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봉에 오르지 못한 자는 올라보게 해주는 것이 종사가(宗師家)의 마땅한 도리다.
팔만의 언어로는 오로봉에 오르게 할 수 없기에 선가에서는 통상 방(棒), 할(喝) 등의
정령(正令)을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파심에서 한 마디 건네 주었다가는
제방으로부터 '누두(漏逗)가 심했다', '눈썹을 아껴야 한다'는 따위의 갈등에 뒤얽힌다.
【三四】舉。 | 【제34칙】 앙산(仰山)의 '산을 다닌 적 없구나.' |
仰山問僧。 近離甚處 (天下人一般。也要問過。 因風吹火。 不可不作常程) 僧云。廬山 (實頭人難得) 山云曾遊五老峰麼 (因行不妨掉臂。何曾蹉過) 僧云。不曾到 (移一步。 面赤不如語直。 也似忘前失後) 山云。闍黎不曾遊山 (太多事生。 惜取眉毛好。 這老漢著甚死急) 雲門云。此語皆為慈悲之故。 有落草之談 (殺人刀活人劍。兩箇三箇。 要知山上路。 須是去來人)。 |
앙산(仰山*)이 중에게 물었다. "근래 어디에 있었느냐?" (천하인이 일반으로 물어보고 넘어가려 한다. 바람이 불어야 불이 붙는 법이라 통상적 절차[常程]를 밟지 않을 수 없다.) "여산(廬山)에 있었습니다" (정말 사람 보기 어렵다.) "오로봉(五老峰*)을 가본 적이 있는가?" (활개치고 다녀도 무방한데, 무슨 잘못인가?) "가보지 못했습니다." (더 나갔다가는 얼굴이 붉어져서 솔직히 말하느니만 못하리니, 앞도 뒤도 잃은 꼴이로구나.) "선생은 산을 다녀보지 않았구먼." (너무 많은 일이 생길 것이라 잘못 된 말을 삼가하는 것[惜取眉毛]이 좋거늘, 이 늙은이가 몹시 죽기를 재촉하는구나.) 운문(雲門)은 "이 말은 다 자비 때문에 한 낙초지담(落草之談*)이다." 하였다. (살인도<殺人刀>, 활인검<活人劍>은 두 셋 뿐이다. 산 위의 길을 알고자 하거든 모름지기 갔다 온 사람이라야 한다.)。 |
*仰山(807-883); 袁州仰山慧寂通智禪師(溈山靈祐 法嗣; 南嶽下四世)
溈山과 함께 위앙종(潙仰宗)의 개조(開祖)임.
*實頭; (형) 확고하다. 견고하다. (부) 실로. 틀림없이. 확실히. 정말.
*五老峰; 중국 전설 상의 青靈始老, 丹靈真老, 黃靈元老, 浩靈素老,
一靈玄老의 다섯 천존(天尊)이 각각 앉아 있다는 여산(廬山)의 다섯 봉우리.
*落草之談; '落草는 '상대에 맞게 몸을 낮추는 것'이니,
학인을 접화(接化)하기 위해 노파심에서 부득이 방편으로 하는 얘기를 낙초담이라 한다.
驗人端的處。 下口便知音。 古人道。沒量大人。 向語脈裏轉卻。 若是頂門具眼。 舉著便知落處。 看他一問一答。歷歷分明。 雲門為什麼卻道。 此語皆為慈悲之故。 有落草之談。 古人到這裏。 如明鏡當臺明珠在掌。 胡來胡現漢來漢現。 一箇蠅子也過他鑑不得。 且道作麼生是慈悲之故 有落草之談。 也不妨險峻。到這田地。 也須是箇漢始可提掇。 |
사람의 단적(端的)인 곳을 시험하려거든 입만 열면 곧 음(音)을 알아야 하거니와, 고인[雲門]이 '몰량대인(沒量大人*)도 어맥(語脈) 속을 구른다'고 하였으니, 정문(頂門)에 눈을 갖춘 자라면 들추자마자 곧 낙처를 알 것이다. 저 일문일답을 보건대 역력(歷歷)하고 분명하거늘 운문은 어째서 도리어 '이 말들은 다 자비 때문에 하게 된 낙초담(落草談)이다'고 한 것인가? 고인은 이 속에 이르러서 명경(明鏡)에 비춰지고, 명주(明珠)가 손바닥에 있는 듯이 호(胡;오랑캐)가 오면 호를 보이고, 한(漢;한족)이 오면 한을 나타내는지라 파리 한 마리도 그 비춤을 피해가지 못한다. 자 말해보라. 어떤 것이 자비 때문에 있게 된 낙초의 얘기인가? 험준(險峻)하여 마지 않은 이 전지(田地)에 이르려거든 반드시 개한(箇漢*)이라야 비로소 제기하고 다룰 수 있다. |
*沒量大人; 원래는 '양을 알 수 없이 그릇이 큰 사람'을 말하나,
여기서는 비꼬아 하는 말이라 오히려 '알량한 놈'이 더 적절하다.
