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혀서 배우기를 마쳤거든 다 놓아버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 교외별전의 세상에서 오가는 선사(禪師)의 전어(轉語)를
뜻으로 헤아려 해득하려 해서는 진과(真過)할 수 없다.
【四四】舉。 | 【제44칙】 화산(禾山)의 해타고(解打皷) |
禾山垂語云。 習學謂之聞。 絕學謂之鄰 (天下衲僧跳不出。 無孔鐵鎚一箇鐵橛子) 過此二者。是為真過 (頂門上具一隻眼作什麼) 僧出問。 如何是真過 (道什麼。一筆勾下。 有一箇鐵橛子) 山云。解打鼓 (鐵橛。鐵蒺藜。確確) 又問。如何是真諦 (道什麼。兩重公案。 又有一箇鐵橛子) 山云。解打鼓 (鐵橛。鐵蒺藜。確確) |
화산(禾山)이 대중에게 이르기를, "습학(習學*)을 문(聞*)이라 하고 절학(絕學*)을 인(鄰*)이라 하거니와, (천하의 납승이 뛰어도 벗어날 수 없으리니, 무공철추<無孔鐵鎚*>요 하나의 쇠말뚝이로다.) 이 둘을 넘어야 참되게 넘어서는 것이다." 하자, (정문<頂門>에 일척안<一隻眼> 갖춰서 뭐하겠느냐.) 어느 중이 나서서 "어떤 것이 참된 넘어섬입니까?" 하니, (무슨 말이냐? 한 획을 그으매 하나의 쇠말뚝이 있구나.) 화산은 "북칠 줄 아는 것이다[解打鼓]" 하였다. (쇠말뚝이요, 철질려<鐵蒺藜*>임이 확실하다.) 다시 "무엇이 진제(真諦)입니까?" 물으니, (무슨 말이냐?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니 또 하나의 쇠말뚝이다.) "해타고(解打鼓)니라." 하고, (쇠말뚝이요, 철질려임이 확실하다.) |
又問。即心即佛即不問。 如何是非心非佛 (道什麼。 這箇坵圾堆。三段不同。 又一箇鐵蒺藜子) 山云。解打鼓 (鐵橛。鐵蒺藜。確確) 又問。向上人來時如何接 (道什麼。 遭他第四杓惡水來也。 又有一箇鐵橛子) 山云。解打鼓 (鐵橛。鐵蒺藜。確確。 且道落在什麼處。 朝到西天暮歸東土)。 |
또 "즉심즉불(即心即佛)은 불문하더라도 어떤 것이 비심비불(非心非佛)입니까?" 하니, (무슨 말이냐? 이 구급퇴(坵圾堆*)가 3단(段)이 똑같지 않으니, 또 하나의 철질려가 있겠구나.) "해타고(解打鼓)니라." 하였으며, (쇠말뚝이요 철질려임이 확실하고 확실하다.) 또 "향상인이 왔을 때는 어떻게 접합니까?" 하니, (무슨 말이냐? 그의 네 번째 오물바가지를 만나 또 하나의 쇠말뚝이 있겠구나.) 화산은 "해타고(解打鼓)니라." 하였다. (쇠말뚝이요 철질려임이 확실하고 확실하다. 자 말해보라. 낙(落;궁극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아침에 서천<西天>으로 갔다가 저녁에 동토<東土>로 돌아오는구나.) |
*習學;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
*絕學; 배우기를 마친 사람. 무학(無學). 무위(無為)의 한가한 도인(道人).
*聞; 듣는 사람. 성문(聲聞).
*鄰; 근접한 사람. ~에 상당한 사람.
*無孔鐵鎚; 구멍 없는 둥근 쇠뭉치. 손으로 잡아볼 수 없는 것.
*鐵蒺藜; 질려(蒺藜)는 남가새과 한해살이 풀로 열매가 둥글고 가시가 돋쳐 있으니,
손으로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철질려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일에 비유한다.
*坵圾堆; 구(坵)는 언덕이나 무덤, 급퇴(圾堆)는 쌓여진 무더기.
「오래되어 죽은 질문들」에 비유한 표현으로
문장 전체는 '캐캐묵은 질문의 세 단계가 좀 색다르다'는 의미인듯 하다.
