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大師野鴨子」라고도 한다.
萬有는 나름 애써 무엇인가를 도모하며 움직이고 있는 듯 하지만
기실은 자기가 무엇인지, 어떤 목적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마대사가 날아가는 들오리를 통해 이 「一大事」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묻고 있다.
백장은 한 번의 코비틀림에 다음날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데
나는 언제나 아프지 않게 될까.
垂示云。 | 수시(垂示) |
遍界不藏。全機獨露。 觸途無滯。 著著有出身之機。 句下無私。頭頭有殺人之意。 且道古人畢竟向什麼處休歇。 試舉看。 |
어디에서나 숨김 없이 전(全機*)를 홀로 드러내니 어느 곳에도 막힘이 없고 한 수 한 수마다 출신(出身)의 기(機)가 있으며, 언구 아래 사심이 없고 낱낱에 살인의 뜻이 있다. 말해보라. 고인은 필경 어디에 쉰 것인가? 예를 들어 살펴보자. |
*全機; 禪者의 自在無礙한 活動. [佛光大辭典]
*觸途; 이르는 곳곳마다(所到之處). 旅途.
【五三】舉。 | 【제53칙】 마대사(馬大師)의 들오리 |
馬大師與百丈行次。 見野鴨子飛過 (兩箇落草漢草裏輥。 驀顧作什麼) 大師云。是什麼 (和尚合知。 這老漢鼻孔也不知) 丈云。野鴨子 (鼻孔已在別人手裏。 只管供款。 第二杓惡水更毒) 大師云。什麼處去也 (前箭猶輕後箭深。 第二回啗啄。也合自知) 丈云。飛過去也 (只管隨他後轉。當面蹉過) 大師遂扭百丈鼻頭 (父母所生鼻孔卻在別人手裏。 捩轉鎗頭。裂轉鼻孔來也) |
마대사(馬大師)가 백장(百丈)과 길을 가다가 들오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두 낙초한<落草漢*>이 풀 속을 다니며 맥고<驀顧*>해서 무얼 하려느냐?) 마대사가 물어 "저것이 무엇이냐?" 하니 (和尚은 合當히 아는가? 이 老漢은 鼻孔도 모른다.) 백장이 "들오리입니다." 하였다. (鼻孔이 이미 다른 사람 손 안에 있는데 주저없이 가져다 바치니 두 번째 똥물 바가지가 다시 독할 것이다.) "어디로 가느냐?" (앞 화살은 오히려 가벼운데 뒷 화살이 깊다. 두 번째로 쪼아 먹였으니 합당히 스스로 알리라.) 백장이 "날아가버렸습니다."고 하자 (그저 그 뒤만 따라 구르다가 빗겨 지나게 되었다.) 대사가 백장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부모가 낳아준 鼻孔이 도리어 타인의 손 안에 있다. 창 끝을 비틀어 굴리고 鼻孔을 찢어 굴렸다.) |
丈作忍痛聲 (只在這裏。 還喚作野鴨子得麼。 還識痛痒麼) 大師云。何曾飛去 (莫瞞人好。 這老漢元來只在鬼窟裏作活計)。 |
백장이 아픔을 참는 소리를 내니 (다만 이 속에 있다. 아직도 들오리라고 하겠느냐? 통양<痛痒*>을 알겠느냐? ) 대사가 "언제 날아간 적이 있더냐?" 하였다.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이 노한이 원래 귀굴 속에서 살아갈 궁리만 했구나.)。 |
*落草漢; 敎化를 위해 신분을 낮춰 眾生 속에 뛰어드는 사람에 비유하는 용어.
*驀顧; 앙모(仰慕)하다. 앙망(仰望)하다.
*痛痒; 아픔과 가려움. 이해관계나 중요한 일에의 비유.
