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18칙 충국사(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碧雲 2022. 1. 26. 18:08
벽암록(碧巖錄) 제18칙 충국사(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忠國師; 南陽慧忠國師(675~775). 六祖惠能旁出法嗣.
*無縫塔; 탑은 일반적으로 돌이나 나무로 층을 쌓아 만드는데,
층이 없이 한 개의 돌만으로 만든 것이 무봉탑(無縫塔)이니, 소위 난탑(卵塔)이다.
이 公案에서 慧忠國師가 말하는 무봉탑이란 死後에 세우는 탑이 아니라
좌정(坐定)했을 때의 어디에도 묻혀지지 않는 無縫塔이요,
또한 우주 삼라만상 사이에 원래 存立하는 無縫塔을 지칭한 것이다. [佛學大辭典]

 

 【一八】舉。
   肅宗皇帝
   (本是代宗此誤)
   問忠國師。
   百年後所須何物
   (預搔待痒。
   果然起模畫樣。
   老老大大作這去就。
   不可指東作西)
   國師云。與老僧作箇無縫塔
   (把不住)
   帝曰。請師塔樣
   (好與一剳)
   國師良久云。會麼
   (停囚長智。
   直得指東劃西。將南作北。
   直得口似匾檐)
   帝云。不會
   (賴值不會。當時更與一拶。
   教伊滿口含霜。卻較些子)
   國師云。吾有付法弟子耽源。
   卻諳此事。請詔問之
   (賴值不掀倒禪床。
   何不與他本分草料。
   莫搽胡人好。放過一著)
 【제18칙】 충국사(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숙종(肅宗) 황제가
   (본래는 대종<代宗>인데 잘못 되었다.)
   충국사(忠國師*)에게
   "사후(死後;百年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오?" 물으니,
   (가려운 데를 미리 긁어주었는데
   과연 의도적[起模畫樣*]이었을까?
   노노대대(老老大大*)가 이런 거취를 보였으니,
   어긋난 일<指東作西*>이라 할 수 없다.)
   "노승에게 무봉탑(無縫塔)이나 지어 주십시요." 하였다.
   (못말리겠다<把不住*>.)
   숙종이 "탑 모양을 말해보시오." 하자
   (한 번 잘 찔러주었다.)
   국사는 한참을 있더니, "아시겠습니까?" 하였는데,
   (갇혀 지내면서 꾀만 늘었구나.
   동문서답(東問西答; 指東劃西 將南作北)을 한 셈이니,
   입이 편첨 같아진<口似匾檐*> 것이다.)
   숙종이 "모르겠소." 하는지라
   (모른다는 것에 힘입어 당시에 다시 일격을 가해서
   그의 입을 꽁꽁 얼게 하였으니, 제법이다<卻較些子*>.)
   국사는 "제 부법(付法) 제자 탐원(耽源)이
   이 일을 알고 있으니, 불러서 물어보십시요." 하였다.
   (선상<禪床>을 뒤엎어버리지 않을 것이었다면
   왜 그에게 본분의 양식<本分草料>을 주지 않았는가?
   오랑캐로까지 일을 키우지 말아야 했다. 한 번 봐주겠다.)

*起模畫樣; 裝模作樣. 척하다. 시치미 떼다. 故意로 꾸며내다.
語源~ 《五燈會元》卷十五 瑞州洞山曉聰禪師 章에:
「問:"德山은 入門하면 곧 棒을 하니 오히려 이것은 척하는 것[起模畫樣]이요,
臨濟는 入門하면 곧 喝을 하니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거니와,
이 두 방도를 떠나서 洞山은 어떻게 사람을 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師曰:"하늘이 맑아 비 안 온지 오래니, 머지않아 먹구름이 일겠구나."」 하였다. 

*老老大大; 원래는 '나이가 많은 어른', 여기서는 지극히 높은 어른 즉 황제를 뜻한다.
*指東作西; 指東劃西. 東拉西扯. 主題를 벗어나 엉뚱하게 하는 말. '서로 어긋난 일'이라는 뜻의 禪林用語.
*把不住; 북경지방 방언으로 장악할 방법이 없다, 멈추게 할 수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
*口似匾檐; 匾檐은 擔杖, 擔挑, 擔腳, 扁担, 担杖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며,
짐을 운반할 때 어께에 걸쳐메는 납짝하고 긴 멜대(carrying pole)를 말하니,
 '입이 편첨 같다'함은 '입이 납짝해졌다' 즉 '말문이 막혔다'는 의미이다.
*卻較些子; 한 편으로 폄하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긍정하고 찬탄하는 評語. '조금은 부족했다', '제법이다', 

