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복이 진조가 오매 일원상을 그어 맞아주었건만
진조는 자신이 여기 온 것도 무사(無事)가 되지 못하거니와,
일원상을 그은 것도 무사라 할 수 없다 하니,
자복이 대꾸를 못하고 방장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를 두고 설두가 '진조는 정문안(頂門眼;一隻眼)만 갖추었을 뿐이다',
즉 '감과(勘過)하는 안목만을 가지고 있을 뿐 부족했다'고 평했는지라
원오는 '당시에 어떻게 답하면 그런 말을 듣지 않겠는가?' 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垂示云。 | 수시(垂示)하여 말했다. |
東西不辨南北不分。 從朝至暮從暮至朝。 還道伊瞌睡麼。 有時眼似流星。 還道伊惺惺麼 有時呼南作北。 且道是有心是無心。 是道人是常人。 若向箇裏透得。 始知落處。 方知古人恁麼不恁麼。 且道是什麼時節。 試舉看。 |
동서를 해아리지 않고 남북을 분간하지 아니 하면서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고 저녁에서 아침에 이른다면 그가 흐리멍텅[瞌睡*]하다고 하겠는가? 어느 때는 눈이 유성(流星)과 같다면 그가 초롱초롱[惺惺*]하다고 하겠는가? 또 어떤 때는 남쪽을 북쪽이라고 한다면 말해보라. 유심(有心)인가 무심(無心)인가? 도인(道人)인가 보통사람[常人]인가? 만약 그 속을 향해 투득(透得)하면 비로소 낙처(落處)를 알고 바야흐로 고인의 이러저러한 면모를 알게 되려니와, 자 말해보라. 이는 어떤 시절인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瞌睡; 졸음. 눈을 뜨고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유. 흐릿하여 분명하지 못함.
*惺惺; 초롱초롱. 총총. 총명.
【三三】舉。 | 【제33칙】 진조는 정문안만 갖췄구나 |
陳操尚書看資福。 福見來便畫一圓相 (是精識精。是賊識賊。 若不蘊藉爭識這漢。 還見金剛圈麼) 操云。弟子恁麼來。 早是不著便。 何況更畫一圓相 (今日撞著箇瞌睡漢這老賊) 福便掩卻方丈門 (賊不打貧兒家。 已入他圈繢了也) 雪竇云。 陳操只具一隻眼 (雪竇頂門具眼。 且道他意在什麼處。 也好與一圓相。 灼然龍頭蛇尾。 當時好與一拶。 教伊進亦無門退亦無路。 且道更與他什麼一拶)。 |
진조(陳操) 상서(尚書)가 자복(資福*)을 뵈러 가니, 자복이 오는 것을 보고 일원상(一圓相*)을 그었다. (정령<精靈>이 정령을 알고, 도적이 도적을 알거니와, 온자(蘊藉*)가 아니다면 어찌 그런 자를 식별하리오. 도리어 금강권<金剛圈*>을 본 것인가?) 진조가 "제자가 이렇게 온 것도 일찌감치 편의(便宜)가 못 되는데 하물며 다시 일원상을 그은 것이겠습니까?" 하자, (오늘 갑수한<瞌睡漢*>을 만났구나. 이 노적이.) 자복이 곧 방장문<方丈門>을 닫아버렸다. (도적도 가난한 집을 털지 않거늘 이미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설두가 착어하되, "진조는 일척안<一隻眼*>만을 갖췄다." 하였다. (설두의 정문<頂門>에 눈을 갖췄다는 것은 말해보라.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일원상<一圓相>을 그어주는 편이 나았을 것을 용두사미<龍頭蛇尾>를 빤히 드러냈다. 당시에 1찰(拶;윽박지름)을 주어 그가 나아가자니 문이 없고 물러서자니 길이 없게 했어야 했는데, 말해보라. 다시 그에게 어떤 1찰을 주겠는가?) |
*資福; 福州資福院智遠禪師(雪峰義存_鏡清道怤 法嗣; 青原下七世)
*一圓相; 동그라미. 禪家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으로 真如, 法性, 實相이나,
혹은 眾生이 본래 구비한 佛性, 또는 圓覺을 표현해 왔는데, 慧忠國師에서 비롯되었다.
*蕴藉; 안에 감추고 밖으로 노출하지 않다. '군자의 기질'을 형용하는 의미로 쓰인다.
*不著便; '편의가 못된다, 잘한 일이 못된다' 즉 '무사(無事)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
*瞌睡漢; 알쏭달쏭한 자.
*一隻眼; 범부가 갖지 못한 제3의 진실을 보는 눈.
정문(頂門)에 달린 또 하나의 눈이라 하여 정문안(頂門眼)이라고도 한다.
*金剛圈; '금강 울타리'.
