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甚麼?』에 『是甚麼?』로 응하자 『無言』으로 답했으니,
絶對平等하고 寂淨하여 摸索할 從跡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末後句』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末後句』는 同條生일지라도 同條死하지 않아서
남북동서가 저마다의 明暗雙雙하고 殊絶한 證悟의 世界가 있으니
모름지기 真智로 契入하여 體悟해야 한다.
垂示云。 | 수시(垂示) |
纔有是非。紛然失心。 不落階級。又無摸索。 且道放行即是。把住即是。 到這裏。若有一絲毫解路。 猶滯言詮。尚拘機境。 盡是依草附木。 直饒便到獨脫處。 未免萬里望鄉關。 還搆得麼。 若未搆得。 且只理會箇現成公案。 試舉看。 |
잠깐 시비(是非)가 있기만 하면 어지러이 마음을 잃거나 계급에 떨어지지 않고 또 모색하는 일도 없다면 말해보라. 방행(放行)해야겠는가, 파주(把住)해야겠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만약 한 가닥 해로(解路)가 있다면 오히려 언전(言詮*)을 막고 기경(機境*)을 구속할 것이라 모두가 의초부목(依草附木*)인 것이며, 설사 어떻게 벗어난다 하더라도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를 면치 못할 터인데 도리어 조성(造成;搆)이 되겠는가? 만약 조성이 안된다면 다만 이 현성공안(現成公案)을 알아야 하리니, 한 번 들춰서 살펴보자. |
*不落階級;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다」 함은 前後, 上下, 多小, 高低, 長短 등의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절대평등의 경지를 말한다.
*言詮; 以語言文字來表達義旨。
*機境; 機謂屬於內而慟於心者。境謂屬於外而顯於形者。
*依草附木; 禪林用語. 依草附葉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뒤 태어날 인연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혼령이 獨立自存할 방법이 없으니 초목에 의지해 머물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禪宗에서는 學人이 語言文字에 拘束되어 있어서
絕對的이고 自由自在한 悟境에 도달할 방법이 없음에 비유하여 쓴다.
*萬里望鄉關; 만 리 밖에서 고향을 바라보다.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
*現成公案; 조작없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공안. 如實公案. 見成公案.
【五一】舉。 | 【제51칙】 설봉심마(雪峰甚麼)_설봉의 「무엇고?」 |
雪峰住庵時。 有兩僧來禮拜 (作什麼。一狀領過) 峰見來。以手托庵門。 放身出云。是什麼 (鬼眼睛。無孔笛子。 擎頭戴角) 僧亦云。是什麼 (泥彈子氈拍板。 箭鋒相拄) 峰低頭歸庵 (爛泥裏有刺。 如龍無足。似蛇有角。 就中難為措置) |
설봉이 암자에 머물 때 두 중이 예배하러 오매 (무슨 짓을 하려느냐. 한꺼번에 죄를 묻겠다.) 설봉이 보고서 손으로 암자의 문을 밀치고 몸을 내밀면서 "이 무엇인고?" 하니, (귀안정<鬼眼睛*>이요, 무공적<無孔笛*>이며, 경두대각<擎頭戴角*>이로구나.) 중도 "이 무엇인고?" 하자, (니탄<泥彈*>과 전박판<氈拍板*>이 전봉상주<箭鋒相拄*>했다.) 설봉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버렸다. (고운 흙 속에 가시가 있고, 용이 발이 없는 듯, 뱀이 뿔을 단 듯하여 중간에 조치하기 어렵겠구나.) |
*鬼眼睛; 귀신 눈동자. 바르지 못한 견해나 추호의 가치가 없는 견해에 비유하는 말.
*無孔笛子 ; 구멍 없는 피리. 어려워서 손대볼 수 없는 공안에 비유하는 말.
*擎頭戴角; 머리가 들리고 뿔이 달리다. 출중한 인물을 지칭하는 말.
*泥彈子氈拍板; 진흙 탄환과 양탄자 판대기. 던지고 받는 불완전한 두 사람에 비유한 표현.
*箭鋒相拄; 法眼四機의 하나로 師家가 學人의 機鋒에 맞게 화살을 쏨으로써
주고 받는 쌍방이 간극없이 팽팽히 맞서게 하는 接化의 방식을 말한다.