   國師遷化後
   (可。惜果然錯認定盤星)
   帝詔耽源。問此意如何
   (子承父業去也。
   落在第二頭第三頭)
   源云。湘之南潭之北
   (也是把不住。
   兩兩三三作什麼。
   半開半合)
   국사가 천화(遷化)한 뒤에
   (아! 애석하게도 과연 기울어졌다<錯認定盤星*>.)
   황제가 탐원을 불러 이 뜻이 무엇인지 묻자,
   (자식이 부업<父業>을 승계하여
   제2두<第二頭*> 제3두에 떨어졌다.)
   탐원이 답했다. 「상강(湘江)의 남 담주(潭州)의 북,
   (이야말로 못말릴 일이다.
   둘둘 셋셋 짝지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다<半開半合*>.)
   雪竇著語云。
    獨掌不浪鳴
   (一盲引眾盲。
   果然隨語生解。
   隨邪逐惡作什麼)
   中有黃金。充一國
   (上是天下是地。無這箇消息。
   是誰分上事)
   雪竇著語云。山形拄杖子
   (拗折了也。也是起模畫樣)
   無影樹下合同船
   (祖師喪了也。闍黎道什麼)
   雪竇著語云。海晏河清
   (洪波浩渺白浪滔天。猶較些子)
   琉璃殿上無知識
   (咄)
   雪竇著語云。拈了也
   (賊過後張弓。言猶在耳)。
   〈설두스님은 착어(著語)하기를,
   "한 손바닥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다"고 하였고,〉
   (한 맹인이 여러 맹인을 이끌려고 하는데,
   과연 말을 쫓아 이해하려 하고
   사악(邪惡)을 쫓아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 가운데 황금 가득한 나라가 있으되
   (천지<天地> 간에 이런 소식은 없었거늘,
   이것이 누구의 본분상의 일이란 말인가?)
   〈설두스님은 "산형주장자(山形拄杖子*)"라 하였으며,〉
   (요절내버렸으니, 이야말로 의도적<起模畫樣>이다.)
   무영수(無影樹*) 밑의 합동선(合同船*)이건만
   (조사가 죽었는데 선생께서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설두스님은 "바다는 잔잔하고 강물은 맑다" 하였고,〉
   (큰 파도가 일어나 흰 물결이 하늘로 솟았으니, 제법이다.)
   유리전(琉璃殿)에는 아는 사람[知識]이 없구나.」
   (쯧쯧!)
   〈설두스님은 "꼭 찝어냈다[拈了也]"고 말을 덧붙였다.
   (때 늦은 말이지만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錯認定盤星; 定盤星은 저울 눈금의 기점(基點)을 말하니, 輕重이나 집착과 초월, 有心과 無心에 무관하다.
따라서 눈금을 잘못 인식하면[錯認定盤星] 곧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死]'.
*第二頭; 第二義門. 向下門. 즉 向上大機의 門을 이탈한 길.
*半開半合;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모양새'를 지칭하는 禪林用語.
*山形拄杖; 산 속에서 베어 온 가공하지 않은 木杖。
*無影樹; 無影塔과 같은 의미의 은유어.
*合同船; 禪林用語. 승합선(乘合船), 즉 身分의 差別 없이 同乘하는 배이니,
凡聖과 貴賤 등의 差別이 없는 境地에 비유한 것이며, 여기서는 '누구나 가는 길[死藏地]'을 뜻하는 듯.
*闍黎; 阿闍梨의 준말. 선생.
*海晏河清; 海水는 平靜하고 黃河는 清澈하다는 것이니, 천하태평(天下太平), 태평성세(太平盛世)를 말한다. 

