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40칙 육긍(陸亘) 천지동근(天地同根)

碧雲 2023. 2. 28. 10:58

 일체법이 나를 떠나 있지 않고 나를 떠나 일체법이 없으니 만물과 나는 한몸이요,
그 속에서 인연따라 생사를 윤회하니 모두가 하룻밤 꿈과 같은 허무함이다.
그렇다면 그 진실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자 하나
진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런 법에 있지 아니하니,
물위에 비친 달 그림자를 쫓지 말고 달의 냉정한 참모습을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하거니와,
이 일은 세상 천지에 너와 함께 해 줄 사람이 없고 오직 너 스스로 밝혀야 할 일이다. 

*陸亘; 宣州刺史 陸亘大夫(南泉願 法嗣) 南嶽下三世

 

垂示云。 수시(垂示) 
休去歇去。
鐵樹開花。
有麼有麼
黠兒落。節。
直饒七縱八橫。
不免穿他鼻孔。
且道誵訛在什麼處。
試舉看。
 (망상을)쉬고 또 쉬어 가면
소철(蘇鐵;鐵樹)도 꽃을 피우려니와,
있는 건가, 있는 건가? 하면서
약삭빠르게 굴다가 뜻이 꺾이면
설령 제아무리 날뛰어본들
그 콧구멍 뚫리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자 말해보라.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有麼有麼; 내가 얻은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
*黠兒落節; 약삭빠르게 굴다가 제 꾀에 넘어가다.
힐아(黠兒)는 총명하고 교활한 사람, 낙절(落節)은 실패, 좌절의 뜻.
*穿他鼻孔; 콧구멍이 뚫린다 함은 소 콧구멍을 뚫고 멍에를 끼워 끌듯이
치명적인 약점을 잡혀 끌려가게 된다는 뜻.  

 

 【四○】舉。  【제40칙】 육긍(陸亘)의 천지동근(天地同根)
   陸亘大夫。與南泉語話次。
   陸云。
   肇法師道。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也甚奇怪
   (鬼窟裏作活計。
   畫餅不可充飢。
   也是草裏商量)
   南泉指庭前花
   (道恁麼。咄。
   經有經師論有論師。

   不干山僧事。咄。
    大丈夫當時下得一轉語。
   不唯截斷南泉。
   亦乃與天下衲僧出氣)
   召大夫云。時人見此一株花。
   如夢相似
   (鴛鴦繡了從君看。
   莫把金針度與人。
   莫寐語。
   引得黃鶯下柳條)。
   육긍대부(陸亘大夫)와 남전(南泉)이 얘기하던 차에
   육긍이 말하기를,
   "조법사(肇法師*)가 '천지와 내가 근본이 같고
   만물과 내가 한몸이다' 했는데, 매우 기괴합니다." 하자,
   (귀굴<鬼窟> 속에서 살아갈 궁리를 하는구나.
   그림의 떡으로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는 법이니,
   이야 말로 풀섶 속에서 흥정하는 것이다.)
   남전(南泉)이 뜰 앞의 꽃을 가리키며
   (그런 것을 말하다니. 쯧쯧!
   경<經>은 경 가르치는 선생이 있고,
   논<論>은 논 가르치는 선생이 있으니,
   내가 간여할 일이 아니거늘. 쯧쯧!
    대장부가 당시에 일전어<一轉語*>를 내렸더라면
   남전<南泉>을 절단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납승들에게도 기가 솟게 했을 것이다.)
   대부를 부르더니, "그때의 사람은 이 한 그루 꽃을
   꿈과 같이 본 것이다." 하였다.
   (원앙을 수 놓아서 그대 마음 껏 보되,
   금바늘은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지 말아야 하니,
   잠꼬대 하지 마라.
   황앵<黃鶯>이 버들가지에 앉을라.) 

*肇法師; 요진(姚秦)국 사문(沙門) 승조(僧肇).
青原下七世로 누구의 법을 이었는지는 불명하다.
《般若無知論》, 《不真空論》, 《物不遷論》, 《涅盤無名論》의 四論을 저작했는데,
사후에 이 네 편이 한 권의 논문으로 묶여 《조론(肇論)》이 되었다.
이 조론(肇論)은 불교를 중국의 老子, 莊子사상과 결합시켜
불교 중국화를 이루게 한 대표적 저서로 꼽힌다.
그가 왕란(王難)을 만나 형장에서 죽음을 당할 때 게송으로
 「사대(四大)가 원래 주인이 없고                  (四大元無主)
  오음(五陰)은 본래 공하거늘                       (五陰本來空)
  머리에 번쩍이는 칼날에 들이대본들           (將頭臨白刃)
  오히려 춘풍(春風) 베는 것과 같다네.           (猶似斬春風)」 하였다.
(玄沙는 "크고 작은 조법사가 죽는다는 것이 잠꼬대로구나." 하였다.)
*一轉語; 學人을 迷惑에서 開悟로 轉換시키는 한 마디 語句. 세 句면 三轉語.
*引得黃鶯下柳條; 원앙을 수놓아 정원에 내놓으면 황앵이 진짜인 줄 알고
내려 앉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니, 사람들이 그 말에 속게 될 것을 염려하는 말이다.  

