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 위에는 먹물 한 방울 떨어져도 금방 알아챌 수 있으니,
텅 비어진 마음끼리 마주해서는 굳이 먹물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해서는 먹물과 붓을 쓰지 않을 수 없다.
垂示云。 | 수시(垂示) |
單提獨弄帶水拖泥 敲唱俱行。銀山鐵壁。 擬議則髑髏前見鬼。 尋思則黑山下打坐。 明明杲日麗天。 颯颯清風匝地。 且道古人還有誵訛處麼。 試舉看。 |
단제독롱(單提獨弄*)하여 대수타니(帶水拖泥*)하고 고창구행(敲唱俱行*)하니 은산철벽(銀山鐵壁*)이거늘 이리저리 궁리하다가는 곧 죽을 때 귀신을 볼 것이요, 곰곰히 생각하다가는 곧 흑산(黑山) 아래 앉을 것이다. 밝고 밝은 태양이 하늘에 걸리면 삽삽한 청풍(清風)이 땅을 감돌 터인데, 말해보라. 고인에게 잘못 된 곳이 있다 하겠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單提獨弄; 단제(單提;單傳,直指)에 홀로 놀다. 단전심인(單傳心印)에 홀로 우뚝 서다.
*帶水拖泥; 물을 가져다 진흙탕에 붓다.
①갈등에 갈등을 더함에 비유하는 말. ②下化衆生의 보살행에 비유하는 표현.
*敲唱俱行; 曹山本寂禪師의 三種滲漏를 벗어나는 세 가지 綱要 중 하나.
密教現圖 胎藏曼荼羅 중의 金剛針(Vajra-sūci)과 金剛鏁(Vajra-śrvkhalā)를
장구치며 노래함에 비유한 것으로 金剛針은 견고하고 예리한 지혜를 말하며,
金剛鏁는 법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이니,
'장구치고 노래하고를 함께 한다' 함은 '예리한 지혜로 법을 설한다'는 의미이다.
*銀山鐵壁; 은으로 된 산과 무쇠로 된 절벽. 도저히 오를 수 없음에 비유하는 말.
【四二】舉。 | 【제42칙】 방거사(龐居士)의 호설편편(好雪片片) |
龐居士辭藥山 (這老漢作怪也) 山命十人禪客。 相送至門首 (也不輕他。是什麼境界。 也須是識端倪底衲僧始得) 居士指空中雪云。 好雪片片不落別處 (無風起浪指頭。 有眼。這老漢言中有響) 時有全禪客云。 落在什麼處 (中也。相隨來也。 果然上鉤來) 士打一掌 (著。果然。勾賊破家) |
방거사가 약산(藥山*)에게 하직을 고하자 (이 늙은이가 괴인<怪人>이 되었구나.) 약산의 명으로 10인의 선객(禪客)들이 전송하며 문 앞에 이르렀는데, (그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니 이 무슨 상황인가. 반드시 실마리 끝을 아는 납승이어야 한다.) 거사가 공중의 눈을 가리키면서 "펄펄 내리는 눈 송이 송이마다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구나." 하였다. (바람없는데 풍랑을 일으켜 손가락질 했다. 안목이 있구나. 이 늙은이 말 속에 울림이 있다.) 그러자 전선객(全禪客)이 "어디로 떨어집니까?" 하고 물으니, (옳커니! 상대를 따라 왔으니 과연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방거사가 일장(一掌)을 후려쳤다. (이 한 수다. 과연 도적을 붙들고 파산시켰다.) |
全云。居士也不得草草 (棺木裏瞠眼) 士云。汝恁麼稱禪客。 閻老子未放汝在 (第二杓惡水潑了。 何止閻老子。 山僧這裏也不放過) 全云。居士作麼生 (麤心不改。又是要喫棒。 這僧從頭到尾不著便) 士又打一掌 (果然。雪上加霜。 喫棒了呈款) 云眼見如盲。 口說如啞 (更有斷和句。 又與他讀判語) 雪竇別云。 初問處但握雪團便打 (是則是。賊過後張弓。 也漏逗不少。 雖然如是要見箭鋒相拄。 爭奈落在鬼窟裏了也)。 |
"거사는 거칠게 굴지 마십시요." (관<棺>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네가 그러면서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너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바가지로 구정물을 끼얹었다. 어떻게 염라대왕을 저지하겠는가? 나도 이 지경이면 봐주지 않겠다.) "거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니, (못된 마음을 고치지 못하니, 또 한 방 먹여야 한다. 이 중이 시종일관 즉각 응수하지 못하는구나.) 방거사가 또 일장을 후려치며, (과연 설상가상이로구나. 한 방 먹었거든 성의를 보였어야지.) "눈으로는 맹인처럼 보고, 입으로는 벙어리처럼 말한다." 하였다. (다시 맞지 않은 말을 하니, 또 그에게 분명히 판결해 주었다.) 설두는 달리 말했다. "첫 물음에 바로 눈 뭉친 덩어리로 때리겠다." (옳기야 옳지만 도적 떠난 뒤에 활 당기는 격이라 잘못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봉상주<箭鋒相拄*>를 봐야하거늘 귀신굴 속에 떨어져 있음을 어찌 하겠는가.) |
*第二杓惡水潑了; 학인이 앞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재차 학인을 깨닫게 하고자 호되게 내리는 가르침을 비유하여 쓰는 말이다.
