로써 請益하는 問法.)
 12)借 : 風穴에게 "바다에 진주가 있는데, 어떻게 취득하겠습니까?" 하니,
풍혈은 "망상(罔象*)이 왔을 때는 광채가 찬란하고,

이루(離婁*)가 가는 곳에는 풍랑이 하늘로 솟는다." 하였다.
*罔象; 象罔. 《莊子》의 古事에 나오는 '無心한 사람'에 비유되는 인물.
*離婁; 傳説에 視力이 특별히 강했다는 사람.
(借事問 : 學人이 譬喻나 事例를 들어 請益하는 問法.)
13)實 : 三聖에게 "學人이 和尚은 스님인 줄은 알겠는데,

무엇이 부처[佛]이고, 법(法)입니까?" 하니,
삼성은 "이것이 부처고, 이것이 법인 줄은 네가 알기나 하냐?" 하였다.
(實問問 : 學人이 어떤 사실을 가져다가 請益하는 問法.) 

 14)假 : 徑山에게 "이것이 전당 밑바닥[殿裏底]이라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경산은 "이것이 전리저(殿裏底)니라." 하였다.
(假問問 : 學人이 어떤 假定 하에서 請益하는 問法.)
 15)審 : 祖師에게 "일체제법이 본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 없는 것입니까?" 물으니,
답하여 "네 질문이 심히 분명한데, 왜 쓸데없이 또 내게 묻느냐?" 하였다.
(審問問 : 學人이 밝히지 못한 점을 드러내며 請益하는 問法.)
 16)徵 : 睦州에게 "조사께서 서래(西來)하신 것은 무슨 일을 위해서입니까?" 물으니,
목주는 "네가 말해보거라. 무슨 일을 위한 것이냐?" 하자, 대답을 못하는지라 목주가 후려쳤다.
(徵問問 : 學人이 힐난하는 태도로 문제를 제기하는 問法.)
 17)明 : 外道가 부처님께 "말씀하실지 안 하실지를 여쭙지 않겠습니다." 하니,
세존께서 묵묵히 계셨다. 이에 외도는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제 미혹의 구름을 걷으시어
저로 하여금 득입(得入)케 하셨나이다." 하였다.
(明問問 : 學人이 이왕 분명히 깨달아 알고 있는 일을 다시 거론하여 묻는 방법.)
 18)默 : 外道가 부처님께 와서 말없이 서있자, 부처님께서 "대단하구려[甚多]." 하시니,
外道가 "세존께서는 대자대비로 저로 하여금 득입케 하셨나이다." 하였다.
(默問問 : 學人이 말로 표현하지 않고 동작으로 묻는 방법.)
무릇 學人이 언구에 치우치거나, 혹은 어떤 것에 씌워서 師家의 안목을 분변하려 하거나,
知見을 내세우고 머리에 뿔을 세우면서 낱낱이 시험하려 하거니와,
모두 다 때려부수고 다만 면전에서 식파(識破)하기를 위할지어다.
폄하받거나 칭찬받거나 간에 맑은 거울에 비추어지면 이 무슨 정매(精魅)가 나타날 것이며,
어찌 요사한 여우인들 본 모습을 감출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雲門不移易一絲毫。
只向他道。體露金風。
答得甚妙。亦不敢辜負他問頭。
蓋為他問處有眼。答處亦端的。
古人道。欲得親切。
莫將問來問。
若是知音底。舉著便知落處。
爾若向雲門語脈裏討。
便錯了也。
只是雲門句中。
多愛惹人情解。
若作情解會。未免喪我兒孫。
雲門愛恁麼騎賊馬趁賊。
不見僧問。
如何是非思量處。
門云。識情難測。
운문(雲門)은 실 한 가닥도 움직이지 않고
다만 그에게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말했으니,
답에 매우 오묘함이 있고, 또 물음의 요지를 감히 저버리지 않았으며,
대체로 그의 문처(問處)에 안목이 있고, 답처(答處)도 명확하다.
고인이 이르기를 친절을 얻으려거든
물음을 가져와서 묻지 말라 하였다.
음(音)의 저변(底邊)을 아는 자라면 들추자 마자 곧 답을 알 것이지만
너희가 만약 운문의 어맥(語脈) 속에서 찾으려 한다면
곧 그릇쳐버린 것이다.
이 운문의 구(句) 안에서만
대부분 사람의 정해(情解) 일으키기를 좋아하는데,
만약 정해를 지어 안다면 내 자손이 될 자격 상실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운문은 그렇게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 쫓기를 좋아하였다.
보지 못했는가? 어느 중이 묻기를,
"어떤 것이 사량(思量)하지 못할 곳입니까?" 하니,
운문은 "식정(識情)으로 헤아리기 어려움이다." 하였다. 
這僧問。樹凋葉落時如何。
門云。體露金風。
句中不妨把斷要津不通凡聖。

