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진신(眞身;法身)은 일체의 상(相)을 여읜 자성신(自性身)이요
태허(太虛)와 같은 하나의 절대적 본체라서
생각과 언어로 표현될 경계를 벗어난 것이며,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대(六大), 육합(六合) 따위의
상대세계(相對世界)로 다루어질 것이 아니다.
垂示云。 | 수시(垂示) |
天何言哉。四時行焉。 地何言哉。萬物生焉。 向四時行處。可以見體。 於萬物生處。可以見用。 且道向什麼處見得衲僧。 離卻言語動用行住坐臥。 併卻咽喉唇吻。 還辨得麼。 |
하늘이 어찌 말을 하리오만 사시(四時)가 행해지고 땅이 어찌 말을 하리오만 만물이 생겨나며, 사시가 행하는 곳을 향해 체(體)를 볼 수 있고, 만물이 생하는 곳에서 용(用)을 볼 수 있다. 말해보라, 어느 곳을 향해 납승을 견득(見得)할 것인지. 말과 행동과 행주좌와(行住坐臥)를 여의어버리고 아울러 목구멍과 입술도 닫아버린다. 알겠느냐. |
*天何言哉 四時行焉; 《論語》陽貨第十七에
「공자가 "말하지 않겠다." 하자,
자공(子貢)이 "공자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즉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하늘이 무슨 말을 했길래 사시(四時)가 행하고 만물이 생기느냐?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하였다.
(子曰:予欲無言! 子貢曰:子如不言,則小子何述焉?
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百物生焉;天何言哉?)」
【四七】舉。 | 【제47칙】 운문(雲門)의 육불수(六不收) |
僧問雲門。 如何是法身 (多少人疑著。 千聖跳不出。 漏逗不少) 門云。六不收 (斬釘截鐵。 八角磨盤空裏走。 靈龜曳尾朕兆未分時薦得。 已是第二頭。 朕兆已生後薦得。 又落第三首。 若更向言語上辨得。 且喜沒交涉)。 |
한 중이 운문에게 물어 "무엇이 법신(法身)입니까?" 하니,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지만 일천 성인이 뛰어도 벗어나지 못하거늘 누두<漏逗>가 적지 않다.) 운문은 "육불수(六不收*)다." 하였다. (참정절철<斬釘截鐵*>이요, 팔각마반<八角磨盤*>이 허공 속을 달리니, 신령한 거북 꼬리를 끌 조짐이 보이기 전에 천득하면 이미 제2두(第二頭*)인 것이며, 조짐이 이미 생긴 뒤에 천득하면 또 제3수<第三首*>에 떨어진 것이거니와, 만약 다시 언어 상에서 분별해 얻는다면 기쁜 일이기는 하나 아무런 교섭이 없다.) |
*六不收; 「육(六)」은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대(六大), 육합(六合) 등의
불교에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개괄(概括)하여 쓰는 기본 법수(法數)이고,
「수(收)」는 섭수(攝收), 포함(包含)의 뜻이니,
법신(法身)은 육근(六根) 등의 상대적 개념으로 다루어질 바가 아니다는 뜻.
*斬釘截鐵; 말과 행동이 단호하고 과감하여 추호도 주저함이 없음을 형용하는 말.
*八角磨盤空裏走; 맷돌[磨盤]은 응당 원형인데 팔각진 맷돌이 공중을 난다 함은
불가사의하여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다는 의미이다.
*靈龜曳尾 ; 만 년 동안 산다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진흙 위에서 꼬리를 끈다는 뜻으로,
출세하기 위하여 무리하다가 일찍 죽기보다는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더라도
오래 사는 것이 좋음을 이르는 말.
〈祖庭事苑 第6卷〉에
「장자(莊子)가 복수(濮水)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초왕(楚王)이 두 대신을 보내서
"원컨대 경내(境內;國內)로 들어오십시요." 하고 조정으로 불렀다.
장자가 "초나라에는 죽은 지 삼천 년이 된 신령한 거북이 있어서
왕께서 소중히 간수하여 묘당(廟堂)에 모셔두었다는데,
그 거북이란 것이 죽어서 뼈를 남기는 것이 귀하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끄는 것이 낫겠소?" 물으니,
두 대부가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끄는 것이 낫지요." 하자,
장자는 "돌아가시오. 나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겠소. '복,복'(거북이 소리)." 하였다.
