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안은 「대수겁화(大隋劫火)」라고도 한다.
대수(大隋)선사는 南嶽下四世 益州大隨法真禪師(長慶大安 法嗣)를 말하며,
「수타거(隨他去;그를 따라서 간다)」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보현보살 10대원 중
「수희공덕(隨喜功德)」에 관한 화두이다.
보현보살이 '따라 기뻐하는 공덕[隨喜功德]으로 늘 중생을 따르겠노라' 하신 것은
중생과 부처가 본래 둘이 아님을 밝히신 것이니,
겁화가 일고 대천세계가 무너지는 중생의 삶 속을 따라 부처도 있다는 말씀이다.
垂示云。 |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
魚行水濁。鳥飛毛落。 明辨主賓。洞分緇素。 直似當臺明鏡。掌內明珠。 漢現胡來。聲彰色顯。 且道為什麼如此。 試舉看。 |
물고기가 다니면 물이 탁해지고 새가 날면 털이 떨어지는 법이라 주빈(主賓)을 명확히 판별하고 치소(緇素;黑白)을 밝게 분별하면 바로 대에 걸린 명경(明鏡)이나 손 안의 명주(明珠)처럼 한인(漢人)도 오랑캐도 나타나고, 소리도 색도 뚜렷히 드러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어째서 이러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二九】舉。 | 【제29칙】 대수(大随)선사의 그에 따라 간다[隨他去] |
僧問大隋。 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這箇是什麼物。 這一句天下衲僧摸索不著。 預搔待痒) 隋云。壞 (無孔鐵鎚當面擲。沒卻鼻孔。 未開口已前勘破了也) 僧云。恁麼則隨他去也 (沒量大人語脈裏轉卻。果然錯認) 隋云。隨他去 (前箭猶輕。後箭深。 只這箇多少人。摸索不著。 水長船高。泥多佛大。 若道隨他去。在什麼處。 若道不隨他去。又作麼生。 便打)。 |
어떤 스님이 대수(大隋)에게 묻기를, "겁화(劫火)가 활활 타오르고 대천(大千)이 온통 무너지거든 이것*이 무너지는지 무너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그 일구(一句)를 천하의 납승이 모색하지 못하거늘, 미리 긁고서 가렵기를 기다리는가?) 대수는 "무너진다." 하였고, (무공철추<無孔鐵鎚>를 바로 앞에 던져서 콧구멍을 뭉개버렸으니, 입을 열기도 전에 감파<勘破>해버린 것이다.) "그러한 즉 그에 따라가는군요." 하니, (몰량대인<沒量大人*>도 어맥<語脈> 속을 구르면 결과적으로 잘못 인식하는 법이다.) "따라간다." 하였다. (앞 화살은 오히려 가벼웠으나 뒷 화살은 깊었다. 다만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색하지 못했거니와, 물이 늘면 배가 올라가고, 진흙이 많으면 불상이 커지는 법이다. 만일 그것을 따라 간다고 한다면 어디에 있겠으며, 또 따라가지 않는다면 또 어찌되겠느냐? 갑자기 후려치다.)。 |
*이것[這箇]; '이뭣꼬[這箇是什麼物]?'의 '이'를 말한다.
*沒量大人; 양을 알 수 없이 그릇이 큰 사람.
大隋真如和尚承嗣大安禪師。 乃東川鹽亭縣人。 參見六十餘員善知識。 昔時在溈山會裏作火頭。 一日溈山問云。子在此數年。 亦不解致箇問來看如何。 隋云。令某甲問箇什麼即得。 溈山云。子便不會問如何是佛。 隋以手掩溈山口。 山云。汝已後覓箇掃地人也無。 後歸川。先於堋口山路次。 煎茶接待往來。凡三年。 後方出世。開山住大隋。 |
대수진여(大隋真如)화상은 대안(大安)선사를 승사(承嗣)하였고, 또 동천(東川) 염정현(鹽亭縣) 사람이다. 60명 남짓의 선지식을 참견(參見)했는데, 과거 위산(溈山)의 회중(會中;會裏)에서 화두(火頭*)로 있을 때, 하루는 위산이 물었다. "네가 여기 있은 지 수년이건만, 어떤 질문도 던져올 줄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이냐?" 대수가 "저더러 무엇을 물어라고 하시는 겁니까?" "네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대수가 손으로 위산의 입을 가려버리자, 위산은 "너는 이후에 땅을 쓸어버릴 사람을 찾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후에 동천(東川)으로 돌아와 먼저 붕구산(堋口山) 가는 길 중간에서 차를 달여 왕래객을 접대하기를 무릇 3년을 하고서, 그 뒤에 비로소 세상에 나와 개산(開山)하고 대수(大隋)에 머물렀다. |
*火頭; 절에서 밥짓는 일을 주관하는 스님.