僧後到巖頭 (也須是問過始得。 同道方知) 頭問。什麼處來 (也須是作家始得。 這漢往往納敗闕。 若不是同參。洎乎放過) 僧云。嶺南來 (傳得什麼消息來。 也須是通箇消息。 還見雪峰麼) 頭云。曾到雪峰麼 (勘破了多時。不可道不到) 僧云。曾到 (實頭人難得。打作兩橛) 頭云。有何言句 (便恁麼去也) 僧舉前話 (便恁麼去也。 重重納敗闕) |
중이 후에 암두(巖頭)에 이르자 (반드시 물어봐야 얻게 되고 같은 길임을 비로소 안다.) 암두가 "어디서 오는가?" 물었는데 (모름지기 작가라야 하거니와 이 자는 왕왕 패배와 부족함을 용납하고 동참<同參>이 아니면 그냥 봐준다.) 중이 "영남(嶺南)에서 옵니다." 하니, (무슨 소식을 전해 듣고 왔는지 반드시 그 소식을 통보해야 한다. 설봉을 보았는가?) "설봉에게 간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여러 번 감파했을 때는 간 적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갔었습니다." (진실한 사람을 얻기 어렵거늘 두 말뚝을 박았다.) "무슨 언구(言句)가 있었는가?" (곧바로 이렇게 가는구나.) 중이 앞서의 일을 들추자 (곧바로 그렇게 갔으니 거듭 거듭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
頭云。他道什麼 (好劈口便打。 失卻鼻孔了也) 僧云。他無語低頭歸庵 (又納敗闕。 爾且道他是什麼) 頭云。噫我當初 悔不向他道末後句 (洪波浩渺白浪滔天) 若向伊道。 天下人不奈雪老何 (癩兒牽伴。不必。 須彌也須粉碎。 且道他圈繢在什麼處) |
암두가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 하니, (입만 벌리면 곧 때리니 콧구멍을 잃어버렸겠구나.) "말 없이 고개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더이다." (또 패궐을 용납했다. 네가 말해보라. 그것이 무엇인지.) "아! 내가 당초 그에게 말후구(末後句)를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구나. (거센 물결 끝없이 출렁이고 흰 파도 하늘에 치솟네.) 만약 그에게 말해주었더라면 천하인이 설봉[雪老]을 어찌 하지 못할 것을." 하였다. (문둥병자가 동무를 끌어들였으니, 불필요했다. 수미산도 부숴버려야 하리니, 말해보라. 그의 올가미가 어디에 있는가?) |
僧至夏末。 再舉前話請益 (已是不惺惺。 正賊去了多時。 賊過後張弓) 頭云。何不早問 (好與掀倒禪床。過也) 僧云。未敢容易 (這棒本是這僧喫。 穿卻鼻孔。停囚長智。 已是兩重公案) 頭云。雪峰雖與我同條生。 不與我同條死 (漫天網地) 要識末句後。只這是 (賺殺一船人。 我也不信。洎乎分疏不下)。 |
중이 하안거가 끝나자 다시 앞서의 일을 들춰 청익(請益)하니, (이미 이것은 총명하지 못한 것이다. 진짜 도적은 떠난지 오랜데 도적 지나간 뒤에 활을 당겼다.) 암두는 "왜 일찍 묻지 않았는가?" 하였다. (선상<禪床>을 뒤엎었어야 했는데 봐주었다.) 중이 "감히 쉽지 않았습니다." 하자, (이 한 방은 본디 이 중이 먹은 것이거니와 콧구멍 뚫어버리기요 갇힌 죄수 지혜 늘리기인지라 이미 이것이 양중공안이다.) 암두는 "설봉이 비록 나와 같은 가지에서 났지만 나와 같은 가지에서 죽지 않는다. (천지에 널려 있다.) 말구(末句)를 알려거든 다만 이 뿐이다." 하였다. (한 배 탄 사람을 너무 속였다. 나야 믿지 못하지만 낱낱이 밝히지 못하겠다.)。 |
*巖頭全奯와 雪峰義存은 모두 德山宣鑒의 법제자이다.
*敗闕; 패하고 이지러지다. 과실.
*洎乎; 때에 이르러. 미치기를 기다려.
*停囚長智; 문자와 언어에 구속되어 지혜를 늘리려는 것.
禪家에서는 깨달음을 생각으로 얻으려 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기피한다.
*漫天網地; 漫天漫地, 漫天蓋地, 「到處에 모두 이것이다」의 뜻.