 

肅宗代宗。皆玄宗之子孫。
為太子時。常愛參禪。
為國有巨盜。
玄宗遂幸蜀。
唐本都長安。
為安祿山僣據。
後都洛陽。
肅宗攝政。
是時忠國師。
在鄧州白崖山住庵。
今香嚴道場是也。
四十餘年不下山。
道行聞于帝里。
上元二年敕中使。詔入內。
待以師禮。甚敬重之。
숙종(肅宗*)과 대종(代宗*)은 다 현종(玄宗*)의 자손인데,
태자 시절에는 참선을 좋아했고,
나라에 거도(巨盜;安祿山)가 있었기에
현종은 촉(蜀)으로 피신하였다.
당(唐)의 본래 도성(都城)은 장안(長安)이었으나
안록산에게 참거(僣據*)된 뒤에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하고
숙종(肅宗)이 섭정(攝政)하였다.
그때 충국사(忠國師)는
등주(鄧州) 백애산(白崖山)의 암자에 있었으니,
지금의 향업도량(香嚴道場)이 그 곳이다.
40여년을 하산(下山)하지 않았는데도
도행(道行)이 제리(帝里; 洛陽)까지 들렸는지라
상원(上元) 2년 중사(中使*)를 보내 내전으로 불러들여서
스승의 예(禮)로 대우하며 심히 공경하였다. 

*玄宗, 肅宗, 代宗; 唐玄宗 李隆基(685~762)는 唐朝 第9代 皇帝로 睿宗의 셋째 아들이며 모친은 竇德妃,
唐朝 最長 44년(712~756)간 在位하였고, 廟號는 玄宗, 諡號는 至道大聖大明孝皇帝이다.
英明, 果斷, 勇敢, 多才多藝하고 謀略에 능했으며 《御注金剛般若經》을 남길 정도로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唐隆元年(710) 祖父 中宗의 妹 太平公主와 손잡고 唐隆政變을 일으켜 韋皇后와 그 일당들을 誅殺하고
그의 父親인 睿宗 李旦을 옹립하여 朝政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玄宗이 在位한 44年 중 前30年은 唐朝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으나 後期에는 양귀비를 총애하면서
政事에 태만하고 안록산을 重用하는 과실을 범하여 8年에 걸친 安史의 亂을 맞았고
唐朝는 그 후로 쇠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唐肅宗 李亨(711~762)은 玄宗의 셋째 아들로 본래 做陝王이었으나 開元26年(738)에 太子에 봉해졌다.
安史之亂 이후 玄宗은 촉으로 피신하여 국사를 펼 뜻이 없었기에 靈武(寧夏)에 진을 치고 적에 대항하던
태자 이형에게 양위하니, 756년에 제위에 올랐다.
757년 안록산이 그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되고 자연히 난이 평정되자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장안은 이미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762년 현종이 죽자 이형도 곧 병이들어 그 해에 뒤따라 죽으매,
장남인 태자 이예(李豫)가 즉위하였으니 바로 대종(代宗)이다. 

*僣據; 주제넘을 참(僣), 근거 거(據)이니, 부당한 점령. 

*中使; 궁정의 사신, 대개는 환관이었다. 