禾山垂示云。 習學謂之聞。 絕學謂之鄰。 過此二者。是為真過。 此一則語。出寶藏論。 學至無學。謂之絕學。 所以道。淺聞深悟。 深聞不悟。 謂之絕學。 一宿覺道。 吾早年來積學問。 亦曾討疏尋經論。 習學既盡。 謂之絕學無為閑道人。 及至絕學。方始與道相近。 直得過此二學。是謂真過。 |
화산(禾山)이 대중에게 이르기를, “배움을 익히는 것[習學]은 듣는다[聞]고 하고, 배움이 끊긴 것[絶學]은 가까워졌다[鄰]고 하거니와, 이 두가지를 넘어서는 것이 참된 넘어섬이다” 하였는데, 이 한 칙(則)의 말은 〈보장론(寶藏論*)〉에 나온다. 배움이 배울 것 없기에 이르면 절학(絶學)이라고 하는지라 그래서 "얕게 듣고 깊이 깨치거나 깊게 듣고도 깨치지 못하는 것을 절학(絶學)이라고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일숙각(一宿覺*)은 말하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쌓았고, 또 일찍이 소(疏;注釋書)와 경론(經論)을 탐구했다" 하였는데, 배워 익히기를 기왕 다하면 이를 '배움이 끊긴 무위(無為)의 한가한 도인'이라 하고, 절학(絕學)에 이르러야 비로소 도(道)에 근접한 것이니, 이 2학(二學)을 통과해야 참된 통과다고 한다는 것이다. |
*寶藏論; 後秦의 승조(僧肇;374~414)대사가 쓴 《晉僧肇法師寶藏論》.
*一宿覺; 永嘉真覺禪師(六祖慧能 旁出法嗣).
永嘉선사가 六祖를 참방하여 하룻밤 論說을 통해 徹底히 大悟하니,
육조가 "겨우 하룻밤을 묵었구나[少留一宿]" 하신 데서 '一宿覺'이라 한다.
其僧也不妨明敏。 便拈此語問禾山。 山云。解打鼓。 所謂言無味語無味。 欲明這箇公案。 須是向上人 方能見此語不涉理性。 亦無議論處。 直下便會。如桶底脫相似。 方是衲僧安穩處。 始契得祖師西來意。 所以雲門道。 雪峰輥毬。禾山打鼓。 國師水碗。趙州喫茶。 盡是向上拈提。 |
그 중도 명민(明敏)하여 마지않아서 이 얘기를 집어내 화산에게 묻자 화산은 “해타고(解打鼓)"라고 하였는데, 소위 '말도 의미 없고 얘기도 의미 없는 것'이라서 이런 공안을 밝히려거든 모름지기 향상인(向上人)이라야 바야흐로 이 말이 이치의 성품과 무관하고, 논의할 곳도 없음을 알 수 있으려니와, 곧바로 알아차리기를 칠통 밑바닥이 빠져버리듯 해야 마침내 이것이 납승의 안온히 머무를 곳이요, 비로소 조사가 서래한 뜻에 계합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운문(雲門)이 이르기를, “설봉의 곤구(輥毬)와 화산의 타고(打鼓), 혜충국사의 수완(水碗), 조주의 끽다(喫茶)가 다 향상의 염제(拈提;拈古)다.”고 한 것이다. |
*雪峰輥毬; 대중이 모여 앉았는데 선사가 나무 공을 또르르 굴리니,
현사(玄沙)가 쫓아가서 주워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또 하루는 현사가 오니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렸는데, 현사가 곧 넘어지는 시늉을 하니,
선사는 "보통은 몇 개를 쓰는데, 말하자면 셋이 곧 하나고, 하나가 곧 셋이다." 하였다.
*國師水碗; 충국사(忠國師)가 자린(紫璘)이라는 공봉(供奉;侍奉)에게 물어
"공봉은 경전의 뜻을 풀이한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하니, 공봉이 "그렇습니다" 하자,
국사가 "무릇 경을 주석하려면 반드시 부처님의 뜻을 알아야 할텐데." 하였는데,
"뜻을 모른다면 어찌 감히 경을 주석한다고 하겠습니까?" 하였다.