*也無; ~해도 무방하다. ~하는 것이 좋겠다. *路次; 가는 길 중간.
有僧問。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這僧只據教意來問。 教中云。成住壞空。 三災劫起。壞至三禪天。 這僧元來不知話頭落處。 且道這箇是什麼人。 多作情解道。這箇是眾生本性。 隋云。壞。 僧云。恁麼則隨他去也。 隋云。隨他去。 只這箇。多少人情解。摸索不著。 若道隨他去。在什麼處。 若道不隨他去。又作麼生。 不見道欲得親切。莫將問來問。 |
어떤 스님이 '겁화(劫火)가 통연(洞然)하여 대천이 다 무너질 때 이것(這箇)이 무너지는지 무너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이 스님이 교의(教意)만을 들춰 물어 온 것이다. 교(教) 중에 이르되, 「이루고 머물다 스러져 공한[成住壞空] 이치라 삼재겁(三災劫)이 일어나면 삼선천(三禪天)까지 무너진다」 하였는데, 이 스님이 원래 이 화두(話頭)의 낙처를 모른 것이다. 말해보라. '이것'이 어떤 사람인가? 대개가 정해(情解)를 지어서 이것이 중생의 본성이라고 말하거니와, 대수가 '무너진다'고 하자, 저 스님이 '그렇다면 곧 그에 따라 가는군요' 하니, 대수는 '그에 따라 간다'고 하였다. 다만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정해(情解)하지만 모색하지 못한다. 만약 그에 따라 간다고 한다면 어디에 있는 것이며, 따라가지 않는다면 또 어떠한가? 모르는가? 친절을 얻으려거든 물음을 가져다 묻지 말라 하였다. |
後有僧問修山主。 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山主云。不壞。 僧云。為什麼不壞。 主云。為同於大千。 壞也礙塞殺人。 不壞也礙塞殺人。 其僧既不會大隋說話。 是他也不妨以此事為念。 卻持此問。 直往舒州投子山。 投子問近離甚處。 僧云。西蜀大隋。 投云。大隋有何言句。 僧遂舉前話。 投子焚香禮拜云。 西蜀有古佛出世。 汝且速回。 其僧復回至大隋。 隋已遷化。 這僧一場懡㦬。 |
후에 어느 스님이 수산주(修山主*)에게 물었다. "겁화가 통연하여 대천이 온통 무너지거든 이것이 무너지는지 무너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너지지 않는다." "어째서 무너지지 않습니까?" 하니, 대수가 "대천과 같아지기 위해서이다." 하는지라, 무너진다는 것도 애색(礙塞*)이 심하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도 꽉 막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스님이 기왕 대수의 설화(說話)를 알지 못했지만 이 자가 '이 일[此事;一大事]'을 염두에 두어 마지 않았기에 도리어 이 질문을 가지고 바로 서주(舒州)의 투자산(投子山)에 갔는데, 투자(投子)선사가 "근래 어디에 있다가 왔느냐?" 하니, "서촉(西蜀) 대수(大隋)에서 왔습니다." 하자, "대수는 무슨 말을 하던가?" 하였다. 그 스님이 이윽고 앞의 이야기를 들추니, 투자가 분향하여 예배를 올리고서 이르기를, "서촉에 한 고불(古佛)이 출세하셨으니 너는 다만 속히 돌아가거라." 하여 그 스님이 다시 대수로 돌아 갔으나 대수가 이미 천화(遷化)한 뒤였으니, 이 스님이 한바탕 마라(懡㦬;낭패)를 입은 것이다. |
*修山主; 撫州龍濟紹修禪師(羅漢桂琛 法嗣) 青原下八世.