*箇漢; '그 어떤 놈', '남달리 특출한 놈'.
雲門拈云這僧親從廬山來。 因什麼卻道。闍黎不曾遊山。 溈山一日問抑山云。 諸方若有僧來。 汝將什麼驗他。 仰山云。某甲有驗處。 溈山云。子試舉看。 仰云。某甲尋常見僧來。 只舉拂子向伊道。 諸方還有這箇麼。 待伊有語只向伊道。 這箇即且置。那箇如何。 溈山云。此是向上人牙爪。 |
운문은 이 중이 직접 여산(廬山)에서 왔다는데 어째서 도리어 '선생은 산을 다닌 적이 없다'고 집어서 말했겠는가[拈云]? 위산이 하루는 앙산에게 묻기를, "제방(諸方)에서 만일 어떤 중이 오거든 너는 무엇을 가지고 그를 시험하겠느냐?" 하자, 앙산이 "저에게 시험할 방법이 있습니다." 하여, 위산이 "네가 예를 들춰 보이거라." 하니, 앙산은 "제가 평상시에 중이 오는 것을 보면 다만 불자(拂子)를 들고 그를 향해 「제방에 이것이 있더냐?」 하고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가 다시 그에게 「이것은 그만 두고 저것은 어떻던가?」 하겠습니다." 위산은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아조(牙爪)구나." 하였다. |
豈不見。 馬祖問百丈。什麼處來。 丈云。山下來。 祖云。路上還逢著一人麼。 丈云。不曾。 祖云。為什麼不曾逢著。 丈云。若逢著。即舉似和尚。 祖云。那裏得這消息來。 丈云。某甲罪過。 祖云。卻是老僧罪過。 |
어찌 보지 못했는가? 마조(馬祖)가 백장(百丈)에게 "어디서 왔는가?" 하니, 백장이 "산 밑에서 왔습니다." 하자, "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마주쳤느냐?" "그런 적 없습니다." "어째서 마주치지 못했느냐?" "마주쳤다면 곧 화상께 알려 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소식을 얻어 왔느냐?" "제 잘못입니다." 마조는 "도리어 노승의 잘못이다." 하였다. |
仰山問僧正相類此。 當時待他道曾到五老峰麼。 這僧若是箇漢。 但云禍事。 卻道不曾到。 這僧既不作家。 仰山何不據令而行。 免見後面許多葛藤。 卻云。闍黎不曾遊山。 所以雲門道。 此語皆為慈悲之故。 有落草之談。 若是出草之談。則不恁麼。 |
앙산(仰山)이 저 중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와 유사하다. 당시에 그가 '오로봉에 가본 적 있냐'고 묻기를 기다려 만일 저 중이 특출한 놈[箇漢]이었다면 단지 '화사(禍事*)로구나'라고만 할 것을 도리어 '가본 적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중이 기왕 작가가 못되건만 앙산은 왜 정령(正令) 대로 행하여 뒤 따라 만날 허다한 갈등(葛藤)을 면하지 않고 도리어 '선생은 산을 다녀보지 못했구나'라고 했는가. 그래서 운문이 말하기를, '이 말은 다 자비 때문에 하게 된 어떤 낙초의 얘기다'고 한 것이거니와, 만일 출초담(出草談*)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
*舉似; 奉告(사뢰다. 알려 드리다.)
*相類; 相近似(서로 근사하다.)
*禍事; 부담이나 위해성이 엄중한 큰 일.