嘗與帝演無上道。
師退朝。
帝自攀車而送之。
朝臣皆有慍色。
欲奏其不便。
國師具他心通。而先見聖奏曰。
我在天帝釋前。
見粟散天子。
如閃電光相似。
帝愈加敬重。
及代宗臨御。
復延止光宅寺。
十有六載。隨機說法。
至大曆十年。遷化。
山南府青銼山和尚。
昔與國師同行。
國師嘗奏帝令詔他。
三詔不起。
常罵國師耽名愛利。
戀著人間。
國師於他父于三朝中。為國師。
他家父子。一時參禪。
일찍이 황제와 더불어 무상도(無上道)를 부연(敷演)하고서
선사가 퇴조(退朝)할 때면
황제 스스로 수레를 붙들고 전송하였는지라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성낸 기색[慍色]으로
그 불편함을 상주하려 하였는데,
국사는 타심통(他心通)을 갖춘지라 미리 성상(聖上)을 뵙고
"제가 천제석(天帝釋) 앞에 있는
무수한 천자[粟散天子]들을 보니
번쩍이는 번갯불 같더이다." 하니,
황제는 더욱 더 공경하였다.
대종(代宗)이 즉위하기에 이르러서는
다시 광택사(光宅寺) 주지에 봉하니,
16년 동안 수기설법(隨機說法)하다가
대력(大曆) 10년에 이르러 천화(遷化)하였다.
산남부(山南府)의 청좌산(靑銼山) 화상은
과거에 국사와 더불어 같이 수행했기에
국사가 일찍이 그를 부르도록 황제께 상주하여
세 번을 불렀으나 꿈쩍도 하지 않고서
늘 국사를 꾸짖어 명예를 탐하고 이(利)를 좋아하며
인간사(人間事)에 연연한다고 하였다.
국사는 그 부친으로부터 세 조정에서 국사를 지냈으니,
그 가문의 부자가 일시에 참선한 셈이다.
據傳燈錄所考。
此乃是代宗設問。
若是問國師
如何是十身調御。
此卻是肅宗問也。
國師緣終。將入涅槃。
乃辭代宗。
代宗問曰。國師百年後。
所須何物。
也只是平常一箇問端。
這老漢無風起浪。
卻道與老僧造箇無縫塔。
且道白日青天如此作什麼。
做箇塔便了。
為什麼卻道。做箇無縫塔。
代宗也不妨作家。
與爾一拶道。
請師塔樣。
國師良久云。會麼。
奇怪這些子。最是難參。
〈전등록(傳燈錄)〉의 고증에 의거하면
이것(본칙)은 결국 숙종이 아니라 대종이 했던 질문이며,
만약 국사에게
"무엇이 십신조어(十身調御*)입니까?”라고 물었다면
이것이 도리어 숙종의 질문일 것이다.*
국사가 인연을 마치고 열반에 들고자
대종에게 하직인사를 하자,
대종이 “국사께서는 사후[死後;百年後]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으니,
다만 이것이 보통 하는 하나의 인사였건만,
이 노인네가 바람 없는데 풍파를 일으켜
“노승에게 무봉탑(無縫塔)을 지어 주십시오.” 하였는데,
자 말해보라, 백일청천에 이렇게 해서 어쩌자는 것이며,
그 탑을 짓는데 있어서는 
어째서 무봉탑을 지어달라고 말했겠는가?
대종도 어쩌지 못할 작가였는지라
국사에게 일격(一擊; 一拶)을 가하여
"국사께서 탑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요." 하였는데,
국사는 한참을 있다가 "아시겠습니까?" 하였으니,
기괴한 이런 것들이 가장 참구하기 어렵다. 

*十身調御; 佛의 10種身.
「十身」은 《華嚴經》 卷38 十地品에 「此菩薩. . . .知如來身有 菩提身、願身、化身、力持身、相好莊嚴身、
威勢身、意生身、福德身、法身、智身,….」이라 하셨다.
聯燈會要 卷21에 「어느 중이 "어떤 것이 '十身調御'입니까?"하고 묻자,
投子선사는 禪床에서 내려와 서 보였다. 이에 다시 "무릇 성인 모양[聖相]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하니,
선사는 또 법좌에서 내려와 서 보였다.」 하였는데, 이것이 禪宗公案 「投子十身調御」가 되었다.
결국 佛身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함이다.
*숙종이 질문한 것이 아니라 대종이 한 질문이다;
〈전등록〉 西京光宅寺慧忠國師 章에는 본칙의 질문을 대종이 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師以化緣將畢涅槃時至。乃辭代宗。代宗曰。師滅度後弟子將何所記。
師曰。告檀越。造取一所無縫塔。曰就師請取塔樣。師良久曰。會麼。曰不會。
師曰。貧道去後有侍者應真。卻知此事。」 

大小大國師。被他一拶。
直得口似匾檐。然雖如此。
若不是這老漢。
幾乎弄倒了。
多少人道。
國師不言處。便是塔樣。
若恁麼會。
遶磨一宗掃地而盡。
若謂良久便是。
啞子也合會禪。
큼직한[大小大*] 국사(國師)들도 그에게 일격을 당하면
곧바로 입이 편첨(匾檐) 같아져버렸는데, 비록 그렇더라도
이 노인네가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농도(弄倒*)해버렸을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국사가 말하지 못한 곳은 탑 모양이다"고 하는데,
그렇게 알았다가는
한 종파를 갈아서 땅에서 쓸어 없앨 것이며,
만약 '한참 있었던 것[良久]'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한다면
벙어리라야 선(禪)을 안다는 것과 같다. 

*大小大; 偌大(큼직하다), 多麼(어느 정도, 참으로, 얼마나). 語源~《朱子語類》 [百度百科]
*농도(弄倒); 넘어뜨리다, 뒤집어 엎다, 자빠뜨리다, 뭉그러뜨리다. 뭉개지다.