*礙塞; 가로막혀 통하지 않다.
後有唐僧景遵題大隋云 了然無別法。誰道印南能。 一句隨他語。千山走衲僧。 蛩寒鳴砌葉。鬼夜禮龕燈。 吟罷孤窗外。徘徊恨不勝。 所以雪竇後面引此兩句頌出。 如今也不得作壞會。 也不得作不壞會。 畢竟作麼生會。急著眼看。 |
후에 당승(唐僧) 경준(景遵)이 대수(大隋)라는 제목으로 이르기를, 「분명 다른 법이 없거늘 누가 남능(南能*)을 인가(印可)한다 말하는가. '그를 따라간다[隨他]'는 한 구절이 모든 산중의 납승들을 달리게 하니, 귀뚜라미가 추위에 섬돌 밑에서 울고 귀신이 밤에 감등(龕燈*)에 예배하다가 외로운 창 밖에서 울기를 그만두고 배회(徘徊)하며 한(恨)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그래서 설두가 뒷부분에 이 두 구(句)를 인용하여 송출하였으니, 지금처럼 무너진다고 알아도 안 되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알아도 안 된다면 필경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급히 착안해 보거라. |
*南能; 남종선(南宗禪)의 혜능(慧能). *龕燈; 불전 앞에 켜는 장명등(長明燈).
劫火光中立問端 (道什麼。已是錯了也) 衲僧猶滯兩重關 (坐斷此人。如何救得。 百匝千重。也有腳頭腳底) 可憐一句隨他語 (天下衲僧作這般計較。 千句萬句也不消得。 有什麼難截斷他腳跟處) 萬里區區獨往還 (業識茫茫蹉過也不知。 自是他踏破草鞋) |
겁화(劫火)의 불길 속에 질문의 단초(端初)를 세웠다가 (무슨 말이냐. 이미 그르친 것이다.) 납승이 되려 양중관(兩重關)에 막혔구나. (이 사람을 좌단<坐斷>했는데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백잡천중<百匝千重*>이지만 각두<腳頭*>와 각저<腳底*>가 있다.) 가련하다 한 구(句) '수타(隨他)'라는 말에 (천하의 납승들이 이런 종류의 계교<計較>를 지어도 천구만구<千句萬句>를 소화해 얻지 못하거늘 어찌 그의 각근처<腳跟處;根本*> 절단하기가 어렵겠는가.) 만리(萬里)에 구차[苟且;區區*]하게 홀로 오가다니.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하여 잘못 된 줄도 모르니, 스스로 이것이 그가 집신만 닳아뜨리는 것이다.) |
*百匝千重; 千重百匝. 겹겹으로 끝없이 에워싸인 형상. 정보와 정황이 불명한 상태.
*腳頭; 나아갈 실마리 *腳底; 나아갈 근본
*區區; ①제각기 다름 ②떳떳하지 못하고 구차(苟且)스러움 ③잘고 용렬(庸劣)함.
雪竇當機頌出。 句裏有出身處。 劫火光中立問端。 衲僧猶滯兩重關。 這僧問處。先懷壞與不壞。 是兩重關。 若是得底人。道壞也有出身處。 道不壞也有出身處。 可憐一句隨他語。 萬里區區獨往還。 頌這僧持此問投子。 又復回大隋。 可謂萬里區區也。 |
설두가 근기에 맞춰 읊어 냈는데, 구(句) 속에 출신처(出身處)가 있다. '겁화(劫火) 이글거리는 가운데 물음의 단초(端)을 세웠다가 납승이 오히려 양중관(兩重關)에 막혔다'고 하였는데, 이 스님의 물음 속에 먼저 괴(壞)와 불괴(不壞)를 품고 있으니 이것이 양중관이거니와, 만약 얻었다는 사람이라면 괴(壞)라 말해도 출신처가 있고, 불괴(不壞)라 해도 출신처가 있으리라. '가련하다 한 구(句) 수타(隨他)라는 말에 만리(萬里)에 구차[苟且;區區*]하게 홀로 오고 가다니' 하였는데, 이 스님이 이것을 가져다 투자에게 묻고 또 다시 대수에게 돌아간 일을 읊은 것이라 가히 만리에 구구(區區)했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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