*分疏; ①변명하다. (법정에서)진술하다. ②하나 하나 분명히 밝히다.
③서먹서먹하다. 疏遠하다.
大凡扶豎宗教。 須是辨箇當機。 知進退是非。 明殺活擒縱。 若忽眼目迷黎麻羅。 到處逢問便問。逢答便答。 殊不知鼻孔在別人手裏。 只如雪峰巖頭。同參德山。 此僧參雪峰。 見解只到恁麼處。 及乎見巖頭。 亦不曾成得一事。 虛煩他二老宿。 一問一答。一擒一縱。 直至如今。 天下人成節角誵訛。 分疏不下。 且道節角誵訛。在什麼處。 |
대체로 종교를 지탱하고 세우려면 반드시 그 당시의 상황을 헤아리고 진퇴(進退)와 시비(是非)를 알아서 죽일지 살릴지 붙들지 놓아줄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안목을 잊고[忽] 흐리멍텅[迷黎麻羅]한 채 도처에서 물을 때 곧 묻고 답할 때 곧 답을 해서는 상대방에게 콧구멍이 꿰인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설봉과 암두가 함께 덕산(德山)을 참(參)했던 것처럼 이 중들이 설봉을 참하였으나 견해가 다만 여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암두를 만나서도 아무 것도 이루어 얻지 못했으니, 헛되이 저 두 노숙(老宿)을 번거롭히며 일문일답하고 일금일종(一擒一縱)한 것이거니와, 바로 지금에 이르러서도 천하인이 절각효와(節角誵訛*)를 이루어 분소(分疏*)를 못하는데, 자, 말해보라. 절각효와가 어디에 있는가? |
*節角誵訛; 꺾이고 복잡히 얽혀서 난해(難解)한 구석.
節角은 文字의 꺾인 모서리. 誵訛는 混淆訛誤(헛갈리고 애매모호함).
*分疏; ①낱낱이 깨끗히 밝히다. ②자기변명. 疏遠.
雪峰雖遍歷諸方。 末後於鰲山店。 巖頭因而激之。 方得勦絕大徹。 巖頭後值沙汰。 於湖邊作渡子。 兩岸各懸一板。 有人過敲板一下。 頭云。爾過那邊。 遂從蘆葦間。舞棹而出。 雪峰歸嶺南住庵。 |
설봉이 비록 제방을 편력(遍歷)했지만 마지막에 오산(鰲山)의 주막에서 암두로 인해 충격을 받아[激發] 바야흐로 초절(勦絕)한 대철(大徹)을 얻었다. 암두는 후에 사태(沙汰)를 만나 호숫가의 뱃사공이 되어 양쪽 언덕에 각각 널판지를 하나씩 걸어 두고 건너려는 사람이 널판지를 한 번 두드리거든 암두가 "저쪽으로 건너시렵니까?" 하고서 이윽고 갈대 사이에서 춤추듯 노를 저어서 나왔으며, 설봉은 영남으로 돌아와 암자에 머물렀다. |
這僧亦是久參底人。 雪峰見來。以手托庵門。 放身出云。是什麼。 如今有底。恁麼問著。 便去他語下咬嚼。 這僧亦怪。 也只向他道是什麼。 峰低頭歸庵。 往往喚作無語會去也。 這僧便摸索不著。 有底道。 雪峰被這僧一問直得。 無語歸庵。 殊不知雪峰意有毒害處。 雪峰雖得便宜。 爭奈藏身露影。 |
이 중도 구참(久參)한 사람이었다. 설봉이 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암자 문을 밀고 몸을 내밀면서 "이 무엇인고?" 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이 이런 물음에 봉착했다면 곧 그 말을 씹고 되씹고 하겠지만 이 중도 또한 괴이하여 다만 그를 향해 "이 무엇인고?"라고만 하자 설봉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으니, 왕왕 '이회(理會)할 말이 없어서야 이 중이 곧 모색하지 못한다'고 여기기도 하고[喚作],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설봉이 이 중의 1문(一問)을 얻어맞고 말 없이 암자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설봉의 의중에 독해처(毒害處)가 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설봉이 비록 편의를 얻어 몸은 감추었으나 그림자는 드러나 있음을 어찌 하겠는가. |
這僧後辭雪峰。 持此公案。令巖頭判。 既到彼。巖頭問。 什麼處來。 僧云。嶺南來。 頭云。曾到雪峰麼。 若要見雪峰。只此一問。 也好急著眼看。 僧云。曾到。 頭云。有何言句。 此語亦不空過。 這僧不曉。 只管逐他語脈轉。 頭云。他道什麼。 僧云。他低頭無語歸庵。 這僧殊不知。巖頭著草鞋。 在他肚皮裏行。 幾回了也。 |