豈不見外道問佛。
不問有言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禮拜。贊嘆曰。
世尊大慈大悲。開我迷雲。
令我得入。
及外道去後。阿難問佛。
外道有何所證。而言得入。
世尊云。如世良馬。
見鞭影而行。
人多向良久處會。
有什麼巴鼻。
五祖先師拈云。
前面是珍珠瑪瑙。後面是瑪瑙珍珠。
左邊是觀音勢至。右邊是文殊普賢。
中間有箇旛子。
被風吹著。道胡盧胡盧。
어찌 알지 못하는가? 외도가 부처님께
"말씀 하셔도 좋고 안하셔도 좋습니다."고 하니,
세존께서는 한참을 말없이 계셨는데[良久],
외도가 예배하고 찬탄하여 말하되,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제 미혹의 구름을 걷으시어
저로 하여금 득입(得入)케 하셨나이다." 하였다.
외도가 간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쭙기를,
"저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득입했다고 말하나이까?" 하자
세존께서는 "세간의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리느니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개 양구(良久)한 곳만을 알려고 하니,
무슨 소득[巴鼻*]이 있겠는가?
오조(五祖) 스승님께서 염(拈)하시기를,
「앞면은 진주와 마노(瑪瑙)요, 후면은 마노 진주며,
왼쪽은 관음과 세지(勢至)이고, 오른쪽은 문수 보현인데,
중간에 한 깃발이 있어
바람이 불면 "호로호로(胡盧胡盧*)"하고 말한다」고 하셨다. 

*巴鼻; 巴는 잡을 파(把)와 같은 뜻이니, 巴鼻는 '소 코에 줄을 꿰어 매서 끄는 것'을 말한다.
붙잡을 요긴한 곳, 근거(根據), 자신(自信)의 뜻으로 바뀌어 쓰인다.
*胡盧胡盧; 의성어. 깃발 펄럭대는 소리. 양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양새. 

國師云。會麼。
帝曰。不會。卻較些子。
且道這箇不會。
與武帝不識。是同是別。
雖然似則似。是則未是。
국사가 "아시겠습니까?" 하자
황제는 "모르겠소." 하였으니, 차라리 조금은 낫다.
말해보라. 이러한 '모른다[不會]'가
무제(武帝)의 '모른다[不識]'와 같은가, 다른가?
같다면 같겠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國師云。吾有付法弟子耽源。
卻諳此事。請詔問之。
雪竇拈云。
獨掌不浪鳴。
代宗不會則且置。耽源還會麼。
只消道箇請師塔樣。
盡大地人不柰何。
五祖先師拈云。
爾是一國之師。
為箇什麼不道卻推與弟子。
국사가 "저의 부법제자(付法弟子)인 탐원(耽源*)이
이 일을 알고 있으니 물어보십시오." 한 말에
설두는 염(拈)하기를,
"한 손으로는 손뼉쳐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대종이 모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탐원은 알았겠는가?
단지 탑 모양을 물은 말만을 가지고는
온 대지의 누구도 어찌해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조선사(五祖先師)께서는
"자기가 한 나라의 스승인데,
왜 말을 못하고 제자에게 슬쩍 떠미는 것인가." 하셨다. 

*耽源; 吉州耽源山應真禪師

國師遷化後。
帝詔耽源問此意如何。
源便來為國師。
胡言漢語說道理。
自然會他國師說話。
只消一頌(祖庭事苑出齊時)
湘之南潭之北。
中有黃金充一國。
無影樹下合同船。
琉璃殿上無知識。
국사가 천화(遷化)한 뒤에
황제가 그 뜻이 무엇인지 묻고자 탐원을 부르니
탐원이 곧 와서 국사가 되어
호언한어(胡言漢語*)로 도리(道理)를 설하였으니,
자연 그 충국사 설화를 이회(理會)하는 데는
(탐원의) 한 게송으로만 가능하다. (〈祖庭事苑〉의 「出齊時」)
  「상강(湘江)의 남쪽과 담주(潭州)의 북쪽
  그 가운데 있는 황금 가득한 나라는
  그림자 없는 나무 밑의 다 같이 타는 배이건만
  유리전(琉璃殿)에는 아는 사람이 없구나.」 

*胡言漢語; 본래는 오랑캐들이 漢語를 말할 때 어휘력 부족으로 의사표시가 어려움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대개 '근거(根據) 없고 조리(條理)도 없이 멋대로 뱉는 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只消; 消는 '需要'의 뜻이니, '~만 요구되다'.
*湘과 潭; 湘은 「湘江」으로 湖南省 四大河流의 하나이고,
潭은 「潭州」 즉 지금의 長沙로 湘江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결국 '동일한 곳'을 달리 표현한 말이니, 「湘之南 潭之北」은 '前面 後面',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의미이다. 