*著便; 상황에 곧바로 대처하다. 기회가 오면 즉시 행동하다.
*箭鋒相拄; 法眼四機의 하나.
①箭鋒相拄; 두 화살촉이 서로 마주하여 버티는 모양새.
즉 스승과 학인의 機鋒이 긴밀히 서로 계합하여 간극이 없게 지도하는 기법.
②泯絕有無; 有와 無 양단대립의 분별견해를 초월하게 하는 지도방식.
③就身拈出; 천차만별한 근기를 따라 信手拈來하여
저마다 연(緣)을 따라 教化를 얻게 하는 것.
④隨流得妙; 학인의 근기에 따라 佛性의 殊妙함을 체득하게 하는 것.
龐居士。參馬祖石頭兩處有頌。 初見石頭。便問。 不與萬法為侶。 是什麼人。 聲未斷。被石頭掩卻口。 有箇省處作頌道。 日用事無別。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處處沒張乖。 朱紫誰為號。青山絕點埃。 神通并妙用。運水及搬柴 |
방거사는 마조(馬祖)와 석두(石頭) 두 곳을 참례하여 송을 남겼는데, 처음 석두를 뵙고 여쭈되 "만법(萬法)과 짝이 되지 않는다니 어떤 사람입니까?" 하자, 말 끝나기도 전에 석두가 그의 입을 막아버리니, 어떤 깨달은 바가 있어 송(頌)을 지어 말했다. 「날마다 하는 일이 별것이 없으니 오직 나 스스로 계합(契合)할 뿐이라서 어느 것도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고 어디에도 까탈스러울 것이 없거늘 무엇을 두고 붉다 자주빛이다 하겠는가. 청산(青山)은 한 점 티끌도 없거니와, 신통(神通)과 묘용(妙用)이 물 긷기와 땔감 나르기라네.」 하였다. |
後參馬祖。又問。 不與萬法為侶。 是什麼人。 祖云。待爾一口吸盡西江水。 即向汝道。 士豁然大悟。作頌云。 十方同聚會。箇箇學無為。 此是選佛場。心空及第歸。 為他是作家。 |
후에 마조(馬祖)를 참례하여 또 "만법(萬法)과 짝이 되지 않는다니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여쭈었는데, 마조는 "네가 한 입에 서강(西江) 물을 다 마셔버리면 그 때 너에게 말해주겠다." 하였다. 거사가 이에 활연히 대오하고 송(頌)하되, 「시방(十方)이 한데 모여 저마다 무위(無為)를 배우는 이것이 선불장(選佛場)이니, 마음을 비워 급제(及第)하고 돌아가리라.」 하여, 그가 작가(作家)가 되었다. |
後列剎相望。 所至競譽。 到藥山盤桓既久。 遂辭藥山。 山至重他。 命十人禪客相送。 是時值雪下。 居士指雪云。 好雪片片不落別處。 全禪客云。落在什麼處。 士便掌。 全禪客既不能行令。 居士令行一半。 令雖行。 全禪客恁麼酬對。 也不是他不知落處。 各有機鋒。 卷舒不同。 然有不到居士處。 所以落他架下。 難出他彀中。 居士打了。更與說道理云。 眼見如盲口說如啞。 |
후에 여러 사찰 사람들과 마주하여 명예 다투어보려는 욕망이 지극하였던 바 약산(藥山)에 기왕 오래 머물러 있다가 이윽고 약산에게 하직을 고하니, 약산이 그를 지극히 소중히 여겨 10인의 선객에게 전송할 것을 명했다. 그때 눈이 내리고 있었는지라 거사가 눈을 가리키며 "호설편편(好雪片片)이 불락별처(不落別處)"라 하니, 전선객이 "어디에 떨어져 있습니까?" 하자, 거사가 일장을 후려쳤다. 