正眼觀來卻是百丈具正因。 馬大師無風起浪。 諸人要與佛祖為師。 參取百丈。 要自救不了。 參取馬祖大師。 看他古人二六時中。 未嘗不在箇裏。 百丈丱歲離塵。 三學該練。 屬大寂闡化南昌。 乃傾心依附。 二十年為侍者。 及至再參。 於喝下方始大悟。 而今有者道。本無悟處。 作箇悟門建立此事。 若恁麼見解。如獅子身中蟲。 自食獅子肉 |
정안으로 보면 도리어 백장이 정인(正因*)을 갖췄건만 마대사가 바람 없는데 풍랑을 일으킨 것이다. 여러분이 불조(佛祖)와 더불어 스승이 되고자 하거든 백장을 참취(參取)하고, 자신을 구하기도 마치지 못하려면 마조대사를 참취하거라. 저 고인을 살피건대 온 종일(2*6=12時) 그 속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백장은 어려서 속세를 떠나 삼학(三學)을 갖추어 연마하다가 대적(大寂;馬祖)이 남창(南昌)에서 교화를 천명하매 이내 몸을 의탁하기로 결심하고 20년 동안 시자(侍者)가 되었으며, 급기야 재참(再參*)에 이르러 1할(喝) 하에 비로소 대오(大悟)했는데, 지금에 어떤 자들은 본래 깨달을 곳이 없건만 어떤 깨달음의 문을 만들어서 이런 일을 저지른다고 하거니와, 만일 이러한 견해라면 사자 몸 안의 벌레가 스스로 사자의 살점을 먹는 것과 같다. |
不見古人道。 源不深者流不長。 智不大者見不遠。 若用作建立會。 佛法豈到如今。 |
보지 못했는가? 고인이 말하되, "근원(根源)이 깊지 못하면 흐름이 길지 않고 지혜가 광대하지 못하면 견(見)이 멀지 않다" 하였거늘 만약 회합(會合)을 만들고 세워서 사용했다면 불법(佛法)이 어찌 지금에 이르렀겠느냐? |
*正因; 眾生이 본래 구비하고 있는 成佛의 因者를 「正因」이라 하고,
이에 반하여 一切의 功德과 善根, 資助, 智慧의 了因이나
正因을 開發시키는 性者를 「緣因」이라 한다.
*再參; 백장이 마조를 다시 참례했을 때
「마조께서 내가 오는 것을 보시고 문득 불자(拂子)를 일으켜 세우시길래
내가 "이 용(用)에 즉(即)함입니까, 이 용(用)에 이(離)함입니까?" 여쭈었는데,
마조께서 불자를 선상(禪床) 모서리에 걸어놓고 한참 계시다가
"너는 이 다음에 입을 놀려서 어떤 사람이 되려느냐?" 하시기에
내가 불자를 잡아 일으켜 세웠더니
마조께서 "즉차용이냐, 이차용이냐?" 하셨고,
내가 다시 불자를 선상 모서리에 걸자
마조께서 위엄을 떨치며 일할(一喝)을 하셨는데,
나는 그때부터 3일 동안 귀가 먹었었다.」 [11칙 참조]
看他馬大師與百丈行次。 見野鴨子飛過。 大師豈不知是野鴨子。 為什麼卻恁麼問。 且道他意落在什麼處。 百丈只管隨他後走。 馬祖遂扭他鼻孔。 丈作忍痛聲馬祖云。 何曾飛去百丈便省。 而今有底錯會。 纔問著便作忍痛聲。 且喜跳不出。 |
저 마대사와 백장의 행차를 살피건대 들오리가 날아 지나가는 것을 보고 대사가 어찌 들오리임을 몰랐으리오만 어째서 도리어 이렇게 물었겠는가. 말해보라. 그의 뜻이 어디에 떨어져 있는가? 백장이 주저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달리다가 마조가 마침내 그의 콧구멍을 비틀자 백장이 아픔을 참는 시늉을 하니, 마대사가 "언제 날아간 적이 있느냐?" 하매 백장이 문득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잘못 알고서 묻기만 하면 곧 아픔을 참는 소리를 내니 뛰어도 벗어나지 못함을 기쁘게 여긴다. |
宗師家為人須為教徹。 見他不會。 不免傷鋒犯手。 只要教他明此事。 所以道。會則途中受用。 不會則世諦流布。 馬祖當時若不扭住。 只成世諦流布。 也須是逢境遇緣。 宛轉教歸自己。 十二時中。無空缺處。 謂之性地明白。 若只依草附木。 認箇驢前馬後。有何用處。 |
종사가(宗師家)는 사람을 반드시 투철히 깨닫게 한다. 그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칼날 상하고 손 다치기를 면치 못하겠는지라 다만 그가 이 일[此事;一大事]을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알면 곧 도중에 수용하고 알지 못하면 곧 세제로 유포된다" 하였거니와 마조가 당시에 만약 뉴주(扭住*)하지 않았더라면 다만 세제유포(世諦流布*)를 이루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상황을 만나고 인연을 만나거든 자기로 돌아오도록 따라 굴러서 온 종일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니, 이를 일러 성지(性地;心地)가 명백하다 하거니와 만약 의초부목(依草附木)만 하여 여전마후(驢前馬後*)를 인정한다면 어디에 쓰겠느냐. |
*扭住; 비틀어 꼼짝 못하게 하다.