*出草談; 草는 세간 또는 세속인에의 비유요,
出草는 「入草」나 「落草」의 대칭어로 '세간을 뛰어넘는 것'을 말하니,
世俗을 超出한 宗旨의 심오한 이치에 대한 얘기나
佛法의 第一義를 提示하는 것을 出草談이라 한다.[佛光大辭典]
出草入草 (頭上漫漫腳下漫漫。 半開半合。他也恁麼我也恁麼) 誰解尋討 (頂門具一隻眼。 闍黎不解尋討) 白雲重重 (千重百匝。頭上安頭) 紅日杲杲 (破也。瞎。舉眼即錯) 左顧無瑕 (瞎漢。依前無事。 爾作許多伎倆作什麼) 右盻已老 (一念萬年過) |
출초(出草)와 입초(入草)를 (머리 위에도 가득차고, 발 밑에도 가득찼으니, 이도 저도 아니기는 그나 나나 마찬가지다.) 뉘라서 깊이 살펴 알리오. (정문에 일척안을 갖추고도 선생은 깊이 살펴 알지 못하는구려.) 흰 구름 자욱한데 (천 겹으로 에워싸이고, 머리 위에 머리가 얹혔다.) 붉은 해가 밝고 밝거니와, (터진다. 눈이 멀면 눈을 든 즉 그르친다.) 좌로 돌아보면 티 한 점 없다가도 (눈 먼 놈이 여전히 무사<無事>하구나. 네가 허다한 기량<伎倆>을 부려서 무엇하려느냐?) 우로 돌아보면 이미 늙어버리는 것을. (한 순간에 만 년이 지나간다.) |
君不見。寒山子 (癩兒牽伴) 行太早 (也不早) 十年歸不得 (即今在什麼處。灼然) 忘卻來時道 (渠儂得自由。放過一著。 便打。 莫做這忘前失後好) |
그대는 모르는가. 한산자(寒山子)는 (문둥이가 짝을 끌어들이는구나.) 태조(太早*)를 다니느라 (이르지 않기도 하다.) 십년을 돌아가지 못했다가 (바로 지금 어디에 있는지 훤하구나.) 올 때의 길을 망각했다네. (그대가 자유를 얻었다니, 한 수 봐주겠다. 갑자기 후려치고서 이런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
*太早;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이른 아침[大早]'의 강세어.
'태조를 행한다' 함은 '아직 깨치지 못한 수행의 여정'에 비유한 말.
出草入草誰解尋討。 雪竇卻知他落處。 到這裏。一手抬一手搦。 白雲重重紅日杲杲。 大似草茸茸煙羃羃。 到這裏無一絲毫屬凡。 無一絲毫屬聖。 遍界不曾藏。一一蓋覆不得。 所謂無心境界。 寒不聞寒。熱不聞熱。 都盧是箇大解脫門。 |
'출초(出草), 입초(入草)를 누가 깊이 살펴 알리오' 하였는데, 설두(雪竇)는 도리어 그의 낙처(落處)를 알았기에 그 속에 이르러 일수대일수닉(一手抬一手搦*)한 것이다. '백운 중중(白雲重重) 홍일고고(紅日杲杲)'라 한 것은 초용용(草茸茸*) 연멱멱(煙羃羃*)과 크게 유사하거니와, 그 속에 이르면 범부에 속할 실오라기 하나도 없고, 성인에 속할 실터럭 하나도 없어서 어디에도 감춰진 적 없고, 낱낱을 숨기지도 못하니 이른바 무심(無心)의 경계(境界)인 것이요,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 모르니 모든 것이 어떤 대해탈문(大解脫門)인 것이다. |
*一手抬一手搦; 일수대일수날(一手擡一手捺), 일수추일수예(一手推一手拽).
한 편으로는 부추기고(抬;밀고[推]) 또 한 편으로는 억압하고(搦;끌어당기고[拽]) 하여
수행승(修行僧)을 지도하는 선사의 자유자재한 기법(機法)을 형용하는 말.[佛光大辭典]
*草茸茸; 풀이 파릇파릇 군집한 모양새. *煙羃羃; 연기가 자욱한 모양새.
*都盧; 統統(通通; 모두, 전부)
左顧無瑕右盻已老。 懶瓚和尚。隱居衡山石室中。 唐德宗聞其名。 遣使召之。 使者至其室宣言。天子有詔。 尊者當起謝恩。 瓚方撥牛糞火。尋煨芋而食。 寒涕垂頤未嘗答。 使者笑曰。且勸尊者拭涕。 瓚曰。我豈有工夫為俗人拭涕耶。 竟不起。 使回奏。德宗甚欽嘆之。 似這般清寥寥白的的。 不受人處分。 直是把得定。 如生鐵鑄就相似。 |
'좌고무하(左顧無瑕) 우혜이로(右盻已老)'라 하였는데, 나찬(懶瓚*)화상이 형산(衡山) 석실(石室)에 은거하던 중 당(唐) 덕종(德宗)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 그를 불렀다. 사자가 그의 석실로 가서 "천자께서 부르시니, 존자(尊者)는 일어서서 사은(謝恩)하십시요" 하니, 나찬이 쇠똥불을 헤쳐 군고구마[煨芋]를 찾아 먹고 추위에 콧물을 턱에 흘리면서 미처 답하지 못하는지라, 사자가 웃으며 "존자는 콧물을 닦으십시요." 하자, 나찬은 "내게 어찌 속인(俗人)을 위해 콧물을 닦는 공부가 있겠는가?" 하고서 끝내 일어서지 않았다. 사자가 돌아가 이뢰니, 덕종이 몹시 흠모하고 찬탄했다. 이렇듯 청요료(清寥寥*) 백적적(白的的*)하여 남의 처분을 받지 않는 것이 바로 정(定;禪定)을 붙들어 얻는 것이거니와, 마치 생철(生鐵)을 주조(鑄造)해 가는 것과 같다. |
*懶瓚; 唐代僧 남악명찬(南嶽明瓚)선사. 시호는 대명(大明). 氏族生緣은 未詳.