*第二頭; 第二機, 第二義門, 向下門과 같은 용어.
①향상의 평등처에서 하향의 차별문으로 되돌아가는 교리법문.
보살 하화중생(下化眾生)의 문을 뜻한다. 第一義門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문.
②言說과 教義에 과도히 집착함을 비하하는 뜻으로 「落草」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第三首; 제2두도 못된다는 의미.
雲門道。六不收。直是難搆。 若向朕兆未分時搆得。 已是第二頭。 若向朕兆已生後薦得。 又落第三首。 若向言句上辨明。 卒摸索不著。 且畢竟以何為法身。 若是作家底。聊聞舉著。 剔起便行。 苟或佇思停機。 伏聽處分。 |
운문이 말한 육불수(六不收)는 곧 얽어내기 어렵다. 조짐이 보이기 전에 구득(搆得)하려는 것은 이미 제2두(第二頭)인 것이요, 조짐이 이미 생긴 뒤에 천득하려는 것은 또 제3수(第三首)에 떨어진 것이며, 만약 언구상(言句上)에서 분별하여 알려 한다면 죽어도 모색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필경 무엇으로써 법신을 삼을 것인가? 만약 작가라면 거론을 들어 귀에 울리거든 망서리지 않고[剔起] 곧 행하겠지만 혹 생각하게 되고 기가 잘 돌지 않는다면 엎드려 처분만 바랄 것이다. |
太原孚上座本為講師。 一日登座講次。說法身云。 豎窮三際。橫亘十方。 有一禪客。在座下聞之失笑。 孚下座云。 某甲適來有甚短處。 願禪者為說看。禪者云。 座主只講得法身量邊事。 不見法身。 孚云。畢竟如何即是。 禪者云。 可暫罷講於靜室中坐。 必得自見。 孚如其言。一夜靜坐。 忽聞打五更鐘。忽然大悟。 遂敲禪者門云。我會也。 禪者云。爾試道看。 孚云。我從今日去。 更不將父母所生鼻孔扭捏也。 又教中道。 佛真法身。猶若虛空。 應物現形。如水中月。 |
태원부(太原孚*) 상좌는 본래 강사(講師)였는데 하루는 법좌에 올라 강설하면서 법신(法身)을 설하여 「수궁삼제(豎窮三際*) 횡긍시방(橫亘十方*)」이라 하자, 한 선객(禪客)이 좌하(座下)에서 듣고 코웃음쳤다. 부상좌가 법좌에서 내려와서 "내가 방금 무엇을 잘못했는지 선자(禪者)께서 말해 주시기 바라오." 하니, 선자가 "좌주(座主)는 법신의 양(量)만을 강설하고 법신을 보지는 못했소." 하였다. 부상좌가 "필경 어찌한 즉 옳겠습니까?" 하니, 선자가 이르기를, "가히 잠시 강설을 쉬고 고요한 방에 앉으면 반드시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하여 그의 말 대로 하룻밤을 정좌(靜坐)했더니 문득 오경(五更)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홀연히 대오한지라 이윽고 선자의 문을 두드려 "내가 알았소." 하자, 선자가 "한번 말해 보시오." 하니, 부상좌는 "내가 오늘부터 다시는 부모가 낳아 준 콧구멍을 가지고 멋대로 놀려대지[扭揑] 않겠소." 하였다. 또 경(經;教*)에도 말하기를, 「부처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고, 사물을 응하여 형상을 나투심은 수중월(水中月) 같다」 하였다. |
*太原孚上座; 雪峰義存法嗣 青原下六世
*豎窮三際 橫亘十方; 三際(과거,현재,미래)에 窮盡하고,
十方(東西南北,東南西南西北東北,上下)에 횡으로 뻗쳤다(두루한다)는 것은
佛陀의 法身境界가 時空을 초월하여 「盡虛空 遍法界」를 형용하는 말이다.
*教; 《合部金光明經》 卷第五 四天王品에 四天王이 부처님 전에 올린 게송이 일부이다.