楊歧方會禪師가 「栗棘蓬을 너는 어떻게 삼키고, 金剛圈을 어떻게 뚫겠느냐?」 하였는데,
圜悟가 「臨濟의 金剛王寶劍, 德山의 末後句, 藥嶠(藥山)의 一句子, 祕魔(祕魔巖)의 杈,
俱胝의 指, 雪峯의 輥毬, 禾山의 打鼓, 趙州의 喫茶, 楊岐의 栗棘蓬, 金剛圈이
모두 너와 일치되어 계합하고 증득하면 곧바로 수고가 덜어져서
조사의 모든 言教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으리니,
사람을 마주하여 네 스스로를 잘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율극봉(栗棘蓬)은 '밤의 가시껍질'
陳操尚書。 與裴休李翱同時。 凡見一僧來。先請齋。 襯錢三百。須是勘辨。 |
진조(陳操*) 상서(尚書)는 배휴(裴休*), 이고(李翱*)와 같은 시대의 사람인데, 스님이 오기만 하면 우선 식사를 대접하고 삼백 냥을 친전(襯錢*)한 뒤에 반드시 감변(勘辨)했다. |
*陳操; 睦州刺史陳操尚書(黃檗希運_睦州陳尊宿 法嗣; 南嶽下五世)
*裴休; 相國裴休居士(黃檗希運 法嗣; 南嶽下四世)
*李翱; 鼎州李翱刺史(石頭希遷_藥山惟儼 法嗣; 青原下三世)
*襯錢; 보시, 시주.
一日雲門到相看便問。 儒書中即不問。 三乘十二分教。自有座主。 作麼生是衲僧家行腳事。 雲門云。尚書曾問幾人來。 操云。即今問上座。 門云。即今且置。作麼生是教意。 操云。黃卷赤軸。 門云。這箇是文字語言。 作麼生是教意。 操云。口欲談而辭喪。 心欲緣而慮亡。 門云。口欲談而辭喪。 為對有言。 心欲緣而慮亡。 為對妄想。 作麼生是教意。操無語。 門云。見說尚書看法華經是否。 操云是 |
하루는 운문이 오니 서로 만나자 곧 물었다. "유서(儒書) 속에는 불문(不問)하고 3승12분교에는 스스로 좌주(座主)가 있는데, 어떤 것이 납승가의 행각사(行脚事)입니까?" 운문이 "상서는 일찍이 몇 사람에게 물어 봤습니까?" 하니, 진조가 "지금 막[即今] 상좌(上座)께 여쭙니다." 하였다. "즉금(即今)은 차치하고 무엇이 교(敎)의 뜻입니까?" "황권적축(黃卷赤軸*)이겠습니다." "그것은 문자와 언어일 뿐이고, 어떤 것이 교의(教意)입니까?" "입으로 얘기하고자 하면 언사(言辭)가 다치고, 마음으로 반연하려 하면 사려(思慮)가 죽습니다." "입으로 얘기해서 언사가 다치는 것은 어떤 말을 대하기 위해서이고, 마음으로 반연해서 사려가 죽는 것은 허망된 생각을 대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이 교의입니까?" 진조가 말이 없었다. "말씀을 보아하니, 상서는 《법화경》을 보셨습니까?" 진조가 "그렇습니다." 하였다. |
門云。經中道。 一切治生產業。 皆與實相不相違背。 且道非非想天。 即今有幾人退位。 操又無語。 門云。尚書且莫草草。 師僧家拋卻三經五論來入叢林。 十年二十年。尚自不奈何。 尚書又爭得會。 操禮拜云。某甲罪過。 |
운문이 말했다. "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산업(産業)을 꾸려가는 것이 다 실상(實相)과 더불어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하였는데, 자 말해보십시요. 비비상천(非非想天)에서는 지금 막 몇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까?" 진조가 또 말이 없는지라 운문이 "상서는 다만 초초(草草*)하지 마십시요. 사승가(師僧家*)가 3경5론(三經五論*)을 팽개치고 총림에 들어와 10년, 20년을 지내도 오히려 어찌하지 못하는데, 상서가 또 어찌 깨닫겠습니까?" 하자, 진조가 예배하고서 "저의 죄과(罪過)입니다." 하였다. |
*黃卷赤軸; 黃紙朱軸, '누런 종이에 써서 붉은 축대에 감은 것', 즉 '불교경전'을 말한다.
*草草; ①근심으로 힘들어 하는 모양새. ②거칠고 경솔함. 진실을 모름.
③초목이 무성한 모양. ④소란하고 불안한 모양.
⑤서신 말미에 인사치례로 붙이는 '누추한 말로 결례했다'는 의미의 말.
*師僧家; 스승을 감당할 만한 작가 스님.
