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29칙 대수수타거(大随隨他去)

碧雲 2022. 9. 29. 10:02

이 공안은 「대수겁화(大隋劫火)」라고도 한다.
대수(大隋)선사는 南嶽下四世 益州大隨法真禪師(長慶大安 法嗣)를 말하며,
「수타거(隨他去;그를 따라서 간다)」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보현보살 10대원 중
「수희공덕(隨喜功德)」에 관한 화두이다.
보현보살이 '따라 기뻐하는 공덕[隨喜功德]으로 늘 중생을 따르겠노라' 하신 것은
중생과 부처가 본래 둘이 아님을 밝히신 것이니,
겁화가 일고 대천세계가 무너지는 중생의 삶 속을 따라 부처도 있다는 말씀이다. 

 

垂示云。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魚行水濁。鳥飛毛落。
明辨主賓。洞分緇素。
直似當臺明鏡。掌內明珠。
漢現胡來。聲彰色顯。
且道為什麼如此。
試舉看。
물고기가 다니면 물이 탁해지고 새가 날면 털이 떨어지는 법이라
주빈(主賓)을 명확히 판별하고 치소(緇素;黑白)을 밝게 분별하면
바로 대에 걸린 명경(明鏡)이나 손 안의 명주(明珠)처럼
한인(漢人)도 오랑캐도 나타나고, 소리도 색도 뚜렷히 드러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어째서 이러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二九】舉。  【제29칙】 대수(大随)선사의 그에 따라 간다[隨他去]
   僧問大隋。
   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這箇是什麼物。
   這一句天下衲僧摸索不著。
   預搔待痒)
   隋云。壞
   (無孔鐵鎚當面擲。沒卻鼻孔。
   未開口已前勘破了也)
   僧云。恁麼則隨他去也
   (沒量大人語脈裏轉卻。果然錯認)
   隋云。隨他去
   (前箭猶輕。後箭深。
   只這箇多少人。摸索不著。
   水長船高。泥多佛大。
    若道隨他去。在什麼處。
   若道不隨他去。又作麼生。
   便打)。
   어떤 스님이 대수(大隋)에게 묻기를,
   "겁화(劫火)가 활활 타오르고 대천(大千)이 온통 무너지거든
   이것*이 무너지는지 무너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그 일구(一句)를 천하의 납승이 모색하지 못하거늘,
   미리 긁고서 가렵기를 기다리는가?)
   대수는 "무너진다." 하였고,
   (무공철추<無孔鐵鎚>를 바로 앞에 던져서 콧구멍을 뭉개버렸으니,
   입을 열기도 전에 감파<勘破>해버린 것이다.)
   "그러한 즉 그에 따라가는군요." 하니,
   (몰량대인<沒量大人*>도 어맥<語脈> 속을 구르면
   결과적으로 잘못 인식하는 법이다.)
   "따라간다." 하였다.
   (앞 화살은 오히려 가벼웠으나 뒷 화살은 깊었다.
   다만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색하지 못했거니와,
   물이 늘면 배가 올라가고, 진흙이 많으면 불상이 커지는 법이다.
    만일 그것을 따라 간다고 한다면 어디에 있겠으며,
   또 따라가지 않는다면 또 어찌되겠느냐?
   갑자기 후려치다.)。

*이것[這箇]; '이뭣꼬[這箇是什麼物]?'의 '이'를 말한다.
*沒量大人; 양을 알 수 없이 그릇이 큰 사람. 

 

大隋真如和尚承嗣大安禪師。
乃東川鹽亭縣人。
參見六十餘員善知識。
昔時在溈山會裏作火頭。
一日溈山問云。子在此數年。
亦不解致箇問來看如何。
隋云。令某甲問箇什麼即得。
溈山云。子便不會問如何是佛。
隋以手掩溈山口。
山云。汝已後覓箇掃地人也無。
後歸川。先於堋口山路次。
煎茶接待往來。凡三年。
後方出世。開山住大隋。
대수진여(大隋真如)화상은 대안(大安)선사를 승사(承嗣)하였고,
또 동천(東川) 염정현(鹽亭縣) 사람이다.
60명 남짓의 선지식을 참견(參見)했는데,
과거 위산(溈山)의 회중(會中;會裏)에서 화두(火頭*)로 있을 때,
하루는 위산이 물었다. "네가 여기 있은 지 수년이건만,
어떤 질문도 던져올 줄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이냐?"
대수가 "저더러 무엇을 물어라고 하시는 겁니까?"
"네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대수가 손으로 위산의 입을 가려버리자,
위산은 "너는 이후에 땅을 쓸어버릴 사람을 찾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후에 동천(東川)으로 돌아와 먼저 붕구산(堋口山) 가는 길 중간에서
차를 달여 왕래객을 접대하기를 무릇 3년을 하고서,
그 뒤에 비로소 세상에 나와 개산(開山)하고 대수(大隋)에 머물렀다. 