又僧問夾山。 如何是法身。 山云。法身無相。 如何是法眼。 山云。法眼。無瑕。 雲門道。六不收。 此公案有者道。 只是六根六塵六識。 此六皆從法身生。 六根收他不得。 若恁麼情解。 且喜沒交涉。 更帶累雲門。 要見便見。無爾穿鑿處。 |
또 중이 협산(夾山*)에게 물어 "무엇이 법신입니까?" 하니, "법신은 상(相)이 없다." 하였고, "무엇이 법안(法眼)입니까?" 하니, "법안은 티(瑕)가 없다." 하였다. 운문은 육불수(六不收)라고 하였는데, 이 공안을 어떤 자는 말하기를, "다만 이것은 6근(六根), 6진(六塵), 6식(六識)이며, 이 여섯이 다 법신으로부터 생겨나는지라 6근(六根)으로 그것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고 하니, 이렇게나마 정해(情解)하는 것도 기쁘기는 하나 아무런 교섭이 없거니와, 다시 운문에게 누(累)를 끼치는 것이요, 보려거든 곧 볼 것이라 너희가 파고들 곳이 없다. |
不見教中道。 是法非思量分別之所能解。 他答話多惹人情解。 所以一句中。須具三句。 更不辜負爾問頭。 應時應節。 一言一句。一點一畫。 不妨有出身處。 所以道。一句透。 千句萬句一時透。 且道是法身。是祖師。 放爾三十棒。 雪竇頌云。 |
보지 못했는가? 교(敎*) 중에 말하기를, 「이 법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 운문의 대답이 사람의 정해(情解)를 흔히 야기(惹起)하니, 1구(句) 중에 반드시 3구를 갖추고 다시 상대의 문두(問頭*)를 저버리지 않음으로써 응시응절(應時應節*)하였거니와, 일언일구(一言一句) 일점일획(一點一畫)마다에 출신처(出身處)가 있어 마지 않으니, 그래서 1구를 투득(透得)하면 천구만구(千句萬句)를 일시에 투득한다고 하는 것이다. 자 말해보라. 이것이 법신인가, 조사인가? 너희에게 30방을 놓겠다. 설두는 이렇게 송했다. |
*夾山; 澧州夾山善會禪師(船子德誠法嗣) 青原下四世
*穿鑿; ①파다. 관통시키다. 통하게 하다. ②억지로 해석을 가져다 붙이다.
*敎; 《法華經 方便品第二》
*問頭; 질문의 단초[問端]. 묻게된 연유.
*應時應節; 때와 절기에 적응하다. 상황에 따라 알맞게 대처하다.
一二三四五六 (周而復始。 滴水滴凍。 費許多工夫作什麼) 碧眼胡僧數不足 (三生六十劫。 達磨何曾夢見。 闍黎為什麼知而故犯) 少林謾道付神光 (一人傳虛萬人傳實。 從頭來已錯了也) 卷衣又說歸天竺 (賺殺一船人。懡㦬不少) 天竺茫茫無處尋 (在什麼處。始是太平。 如今在什麼處) 夜來卻對乳峰宿 (刺破爾眼睛。 也是無風起浪。 且道是法身是佛身。 放爾三十棒) |
일이삼사오륙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이다. 적수적동(滴水滴凍*)이로구나. 그 많은 공부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달마대사[碧眼胡僧]도 족히 세지 못하여 (3생 60겁에도 달마가 어찌 꿈엔들 본 적 있으리오. 선생은 어째서 알면서도 고의로 범하는가.) 소림사에서 슬그머니 신광(神光*)에게 부촉한다 하고 (한 사람이 거짓을 전하매 만인이 진실이라고 전했으니, 머리서부터 오기를 이미 빗나가버린 것이다.) 옷을 챙기고서 또 천축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는데, (한 배 탄 사람을 너무 속였으니, 낭패가 적지 않다.) 천축이 망망하여 찾을 길이 없더니 (어디에 있어야 비로소 태평한 것이며,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 간밤에 와서 유봉(乳峰*)을 마주해 묵었나보구나. (너희 눈동자를 찔러 부셨고 또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켰다. 말해보라. 이것이 법신인가, 불신<佛身>인가? 너희에게 30방을 놓겠다.) |
*乳峰; ①젖꼭지. 가슴, 내 마음.