국사가 시자에게 그릇에 물을 채우게 하더니, 물 속에 쌀알 일곱 톨을 넣고
위에 젓가락 하나를 올려 공봉에게 주면서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고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자, 국사가 "내 뜻도 모르면서 무슨 부처님 뜻을 말하느냐?" 하였다.
*趙州喫茶; 선사가 "새로 온 두 상좌는 여기 온 적이 있는가?" 물으니,
"온 적 없습니다." 하자, 선사는 "차나 마시게." 하였다.
또 "저 사람은 여기 온 적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온 적이 있습니다." 하였는데, 선사는 "차나 마시게." 하였다.
원주(院主)가 선사에게 "온 적이 없어도 차를 마시라 하시더니,
온 적이 있다는 데도 왜 차를 들라고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선사가 "원주!" 하고 부르니, 원주가 대답하자, "차나 마시게." 하였다.
又問。如何是真諦。 山云。解打鼓。 真諦更不立一法。 若是俗諦萬物俱備。 真俗無二。 是聖諦第一義。 又問。即心即佛即不問。 如何是非心非佛。 山云。解打鼓。 即心即佛即易求。 若到非心非佛即難。 少有人到。 又問。向上人來時如何接。 山云。解打鼓。 向上人即是透脫灑落底人。 |
또 "어떤 것이 진제(真諦)입니까?" 하고 물으니, 화산은 "해타고(解打鼓)"라 하였는데, 진제(真諦)는 다시 한 법도 세우지 않고, 속제(俗諦)라면 만물을 구비(俱備)하지만 진(真)과 속(俗)이 둘이 아니다는 것이 바로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다. 또 "즉심즉불(即心即佛)은 곧 불문하더라도 어떤 것이 비심비불(非心非佛)입니까?" 하니, 화산은 "해타고(解打鼓)"라 하였는데, 즉심즉불은 참구하기 쉽지만 비심비불에 이르기는 곧 어려워서 도달하는 사람이 적다. 또 "향상인이 왔을 때는 어떻게 접합니까?" 하니, 화산은 "해타고(解打鼓)"다 하였는데, 향상인은 곧 초탈(超脫)하여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
此四句語諸方以為宗旨。 謂之禾山四打鼓。 只如僧問鏡清。 新年頭還有佛法也無。 清云。有。 僧云。如何是新年頭佛法。 清云。元正啟祚萬物咸新。 僧云。謝師答話。 清云。老僧今日失利。 似此答話。有十八般失利。 |
이 4구(四句)의 말을 제방(諸方)이 종지(宗旨)로 삼아 화산4타고(禾山四打鼓)라 하거니와, 다만 어느 중이 경청(鏡清*)에게 물어 "새해가 열려서도 불법이 있습니까?" 하니, 경청이 "있다." 하자, "어떤 것이 신년벽두의 불법입니까?" 하였는데, "정월 초하루에는 복이 열리고 만물이 다 새로우리라." "답해 주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니, 이에 경청이 "노승(老僧)이 오늘 손해봤다."고 한 이 대답과 같아서 18가지 손해가 있다. |
又僧問淨果大師。 鶴立孤松時如何。 果云。腳底下一場懡㦬。 又問雪覆千山時如何。 果云。日出後一場懡㦬。 又問。會昌沙汰時。 護法神向什麼處去。 果云。三門外兩箇漢一場懡㦬。 諸方謂之三懡㦬。 |
또 어떤 중이 정과(淨果*)대사에게 "학이 외딴 소나무에 서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정과는 "그 다리 밑이 한 바탕 낭패를 당한다." 하였고, 또 "눈이 모든 산을 덮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해가 뜬 뒤에는 한 바탕 낭패를 입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회창사태(會昌沙汰;會昌法亂) 때 호법신(護法神;四天王)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하니, "3문(三門) 밖 양쪽의 그 놈들이 한 바탕 낭패를 당한 것이다." 하였는데, 제방(諸方)이 이를 3마라(三懡㦬)라 한다. |