*火頭; 절에서 밥짓는 일을 주관하는 스님.
*也無; ~해도 무방하다. ~하는 것이 좋겠다.   *路次; 가는 길 중간. 

有僧問。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這僧只據教意來問。
教中云。成住壞空。
三災劫起。壞至三禪天。
這僧元來不知話頭落處。
且道這箇是什麼人。
多作情解道。這箇是眾生本性。
隋云。壞。
僧云。恁麼則隨他去也。
隋云。隨他去。
只這箇。多少人情解。摸索不著。
若道隨他去。在什麼處。
若道不隨他去。又作麼生。
不見道欲得親切。莫將問來問。
어떤 스님이 '겁화(劫火)가 통연(洞然)하여 대천이 다 무너질 때
이것(這箇)이 무너지는지 무너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이 스님이 교의(教意)만을 들춰 물어 온 것이다.
교(教) 중에 이르되, 「이루고 머물다 스러져 공한[成住壞空] 이치라
삼재겁(三災劫)이 일어나면 삼선천(三禪天)까지 무너진다」 하였는데,
이 스님이 원래 이 화두(話頭)의 낙처를 모른 것이다.
말해보라. '이것'이 어떤 사람인가?
대개가 정해(情解)를 지어서 이것이 중생의 본성이라고 말하거니와,
대수가 '무너진다'고 하자,
저 스님이 '그렇다면 곧 그에 따라 가는군요' 하니,
대수는 '그에 따라 간다'고 하였다.
다만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정해(情解)하지만 모색하지 못한다.
만약 그에 따라 간다고 한다면 어디에 있는 것이며,
따라가지 않는다면 또 어떠한가?
모르는가? 친절을 얻으려거든 물음을 가져다 묻지 말라 하였다.
後有僧問修山主。
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山主云。不壞。
僧云。為什麼不壞。
主云。為同於大千。
壞也礙塞殺人。
不壞也礙塞殺人。
其僧既不會大隋說話。
是他也不妨以此事為念。
卻持此問。
直往舒州投子山。
投子問近離甚處。
僧云。西蜀大隋。
投云。大隋有何言句。
僧遂舉前話。
投子焚香禮拜云。
西蜀有古佛出世。
汝且速回。
其僧復回至大隋。
隋已遷化。
這僧一場懡㦬。
후에 어느 스님이 수산주(修山主*)에게 물었다.
"겁화가 통연하여 대천이 온통 무너지거든
이것이 무너지는지 무너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너지지 않는다."
"어째서 무너지지 않습니까?" 하니,
대수가 "대천과 같아지기 위해서이다." 하는지라,
무너진다는 것도 애색(礙塞*)이 심하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도 꽉 막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스님이 기왕 대수의 설화(說話)를 알지 못했지만
이 자가 '이 일[此事;一大事]'을 염두에 두어 마지 않았기에
도리어 이 질문을 가지고
바로 서주(舒州)의 투자산(投子山)에 갔는데,
투자(投子)선사가 "근래 어디에 있다가 왔느냐?" 하니,
"서촉(西蜀) 대수(大隋)에서 왔습니다." 하자,
"대수는 무슨 말을 하던가?" 하였다.
그 스님이 이윽고 앞의 이야기를 들추니,
투자가 분향하여 예배를 올리고서 이르기를,
"서촉에 한 고불(古佛)이 출세하셨으니
너는 다만 속히 돌아가거라." 하여
그 스님이 다시 대수로 돌아 갔으나
대수가 이미 천화(遷化)한 뒤였으니,
이 스님이 한바탕 마라(懡㦬;낭패)를 입은 것이다. 