이 중이 후에 설봉을 하직하고서 이 공안을 가지고 암두(巖頭)의 판단을 얻고자 그에게 가니, 암두가 "어디서 오는가?" 하고 물었다.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 암두는 "설봉에게 가본 적이 있는가?" 하였는데, 만일 설봉을 알려거든 이 한 질문만을 급히 서둘러 살펴보는 것이 좋았거늘 중이 "간 적이 있습니다." 하자 암두가 "무슨 언구가 있던가?" 하였는데, 이 말 또한 헛되이 지나치지 말았어야 했건만 이 중이 밝지 못한지라 오로지 그 어맥만을 쫓아 굴렀다. 암두가 "그가 어떤 말을 하던가?" 물으니,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암자로 돌아갔다." 하였는데, 이 중은 암두가 짚신을 신고 그의 두피(肚皮) 속을 몇 번이나 돌아쳤는지 전혀 모른 것이다. |
巖頭云。噫我當初悔 不向他道末後句。 若向他道。 天下人不奈雪老何。 巖頭也是扶強不扶弱。 這僧依舊黑漫漫地。 不分緇素。懷一肚皮疑。 真箇道。雪峰不會。 |
암두가 "아! 내가 당초 그에게 말후구를 말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구나. 만일 그에게 말해주었더라면 천하인이 설봉을 어찌하지 못할 텐데" 라고 하여 암두도 또한 강자를 돕고 약자를 돕지 않았으니 이 중이 여전히 깜깜한 처지에서 흑백을 구분할 수 없어 한 꺼풀 의심이 있었지만 진실로는 설봉이 모르더라고 말한 것이다. |
至夏末。再舉前話。 請益巖頭。 頭云。何不早問。 這老漢。計較生也。 僧云。未敢容易。 頭云。雪峰雖與我同條生。 不與我同條死。 要識末後句。只這是 巖頭太殺不惜眉毛。 諸人畢竟作麼生會。 |
중이 하안거가 끝나자 다시 앞서의 얘기를 들춰 암두에게 청익(請益)하니 암두가 "왜 일찍 묻지 않았느냐?"고 하였는데, 이 늙은이가 꾀를 낸 것이다. 중이 "감히 여쭙지 못했습니다." 하자, 암두는 "설봉이 비록 나와 같은 가지에서 났지만 나와 같은 가지에서 죽지 않는다. 말후구를 알려거든 다만 이것 뿐이다." 하였으니, 암두가 너무 심하게 눈썹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여러분은 필경 어떻게 이회(理會)했는가? |
*只這是; 같은 문하라 해서 말후구도 같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표현.
雪峰在德山會下作飯頭。 一日齋晚。 德山托缽下至法堂。 峰云。鐘未鳴鼓未響。 這老漢。托缽向什麼處去。 山無語低頭歸方丈。 雪峰舉似巖頭。 頭云。大小德山。 不會末後句。 山聞令侍者喚至方丈問云。 汝不肯老僧那 頭密啟其語。 山至來日上堂。與尋常不同。 頭於僧堂前。撫掌大笑云。 且喜老漢會末後句。 他後天下人。不奈他何。 雖然如是。只得三年。 |
설봉이 덕산의 회하(會下)에서 반두(飯頭)로 있을 때 하루는 재(齋;食事)가 늦어지매 덕산이 발우를 들고 법당으로 가니 설봉이 "종도 울리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노스님께서는 발우를 들고 어디 가십니까?" 하자, 덕산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설봉이 암두에게 그 일을 말하니 암두가 "크고 작은 덕산(덕산과 설봉)이 말후구를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이 듣고서 시자를 시켜 방장으로 오게 하고 "네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느냐?" 하자 암두가 자세히 그 말을 설명했다. 덕산이 다음날 상당하였는데 보통 때와 달랐다.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서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면서 "노스님이 말후구를 아신 것이 무엇보다 기쁘구나. 이후로는 천하인이 그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만 3년 뿐이겠구나." 하였다. |
【聯燈會要】卷第21에 3년 뒤에 과연 덕산이 천화했다고 쓰여 있다.