須會他舉一明三。
舉三明一。
爾若去他三句中求。
則腦後拔箭。
他一句中須具三句。函蓋乾坤句。
隨波逐浪句。截斷眾流句。
自然恰好。
雲門三句中。且道用那句接人。
試辨看。
頌曰。
이 스님이 "나무가 시들고 잎이 질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운문은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다."고 하였는데,
구(句) 중에 파단요진(把斷要津*)하여
범성(凡聖)과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름지기 그의 거일삼명(舉一明三)과
거삼명일(舉三明一)을 알아야 하거니와,
너희가 만약 그의 삼구(三句) 속에서 구한다면
곧 뇌에 박힌 화살이 뽑힐 것이다.
그의 일구(一句) 중에는 삼구(三句), 즉 함개건곤구(函蓋乾坤句*),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 절단중류구(截斷眾流句)를 갖추었기에
자연히 아주 적절해진다.
운문의 삼구(三句) 중에서 말해보라 어떤 구로 접인(接人)한 것인가?
예를 들어 판별해 보자.
송(頌)하여 말했다. 

 

 問既有宗
   (深辨來風。箭不虛發)
 答亦攸仝
   (豈有兩般。
   如鐘待扣。功不浪施)
 三句可辨
   (上中下。如今是第幾句。
   須是向三句外薦取始得)
  一鏃遼空
   (中。過也。
   𡎺著磕著。箭過新羅)
 大野兮涼飆颯颯
   (普天匝地。
   還覺骨毛卓豎。麼。放行去也)
 長天兮疏雨濛濛
   (風浩浩。水漫漫。
   頭上漫漫。腳下漫漫)
 물음에 기왕 종지(宗旨)가 있고,
   (오는 바람을 깊이 살피는지라 화살을 헛되에 쏘지 않는다.)
 답 또한 마찬가지로구나.
   (어찌 양단<兩般>이 있으리오.
   종<鐘>이 쳐주기를 기다리듯 하여 함부로 공을 들이지 않았다.)
 삼구(三句)를 가히 분변(分辨)하면
   (상중하가 있는데 지금의 것은 몇번째 구<句>인가?
   반드시 3구<三句> 밖을 향해 천취<薦取>해야 한다.)
  화살이 하늘 멀리 날으려니와,
   (적중하거나 지나가기도 한다.
   축착개착<𡎺著磕著*>하면 화살이 신라를 지나간다.)
 넓은 벌판에 서늘한 광풍이 삽삽(颯颯;바람소리)하면
   (하늘에 가득하고 땅에 가득한데
   모골(毛骨)이 쭈뼛 섬을 느끼지 않겠는가? 놓아 가거라.)
 하늘에 소우(疏雨*)가 몽몽(濛濛*)하리라.
   (바람이 거세고 물이 넘실거림이
   머리 위에도 가득하고 발 밑에도 가득하다.)
  君不見少林久坐未歸客
   (更有不唧𠺕漢。帶累殺人。
   黃河頭上。瀉將過來)
 靜依熊耳一叢叢
   (開眠也著。合眼也著。
   鬼窟裏作活計。眼瞎耳聾。
 誰到這境界。不免打折爾版齒)
  그대는 모르는가? 소림에 오래 앉아 돌아가지 않는 나그네여!
   (다시 둔한 놈이 있어 누를 끼침이 매우 크다.
   황하강 상류에서 배설한 것을 여기까지 가져온다.)
 정의(靜依*)가 웅이(熊耳)에 하나로 가득하다네.
   (눈을 떠도 되고, 눈을 감아도 되지만
   귀굴 속에서 살림살이하면 눈 멀고 귀 먹는다.
 누가 이 경계에 이르렀는가? 네 앞니가 부러짐을 면치 못하리라.)