*三經; 佛祖三經. 즉 부처님 경전, 42장경(四十二章經), 위산경책(溈山警策).
*五論; 五部大論. 무착(無著)보살이 미륵보살의 뜻을 계승하여 지은 5부대승론(五部大乘論).
①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100권 ②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
③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13권 ④변중변론송(辨中邊論頌) 1권
⑤금강반야론(金剛般若論) 2권.
又一日與眾官登樓次。 望見數僧來。一官人云。 來者總是禪僧。 操云。不是。 官云。焉知不是。 操云。待近來與爾勘過。 僧至樓前。 操驀召云。上座。僧舉頭。 書謂眾官云。不信道。 唯有雲門一人。他勘不得。 |
또 하루는 여러 관원들과 더불어 누(樓)에 올라 몇 명의 스님들이 오는 것을 보고서 한 관원이 "오는 자들이 모두 선승입니까?" 하니, 진조는 "그렇지 않다." 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은 줄 아십니까?" 전조가 가까이 오거든 너에게 감과(勘過)해 주리라 하여, 스님들이 누 앞에 이르니, 진조가 갑자기 "상좌(上座)!" 하자, 스님들이 고개를 들었다. 상서가 관인들에게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하였으니, 오직 운문 한 사람만 그가 감과(勘過)하지 못했다. |
他參見睦州來。 一日去參資福。 福見來。便畫一圓相。 資福乃溈山仰山下尊宿。 尋常愛以境致接人。 見陳操尚書便畫一圓相。 爭奈操卻是作家。不受人瞞。 解自點檢云。 弟子恁麼來早是不著便。 那堪更畫一圓相。 福掩卻門。 這般公案謂之言中辨的句裏藏機。 |
그는 목주(睦州)를 참견(參見)하여 왔는데, 하루는 자복(資福)을 참(參)하러 가니, 자복이 오는 것을 보고 곧 1원상(一圓相)을 그었다. 자복은 곧 위산과 앙산 문하의 존숙으로 통상 경치(境致)를 즐기면서 접인(接人)하였는데, 진조상서를 보자 곧 1원상을 그었건만 진조도 도리어 작가인지라 속지 않음을 어찌 하겠는가. 스스로 점검할 줄 알기에 "제자가 이렇게 온 것이 일찌감치 편의(便宜)가 못 되는데 어찌 다시 1원상 그음을 감당하겠습니까?" 하니, 자복이 문을 닫아버렸다. 이런 종류의 공안을 '말 가운데 표적이 변별되어 있고, 구(句) 속에 기(機)가 숨어 있다'고 한다. |
雪竇道。陳操只具。一隻眼。 雪竇可謂頂門具眼。 且道意在什麼處。 也好與一圓相。 若總恁麼地。 衲僧家如何為人。 我且問爾。 當時若是諸人作陳操時。 堪下得箇什麼語。 免得雪竇道他只具一隻眼。 所以雪竇踏翻頌云。 |
설두는 '진조가 다만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 하였는데, 설두가 가히 정문(頂門)에 눈을 갖추었다고 말한 뜻이 어느 곳에 있는지 말해보라. 일원상을 그어주는 편이 나았거니와, 만약 모두가 그런 경지라면 납승가가 어떻게 사람을 위하겠는가? 내가 또 너희에게 묻겠는데, 당시에 만약 여러분이 진조였을 때 그 어떤 말을 했더라면 설두의 '그는 일척안만을 갖추었다'는 말을 듣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설두가 샅샅이 밟아 송(頌)으로 말했다. |
團團珠遶玉珊珊 (三尺杖子攪黃河。 須是碧眼胡僧始得。 生鐵鑄就) 馬載驢駝上鐵船 (用許多作什麼。有什麼限。 且與闍黎看) 分付海山無事客 (有人不要。 若是無事客也不消得。 須是無事始得) 釣鼇時下一圈攣 (恁麼來恁麼去。一時出不得。 若是蝦蟆堪作什麼。 蝦蜆螺蚌怎生奈何。 須是釣鼇始得) 雪竇復云。 天下衲僧跳不出 (兼身在內。一坑埋卻。 闍黎還跳得出麼) |
둥글고 둥글게 감싸인 구슬이 영롱한데 (석 자(尺) 주장자로 황하<黃河>를 휘저으려면 반드시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야 하거늘, 생철<生鐵>로 주조<鑄造>했구나.) 말에 싣고 나귀에 싣고서 철선(鐵船)에 올라 (많아서 무엇할 것이며, 무슨 한정이 있으리오만 다만 선생께 준 것이니, 살펴보시오.) 해산(海山)의 무사객(無事客)에게 분부하노니, (필요치 않은 사람도 있어서 만약 무사객<無事客>이라면 소화해 내지 못하리니, 반드시 무사<無事>라야만 한다.) 자라를 낚을 때는 권련(圈攣*)을 쓰시게나. (이러나 저러나 일시에 벗어나지는 못할 터인데, 만약 개구리라면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새우나 조개라면 어떻게 어찌 해보겠는가? 그러니 반드시 자라를 낚아야 한다.) 설두가 다시 이르거니와, 천하의 납승이 뛰어봤자 벗어나지 못할 것이네. (당신도 겸하여 그 안에다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면 선생께서는 벗어나시겠소?) |
*碧眼胡僧; 푸른 눈의 오랑캐 승려, 달마대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釣鼇時下一圈攣; '자라를 낚을 때는 특별한 미끼를 쓴다'
자라는 '큰 놈(특출한 상근기의 禪徒)'에 비유하는 표현이며,
권련(圈攣)의 圈은 올가미, 攣은 옭아매거나 낚아내기 위한 도구.