「雖然如是。也只得三年。後三年果遷化。」
此公案中。 如雪峰見德山無語。 將謂得便宜。 殊不知著賊了也。 蓋為他曾著賊來。 後來亦解做賊。 所以古人道。末後一句。 始到牢關。 有者道。巖頭勝雪峰。 則錯會了也。 巖頭常用此機示眾云。 明眼漢沒窠臼。 卻物為上。 逐物為下。 這末後句。設使親見祖師來。 也理會不得。 |
이 공안 중에서는 마치 설봉은 덕산이 말 못하는 것을 보고 편의를 얻은 것으로 여겼는데, 도둑맞은 줄을 전혀 모른 것이다. 대개는 도둑을 맞아 오다가 후에 와서야 도둑질 할 줄도 아는 것이라 그래서 고인(洛浦元安禪師)이 "말후 1구가 비로소 뇌관(牢關)에 이르렀다"고 한 것이다. 암두가 설봉을 이겼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곧 잘못 안 것이다. 암두는 늘 이 기(機)를 써서 시중해 이르기를, "눈 밝은 놈은 과구(窠臼;고정관념)가 없어서 물리치기[却物]로 상(上)을 삼고 쫓아가기[逐物]는 하(下)를 삼는다" 하였는데 이 말후구는 설사 조사(祖師)를 친견하고 왔을지라도 또한 이회하지 못할 것이다. |
*將謂; 여기다. 알다. 인정하다.
*窠臼; 상투(常套). 기존 격식. 정형화된 패턴. 「낡은 고정관념」에 비유하는 말.
德山齋晚。 老子自捧缽下法堂去。 巖頭道。大小德山。 未會末後句在。 雪竇拈云。 曾聞說箇獨眼龍。 元來只具一隻眼。 殊不知。德山是箇無齒大蟲。 若不是巖頭識破。 爭知得昨日與今日不同。 諸人要會末後句麼。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
덕산이 재(齋)가 늦어지자 늙은이가 발우를 끌어안고 법당으로 내려가매 암두가 '대소 덕산이 말후구를 이회하지 못하고 있다' 한것을 설두가 콕 집어 말하기를 "일찍이 저 독안룡(獨眼龍)이 원래 일척안(一隻眼)만은 갖췄다는 말은 들었지만 덕산이 이빨이 없는 호랑이[大蟲]인 줄은 전혀 모르는구나. 만약 암두가 간파하지 못했더라면 어제와 오늘이 다른 줄을 어찌 알겠는가? 여러분이 말후구를 알고자 하는가? 다만 노호(老胡;達磨)가 인지(認知)는 해도 회합(會合) 하지는 못한다." 하였다. [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尚頌古從容庵錄四] |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달마가 真智를 깨달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世智로 정확히 契合하지는 못한다는 뜻. 언어 등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
自古及今。公案萬別千差。 如荊棘林相似。 爾若透得去。天下人不奈何。 三世諸佛。立在下風。 爾若透不得。 巖頭道。雪峰雖與我同條生。 不與我同條死。 只這一句自然有出身處。 |
예나 지금이나 공안이 천차만별하기가 마치 가시밭과 같거니와 너희가 만약 투철히 얻는다면 천하인이 어찌 하지 못하고 삼세제불이 내 밑에 서 있겠지만, 너희가 만약 투철히 얻지 못했거든 암두가 '설봉이 비록 나와 같은 가지에서 났지만 나와 같은 가지에서 죽지는 않는다'고 한 이 한 구절에 자연히 출신처(出身處)가 있다. |
雪竇頌云。 | 설두(雪竇)의 송(頌) |
末後句 (已在言前。將謂真箇。 覷著則瞎) 為君說 (舌頭落地。說不著。 有頭無尾有尾無頭) 明暗雙雙底時節 (葛藤老漢。 如牛無角似虎有角。 彼此是恁麼) 同條生也共相知 (是何種族。彼此沒交涉。 君向瀟湘我向秦) 不同條死還殊絕 (拄杖子在我手裏。 爭怪得山僧。 爾鼻孔為什麼在別人手裏) |