 

陸亘大夫久參南泉。
尋常留心於理性中。
游泳肇論。
一日坐次。遂拈此兩句。
以為奇特。問云。
肇法師道。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也甚奇怪。
肇法師。乃晉時高僧。
與生融叡。
同在羅什門下。謂之四哲。
幼年好讀莊老。
後因寫古維摩經。
有悟處。
方知莊老猶未盡善。
故綜諸經。乃造四論。
莊老意謂。天地形之大也。
我形亦爾也。同生於虛無之中。
莊生大意。只論齊物。
肇公大意論性皆歸自己。
육긍대부(陸亘大夫)는 남전(南泉)을 오래 참학했다.
평상시에 이치와 성품 가운데 마음을 두고
조론(肇論)을 파헤쳤는데,
하루는 좌선하다가 이 두 구절이 떠올랐는지라
기이하게 여기고 여쭙기를,
"조법사(肇法師)가 천지와 내가 뿌리가 같고,
만물과 내가 한 몸이라 했는데, 심히 기괴합니다." 하였다.
조법사는 진(晉)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생융예(生融叡*)와 더불어 함께
구마라습 문하에 있었으니 이를 4철(四哲)이라 한다.
어려서는 장노(莊老;장자와 노자) 읽기를 즐겼고,
후에 유마경(維摩經)을 서사(書寫)하고 념고(拈古)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바야흐로 장노가 미진(未盡)한 선(善)임을 알았기에
여러 경전을 종합하여 4론(四論)을 썼다.
장노(莊老)의 뜻은 천지(天地)는 넓고
나 또한 그러하여 허무한 가운데 동생(同生)한다 하니
장자는 생(生)의 대의(大意)를 다만 사물과 같이 논했으나,
조공(肇公)의 대의는 성품을 다 자기로 돌려 논했다. 

*生肇融叡; 生은 도생(道生), 肇는 승조(僧肇), 融은 도융(道融), 叡는 승예(僧叡).
구마라습 문하의 生,肇,融,叡 네 사람을 「관중4성(關中四聖)」이라 부르며,
여기에 曇影, 慧嚴, 慧觀, 僧[(丰*力)/石], 道常, 道標의 六師를 합하여
「습문10철(什門十哲)」이라 한다. 

不見他論中道。
夫至人空洞無象。
而萬物無非我造。
會萬物為自己者。
其唯聖人乎。
雖有神有人有賢有聖。
各別而皆同一性一體。
보지 못했는가? 그 논(論;涅槃無名論)에 이르되,
 '대저 지극한 사람은 텅 비어 형상이 없고,
만물은 내가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만물을 자기 것으로 안다면
그가 오직 성인이기만 하겠는가?' 하였거니와,
비록 신(神)과 인(人), 현(賢), 성(聖)이 있어
각각 달라도 다 같이 하나의 성품과 하나의 몸인 것이다. 
古人道。盡乾坤大地。
只是一箇自己。
寒則普天普地寒。
熱則普天普地熱。
有則普天普地有。
無則普天普地無。
是則普天普地是。
非則普天普地非。
法眼云。渠渠渠。我我我。
南北東西皆可可。
不可可。
但唯我無不可。
所以道。天上天下唯我獨尊。