전선객이 기왕 영(令*)을 행하지 못하니 거사가 절반의 영을 행한 것인데, 영을 비록 행해 주어도 전선객이 그렇게 응수한 것은 그가 낙처(落處)를 몰라서가 아니라 각자가 어떤 기봉(機鋒)을 지녔으되, 권서(卷舒)가 같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거사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함이 있었기에 그래서 저 시렁 밑[架下]으로 떨어뜨리니 그 올가미 속[彀中]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사가 후려치고서 다시 도리(道理)를 일러주되, "안견여맹(眼見如盲) 구설여아(口說如啞)"라 하였다. |
*盤桓; ①배회(徘徊)하다.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②관망(觀望)하다. ③머물다. 체류하다.
*令; 정령(正令). 禪門에 教法 외에 별도로 전하는 本分의 命令,
즉 방(棒)이나 할(喝) 등의 외에는 어느 것도 쓰지 말라는 명령.
*彀中; 화살이 미치는 범위. 올가미.
雪竇別前語云。 初問處但握雪團便打。 雪竇恁麼。要不辜他問端。 只是機遲。 慶藏主道。居士機如掣電。 等爾握雪團。到幾時。 和聲便應和聲打。 方始勦絕。 雪竇自頌他打處云。 |
설두는 앞서의 말을 달리 말하여 "처음 물은 곳을 다만 눈덩이로 곧 때리겠다." 하니, 설두가 그렇게 그 문제에 허물이 없고자 하였으나 다만 기봉(機峯)이 더딘 것이라 경장주(慶藏主)가 "거사의 기(機)는 번개치듯 한데 당신의 눈 뭉치는 것과 같아서야 어느 때 이르겠는가? 소리에 맞춰 곧 응하고, 소리에 맞춰 때려야만 비로소 초절(勦絕*)한 것이다." 하였다. 설두가 그가 때린 곳을 스스로 송(頌)했다. |
彀(古豆切。張弓弩也。弓滿也)。 *彀는 古豆切로서 張弓弩요, 弓滿이다.
*勦絕; 완전히 끊어지다. 물음이다 답이다 하는 양단의 차별이 온전히 없어진다는 뜻.
雪團打雪團打 (爭奈落在第二機。 不勞拈出。 頭上漫漫腳下漫漫) 龐老機關沒可把 (往往有人不知。 只恐不恁麼) 天上人間不自知 (是什麼消息。雪竇還知麼) 眼裏耳裏絕瀟灑 (箭鋒相拄。 眼見如盲。口說如啞) 瀟灑絕 (作麼生。向什麼處。 見龐老與雪竇) 碧眼胡僧難辨別 (達磨出來。向爾道什麼。 打云。闍黎道什麼。 一坑理卻) |
잔뜩 시위를 당겨서 (옛 콩을 베어서 활 시위를 당겼다. 활이 잔뜩 휘었구나.)。 눈덩이로 치고 눈덩이로 때려대니 (제2기<第二機*>에 떨어져 있는 것을 어쩌겠는가. 애써 끄집어내지 않아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넘쳐난다.) 방거사의 기관(機關)은 도저히 파악할 수 없거늘 (왕왕 모르는 사람이 있으나 다만 그렇지도 않을까 두렵다.) 천상과 인간이 스스로 알지 못한다. (이 무슨 소식인가. 당신은 아는가?) 눈 속과 귀 속을 말끔히 끊어서 (스승과 학인의 기봉이 맞닿으면 눈으로는 맹인처럼 보고, 입은 벙어리처럼 말한다.) 처절하게 끊어지거든 (어떤 것이며 어디를 향하는지 방거사와 설두를 보거라.) 벽안의 호승(胡僧)일지라도 판별하기 어렵다는 것을. (달마가 와서 너에게 뭐라 하더냐? 무릎을 치며, 선생[설두]이 무슨 말을 하든지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겠다.) |
*第二機; 第二義門. 向下門. 下化眾生하는 보살행.