숭산보적(嵩山普寂)의 인가를 득했으나 言行이 괴이하여
사람들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형산(衡山)의 암자에 한적히 살았다.
스님들 울력할 때면 게으름을 피우며 부끄러운 줄 모르니 나찬(懶瓚)이라 하였고,
다른 스님들 먹고 난 찌꺼기를 즐겨 먹었다 하여 잔찬(殘瓚)이라고도 하였다.
*淸寥寥; 몹시 맑고 고요함. *白的的; 몹시 깨끗하고 또렷함.
只如善道和尚。遭沙汰後。 更不復作僧。 人呼為石室行者。 每踏碓忘移步。 僧問臨濟。 石室行者忘移步意旨如何。 濟云。沒溺深坑。 法眼圓成實性頌云。 理極忘情謂。如何有喻齊。 到頭霜夜月。任運落前溪。 果熟兼猿重。山長似路迷。 舉頭殘照在。元是住居西。 |
마치 선도(善道)화상이 사태(沙汰*)를 만난 뒤로 다시 스님이 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석실행자(石室行者)라고 불렀는데, 디딜방아 밟을 때면 방아 밟는 것을 잊고 있었는지라 어떤 중이 임제에게 물어 "석실행자가 방아 밟기를 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니, 임제가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한 것과 같다. 법안(法眼)이 원성실성(圓成實性*)을 송(頌)하되, 「이치가 지극하면 정위(情謂*)를 잊거늘 어찌 나란히 비유할 것이 있으리오. 결국은 서리내리는 밤 달이 개울에 떨어지도록 맡겨 두어야 하리라. 과실이 익으면 겸하여 원숭이도 살이 찌고 산이 깊으면 길이 아득하듯이 고개를 들매 석양(夕陽;殘照)이 있음은 원래 서방(西方)에 살았음이로다.」 하였다. |
*沙汰; 會昌法難.
*圓成實性(parinispanna-svabhāva); 唯識宗에서 주창하는
3성(三性;遍計所執性, 依他起性, 圓成實性)의 하나로
圓成實相, 圓成自性, 第一義諦 體性이라고도 하며 圓成實이라 略稱한다.
真如는 圓滿히 成就된 真實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것.[佛光大辭典]
*情謂; 마음으로 헤아리거나 말로 설명하는 것.
*到頭; 결국. 마침내.
*霜夜; 서리 맺히는 늦은 밤. 추운 밤.
雪竇道。君不見。 寒山子行太早。 十年歸不得。 忘卻來時道。 寒山子詩云。 欲得安身處。寒山可長保。 微風吹幽松。近聽聲愈好。 下有班白人。嘮嘮讀黃老。 十年歸不得。忘卻來時道。 |
설두(雪竇)는 '그대는 모르는가. 한산자는 태조(太早)를 다니느라 십년을 돌아갈 줄 모르다가 올 때의 길을 망각했다'고 하였는데, 한산자의 시에 이르기를, 「안신처(安身處*)를 얻는 데는 한산(寒山)이 가장 좋다네. 미풍이 그윽히 솔숲에 부니 가까울수록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 아래서 백발 늙은이가 중얼중얼 황노(黃老*)를 읽으며 십년을 돌아갈 줄 모르다가 올 때의 길을 망각했다네.」라고 하였다. |
*安身處; 몸을 편히 의지 할 곳, 즉 참선하기 좋은 곳.
*黃老; 黃面老子. 釋迦老子. 佛.
永嘉又道。 心是根法是塵。 兩種猶如鏡上痕。 痕垢盡時光始現。 心法雙忘性即真。 到這裏。如癡似兀。 方見此公案。 若不到這田地。 只在語言中走。有甚了曰。 |
영가(永嘉)는 또 「마음은 근(根)이요, 법은 진(塵)이거니와, 두 가지는 마치 거울에 묻은 자국과 같다. 자국의 때가 벗겨져야 비로소 빛이 나리니, 마음과 법이 다 없어진 성품이 곧 참된 것이다.」 하였으니, 이에 이르러서는 어리석고 멍충한 듯 해야 비로소 이 공안을 이해하려니와, 만약 그런 전지(田地)에 이르지 못하고서 언어 속으로만 달려 간다면 무슨 마칠 날이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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