石頭因看肇論。
至此會萬物為自己處。
豁然大悟。
後作一本參同契。
亦不出此意。
고인이 말하기를, "온 세계[乾坤大地]가
다만 하나의 자기인지라
(내가)추우면 곧 온 천지가 춥고,
더우면 온 천지도 덥고,
있으면 온 천지가 있고,
없으면 온 천지도 없고,
옳으면 온 천지가 옳고,
그르면 온 천지도 그르다." 하였고,
법안(法眼)은 "너, 너, 너와 나, 나, 나, 그리고
남북동서가 다 가능하고 가능할 수 있고
가능하고 가능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오직 나만은 가능하지 못할 것이 없는지라
그래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고 하신 것이다"고 하였으며,
석두(石頭)가 조론(肇論)를 보고
이 '만물로 자기를 삼는 곳'을 알기에 이르러
활연히 대오(大悟)하고서
후에 한 권의 〈참동계(參同契)〉를 지은 것도
이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看他恁麼問。且道。
同什麼根。同那箇體。
到這裏。也不妨奇特。
豈同他常人。
不知天之高地之厚。
豈有恁麼事。
陸亘大夫恁麼問。奇則甚奇。
只是不出教意。
若道教意是極則。
世尊何故更拈花。
祖師更西來作麼。
그의 이러한 질문을 살피건대, 말해보라.
무슨 뿌리가 같고 어떤 몸이 같다는 것인가?
이 속에 이르러서는 기특하여 마지 않으니,
어찌 그가 보통사람이겠으며,
하늘 높고 땅 두터운 줄 모르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육긍대부가 이렇게 물은 것은 기이한 즉 심히 기이하나,
다만 이것은 교의(教意)를 표출(表出)한 것은 아니다.
만약 교의를 말로 하는 것이 극칙(極則)이라면
세존께서는 어째서 염화(拈花)를 하신 것이며,
달마조사는 또 서래(西來)하시어 무엇을 꾀하신 것인가? 
南泉答處。
用衲僧巴鼻。
與他拈出痛處。
破他窠窟。
遂指庭前花。召大夫云。
時人見此一株花。
如夢相似。
如引人向萬丈懸崖上打一推。
令他命斷。
爾若平地上推倒
彌勒佛下生。也只不解命斷。
亦如人在夢。
欲覺不覺被人喚醒相似。
南泉若是眼目不正。
必定被他搽糊將去。
看他恁麼說話。也不妨難會。
若是眼目定動。活底聞得。
如醍醐上味。
若是死底聞得翻成毒藥。
남전(南泉)의 답처(答處)는
납승(衲僧)을 파비(巴鼻*)하는 데에 쓰여
그에게 아픈 곳을 꼭 찝어내 주고
그의 과굴(窠窟*)을 깨뜨려 주었다.
뜰 앞의 꽃을 쫓아 가리키며 대부(大夫)를 불러 말하기를,
"그 때의 사람은 이 한 그루 꽃 보기를
꿈과 같이 본 것이다"고 하였으니,
마치 사람을 만 길 낭떨어지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서
그로 하여금 목숨이 끊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
너희가 만약 평지(平地) 위에서 밀어도 넘어진다면
미륵불이 하생(下生)하도록 다만 죽은 줄도 모를 것이요,
또한 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깨려 해도 깨지 못하고 사람이 불러 깨어남과 같으리라.
남전의 안목이 바르지 못했다면
반드시 그에게 망신[搽糊;풀칠]을 당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얘기를 보건대 난해(難解)하여 마지 않거니와,
안목의 정동(定動*)이 살아 있는 바탕에서 들어 얻은 것이다면
제호(醍醐)의 으뜸가는 좋은 맛이겠지만
죽어 있는 바탕에서 들어 얻었다면 독약으로 바뀔 것이다. 

*巴鼻; 소 콧구멍을 뚤어 멍에를 끼우는 것이니,
꼼짝 못하고 끌려 올 수 밖에 없게 한다는 뜻. 把鼻, 巴臂, 把臂라고도 쓴다.
*窠窟; (파묻혀 지내던)소굴, 즉 고정관념에 비유하는 말.
*定動; 일정함과 움직임. 

古人道。
若於事上見。墮在常情。
若向意根下卜度。卒摸索不著。
巖頭道。此是向上人活計。
只露目前些子。如同電拂。
南泉大意如此。
有擒虎兕定龍蛇底手腳。
到這裏也須是自會始得。
不見道。
向上一路千聖不傳。
學者勞形如猿捉影。

看他雪竇頌出。
고인이 말하기를,
"사실 위에서 보면 상정(常情)에 떨어지고,
뜻으로 추측하면 끝내 모색하지 못한다" 하였고,
암두(巖頭)는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살아갈 길을
눈앞에 조금만 번개 스치듯이 드러냈다." 하였는데,
남전은 큰 의미에서 이처럼
범과 코뿔소를 잡고 용과 뱀을 정하는 수완이 있다지만
이 속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보지 못했는가?
"위로 향하는 그 길은 천성(千聖)도 전하지 못하거늘,
배우는 자들 애쓰는 꼴이
원숭이 (물 위의 달)그림자 잡으려는 듯하다" 하였다.
그것에 대해 설두가 송출(頌出)한 것을 살펴보라. 