*𡎺著磕著; 築著磕著. 築築磕磕. 築磕; 넘어지고 부딪치다. 비틀거리고 불안정한 모양,
事情이 순조롭지 못한 모양새.

*箭過新羅; 화살이 저 멀리 신라를 지나갔다는 것은 '어디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疏雨; 성기게 뚝뚝 오는 비.
*濛濛; (먼지,비,안개,연기 따위가) 자욱한 모양.
*不唧𠺕漢; 唧𠺕는 민첩하다, 날렵하다는 뜻이니, 不唧𠺕漢은 '둔한 놈'이다.
*帶累; 다른 사람을 連累하여 나쁜 영향을 받기에 이르는 것.
죄 없이 연루되다. 번거로움이 더해지다. 누를 끼치다.
*靜依; 寂靜에 依止한 자.

 

古人道。承言須會宗。
勿自立規矩。
古人言不虛設。所以道。
大凡問箇事。
也須識些子好惡。
若不識尊卑去就。
不識淨觸。
信口亂道。
有什麼利濟。
凡出言吐氣。須是如鉗如鋏。
有鉤有鎖。須是相續不斷始得。
這僧問處有宗旨。
雲門答處亦然。
雲門尋常以三句接人。
此是極則也。
고인이 이르기를 '말씀 받들려거든 모름지기 종지(宗旨)를 알고
스스로 규구(規矩)를 세우지 말라' 하였는데,
고인은 말을 헛되이 마련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말하기를,
 '무릇 어떤 일을 물을 때는
반드시 작은 호오(好惡)까지도 알아야 한다' 하였거니와,
만약 위 아래[尊卑]도 예의[去就]도 모르고,
깨끗하고 더러운 줄[淨觸]도 모르고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信口] 아무렇게나 말한다면
무슨 건네질 이익[利濟]이 있겠는가?
무릇 말을 뱉고 기를 토하려면 모름지기 겸(鉗) 같고 협(鋏) 같으며,
구(鉤) 있고 쇄(鎖)도 있게 이어져서 끊기지 않아야 하거니와,
이 스님의 문처(問處)에 종지(宗旨)가 있고,
운문(雲門)의 답처(答處) 또한 그러하였으니,
운문이 통상 삼구(三句)로 접인(接人)하였던
바로 이것이 극칙(極則;最高의 準則)이 것이다. 
雪竇頌這公案。
與頌大龍公案相類。
三句可辨。一句中具三句。
若辨得則透出三句外。
一鏃遼空。鏃乃箭鏃也。
射得太遠。須是急著眼看始得。
若也見得分明。
可以一句之下。開展大千沙界。
到此頌了雪竇有餘才。
所以展開頌出道。
大野兮涼飆颯颯。
長天兮疏雨濛濛。
且道是心是境。是玄是妙。
설두가 이 공안을 송한 것은
대룡의 공안(大龍公案*)을 송한 것과 서로 유사하여
3구(三句)가 1구 중에 3구를 갖추어 있음을 분변할 수 있거니와,
만약 변득(辨得)하면 곧 3구를 외부로 내 쏘아서[透出]
1족(鏃)이 아주 멀리 하늘을 난다는데, 족(鏃)은 화살촉이니,
쏘아서 아주 먼 것을 얻는다는 이 말을 급히 착안하여 살펴야 한다.
만일 분명하게 견득(見得)하면
1구의 아래서 삼천대천세계를 펼쳐 연다 할 것이다.
여기까지 송(頌)을 마친 설두(雪竇)는 남은 재주가 있었기에
그래서 전개(展開)하고 송출(頌出)하여 이르기를,
 '넓은 벌판에 서늘한 광풍이 윙윙 불어대고
하늘에는 가랑비가 자욱하다.' 하였는데,
말해보라. 이것이 심(心)인가 경(境)인가, 현(玄)인가 묘(妙)인가. 