말후구(末後句)를 (이미 말 이전에 있으니 참이라 하려니와 들여다 보면 눈이 먼다.) 그대 위해 설하노니 (설두락지<舌頭落地*>이니 말을 붙이지 말라. 머리 있으면 꼬리가 없고 꼬리 있으면 머리가 없구나.) 명암쌍쌍(明暗雙雙*)한 시절이로다. (갈등하는 노인네야, 뿔 없는 소 같기도 하고 뿔 달린 범 같기도 한데 피차<彼此>가 다 그런 것이다.) 같은 가지에서 난 줄이야 서로가 알지만 (이 무슨 종족인가? 피차 교섭이 없다. 君向瀟湘我向秦) 동조사(同條死)하지 않음은 다시 수절(殊絶*)하다네. (拄杖子在我手裏。 爭怪得山僧。 爾鼻孔為什麼在別人手裏) |
還殊絕 (還要喫棒麼。 有什麼摸索處) 黃頭碧眼須甄別 (盡大地人亡鋒結舌。 我也恁麼。他人卻不恁麼。 只許老胡知。不許老胡會) 南北東西歸去來 (收。腳跟下。 猶帶五色線在。 乞爾一條拄杖子) 夜深同看千巖雪 (猶較半月程。 從他大地雪漫漫。 填溝塞壑無人會。 也只是箇瞎漢。 還識得末後句麼。便打) |
다시 수절(殊絶)할지라도 (한 방 먹고 싶은가? 무슨 모색할 곳이 있겠는가?) 석가나 달마는 반드시 감별(鑒別;甄別)할 것이니, (온 대지인이 대꾸하지 못하고 혀가 굳었다. 나야 그렇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거니와 달마가 인지했다지만 회합했다고는 못하겠다.) 남북동서로 돌아가서 (거두었구나. 발꿈치 밑에 오색선<五色線*>을 휴대하고 있으니 그대에게 한 가닥 주장자를 구걸하노라.) 깊은 밤과 천암(千巖)의 눈[雪]을 동시에 보게나. (오히려 반달의 여정[半月程]에 비교하면 그로부터 대지에 눈이 가득하려니와, 전구새학<填溝塞壑*>을 아무도 모른다니 그야말로 눈먼 놈이로구나. 말후구를 인식했느냐? 후려치다.) |
*舌頭落地; 혀끝이 떨어진 경지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지라는 뜻.
*有頭無尾有尾無頭;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에 비유하는 말.
*明暗雙雙; 明 중에 暗이 있고, 暗 중에 明이 있어 둘이 서로 원융한 경지.
*殊絶; 「특별한 단절」이란 완전한 별개(別個)라는 뜻.
*盡大地人亡鋒結舌; 禪林用語. 「盡大地人一口吞盡」과 同類語.
특출한 견식과 능력, 깨달음의 경지가 있는 師家나 禪徒를 지칭하는 말.
*五色線; 五色綖, 五色縷, 五色繩라고도 한다. 青,黃,赤,白,黑의 五色실을 꼬은 線으로
〈大日經疏〉卷五에 「五色綖이란
如來의 五智(法界體性智,大圓鏡智,平等性智,妙觀察智,成所作智)이요,
또한 五法(信,進,念,定,慧)이다. 이 五法으로 一切教門을 貫攝하므로
수다라(修多羅)라 한다」 하였다.
*填溝塞壑; 도랑을 메우고 골짜기를 막는다는 것은
佛法의 진리는 포함하지 못함이 없고, 佛法의 顯現은 있지 않은 데가 없다는 뜻.
末後句為君說。 雪竇頌此末後句。 他意極有落草相為。 頌則殺頌。 只頌毛彩些子。 若要透見也未在。 |
「말후구를 그대 위해 설한다」고 하여 설두가 이 말후구는 그 뜻에 극히 낙초(落草)를 서로 위함이 있다고 송했으니, 송(頌)은 곧 살송(殺頌*)이지만 다만 송의 모채(毛彩*)가 모자라서 꿰뚤어 보려 해도 있지 않다. |
更敢開大口便道。 明暗雙雙底時節。 與爾開一線路。 亦與爾一句打殺了也。 末後更與爾注解。 只如招慶一日問羅山云。 巖頭道。恁麼恁麼 不恁麼不恁麼。 意旨如何。 羅山召云。大師。 師應諾。 山云。雙明亦雙暗。 慶禮謝而去。 |
다시 감히 큰 입을 열어 쉽게 말하기를 「명암쌍쌍(明暗雙雙)한 시절이다」 하였는데, 너희에게 한 가닥 길을 열어 주고 또 1구로 타살(打殺)해 준 다음 마지막에 다시 너희에게 주해(注解)하여 주었으니, 마치 초경(招慶*)이 어느날 나산(羅山*)에게 "암두(巖頭)가 '이런 것은 이렇고, 이렇지 않은 것은 이렇지 않다'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묻자, 나산이 "대사!" 하고 불러 초경이 "예." 대답하니, "쌍명(雙明)이요 또한 쌍암(雙暗)이구나." 하여 초경이 절을 올리고 간 것과 같다. |
*殺頌; 지극(至極;殺)한 송.