又保福問僧。 殿裏是什麼佛。 僧云。和尚定當看。 福云。釋迦老子。 僧云。莫瞞人好。 福云。卻是爾瞞我。 又問僧云。爾名什麼。 僧云。咸澤。 福云。或遇枯涸時如何。 僧云。誰是枯涸者。 福云。我。 僧云。和尚莫瞞人好。 福云。卻是爾瞞我。 |
또 보복(保福*)이 어느 중에게 물었다. "법당 안에 모신 분은 어떤 부처님이냐?" "스님이 보셔야지요." "석가노자(釋迦老子)로구나."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요." 보복은 "도리어 니가 나를 속였다." 하였고, 또 중에게 "니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니, "함택(咸澤;모두 윤택하다)입니다." "혹시 가뭄을 만났을 때는 어떠하냐?" "누가 가물게 하는데요?" "나다." "스님께서는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요." "도리어 니가 나를 속였다." |
又問僧。爾作什麼業。 喫得恁麼大。 僧云。和尚也不小。 福作蹲身勢。 僧云。和尚莫瞞人好。 福云。卻是爾瞞我。 又問浴主。浴鍋闊多少。 主云。請和尚量看。 福作量勢。 主云。和尚莫瞞人好。 福云。卻是爾瞞我。 諸方謂之保福四瞞人。 又如雪峰四漆桶。 皆是從上宗師。 各出深妙之旨接人之機。 雪竇後面引一落索。 依雲門示眾。頌出此公案。 |
또 중에게 물어 "너는 무슨 업을 지었길래 그렇게 커졌느냐?" 하니, "스님도 작지 않으신데요." 보복이 몸을 웅크리는 시늉을 하자, "스님께서는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요." "도리어 니가 나를 속였다." 하였다. 또 욕주(浴主)에게 "목욕통 크기가 어느 정도냐?" 물으니, 욕주가 "화상께서 재보시지요." 하자, 보복은 재는 시늉을 했다. 욕주가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요." 하니, 보복이 "도리어 니가 나를 속였다." 하였다. 제방에서는 이를 보복4만인(保福四瞞人)이라 한다. 또 설봉의 4칠통(雪峰四漆桶*) 같은 것들이 다 예로부터 종사(宗師)들이 저마다 심묘(深妙)한 뜻[旨]을 내 접인(接人)하는 기법이다. 설두는 뒷부분에서 일락색(一落索*)을 이끌어다가 운문(雲門)의 시중(示眾)에 의거하여 이 공안을 송해 냈다. |
*鏡清; 越州鏡清寺道怤順德禪師(雪峰義存 法嗣) 青原下六世
*十八般失利; 十八不共法(身無失,口無失,念無失,無異想,無不定心,
無不知己捨,欲無滅,精進無滅,念無滅,慧無滅,解脫無滅,解脫知見無滅)의 상실.
*淨果; 曹洞宗僧 隨州護國院守澄淨果禪師(疎山匡仁 法嗣) 青原下六世
*保福; 漳州保福院從展禪師(雪峰義存 法嗣) 青原下六世
*雪峰四漆桶; 〈宗門拈古彚集〉卷第24 舒州投子大同禪師 障에
하루는 암자 앞 돌을 가리키며 설봉이 "삼세제불이 다 이 속에 있다." 하자,
설봉이 "이 속에 있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니,
투자가 "이 답답한 칠통아[不快漆桶]!" 하였다.
또 하루는 설봉과 함께 용면(龍眠)을 다니다가 두 갈래 길을 만나서
설봉이 "어느 길이 용면 가는 길입니까?" 여쭈니, 투자가 주장자로 가리켰는데,
설봉이 "동으로 갑니까, 서로 갑니까?" 물으매 투자가 "이 답답한 칠통아!" 하였다.
설봉이 또 "한 방에 깨우쳤을 때는 어떠합니까?" 물으니,
투자가 "성질 조급한 놈이 아닌 것이다." 하자,
"한 방을 빌리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였는데, "이 답답한 칠통아!" 하였다.
또 하루는 설봉이 "여기에 참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묻자,
투자가 곡괭이를 설봉의 면전에 던지니, "그러한 즉 그자리가 패이겠습니다." 하였는데,
투자가 "이 답답한 칠통아!" 하였다. 이 네 칠통을 설봉의 4칠통이라 한다.
*一落索; 가사(歌詞)를 짓는 곡조(曲調)의 명칭.
쌍조(雙調) 40~45자로 앞뒤에 각 4구(句), 3측운(仄韻)을 갖춘 형식의 가사.