耽源名應真。
在國師處作侍者。
後住吉州耽源寺。
時仰山來參耽源。
源言重性惡不可犯。
住不得。仰山先去參性空禪師。
有僧問性空。
如何是祖師西來意。
空云。如人在千尺井中。
不假寸繩出得此人。
即答汝西來意。
僧云。近日湖南暢和尚。
亦為人東語西話。
空乃喚沙彌
拽出這死屍著(沙彌仰山)
山後舉問耽源。
如何出得井中人。
耽源曰。咄。癡漢。
誰在井中。
仰山不契。後問溈山。
山乃呼慧寂。
山應諾。溈云。出了也。
仰山因此大悟。
云。我在耽源處得體。
溈山處得用。
탐원(耽源)의 이름은 응진(應真)으로,
국사의 시자(侍者)로 있다가
후에 길주(吉州) 탐원사(耽源寺)에 주재하였다.
그때 앙산(仰山)이 와서 탐원을 참례했는데,
탐원이 말은 과하고 거친 성격이라 범접(犯接)할 수 없었기에
머물지 못하고 앙산은 우선 성공(性空)선사를 찾아갔다.
어떤 중이 성공에게
"조사가 서래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물으니,
성공은 "사람이 천 길 우물 속에 빠져 있는데
한 치의 노끈도 빌리지 않고 이 사람을 꺼낸다면
곧 너에게 서래의(西來意)를 답해 주겠다." 하였다.
어느 스님이 또 "요즈음 호남(湖南)의 창화상(暢和尚)께서도
사람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하더이다." 하자,
성공은 이내 사미(沙彌;仰山)를 부르더니,
"이 죽은 시체를 끌어내라!"고 하였다.
앙산이 뒤에 이 일을 들춰 탐원에게
"어찌해야 우물 속의 사람을 빼내겠습니까?" 물으니,
탐원은 "쯧쯧, 어리석은 놈아!
누가 우물 속에 있더냐?" 하였다.
앙산은 이해하지 못한지라 후에 위산(溈山)에게 물었더니,
위산은 곧 "혜적(慧寂;仰山)아!" 하고 불렀다。
앙산이 "예!" 하고 대답하자, 위산은 "빠져나왔구나." 하였다.
앙산은 이로 인해 대오(大悟)하였고,
"나는 탐원에게서 체(體)를 얻고,
위산에게서 용(用)을 얻었다."고 하였다. 

*言重; ①신중히 말하다 ②말이 지나치다. 