②하남(河南) 등봉현(登封縣) 서북방 소실산(少室山)에 있는 봉우리. 이곳에 소림사가 있다.
雪竇善能於無縫罅處。 出眼目頌出教人見。 雲門道。六不收。 雪竇為什麼卻道。 一二三四五六。 直是碧眼胡僧也數不足。 所以道。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須是還他屋裏兒孫始得。 適來道。一言一句。 應時應節。 若透得去。 方知道不在言句中。 其或未然。不免作情解。 五祖老師道。 釋迦牟尼佛。下賤客作兒。 庭前柏樹子。一二三四五。 若向雲門言句下。諦當見得。 相次到這境界。 |
설두가 어떠한 꿰맨 흔적없이 안목을 내서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송출(頌出)했다. 운문은 '육불수(六不收)'라 하였는데 설두는 어째서 도리어 '일이삼사오륙'이라고 했겠는가? 바로 달마대사일지라도 족히 세지 못하는 것이라 그래서 말하기를 '다만 달마가 안다[知]고는 하겠으나 부합했다[會]고는 못하겠다'고 하였거니와, 모름지기 이는 운문 집안 자손의 차지라고 해야 하리라. 좀 전에 '일언일구(一言一句)가 응시응절(應時應節)하다'고 하였는데, 만약 투철히 얻어 간다면 바야흐로 도(道)가 언구(言句) 안에 있지 않음을 알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다면 정해(情解) 짓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오조(五祖) 노사(老師)께서는 석가모니불도 하천(下賤)한 객작아(客作兒*)며 뜰 앞 잣나무[庭前柏樹子]는 일이삼사오다고 하셨는데, 만약 운문의 언구 아래서 이치에 맞게 견득한다면 점차[相次] 이 경계에 이를 것이다. |
少林謾道付神光。 二祖始名神光。 及至後來。又道歸天竺。 達磨葬於熊耳山之下。 時宋雲奉使西歸。 在西嶺見達磨 手攜隻履歸西天去。 使回奏聖。 開墳惟見遺下一隻履。 雪竇道。其實此事。 作麼生分付。 既無分付。 卷衣又說歸天竺。 且道為什麼。 此土卻有二三。 遞相恁麼傳來。 這裏不妨誵訛。 也須是搆得始可入作。 天竺茫茫無處尋。 夜來卻對乳峰宿。 且道即今在什麼處。 師便打云。瞎。 |
'소림사에서 짐짓 신광에게 부촉한다고 했다'는 것은 2조(二祖)의 처음 이름이 신광(神光)이었고, 그 뒤에 '또 천축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고 하였는데, 달마는 웅이산(熊耳山) 아래 매장하였다. 그런데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던 길에 서령(西嶺)에서 달마를 보았는데 손에 짚신 한 짝을 들고 서천으로 돌가가고 있었는지라 사신이 돌아와 성상(聖上)께 아뢰어 봉분을 열어보니 짚신 한 짝만 있었으니, 설두가 실은 이 일을 말한 것이다. 무엇을 분부(分付)했는가? 기왕 분부한 것이 없거니와, 옷을 챙기고서 천축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는데, 말해보라. 무엇을 위해 이 땅에 도리어 육[六;二三*]이 있어。 차례차례 그렇게 전해 왔는가? 이 속이 헛갈려[誵訛*] 마지 않는지라 반드시 구득(搆得*)해야만 비로소 들어가 지을 수 있다. '천축이 망망하여 찾을 길이 없더니 간밤에 와서 유봉(乳峰)을 대하여 묵었는가' 하였는데, 말해보라.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사가 갑자기 후려치며 "할(瞎*)!" 하였다. |
*客作兒;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 천박하다는 의미로 사람을 꾸짖는 말로 쓰인다.
*二三; 육(六). 동토 육대조사(六代祖師;達磨,慧可,僧璨,道信,弘忍,慧能).
*誵訛; 헛갈린 착오[混淆訛誤].
*搆; ① (주의를) 끌다. 야기하다. (사건 등을) 일으키다. 조성(造成)하다.
②세우다. ③닿다. 건드리다. 언급하다.
*瞎; 눈이 멀었구나(말이 온 곳을 보지 못할 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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