一拽石 (寰中天子敕。 癩兒牽伴。向上人恁麼來) 二般土 (塞外將軍令。 兩箇一狀領過。同病相憐) 發機須是千鈞弩 (若是千鈞。也透不得。 不可輕酬。豈為死蝦蟆) 象骨老師曾輥毬 (也有人曾恁麼來。 有箇無孔鐵鎚。阿誰不知) 爭似禾山解打鼓 (鐵橛子。須還這老漢始得。 一子親得) 報君知 (雪竇也未夢見。在雪上加霜。 爾還知麼) 莫莽鹵 (也有些子。儱儱侗侗) 甜者甜兮苦者苦 (謝答話。錯下注腳。 好與三十棒。喫棒得也未。 便打。依舊黑漫漫) |
한 사람은 맷돌을 끌었고[拽石], (환중천자칙<寰中天子敕;황제의 칙령>이다. 문둥이가 짝 거느리는 격인데, 향상인은 그렇게 한다.) 또 한 사람은 흙 날랐거니와[般土], (새외장군령<塞外將軍令;변방 장군의 명령>이다. 양 쪽을 한 솟장에 죄를 물었으니, 동병상련이로구나.) 기(機)를 쏘려거든 모름지기 천균노(千鈞弩)라야 하거늘 (천 균이라면 뚫지도 못할 것이라 가벼이 대할 수 없거늘 어찌 죽은 두꺼비가 되리오.) 상골(象骨;雪峰) 노사(老師)가 일찍이 공 굴린 일이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어떤 무공철추가 있다던데, 나는 누군지 모른다.) 어찌 화산(禾山)의 북 칠 줄 아는 것과 같으리오? (쇠말뚝이다. 반드시 이 늙은이라야 한다. 한 불자가 몸소 얻었구나.) 그대에게 알려주노니, (설두도 꿈에도 보지 못하거늘 설상가상에 있다니, 니가 도리어 아느냐?) 망막해 하지 말게. (조금 애매모호함이 있다.)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네. (이 답에 감사드리지만 주석을 잘못 달았으니, 30방을 맞아야겠다. 몽둥이를 맞겠느냐? 후려치고서 여전히 캄캄하구나.) |
歸宗一日。普請拽石。 宗問維那。什麼處去。 維那云。拽石去。 宗云。石且從汝拽。 即不得動著中心樹子。 木平凡有新到至。 先令般三轉土。木平有頌。 示眾云。 東山路窄西山低。 新到莫辭三轉泥。 嗟汝在途經日久。 明明不曉卻成迷。 後來有僧問云。 三轉內即不問。 三轉外事作麼生。 平云。鐵輪天子寰中敕。 僧無語。平便打。 所以道。 一拽石二般土。 |
귀종(歸宗*)이 울력으로 예석(拽石*)하라 하고서 유나(維那*)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유나가 "맷돌 굴리러 갑니다." 하자, 귀종이 "돌은 너 따라 끌리더라도 중심축 나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하였다. 또 목평(木平*)은 신참이 올 때마다 먼저 세 짐의 흙을 나르게 하고서 시중(示眾)하여 송으로 이르기를, 「동쪽 산길은 좁고 서쪽 산길은 낮으니, 새로 왔거든 세 짐 흙나르기를 사양하지 말라. 아! 너희가 지내온 여정이 오래되었건만 밝고 밝게 깨치지 못하고 도리어 미혹해 있다니.」 하였다. 후에 와서 어느 중이 "세 짐 속은 불문하고, 세 짐 밖의 일을 어떻습니까?" 여쭈었는데, 목평이 "철륜왕(鐵輪天子*) 환중(寰中*)의 칙령이다." 하니, 중이 말이 없자, 목평이 후려쳤다. 그래서 말하기를, "하나는 예석(拽石)이요, 둘은 반토(般土)다"고 한 것이다. |
*歸宗; 盧山歸宗寺智常禪師(馬祖道一 法嗣) 南嶽下二世
*普請; 스님들이 함께 하는 울력.
*拽石; 〈五燈會元〉 池州南泉普願禪師 章에는 「예마(拽磨)」로 기술하고 있으니,
커다란 맷돌을 끌어 돌리는 일을 말한다.