*毛彩; 생생한 문채(文彩), 조작되지 않은 문채.
毛~[形] ①生氣, 發怒, 조급한 모양. ②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招慶; 福州長慶慧稜禪師(德山宣鑒_雪峰義存 法嗣) 青原下六世
*羅山; 福州羅山道閑禪師(德山宣鑒_巖頭全奯 法嗣) 青原下六世
三日後又問。 前日蒙和尚垂慈。 只是看不破。 山云。盡情向爾道了也。 慶云。和尚是把火行。 山云。若恁麼 據大師疑處問將來。 慶云。如何是雙明亦雙暗。 山云。同生亦同死。 慶當時禮謝而去。 後有僧問招慶。 同生亦同死時如何。 慶云。合取狗口。 僧云。大師收取口喫飯。 其僧卻來問羅山云。 同生不同死時如何。 山云。如牛無角。 僧云。同生亦同死時如何。 山云。如虎戴角。 末後句。正是這箇道理。 |
3일 후에 또 "전날에 큰 스님의 자비를 입었으나 다만 이것이 살펴보아도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하니 나산이 "온 정을 다해 너에게 말했다." 하였다. "스님께서 저를 놀리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대사의 의문나는 곳을 들춰 물어보게." "어떤 것이 쌍명(雙明)이고 또한 쌍암(雙暗)입니까?" "동생(同生)이고 또한 동사(同死)이다." 초경이 이에 절을 올리고 갔다. 후에 어떤 중이 초경에게 물어 "동생(同生)하고 동사(同死)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초경은 "개 아가리를 닫거라." 하자 중이 "대사나 밥먹는 입을 거두십시요." 하였다. 그 중이 거꾸로 나산에게 물어 "동생(同生)하고 부동사(不同死)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나산은 "소가 뿔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고, "동생하고 동사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니 "호랑이가 뿔을 단 것과 같다." 하였다. 말후구는 바로 이런 도리(道理)다. |
羅山會下有僧。 便用這箇意。致問招慶。 慶云。彼此皆知。何故 我若東勝身洲道一句。 西瞿耶尼洲也知。 天上道一句。人間也知。 心心相知。 眼眼相照。 同條生也則猶易見。 不同條死也還殊絕。 釋迦達磨也摸索不著。 南北東西歸去來。 有些子好境界。 夜深同看千巖雪。 且道是雙明雙暗。 是同條生是同條死。 具眼衲僧試甄別看。 |
나산 회하(會下)의 어떤 중이 이런 뜻에 입각(立刻;便用)하여 초경에게 질문을 던지자 초경은 "피차가 다 안다. 왜냐? 내가 만약 동승신주(東勝身洲*)에서 1구를 말하면 서구야니주(西瞿耶尼洲*)에서도 알고, 천상에서 1구를 말하면 인간에서도 알아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알고 눈과 눈이 서로 비추기 때문이다" 하였다. 같은 가지에서 난 것이야 곧 알기 쉽지만 같은 가지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은 수절(殊絕)하여 석가나 달마일지라도 모색하지 못할 것이다. 「남북동서로 돌아간다」고 하니 약간의 좋은 경계다. 「깊은 밤과 동시에 천암(千巖)의 눈[雪]을 본다」 하였는데 말해보라. 이것이 쌍명쌍암(雙明雙暗)인가, 이것이 동조생(同條生)인가, 동조사(同條死)인가. 안목을 갖춘 납승이라면 한 번 뚜렷히 분별해 보거라. |
*把火行; 곡예사가 불을 가지고 놀리는 행위이니, '저를 놀리십니까?'라는 의미.
*東勝身洲; 4대주(四大洲)의 하나로 수미산 동쪽 함해(鹹海)에 위치한다.
*西瞿耶尼; 西瞿陀尼. 西瞿伽尼. 수미산 서쪽 함해(鹹海)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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