*大龍公案; 제82칙 공안 「대룡(大龍)의 견고법신(堅固法身)」
「어떤 스님이 대룡(鼎州大龍山智洪弘濟禪師)에게
"색신(色身)은 부서져 무너지거니와, 무엇이 견고한 법신(法身)입니까?" 묻자,
대룡은 "산꽃[山花]이 피면 비단 같고, 골짜기 물[澗水]도 고이면 남빛이 난다.」 하니,
색신을 山花와 澗水에 비유하여 수행이 쌓이고 꽃을 피우면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법신이 된다고 하였다. 

古人道。法法不隱藏。
古今常顯露。
他問樹凋葉落時如何。
雲門道體露金風。
雪竇意只作一境。
如今眼前。風拂拂地。
不是東南風。便是西北風。
直須便恁麼會始得。
爾若更作禪道會。
便沒交涉。
고인(天童覺)이 이르기를, '모든 법[法法]이 감춰져 있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늘 환히 드러나 있다.' 하였는데,
저 스님이 '나무가 시들어 낙엽이 질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운문은 '알몸을 드러내게 하는 가을바람[體露金風]이다' 하였다.
설두는 뜻으로 다만 한 경계만을 지었으나,
당장 눈 앞에 바람이 솔솔 부어오거든
동남풍이 아니면 곧 서북풍이구나 하고
곧 바로 이렇게 알아야 하거니와,
너희가 만일 선도(禪道)에서 알음알이[會]를 짓는다면
곧 전혀 무관한 것이다. 
君不見。
少林久坐未歸客。
達磨未歸西天時。
九年面壁。靜悄悄地。
且道是樹凋葉落。
且道是體露金風。
若向這裏。盡古今凡聖。
乾坤大地。打成一片。
方見雲門雪竇的的為人處。
靜依熊耳一叢叢。
熊耳即西京嵩山少林也。
前山也千叢萬叢。後山也千叢萬叢。
諸人向什麼處見。
還見雪竇為人處麼。
也是靈龜曳尾。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소림(少林)에 오래 앉아 돌아가지 않는 나그네여!' 하였는데,
달마(達磨)가 서천(西天)으로 돌아가기 전에
9년을 면벽(面壁)하여 적정하기 그지없었다.
자, 말해보라. 이 나무가 시들고 낙엽이 지는 것을,
또 말해보라. 이 알몸 드러내게 하는 가을바람을.
만일 그 속을 향해 고금(古今)과 범성(凡聖),
건곤대지(乾坤大地)를 다해버리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한다면
바야흐로 운문과 설두의 참된[的的] 위인처(為人處)를 볼 것이다.
 '정의(靜依)가 웅이(熊耳)에 하나로 가득하다' 하였는데,
웅이는 서경(西京)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이거니와,
앞산에도 무수히 많고 뒷산에도 무수히 많거늘
여러분은 어느 곳을 향해 보겠는가?
설두의 사람 위하는 곳이 보이는가?
이야말로 신령한 거북이 꼬리 끈 자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