*世諦流布; 세상 물정에 따라 그 이름을 가정하여, 세상에 통용되는 법.
선문답이 아니라 세속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뜻.
*宛轉; 태도가 상냥하고 유순하다. 소리를 귀 기울여 듣기 좋아하다.
*驢前馬後; 나귀 앞과 말의 뒷편이란 다른 사람들 주변을 맴돈다는 뜻으로
장군을 뒤따라 출정한다는 鞍前馬後와 유사한 말이다.
看他馬祖百丈恁麼用。 雖似昭昭靈靈。 卻不住在昭昭靈靈處。 百丈作忍痛聲。 若恁麼見去。 遍界不藏頭頭成現。 所以道。 一處透千處萬處一時透。 |
저 마조와 백장의 이러한 용(用)을 보건대 한없이 밝고 신령한[昭昭靈靈] 듯하나 도리어 소소영령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에 백장이 아픔을 참는 소리를 낸 것이거니와, 만약 이렇게 알아 간다면 어디에도 숨지 못하고 낱낱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 곳을 투득(透得)하면 천 곳 만 곳을 일시에 투득한다고 하였다. |
馬祖次日陞堂眾纔集。 百丈出卷卻拜蓆。 馬祖便下座。 歸方丈次問百丈。 我適來上堂。未曾說法。 爾為什麼便卷卻蓆。 丈云。昨日被和尚扭得鼻孔痛。 祖云。爾昨日向甚處留心。 丈云。今日鼻頭又不痛也。 祖云。爾深知今日事。 丈乃作禮。 卻歸侍者寮哭。 |
마조가 다음 날 승당(陞堂)하여 대중이 모이자 마자 백장이 나서서 방석을 걷어버렸다. 마조가 곧 하좌(下座)하여 방장으로 돌아던 중에 백장에게 물었다. "내가 조금 전에 상당해서 설법도 안했는데 네가 어째서 방석을 걷어버렸느냐?" "어제 화상이 비트셔서 콧구멍의 아픔을 얻었습니다." "네가 어제 어디에 마음을 두었느냐?" "오늘은 코 끝도 아프지 않습니다." 마조가 "네가 오늘의 일을 깊이 알았구나." 하자 백장이 이내 절을 하고 도리어 시자료(侍者寮)로 돌아가서 울었다. |
同事侍者問云。 爾哭作什麼。 丈云。爾去問取和尚。 侍者遂去問馬祖。 祖云。爾去問取他看。 侍者卻歸寮問百丈。 丈卻呵呵大笑。 侍者云。爾適來哭。 而今為什麼卻笑。 丈云。我適來哭。 如今卻笑。 看他悟後。阿轆轆地。 羅籠不住。自然玲瓏。 |
같이 일하는 시자가 물어 "네가 울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하니 백장이 "당신이 가서 화상에게 물어보시오." 하매 시자가 가서 마조에게 묻자 "마조는 그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였다. 시자가 요채[寮]로 돌아와 백장에게 물으니 백장이 도리어 깔깔 대소하는지라 시자가 "네가 좀 전에는 울더니 지금은 왜 도리어 웃느냐?" 하자 백장이 "내가 좀 전에는 울었으나 지금은 도리어 우습구료." 하였다. 그의 깨친 후를 보건대 아녹록지(阿轆轆地*)인지라 나롱(羅籠*)에 머물지 않아서 자연히 영롱(玲瓏)하다. |
*阿轆轆地; 禪林用語. 轉轆轆地라고도 한다. 阿는 語助詞,
轆轆은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 地는 語尾助詞.
정체(停滯)하지 않고 곧장 進行할 수 있는 상태.
거침없이 자유자재하고 원만히 구르는 경지, 또는 변재무애(辯才無礙)한 경지를 말한다.
*羅籠; 그물 라, 대바구니 롱. 댓가지로 얽어 만든 그물.