「선사가 유나에게 "오늘 울력은 무엇을 하느냐?" 물으니, "예마(拽磨)합니다." 하였는데,
"맷돌은 너를 따라 끌리더라도 맷돌 중심축 나무가 돌아서는 안된다" 하였다.
유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보복이 대신하여 "근래에 예마했더라도 지금은 안된다." 하였고,
법안은 "그렇다면 끌지 않겠다." 하였다.)
師問維那。今日普請作甚麼。對曰。拽磨。師曰。磨從你拽。不得動著磨中心樹子。那無語
(保福代云。比來拽磨。如今却不成。法眼代云。恁麼即不拽也)。」
*維那(Karmadāna); 절에서 각종 서무(庶務)와 잡일을 관장하는 사람.
*鐵輪天子; 4륜왕(四輪王)의 하나. 인간 수명 2만 세일 때 출현하여
남염부제(南閻浮提)를 통치하는 임금.
*寰中; 온 세계. 천하.
發機須是千鈞弩。 雪竇以千鈞之弩喻此話。 要見他為人處。 三十斤為一鈞。 一千鈞則三萬斤。 若是獰龍虎狼猛獸。 方用此弩。 若是鷦鷯小可之物。 必不可輕發。 所以千鈞之弩。 不為鼷鼠而發機。 |
"살을 쏘려거든 천균노(千鈞弩)라야 한다" 한 것은 설두가 천 균(鈞)의 노(弩)에 이 얘기를 비유한 것인데, 그의 사람 위하는 곳을 살펴봐야 한다. 30근(斤)이 1균(鈞)이니, 1천 균은 3만 근이다. 영룡(獰龍)이나 호랑(虎狼) 같은 맹수라면 비로소 이 노(弩)를 쓰겠지만 굴뚝새[鷦鷯] 같은 사소한 동물이라면 함부로 쏠 수 없는 것이라 그래서 천 균의 노(弩)는 생쥐에게 쏘지 않는 것이다. |
象骨老師曾輥毬。 即雪峰一日見玄沙來。 三箇木毬一齊輥。 玄沙便作斫牌勢。 雪峰深肯之。 雖然總是全機大用處。 俱不如禾山解打鼓。 多少徑截。只是難會。 所以雪竇道。 爭似禾山解打鼓。 又恐人只在話頭上。 作活計不知來由。 莽莽鹵鹵。所以道。 報君知莫莽鹵。 也須是實到這般田地始得。 若要不莽鹵。 甜者甜兮。苦者苦。 雪竇雖然如是拈弄。 畢竟也跳不出。 |
"상골노사(象骨老師)가 일찍이 곤구(輥毬)했다"는 것은 곧 설봉(雪峰)이 어느날 현사(玄沙)가 오는 것을 보고 세 개의 나무 공을 일제히 굴리니, 현사가 넘어지는 시늉을 하매 설봉이 깊히 긍정하였다. 비록 모두가 온전한 기(機)가 크게 운용된 것들이지만 갖춤이 화산의 해타고만 못하며, 해타고는 매우 경절(徑截*)하되, 다만 이것이 난해한지라 그래서 설두가 말하기를, "어찌 화산의 해타고와 같으리오." 한 것이다. 또 사람들이 화두(話頭)에만 머물러 활계(活計)를 짓고 유래(由來)를 알지 못하여 망망노로(莽莽鹵鹵*)할까 염려하였기에 그래서 "그대들에 알리노니, 막막해 하지 말라."고 하였다. 모름지기 이런 전지(田地)에 실답게 이르러야 하거니와, 막막해 하지 않으려거든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설두가 비록 이와 같이 염롱(拈弄)했지만 결국 뛰어도 화산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
*發機; 기관을 발동하다. 행동을 개시할 시기. 활을 쏠 기회.
*弩; 쇠뇌. 석궁(石弓).
*徑截; 직접 가로채다. 민첩하다. 간편하다.
수행의 단계를 밟지 않고 곧바로 체득하는 지름길.
*莽莽鹵鹵; 莽莽은 끝없이 넓다, 아득하다. 鹵鹵는 소금밭, 개펄, 황무지.
아득한 벌판, 즉 어찌할 줄 모르는 막막한 지경에 비유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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