선림에서는 일원상을 긋는 수법 같은 '특별한 수단(미끼)'을 말한다.
*蝦蜆螺蚌; 새우蝦, 도롱이 벌레蜆, 소라螺, 조개蚌. 보잘것 없는 것들.
團團珠遶玉珊珊。 馬載驢駝上鐵船。 雪竇當頭頌出。 只頌箇圓相。 若會得去。如虎戴角相似。 這箇些子。 須是桶底脫機關盡。 得失是非。一時放卻。 更不要作道理會。 也不得作玄妙會。 畢竟作麼生會。 |
'둥글고 둥글게 감싸인 구슬이 초롱초롱한데 말에 싣고 나귀에 실어 철선(鐵船)에 오른다' 하고 설두가 첫머리에 송출(頌出)한 것은 다만 그 원상(圓相)을 송한 것인데, 만일 회득(會得)하면 범이 뿔을 단 것 같겠지만 이런 작은 일조차도 반드시 칠통 밑바닥이 빠지고 기관(機關)이 다해서 득실과 시비(是非)가 일시에 놓아져버려야 하거니와, 더욱이 도리(道理)로 알고자 해서도 안되고, 현묘(玄妙)함으로 알려 해서도 안된다면 필경 어떻게 알아야 하겠는가? |
這箇須是馬載驢駝上鐵船。 這裏看始得。別處則不可分付。 須是將去分付海山無事底客。 爾若肚裏有些子事。 即承當不得。 這裏須是有事無事。 違情順境。 若佛若祖奈何他不得底人。 方可承當。 若有禪可參。 有凡聖情量。 決定承當他底不得。 承當得了。作麼生會。 他道釣鼇時下一圈攣。 釣鼇須是圈攣始得。 所以風穴云。 慣釣鯨鯢澄巨浸。 卻嗟蛙步碾泥沙。 又云。巨鼇莫戴三山去。 吾欲逢萊頂上行。 |
이것은 반드시 말에 싣고 나귀에 싣고 철선에 올라서 그 속을 살펴야 할 뿐 달리 분부할 방법이 없으니, 반드시 가져다가 해산(海山)의 무사(無事)한 객들에게 분부해야 한다. 너희가 만약 뱃속[心中]에 조그마한 일이라도 있다면 승당(承當*)하지 못하려니와, 이 속에서 모름지기 일이 있고 없음[有事無事]이나 어떤 거슬린 감정과 순조로운 환경[違情順境]이나 부처나 조사도 어찌 해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바야흐로 승당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참구할만 한 선(禪)이 있거나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정으로 헤아림이 있다면 결정코 그의 저변(底邊)을 승당하지 못할 것이다. 승당한 뒤에는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그는 '자라 낚을 때는 권련(圈攣)을 투하하라' 했는데, 자라를 낚으려면 반드시 권련이라야 한다. 그래서 풍혈(風穴)선사가 이르기를, "고래를 낚아 거침(巨浸;大海,세상) 맑히기를 관철하다가 도리어 개구리 걸음으로 모래뻘에서 팔딱거림을 한탄한다." 하였고, 또 "큰 자라야, 세 산[三山*]을 지고 가지 말거라. 나는 봉래산(逢萊山) 꼭대기로 가련다." 하였다. |
*承當; 承受擔當(이어받아서 감당해 내다)
*三山; 三山五嶽 중 三山은 中國傳說 속 東海(渤海)에 있다는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의 三神山을 말한다.
五嶽은 태산(泰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 숭산(嵩山).
雪竇復云。 天下衲僧跳不出。 若是巨鼇。終不作衲僧見解。 若是衲僧。終不作巨鼇見解。 |
설두가 다시 '천하의 납승이 뛰어도 벗어나지 못한다' 하였는데, 만약 큰 자라라면 결코 납승의 견해를 짓지 않을 것이며 납승이라면 결코 큰 자라의 견해를 짓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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