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宗 書籍으로 全6卷이며 宋代 晦巖智昭가 쓰고, 淳熙 15년(1188)에 刊行되었다.
臨濟宗 楊歧派 大慧下 4世인 晦巖선사가 20년에 걸쳐
中國禪宗 5家의 宗旨를 收集한 綱要書이다.
머리에 宗祖의 略傳을 記載하고 다시 해당 종파의 중요한
祖師의 語句, 偈頌, 機關, 宗綱을 列舉하였으며,
아울러 先德들이 이에 대해 곁들인 拈提와 偈頌을 收集하여
讀者의 理解를 돕게 하였다.
晦巖의 뒤로 物初大觀이 寶釣 6년(1258)에 이 책을 重修하였고,
元 延釣 4년(1317)에는 撫州 天峯致釣가 校修를 가해
臨濟宗과 溈仰宗, 曹洞宗, 雲門宗, 法眼宗의 順序에 따라 新刊을 發行하였다.
위의 刊本은 다 3卷本이고, 日本 쪽에서 乾元 元年(1302)에 開版된 五山版과
南北朝와 室町 때의 五山版도 3卷本이지만,
明 洪武 元年(1368) 朝鮮에서 刊行된 것은 6卷本으로
五家의 順序를 바꿔 臨濟, 雲門, 曹洞, 溈仰, 法眼 순으로 각 一卷씩 五卷,
그리고 卷六에는 增添收錄 補遺事項 與禪宗史 상의 問題를 考證한
宗門의 雜錄과 龍潭의 考察을 실었다.
明 萬曆 14년(1586)에 刊行된 明 續藏本은 이것과 同本이다.
本書의 註釋書로는 《人天眼目批嚶集》, 《人天眼目不二鈔》, 《人天眼目抄》,
《重修人天眼目集綱領》,《人天眼目金鉅》, 《人天眼目臆説》,
《人天眼目春堂解》等으로 너무나 많다. [中華佛教百科全書]
그러나 朝鮮版은 1368년이 아니라 고려 공민왕 6년(1357)에
강금강(姜金剛)에 의해 간행되었고,
조선 태조 4년(1395)에 王師 무학대사가 重刊한 목판본(보물 제640호)이 현존한다. .
人天眼目序 | 인천안목(人天眼目) 서(序) |
予遊方時。所至盡誠。 咨扣尊宿五宗綱要。 其間件目。往往亦有所未知者。 因慨念。既據師位。 而綱宗語句。 尚不知其名。況旨訣乎。 將何以啟迪後昆。 剔抉疑膜邪。 於是有意於綱要。幾二十年矣。 或見於遺編。或得於斷碣。 或聞尊宿稱提。或獲老衲垂頌。 凡是五宗綱要者。即筆而藏諸。 雖成巨軸。第未暇詳定。 晚抵天台萬年山寺。始償其志。 編次類列。分為五宗。 名之曰人天眼目。 |
내가 유방(遊方)할 때 지극한 정성을 다해 존숙(尊宿)께 다섯 종가[五宗]의 강요(綱要)에 대해 여쭈었는데, 그간에 어떤 건목(件目)들은 왕왕 모르는 것들이 있어서 개탄스러운 마음에 기왕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지라 종지(宗旨)와 어구(語句)를 추스려보았으나, 오히려 그 명칭도 모르겠는데 하물며 취지를 어찌 알겠으며, 장차 무엇으로써 후손(後孫;後昆)을 일깨워 나아가고, 의혹과 꺼풀, 그릇됨을 척결(剔抉)할 수 있었겠는가? 이에 강요(綱要)에 뜻이 있어 20년 동안 유편(遺編;遺作)을 보거나 혹 비석 조각[斷碣*]을 얻기도 하고, 존숙의 칭제(稱提)를 듣거나 원로 스님의 송(頌)을 얻어서 이 5종강요(五宗綱要)라는 것에 곧 써서 간직한 것들이 비록 큰 축을 이루었지만 미처 상정(詳定)할 겨를이 없었다가 늦으막에 천태산 만년사(萬年寺)에서 비로소 그 뜻을 이루어 차례를 짜고 5종(五宗)으로 구분하여 인천안목(人天眼目)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其辭皆一。依前輩所作。 弗敢增損。然是集也。 乃從上諸大老利物施為。 既非予胸臆之論。 俾行於世。有何誚焉。 若其執拂柄據師位者。 外是則無以辯驗邪正也。 有識博聞者。必垂印可。 |
그 언사(言辭)들은 한결같이 선배들이 한 것이며, 감히 증손(增損)하지 않았으니 정확히 집(集)이라서 결국 위로부터의 대로(大老)들께서 베푸신 이물(利物)인지라 기왕 내심으로 억측한 논리가 아니거늘 세상에 발행된다 해서 무슨 나무랄 것이 있으리오. 만일 불자(拂子;拂柄)를 거머쥐고 스승노릇을 하는자라면 도외시해서는 정사(正邪)를 변별하고 점검할 수 없으리니, 유식하고 해박한 자는 꼭 인가(印可)하기 바란다. |
宋淳熙戊申季冬 越山晦巖智昭序 |
송(宋) 순희(淳熙) 무신(戊申)년(1188) 겨울에 월산(越山) 회암지소(晦巖智昭)가 서(序)하다. |
人天眼目卷之一 | 인천안목(人天眼目) 제1권 |
臨濟宗 | 1. 임제종(臨濟宗) |
師諱義玄。 曹州南華人也。俗姓邢。 幼而頴異。長以孝聞。 及落髮受具。居於講肆。 精究毘尼。博賾經論。 俄歎曰。此濟世醫方也。 非教外別傳之旨。 即更衣遊方。 首參黃蘗。次謁大愚。 其機緣語句。載於行錄。 既受黃蘗印可。 尋抵河北鎮州城東南隅。 臨滹沱河側。小院住持。 其臨濟因地得名。 唐咸通八年丁亥四月十日。 攝衣據坐與三聖問答畢。 寂然而逝。 門人以師全身。 建塔於大名府西北隅。 勅諡慧照禪師。塔號澄靈。 |
종사(宗師)의 휘(諱)는 의현(義玄)이며, 조주(曹州) 남화(南華)사람으로 속성(俗姓)은 형(邢)씨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랐고, 장성해서는 효자로 소문이 났었다. 삭발하고 구족계를 받아 강사(講師;講肆)생활을 하면서 율장(律藏;毘尼)을 탐구하고 경론을 넓고 깊게 하다가 돌연 "이 세상을 구한다는 처방은 교외별전(教外別傳)의 취지가 아니로구나." 탄식하고서 곧 종파를 바꾸고[更衣] 유방(遊方)에 나서서 맨 먼저 황벽(黃蘗), 그 다음으로 대우(大愚)를 참알(參謁)하고 그들의 기연(機緣)과 어구(語句)를 행록(行錄)에 실었다. 황벽의 인가를 받자 하북 진주(鎮州)성 동남쪽으로 깃들 곳을 찾아 호타강(滹沱河) 옆 작은 사원의 주지로 임했으니, 임제(臨濟)는 그 땅의 이름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다. 당 함통(咸通) 8년 정해(丁亥) 4월 10일에 섭의거좌(攝衣據坐)하고 세 성인과 문답을 마친 후 고요히 서거하였다. 문인들이 종사의 전신(全身)으로 대명부(大名府) 서북쪽에 탑을 세웠고, 칙시(勅諡)는 혜조선사(慧照禪師), 탑호(塔號)는 징령(澄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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