*修山主; 撫州龍濟紹修禪師(羅漢桂琛 法嗣) 青原下八世.
*礙塞; 가로막혀 통하지 않다. 

後有唐僧景遵題大隋云
了然無別法。誰道印南能。

一句隨他語。千山走衲僧。

蛩寒鳴砌葉。鬼夜禮龕燈。

吟罷孤窗外。徘徊恨不勝。

所以雪竇後面引此兩句頌出。
如今也不得作壞會。
也不得作不壞會。
畢竟作麼生會。急著眼看。
후에 당승(唐僧) 경준(景遵)이 대수(大隋)라는 제목으로 이르기를,
「분명 다른 법이 없거늘
누가 남능(南能*)을 인가(印可)한다 말하는가.
 '그를 따라간다[隨他]'는 한 구절이
모든 산중의 납승들을 달리게 하니,
귀뚜라미가 추위에 섬돌 밑에서 울고
귀신이 밤에 감등(龕燈*)에 예배하다가
외로운 창 밖에서 울기를 그만두고
배회(徘徊)하며 한(恨)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그래서 설두가 뒷부분에 이 두 구(句)를 인용하여 송출하였으니,
지금처럼 무너진다고 알아도 안 되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알아도 안 된다면
필경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급히 착안해 보거라. 

*南能; 남종선(南宗禪)의 혜능(慧能).   *龕燈; 불전 앞에 켜는 장명등(長明燈).

 

 劫火光中立問端
   (道什麼。已是錯了也)
  衲僧猶滯兩重關
   (坐斷此人。如何救得。
   百匝千重。也有腳頭腳底)
  可憐一句隨他語
   (天下衲僧作這般計較。
   千句萬句也不消得。
   有什麼難截斷他腳跟處)
  萬里區區獨往還
   (業識茫茫蹉過也不知。
   自是他踏破草鞋)
 겁화(劫火)의 불길 속에 질문의 단초(端初)를 세웠다가
   (무슨 말이냐. 이미 그르친 것이다.)
   납승이 되려 양중관(兩重關)에 막혔구나.
   (이 사람을 좌단<坐斷>했는데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백잡천중<百匝千重*>이지만 각두<腳頭*>와 각저<腳底*>가 있다.)
  가련하다 한 구(句) '수타(隨他)'라는 말에
   (천하의 납승들이 이런 종류의 계교<計較>를 지어도
   천구만구<千句萬句>를 소화해 얻지 못하거늘
   어찌 그의 각근처<腳跟處;根本*> 절단하기가 어렵겠는가.)
  만리(萬里)에 구차[苟且;區區*]하게 홀로 오가다니.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하여 잘못 된 줄도 모르니,
   스스로 이것이 그가 집신만 닳아뜨리는 것이다.)

*百匝千重; 千重百匝. 겹겹으로 끝없이 에워싸인 형상. 정보와 정황이 불명한 상태.
*腳頭; 나아갈 실마리   *腳底; 나아갈 근본
*區區; ①제각기 다름 ②떳떳하지 못하고 구차(苟且)스러움 ③잘고 용렬(庸劣)함. 

 

雪竇當機頌出。
句裏有出身處。
劫火光中立問端。
衲僧猶滯兩重關。
這僧問處。先懷壞與不壞。
是兩重關。
若是得底人。道壞也有出身處。
道不壞也有出身處。
可憐一句隨他語。
萬里區區獨往還。
頌這僧持此問投子。
又復回大隋。
可謂萬里區區也。
설두가 근기에 맞춰 읊어 냈는데,
구(句) 속에 출신처(出身處)가 있다.
 '겁화(劫火) 이글거리는 가운데 물음의 단초(端)을 세웠다가
납승이 오히려 양중관(兩重關)에 막혔다'고 하였는데,
이 스님의 물음 속에 먼저 괴(壞)와 불괴(不壞)를 품고 있으니
이것이 양중관이거니와,
만약 얻었다는 사람이라면 괴(壞)라 말해도 출신처가 있고,
불괴(不壞)라 해도 출신처가 있으리라.
 '가련하다 한 구(句) 수타(隨他)라는 말에
만리(萬里)에 구차[苟且;區區*]하게 홀로 오고 가다니' 하였는데,
이 스님이 이것을 가져다 투자에게 묻고
또 다시 대수에게 돌아간 일을 읊은 것이라
가히 만리에 구구(區區)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