也只是這一箇頌子。
引人邪解不少。
人多錯會道。
相是相見。譚是譚論。
中間有箇無縫塔。
所以道。中有黃金充一國。
帝與國師對答。
便是無影樹下合同船。
帝不會。
遂道琉璃殿上無知識。
又有底道。相是相州之南。
潭是潭州之北。
中有黃金充一國。
頌官家眨眼顧視云。
這箇是無縫塔。
若恁麼會。不出情見。
只如雪竇下四轉語。又作麼生會。
今人殊不知古人意。
또 다만 이는 하나의 송(頌)이
사람들을 적지 않게 그릇된 이해로 이끄는 것이라
사람들이 다분히 잘못 알고서
 '상(相)은 상견(相見)이고 담(譚)은 담론(譚論)이며,
그 중간에 저 무봉탑이 있으므로
그래서 그 가운데 황금 가득한 나라가 있다 한 것이며,
황제에게 국사의 대답을 전해주되,
곧 이것이 '무영수(無影樹) 밑 합동선(合同船)이다' 하였으나,
황제가 이해하지 못하는지라
이윽고 유리전에 지식이 없다고 한 것이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상(相)은 상주(相州)의 남쪽이고
담(潭)은 담주(潭州)의 북쪽이며,
그 가운데 황금 가득한 나라가 있건만,
마침내[須] 관가(官家)가 눈 찡그리고 돌아보면서
이것이 바로 무봉탑이다고 한 것이다'고도 하는데,
만약 이렇게 안다면 정견(情見)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니와,
그래서야 설두가 붙인 네 전어(轉語)는 또 어찌 알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고인의 뜻을 전혀 모른다. 
且道。湘之南。潭之北。
爾作麼生會。
中有黃金充一國。爾作麼生會。
無影樹下合同船。爾作麼生會。
琉璃殿上無知識。
爾作麼生會。
若恁麼見得。不妨慶快平生。
자 말해보라. '상의 남 담의 북(湘之南 潭之北)'을
너희는 어떻게 이해했느냐?
 '중유황금충일국(中有黃金充一國)'은 또 어떻게 이해하고,
 '무영수 밑 합동선(無影樹下合同船)'은 어떻게 이해했으며,
 '유리전에 지식이 없음(琉璃殿上無知識)]은
너희는 어떻게 이해했느냐?
이것을 견득(見得)하면 평생 경쾌하여 마지 않을 것이다. 
湘之南潭之北。雪竇道。
獨掌不浪鳴。不得已與爾說。
中有黃金充一國。雪竇道。
山形拄杖子。
古人道。識得拄杖子。
一生參學事畢。
無影樹下合同船。
雪竇道。海晏河清。
一時豁開戶牖。八面玲瓏。
琉璃殿上無知識。
雪竇道。拈了也。
一時與爾說了也。
不妨難見。見得也好。
只是有些子錯認處。
隨語生解。
至末後道拈了也。
卻較些子。
雪竇分明一時下語了。
後面單頌箇無縫塔子。
 '상지남담지북(湘之南潭之北)'을 설두는
 '한 손바닥으로 손뼉치지 못한다'고 부득이하여 말했다.
 '중유황금충일국(中有黃金充一國)'을 설두는
 '산형주장자(山形拄杖子)'라 하였는데,
고인이 이르되, '주장자를 알면[識得拄杖子*]
일생에 참학(參學)할 일을 마친다.'고 하였다.
 '무영수하합동선(無影樹下合同船)'을
설두는 '바다도 잔잔하고 강도 맑다[海晏河清]'고 하였으니,
한꺼번에 문이 활짝 열려 팔면이 영롱해진 것이며,
 '유리전상무지식(琉璃殿上無知識)'을
설두가 '꼭 찝어냈다[拈了也]'고 한 것은
일시에 그대들에게 설해 주었다는 것이다.
난견(難見)하여 마지 않으나 견득해야 하리라.
다만 여기에 적으나마 그르친 곳이 있어
말을 쫓은 생해(生解)가
마지막 말인 '염료야(拈了也)'에까지 이르렀으니
조금은 부족했다.
설두는 분명 잠시 하어(下語)했으나
내면으로는 단순히 저 무봉탑을 송(頌)한 것이다. 

*識得拄杖子; 〈汾陽無德(善昭)禪師語錄〉 第1卷에 선사는 강당에 올라 주장자를 집어들고서
"이것이 인식되면 참학하는 일을 마친다는 것을 도리어 아느냐?
어떤 것이 주장자냐고 묻는 놈들이 많은데 그렇게 묻지 말고,
잘 헤아려서 어떻게 입을 열 것인지 시험삼아 말해보거라." 하였다.
(上堂。拈起拄杖云。識得這箇。參學事畢 還識麼。莫道喚甚麼作拄杖。如此之輩。如塵似沙。
許爾商量。作麼生開口 試道看。)」
이것이 「汾陽拄杖」이라는 公案이 되었다.
拄杖子는 禪僧이 行腳하는 동안 험난한 곳을 오를 때 의지하는 보조기구이므로
이를 禪僧이 自己心性을 究明하는 데에 있어서 伴侶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真州長蘆真歇清了禪師(丹霞淳禪師法嗣)~
道得第一句。不被拄杖子瞞。識得拄杖子。猶是途路中事。作麼生是到地頭一句。
泐潭云 識得拄杖子 入地獄如箭射一等是拄杖子 為甚麼有得有失。

 