第一義門은 上求菩提의 수행문.
雪團打雪團打。 龐老機關沒可把 雪竇要在居士頭上行。 古人以雪明一色邊事。 雪竇意道。當時若握雪團打時。 居士縱有如何機關。 亦難搆得。 雪竇自誇他打處。 殊不知有落節處。 天上人間不自知。 眼裏耳裏絕瀟灑。 眼裏也是雪。耳裏也是雪。 正住在一色邊。 亦謂之普賢境界一色邊事。 亦謂之打成一片。 |
"설단타 설단타(雪團打 雪團打)"라 하였는데, 방거사의 기관(機關)을 통째로 움켜쥐고 설두가 거사의 머리 위로 가서 있고자 하여 고인이 눈[雪]으로 일색변사(一色邊事*)를 밝힌 것이다. 설두의 말은 눈덩이로 쳤을 당시에 거사가 설령 어떠한 기관(機關)이 있다 한들 또한 얽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 설두는 그를 타개해 준 것을 뽐내려는 뜻이었으나 빠뜨린 구절이 있음을 전혀 모른 것이다. "천상과 인간이 스스로 눈 속과 귀 속을 처절히 끊을 줄 모른다" 하였는데, 눈[眼] 속도 눈[雪;白色]이요, 귀 속도 눈이어서 정확히 일색변(一色邊)에 머물러 있어야 보현(普賢)의 경계인 일색변사(一色邊事)라 하고 또한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 하는 것이다. |
*一色邊事; 「一色」은 純一, 絕對의 뜻이니,
일체의 오예(污穢)를 여의어 청정한 경계로 나아가는 일을 말한다.
*落節處; 구절(句節)을 누락(漏落)시킨 곳.
*打成一片; 禪林用語. 한 덩어리로 융합시키다[融合一體].
一切의 情量과 計較를 제거하고 천차만별한 사물을 한 덩어리로 융합시켜서
피차(彼此)와 주객(主客) 따위의 이원적 대립관념을 철저히 끊어버리는 것.
雲門道。直得盡乾坤大地 無纖毫過患。 猶為轉句。 不見一色。 始是半提。 若要全提。 須知有向上一路始得。 到這裏須是大用現前。 針劄不入。 不聽他人處分。 所以道。他參活句。 不參死句。 古人道。一句合頭語。 萬劫繫驢橛。 有什麼用處。 雪竇到此頌殺了。 復轉機道。只此瀟灑絕。 直饒是碧眼胡僧也難辨別。 碧眼胡僧尚難辨別。 更教山僧說箇什麼。 |
운문(雲門)이 이르되, "온 건곤대지(乾坤大地)에 추호의 과환(過患)도 없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돌려서 한 말이요, 어떠한 색(色)도 보지 않아야 비로소 이것이 절반의 제기[半提]인 것이거니와, 온전한 제기[全提]를 요하거든 반드시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알아야 한다." 하였으니, 이 속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대용(大用)을 나타내서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처분도 듣지 말아야 할 것이라 그래서 활구(活句)를 참구하고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며, 고인이 이르되, "1구(一句)에 계합한다 한들 언제까지나 묶여만 있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한 것이다. 설두가 이 송(頌)을 거의 마치기에 이르러 다시 전기(轉機)하여 "다만 이 처절히 끊어진 것은 설령 벽안호승(碧眼胡僧)일지라도 판별하기 어렵다" 하니, 벽안호승도 오히려 판별하기 어렵다는데 다시 산승더러 그 무엇을 말하라는가? |
*一色邊; 一色은 純一, 絕對의 뜻. 。禪林에서는 中每以之差別과 相對의 觀念을 超越한 平等世界
또는 清淨한 境界를 形容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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