雪竇頌云。 | 설두(雪竇)의 송(頌) |
野鴨子 (成群作隊又有一隻) 知何許 (用作什麼。如麻似粟) 馬祖見來相共語 (打葛藤有什麼了期。 說箇什麼。 獨有馬祖識箇俊底) 話盡山雲海月情 (東家杓柄長。 西家杓柄短。 知他打葛藤多少) 依前不會還飛去 (㘞。莫道他不會言。 飛過什麼處去) |
들오리를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었는데 또 한 짝이 있다.) 어떻게 알 것인지 (그래서 뭐하겠는가. 셀 수 없이 많은데.) 마조(馬祖)가 보고 서로 함께 얘기하되 (갈등 쳐내기<打葛藤*>는 언제 마치려고 그 무엇을 말하겠는가 마는 오로지 마조가 있어 저 준재<俊才>를 알았다.) 대화에 산운해월정(山雲海月情*)을 다했으나 (동쪽 집 국자는 길고 서쪽 집 국자는 짧거니와, 저들 갈등 쳐낸 수준을 알리라.) 여전히 엉뚱하게 날아가매 (에잇! 그가 모르고 말했다고 말하지 마라. 어디로 날아가느냐?) |
欲飛去 (鼻孔在別人手裏。 已是與他下注腳了也) 卻把住 (老婆心切。更道什麼) 道道 (什麼道。不可也教山僧道。 不可作野鴨子叫。 蒼天蒼天。 腳跟下好與三十棒。 不知向什麼處去) |
날아가려는데 (鼻孔이 다른 사람 손 안에 있다고 이미 주각<注腳>을 내려 주었었다.) 도리어 붙들고서 (노파심이 간절하다. 다시 무엇을 말하려는가.) 말하라 말하라 하네. (무슨 말을 하나? 산승을 시켜도 말하지 못하겠고, 들오리더러 울라 할 수도 없으니, 아이고, 아이고! 발꿈치 아래 30방을 주어야겠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구나.) |
*打葛藤; 얽히고설킨 번거로운 케케묵은 말들을 일소하다.
잡다한 가지와 덩굴을 쳐부수고 頓悟에 直入케 하는 禪.
*㘞; ①「에잇!」, 「영차, 영차!」와 같은 힘을 쓰는 소리.
②「咄; 쯧쯧!, 에라!」과 같은 의미.
*山雲海月情; 오랜 벗이 서로 만나면
산 위로 솟아오르는 구름처럼 말이 많아지고,
소리도 바다 위에 차곡차곡 떠오르는 달처럼 점점 높아진다.
소동파(蘇東坡)의 싯귀 「계곡 물소리가 다 광장설(廣長舌)이요
산빛은 청정신(清淨身) 아닌 것이 없다
[溪聲盡是廣長舌, 山色無非清淨身]」와 유사한 의미로
지극한 정을 기울여 깊은 禪談을 했다는 뜻이다.
雪竇劈頭便頌道。 野鴨子知何許。 且道有多少。 馬祖見來相共語。 此頌馬祖問百丈云。 是什麼。丈云。野鴨子。 語盡山雲海月情。 頌再問百丈什麼處去。 馬大師為他意旨自然脫體。 百丈依前不會。 卻道飛過去也。 兩重蹉過 欲飛去。卻把住。 雪竇據款結案。 又云。道道。 此是雪竇轉身處。 且道。作麼生道。 若作忍痛聲則錯。 若不作忍痛聲。 又作麼生會。 雪竇雖然頌得甚妙。 爭奈也跳不出。 |
설두가 첫머리에 송하기를 「들오리를 어떻게 알아야 할까?」 라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어느 수준인가? 「마조가 보고 서로 함께 말했다」는 것은 이는 마조가 백장에게 "이 무엇인가?" 묻자 백장이 "들오리입니다" 한 것을 송한 것이다. 「산운(山雲)과 해월(海月)의 정을 다해 말했다」는 것은 백장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은 것을 송한 것이다. 마대사는 그의 의지(意旨)가 자연히 탈체(脫體*)하기를 위했으나 백장이 여전히 알지 못하고 도리어 "날아 지나갔다"고 하여 두 번 거듭 어긋나게 지나가매 「날아가려하니 도리어 붙들었다」고 설두가 거관결안(據款結案*)하였다. 또 「말하라, 말하라 하는구나」고 하였는데, 이는 설두의 전신처(轉身處)이거니와 자 말해보라. 어떻게 말하겠는가? 만약 아픔을 참는 소리를 지은 즉 틀렸고, 아픔을 참는 소리를 짓지 않는다면 또 어찌 회합해야 하겠는가? 설두가 비록 송(頌)에 심묘(甚妙)함을 얻었지만 또한 뛰어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어쩌겠는가. |
*脫體; ①근본적으로 벗어나다. ②온 몸[全身]. ③병이 치유되다.
*據款結案; 정관(定款;정한 규칙)에 의거하여 방안을 결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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