 無縫塔
   (這一縫。大小大。
   道什麼)
 見還難
   (非眼可見。瞎)
  澄潭不許蒼龍蟠
   (見麼。洪波浩渺。
   蒼龍向什處蟠。
   這裏直得摸索不著)
 層落落
   (莫眼花。
   眼花作什麼)
 影團團
   (通身是眼。落七落八。
   兩兩三三舊路行。
   左轉右轉隨後來)
  千古萬古與人看
   (見麼。瞎漢作麼生看。
   闍黎覷得見麼)
 무봉탑(無縫塔)은
   (이 한 봉우리가 얼마나 큰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보기도 어렵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헛소리![瞎*])
  맑은 못에 창룡(蒼龍;푸른 용)이 못 산다면
   (아느냐? 큰 물결이 광대하고 아득한지라
   창룡은 어디에 살겠느냐?
   그 속에서 찾아보아도 소용이 없다.)
 층(層)은 고고하고 단촐하며[落落*]
   (눈을 흐리게<眼花*> 하지 말라.
   눈이 흐려서야 어찌 하겠느냐?)
 그림자는 둥글게 뭉친[團團*] 채로
   (온몸이 눈이라 낙칠락팔<落七落八*>하여
   둘둘 셋셋 짝지어 옛길을 걷도록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면서 뒤따라 오더라.)
  천고만고(千古萬古)에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보았느냐? 눈먼 놈이 어떻게 보겠으며,
   선생께서는 보셨소?)

*瞎; 본래의 뜻은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는 눈'.
확장된 의미로는 ①'터무니 없고, 어수선하고, 까닭없다'.
瞎忙(헛수고), 瞎話(거짓말), 瞎吹(허풍떨다), 瞎聊(함부로 말하다), 一堆瞎線團(근거없는 말들).
②'포탄이 터지지 않다'  ③'농작물이 영글지 못하다' 

*落落; ①지극히 높고 많거나 하여 보기드문 현상을 형용하는 狀態詞.
②몸가짐이 소탈하고 자연스러우며, 마음은 너그럽고 솔직함을 형용하는 말.
③사람을 대하여 冷淡하고 화합하지 못함. ④윤락이나 퇴폐적 행태. [中國語辭典(教育部)]
*團團; [國語辭典(教育部)]
①둥근 모양새. ②응결되거나 집합된 모양새. ③멈추지 않고 빙빙 도는 모양새.
*眼花; 눈이 침침하다(뿌옇다). 눈이 아물아물하다.
*落七落八; (눈을) 일곱, 여덟 방향으로 떨어뜨리다. 사방을 돌아보다. 

 

雪竇當頭道。無縫塔見還難。
雖然獨露無私。
則是要見時還難。
雪竇忒殺慈悲。更向爾道。
澄潭不許蒼龍蟠。
五祖先師道。雪竇頌古一冊。
我只愛他澄潭不許蒼龍蟠一句。

猶較些子。
多少人去他國師良久處作活計。

若恁麼會。一時錯了也。
설두는 첫머리에서 “무봉탑은 보기도 어렵다”고 하였는데,
그렇듯 삿됨 없이 홀로 드러나면
봐야 할 때 도리어 어려운 것이다.
설두는 큰 자비로 다시 그대들에게 이르기를,
“맑은 못에는 창룡이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오조 스승님께서는 “설두선사가 송고(頌古)하신 한 책에서
"나는 다만 저 '맑은 못에는 창룡이 살 수 없다’는
한 구절이 좋다"고 하셨으니,
대단하시다.
사람들은 국사가 한참 말없이 있었다는 데서
알 궁리를 하거니와
그렇게 이해하려 한다면 한 때의 착각이다. 
不見道。
臥龍不鑒止水。
無處有月波澄。
有處無風浪起。
又道。臥龍長怖碧潭清。

若是這箇漢。直饒洪波浩渺。
白浪滔天。亦不在裏許蟠。
雪竇到此頌了。
後頭著些子眼目。
琢出一箇無縫塔。隨後說道。
層落落影團團。
千古萬古與人看。
爾作麼生看。即今在什麼處。
直饒爾見得分明。
也莫錯認定盤星。
이런 말을 모르는가?
“와룡(臥龍)은 고인 물에는 드러내지 않기에
없는 곳에는 달빛 어린 물결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는 바람 없어도 물결이 인다” 하였고,
또 “와룡은 검푸른 못의 맑음을
몹시 두려워한다”고도 하였으니,
만일 이런 놈이라면 설사 큰 파도가 넓고 아득하여
흰 물결이 하늘에 닿더라도 그 속에서 살지 못한다.
설두는 이에 이르러 송을 마치고,
끝 부분에 살짝 안목을 붙여서
하나의 무봉탑을 다듬어 낸 다음 뒤이어 말하기를,
“층은 단촐[落落]하고, 그림자는 둥근[團團] 채로
천고만고(千古萬古)에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고 하였는데,
그대들은 어찌 보았는가? 지금에는 어디에 있던가?
설사 그대가 분명히 견득하더라도
균형점(均衡點;中道;定盤星)을 잘못 인식하지는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