 

 聞見覺知非一一
   (森羅萬象無有一法。
   七花八裂。
   眼耳鼻舌身意。
   一時是箇無孔鐵鎚)
 山河不在鏡中觀
   (我這裏無這箇消息。
   長者自長短者自短。
   青是青黃是黃。
   爾向什麼處觀)
 霜天月落夜將半
   (引爾入草了也。
   遍界不曾藏。
   切忌向鬼窟裏坐)
 誰共澄潭照影寒
   (有麼有麼。
   若不同床睡。焉知被底穿。
   愁人莫向愁人說。
   說向愁人愁殺人)
 문(聞) 견(見) 각(覺) 지(知)가 따로 따로가 아니고
   (삼라만상이 한 법도 없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버렸으니,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일시에 꽉 막혀버린 것<無孔鐵鎚*>이다.)
 산하(山河)는 거울 속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나는 이 속에 어떤 소식도 없다.
   긴 것은 스스로 길고, 짧은 것은 스스로 짧으며,
   푸른 것은 푸르고 누런 것은 누렇거늘,
   너는 어디를 향해 보느냐?)
 서리 낀 하늘 달은 지고 밤은 깊어가는데
   (그대들을 풀섶으로 들어가도록[入草*] 이끌었으나
   온 세계에 감춰진 적이 없으니,
   절대 귀굴<鬼窟> 속에 앉지 말기 바란다.)
 뉘라서 함께 맑은 못에 영한(影寒*)을 비춰줄꼬.
   (있는가, 있는가<有麼有麼*>?
   같은 침상에서 자지 않고서야 어찌 뚫리리오?
   근심 많은 사람이 근심 많은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 많은 사람에게 말해봐야 근심만 심해질 뿐이다.)

*無孔鐵鎚; 둥글기만 하고 구멍이 없어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철추.
'어찌 해볼 수 없는 것', '뚫리지 않은 답답한 놈'에 비유하는 말.
*入草; 풀섶으로 들어가다. 풀섶은 시끄러운 현실세계에 비유하는 말.
*影寒; 그림자의 차가움. 고결하여 범접하기 어려움에의 비유.
*有麼有麼; '나는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南泉小睡語。雪竇大睡語。
雖然作夢卻作得箇好夢。
前頭說一體。
這裏說不同。
聞見覺知非一一。
山河不在鏡中觀。
若道在鏡中觀。
然後方曉了。
則不離鏡處。
山河大地。草木叢林。
莫將鏡鑑。若將鏡鑑。
便為兩段。
但只可山是山水是水。
法法住法位。
世間相常住。
남전은 작은 잠꼬대, 설두는 큰 잠꼬대를 했는데,
비록 꿈을 꾸었지만 어떤 좋은 꿈이다.
앞 에서는 한 몸[一體]을 말하고
여기서는 같지 않음[不同]을 말했다.
 '문견각지(聞見覺知)가 각각이 아니고
산하(山河)는 거울 속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했는데,
만약 도(道)가 거울 속에서 보고
그런 뒤에 바야흐로 깨치는 것이라면
곧 거울이라는 곳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초목총림(草木叢林)을
거울을 가져다 비춰보지 말라. 거울로 비춰보면
곧 양단(兩段;이것과 저것)이 되어버리거니와,
다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수 있어야만
모든 법이 법의 위치에 안주하고
세간의 모습이 상주(常住)할 것이다. 
山河不在鏡中觀。
且道向什麼處觀。還會麼。
到這裏。
向霜天月落夜將半。
這邊與爾打併了也。
那邊爾自相度。
還知雪竇以本分事為人麼。
誰共澄潭照影寒。
為復自照。為復共人照。
須是絕機絕解。
方到這境界。
即今也不要澄潭。
也不待霜天月落。
即今作麼生。
 '산하(山河)가 거울 속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했는데,
말해보라. 어디를 향해 보아야 할지. 알겠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날은 춥고 달은 지고 밤은 깊어만 가리니,
이 쪽은 너와 더불어 타개(打開;打併)해 간다 하더라도
저 쪽은 너 스스로 헤쳐가야[相度] 한다.
설두가 본분사(本分事)로 사람을 위한 것을 알겠는가?
 '뉘라서 함께 맑은 못에 영한(影寒)을 비추리오?' 하였는데,
스스로 비춰 보고 사람들과 함께 비춰 보기를 힘써서
모름지기 심기(心機*)를 끊고 지해(知解*)를 끊는다면
바야흐로 이런 경계에 도달하려니와,
당장이야 맑은 못은 요하지 않더라도
서리 낀 하늘 달이 지기를 기다리지는 말아야 한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打併; 收拾, 整理. *相度; 考慮, 分析.

*心機; 마음의 발동(發動). *知解; 정식(情識)에 의한 이해. 속칭 알음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